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패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완판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방송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투쟁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27
  • [재·보선 후폭풍… 여야 내전 치닫나] 민주당 丁 vs 鄭 당권승부

    ‘수도권 승리, 호남 참패’로 절반의 승리를 거둔 민주당에 내홍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텃밭을 잃은 정세균 대표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30일 비주류를 중심으로 고개를 들었다. 전주 2곳의 무소속 동반 당선을 이끈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복당이 가시화되면 잠복해 있던 주류-비주류의 주도권 경쟁이 한층 격해질 전망이다. 당내 비주류 모임인 민주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선거 과정에서 초래된 당내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고 민주개혁 진영의 대연합을 통한 이명박 정부 심판과 민주주의 전진의 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겉으론 ‘반(反) MB 전선’ 구축을 내세웠지만, 진보 결집을 명분으로 정 전 장관의 복당을 받아들이라고 정 대표를 압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동대표인 이종걸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전주의 민심이 정세균 대표 체제를 ‘탄핵’한 만큼 지도부는 겸허히 (복당을) 수용해야 한다.”면서 “지도부는 완승할 수 있었던 선거를 어렵게 끌고 간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당 쇄신을 위한 대통합적 견지에서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주 2곳을 정 전 장관에게, 호남 2곳의 광역·기초 의원을 민주노동당에 빼앗긴 데 따른 책임론도 제기됐다. 당내의 또 다른 비주류모임인 국민모임은 성명에서 “당 소속 구성원의 의견을 배제한 채 당 지도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비민주적 공천이, 압승할 수 있었던 선거를 체면유지로 그치게 했다.”며 당 지도부의 환골탈태를 촉구했다. 이날 복당 신청서를 내려 했던 정 전 장관은 비주류의 목소리가 쏟아지자, 신청을 일단 뒤로 미뤘다. 비주류의 반발과 지도부의 대응을 봐가며 행동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계산에서다. 결국 전선은 ‘정세균 대 정동영’으로 좁혀지게 됐다. 당권을 건 진검 승부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재·보선에서 당내 위상을 높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역할론도 힘을 얻고 있다. ‘낮은 자세’로 수도권 승리에 일등 공신이 된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출신으로서 감수해야 했던 당내 이질감을 떨쳐냈고, 언제든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확보했다. 손 전 지사는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전날 춘천으로 돌아갔지만,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 보였다. 이번 재·보선에서 현 정권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충분히 챙기지 못한 정 대표가 또 다시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4·29 재보선] 박희태 ‘0 대 5 악몽’… 정세균 ‘정동영 고민’

    [4·29 재보선] 박희태 ‘0 대 5 악몽’… 정세균 ‘정동영 고민’

    4·29 재·보선이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났다. 민주당은 상처 속에 수도권에서 귀중한 2승을 챙겼지만 정치적 기반인 텃밭이 무너졌다. 그 틈새로 정동영이라는 ‘무소속 거물’이 탄생했다. 진보세력은 울산북에서 그 어느 때보다 귀한 1석을 얻었다. 국회의원 5석과 기초단체장 1석이 달린 재·보선은 정치 지형을 통째로 흔들었다. 양당 모두 선거 후폭풍에 직면하게 됐다. ●“한나라 완패는 경제살리기 실패 책임 물은 것”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29일 “한나라당의 전패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신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고 경제 살리기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정부를 비롯한 범여권 전체가 패배의 대가를 함께 치러야 하는 상황까지 거론된다. 당은 당대로 내홍에 직면하게 됐다. 정치 컨설팅업체 포스 이경헌 대표는 “한나라당의 전패는 본격적인 분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단정했다. 인책론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파괴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자기 당 후보를 지원하지 않은 도덕적 원칙의 문제로 공격 받으면서 친이-친박 양대 계파간 전면전이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상존하게 됐다.”면서 “야당 지지층의 분열이 현실화됐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당권 투쟁과 분당 가능성이 표면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은 ‘절반의 성공’으로 채점했다. “세력 강화가 정세균 체제의 과제이긴 하지만, 수도권에서의 승리로 5월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이남영 세종대 정치과학대학원 교수는 “민주당도 전통적 지지자들이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줬으므로 그다지 좋은 승리는 못 된다.”며 그야말로 ‘절반’에 방점을 두었다. 이처럼 각당 지도부의 취약해진 입지와 복잡하고 불안해진 정치 구도는 국회를 통해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MB)의 개혁입법’ 추진에서도 추동력을 얻기 어려워졌다. 당장 방송법을 비롯한 미디어 관련법 등의 6월 국회 처리에 힘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각당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 전쟁 시작 민주당은 사정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야당의 분란은 대여 투쟁의 강화로 이어질 개연성이 많다. 선거 민심을 근거로 이른바 ‘MB악법’ 저지에 총력을 모으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 김형준 교수는 “수도권이 상징성이 강한 지역이라 손학규, 김근태, 김대중 전 대통령계 인사들이 모여 더욱 견고하게 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1석을 보탠 진보진영의 힘은 단지 1석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활약상을 감안해볼 때 ‘1석 추가’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각당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은밀한 전쟁이 시작됐다. 각당 내부의 혼란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치 불안정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사설] 한나라, 재보선 결과 겸허히 수용해야

    어제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사실상 완패했다. 한나라당은 5곳의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단 한 개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시흥시장 선거의 패배는 내년으로 예정된 지방선거의 풍향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텃밭에서 패배함으로써 기존 정당의 한계를 드러냈다. 무소속 후보의 약진은 제도권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질타로 본다.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투표율이 40%를 넘어선 것은 그마나 다행스럽다.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이 수도권은 물론이고 텃밭인 울산과 경주에서도 패배한 것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정책 혼선 등 집권당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접전을 벌인 인천 부평을에서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의석을 내줬다. 울산북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단일후보로 내세운 조승수(진보신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진보신당의 원내 교두보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한나라당에서는 당장 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희태 대표 교체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계파 갈등 증폭은 불가피할 것 같다. 집안 싸움을 벌인 경주에서 한나라당 친이(친 이명박)계의 정종복 후보가 친박(친 박근혜)계의 정수성 후보에게 패한 것은 당내 갈등을 예고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경주 선거에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승리를 낚았지만 당내 갈등의 요인을 제공한 셈이다.여야는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책임론으로 겪게 될 내홍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당내 갈등을 해소하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재·보선 과정에서 제시한 GM대우 지원 등 선심성 공약을 다시 냉정히 재점검하기 바란다.
  • [4·29 재보선] 여야 반응

    4·29 재·보선 승패가 드러나자 민주당과 진보신당은 웃고, 한나라당은 침묵했다. 최대 승부처인 인천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물론 시흥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수도권 압승을 거머쥔 민주당은 29일 밤 만족감을 드러냈다. 비록 민주당 텃밭인 전주 덕진과 완산갑에서 정동영-신건 무소속연대에 패배한 절반의 승리이긴 하지만 수도권 지지층을 회복한 기쁨이 더 컸다. 이날 오후부터 서울 영등포 당사 선거상황실에서 초조하게 개표결과를 지켜보던 민주당 당직자들은 밤 10시30분쯤 시흥시장에 이어 인천 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의 승리가 확정되자 정세균 대표, 원혜영 원내대표, 이미경 사무총장의 이름을 연거푸 외치며 재·보선 승리를 자축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무소속 출마로 불거진 당내 분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검찰 사정(司正) 수사라는 내우외환을 이겨낸 승리여서 의미가 남달랐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이명박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단호히 심판해 줬다.”면서 “수도권 승리를 안겨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며 제1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당을 잘 정비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원내 진입의 꿈을 실현한 진보신당도 이날 밤 만세를 외쳤다. 중앙당 지도부를 비롯해 대부분의 당직자가 울산에 머물며 개표결과를 지켜본 진보신당은 한나라당의 완패에 의미를 뒀다. 진보신당 당직자들은 “MB 정권 심판을 조승수가 처음 시작했다.”며 “올해 재·보선뿐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까지 민노당과 어떤 방법으로든 공조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나라당 선거 상황실은 이날 밤 내내 텅 비어 있을 만큼 침통한 분위기였다. 박희태 당 대표는 밤 8시쯤 여의도 당사에 잠시 나타났다가 개표가 본격화할 때 다시 나오기로 했으나 아예 귀가해 버렸다. 당직자들도 상황실에 잠깐 모였다가 바로 해산해 버렸다. 당사 주위에 있던 의원들은 개표결과 당 후보가 단 한 곳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참패로 거두자 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30일 아침 대책회의를 갖기로 하는 등 당은 점점 어수선한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윤상현 대변인은 “선거 결과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무엇이 부족했는지 되돌아보겠다. 채찍으로 여기고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이날 선거개표가 지속될수록 한나라당의 참패가 굳어지자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는 등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이지운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오늘 재·보선] ‘운명의 날’ 여야 대표 출사표

