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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이라크서 또다른 잔학행위

    하디타 양민학살 사건을 저지른 이라크 주둔 미 해병대와 같은 부대의 군인들이 비무장인 이라크 포로들을 사살한 범죄행위가 새로 드러나 군관계기관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6일 BBC 등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1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이라크 팔루자에서 제1 해병연대 3대대 킬로(Kilo)중대 소속 해병대원들이 적어도 8명의 비무장 이라크 포로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가 포착돼 미 해군범죄수사대(NCIS)가 수사하고 있다. 미 해병대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적어도 세 번째다. 킬로중대는 2005년 11월19일 바그다드 북서쪽 하디타 마을에서 소속 부대원 1명이 도로매설 폭탄 공격으로 숨진 데 앙심을 품고 여성과 어린이 등 무고한 마을주민 24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부대이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하디타 사건과 관련, 킬로중대 소속 3명의 해병대원이 살인 혐의로,4명의 장교가 사건은폐 등 혐의로 각각 기소된 상태다. 팔루자 사건과 관련해 조사받은 병사들이 하디타 사건과 직접 연관돼 있지는 않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전했다. NCIS는 믿을 만한 범죄증거를 확보했다는 사실 이외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다만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종군기자인 나다니엘 헬름스는 잔학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을 공개했다. 군 고위 관계자도 그의 주장이 NCIS의 조사내용과 일치한다고 확인했다. 팔루자 전투는 ‘베트남전 이후 가장 격렬한 시가전’이라고 미 해병대는 규정하고 있다.6주일 계속되면서 미군 71명이 숨지고 623명이 부상했다. 헬름스는 “당시 해병대는 반군 소탕을 위해 여러 집들을 뒤지면서 시가전을 펼치다 여럿을 포로로 붙잡았다. 이를 상부에 보고했을 때 ‘아직도 살아있어?’라는 반문이 있었으며, 이것이 ‘사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해병대원들은 이들을 살해했고, 수분후 공습으로 집이 무너지며 시체들은 잔해에 묻혔다. 팔루자 사건은 상병으로 근무했던 전 킬로중대원 라이언 위머가 연방 비밀경호국 취업을 위해 면접할 때 “부당한 사살행위에 연루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밝혀졌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50년 고아 절도범 모친 상봉

    50년간 고아로 자라왔던 50대 절도범이 경찰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상봉하게 됐다.서울 강동경찰서는 28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박모(52)씨를 조사하던 중 50년 동안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부모의 생사도 모른 채 살아왔다는 사연을 듣고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찾게 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씨가 기억하고 있는 부모의 이름과 아버지가 6·25참전용사였다는 점을 통해 보훈처에 수소문을 의뢰했고, 어머니 이모(70)씨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강진, 참전 용사에 매월 2만원 수당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 처음으로 기초자치단체가 참전 유공자들에게 다달이 수당을 준다. 27일 전남 강진군에 따르면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참전 유공자에게 명예수당을 주는 조례를 제정, 다음달부터 다달이 2만원을 준다. 지급 대상자는 두 전쟁 참전 유공자 가운데 현재 국가에서 참전 명예수당으로 매월 7만원을 받는 사람들로 65세가 넘어야 한다. 또 이들이 사망하면 위로금으로 15만원을 지급한다.강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美 하원 외교위 ‘위안부 결의안’ 27일 통과 가능성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하원의 외교위원회에서 26일(현지시간) ‘위안부 결의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외교위는 이날 12개 안건 가운데 위안부 결의안을 세 번째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25일 공식 예고했다. 현재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미래 세대에 범죄행위 교육을” 외교위에 상정된 위안부 결의안의 안건 번호는 H.Res.121.10개 단락의 본문과 4개항의 대 일본 촉구안으로 구성돼 있다. 결의안은 본문에서 일본 정부가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말까지 점령지의 젊은 여성들을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성 노리개로 뽑아가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일 군대가 위안부들을 집단 강간하고, 강제로 낙태수술을 하는가 하면 인간적 모욕을 통해 자살로 몰아넣는 등 유례가 없는 잔인하고 광범위한 군대창녀 체제를 만들었다고 고발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최근 일어나는 위안부 책임 회피 움직임도 지적했다. 결의안은 그러면서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명확·명료하게 받아들이고 ▲총리가 일본 정부의 대표로서 공적인 성명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위안부들이 일본군을 위해 성노예가 되고 매매됐던 사실을 부인하는 어떤 주장도 명확하고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게 이처럼 끔찍한 범죄행위에 대해 교육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제안들을 따르라고 촉구했다. ●외교위 공화의원 23명 중 4명만 서명 1월31일 결의안이 외교위원회에 제출될 때 6명이었던 위안부 결의안 서명 의원은 145명으로 늘었다. 미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3분의1 정도가 서명한 셈이다. 외교위 소속 의원 50명 가운데 서명한 의원은 22명이다. 외교위 소속 민주당 의원 26명 가운데는 톰 랜토스 위원장과 에니 팔레오마바에가 아시아태평양국제환경 소위원장 등 18명이 서명했다. 반면 외교위에 소속된 공화당 의원 23명 가운데 서명한 의원은 에드 로이스(캘리포니아)·크리스토퍼 스미스(뉴저지)·댄 버튼(인디내나)·마이클 매카울(텍사스) 4명뿐이다. 서명하지 않은 의원들이 결의안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랭글 세입위원장 등 이른바 친한파 의원들은 대부분 서명했다. 이 밖에 민주당의 2008년 대통령 선거 경선에 나선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오하이오)과 케네디 가(家)의 패트릭 케네디 의원(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아들)도 서명에 동참했다. ●日, 하원 전체회의 부결 로비 펼 듯 위안부 결의안이 외교위를 통과하게 되면 일본은 하원 전체회의에서 결의안을 부결시키거나 아예 상정되지 못하도록 강력한 로비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여의치 않을 경우 결의안 내용을 완화시키는 로비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일본 정부는 적지않은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된다. 미 의회의 결의안이 일본 정부에 대해 강제력을 갖지는 않지만 일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미 의회 소식통은 “미 의회를 통과한 결의안이기 때문에 주미 일본대사관에서 입장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살사댄스 마니아 ‘우리말 달인’ 등극

    긴 생머리에 가녀린 몸매, 작은 얼굴에 새침한 표정이 매력적인 류성(29)씨는 무역회사에 다니는 재원이다. 살사댄스 마니아인 그녀는 벌써 5년째 일주일에 평균 사흘, 많으면 닷새까지 살사댄스를 춘다는데…. 11일 오후 7시30분 전파를 타는 KBS 1TV의 ‘우리말 퀴즈쇼-우리말겨루기’에서 ‘우리말 달인’이 탄생한다.2003년 11월5일 첫 방송 이후 11번째이다. 그동안 인터넷 예심에 참여한 사람이 모두 10만여명에 이른다니 ‘우리말 달인’에 오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류씨가 상금 2560만원을 거머쥐며 달인에 오른 소감은 그러나 “‘우리말 겨루기’에 나가려고 공부하느라 살사댄스를 한 달 동안이나 추지 못해 아쉬웠다.”는 ‘귀여운 투정’이었다. 류씨의 달인 등극은 예상치 못한 대 반전의 결과였다.1단계에서 4등으로 시작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해 2단계 진출도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빛나는 실력을 발휘하며 2단계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후에도 류씨의 달인 도전은 쉽지 않았다. 모두들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유지환(25·고려대 국문과 3년)씨의 우승을 점치고 있는 가운데 류성씨는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 결국 역전승을 거두었다. 류씨는 그동안 ‘우리말 겨루기’ 방송을 꼼꼼히 모니터하면서 실생활에서 바른 우리말을 쓰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또 방송에 출연해서는 긴장하지 않았고 점수에 동요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달인에 오른 비결로 꼽았다. 그녀는 “상금은 가장 먼저 베트남 전 참전 용사로 상이군인이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베트남 여행에 보태겠다.”면서 “곧 결혼할 언니의 혼수 비용에도 도움줄 것”이라고 말했다.‘우리말 겨루기’는 흔히 쓰이는 잘못된 표현과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예쁜 우리말을 퀴즈로 알아보고, 우리말 상식을 쌓아가는 프로그램이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나사빠진 서울현충원

