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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혁명의 기회다(박화진 칼럼)

    화산처럼 폭발하며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는 비자금사건의 주인공 노전대통령의 이름 「태우」가 갖는 의미는 문자그대로 크게 어리석다는 뜻이다.그가 대통령이 된것은 고무신짝처럼 큰귀로 부처님을 연상시키는 관상덕분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크게 어리석다는 말은 곧 크게 현명하다는 말과 통하는 것이 동양식 사고의 해석이며 그럴듯한 관상과 이름에 약한 한국정서의 덕을 실제로 그는 많이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사람 특히 정치인을 이름이나 외모만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행동인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이번 비자금사건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크게 어리석음으로써 크게 현명해져야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이름 그대로 끝까지 어리석기만 하고만것은 분노를 넘어 연민의 정도 느끼게 한다.불교신자로 대통령까지 역임한 그다.그많은 재물의 부질없음을 왜 몰랐을가.2천억원가까운 거액의 검은돈을 이 작은 나라에서 어디다 영원히 감출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견물생심으로동한 탐심 때문에 눈이 먼 탓일 수도 있다.그래도 그렇지, 우리「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번 비자금사건이 그동안 깨끗한체 해온 일부 정치인들의 기만적 마각을 벗기는 계기가 된것도 뜻밖의 소득이요 웃지못할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구악 정치인」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어떤 야당지도자의 경우는 새로울 것 없는 재확인일지 모르지만 「행동하는 양심」을 자처해온 어떤분의 「20억을 받았다」는 자백은 노씨의 경우에 못지않는 충격과 실망 그리고 분노와 허탈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수 없다. 설이 돌때마다 그만은 그럴리 없으며 공연한 음해일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깨끗한 야당지도자를 자처해온 그가 범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있는 검은 비자금의 일부였을 것이 분명한 20억을 받았다고 자백한 것이다.부정한 돈인줄 몰랐으며 위로의 인사로 받았다는 「너무도 뻔뻔스럽다고 해야할」 변명까지 하면서 말이다.그리고는 다른 사람도 받았을 터이니 그것을 밝혀야 한다며 예의 기만역공세전술로국민을 호도하고있다. 수뢰죄로 잡힌 공직자의 떡값이란 변명은 들어봤어도 위로의 인사값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어느 쪽이라해도 액수가 너무 크다고 생각지 않는가.노씨의 부정축재로 보이는 1천8백57억원에 비하면 20억원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그러나 20억이 적은 돈인가.실수령 2백만원의 봉급생활자가 전액을 80년이상 모아도 모자랄 거액이다.그것이 어떻게 그냥 주는 인사값이 될수 있단 말인가.그것을 받고도 그는 시치미 떼며 청결을 가장해왔다.이번 사건만 아니었든들 영원히 입다물고 있을 작정 아니었는가.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죄값을 치르자면 노씨를 즉각 구속수사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존경받던 야당지도자가 그러고도 할말이 있다니 국민에 대한 지나친 모독이다. 「경제는 벤츠고 정치는 포니」라더니 우리정치의 진정한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번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전직대통령의 부정축재규모 만큼이나 엄청난 실망·분노·허탈 그리고 수치를 안겨주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새로운 도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준 사건이라고도 할수있다.변화와 개혁의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단 한푼의 돈도 안받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오늘의 사건을 보고서야 그 참뜻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가지않는가.통합선거법·정치자금법제정및 금융실명제실시의 참뜻도 결국은 이 부정부패정치의 청산과 개혁에 있지 않았는가.6·27지방선거의 여당참패에도 불구하고 그방향은 백번 옳고 정당하다.이번 사건은 과감한 구악정치청산의 기회로,참다운 정치혁명을 기어이 성공시키라는 하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 임의원 사무실 수색/여야 강경 대치

    ◎야 “정치 사찰”/여 “정당한 사법행위” 경찰이 최선길 노원구청장의 비리수사를 위해 새정치국민회의 임채정의원의 지구당사를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국민회의는 23일 총선을 앞둔 의도적인 정치사찰이라고 주장하고 국정감사 등을 통해 강력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한 반면 민자당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맞서는 등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날 국회에서 김대중 총재 주재로 당무회의를 열고 야당탄압비상대책위와 최구청장 구속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최근 경찰수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여권의 비자금의혹 폭로 등 강력한 대여공세를 펼쳐나가기로 결정했다. 김총재는 이 자리에서 『현정부가 지자제선거의 참패에도 불구,철저하게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면서 『최락도의원 구속과 최구청장 구속사건에서 검·경이 보여준 행위에 강한 항의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민자당은 김윤환 대표위원 주재로 고위당직자간담회를 열어 국민회의측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일축하며 『경찰의 압수수색은 정치탄압과 전혀 상관없는 사법적 행위』라고 반박했다.
  • 민자 신임 지구당위원장 5인의 포부