    [오늘 재·보선] ‘운명의 날’ 여야 대표 출사표

    여야 지도부에 운명의 날이 왔다. 4·29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명암이 엇갈릴 전망이다. 양당은 어느 한 곳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인 셈이다. 두 사람 모두 위기 끝에 낭패를 맞게 되면 당내 장악력과 위상이 현저히 떨어지고,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는다면 당 내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진보진영은 울산북 재선거를 재기의 무대로 삼겠다는 태세다. 각 당 지도부의 기류를 살펴봤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1곳만 건져도 성공… 마지막 웃겠다” “한 곳만 건져도 성공이다.” 4·29 재·보선 하루 전에도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5곳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도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당 주변에서는 ‘0대5’ 전패의 시나리오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전패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당장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다. 그 중심에 이번 선거를 총지휘한 박희태 대표가 있다. 당 안팎에서 ‘박희태 사퇴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지금의 당 간판으로는 10월 재·보선은 물론이고 내년 지방선거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박 대표가 실세형이 아닌 관리형 대표라는 점에서 참패의 모든 책임을 그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친이 쪽의 한 의원은 “설사 한 곳에서도 이기지 못하더라도 여권의 역학구조상 지도부를 교체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상처가 나더라도 현 체제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같은 상황 인식에 따라 ‘0대5’의 공포는 곧바로 “한 곳만 건져도 성공”이라는 판단으로 대체됐다. 한 석만 챙겨도 박 대표로서는 체면치레를 하는 것이다. 두 곳에서 이긴다면 한나라당의 승리로 자평할 만하다. 인천 부평을과 울산 북, 경주 등 세 곳에서 이긴다면 압승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의미있는 승리를 거둔다면 박 대표는 ‘원외 대표’로서 한계를 넘어 여권 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할 전망이다. 10월 재·보선 출마의 명분도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정세균 민주당 대표 “MB정부 심판… 與독주 막아 달라” “이명박 정권을 떠난 민심이 야권에서 당선이 가능한 민주당 후보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번 재·보선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28일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민주당 후보를 찍어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고 집권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표심(票心)이 실제 득표로 연결돼 민주당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인천 부평을 재선거 등에서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국회의원과 시흥시장 등 어느 한 곳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유권자들에게 사표(死票) 방지를 호소하며 단 한 표라도 더 끌어모으겠다는 생각이다. 정 대표는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따른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수사할 것을 검찰에 거듭 촉구했다. 정 대표는 최대 승부처인 부평을과 함께 전주 완산갑, 시흥시장 보궐선거의 승리까지 챙겨 당내 구심력을 강화하고 ‘MB악법’ 저지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특히 수도권인 부평을 재선거에서의 승리는 선거 초반 ‘정동영 공천 배제’ 파문으로 촉발된 계파 분열의 후폭풍과 지도부 교체론을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울산북 자신…원내시대 열릴 것” 울산북 재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룬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조승수 전 의원의 ‘낙승’을 통해 진보진영 재기의 발판이 마련되길 바라고 있다. 기대가 현실화되면 진보신당은 첫 원내 진입이라는 성과를 챙기게 된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29일 오전 조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월30일 진보신당의 원내시대가 열릴 것”이라면서 “당초 이번 선거의 성격이었던 ‘이명박 정부 1년의 심판’을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표는 “다만 예전에도 승부가 너무 뻔해 이기는 쪽의 투표율이 낮게 나온 적이 있었다.”면서 “마지막까지 투표를 꼭 해주길 부탁드린다.”고 유권자들에게 당부했다. 민노당은 인천 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와 시흥시장 보궐선거 등에서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오늘 재·보선] 한나라 참패땐 박희태 흔들… 여권 주도권 약화

    [오늘 재·보선] 한나라 참패땐 박희태 흔들… 여권 주도권 약화

    ■ 재·보선이 몰고 올 후폭풍 역대 재·보선에서 패자는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재·보선의 특성상 여당의 패배는 국정 장악력 약화로 이어졌다. 지난 참여정부는 출범 직후에 치러진 2003년 4·24 재·보선에서부터 정권 내내 ‘여당=참패’라는 재·보선 등식에 시달렸다. 특히 2005년 치러진 4·30 재·보선과 10·26 재·보선에서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연거푸 참패해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을 포함해 ‘40대0’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까지 남겼다. 선거에 패배할 때마다 여당은 책임론으로 내홍을 겪으며 당 지도부가 9차례나 교체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정상 체제보다 비상체제가 더 일상적인 기현상을 겪었다. 이번 재·보선 역시 여야의 복잡미묘한 역학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이 참패한다면 ‘박희태 체제’에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지도부 교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당내에서 현 체제를 흔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틈새를 비집고 권토중래를 노리는 이재오계와 당 중심으로의 진입을 노리는 정몽준 최고위원이 활동 공간을 넓힐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주류인 친이 진영이 또 한 차례 권력 투쟁을 벌인다면 당의 원심력은 극대화될 것이다. 당의 또 다른 축인 친박 진영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사태를 관망하며 역할 모색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민주당의 참패는 주류·비주류간 내전으로 직결된다. 분당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을 포용하지 못하면서 촉발된 내분 책임은 고스란히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 대표의 지지세력인 수도권 386 그룹도 검찰의 사정 수사에 입지가 흔들리고 있어 현 지도부로서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각오해야 할 처지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데스크 시각] 재보선의 추억/이종락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재보선의 추억/이종락 정치부 차장

    중국의 고전 ‘채근담’에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새끼줄로 톱질해도 나무가 잘라지고/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뚫는다./물이 모이면 개천을 이루고….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 돌에 구멍이 뚫린다는 뜻이다. 오늘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모두 227개 국회의원 선거구 중 불과 5개의 선거구에서 치러진다. 인천 부평을과 울산북, 경주, 전주 덕진, 전주 완산갑 등이다. 그런데도 선거 열기는 총선에 못지않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한 석이라도 얻지 못하면 정권을 내놓아야 할 것처럼 전력투구한다. 야당인 민주당도 복잡한 당내 상황을 선거 승리로 돌파하려 한다. 18대 총선에서 부진했던 진보진영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한 석을 건지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처럼 정당들이 재·보선에 ‘올인’하는 이유는 우리의 선거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4~5개 지역구에서 치러지는 선거지만 결국엔 우리의 정치지형에 큰 구멍을 뚫었던 위력을 잊지 못하고 있다. 2000년 16대 총선 이후 9차례 국회의원 재·보선이 있었다. 모두 39곳의 지역구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2승 37패를 기록했다. 2007년 18대 대선 결과가 진보진영의 참패로 귀결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음을 재·보선의 역사는 증명한다. 2003년 4월24일에 치러진 재·보선에는 여당 후보가 없는 선거구도 있었다. 고양시 덕양갑 선거구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개혁당 유시민 후보와 선거공조를 위해 후보를 내지 않았다. 유 후보는 1만 4833표를 득표해 한나라당 이국헌 후보(1만 3397표)를 제치고 여의도에 입성했다. 유 의원은 7개월 뒤에는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며 노무현식 정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주역 중 한 명인 조순형 의원은 2006년 7월26일 보궐선거에서 여섯번째 금배지를 달았다.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마한 조 의원의 화려한 부활은 열린우리당의 끝없는 나락에 불을 지핀 결정타였다. 민주당 김홍업 의원은 2007년 4월25일 전남 무안·신안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부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후광을 확인하는 듯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18대 총선에서 무소속 이윤석 후보에게 석패했다. 갈수록 힘이 부치는 DJ의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오늘 치러질 재·보선도 한국 정치사의 또 다른 역사와 기록을 남길 것 같다. 여야 대결로 극명하게 갈라졌던 이전 선거양상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에서는 여당(한나라당 정종복)대 여권(‘친박’ 성향의 무소속 정주성)이 대결했다. 전주 덕진과 완산갑에서는 야당(민주당 김근식·이광철)대 야권(무소속 정동영·신건)이 양보 없는 혈투를 벌였다. 이번 재·보선을 ‘경제살리기’ 선거로 만들겠다던 한나라당은 ‘경주대첩’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반(反) MB 전선’을 구축하겠다고 벼르던 민주당은 ‘야야(野野) 대결’ 결과가 부진할 경우 분당 가능성도 거론된다. 문제는 투표율이다. 2001년 10월25일 재·보선의 투표율이 41.9 %를 기록한 이래 지난해 6월4일 재·보선에서 23.3%로 떨어지는 등 지속적으로 하락추세다.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된다. 정치에 염증을 느낄 만하다. 투표소를 굳이 가야 할 당위성을 잃게 한다. 그렇지만 유권자의 의무는 다했으면 한다. 싫든 좋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바로 선거이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분노와 희망을 투표용지에 담아 보자. 작은 물방울을 모아 꿈쩍도 않던 돌에 큼지막한 구멍을 새긴다는 심정으로…. 이종락 정치부 차장 jrlee@seoul.co.kr
  • 제주 그린에 별 뜬다