    국립현충원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묘비가 뒤바뀌어 유족이 현충일 참배를 제때 못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6일 오전 9시쯤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 51번 묘역 231번 묘지를 찾은 베트남 참전용사 고 오세진씨의 유족들은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40년째 그 자리에 있던 오씨의 묘비에 ‘베트남 참전용사 해병대 상병 정경식’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혹시 현충원측이 오씨의 시신을 이관했나 싶어 주변을 뒤지던 유족들은 약 100m 떨어진 131번 묘지에서 오씨의 묘비를 발견했다. 그곳에서는 정씨의 유족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유족들은 묘비가 바뀐 사실을 알고 원상 복구를 요구하러 현충원 관리사무소를 찾았지만 담당자는 노무현 대통령 참배 행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묘비는 우여곡절 끝에 오후 1시가 돼서야 원래 장소로 돌아왔다. 유족들은 “아침에 예포가 울릴 때 함께 절을 올려야 하는데 묘비가 뒤바뀌는 바람에 뒤늦게 제사를 지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현충원 관계자는 “묘비 교체 작업중 직원들이 저지른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기고] 호국·보훈에 담긴 뜻은/김정복 국가보훈처장

    “삭풍은 칼날보다 날카로워 살을 에는데, 살은 깎이어도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기어도 슬프지 않노라. 차라리 이 머리 잘릴지언정 어찌 무릎을 꿇어 일제의 종이 될까보냐” 독립운동가 이상룡 지사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면서 지은 시의 일부이다. 우리 민족이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오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민족정신이요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강인한 정신과 자긍심은 국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으로 표출되었다. 누구에게나 가장 귀중한 목숨을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행동 중에 최고의 가치를 지닌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것으로 칭송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보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응분의 예우를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건강한 국가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국가유공자들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국민의 가치관도 사회정의도 바로 설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나라 위한 헌신이 진정 명예로운 것이 될 때 나라의 장래도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훈’은 국민 된 도리인 것이다. 선열들의 희생을 현재에 되살리고 미래를 밝히는 가치로 우뚝 세우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대적 소임이다.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이겨내려면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의식을 키워 국가적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또한 국가 발전을 이루고 민족 번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국가유공자의 위국헌신 정신을 되살리고 건전한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분단된 국토를 통일하고 분열된 민족을 통합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채 분단의 강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때 지난 5월17일 한차례의 시험운행이긴 했지만 50여년 만에 발이 묶였던 철마가 7000만 한민족 통일의 꿈을 싣고 힘차게 달렸다. 이제 북핵문제도 평화적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고, 남북관계 개선도 한발 한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남북의 화해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우리는 오늘이 있기까지는 6·25전쟁 때 목숨 걸고 나라와 자유를 지킨 호국용사들과 21개국의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매년 유엔군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이뤄지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전 참전에 대한 자긍심을 말한다. 우리는 유엔용사들을 통해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참뜻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특히 올해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일으킨 국채보상운동 100년,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백성이 나라를 위하는 정신이 있는 때는 흥하고 그 정신이 없는 때는 망하는 것이다.”라는 이준 열사님의 가르침은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교훈으로 다가온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나라를 위해 싸우고 민주화를 위해 애쓴 이들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널리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 ‘유럽의 쿠바’ 트랜스드니에스테르

    ‘유럽의 쿠바’ 트랜스드니에스테르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나치 독일 격퇴 62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사이에 위치한 한 작은 나라에서도 화려한 축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소련 정부의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수천명의 참전 용사들이 탱크를 앞세워 도시 한복판을 의기양양하게 행진했다.“파시즘에 맞서 싸우다 소련은 2700만명의 목숨을 잃었다.”고 회고하는 정보장교군 출신 크리스틴코(81)의 얼굴에는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향수가 가득했다. 망치와 낫이 그려진 국기와 레닌 동상 등 옛 소련의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은 ‘유럽의 쿠바’로 불리는 트랜스드니에스테르 자치공화국이다. 인구 55만명으로 자체 통화와 여권, 우편제도, 국경 통제소를 갖추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기준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국가다.1991년 소련 붕괴 당시 친서방 성향의 몰도바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뒤 러시아의 지원아래 자치정부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그루지야에서 떨어져나온 아브하즈와 남오세티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한 크리미아와 더불어 친러시아 자치공화국으로 꼽히는 트랜스드니에스테르가 미국과 EU에 대항하는 러시아의 최전선 보루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지만 트랜스드니에스테르는 서방 국가들로부터 국제법상 존재하지 않는 외교적 변방지라는 위치를 악용해 무기와 마약밀매, 인신매매 등의 거점지가 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고르 스미로프 대통령이 15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부정부패와 조직범죄도 창궐했다. 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시대의 무기 공장을 운영해 암시장에서 팔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가 미국과 대치수위를 높이면서 트랜스드니에스테르가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주목받게 된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체코와 폴란드에 미사일 방어기지 구축을 추진하는 등 동유럽을 장악하는 데 심각한 위협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또 소련군 동상 철거를 둘러싼 에스토니아 사태를 계기로 옛 연방국가들에서의 반서방-친러시아 세력을 지원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 첫 유인우주선 비행사 시라 사망

    미국의 첫 유인우주선 비행사 월터 시라가 지난 2일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이 3일(현지시간) 발표했다.84세. 시라는 1959년 미국의 첫 유인우주선 ‘머큐리 프로젝트’의 우주인 7명 가운데 한 명이자 머큐리와 제미니, 아폴로 등 유인 우주선 3개에 모두 승선한 유일한 우주인이다.1962년 10월3일 시그마7 머큐리를 조종해 9시간에 걸쳐 지구궤도를 6바퀴 도는 임무를 수행했다. 1965년 12월15일 제미니 7호와의 첫 유인우주선 랑데부에 성공한 제미니 6A호 선장으로 다시 우주에 복귀했다. 제미니 6A와 제미니 7호는 때로 불과 30㎝까지 접근하면서 5시간 동안 편대비행을 했다. 시라는 발사대 화재로 아폴로 1호 승무원 한 명이 숨지는 사고 이후 아폴로 7호를 타고 우주비행하는 승무원들을 지휘했다.1968년 10월11일 11일간에 걸친 우주비행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23년 뉴저지주 해켄색에서 태어난 시라는 F-86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총 295시간15분의 우주 체공시간을 기록한 후 1969년 해군대위로 NASA에서 은퇴한 그는 6년간 CBS방송 시사해설자로 활약하다 이후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우리 7용사’와 ‘시라의 우주’ 등 2권의 저서를 남겼다.연합뉴스
  • 충훈비가 단체장 공적비?

