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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엽제 후유증 환자 진료법률」/현역군인만 혜택… 평등권 위배

    ◎사망자 유족 헌법소원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한 군무원의 유족들이 헌법재판소에 고엽제 후유증 환자 진료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양균재판관)는 3일 전 주월한국군사령부 소속군무원 신병식씨(부산시 서구 충무동 2가)의 유족들이 『고엽제 후유증환자 진료등에 관한 법률에서 적용대상을 현역 군인으로만 제한한 것은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며 지난 7월 헌법소원을 제출,현재 심리중이라고 밝혔다.
  • 「태백산맥」 협박편지/8개단체대표 출두 요구

    ◎“「참전군인연맹」 등 5일까지/경찰/공윤 심의후 수사방향 결정/제작사·극장대표도 출석 요청 영화 「태백산맥」 제작진과 극장에 대한 협박편지발송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은 3일 편지발송인으로 돼 있는 「한국전쟁참전군인연맹」등 8개 단체대표들에게 5일까지 출두하라는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경찰은 또 협박편지를 받은 태흥영화사,극장연합회,국도·단성사의 대표 4명에 대해서도 피해여부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위해 출석토록 요청했다. 경찰은 편지발송인으로 돼 있는 단체의 대표들을 상대로 편지를 보내게 된 경위와 협박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등에 대해 조사한 뒤 형사처벌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경찰관계자는 『내주초 공연윤리위원회에서 태백산맥에 대한 본심의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보고 난 후에 수사방향을 최종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태백산맥」 상영 저지”/협박편지 수사 착수/경찰

    ◎자민련명의 발송경위 등 조사 경찰은 31일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자민련)」등이 영화 「태백산맥」의 제작사와 극장등에 『태백산맥의 상영을 저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협박편지를 보낸 사실과 관련,전국극장연합회와 극장등을 통해 사실확인에 들어갔다. 경찰청은 이날 이 협박편지의 발송자와 함께 전국 몇곳의 극장이 편지를 받았는지의 여부를 파악하라고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다. 경찰은 또 「자민련」등의 명의로 된 협박편지를 입수,내용분석과 함께 편지발송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협박편지의 내용과 발송자·수취인등의 확인 작업이 끝나는대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민련」과 「한국참전군인연맹회장 임부택외 가맹단체일동」으로 된 이 협박편지는 지난 17일자로 서울극장연합회와 공연윤리위원회등에 『영화 태백산맥을 상영하면 화약·휘발유·가스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겠다』등의 내용으로 보내졌다. 한편 「자민련」등 8개 단체는 지난 4월 소설 「태백산맥」작가 조정래씨(51)와 한길사 대표 김언호씨(49)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경찰청에 고소했었다.
  • 고엽제환자 무료진료 확대/보훈처,10월부터/후유증에 4개질환 추가

    ◎2천2백여명 혜택/미사상대 소송비용 국가부담 고엽제 피해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내년부터 97년까지 3년동안 고엽제환자에 대한 본격적인 정부차원의 역학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된다. 또 고엽제환자들이 미국 제조회사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피해배상소송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고엽제피해증상으로 의심되는 후유의증(응증)에 지루성피부염등 4종의 질병이 추가된다. 국가보훈처는 30일 고엽제환자등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 이같은 내용의 「고엽제 후유의증 질병범위 확대 및 고엽제환자 진료대책」을 마련,내달중 관계법령등을 고쳐 10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고엽제후유의증으로 현행 당뇨병·고혈압등 16개 질병에 심상성건선·지루성피부염·만성담마진등 3개 질병과 B·C형 간염을 추가해 질병범위를 모두 20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엽제환자등으로 신청한 3천8백76명 가운데 65%인 2천2백여명정도가 국비로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트일 전망이다. 현재 고엽제질환으로 국비진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1천5백65명이다. 보훈처는 또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실시된 고엽제환자에 대한 예비역학조사를 토대로 10월부터 97년6월까지 본격적인 역학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이와 함께 현재 대한해외참전전우회(회장 박세직민자당의원)등 참전단체가 추진중인 미국의 제조회사에 대한 피해배상소송에 승소할 수 있도록 국제소송 재판기록 입수등 필요한 행정을 지원하고 소송비용 1억8천여만원을 국가예산에 편성해 부담키로 했다.
  • “군수뇌부 개편설” 러정국 어수선/개편설 증폭 배경과 전망

