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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흥민 한 골…장현수 PK 허용이 두고두고 아쉬운 멕시코전

    손흥민 한 골…장현수 PK 허용이 두고두고 아쉬운 멕시코전

    손흥민(토트넘)이 무득점 수모를 벗어나게 해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게 됐다. 손흥민은 24일 새벽(한국시간)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끝난 멕시코와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 선발 출격해 후반 추가시간 2분 페널티지역 오른쪽 바깥에서 상대 선수 둘을 가림막으로 이용해 감아차 세계 최고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의 오른쪽을 뚫고 1-2 패배의 위안거리 하나를 제공했다. 중앙 수비의 한 축으로 선발 출전한 장현수(FC도쿄)는 전반 26분 카를로스 벨라에게 페널티킥 선취점을 내주는 실책을 저질러 또다시 패배의 한 빌미를 제공했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손흥민(토트넘)과 이재성(전북) 투톱을 출전시키고 황희찬(잘츠부르크)와 문선민(인천)을 좌우 날개로 배치하는 한편 정우영(빗셀 고베) 대신 주세종(아산 무궁화단)이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함께 공수를 조율하게 했다. 이런 파격적인 선수 기용은 박주호(울산)의 전열 이탈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으며 두 팀의 전력 차이를 더 깊이 파이게 만들었다. 신태용호는 지난 18일 스웨덴과의 1차전 때 0이었던 유효 슈팅을 6개로 늘렸다. 하지만 1954년 스위스 대회 두 번째 경기에서 터키에 0-7로 참패한 이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의 ‘무승’ 수모도 이어갔다. 2연패로 승점을 하나도 쌓지 못한 대표팀은 독일이 소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스웨덴과의 2차전 후반 추가시간 토니 크로스의 극적인 프리킥 역전 골을 앞세워 2-1로 이기는 바람에 조별리그 탈락 확정을 3차전 종료 시점으로 미뤘다. 이날 아침 상트페테르부르크 베이스캠프로 귀환해 27일 카잔 아레나에서 이어지는 디펜딩 챔피언이며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과의 마지막 3차전 준비에 들어가는데 독일을 두 골 차 이상 이기면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기사회생한 독일이 경우의 수를 피하기 위해 신태용호를 제물 삼겠다고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우려되기도 한다. 대표팀은 전반까지 33-67%로 점유율 싸움을 내주며 패스 정확도 67-88%로 밀렸다. 다만 스웨덴과의 1차전과 달리 전반까지 유효 슈팅 둘을 날린 것에 만족했다. 후반 대표팀은 경기력이 더 나빠졌다. 압도적인 멕시코 관중의 광적인 응원에 맞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응원한 붉은 응원단의 열정은 답을 찾지 못했다. 후반 21분 로사노에게 70m가량 단독 드리블을 허용해 로사노의 패스를 받은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치차리토가 골키퍼 조현우와 수비수를 따돌리고 결정지어 2-0으로 달아났다. 한국은 몇 차례 기회를 잡긴 했으나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다 손흥민이 종료 직전 이번 대회 첫 골을 뽑은 데 만족하며 베이스캠프 귀환 길에 올랐다.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한국은 점유율 41-59%, 패스 정확도 81-89%로 밀렸지만 슈팅 수는 오히려 17-13, 유효슈팅 6-5로 앞섰다. 장현수의 페널티킥이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리우올림픽 때 손흥민, 황희찬, 장현수 등과 상대했던 경기에서 퇴장 당하며 울분을 씹었던 로사노는 치차리토의 결승골을 도와 통쾌하게 설욕했다. 4년 전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를 탈락하며 눈물을 흘렸던 손흥민은 이번에도 눈물을 비치며 장현수와 황희찬, 후반 교체 투입된 이승우(엘라스 베로나) 등이 울먹이자 다독거렸다. 한국축구는 4년마다 한 번씩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고 있다. 김영권(광저우 헝다)은 어느 정도 제몫을 해줬지만 중앙 수비수를 정말 키워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게 만든 경기였다. 로스토프나도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영원한 2인자’ 꿈 많았던 JP, 영원히 잠들다

