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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정동영의 궤적/진경호 논설위원

    정동영씨의 서울 관악을 선거구 출마 선언으로 4·29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두 개의 전선(戰線)을 갖게 됐다. 여야의 대결 구도에 야 대(對) 야, 구체적으로는 야권의 17·18대 대통령선거 후보, 즉 정씨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맞붙는 구도가 얹어진 것이다. 정부·여당 심판론에다 야당 심판론이 추가됐으니 임기 1년짜리 국회의원 4명을 선출하는 보궐선거치고는 그 정치적 의미가 사뭇 무거워졌다. 속된 말로 잘나가는 방송 앵커였던 정씨가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로 20년간 거친 정당은 8개에 이른다.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통합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다 최근 몸담은 ‘국민모임’까지…. 언뜻 ‘철새 정치인’으로 매도될 만큼 화려한(?) 이력이다. 물론 선거 때마다 간판을 바꿔 단 야당사(史)를 감안하면 풍성한 당력(黨歷)만으로 그를 매도할 수는 없다. 그러나 17대 대선 패배 후 과거 15·16대 총선에서 내리 전국 최다 득표의 영예를 안겨 준 전북 전주 덕진을 떠나 서울 동작을(2008년 18대 총선)과 다시 전주 덕진(2009년 4·29 재·보선), 서울 강남을(2012년 19대 총선), 서울 관악을 등으로 옮겨 다니며 부단히 국회의사당 문을 두드리는 모습에서 ‘정치적 낭인(人)’이 어른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정씨는 지난 1월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국민모임’ 진영에 합류하면서 ‘진정한 진보정당 건설’을 표방했다. 지금의 새정치연합이 어정쩡한 ‘우클릭’으로 진보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과거 자신이 주도했고 의장까지 맡았던 열린우리당을 박차고 나와 2007년 8월 세운 대통합민주신당의 창당 명분이 다름 아닌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새천년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합류, 열린우리당 탈당과 대통합민주신당 합류, 새정치연합 탈당과 국민모임 합류로 이어지는 정씨의 궤적에 담긴 함의는 결국 두 가지로 정리될 듯하다. ‘배반의 정치’와 ‘친노의 배타성’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에 입문했으나 이후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호남 민주화 세력을 밀어내고는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친노로 상징되는 영남 민주화 세력과 손을 잡았고, 17대 대선의 패장이 된 뒤로 이들에게서마저 밀려나고는 국민모임 후보로 변신해 ‘호남 정신’을 강조하는 그를 두고 ‘배반의 정치’라는 비판은 근거가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새정치연합 친노 주류 세력이 눈을 부릅떠야 할 대상은 스스로의 배타성일 것이다. 정씨의 도발이나 고 김근태 의원의 좌절, 손학규 전 대표의 정계 은퇴도 따지고 보면 친노 진영의 ‘뺄셈정치’에서 비롯됐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맞붙게 될 친노의 상대는 새누리당이 아닐지도 모른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악마의 딸’ 마린 르펜, 엘리제궁 호시탐탐

