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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 참전 영국군 유해 1구 북서 인계

    주한유엔군사령부는 30일 상오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군 유해 1구를 북한군으로부터 인도받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유엔측이 북한에서 인도받은 유엔군 유해는 모두 2백8구이며 올들어 유해를 인도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고엽제 보상금 한달 최고 60만원 주기로

    ◎내년부터 3등급 차등적용/취업 가산점·자녀 학자금 지원도/당정,개정안 이번 국회 제출추진 정부와 민자당은 29일 고엽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월남전 참전자 본인및 가족들에게 장애정도를 3등급으로 나눠 내년부터 매달 60만원,40만원,20만원씩 지급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정은 이에 따라 30일 당정회의를 갖고 매달 20만원씩 일률적으로 지원하기로 되어 있는 「고엽제후유증 환자진료등에 관한 법」을 이같이 수정,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당정은 또 피해자 본인에 대해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채용시험때 가산점 부여등 「국가유공자보호법」상의 조치와 유사한 「취업보호제도」와 함께 본인과 가족들에게 대학교까지의 등록금 면제와 학자금을 지원토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3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송두호 보건복지위원장 하순봉 민자당 제3정조위원장과 김시복 보훈처차관,재경원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보훈관련 당정회의에서는 이를 위해 새해 예산을 확보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 하와이→서울 김 대통령 여로

    ◎“한반도 평화에 바친 미 장병의 희생 고귀”/참전용사 45명과 함께 전몰장병 넋 위로 김영삼 대통령은 하와이 방문 이틀째인 26일 낮(한국시간 27일 상오·이하 현지시간) 펀치볼 국립묘지 헌화,미태평양사령부 방문,진주만 함대 시찰등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김대통령은 27일밤 2박3일동안의 하와이 방문일정을 마치고 귀로에 올라 28일 하오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태평양사령부 방문◁ ○…김대통령은 이날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태평양사령부에 도착,의장대를 사열하고 리처드 매키사령관으로부터 안보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청취했다. 리처드 매키사령관의 영접을 받으며 연병장에 마련된 사열행사장으로 이동한 김대통령은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매키사령관과 나란히 육·해·공군과 해병대 지휘관 및 장병들을 사열했다. 매키사령관의 환영사에 이어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미국민의 적극적인 지원과 미군장병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크게 기여했다』며 『특히 태평양사령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결정적 기여를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6·25전쟁을 통해,그리고 지난 40여년간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던 장병 여러분을 만나게 돼 기쁜 마음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사열행사에는 미측에서 매키사령관을 비롯 육·해·공군,해병대 등 각군 사령관과 주요 참모들이 부부동반으로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김대통령은 연설을 마친뒤 각군 사령관부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펀치볼 국립묘지 헌화◁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공식수행원 전원 및 한국전 참전용사 45명과 함께 호놀룰루의 펀치볼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전몰장병들의 넋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국립묘지 관리소장의 안내로 헌화비에 헌화한뒤 군악대의 애국가와 미국국가 연주속에 사열대에 등단,1분동안 2차대전 및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했고 이어 21발의 조포가 발사되고 진혼곡이 연주됐다.
  • 뉴욕/김 대통령 여로/16국 정상회의서 첫번째 기조연설