    ‘영원한 2인자’ 꿈 많았던 JP, 영원히 잠들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로 통하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해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그는 꿈많은 사나이였다. 어려서 선생도 해보고 싶었고, 군에서는 정풍(整風)도 해보고 싶었고, 제대해서는 혁명도 해보고 싶었으며, 혁명한 뒤에는 대권을 향해 도전도 했었다. 그러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인 ‘잠들기 전에 가야할 몇 마일’을 끝내 가지 못한 체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향년 92세.●박정희의 2인자로 출발한 정치 인생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그 당시 규암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급장과 검도부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도는 4학년 때 입단을 했고, 승마와 그림도 즐기는 낭만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 2학년 때 맞은 부친의 죽음은 인생 행로를 바꿨다. 가세가 기울면서 3학년 때인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 육사를 졸업한 뒤 맡은 첫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육본이 대구에 피난했을 당시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 곁에와 하숙하던 조카딸 박영옥도 알게 됐다. JP가 메모를 보내 프로포즈를 하고 박 중령이 권하여 결혼을 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과 부대에서는 상사와 부하, 인척으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인연을 맺게 됐다. 전쟁이 가고 휴전이 왔다. 4.19가 오고 이승만이 갔다. 그도 당시 혼란스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0년 9월에 일어났다. 당시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을 가진 뒤 육사 8기 동기생 11명과 함께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국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2인자 시대를 열었다. 이 때 JP의 나이 35세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인생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0일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정보부장을 지내고,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으나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린다. 그 여파로 1963년 2월 창당을 하루 앞두고 박 의장의 권유에 따라 외유길에 나서야 했다.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의 첫 번째 시작이다. 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고향인 부여에서 당선되면서 옛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불거져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또다시 외유길에 올랐다. 1966년 다시 공화당 의장에 복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는 반대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 박 전 대통령에 설득되어 개헌 작업에 앞장섰다. 이어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45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 75년까지 국내 최연소 총리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던 그는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박정희 이후 시대를 이끌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5공 신군부의 5·17조치와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 유랑 생활을 떠났다. 그는 10.26 직후 어느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태평양 한 복판에 내놓고 가셨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비 마다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13대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8%로 4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교두보를 확보, 정치 무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윽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3당 합당을 도모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변신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 자리도 확보한다. 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 그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 강등된다. 1995년 민자당을 돌연 탈당, 같은해 소리소문없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권의 지역 정서를 업고 55석의 제3당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의 제 2 황금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7년 두 번째 대선 고지 등정에 나서면서 내각제를 고리로 다시 한 번 킹메이커가 된다. 그해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극적인 DJP 야권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것. 합의문 서명식장에는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권 성향이던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 정권의 한 축이 됐다. 비록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1998년 2월 총리 임명 뒤 6개월 동안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으나 ’DJ대통령, JP 총리‘ 시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후 잇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충청권도 그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 정부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4·13 총선 대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 결과는 참패. 17석에 그치며 원구성에 실패하자 다시 DJ와 손잡았다. 당시 17인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3인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결국 공동 정부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이와 함께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그 해 대선에선 후보도 내지 못하며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17석은 급기야 4석으로 줄었다. 단 한 석의 비례대표 의석도 배분받지 못하면서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8년 말 뇌경색으로 병원 신세를 졌지만 2010년 초인적인 재활운동 끝에 회복하기도 했다. JP는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현실 정치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었다. 영호남의 대립구도 속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한국적 정치 상황과 항상 힘있는 쪽과 손을 잡는 그의 현실감각 어린 처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장수가 가능했다. 기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소수의 힘을 극대화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 떠나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 김종필 떠나다

    ‘영원한 2인자’ ‘정치 풍운아’로 통하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해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92세. 그는 꿈많은 사나이였다. 어려서는 선생을 하고 싶었다. 군에서는 정풍(整風)을, 제대해서는 혁명을 원했다. 혁명한 뒤에는 대권을 향한 도전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애송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싯구인 ‘잠들기 전에 가야할 몇 마일’을 끝내 가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박정희의 2인자로 출발한 정치 인생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서 그 당시 규암 면장이던 김상배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재학 당시 급장과 검도부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검도는 4학년 때 입단을 했고, 승마와 그림도 즐기는 낭만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서울사대 2학년 때 맞은 부친의 죽음은 인생 행로를 바꿨다. 가세가 기울면서 3학년 때인 1947년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육사를 졸업한 뒤 맡은 첫 보직은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육본이 대구에 피난했을 당시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 곁에와 하숙하던 조카딸 박영옥도 알게 됐다. JP가 메모를 보내 프로포즈를 하고 박 중령이 권하여 결혼을 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과 부대에서는 상사와 부하, 인척으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인연을 맺게 됐다. 전쟁이 가고 휴전이 왔다. 4.19가 오고 이승만이 갔다. 그도 당시 혼란스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결정적인 사건은 1960년 9월에 일어났다. 당시 중령이던 JP는 박정희 소장과 교감을 가진 뒤 육사 8기 동기생 11명과 함께 3·15 부정 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들과 부정부패 장성들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는 국군 정풍운동을 일으켰다.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2인자 시대를 열었다. 이 때 JP의 나이 35세였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인생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그해 6월 10일 박정희 의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으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초대정보부장을 지내고, 공화당 창설을 주도하면서 실세 2인자로 부상했으나 창당 과정에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회전당구기 사건)‘에 휘말린다. 그 여파로 1963년 2월 창당을 하루 앞두고 박 의장의 권유에 따라 외유길에 나서야 했다. 그 유명한 ’자의반 타의반‘의 첫 번째 시작이다.1963년 11월 6대 총선 때 고향인 부여에서 당선되면서 옛 공화당 의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이 불거져 굴욕 외교를 비판하는 6·3사태가 일어나자 그는 또다시 외유길에 올랐다. 1966년 다시 공화당 의장에 복귀했고, 1969년 3선 개헌 때는 반대 의견을 주장하다가 결국 박 전 대통령에 설득되어 개헌 작업에 앞장섰다. 이어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1년 45세의 나이로 총리에 임명, 75년까지 국내 최연소 총리로 활약했다. 총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던 그는 1979년 10·26 사건이 터지면서 공화당 총재로 복귀, 박정희 이후 시대를 이끌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5공 신군부의 5·17조치와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 유랑 생활을 떠났다. 그는 10.26 직후 어느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태평양 한 복판에 내놓고 가셨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고비 마다 캐스팅 보트로 영향력 1986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면서 다시 일어났다. 13대 대선에 출마해 득표율 8%로 4위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으나 19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교두보를 확보, 정치 무대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면서 주요 정치 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윽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과의 3당 합당을 도모하면서 다시 여당으로 변신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함으로써 여권의 2인자 자리도 확보한다.민자당 대표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며 ’굴신(屈身)‘의 정치를 폈으나 YS와 민주계 진영으로부터 ’정치 생명이 다했다‘며 2선 후퇴 압력을 받음으로써 다시 위기를 맞는다. 지분을 가진 창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 그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서 대표위원 강등된다. 1995년 민자당을 돌연 탈당, 같은해 소리소문없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4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킨 데 이어 이듬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핫바지론‘으로 상징되는 충청권의 지역 정서를 업고 55석의 제3당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한 번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 그의 제 2 황금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1997년 두 번째 대선 고지 등정에 나서면서 내각제를 고리로 다시 한 번 킹메이커가 된다. 그해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극적인 DJP 야권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뤄낸 것. 합의문 서명식장에는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권 성향이던 충청표를 끌어모아 공동 정권의 한 축이 됐다. 비록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1998년 2월 총리 임명 뒤 6개월 동안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기도 했으나 ’DJ대통령, JP 총리‘ 시대의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그러나 이후 잇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충청권도 그에게 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9년말 내각제 개헌 약속 파기를 이유로 공동 정부 파기를 선언했다. 2000년 4·13 총선 대비용이라는 말이 나왔다. 총선 결과는 참패. 17석에 그치며 원구성에 실패하자 다시 DJ와 손잡았다. 당시 17인을 원내교섭단체로 인정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3인을 빌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어 이듬해인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요구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결국 공동 정부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이와 함께 그도 ’서산의 지는 해‘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2년 6.13 지방 선거 참패를 계기로 자민련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고 그 해 대선에선 후보도 내지 못하며 ’충청 맹주‘의 위상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탄핵 역풍을 맞아 17석은 급기야 4석으로 줄었다. 단 한 석의 비례대표 의석도 배분받지 못하면서 비례대표 1번에 이름을 올렸던 그는 10선 고지 등정에 실패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합 당시에는 경선 이틀 전 YS와 전격 회동을 갖고 5촌 조카인 박근혜 후보 대신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는 유능한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계 원로로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듯 했으나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입원하기에 이른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회’를 창립하고, 회고록을 내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JP는 ‘3김’ 가운데 가장 오래 현실 정치에 남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영호남의 대립구도 속에 충청도가 캐스팅 보트를 쥘 수 밖에 없었던 특수한 한국적 정치 상황과 항상 힘있는 쪽과 손을 잡는 그의 현실감각 어린 처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치적 장수가 가능했다. 기회주의자라는 평가와 함께 소수의 힘을 극대화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막 내린 ‘3金 시대’…김종필 별세