    [글로벌 인사이트] ‘악마의 딸’ 마린 르펜, 엘리제궁 호시탐탐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은 우파를 키우는 자양분이다. 29일(현지시간) 열린 프랑스 지방선거에서도 이는 어김없이 확인됐다. 프랑스 광역자치단체인 도의원을 뽑는 지방선거 2차 투표 결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크게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UMP는 98개 도 가운데 66~70개 도에서 다수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집권 사회당은 기존에 점하고 있던 61개 도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야당에 내주게 됐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린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은 좌·우파 지지자의 결집에 따라 예상에는 못 미치지만 100여명의 도의원을 배출, 1972년 창당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양당 체제를 무너뜨릴 명실상부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났다. “국민전선(FN)의 집권은 가능한 일이 됐다. 언제? 2022년, 2029년도 아닌 바로 2017년이다!” 프랑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 사회당 소속 마뉘엘 발스 총리는 라디오에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회복 기미는 없고 실업률은 10%를 웃도는 상황에서 극우정당 FN과 당수 마린 르펜(47)의 매력도는 높아갔다. 올 초 파리에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벌인 끔찍한 테러는 FN의 인기에 불을 질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FN은 30%대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며 발스 총리의 말대로 “집권의 문턱에 당도”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BBC “르펜 당선 땐 프랑스 왕따 국가될 것” ‘분열의 여왕’이 테러로 갈라진 여론에 힘입어 2년 뒤 엘리제궁에 입성할 수 있다는 경고음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 요란하게 울렸다. 현지 좌파 성향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테러 직후 확산한 반이민·이슬람·유대 정서가 르펜에 유리하다는 기사를 1면에 실었고, 영국 BBC는 “르펜이 대통령이 되면 프랑스는 왕따국가가 될 것”이라고 보탰다. 유로화 탈퇴를 주장하는 FN의 선전을 의식한 마리오 몬티 전 이탈리아 수상은 “프랑스가 유럽의 새로운 골칫거리”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안팎에서 형성된 반(反)FN 전선으로 반사이익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 우파 정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얻었다. FN은 1차 투표에서 25.2%를 얻어 UMP(29.4%)에 이어 2위에 머물렀고, 예상대로 2차 투표에서 도의회 장악에 실패했다. 2012년 집권 이후 선거에서 사회당의 4연속 패배에도 아랑곳없이 발스 총리는 FN의 돌풍이 저지된 것만으로도 흡족해했다. FN이 프랑스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972년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창당해 2011년 딸 마린 르펜이 당수에 오르기 전까지 FN은 제대로 된 정치 파트너로서 대접받은 적이 없다. 식민시대 프랑스의 옛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극우민족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파시스트 등 ‘꼴통들의 집합체’로 여겨졌고, 아버지 르펜은 오로지 외국인혐오 발언만 일삼는 ‘악마’로 통했다. 마린 르펜은 극우, 과격 이미지 세탁에 나섰다. 이민·이슬람·동성애 등 민감한 사회 이슈와 관련해 극단적인 태도와 발언을 삼갔으며, 무엇보다 당을 젊게 가꿨다. 시답잖은 인종차별 발언이나 해대며, 예산과 같은 정책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던 당내의 ‘꼰대’들을 몰아내고 세련되고 말쑥한 이미지의 20~30대를 간부에 대거 발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FN 소속 후보자의 15%가 30세 이하다. 사회당은 30대 이하가 4.8%이고, UMP는 5.3%다.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서 세계화와 유럽연합(EU)이 최악의 실업률을 가져왔고, 가장 큰 피해자는 자신들이라는 부정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들의 열패감을 파고든 FN은 젊은이를 대거 영입해 훈련캠프를 열고 대중적 지지도를 쌓는 법과 경제 및 사회에 대한 정보와 지식 등을 전수해 당의 일꾼으로 키웠다. 여성 당수와 게이 부대표의 조합도 FN의 매력 중 하나다. 핵심 지도부가 사회적 약자로 이뤄졌다는 점은 남성 엘리트 정치인이 장악한 기성 정당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게 했다. 동성애자에 대해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기형”이라는 아버지 르펜의 악명 높은 발언에서 보듯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는 FN의 핵심 가치관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남성 지도부의 대부분이 게이라는 아이러니는 FN에 대한 민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단단히 한몫했다. 르펜의 ‘오른팔’이자 FN 부대표인 플로리앙 필리포(33)는 지난해 말 한 연예매체에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사진이 실리면서 ‘강제 커밍아웃’됐다. 파리 공립경영대학원(HEC)과 국립행정학교(ENA)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필리포는 이미지 변신을 추구하는 르펜의 구상을 실현시킨 ‘브레인’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략 담당인 그는 TV토론에 단골로 출연해 FN을 구시대적 극단주의 정당으로 몰고 가는 경쟁자를 뛰어난 언변으로 무장해제시켰고, “좌나 우로 분류되는 건 중요치 않다. 문제는 실용주의,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이란 말로 지지층을 두텁게 만들었다. 동성애자 중용은 르펜이 아버지 시대와 결별하는 과정의 하나로 해석된다. 지난해 유명 동성애단체 ‘게이리브’의 설립자이자 UMP의 사무총장을 지낸 세바스티앵 세누(42)를 영입한 것도 큰 화제였다. 세누는 사르코지가 동성애 결혼 법안 폐지를 주장하는 등 성소수자(LGBT) 문제에 관해 놀랄 정도로 무개념이라며 “유럽과 사회에 관한 일관된 시각 때문에 르펜과 함께하기로 했다”고 밝혀 르펜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 이 밖에 FN의 사무총장이자 에낭보몽 시장인 스티브 브리우아(43)도 동성애자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FN 이너서클’의 남자들은 다 게이라며 이들을 “르펜의 게이 파워(압력단체)”라고 불렀다. 2012년 나온 책 ‘게이들은 왜 우로 돌아서나’에 따르면 강경 무슬림의 동성애혐오 발언에 위협을 느낀 게이들이 FN의 반이슬람 주의에 안도를 느껴 FN과 손잡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AFP통신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 파리에서 FN을 지지하는 동성애자가 26%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성애자 지지는 16%에 불과했다. FN의 힘은 지방에서 나온다. 대도시 등 중앙무대가 아닌 산업화, 세계화에 뒤처져 낙후의 길을 걷는 북부 지역의 소도시 등을 파고들어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주류 정치권이 거대 담론에 갇혀 있는 동안 ‘왜 스쿨버스는 우리 마을에 오지 않는가’와 같은 생활 밀착형 정책으로 지역민을 사로잡았다. ‘풀뿌리 지지 기반’ 확산을 위해 긴축 반대, 복지 강화, 임금 및 연금 인상, 공공요금 인하, 대출이자 인하, 부자 증세 등 좌파적 정책도 과감하게 포용했다. 지난해 3월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다인 11명의 시장을 당선시킨 이유다. 현지 여론조사기관 이포프가 최근 지방선거 1주년을 맞아 FN 소속 시장이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3%의 주민이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르펜 “이번 선거는 내일의 큰 승리 위한 기초” 도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는 지방을 중심으로 세력 확장 중인 FN의 2017년 집권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으로 여겨졌다. 예상에는 못 미쳤지만 FN은 100여명의 도의원을 배출해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 아버지의 대선 도전은 일종의 가십거리였으나 ‘악마의 딸’ 르펜에게 엘리제궁은 가시권에 들어왔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국에서 도의원을 내는 기염을 토했다. 르펜은 29일(현지시간) “이번 결과는 내일의 큰 승리를 위한 기초”라며 “권력을 얻어 우리 생각으로 프랑스를 바로잡을 목표가 가까워졌다”고 자신했다. 세계는 르펜의 부상이 불안하다. 얼굴색을 바꿨다지만 이민반대, 보호무역주의, 사형제 부활, 유로 탈퇴 등 갈등과 분열의 속내는 여전해서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EU와 러시아가 갈등을 빚는 가운데 르펜의 노골적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지지 행보도 우려 요인이다. 이런 까닭에 르펜의 엘리제궁 입성은 이루지 못할 꿈이 될 공산이 크다. ‘파시스트 대통령’ 출현에 질색하는 좌·우파가 이번 선거처럼 똘똘 뭉쳐 르펜의 대선 질주를 차단할 가능성이 짙다. 그렇더라도 그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랜 양당 체제를 무너뜨린 정치세력으로 존재감을 키운 FN은 이제 연정 파트너로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정동영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입장 번복한 이유는?