    충훈비가 단체장 공적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한 수천만원의 보조금으로 만든 ‘6·25 참전 유공자 충훈비’가 참전 유공자들의 공적보다는 현직 자치단체장의 공적을 지나치게 부각해 유공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18일 경북 군위군 등에 따르면 군위읍 오곡리 872의1 일대 ‘6·25 참전 유공자 충훈비’ 현지에서 오는 24일 주민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충훈비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 충훈비는 6·25 참전유공자회군위군지회가 2004년 11월 6000만원(도·군비 각 3000만원 보조)을 들여 제작한 것이다. 제막식이 늦어진 것은 주변 조경이 늦어진 때문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충훈비가 전쟁 참전자들의 유공보다는 단체장의 건립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됐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비신(碑身)의 전면에는 ‘나라를 지킨 유공자비’가, 후면 전면에는 비문과 단체장의 이름이 비교적 큰 글씨(사진 위쪽)로 새겨졌다. 또 좌측면은 지역 유지들인 당시 경찰서장, 교육장, 농협장, 관변단체장 등 비 건립추진위원 26명의 명단이 차지했다. 정작 비의 주인공들인 전사자 및 상이용사 등 군위지역 8개 읍·면 참전 유공자 1525명의 명단은 비신을 떠받치고 있는 좌대(座臺)에 작은 글씨(사진 아래쪽)로 올라 있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군위군지회가 2001년 이 비석에서 5m 떨어진 지점에 세운 ‘무공 수훈자 전공비’의 수훈자 명단이 비신에, 단체장과 건립위원들의 명단이 좌대에 새겨진 것과도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 지역 참전 유공자와 유족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유공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충훈비가 군수 공적비로 전락했다.”면서 “보조금을 지원한 군의 직·간접적 간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또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참전유공자회 홍영삼(74) 군위군지회장은 “비 제작 당시 추진위원들과 협의해 명단을 배치했다.”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홍 회장은 이 지역 단체장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보조금은 지원했지만 충훈비가 어떻게 제작·건립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월맹군 참전용사 국립묘지 첫 참배

    베트남 전쟁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군과 베트남 참전용사(월맹군)가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고엽제협회 주석단 소속인 이들 9명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초청으로 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한때 적으로 싸웠던 한국군 파월장병이 영면한 국립 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이들은 서울현충원 현충탑 앞에 일렬로 도열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분향한 뒤 가벼운 목례와 함께 호국영령들을 참배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소속인 한국군 파월용사 120여 명이 한때 적이었던 이들과 함께 예를 올려 ‘격세지감’이 들게 했다. 이들 월맹군 참전용사 가운데는 1975년 4월30일 탱크를 이끌고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현재 호찌민) 대통령궁을 접수했던 도 수엔 디엔(76) 예비역 소장도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국립현충원 참배 배경을 묻는 질문에 “옛날의 전쟁은 다 과거”라면서 “베트남전에서 베트남군도 죽었고 한국군도 죽었다. 과거는 다 지나갔다. 한국을 동반자이자 친구로 생각해서 참배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누르하치의 푸순 점령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당장 병력을 동원하여 이 ‘괘씸한 오랑캐’를 공격하자고 했다. 하지만 명의 내부사정은 간단치 않았다. 만력제의 태정(怠政)과 황음(荒淫)에서 비롯된 난맥상은 명의 발목을 잡았다. 환관(宦官)들의 발호가 심각했고, 당쟁은 격화되었다. 재정은 고갈되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증세(增稅) 조처가 취해졌다. 민원(民怨)이 높아지고, 반란을 꾀하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우여곡절 끝에 누르하치를 치기 위한 원정군은 편성했지만 영 미덥지 못했다. 명은 결국 조선과 예허에 손을 내민다. 병력을 내어 원정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누르하치의 도전으로 촉발된 불똥이 조선으로 튀기 시작했다. ●광세( 稅)의 폐단, 명을 병들게 하다 만력제가 오랫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고, 신료들을 접견하지 않으며, 그들의 상소나 건의에도 답하지 않자 자연히 환관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황제의 생각이나 명령이 오로지 환관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만력제는 향락과 토목공사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환관들을 시켜 긁어 모았다. 환관들에게 흠차태감(欽差太監)이란 직함을 주어 전국으로 파견했다. 광감( 監), 세감(稅監), 염감(鹽監), 주감(珠監) 등 다양한 명칭의 태감들은 각지에서 백성들에게 명목도 없는 세금을 마구잡이로 강탈했다. 영세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에게 상세(商稅)를 긁어내고, 약간의 은화를 빼앗기 위해 민가를 철거했으며 무덤까지 파헤쳤다. 반항하는 백성들에게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다. 환관들이 각지에서 참혹한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베이징에 갔던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백성들은 아우성을 쳤다. 분노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호북(湖北)에 파견되었던 환관 진봉(陳奉)의 패거리가 폭력을 휘두르며 수탈을 자행하자 백성들은 궐기했다. 그들은 진봉의 부하 16명을 붙잡아 강물에 던져버렸다. 운남(雲南)에서는 성난 백성들이 환관 양영(楊榮)의 숙소를 습격하고, 폭력을 자행한 양영의 패거리 200여명을 살해했다. 환관들의 발호는 요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1603년 환관 고회(高淮)는 부하 수백명을 이끌고 요양(遼陽), 진강(鎭江), 금주(金州), 복주(復州) 등 요동 일대를 휩쓸었다. 그들은 민간에서 수십만냥의 은화를 강탈했고, 그 때문에 여염이 텅 비어버렸다. 17세기 초, 만력제가 환관들을 시켜 자행했던 수탈을 보통 ‘광세( 稅)의 화(禍)’라고 부른다. 무자비한 수탈 때문에 전국 각지의 상공업은 위축되고, 국가의 공적 세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심은 조정으로부터 떠나고, 민변(民變)이라 불리는 저항운동이 각지를 휩쓸게 되었다. ●명, 고민 끝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꾀하다 푸순의 함락과 장승음의 패전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명 조정에서는 누르하치를 응징하기 위한 원정군 편성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광세의 폐’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여의치 않았다. 나라의 공식 금고인 태창(太倉)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병력을 징발하고 군수를 조달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만력제는, 내탕을 풀어 군자금에 보태라는 신료들의 거듭된 요청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1618년 4월27일 직예순안(直隸巡按) 왕상항(王象恒)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장수들 가운데 가정(家丁)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총병(總兵), 부장(副將) 등의 직책을 주어 요동으로 보내자고 했다. 가정이란 국가에 소속된 정규병력이 아니라 장수 개인이 사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군사를 말한다. 일종의 사병(私兵)인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군 사령관인 이여송(李如松)도 다수의 가정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 왔었다. ‘퇴역 지휘관’들이 거느린 가정을 활용하자는 왕상항의 주장은, 정규군 병력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것이 어려웠던 명의 실정을 잘 보여준다.16세기 후반의 척계광(戚繼光)처럼 의지할 만한 현직 지휘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물러난 장수들이라도 불러들여야 했다. 윤 4월이 되자, 물러나 있던 지휘관들을 불러들이라는 만력제의 조칙이 내려졌다. 양호(楊鎬), 유정(劉綎), 이여백(李如栢), 왕국동(王國棟), 시국주(柴國柱) 등이 줄줄이 불려와 다시 기용되었다. 양호는 정유재란 당시 명군 사령관이었고, 유정과 이여백도 조선에 참전했던 장수들이었다.‘어제의 용사’들이 전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은 달 17일 호과급사중(戶科給事中) 관응진(官應震)이 ‘오랑캐를 제어하기 위한 세 가지 방책(禦奴三策)’을 내놓았다. 그가 제시한 방책의 핵심은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해 조선과 예허를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관응진은 후금이 북으로는 예허와, 남으로는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는 예허가 과거부터 누르하치와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사실,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명으로부터 ‘구원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두 나라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예허로부터 군사들을 빌려 후금의 오른쪽을 치고, 조선으로부터 조총수(鳥銃手) 3000명을 징발하여 후금의 왼쪽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이이제이책(以夷制夷策)이었다. ●조선과 예허는 고분고분한 오랑캐로 지칭 이이제이란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요코야마 히로아키(橫山宏章)에 따르면 이이제이책은 중화(中華)가 와해될 위기에 처할 적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고 한다. 