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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유시민 “민주당에선 정치 혁신 이룰 가능성 없어”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유시민 “민주당에선 정치 혁신 이룰 가능성 없어”

    국민참여당의 차기 당 대표로 사실상 확정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지금 다시 민주당에 가거나 민주당과 통합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간 길을 뒤따라 가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지난 1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갔던 길은 대통령이 되는 데는 유리했는지 모르지만, 정당지형·선거구도·정치문화 혁신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지 않았느냐.”면서 “민주당 안에서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전망, 확신, 그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의 유 원장 집필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국민참여당과 4·27 재보선 →19일 당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갖고 당을 이끌 것인가. -중요한 건 2012년 권력교체다. 권력교체를 하려면 야권이 단결해야 한다. 우선 당의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 →야권연대에 비중을 두면 국민참여당이 임시 정당이라고 오해받지 않을까. -야권의 혁신, 정치지형의 정상화, 지역주의·양강주의를 혁파하는 것, 진보의 집권, 이런 것들이 장기적 목표다. 그러나 매 시기 국민이 강력히 요청하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장기적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 →국민참여당은 ‘친노 정당’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참여당의 전부를 설명하는 건 아니다. 참여정부의 정치철학을 계승·발전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못했던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4·27 재·보선 전체를 아우르는 흐름은 무엇이라고 보나. -내년에 의회 권력 및 정권의 교체가 어떻게 하면 이뤄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선거다. 진보개혁 정당들이 실효성 있는 야권연대를 만들지 못하면 내년 선거도 안 된다. 일종의 시금석이다. →시·도당 대회 등을 거치면서 지켜본 표심의 흐름은 어떤 것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정권이 너무 못하기 때문에 남은 기간 잘하도록 경고를 주라는 요구가 많다. 두 번째는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두 흐름이 중첩돼 있다. →김해을 선거가 ‘이명박 대 노무현’, ‘김태호 대 유시민’의 대결이라고도 한다. 동의하나. -김 전 경남도지사가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면 김태호와 이봉수(참여당 후보)의 대결이며, 이명박 대통령과 김해 시민의 대결이다. 결국 집권 세력과 김해 시민의 대결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에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분당을의 민심이 예전과 다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나와 김문수 지사의 득표율 차이가 10%포인트 밖에 나지 않았다. (유 원장은 인터뷰가 끝나고 가진 오찬에서 “손 대표가 분당을에 나가면 강원, 김해을, 순천 등 재·보선 전 지역에서 야권이 이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나의 득표율이 44%였는데, 손 대표가 44% 이상 못 받겠나.”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과 야권 연대 →4·27 재·보선 이후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정치권이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보나. -1987년 이후 5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3번은 보수 진영이, 2번은 진보개혁 진영이 이겼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한번도 단결했던 적이 없다. 진보개혁 진영은 단일화 방식으로 보수 일부와 결합해 겨우 이겼다. 내년 선거에서도 보수는 다시 분열될 거다. 친이와 친박이 나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권교체는 진보진영이 하나로 결속할 때 가능하다. 총선과 대선까지 더 높은 연대가 이뤄지면서 단결할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을 인정하나. -박 전 대표가 여권에서 확고한 우위를 갖고 있는 후보임은 분명하지만 대세라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나. →야권은 박 전 대표에 맞서 어떤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대선은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는 선거가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원하는 걸 가지는 선거다. 전략보다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 원장이 현재 야권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다. 만일 야권의 단일후보가 된다면 박 전 대표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안 될 것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지금은 ‘내가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국민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획득해 가는 야당 후보들이 많아져야 한다. →유 원장이 대통령을 하겠다면 민주당에 들어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고들 한다. -(웃음) 지금 다시 민주당에 가면 예전처럼 혼자는 아닐 거다. 오면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그분들의 뜻을 잘 알지만 그길은 노 전 대통령이 간 길을 뒤따라 가는 것이다. 이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혁신이다. 앞으로 정당·정치 문화·정책 발전을 이루는 도전을 해야지, 권력 도전만으로 의미를 찾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내년 대선에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어떤 역할을 할 거라고 보나. -그분은 한때 보수의 지도자였는데 지금은 지역의 지도자가 돼 있다. 계속해서 그런 역할을 하실 건지, 다시 보수의 지도자를 하실 건지는 그분이 선택할 거라고 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가 선거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보나. -그렇다. 미디어 정보화 사회니까. 과거에는 선거운동 조직이나 직능단체 조직, 친목회 같은 조직이 정보를 유통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줬다. 하지만 이제 개인이 다양한 정치적 경로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시기다. 조직 없이도 정당을 형성할 수 있다. →경제학과 출신이다.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을 어떻게 보나. -정운찬 전 총리가 재임시에는 제대로 된 걸 거의 못하더니 총리 마치고 나서 오랜만에 좋은 걸 했다고 생각한다. 협력업체들의 도움 덕분에 기업이 성장한 건데, 물론 방법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토론할 만하다. 그러나 공산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식으로 나오는 건 문제다. 집권 세력에 의해 깔아뭉개지는 걸 보니 안타깝다. →이슬람채권(수쿠크)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수쿠크법은 아랍 자금 유입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안정, 실물경제를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되는지, 금융 분야에서 자유화의 정도를 이슬람 자본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슬람 자본이 율법 때문에 문제 생기는 거라며 우회로를 만들어 주기 위해 조세특례를 해준 게 아닌가. 어이가 없다. ●참여정부와 정치인 유시민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나 ‘후계자’라는 말에 동의하나. -‘(경호실장이란 말은) 정치적인 면에서 그런 거지’라고 말해서 그러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그분이 하려고 했던 정치적인 목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친노는 분명하다. 후계자란 말은 적절치 않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씨가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별로 괘념치 않는다고 대응했다. 진짜 그런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 강 회장을 잘 몰랐다. 그분과 정치적인 문제 등을 의논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분은 내가 의논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분이 참여당 창당을 부정적으로 봤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음의 동요는 전혀 없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은 노 전 대통령과 이광재·안희정 세분이 갖고 있다고 했다. 유 원장은 지분이 없나. -없다. →왜 없나. -난 사실상 혼자 대통령과 결합했다.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했던 측근이나 참모도 아니었다. 정부와 결합할 정도의 인적 기반을 가진 세력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관계다. 실제로 정부의 인사나 공공기관에 사람 넣는 것까지 해본 적이 없다. 좀 유명한 자원봉사자라고나 할까.(웃음) →한나라당 인사들 가운데 김두관 지사를 강적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유 원장이 보는 김 지사의 강점은 무엇인가. -경남에서 압도적으로 도지사에 당선된 건 잠재력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 기반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통합의 리더십이 나보다 더 좋은 분이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정치적 지도자가 될 만한가. -그렇다. 말할 나위가 없다. 5년간 대통령을 모시면서 온갖 일을 겪은 분인데 자기 삶에 대한 실존적 선택, 그 문제가 남아 있다. 정치하지 않아도 아름답고, 정치해도 아름다운 분이라 생각한다. 개인적 결단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는 언론과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유 원장의 언론관은 무엇인가. -원래 불편한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시장 권력은 국가의 규제를 받는다. 유일하게 언론 권력만큼은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다. 만인의 언론 자유가 특정인이나 소수 언론 자본을 위해 남용될 때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친노 세력의 분열은 당연한 귀결인가, 안타까운 일인가. -한 사람이나 한 정치 세력이 계승하기에는 노 전 대통령은 매우 다양한 목표를 추구했던 분이다. 참여당은 3당 합당 합류를 거부하고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우했던 시절의 정치인 노무현을 계승하려는 것이다. 그 때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들은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긴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koohy@seoul.co.kr
  • 유시민 “노 대통령이 가지 않은 길 가겠다”

