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전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동굴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세운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옵서버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 감청
    2026-03-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934
  • 국가유공자에게 ‘명품집’을 선물합니다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 100가구에게 ‘명예를 품은 집’(명품집)을 선물하는 사업을 이어간다고 16일 밝혔다. 보훈부는 17일 세종 청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해비타트, 굿네이버스와 함께 국가유공자를 위한 주거환경 개선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명예를 품은 집’은 ▲고령·장애를 고려한 주거환경 디자인 ▲도배·장판 등 재단장 ▲보일러 교체와 창호 설치 등 에너지 효율·성능 개선 ▲세대 안전을 위한 소화기와 연기감지기 등 주거 안전 물품을 포함한 맞춤형 주거환경 개선사업이다. 보훈부는 사업 대상자를 선정하고 LH는 3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지원을 맡을 예정이다. 해비타트와 굿네이버스는 유공자의 건강을 고려해 주거 환경을 디자인하고 도배와 장판을 다시 하며 보일러를 교체하고 창호를 설치하는 주거환경개선을 담당한다. 협약식을 마친 뒤에는 충북 청주시에 거주하는 월남전참전유공자로 고엽제후유증을 겪는 전상군인 자택에서 명예를 품은 집 1호 현판식도 연다.
  • 극우식 재보복이냐, 확전 자제냐… ‘3개의 전쟁’ 방아쇠 쥔 네타냐후

    극우식 재보복이냐, 확전 자제냐… ‘3개의 전쟁’ 방아쇠 쥔 네타냐후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보복 공습으로 ‘5차 중동전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최종 판단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치적 생명줄을 쥔 극우 연정세력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란에 재보복할 것인지, 지역 안정을 바라는 미국과 서방 국가의 의견을 수용해 참고 넘어갈 것인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였다. 달리 말하면 네타냐후 총리가 중동의 운명을 손에 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공습 다음날인 14일 전시내각을 구성하는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야당인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 등과 만나 수시간에 걸쳐 이란의 폭격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상당수 각료가 이란에 대한 재보복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츠 대표를 비롯한 온건파는 다만 ‘즉각’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냈다. 시기와 강도가 쟁점이 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해 15일에 다시 회의를 갖기로 했다. CNN방송은 이 회의가 끝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해 “미국은 이란을 겨냥한 어떤 작전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며 재보복에 반대했고 네타냐후 총리는 “이해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에 즉답을 피한 것으로 풀이된다. WSJ는 “미국과 서방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만류에도 이스라엘이 (두 번째 전시내각 회의를 마친) 15일쯤 이란의 공격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이스라엘과 이란) 양국 모두가 승리감을 갖고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출구’가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이스라엘 지도부가 어려운 과제 앞에 놓였다. 중동을 전면적인 분쟁으로 몰아넣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에 대한 강한 반격으로 중동 전체를 전쟁에 휘말리게 할 것인지, 이란 공습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위안 삼아 미국의 자제 의견을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맞서 가자지구에서 6개월째 전쟁을 이끌고 있지만 아직도 인질을 구하지 못해 내부 비난이 거세다. 반면 국제사회에서는 3만명 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를 낳은 장본인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현재 이스라엘 최우방인 미국과 네타냐후의 정치적 동반자인 극우 연정 파트너들은 정반대 요구를 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에 추가 보복 자제를 촉구하지만, 이스라엘 강경 우파는 이구동성으로 이란에 대한 적극 대응을 주문한다. 그가 재보복을 선택하면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와 예멘 후티 등 친이란 무장세력을 총동원하고 이스라엘도 미국의 참전을 요구해 전쟁의 판이 커질 수 있다. 그가 자제를 결정하면 연정세력 내 갈등 심화로 실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 이어 또 다른 전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의 긴급 요청으로 14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는 분쟁 당사국인 이란과 이스라엘이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 대사는 “국제법에 따른 자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면서 “이란은 중동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이스라엘 공습에 만족하니 이스라엘은 ‘재보복에 나서지 말라’는 신호다. 반면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오늘날 이란 정권은 나치 정권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란의 군대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혁명수비대(IRGC), 그 외 야만적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를 포함한다”고 반박했다. 국제사회가 이란을 제재하지 않으면 재보복에 나서겠다는 경고다. 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는 “안보리는 이란의 공격 행위를 비난하고 이란 및 파트너·대리자들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서방 상임이사국이 이번 공습의 원인이 된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을 비난하지 않았다”며 서방세계의 이중 잣대를 지적했다. 같은 날 주요 7개국(G7) 정상들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을 공습한 이란을 규탄하면서 사태 악화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G7 정상들은 이날 영상회의 뒤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이란의 직접적이고 전례 없는 이스라엘 공격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명확히 규탄한다”고 말했다고 백악관이 발표했다. 성명은 “우리는 이스라엘과 그 국민에게 전적인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고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란을 겨냥해 “통제할 수 없는 지역의 긴장 고조를 촉발할 위험이 있다”면서 “이는 피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 56년 만에 죽음의 진실 밝혀진 미국 플로리다 우유배달부