    정동영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입장 번복한 이유는?

    정동영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입장 번복한 이유는? 정동영 관악을 출마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에 출마하기로 했다. 정 전 의원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모임 창당에 참여했다. 정 전 의원의 출마로 새정치연합의 선거 전략 및 판세에도 차질이 생겼다. 국민모임 관계자는 정 전 의원의 출마 배경에 대해 “새정연이 재보선 지역 4곳 중 단 한 군데도 쉽게 이기지 못한다는 상황에서 야권 후보가 선거에서 전패하면 박근혜 정권 심판은커녕 실정(失政)에 대한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특히 관악을이 전통적으로 야권의 텃밭인 점과 정 전 의원이 인지도가 높은 점, 관악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출향민의 친노에 대한 거부감 등이 정 전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동영, 11시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입장 번복한 이유 ‘관심’

    정동영, 11시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입장 번복한 이유 ‘관심’

    정동영, 11시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입장 번복한 이유 ‘관심’ 정동영 관악을 출마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에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관악을 출마를 저울질 해왔던 정 전 의원은 고심 끝에 출마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모임 측 관계자는 현재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라도 주변의 반대 의견이 강해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국민모임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의원은 전날 국민모임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취재진들과 만나 “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막판 고심 중”이라면서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앞서 김세균 국민모임 상임공동위원장과의 회동에서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민모임 측은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리는 이날까지 다시 답변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따라서 정 전 의원이 결국 출마하기로 마음을 정한 ‘명분’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동영 “30일 재보선 입장 표명”…‘국민모임’ 발기인대회서 밝혀

    4·29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 출마 여부로 관심을 받고 있는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에 대한 입장 표명을 30일로 연기하겠다고 밝햤다.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장관은 2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소재 폐공장에서 열린 국민모임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막판 고심 중”이라며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앞서 김세균 국민모임 상임공동위원장과의 회동에서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민모임 측은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리는 이날까지 다시 답변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정동영, 11시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 “마지막까지 고심 중”

    정동영, 11시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 “마지막까지 고심 중”

    정동영, 11시 관악을 출마 기자회견 “마지막까지 고심 중” 정동영 관악을 출마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에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관악을 출마를 저울질 해왔던 정 전 의원은 고심 끝에 출마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모임 측 관계자는 현재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라도 주변의 반대 의견이 강해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국민모임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의원은 전날 국민모임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취재진들과 만나 “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막판 고심 중”이라면서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앞서 김세균 국민모임 상임공동위원장과의 회동에서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민모임 측은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리는 이날까지 다시 답변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동영, 관악을 출마 가닥…11시 기자회견 “하루만 더 시간 달라더니”

    정동영, 관악을 출마 가닥…11시 기자회견 “하루만 더 시간 달라더니”

    정동영, 관악을 출마 가닥…11시 기자회견 “하루만 더 시간 달라더니” 정동영 관악을 출마 국민모임의 정동영 전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에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같은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관악을 출마를 저울질 해왔던 정 전 의원은 고심 끝에 출마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모임 측 관계자는 현재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라도 주변의 반대 의견이 강해 마음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국민모임의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전 의원은 전날 국민모임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취재진들과 만나 “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막판 고심 중”이라면서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앞서 김세균 국민모임 상임공동위원장과의 회동에서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국민모임 측은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리는 이날까지 다시 답변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플러스] 정동영 “4·29 재보선 불출마” 재확인

    정동영 전 의원이 ‘4·29’재·보선 서울 관악을 불출마 의사를 피력했다. 정 전 의원은 26일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김세균 국민모임 창당주비위원장과 만나 “지난 1월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면서 밝혔던 ‘국민모임에 밀알이 되겠다’는 입장을 현재로서 바꾸기 어렵고, 출마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오는 29일까지 “입장을 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재로서 정 전 의원의 출마는 불투명해 보인다.
  • 문재인 “경제정당이 이 시대의 새정치”

