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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지방선거법 손질 한시가 급하다/ 김장중 정보와컨설팅 대표ㆍ행정학박사

    4·25 재·보궐선거 직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여론이 드높았다. 정부도 ‘기초단체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국회에 건의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부터 기초단체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이후 공천비리 등 숱한 선거부정이 발생하고 그 폐해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230개 기초단체장 전원의 정당공천제 폐지촉구 성명과 관련, 학회 토론회에서 폐지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정당공천제 폐지를 포함한 지방선거제도 개선 논의는 더 이상 진전이 없다.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시민들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대통령선거에만 깊이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고만 한다. 정당공천제가 제대로 되면 책임정치 실현, 인재 발굴 및 훈련, 여성 진출 확대, 지방자치 발전 등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실제 선거에서는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공천에 돈이 오가고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었으며, 지방정치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종속되어 유능한 지역인재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정당공천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거론된 ‘책임정치론’은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일소에 부쳐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선거 포기와 한나라당의 참패에 비해, 탄탄한 지역기반을 쌓은 비(非)정당 후보들의 대거 당선이 그 방증이다. 정치적 과점주주로 행세하는 기존 정당의 무능과 횡포에 유권자가 외면했고, 함량미달 후보 사천(私薦)에 주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지방선거제의 폐해를 그대로 방치하면, 국민들은 매년 두번씩 분노와 후회를 되풀이해야 한다. 재·보선이 매년 4월과 10월에 실시되도록 선거법에 정해졌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강한 정치 불신과 낮은 정당 참여, 취약한 풀뿌리정치 등의 현실과 정치문화를 고려한 제도가 필요하다. 행정의 논리가 중시되는 지방자치의 특성상,‘정당에만’ 충성하는 정치꾼보다는 지역을 살찌울 진정한 일꾼이 뽑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물들이 ‘정당공천’이라는 진입장벽에 막히지 않아야 선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주민들의 손에 지역정치를 돌려주어 민의의 왜곡을 막고 풀뿌리민주주의가 튼실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 쥐고 흔드는 공천권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정당공천제로 무소속 후보에게 가해지는 차별도 시정돼야 한다.‘무소속’은 어감도 좋지 않고,‘갈 데 없는 사람’이나 ‘떠돌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배어 있다. 말 그대로 ‘독립 주자’이기에 ‘비정당 후보’나 ‘독립 후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를 써야 한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정당의 고삐에서 자유롭게 풀어줘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달 발효된 주민소환제다. 정당공천제를 그대로 두고서 주민소환제를 시행하면, 자칫 정당간 투쟁이나 대리전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럴 경우 지역사회의 분열과 지방행정의 혼란은 심각해진다. 비례대표를 제외한 기초단체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 대신, 원하는 후보는 자신의 지지 정당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정당 표방제’를 도입하자. 특정 정당의 인기가 높은 지역은 여러 후보가 그 정당을 표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정당을 내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면 정당과 국회의원의 간택에 주민이 억지로 끌려가지 않고 주민과 후보가 선거의 진짜 주인이 된다. 정당은 민의로 선택된 유능한 인물을 영입해 훌륭한 인재로 육성해서 정치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방선거제도 개선을 위해 6월 임시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꼭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김장중 정보와컨설팅 대표ㆍ행정학박사
  • 성남, 산둥 꺾고 ‘체면 1승’

    한참 뒤늦은 첫 승이었다. 지난해 K-리그 챔피언 성남 일화가 13일 중국 산둥성 지난에서 열린 ‘A3 챔피언스컵 2007’ 마지막 경기에서 전반전에 터진 김상식과 최성국의 연속골로 후반 한 골을 따라붙은 산둥 루넝을 2-1로 따돌렸다.그러나 상하이 선화에 0-3, 일본의 우라와 레즈에 0-2로 영패를 당했던 성남은 1승2패로 우라와와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꼴찌에 머물렀다. 우승은 산둥과 나란히 2승1패를 거뒀지만 골득실에서 3점 차로 앞선 상하이 선화가 차지했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산둥으로선 성남과의 거듭된 악연에 치를 떨어야 했다. 성남으로선 이날 득점이 이번 대회 첫 득점. 지난달 30일 하우젠컵 수원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1-4 참패를 당한 뒤 이어진 악전고투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잡은 것도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성남, A3챔피언스컵 4연패 좌절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 챔피언 성남이 페널티킥 악몽에 발목이 잡혀 한·중·일 왕중왕전 4연패 꿈이 물 건너갔다. 성남은 10일 중국 산둥성 지난 산둥스포츠센터에서 열린 ‘A3챔피언스컵 2007’ 2차전에서 지난해 J-리그 우승팀 우라와 레즈에 0-1로 무릎을 꿇었다.7일 개막전인 상하이 선화에 0-3 참패의 수모를 당한 성남은 두 경기 연속 영패를 당하면서 이번 대회 우승의 꿈을 접었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후반 43분 최성국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모따가 실패하면서 동점 기회를 날려버린 것. 모따는 또 골키퍼가 막아낸 공을 되받아 넣으려다 몸싸움을 벌이다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해 13일 핌 베어벡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질 산둥 루넝과의 마지막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골결정력 부족으로 기회를 놓친 성남은 전반 39분 결정적인 한 방을 얻어맞았다.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하세베 마코토의 크로스를 성남 수비수 조병국과의 몸싸움 끝에 따낸 우라와의 워싱턴이 오른발 발리슛으로 그물을 갈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MS 설욕이냐 소니 수성이냐