    56년 만에 죽음의 진실 밝혀진 미국 플로리다 우유배달부

    56년 전 사망한 미국 플로리다 우유 배달부 죽음의 진실이 살해범 지인들의 증언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AP통신은 14일(현지시간) 세계 2차 대전 참전용사였으며 전역한 뒤 우유 배달부로 일했던 히람 로스 그레이엄(사진) 사망 사건의 범인을 경찰이 지목했다고 전했다. 그레이엄은 1968년 우유를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퇴근길의 숲에서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됐다. 여러 발의 총상을 입은 그레이엄 사망 사건은 미국 플로리다 인디언 리버 카운티의 가장 오래된 미제사건이었다. 이 지역 보안관 사무실은 “그레이엄은 참전 용사로 군사 훈장인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지역의 사랑받는 우유 배달부였다”면서 “증인의 결단력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단서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범인 토마스 윌리엄스는 2016년 사망했는데 그가 그레이엄의 죽음과 관련 있다는 소문은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지역신문에 편지를 써서 “자신은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범인이 죽고 나자 그의 전처와 여동생의 친구가 나서 윌리엄스가 생전에 범행을 인정한 사실을 알렸다. 두 명의 증인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범인이 죽고나자 그의 범행 사실을 알릴 용기를 냈다고 고백했다. 보안관 측은 “사망한 윌리엄스는 그레이엄의 살인을 자백했고 그의 죄책감은 무덤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며 “살인자는 철저한 노력에도 정의의 대가를 치르는 것을 피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유배달부 살인 사건’은 어떤 피해자도 잊혀지지 않고, 모든 범죄는 처벌된다는 것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 이스라엘, 버틸 수 있나?…이란 막는데 드는 돈 상상 초월 “하루 1조 8000억원” [핫이슈]

    이스라엘, 버틸 수 있나?…이란 막는데 드는 돈 상상 초월 “하루 1조 8000억원” [핫이슈]

    이란의 미사일과 무인기(드론)을 받은 이스라엘이 방공망을 운영하는데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붓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의 1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재정고문을 지낸 람 아미나흐 예비역 준장은 해당 매체에 “이란의 폭격을 막아낸 아이언돔 등 이스라엘 방공체계는 하룻밤에만 40억~50억 셰켈(약 1조 4700억~1조 8470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거리 요격에 쓰이는 아이언돔과는 별도로, 탄도탄 요격용 애로우 지대공미사일을 쏠 때마다 드는 비용은 350만 달러(약 48억 5000만 원), 중거리 발사체용 매직 완드의 비용은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 등이 소요된다”고 덧붙였다. 아미나흐 예비역 준장은 2023년 이스라엘군에 배정된 예산 규모가 600억 셰켈(약 22조 410억 원)이며, 이란을 방어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계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난 13일 발생한 이란의 대규모 공습 등에 대응하기 위해 단 하루만에 국방예산의 약 10분의 1을 소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앞서 이란은 이달 초 시리아 이란 대사관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13일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감행했다. 300대에 가까운 드론과 미사일이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날아갔으며, 이스라엘을 이중 99%를 격추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빠른 대응으로 이란의 공습에 따른 피해가 경미했으나, 남부 네게브 지역에서 요격된 미사일 파편에 10세 소녀가 다쳐 머리에 중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 등 동맹국들은 이란의 공격이 멈췄다고 보고 있다. 이에 이스라엘 국내전선사령부는 주민들에게 더 이상 방공호에 머물 필요가 없다며 대피령을 해제했다.현재 이란의 공격은 멈췄지만, 전 세계는 제3차 대전 혹은 5차 중동전쟁의 위협에 휩싸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공격 강도와 성공 여부에 따라 이스라엘의 반격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이 경우 미국도 참전을 피할 수 없으며 결국 중동 전쟁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이란 공습 이후 전화 통화를 갖고,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철통 방어” G7 정상 소집한 바이든… 확전 우려에 對이란 공격은 선 그어

    “철통 방어” G7 정상 소집한 바이든… 확전 우려에 對이란 공격은 선 그어

    6개월간 이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에서 미국과 이란이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를 후방 지원하며 이뤄지던 ‘그림자 전쟁’이 이란의 참전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적’ 보복 공격을 한 데 미국은 방어 작전을 벌이면서도 확전 방지를 위해 애쓰는 모양새다. 일주일 전부터 이스라엘과 함께 대비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이란의 공격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약 25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가자지구 전쟁 수행 방식을 놓고 대립해 온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란의 공격은 대체로 실패했고, 이스라엘은 군사적 우월성을 과시했다”면서 “이스라엘은 오늘 밤을 승리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미국, 역내 다른 국가들의 공동 방어 노력 덕분에 이란의 공격이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 후 낸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은 이란에 대한 어떤 공격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이번 공격을 규탄한다”면서 14일 주요 7개국(G7) 정상들을 소집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단결된 외교 대응”을 조율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방어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주 미군 항공기와 탄도미사일 방어 구축함을 전개했다며 “우리 장병들의 대단한 실력 덕분에 이스라엘로 다가오는 드론과 미사일 거의 전부를 격추하는 것을 도왔다”고 미국의 노력을 설명했다.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 군 참모총장은 이스라엘 공격 이후 “만약 이스라엘의 반격이 없다면 더이상의 군사작전은 없다”며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 북부의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 지대에 있는 헤르몬산 골란고원의 정보 기지만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골란고원의 장비와 네바팀 공군기지의 이스라엘의 전투기가 이란 영사관 공격에 사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바게리 총장은 “이란은 공격 목표를 확실히 파괴했다”며 “10배 더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이스라엘의 반격에 대해 사전 경고했다. 이란 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앞서 “이란과 불량한 이스라엘 정권의 대결”이라며 미국에 물러나 있으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공격에 성급하게 대응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 NBC방송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전략 없이 행동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미국과 협력해 자국의 핵 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고 의심하는데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를 가져가라”는 전화통화가 그러한 우려를 잠재울 것으로 보인다. 또 이스라엘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는 점도 미국으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는 측면이다. 미 워싱턴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대니 시트리노비츠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마스 제거, 인질 석방을 우선시한다면 중동 지역 분쟁 확대는 이런 목표에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법원 “무공훈장 받았어도 탈영이면 현충원 안장 안 돼”