    새정치민주연합 전·현직 대표가 총출동했다.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 1주년 기념식’에서다. 정확히 1년 전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김한길 의원은 독자 신당 추진 세력을 만들던 안철수 의원과 통합해 국회 의석수 130석의 거대 야당을 탄생시켰다. 이날 기념식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비롯해 김·안 전 공동대표, 박영선·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전·현직 대표와 당직자 200여명이 모였다. 이날 단상에 오른 문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경제를 극복하고 민생경제를 살려내는 유능한 경제정당이 되는 게 우리 당이 가야 할 길이고 이 시기의 새 정치”라고 강조했다. 통합 이후 새정치연합은 지난 2월 문 대표 체제로 넘어오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7·30 재·보궐선거의 참패로 김한길·안철수호(號)가 좌초됐고 세월호특별법 협상 논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영입 파동은 박 전 비대위원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나름대로 순항한 문 전 비대위원을 포함하면 당 대표 교체 횟수는 1년 사이 3번에 이른다. 특히 창당의 주역에서 4개월 만에 당권을 내려놓은 안 전 대표와 와신상담을 거쳐 화려하게 차기 대권 주자로 재부상한 문 대표의 지난 대선 후 엇갈린 희비쌍곡선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안 전 대표는 “통합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정치 혁신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담아내려는 노력”이라면서 “지난해 ‘7·30’ 선거는 패했지만 결과에 책임지는 깨끗한 책임정치 풍토를 보여 줬고 새 지도부의 탄생도 통합과 책임정치의 바탕 위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문 대표도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중도개혁정당의 정체성에 새 정치를 더하며 국민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정당이 됐다”며 전직 대표의 공을 칭찬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직격 인터뷰]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2017년 대선까지 최대한 경륜 갖출 것”

    [직격 인터뷰]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2017년 대선까지 최대한 경륜 갖출 것”