    5년 만에 ‘2차 대전’이 벌어졌다. 오는 16일 발매될 ‘PS3’와 시장을 선점하는 ‘X박스 360’간의 차세대 비디오게임기 대전이 시작됐다. 비디오게임기 1차 대전은 2002년에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가 국내에 발매됐다. 하지만 당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PS2’에 참패, 시장진입에 실패했다. 먼저 발매돼 많은 이용자가 있던 PS2에 선점효과도 빼앗겼다. 빈약한 게임타이틀의 수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은 5년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PS3의 발매일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X박스 360은 국내에서 10만여대가 팔리는 등 시장진입에 성공했다. 도전자로 위치가 바뀐 소니는 16일 PS3를 정식 발매하며 본격 공세에 나선다. 세계 최초로 80GB하드디스크를 장착한 신 모델을 51만원대에 내놨다. 소니엔터테인먼트코리아 관계자는 8일 “블루레이 플레이어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된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말했다. 또 PS3를 하나로텔레콤 TV포털인 ‘하나TV’의 셋톱박스로 활용하는 서비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PS3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홈쇼핑에서 판매한 1차 예약판매분 100대는 불과 2분만에 매진되기도 했다. 이에 맞선 MS도 X박스360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조기 출시하는 등 ‘맞불’을 놓을 태세다.120GB 하드디스크를 탑재하고 HDMI포트와 HDMI케이블을 새로 지원하는 엘리트 버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엘리트 버전 출시로 하드웨어 성능 경쟁에선 밀리지 않을 것”이라며 “차세대 게임기로서의 핵심 경쟁력인 타이틀의 라인업까지 충분히 확보했다.”고 말했다. MS관계자의 말처럼 전쟁의 승패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게임타이틀에서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1차 대전에서 게임타이틀의 중요성을 깨달은 MS는 대작 타이틀을 대거 쏟아내며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파이널 판타지’시리즈를 제작한 세계적 프로듀서 사카구치 히로노부의 롤플레잉게임 ‘블루드래곤’의 한글판, 레이싱게임 ‘포르자 모터스포츠2’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연말까지 90개인 타이틀을 15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중 MS의 비장의 카드는 액션게임 ‘헤일로3’.‘헤일로’ 시리즈는 X박스 시리즈 최고의 타이틀 중 하나로 하루 판매량 기록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PS3측의 타이틀도 만만치 않다. 철권시리즈와 함께 격투게임계를 호령했던 버추어 파이터5,1인칭슈팅(FPS)게임인 콜 오브 듀티3 등 발매와 함께 15개의 타이틀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울러 PS3에선 파이널판타지·그란투리스모·메탈기어솔리드·위닝일레븐·철권 등 기존의 대작들이 줄줄이 출시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PS3와 X박스 360은 양사의 차세대 영상표준 경쟁과도 연결돼 있다.MS는 HD-DVD를 밀고 있다. 소니는 블루레이 디스크 진영이다. 양측 모두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이 펼쳐지는 것이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2)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22)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Ⅳ