    ◎레베드중장 “반옐친” 천명에 크렘린 충격/그라초프국방 경질설 보도… 군 저항조짐 파벨 그레초프국방장관을 비롯,러시아 군수뇌부의 개편가능성이 강도높게 거론되고 있다. 군 고위직에 대한 개편 필요성은 그간 국방비 책정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군 수뇌부의 불만, 현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해 군부내 불만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등으로 인해 꾸준히 거론 돼 오기는 했었다.그러던 것이 지난 7월말 몰도바 주둔 제 14군사령부 사령관 알렉산드르 레베드 중장이 공개적으로 반 옐친입장을 천명한 것을 계기로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크렘린 내부에서 강하게 증폭됐다는 분석들이다. 일간신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를 비롯한 러시아 언론들은 17일 구체적인 후임인사까지 점치며 그레초프국방의 경질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현재 후임장관으로 옐친대통령이 가장 의중에 두고 있는 인사는 국경수비사령관 안드레이 니콜라예프 중장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레초프국방이 물러날 경우 그와 함께 현재의 군수뇌부를 형성해온 아프가니스탄 참전파들인이른바 「아프간그룹」의 대거 퇴진이 뒤따를 것이라는게 관계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제14군 레베드장군의 공개적인 반 옐친 입장 천명은 크렘린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는 그동안 내전중인 몰도바에서 그곳 주둔 러시아군을 지휘하면서 크렘린의 명령을 무시하고 줄곧 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해온 민족주의자다.그러다 지난 7월말 공개적으로 옐친대통령의 국가통치능력을 「마이너스 수준」이라며 현재의 정치·경제적 국가위기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칠레의 피노체트 같은 군사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이 발언에 대한 문책설이 나돌자 14군 내부에서 이에 불복하고 무력저항까지 불사하겠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그에 대해서는 군사학교나 아니면 외국에 군 고문관 같은 한직으로 전보시킬 것이라는 설이 나돌고 있다. 크렘린에서는 레베드장군 건을 그동안 군 부내에 형성되어 온 반 정부,반 옐친세력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사령관급을 비롯,중간 장교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반 정부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게 크렘린측의 판단이다.이들의 주된 불만은 열악한 대우,대외정책에서 서방에 너무 저자세로 임한다는 것등이다.지난 5월9일 제2차세계대전 승전 50주년 행사때는 옐친대통령이 수도방위부대의 사열을 받으면서 장교들의 반란에 대비한 특별경호작전까지 발동됐던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81년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이 사열도중 군부내 반란세력에 의해 살해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레초프장관 경질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과 함께 레베드장군을 14군 사령관에 천거한 사람이 바로 그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오는 96년 예정대로 총선·대선을 치르든 아니면 선거 연기를 결정하든 옐친대통령으로서는 그전에 군부 단속부터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고려상황의 하나일 것이다.
  • 42년만에 치른 소대장 영결식/연천 DMZ서 심창섭소위 유골 발견

    ◎6·25 백마고지전투서 산화… 현장에 묻혀/신분증 등 찾아내 신원확인… 훈장 추서 「군번 120728.이름 심창섭.소속 보병 제9사단 28연대 2대대 5중대.계급 소위」 6·25당시 임관 6개월도 못돼 격전의 백마고지전투에서 전사,전우들에 의해 포연이 자욱한 그 자리에 묻힌 심소위의 유골과 유품이 42년만에 발굴돼 17일 현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심소위의 유골은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전방 열쇠부대 수색대대 소대장 권오윤소위(25)등 수색대원 10명은 지난 6월15일 연천북부 비무장지대에서 진지보수작업을 위해 땅을 파내려가던중 흩어진 유골을 찾아냈다. 초여름의 더위속에서 땀을 흘리며 삽을 놀리던 대원 이상현상병(22)이 땅에 묻힌 유골과 가죽지갑,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빛바랜 신분증 1개등을 발견한 것. 수색대원들은 이 유골이 전투끝에 산화한 선배장병의 것으로 직감,헌병대에 보고하고 정밀조사에 들어가 유골일체와 「심창섭」이라고 새겨진 플라스틱도장,실탄 10발이 들어 있는 카빈소총을 추가로 찾아냈다. 열쇠부대는 이 유품들을 즉시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지문감식등을 의뢰하는 한편 육군본부 병적과의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의 위패봉안자명부등을 통한 신원확인작업에 나섰다. 지문감식에는 실패했지만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에서 전사·위패봉안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한달여만인 지난달 중순 신원이 최종확인됐다. 국군문서보관소는 심소위에 대해 「52년5월24일 소위임관,52년10월9일 강원 철원지구에서 두부파편창으로 전사,본가에 봉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마고지는 52년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동안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이 펼쳐진 격전지.양측 합해 1만3천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 바뀐 것으로 전사에 기록돼 있다. 육군은 당시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한 심소위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17일 상오 부대안에서 참전동지·유가족등이 참가한 가운데 영결식을 치르고 심소위에게 1계급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독자로 대가 끊긴 심소위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심재홍씨(47)는『항상 위패만 국립묘지에 봉안돼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고인도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 걸프전 증후군 보상/미하원서 법안 의결

    【워싱턴 연합】 미하원은 8일 의사들도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증후군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걸프전참전 미상이군인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의결했다. 미하원은 또 복무와 관련해 신체상의 장애를 입은 상이군인과 미망인이나 유가족들에게 지급하는 생활비를 3% 인상하기로 하는 법안도 의결했다.
  • 북한 수감 정치범명단 첫공개/국제사면위