    ◎부산 동래갑 박관용 위원장/“행정경험 살려 유권자에 개혁 적극 설득” 『정부에서 2년반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20일 민자당 부산 동래갑지구당 조직책으로 임명된 박관용 청와대정치특보는 4선의원으로서의 의정경험과 여권 핵심부에서 일해온 경력 등이 의정활동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막상 정부에서 일해보니 미처 몰랐던 것들을 많이 깨닫게 됐다』면서 『이러한 경험이 좋은 기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민정부 출범 때 청와대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의원직을 내놓은 지 2년반만에 「고향」에 돌아온 소감을 묻자 『처음하는 것도 아닌데…』라고 답하면서도 다소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지역이 민자당의 「텃밭」인데도 친여정서는 예전 같지 않은 사실을 인정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모든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다.이어 김영삼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보좌해온 측근답게 『개혁정부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고 허심탄회하게 국민들과 대화를 해 나가겠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박특보는 『지역구 동지들이 다시 환영해 줘 고맙기 그지 없다』고 분구전 동래지역 조직책인 강경식의원과 그 조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부산 사하갑 서석재 위원장/“정치초년생 각오로 압도적 승리향해 최선”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민자당 부산 사하갑지구당 조직책에 임명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은 『제 위치를 찾아 왔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먼저 『본의 아니게 일파만파로 번지게 돼…』라고 말해 전직대통령 비자금 조성발언 파문으로 겪은 「마음고생」이 채 가시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내년 총선 공천과 다름 없는 조직책 복귀를 놓고 「명예회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잠시 행정쪽에 있다가 정치로 되돌아 온 것이므로 아무 관계가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본 위치로 되돌아온 만큼 민자당의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소신』이라고 덧붙였다. 민자당 텃밭에서의 당선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투에 앞서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그는 『5년동안 당의 공조직에 관여해 오지 않았다』고 「정치 초년생」과 같은 각오로 임하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한 뒤 『지역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낼 때 민자당이 부산·경남에서,그리고 전국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민주계 중진으로서 솔선수범할 것임을 내비쳤다. ◎서울 송파을 맹형규 위원장/“호랑이 탄 느낌… 수습기자 정신으로 뛸것” 『호랑이등에 올라탔으니 쉬지않고 뛰는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틀전까지만 해도 SBS­TV 8시 뉴스 앵커로 일해오다 20일 민자당서울 송파을 지구당 조직책으로 전격 임명된 맹형규씨는 『오늘 아침에야 회사에 사표를 냈다』면서 이처럼 다부진 각오로 내년 총선에서의 「출사표」를 대신했다. 그는 『두달전 민자당측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망설여 오다 최근에야 결심을 하게 됐다』면서 『회사문제를 정리할 시간은 주기로 했었는 데 갑자기 언론보도에 터져나오는 바람에 신변정리가 말끔하지 못하게됐다』고 회사와 언론계 선후배에 미안함을 표시했다. 지역연고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순수한 서울 토박이』라고 소개한뒤 『고3짜리 아들 때문에 여의도 집에서 바로 이사갈 수는 없고 해서 일단 전세를 얻어 혼자서 지역에 매달리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지방선거 때 민자당이 서울지역에서 참패,불리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나름대로 방송을 통해 다져놓은 인지도와 참신성을 앞세워 노력하면 조금씩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결의를 다졌다.24년 언론계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는 『수습기자가 된 기분으로 열심히 뛰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충남 부여 이진삼 위원장/“「지역발전」 앞세워 JP와 한판승부 자신”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아성인 충남 부여지구당 조직책을 맡은 이진삼 전체육청소년부장관(58)은 『3가지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첫째는 부여가 너무 낙후돼 있어 군민들이 공허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사기를 돋우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둘째는 지역감정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셋째는 어려운 여건일 때 결단을 내려야 용장(용장)이며,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전리품이나 챙기지 않겠다는 것. 이전장관은 총선 경쟁상대인 JP(김총재)에 대해서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정치』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이전장관은 육사 15기로 8기인 JP의 직계후배이나,고교는 JP가 이웃한 공주고보를 다닌 반면 그는 부여고 출신이다. 그는 『지금 부여에서는 부여에 있는 고교 출신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는 불만 여론이 있다』고 말해,선거전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보사 테러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미국으로 가 UCLA 객원교수로 있다 지난달 귀국한 그는 『그동안에도 부여의 친지들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라며 남몰래 준비를 해주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경기 광명갑 이덕화 위원장/“선배 조언 받아 공부하는 정치인 되겠다” 민자당 경기 광명갑지구당의 조직책으로 임명된 탤런트 이덕화씨(43)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김영삼후보의 연예인 지원팀을 이끌었던 이씨는 『솔직히 어른(김대통령)곁에서 조금 도왔지만 이런데(조직책 자리)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옆에서만 밀지 말고 지구당 조직책으로 앞장서서 끌어가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는 한 1년전쯤 전부터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25년 이상 했던 일을 접어두고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데다,가족들도 결정을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동안 줄곧 서울 강북구쪽의 조직책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그는 『그 곳에서 오래살아 거론됐던 것 같지만 최근에는 떠났다』면서 『광명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열심히 해보겠다는 생각』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먼저 정치 선배들의 조언을 많이 받겠다』면서 『나이가 어린 만큼 다른 연예인 출신 정치인 선배들이 미비했던 부분을 메우는 역할을 하겠다』고 각오를 피력했다.
  • 홍콩의 마지막 입법선거/왕가영 홍콩중문대 아태연연구원(해외논단)

    ◎정치대결 넘어 홍콩 민주발전에 기여/시민들 97년 주권이양 우려… 대중 비판의식 표출 왕가영 홍콩중문대학 홍콩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은 홍콩입법국(의회)선거결과를 분석한 글을 19일자 홍콩 연합보에 기고했다.다음은 기고문 내용. 영국식민지아래서 홍콩의 마지막 입법선거가 어제 완료됐다.이번 선거는 중국과 영국정부의 홍콩에 대한 정치개혁 협상이 실패한뒤 중국정부의 반대아래서 홍콩의 영국정부 단독결정으로 치러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선거를 둘러싸고 중국과(홍콩의)영국정부사이의 마찰·갈등은 물론 「민주파」와 「친중파」를 둘러싼 2대 정치세력사이의 공방및 정치적 긴장이 조성됐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현지는 물론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97년까지 정치적 합의와 정치발전전망,각종 모순과 문제를 담고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의 영국정부는 이런 선거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광고및 대민선거등에 적잖은 돈을 투입하는등 물량작전을 펼쳤다.반면 이 선거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선거를 부정하면서도 「친중파」를 통한 선거참여에는 적극적인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홍콩에서 중국정부를 대표하는 신화사는 선거당일에도 중국정부는 97년 7월1일,입법의회에 대한 해산방침엔 변함없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이번 선거의 과도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그러면서도 「친중세력」의 참여극대화에 노력했다.97년 홍콩을 접수할때 「친중파」를 통한 각 권력기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정치적 우위를 장악하려는 계산이었다. 이번 선거의 투표자는 92만여명으로 이전 투표자수보다 17만여명이나 많다(투표율 35.79%).투표자 수로 따질때 홍콩투표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투표한 것이 된다.구체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각종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무형의 압력속에서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가한 것은 홍콩시민들의 민주·자치선거에 대한 긍정과 정치적 성숙성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합의는 미래 정치발전과 판도에 대한 충격성에 있다.이번 선거에서의 「민주파」의 승리로앞으로 홍콩입법의회에서 민주적 성향과 탈중국적인 자주성향의 색채가 짙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민주파」는 친중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에 대한 강한 대항능력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진것은 「민주파」의 방대한 동원능력과 민간의 지지다.반대로 친중파인 민건련의 김옥성주석등 핵심인물들이 참패,낙선한 것은 일반 홍콩시민들의 중국정부에 대한 항의와 비판의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지난 89년).천안문 6·4사태가 지난지 오래지만 이에대한 홍콩시민들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은듯 하다. 97년 주권이양에 대한 홍콩인들의 일종의 감정이 이번 선거에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민주파」를 선출하는 것이 「친중파」를 뽑는것보다 더 주권이양의 과도기에서 더 홍콩시민들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다른 각도에서 볼때 이번 선거에서 「친중 인사」들의 낙선으로 97년 주권회복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정부의 정책은 더 보수화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현행 선거방식과 제도에 대한 변화도 예상된다.현행 소선구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1등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제도를 대선구제,또는 중선거구제로 변화시켜 「민주파」가 우세를 나타내지 못하는 방식으로 희석시켜 나갈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친중적인 민건련의 핵심인사들은 낙선했지만 그들의 지지율 자체는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이 점에서 이들 역시 이미 홍콩시민들의 민의에 대한 기초를 확보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친중인사들의 주요 패배 요인 가운데는 중국과 영국의 홍콩정부사이의 차이및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앞으로 중·영관계가 개선되고 양쪽의 차이가 줄어든다면 이들의 활동공간도 커질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직접 선거구민들을 대면하고 선거운동을 한 친중인사들의 행동은 대단히 용기있는 것으로 평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들이 승패로서 영웅을 논하지 않고 민주파와 친중파라는 이원대립의 정치대립을 넘어서서 말한다면 이들은 모두 다 홍콩 민주정치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즉 이러한 선거를 치러 냈다는 과정 자체가 민주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 이들에게서 「민주파」와 「친중파」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면 누가 정말 민주정치의 실천자인지 분별해 내기가 쉽지는 않다.이것을 확인하는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것으로 생각된다.
  • 홍콩 의회선거/민주세력 압승/직선 20석중 16석 차지