    강홍립이 이끄는 원군이 심하전역(深河戰役)에서 패하여 누르하치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은 조선 조야(朝野)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한편에서는 강홍립의 가족을 잡아들여 가두라는 아우성이,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항복 때문에 조선도 오랑캐가 되고 말았다는 비난이 터져나왔다. 명 일각에서는 조선군의 항복이 고의적인 것이라는 의구심과 조선에서 다시 원병을 동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광해군은 이 같은 안팎의 아우성을 잠재우고 패전의 후유증을 치유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명 원정군의 실상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사르후(薩爾滸) 전역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1619년 3월1일부터 4일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명군은 10만 가까운 전사자를 냈다. 후금군의 전사자는 고작 200명 정도였다. 청나라 사서인 ‘만문노당(滿文老)’에서는 ‘이 같은 전과는 하늘이 후금을 도왔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라고 적었다. 후금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하지만 광해군이 예측했던 것처럼, 명군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참패였다. 명군은 우선 병력에서 후금군을 압도하지 못했다. 명군 지휘부는 47만의 대군을 동원한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제 순수 명군 병력은 10만이 채 되지 못했다. 당시 후금군은 6만 정도였다. 공격군의 병력이 수비군의 병력보다 3배 정도는 많아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병가(兵家)의 정설임을 고려하면 명군은 우선 원정군의 면모를 제대로 갖췄다고 하기 어려웠다. 명군 병사들의 자질 또한 열악했다. 원정군의 병력 가운데 상당수는 사르후 전역 직전에 끌어 모은 병사들이었다. 병사들 중에는 시정의 무뢰배나 비렁뱅이들이 많았다. 그들을 갑자기 훈련시켜 정예병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이 같은 병력 100만을 끌어모아도 적 한 명을 죽이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가 나올 정도였다. 갑자기 끌어모은 오합지졸로 후금의 철기(鐵騎)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명군의 무기와 화력 역시 문제가 많았다. 강홍립의 보고에 따르면 조선군을 지휘했던 우익남로군(右翼南路軍)의 사령관 유정(劉綎)의 휘하에는 대포조차 없었다. 좌익중로군(左翼中路軍) 사령관 두송(杜松) 역시 조선군 화기수 300명을 끌어다가 선봉으로 삼았다. 변변한 화력을 갖추지 못한 채 객병(客兵)인 조선군 화기수들을 서로 먼저 끌어가려고 했다. 명군 지휘관들은 서로 전혀 인화(人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네 개 방면의 부대로 편제된 명군은 본래 3월1일을 기하여 일제히 허투알라를 향해 출발하기로 약속했는데, 주력군인 좌익중로군을 이끌던 두송은 약속을 어기고 하루 일찍 출발했다. 공명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대는 후금군의 정탐에 걸렸고, 고지를 선점한 후금군의 돌격전에 말려 참패하고 말았다. 두송의 패배 이후 마림(馬林)과 유정이 이끄는 나머지 부대들도 각개 격파되고 말았다. ●광해군의 전후 수습책 병력, 병사들의 자질, 무기, 지휘관의 인화와 지휘 능력 등 승패를 결정하는 모든 측면에서 명군은 후금군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조선 내부에서는 패전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강홍립과 조선군에게 돌리고 있었다. 심지어 ‘명이 요동 전체를 누르하치에게 빼앗기게 된 것은 순전히 강홍립 때문’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는 신료들도 있었다. 전쟁 직후 명 조정과 요동에서는 미묘한 소문이 돌았다. 명군 지휘관들 가운데는 조선군이 고의적으로 후금군에게 항복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그들은, 투항한 강홍립이 후금 진영에 머물고 있는 사실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조선 조정이 강홍립의 가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주시했다. 명은 강홍립의 투항을 계기로 조선이 후금 측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광계(徐光啓)는 조선과 후금이 연결되는 위험성을 강조하고, 자신이 조선으로 가서 조선 군신(君臣)들에게 유시(諭示)하여 그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자청했다. 서광계는 임진왜란 당시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상기시키고, 조선을 다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야흐로 명의 압박이 다시 가중되고 있었다. 광해군은 명의 의심을 불식시키고, 서광계 등의 재징병 요구를 막아내기 위해 부심했다. 그는 우선 강홍립의 항복을 ‘고의적인 것’으로 여기는 의심을 차단하기 위해 김응하(金應河)를 현양(顯揚)하는 사업을 벌였다. 김응하는 원정군의 좌영장(左營將)으로 출전했다가 전사한 인물이었다. 후금군의 공격으로 진영이 함몰된 상황에서도 항복을 거부하고 싸우다가 순국한 용장이었다. 화살이 다 떨어지자 칼을 빼들고 적과 맞섰고, 오른손에 화살을 맞자 왼손으로 칼을 바꿔 잡고 끝까지 저항하여 후금군조차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광해군은 명나라 사신들이 의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목에 김응하를 모시는 사당을 짓도록 했다. 또한 그의 전공(戰功)을 찬양하는 시집 ‘충렬록(忠烈錄)’을 편찬했다. 편찬 이후 충렬록을 요동 지역까지 유포시켰다. 조선군 전체가 김응하처럼 용맹하게 싸웠다는 사실을 명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강홍립의 항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명의 재징병 요구를 거부하다 1619년 4월 이후, 명에서는 조선을 설득하여 후금을 치기 위한 원병을 다시 동원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었다. 명 조정은 조선에 누차 사신을 보내 병력의 지원을 다시 요청했다. 물론 그 명분으로 ‘재조지은에 대한 보답’이 거듭 강조되었다. 오랑캐 하나를 제압하지 못하여 또 다른 ‘오랑캐’ 조선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것은 분명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명은 체면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광해군의 입장은 단호했다. 더 이상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광해군은 조선의 화기수들이 심하전역에서 대부분 전사했다는 것, 거듭된 흉년 때문에 재정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재징병 거부의 명분으로 제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이 다시 군대를 보내면 누르하치는 의주까지 쳐들어 올 것이고, 의주에서 배를 이용하여 명의 전략 요충인 뤼순(旅順)을 공략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그 같은 사태를 막으려면 조선은 평안도를 확실히 지키는 것이 최상이고, 그것이 궁극에는 명을 돕는 계책이라고 설파했다. 명의 재징병 요구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광해군의 단호한 태도는 신료들에 대해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광해군은 “나는 이미 출병 이전부터 패전을 예견했다.”고 상기시키고 자신의 대외정책에 대한 신료들의 반발을 묵살했다. 그는 강홍립과 연락을 취하는 것을 비판하는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홍립으로부터 밀서(密書)를 전달받아 후금의 내부 정세를 파악했다. 신료들은, 강홍립의 투항 직후 후금이 보내온 국서를 소각하여 명으로부터 의심을 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해군은 국서에 속히 응답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들을 질타했다.‘우리에게 털끝만큼도 믿을 만한 형세가 없는 처지에 고담준론(高談峻論)만으로 적을 제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의(大義)를 강조하는 것만으로 오랑캐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신료들이, 출병과 패전 때문에 재정 상황이 어려워졌음을 들어 궁궐 건설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일축했다.‘궁궐 공사를 중단하면 누르하치의 목이라도 베어올 수 있느냐?’고 비아냥 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병을 채근하여 패전을 초래했던 신료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다. 자신의 예측대로 맞아떨어진 심하전역 패전을 계기로 외교정책에 대한 광해군의 자신감은 커졌다. 명의 재징병 요청을 거부하고, 신료들의 궁궐 공사 중단 건의를 묵살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부작용을 부르는 법이다. 이미 폐모논의 때문에 광해군을 삐딱하게 보고 있던 재야의 신료들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양단을 걸치는 광해군에 대한 반감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심하전역 이후, 외교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는 와중에 인조반정의 조짐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해외네티즌 “디워는 한국판 고질라에 불과?”

    해외네티즌 “디워는 한국판 고질라에 불과?”

    “한국판 고질라에 불과 vs 6년이 걸린 역작” 심형래 감독의 SF 블록버스터 ‘디 워’(D-War)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영화팬들에게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올 8월 말 미국 개봉 예정인 ‘디 워’가 확보한 스크린수는 무려 1500여개. 과거 미국서 한국영화 사상 최다스크린을 확보했던 ‘괴물’의 15배의 달해 ‘디 워’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개봉 규모가 큰 만큼 영화 팬들의 관심도 뜨겁다. 세계 최대의 영화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www.imdb.com)와 UCC사이트 유튜브에는 해외네티즌의 ‘디 워’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에 유포된 ‘디 워’ 관련 영상을 본 해외네티즌의 전체적인 반응은 “큰 기대하지 않는다.”는 다소 저평가 된 분위기. 네티즌 ‘cielo-verde’는 “비디오게임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CG가 다소 어색하다.”고 밝혔고 ‘sgcha37’은 “예고편대로 나온다면 영화는 분명 흥행에 참패할 것”이라고 적었다. 또 “한국에서 만든 고질라에 불과하다.”(bobtheduck2003), “오랜 작업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 쓴거지?”(cielo-verde) 등 혹평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디 워’를 옹호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peterk93’은 “공개된 것은 겨우 예고편일 뿐”이라며 후반작업을 기대했고 ‘gm_diehard’는 “최근에 공개된 예고편은 훨씬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또 “심형래 감독이 6년간 무엇을 했는지 기다려진다.”(sliq1)는 의견도 있었다. 영화 ‘디 워’는 전설의 ‘이무기’를 소재로 순제작비만 300억원, 제작기간 6년이 투자된 초대형 영화다. ‘주온’의 헐리웃 리메이크작 ‘그루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제이슨 베어가 주연을 맡았고 아만다 브룩스가 그 상대역으로 나서는 등 전세계 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
  • 이동국 네덜란드전 출전 못할듯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네덜란드에 0-5 참패를 당할 때 당시 19세의 이동국(28·미들즈브러)은 후반 교체투입돼 득점을 올리진 못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현 국가대표팀 가운데 네덜란드와 경기를 치른 선수로는 그가 유일하다. 이런 연유로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그가 9년 전의 설욕에 앞장서줄 것을 기대하는 시선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이 31일 국가대표팀이 소집된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동국은 이번 경기에서 무리하는 것보다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쪽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 13일 프리미어리그 일정을 마친 뒤 팀훈련이 전혀 없는 상태”라며 “개인훈련을 했겠지만 경기에 나서는 체력과는 다를 것”이라고 밝혀 네덜란드전에 내보내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대표팀은 이날 오후 상암 보조구장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프랑스오픈] ‘붉은 코트의 저주’ 받은 美