    유시민 “노 대통령이 가지 않은 길 가겠다”

     국민참여당의 차기 당 대표로 사실상 확정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지금 다시 민주당에 가거나 민주당과 통합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간 길을 뒤따라 가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16일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갔던 길은 대통령이 되는 데는 유리했는지 모르지만, 정당지형·선거구도·정치문화 혁신은 결과적으로 실패하지 않았느냐.”면서 “민주당 안에서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전망, 확신, 그런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경기도 파주시 출판단지의 유 원장 집필실에서 이도운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국민참여당과 4·27 재보선  19일 당 대표에 취임하게 된다.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갖고 당을 이끌 것인가.  -중요한 건 2012년 권력교체다. 권력교체를 하려면 야권이 단결해야 한다. 우선 당의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  야권연대에 비중을 두면 국민참여당이 임시 정당이라고 오해받지 않을까.  -야권의 혁신, 정치지형의 정상화, 지역주의·양강주의를 혁파하는 것, 진보의 집권, 이런 것들이 장기적 목표다. 그러나 매 시기마다 국민이 강력히 요청하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장기적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  국민참여당은 ‘친노 정당’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참여당의 전부를 설명하는 건 아니다. 참여정부의 정치철학을 계승·발전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못했던 것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4·27 재·보선 전체를 아우르는 흐름은 무엇이라고 보나.  -내년에 의회 권력 및 정권의 교체가 어떻게 하면 이뤄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선거다. 진보개혁 정당들이 실효성 있는 야권연대를 만들지 못하면 내년 선거도 안 된다. 일종의 시금석이다.  시도당 대회 등을 거치면서 지켜본 표심의 흐름은 어떤 것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정권이 너무 못하기 때문에 남은 기간 잘하도록 경고를 주라는 요구가 많다. 두번째는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두 흐름이 중첩돼 있다.  김해을 선거가 ‘이명박 대 노무현’, ‘김태호 대 유시민’의 대결이라고도 한다. 동의하나.  -김 전 경남도지사가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면 김태호와 이봉수(참여당 후보)의 대결이며, 이명박 대통령과 김해 시민의 대결이다. 결국 집권 세력과 김해 시민의 대결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에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분당을의 민심이 예전만 못하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나와 김문수 지사의 차이가 10% 밖에 안났다. (유 원장은 인터뷰가 끝나고 가진 오찬에서 “손 대표가 분당을에 나가면 강원, 분당을, 순천 등 재·보선 전 지역에서 야권이 이긴다. 내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득표율 44%였는데, 손 대표가 44% 이상 못 받겠나.”라고 말했다.)    2012년 대선과 야권 연대  4·27 재·보선 이후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정치권이 어떻게 흘러갈 것으로 보나.  -1987년 이후 5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3번은 보수 진영이, 2번은 진보개혁 진영이 이겼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선에서 보수 진영은 한번도 단결했던 적이 없다. 진보개혁 진영은 단일화 방식으로 보수 일부와 결합해 겨우 이겼다. 내년 선거에서도 보수는 다시 분열될 거다. 친이와 친박이 나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권교체는 진보진영이 하나로 결속할 때 가능하다. 총선과 대선까지 더 높은 연대가 이뤄지면서 단결할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을 인정하나.  -박 전 대표가 여권에서 확고한 우위를 갖고 있는 후보임은 분명하지만 대세라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나.  야권은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서 어떤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대선은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는 선거가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원하는 걸 가지는 선거다. 전략보다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 원장이 현재 야권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다. 만일 야권의 단일후보가 된다면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승리할 수 있다 말하기도 그렇고, 안될 것이다라고 할 것도 아니다. 지금은 ‘내가 꼭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국민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자원을 획득해가는 야당 후보들이 많아져야 한다.  유 원장이 대통령을 하겠다면 민주당에 들어가는 방법 말고는 없다고들 한다.  -(웃음) 지금 다시 민주당에 가면 예전처럼 혼자는 아닐 거다. 오면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그 분들 뜻을 잘 알지만 그길을 노무현 대통령이 간 길을 뒤따라 가는 것이다. 이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혁신이다. 앞으로 정당·정치 문화·정책 발전을 이루는 도전을 해야지, 권력 도전만으로 의미를 찾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내년 대선에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어떤 역할을 할 거라 보나.  -그 분은 한때 보수의 지도자였는데 지금은 지역의 지도자가 돼 있다. 