    ◎친중계는 2석/중,주권 환수땐 해산 【홍콩 외신 종합】 영국 통치하에서 마지막으로 실시된 17일 홍콩 입법국(의회) 입법위원 직접선거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를 지지하는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고 중국의 지지를 받는 「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이 참패한 것으로 개표 결과 밝혀졌다.그러나 민주화계열 후보들은 직능대표를 포함한 60명 전체 입법위원의 과반수 획득에는 실패했다. 18일 개표완료된 이번 입법위원 선거에서 지역구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입법위원 20개 의석가운데 민주당 12석 등 민주화계열 후보가 16석을 확보한 반면 「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의 지도자인 창 욕 싱등의 후보가 패배하는 등 2석확보에 그쳤고 나머지 2석은 무소속후보들에게 돌아갔다.이같은 선거결과는 홍콩반환을 1년9개월 앞둔 중국에는 큰 좌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 패튼 총독의 민주개혁안에 따라 입법위원 60명중 30명을 뽑는 직능대표 선거와 선거위원회 관리들이 간접투표로 10명을 뽑는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11석을 친중국계인 「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이 4석을 각각 추가로 확보했다. 이로써 총의석은 민주당 23석,민주당 지지성향후보 6석,「홍콩발전을 위한 민주동맹」 6석,친자본가 성향의 자유당 10석,군소정당및 무소속 15석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선거당일인 17일에도 패튼 총독이 중국의 승인을 받지않고 민주개혁안을 도입해 이번 선거를 실시했기 때문에 97년 7월1일 주권을 돌려받게되면 곧바로 입법국을 해산할 것이라고 거듭 선언했다.
  • 홍콩 오늘 「영령 마지막 총선」/친중계­민주세력 대결 큰 관심

    ◎「반환」뒤 체제·영중관계 변수될듯/“2년뒤 해산될것”… 유권자들 냉랭 97년 홍콩의 중국에 대한 반환을 앞두고 홍콩이 친자본주의 민주세력으로 남을 것이냐,친중국 세력으로 변할 것이냐를 가늠할 영국 통치 아래 최후의 홍콩 입법국(의회) 선거가 17일 실시된다. 이번 선거에는 17개 정파와 노동단체 등에서 모두 1백38명이 출마,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입법국의 정책 결정 권한이 워낙 미미한데다 앞서 중국이 97년 홍콩 반환 이후 입법국 해산 방침을 결정한 바 있어 이번 선거에 대한 홍콩 유권자들의 관심은 극히 저조하다.선거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예상투표율이 40%를 밑돌았으며 투표할 정당및 후보를 선택하지 못한 부동층이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결과는 2년 조금 못남은 홍콩 반환과 관련,앞으로 홍콩의 장래와 향후 전개될 영·중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과 중국은 이번 선거를 둘러싸고 홍콩 반환 이후 중국의 홍콩 통치 기능 마비 여부를놓고 대립해 왔는데 끝내 결론이 나지 않자 중국 전인대는 홍콩 반환 즉시 입법국을 해산한다는 결의안까지 전격 통과시켰다.이같은 대립은 민주세력과 친중국세력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이번 선거에서도 최대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지난 91년 최초로 18명의 의원을 직선할 때 무소속 3명을 제외한 15석을 휩쓸어 홍콩의 민주세력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25명의 후보를 내세워 친중국 세력의 득세에 맞서고 있다.민주당은 홍콩 반환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중국이 홍콩에 대해 「1국2체제」를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91년 선거 참패 이후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은 민주건항련맹,공련회 등 친중국 세력들은 중국관영 신화통신 홍콩분사와 중국은행 등의 지원을 업고 각각 14명,7명씩 후보를 내세웠다.또 홍콩 인수를 앞두고 중국이 설치한 예비공작위원회 위원 10명,전인대 홍콩대표 1명,정협대표 5명,중국이 임명한 항사고문 27명 등 친중국계 인사들도 대거 출마했다. 선거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민주세력이 다수당을고수할 것이나 친중국 세력이 약진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91년 선거에서의 민주세력 압승은 「천안문사태」의 영향에 따른 어부지리였을 뿐 홍콩 반환을 앞둔 현 시점에서 민주세력이 흔들리는 홍콩인들의 민심을 다잡아 또다시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여론조사는 민주세력이 근소한 차로 앞설 것으로 전망됐으나 양쪽 모두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화(박화진 칼럼)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오늘의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민주정치의 발상지다.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영국의 역사적 경험은 민주정치란 쟁취와 정착의 시기를 성공적으로 거칠때 비로소 본궤도에 오른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영국의 경우 1600년대의 명예혁명과 권리장전 등은 군주의 권위와 독재에 도전한 저항과 투쟁의 시기라 할 수 있다.그러나 민주주의쟁취,곧 민주화는 쟁취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투쟁시기를 능가하는 피와 땀과 눈물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영국의 경우 1800년대의 선거부정·부패 척결의 시기가 바로 그러한 민주주의정착과 완성을 위한 노력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쟁취 투쟁기의 적이 군주의 권위와 독재라면 정착과 완성기의 그것은 정치적 부정·부패 및 비리라 할 수 있다.영국이 만연된 정치와 선거부정부패 척결에 나선 것은 1883년 포괄적 「부패 및 위법행위방지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범법자 처벌강화,선거권 및 피선거권 박탈,연좌제실시,선거비용의 철저한관리 및 제한 등의 내용이었다.글래드스턴총리의 강력한 개혁의지와 철저하고도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깨끗하고 공명한 선진민주정치의 기틀이 잡힐 수 있었다. 기간은 짧지만 우리의 상황도 비슷한 과정을 밟고있다고 할 수 있다.김영삼대통령은 한국정치민주화투쟁의 화신이다.그리고 온갖 고통과 희생의 투쟁끝에 마침내 그것을 쟁취했으며 꽃피우고있다.누가 뭐라해도 오늘의 우리정치는 민주화의 절정기를 누리고있다고 할 수 있다.그 민주화의 만개와 정착발전을 위한 노력은 김대통령과 정부가 다해야할 가장 중요한 역사적 소임이자 사명의 하나라 할 수 있다.그것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치의 부정부패와 비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부정부패 및 비리의 척결은 민주화와 민주정치의 정착발전 및 성공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필수과정이라 할 수 있다.한국민주화투쟁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김대통령과 문민정부가 취임과 동시에 제일 먼저 부정부패 및 비리의 척결부터 시작한 것은 당연한순서였다.지나간 임기전반을 정부사회경제일반의 부정부패 및 비리척결에 바친 김대통령이 임기후반을 시작하면서 정치적 부정부패 및 비리의 척결에 나서려하고 있는 것 또한 당연하고도 필요한 귀결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문민정부 출범후 영국의 경험을 많이살린 엄격한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 새로운 정치개혁법이 마련된 바 있다.드러난 결함을 보완하면서 엄정하고 철저하게 집행만 하면 깨끗하고 공명한 선진민주정치의 정착과 발전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6·27지방선거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선거였다.그것은 여당의 참패로 끝났지만 대통령과 정부의 가장 큰 승리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관권개입이 배제되고 여당의 메리트가 포기된 사상초유의 공명선거였기 때문이다. 그 성공을 유감스럽게도 각 정당,정치인,후보자들의 구태의연한 부정부패 및 비리불감증이 오염시키고 있음을 최근의 검찰수사결과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자명하다.엄정하고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와 척결을 통해 깨끗하고 공명한 선진민주정치 정착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한국 1차전 참패/중국에 1승 6패/한·중 바둑