    제주 그린에 별들이 쏟아진다. 어니 엘스(남아공)와 리 웨스트우드, 프레드 커플스(이상 미국), 헨리크 스텐손(스웨덴) 등 ‘명인’들이 펼치는 유러피언프로골프(EPGA) 투어 밸런타인챔피언십이 23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골프장(파72·6721m)에서 개막된다. 올해가 두 번째 대회. 최경주(39)와 앤서니 김(24) 등 ‘코리안 파워’의 모습을 볼 수 없는 탓에 지난해에 견줘 다소 김은 빠지지만 ‘출연진’의 무게는 여전히 묵직하다. 세 번째 한국을 방문하는 엘스는 유연한 스윙으로 1994년과 1997년 US오픈, 2002년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한 ‘메이저 사냥꾼’. 한때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이상 미국)과 함께 미프로골프(PGA) 투어를 삼등분했던 ‘황태자’이기도 하다.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지만 2008년 혼다클래식 우승으로 정상 궤도에 오르는 중이다. 엘스는 21일 PGA 투어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은 아시아 골프 붐의 선두 주자고 팬들도 열정적이며 골프에 대한 이해도 높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코스가 어렵고 바람도 예상되지만 20년간 프로로 뛰어 바람에는 익숙하다.”며 자신감도 나타냈다. 세계 9위 스텐손은 지난달 WGC CA챔피언십에서 진흙탕에 빠진 공을 치기 위해 속옷만 남기고 옷을 훌렁 벗은 채 골프채를 휘둘러 화제가 된 선수. ‘스킨스의 제왕’ 커플스도 한국을 다시 찾아 EPGA 투어 시즌 첫 승에 도전한다. ‘대항마’로 나서는 한국 선수들은 모두 35명. 지난해 첫 대회 당시 한국 선수들은 홈코스의 이점을 활용하지 못한 채 줄줄이 참패했다. 앤서니 김이 공동 5위에 오른 것이 가장 좋은 성적. 그조차 이번엔 빠진 탓에 순수한 한국 선수들이 ‘유럽연합’에 맞서야 한다. 이달 초 중국에서 열린 KPGA 개막전 KEB인비테이셔널에서 공동 6위의 성적을 낸 지난 시즌 상금왕 배상문(23)이 ‘척탄병’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최근 브리티시오픈 예선 탈락의 쓴 잔을 든 뒤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서 공동 3위에 오르며 샷 감각을 바짝 끌어올린 김형성(29)도 “국내파의 자존심을 끌어올리겠다.”며 각오를 다진다. 지난해 미디어차이나클래식에서 우승한 노승열(18)도 두 번째 우승을 벼른다. 특히 지난겨울 혹독한 훈련을 감내한 뒤 탄탄한 경험과 관록으로 재무장, KPGA 투어 국내 개막전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강욱순(43)은 “제2의 전성기를 위한 발판을 이 대회를 통해 단단히 다지겠다.”고 강조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1-6 대패한 아르헨, 반세기 만에 최대 충격

    1-6 대패한 아르헨, 반세기 만에 최대 충격

    2일(한국시간)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개최된 2010남아공월드컵 남미예선 12번째 경기에서 1대 6으로 참패한 아르헨티나가 일대 충격에 빠졌다. 스코어로만 본다면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악의 경기였다. 무패행진에 종지부를 찍은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월드컵대표팀 감독은 “볼리비아가 골을 넣을 때마다 칼로 심장을 찌르는 듯 아팠다.”고 말했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축구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공식경기에서 5골 이상을 내주며 어이없이 참패한 건 이번을 포함해 모두 8번이다. 6골을 내주면서 5골 차이로 진 건 1958년 스웨덴월드컵 체코슬로바키전에 이어 51년 만에 이번이 두 번째다. 하지만 이번엔 유난히 충격이 크다. 볼리비아가 약체로 꼽혀온 데다 역대 전적에서도 아르헨티나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를 포함해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는 모두 30번 격돌했다. 아르헨티나가 22승 2무 6패로 전적에선 월등히 앞서 있다. 월드컵 예선전만 따로 떼어 보아도 볼리비아는 전적에서 아르헨티나의 상대가 아니다. 16전 11승 1승 4패로 아르헨티나 앞서 있다. 최근의 경기전적만 보아도 볼리비아는 아르헨티나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이번 경기 전까지 만 12년 동안 볼리비아는 아르헨티나 축구팀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와 맞붙은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한 것도 4년째다. 볼리비아로선 12년 무승·4년 노골로 이어져온 징크스를 이번 경기로 단번에 날려버린 셈이다.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 나시온’은 1일 온라인 설문을 통해 볼리비아전 참패의 원인을 조사했다. 6000여 명이 참가한 설문조사에선 ‘마라도나 감독의 전술에 책임이 있다’는 답이 52.41%로 가장 많았다. ‘선수들이 부진했기 때문’(21.49%), ‘고지대에서 경기가 개최된 탓’(17.87%)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볼리비아가 선전했기 때문’이라는 답은 6.99%에 불과했다. 한편 이날 패배로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남미예선 4위로 내려앉았다. 모두 12경기를 소화한 2일 현재 남미예선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 파라과이(12전 7승 3무 2패·승점 24점) ▷2위 브라질(12전 5승 6무 1패·승점 21점) ▷3위 칠레(12전 6승 2무 4패·승점 20점) ▷4위 아르헨티나(12전 5승 4무 3패·승점 19점) ▷5위 우루과이(12전 4승 5무 3패·승점 17점) ▷6위 콜롬비아(12전 3승 5무 4패·승점 14점) ▷7위 에콰도르(12전 3승 5무 4패·승점 14점) ▷8위 베네수엘라(12전 4승 1무 7패·승점 13점) ▷9위 볼리비아(12전 3승 3무 6패·승점 12점) ▷10위 페루(12전 1승 4무 7패·승점 7점) 사진=나시온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형준 정치비평] 변칙과 기형의 ‘홍길동 선거’

    [김형준 정치비평] 변칙과 기형의 ‘홍길동 선거’