    막 내린 ‘3金 시대’…김종필 별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8시 15분쯤 별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청구동 자택에서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 전 총리의 가족들은 이날 오전 119를 통해 김 전 총리를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며, 김 전 총리는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김 전 총리의 측근은 “한 달 전쯤부터 기력이 떨어졌지만 특별한 병환은 없었다”면서 “빈소가 차려지면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하고 조화나 조의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측근은 또 “생전에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검소하게 부인 고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고향의 가족묘원에 묻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면서 “이미 언론 보도가 나왔으니 부고도 따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 21일인데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기억력 하나는 그대로였다”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저희보다 기억하는 연도나 순서가 정확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평소 진료를 받았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영원한 ‘제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오뚝이처럼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이어 평생의 꿈인 내각제를 고리로 1992년 대선에서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으며,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파기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김 전 총리의 서거로 1960년대부터 우리 정치권을 풍미해 온 ‘3김 시대’는 실질적 종언을 고하게 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울지 마、메시… 당신밖에 없어요

    울지 마、메시… 당신밖에 없어요

    22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D조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경기가 열리기에 앞서 국가가 울려 퍼지자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아르헨티나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직감했을까. 이날 0-3 참패를 당했다. 1차전에서 아이슬란드에 1-1로 비겼던 아르헨티나는 이로써 1무1패로 탈락 위기에 봉착했다.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1958년, 1962년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마지막이다.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함께 당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메시도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중압감 때문인지 오히려 부진했다. 전반에는 단 한 개의 슈팅도 없었다. 후반 19분 상대 문전에서 이날 경기의 유일한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활동량에 있어서도 7.624㎞로 90분 풀타임을 소화한 양팀 선수 중 골키퍼를 제외하고 가장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팀 평균인 9.612㎞에 훨씬 못 미쳤다. 아이슬란드전에서도 활동량이 7.617㎞에 그쳤다. 미드필더 싸움에서 크로아티아에 밀리다 보니 공격수인 메시에게까지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메시는 경기 내내 손으로 이마를 짚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줬다. 관중석에 있던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58)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있던 일부 팬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1-6으로 무릎을 꿇은 뒤 60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3점 차 이상으로 패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메시의 중압감은 엄청나다. 그가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아이슬란드와 비겼기 때문이다. 라이벌 호날두는 벌써 4골이나 넣었다. 보다 못한 메시의 모친 셀리아 쿠시티니는 최근 아르헨티나 방송에 출연해 “가끔 메시가 고통받으며 우는 모습도 본다”며 비난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호르헤 삼파올리 아르헨티나 감독도 “팀이 메시를 제대로 받쳐 주질 못했다”며 메시를 두둔했다. 메시는 2016년 6월 코파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칠레와의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해 준우승에 머물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설득한 끝에 국가대표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다시 은퇴하라는 비난 여론도 있다. 심지어 이날 영국의 일간지 미러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정통한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여러 명의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날 것”이라며 메시의 대표팀 은퇴를 전망했다. 아르헨티나와 메시에게 남은 러시아월드컵이 90분일지 그 이상일지는 오는 27일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결정 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포토]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에 참패에 고개숙인 메시

    [포토]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에 참패에 고개숙인 메시

    21일(현지시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D조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리오넬 메시가 고개를 떨군 채 경기장을 걷고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는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참패했다. 사진=AP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패배보다 실망스러운 아르헨티나 3대 꼴불견