    한국이 한·중바둑대항전 1차전에서 1승6패로 졌다. 한국은 13일 중국 상해에서 벌어진 제2회 한·중바둑대항전에서 이창호 7단이 중국의 유소광 9단에게 반집승을 거뒀을 뿐 국제전에 강한 조훈현 9단과 유창혁 6단이 마요춘 9단과 조대원 9단에게 각각 흑3집반·백반집 차로 패했다.
  • 일 연정 대폭 개각/관방 노사카·건설상 모리 임명

    ◎핵심각료 3명 제외 17명 교체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가 8일 개각을 단행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각료 20명 가운데 17명을 새로 임명하는 등 수적으로는 대폭 개각을 단행했지만 관심을 모아온 외상과 대장상에 고노 요헤이 외상(하야양평 자민당총재)과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신당사키가케대표)를 유임시킴으로써 연립정권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날 개각에서는 또 현행 내각과 마찬가지로 자민당 13,사회당 5,신당사키가케 2의 배분비율이 유지됐다. 오는 9월로 예상되고 있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고노외상에 맞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도 유임됐다. 이날 개각에서는 모리 요시로(삼희랑)자민당 간사장은 건설상에 임명됐으며 관방장관에는 무라야마총리의 측근인 노사카 고켄(야판호현)건설상이 기용됐다. 또 경제기획청장관에는 민간경제인인 다이와종합연구소 이사장인 미야자키 이사무(궁기용)씨가 기용됐다.그는 신당사키가케의 몫으로 간주됐다. 한편 모리간사장의입각으로 공석이 된 자민당 간사장에는 총재선거에서 고노외상을 지원하는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전정조 회장이 기용됐다. 이날 개각은 17명이 새로 임명되고 입각경험이 없는 13명이 입각하는 등 대폭 개편의 의미를 살리는 면도 있으나 선거패배 책임 및 자민당 총재선거와 관련,초점이 돼 온 외상 대장상 통산상등 주요 각료직이 유임됨으로써 부분개각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개각과정에서 3당간 이해가 엇갈림으로써 정권기반이 취약해지는 한편 총리의 우유부단한 결정에 대해 자민당등으로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정국운영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일 개각배경과 전망/수적으로는 「대폭」 내용에선 「부분」/분위기 쇄신 못하고 3당 「나눠먹기」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내각이 8일 「대폭」 개편됐다.이날 개편은 수적으로는 대폭이지만 내용면에서는 부분개각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개각의 폭을 보면 17명이 새로 임명됐으며 입각경험이 없는 13명을 기용,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내용면에서 보면 무라야마내각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주요 포스트,즉 총리 외상 대장상 통산상 등은 모두 유임됐다.바꿔 말해서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부품만 대폭 교체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23일 참의원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참패한 뒤 내각총사퇴나 중의원해산등을 대신해 내각의 대폭개편으로 심기일전의 분위기 쇄신을 꾀하겠다던 당초의 의미가 충분히 살지 못한 개각이었다. 개각의 초점은 자민당 총재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과 신당사키가케의 대표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장상의 거취였다.다케무라대장상은 선거패배등의 책임을 놓고 지난달 이미 당대표 사의를 표명했다가 철회했다.고노 외상은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놓고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 지지파의 거센 도전에 맞서기 위해 외상을 내놓고 「무임소 국무위원」을 맡아 총재선거에 전념하려 했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개각에 미온적이었다가 대폭 개편을 주장하는 고노외상의 주장에 따라 대폭개각에 합의했지만 개편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폭 개각에 이어 당인사까지 행함으로써 총재선거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고노외상과 총재선거후 개각을 주장하는 하시모토파 사이에서 어느 쪽도 편을 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또 다케무라 대장상을 교체할 경우 선거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총리에게도 따가운 눈길이 쏠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무라야마총리는 먼저 다케무라 대장상을,다음에는 고노외상을 각각 제자리에 주저앉히는데 주력했다.또 고노 외상이 그만두면 자신도 통산상을 그만두겠다는 하시모토 통산상을 설득했다.결국 8일까지 개각의 초점이 되는 주요 각료직 3인 모두가 유임으로 결정됐다.
  • 주한미 대사관 무관보고서(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0)