    말이 잘 통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아온 안철수 의원에게는 화성과 금성 같은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Non-Verbal(말과 글이 아닌 것)’이 70%라는 가설이 맞는 것 같다. 안 의원의 눈빛과 목소리, 몸짓, 그리고 힘이 들어간 악수는 그가 우리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안 의원이 아주 탁월한 말재주꾼은 아니었다. 예상이 가능했던 질문에는 ‘정답’을 맞혀 나갔지만, 친노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격적’ 질문에는 잠시 답변을 고심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정치권에서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도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라 휴화산(休火山)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 의원과의 인터뷰는 꽃샘추위가 매서웠던 23일 오후 2시부터 의원회관에서 1시간 10분 동안 이도운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요즘 경제 좌담회를 계속 하더라. 무슨 취지인가. -지난해 3월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할 때 야권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보고 통합된 정강정책에 반영시킨 내용이 있다. 산업화를 인정하고, 민생 중심 정당, 경제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또 안보에 대한 중요성, 점진적인 개혁노선, 그리고 복지분야에서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전략적 조합인데, 이런 내용으로 야당이 변해서 대중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표가 경제정당을 들고 나왔는데, ‘내가 문 대표보다 경제는 한 수 위’라는 정치적 의미가 있는 건가. -문 대표와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 당이 정말 경제 분야에서 능력 있다고 국민이 믿게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아마도 문 대표도 그전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저와 만난 다음주부터 경제 행보를 시작했다. →의제를 선점당했다는 억울함은 없나. -아니다. 경제해법은 하나가 아니고, 사람마다 조금씩 생각하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야권에서 여러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국민 앞에 선보이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 창당 1주년이 다가온다. 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나. -그렇게 되어야죠. 사람들이 ‘저 당이 능력이 있고 실행할 수 있는 진정성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합당 후에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후회는 없나. -아니다. 사업할 때부터 지금까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후회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실수가 있었다면 다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시 대표가 되면 꼭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 -하나가 아니고, (웃음) 많습니다만… 전당대회 때 그런 모습을 보이기는 했는데, 여전히 과거와의 연고를 전면에 내세우며 경쟁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분들은 이를 계파구도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야당이 그런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제는 과거와 미래의 대결구도로 가야 하지 않나. 어떤 계파, 어떤 출신이고 여기에 모든 초점이 모이고, 말이 해석되는게 아니라 미래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갖고, 실제로 미래를 만들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경쟁 구도로 가야 하지 않겠나. →문 대표가 당을 잘 이끌고 있다고 보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경제정당으로서의 행보, 통합 행보 모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금 시점부터는 더 구체적으로 본인이 가진 진정성과 실행 능력을 보여줄 시기가 됐다. 구체적인 프로그램, 정책, 대안 제시가 뒤따라 나오면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가는 이들이 흔히 말하는 ‘친노’(친노무현)다. 친노가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해 나간다고 보나. -크게 보면 김대중 대통령도 계시고, 노 전 대통령도 계신다. 두 분 다 배울 점이 있다. →친노가 제대로 계승한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계승한 부분도 있고, 우리 후배들이 잘 계승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것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 전 대통령 말씀 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이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야당은 서생적 문제의식은 충만하지만, 상인적 현실감각은 부족한 경우를 자주 봤다. 김 전 대통령의 장점을 충분히 계승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내에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가 있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이야기들이 언론상에 있다. 계파가 존재하는 것은 정치세력 내에서는 당연하다. 계파가 가치관과 비전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 개인이 희생되어도 좋다고 할 만한 힘으로 모이면 그것은 강력하고, 국민의 동의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문 대표가 지난해 12월부터 대선후보 선호도 1위다. 이르기는 하지만, 문 대표가 2017년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나. -시간이 많이 남았다. 누가 대선후보가 돼야 하는지보다 당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변화와 혁신을 하고 국민 마음을 얻을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두 분은 어떤 관계인가. -서로 협력하면서, 경제정책에서 경쟁할 부분은 서로 경쟁하면서 당 전체가 국민의 관심을 받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협력적 경쟁관계라 할 수 있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났다. 4·29 재·보선 결과가 안 좋으면 현 지도부가 물러나야 하나. -지금 그런 말을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에 당의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할 때다. 대표의 역할은 과정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난관을 극복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대표의 역할이다. →2012년에 만약 안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됐다면 박 대통령보다 잘했을까. -(웃음) 대선 당시 어느 모임에서 당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의 공약에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때 드린 말씀이 ‘그 공약을 취임 1년차에 모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다. 그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가치관, 신념이 다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우선순위를 선택하는데 후보들이 다 다르다. 특히 경제문제와 외교문제까지도 지금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당신 못 한다’고 비판만 할 것은 아니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 대표가 대통령이 됐다면 박 대통령보다 더 잘했을까. -또 다른 측면으로 하지 않았을까. 글쎄. 지금 대통령보다 낫지 않았겠나. (웃음) →사드 배치에 찬성하나. -우리나라 안보를 제일 중심으로 두고 봐야 하지 않나. 국방체계 전체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 아래에서 이를 이루기 위해 가장 적합한 무기체제가 무엇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은 무기, 아이템을 사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구조로 전락했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시점이 늦어져서 문제라고 하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나. -국가적인 전략이 부재했다고 본다. 외교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전략이 없었던 것 같다. 있었더라도 공유가 되지 않았거나. 엉뚱하게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발언까지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나왔다. →요즘 ‘안철수’를 검색하면 포스코가 제일 먼저 연관검색어로 나온다. -사외이사를 한 기간 동안의 여러 자료들을 하나하나 잘 살펴보고 있다. 필요하다면 입장표명을 하겠다. 혹시 저희가 받은 자료가 부족했거나 누락된 부분은 없는지, 회의 때 필요한 질문을 다 했는지 등을 보고 있다. →문재인 대표에 비해 당내 세력이 열악하다. 세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제가 생각하는 가치관과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선 때 함께 했던 분들, 어느 정도 소원해졌던 분들도 지속적으로 만나 얘기하고 있다. →그 분들은 왜 서운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게 변명이 되는 건 아니다. 한 번 인연된 분은 꼭 만나서 얘기 듣고 있다. →여권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지율이 1위다. 반 총장이 정치에 뛰어든다면 환영하겠나. -장관으로서, 유엔 총장으로서 일하신 분 아닌가, 판단은 본인 몫인 것 같다. →정치권에 들어오면 잘할 것 같은가. -(한동안 생각하다) 못하실 이유는 없을 것 같다. 하하하. →‘안철수는 남고 안철수 현상은 갔다’, 또는 ‘현상만 남고 안철수는 갔다’. 어느 쪽이든, 이런 이야기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싶나. -정치가 변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은 지금 더 강한 것 아닌가. 열망은 대선 때보다 더 강해졌다. 정치에 들어온 목적이 국민의 열망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미력하나마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민들은 명확하고 단순하게 묻고 싶어한다. 2017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제가 얼마나 국민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2017년까지 국민의 선택을 받겠다고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경륜을 갖출 자신이 있나. -최대한 노력하겠다. →2017년에 선택을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2022년에도 같은 노력을 할 것인가. -저는 지금까지 중도에 그만둔 적이 한 번도 없다. 직업이 여러 가지여서 많이 옮겼다고 생각하는데 의사도, 회사도, 교수도 한 단계를 마무리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겼다. 대담 이도운 정치부장 정리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죽거든, 내 집 허물라”… 貧國을 富國 만든 ‘反부패 독재자’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죽거든, 내 집 허물라”… 貧國을 富國 만든 ‘反부패 독재자’