    법원 “무공훈장 받았어도 탈영이면 현충원 안장 안 돼”

    여러 차례 훈장을 받은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라도 탈영 이력이 있다면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김순열)는 6·25 참전유공자 A씨의 유족이 국립서울현충원장을 상대로 ‘국립묘지 안장 비대상 결정 취소’를 요구하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A씨는 화랑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 등을 받은 국가유공자다. 제대 후 외교부 장관·국무총리 비서실에서 근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도 받았다. A씨가 사망한 뒤 유족은 현충원에 안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현충원은 A씨의 탈영 이력을 문제 삼아 “국립묘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 사람으로 인정된다”고 반대했다. 이에 유족은 현충원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가 약 9개월간 탈영했다가 복귀하는 등 총 10개월간 부대를 이탈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망인의 희생과 공헌만으로 보면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의 자격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군 복무 기간 동안 부대를 무단으로 이탈한 기간이 약 10개월로 결코 짧다고 보기 어렵고, 이탈을 정당화할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망인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립묘지의 설치·운영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 ‘한국전쟁 명예훈장’ 마지막 생존 미군 별세

    ‘한국전쟁 명예훈장’ 마지막 생존 미군 별세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미국 명예 훈장을 수훈한 참전 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랠프 퍼켓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이 97세를 일기로 지난 8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콜럼버스에 있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퍼켓 대령은 1945년 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23세에 졸업했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위로서 일본에서 창설된 제8레인저 중대 지휘관으로 임명돼 부산으로 파견됐으며 북진 작전을 진두지휘해 북한군을 38선 너머까지 후퇴시키는 데 일조했다. 퍼켓 대령은 지난해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 “돈들고 으스대며 사고치고…” 죄수 출신 러 용병 1만 5000명 고향행

    “돈들고 으스대며 사고치고…” 죄수 출신 러 용병 1만 5000명 고향행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약 1만 5000명의 죄수 출신 러시아 용병들이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위해 싸운 전과자들이 많은 돈을 들고 으스대며 귀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잘 알려진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사면과 약 2000달러에 달하는 월급을 미끼로 많은 전과자들을 용병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의 죄수 출신 용병들이 대표적이다. 앞서 바그너그룹의 수장으로 지난해 8월 사망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22년 중반부터 러시아 전역의 교도소를 돌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6개월 간 싸운 뒤 살아 돌아온다면 사면과 자유를 약속한다며 용병을 모집한 바 있다. 이같은 관행은 프리고진의 사망 이후에도 러시아 국방부가 전과자들로 구성된 ‘스톰-Z’를 운영하며 이어왔다.수감자 문제를 다루는 러시아 NGO 대표인 올가 로마노바는 “약 1만 5000명의 전과자들이 우크라이나와 전투를 벌인 후 러시아로 돌아왔다”면서 “지역 내 경찰관들조차 귀국하는 죄수들이 참전용사라는 점을 두려워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아무런 재활 과정없이 사회로 돌아온 이들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부 죄수 출신 용병들의 경우 전쟁에서 자신감을 얻었으며 이를 재활의 한 형태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실제로 죄수 출신 바그너 용병들이 귀향 후 강력사건을 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28일 러시아 페름시 출신의 니콜라이 네차예프(38)가 14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놀라운 것은 그가 지난 2019년에도 역시 같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바그너 그룹 용병으로 자원한 후 감옥에서 풀려났으며, 6개월의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지난해 11월 사면됐다. 이보다 더 파렴치한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29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법원은 각각 10세와 12세 여학생을 성폭행 혐의로 세르게이 샤흐마토프(42)에게 징역 17년형을 선고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샤흐마토프 역시 전직 바그너 용병 출신으로 사면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범죄를 저질렀다.성범죄 뿐 아니라 살인 사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죄수 출신의 바그너 용병 데니스 스테파노프(32)가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 지역의 한 주택에 불을 질러 2명의 여성을 살해한 바 있다. 또한 지난해 8월 초에도 역시 죄수 출신의 전 바그너 용병인 이고르 소포노프(38)가 고향 카렐리아에서 총 6명의 마을 주민을 살해하고 집 2채를 방화한 혐의로 체포돼 충격을 안겼다.
  •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 유해 찾는다…한미 공동조사 개시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 유해 찾는다…한미 공동조사 개시