    ◎북,남침 보름전 남·북총선 제의/조국전선 요원 남파… 각계지도층 시도/“국회통합” 등 위장 평화공세… 전쟁준비 숨겨 북한정권은 대한민국 제2대국회의원 선거인 5·30총선이 끝난 직후에도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을 내세워 남북총선을 제의하는 등 한국의 혼란을 부추겼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19 50년 6월16일자 주한 미대사관 무관들의 주간보고서 조인트위카(JOINTWEEKA)에 따르면 이를 위해 북한은 조국전선 요원들을 남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국전선이 남한으로 보낸 요원은 서기국 조직부장 김태홍·이인규와 조국전선 신문기자 김재창.조인트위카는 19 50년 6월10일 38선 경계의 여현에 도착한 이들은 8월 5∼8일 사이에 남북총선을 실시하고 8월 15일 최고입법기구를 창설하자는 조국전선 선전선동물을 휴대 했다고 기록했다.이들은 5·30총선을 참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유엔한국위원단을 여현에서 만나 남북총선거에 의한 최고입법기구 설치를 주장하는 전단을 전달했다. 조인트위카는 김태홍일행이 한수를 더 떠서 남한의 여러 정당및 사회단체 인사를 만난다는 이유로 부득부득 남행을 강행 했다고 밝혔다.그런데 이들은 38선을 넘자마자 한국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것이다.북한은 이 사건에 이어 6월 19일 자신들의 최고회의 정령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와 최고인민회의가 단일 입법기관으로 연합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공화국을 수립할 것을 제의 했다. 북한정권의 이같은 제의는 진정한 평화통일의 의지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이 제안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 집권층을 대화의 상대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실현성이 희박 했던 것이다.특히 일련의 제안들이 나온 6월 25일에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평화의 제스처는 전쟁을 호도하기 위한 기만이었다고 할수 있다. ◎2대국회와 정계재편/신진들 대거 진출… 여소야대 정치구도 형성/지지기반 잃은 이승만… 새 정당 창당 서둘러 1950년 5·30선거를 통해 구성된 2대국회는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초라한 피란국회의 인상이 짙게 남아있다.6월19일 개원한지불과 1주일도 채 안돼 한국전쟁을 만난 2대국회는 27일 새벽 긴급회의를 끝으로 서울을 떠났다.9.28수복과 더불어 서울에 잠시 들렀지만 환도는 19 53년 8월16일에 가서 이루어 졌다. ○보수 기득권세력 참패 그러나 제2대 국회는 한국 정당정치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우선 제헌국회에서 보수세력이 철저하게 기득권을 이용해 세력을 굳혔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2대 국회에서는 이들 기존 세력들이 대거 탈락하는 대신 그 반대세력인 신진과 소장파등 무소속이 압승을 거두어 판도의 대변화를 일찍 예고했다.이로 말미암아 2대국회는 보수파 세력간의 각축장이 아니라 본격적인 여·야의 대립양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마련됐다.이는 실질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지지기반 약화를 가져온 것으로 이대통령은 이에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2대 국회를 낳은 5·30선거를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5·30선거는 19 48년 제헌국회를 낳았던 5·10선거와는 크게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외부 개입없이 한국인들만에의해 실시된 5·30선거는 보수세력들만이 참여했던 5·10선거와는 사뭇 달랐다.그래서 남북 협상파와 중간파들까지 모두 끼어들었다.이 5·30선거야말로 표면적인 활동을 할 수 없던 공산주의자들을 빼놓고 당시 한국의 전 정치세력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총선이라 할 수 있다. ○남북협상파 총선 참여 5·30선거에서는 모두 2백10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다.총선에는 여당인 대한국민당(국민당) 1백65명,야당인 민주국민당(민국당)의 1백54명을 포함해 39개 정당 사회단체에서 모두 2천2백9명이 입후보 했다.이 가운데 10명 이내의 후보자를 낸 정당 사회단체가 30개,1명 밖에 못 낸 정당 사회단체도 무려 18개나 됐다.특히 1천5백13명이라는 무소속 입후보자는 의원 총수의 7.2배나 됐다.이처럼 5·30선거에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참여한 데는 대한민국의 유엔 승인과 제헌국회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정치적 역량을 키워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제헌국회에 비해 입후보의 난립상을 보여준 5·30선거는 예상대로 여권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국민당 24명,국민회 14명,대한청년단 10명,일민구락부 3명,대한노총 3명,여자국민당 1명,대한부인회 1명,중앙불교위원회 1명등 여권에서 57명이 겨우 당선했다.야당은 민국당 24명,사회당 2명,민족자주연맹 1명등 27명이었지만 의원 정원의 3분의 2를 차지한 무소속 1백26명을 일단 야권으로 보았을때 여소야대가 분명했다.국회가 개원하던 6월19일 의장선거에서 5·30선거가 철저한 야권의 압승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날 의장선거 1차투표 결과는 민국당의 신익희 96표,사회당의 조소앙 48표,무소속의 오하영 46표,국민회의 이갑성 11표,무소속 안재홍 3표순으로 집계됐다.이승만 정부가 지지하던 무소속 오하영은 46표밖에 못얻어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2대국회에서의 야당 우세는 이날 2차투표에서 더욱 두드러졌다.야당세력과 무소속의 대부분이 민국당으로 쏠려 결국 1백9표를 얻은 신익희가 의장으로 선출됐다.이는 정치갈등을 드러낸 제1라운드의 게임이었다. 민국당은 한민당과 신익희등 대한국민당의 일부의원,그리고 대동청년단등 3개 세력이 합동해 19 49년 2월20일 창당한 정당이다.민국당은 상해 임시정부에도 반대하고 국내 좌익세력과도 척을 졌던 한민당이 주축을 이루었다.한민당은 해방공간에서 남북의 대치상황이란 특수상황에 편승해 독립적 세력이었던 이승만과 가깝게 지냈다.일제하 기득권층이 대부분이었던 이들은 반공에 치우쳤던 이승만을 도와 정부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이승만의 입장에서 볼때 한민당이 가장 이상적인 정당은 아니었다. 한민당이 제헌국회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개각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사실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한민당측은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과의 결별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이승만 노선에 반대하던 세력과의 연합으로 손을 잡아 만들어낸 정당이 바로 민국당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직선 개헌 준비 민국당은 창당직후부터 이승만의 힘을 약화시키는 제도적 장치인 내각책임제 개헌을 강력하게 들고 나왔다.민국당의 내각제 개헌주장은 제헌국회에서 이승만과 그를 지지하는 국민당등 여권세력의 결사적인 반대로 부결됐다.하지만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이 제출한 대통령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안과 국회가 낸 내각책임제 개헌의 대립에서 발췌개헌안이 통과돼 일단락될 때까지 계속됐다. 이승만은 민국당의 성격이 이처럼 자신에 대한 반대와 퇴진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잘 알고 있었다.이승만은 5·30선거에서 민국당측이 실질적으로 원내를 장악하게 되자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창당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창당과정에서는 지지세력을 모으는데 이승만이 직접 나섰다.물론 여기에는 이승만의 지지세력이었던 여권이 만족할 만한 역할을 해내지 못한 탓도 있었다. ○자유당 창당에 박차 5·30선거후 정당의 이합집산을 계속했던 2대국회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민국당을 중심으로한 야권의 결집과 이승만 지지세력의 연합등 양분상을 나타냈다.야권이 이승만 퇴진이란 기치아래 민국당을 주축으로 굳건히 뭉친반면 여당은 상대적으로 약했다.이승만 대통령 쪽의 민정동지회와 국민구락부의 연합인 신정동지회,그리고 공화구락부의 통합 교섭단체인 공화민정회는 전체의원수의 과반수인 94명이 포진했다.그럼에도 민국당에 비해 오합지졸의 취약성을 띨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공화민정회는 열세를 면하기 위해 신당 창당을 서둘렀다.19 51년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이승만대통령이 드디어 신당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창당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그로부터 4개월후 피란지 국회의사당에서 장차 독재집권의 기반이 될 자유당 결당대회가 열렸고 중앙위원회 의장에 이승만,부의장에 이갑성과 김동성이 선출되었다.
  • “방치땐 모두 불리” 미·일 본격 개입/달러화 급등의 배경