    “죽거든 내 집부터 허물어라.” 23일 사망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자신의 집이 ‘국가 성지(聖地)’로 보존되면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이웃 주민들이 경제적 손실을 볼까 걱정해서다. 양식은 말할 것도 없고 먹을 물조차 구할 수 없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50여년 만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6113달러(IMF·2014년 기준), 세계 8위의 경제부국으로 끌어올린 ‘국부’(國父) 리콴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법치국가’를 세운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 달리 이처럼 세심함도 갖춘 지도자였다. 리콴유는 1923년 싱가포르의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동운동을 펼치며 정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당해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35세의 나이에 영국연방 자치정부의 초대 총리가 됐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까지 무려 26년간 총리를 지냈다. 총리 시절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를 전파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싱가포르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공로자’와 개발독재를 펼친 ‘독재자’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교차한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만 해도 국민 대부분이 제대로 된 집조차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고, 실업률도 10~12%에 달했다. 리콴유는 자유경쟁과 과감한 개방정책을 실행해 ‘기적’을 일궈 냈다.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고자 규제를 풀었고, 외국 기업이라도 사업을 승인받으면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못 배운 국민이 숙련된 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그의 통치가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가 드문 성공한 도시국가의 이면에는 강력한 억압통치가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에서 흡연하거나 껌만 뱉어도 큰 벌금을 매겼고, 마약 소지자는 사형에 처했다. 서구 언론들은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태형과 벌금의 나라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개하며, 그를 ‘동남아시아의 작은 히틀러’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장남 리셴룽(李顯龍)이 2004년 8월부터 제3대 싱가포르 총리로 재직하면서 세습정치라는 비판도 받았다. 장기 집권, 가부장적 통치, 개발독재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와 자주 비견됐다. 다만 리콴유는 무력이 아닌 법규와 교육을 통치 기반으로 적극 활용했다는 게 차이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엘리트 지상주의를 앞세웠고 “똑똑한 사람들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우생론에 집착했다. 일각에선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가를 이웃으로 둔 인구 530만명의 작은 섬나라가 택한 당연한 길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생존’이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현대에 구현한 실용주의 정치가로 규정되기도 한다. 올해로 독립 50주년을 맞은 싱가포르의 사회 분위기는 리콴유 사후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리콴유의 타계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 참여를 통제하던 억압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자유와 변화의 새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누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요즘 부쩍 과거사와 관련한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역사의식을 겨눈 발언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과거사 빨리 정리하고, 북핵 같은 현안에 치중하자’(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8월의 아베 담화가 미래지향적이길 기대한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본의 사죄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오에 겐자부로)…. 국제적 거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던진 말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셔먼 차관과 메르켈 총리의 언사는 대비되는 시각과 반향 탓에 뒤끝이 시끌벅적하다. 이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셔먼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과 화해가 안 되는 책임이 한·중·일 모두에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식의 표현이 자극적이다. 지난 1월 방한 때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식민지배에 사죄한 고노·무라야마 담화가 견지되기를 바란다’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반면에 일본 심장부에서 ‘과거사 정리가 화해를 위한 전제’라며 아베 총리에게 전범국가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한 메르켈은 ‘존경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느낌이다. 셔먼 차관의 말에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면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는 ‘속이 시원하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말의 전후 사정은 뒤로 물린 채 일단 ‘내 편 네 편’ 식의 보편적인 점수 매기기가 월등히 앞선다. 과거사 해결 방식을 향한 한국민의 입장이야 대동소이할 것이다. 가해자 일본의 책임 인정과 반성, 그 후 더 나아가서 보상이다.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이나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언사는 당연히 그 국민적 감정을 거스르거나 보듬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자. 좋게 만들었건 나쁘게 만들었건 한반도의 운명을 갈랐던 주체들이 뭘 책임졌는가. 주어진 굴레를 짊어지고 해결한 건 늘 우리였다. 한마디에 웃고 우는 어린애 같은 단세포적 반응을 이젠 치우자는 말이다. ‘말의 성찬’에 우왕좌왕 쏠리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우선이다. ‘독일 정부에 들어보니 일본 정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 메르켈 총리의 과거사 관련 발언에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낸 이 공식 논평이 압권이지 않은가. 하기야 그 강변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의 발언을 한 메르켈 총리의 방일 하루 전 집권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주요 활동 목표로 설정한 게 바로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누가 뭐래도 ‘군사 대국화’ 구상을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 빤해 보인다. 일본이 8월 발표할 예정인 전후 70년 담화에 ‘통절한 반성’이니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같은 표현이 담길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고 한다. 물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입에 발린 말은 상처를 더 깊이 곪게 만들 뿐이다. ‘혹시’와 ‘역시’의 되풀이 대신 눈을 부릅떠 현실을 지켜보자. 미 국무부 홈페이지 지도에 ‘리앙쿠르암’(독도의 서양식 표기)이 왜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났는지 그 이유부터 정색하고 따지자는 말이다. kimus@seoul.co.kr
  • 새정치연 vs 非새정치연… 광주서을 ‘후끈’