막강한 북방민족의 공격에 시달렸던 송(宋)의 왕안석(王安石)과 사마광(司馬光), 서구와 일본의 군사적 도전에 쩔쩔맸던 청말(淸末)의 이홍장(李鴻章)은 물론 2차 대전 이후 소련을 이용하여 미국을 견제하려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기까지 이이제이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위기탈출 전략이었다. 관응진은 ‘어노삼책’에서 조선과 예허를 가리켜 ‘고분고분한 오랑캐(順夷)’라고 지칭했다. 명에 ‘고분고분한 오랑캐’를 이용하여 ‘도전을 일삼는 사나운 오랑캐’를 응징하자는 것이었다. 그같은 발상은 관응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1618년 푸순 함락 이후, 명 조정에는 조야(朝野)의 지식인들로부터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한 방책들이 빗발쳤다.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 오늘날 전하는 ‘주요석획(籌遼碩)’이다.‘요동을 도모하기 위한 큰 계책’ 정도의 뜻을 지닌 이 책에서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조선을 이용하자고 강조했다. 이윽고 1618년 윤 4월27일 조선 조정에는 병부좌시랑(左侍郞) 왕가수(汪可受)가 보낸 격문이 도착했다. 왕가수는 먼저 명나라와 조선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조선이 사람의 몸이라면 명은 그 머리이고, 조선이 나무라면 명은 그 뿌리’라고 했다. 이어 임진왜란 시기 명이 조선에 군대를 보내 일본군을 격퇴시킨 ‘은혜’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부터 조선의 식자들과 명의 인사들 가운데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명군이 원군을 보냄으로써 ‘망해 가던 조선을 다시 살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왕가수는 ‘재조지은’을 상기시킨 뒤, 본론을 이야기했다. 명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누르하치를 공격하는 데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격문을 받는 즉시 군병을 정돈시켜 대기하다가 기일에 맞춰 나아가 토벌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겉으로는 ‘요청’인 것 같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왕가수의 격문을 받은 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 광해군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왜란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선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명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 악연을 맺을 것인가? 거부하여 ‘재조지은’을 배신할 것인가? 푸순성을 삼켜버린 누르하치의 불길이 바야흐로 조선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포클랜드전 25주년…끝나지않은 분쟁

    “전쟁을 시작했다고, 또 패했다고 영토 주권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정부가 영국에 대해 말비나스(포클랜드의 아르헨티나측 명칭) 주권 협상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으로 포클랜드 개전 25주년을 기념했다. 다니엘 스시올리 아르헨티나 부통령은 이날 참전용사 5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수와이아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전쟁을 했다는 이유로, 혹은 시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말비나스가 아르헨티나 영토라는 엄연한 현실이 바뀔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우수와이아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항구로 아르헨티나군이 포클랜드전을 위해 출발한 지점이다.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4월2일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이 국토 회복을 내걸며 영국령 포클랜드를 공격하고, 이에 영국이 응전을 하며 진행된 전쟁으로,74일간 치열한 전투가 치러졌다. 영국군 255명, 아르헨티나군 655명, 주민 3명 등 모두 913명의 사망자를 내며 영국 승리로 끝났다. 아르헨티나 국민들, 특히 좌파 정권인 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 지지자들은 당시 독재세력이 경제 파탄에 대한 국민 불만을 호도하기 위해 일으킨 포클랜드 전쟁을 ‘실수’ 또는 ‘잘못된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영국 BBC 등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최근 키르치네르 정권의 포클랜드 영유권 이슈화 시도는 눈에 띌 정도다. 지난 1월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호세 타이아나 외무장관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 영국과의 주권 협상을 지원해 달라는 로비를 하기도 했다.타이아나 장관은 2일 “아르헨티나는 모든 국제사회 포럼에서 이 문제에 대한 압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또 지난 주 양국 관계 회복 5년 뒤인 1995년 체결한 대서양 석유·가스 공동개발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스시올리 부통령은 “주권 회복을 위한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양국간 포클랜드 분쟁은 1800년대로 올라간다.182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의 영유권을 선포한 뒤 자국민들을 정착시켰지만 13년 뒤 영국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영국에서 1만 2900㎞ 떨어진 이곳을 식민점령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해온 아르헨티나는 결국 1982년 전쟁을 일으켰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천혜의 수자원 보고로 정평난 포클랜드가 전후 25년이 지난 지금 1인당 소득 5만달러의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포클랜드를 지키기 위해 연간 1억 5000만달러를 들여 1200명의 육해공군 장병에 최첨단 장비를 배치하고 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이라크전 4주년… 美 반전시위 몸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20일로 이라크 침공 4주년을 맞는 미국은 ‘분열’과 ‘분노’가 물결치고 있다. 미 정치권은 이라크 전이라는 수렁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를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하고 있으며, 장기화된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은 반전과 철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거짓말에 지쳤다.” 17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전국에서 몰려온 수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열렸다. 반전 시위대는 ‘이라크에서 신속한 철수를’,‘조지 부시 대통령 탄핵’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반 이라크 전, 반 부시 구호를 외치며 워싱턴 중심부의 링컨 기념관에서 버지니아 주 알링턴의 펜타곤(국방부 청사)까지 행진했다. 해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72세의 폴 밀러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국가지도자를 신뢰해왔지만 이라크 전과 관련한 정부 거짓말에 환멸을 느껴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왔다.”고 말했다. 일부 기독교단체들은 이라크 전을 ‘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하며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했다. 반면, 일부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도 이라크전 지지 시위대를 만들어 “힘을 통한 평화를”,“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다”,“자유주의자들은 적을 돕고 있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쟁 지지 시위를 펼쳤다.●42일만에 승전 선언,4년 뒤엔 철수 고민 2003년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개전 42일만에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미군은 이후 4년이 지나도록 이라크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을 사로잡아 처형하고, 새 이라크 정부를 구성했지만 미군은 저항세력의 끝없는 테러 공격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권력다툼으로 내전이 확산되면서 이라크 주민들의 반미감정도 커져 미군 철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부시는 이라크에 3만명의 미군을 추가로 투입하기 위해 의회를 설득중이다. 미 의회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철군 문제를 놓고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지루한 정치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5일에는 하원 세출위원회가 철군안에 찬성하는 예산안 표결을 한 반면, 상원에서는 철군안이 부결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dawn@seoul.co.kr