    패배보다 실망스러운 아르헨티나 3대 꼴불견

    삼파올리 감독 “동료들이 메시 재능 흐려”오타멘디, 쓰러진 라키티치에 비신사적 화풀이메시, 주장으로서 리더십 발휘에 실패2018 러시아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참패를 당했다. 인간의 영역을 뛰어 넘어 ‘신계’에 속하는 실력을 지닌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가 있었지만 아르헨티나는 공격과 수비 모든 면에서 크로아티아에게 밀리는 졸전을 펼쳤다. 축구 팬들은 패배도 패배지만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이 보여준 태도에 크게 실망한 분위기다. 감독은 메시에 모든 비난이 쏠리는 것을 의식한 듯, 팀 내 다른 선수들의 실력이 모자랐다고 화살을 돌렸다. 아르헨티나 수비수는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크로아티아 선수를 향해 고의적으로 강한 슈팅을 날려 화풀이를 했다. 메시는 주장 완장을 찼지만 동료들을 다독이고 기운을 북돋는 역할을 하는 데 실패했다.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이 똘똘 뭉쳐 투혼을 발휘하는 ‘원 팀’ 정신을 기대한 팬들로선 아쉽고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호르헤 삼파올리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은 22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현실적으로 아르헨티나 동료들이 메시의 재능을 흐리고 있다”고 말했다. 메시를 감싸면서 나머지 22명의 선수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삼파올리 감독은 “팀은 메시에게 패스하지 못했다”면서 “물론 그에게 연결하려고 노력했지만 크로아티아가 강력하게 차단했다. 우리의 패배”라고 말했다. 앞서 삼파올리 감독은 아이슬란드와의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메시에 대해 “아르헨티나가 못 이기면 모두 메시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게 쉽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아르헨티나 수비수 니콜라스 오타멘디는 비신사적인 반칙으로 관중의 야유를 샀다. 오타멘디는 후반 39분 크로아티아의 미드필더 이반 라키티치가 공을 다투다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자 고의적으로 라키티치를 향해 강하게 공을 찼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오타멘디에 거칠게 항의했고 양측 선수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주심은 오타멘디에게 경고를 줬다. 팬들은 ‘퇴장’도 받을 수 있었다며 아무리 화가 나고 경기가 풀리지 않더라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메시는 왼팔에 찬 완장이 무색하게 주장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패색이 짙어갈수록 주장으로서 동료들의 사기를 높이고 격려했어야 했지만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경기 후에도 동료들을 위로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축구 지도자 알피오 바실레 전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메시는 믿을 수 없는 득점력을 자랑한다. 외계인 같은 선수”라고 치켜 세우면서도 “메시는 리더십이 부족하다. 마라도나보다 (실력이) 앞서지만 마라도나는 야만적인 전략가였다.하지만 메시는 자신이 볼을 갖고 있지 않으면 걷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메시는 이날 크로아티아전에서 골문을 벗어나는 한번의 슈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메시는 이날 7.624km를 뛰었다. 양팀 합쳐 90분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 중 골키퍼를 빼고 가장 적게 뛰었다.반면 크로아티아 공격의 핵심이었던 루카 모드리치는 9.879km를 뛰며 중원 사령탑 구실을 톡톡히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도 지난 2016년 인터뷰에서 “메시는 좋은 사람이지만 리더로서의 개성은 없다”며 메시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마라도나는 메시의 라이벌인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해 “그는 혼자 힘으로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을 수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라며 “호날두는 축구계의 유산‘이라고 호평했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계파갈등·‘김성태 사퇴’ 격론… 5시간 싸우다 끝난 한국당 의총

    계파갈등·‘김성태 사퇴’ 격론… 5시간 싸우다 끝난 한국당 의총

    김진태 “상대편 쳐낼 속내 드러나” 성일종 “김무성 의원도 탈당해야” 강석호 등 복당파는 김성태 두둔 金대행, 또 의총 열어 논의 고수 “당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 보일 것”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21일 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한 두 번째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아무런 결론도 도출하지 못했다. 5시간 넘게 진행된 의원총회는 계파 갈등 논란과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의 사퇴 요구 등을 놓고 설전만 벌이다 끝났다. 의원총회는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사이의 신경전을 촉발시킨 박성중 의원의 휴대전화 메모에 대한 공방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이 메모는 박 의원이 지난 18일 스마트폰에 ‘친박·비박 싸움 격화’, ‘친박 핵심 모인다’, ‘적으로 본다’고 적은 것이 사진에 찍혀 공개된 것으로, 계파 간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들로 논란이 됐다. 이에 박 의원은 당일 열린 바른정당 복당파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한 것일 뿐이라며 사과했다. 그러나 메모에 친박 의원으로 이름이 적힌 김진태 의원 등은 의원총회에서 “계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장우 의원은 “있지도 않은 사실로 당내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에 대한 윤리위원회 조사와 징계를 요구한 의원도 있었다. 한 의원은 의원총회 중간에 나서면서 “사실 여부를 떠나 감정적인 골이 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친박·비박 메모’의 불똥은 김 권한대행에 대한 사퇴 요구로 튀었다. 특히 친박 의원들을 중심으로 6~7명이 앞장서 사퇴를 언급했다. 김진태 의원은 의총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박 의원의 휴대전화 메모로 당권을 잡아 상대편을 쳐낼 생각만 하는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그 모임에 김 권한대행도 참석했으니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메모가 작성된 바른정당 복당파 모임에 김 권한대행이 잠시 참석했는데도 메모에 적힌 내용과 같은 발언들을 제재하지 못하고 방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김 권한대행이 당내 논의를 거치지 않고 쇄신안을 발표해 분란만 일으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부 초·재선 의원은 쇄신안을 발표한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 재선 의원은 의원총회를 마치고 “당 대표 체제의 독선과 독주가 (선거) 패배의 중요한 원인으로 보이는데 어떤 논의 과정 없이 당의 중요한 진로, 노선과 관련한 것을 혼자 하는 게 적절한 것인가, 또 다른 독선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김 권한대행의 사퇴를 표결에 부치자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특히 성일종 의원은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이 전날 탈당한 것을 거론하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도 탈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복당파들은 김 권한대행을 두둔하고 나섰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의총만 열면 대표 나가라고 한다. 말이 되는 이야기냐”며 “선거에서 졌다고 누가 누구를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강석호 의원은 “지방선거 책임질 건 홍준표 전 대표가 책임지고 사퇴했는데 또 원내대표가 책임지고 나가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며 “하반기 원구성도 해야 하니 대책을 수립해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 결국 친박·비박 메모를 둘러싼 논쟁으로 당초 목적이었던 쇄신안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대해선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김 권한대행은 또다시 의원총회를 열어 논의해 보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시된 의견과 내용을 중심으로 당이 혁신하고 변화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당 대표 권한대행 사퇴 요구에 대해선 “그런 목소리도 있었지만 앞으로 당이 혼란, 혼돈에 빠지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비대위 구성 윤곽에 대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비대위 구성 준비위원회를 통해 진행시켜 가겠다”고 말했다. 전체 112명 의원 가운데 90여명이 참석한 의원총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쯤까지 점심식사를 김밥과 빵으로 때워 가며 진행됐다. 약 40명의 의원이 자유 발언에 참가했다. 하지만 의총 중간에 빠져나간 의원도 적지 않았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수사권 조정’ 공은 국회로… 野 반발 커 법제화까진 험로

