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전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군대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파로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아내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활력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949
  • 창씨개명뒤 버젓이 일본의 밀정노릇/서훈취소 심의대상 8인의 행적

    ◎총독부 단체에 참여… 학병지원 권유/김성주/「2·8선언」후 변절… 전국서 친일강연/서춘/친일계 신문인 「만선일보」에 몸담아/이은상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각종 훈·포장을 받았던 김성수씨등 8명에 대해 정부가 친일 여부를 정식 조사하고 있어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 모두가 부통령·국회의원등 고위공직을 지냈거나 언론계·문학계등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친일혐의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전혀 아니다. 일부 학계인사와 사회단체등에서는 광복직후부터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꾸준히 그 행적을 추적해 왔다. 다만 이승만정부 수립이후 좌­우 이념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승만정부가 친일여부를 가리지않고 마구 등용하는 바람에「친일파를 가려내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뒷전으로 밀렸을 뿐이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재평가에 나서 이들「거물」들을 조사대상에 올린 것은 뒤늦게나마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반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해 관련학자·단체들이 조사·공표한 이들 각자의 친일행각을 보면 제1공화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씨의 경우 1940년 10월27일 미나미 당시 조선총독이 결성한 총력동맹에 이사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매일신보」「경성일보」등지에 학생들의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글을 실었으며 시국강연반에 들어 전국을 돌며 친일강연을 했다. 이갑성씨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였으며 초대 광복회장을 지낸 인물로 자유당정권에서 당의 최고위원과 국회의원을 지냈고 공화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상해에서 이와모토(암본)로 창씨개명한 뒤 일본의 밀정노릇을 했으며 미쓰비시사의 만주 신경출장소장,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촉탁으로 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적으로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윤치영씨는 초대내무부장관을 비롯,이후 역대정부에서 고위직을 누렸다. 윤씨는 그러나 독립운동을 한 시기로 인정받은 41년 12월20일 친일잡지「동양지광」이 주최한「미·영타도 좌담회」에 연사로 참석해『황국신민으로서 참전은 우리 어깨에 지워진 공정무사한 대사명』이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은상씨도 일제말 친일계 신문인「만선일보」에 재직한 사실이 있다. 이밖에 이번에 조사대상 8명에 포함된 서춘씨(매일신보 주필)는 이광수와 함께 2·8독립선언위원 가운데 친일파로 변절한 대표적 인물로 39년 7월 배영동지회 평의원,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낸 외에 전국을 돌며 친일강연을 했고 승려인 이종욱씨는 총독부 지원으로 월정사 주지와 조선불교 종회의장을 지냈다. 윤익선씨는 서울 원서정 총대(현 동장)와 경성부 북부정회총대회 간사를 지냈으며 전협씨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신임을 얻어 그의 추천으로 부평군수를 지냈으며 일진회 평의장도 역임했다.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은『정부 차원에서 친일파 재조사작업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 비에 고속정 12척 제공/국방부,척당 1백불씩에

    국방부가 최근 필리핀에 노후 고속정 12척을 척당1백달러에 판매한 것으로 1일 밝혀졌다. 국방부는 지난 4월 필리핀으로부터 무기장비공급 요청을 받고 6·25참전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취역20년된 고속정 12척을 무상공급키로 결정했으나 무기의 해외무상공여를 금지하는 국내관련법에 걸려 1백달러를 받고 제공했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지난달 중순 필리핀에 제공한 고속정은 고철값만 해도 한척당 4천∼5천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미의 대북 추가양보 반대”/김 대통령

    ◎북 NPT탈퇴 유보는 시간벌기/군사도발 가능성 대비해야/영BBC TV회견 김영삼대통령은 25일 『북한이 비록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유보했지만 그것은 전쟁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지연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추가적인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영국 BBC­TV와의 인터뷰에서 『이달초 뉴욕에서 열린 미·북한 고위급회담 결과,북한이 NPT탈퇴를 유보한다고 밝혔으나 이러한 움직임은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는데 미미한 역할을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에대한 실례로 『현재 평양 주민들이 매일 1시간씩 군사훈련을 받고 있으며,신형 미사일이(노동1호)최근 동해에서 시험 발사됐다』고 적시한뒤 『이러한 일련의 징후들은 북한이 전쟁을 준비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따라서 탈퇴유보는 북한이 시간을 벌기위한 지연전술을 쓰고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미·북한 고위급회담결과와 관련,『일반적으로 전체상황면에서 북한정권이 일부 실리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며 『나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한국전쟁에 대해 『우리는 지금도 생생한 기억을 갖고있다』고 전하고 『이러한 과거 기억과 현재 북한의 정책을 볼때 우리는 군사적 갈등 가능성에 대해 완벽한 준비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BBC­TV는 김대통령의 인터뷰에 대한 부연설명을 통해 『김대통령의 언급은 한반도의 핵문제가 결코 해결되지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떠올리게 하고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포기땐 지원 김영삼대통령은 25일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방과 협력의 큰 흐름에 합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를 도울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6·25 43주년을 맞아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이날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참전용사 위로연에 참석,이같이 강조하고 『북한이 멀지않아 이같은 선택을 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 “32개월간 전투기335대 잃었다”/(구소의 한국전개입 비사:하)