    ‘4·29’ 광주 서을 보궐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야권 내 ‘새정치민주연합’ 대 ‘비(非)새정치민주연합’ 구도가 형성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14일 새정치연합이 조영택 전 의원 공천을 확정한 가운데 ‘1당 독점’ 타파를 외치며 무소속 천정배 전 장관과 ‘4자 정무협의회’(협의회)가 연대를 위한 잰걸음에 나섰기 때문이다. 4자 정무협의회는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단체)가 모인 협의체다. ‘비새정치연합’ 진영은 조 전 의원과의 일대일 구도가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합종연횡을 활발히 하고 있다.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국민모임의 김세균 상임공동위원장은 지난 15일 천 전 장관을 만나 국민모임 가입을 권했다. 김 위원장은 16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천 전 장관에게) 국민모임 후보로 나가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했다. 2~3일 내에 좋은 결론을 내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천 전 장관은 즉답을 피한 채 ‘누구든지 연대를 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전개될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예측된다. 천 전 장관이 국민모임 가입 요청을 거절하고, 당분간 시민 후보로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게 첫 번째 시나리오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들의 추대 움직임을 동력 삼아 세를 불린 뒤 협의회에서 나온 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이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천 전 장관이 국민모임 가입을 완곡히 거절한 것으로 본다”면서 “협의회에서 후보를 내놓으면 추후에 자연스레 단일화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천 전 장관이 국민모임 소속으로 협의회에서 경쟁하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편 새누리당에서는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후보로 확정됐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김용희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김용희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용희 사무총장은 10일 “개인이든 단체든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의 표만 권력이 아니라 정치자금도 권력이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정치자금에는 다 꼬리표가 있다”면서 “꼬리표를 숨길 게 아니라, 그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법인·단체의 후원금 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선관위 제안과 관련, 기부 대상을 풀어주는 대신 자금 출처와 용도를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재 후원금은 출처를 밝혀야 하지만 연간 300만원 이상 고액 후원자의 직업란에 정당인이나 회사원 등으로 불명확하게 기재돼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처럼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에서 실효성이 높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독일과 뉴질랜드 등이 적용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는 사표가 많이 나온다. 예컨대 유권자 표를 30% 얻었는데 의석 수를 40% 가져갈 수도 있다. 유권자 의사를 100% 반영하는 게 비례대표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직접 뽑았다는 효능감이 떨어진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게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유권자 의사를 선거에 그대로 투영할 수 있고, 무엇보다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수단으로 효과적일까. -제3공화국 이전만 해도 호남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얻은 표가 영남보다 많았다고 한다. 이후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심화시켰고, 이를 극복하려면 정치 제도를 바꿔야 한다. 최소한 영·호남에서 각각 열세에 있는 정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는 ‘사표 방지 심리’가 작동하면 유권자들은 소신대로 투표할 수 있고, 그 결과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완전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도 지역주의 해소 수단이 되나. -완전국민경선은 수도권 등 여야 경합지역에서는 불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영·호남 등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지역에서는 사실상 유권자의 선택권이 없다. 영·호남처럼 본선 경쟁이 무의미한 곳일수록 의미가 있고, 정당 정치를 무력화한다는 지적에 대한 반론도 될 수 있다. →경선에서의 ‘동원 선거’ 폐해는 어떻게 차단하나.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온 국민 참여형 경선은 선거인단을 구성할 때 보통 후보들이 모아와서 한꺼번에 입당시키거나 후보별로 모집하는 방식이었다. 여론조사 경선도 해봤지만, 여러 폐단이 나왔다. 이를 탈피하려면 지역 유권자 전체를 선거인단에 넣어야 한다. 물론 완전국민경선에서도 참여율이 떨어지면 동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제한된 사람만 참여하는 것보다 폐단을 줄일 수 있다. →완전국민경선과 시·군·구당(옛 지구당) 제도가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양자가 결합하면 현역 교체는 거의 불가능해질 수 있다. 두 제도가 가져올 폐단의 극치다. 따라서 완전국민경선을 해도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정당에는 후보를 거르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공천 심사를 통해 무자격 후보를 걸러내고 자기 당의 이념이나 정책에 부합하는 후보를 2~3명으로 압축한 뒤 지역 유권자들에게 물어 최종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공천 심사와 완전국민경선이 상호 보완관계여야지 어느 한쪽으로 책임과 권한이 쏠리면 장점보다는 단점이 극대화될 수 있다. →시·군·구당이 필요한 이유는. -현역 의원들은 지역구에 의원 사무소를 두고,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연구소 등의 이름을 내걸고 사실상 지구당 사무소 역할을 하고 있다. 잠재적인 범법자라는 ‘불편한 정치’를 더이상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헌법 8조는 정당이 국민 의사 형성에 필요한 조직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당법으로 지구당을 규제한다는 것은 국가 권력이 정당 운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고 헌법적 가치에도 반하는 것이다. →2004년 지구당 폐지 당시 ‘돈 먹는 하마’라는 지적도 많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측면이 있다. 당시 축·부의금은 물론 당원 단합회·연수회, 창당대회, 후보자 선출대회·연설회 등을 선거 운동의 방편으로 활용하다 보니 관광버스 수십 대가 동원되고 밥값·교통비·선물비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구조였다. 지금은 모두 금지됐다. →지구당 부활이 가져올 정치의 순기능은 무엇인가. -지구당이 없어짐으로써 정치의 왜곡 현상이 심해졌다. 지구당이 있을 때는 원외 위원장들도 현역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조직을 갖출 수 있었고, 후원금도 모을 수 있었다. 현역과 원외 사이에 제도적으로는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구당을 없애면서 원외는 조직과 돈을 모두 잃은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정치가 왜곡돼 있다. →법인·단체의 후원금에 대한 규제 완화도 ‘정치 왜곡’을 바로잡는 수단인가.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지구당을 되살려주면 당비를 받아 운영한다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진보정당은 몰라도 대중정당은 당비를 자발적으로 내는 충성 당원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도 대관 업무를 통해 ‘정치권 줄대기’나 ‘후원금 쪼개기’라는 불편한 현실 속에 있다. 기업들이 선관위를 통해 투명하게 기탁하면 이를 각 정당에 의석 배분율이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고, 그 돈을 중앙당이 아니라 시·군·구당에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선관위 구상이다. →후보자 사퇴 시 선거지원금 반환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야권에서는 후보 단일화라는 정치 현상을 유권자가 표로 심판하면 되는데 왜 법으로 막으려 하느냐는 반대 논리가 우세하다. 하지만 후보가 사퇴했는데도 세금에서 충당되는 선거보조금을 반환하지 않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 투표용지를 인쇄한 이후에 후보가 사퇴하면 유권자 선택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후보 단일화든 사퇴든 ‘데드 라인’은 필요하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천정배 탈당 이유, “실종된 광주정신 복원 할 것”