    정부, 사개특위에 조정안 제출 한국당 내홍에 회의 개최 불투명 30일 활동시한 만료도 변수 정부가 21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법제화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여야 간 의견 차가 클 뿐만 아니라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야당의 내홍으로 국회가 공전하면서 조정안 논의조차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주체인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이날 정부로부터 조정안을 전달받았지만 당장 회의 개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개특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은 “자유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에게 사개특위를 여는 방안을 제안했다”면서 “장 간사가 당 지도부와 상의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개특위 소속 한국당의 한 의원은 “사개특위를 열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당장의 논의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다음주부터 원구성 협상에 나서겠다고 한 만큼 일단 당내에서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는 30일로 만료되는 사개특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정성호 사개특위 위원장은 “30일까지만 여야가 시한 연장에 합의해야 한다”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루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만큼 가능하면 사개특위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일 이전까지 시한을 연장하지 못하면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해 사개특위를 다시 구성하는 방안도 있지만, 원구성이 늦어질 경우 사개특위 재출범은 물론 수사권 조정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한국당 등 야당이 정부의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하거나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입법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경찰 출신의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사개특위 간사)은 “정부의 조정안은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갖는 게 핵심인데, 현재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 수사가 어느 정도 완료될 때까지는 검찰의 수사 지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실질적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검찰은 막강한 권한은 휘두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 한국당 윤상직 의원(사개특위 위원)은 “자치경찰제 등은 여야의 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 “다만 수사 종결권은 문제가 있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각 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데다, 지방선거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 처리에 속도를 낼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무성 측근, 2016년 총선 ‘새누리 공천 살생부’ 뒷얘기 공개

    김무성 측근, 2016년 총선 ‘새누리 공천 살생부’ 뒷얘기 공개

    “박근혜의 영향력은 퇴임해서도 유지될 것이다. 다른 대통령하고 다를 것이다.” “이 사람들은 공천 주면 안 된다. 이재오, 유승민, 정두언, 김세연, 김성태, 홍지만…” 2016년 20대 총선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참패하고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선거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지만, 새누리당만 놓고 보자면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패배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진실한 친박) 논란, ‘옥새 투쟁’ 등으로 불거진 공천 잡음이다. 당시 새누리당 내에서 공천을 놓고 벌어진 비화가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최측근인 장성철 전 보좌관의 새 책 ‘보수의 민낯, 도전 2022’라는 책을 통해 공개됐다. 21일 장성철 전 보좌관의 책에 따르면 공천을 앞둔 2016년 2월 24일쯤 청와대와 당 사이 연락책을 자처했던 A씨(책에서 실명을 밝히지 않음)가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을 찾아왔다. A씨는 청와대의 한 인사와 나눴다는 이야기를 김무성 의원에게 전한다면서 “청와대가 힘이 세다. 박근혜의 영향력은 퇴임해서도 유지될 것이다. 다른 대통령하고 다를 것이다. 청와대 말 안 들으면 ‘훅’ 하고 대표를 쑤시고 들어올 것이다”라는 등의 말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A를 통해 공천과 관련해 제안이 왔다는 것이다. A씨는 ‘청와대의 뜻’이라면서 공천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명단을 불러줬다고 한다. 이른바 ‘새누리당 살생부’ 논란의 시작이었다. 장성철 전 보좌관은 “이재오 의원을 필두로 유승민·정두언·김용태·조해진·김세연·김학용·김성태·박민식·홍지만 의원 등등의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A씨가 이 사람들의 공천 불가 이유랍시고 전한 내용은 “이재오는 당과 정체성이 맞지 않아서, 조해진은 유승민 원내대표 때 원내수석을 했기 때문에, 김세연은 유승민과 친해서, 홍지만은 유승민 선거를 도와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재오 의원이나 김용태 의원 지역구에 다른 사람을 공천하면 누가 경쟁력을 갖고 이길 수 있냐”는 물음에 A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른 이야기 안 하고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80~90명의 의원만 당선되면 좋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살생부’에 오른 정두언 전 의원에 의해 언론에 폭로됐다. 당시 정두언 의원이 김무성 전 대표에게 직접 들었다고 밝히면서 당시 친박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책임론에 김무성 대표는 당 대표 사과와 함께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정성 저해 금지 등을 약속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장성철 전 보좌관은 비례대표 후보 공천 과정에도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전했다. 그는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한 인사가 당초 명단에는 있었는데 실제 발표에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밤사이 한 최고위원이 본인이 영입한 인사가 선정되도록 작업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마디로 20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은 청와대와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 등 공천 권력을 휘두르던 인사들의 ‘내 사람 심기의 한마당’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한구 위원장과 친박계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유승민 지역구 포함) 5개 지역 공천안’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며 김무성 의원이 벌였던 이른바 ‘옥새 투쟁’은 장성철 전 보좌관을 비롯한 참모진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혔다. 20여년간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겪은 일들과 함께 당시 작성했던 각종 보고서, 언론을 대하는 원칙 등을 담은 장성철 전 보좌관의 책은 22일 시중에 출간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자유한국당, 쇄신 토론회서 “태블릿PC 진실 밝혔어야”