    클레이코트에서 펼쳐지는 프랑스 오픈테니스대회는 하드코트 전문가들에겐 ‘무덤’으로 불린다. 해마다 쟁쟁한 ‘베이스라이너’들이 롤랑가로의 붉은 코트 위에서 줄줄이 눈물을 쏟았다. 특히 올해에는 미국의 참패가 눈에 띈다. 피트 샘프라스, 앤드리 애거시 등 ‘영웅’들의 은퇴로 빈 자리가 커보이는 탓도 있지만, 네트플레이보다는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 플레이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 그런 미국남자테니스가 ‘앙투카의 저주’를 단단히 받았다. 30일 남자 단식 1회전. 미국남자테니스의 간판인 ‘광서버’ 앤디 로딕(세계3위)이 125위의 이고르 안드레예프(러시아)에 1-3으로 역전패, 탈락했다. 이어 제임스 블레이크(8위)와 빈센트 스파디(66위), 샘 쿼리(67위), 마이클 러셀(68위), 아머 델릭(69위), 로버트 켄드릭(86위), 저스틴 지멜스돕(150위) 등도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떨어졌다.128명이 겨루는 단식 본선 대진에서 겨우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48위의 로비 지네프리도 한 가닥 남은 끈을 놓쳤다. 디에고 하트필드(89위·아르헨티나)와의 1회전 경기 도중 해가 지는 바람에 결론이 잠시 미뤄지는 듯 했지만 이튿날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역전패. 미국의 1회전 전원 탈락은 1968년 ‘오픈 시대’가 열린 이후 처음이다.ESPN은 ‘대재앙’이라고 법석을 떨었다. 사실 미국 선수가 프랑스오픈과 전혀 인연이 없었던 건 아니다.1989년 중국계 마이클 창이 정상에 올랐고, 짐 쿠리어는 1991∼92년 2연패했었다. 마지막 우승컵을 안은 건 1999년 애거시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서브 뿐 만이 아니라 빠른 발을 이용한 ‘서브 앤 발리’와 랠리 테크닉에도 출중했다는 것. 결국 이번 대회 미국의 참패는 클레이코트의 적응력과 기술, 경험의 부재가 부른 결과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베어벡호, 2일 네덜란드와 A매치

    베어벡호, 2일 네덜란드와 A매치

    ‘베어벡호’가 9년 전 한국축구에 치욕을 안긴 ‘오렌지군단’에 통쾌한 설욕을 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이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다음달 2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과 친선경기를 갖는다. 이번 A매치는 9년 전과 달라진 한국축구의 오늘을 점검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오렌지군단도 두렵지 않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1998년 6월22일 프랑스월드컵 E조 예선 2차전에서 첫 A매치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한국의 0-5 참패.1954년 스위스월드컵 헝가리전(0-9)과 터키전(0-7) 패배에 이어 세 번째 큰 점수차 패배였다. 차범근(현 수원 감독) 감독은 비난 여론에 쫓겨 경질되고 중도 귀국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네덜란드 사령탑은 거스 히딩크. 결국 이날의 쓰라린 참패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젊은 영웅들을 담금질해 4강 신화를 쓰게 하는 자양분이 됐던 것. 한·일월드컵 이후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30·토트넘)를 비롯, 김남일과 송종국(이상 수원) 등이 네덜란드 리그를 경험했다. 또 대표팀은 히딩크를 시작으로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에 이어 핌 베어벡 감독까지 네덜란드 출신들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가 한국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키워드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9년 전 한국은 3-5-2를 기본 포메이션으로 삼았지만 현재는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4-3-3을 쓴다. 주전들도 얼굴이 대폭 바뀌었다. ●태극호 젊은 혈기로 쓴맛 보이겠다 네덜란드는 수문장 에드윈 판데르사르(맨유)를 비롯, 클라렌스 시도르프(AC밀란), 아르연 로번, 칼리트 불라루즈(이상 첼시) 등 특급스타들이 부상 등으로 제외돼 ‘수비의 핵’ 히오바니 판 브롱크호르스트(FC바르셀로나) 한명만이 그때 멤버다. 하지만 디르크 카윗(리버풀)과 차세대 스트라이커 클라스 얀 훈텔라르(아약스) 등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한국 51위)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2008유럽선수권대회 예선에서도 4승2무로 G조 선두에 올라 있다. 지난해 독일월드컵 16강에 올랐던 멤버 12명이 한국 땅을 밟아 여전히 버거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한국도 박지성과 이영표에 설기현(28·레딩)까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한다.1년 8개월 만에 베어벡호에 승선한 이동국과 조재진 콤비에 이근호 등 젊은 피의 가세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또다시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만큼 전력이나 전술 운용 등에서 안정적이지 못해 문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21)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Ⅲ