  •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선 역사 아닌 정치·안보이슈”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선 역사 아닌 정치·안보이슈”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일본 정치지도자들은 아직도 1930년대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지난달 15일 하원에서 열린 위안부 청문회에 미국측의 시각을 발표하는 증인으로 참석했던 민디 코틀러 아시아폴리시포인트 소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 역사가 아니라 국제 정치와 안보 이슈”라면서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과 세계의 여성이 나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며, 중요한 안보 이슈이다. 이라크 전쟁을 지켜봤다면 국가의 안보가 더이상 총탄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처음 의회에 제기했던 인물은 베트남 참전 용사인 레인 에번스 전 의원이다. 몸소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안보와 국가의 안보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한 인물이다. ▶왜 일본이나 피해국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 문제인가. -동북아의 안정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다. 미국은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협력하고 서로를 이해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러나 역사 문제를 놓고 한국과 중국, 일본이 충돌하게 되면 북핵 문제 해결도, 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까. -미국은 인간의 기본권, 여성의 인권, 어린이의 인권 등을 매우 존중한다. 그런데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가 집단 강간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는 미·일 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 대사관측과 대화를 해보았나. -일본 대사관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모두 교육을 잘 받고, 여행도 많이 한 지성인들이다. 이들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위안부 문제를 변호하는 것은 참으로 모욕적인 일이다. 이미 21세기로 접어든 세상에 일본의 정치인들이 아직도 사과 문구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에 하는 말들은 무엇인가. -위안부들에게 이미 사과했고, 실제로 위안부들에게는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또 어차피 그들은 창녀였다고 말해 왔다. 일본이 사실과 전혀 다른 얘기들을 미국에 해왔기 때문에 외교적인 문제도 되는 것이다. ▶일본의 생각은 무엇일까. -일본은 이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양자문제로 만들려 한다. 인권이나 여성, 인신매매, 미국의 안보 등과는 분리시키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목소리를 높일수록 불리할 수도 있다. ▶다른 피해국들과 연대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위안부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타이완, 태국, 호주, 인도네시아, 괌 등 아시아·태평양 전역의 문제이다.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도 비참하게 숨진 피해자들이 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에도 위안부 관련 단체가 있지만 정부가 일본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때문에 목소리가 크지 않다.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최근 보스니아와 다르푸르, 르완다, 미얀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여성에 대한 집단 강간과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행위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제는 이런 일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반드시 책임자를 찾아내 처단해야 한다. ▶일본이 이미 사과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이 지금까지 했다는 사과는 권위도 없고, 진심도 담기지 않은 것이다.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에 총리들이 마지못해 인정하겠다는 정도였다. 지금은 그 담화까지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총리가 사과를 했다는 위안부들은 모두 아시아평화기금의 돈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협력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피해를 당한 위안부들이 사과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도 부인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일본 정부가 현대적인 민주주의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일본의 정치지도자나 신문 편집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바른 목소리를 내면 생명에 위협을 받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상황들을 미국의 의원들에게 설명해보려 했지만 미국의 정치인들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한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입장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국무부는 미 의회가 이런 모든 끔찍한 일들을 알게 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이 문제를 꾹꾹 눌러서 한·일간의 문제로 간주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위안부 결의안이 하원에서 채택될 수 있을까. -일본은 결의안을 무산시키려고 매우 많은 시간과 돈을 쓰고 있다. 미 의회와 싱크탱크의 지도부에 앉아있는 일본의 ‘친구’들은 안보는 전쟁일 뿐이라는 매우 단순한 시각을 갖고 있다. 이들이 바로 이라크전을 일으킨 그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어떤 대응을 해야 한다고 보나.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적극적인 대응이야말로 일본 정부가 원하는 것이다. 지난 위안부 청문회에 주미 일본대사가 서신을 보냈다. 한국측이 맞대응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대결로 가게 된다면 미국 의회는 발을 뺄 것이다. ▶지난달 미 의회에서 위안부 청문회가 개최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다행스럽게도 미 의회가 위안부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안보 문제인가를 인식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 의식이 성숙해 의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dawn@seoul.co.kr
  •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전세계에 한국인이 단 한명도 살지 않으면서 동네 이름에 ‘코리아’가 붙은 그런 곳이 있다. 현지에서는 일명 ‘코리아 사파르(Korea Sefer)’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파르는 현지어로 ‘지역’ 정도의 의미. 아디스 아바바 시내의 아라트 키로라는 곳에서 벨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케벨레(Kebele) 5’에서 내리면 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케벨레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상의 ‘동(洞)’에 해당된다. 코리아 사파르는 케벨레 5에서 케벨레 6에 걸쳐 있다. 마을은 아주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엉성한 양철지붕에 우리나라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유엔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였던 에티오피아의 참전 용사들이 전쟁이 끝나 본국으로 귀환한 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현재 약 3만명 정도가 살고 있고 이 중에 참전용사 가족들은 약 6천명 정도다. 197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돌입으로 한국전 당시 북한을 상대로 싸웠던 이들은 모진 시련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안에 모스크가 하나 있지만 이슬람교(에티오피아 전체 인구 절반이 믿고 있다.) 신자는 약 5% 정도고, 90% 이상이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다. 가난을 탓하지 않는 정교회 교리 때문인지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은 아주 가난하다. 마을 안에 공공 시설이라고는 한국 정부가 지어 준 Hibret Firre 초등학교가 전부이다. 학령기의 아이들 중 13.4%만 이곳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우리한테도 원조를 받고 있는 에티오피아지만 1950년대만 해도 황제시대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가 파견한 참전용사들은 ‘깍뉴(Kagnew)’라고 불리던 황제의 근위병들이었다. 당시 총 6,037명이 파병되었으며, 253개의 주요 전장에서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총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치료시설이 열악해 부상자들은 대부분 유엔의 군용헬기에 실려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951년 4월 13일 제 1차 깍뉴부대(깍뉴부대는 1965년 3월 1일 본국으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총 5차에 나누어 파병되었다.)