    ◎당시 비행단 정보장교 올로프전사특별기고/조종사 1백20명·장교 2백29명 전사/64비행단선 미군기 1,097대 격추/미선 978대 격추 1,041대 피해 집계 F­86 세이버기의 출현은 미그­15기에 있어 최대의 위협이었다.물론 미공군측도 미그­ 15기를 최고의 제트기로 평가했고 「피코트」란 암호명을 붙여놓고 있었다. 1950년 12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양측간 공중전은 잠시 멎었다.세이버기 대부분이 예비점검을 받기 위해 기지에서 쉬었기 때문이다.그러나 51년 봄 재개된 미그기와 F­86기간의 치열한 접전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엄청난 피해◁ 그런데 F­86기들은 기지인 김포·수원에서 「미그 앨리」까지의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약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F­86기의 전투비행거리는 약 9백30㎞였다.따라서 이들이 「미그 앨리」에 도달한 뒤 그곳을 초계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5∼16분에 불과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세이버기들은 먼저 최대경제속도(M=0·62)를 유지했다.그러나 이 경우 미그기가 접근해올 때의 가속이 문제였다.그래서 미군측은 작전을 변경,4∼8대가 M=0·85(시간당 1천㎞)로 편대비행해 15∼20분간 「미그 앨리」를 선회했다. ○변화작전 간파 총력 우리 레이더 정보망은 이러한 작전변화를 간파해 역전술을 펼쳤다.F­86기가 「미그 앨리」에 들어와 떠나기 10분 전에 아군기가 출동하는 것이다.그때 쯤이면 F­86기는 연료가 얼마 남지않아 아군기와 전투를 벌일 수가 없어 도망가기 일쑤였다.이밖에도 한국에 주둔중인 미공군의 조직,기지위치 등에 대해서도 정보를 갖고 있었다.그러나 F­86세이버기에 대해서 우리는 성능·장비·전투능력 등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F­86기에는 조종사가 적기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레이더가늠장치가 장치돼 있었다.미군기 조종사들은 공중전중 급강하,급상승시 의식을 잃지 않도록 특수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반면 소군 조종사들은 산소 마스크 착용이 고작이었다. 64비행단측은 마침내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미공군조종사들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로 결정했다.그러나 이들은 북한영토내 포로수용소에 억류돼 있어 소련장교들이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한가지 방법은 소련군장교를 북한군 참모부에 파견시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51년 5월 나는 김일성참모부소속으로 평양부근의 북한군사령부에 파견됐다.임지로 갈때는 미군기의 공습이 두려워 밤에만 이동했다.그래서 도로는 야간에 전선으로 오가는 트럭,보병부대로 크게 붐볐다.야간에도 B­29 초계기는 아래쪽에 불빛만 보였다하면 무차별 폭탄을 쏟아 부었다.나도 이동중 두번 폭탄세례를 받았다. 소련군사고문단의 일원인 알렉산더 페트라체프 대령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사령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영어로 작성했다.북한군측은 이 문서를 포로수용소에 보냈고 며칠 뒤 답장이 왔다.우리는 같은 질문을 여러 다른 수용소에 보내는 방식으로 답장내용을 확인했다.우리 나름대로 일차분석,확인작업을 거친 뒤에는 이 정보들을 페트라체프대령과 64비행단측에 전달했다. ○“레이다망 포착” 인지 51년말에 접어들면서 64비행단도 전투경험을 많이 쌓게 되었다.미군도 마찬가지였다.그래서 양측의 공중전은 시종 접전을 유지했다.적기가 안동으로 2백㎞거리까지 접근해오는 시점에서는 아군기의 출격이 이루어져야 했다.그러면 압록강으로부터 40∼45㎞ 떨어진 지점의 8천∼9천m 상공에서 적기와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52∼53년 사이에 미군측이 변형된 전투요격기 F­86E를 한국전에 들여오면서 미그기는 전투수행에 더 큰 지장을 받게 됐다.이 신예기는 보다 강력한 엔진에다 조종사에게 자신이 적 화기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특수장치인 「시레나」를 장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2년초 북한이 중국군과 합동공군을 창설하면서 상황은 다소 호전됐다. 공중전은 종전 마지막날까지 계속됐다.종전 뒤 소련공군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64비행단 참모부는 가장 효과적인 공중전이 50년∼51년 사이에 수행됐다고 보고했다.러시아총참모부가 공식발표한 한국전 피해상황은 64비행단이 비행기 3백35대와 조종사 1백20명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리고 장교 2백29명이 전사했다. ○휴전당일도 공중전 물론 이 수치는 미군측 자료와 차이가 나는 것이다.여기에는 이유가 있다.미군측은 격추한 적기를 소련기,중국,북한기 구분않고 계산했다.소련군사문서국 자료에는 64비행단 조종사들이 적기 1천97대를 격추한 것으로 나타나있다(일부 자료에는 1천3백38대로 적혀있기도 하다).참고로 미군측 자료를 보면 미군기들이 적기 9백78대를 격추하고 반면 1천41대를 잃은 것으로 돼있다.그리고 공중전에서 장교·사병 합쳐서 1천1백44명을 잃었다.그중 미그­15기 7백92대가 격추됐고 미군은 F­86기 78대를 포함,1백39대를 미그기와의 전투에서 잃었다. 한국전은 소련공군기와 미군기가 전투를 벌인 최초의 전쟁이었다.그러나 소련당국은 오랜 세월 소련공군의 참전사실을 감추었다.80년대 후반에 들어 비로소 소련공군의 참전사실이 소련 국내언론에 조금씩 보도되기 시작했다. 슬픈 일이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른 이 한국전을 통해서도 소비예트 진영과 서방 민주진영간의 대결은 끝나지가 않았다.양진영이 냉전대립을 청산하기까지 그뒤 또 40년의 세월이 소요됐다.전쟁의 당사자인 남북한은 아직도 이 대결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 다시 맞은 동란의 그 아침에/박경석 군사평론가·예비역육군준장

    ◎북은 아직도 기회를 노린다/과격시위·불법쟁의·감상적 통일론 자제를 6·25동란 발발 43주년을 맞는다.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그때의 상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참전세대에는 그리 먼 일 같지 않다. 김일성은 남침준비를 완료하고 병력을 휴전선에 전진배치 시켜놓고도 1950년 6월8일에 대남방송을 통하여 8월5일에서 8일까지 서울에 통일입법기관 설치를 위한 총선거 실시를 제의해 왔다. 이 발표문이 전파를 타고 세계에 퍼진 다음날인 6월9일에는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알고 있는 소련 외상과 중공정부 대변인이 「이번에 발표된 결의문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가장 합리적인 내용」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북한당국이 감금하고 있는 민족지도자 조만식을 볼모로 하여 남로당의 지하 공작책인 김삼룡과 이주하 양인을 교환하자는 제의를 하면서 우리를 철저히 기만하고 있었다. 전쟁발발후 4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김일성과 그의 광신자들은 우리에게 단 한번 성실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시종 일관하여 우리의 분열과 붕괴를 획책하는 술수를 부려왔다. 지금까지도 북한당국은 6·25동란 발발을 「미제와 이승만 도당에 의한 도발에 대응한 자위책」에서 연유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남조선 군군의 북진론」이 허위임이 백일하에 밝혀졌지만 일부 의식화된 몰지각한 부류들은 아직도 착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문민시대를 맞아 자칫 해이하기 쉬운 북한에의 대비책에 더욱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더욱이 한심스러운 것은 일부 전후세대들 가운데 북한의 불법남침에 의한 동족상잔이라는 역사적 진실까지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진실을 믿는 대학생은 불과 30%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자성해야 한다.지난 세월 권위주의 정치하의 불신의 늪에서 자란 탓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자들은 더욱 인민에 족쇄를 죄고 있다.핵문제를 비롯하여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서 「시간벌기」와 남침의 「기회잡기」에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43년간 단 한 해도 우리에 대한 야욕을 버린적이 없었다.어떤 방법으로라도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는 계속해 왔다. 우리는 대망의 문민시대를 맞아 보다 알찬 조국의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그러나 김일성과 그의 광신자들은 오히려 남침기회 조성의 호기로 삼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근간의 한총련 과격데모 및 일련의 노사분규는 북한당국자들에게 호재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얼마나 좋아하고 있겠는가. 데모 학생들이 진압 경찰관을 치사하고 노동현장이 전장을 방불케 하는 난장판을 그들이 본다면 박수를 치며 통쾌하게 생각할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또한 일부 대학생의 감상적 「평화통일론」은 다수 국민에게 합리화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김일성의 평화통일논리는 민족화합 차원이 아닌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족벌권력 영구화에 있다는 뚜렷한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이 시기에 있어서 몰지각한 대학생과 과격 근로자의 망동을 철저히 응징하지 않고서는 신한국 건설은 한낱 무의미한 공염불이 될 것이다.그들은 자의가 아닐지라도 이미 김일성과 그의 광신자들의 리모트 컨트롤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참전세대가 공산주의자와 싸워 피로써 쟁취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해서는 안된다.망동에 휩쓸리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구소련군이나 구동독군 병사들이 스스로 사용했던 각종 비품을 들고 나와 관광객에게 팔려고 서 있는 저 처량한 몰골에서 오늘의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다면 그대들은 곧 질서를 지킬 것이다. 북쪽의 눈은 지금 이 시각에도 적화야욕에 불타고 있다.그러므로 감히 6·25동란은 계속되고 있다고 결론짓고 싶다.
  • 격전지 베티고지 초병“전선이상무”/6·25 43돌…그날의 현장르포