    광해군이 명의 파병 요구를 거부하려 했던 것은, 폐모논의와 궁궐 건설 문제 등 내정(內政)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명의 압력과 내부의 채근에 밀려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1619년(광해군 11) 2월,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들어갔다.1만 5000 가까운 병력이었다. 광해군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했던 심하 전역(深河戰役)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사에서는 이 전역을 보통 사르후(薩爾滸) 전투라고 부른다. 명군과 후금군 주력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戰場)이 사르후 지역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투에서 명군은 거의 궤멸될 정도로 참패했고 두 나라의 향후 운명도 확연히 갈렸다. 사르후 전투는 명청교체(明淸交替)의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광해군, 강홍립을 발탁하다 광해군은 심하 전역의 향방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명군이 동북(東北)의 오지인 허투알라(赫圖阿拉)까지 장거리 원정에 나서는 것의 위험성을 간파했다. 실제로 명군 가운데는 내륙 지역인 쓰촨(四川)에서 출발하여 산하이관(山海關)을 통과하고, 랴오양(遼陽)과 선양(瀋陽)을 거쳐 허투알라에 이르는 수천㎞의 거리를 행군해야 하는 병력도 있었다. 장거리 행군에 지친 명군이, 가만히 앉아 대비할 수 있는 후금군을 상대하기란 버거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은 또한 명군 지휘부가 조선군을 몹시 닦달할 것이란 사실도 예측했다. 그가 조선 원정군의 도원수(都元帥)로 문관 출신의 강홍립(姜弘立)을 임명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홍립은 어전통사(御前通事:왕의 직속 통역관)를 역임할 정도로 중국어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명의 강요에 밀려 ‘내키지 않는’ 출병을 단행한 이상,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적어도 명군 지휘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작전권을 틀어쥔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광해군은, 출정하기 직전 강홍립에게 지침을 주었다.‘그대는 조선군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있으니 명군 지휘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말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패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이 평안도에 머물 때부터 닦달을 시작했다. 총사령관이었던 경략(經略) 양호(楊鎬)는 강홍립에게 조선군 화포수(火砲手)부터 속히 도강(渡江)시키라고 요구했다. 조선군 부대 가운데 명군 지휘부가 가장 크게 탐냈던 병력이 바로 화기수였기 때문이다. 강홍립은 양호의 명령대로 화기수 5000명을 미리 들여보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명군의 우익남로군(右翼南路軍) 사령관인 유정(劉綎)의 휘하에 배속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광해군은 강홍립을 질책했다. 명군 지휘부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말라는 자신의 지침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광해군의 질책은 당연했다.3월4일, 유정 휘하의 명군이 후금군으로부터 기습을 받아 궤멸될 때 배속된 조선군도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행군, 또 행군 평안도 창성(昌城)을 출발한 조선군 본진은 1619년 2월23일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군은 좌영(左營), 우영(右營), 중영(中營) 등 3개 진영으로 구성되었다. 조선군 가운데는 항왜(降倭)들도 참전했다. 항왜는 임진왜란 당시 투항했던 일본군 출신의 병사들을 말한다. 그들은 조총을 잘 다루고, 검술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용맹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정예 병력이었다. 압록강을 건넌 후 허투알라에 이르는 조선군의 행군로에는 산악과 강이 널려 있었다. 날씨 또한 좋지 않았다. 양마전(亮馬佃)이란 곳에 도착했던 25일에는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불어 날씨가 몹시 추웠다. 병졸 가운데 얼어죽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무엇보다 문제는 군량 운반을 맡은 수송 부대가 본진을 제 때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었다. 2월26일, 진자두(榛子頭)라는 곳에 이르러 강홍립은 유정을 만났다. 강홍립은 유정에게, 군량 운반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사정을 설명하고, 조선군의 행군을 잠시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유정은 거부했다.‘약속한 시간은 정해져 있고 군율은 지엄한 것이기에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조선군은 할 수 없이 계속 걸었다. 2월27일, 진자두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배동갈령(拜東葛嶺) 부근에 도착했을 때 조선군 3영의 장졸들은 모두 휴대했던 군량이 떨어졌다. 보병들 가운데는 행군에 지쳐 정강이와 발 뒤꿈치에 유혈이 낭자한 병사들이 많았다. 계속 행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명군 ‘고문관’ 우승은(于承恩)이 달려왔다. 그는 강홍립에게 칼을 빼서 휘두르며 ‘조선군이 뒤처지면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고 소리쳤다. 당시 명군 지휘부는 ‘조선군이 군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망하려 하기 때문에 일부러 천천히 걷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래서 유격 교일기(喬一琦)와 우승은을 고문관 겸 감시자로 붙여 강홍립을 계속 몰아붙였다. 3월2일, 허기와 명군 지휘부의 채근에 시달린 끝에 조선군은 심하에 도착했다. 허투알라까지는 6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조선군과 명군은 약 600명의 후금군 기병과 조우한다. 적병은 높은 산 쪽에서 화살을 쏘아댔지만 조선군이 조총으로 응사하여 물리쳤다. 서울 포수 이성룡(李成龍)은 적장을 쏘아 맞혔고, 병사 한명생(韓明生)은 그의 목을 베어왔다. 조명연합군이 최초로 거둔 작은 승리였다.‘만주실록’에 보면 ‘토부(托保)와 에르나(額爾納)가 이끄는 병력이 유정에게 패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성룡이 사살한 장수는 둘 가운데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강홍립의 투항 작은 승리의 기쁨도 잠시 뿐,3월3일 조선군은 다시 ‘굶주림과의 전투’를 치러야 했다. 강홍립은 병사들을 풀어 주변의 후금인 부락을 뒤져 숨겨진 양곡을 찾아냈다. 그것을 돌로 빻아 죽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먹게 했다. 3월4일 아침, 조선군은 계속 행군하여 부차(富車)라는 곳에 도착했을 때 세 발의 대포 소리를 듣는다. 이윽고 교일기 등이 강홍립에게 달려와 유정이 이끄는 명군 본진이 궤멸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난 밤, 무리하게 행군을 감행하다가 귀영가(貴盈哥)와 홍타이지, 아민(阿敏)이 이끄는 3만 후금군의 매복, 습격에 휘말린 것이었다. 명군의 궤멸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선군도 후금군의 공격에 휘말렸다. 좌영과 우영이 먼저 후금군 철기(鐵騎)의 공격을 받았다. 조선군은 조총을 쏘며 저항했지만 두 번 째 탄환을 장전하기 전에 철기는 두 영을 유린했다. 선천(宣川) 군수 김응하(金應河), 운산(雲山) 군수 이계종(李繼宗), 영유(永柔) 현령 이유길(李有吉) 등이 전사하고 두 영은 무너졌다. 이민환(李民 )의 ‘책중일록(柵中日錄)’은 ‘강홍립이 거느리던 중영은 좌우영과 불과 1000보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달려가 구원할 겨를도 없이 두 영이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 후금군 철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후금군의 포위 속에서 중영의 조선군 지휘부에서는 ‘마지막 결전을 치르자.’는 논의가 나왔지만 병사들 가운데는 아무도 움직이려는 자가 없었다. 눈앞에서 두 영이 무너지는 참상을 목도한 데다,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이미 전의를 잃었던 것이다. 싸울 의지가 없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포위를 뚫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강홍립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투항한다. 그런데 투항 상황에 대한 기록들은 서로 상당히 다르다.‘광해군일기’와 ‘책중일록’은, 강홍립이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후금군이 먼저 통사를 보내와 항복을 종용했다고 적었다.‘만주실록’은, 후금군이 조선군 진영을 공격하려 할 때, 강홍립이 먼저 사람을 보내 항복을 제의했다고 적었다. 양자의 기록에는 분명 각각의 주관적 서술과 윤색이 가해졌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적었는지를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강홍립이 남은 생령(生靈)들을 살리기 위해 항복을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3월5일 허투알라로 들어가 누르하치에게 항복했다. 곧 이어 항복 소식이 서울로 날아들었다. 조야를 막론하고 사대부들은 ‘매국노’ 강홍립의 가족들을 수금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광해군은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홍립의 항복과 함께 그의 정치적 운명도 조락(凋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정치플러스] 한나라 정책위의장 이주영의원