    재·보궐 선거가 이제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르는 국회의원 선거인 만큼 그 결과는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역대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은 예외없이 참패했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2004년 총선후 처음 실시한 2005년 4월30일 재·보궐 선거에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 선거구 6곳을 포함해 23대0으로 완패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선거 직전까지 여당이 야심차게 추진한 4대 개혁입법을 온몸으로 막고자 법사위를 폐쇄하고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국회 파행을 주도했다. 더욱이 대선 비자금과 연계된 ‘차떼기 정당’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선거에서 압승했다. 정동영·김근태 등 우리당의 유력 대권후보들이 장관으로 차출되어 선거에 관여할 수 없었지만 ‘선거의 여왕’인 박근혜 대표가 선거를 진두지휘한 것이 한나라당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선거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한국적 상황에서 재·보궐 선거는 정부·여당을 중간평가하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서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궐 선거를 중간 평가가 아닌 ‘경제 살리기’ 선거로 몰아간다. 경제 한파로 크게 위축된 민심도 이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길리서치가 지난달 실시한 재·보궐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는 여당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견은 48.9%. 반면 ‘경제 살리기에 실패했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자는 야당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견은 31.7%로 나타났다. 분명 이번 재·보궐 선거는 기존 양상과는 달리 변칙과 기형이 판치는 ‘홍길동 선거’로 변질되고 있다. 서자인 관계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민주당은 전혀 예상치 못한 돌출 변수로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를 중간평가로 부르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민주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번 선거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 대한 중간 평가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핵심에 정동영 전 장관의 전주 덕진 출마 선언이 자리잡고 있다. 당의 전략 공천 방침에 반발해 정 전 장관은 무소속 출마도 불사한다는 배수진을 쳤다. 만약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가 현실이 되고, 그 여파로 전주 완산에도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동반 당선된다면, 민주당에 ’선거 참패 책임론’이 대두될 것이고, 당은 당권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도 정 대표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지 세력인 ‘노무현·386세력’이 줄줄이 구속돼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보궐 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측근 실세가 연계된 각종 게이트로 야당이 반사이익을 얻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반대로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비리 사건으로 여당에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재·보궐 선거가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박연차 게이트’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 전 장관이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역사와의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가 있다면 정 전 장관은 아무리 자신의 옛 지역구에서 뜻하지 않은 선거가 치러진다 하더라도 그동안 살신성인의 자세로 대여투쟁에 앞장선 당 지도부를 향해 등 뒤에서 비수를 꽂아서는 안 된다. 현 시점에서 정 전 장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패배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고, 승리하더라도 패배할 수 있다.”는 정치 역설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日 오자와 대표에 등돌린 민심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제1 야당인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의 최대 목표인 정권교체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4일 불법 정치자금수수 의혹설에 휘말린 이후 오자와 대표에 대한 민심의 이반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30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 끝없던 하락으로 점쳐지던 아소 다로 총리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달에 비해 무려 10%포인트나 상승한 25%로 집계됐다. 지지율 20%대는 지난해 12월 이후 처음이다. 또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비율도 13%포인트 떨어진 67%이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14%포인트나 오른 22%였다. 더욱이 총리에 적합한 인물을 묻는 아사히신문의 조사 결과, 오자와 대표는 26%로 아소 총리에 비해 4%포인트가 뒤졌다. 지난달 같은 질문에 오자와 대표는 10%포인트나 앞선 터였다. 더욱이 니혼게이지이신문과 아사히신문의 조사에서 오자와 대표를 겨냥한 사퇴의 목소리는 각각 64%와 63%에 달했다. ‘반 오자와’ 여론은 예상보다 심각한 셈이다. 오자와 대표의 지지율 하락 ‘파장’은 29일 실시된 지바현 지사선거에서 현실화됐다. 민주당과 사민당 등 야4당이 추천한 요시다 다이라(49) 후보가 자민당 지부장인 모리타 겐사쿠(59) 후보에게 100만표 이상의 표차로 참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선거의 귀재’라는 오자와 대표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은 30일 선거와 관련, “오자와 대표의 문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봉합돼 가던 오자와 대표의 대표직 사퇴 압력도 다시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토야마 간사장은 “오자와 대표는 차기 중의원 선거 직전에 다시 대표직 사퇴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라며 일단 확산을 경계하고 나섰다. 또 “선거 직전, 여론의 추이에 따라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모두 책임을 지자.”는 입장도 밝혔다. 지난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 지금껏 정권교체를 위해 달려온 민주당의 ‘마지막 카드’로 보인다. hkpark@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최영철(74) 전 국회부의장이 돌아왔다. 노태우 정부의 통일부총리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나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왔던 그가 15년 만에 사회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언론계·정계·관계가 아닌, 교육자가 되어서다. 서경대학교 총장을 맡은 지 1년 남짓 동안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던 최 총장이 서울 정릉의 서경대 총장실에서 서울신문과 첫 인터뷰를 갖고 입을 열었다.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연말 경호권을 발동했을 때 최 전 국회부의장의 이름이 매스컴에 나왔다. 1986년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라는 대정부 질문으로 정국에 파란을 일으켰던 통일민주당 유성환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과정에서 경호권이 발동된 사례가 소개됐고, 그가 경호권을 발동했다는 것이다. 기억이 어슴프레한 당시에 국회의장이 아닌 부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 이유가 궁금했다. 최 총장은 “당시 이재형 국회의장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제가 임기 2년 동안 의장 직무를 거의 대행하다시피 했어요. 그날도 이 의장이 밤 늦게까지 견디지를 못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제가 총대를 메게 된 것이지요.”라고 소개했다. 경호권을 발동하면서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으려고 다리가 퉁퉁 부을 정도로 여야를 오가면서 중재를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3당 총무’. 담담하던 최 총장의 목소리는 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바뀌자 높아졌다. 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었던 지지자들이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큰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법입니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로부터 박수를 받으려다 모두는 고사하고 지지자들까지 등을 돌리게 하고 있어요. 자기 지지자만이라도 계속 박수를 치도록 해야 합니다. 다 가지려 하니까 좌고우면하게 되고 우유부단하게 되고 아무 것도 못하는 거예요.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대로 밀어붙여야 해요.” ●1987년 5년 중임제 제안에 여야 모두 거부 요즘의 국회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최 총장은 “국회요? 그게 국회요? 난장판이지. 국회가 전쟁터인지 이종격투기장인지 원…. 16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지만 국회의원을 했다고 말하기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워요.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때라면 몰라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바꿔가며 집권을 해서 서로 상대방의 고충과 고민도 알게 돼 대화가 쉬워질 법도 한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대화를 통해 서로 조정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민주정치 아닌가요? 이게 존중되지 않는 국회라면 국회라고 할 수 없지요.” 최 총장은 이런 정치풍토는 25년간 지속돼 온 대통령 단임제의 적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단임제가 합법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데는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정치불안이라는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빠른 시일 안에 대통령 단임제를 중임제로 개헌하고 국회의원 선거구도 중선거구제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털어놓는 비화 한 가지.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여야 8인 정치회담에서 그는 대통령 단임제를 임기 5년의 중임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로부터 거부당했다. 최 총장은 “당시에 대통령을 직선할 경우 꼭 이긴다는 확신이 여야 모두에게 없었어요.”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형태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대통령 중심제가 옳으며, 늦어도 내년 상반기부터는 개헌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서둘지 말고 차분히 분위기 조성 통일부총리를 지낸 뒤 1997년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라는 저서를 펴낸 최 총장에게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을 물었다. 그는 당장에 묘수는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발한 부도수표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이명박 정부가 죽을 맛인 것 같은데, 우선은 서둘지 말고 꾸준히 대화의 문을 두들기며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대중(DJ)·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최 총장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될 교섭 상대를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나이브(순진)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햇볕정책이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보다 제가 먼저 저서 ‘통일로, 막히면 돌아가자’에서 제시한 바 있어요. 그러기에 당초 6·15 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햇볕과 함께 동시에 해결해야 할 핵문제 등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어 경악했어요.” DJ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통일고문회의를 열어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최 총장은 왜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한마디 언급이 없었느냐고 따졌다. DJ는 공동성명에는 언급 되지 않았으나 문서로 써서 줬다고 대답했지만, 그런 문서는 없었다. 최 총장은 “엄청난 현금을 김정일에게 갖다 주고 천문학적인 경제지원을 하는 등 따뜻한 햇볕을 계속 쏟아 비췄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많은 돈으로 북이 협박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을 하는 데 도와준 꼴밖에 안 되고 말았어요.”라고 비판했다. ■“권력무상에 가족 그리워 정치 버렸다” 최영철 서경대 총장이 1993년 통일부총리를 끝으로 사실상 15년 동안의 긴 은둔생활에 들어간 이유는 뭘까. 이런 궁금증을 에둘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그는 “유유자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은둔생활을 결심한 이유는 세 가지. 첫째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참패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16년 동안 선거구에 쏟아부었던 애정과 정성이, 하루아침에 외면당한 데 대한 충격이 너무 컸고 이제는 물러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둘째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23년의 공직생활(국회의원 16년·장관 5년·공무원 2년) 동안 매일 전투하듯 살았다. 자식들이 어느 학교, 무슨 과엘 가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고 일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족에 봉사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은둔생활의 절반을 자녀들이 유학하고 있던 미국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2등으로 만족하자.’는 그의 좌우명이 세번째 이유다. 국회부의장에 부총리에 3개 부처 장관까지 했으면 됐지,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호남의 인재 최영철’에게 정치권의 유혹이 없었을 리가 없다. 동향(목포) 출신의 김대중(DJ) 대통령이 집권하자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는 정중히 사절했다. “DJ와 제 선고(先考)는 사업을 함께 한 적도 있는 사이고 DJ의 막내동생이 저와 초등학교 같은 반이어서 어릴 때부터 내왕이 잦았던 사이예요. 함께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타진해 왔을 땐 참 고마웠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그리 가는 것이 그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웃해 근 40년을 연희동에 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은 뇌의 운동신경에 이상이 있어 거동이 어렵고 사람은 알아보지만 말이 어눌한 상태라 방문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심장 관상동맥에 이상이 있어 작년 말에 조형시술을 했지만, 함께 골프를 칠 때면 드라이브 거리가 최 총장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갈 정도로 건강하다고 전했다. 최 총장은 정정했다. 20년이 훨씬 넘은 옛 얘기를 하면서도 사람 이름과 직책을 정확하게 들면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건강의 비결은 주말에 가끔 치는 골프와 주중에 서경대 뒤 북한산 정릉 언덕을 산책하는 것. 30대의 나이에 언론사 정치부장, 38세부터 시작한 4선 국회의원, 49세의 국회부의장, 3개 부처 장관 가운데 어느 자리가 가장 좋았었느냐고 물었다. 최 총장은 서슴지 않고 “대학 총장이 제일 좋아요. 이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밝고 발랄한 젊은이들 속에서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라며 웃었다. 목포대와 서경대에서 북한학을 2년 정도 강의했던 그가 어떻게 총장이 됐을까. 최 총장은 “김성민 서경대 이사장과의 친분관계에서 비롯됐지요.”라고 했다. 서경대는 옛 국제대학. 이기붕 전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씨가 1947년 설립한 한국대학이 국제대학으로 바뀌었다가 1988년 김성민 이사장이 인수해 정릉에 자리잡고 서경대로 개명한, 62년 전통의 종합대학교다. 대일외고, 대일고교와 대일관광디자인고가 모두 같은 뿌리다. ■ 최영철 서경대 총장·前국회부의장 프로필 ▲전남 목포 ▲목포고·서울대 정치학과 ▲동아일보 정치부장 ▲9·10·11·1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체신부 장관 ▲노동부 장관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목포해양대 객원교수 ▲서경대 석좌교수 ▲서경대 총장
  • [오풍연 대기자 법조의 窓] 미네르바 보석 기각 유감