    6·25전쟁 당시 전사했던 미군 전사자 유해 찾기에 한미 국방당국이 함께 나선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과 공동으로 8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경북 문경시, 강원 춘천시·홍천군·평창군·횡성군에서 미군 전사자 유해 소재를 조사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DPAA는 역사·인류학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인력 12명을 파견했다. 조사는 지역주민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당시 항공 사진을 토대로 현재 지형 변화를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해 매장 흔적과 같은 인공적인 지형 변화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남은 잔해물을 찾는다. 문경시는 1950년 9월 미 공군 제18비행단 소속 F-51D 전투기가 전투 임무 수행 중 추락한 장소로 추정된다. 춘천시와 홍천군은 1951년 2월 미 제2사단 소속 30명이 전사했으며, 평창군과 횡성군은 1951년 3월, 미 제2사단과 미 제7사단이 전투에 참가했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70여 년 전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고귀하게 희생된 수많은 미군 전사자들을 영원히 기리고 잊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군전사자 유해발굴과 함께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에 남겨진 유엔참전국 전사자를 찾는 데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배달비 0원’ 전쟁 격화…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배달비 0원’ 전쟁 격화…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배달업계가 이용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무료’를 내세우며 출혈을 불사하고 있다. 쿠팡이츠가 시작한 배달비 무료 전쟁에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까지 모두 참전하면서 경쟁이 점차 치열해질 전망이다. 결국은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도 나온다. 배달앱 3사 모두 ‘배달비 0원’ 선언 6일 배달업계에 따르면 배달 애플리케이션 요기요는 5일 전국 이용자를 대상으로 배달비 없이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음식을 주문할 때 ‘요기배달(실속배달·한집배달)’로 최소 주문금액 1만 5000원 이상을 주문하면 무료 배달이 가능하다. 묶음배달(실속배달)이 아닌 단건배달(한집배달)의 경우에도 배달비 무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따로 무료 쿠폰을 내려받을 필요도 없다. 가게 할인 쿠폰과 프랜차이즈 즉시 할인의 중복 적용도 가능해 배달앱 가운데 가장 많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요기요 측의 설명이다. 요기요는 무료 배달 멤버십 요기패스X의 최소 주문금액 기준(1만 7000원)도 없앴다. 월 구독비 2900원을 내면 요기패스X 대상 모든 가게에서 횟수 제한 없이 ‘배달비 0원’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가게 쿠폰 중복 적용도 가능하다. 요기요는 앞서 지난달 요기패스X의 구독비를 기존 4900원에서 2900원으로 내렸다. 그럼에도 배달비 무료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 것이다. 이미 경쟁사인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이 무료 배달 전쟁에 뛰어든 상태다. 지난달 26일 쿠팡이츠는 유료 멤버십(4990원)인 와우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묶음 배달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도 이달 초부터 수도권에서 알뜰배달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알뜰배달은 비슷한 동선의 여러 주문을 묶어서 배달하는 서비스다. 여기에 더해 한집배달엔 10% 무제한 할인쿠폰을 계속해서 발급하기로 했다. 배달비는 그대로 내야 하지만 음식값을 할인받는 것이다. 서비스 내용만 3사를 비교해 보면 한집배달까지도 무료를 선언한 요기요가 가장 공격적이다. 성장 둔화에 이용자 뺏기·지키기 골몰 배달앱 플랫폼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가 엔데믹화(감염병의 주기적 유행)되며 성장이 둔화한 데다 업계 내 순위가 바뀌는 등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쿠팡이츠 앱 사용자는 649만명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요기요(598만명)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4월 쿠팡이츠가 와우 멤버십 회원에게 ‘10% 할인’ 혜택을 제공한 뒤로 요기요를 따라잡기 시작했고 이번에 무제한 무료 배달 서비스로 사용자 수를 더 늘린 것이다. 배달의민족은 2126만명으로 가장 사용자가 많았다. 땡겨요가 68만 명, 배달특급이 33만 명 순이었다.배달업계 성장은 이미 둔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 서비스(배달음식) 온라인 거래액은 26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했다. 2017년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규모가 줄었다. 음식 서비스 온라인 거래액은 2017년부터 2조7000억원에서 코로나19 확산을 거치며 2022년 26억6000억원까지 늘었다. 결국 시장이 한정됨에 따라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2위 자리를 두고 쿠팡이츠와 요기요 간 ‘이용자 뺏어오기’ 경쟁은 물론, 1위 배민의 입장에선 격차를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한 ‘이용자 지키기’도 필요한 상황이다. 다만 배달업계에선 이러한 출혈 경쟁이 장기간 계속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배달업체들의 마케팅 비용이 늘어날수록 그 부담을 수수료 인상 등으로 외식업주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익 보전을 위해 업주는 음식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엔 무료 배달이 진짜 무료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6·25 참전영웅’고 강윤식 일등중사… 74년만에 고향 제주의 품에서 잠들다