    한나라당은 21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수석정책조정위원장인 이주영 의원을 신임 정책위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날 의총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해 참석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선출된 이 신임 의장은 4·25 재·보궐 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전재희 전 정책위의장의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된다.
  • 강대표, 부패혐의 의원등 21명 윤리위 회부

    4·25 재보선 참패와 대선후보 경선규칙을 둘러싼 내홍으로 휘청거렸던 한나라당이 당초 예상보다는 빨리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지난 15일 상임전국위에서 수정된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16일 인명진 윤리위원장을 만나 각종 부정·부패사건 연루 혐의를 받고 있는 현역의원·당협위원장·지방의원 등 21명의 명단을 넘기고 징계 여부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는 등 당 수습·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오는 21일 전국위에서 당헌·당규 개정안이 통과되는 대로 경선관리위원회와 후보검증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강 대표는 이날 국회 대표실에서 인명진 윤리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부패의혹 당원 리스트’를 전달했다. 리스트에는 현역 의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징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강 대표는 아울러 자신이 제시한 당 쇄신 방안 가운데 ▲원외 당협위원장의 재산 공개 ▲지방의원의 상임위 직무관련 영리활동 금지 ▲당협위원장의 지역구외 봉사활동 의무화 등을 최대한 빨리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밤 단행된 당직개편 결과사무총장에는 황우여 현 총장이 유임되고 사무부총장에는 이종구 의원, 전략기획위원장은 박계동 의원이 임명됐다. 홍보기획본부장은 김학송 의원이 낙점됐고 대변인은 나경원 의원이 단독으로 맡게 됐다. 임태희 여의도연구소장과 박재완 대표비서실장은 유임됐다.당 관계자는 “당초 당직자 전원을 교체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중립지대에 남아 있는 의원들이 거의 없어 인선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비리당원 누구라도 엄격히 처리”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16일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한 21명의 비리당원 리스트’를 강재섭 대표로부터 넘겨받고 “비리사실이 확인되면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앞서 강 대표는 4·25 재·보선 패배 이후 부정부패 사건과 선거법 위반 등에 연루된 당직자와 당원을 일제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 위원장은 “아직 내용을 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누가 되더라도 강도높게 처리할 것”이라며 “4·25 재보선은 물론 5·31지방선거 때의 비리 관련자까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4·25재보선 참패 이후 윤리위원 전원이 일괄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고 윤리위를 재구성하는 대로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설 전망이다. 특히 윤리위는 당원들의 근본적인 윤리의식 제고를 위해 미국 등 선진국의 공직자 윤리기준에 뒤떨어지지 않는 윤리강령 작성도 사실상 끝냈다. 인 위원장에 따르면 윤리강령에는 ▲외부강연은 한달에 8시간 이내 ▲강연료는 1회 30만원을 초과해선 안 되고 ▲4촌을 넘어서는 친인척과의 돈거래는 당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골프는 회기 중이나 자연재해, 사회적 파장이 큰 대형사고가 있을 때는 금지된다.10만원을 넘는 선물도 받아서는 안 된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여론조사 기관 선정등 곳곳 ‘지뢰밭’

    4·25 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과 경선규칙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분사태가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막판 결단으로 일단락됐지만 ‘제2, 제3의 내분사태’를 야기할 불씨는 곳곳에 숨어 있다. 당장 강창희·전여옥 전 최고위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선출직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이 전 시장측과 박 전 대표측의 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전 시장측에선 충청권의 홍문표 의원이, 박 전 대표측에선 최고위원을 지낸 이규택 의원과 충청권의 송광호 전 의원 가운데 한명이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여성몫 최고위원에는 이 전 시장측에선 박찬숙·송영선 의원이, 박 전 대표측에선 당 대표를 지낸 김영선 의원이 나설 것이란 후문이다. 경선규칙도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긴 했지만 앞으로 조율해야 할 세부조항을 놓고 양측의 격돌이 예상된다. 우선 여론조사 문제와 관련, 여론조사기관 선정에서부터 여론조사 기법, 설문조항 선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부 조항 하나하나를 놓고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기관,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지지율에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검증문제를 놓고도 벌써부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후보검증을 담당할 당 검증위 구성 방안을 놓고도 마찰을 빚을 공산이 크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한나라지도부 ‘미묘한 3각관계’

    한나라당은 15일 경선규칙을 둘러싼 내분 위기가 극적으로 수습됨에 따라 다시 안정 국면을 되찾은 분위기다.정치 인생의 벼랑 끝에서 돌아온 강재섭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지도부가 정말 심기일전해서 약속한 당 혁신 등 여러 일들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비장한 결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4·25 재보선 참패 직후 지도부 총사퇴론을 제기하며 강 대표를 압박했던 이재오 최고위원도 이날 만큼은 강 대표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그동안 심려가 많았던 존경하는 강 대표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반면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 참석했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내분사태를 거치면서 강 대표를 비롯해 이 최고위원과 김 원내대표간 3각 갈등이 표면화됐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14일까지만 해도 중립파 의원들과의 회의에서 “이미 강 대표는 신뢰를 잃었으며 더 이상 당을 이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강 대표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지난 7일에도 경선규칙 중재안을 전국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며 강 대표를 압박했다. 이런 차원에서 당분간 강 대표의 체제는 유지가 되겠지만 갈등 수습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반전 드라마’ 이후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반전 드라마’ 이후