    [오풍연 대기자 법조의 窓] 미네르바 보석 기각 유감

    지난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예측은 거의 맞아떨어졌고, 정부는 허둥지둥했다. 반면 수백만의 네티즌들은 환호를 보냈다. 팬클럽까지 생겼을 정도다. “미네르바를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이에 언론도 앞다퉈 기사를 다뤘다. 한편으론 미네르바를 확인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헛수고를 했다. 진짜 미네르바 박모(31·구속기소)씨는 올 초 검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벌어졌다. 미네르바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압권은 두 번에 걸친 신동아의 오보다. 검찰이 진짜를 붙잡은 뒤에도 신동아는 우겼다. 신동아에 기고문을 보내고, 인터뷰를 한 K씨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했던 것.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진위논란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신동아의 참패로 끝났다. 동아일보사는 지난달 17일 1면 사고를 통해 “K씨는 자신이 미네르바가 아니라며 당초의 발언을 번복했다.”면서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를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미네르바는 많은 이의 환상을 깨우쳤다. 당초 예상과 달리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금융기관에서 일한 적도 없었다. 공고와 전문대 출신이 전부였다. 인터넷이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속을 할 때도 말들이 많았다. 비난여론이 들끓었지만 검찰은 눈을 감았다. 지난해 7월과 12월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환전업무 8월1일부로 전면 중단’ ‘정부, 달러 매수금지 긴급공문 발송’ 등 허위사실의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법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2일 박씨측이 청구한 보석을 “도주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기각했다. 법관의 판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법관은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박씨는 증거 조사 과정에서 본인이 글을 쓴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가짜 미네르바의 실체도 밝혀진 마당이다. 그렇다면 법률적 판단만 남은 셈이다. 보석을 허가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공판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본다.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을 헌법적 관점에서 살펴 봤다. 모든 국민에게 표현 및 학문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특히 학문의 자유는 일반 표현의 자유보다 더 두텁게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독일은 일찍이 1850년 프로이센 헌법에서 학문의 자유를 별도로 정했다.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5조 3항은 “예술 및 학문, 연구 및 교수는 자유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씨의 기고를 학문으로 볼 수는 없을까. 그가 만약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현직 교수·연구원 등으로 있더라도 같은 잣대를 들이댔을까. 허위사실만을 뚝 떼어 처벌하는 것이 능사일까. 우리 사회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영 떨칠 수 없다. 그래서 공판이 더욱 주목된다. 오풍연 대기자 poongynn@seoul.co.kr
  • 베리타스 새 모델 친환경엔진 장착

    베리타스 새 모델 친환경엔진 장착

    GM대우의 최고급 대형 세단 베리타스(Veritas)가 올 상반기 중 새 모델로 교체된다. GM대우 고위 관계자는 “올 상반기 안에 베리타스의 새로운 모델을 수입해 시판할 것”이라면서 “기존 베리타스의 플랫폼은 유지한 채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파워트레인 계통 및 외관 일부 등을 새롭게 바꾼 ‘마이너 체인지’모델로, 이름은 베리타스를 계속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판매 중인 베리타스는 지난 9월 미국 GM의 계열사인 호주 홀덴사의 ‘카프리스’를 국내 실정에 맞게 손질해 완성차 형태로 들여온 것이다. 베리타스 새 모델도 홀덴사에서 수입한다. 특히 베리타스 새 모델에는 유로4 이상의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친환경 엔진이 탑재될 예정이다. 배기 가스에 함유된 유해가스를 획기적으로 저감시켜주는 필터 등 장치가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베리타스는 호주에서는 인기 차종이지만, 국내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판매량이 단 28대에 그칠 정도로 참패도 경험했다.그러나 올 들어 5800만원 안팎의 판매 가격에서 공식적으로 500만~최대 1200만원까지 깎아주는 할인 행사를 펼치면서 1월 128대, 2월 429대 등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가격 할인이 단종을 앞두고 물량 소진을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예상이 흘러나왔다. GM대우 관계자는 “대형차는 자동차 회사의 자존심으로 신형 베리타스를 통해 3000㏄급 라인업을 계속 채워나갈 것”이라면서 “한국인의 체형과 취향에 맞게 실내 인테리어 등 디자인을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박희태 설왕설래 정동영 오락가락