    ‘6·25 참전영웅’고 강윤식 일등중사… 74년만에 고향 제주의 품에서 잠들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6·25 한국전쟁에 참전해 고귀한 삶을 바친 호국영웅 고(故) 강윤식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가 74년 만에 고향인 제주로 돌아와 가족들의 품 안에서 영면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4일 오전 국립제주호국원에서 6·25전쟁 전사자인 고(故) 강윤식 일등중사의 발굴유해 안장식이 거행됐다고 밝혔다. 고인은 1922년 9월 제주도 서귀포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고인의 부모는 고구마·보리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부모밑에서 자랐으나, 가세가 기울자 고인을 후대가 없는 친척의 양자로 보내졌다. 1942년 현여매 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제주에 있던 제5훈련소에 자진 입대했다. 제5사단에 배치돼 대구로 이동한 고인은 같은 해 10월 ‘영남지구 공비토벌’에 참전했다. 이후 그는 ‘횡성-포동리 전투’와 ‘태기산 전투’를 거쳐 1951년 4월 7일부터 ‘인제지구 전투’에서 참전했다가 1951년 4월27일 27세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인제지구 전투’는 1951년 당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물리친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을 펼치는 단계에서 캔자스선(한탄강 이남)으로 북진하던 제5사단이 소양강 일대에서 북한군 제6·12사단과 싸운 전투다. 캔자스선이란 1951년 서울 탈환 후 38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구-양양을 연결한 유엔군의 방어선을 말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2년 4월 강원도 인제군 박달고지 능선일대에서 발굴한 6·25전쟁 전사자 유해 중 故 강윤식 일등중사의 신원을 지난해 11월 확인했다. 이후 2021년 고인의 증손자 강성문(24) 씨가 군에 입대해, 유해발굴 사업을 알게 되어 유가족이 DNA 시료 채취에 동참하였고, 이를 통해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의 친손자 강철진씨(54)는 “아버지께서는 해군 부사관으로서 월남전에 참전하셨고, 평생을 할아버지의 유해를 기다리며 보내셨습니다. 비록 아버지께서는 눈을 감으셨지만, 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아서 고향 제주에 명예롭게 모실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7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잊지 않고 끝까지 찾아준 국가와 군(軍)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주관한 이날 안장식에는 친손자 강 씨를 비롯한 유가족과 김성중 제주도 행정부지사,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배진현 육군본부 인사기획근무차장, 박승일 해병9여단장, 허성재 해군7기동전단장 등 군 관계자, 제주보훈단체장이 참석했다. 김성중 행정부지사는 추모사를 통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고인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의 용기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고(故) 강윤식 일등중사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추모사에서 “선배 호국영웅께서 이루어낸 승리의 발자취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번영에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면서 “우리 군은 이 땅 어디에선가 기다리고 계실 또 다른 호국영웅들을 끝까지 찾아서 단 한 분도 홀로 남겨두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모실 것”이라고 밝혔다.
  • ‘호국영웅 형제’ 무공훈장, 73년 만에 유가족 품으로

    ‘호국영웅 형제’ 무공훈장, 73년 만에 유가족 품으로

    육군은 1일 경기 양주시 제25보병사단에서 고 이형곤 이등상사(현 중사)와 고 이영곤 일병 형제에 대한 무공훈장 전수식을 거행하고 73년 만에 형제의 무공훈장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고인은 각각 수도사단과 2사단 소속으로 참전하다 전사했으며, 화랑무공훈장 후여가 결정됐다. 하지만 긴박한 전쟁 상황으로 ‘가(假) 수여증’만 부여된 채 세월이 흘렀다. 육군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은 2023년 11월 이 이등상사의 제적등본(현 가족관계증명서)을 발견하면서 유가족을 찾게 됐다. 이날 전수식에 참가한 고인의 막냇동생 이정곤(81)씨는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두 형님의 훈장을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형님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도록 어려운 과정을 거쳐 훈장을 찾아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주역들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주역들

    국가보훈부는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 100주년을 맞아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유기동·김만수·최병호 선생 등 3명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하얼빈 총영사관 의거는 중국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 소속 경찰들이 일대 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한다는 소문이 돌자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의열 활동을 일으킨 일이다. 당시 김만수·최병호 선생은 하얼빈 지역에서 친일파와 일본 경찰을 암살하고 기관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은신하던 중 예전의 동지 유기동 선생과 우연히 만나 함께 의열 활동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거사가 실행되기 전 은신처가 발각돼 포위되자 격렬한 항전 끝나 일본 총영사관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를 사살하고 일본 경찰을 비롯한 중국군과 밤새 교전을 벌이다 1924년 4월 8일 장렬하게 순국했다. 1891년 경북 안동 출생인 유기동 선생은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흥업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892년 안동 출생인 김만수 선생은 서로군정서와 한족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03년 경북 울진 출생인 최병호 선생은 만주에서 서로군정서 헌병대 활동을 하며 다양한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보훈부는 “세 청년의 의거는 만주 무장 독립운동 진영에 큰 교훈을 줬고 1924년 6월 이후 독립군단들이 통합되면서 항일무장투쟁이 강화되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세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보훈부는 또 6·25전쟁 당시 해병대 최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고길훈 해병 소장을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22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난 고 소장은 1946년 5월 해군에 입대해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해병대 창설 요원으로 활약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0년 7월 초 충남 천안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 13연대가 호남 지역으로 남하하자 고 소장(당시 소령)의 부대는 7월 16일 군산에 상륙해 충남 서천군 장항 방면으로 진출하려던 적을 저지했다. 이어 7월 18일부터 다음 날까지 전북 군산, 이리(현 익산) 방면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 해병대 최초 전투에서 승리했다. 고 소장은 또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해 국군 최초로 한강을 건너 북한군의 서울 사수 최후 방어선인 연희고지(현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적을 섬멸하는 등 서울탈환 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공훈을 세웠다. 그는 전쟁 기간 동해안 전략도서확보작전, 강원도 양구 부근의 김일성 고지 전투, 월산령지구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는 해병대사령관을 지내고 1963년 12월 예편했고, 1981년 별세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 이종섭 호주 체류는 겨우 열흘…외교 결례 논란에 “한·호주 관계 변함없을 것”