    ‘싸워야 큰다.’는 말이 있다. 정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일 경우에는 특히 그런 것 같다. 더욱이 유력 대선주자 2명을 보유하고 있는 당이라면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설전을 주고 받거나 측근 의원들을 총동원, 서로 ‘적군보다 더한 관계’처럼 생채기를 내고 결국 이러다간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증폭시킨 일도 국민들의 관심을 키우는 ‘양념’일 수 있다. 갈등요소 없이 밋밋한 상태로 경선을 치르고 본선에 임하면 국민들의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정치는 드라마와 비슷하다.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놓고 이·박 양 캠프가 서로 잡아 먹을 듯이 으르렁거린 것은 경선전의 초반 클라이맥스를 위한 도입부였다. 중재안이 나온 이후 1주일 동안 양 캠프는 루비콘 강을 건넌 사이처럼 서로를 공격했다. 온갖 막말도 오고갔다. 같은 당 동료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깊은’ 상처를 입고 입혔다. 분당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마당에 이 전 시장이 경선규칙 양보를 전격 선언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든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나 마찬가지다. 이 전 시장의 양보로 분당 위기는 다시 한번 봉합됐다.4·25 재보선 참패 때에 이어 두 번째다. 이 전 시장은 한나라당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정치 드라마에서 ‘극적 효과’를 일궈낸 주연 배우인 셈이다. 물론 또다른 주연 배우인 박 전 대표의 ‘수용’ 장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나 이번의 ‘반전(反轉) 드라마’는 대충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우선 그 날 오후까지도 양보 불가를 외친 이 전 시장의 행동은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흥행요소였다. 새벽에 이미 결심이 섰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이제는 당이 깨지는구나.’라며 당원들이 낙담을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찰나, 그가 전격 선언을 한 것도 잘 짜여진 구성이다. 조연들의 눈부신 활약도 돋보였다.‘통 큰 양보’를 거듭 주문한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과 이상득 국회 부의장,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며 접점 찾기에 골몰한 강재섭 대표와 양 캠프를 오가며 물밑 접촉을 마다하지 않은 김덕룡 의원 등도 극적 효과를 있게 한 조연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양보하는 게 이기는 길’이라고 설득했다. 선문답을 즐겨 하는 박희태 의원이 그제 서울시 당원단합대회에서 일부 기자들에게 “물밑에서 헤엄을 많이 치고 있다.”며 이 전 시장의 양보를 시사한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정치감각 테스트였다고 할까. 초반 클라이맥스가 끝난 지금 양 캠프는 득실을 따져보는 것 같다. 이 전 시장이 양보에도 불구, 전체적으로 이득을 얻었다는 게 중론이다. 박 전 대표 입장에서는 특히 시·군·구 동시투표가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반전 드라마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후보 검증문제와 여론조사 방법, 당직 인선 등 곳곳에 갈등을 폭발시킬 뇌관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약도 자꾸 쓰면 독이 되는 것처럼 국민 관심을 높이기 위해 극적 요소를 자꾸 만들면 금세 식상해진다.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과 같은 이치다. 서너번 반전 드라마가 더 있게 되면 국민들은 무관심해지고 심지어는 냉대까지 받을 수 있다. 결국 새 버전으로 경쟁구도를 옮겨가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한 정책 대결이 가장 바람직하다. 진정성을 갖고 정책에 승부를 걸 때 지지율도 올라가게 된다. jthan@seoul.co.kr
  • 강대표 벼랑끝서 기사회생

    강대표 벼랑끝서 기사회생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대선주자가 한나라당 경선 룰에 극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대표직과 의원직 사퇴 위기에 몰렸던 강재섭 대표가 기사회생했다. 강 대표는 지난 11일 이 전 서울시장과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거나 합의안을 만들지 못하면 대표직은 물론 의원직까지 버리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일단 현직을 지키게 된 강 대표는 15일 상임전국위 참석과 함께 당무를 정상화한 뒤 내주초 사무총장과 본부장급 등 일부 핵심 당직자들을 교체하고 이달말쯤 경선관리위원회와 대선후보 검증위원회 등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또 부패 척결과 윤리의식 제고를 위한 당 쇄신안도 최대한 빨리 통과시켜 자신의 위상을 굳힌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강 대표의 입지가 견고하지만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일련의 내분 상황에서 세 차례나 위상이 흔들렸던 강 대표가 독자적 생존력을 갖고 위기를 돌파했다고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 대표가 4·25 재보선 참패 책임론에 부딪혀 당 쇄신안을 냈을 때에는 박 전 대표가 앞장서 그를 뒷받침했고, 이후 중재안을 냈을 때는 이 전 시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고비를 넘겼다. 여기에다 당내 중립성향 의원들이 14일 회동을 갖고 경선 룰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 대표의 사퇴를 촉구한 것도 강 대표의 당 장악력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 관계자는 “강 대표는 세 차례의 위기를 넘어서는 과정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사여탈권이 두 대선주자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줬다.”고 해석했다. 말하자면 강 대표가 두 유력 대선주자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는 지적인 셈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블레어 총리 ‘새달 27일 사임’ 공식 발표… ‘집권 10년’ 빛과 그림자