    자유한국당, 쇄신 토론회서 “태블릿PC 진실 밝혔어야”

    6·13 지방선거 참패로 존폐 위기에 몰린 자유한국당이 쇄신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서 ‘최순실 국정농단’과 이에 따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주장이 나왔다. 21일 오전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수 그라운드 제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방아쇠가 된 태블릿PC의 진실을 밝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관여한 증거로 제시됐던 태블릿PC가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는 친박집회 세력들이 내세우는 주장이기도 하다. 조동근 대표는 “자유한국당 임시지도부는 ‘국정농단세력, 적폐세력, 수구세력’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라면서 “이를 스스로 인정한다면 한국당의 재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한국당이 태블릿PC의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서 “전투력을 상실한 군대는 백전백패로 정당도 마찬가지다. 전투 의지가 없는 정당엔 미래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에 분노한 건 100석이 넘는 의원을 가진 거대 야당으로서 문재인 정권의 독주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도대체 뭘 했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근혜계인 이장우 의원도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우리 당이 앞장선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탄핵은 절차를 밟아서 최종적으로 재판 결과가 명확히 나왔을 때 해야 하는 데 의혹만 갖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친박계 의원 사퇴’ 주장에 대해서도 “지역구에 책임 있는 사람을 뽑아놔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안철수, 딸 졸업식 마치고 미국서 귀국…거취 고민

    안철수, 딸 졸업식 마치고 미국서 귀국…거취 고민

    6·13 지방선거에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3등으로 패배한 안철수 전 의원이 외동딸 대학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다 21일 새벽 귀국했다. 안 전 의원은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와 함께 딸 설희씨의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5일 미국으로 떠났다. 당초 19일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예정보다 이틀 더 머물다 이날 새벽 4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바른미래당 안팎에서는 선거 참패의 책임을 져야 할 안 전 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을 위로하고 다독이지 않고 선거 직후 미국으로 떠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었다. 귀국한 안 전 대표는 당분간 선거 때 도움을 준 이들과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후보들에게 인사하고, 숙고의 시간을 가진 뒤 향후 정치 행보 등에 대한 입장 표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안 전 대표의 일부 측근은 안 전 대표에게 ‘정계은퇴 선언’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선거 패배가 안 전 대표의 책임만은 아니며 정치권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며 안 전 대표의 정계은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검경 수사권 조정 ‘제2 개헌안’ 되나

    청와대가 경찰의 수사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최종안을 이번 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이를 논의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이달 말 활동 시한이 종료되기 때문에 실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기까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검·경 수사권 조정 외에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을 논의할 사개특위를 구성해 올해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활동 종료를 일주일여 앞둔 20일까지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다. 사개특위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간사와 장제원 자유한국당 간사가 다음주 만나 활동시한 연장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활동시한 연장은 쉽지 않다. 사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하려면 관련 내용이 이달 말까지 본회의에서 처리되어야 하는데 지난달 말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임기 종료 후 한 달 가까이 국회의장이 공석이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당내 정비가 급해 후반기 원 구성은 운도 떼지 못하고 있다. 사개특위 소속 한 의원은 “국회 정상화 후 다시 사개특위를 구성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다시 기관 업무보고부터 받아야 하는 절차 등으로 또 시간만 보내다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은 청와대 의지로 밀어붙이는 상황이지만 결국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야당의 협조가 필수다. 그러나 국회에서 공회전만 거듭하다 ‘제2의 개헌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여권 일부에서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사개특위가 아닌 법무부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관례대로 국회의장직을 차지하게 되면 법사위원장은 한국당이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결국 국회를 거쳐야 하는 건데 사개특위가 그동안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한국당의 비협조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한국당의 태도가 달라지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안과 사정이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 등에 대해 문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강한 데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기 때문에 한국당도 계속 거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문 대통령의 행복회로?…“러시아와 4강에서 만나고 싶다”