    이종섭 호주 체류는 겨우 열흘…외교 결례 논란에 “한·호주 관계 변함없을 것”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임명된 지 25일 만에 물러나게 되면서 외교 결례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국가를 대표하는 재외 공관장이 한 달도 안 돼 사임한 데다 그 과정에서 정작 주재국에 머문 것이 열흘 남짓밖에 되지 않는 등 초유의 상황이 계속된 이유에서다. 다만 외교부는 호주 측과 소통을 했고 긴밀하게 협력해온 만큼 양국 관계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부는 29일 이 대사의 사의 표명에 따른 한·호주 관계의 영향에 대해 “한·호주 양국 관계는 변함없이 굳건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호주는 가치를 공유하는 역내 대표 유사입장국이자 우리의 인도태평양전략 이행의 핵심 파트너”라며 “한·호주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국방, 방산 등 핵심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주 측은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한·호주 양자관계를 중시하며 이 대사와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이 대사의 사의 표명 이후에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차기 주호주대사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또 “이번 이 대사의 사의 표명에 대해서는 호주 측에 외교채널을 통해 설명했고, 호주 측도 이해를 표했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오른 상태에서 지난 4일 특명전권대사인 주호주대사로 임명됐다. 특히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 상태였던 것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이 됐는데 당시 호주는 “이 대사와의 협력을 고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대사는 출국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지난 10일 호주로 출국했는데, 오히려 수사 회피 의혹이 더해져 비판이 쏟아졌고 이는 곧 여당의 총선 악재로 떠올랐다. 결국 총선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출국한 지 11일 만인 지난 21일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을 이유로 귀국했다. 이 대사가 실제 호주에 머문 기간은 불과 열흘로, 주호주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대사가 이 기간 동안 수행한 공식 일정은 12일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방문과 헌화 일정이 전부였다.
  • 주한호주대사관 “차기 대사와 긴밀한 협력 고대”

    주한호주대사관 “차기 대사와 긴밀한 협력 고대”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9일 사임한 데 대해 주한호주대사관은 “호주는 호·한 관계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며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차기 주호한국대사와 긴밀히 협력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지난 4일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지 25일 만인 이날 외교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임명 직후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대상이었던 데다 출국금지 조치 중이었다는 게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주한호주대사관은 “호·한관계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며 이 대사와 협력을 고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대사는 지난 10일 부임을 위해 출국했지만 ‘수사 회피’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총선 전 여당의 악재로 불거지자 지난 21일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을 이유로 11일 만에 귀국했다. 주호주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대사가 약 열흘 동안 호주에 머물며 수행한 공식 일정은 12일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방문해 헌화한 일정뿐이다.
  • ‘대파 한 단 875원’ 참전 이수정 “잠시 이성 잃고 실수, 사죄드린다”

    ‘대파 한 단 875원’ 참전 이수정 “잠시 이성 잃고 실수, 사죄드린다”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합리적’ 발언 논란에 뛰어든 것에 대해 “잠시 이성을 잃어 실수했다”며 사과했다. 이 후보는 29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민생을 모른다는 저들의 지적이 부당하다는 생각에 잠시 이성을 잃고 실수의 말을 했던 것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적었다. 앞서 이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는 발언이 논란을 빚자 “대파 한 단이 아닌 한 뿌리를 말한 것”이라고 옹호했다가 야권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이에 이 후보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오늘 아주, 제가 대파 격파합니다. 이쪽 한 단에는 7개 들었고요, 이쪽 한 단에는 8뿌리 들었어요. 가격으로 따지면 한 개(단)에 2500원씩, 재래시장에서. 두 단 사니까 5000원밖에 안 합니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권뿐만 아니라 네티즌으로부터도 ‘국민 공분을 일으켜놓고 유머로 끝내라니 국민 삶이 장난인가’, ‘여당 후보가 오히려 대통령 대파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서둘러 영상을 삭제했다. 이 후보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제 순진함을 자책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며 “순수한 의도로 장난삼아 올린 영상을 야권에서 악용했다”며 불편해했다. 이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양육과 사회생활을 어렵게 이어왔고 늘 근검절약하며 살았다”며 “민생을 더 깊게 촘촘하게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 [박성원의 직설대담] “오류 판명된 이들이 이승만 부정… 자학사관 벗어나 자부심 가질 때”