    ◎79년 노르웨이서 납북 고상문씨(수도여고 지리교사)도/전외교부부장 등 거물포함 55명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정치범의 명단이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처음 공개됐다. 국제사면위원회는 30일 북한 평양시 근교에 있는 승호마을내 정치범수용소에 강제구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49명과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6명등 모두 55명의 정치범명단을 발표했다. 특히 이날 공개된 정치범 명단 가운데는 79년 노르웨이 연수도중 납북된 고상문 수도여고 지리교사도 포함돼있어 『고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북한측의 주장이 허구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개 명단에는 또 유창식 전외교부 부부장(77년 간첩혐의로 수감)과 김종호 전북한동해사령부 부사령관,이재용 한국전 정치고문등 거물급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으며 일부는 30년이상 수용소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된 사람중 조총련관련자는 23명,우리나라에 있다가 납북 되거나 월북한 사람은 12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6백여명이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승호마을 정치범수용소는 겨울에도 난방장치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조명시설도 형편없으며 감시원들이 재소자들을 심하게 구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면위원회는 또 평양에서 동쪽으로 70㎞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승호마을 정치범수용소의 열악한 실태등을 공개했다. 이곳에 수용된 정치범들은 전직 당간부들이 많으며 이들 대부분은 간첩활동이나 반국가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 아시아·태평양지역회의에 참석중인 아·태대표단은 이날 하오 서울 종로구 종로2가 YMCA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한 정부당국에 양심수의 석방등 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을 촉구하면서 지난 6월 이 단체가 발간한 「북한정치범에 대한 최근 보고서」를 함께 발표했다. 국제사면위는 이날 회견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은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망이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어 북한의 새 지도부에 조만간 북한내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며 ▲모든 양심수의 석방 ▲북한 형법중 독소조항철폐 ▲현재구금돼 있는 주민들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등을 요구했다. 55명의 정치범 명단은 다음과 같다. ▲안암준(조총련) ▲안흥갑(〃) ▲안이준(〃) ▲조복애(한국전 참전) ▲조병욱(남한인) ▲조종갑(조총련) ▲최경식 ▲정종도(남한인) ▲정우택(조총련) ▲강대영(〃) ▲강정석(남한인) ▲강수호(조총련) ▲강영수(〃) ▲김보겸(남한인) ▲김병훈(조총련) ▲김천해(〃) ▲김인봉(전 무역부 고문) ▲김진호(조총련) ▲김종호(전북한동해사령부 부사령관) ▲김상일(전무역부 간부) ▲김용길(조총련) ▲고대기(〃) ▲고상문(남한인) ▲곽철(일명 곽종구·조총련) ▲권봉학(〃) ▲이치수(남한인) ▲이대철(조총련) ▲이동호(대남사업부 부부장) ▲이재용(한국전 정치고문) ▲이재용(북한인) ▲이장수(남한인) ▲이준광(〃) ▲이라용(북한역사학자·「청년과 혁명」저자) ▲민용일(조총련) ▲문회장(대남사업부 부부장) ▲오헌(일명 김시택·조총련) ▲박창섭(한국전 북한군참전자) ▲박무(조총련) ▲박은철(조총련) ▲노준우(남한인) ▲류송근(〃) ▲서용칠(조총련) ▲신재화(남한인) ▲신묵(조총련) ▲손재석(〃) ▲손귀익(〃) ▲송관호(〃) ▲엄길송(무역부 고문) ▲엄귀환(남한인) ▲한경지(전외국간행물출판부비서·간첩혐의로 67년체포) ▲후익(소련귀화인·조선노동당고등학교 전교장) ▲김용수(소련귀화인·여·전언론담당책임자) ▲이기석(전경공업부장) ▲유창식(전외교부 부부장) ▲윤선달(조선노동당중앙위연락부 부부장)
  • 구소외교문서를 보고/“러시아는 당·군문서도 내놔야”/이명영(기고)

    ◎「김일성 정체」 규명할 귀중한 사료 6·25남침전쟁과 관련된 구소련의 외교문서가 드디어 공개됐다. 러시아 외무부의 대외관계문서중 6·25관련 문서만 추린 것으로서 시기적으로는 1949년1월부터 1953년9월까지의 해당문서라고 하니 전쟁발발 1년반전부터 휴전이 성립한 두달후까지에 걸친 문서들이다.전쟁준비를 위해 북한과 소련과 중공이 어떻게 협력하며 움직였는가,또 그들이 일으켜놓은 전쟁의 진행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어떤 경위로 중공으로 하여금 참전케 했는가.그러고도 전선이 교착되자 어떤 순서로 휴전에 도달했는가 등이 소상히 기록된 문서의 공개였다. 이 문서들 속에서 우리는 몇가지 의미있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새로운 기록들을 찾을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문서들이다.그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는 내용들은 이미 모스크바의 신문이나 단행본으로 밝혀진 것들이다.그 기사나 논문들이 의거했던 출처가 바로 이번에 우리가 접한 문서들인 것이다.이 문서들로써 6·25전쟁이 남침이었다는 사실은 더이상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어졌다는 말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으나 그것은 단견이다.남침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면 북한의 당·정·군의 제1차 자료를 구사한 일본공산당의 기관지 적기의 평양특파원이었던 사람이 쓴 「조선전쟁」이란 책이 더 웅변으로,더 감동적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그는 워싱턴의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6·25때 미군이 북한지역에서 노획한 1백60만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통독한 사람이다. 여기 우리는 하나의 침통한 사실에 직면한다.6·25는 어느 한 사람이 숨어서 당한 일이 아니다.우리 국민 모두가 다 같이 한꺼번에 당한 일이다.6·25세대의 그 엄청난 역사적 재난의 증언이 바로 사실이며 그들의 머리속에 있는 기억이,그들이 남겨놓은 글들이 바로 역사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역사가 부정되고 역전되기 시작했다.새로 자라나는 세대들이 부형들의 역사를 믿지 않게 된 것이다.아들딸들에게 거부당한 천하의 어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한국이다.자식들에게 불신당하는 기성세대의 초췌한 모습을 보라.자기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남침을 입증해주는 외국의 자료들을 찾아헤맨 허무한 세월이 거기에 있지 않은가. 그래서 소련 외교부의 문서는 더욱 반가운 것이리라.그러나 그래도 끄덕하지 않을 젊은 세대는 얼마든지 있다.「남침이면 어떠냐,해방전쟁이면 그만이지」하는 논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당파성의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이 만들어낸 허위이론이 그만큼 깊이 젊은 세대 속에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김일성이 자기권력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남한을 「미제의 식민지」로,남한정부를 「미제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해놓고 해방과 혁명을 정당화해온 그 당파성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젊은이들이 있다.그 평양바람에 놀아난 사람들이 자라서 교수 국회의원·작가·신부·목사·기자,심지어는 정부관리까지 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이들을 재교육시키는 데는 6·25남침문서만 가지고서는 아니된다 함을 이 나라는 하루 속히 깨달아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 문서를 러시아는 가지고 있다.그것을 공개해야 한다.그것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모두 외교부 문서인데 러시아과학 아카데미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서고에 가면 다 볼 수 있는 것들이다.당문서와 군문서는 아직도 깊은 데 숨겨져 있다.이것이 공개되어야 한다.그래야만 동북항일연군시절의 북한 김일성의 정체가 규명되며,스탈린의 지령으로 김일성이 조국을 분단하던 상황이 밝혀진다.그래야만 6·25남침의 원설계자가 스탈린임이 밝혀진다.이번 문서는 교묘하게도 소련의 책임을 희석시킨 것들이다.마치 김일성이 스탈린이나 모택동과 동급으로 논 것같이 되어 있는데 어림없는 일이다.이미 모스크바에서는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남침결행을 독촉한 사실들이 밝혀져서 중대한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전에 옐친은 노태우대통령에게 귀중한 선물이랍시고 KAL기 격추에 관한 블랙박스란 것을 선사한 일이 있다.열어봤더니 별것이 아니었다.우리는 중대한 모욕을 당한 것이다.이번엔 또 6·25문서란 것을 받았다.별것이 아니었다.진짜 별것은 딴데 있는 것이다.또 우리는 모욕을 당했음을 알아야 한다.왜 옐친대통령은 한국을 깔보는 것인가.우리가 제대로 요구할 줄모르기 때문이다.정부의 역사의식이 천박하고 관계정보가 미숙하기 때문이다.평양바람에 놀아나는 사람들은 김일성의 혁명역사가 출중하고 조국분단도 「미제와 이승만역도」들이 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사실은 그 정반대임을 입증할 문서들이 러시아에 있는 것이다.
  • 정부,한국전관련 구소외교문서 공개/“6·25남침 김일성 주동”확인