    문 대통령의 행복회로?…“러시아와 4강에서 만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 러시아 월드컵과 관련해 “멕시코전 승리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크다”면서 “러시아와 한국이 모두 선전해 4강전 정도에서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안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러시아 국빈방문을 하루 앞둔 20일 청와대에서 러시아 공영통신사 타스, 일간지 로시스카야 가제타, 국영 러시아방송의 합동 인터뷰에 응했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러시아 월드컵 개최를 축하드린다. 아마 개막전에서 러시아가 크게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러시아 국민께서 열광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러시아 월드컵의 성공과 러시아 국가대표팀의 좋은 성적을 기대하겠다”고 덕담했다. 이에 인터뷰 진행자인 미하일 구스만 타스통신 제1부사장 겸 편집총국장은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면서 “대통령님께서 관전하시게 될 멕시코전에서도 한국팀이 꼭 좋은 성적 거둘 수 있기를 저도 기원한다”고 화답했다.이어 문 대통령은 “한국은 첫 경기에서 패했기 때문에 다음 멕시코 경기의 승리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크다”면서 “러시아와 한국이 모두 선전해서 4강전 정도에서 만났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런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자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은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대표팀이 앞서 스웨덴과의 월드컵 1차전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플레이에 비추어 봤을 때 남은 멕시코와 독일을 꺾기란 매우 어렵다는 관측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독일은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된다. 이런 팀들과의 경기에서 이겨 16강전에 진출하고, 나아가 4강 진출까지 기대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축구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한 ‘립 서비스’를 한 것이거나 축구를 알지 못하는 ‘축알못’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우스개가 나온다. 네티즌들은 “대통령께서 야구밖에 모르시는 것 아니냐”, “축구대표팀에 너무 부담주신다”, “문 대통령 응원받고 선수들이 선전하면 좋겠다”, “대통령이 차마 참패할 것 같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을 거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지방선거 참패 책임 탈당…굳게 닫힌 서청원 의원실

    [서울포토] 지방선거 참패 책임 탈당…굳게 닫힌 서청원 의원실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이 6·13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탈당키로 한 20일 오후 문이 닫힌 국회 의원회관 서청원 의원실. 2018.6.20 김명국 선임기자 daunso@seoul.co.kr
  • ‘선거 참패’ 홍준표 변호사 개업 신청

    ‘선거 참패’ 홍준표 변호사 개업 신청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대표에서 물러난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변호사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19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홍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변회에 변호사 재개업 신고서를 냈다. 그는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변호사 휴업 신고를 냈다. 홍 전 대표는 아직 변호사 사무실을 마련하지는 않았고 본인의 서울시 송파구 자택 주소로 재개업 신고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변회 측은 “변호사법 등 관련 규정을 검토한 뒤 재개업 신고를 허용할지 결정할 것”이라면서 “이르면 20일 오전 처리될 것”이라고 전했다. 통상 휴업 후 재개업 신고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받아들여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한국당 쇄신안 반발 확산… 철 지난 계파 싸움에 혁신은 뒷전

    한국당 쇄신안 반발 확산… 철 지난 계파 싸움에 혁신은 뒷전

    친박·비박 동향 메모에 또 내홍 金 “중앙당 축소… 원내 정당화”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이 꺼내 든 ‘중앙당 해체’ 쇄신안에 당내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해 ‘국민에게 탄핵당한 것’이라며 지난 15일 무릎을 꿇은 한국당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쇄신안 찬반을 놓고 계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 보이며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김 권한대행의 쇄신안은 중앙당 청산위원회 구성과 중앙당 해체,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외부 영입, 원내 정당으로의 전환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는 “직접 중앙당 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청산·해체 작업을 진두지휘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의 밑그림은 시작부터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중진 의원들은 전날에 이어 19일 쇄신안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선거를 치르려면 꼭 필요한 중앙당을 해체한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4선 중진 한선교 의원은 중앙당 해체 카드에 대해 “정치권에서 가장 비효율적 구조가 중앙당이기 때문에 방향은 옳다”면서도 “중앙당을 없앤다는 건 전국적인 우리 정치 조직을 없앤다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조경태 의원도 “혁신안은 당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 절차를 무시했고 너무 성급하게 발표됐다”고 말했다. 차기 당권 주자로 언급되는 ‘친박근혜계’ 정우택 의원은 “당헌당규에 규정된 절차나 당원들의 총의를 모으지 않고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며 “대단히 황당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초선 의원들도 모임을 열고 김 권한대행의 발언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당 수습 대책을 논의한 이날 모임에는 초선 41명 중 32명이 참석했다. 김성원 의원은 모임을 마친 뒤 “중앙당 슬림화와 정책 정당, 경제 정당 방향에는 공감했다”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의원총회를 소집해 총의를 나눌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초선 의원들은 향후 꾸려질 혁신비상대책위원회에서 초·재선 의원이 역할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가운데 이날 오전 김 권한대행은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 의원와 비박근혜계 의원들의 모임에 참석해 쇄신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의 케케묵은 계파 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날 조짐도 나타났다. 한 초선 의원 모임 참석자가 핸드폰에 ‘친박 핵심 모인다. 서청원, 이장우, 김진태, 박명재, 정종섭 등등’이라고 적은 메모가 사진 기자에게 포착된 것이다. 메모에는 ‘친박·비박 싸움 격화’, ‘세력화가 필요하다. 목을 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친박’으로 거론된 김진태 의원은 “겉으로는 반성한다면서 결국 내심은 이것이었나”라며 “계파 싸움으로 당권 잡아서 뭐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초선 의원들은 오후에 다시 긴급회동을 열고 “초선이 중심을 잡고 패거리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내 반발에도 김 권한대행은 쇄신안을 관철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중앙당 해체가 아니라 원내 정당화로 가는 것”이라며 “기존 중앙당 기능을 최소화시키고 국회에서 공간 배치를 해서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홍준표, 정치 관두고 변호사업?…서울지방변호사회에 재개업 신청