    국회의 2차 입법전이 마무리되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4월 재·보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여야 원외 거물의 복귀 여부다. 한나라당은 출마 의사를 굳힌 박희태 대표가 어느 곳을 선택할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박 대표 쪽은 경남 양산 출마를 적극 검토해 왔으나 최근 인천 부평을로 시선을 되돌리고 있다. 양산 지역의 같은 당 허범도 의원에 대한 선거법 관련 대법원 확정 판결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 대표 쪽은 부평을에 출마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한 측근은 5일 “당 지지도가 높은 만큼 나가면 이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역내 일부 유권자들도 박 대표의 출마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실세가 지역구 의원이 되면 부평의 최대 현안인 GM대우 경영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GM대우 부평공장의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상당수가 부평을 지역에 살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으로 MBC 사장 출신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이날 “(박 대표가 가는 곳은)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 어디든 갈 테니 한판 붙어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공개 서한에서 “박 대표는 미디어 관련법과 관련된 사회적 논의기구를 폄하하는 발언으로 관련법을 한나라당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각을 세웠다. 민주당에서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선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대선 참패 이후 당을 바닥부터 다지며 재건하고 있는 당 지도부로선 정 전 장관의 복귀를 쌍수 들고 환영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대선 후보였던 정 전 장관이 텃밭인 전주 덕진을에서 손쉬운 재기를 노리는 것에 대해서도 당내 일각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 당직자는 “격전지에서 여당의 유력 후보와 맞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당내 화합과 당 이미지 부각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 전 장관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선 후보로 최선을 다한 만큼 본인이 원한다면 굳이 정 전 장관의 고향인 전주 덕진을 공천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정 전 장관의 결단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외곽지지세력인 ‘한민족 경제비전 연구소’가 준비모임을 가질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전북 지역의 대표적 정치인으로서 정 전 장관과 맞수 관계인 정세균 대표가 공천 문제에 최종적으로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흥미롭다. 한편 한나라당은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재·보선 출마자를 공모하고, 민주당도 다음주 초부터 공천심사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다. 홍성규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민주노총은 내우외환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은 ‘입법 전쟁’의 와중에 존재감이 엷다.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왜 이렇게 됐을까..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 창당과 감격적인 원내 진입,그리고 그 뒤의 내리막길을 줄곧 지켜본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애초의 정당 설계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채 전 실장은 10여년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지켜본 경험을 녹여내 지난 1월 심사를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을 통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중정당 모델을 따라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물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화,탈이념화 상황에선 파편화된 노동자나 서민 대중을 대변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진보에 길을 묻다’ 8회 주인공으로 3일 만난 채 전 실장은 “민주노총을 토대로 손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민주노동당 퇴조의 원인을 짚었다.2004년 원내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이듬해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기록한 뒤 당내 헤게모니가 정파 대표에서 원내 의원에게로 옮겨졌는데 채 전 실장은 이런 흐름에서 원내정당 모델이 더욱 적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이번 논문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원내정당 모델은 “국민과 소통능력이 있고 정책개발 능력이 있는 원내 의원이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평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생활정치적 요구들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이념과 계급,정파가 줄어드는 대신,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욕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해진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에 과시했던 진성당원제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파 대표들에 의해 포획돼 사실 투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발언권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그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이라고 개탄했던 상황을 면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드러난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당 모델은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 모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물적 기반으로 삼는 조직된 노동자,정규직만을 더이상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비정규직이나 서민 대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환골탈태란 주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사학위 논문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녹여든 것 같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했다.시민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어졌다.어떤 정책과 이슈,쟁점 등에 대해 시민들을 설득할 만큼 잘 알지도 못했고, 전문성도 떨어졌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2004년 원내진출 이후 높아진 기대에 견줘 당내 정파싸움,민주노총의 권력 다툼과 부패 등을 보면서 당의 지지기반인 비정규직이 당에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당의 전망과 집권 가능성을 회의하게 됐지만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했다.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지도부의 무능이나 이기심,오류 때문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를 당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지구화 정보화 탈냉전이란 거대한 변화에 맞는 정당모델,정치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80년대식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당의 한계나 오류를 극복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의정정책실장 등을 맡으면서 당내 갈등을 피부로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2004년 제1 정책위원회 정책국장,2005년 3월부터 의정실장을 맡으면서 정파 지도부와 원내 의원들의 갈등을 목격했다.갈등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당의 문제점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했다.  당시 당에선 대중정당 모델을 철저히 추종했고 원내정당화 모델을 철저히 반대했다.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죽했으면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가 될 수 없게 제도까지 만들었겠는가.중앙당 지도부는 의원들을 통제하려 했는데 현실은 국민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의원들을 먼저 바라보았다.의원들이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선 자율권이 필요했는데 중앙당에선 통제하고 싶어했던 거다.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었다.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것은 이름도 모르는 정파 대표가 아니라 의원들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당의 헤게모니 자체가 점차적으로 원내 의원들 중심으로 넘어갔고 당의 구조도 조금씩 바뀌게 됐다.    ●민주노동당 10년의 공과를 정리하면.  정당 사상 최초로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가 창당한 노동자계급정당,사회주의적 이념정당,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 독점적이고 편향적인 기득권층과 보수세력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다양하게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가능성을 2004년 원내진출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또는 지구화,정보화,후기산업화,탈이념화 등의 달라진 시대상황은 과거 단일한 노동자 계급과 조직으로 뭉칠 수 있었던 정당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으로 파편화되고,노동자의 이익이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조합도 당도 유연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 변화의 시대에 하나의 이념과 단일한 위계조직을 강조하는 운동권 모델을 고집함으로써 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들의 복잡한 이익에 반응하지 못했다.결국 대기업 소속과 정규직,조합원으로 표현되는 상층노동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서 다수의 비정규직과 약자들이 이탈하게 된 것은 그 한계라 할 수 있다.그 문제가 집약돼 나타난 것이 2005년 울산 북구 재선거 패배였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이 시대착오적인 계급환원주의 노선과 사회주의적 계급정당노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산업화시대에 유행했던 조직논리,이념논리,정당논리,이른바 대중정당모델에 집착했던 것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울산 북구 패배 이후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같은 잘못이 되풀이된 이유는.  많은 불만과 문제 제기들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당모델까지 검토하지 못한 것은 당이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모태로 출범한 한계라고 생각한다.민주노총을 토대로 상대적으로 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흔히 민주노동당의 두 가지 성역이 있다고 했는데 민주노총과 북한이란 성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당모델을 원내정당 모델로 바꿨으면 오늘날의 위기가 없었을까,이런 역질문이 가능할 것 같은데.  원내정당화 모델을 생각한 것은 당의 헤게모니가 원내 의원 중심으로 넘어가는 국면과 맞물려서였다.울산 북구 패배 이후 당의 총체적 위기가 확인됐다.지지율이 18%에서 5% 이하로 바닥을 쳤다.울산은 노동자 밀집지역이어서 대중정당 모델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패배를 했고 그 패배의 원인이 비정규직의 외면과 이탈 속에서 당이 망가진 것이었다.그 늪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을 인정받은 의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확인이 됐는데도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민주노동당은 대단히 위계적인 조직이다.그 조직에 아직까지도 민주노총의 헤게모니가 작용하고 있다.30%의 할당제가 관철되고 있다.국민적 차원에서 개방,분권적인 개혁,다양한 이념을 수용해야 한다는 전략 등이 철저히 가로막힌다.  2007년 대선 후보를 경선해야 한다는 안팎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다.개방형 경선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확인하고도 폐쇄적인 당원 직선제로 지분이 큰 정파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  민주노총의 한계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대하지 못한 자업자득이었다.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의 변화가 감지되나.  18대 총선 이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하지만 미진한 것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여전히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당을 개방화,분권화,네트워크화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4월 재보선에서 국민경선 대신 민중경선 으로 후보를 선출하려 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선거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논문의 문제의식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정당으로 대중정당 모델이냐 원내정당 모델이냐는 학계 논쟁이 있었다.최장집 교수 등이 얘기한 대중정당 모델이 시대적인 적실성이 있다고 보았다.원내진출 이후 당 생활을 해보니 한계가 많이 드러났다.사회 변화에 적응 못한 정당 모델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았다.  대중정당 모델의 쇠퇴는 당지도부의 리더십과 운영상의 오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배경 때문이었다.시대에 뒤처진 대중정당모델을 고집했을 때 이념과 정파의 편향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대중정당 모델을 포기하고 대안이 되는 모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본다.  당의 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엔 의원들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의정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를 대중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것이 대안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얘기들을 분당 이전부터 해온 것으로 아는데 반응들은 어땠는지.  비정규직을 더 많이 대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원인을 따질 때 그들은 사람의 문제,성품의 문제 이런 쪽으로 봤다.더 좋은 사람이 비정규직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정당모델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진보신당은 원내정당 모델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분당 이후 반작용으로 신규 당원이 입당하고 민주노총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이 출발했다는 점에서,노회찬과 심상정이란 두 전직 의원의 지지층이 흡수된 측면이 있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역 의원이 없어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중정당모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 수 있었다.후기 산업화 사회에선 대중이라 함은 비정규직,비노조원,화이트칼라처럼 어느 곳에 소속될 수 없는,유동성이 큰 사람들이다.비조직된 대중이 더 많다.위계적인 조직 구도가 아닌 네트워크화된 대중만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유연성이 대중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동과 사회’ 지난해 12월호에 기고한 ‘노조원들은 시민적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선진 노동자들이 왜 다양성을 잃고 기득권층으로 고착됐는지.  개인과 조직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위계적인 조직에 속하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다.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개성이나 끼를 발산할 수 있다.계급환원적인 생각,집단을 궁극선(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전체주의적 사고로 고착화된다.특정한 사안에 대한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땐 유리하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처음 창당 때는 진성당원제라는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이념적으로 편향된 당내 정파 지도자들이 당을 포획해놓고 있었다.다수의 당원은 말을 사실상 제대로 못하고 기껏해야 투표하는 것이고 발언권이라든가 소통이 보장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에서 소외되고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페이퍼 당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참여민주주의란 이상이 당을 장악한 정파 엘리트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니까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재미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원들이 당에 묶여 있으면 정파가 시키는 대로 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소신있게 큰 이득을 위해 국민과 소통할 수 없고 당내 정파구도가 약화되고 의원들에 권력이 넘어가면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이 검증된 의원들이 국민들과 소통할 공간이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꿈꾸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진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자.보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 진보의 논리지만 진보만이 진리라는 역편향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성악(單聲樂)적인 구도가 있다.그러나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진보가 필요하다고 본다.즉,진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세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라는 시각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정도로,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잠정적인 결론 수준에서 존재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저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방식으로서의 진보, 다양성 속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둘째.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로서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 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용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어떤 점에서 진전됐느냐 묻는다면.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된다고 본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지 않나.최장집 교수도 그런 점에서 지적당했다.촛불시위 때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반응하지 못했던 정당들의 한계를 봤다.이게 핵심이다.시민들의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에 반응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념과 계급 정파가 줄어들더라도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이 있어야 한다.소통 속에서 발견된 욕구를 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 생산능력이 담보될 때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원내정당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다.    ●두 당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대중정당 모델에선 당의 이념과 게급,정파,조직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약화될 것이다.당이 원내 의원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유권자,시민사회와의 연계 부분이 강조된다.당원 중심을 벗어나 일반 유권자,지지자들도 당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시민사회의 요구가 전달되고 이것들이 의회에서 토의를 통해 합의되고 정책 결정이 되고 국민에게 성과물로 다가온다.    ●명칭은 원내정당 모델이지만 정당은 조그맣고도 시민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은 엘리트가 강조되는 게 당연하다.다만 행위자가 정파냐 아니면 국민들의 이익이나 선호에 접근할 수 있는 원내 의원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만큼 물적 기반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고정된 지지기반이 없어 불안정할 수있다.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잘 되고 있느냐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민주노총이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과거 지지기반으로 갈 수 있겠는가.간다면 상층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금 더 좁아진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연성이 큰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데 느슨한 수준의 네트워크를 가능케하는 것은 정책능력과 소통능력 뿐이다.그때그때 이슈가 터지고 시민들의 요구가 터져나올 때 생활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원내정당 모델이 대안이라고 본다.  원내정당 모델이 현실에서 나타날 때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하지만 대중정당 모델보다 낫다는 생각이다.원내정당 모델을 현실에서 구현할 때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분산화하고 개방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진보신당의 지못미 당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새 이슈를 개발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진보정당 통합이나 반(反)MB 전선에 참여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점증할 것이란 지적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진보진영내에서 힘이 약하면, 함께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소수의 의견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있다.진보정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진원씨가 걸어온 길  늦깎이 초보 연구자라고 자신을 낮춘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국민승리 21에 1998년 입당해 지난해 진보신당과 분당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10년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단국대 사학과 88학번인 채 연구원은 민주노동당에서 경험한 희로애락과 한계를 바탕으로 2005년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고 지난 1월에야 어렵사리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2004년 원내 진출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민생 법안인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이자제한법’.정치개혁의 대표 법안으로 손꼽히는 ‘1인 2표 정당명부비례대표 도입’에 관여했던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창당 이후 정책위원회 제1정책조정위원회 정책국장으로 정치관계법을 담당했으며 이후 의정정책실장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과 정책 지원을 담당했다.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인의 외조를 위해 중앙당을 사직한 뒤 평당원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3월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안한 혁신안 ‘생활속의 진보’가 부결되자 탈당했다.현재 어느 당에도 몸담고 있지 않다.  전문연구자의 길을 걷는 한편 기회가 닿으면 의정활동이나 입법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민주노총은 내우외환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은 ‘입법 전쟁’의 와중에 존재감이 엷다.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왜 이렇게 됐을까..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 창당과 감격적인 원내 진입,그리고 그 뒤의 내리막길을 줄곧 지켜본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애초의 정당 설계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채 전 실장은 10여년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지켜본 경험을 녹여내 지난 1월 심사를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을 통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중정당 모델을 따라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물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화,탈이념화 상황에선 파편화된 노동자나 서민 대중을 대변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진보에 길을 묻다’ 8회 주인공으로 3일 만난 채 전 실장은 “민주노총을 토대로 손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민주노동당 퇴조의 원인을 짚었다.2004년 원내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이듬해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기록한 뒤 당내 헤게모니가 정파 대표에서 원내 의원에게로 옮겨졌는데 채 전 실장은 이런 흐름에서 원내정당 모델이 더욱 적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이번 논문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원내정당 모델은 “국민과 소통능력이 있고 정책개발 능력이 있는 원내 의원이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평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생활정치적 요구들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이념과 계급,정파가 줄어드는 대신,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욕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해진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에 과시했던 진성당원제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파 대표들에 의해 포획돼 사실 투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발언권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그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이라고 개탄했던 상황을 면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드러난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당 모델은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 모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물적 기반으로 삼는 조직된 노동자,정규직만을 더이상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비정규직이나 서민 대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환골탈태란 주문이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이온’ 정식 서비스 100일…“희망 쐈다”