    ◎중공군 수십차례 공격… 1개소대 사수/“3개대대 격퇴” 전공 새겨/10만명 발길… 충혼탑 준비 동족상잔의 비극은 강허리마저 남북으로 갈랐지만 강물은 지금도 한줄기가 되어 흐르고 있다. 임진강이 손에 잡힐듯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해발 2백64m 중부전선 독수리 고지. 갑자기 찢어질듯 터져나오는 대남비방방송이 비무장지대의 적막을 깨면서 한가롭게 풀을 뜯던 노루 한마리가 놀라 달아난다. 서울(65㎞)보다 평양(40㎞)이 더 가까운 고지위에서 불과 1㎞거리에 있는 북한측 초소를 응시하는 태풍부대 장병들의 눈초리가 매섭게 빛난다. 베티고지는 휴전을 앞두고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위해 막바지 격전이 계속되던 53년 7월15일 아군1개소대가 중공군 3개대대를 맞아 백병전을 벌여 승리한 6·25의 최대 격전지.당시 1사단 11연대소속 김만술소위(92년작고)는 소대원 34명을 이끌고 고지를 점령한 뒤 18시간동안 19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파상공격을 받았으나 죽음을 각오한 소대원들의 결의앞에 중공군들은 낙엽처럼 떨어졌다.중공군 3백56명 사망에 아군6명 전사,18명 부상. 지난91년 독수리고지위에 태풍전망대가 세워진뒤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전사의 현장 베티고지를 둘러본 사람들이 10만여명에 이른다. 또 베티고지전투등 6·25참전 생존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육탄용사회」가 당시 11연대를 상징하는 11각형의 충혼탑건립을 준비하고있어 이곳 장병들의 각오를 더욱 새롭게 하고 있다. 초병 박태숙일병(22)은 『최근 북측은 김정일우상화와 핵사찰문제대한 대남방송선전을 더욱 강화,전선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언제 돌발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적을 무찌를 각오가 돼있다』고 다짐했다. 6·25때 전장에서 부친을 잃고 유복자로 태어난 양치규대령(43·육사29기)은 『최근 북한군초소에서 집단패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는등 해이해진 군의 상황을 감지할수 있다』고 설명하고 『이럴때일수록 내부불만을 해소하기위한 국지전등의 도발가능성이 많은 만큼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군은 지난달 2일과 지난16일에도 아군초소를 향해 기관총사격을 가해왔다고 남북대화의 그림자속에 가려진 전선의 실상을 설명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즉필생」의 교훈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근무에 나서는 우리부대장병에겐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을 수없다는 중대장금진석대위(30)는 『전선 이상무』를 외치며 경계근무를 벌이고 있는 초병들을 향해 베티전투당시의 선배들보다 더 깊은 신뢰와 필승의 눈길로 화답했다.
  • 러,6·25관련 문서목록 전달/외무부 인수

    ◎김일성­스탈린 외교전문 포함 수백건/사전 남침준비·중개입경위 밝혀질듯/“김 대통령 방러때 문서사본 제공” 러시아정부는 6·25한국전쟁 발발 43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 김일성 사이에 주고받은 전문을 비롯해 러시아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한국전쟁 관련문서의 목록을 우리 정부에 전달해왔다고 홍순영외무부차관이 24일 발표했다. 이 목록에 들어있는 문서들은 북한이 전쟁발발 전해인 49년1월부터 전쟁준비를 위해 구소련과 주고받은 전문을 포함,중공군이 참전한 50년 10월까지 소련의 군투입및 무기제공 내용을 밝혀주는 것들이라고 홍차관은 말했다. 이들 문서 내용 자체가 공개되면 한국전쟁이 한국군과 미군의 북침에 의한 것이라는 북한측의 주장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고 북한측이 일찍부터 남침준비를 해왔다는 사실과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중공군의 개입경위가 밝혀지는 등 한국전쟁의 진상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40페이지 분량의 이 목록은 한승주외무장관이 유럽을 순방하면서 러시아를 방문중이던지난 7일 옐친러시아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옐친대통령이 직접 한장관에게 건네준 것이다. 옐친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정부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의 발굴과 수집및 정리작업을 하고 있으나 워낙 방대한 분량이어서 우선 목록을 전달한다』면서 『목록외의 문서 사본은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면 직접 전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서목록은 러시아정부 문서보관소와 국방부,구KGB등에 산재해 있는 한국전쟁 관련 문서 수백건의 제목과 이에대한 간단한 요약설명이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문서목록은 물론 앞으로 러시아측으로부터 전달받을 문서사본도 일단 국사편찬위에 넘겨준 뒤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는 한국전쟁의 진상규명 차원에서 중국 정부측에도 보관중인 관련 문서 사본의 공개와 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 구소의 한국전개입 비사:상