    ◎53년 이후 최악 실업률… 투자 희생 시급­일/차·항공협상 타결… 내년 대선 악재 해소­미 엔화의 환율이 8월들어 급반전되고 있다.이제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은 달러가 아니라 엔화다.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89엔대를 기록하더니 뉴욕시장을 거쳐 3일 도쿄시장으로 돌아온 외환시세는 개장초 91엔대로 뚝 떨어졌다. 「엔고 달러저」에서 「엔저 달러고」로 흐름이 바뀐 것은 올해 초 1백엔대에서 80엔대 초반으로 급등한지 4개월여만으로 일본 경제가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미국의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당초 일본이 무역흑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도 좀처럼 양보하지 않으려는 일본을 응징하기 위해 엔고현상을 방조해 왔다. 그러나 거품경제후 침체됐다가 약간 회복기미를 보인던 일본경제는 15%를 웃도는 엔고의 강펀치에 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지난 6월 일본의 실업률은 3.2%까지 치솟았다.5월보다 0.1% 악화된 수준으로 지난 53년 이후 최악의 실업률이었다.엔고현상으로 투자 마인드가 얼어붙은데다 해외로 빠져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 기업의 구인 움직임도 별로 활발하지 않아 실업률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는 형편이었다.또 6월중 소비자물가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2%포인트 하락,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빠져드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미국 경제가 지난 5,6월 잇따라 감속되고 있는 터여서 미국정부내에서는 더 이상 일본경제의 침체와 일본 금융시스템의 흔들림을 방치할 경우 미국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견해가 강화돼 왔다.내년은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미국으로서는 지난 7월7일 일본과 자동차협상을,7월 말에는 항공운수협상도 마무리지었다.양대 무역현안이 그런대로 마무리되었던 점도 더 이상 일본의 팔을 비틀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이에 따라 지난 7월초부터 조금씩 엔화 환율이 80엔대 중후반으로 움직여 왔다.미국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 회의등에서 일본정부에 근본적인 경기대책 및 해외투자 규제의 완화등을 재차 요구했고 일본정부가 이를 받아 2일 9개 항목에 걸친 해외투융자 완화책을 발표하자 7월7일 이후의 협조개입을 강화해 엔화 급락을 유도한 것이다. 일본정부로서는 경제가 침체국면을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최근 참의원선거에서 참패하는 등 곤경을 겪어 왔다.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독일도 마르크 고 시정을 위해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달러화가 전세계적으로 오르게 될 경우 엔화는 90엔대에서 정착될 것이라는 게 이곳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 미의원들 당적교체의 이유/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그동안 잠잠하던 민주당의원들의 당적 바꾸기 움직임이 남부주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다시 꿈틀대고 있어 올 워싱턴의 여름정국은 조용하지 않을성 싶다. 지난 연초 당지도부의 지도노선에 불만을 표출한 뒤 민주당의원 선거위원회 위원직을 떠났던 미시시피주 출신 마이크 파커 하원의원이 지난주 당을 떠나는 마지막 수순인 정치자금 반납까지 마침으로써 탈당이 기정사실화 됐다. 파커의원은 당으로부터 받은 1만6천달러를 반납하고 당과의 사실상 결별을 시사함으로써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참패 이래 당을 떠난 5번째 의원이 될 것임이 확실해 졌다.선거직후 앨라배마주 리처드 셀비 상원의원을 비롯,콜로라도주 벤 캠프벨 상원의원,조지아주 나단 딜,텍사스주 그레그 로글린 하원의원 등이 공화당으로 옮겼다. 파커의원은 당과의 결별 이유로 『의회내에서 지역구민을 위한 독자적인 투표권 행사를 위해』라고 내세우고 있다.그러나 미시시피주 두명의 상원의원과 주지사 등이 모두 공화당 출신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지적도 있다.의사당 일각에서는 파커 의원에 뒤이어 루이지애나주의 빌리 타우진,지미 헤이스 두 하원의원도 곧 탈당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각 주의회 의원을 비롯한 주나 카운티 단위의 선출직 기관장들의 당적바꿈으로 클린턴 행정부 출범 이래 1백7명의 선출직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으며 지난해 선거 이후에만 67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이로 인해 펜실베이니아주주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주의회는 다수당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이같은 탈당 사태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우려는 표명하면서도 적극 만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지난 6월 4선의원인 로글린 의원이 23명의 선출직 당원들을 이끌고 대거 탈당할 때도 하원 지도자인 리처드 게파트 의원은 그에게 깨끗하게 의원직을 사임하고 공화당으로 출마,유권자들의 심판을 새로 받을 것을 촉구한 정도였다. 「소신」을 내세워 가끔 당의 방침과 어긋나는 투표를 하기도 한다는 미의원들.그러나 그들의 당적 바꾸기가 진짜 소신 때문인지 아니면 실리를 찾기 위해서인지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떨칠 수 없다.
  • 4·19∼6·3세대 3백명/3김시대 청산 주장

    이금홍 한국학생운동자협의회회장 등 4·19및 6·3세대 인사 3백명은 29일 서울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시국선언대회를 갖고 『김대중 가칭 새정치국민회의 상임고문의 신당창당을 반대하며 김고문의 정계복귀에 따른 3김시대를 청산,세대교체를 실현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치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권욕에 어두워 지역분할에만 몰두할 뿐 국민의 고통은 외면하고 있다』고 김고문과 김종필자민련총재를 비난한뒤 『지역할거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당정치와 국민분열및 국가체제의 붕괴를 초래하는 망국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두금씨의 자숙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김영삼대통령에게도 『지방선거의 참패를 각성과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한뒤 『12·12및 5·18사건은 명백한 군사쿠데타이자 민주주의를 매장하려는 대역반란인 만큼 관련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8·15때 대북 중대제의”/김 대통령 CNN회견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에 매우 만족하며 미국은 한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채 북한과의 관계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28일 출국 직전 미국 CNN방송의 「더 월드 투데이」프로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광복50주년을 맞는 오는 8월15일 남북한 관계개선을 위한 획기적이고 중대한 제의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또 북한에 대한 한국의 쌀 지원이 남북한 상호신뢰 관계 회복의 계기를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희망하고 북한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북한 내에서 김정일을 누를만한 권력을 가진 인물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최근 민자당의 지방선거 참패와 관련,대통령으로서의 지위나 권위가 약화되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이 약화됐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고 『그 이유는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이 권력정치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풀뿌리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4·19­6·3세대 시국선언의 함축

    ◎“세대교체로 지역주의 막자” 한목소리/”사당정치로 불신 조장” 정치행태 맹정/전국민 참여 「개혁 국민연합」 구성 촉구 이금홍 한국학생운동자협의회장 등 4·19및 6·3세대 인사 3백여명이 29일 김대중 상임고문의 신당 창당과 「3김정치」의 재현을 반대한다는 시국선언문을 냈다. 지난 26일 30대 각계인사 1백50명이 김고문의 정계복귀를 반대한다는 연대성명을 낸지 3일만에 다시 「반(반)신당」의 선언문이 발표된 것이다. 이날 서울 소피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시국선언대회에서 이들은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구태의연한 사당정치로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국민 배신적 행위를 규탄한다』고 김고문과 김종필자민련총재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들은 김고문의 신당 창당과 관련,『권력욕에 사로잡혀 1인추종의 사당정치를 부활시키고 김종필 총재와 손을 맞잡아 지역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국가체제의 붕괴와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규정하고 『두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한 망국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이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를 계속해선 안된다』고 김고문의 정계복귀를 비난한 뒤 『추악한 정치모리배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일이 없도록 마지막 충고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종필총재에 대해 『유신독재의 본당인 사람에게는 충고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힐난한 뒤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손바닥만한 지역분할에 몰두할 뿐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며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분단과 냉전을 종식하고 독재의 잔재를 없애면서 통일시대를 여는 일이 대통령 한사람만의 힘으로 이뤄지겠느냐』고 물은 뒤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참패를 각성과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아 21세기와 국가개혁을 위해 전국민이 참여하는 「개혁을 위한 국민대연합」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을병 전성균관대총장은 「지역할거주의 이대로 둘수 없다」는 강연에서 『한 정당이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를독차지할 때 민주주의는 발붙일 곳이 없다』며 『지역갈등과 3김시대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신진세력들이 정계에 진입,새로운 활로를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에는 이금홍 회장을 비롯,이기택 민주당총재,남호명 4·19회회장,조일묵 한국재활협회장,강효식 인제대교수,김삼연 애국선열녹화사업회장 등 4·19때 학생회간부 출신들이 참석했다.
  • 호남일대 의병 규합 항일무장투쟁/이달의 독립운동가/전수용 선생