를 싣고 에티오피아를 출발한 배는 중간에 그리스, 태국, 필리핀 병사들을 태운 후, 같은 해 5월 6일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간단한 훈련을 마치고 이들은 바로 그 해 8월부터 전장에 투입되어 크고 작은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며 혁혁한 공훈을 세운다. 이례적인 것은 전시 중에 깍뉴부대원들이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상상이 가지 않지만 전쟁 중일 때는 고아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면서 끝까지 함께했다는 것이다. 휴전 후 돌보던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들을 해외로 입양하는 일도 추진했다고 하는데 그리스나 다른 참전국에는 군인들을 따라간 고아들이 많았는데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따라간 고아들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깍뉴부대는 1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는데 참전용사와 결혼까지 간 한국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차 혹은 휴가를 즐기러 일본을 방문했던 병사들과 일본여인들과의 로맨스는 지금도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 이 노래는 같은 리듬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에티오피아에서는 암하릭어로 불려지고 있다. 제목은 Japanwan Wodije. 한국전 참전용사들 중에 전쟁이 끝난 후 콩고 내전에 참가했던 병사들도 많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콩고 빌리지’는 남아있지 않고 에티오피아에는 ‘코리안 빌리지’만 남아 있다. 현재 한국의 월드비전을 비롯해 몇 개의 NGO 단체가 유아 혹은 여성을 위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현재 국제협력단(KOICA)에서 초등학교를 지어준 후 이 곳에 3명의 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가 아디스 아바바와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으로 똑 같은 모양의 참전용사회관을 춘천과 아디스 아바바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디스 아바바의 경우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무용지물이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총장이 이 곳에 관심을 표명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변화의 조짐이 없다.       <윤오순>
  • [세계의 싱크탱크] (16) 美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세계의 싱크탱크] (16) 美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립적인’연구소다.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가 편을 갈라 싸우는 워싱턴에서 이념적,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싱크탱크는 매우 드물다. 국제경제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싱크탱크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17개 주요 싱크탱크 가운데 중립적이고 비당파적인 연구소는 CSIS와 국제경제연구소(IIE)뿐인 것으로 평가됐다. CSIS는 냉전이 절정기로 치닫던 1962년 데이비드 애브셔와 알레이 버크에 의해 설립됐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애브셔는 나토 대사를 지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버크는 6년간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낸 경력의 소유자로 당파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당시 CSIS의 설립 목적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냉전의 시기에 어떻게 국가를 생존시키고 국민을 번영시키느냐를 연구하자는 것.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출발했기 때문에 CSIS는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미국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안보 분야의 싱크탱크로 성장할 수 있었다. CSIS의 연구 결과는 정부의 정책에 드물지 않게 반영된다. 지난해에도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장관은 CSIS가 헤리티지 재단과 함께 만든 국토안보부 조직 개편 보고서의 많은 부분을 채택했다. 현재 CSIS 이사회 의장은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이 맡고 있다. 이사회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 월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조지프 나이 국방부 차관보 등 국제안보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쟁쟁한 인물이 포진해 있다.CSIS의 현 소장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존 햄리 박사다. CSIS는 지난 40여년 동안 성장하면서 에너지와 바이오테크놀로지, 노령화, 에이즈, 국제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의 범위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중점을 두는 연구 분야는 국방 및 안보 정책, 국제 안보, 지역 안보 등이다.CSIS는 지역 연구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중동, 남아시아를 연구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일본, 러시아, 터키는 별도 프로그램에서 다룬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맡고 있는 일본 연구 프로그램 ‘재팬 체어’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이 소속돼 있다. dawn@seoul.co.kr ■ CSIS 조직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많다. 다른 싱크탱크들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만을 전담하는 연구원은 없고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나 아시아, 국제안보 전문가들이 한반도 관련 연구를 병행한다. 북한이 핵 실험을 실시한 직후인 지난 10월11일 CSIS가 발빠르게 주최한 북한 관련 언론 브리핑에는 마이클 그린 선임고문, 커트 캠벨 부소장, 데렉 미첼 선임연구원, 존 울프스탈 선임연구원 등이 연구소를 대표하는 한반도 전문가로 나섰다. 그린 선임고문은 지난해 말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서 한국 문제를 다뤘다. 한반도 관련 정책을 직접 다뤘기 때문에 미 언론이 북한 핵 문제 등과 관련해 그린 고문의 코멘트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또 최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주제발표자나 토론자로 자주 참석한다. 그린 고문은 도쿄대에서 수학했고, 일본에서 기자와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일본 의회에서도 5년 동안 전문위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일본통이다. 그린 고문은 박사학위를 받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학을 강의한 바 있으며, 현재도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로 분류되는 캠벨 부소장도 한국 문제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국장을 지낸 캠벨 부소장은 국제테러, 비확산, 미사일 방어 등을 다루면서 북한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난 2월 한·미경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미 관계를 “파문 때문에 공개적인 이혼을 원치않는 왕과 왕비”라고 비유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첼 선임연구원도 난징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한 중국통이다. 미첼 연구원은 CSIS의 국제안보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모든 아시아 관련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연구 가운데는 ‘미 의회의 한국에 대한 태도’라는 주제가 포함돼 있다. 미첼 연구원은 지난 2004년 ‘전략과 감정: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시각’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연세대와 공동으로 발간한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변화가 한·미동맹에 미친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미첼 연구원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특별 보좌관을 지냈고,1998년에는 국방부 동아시아정책보고서의 주요 저자로 참가했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전문가이다. 미국의 핵 비확산정책과 옛 소련의 핵 정책 등을 토대로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를 연구한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에너지부에서 5년간 근무했으며, 그 당시 북한 영변의 핵 시설을 시찰한 경험이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전임자인 제임스 켈리 차관보도 CSIS의 선임고문을 맡고 있으나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 당시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였던 로버트 아인혼 선임고문도 한국과 북한 문제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 dawn@seoul.co.kr ■ 캐롤라 맥기퍼트 부소장 “특정정당 캠페인 참여 금지 소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캐롤라 맥기퍼트 부소장은 연구소 운영 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CSIS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첫째는 미국내에서 몇 안되는 비당파적, 중도적 싱크탱크라는 것이다. 