계속해서 그런 역할 하실 건지, 다시 보수의 지도자를 하실 건진 그 분이 선택할 거라 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가 선거에 큰 영향을 줄 거라고 보나.  -그렇다. 미디어 정보화 사회니까. 과거에는 선거운동 조직이나 직능단체 조직, 친목회 같은 조직이 정보를 유통하고 정치적 의사 결정에 큰 영향줬다. 하지만 이제 개인이 다양한 정치적 경로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시기다. 조직 없이도 정당을 형성할 수 있다.    정치 현안  경제학과 출신이다.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을 어떻게 보나.  -정운찬 전 총리가 재임시에는 제대로 된 걸 거의 못하더니 총리 마치고 나서 오랜만에 좋은 걸 했다고 생각한다. 협력업체들의 도움 덕분에 기업이 성장한 건데 물론 방법이 적절하냐는 토론할 만하다. 그러나 공산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식으로 나오는 건 문제다. 집권 세력에 의해 깔아뭉개지는 걸 보면서 안타깝다.  이슬람채권(스쿠크)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쿠크법은 아랍 자금 유입이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안정, 실물경제를 북돋우는데 도움이 되는지, 금융 분야에서 자유화의 정도를 이슬람 자본까지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슬람 자본이 율법 때문에 문제 생기는 거라며 우회로를 만들어주기 위해 조세특례를 해준 게 아닌가. 어이가 없다.    참여정부와 정치인 유시민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나 ‘후계자’라는 말에 동의하나.  ‘(경호실장이란 말은) 정치적인 면에서 그런 거지’라고 말해서 그러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그 분이 하려고 했던 정치적인 목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친노는 분명하다. 후계자란 말은 적절치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씨가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고 했는데, 별로 괘념치 않는다고 대응했다. 진짜 그런가.  -노 대통령 서거 전까지 강 회장을 잘 몰랐다. 그 분과 정치적인 문제 등을 의논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 분은 내가 의논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분이 참여당 창당을 부정적으로 봤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의 지분은 노 대통령과 이광재·안희정 세 분이 갖고 있다고 했다. 유 원장은 지분이 없나.  -없다.  왜 없나.  -난 사실상 혼자 대통령과 결합했다. 오랫동안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했던 측근이나 참모도 아니었다. 정부와 결합할 정도의 인적 기반을 가진 세력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관계다. 실제로 정부의 인사나 공공기관에 사람 넣는 것까지 해본 적이 없다. 좀 유명한 자원봉사자라고나 할까.(웃음)  한나라당 인사들 가운데 김두관 지사를 강적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유 원장이 보는 김 지사의 강점은 무엇인가.  -경남에서 압도적으로 도지사에 당선된 건 잠재력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 기반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통합의 리더십이 나보다 더 좋은 분이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정치적 지도자가 될 만한가.  -그렇다. 말할 나위가 없다. 5년 간 대통령 모시면서 온갖 일을 겪은 분인데 자기 삶에 대한 실존적 선택, 그 문제가 남아 있다. 정치하지 않아도 아름답고, 정치해도 아름다운 분이라 생각한다. 개인적 결단의 문제다.  노무현 정부는 언론과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유 원장의 언론관은 무엇인가.  -원래 불편한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시장 권력은 국가 규제를 받는다. 유일하게 언론 권력만큼은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다. 만인의 언론 자유가 특정인이나 소수 언론 자본을 위해 남용될 때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노 대통령 서거 뒤 친노 세력의 분열은 당연한 귀결인가, 안타까운 일인가.  -한 사람이나 한 정치 세력이 계승하기에는 노 대통령은 매우 다양한 목표를 추구했던 분이다. 참여당은 3당 합당 합류를 거부하고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우했던 시절의 정치인 노무현을 계승하려는 것이다. 그 때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들은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긴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과 계속 연계되는 게 정치인으로서 부담스럽지 않나.  -한때 부담이 많이 됐다. 난 노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서 정치에 들어왔고, 국회의원으로 있던 5년 내내 노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정부에 있었던 1년 반을 빼고는 주관적으로 과제 설정을 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사석에서 유 원장을 훌륭한 전임자로 평가했다. 스스로 무엇을 잘했다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했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활동하듯이 장관 활동을 했다. 산악회, 축구팀, 낚시·당구 동호회, 매달 호프데이도 하면서 직원들과 스킨십을 열심히 했다. 장기요양보호법, 국민연금법, 기초노령연금법 등 입법을 많이 했다. 약사제도 개편의 틀을 만들어놨다. 바우처 사업을 새롭게 도입했다. 아마 그래서 평가를 좋게 해주는 것 같다.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을 쓰고 있다. 책을 써보니 훌륭한 국가란 어떤 국가인가.  -첫째,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다. 국가 정의를 실현하려면 확실한 정통성이 뒷받침되는 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둘째는 사람들이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될 것을 받게 해줘야 한다. 서유럽 국가가 비교적 거기에 근접해 있다.    정리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무슬림형제단 “창당”… 중동 정세 변수로