    ‘아이온’ 정식 서비스 100일…“희망 쐈다”

    MMORPG(온라인모험성장게임) ‘아이온’이 이달 4일자로 정식 서비스 실시 100일을 맞았다. 이 게임은 지난해 11월 25일 정식 서비스를 실시한 이후 PC방 점유율 1위, 동시접속자수 15만~20만명을 기록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게임 순위 사이트인 게임트릭스의 최신 자료를 살펴보면 이 게임은 현재 16주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최찬석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온은 초기 기대치 이상 성공해 한국 게임시장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고 말했다. ‘아이온’은 2006년 빅3 MMORPG 흥행참패의 여파로 공개전부터 적지 않은 부담을 가졌다. 그동안 대작게임 경쟁이 이어져왔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해 시장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정식 서비스 이후 상황은 반전됐다. 꾸준한 흥행 성공으로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것은 물론 침체된 국내 게임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다. 홍종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온’이 국내 게임시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잘 만든 게임 한편이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을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온’은 국내 게임시장 흥행몰이에 성공한 것에 이어 앞으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첫 번째 시험무대는 중국으로 3월 26일부터 4월 2일까지 1주일간 사전 공개 서비스를 실시한다. 개발 초기부터 해외시장에 초점을 맞춘 만큼 이제부터 본격적인 경쟁의 문턱에 돌입한 셈이다. 홍종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온은 해외시장을 전제로 개발된 만큼 향후 해외시장에서의 승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만나고 싶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극작가 신봉승