    ◎“소 2개비행사단 50년11월 첫 참전”/극비특명… “계급장없이 중공군 위장”/당시 비행단 정보장교 올로프전사특별기고/중국 안동에 본부… 총병력 2만6천명 투입/51년3월 증파… 미기와 북 상공서 공중전/스탈린,해군출전도 계획… 미 자극 우려 포기 ▷남침 초기◁ 러시아가 개방·개혁정책추진으로 철의 장막을 걷고 한국과의 교류를 확대함에 따라 한국전쟁관련 비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6·25발발 43주년을 맞아 당시 소련군 정보장교(대위)로 9개월동안 소련의 제64비행단에 근무했으며 현재 러시아군사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세묘노비치 올로프박사(69)의 증언을 3횡에 걸쳐 게재, 구소련의 한국전 참전비밀을 파헤쳐본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3월 초순 어느 날 모스크바 군사영어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새 임지로 전출명령을 받았다.그렇게 해서 그해 10월까지 8개월여동안 한국전에 참전하게 됐다.근무지는 한국전 지원임무를 맡은 소련공군 제64비행단이 주둔하던 중국의 안동. 정보장교로 참모본부에 근무한 덕에 나는 당시 비행단의 병력규모,위치등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었다.우선 참모본부 아래 미그 15기 3개사단이 있었다.제1,2사단은 1950년 11월 최초로 안동에 자리를 잡았고 제3사단은 이듬해 3월 배치됐다.그외 구경 85㎜,37㎜로 무장한 대공포 2개사단이 별도로 있었다. ○미그­15 3개사단 병력수는 참전초기부터 종전을 맞아 철수할 때까지 2만6천명선이 계속 유지됐다.이는 조종사 3백명이 포함된 숫자이다.보유무기로는 주력기종인 미그­15기가 1백80∼2백대,야간전투기인 LA­11(재래기종)25∼30대,대공포구경85㎜가 1백40∼1백60문,37㎜포가 1백30∼1백50문이 있었다. 당시 소련당국은 이 전쟁에 불개입을 선언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다.그래서 여러가지 비상수단이 취해졌다.모든 병력이 기장,계급장이 없는 중국군복을 입었고 조종사들은 비행중 무선교신시 절대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물론 이런 지시들은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조종사들이 초기에 조종간옆에다 간단한 교신어를 한국어나 중국어로 음을 적어놓고 발음만 흉내내기도 했으나 작전시 이로 인한 혼란이 커서 대부분 러시아어로 교신을 했던게 사실이다.물론 전투기들도 모두 중국·북한표지를 했다. ○중국·북한기 표지 보다 중요한 점은 혹시 격추돼 참전사실이 탄로날 것에 대비해 작전지역이 철저히 제한됐다는 사실이다. 이 원칙은 종전때까지 지켜졌다.동으로 동해,남으로는 전선에서 1백80㎞ 떨어진 39도선이 우리의 작전한계선이었다.즉 북한영토내에서는 압록강을 끼고 청진과 신안주사이가 우리의 작전지역이었다.미군측은 이 지역을 「미그앨리(소로)」라고 불렀다. 전쟁개시 2개월 전인 1950년 4월 김일성이 당시 외교부장 박헌영과 함께 극비에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찾아가 전쟁지원을 요청한 이래 스탈린은 참전에 끝까지 적극적인 태도롤 보이지 않았다. 미국과의 직접무력대결을 원치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에 스탈린으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리게 만든 것은 모택동의 참전결정이었다.김일성은 전쟁준비를 착실히 진행시켜왔고 특히 중국내전에 참여해 혁명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한 1만4천명의 북한출신 공산주의자들이 50년초 귀국,정규군에 합세한 것을 계기로 북한군의 사기는 상당히 드높았다. 이런 여러 고무적인 정황들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의 참전을 두려워했다.개전 이튿날인 6월26일 대련항을 떠난 소련군함들이 참전의혹을 받지 않도록 즉시 귀항명령을 받았고 이후 전쟁기간 내내 소해군은 한국전에 개입치 않았다. ○중 개입 영향받아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됐을 때도 스탈린은 크게 낙담하면서도 무력개입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당시 정치국원으로서 모스크바 시 당제1서기였던 흐루시초프가 무력개입을 의미하는 「즉각적인 방어정책수립」을 강력히 권유했으나 스탈린은 이도 묵살했다.스탈린의 마음을 돌리게 한 것은 결국 중국군의 개입이었다. 모택동은 중국의용군의 한국파병을 결정하며 스탈린에게 병력이송과 물자보급을 위해 압록강 교량6곳의 안전이 긴요하고 이를 위해 소공군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차강조했다. 1950년 11월 말 소공군 2개 전투비행사단이 실전에 투입되자 미군의 B­29기들이 압록강 철교들에 엄청난 폭격을 가했다.주 목표는 안동과 신의주를 잇는 교량 2곳이었다.하나는 복선철교였고 또 하나는 자동차·철도 겸용 다리였다. 당시 북한은 임시수도를 신의주에 두고 있었고 김일성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중국군·북한군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B­29기 폭격이었다.그래서 그 해 11월 12월 사이 미그­15기의 최대공격목표도 이 B­29였다.안동에서는 40∼50대의 미그­15기가 당시 압록강을 넘어 출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1950년말 소련군지도부는 제공권을 되찾기 위해 64비행단의 보강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그 결과 이듬해 3월 소련공군의 영웅 이반 코제두프 대령이 이끄는 새 비행사단이 안동에 도착했다.이렇게 해서 그해 봄 북한상공에서는 보강된 소군기와 미군기 사이에 전례없이 치열한 공중전이 전개됐다. ▷필자 약력◁ ▲1924년생 ▲러시아군사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역사학박사) ▲소공군 64비행단 정보장교로 한국전참전 예비역대령 ▲저서 「절대무기의 개랍」(1988)「제3제국과 제3의 법칙」(1993)
  • 부전전투 영웅 이병형씨(예비역 육군중장 전쟁기념사업회장)는 말한다