    ◎대동창의단 조직… 일군과 70여차례 교전/31세에 붙잡혀 순국하자 부인도 따라 자결 『어차피 한번 죽고 마는 것이니 의병에 충실하다 죽어서 끝내 좋은 이름을 차지하는 것만 하겠느냐』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한 해산 전수용 선생(1879년10월18일∼1910년7월18일)이 남긴 「진중일기」의 한 대목이다. 선생은 이 우국시에 표현된 그대로 31년 짧은 생애를 항일운동의 제단에 기꺼이 불사른 애국지사였다. 전북 임실 출신인 선생은 24세 때인 1903년 면암 최익현등 호남선비들이 개최한 시국강연회에 참석,이들의 우국충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생은 얼마뒤 최익현이 을사조약체결에 반대,조정에 창의토전소를 올리고 호남 유림을 규합해 창의의 기치를 높이 들자 궐기장소인 태인으로 찾아갔으나 진영이 빈약한 데 실망,일단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붙잡혀 대마도로 끌려가 순국한 최익현의 창의는 비록 실패로 끝맺음했지만 항일운동의 선봉으로서 국민 사이에 항일의식을 용솟음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선생은 최익현의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곳곳에서 의병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1908년 전북 임실에서 결성된 창의동맹단에서 참모로 처음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창의동맹당은 진안과 임실을 중심으로 전주·장수·무주·남원·순창·구례·곡성등 호남 동부지역 9개군을 활동지역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은 이 지역에서 경찰서·헌병분견소·수비대 등을 습격하고 일군 토벌대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1908년3월 남원 사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데 이어 4월 진안과 임실의 경계인 대응전투에서 다시 참패,활동이 위축되자 선생은 다른 의병부대를 찾아나섰다. 선생은 광주에 머물던중 황국시위대 참위 출신인 정원집이 수십명의 병사와 함께 찾아와 의병대장을 맡을 것을 요청함에 따라 대동창의단을 조직하게 됐다. 『왜노는 우리나라 신민의 불구대천의 원수다.임진란의 화 또한 그렇거니와 을미 시국모는 물론이고 우리 종사를 망치고 인류를 모두 죽일 것이니 누가 앉아서 그들의 칼날에 죽음을 청할 것이오.힘써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자』 선생은 이같은 창의문을 통해 의병을 일으킨 동기를 공포하고 일군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대한제국군 출신·유생·농민·포수등 5백여명으로 결성된 대동창의단은 1908년8월부터 10여개월동안 맹활약,일본군과 70여차례 교전을 벌였다. 선생은 부대를 1백∼1백50여명으로 쪼개 야간에 이동하면서 투쟁하는 게릴라식 전법을 도입했다. 이들은 일군 헌병분견소나 경찰서·수비대의 움직임을 은밀히 알아낸 뒤 매복했다가 기습하는 작전으로 여러 차례 성과를 올렸다.이들은 한때 호남 서남부지역을 완전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이웃 의병부대와 꾸준히 연락을 취해 서로 위기에 빠질 때 도움을 주고받았으며 1908년 겨울 호남의병연합체인 호남동의단이 발족하자 대장에 임명됐다.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로 떠오른 선생은 부대를 10개로 나눠 전남·북일대에서 일본군과 투쟁을 벌이면서 친일파 징계등의 일도 펼쳤다. 한편 일제는 끊이지 않는 의병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전국 시·읍·군·면에 산재한 성벽을 파괴,의병활동의 거점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다. 또한 1만1천여명의 병력을 동원,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을 펼치고 1909년에는 일본본토에서 2개 여단을 파견,의병토벌에 돌입했다. 마침내 대한제국의 의병해산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1910년5월 세가 기울었음을 느끼고 부대장에서 물러나 시골로 몸을 숨기고 후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일제는 그러나 선생을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고 탐문에 나섰다. 선생은 남원 고래산에서 서당을 열고 어린이를 가르치던중 한 밀고자의 제보를 받고 달려온 일군에 붙잡혔다.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을 입었나.본래 세운 뜻이 틀려지니 한숨만 나오는구나』 일제에 붙잡히면서 이같은 우국시를 남긴 선생은 광주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으로 순국했다.선생이 순국하자 부인 김해 김씨는 집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결,선생의 절개와 부인의 지조는 충신열사의 사표로 의병활동사에서 길이 이름을 남기고 있다. 정부는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일정계/「보수양당」 개편 전망/참의원선거 여당패배 파장

    ◎신진당 등 야권 승세몰아 총선 강력요구/진보진영 위축… 보수강경 목소리 커질듯 지난해 6월 연립정권 출범이후 처음으로 23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선거가 연립여당의 참패와 통합야당인 신진당의 대약진으로 끝남에 따라 향후 연립여당 내부는 물론 전체적인 일본정치판도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등 연립 여3당은 전체 개선의석 1백26석 가운데 과반수를 간신히 넘는 65석을 차지하는 신승을 거두었다.큰 관심을 모았던 사회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유세기간중 장담했던 22석을 훨씬 밑도는 16석을 차지하는데 그쳤으며 자민당 역시 목표치인 50∼55석에 크게 못미치는 46석 확보에 그쳤다. 반면 지난해 12월 신생·공명·민사·일본신당등 9개 중도보수정파가 모여 결성한 통합야당인 신진당은 도쿄 등 대도시에서 강세를 보여 40석을 차지하는 대약진에 성공했다. 이같은 신진당의 급부상은 일본의 정치판도가 기존의 자민­사회당에 의한 「보수­혁신체제」로부터 자민­신진당의 이른바 「보수양당체제」로 개편될 것을 예고해주고 있다. 연립여당은 또한 향후 정국운영에 있어 적지않은 파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신진당이 선거승리의 여세를 몰아 중의원 해산,총선 실시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설 경우 무라야마 내각으로서는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연정 내부에서는 정국돌파를 위한 무라야마총리 사퇴 및 자민당 총리 옹립,현 연정하의 개각등 몇가지 해법들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그러나 여3당 대표들은 24일 연립여당의 의석수가 참의원 2백52석의 과반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일단 현 체제를 유지하되 민심쇄신을 위해 다음달초 일부 내각을 개편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따라서 이번 선거결과가 당장에 일본정국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그러나 지난 4월의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사회당의 퇴조가 확인됨으로써 일본내 진보진영의 목소리는 더욱 위축되고 대북관계 및 자위대·헌법문제등에 있어서 보수강경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일 정계 재편·총리 진퇴 갈림길/내일 참의원선거 전망