    블레어 총리 ‘새달 27일 사임’ 공식 발표… ‘집권 10년’ 빛과 그림자

    |파리 이종수특파원|1997년 20세기 최연소 총리로 화려하게 등극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영욕의 10년’을 마감하고 10일(현지시간) 사임을 밝혔다. 블레어 총리는 내달 27일 총리직에서 물러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날 아침 각의에 참석해 퇴진 계획을 밝힌 뒤 지역구인 중부 세지필드에서 “6월27일 여왕에게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블레어는 새달 초 독일에서 열리는 선진8개국(G8) 정상회의를 마지막으로 국제 무대에서 물러난다. 그의 ‘집권 10년’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지만 경제적 번영의 길을 닦았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제3의 길-경제 활성화 성공 1994년 노동당 당수에 취임한 블레어는 2년 뒤 5월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기존 노동당의 노선과 달리 중산층을 껴안는 중도노선 이른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분배 위주의 정책 대신 성장 강화에 무게를 뒀다. 특히 1918년부터 노동당 정책의 상징이던 국유화 강령을 폐기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규제 완화, 자본시장 육성,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영국 경제 성장률을 유럽 최고 수준인 3%대로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당내 좌파들로부터 ‘토리(옛 보수당) 블레어’라고 비판받기도 했으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영국의 케네디’로 불리기도 했다. 블레어에 비판적인 가디언마저 최근 “블레어의 10년은 영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제3의 길이 빈부격차와 사회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있지만, 노쇠한 영국을 활기 넘치는 나라로 변화시킨 점은 분명하다. 또 북아일랜드와 평화협상을 주도하고 영원한 화약고이던 북아일랜드 분쟁을 해결하면서 2001년 6월 재선에 성공했다. ●해외 파병…날개 없는 추락 취임 초기 83%에 이르던 블레어의 지지율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2003년 이라크 침공 때 군대를 파견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로 ‘부시의 푸들’로 불리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어 2005년 52명이 숨진 런던 시내 지하철 폭탄테러 사건과 각료들의 정치자금 스캔들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했다. 현직 총리 사상 처음으로 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수모도 겪었다.3선 불출마 약속을 깨면서 브라운 재무장관의 지지자들로부터 공개적 퇴진 운동에 직면하기도 했다. 급기야 노동당은 지난주 지방의회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필립 스티븐스는 “블레어는 당대의 가장 성공적인 정치인”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vielee@seoul.co.kr
  • 배수진 강재섭 위기? 기회?

    배수진 강재섭 위기? 기회?

    위기일까 기회일까? 경선 룰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분이 ‘분당’ 위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사이에서 ‘곡예’를 하는 형국이어서 당 내분 추이에 따라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강 대표는 10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경선룰 중재안을 박 전 대표가 거부한 것에 대해 “선장은 풍랑이 불어도 배를 몰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선원들이 싸운다고 배를 세울 수도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여론조사 반영비율의 하한선을 보장해주는 규정을 박 전 대표가 문제삼고 있는 것에 대해 ‘수정 불가’를 못박았다. 그러면서 “전국위원회에서 (중재안이 부결돼) 논의가 원점으로 간다면 8월에도 경선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그의 언급은 박 전 대표의 중재안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강 대표의 발언을 전해들은 박 전 대표 캠프는 이날도 분노에 찬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동안 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박 전 대표를 저버렸다는 배신감을 표현하는 관계자도 있었다. 실제로 강 대표와 박 전 대표는 2년여 넘게 ‘전략적 연대’를 구축해 왔다. 지난 2005년 3월 원내대표 경선과 지난해 7·11 전당대회에서 강 대표가 박 전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승리할 수 있었고,4·25 재·보궐선거 참패로 지도부 교체론이 불거지면서 위기에 몰렸던 강 대표를 구한 사람도 박 전 대표다. 반면 지금껏 대척점에 서 왔던 강 대표와 이 전 시장과는 ‘화해무드’가 흐르고 있다. 이전까지 이 전 시장 진영과 강 대표가 사사건건 대립해 왔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에 대해 당 관계자는 “아무리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강 대표-박 전 대표-이 전 시장간의 (삼각)교차관계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며 “강 전 대표는 이번 경선과정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 듯하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이천수 악연에 인천 또 눈물

    2005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과 맞닥뜨린 인천은 2차전에서 라돈치치의 연속골로 2-0 완승을 거두고도 창단 첫 우승의 꿈을 접고 말았다.1차전에서 이천수(26)에게 데뷔 후 첫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5 참패를 당한 탓이었다. 올 시즌, 이천수가 6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경기가 인천전이었고 징계가 풀린 이천수가 8개월 만에 골맛의 기쁨을 누린 것도 인천이 1-3으로 무릎을 꿇은 지난달 4일 경기에서다. 인천은 또다시 이천수와의 질긴 악연을 되씹어야 했다. 인천은 9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우젠컵 A조 8라운드 울산전에서 후반 이천수의 프리킥에 이은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로 0-1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5승3패(승점 15)가 된 인천은 울산(4승3무1패)과 승점을 나란히 했지만 골득실에서 ‘2’ 차이로 뒤져 조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전후반 내내 빗줄기가 휘날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인천 선수들은 울산과의 악연을 끊겠다는 각오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승부를 가른 것은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였다. 후반 22분 이천수가 프리킥으로 올려준 공을 잔뜩 긴장한 골키퍼 권찬수가 넘어지면서 쳐낸다는 것이 알미르에게 흘러갔고 알미르가 이를 침착하게 텅빈 골문에 집어넣었다. 인천은 최근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3골 1도움)로 기세를 올리던 ‘세르비아 폭격기’ 데얀이 몇 차례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멈춰선 것이 화근이었다. 반면 울산은 컵대회 5경기 연속 무실점에 무패(3승2무)의 신바람을 이어갔다. 대구의 루이지뉴는 제주전 후반 30분 에닝요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꽂아넣으며 2-0으로 팀 승리를 이끈 것은 물론,16경기에서 12골을 뽑아내는 괴력을 이어갔다. 컵대회에서도 7골로 득점 선두. B조에선 수원이 크로아티아 용병 마토의 페널티킥 골과 서동현의 추가골로 광주를 2-0으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4경기 연속 2골 차 승리를 내달린 수원은 3승2무3패(승점 11)로 이날 대전에 0-1로 진 부산을 끌어내리고 조 2위로 도약하며 1위 서울과의 승점 차를 6으로 좁혔다. 수원과 극명한 희비 쌍곡선을 그리고 있는 FC서울은 경남과 0-0으로 비겼지만 부산이 3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남은 두 경기에 관계없이 조 1,2위가 진출하는 6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그러나 4경기 무승(2무2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충격파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인천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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