    ◎“6·25 끝난줄 아는 착각 안타깝다”/안이한 안보관으론 나라지탱 못해/우방지도층 자제의 한국전 희생 본받아야 전선에서 산화한 전우와 두고온 산하를 못잊는 노병 이병형씨(67·예비역 육군중장·전쟁기념사업회장)에게는 아직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전사에 길이 남을 전과를 세운 전쟁영웅이기도 한 이씨는 『지금 모든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76년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이씨는 30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참군인의 면모를 과시,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다.그의 군인 됨됨이를 높이 산 노태우전대통령도 88년 취임초 그에게 전쟁기념사업회 일을 맡겼으며 장태완전수경사령관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군인의 한 사람으로 그를 꼽았을 정도. ­다른 사람들 하고는 달리 6·25를 맞는 소감이 각별하다고 봅니다만.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합니다.6·25 발발소식을 듣고는 마치 댐밑에 서 있다 댐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에는 뚜렷한 승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승패없는 전쟁에서는 전쟁을 치른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6·25전쟁의 승패가 나지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전혀 결정이 안났다고 봅니다.이질적인 집단간의 투쟁에서 아직 가부간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김일성이 엄연히 존재하지 않습니까. ­6·25는 어디서 맞았으며 그때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당시 수도사단 18연대 인사참모로 대위였습니다.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원산탈환후 북진할 때는 18연대 1대대장으로 참가 했습니다.전쟁얘기를 다 할수는 없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몇 개 있지요.50년 12월초로 기억되는데 두만강을 90리 정도 앞둔 함북 부령까지 북진해 갔을때 갑자기 연대에서 대대장회의를 소집하더니 철수한다고 하더라고요.중공군 때문이었지만 그날 새벽 이미 2대대 6중대는 선발대로 두만강 쪽으로 출동한 상황이었지요 6중대에는 통신이 안닿아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병력만 철수했습니다.6중대를 먼저 보낸 것은 적의 급속한 진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지요.당시 6중대장인 이원개소령은 그 사실을 몰랐고…. 고향이 부령인 이소령은 얼마전에 소령으로 진급했음에도 부령전투에 참가하겠다고 고집,중대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나중에 들은 소문에 따르면 6중대 1백60명은 고립돼 유격전을 펼쳤다고 합니다만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고귀한 희생들로 인해 이 나라를 이만큼 지킬 수 있었던 겁니다. 함남 북청출신으로 실향민인 이씨는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시 동부전선에서 안강→청송→평창을 거쳐 서림(양양군)지역의 38도선을 돌파한 후 북진의 선봉대열에 서서 간성→양구→화천→신고산을 경유,원산까지 진격한다.원산탈환후 18연대 1대대장이 된 이씨는 대대를 이끌고 함흥을 공격,점령하고 50년10월 하순에는 함흥 북방 신흥지역의 백암산에서 부전호를 따라 남하하는 중공군 5명을 최초로 생포한다.곧이어 1개 중대의 중공군을 기습,매복으로 전멸시켰다. ­최근 탈냉전분위기등 주변상황변화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많이 해이해진 것 같습니다.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6·25는 종전된 것이 아닙니다.휴전상태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모두들 전쟁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협상등이 있고 보니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안보관을 개혁하지 못하고서는 나라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특히 권력층·지도층·부유층에 문제가 있습니다.나서야 할 사람들은 항상 뒤로 빠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이익의 방패로 썼기 때문에 망국의 설움과 6·25를 겪었던 것입니다.군대가는 문제만 해도 지금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권력층·지식층·부유층자제들이 나라를 지키는 데 소극적입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외국의 지도급 자제들이 6·25에 참전,많이 전사했다는 점을 거울삼아야 합니다.우리의 안보의식을 혁신해야 할 것 입니다. ­6·25때 생명을 내던져 쌓은 군의 신뢰가 최근 많이 실추된 듯 합니다. 군원로로서의 견해는. ▲군은 특별한 조직이 아닙니다.군도 국민의 일부입니다.국민이 합쳐서 군을 이루는 것입니다.국민들 이익에 반대되는 일이 있어선 안될 겁니다.군과 민이 별도라는 개념은 바람직하지 않아요.최근 군내에 「하나회」등 사조직이 문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군내에선 사조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물론 일부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되는 만큼 국민들도 전체 군과 관련지어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요즘 전쟁기념관건립에 몰두해 있다.6·25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을 똑바로 알려주고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헌신함으로써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노병의 한을 달래고 있다.
  • 고난을 체험하는 사랑의 실천/『6·25 음식먹기 운동』 벌인다

    ◎개신교 각 선교단테 20개 도시서… 15만 경찰 동참/꽁보리주먹밥·수제비 등 1천원씩 판매 개신교 각선교단체들이 오는 25일 6·25 43주년을 앞두고 고난의 체험을 통한 절제와 사랑의 실천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한사랑선교회(회장 김한식목사)가 주관하는 「6·25음식먹기운동」은 그 대표적인 것.네번째를 맞는 올해 행사는 21일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등 시내 3개대학에 「6·25음식판매대」를 설치,판매함으로써 본격적인 행사에 돌입한다. 오는 26일까지 계속될 이 행사는 전국 20여개 도시에서 일제히 거행된다.올해는 특히 15만 전국경찰이 동참키로 하고 노동부 전체 산하기관과 대한요식업중앙협의회등이 참여한다.또 전국교회가 20일 주일집회 후에 동참하며 각 직장의 구내식당,음식점,가정도 상당수가 참여,사상 최대규모가 될것으로 보인다. 6·25음식의 종류는 꽁보리주먹밥 수제비 개떡 깻묵 호박죽등이며 1인분에 1천원을 받는다.서울에서는 21∼22일 대학가 판매에 이어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역광장과 잠실롯데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한사랑선교회측은 이 운동으로 모아진 수익금을 일차적으로는 그 단체나 교회가 자체적으로 가까이 있는 6·25참전용사나 불우이웃에 전달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그리고 자체 판매대운영에서 모아진 수익금과 운동본부로 전달돼온 수익금은 중앙차원에서 같은 용도로 쓸 계획이다.이에앞서 운동본부측은 17일 올림픽공원 문화회관에서 이 운동의 참가희망자들을 초청,6·25음식 시식회및 설명회를 갖기도 했다(문의 588­1733). 한편 한국이웃사랑회(회장 정해원)는 25∼26일 이틀간 「지구촌 기근퇴치를 위한 전국민 사랑의 굶기운동」을 벌인다.이 운동은 이날을 기해 전국민이 한끼이상씩 굶어 마련된 금식기금으로 우리주변의 결식아동과 아시아 아프리카등지의 기아문제 해결에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전개된다(문의 704­9923). 한국이웃사랑회측은 또 이 운동의 일환으로 기독교방송과 함께 26일 하오7시30분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에서 사랑의 굶기운동 공개행사 선교뮤지컬 「지금 우리는」을 공연한다. 한사랑선교회 김한식목사는 이번 6·25고난체험행사에 전국민의 참여를 당부했다.『오늘날 우리의 시련은 감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6·25당시 상황을 간접체험해보고 감사를 회복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입니다.자녀들에게도 훌륭한 교훈이 될것입니다』
  • 수도 군단장 김동신 중장

    국방부는 18일 경기도 연천군 포사격훈련장 폭발사고와 관련,보직해임된 배문한수도군단장(중장·육사20기)후임에 김동신합참전력기획부장(소장·육사21기)을 중장으로 승진시켜 임명발령했다.
  • 「홍도야 울지마라」 영화배경음악으로 쓰여 이채(북한이모저모)