    [박성원의 직설대담] “오류 판명된 이들이 이승만 부정… 자학사관 벗어나 자부심 가질 때”

    다큐 영화 ‘건국전쟁’ 관람객 수가 116만명을 넘어섰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에 관해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얘기들을 실증적 자료 발굴을 통해 다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이 전 대통령에게 덧씌워졌던 가짜뉴스는 무엇이었으며, 대한민국의 출범과 번영을 가능케 한 역사적 사실은 무엇이었을까.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건국전쟁’이 공감을 얻게 된 요인으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면서 일어난 우리 현대사에 대한 자각”과 “이제는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가질 때가 됐다는 시민들의 심리 상태”를 꼽았다. 그는 또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대한 염증이 ‘이승만 정부=친일 정부’라는 매도와 비판의 자양분이 됐다”면서 “이 전 대통령의 현실주의 노선으로 인해 자신들의 논리가 오류라는 게 판명된 쪽에서 이승만을 부정하고 그의 노선을 끈질기게 비난해 왔다”고 말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한국정치학회장 등을 지낸 심 교수는 해방공간 사회주의 계열 인물에 관해 많은 연구 업적을 쌓았다. 한국 정당정치사는 물론 근현대사 연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서울신문 광화문 사옥에서 이뤄졌다.-왜 지금 이승만 다시보기가 활발해진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는 부정적 담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고, 우리 국력과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면서 우리 현대사가 부정적,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이제는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현대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될 때가 됐다’는 시민들의 심리 상태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체제를 도입한 이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만든 것으로 본다.” -이 전 대통령이 4·19 때 부상당한 학생들을 문병하며 울먹이고 장제스 대만 총통에게 보낸 편지에선 학생들의 거사를 칭찬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듯하다. “자유당의 부정부패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자유당 총재인 이 전 대통령도 동일시돼 실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부정적 담론이 너무 지배적이었기에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도 의지도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 떠날 때 망명이 아니라 잠시 다녀온다고 하면서 떠났는데,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떤 상황이었나. “본인은 하야할 때 국민들이 보여 준 높은 지지로 봐서 정국이 안정되면 귀국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으로선 신구파 갈등과 사회적 혼란으로 취약한 권력기반이 더욱 약화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귀국을 반대했고, 군사정부도 정통성에 의문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귀국을 막았던 것이다.” -하와이에서 한인 소녀들을 데려다 교육을 시킨 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6년 의무교육을 실시한 일, 여성 참정권 부여에 대한 선각자적 의지를 보여 주는 대목들도 나오는데. “미군정에서 마련한 선거법이 보통선거 요소로 돼 있기도 했지만 이 전 대통령 본인이 평등사상이 체질화된 분이고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여성의 참여가 활발할수록 나라가 발전한다는 근대적·개방적 사고를 갖게 됐다고 본다.” -근현대사 연구 학자로서 영화에서 발굴한 새로운 내용 중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목은. “뉴욕의 환영 퍼레이드가 인상 깊었다. 공산 침략에 굴하지 않고 이를 물리친 것이 미국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 같다.”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해 여전히 제대로 다뤄지지 못해 아쉽게 생각하는 것들은 없는지. “전에 이화장에서 이 전 대통령 관련 자료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옥중에서 영한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영어단어 밑에 우리말 풀이를 써 놓았던 카드가 많이 있었다. 또 하나는 금전출납부 형식의 장부였는데, 기부금을 받고 발급한 영수증이 많이 있었다. 액수가 아주 적은 것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어 독립자금을 유용했다는 일부 주장은 오해이거나 근거가 약할 수도 있겠다 생각된다.” 이화장은 해방 후 미국에서 귀국한 이 전 대통령에게 지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련해 준 거처로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자리해 있다. 이곳에 살면서 정부 수립 운동을 벌였고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에 당선돼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이사한 1948년 7월까지 살았다. 사적 제497호. -해방 직후 여러 정치세력이나 지도자들 가운데 우남 이승만은 어느 정도 지지와 영향력을 갖고 있었나. “우익 진영의 한국민주당은 물론 좌익 진영에서 선포한 인민공화국도 주석으로 추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미군정이나 맥아더 사령부가 해방 후 정국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이 전 대통령의 귀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국제정치의 현실에 대한 분석도 탁월했다.”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노선과 국내외 무장투쟁, 교육·문화 등을 통한 자강운동 각각의 기여와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각각의 운동이 나름대로 의미와 기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장투쟁은 국내에선 소규모 폭탄 투척 등을 제외하곤 불가능했고, 국외의 경우 청산리·봉오동 전투를 제외하고 1920년대 초반 이후에는 일본군의 탄압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만주에 있던 독립군이 시베리아로 갔으나 자유시 참변으로 대부분 적군으로 흡수되거나 해산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1940년대 들어 중경에서 광복군이 결성되고 연안에 조선의용군이 창설됐지만, 독자적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전개한 게 아니라 중국의 국민당군과 공산당군의 후원 아래 활동한 것이다. 합방 이후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말 보급이나 민족의식 고양 등을 위한 신문 발행 등 교육문화사업밖에는 없었다.” -2000~3000명의 독립군으로 700만명의 일본군을 무력으로 이길 수도 없었기에 외교, 특히 미국의 힘을 빌려 해방을 이루는 외교노선이 사실상 유일한 방안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내나 중국이 아닌 지역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외교활동뿐이었다. 미국 조야를 상대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는 일은 무장투쟁 못지않게 중요하다. 결국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일본이 패망했고, 그 결과 해방을 맞이한 것이기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초대 내각엔 친일파가 없고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반면 북한은 초대 내각에 친일파가 적잖이 기용됐다. 그럼에도 남한은 친일파 정권이고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철저히 했다는 식의 얘기가 지배적으로 돼 온 이유는. “북한의 비난과 남로당의 비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북한으로서는 김일성의 항일 활동을 부각하기 위해 남한을 친일파 정권으로 매도할 수밖에 없었고, 남로당의 경우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남한 정부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친일담론을 꺼낸 게 영향을 미쳤다.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는 이런 비판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한 셈이다. 학계의 무관심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1946년 6월 3일 이 전 대통령의 정읍 발언을 두고 그를 ‘분단의 원흉’으로 낙인찍는 비판이 있어 왔다. 이보다 앞선 북한의 정권수립 과정에 관해 러시아의 관련 문서 등이 공개된 뒤에도 이런 주장들이 버젓이 계속된 원인은. “1946년 2월 8일 북한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돼 정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북한 스스로도 주권기관이 수립됐다고 하는 마당에 남한도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정읍 발언이다. 분단의 원흉이라는 주장이 계속되는 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연구 풍토가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을 상대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이승만의 힘은 어디서 나왔다고 보는가.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 누구보다 예리하게 파악했던 분석력과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승부수가 미국으로 하여금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게 만든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없었더라도 누군가 북한 공산주의에 맞서고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이끌 수 있었을까. “당시 이 전 대통령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이 없었다. 백범도 그를 깍듯이 형님으로 모셨을 정도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북한에서 이 전 대통령 사후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타도 이승만’을 외치고,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건국대통령이 없는 나라가 돼 온 이유는. “북한은 이 전 대통령이 김일성을 능가하는 카리스마와 업적, 혜안을 갖춘 데다 남침을 막아 냄으로써 자신들의 도발이 무모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다. 남한의 경우 이 전 대통령의 현실주의 노선으로 인해 이상주의자들의 논리가 오류라는 게 판명됐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을 우습게 만든 그를 부정하고 그의 노선을 비난하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봐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선 이 전 대통령이 공은 없고 과만 있는 인물로 묘사되거나 ‘공3 과7’ 정도로 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7 과3’이나 ‘공6 과4’ 정도로는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심지연 교수는 ▲76세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서강대 정치외교학 박사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정당학회 회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회장 ▲국회 입법조사처장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현)
  • 천안함 46용사, 14년 지나도 그리운 아들들