    57년 동안 이집트에서 불법 단체로 규정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창당을 선언했다. 최대 야권 단체가 창당 의사를 밝힘에 따라 향후 이집트는 물론 중동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은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정당 조직의 자유를 믿는다.”며 개헌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식 정당으로 등록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헌법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 조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재 이 헌법은 효력이 중지된 상태다. 무슬림형제단은 올해 대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위 간부인 에삼 엘에리안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통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합법화 과정을 원활하게 밟고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이집트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 1954년 불법 단체로 규정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하지만 민주화 시위 당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마련한 야권과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합법화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또 개헌위원회에 포함되면서 개헌 작업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를 두고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이집트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젊은이 중심의 온건파이지만 조직의 지도부는 반서구적 시각을 지닌 강경 보수파로 꼽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 삼바퍼레이드 출연?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 삼바퍼레이드 출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신나게 삼바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지율이 80%가 웃도는 초절정 인기 속에 물러난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이 카니발에 등장할 수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브라질의 잡지 이스토에는 최근 “룰라 전 대통령이 내달 4일 상파울로에서 열리는 톰 메이저 삼바학교의 삼바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잡지는 “룰라가 부인과 함께 삼바퍼레이드에 참가할 예정이지만 특별히 화려한 의상을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며 “룰라 전 대통령의 사가가 있는 곳의 당국에서도 룰라 전 대통령의 출연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삼바행진을 준비 중인 톰 메이저 삼바학교의 고위관계자는 “룰라 전 대통령은 (워낙 인기 있는 인물이라) 특별한 의상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 간접적으로 룰라 부부의 참가를 확인했다. 잡지의 보도가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건 룰라 전 대통령이 창당한 노동자당과 톰 메이저 삼바학교 사이에 유사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당과 톰 메이저 삼바학교는 나란히 흰색과 빨강색을 고유의 색깔로 사용하고 있다. 톰 메이저 삼바학교의 문양에 새겨진 별은 브라질의 노동단체 ‘유일노동총동맹’과 관계가 있다. 유일노동총동맹은 노동자당의 후원 아래 탄생한 단체다. 하지만 정작 룰라 전 대통령은 삼바퍼레이드 참가 여부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달 1일 퇴임한 이후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타이완 100주년 기념 사진전 열려

    타이완 100주년 기념 사진전 열려

    중화민국(ROC·타이완)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시회 ‘우리의 발자국을 찾아서’(Retracing Our Steps)가 20일 강원 남이섬 특별전시실에서 주한타이완대표부(대표 양잉빈) 주최로 개막됐다. 전시는 다음 달 27일까지 무료 전시되며 사진집과 팸플릿 등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전시회에는 1912년 1월 1일 중국 난징에서 중화민국 임시 총통으로 취임한 쑨원(孫文)이 임시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부터 타이완 현대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진귀한 사진 60점이 전시돼 있다. 1986년 10월 7일 당시 장징궈 총통이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30여년 동안 지속돼 온 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밝히는 역사적 상황을 총통부 비서관으로서 통역하고 있는 마잉주(가운데) 현 총통의 모습도 소개됐다. 또 계엄 아래 첫 반정부 사건으로 불리는 메이리다오 사건(1979년), 야당인 민주진보당 창당(1986년) 등 역사적 굴곡을 증명하는 사진들과 서민들의 애환 및 생활을 담은 사진들도 공개됐다. 양잉빈 대표는 “한국의 7대 무역 파트너인 타이완을 보다 잘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사진전을 마련했다.”면서 “올 한해 국가건립 100주년을 맞아 각종 전시회와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이승만 대적할 野지도자… ‘간첩’ 정치탄압

    이승만 대적할 野지도자… ‘간첩’ 정치탄압

    죽산 조봉암은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치 지도자 가운데 한명이다. 자유당정권 시절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적할 야당 지도자로 부상했지만, 한순간에 ‘간첩’의 굴레를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죽산은 1898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초 상경, YMCA 중학부에 다니다 3·1운동에 참가해 처음 투옥됐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中央)대학에서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재일 유학생 중심의 무정부주의 사상운동 단체)에 가담, 항일운동을 하다 귀국했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했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혀 7년간 복역했다. 이후 지하 노동단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구속됐다가 광복과 더불어 풀려났다. 1948년 7월 헌법기초위원장으로 헌법제정에 참여하는 등 건국에 이바지했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30%라는 지지율을 얻어 파란을 일으켰다. 이 같은 인기로 죽산은 이승만과 당시 야당인 민주당으로부터 협공을 받았다.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은 1957년 당기관지 ‘중앙정치’ 10월호에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 이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과는 어긋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한다는 의혹을 받았고, 그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빌미가 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사법부가 반세기 만에 ‘사법살인’을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는 20일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竹山) 조봉암(1898~1959)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됐다. 재판부는 국가변란 혐의에 대해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결성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위장평화통일론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육군특무부대 증인이 상급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고, 증인의 진술은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부대가 증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수사하는 등 불법으로 확보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의 사형은 당시 이승만의 정적 제거 차원이라고 해석한 셈이다. 대법원이 죽산 조봉암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1959년 당시의 사형 선고와 집행이 사실상 ‘사법살인’이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사법부의 과거청산 결정판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한편 재판부는 조봉암의 또 다른 혐의인 불법무기 소지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재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바로잡고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직접적으로 ‘사과’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반세기 만의 무언의 사과’라는 분석이다. 독립운동가로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 장관 등을 지낸 조봉암은 진보당을 창당하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지만, 1958년 간첩죄 등으로 기소됐다. ▲북한의 주장과 같은 평화통일을 정강정책으로 하고 대한민국을 변란할 목적으로 진보당을 결성했다는 것(국가보안법 위반) ▲육군 특무부대 공작요원 양이섭을 통해 자금 원조 등의 북한 지령을 받았다는 것(간첩죄) ▲허가 없이 권총 1정과 실탄 50발을 소지한 것(군정법령 5호 위반) 등이 그가 받은 혐의다. 1심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지만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다. 1959년 7월 30일 재심 청구는 기각됐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의 사형 집행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위이자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황희석 변호사는 “반세기 만에 진실을 밝혔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유시민 안 보인 ‘국민참여당 1년’