    ◎6·25참전 퇴역군인 휴전40돌 앞두고 충성모임 ○“분위기에 맞는 노래” 평가 ○…최근 종영된 국내 모TV드라마에서 코믹하게 불려져 화제가 된 바 있는 노래 「홍도야 울지 마라」가 북한 최고 인기영화 「민족과 운명」에 삽입곡으로 쓰여져 화제. 평양서 발간되는 영화잡지 「조선영화」최근호에 의하면 이 노래는 지난해 11월 개봉된 「민족과 운명」(제8부)에서 주인공인 홍영자(오미란반)가 캐나다의 한 다방에 앉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는 것. 이 노래는 다방안의 분위기가 고조되는데 따라 더욱 강렬하게 울려 주인공의 심정을 자극함으로써 급기야 홍영자가 감정에 복받쳐 본인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데 이 대목을 놓고 북한영화평론계에서는 『장면의 극적 과제와 주인공의 심리,정황과 분위기에 맞게 노래를 잘 쓴 실례』라고 평하고 있다. 다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에서는 이 노래외에도 「아리랑」「낙화유수」「고향의 봄」「동무생각」등 우리의 귀에 익은 여러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쓰여졌으며 이와함께 조선민요·현대가요·외국음악 등도 다수 삽입돼 이 영화가 북한의 영화음악형상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고 「조선영화」지는 전언. ○“김 부자 결사보위” 다짐 ○…북한은 최근 「전승」(휴전)40주를 앞두고 각지서 6·25 참전 퇴역군인들의 「충성의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방송 보도를 종합한 바에 의하면 이같은 모임은 퇴역군인들이 지난달 발표된 당중앙위원회의 구호를 철저히 관철하여 6·25당시 발휘하던 투쟁정신과 기백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기 위해 열리고 있는데 모임에서는 토론과 김일성·김정일부자에 대한 총성맹세,예술공연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임에 참석한 퇴역군인들은 토론을 통해 ▲「군·민일치운동」 ▲농촌지원사업 ▲건설현장에 노동력 동원 ▲거주지 마을 미화사업 등에 앞장설 것과 전쟁발발시 또다시 무기를 들고 김일성·김정일부자를 결사 옹호·보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달 평양서 전쟁참가자들의 경험담을 발표하는 설화경연모임을 가진 바 있다.
  • 미,대베트남 금수 풀지도(지구촌단신)

    【하노이·프놈펜 AFP AP 연합】 베트남을 방문중인 미의원·참전용사 합동조사단이 1일 미군 실종자(MIA)처리를 위한 베트남측의 협조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 수석비서관들에 「이해력」 밝혀 눈길

    ◎김 대통령,“군생리 누구보다 잘 안다”/“의원시절 절반 국방위원으로 활동”/절묘한 인사에 “비공식채널 보유” 추측도 ○“그건 날 모르는 소리” 김영삼대통령은 군정보를 어떻게 얻고 있고,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단행된 전격적인 군수뇌인사의 정교성에 군내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김대통령이 27일 군에 대한 자신의 높은 이해력을 스스로 공개해 화제다. 김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들과 만난자리에서 『일부에서는 내가 군에대해서 잘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국회의원생활의 절반이상을 국방위원으로 보낸 걸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밝혔다.김대통령은 백선엽장군부터 시작해 6·25참전군인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이면서 『군출신들보다 내가 군의 생리를 더 잘안다』고 말했다는 것. ○두 전 대통령 대위때 김대통령이 처음 국방위원이 되었을 때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들은 육군대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와관련,청와대의 한측근은 『김대통령과 두전임대통령의 이런 인연때문에 김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즉 김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의 재임시에도 『내가 국방위원이었을 때 겨우 대위였던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측근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3당합당후 노태우 당시대통령과 김영삼대표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격렬히 부닥쳤다.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재는 모양인데 웃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방에 대한 그런 관념이 격렬한 투쟁을 할 수 있었던 동력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급장교 잦은 접촉 이측근은 『김대통령이 군의 고급장교들과 수십년을 부딪혀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또 어디를 잡으면 되는 것인가를 잘안다』고 설명했다.때문에 어떤인사를 하면 군의 단결이 강화되고 군이 좋아하는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일련의 군인사가 군내부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라기보다 군에 대한 높은 이해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군내부에서도 지지 일련의 군수뇌인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군을 잘아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해군인사의 경우 청와대의 한고위관계자는 『해군내부에서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만세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오랜 국방위원으로서 갖게된 군에 대한 이해력만으로 이런 인사가 가능했을까. 이에대해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들은 군내부에 대해 비공식 정보라인을 갖고 있지않겠느냐고 풀이했다.검찰에 대해 가차없는 숙정을 지시했던 것도 걸러지지 않은 정보의 유입채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감각·결단력 큰 요인 실제 김대통령은 전임자들이 의존했던 기무사에 대해 큰 역할부여를 하지 않는 것 같다.사령관과의 독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높은 이해력과 풍부한 정보탓도 있겠지만,그보다는 타이밍에 대한 감각과 결단력이 군인사의 점수를 높인 결정적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 감사원,율곡사업 3단계감사 착수/무기성능실험 등 포함

    군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는 감사원은 자료수집에 이은 2단계 감사를 마치고 27일 감사요원 43명을 재투입,3단계 감사에 들어갔다. 감사원은 이날부터 2단계 감사를 통해 드러난 무기체계의 선정,소요량 판단,대금지급등의 문제점을 집중분석,관련자의 책임규명에 주력하는 한편 제도적 개선방안도 강구할 계획이다. 감사원은 이에따라 합참전력본부 산하 전력기획부,국방부 전력기획관실,군전력증강위원회,국방부 군수본부등 무기도입의 결재과정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을 상대로 확인서를 받는 한편 비위혐의가 포착된 인사에 대해서는 출석을 요구해 최종적인 문답서를 받아내기로 했다. 감사원은 특히 계약과 설계내용에 비해 성능이 뒤떨어지는 K­1전차등 각종무기의 실지사격등 성능시험에도 들어갈 예정이다.이와 관련,이회창감사원장은 26일 김영삼대통령에게 율곡사업을 비롯한 그동안의 감사진행상황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감사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감사원의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이날 하오 소위원회를 열고다음달 3일 전체회의에서 확정할 「세무부조리의 근원적 방지대책」안을 심의했다.
  • 한·필리핀 정상회담 이모저모