    [만나고 싶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 극작가 신봉승

    “역사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나의 감시자였고, 나는 그 역사의 섭리 안에서 살아왔지요. 역사와 벗하며 살아온 지난 40년은 나의 존재이유인 사극을 쓰기 위한 지적 몸부림의 세월이었습니다.” 1980년대 만 8년 동안 MBC TV를 통해 방영된 대하사극 ‘조선왕조 500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신봉승이란 이름은 결코 낯설지 않다. 1972년 ‘사모곡’을 시작으로 정통 사극에 천착해온 그는 ‘연화’ ‘인목대비’ ‘임금님의 첫사랑’ ‘왕조의 세월’ ‘한명회’ 등 숱한 히트작을 내며 역사드라마의 현장을 지켜온 한국의 대표 극작가.올해로 77세, 붓을 드는 데 지쳤을 법한 나이지만 1975년에 발표한 ‘임금님의 첫사랑’을 새롭게 고쳐 쓰며 10여년 만에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년 초 SBS에서 방영될 이 작품은 벌써부터 사극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인사동 한국역사문학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사극 얘기뿐 아니라 최근 공개된 정조 어찰의 의미, 문단 데뷔시절 일화, 정치권과의 인연 등 다양한 화제를 예의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로 풀어놨다. 연구소에 들어서니 책꽂이 한 편에 가득 꽂힌 ‘조선왕조실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늘의 작가 신봉승을 만든 건 8할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모두 413권입니다. 하루 100페이지씩 읽어도 꼬박 4년이 걸려요. 웬만해선 진력이 나 그거 다 못 읽습니다. 나는 40년 세월을 그걸 붙들고 살았어요. 그러지 않고는 사극을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총 48권의 대하소설 ‘조선왕조실록 5백년’도 펴낸 역사마니아인 그는 요즘 사극작가들에게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사극을 잘쓰는 비결은 실록을 통독하는 것입니다. 자기 작품에서 다루는 시대만 골라 읽으면 안 돼요. 적어도 앞뒤 30년의 역사는 드라마와 직접 관련이 없어도 반드시 찾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물에 대한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죠. 예컨대 양반집 첩의 소생으로만 알았던 조선 성종 때 권신 유자광이 경복궁 문지기인 갑사(甲士) 벼슬을 했다는 사실은 그가 죽고 30년 뒤에 나온 얘기입니다.” ●역사의식 심어주는 게 사극 임무 사극이든 역사소설이든 그는 철저한 독서와 고증을 통한 ‘정통’ 역사물을 고집한다. 그러면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임금님의 첫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강화도령 철종의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철종은 더이상 땔나무나 하는 ‘바보’ 도령이 아니라 사뭇 똑똑한, 갈등하는 임금으로 등장한다. 철종 때 좌의정을 지낸 심암(心庵) 조두순이 쓴 철종 행장기에 나오는 ‘성군의 자질이 보였다.’라는 대목을 참고했다. “더벅머리 총각이 14년 동안이나 임금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이 작품의 극적 재미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사극이든 역사소설이든 그가 작품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대중에게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작가, 특히 역사작가의 몫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주목하는 작가가 일본의 시바 료타로다. “일본이 시바 료타로 같은 역사소설가를 갖고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는 전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확고한 역사의식과 민족적 긍지를 심어줬어요. ‘료마가 간다’라는 그의 소설 한 권이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그가 소설을 통해 부각시킨 메이지 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는 지금도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지요. 우리에게도 그런 의식 있는 역사작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과 일본에서 종종 ‘한국의 시바 료타로’로 불리는 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조선왕조사에 정통한 그에게 정조 어찰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기존의 ‘정조 독살설’은 이제 폐기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정조가 반대세력인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에게 수백통의 어찰을 내렸다고 해서 둘 사이가 가까웠고, 따라서 정조 독살설의 배후가 심환지일 수 없다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이라며 “임금의 독살 문제는 속성상 언제나 설(說)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조 어찰을 통해 개혁군주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알고 시대사 자료를 얻게 된 데서 의미를 찾아야지 독살설 논란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라는 얘기다. 작가 신봉승은 스스로 “문자로 하는 장르는 모두 섭렵했다.”고 말한다. 시인, 문학평론가, 소설가, 극작가 등 가히 르네상스맨이라 할 만하다. 그는 1957년 청마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이슬’이란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로 출발해 역사드라마로 입신하기까지 그의 삶은 곧 우리 문학사의 축도다. “데뷔 당시 우리 문단엔 100명 정도의 문인밖에 없었어요. 청마 선생은 추천이 박하기로 유명했습니다. ‘추천받을 만하지만 당신의 분발을 위해 추천하지 않는다.’는 식이었죠.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을 받은 사람은 100명이 넘었지만 청마의 추천을 받은 이는 10여명에 불과했어요.” 그 뒤 그가 평생 문학스승으로 삼은 사람은 편운(片雲) 조병화 시인이다. 조 시인이 중앙대에서 경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기자 학생 신봉승 또한 잘 다니던 중앙대를 떠나 경희대 국문과로 편입, 사승(師承)관계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카고’ 영화화되길…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이지만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다. 1970년 ‘해변의 정사’라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던 일이다. “윤정희·남성우 주연의 멜로영화였지요. 시나리오 창작 경험만 믿고 불쑥 남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참패했지요. 그러곤 미련 없이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꼭 영화로 만들었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 물론 감독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로서다. “마지막으로 쓴 ‘크리스마스 카고(cargo)’라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을 맡기로 했는데 갑자기 타계하는 바람에 영화가 되지 못했어요. 1·4후퇴가 한창인 크리스마스 전날, 10만명의 민간인을 배에 태우고 흥남 부두를 떠나면서 벌어지는 극적인 상황을 다룬 작품입니다.” 재주 많은 사람에게 뛰어난 재주 없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하지만 작가 신봉승에게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그는 드라마와 소설, 시나리오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모두 일가를 이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에게 의미있는 것은 역사드라마다. 젊은 시절 연비의식을 치르고 법련거사(法蓮居士)라는 법명까지 받은 불교신자이지만 그는 “나의 종교는 역사다.”라고 강조한다. ●“남의 밭에서 노는 건 위험” 선 굵은 보스 기질과 해박한 역사지식으로 늘 주위를 압도하는 그는 문화계 최고의 마당발이다. 문화 쪽뿐 아니라 정·관계, 재계, 종교계까지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역사를 알기에 절대로 발을 담그지 않은” 곳이 있다. 정치다. “나는 아마 현대그룹 고(故) 정주영 회장의 ‘사업가 아닌 유일한’ 친구였을 겁니다. 정 회장이 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갈 때 선거캠프 대변인을 맡아달라고 그렇게 간청했는데, 나는 출마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으니…. 한운사 선생을 비롯해 당시 한 가락 하는 극작가들이 모두 국민당 발기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지요. 나는 그것도 거부했습니다. 그 대신 내가 추천한 탤런트 K씨, C씨 등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됐지요.” “남의 밭에서 노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친구여, 심려치 말게…” 희수(喜壽)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몸도 마음도 강건한 노()작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그는 지금도 한달에 10여차례 대중강연에 나서고, 추계예술대 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 나이에 내가 강의하면 나 때문에 강의를 맡지 못하는 젊은이가 하나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전에 대학 강의를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학교측에서 오히려 ‘석좌’라는 타이틀까지 주며 부탁해 아직 선생 노릇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날로 이악해져 가는 세상이기에 그 따뜻한 배려의 마음씨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작가는 인터뷰를 마친 기자에게 얼마 전에 쓴 것이라며 ‘요즘 형편’이란 시 한 구절을 들려줬다. “친구여, 심려치 말게/목조이듯 밀려드는/숨가쁜 약속은/미움을 받더라도 거절하기로 했네/설혹, 어쩌다가 가게 된/호화로운 연석이라도/사진 찍히는 헤드 테이블 근처에는/얼씬거리지 않기로 했다네”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극작가 신봉승 약력 ▲1933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릉사범·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대종상심사위원장,공연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한국방송대상,서울시문화상,대한민국예술원상 등 수상 ▲저서:‘조선왕조 5백년’‘한명회’‘왕건’‘이동인의 나라’등 소설과 ‘직언’‘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국보가 된 조선 막사발’‘조선의 마음’등 역사에세이 외 다수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추계예술대 영상문예대학원 석좌교수,한국역사문학연구소장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의 대하(大河)에 빠져 지내는 신봉승씨. 그는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가이트너 ‘굴욕’ 장관 데뷔에 주가 4.6% ↓

    10일(현지시간) 발표된 버락 오바마 정부의 ‘금융안전계획’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었다. 탈세 등으로 위기를 겪었던 그에게 이날 발표는 사실상 장관으로서 ‘데뷔’ 무대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장과 정치권의 반응은 냉랭했다. 뉴욕증권거래소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에 비해 4.62% 떨어지면서 8000선이 무너진 7888.88을 기록했다. 나스닥종합지수도 4.2% 내려간 1524.73에 거래를 마쳤다. 상원에서도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실망감을 드러냈다.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은 ‘미적지근한(lukewarm)’, ‘냉랭한(chilly)’ 등의 단어로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참패(fiasco)’라고까지 표현했다. 전날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가이트너는 최고의 순간을 누릴 것”이라고 공언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상원 인준 과정에서 잡음을 낸 사람 중 유일하게 ‘생존’한 것을 의식, 비행기도 일등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을 타는 등 몸을 낮춰온 그에게는 그야말로 참담한 시작이다.시장은 이번 계획이 재원 조달 방법이 명확하지 않는 등 추상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월가에서는 배드뱅크 설립 계획을 철회하고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민·관펀드 조성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에 대해 꼬집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이에 대해 가이트너 장관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항변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