    국민참여당 창당 1주년 기념회가 14일 열렸지만, 유시민 국참당 참여정책연구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유 원장은 이날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 집필을 완료할 때까지 언론과의 접촉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국참당은 유 원장이 차기 유력한 야권 대선주자의 하나라는 점에서 사실상 차기 당 대표로 꼽는 분위기다.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3월을 기점으로 대선 전략도 구체적으로 공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2012년 대선이 있는 만큼 당 대표로 이젠 전면에 나서서 대중들에게 정책과 리더십 등을 검증받는게 낫다.”면서 유 원장이 당 대표가 돼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복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인 유 원장의 경력과 지식은 앞으로의 ‘복지’ 대결에서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참당 이병완 상임고문은 민주당 최철국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지는 4·27 김해을 보궐선거와 관련, “재·보선의 원인을 제공한 정당은 도의적인 책임 차원에서 공천을 하지 말아야 옳다.”며 민주당에 무(無)공천을 요구했다. 이어 “재·보선 비용을 재·보선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일정 부분 부담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법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참당은 꼭 4·27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하겠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한편 이재정 대표는 창당 1주년과 관련, “실험적이었지만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 뒤 연립·연합정부, 연대 상설지도부를 구성하든 지난 6·2 지방선거 때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연대·연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紅色’ 짙어지는 中

    “중국 공산당사(史) 속에서의 오늘은?” 새해 첫날인 1일 중국 주요 언론매체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와 인터넷 포털에 지금까지 없었던 코너가 일제히 개설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선전판공실과 중앙당사연구실이 주도해 개설한 ‘당사 속에서의 오늘’ 항목이다. 오는 7월 1일로 창당 9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업적과 ‘휘황찬란한’ 역사를 국민들에게 알려 믿음과 결의를 통해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길을 더욱 확고하게 걸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개설 목적을 밝혔다. 1일에는 1953년 국민경제발전 제1차 5개년 계획의 시작과 1979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발표한 ‘타이완 동포에게 알리는 글’ 등 10여개 내용이 소개됐고, 2일에는 1983년 당 중앙이 발표한 ‘당면한 농촌경제 정책의 약간의 문제’ 등이 게재됐다. 이렇듯 올 한해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혁명정신을 강조하는 붉은 물결이 더욱 거세게 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당·정 지도자들이 지난해 후반부터 서방의 민주화 압력 등에 맞서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견지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올해가 공산당 창당 90주년이라는 점에서 대대적으로 이를 기념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내년 말 선출되는 이른바 ‘5세대 지도자’ 후보군 사이의 ‘홍색 찬양’ 열기도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내년 말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서기와 왕양(汪洋) 광둥성 서기의 ‘홍색 경쟁’도 치열하다. 보 서기는 지난달 31일에도 농민공 자녀들과 함께 혁명가요를 부르는 등 태자당(혁명세대 당·정·군 지도자들의 자녀 집단)의 이점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왕 서기 역시 최근 들어 마오쩌둥의 ‘해방전쟁’을 강조하는 등 홍색문화 찬양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의 차기 국가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부주석도 지난달 초 충칭을 방문, 보 서기의 홍색 캠페인을 극찬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제1차 당대회를 열어 창당했으며, 1941년부터 7월 1일을 창당 기념일로 내세우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간총리 VS 오자와 ‘KO 담판’ 무산

    일본 민주당의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이 간 나오토 총리의 중의원 정치윤리심사회 출석 요청을 거부했다. 간 총리는 20일 오전 총리 관저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과 만나 “출석하지 않으면 국정 운영이나 내년 봄 지방선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의원에 나가 검찰심사회로부터 기소된 불법정치자금 혐의에 대해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이에 “사법 절차 단계에 있는 만큼 스스로 출석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라고 밝힌 뒤 “(내각 지지율 하락에는) 정치 자금 문제도 있지만 다른 문제도 있지 않느냐.”며 간 총리의 국정 운영을 지적했다. 간 총리는 이에 따라 주중에 정치윤리심사회가 오자와 전 간사장을 소환하는 절차에 들어가도록 당 지도부에 지시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치윤리심사회의 출석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이후 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간 총리는 오자와 전 간사장이 국회 출석을 계속 거부하면 탈당을 권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대 계파인 오자와파가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KO 결투’의 향방에 따라 오자와 전 간사장 측의 신당 창당 등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부고] 김수조 北 피바다가극단 총장

    [부고] 김수조 北 피바다가극단 총장

    북한 집단체조 ‘아리랑’을 연출한 김수조 피바다가극단 총장이 사망했다. 79세. 조선중앙통신은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수조의 사망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고인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그러나 사망 일시와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수조는 세계 최대 집단체조로 지난 2007년 8월 기네스북에 오른 ‘아리랑’ 외에 노동당 창당 55주년기념 집단체조인 ‘백전백승 조선로동당‘(2000년 10월), 고(故) 김일성 주석 70회 생일 경축야회(1982년 4월), 제6차 노동당대회 경축야회(1980년 10월) 등의 총연출자였다. 또 북한의 ‘5대 혁명가극’에 속하는 ‘밀림아 이야기하라’와 ‘금강산의 노래’를 비롯, 음악무용극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무용극 ‘봉선화’ 등을 연출해 ‘인민예술가’(1989년 10월), ‘공화국 영웅’(2000년 11월), ‘김일성상 계관인’(2002년 8월) 칭호를 받았다. 서울 출신으로 6·25전쟁 중 월북한 그는 지난 2001년 2월 제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북측 방문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와 조카를 만나기도 했다. 지난 1995년부터 피바다가극단 총장을 맡아 온 그는 2003년과 지난해 최고인민회의 11~12기 대의원으로 잇따라 선출됐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행복한 교실(KBS1 오전 11시 5분) 250개 학교 중에서 성적이 최하위, 선생님들도 의욕이 없고 기피하던 남대구 초등학교. 하지만 지금은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의 사회과목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더불어 모든 학생들이 창의적인 인재로 변화됐다. 과연 남대구 초등학교의 특별한 교육은 무엇이었을까. ●도망자(KBS2 오후 10시 5분) 이 박사를 잡아 양두희를 압박하면서 그와의 단독 면담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는 지우와 진이. 이 박사의 범행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들을 도수와 소란에게 넘기며 양두희와의 일전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양두희 또한 수배 중인 지우에 대한 정보를 경찰에 흘리는 한편, 나카무라에게 새로운 카드를 사용, 반격할 태세를 갖춘다. ●주홍글씨(MBC 오전 7시50분) 경서는 동주를 찾아가 자신의 전부를 걸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며 한번만 이해해달라고 설득한다. 한편 재용은 경서의 결혼을 위해 혜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재용이 시나리오를 쓴 드라마는 경서가 쓴 드라마와 같은 시간에 방송하기로 결정된다. 윤 회장을 찾아간 동주는 윤 회장과 경서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말하는데…. ●대물(SBS 오후 9시 55분) 혜림은 민우당 일색인 도의원들 앞에서 남해도 예산 절감 계획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역설한다. 한편 강태산은 자신의 대권 출마에 필요한 서혜림을 복당시키기 위해 남해도의 재정 위기를 조장한다. 혜림을 만난 조배호는 남해도 재정 위기를 타파할 방안을 내놓으며 자신이 창당할 신당에 합류해 달라고 부탁한다. ●서울 G20 정상회의 특집(EBS 밤 12시 5분) 고전이 숨 쉬는 문화 강국, 러시아. 거장이 만들어낸 고전의 손길 속에서 러시아는 풍요롭다. 푸시킨의 시를 읊고,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귀 기울이고, 발레리나의 손짓에 마음을 여는 러시아. 러시아인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은 고전의 숨결을 느껴본다. ●메디컬다큐 생명(OBS 오후 11시 5분) 드디어 기다리던 종양 제거 수술을 하게 되었다. 무려 15㎝나 되는 복부 종양을 5㎝ 내외로 줄이는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 날이 되어 엄마 품에 안겨 수술실로 향하는 민기. 수술실에 들어가는 민기를 보며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민기는 남은 항암치료까지 무사히 마쳐 이식에 성공할 수 있을까.
  • [여의도 블로그]