    ◎양국 민주화 화제로 1시간여 대화/“개혁은 통일 활력소” 라모스 찬사 ○…25일저녁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방한중인 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을 위해 열린 「공식만찬」은 양국 경제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 김영삼대통령은 만찬사에서 라모스대통령에게 『6·25때 필리핀과 우방국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실현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우리 양국은 우호와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라모스대통령도 답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한국과 한국민들을 보면서 우리도 빵과 자유를 함께 가질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우리가 발전을 위한 모형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민의 단결심,기업정신,근면성,창의력등 성공의 원동력에서 배울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답례. 라모스대통령은 김대통령집권이후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에 찬사를 보낸뒤 자신의 개혁정책인 「필리핀 2천년」을 상세하게 설명. 이날 만찬에는 우리측에서 황인성총리,김덕주대법원장,이만섭국회의장등 3부요인과 여야대표,김선홍기아회장,이재준대림회장,김중원한일그룹회장,박종근노총위원장 등이 참석.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과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단독회담과 정상회담 순으로 1시간 20분간 만족스런 분위기에서 진행. 김대통령은 단독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비가 오는 날씨를 들어 『라모스 대통령께서 지난 52년 5월 한국전쟁에 참전하셨을 때도 많은 비가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고 당시 육군소위로 참전했던 라모스대통령은 『그땐 비도 오고 몹시 추웠다』면서 『맑은 날씨와 비오는 날씨를 골고루 경험할 수 있게된 것은 김대통령이 변화와 개혁의 정책수행에 있어 절묘한 시기를 택하고 있는 것처럼 방한시기를 잘택해준 덕분이며 김대통령의 시기에 대한 감각은 탁월하다』고 언급. 단독회담에서 라모스대통령은 한국의 변화와 개혁이 궁극적으로 한반도통일에 큰 활력소가 될것이라면서 필리핀서도 방한직전에 경찰고위직 63명을 해직했다고 설명.김대통령은 단독회담에 이어 계속된 확대회담에서 회담결과를 보도진이 보는 앞에서 직접 설명하고 『필리핀은 86년 2월,한국은 금년 2월에 각각 문민정부가 출범했다는 점에서 양국은 서로 민주화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양국간의 긴밀성을 강조.
  • 김홍렬 신임 해군참모총장(얼굴)

    ◎해사 수석 졸업한 두뇌파 지금까지의 인사관행을 깨고 파격적으로 해군참모총장에 발탁된 김제독은 해사16기를 수석 졸업했다.두뇌회전이 빠르고 해군발전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아 중용됐다.기라성같은 선임자들을 제치고 이번에 해군총장으로 된데는 그의 업무추진력과 리더십을 군통수권자가 샀다는게 중평이다. 부인 박정애씨(55)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남 서천(54세) ▲해사16기 ▲구축함장 ▲함대사령관 ▲해군작전참모부장 ▲합참전력평가부장
  • “북핵 당사국대화로 해결돼야”/전기침,한국특파원들과 일문일답

    ◎평양 핵개발동기·능력 감지못해/한중간 항공협정 조속체결 희망 ­핵확산금지조약 복귀를 촉구한 유엔의 결의에도 불구,북한이 끝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아 국제적인 제재문제가 나올때 중국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해당 당사국들이 접촉을 통해 이 문제를 적절히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모두들 아다시피 미국과 북한은 이미 접촉을 시작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접촉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도 북한과의 고위급회담을 제의했다.이것들은 모두 바람직스런 동향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에 대해 중국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지. ▲솔직히 말해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개발 능력과 이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핵분야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협력이 전혀 없었으며 평화적 이용분야마저도 마찬가지이다. ­한중항공협정문제와 관련,한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정에 따라 관제이양점을 동경 1백24도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1백25도를 주장해 서로 맞서 있는데 이에대한 견해는. ▲중한 양국은 지리적으로가깝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어서 편리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우리는 언제나 이 항공협정을 빨리 체결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항공관제이양점문제는 쌍방이 담판을 통해 쉽게 양해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택민국가주석의 한국방문 시기는 언제이며 이번에 김영삼대통령의 중국방문문제도 논의할 계획인지. ▲본인의 이번 방한중에 우리 쌍방은 관계발전문제를 논의할 것이다.그리고 김영삼대통령을 만나뵙게 될 것이다.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쌍방은 고위급 방문에 대해 결정하지 않았다.그리고 강택민국가주석은 올해 외국 방문계획이 없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은 참전결정을 했다.당시 한국은 중국에 대해 어떤 적대행위도 한적이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중국군에 의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처음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중국부총리로서 당시 희생된 한국인들과 그 유족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이 문제는 역사적인 사건이다.역사적인 문제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2차대전후 당시 한반도에는대국간의 군사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물론 그 원인은 복잡하고 여러가지가 있다.당시 압록강변에서 발생한 상황을 보면 이 전쟁을 완전히 알 수 있다. 우리 중한 양국은 지리적으로 접근되어 있고 닭 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까지 한다.그리고 양국 역사에도 오랜 왕래의 역사를 갖고 있다.하지만 최근 역사발전의 원인으로 1세기정도의 기간동안 우리 양국간에 왕래가 없었다.그것도 끝내 깨뜨려졌다. 한국에서는 선거를 거쳐 김영삼대통령이 새로 취임했다.본인의 한국방문은 바로 김영삼대통령의 당선이후에 있은 양국간 첫 고위회담이 된다.이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나는 이번 방문이 순조롭게 성공하기를 바란다.
  • 중국가입 대만반발로 진통 예상/태평양경제협총회 이모저모

    ◎세계은이 투자기피했던 포철성장에 찬사 「개방적 지역주의」란 주제로 24일 개막된 태평양경제협의회 제26차 서울총회는 첫날 한국·필리핀·말레이시아등 3국 정상의 정상포럼과 전체 회의및 분과별 회의를 잇따라 열며 아·태지역 국가간의 경제협력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날 정상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아·태경제협력(APEC)회원국중 동아시아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국들은 모두 1∼2개씩의 지역경제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며 그 예로 미국을 적시,지난해 자신이 주창한 동아시아경제회의(EAEC)의 출범을 가로막은 미국을 은근히 비난.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의 경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외에도 이스라엘등 다른 나라와 상호 교역에 특혜를 주는 여러 협정을 체결했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한 뒤 『오는 2002년이면 태평양지역의 경제 규모가 서구 경제의 2·5배에 달할 만큼 역내 국가의 경제적 상호작용을 강화하자』고 강조.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은 『한국이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를가미,오늘날의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다』고 치하하며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포항제철을 거론.그는 『한국이 포항제철을 세우던 68년 세계은행은 타당성 검토 결과 투자를 않는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그러나 포철은 그로부터 8년후 세계적 규모의 철강회사로 성장했다』고 놀라움을 표시.그는 또 한국과의 각별한 관계를 설명하려는듯 한국전에 참전한 경험담을 연설 서두에 언급하기도. ○…이번 총회 기간 중에는 이미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중국과 콜롬비아의 가입문제도 다룰 예정인데 중국은 대만과 국호 사용을 둘러싼 마찰로,콜롬비아는 자국내 위원회 조직과 규정이 어긋난다는 이유 등으로 다소 문제가 있어 난항을 겪을 전망. ○…PBEC총회 개막식 다음 날인 25일 열리는 각료 포럼은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모리 요시로(삼희낭) 일본 통산상이 불참하게 돼 다소 맥이 빠진 느낌. 이에 따라 당초 7개국 통상각료회담으로 명명됐던 각료포럼에는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과 말레이시아·칠레·필리핀·멕시코의 5개국 및 최근 참가를 요청해온 호주 등 6개국 통상관련 장관포럼으로 변경.알렌산드르 쇼힌 러시아 부총리도 자국내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왔다고 PBEC사무국이 밝혔다. ○…미키 캔터 USTR 대표는 25일 상오 열리는 회의에 인공위성을 통해 참가할 예정.화상 회의는 상오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열리나 위성 중계는 30분만 가능한 상태이며 캔터대표는 5분 정도만 연설하고 특별한 미국정부의 입장 발표는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방한중인 피델 라모스 필리핀 대통령은 24일 하오 필리핀에 대규모반도체 공장을 가동중인 아남그룹을 방문.그는 로물로 외무장관,나바로 상공장관 등 수행원을 대동하고 서울 성동구 화양동 아남반도체 공장을 방문,김주진회장 등 임직원들과 이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근로자들의 영접을 받았다.라모스 대통령은 아남이 필리핀에 대한 기술지원과 투자를 확대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김 회장은 필리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
  • 예상밖 신속숙군에 거듭 충격/「5·24 군수뇌 경질」 이모저모