    천정배 탈당 이유, “실종된 광주정신 복원 할 것”

    천정배 탈당 이유, “실종된 광주정신 복원 할 것” ‘천정배 탈당 이유’ ‘천정배 문재인’ 천정배 전 의원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에 문재인 대표가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 새정치민주연합 천정배 전 의원은 “실종된 광주정신을 복원하겠다”면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4·29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문재인 대표는 전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천정배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주역”이라면서 “대단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어 “출마에 뜻이 있다면 우리 당 경선에 참여해달라는 권유도 드렸다”면서 “(탈당을) 최종 확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권유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천정배 전 의원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인 광주에서는 야권이 분열된 채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천정배 전 의원은 오는 9일 지역구 내 농수산물시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탈당 선언 천정배에게 문재인 “안타깝다. 최종 확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탈당 선언 천정배에게 문재인 “안타깝다. 최종 확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탈당 선언 천정배에게 문재인 “안타깝다. 최종 확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천정배 문재인’ 천정배 전 의원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에 문재인 대표가 입장을 밝혔다. 4일 새정치민주연합 천정배 전 의원은 “4·29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문재인 대표는 전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천정배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주역”이라면서 “대단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어 “출마에 뜻이 있다면 우리 당 경선에 참여해달라는 권유도 드렸다”면서 “(탈당을) 최종 확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권유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천정배 전 의원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인 광주에서는 야권이 분열된 채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한편, 천정배 전 의원은 오는 9일 지역구 내 농수산물시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표, 호남·경제 챙기기

    문재인 대표, 호남·경제 챙기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4일 첫 현장 최고위원회 장소로 전북을 찾았다. 전북 지역에만 전국 대비 20%에 이르는 6만여명의 권리당원이 있다는 점을 고려, ‘호남 챙기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취임 후 첫 지방 일정으로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던 문 대표는 지방에서의 첫 공식회의를 전주에서 개최함으로써 광주, 전남, 전북을 고르게 챙기게 됐다. 문 대표는 전북도청에서 개최한 회의에 참석해 “새만금 사업의 성공을 위해 당 차원의 전폭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추진, 글로벌 자유무역특구 조성 협력 등을 약속했다. 조직사무부총장 인선에 반발해 당 회의에 불참해 오다 이날 복귀한 주승용 최고위원도 “당내 문제로 심려를 끼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박근혜 정권 출범 2년 간 호남은 무인도와 같은 외딴 섬 취급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대급 호남차별을 바로잡겠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와 지역발전 현안에 대한 전북의 소외감과 박탈감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발언들로 보인다. 마침 탈당 후 ‘국민모임’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정동영 전 의원이 전날 전주를 방문해 새정치연합을 포함한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고, 전북의 각계 인사 105명이 국민모임 창당 지지선언을 한 것이 새정치연합에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표는 이날도 경제 정당 이미지 강화에 주력했다. 전북에서 집중 육성 중인 탄소기술 관련 중소기업을 방문해 “기업 스스로도 노력해야 하지만 국가적으로도 탄소산업에 대한 집중지원 육성이 있어야한다”면서 “탄소산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길에 새정치연합이 함께하겠다고 약속 드린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천정배 탈당 이유, ‘실종된 광주정신’ 때문?

    천정배 탈당 이유, ‘실종된 광주정신’ 때문?

    천정배 탈당 이유, ‘실종된 광주정신’ 때문? ‘천정배 탈당 이유’ ‘천정배 문재인’ 천정배 전 의원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에 문재인 대표가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 새정치민주연합 천정배 전 의원은 “실종된 광주정신을 복원하겠다”면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4·29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문재인 대표는 전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천정배 전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주역”이라면서 “대단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어 “출마에 뜻이 있다면 우리 당 경선에 참여해달라는 권유도 드렸다”면서 “(탈당을) 최종 확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시 권유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천정배 전 의원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인 광주에서는 야권이 분열된 채 선거가 치러지게 됐다. 천정배 전 의원은 오는 9일 지역구 내 농수산물시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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