    ■ 13살 한나라… ‘최장수 정당’ 한나라당이 21일로 열세 살이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청소년이 된 셈이지만, 격동의 한국 정치사에 13년 동안 ‘이름’을 지킨 당은 한나라당이 유일하다. 19일 아침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치러진 창당 기념식은 조촐하고 약간은 쓸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진석 정무수석을 보내 축사를 대독하게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병렬, 박근혜, 강재섭, 박희태, 정몽준 등 여전히 건재한 전직 대표들이 하나같이 ‘영상 메시지’만 보내왔다. 마치 남의 집 잔치상에 화환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한나라당 깃발로 금배지를 단 의원이 171명인데, 30여명의 얼굴만 보였다. 한나라당은 1997년 신한국당과 이른바 ‘꼬마 민주당’의 합당으로 탄생한 뒤 15·16대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하고, 2007년 집권에 성공했다. 트럭으로 정치자금을 실어나르는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씻기 위해 천막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당원들로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인데도 생일날을 홀대하는 느낌이다. 국가, 기업, 학교는 물론 친목단체도 창립일이 가장 뜻깊은 날이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행복한 편이다. 정통 야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은 창립기념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지난 10월 전당대회 때의 일이다. 한 후보가 “우리 당 창립일이 언제인가.”라고 묻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당을 만들고 쪼개고 합치다 보니 정권이 날아갔더라.”라는 자조도 나왔다. 진보정치의 꿈을 품었던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과 분리됐고,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제대로 받든다며 살림을 따로 차렸다. 자유선진당도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이나 대선에 나섰던 이회창 대표가 만든 당이다. 당원 속에 깊게 뿌리박고, 정책으로 집권 경쟁을 벌이는 게 정당의 본 모습인데, 우리 정당들은 아쉽게도 이합집산의 역사만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더 우울한 것은 201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또다시 합종연횡과 분당의 주판알이 튕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孫 농성 100시간에 담긴 뜻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민간인 불법사찰, ‘대포폰 게이트’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당 대표실에서 100시간 농성에 돌입했다. 국회 집무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농성 이틀째인 19일 비공개 상황점검회의만 한 뒤 의원총회에도 나오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손 대표는 농성 기간 내내 화장실 외에는 당 대표실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에게 100시간 농성은 어떤 의미일까. 손 대표 핵심 측근들은 이번 농성이 원외 인사인 그가 제1야당 대표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당에서 심지가 굳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협상의 한 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나라당 꼬리표가 늘상 따라붙는 손 대표가 정부·여당에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손 대표가 “야당 대표로서 정치가 이렇게까지 온 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반성한다.”며 이번 농성을 ‘이명박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는 시간’ 즉 성찰과 경고의 시간이라고 명명한 것도 그런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때문에 100시간 농성 결과는 그에게 야당 대표로서의 위기 대처 능력과 정치적 리더십, 당 내외 영향력을 가늠짓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손 대표는 매끼니 ‘나홀로’ 식사를 했다. 보여 주기식 농성은 싫다고 플래카드 등도 꾸미지 말라고 명령했다. 대신 집무실 책상 앞 소파를 걷어치우고 넓은 베이지색 카펫 위에서 의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했다. 의원들은 4팀씩(각 15명 남짓) 나눠 손 대표를 찾아 격려하고 동숙까지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손 대표는 오는 22일 라디오 정기 방송과 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장외투쟁 등 다음 행보를 공개할 계획이다. 하지만 농성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침묵시위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출신 이미지를 없애기 위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대여 투쟁 수단과 떨어지는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던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손 대표의 진심이 사흘 뒤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브라질 대처’ 호세프… 62세 남미 최대국 女대통령