    천안함 46용사, 14년 지나도 그리운 아들들

    2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에서 유가족이 추모비에 새겨진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날 추모식은 유가족과 천안함 피격사건 참전 장병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연합뉴스
  • 참전유공자 50만명 역사를 담는 시스템 만든다

    참전유공자 50만명 역사를 담는 시스템 만든다

    6·25전쟁 참전유공자들의 생생한 활동상을 개인별로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공훈록이 올해 안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가보훈부는 참전유공자의 개인별 참전내용(공훈록)을 망라한 ‘참전유공자 역사찾기’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26일 밝혔다. 참전유공자 역사찾기 시스템에는 보훈부에 등록된 50만명에 이르는 참전유공자들의 출신지, 계급, 병과, 참전부대, 안장지는 물론 개인별 활약상도 담을 예정이다. 보훈부가 구상하는 참전유공자 역사찾기 시스템은 현재 보훈부가 운영하는 독립유공자 정보 시스템과 유사한 형태가 될 전망이다. 독립유공자 정보 시스템에는 2만명에 이르는 독립유공자의 성명과 생몰년, 본적, 포상연도 및 훈격 등과 함께 각종 조사를 통해 검증된 개인별 일대기가 담겨 있다. 보훈부는 통합보훈과 병적시스템 등 기존 자료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참전공훈 전몰 데이터베이스(DB)와 연계도 협의하고 있다. 전쟁기념관, 국방홍보원 등이 보유한 6·25전쟁 현황, 인포그래픽 등 자료를 활용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보훈부는 올해 1만2000명을 목표로 참전유공자 발굴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참전을 확인한 유공자의 유가족에겐 국립묘지 이장 등 보훈지원 안내도 실시하고 있다.
  • 천안함 14주기 추모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려

    천안함 14주기 추모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려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기리는 제14주기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이 26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거행됐다. 김경철 2함대 사령관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천안함 장병, 2함대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유가족과 참전 장병들은 천안함 전시 시설과 신형 호위함으로 부활한 천안함(FFG-Ⅱ)을 둘러봤다. 해군은 지난해 12월 실전 배치한 신형 호위함을 ‘천안함’으로 명명한 바 있다. 2010년 천안함 작전관으로 근무했던 박연수 천안함 함장은 추모식에서 “14년 전 오늘이 눈앞에 생생하고 그날 이후로 전우들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며 “천안함 전우 모두와 함께 전장으로 나아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완벽하게 사수하겠다”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