    홍준표, 정치 관두고 변호사업?…서울지방변호사회에 재개업 신청

    6·13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변호사 재개업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중앙일보가 19일 보도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2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변호사 휴업신고를 냈던 홍 전 대표가 이날 재개업 신고서를 냈다. 홍 전 대표는 당장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진 않고 서울 송파구 자택 주소로 재개업 신고서를 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재개업 신고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만 휴업 기간 형사소추에 대한 위법사실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홍 전 대표는 업무상 횡령 혐의, 명예훼손 및 모욕죄 등으로 여러 건 고소·고발당한 상태다. 서울변회는 이에 대해 홍 전 대표의 소명을 들어본 뒤 재개업 허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종 결정권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친박, 비박…목을 친다’…카메라에 포착된 한국당 의원 메모

    ‘친박, 비박…목을 친다’…카메라에 포착된 한국당 의원 메모

    친박·비박 동향 시사 메모 포착 김성태 “중앙당 축소” 한발 양보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이 꺼내 든 ‘중앙당 해체’ 쇄신안에 당내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해 ‘국민에게 탄핵당한 것’이라며 지난 15일 무릎을 꿇은 한국당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당내 초선 의원들이 김 권한대행의 수습책이 절차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김 권한대행의 쇄신안은 중앙당 청산위원회 구성과 중앙당 해체, 혁신비상대책위원장 외부 영입, 원내정당으로의 전환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는 “직접 중앙당 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청산·해체 작업을 진두지휘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의 밑그림은 시작부터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중진 의원들은 전날에 이어 19일 쇄신안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선거를 치르려면 꼭 필요한 중앙당을 해체한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4선 중진 한선교 의원은 중앙당 해체 카드에 대해 “정치권에서 가장 비효율적 구조가 중앙당이기 때문에 방향은 옳다”면서도 “중앙당을 없앤다는 건 전국적인 우리 정치 조직을 없앤다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경태 의원도 “혁신안은 당내 구성원의 의견 수렴 절차를 무시했고 너무 성급하게 발표됐다”고 말했다. 차기 당권주자로 언급되는 심재철 부의장은 “우리 당이 덩치가 커서 패배한 것인가”라며 “엉뚱한 헛다리 짚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모습이 참패를 가져온 요인 중 하나”라고 김 권한대행을 비판했다. 한국당 초선 의원들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 모여 김 권한대행의 발언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당 수습 대책을 논의한 이날 모임에는 초선 41명 중 32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번 주 내에 초선 의원 전체가 참여하는 1박 2일 워크숍을 열어 당의 활로를 모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향후 꾸려질 혁신비상대책위원회에서 초·재선 의원이 역할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이날 모임에서는 지난 15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2020년 총선 불출마 의사를 피력했던 윤상직 의원에 이어 정종섭 의원도 불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김성원 의원은 모임을 마친 뒤 “중앙당 슬림화와 정책 정당, 경제 정당 방향에는 공감했다”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다”며 “의원총회를 소집해 총의를 나눌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친박근혜’와 ‘비박근혜’의 케케묵은 계파 싸움도 재연됐다. 한 초선 의원 모임 참석자가 핸드폰에 ‘친박핵심 모인다, 서청원, 이장우, 김진태, 박명재, 정종섭 등등’이라고 적은 메모가 사진 기자에 포착된 것이다. 메모에는 ‘친박·비박 싸움 격화’, ‘세력화가 필요하다. 목을 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친박’으로 거론된 김진태 의원은 “겉으로는 반성한다면서 결국 내심은 이것이었나”라며 “계파 싸움으로 당권 잡아서 뭐하겠나”라고 반박했다. 당내 반발에도 김 권한대행은 쇄신안을 관철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반발을 의식한 듯 “중앙당 해체가 아니라 원내 정당화로 가는 것”이라며 “기존 중앙당 기능을 최소화시키고 국회에서 공간 배치를 해서 맡은 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홍준표와 기묘하게 운명이 닮은 ‘홍준표 나무’를 아세요

    홍준표와 기묘하게 운명이 닮은 ‘홍준표 나무’를 아세요

    창원시에 있는 경남도청 앞에 ‘홍준표 나무’가 있다. 경남도청 정문 화단에 심겨진 ‘주목’으로, 요즘 다른 나무들이 녹음이 짙은 것과는 달리 누렇게 변해 시들고 있다. 이 나무는 19일 영양제 주사를 주렁주렁 달고, 파란색 보호막으로 덮여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 나무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이던 지난해 4월 심은 것이다. 앞서 이 자리에는 사과나무가 심겨 있었다. 2016년 6월 당시 홍준표 지사는 ‘채무제로 기념식수’를 한다며 도청 앞에 있는 조형물 ‘낙도의 탑’ 앞에 사과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당시 경남도청의 상징물인 ‘낙도의 탑’을 가린다며 식수 반대 의견도 많았다. 이 사과나무가 심은지 6개월 만에 말라죽을 위기에 처하자 진주에 있는 경남도산림환경연구원으로 옮기고, 그자리에 주목을 심었다. 이 주목 역시 고사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4월23일 다른 주목으로 대체했다. 그 새로 심은 주목이 다시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사실 이 나무가 상징하는 ‘체무제로’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논란이 됐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하고,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등 도민 삶의 질 저하와 홍준표 전 지사의 치적과 맞바꾼 ‘허구’라는 비판이 많았다. 아무튼 여러차례 나무를 바꿔 심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만큼 현재의 나무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나무를 뽑아내는 순간 홍준표 전 도지사의 흔적도 지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 주목은 홍준표의 경남도정 실패를 상징하는 적폐로 치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홍준표 나무가 홍준표와 운명이 묘하게 닮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13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당대표에서 사퇴하면서 정치생명이 고사 위기를 맞았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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