    ◎스탈린·모택동에 사전보고… 지원약속 받아/중공군 참전도 김이 요구 6·25사변은 북한의 김일성이 50년 4월과 5월 소련과 중국을 차례로 방문,스탈린과 모택동의 동의를 얻어 일으킨 남침이며 중공군의 참전 또한 김일성의 요청으로 이뤄졌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특히 중공군의 참전 배경은 김일성이 유엔군의 서울 수복 다음날인 50년 9월29일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내 간청한 결과,이뤄진 것으로 러시아의 외교문서들에서 확인됐다. 외무부는 20일 하오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러시아방문때 옐친러시아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은 러시아 외무부의 대외정책문서 가운데 6·25 관련문서들을 정리,발표했다. 외무부 장기호대변인은 『이번 문서는 대외정책 기본문서 1백건,부속문서 1백16건등 모두 2백16건』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수정및 보완작업을 거친뒤 러시아와 협의를 거쳐 연말쯤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6·25발발 한달전인 50년 5월29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에게 『소련의 지원으로 6월까지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게 됐다』면서 7월에는 장마가 시작되고 북한의 전투준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6월10일쯤 집결지로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소련측에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문서는 또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의 참모장이 소련 군사고문단 대표인 바실리예프중장과 함께 공격계획을 수립,전쟁을 수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 문서를 통해 김일성의 간청으로 소련의 스탈린에 중국의 모택동에게 권고서한을 보내 중공군이 참여하게 된 과정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내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함으로써 곧 38선을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고 『소련군의 참전 또는 중공군등의 의용군을 보내줄 것』을 간청한 것으로 드러났다.그러자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권고서한을 보내 『중공군의 파병이 시급한 상황이며 김일성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고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중국 내부의 토의 과정에서 주은래는 처음 파병을 반대했으며 팽덕회등의 설득에 따라 찬성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서에 따르면 또 김일성이 처음 전쟁계획을 세운 것은 6·25발발 1년전인 49년3월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에게 무력침공및 무력에 의한 통일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이때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북한군의 군사력이 한국군보다 훨씬 우세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일성은 이와 함께 전쟁 시작에 앞서 38선에서 남북한 사이의 교전을 유발하고 북한측이 제의한 평화통일안을 한국의 이승만정부가 거부하는 것을 빌미로 전면침공을 감행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 “북침설은 허구”… 공식 입증/공개된 러시아외교문서 의미