    ‘브라질 대처’ 호세프… 62세 남미 최대국 女대통령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1억 3580만 유권자들은 집권 노동자당(PT)의 여성 후보 지우마 호세프(62)에게 남미 최대국의 명운을 맡겼다. 제40대 브라질 대선 투표 결과 호세프는 제1 야당인 사회민주당(PSDB) 후보 주제 세하를 12%포인트가 넘는 큰 표 차로 눌렀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넓은 국토를 배경 삼아 지구촌 경제를 좌우하는 브릭스(BRICs) 주도국의 새 수장이 된 호세프는 당선이 확정되자 “빈곤 퇴치가 나의 첫 번째 임무”라며 준비된 일성을 날렸다. 타협을 모르는 업무 추진력으로 ‘브라질의 대처,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호세프는 세계 정치무대를 주름잡을 파워 여성 정상으로 지구촌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또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이어 남미지역 세 번째 선출직 여성 정상으로도 기록됐다. 마냥 수수해 보이지만 호세프에게는 ‘게릴라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1947년 브라질 남동부 미나스 제라이스 주의 주도인 벨로 오리존테 출신인 호세프는 불가리아계 이민자 부모 밑에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인 1967년 반정부 무장투쟁 조직에 가담하다 1970년 체포돼 3년간 수감생활을 하는 등 게릴라 지도자로 청춘의 한때를 보냈다. ●유세과정 친서민 행보 변신 정계 입문은 1980년 민주노동당(PDT) 창당에 참여하면서부터다. 2001년 PT에 입당, 당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3년 룰라 정부가 출범하면서 연방정부 에너지부 장관, 수석장관(국무총리)에 발탁됐다. 오랫동안 강성 이미지로 각인됐던 호세프는 유세 과정에서 친서민 행보로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다정다감한 아줌마 같은 모습으로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보살피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대선 출마 이전까지 당직을 맡은 경험조차 없어 지명도가 턱없이 낮았던 호세프의 승리에는 80%의 국민 지지도를 자랑하는 룰라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태생적 한계인 동시에 정치적 핸디캡이다. ●두 차례 방한… 한국에 호감 호세프는 한국에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때문에 양국간 외교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 2005년과 지난해 두 차례 한국을 방문, 자본력과 기술력을 확인했다. 지난해 수교 50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는 최근 대서양 연안 심해유전 공동개발, 원자력 협력 등을 계기로 전례 없이 돈독하다. 내년 1월 1일 호세프가 취임하면 고속철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양국 간 협력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들이다. 중남미 지역의 정치판도에도 가시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좌파 성향의 호세프 정부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남미국가연합 등 지역국제기구의 결속 강화를 주도하는 강공 드라이브를 구사할 전망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北向’ 우려되는 시진핑

    ‘北向’ 우려되는 시진핑

    후진타오 주석에 이어 중국의 최고지도자에 오를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의 편향된 역사관과 대북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2년 가을 그가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됐을 때 한·중 관계 및 한반도 정세가 큰 위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시 부주석의 북한 관련 발언은 우려할 만하다. 시 부주석은 지난 25일 중국 군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한국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중국군의 참전을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조(중·북) 양국 인민과 군대가 단결함으로써 항미원조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북한과의 단결을 강조한 뒤 “중국 인민은 시종 중·조 양국 인민과 군대가 흘린 피로써 맺어진 위대한 우정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 부주석의 북한 편향적 발언과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8일 이례적으로 베이징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창당 65주년 경축 연회에 참석했다. 북한 노동당 창당행사에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당시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노동당의 새 지도체제와 협력의 정신을 강화해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김정은과 함께 북·중 간 전통적 동맹 관계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을 방문한 김정각 대장 등 북한군 대표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북한 측 장성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는 모습도 연출됐다. 그는 부주석에 오른 직후인 2008년 6월 첫 해외 방문국으로 북한을 선택하기도 했다. 시 부주석은 당 중앙군사위에 이어 지난 28일 국가 중앙군사위 부주석에도 선임돼 명실상부한 군의 2인자가 됐다. 이전에도 북한 군 인사들과 자주 교류해 왔던 그는 앞으로 북한 당·정·군 고위인사들과 더욱 활발한 교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혈맹관계를 강조하는 그의 대북관이 고스란히 반영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집단지도체제하에서 시 부주석이 2012년 권력을 쥔다 해도 독자적으로 대북정책 등을 결정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국가주석이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외사영도소조의 조장을 당연직으로 맡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이 대외정책에 직접적이고 깊숙하게 개입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베이징 외교가의 공통된 우려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일부 계층 저작권 내세워 정보 독점”

    “일부 계층 저작권 내세워 정보 독점”

    “문제는 ‘해적질의 문화’(the culture of piracy)가 아니라 ‘문화의 해적질’(the piracy of culture)이다.” 온라인상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주장하는 스웨덴 해적당(Pirate party) 아멜리아 앤더스도터(23) 유럽의회 의원은 지난 18일 서울 성산동 시민공간 나루에서 뜨거운 하루를 보냈다. 오전 기자간담회에 이어 오후 영화 관람, 그리고 저녁에는 운동가들과 ‘토크쇼’를 벌였다. 해적당은 온라인 정보의 사적 사용을 완전히 허용하고, 저작권 보호 기간도 ‘저작권자 사후 70년’에서 ‘출판 후 5년’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주장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2009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아멜리아를 비롯, 2명의 의원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극받아 지난 4월에는 ‘해적당 인터내셔널’이 결성됐고, 46개국에서 해적당이 출범했다. 한국에서도 창당 움직임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멜리아 개인 홈페이지(www.ameliatillbryssel.se/english) 참조. →당이 특이하다. 당 결성 과정을 설명해달라.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바깥에서 활동할 게 아니라 입법활동을 전면적으로 벌여 보자는 취지에서 2006년 창당됐다. 원래는 ‘해적항’(Pirate Bay) 프로젝트였다.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위한 실험 프로젝트였는데, 미국 영화업계의 압력을 받은 스웨덴 정부가 서버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일이 커졌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면서 우리에게 관심이 쏠렸고 지난해에는 당선자도 냈다. →해적이란 이름을 고집한 이유는. -온라인상 정보 공유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사실 우리가 선택했다기보다 내몰린 거다. 인터넷 기술의 출발 자체가 공유를 위한 것이고 우리는 그 목적에 맞춰 행동했는데, 이제와서 불법이라 한다. 더구나 불법복제라고 일컫는 것은 대개 온라인 유저들이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을 막아야 하나. 민주주의적 논의를 벌여야 한다. →온라인상 저작권 폐지 같은 주장은 어디서 나오게 됐나. -역사적으로 정보는 본성상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이다. 일부 계층, 특히 다국적기업 같은 곳에서 정보를 독점하려는 것은 이상한 생각이다. 정보는 인간의 활동을 촉진하고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널리 퍼져야 하고 저작권은 이기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불법다운로드가 창작 의욕을 가로막는다는 반론이 있다. -그건 저작권을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에서만 유효하다.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음반과 영화의 새로운 유통방식을 찾아보고 실험해야 한다. ‘자멘도’나 ‘매그너튠’ 같은 음원 사이트는 이용자들이 평가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심지어는 CD를 함께 내서 수익을 나눠 갖기도 한다. 그런 모델을 찾아야 한다. →실현가능한가. EU조차도 저작권에 대한 10가지 지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수익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 아무 대책 없이 다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녹음기가 나오자 음악계는 다 죽었다고 했다. 누가 공연 보러 오겠냐고. 그러나 라이브 앨범이 더 많이 팔렸다. 비디오 테이프가 나오자 영화업계도 다 죽는다 했다. 그러나 홈비디오로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기회를 낳는다. 인터넷은 새로운 기회다. 다 함께 그 방법을 찾아 보자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중국은 G2다운 국제적 행보 보여라