    ◎김 2군사령관,취임 46일만의 퇴진/공군출신 의장에 「군균형잡기」 해석 「12·12사태」에 주도적 참여 또는 관련 책임을 물어 이필섭합참의장과 김진선2군사령관·안병호2군부사령관·박종규56사단장등 4명을 전격경질한 「5·24조치」와 뒤이은 해·공군 참모총장후속인사에 대해 군내에서는 「정치적 숙군」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군은 청와대의 12·12사태 성격규정이후 문책인사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상과 시기에 대해서는 점치지 못해 온 터라 이번 인사로 또 한차례의 충격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아침 청와대에서 이필섭합참의장등 12·12사태 관련장성 4명을 전격 경질시키는 발표가 나오자 국방부·합참·육군등 군관계자들은 충격속에 인사의 의미를 분석하느라 분주. 이합참의장의 경우 임기가 7개월 남아 문민정부출범이후 계속 경질설이 나왔으나 뜻하지 않게 「12·12사태」와 관련,퇴진해 불명예를 안든 셈.김진선 2군사령관은 지난 4월8일 대장으로 승진,2군사령관이 된지 불과 한달 보름만에 경질됨으로써 창군사상 최단명 군사령관의 기록을 세웠다. ○…정부가 12·12사태 관련 현역장성들에 대한 전역 인사조치를 결정한 것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13일 담화를 통해 12·12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명하면서부터 였으며 이후 대상자선정이 비밀리에 추진돼 왔다는 후문. 민주당등 야당의 관련자공직박탈 주장에도 모른채하며 대상자를 비밀리에 선정해 왔다는 것. 국방부는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동안 12·12사태에 참여했던 장성중 현역으로 남아있는 장성의 명단을 파악,이들의 참여정도를 조사해왔다는 게 정설.육군의 작전일지분석과 기무사등 정보수사관련부대의 조사등을 기초로 처음엔 당시 9사단 29연대장으로 노태우사단장의 명령을 받고 중앙청으로 출동한 이필섭합참의장(육사16기)·수경사 상황실장이었던 김진선 2군사령관(◎ 19기)9사단 작전참모로 활약한 안병호2군부사령관(◎ 20기)등 3명선을 전역시키기로 결정. 이 과정에서 이들이 모두 9사단 인맥이어서 자칫 노전대통령의 인맥거세로 비쳐지지 않을 까 고심하다 박종규사단장을 추가시켰다고. ○…이필섭합참의장 후임으로 이양호공군총장이 임명된 것은 육군우월체제를 벗어나려는 신호탄으로서 앞으로 군구조개편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기도.합참의장이 합참창설 39년사상 처음으로 공군에서 발탁된 것을 두고 합참관계자들은 3군의 균형발전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육군의 「힘빼기 전략」으로도 보고있어 주목. 공군에서는 과거에 김정렬·주영복총장이 오랫동안 국방장관을 역임하면서 군사외교와 군사력 증강에 큰 역할을 한점을 들어 공군력 우선의 합참전략이 수립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 ○…김철우해군참모총장경질은 임기가 3개월이 남아있지만 합참의장·공군참모총장의 경질에 맞춰 군인사비리 물의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것.김해군총장 자신도 군인사비리 파문이 진정된 최근 관계 요로를 통해 군지휘권 확립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했다는 후문. ○…한꺼번에 군사령관과 부사령관이 경질된 2군에서는 지난 4월8일 김진선사령관을 임명할 때와 그 이후에 행해진 중장급 후속인사시 안병호부사령관을임명할 때 「심사숙고」하지 못한 군 수뇌부에 화살. ○…해군과 공군에서는 신임 참모총장들에게 큰 기대를 거는 눈치.가뜩이나 군인사파문으로 후유증이 컸던 이들 군에서는 「악몽」에서 벗어나 총장을 중심으로 동요없이 일사분란한 체제를 갖추는 계기로 삼자는 다짐들이 무성. ○…신임 해군참모총장에 김홍렬 합참전력평가부장(소장)을 파격 기용한 것은 김제독이 진급은 동기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상하간에 신망이 높고 「재물욕」이 없어 군인사비리파문으로 저하된 해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최적격이라는 군내 평판이 크게 좌우했다고. ◎노·전 전 대통령측 반응/구체언급 자제… 심기 불편한듯/노/“9·9인맥 대상” 6공겨냥 시각/전 연희동의 두 전직대통령들은 12·12사태 관련 장성들의 퇴역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무반응」을 나타냈으나 내심은 다소 다른 듯했다.노태우전대통령측이 불편한 심기를 깔고 있는 분위기인 반면 전두환전대통령측은 『조치된 군장성들은 노전대통령 사람들』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노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번 군인사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대통령의 고유권한행사에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 그러나 다른 측근은 『12·12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새로 하는 것도 별로 기분좋을리 없는데 밑에서 충직하게 일하던 사람까지 피해를 당하니 심기가 좋지않을 것같다.지금은 드러내놓기 어려워 가만히 지내지만 적절한 시점에 입장표명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군통수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고 「무반응」방침을 천명. 이 측근은 『군인사는 제3자가 이렇고 저렇고 간여할 사안이 아니다.따라서 우리가 기분 나쁘고 좋고 할 것도 없다』고 피력. 이 측근은 그러나 『이번에 퇴역조치된 장성들은 대체로 12·12 당시 노전대통령이 사단장인 9사단에 근무했던 인사들』이라며 『소위 9·9인맥인 것같다』고 말해 이번 군인사가 전전대통령보다 노전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쪽으로 이해하려는 자세. 전전대통령도 이날 측근으로부터 군인사내용을 보고받았으나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는 것.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