    ◎「김일성·모·스탈린의 합작극」 드러나/「정쟁발발책임」관련 논쟁에 종지부 정부가 20일 공개한 6·25 관련 러시아외교문서는 북한이 궤변으로 주장해온 남침설이 재론의 여지가 없는 허구임을 공식입증한 귀중한 사료들로 평가되고 있다.죽은 김일성이 6·25의 전범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과 함께 6·25에 대한 일부학계의 해묵은 논쟁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들 문서는 6·25가 발발하기 전인 49년1월부터 전쟁이 끝난 53년9월까지 4년8개월동안의 생생한 기록이다.크게 나눠 49년1월부터 53년7월까지 1백건에 이르는 6·25의 문헌자료와 49년1월부터 53년9월까지 1백16건 이르는 보충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6·25의 발발배경과 중공군의 참전과정,종전협상등 세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북한과 소련·중국이 주고받은 교신내용을 비롯,김일성과 스탈린·모택동 세사람이 벌인 전쟁모의및 준비과정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가 어떻게 자행됐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첫 발단은 지난 49년3월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한에 대한 무력침공과 무력에 의한 통일에 관해 소련지도부의 의견을 물으면서 시작된다.처음에는 스탈린이 반대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새로운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북한은 49년4월부터 50년3월까지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증강작업에 착수했고,문서들은 그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스탈린이 50년1월 김일성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국제환경을 들어 북한의 전쟁개시에 동의하면서 중국과의 협의를 권한 내부보고서와 이에 따라 50년5월13일 김일성과 박헌영이 중국을 방문,모택동과 협의한 내용을 당시 주중소련대사인 로신이 스탈린에게 보고한 전문등도 새로운 자료들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중공군의 참전과정부분은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그동안 간헐적으로 공개된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동의를 받아내는 과정과 중공군의 6·25 참전과정을 낱낱이 확인해주고 있다.맥아더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서울을 수복한 직후인 50년9월29일 전황의 불리를 느낀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낸다.친서에는유엔군이 38선을 넘어올 때는 소련군이 참전해야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중국등 사회주의국가들의 의용군을 보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김일성의 친서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따라 스탈린은 그해 10월1일 중공군의 파병을 권고하는 서한을 모택동에게 보내고,같은달 중국지도부가 참전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과정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중공군의 참전에 대해 주은래는 반대했으나 팽덕회등의 설득으로 정치국은 파병을 결정했다.같은달 24일 마침내 모택동은 『중국정부는 중공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미국의 한반도장악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참전의 구실을 찾았으며 같은달 26일 6·25의 첫 전투에 참가하게 되는 과정등이 문서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됐다. 이 부분은 그동안 미확인상태에서 가설로 남아 있던 사실들을 확인해준 대목이다.때문에 전문가들과 국방전사연구소는 이 부분이 가장 가치있는 문서라고 평가했다.전문가들은 6·25사변은 김일성이 치밀한 준비를 하고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지원에 대한 사전동의를 얻어 개시한 남침전쟁이란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이들 문서의 전달로 한국과 미국의 공동책임론을 주장해온 수정주의학파는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방전사연구소측은 6·25연구,특히 전쟁계획의 전개과정에 관해 새롭고 중요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했다.특히 6·25가 김일성과 스탈린·모택동 세사람의 공동모의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공식확인하게 된 것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들 문서의 공개는 새 정부의 신외교가 거둔 성과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러시아방문 때 옐친 러시아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아왔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이 문서는 우리와 러시아 사이에는 「과거청산」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아울러 우리 내부일각에 있는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가 찍힐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 떨어진 꽃은 줍지 않는다 1·2·3·4/김정섭 지음(화제의 소설)

    ◎전인민군 간호장교 증언 토대 실화소설 현재 중국 연길시에 살고 있는 북한 인민군 간호장교 출신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전쟁을 묘사한 장편 실화소설. 17세로 인민군 육군 소위로 임관,간호군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인공 리복순의 일생을 통해 북한의 시각에서 본 한국전쟁을 그려 나간다. 전쟁중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는 북조선인민들의 삶,전쟁후 북한 권력층의 부침하는 모습,인민군의 승리와 패배가 체험담으로 생생히 드러나고 있고,전쟁후 권력다툼에 얽힌 비화와 인민들의 힘겨운 재건활동등 한국전쟁의 감춰진 반쪽 모습이 그려진다. 중앙일보사 각권 5천원.
  • “대외활동 외무부와 사전협의를”/이 총리(국무회의:18일)

    ◎이 국방,민간의 군기술 사용료 연구비로 재투자 18일 국무회의의 주제는 가뭄과 보궐선거 대책.군기술의 민간 이전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이영덕국무총리는 오는 8월 2일 3곳에서 한꺼번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와 관련,『각 부처의 장은 공직자의 선거지역 출장 또는 방문을 금지하고 선거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와 시책 확인및 감사를 선거기간동안 실시하지 말라』고 지시. 이총리는 특히 『보선지역의 자치단체장등 공무원들이 선거에 관여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미리 철저히 주지시키고 통·이·반장 예비군지휘관 국민운동단체 임직원등의 선거관여 오해가 일체 없도록 지휘감독을 강화하라』고 최형우내무부장관에게 지시. 또 김두희법무부장관에게는 『선거법 위반사례에 대해서는 지위의 높고 낮음과 신분을 막론하고 예외없이 단호히 대처하고 위반사범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끝까지 추적 관리하라』고 시달. 이총리는 이어 최장관과 오린환공보처장관에게 『정당 후보자 선거운동원은 물론 유권자까지 새 선거법의 규정을 철저히이해하고 준수하도록 선거법의 내용과 정부의 공명선거 실천의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당부. ○…이총리는 『각 부처에서는 소속 공직자들이 외교적으로 민감하거나 국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과 관련해 주한외교사절등 외국인과 접촉할 때는 외무부등 관계부처와 미리 충분히 협의하도록 함으로써 정부 전체의 대외활동이 일관성 있고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 ○…최인기농림수산부장관은 『7월말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을 전제로 가뭄대책의 추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경제기획원에 예비비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총무처 내무부 국방부 교육부 상공부 건설부 노동부등 관계부처별 협조사항을 전달. ○…이병대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첨단 국방과학기술의 민수화를 통한 산업관련 효과 극대화」를 이행하기 위해 지난 4월 9일 민간기업에 이전이 가능한 기술목록을 상공자원부와 과학기술처에 통보했다』고 밝히고 『기술을 이전받는 민간기업에 기술사용료를 부과해 이를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하거나 저조한 가동률로 곤란을 겪고 있는 방위산업체의 지원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보고. ▷의결안건◁ ▲의정연수원법 공포안 ▲국회사무처법중 개정법률 공포안 ▲국회도서관법중 개정법률 공포안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개) ▲공무원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법 시행령(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개) ▲수질환경보전법 시행령(개) ▲소음·진동규제법 시행령(개) ▲참전군인등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 ▲영예수여안(우호증진 외국인) ▲제49주년 광복절 경축행사 기본계획안
  • 「조문」 규탄시위/무공 수훈자회/“김 찬양세력 발본” 촉구