    ◎사회당 득표 따라 무라야마 재집권 결정/93년 연정수립후 첫 선거… 126명 선출 일본 참의원 선거가 23일 실시된다. 93년 중의원 선거로 자민당 단독정권이 무너지고 연립정권의 시대로 들어선 이후 처음 실시되는 선거다. 이번 선거는 일본정계의 재편과 맞물려 관심을 모아왔으나 막상 선거에 들어서서는 사회당이 얼마나 득표할지,그에따라 무라야먀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퇴진하게 될 것인지 여부로 의미가 축소돼 버렸다. 일본 정계의 재편과 진로탐색이라는 과제는 중의원 선거로 넘어가는 형국이다.이번 선거에서는 정책상의 뚜렷한 쟁점도 부각되지 못한 상태다. 참의원은 6년임기인 전체 2백52명 가운데 3년마다 절반씩 개선한다.이번 개선대상은 89년 당선된 1백26석이다.그 당시 사회당은 도이 다카코위원장(현 중의원의장)의 이른바 「마돈나 선풍」으로 일거에 약진,41석을 차지했다.자민당은 33석으로 참패했었다. 지난해 신진당 창당뒤 정당별 의석수는 자민당 개선 33석(비개선 61석),사회당 41석(22석),신진당 19석(16석),신당사키가케 1석(0석),공산당 5석(6석) 기타등이다. 이번 선거에서 제일 확실하게 전망되고 있는 것은 사회당이 크게 쇠퇴할 것이라는 점.사회당은 여론조사에서 역대 최저인 15석 전후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15석조차 못 건질 경우 무라야마총리가 계속 집권할 수 있겠느냐는 점.연립여당 특히 자민당안에서는 당장 대안이 없다는 점을 들어 연립여당 전체로 과반수인 64석을 넘으면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사회당이 15석 이하를 얻게 될 경우 「무라야마 이후의 내각」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게 될 것이다.또 사회당안에서는 구보 와타루 서기장의 퇴진등이 모색되면서 다시 한번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는 또 지난 4월 지방선거의 무당파 돌풍이 재현될 것이냐는 점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기성정치권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선거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이 80년이후 처음으로 50%이하로 떨어졌다.그러나 무소속의 난립과 정당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무소속 돌풍보다는 유권자의 투표기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선거가 지나면 다음은 중의원 선거다.여야가 모두 중의원 선거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 선뜻 총선거를 치르려 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일본 정계는 2년이상 표류하고 있는 데 대한 국민의 본격적인 심판을 앞둔 「정치의 계절」로 진입할 것이다.
  • 지금이 「국가적 위기」인가(사설)

    김대중씨가 끝내 2년7개월만에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공식선언했다.국민과의 정계은퇴약속을 뒤집고 대권도전을 위해 정통제일야당을 깨는 행태는 일반 국민들을 참담하게 한다. 대다수국민들이 그의 잇단 식언과 교언에 속고 우롱당해온 배신감과 아울러 이제는 무시 당하는 느낌까지 갖게됐다.그자신을 위해서나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씨는 정계복귀명분으로 「심각한 국가적 위기」와 「민주당의 혼란」을 들었으나 책임을 전가하는 궁색한 변명으로 설득력이 없다.심각한 국가적 위기라면 먼저 국민들이 국가적 위기감을 느껴야 될 텐데 지금 헌정질서나 안보가 위태롭다든지 하는 위기감을 느끼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정부의 정통성문제 해소로 국민과의 대립이 없어 정치는 정상화되어 있다.따라서 김씨 논리는 국민대다수가 공감하는 위기상황이 실재하든 않든간에 자신이 위기라고 판단하면 위기이고 그것을 구실로 언제든지 약속을 뒤집을 상황이 된다는 억지다.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다고 해서 위기상황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해결책임은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현정치권의 몫이지 세번 출마한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을 낙선시킨 국민심판에 따라 은퇴한 김씨가 나서야 할 일은 아니다. ○채임전가의 궁색한 변명 지금의 문제는 있지도 않은 국가적 위기가 아니라 김씨가 만들고 있는 야당의 분열과 파괴라는 위기상황에 있다.그는 민주당의 혼란을 정계복귀의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지금까지 민주당을 조종하고 지역등권론으로 이기택체제를 흔들어 놓은것은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다.스스로 인책할 일이지 문책할 일이 아닌것이다. 또 민주당의 지도부가 책임을 지지않고,파벌주의와 금권매수의 우려로 전당대회소집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신당을 창당한다는 설명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지도부인책이나 당개혁,그의 정계 복귀도 민주당의 전당대회등 당내민주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당이 마음에 안 맞으면 깨어버리고 지역성을 기반으로 뜻대로 되는 사당(사당)을 만들겠다면 군림하는 자세다. 자신의 식언을 사과한 김씨의공식선언은 결국 스스로 믿지 못할 정치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셈이 되었다.그의 사과를 그대로 받아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오히려 그의 약속파기는 은퇴당시부터 의도했던 것이라는 의구심만 커질 것이다.정치의 도덕성과 신뢰를 파괴한 죄과와 책임은 중대하다.한 정치인이 거의 한세대에 걸쳐 세번의 실패에도 네번째 도전을 준비하기 위해 당을 네번이나 깨며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시대역행의 경우를 우리는 광복 50주년을 맞는 세계화의 시점에 경험하고 있다. ○노욕 버린 재고의 결단을 명분없는 복귀와 신당추진에 대한 언론이나 국민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을 강행하는 것은 비민주적인 자세로 비판을 면키 어렵다.70% 이상의 국민이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반대하고 심지어 자신의 지역기반인 광주의 신당찬성률이 57% 정도인 거부감에서 정계복귀와 신당창당을 밀고 나가서 정치발전과 역사발전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이런 낙인이 찍히고서는 대권후보나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우리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본다.김씨는 지금이라도 노욕을 버리고 정치재개를 철회,차세대에 넘기고 손을 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신과 분열,식언과 이합집산의 부끄럽고 부정적인 정치를 무리하게 밀고가려는 것은 지역감정의 정치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정치발전의 과제는 지역감정의 청산에 있으며 그것은 지역에서 시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후진적 정치의 청산을 위해서는 줄서기 정치인들의 맹종을 거부하는 직언의 용기도 필요하다.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대다수국민들이 지금 느끼는 지역감정,식언의 정치에 대한 거부와 반대의지를 다음 선거때까지 건망증없이 유지하여 표로 심판하는 것이다.
  • 야당도 겸허한 자세를(사설)

    지방선거 결과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따른 충격과 불안으로 국가적인 어려움이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이 보이고 있는 시국인식과 대응자세는 정말 실망스럽다.정부여당의 자성하는 모습과도 대조되는 모습은 독선과 오만의 자세로 보인다. 6·27선거의 결과는 여당의 참패지만 야당이 잘해서 지지를 얻은 승리도 아니다.야당으로서는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부채질해서 지방자치의 참뜻을 훼손하고 지역분할을 가져온 역사적인 과오를 뉘우치고 진지하게 지역주의 극복에 나서는 것이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참되고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정치의 통합기능과 국가견인 구실을 생각한다면 승리라고 자랑할 일이 못되는 결과에 도취되어 큰소리를 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책임있는 자세로 국가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초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자민련 김종필총재가 국회대표연설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한풀이를 하듯 공격적인 비판을 한 것은 점잖지 못하다.4개월전까지만 해도 여당의 대표로 대통령을 극진히 모셨던 그가 이제 와서 자신이 담당했던 일들을 왈가왈부하고 매도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로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충청도 핫바지론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한 데 대한 부끄러움이나 지역분할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도 유감이다.큰 정치보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것은 더욱 타기할 일이다. 민주당이 지역할거주의 시비로 당내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도 시사적이다.이기택 총재나 이부영,노무현 부총재등 비호남권 출신 간부들이 지역주의를 비판한 데 대해 김대중씨지지 세력인 동교동계가 지역주의 비판은 여당편을 드는 행태라고 공격하고 있다.민주당이 지역갈등의 극복이라는 건설적인 주제를 놓고 소모적인 당파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지역갈등의 비판은 곧 특정인의 비판이라는 등식으로 논의자체를 봉쇄시키려는 풍토도 지양되어야 한다.야당이 긴 안목을 가지고 지역갈등의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수권정당의 기본적인 책무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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