중립적이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양쪽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번째는 우수한 연구진이다. 다양한 경력과 전문지식을 가진 연구원들이 실용적인 정책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비당파성이나 중도성은 어떻게 유지하나. -CSIS는 냉전시대 국가의 안보를 연구하기 위해 탄생했다. 탄생 목적 자체가 초당파적이다. 구성원 전체가 정치적 균형 유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연구할 이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이 이뤄지도록 노력한다. 소수당, 소수의 목소리와의 관계도 중시한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당파성 강한 싱크탱크들의 입김이 세다.CSIS가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에서 뒤진다는 평가도 있다. -정치적 경쟁은 정책 수립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정치적 경쟁이 반드시 당과 당의 경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이디어 경쟁이다.CSIS의 중도성은 정치적 양극화를 초월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한다. ▶선거 때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 적이 한번도 없나. -연구원들은 CSIS라는 이름표를 달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 캠페인에 참여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막지 않는다. 연구원들이 정책 보고서에서 자신의 시각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다. 이들의 지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정부 돈도 받나. -연구비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온다. 각종 재단이나 기업, 개인 기부금이 대부분이다. 정부에서도 대가를 지불하고 연구를 의뢰한다.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을 때도 연구와 관련한 어떤 조건이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연구원 선발 기준은. -전문성과 분석력, 보고서 작성 능력이 중요하다. 연구 지원비 모금 능력도 필요하다. 정부에서 일한 경력이 연구활동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충원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미국에 우수한 싱크탱크가 많은 이유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견고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싱크탱크가 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정착돼 있다. 미 정부와 싱크탱크간의 긴밀하면서도 적절한 관계 유지도 긍정적 작용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싱크탱크 역할도 바뀔까. -갈수록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또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한다. 정부가 모든 문제들을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싱크탱크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 정부 등과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로서 자국의 이익과 타국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미국 연구소이므로 자국 정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국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는 미국 정책을 효과적으로 마련할 수 없다. 따라서 상대국 입장과 이익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책과 이익을 생각한다. 맥기퍼트 부소장은 백악관과 통상부, 무역대표부(USTR)에서 북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NAFTA), 신흥시장 분석,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진출 협상 등을 담당한 바 있다. 현재 CSIS에서는 중국 경제와 대중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dawn@seoul.co.kr
  • 이라크 美병력 “감축” vs “증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박정경기자|이라크 해법을 둘러싼 미국 정가의 논쟁이 백가쟁명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 이라크 주둔군 감축론이 탄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에서는 오히려 병력을 늘려 마지막 공세를 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차제에 징병제를 부활하자는 주장도 민주당에서 터져 나왔다.●2만명 늘려 한판 붙은 뒤 떠나자? 증원론의 대표주자는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 그는 19일(현지시간) AP통신 회견에서 “역사상 군사적 해결없이 정치적 해결은 없었다.”면서 2만명의 미군 증파를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내년 개원될 110회 의회에서 상원 군사위원장을 맡기로 내정된 민주당의 칼 레빈 상원의원은 이날 ABC방송 인터뷰에서 4∼6개월 내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맞섰다. 레빈 의원은 철군이 이라크 지도자들로 하여금 종파분쟁을 끝내고 정치적 타협을 하도록 만드는 압박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영국 BBC방송 회견에서 “이라크에서 군사적 승리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과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 주변국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결국 백악관은 일시적으로 병력을 증원해 마지막 일전을 치른 뒤 발을 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가 20일 보도했다. 현재 14만 4000명선인 이라크 주둔군 규모를 16만 4000명선으로 늘려서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대공세를 편 다음 내년 가을쯤부터 단계적 감군을 택할 것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식축구 경기 종료시점에 무작정 전방을 향해 던지는 ‘해일 매리 패스(Hail Mary pass)’로 부른다고 CSM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일시 증원 후 감축을 하되 이라크 내전위기를 고려, 장기주둔하는 방안을 국방부가 검토 중이라고 이날 보도했다.●“병력 늘리려면 징병제로 의원 자식들도 보내라” 하원 세입위원장으로 내정된 민주당 찰스 랭글 의원은 자신이 이라크전 직전에 제기한 징병제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랭글 의원은 CBS 인터뷰에서 “이란과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고, 일각의 요구대로 이라크에 병력을 증파하려면 징병제 없이는 할 수 없다.”면서 내년 초 새 의회가 열리면 징병제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원 자녀들이 전투에 보내졌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공화당의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육군과 해병대 등 지상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낫다.”며 징병제 부활에 반대했다. 미국은 1948년부터 73년까지 징병제를 운용했다.●이라크 혼돈의 도가니…보건차관 피랍 이런 가운데 이라크는 끝모를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주 말 하룻새 최소 112명이 폭탄테러 등으로 숨졌고 암마르 알 사파르 보건차관이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이날 마침 이라크를 방문한 왈리드 모알레 시리아 외무장관은 “외국군의 철군 일정이 이라크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시리아는 이라크 해결사로 뒤늦게 미국의 ‘구애’를 받고 있다.dawn@seoul.co.kr
  • 미국·프랑스, 정계 우먼파워

    ■ 美 펠로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 의회 역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에 16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추대된 낸시 펠로시 의원의 낯빛은 밝지 못했다. 대통령 유고시 딕 체니 부통령에 이어 승계 2위에 올랐지만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스테니 호이어 의원의 손을 맞잡은 그녀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역력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자신이 공공연하게 밀었던 존 머서(펜실베이니아) 의원 대신 긴장관계에 있는 호이어(메릴랜드) 현 원내총무가 선출됐기 때문이다.<서울신문 16일자 15면 참조> ●원내대표 경선에 표심 관철 못 시켜 호이어 의원은 이날 비밀투표 경선에서 149표를 얻어 86표에 그친 머서 의원을 가볍게 따돌렸다. 펠로시는 여성 첫 하원의장으로서 산뜻한 첫발을 떼는 데 상처를 입게 됐으며 당내 통솔력에도 의문부호가 매겨졌다. 뉴욕 대학 의회연구센터의 폴 라이트는 “하원의장으로서 할 일은 첫 싸움에서 누구라도 넘볼 수 없도록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확실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머서의 패배는 낙태와 총기 규제 및 하원 윤리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등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온 것이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진보파의 지지를 상실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펠로시와 원내 2인자인 호이어 의원은 원내 운영과 당내 진로를 둘러싸고 충돌할 것으로 우려된다. 펠로시는 애써 기자회견에서 “당내에 논란도 있고 견해차도 있었다.