    ◎해병전우회도 단죄 촉구 대한무공수훈자회 소속 회원 2백여명은 15일 하오4시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앞에서 최근 김일성 조문단 파견주장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켜 동족을 살육한 전범자이자 민족의 반역자』라면서 『그러함에도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고 조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각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부는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나약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차제에 김일성 찬양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 이날 해병전우회중앙회(총재 이병문해병예비역대장)도 서울 캐피탈호텔에서 역대 해병대사령관및 전우회 간부연석회의를 갖고 김일성 조문발언으로 국민의식을 오도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을 이적죄로 단죄할 것을 촉구했다. 6·25 참전해병용사들인 이들은 이날 채택한 성명을 통해 이같이 정부에 촉구하고 김일성사망과 관련,조문단 파북등을 주장하며 공권력에 도전하고 있는 좌경세력들을 전원 검거,사법처리하여 자유민주주의사회 본연의 법치기강을 확립토록 강력히 요망했다.
  • 이부영의원 사무실 상이군경 20명 농성

    15일 하오2시쯤 서울 강동구 명일동 민주당 강동갑지구당 이부영의원사무실에 6·25참전 상이군경 20여명이 몰려와 이의원의 「김일성주석조문발언」에 항의하는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이의원의 조문주장발언은 6·25를 일으킨 김일성의 죄과를 무시한 반애국적 주장』이라며 『이의원은 즉각 이 발언을 취소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 “김일성­스탈린주의 함께 묻어야”/「모스크바 타임스」 사설 주장

    ◎외부와 격리된 2천2백만 모두 피해자/「외교적 수사」일지라도 “애도” 운운은 망발 러시아의 영자일간지「모스크바 타임스」는 14일자 사설에서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북한의 과제는 지상에 유일하게 남은 스탈린주의를 청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북한은 스탈린주의 과거를 묻어야 한다」라는 제하의 이 사설은 「스탈린이 사망한지 40년이 더 지난 지금 이 독재자는 러시아땅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공식적으로 격하되고 비방을 받았으나 북한만은 지금도 흑백과 주야를 뒤바꿔 말하는 스탈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다음은 사설전문. 김일성이 죽고난 뒤 지난 3일간 북한에서는 2천2백만의 전체인구중 모두 1천7백만명이 이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공개조문행사에 참여했다.국가 전체가 슬픔에 휩싸였다.그리고 「경애하는 지도자」김정일과 함께 그 부친의 유지를 이어 사회주의의 길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맹목적인 스탈린주의의 길을 추구해왔다.우리는 애당초 김일성이 죽었다고 갑자기 이 나라가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스탈린이 죽은지 이미 40년이 지났다.그는 자신의 모국에서조차 이미 오래 전부터 비방받고 공식적으로 격하됐다.북한에 김일성정권을 수립했던 이 독재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그리고 러시아는 지금 민주세계로 전입하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있다.그러나 북한정권은 지금도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고 낮을 밤으로,젖은 것을 말랐다고 주장하는 스탈린주의의 길을 고수하고 있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가.무엇보다 2천2백만명의 북한동포에게 문제가 된다.특히 이 조문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나머지 5백만명은 무슨 죄가 있는가.그리고 조문행사에 마지못해 참여한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현대문명사회로부터 격리돼 억압과 무료함,말할수없는 두려움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북한주민 모두가 스탈린주의의 피해자들이다.그리고 나머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은 북한이 무의미한 핵모험주의를 시작함으로써 다같이 피해자가 됐다.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그러한 무모한 기도 자체가 우리를 경악케 한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에게도 역시 북한정권의 정체는 문제이다.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김일성의 죽음에 애도문을 발표해 원성을 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아무리 외교적인 수사이고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배려가 담겼다고 해도 클린턴대통령은 그런 「도발적인」애도문을 낼 권리가 없다. 물론 모스크바 주재 평양대사관을 찾아가 「지상낙원」운운하며 북한찬양 발언을 늘어놓은 지리노프스키같은 극단주의적 지도자들은 북한의 스탈린주의를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물론 지리노프스키가 러시아내의 불만세력들을 의식해 그런 발언을 했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는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그에게 표를 더 몰아다줄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그의 열렬한 지지자들까지도 진심으로 북한사회를 진정한 유토피아로 간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7일의 김일성 장례식은 자기들 식대로 거대한 무대장치와 매스게임이 동원돼 장엄하게 치러질 것이다.우리는 이번 그의 장례식이 지상에서 이런 유의 마지막 장례식이 되기를 희망한다.이제 「위대한 지도자」는 갔다.그와 함께 그가 만든 독재체제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기를 우리는 바란다.
  • 섀도파이어 상·하/딘R쿤츠지음·노영현옮김(화제의 소설)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현대과학에 대한 맹신을 경고한 서스펜스 소설. 어린시절 부모에게 도덕적 버림을 받은 에릭,아름답고 지적인 레이첼,월남전에 참전해 진정한 삶을 자각한 벤,이중인격자 샤프등의 인물간에 벌어지는 죽음과 사랑 인간애를 그려나간다. 천재적인 유전공학자 에릭과 별거중인 그의 부인 레이첼간의 알력으로 시작해 충동적인 살인과 폭력을 일삼는 에릭이 일관된 파행끝에 죽게되는 이야기를 추리적인 기법과 현대의학지식을 동원해 흥미있게 엮어나간다. 호암출판사 각권 5천8백원.
  • “북한붕괴 사실상 시작됐다”/아르바토프(특별인터뷰)