    그제 북한 노동당 창당 65주년을 맞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우호관계를 대대로 전해 내려가자.”는 요지의 친서를 보냈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을 주석단에 세운 인민군 열병식을 떠올린다면 북한의 시대착오적 3대세습을 추인한 꼴이다. 자국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발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중국이 세계문명사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여서 매우 실망스럽다. 북한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무대 장치로 삼아 김정은의 군권 인수를 공식화했다. 서방언론까지 불러들인, 계산된 세습 쇼였다. 하지만 김일성광장 무대 위에서 무표정한 ‘어린 왕자’ 김정은을 지켜보는 김 위원장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라.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런 희화적 장면이 전세계 문명국가의 여론에 어떻게 투영됐을지는 불문가지다. 이처럼 퇴행적 ‘세자 책봉식’에 저우융캉 공산당 상무위원 등 대표단이 참석하는 등 중국이 유일하게 들러리를 섰다. 중국은 올들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에 올랐다. 우리는 지난번 김정일 방중시 개혁·개방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만 해도 중국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냉전 때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명분으로 한국전에 뛰어들었듯이 아직도 북의 맹목적 후견국을 고집한다면 딱한 일이다. 경제력으로는 G2 반열에 올랐는지 모르지만, 국제사회 지도국으로선 자격이 미달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중국이 G2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보여줘 세계적으로 호평 받는 선린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북의 3대세습에 맞장구를 칠 게 아니라 자국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말기적 증상일지도 모를 북의 세습 쇼와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얼마 전 원자바오 총리가 공언한 중국의 정치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 [주석단에 선 김정은] 김정은 공식 외교무대 데뷔

    중국이 북한의 후계체제 안착에 적극 나섰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는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이라는 ‘호재’를 이용, 북한과의 지속적인 우호협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나섰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중국공산당 축하사절단 면담에 동참하는 것으로 공식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공식 사절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당서열 9위 저우융캉(周永康)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10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열병식을 김 위원장 부자와 함께 주석단에서 지켜봤다. 김 위원장 바로 옆에 서 있던 저우 상무위원은 김 위원장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열병식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앞서 저우 상무위원은 방중 첫날인 9일 김 위원장과 만나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김 부위원장도 이 자리에 배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중요한 시기에 대표단을 보내준 것은 조선 혁명 사업에 큰 격려가 된다.”고 말했다. 저우 상무위원은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서기를 수반으로 하는 새 영도집단의 지도 아래 조선 인민들이 더욱 밝은 미래를 창조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이 자리에는 김 부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영호 총참모장 등이 배석했다. 후 주석 등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도 베이징에서 북한에 힘을 실어줬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후 주석이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중·조(북·중) 우의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가야 한다.”는 내용의 축전을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후 주석은 축전에서 “중국과 조선은 서로 힘을 합쳐 우호협력 관계를 끊임없이 발전시켰다.”면서 “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 방침으로 중국은 양국 간 전통적 우의를 매우 귀중히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푸틴정치 반대” 러 야권연합당 창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주도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반대해 온 자유주의 성향의 러시아 정치인들이 내년과 2012년 진행될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고자 새 정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 9일 러시아 엔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미하일 카시야노프 전 총리가 이끄는 야당 정치인 연합체 ‘전횡과 부패가 없는 러시아를 위하여’는 오는 13일 창당대회를 개최해 친(親) 크렘린계 정당인 ‘통합러시아당’에 맞설 새 민주 정당을 만들기로 했다. 신당의 가칭은 ‘국민자유당’으로 정해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김정은 찬양 아직없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사실상 후계자로 공식화됐지만, 아직 공공장소에 그의 사진이나 그를 찬양하는 구호는 없다고 2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말을 인용해 교도통신이 3일 보도했다. 그러나 많은 북한 주민들은 지난달 30일 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게재된 제3차 당대표자회 기념사진에 등장한 김정은과 노동당 주요 지도자들의 사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지난 한 주 동안 평양과 개성을 방문했던 관광객들은 설명했다. 또 이들 관광객들은 북한 국영 TV가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한 당 대표자회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방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관광객들은 김정은의 업적으로 알려진 컴퓨터 수치 통제기계 도구들 및 위성인 ‘광명성 2호’ 발사에 사용된 ‘은하-2호’ 로켓을 선전하는 간판 하나가 평양 시내에 다시 들어선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또 길거리에는 여자 중학생까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등 ‘새로운 시대’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고 전했다. 관광객들은 이어 북한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이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재추대를 축하하고 있고, 오는 10일에 있을 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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