(그런데도)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다.”며 당의 단합을 촉구했다. 한인단체 등에선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여온 그녀가 내년 1월 차기 하원의장직에 앉게 되면 결의안 재상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프리카계인 제임스 클라이번 의원이 원내 서열 3위인 원내총무로 선출됐다. 아프리카계 원내총무 역시 사상 처음이다. 이로써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은 상·하원 지도부 구성이 모두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인선 내용이 알려진 상원 상임위원장 외에 통상·과학·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일본계인 하와이 출신의 다니엘 이노우에 의원이 내정됐고 국토안보·정보위원회 위원장에는 코네티컷주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조지프 리버먼 의원이 내정됐다. ●약진하는 여성 정치인 펠로시 하원의장의 등장은 세골렌 루아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결정과 맞물려 여성 정치인의 위상이 약진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과 버티 어헌 총리, 올해 초 연임에 성공한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 지난해 11월 전후 첫 여성 총리에 오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현역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이다.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전 총리는 현재 유엔인권고등판무관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로 할렘 브룬트란트 노르웨이 전 총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여성 권익 신장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의 미셸 알리오마리 국방장관도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 루아얄과의 승부가 펼쳐질지 관심을 모으며 영국 최초의 여성 외무장관인 마거릿 베케트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북유럽(40)을 제외하고는 유럽의 여성 의원 비중은 17.4%에 그쳐 미국(21.4%), 아시아(16.5%)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dawn@seoul.co.kr ■ 佛 루아얄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여성뿐이다.”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 세골렌 루아얄(53)은 “여성의 시대가 왔다.”며 이같이 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사상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도약’한 그녀는 정치 실종으로 신음하고 있는 프랑스를 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 소신에 따라 지난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두 달여 장정 끝에 지난 16일(현지시간) 치러진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 1차투표에서 60.6%의 지지율로 관록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20.81%) 전 재무장관, 로랑 파리뷔스(18.59%) 전 총리를 여유있게 제치고 대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변화를 선택한 사회당원 지난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뛰어든 루아얄은 환경장관(92년), 학교교육담당장관(97년)을 역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를 ‘대선 후보’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 폭력과 아동 포르노물 추방 등 충실히 정책을 시행하면서 ‘내면화된 야망’을 키워갔다. 그녀가 프랑스의 주목을 받은 계기는 지난 2004년 지방선거에서 푸아투-샤랑트 지역의 의회의장에 선출된 것이다.‘무리’라는 주위 만류에도 불구, 전통적으로 우파가 강했던 이 지역을 찾아가 당당히 승리함으로써 관료가 아닌 ‘정치인 루아얄’을 각인시켰다. 앞서 1988년 미테랑의 보좌관 생활을 접고 두-세브르 지역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지역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발로 뛰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개척정신이 강하다는 평가다. 이후 ‘참여 민주주의’를 내걸고 가장 먼저 ‘블로그’를 개설하는 등 ‘전자 정치’에 주력하면서 지명도를 높여갔다. 특히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친화력으로 기존 정치인에 환멸을 느끼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선 소식을 접한 일성이 “그저 행복감을 느낄 뿐”이었다는 것도 그녀의 소박함을 보여준다.88년 총선 출마 당시를 기억하면서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기차에 훌쩍 올라탔다.”고 말하는 등 감성 정치에도 뛰어나다. 1953년 9월22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2차대전 참전 용사인 육군 대령 자크 루아얄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프랑스의 전형적 엘리트 코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ENA 동기인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당수와 함께 정식결혼이 아닌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당이 단합할 때”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먼저 경선 과정에 나타난 당의 분열을 꿰매야 한다. 우선 다른 후보들과의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분열을 해소하고 12년 만의 정권 탈환에 주력해야 한다. 17일 당선 확정 소식을 들은 그녀가 “이제는 당이 단합할 때”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부담을 잘 보여준다. 지난 2002년 대선 1차투표에서 좌파가 분열,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극우정치인 장-마리 르 펜에 밀리는 이변을 낳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다. 또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 주자로 유력시되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에 맞서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앞에 두고 있다. 최근 공개된 잇단 여론조사에서 루아얄은 사르코지와 같은 지지율이 나올 정도로 내년 대선은 접전이 예상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외교·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과제다. 이미지 정치로 인기에 영합했다는 비판에 맞서려면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게 사회당 안팎의 시각이다. vielee@seoul.co.kr
  • 첫 정치 시험대에 오른 펠로시

    펠로시의 첫 정치적 실험은 성공할까. 중간선거 승리 일주일 만에 미국 민주당이 벌써부터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의장이 되는 낸시 펠로시 현 원내 대표의 후임을 놓고 민주당내에서 벌어지는 분열 양상이다. 당내 일부에서는 “민주당의 꼴사나운 고질병이 또 다시 도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의원이 스테니 호이어(사진 왼쪽·67·메릴랜드) 현 원내총무가 아닌 존 머서(오른쪽·74·펜실베이니아) 의원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다. 머서 의원은 펠로시의 오랜 측근이다. USA투데이와 AP통신 등은 15일 펠로시의 표심(票心)이 드러나면서 “당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하원 원내대표는 16일 의원총회에서 무기명 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 브루킹스연구소 스티븐 헤스 연구원은 “펠로시 내정자의 첫번째 정치적 실험이지만 위험 부담이 크다.”고 분석했다. 펠로시 의원이 공개적인 지지의사를 밝힌 머서 의원이 원내대표 선거에 패배하면 그녀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호이어냐, 머서냐.’는 펠로시 내정자와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1년 펠로시 의원은 민주당 원내총무 자리를 놓고 호이어 의원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펠로시는 118대95로 호이어 의원을 꺾었다. 당시 머서 의원은 펠로시의 선거 운동에 앞장섰다. 이 때문에 이번 원내대표 선출이 머서 의원을 앞세운 펠로시-호이어의 힘겨루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 지도부가 ‘힘의 균형’을 이뤄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오랜 정치적 동지인 펠로시와 머서 의원은 특이하게도 정치적 성향은 다소 차이가 있다. 펠로시 의원은 낙태에 찬성하고 총기 소유를 반대하는 당내 대표적인 진보 강경파. 머서 의원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로 당내 보수세력 쪽에 가깝다. 낙태에 반대하고 총기 소유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1970년대 뇌물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등 워싱턴 정가에서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호이어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60만달러의 기부금을 모금하고 80개 지역에서 유세를 하는 등 선거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치적 좌표도 펠로시에 가깝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의 관전 포인트는 펠로시의 표심이 얼마나 작용할지, 또 첫 정치적 시험대에서 그녀가 성공할지 실패할지에 쏠려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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