    ◎김정일 권력 잡지만 결국 몰락할것/주민들 외부와 교감땐 변화 불가피 □아르바토프 약력 ­1923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서 출생. ­소련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모스크바국제관계연구소서 역사학 박사 학위 받음. ­고르바초프 외교참모 역임. ­소련과학원 정회원. 김일성 사후 북한의 장래는 어찌 될 것인가.독재자의 죽음 뒤에 그 체제의 몰락이 오게 돼있는 것은 스탈린 등의 예에서 보듯 필연적이나 김정일의 권력 승계까지는 일단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러시아의 게오르기 아르바토프 미국·캐나다연구소장의 견해다.북한의 내부사정에 정통한 그를 이기동 모스크바 특파원이 인터뷰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의 변화방향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폭과 속도는 과연 어느 정도일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동구의 변혁과정을 북한에 곧바로 대입할 수는 없다.극단적인 예로 루마니아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그곳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에 반대하는 큰물결이 선행됐다.그것은 반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그러나 김일성은 단순히 노령으로 죽었다.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 왔다.오래 전부터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이양 준비를 차근차근 해두었다.물론 정부내에서 몇가지 갈등이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최고권력은 순조롭게 김정일에게 넘어갈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지 수일간의 평양 분위기를 보면 주민들이 진정으로 이 지도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것을 보더라도 김정일이 자기 부친의 정책을 급격히 바꾸려들지는 못할 것같은데. ▲평양의 애도분위기는 솔직히 묘한 데가 있다.설사 김정일의 반대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다.확실히 북한은 독특한 나라이다.여기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지닌 독특한 전통도 분명 작용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체제에는 문화적,전통적 관습을 뛰어넘는 그 자체의 보편적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모택동 사후 중국을 보자.당시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교적인 가부장 전통과 모택동이 생전에 누린 독특한 카리스마 때문에 그의 사후 중국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그러나 모의 유지를 이어받은 소위 4인방의 운명이 어떻게 됐나.그후 지금까지 계속돼온 등소평의 개혁정책을 보라. ­북한에서도 변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이야기인가. ▲이런 체제의 논리는 독재국가일수록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전체주의 체제의 국가경영방식은 역피라미드를 연상하면 된다.제일 아래쪽에 최고지도자 1인을 기반으로 하고 그가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국가조직이 그위에 존재한다.제일 아래쪽 최고지도자가 사라지면 그위의 모든 조직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돼있다.알렉산더 대왕 이후 마케도니아왕조의 몰락,가까이는 1956년 헝가리에서 최고지도자 사후 몰려온 변혁의 소용돌이,체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에서도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죽은 뒤부터 사실상 몰락의 과정이 시작됐다. ­스탈린체제의 소련과 김일성의 북한체제의 비교는 북한의 장래를 점쳐보는데 유용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스탈린 사후 모스크바의 애도분위기는 지금 평양보다 더 애절했다.정치범 수용소(굴락)의 수감자들이나 이 독재자의 죽음을 기뻐했지 일반국민들은 그에게 마지막 조의를 표하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수백만명이 몰려들었다. 경찰과 군대가 동원돼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수백명의 압사자까지 생겼었다.그러나 그가 죽은 뒤 불과 2년이 지나면서부터 언론에 그에 대한 비판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그리고 3년뒤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역사적인 스탈린 비판연설을 했다.이 당대회에서 스탈린은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김일성은 거의 절대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북한에 세웠다.그는 자기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정적은 물론 조금이라도 이견을 말하는 사람은 가리지 않고 제거했다.이를 위해 심지어 동족전쟁까지 감행했다.국민들은 외부세계와 완전 격리됐다.북한의 변화는 그곳 주민들이 외부세계와의 교감을 시작하고 국민들이 보다 자유롭게 사고하기를 배우는 순간 체제발전의 논리가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장례후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겠다고 했다.이를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가 외부세계와의 관계발전에 주도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징조로 풀이할 수 있는지. ▲만약 새 지도층 내부에 변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있어 권력내부에 갈등을 유발시키고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면 자연적인 체제발전 과정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새지도부는 단기적인 과제로는 경제개선,고립탈피,핵문제의 종식,남한과 정상회담 개최등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사후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는 새북한의 변화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정책프로그램도 갖지 않고 있다. 경제난,군사개혁등 산적한 국내문제 때문에 한반도문제에 깊이 신경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러시아 정부의 최근 입장은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국제회의를 열자는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이 주장을 고집하는지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때피살설,정변설등 김일성의 죽음과 관련,여러 소문들이 나돌았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들은 잘못된 정보라고 본다.그는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았고 누구든 그 정도의 고령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남북정상회담등 남한과의 관계개선도 북·미회담과 같은 맥락에서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는지. ▲권력내부에 갈등만 없다면 남한과의 대화는 조만간 재개될 것이다.새 지도부는 전세계를 상대로 남한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역사적으로 볼때 새지도자는 국민들에게도 새것,변화,과거와는 다른 희망을 심어주고 싶은 의욕을 갖는 게 순리이다.그것이 대외정책에도 나타날 수 있다. ­군부의 역할이 변수가 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지. ▲스탈린 사후 군은 당·KGB·군지도부에 절대복종을 맹세했다.북한의 군도 지금 똑같은 상황이다.특히 김일성은 군대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했다.돌발사고가 없는한 군내부에서 반대세력이 표면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새 북한지도부가 핵게임을 계속할 것으로 보는지.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다른 할일이 많기 때문이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이 죽고 권좌에 오른지 몇개월 뒤 곧바로 주민복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사업을 펼쳤다.전국에 값싼 아파트를 건설했고 국민연금도 6배로 올려주었다.무언가 새것,좋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물론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가 고수해온 노선을 하루아침에 비난하거나 뜯어고치려고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독제체제의 발전논리로 본다면 새정책은 불가피하다.더구나 북한은 경제난이 극도에 달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다.북한도 결국은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클린턴 김일성사망 애도 발언/미의원들,잇단 비판

    【워싱턴 연합】 클린턴 미대통령이 북한의 김일성주석의 사망에 대해 『미국민을 대신하여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며 애도의 의사를 표명한데 대해 공화당 중진의원들은 잇따라 『한국전쟁을 일으킨 책임자에게 과도한 애도를 표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밥 돌 공화당 원내총무가 클린턴대통령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한데 이어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애리조나주)도 10일 미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에서 숨진 5만4천명의 미국인을 포함,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책임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매케인의원은 클린턴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병사들의 유가족들을 『진실로 모욕하는 발언』이라고 지적하면서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숨지게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돌총무는 9일 『클린턴대통령은 아마 김일성이 미군 5만4천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0만명을 부상케한 전쟁책임자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라고 비판하면서 김주석의 사망은 단지 그의 『야만적인독재』가 끝났음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했다.
  • 김일성 사망소식이 남다른 두사람

    ◎이북5도민회 강제문의장/“분단 고착 장애물 사라져”/동족상잔 원흉… 정상회담 진의 의심 『남북이산가족의 한맺힌 염원은 한걸음 앞당겨 실현되겠지만 한편으로 김일성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사과를 받아야 할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1천만 실향민들의 정신적 고향역할을 해온 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 강제문 대표의장(72)은 김일성의 죽음을 『남북분단 고착화의 큰 장애물이 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25살때인 지난 47년 공산당학정을 피해 월남한 강의장은 김일성이 좀더 살아 남북화해의 기틀을 정착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일부 견해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그는 최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 때문에 그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공산정권이나 김일성의 본질과 죄과를 망각한 감상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강의장은 이어 오는 25일로 잡혔던 1차 평양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차 서울회담을 약속하지 않았다는 점등을 새겨보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김일성이 진심으로 민족화해를 위해 응하려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일성이 「불바다」발언 파문때 죽지않고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남북화해에 혹시나 기여하지 않았을까」하는 한가닥 아쉬움을 남긴채 죽은 것을 보면 『김일성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쓴웃음을 짓는 강의장은 『그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남북의 창을 열지를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김일성은 잘 죽었다』고 말하는 강의장은 『김일성은 분명 민족분단의 원흉이요 동족상잔이라는 반역사적인 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살아생전에 꼭 사과와 참회를 받아 냈어야 했다』고 아쉬워 했다. 강의장은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에게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지만 김정일은 숙명을 지닌 인간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김일성이 휘둘러온 절대권력을 그대로 이어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김정일이 당장은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록 김일성처럼 강도높은 주민통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개방과 개혁으로 대내외정책기조를 전환하게되고 따라서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나 제한적인 「만남의 장」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원로 장로회 회장(대한예수교합동)이기도 한 강의장은 일요일인 10일 교회에서 『실향민들의 한풀이 마당이 하루라도 앞당겨지도록 간절히 기도했다』며 말을 맺었다. ◎군번1번 예비역대장 이형근씨/“사죄 한마디 없이 죽다니”/세계유일 분단국 멍에 벗는 계기로 6·25참전용사는 물론 그 미망인이나 유족들이 말하는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대한 느낌은 남달랐다. 『김일성은 우리에게는 불구대천지원수입니다.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라는 사실외에도 그가 이 땅에 저질러 놓고 간 일들이 어디 한두가지입니까』 6·25전쟁중 아내와 동생(이상근 당시 대령)을 한꺼번에 잃은 예비역 육군대장 이형근씨(74)는 『당시 참전용사와 그 미망인,그리고 유족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그를 자연사하도록 버려둔 것이 오히려 죄스럽다』고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오늘아침 미국대통령이 사망한 김일성에게 「미국국민들을 대신해 북한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는 뉴스를 들었다』며 『아마 미국대통령은 김일성이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UN군 15만2천명,한국군 25만7천명,민간인 86만명을 사상케 한 전쟁 책임자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그러나 그는 우리 민족에게 뿐만아니라 죽는 날까지 전세계 평화애호 국민들을 위협한 장본인이었습니다』이씨는 김일성이 최근까지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했던 사실등을 예로 들고 『사죄한마디 하지않고 사망한 그에게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예비역 육군대장이라는 영예외에 「대한민국 군번 1번(10001)」·「창군의 주역」·「최연소 육군참모총장」등 군최고의 영예를 지니고 있는 그는 6·25전쟁때 2사단장으로 의정부전투에 참가,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위해 최일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그는 『현재 우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는데도 아직껏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다』며 『이번 김일성의 죽음이 우리민족에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있도록 국민 모두가 국력을 결집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아직은 체제유지에 급급한 만큼 당장 어떤변화를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라고 밝힌 그는 그러나 북한이 과거 김일성때보다는 개방과 개혁에 눈을 돌려 남북대화등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응해 올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정부와 국민들이 이에 신중히 대처해 나갈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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