    ◎영 총리·키신저 전 미 국무 방한 초청/“유엔 개혁” 제안에 각국 대표 “공감” 김영삼 대통령은 유엔방문 사흘째인 23일 상오 9시(한국시간 23일 하오10시·이하 현지시간)유엔본부 지하1층 제6회의실에서 열린 「유엔강화 16개국 정상회의」에 참석,유엔의 변화와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메이저 영국총리 및 프레이 칠레대통령과 연쇄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이에 앞서 유엔대사관저에서 헨리 키신저 전미국무장관과 조찬을 같이 하며 한반도 문제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전날 하오에는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열린 클린턴 미대통령 주최 리셉션에 참석한뒤 고촉통 싱가포르총리와 회담,양국간 관계증진방안 등을 논의했다. ▷16개국 정상회의◁ ○…김대통령은 16개국 정상회의에서 의전서열 1위에 올랐으며 각국대표 기조발언도 첫번째로 나서 한국이 중견국가들의 유엔 강화노력을 선도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김대통령과 다른 참석 정상들은 회의실에 도착한뒤 함께 기념촬영을 끝내고 각국의 유엔 개편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기조연설에 돌입했다. 이날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유엔의 개혁을 위해서는 각국의 자발적 기여도가 증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참석대표들은 박수로 김대통령의 발언에 호응했다. 회의에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중견국가(Middle Power)들이 대륙별로 2∼3개국씩 참여했는데 우리와 브라질·체코·인도네시아·아일랜드·네덜란드·자메이카에서는 정상들이,남아공·호주·코트디부아르·이집트·멕시코·인도·일본등은 정상들을 대신해 외무장관 또는 유엔주재대사가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16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뒤 유엔대사관저에서 메이저 영국총리와 단독회담을 갖고 양국간 무역및 상호투자가 확대되도록 정부차원에서 최대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메이저총리에게 『내년중 한국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으며 메이저 총리는 『내년 3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참석때 한국방문을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김대통령은 또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의 한국유치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메이저총리는 『한국측의 희망을충분히 유념하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대통령은 이어 숙소인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프레이 칠레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갖고 한·칠레간 특별동반자관계를 확대·심화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김대통령과 프레이대통령은 유엔안보리와 APEC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강화를 거듭 확인한뒤 투자보장협정의 조속한 체결을 통해 상호투자확대를 도모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키신저 박사 조찬◁ ○…김대통령은 이날 아침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헨리 키신저 전미국무장관과 조찬을 함께 하며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정세변화,유엔의 변화와 개혁문제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조찬은 24일 미국유엔협회가 주관하는 세계지도자상 수상식에서 키신저박사가 김대통령의 업적과 한국을 소개하는 연설을 하게됨에 따라 사전 상견례 성격으로 이뤄져 키신저외에도 미국측에서 화이트헤드 미국유엔협회회장과 다국적 금융회사인 미국제그룹(AIG)의 그린버그회장이 참석했다. 키신저박사가 조찬장에 도착하자 박수길주유엔대사가영접했으며 우리측에서 공로명외무장관과 한리헌청와대경제수석·유종하외교안보수석이 배석했다. 김대통령은 조찬장에 들어서면서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눈뒤 1시간동안 조찬을 하면서 『키신저박사와는 상도동에서 조찬을 함께 한 적이 있어 서로 잘 알고 있다』며 『세계지도자상 수상식에서 나를 소개하는 연설을 맡아줘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대통령은 또 『앞으로도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고 좋은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당부하고 『오랫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니 조만간 한국을 한번 찾아달라』고 초청했는데 키신저박사도 『기꺼이 방문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열린 클린턴 미대통령 주최 리셉션에 참석,클린턴대통령 부부와 사진촬영을 한 뒤 참석자들과 칵테일을 나누며 환담했다. 김대통령은 클린턴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유엔 정상회의 연설에서 마약등 국제규모의 범죄에 공동대응하자는 얘기는 대단히 좋은 제안』이라고 인사하고 지난7월 워싱턴에서의 6·25 참전기념비 제막식행사 참석차 방미했을때 미국민이 보여준 환대에 감사를 표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11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제3차 APEC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협력강화방안을 논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싱가포르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22일 하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고촉통 싱가포르 총리와 1시간여에 걸쳐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관심사에 관해 집중논의했다. 이날 회담에서 두나라 정상은 오사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합의하고 96년 3월 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양국 정상은 또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협력강화 방안,양국기업의 제3국 공동진출 방안등에 대해 협의했다. 두 정상은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 지난해 11월 보고르 APEC 정상회담에서 만난 이후의 안부를 묻고 유엔특별총회등을 화제로 잠시 환담했다. 고촉통 싱가포르총리는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제안한 유엔개혁에 대해 적극 동참한다』고 말했다.고총리는 또 김대통령이유엔연설일자를 묻자 『김대통령의 연설이 훌륭했던데다 개막식 첫날이라 총회장 좌석이 꽉찼으나 나의 연설은 마지막날 저녁시간이어서 총회장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어 김대통령이 고총리에게 『서양 사람보다 크다』고 하자 고총리는 자신의 키가 1백90㎝라고 소개하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번 양국정상회담은 뉴욕방문중 김대통령이 계획하고 있는 10개국 정상과의 개별회담 중 첫번째로 한국측에서는 공로명 외무장관·한이헌 경제수석·유종하 외교안보수석·윤여전 공보수석이,싱가포르측에서는 림홍기앙 제2장관·빌라하리 카우시칸 주유엔대사·탄용순 수석비서관·찬헹윙 공보비서관이 배석했다. ◎유엔 50주년 뉴욕 총회 이모저모/카스트로,미의 쿠바 금수조치 강력 비난/장외선 중의 티베트 통치 종식 요구 시위 ○…각국 지도자들은 22일 상오 유엔본부 경제사회이사회에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 사진촬영에는 맨앞줄에 빌 클린턴 미대통령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왼쪽에 부트로스갈리 유엔사무총장,디오고 프레이타스 아라말 총회의장,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이 자리잡았으며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맨앞줄 오른쪽 끝에 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등과 나란히 자리. ○…16년만에 첫 유엔연설에 나선 카스트로 의장은 쿠바 금수조치를 거론하며 미국을 강도높게 비난.그러나 미국의 대 쿠바 경제제재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인들로부터 상거래 상담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연신 흡족한 표정. ○…지난 74년 이후 처음으로 유엔에 발을 디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은 『21년 전에는 자유,해방,독립의 투사로 이곳에 섰지만 이제는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섰다』고 소감을 피력. ○…경제력에 비해 유엔 분담금이 너무 적다는 지적을 받고있는 중국의 강택민주석이 분담금을 제때 내지않은 회원국을 비난한 것으로 알려져 빈축. ○…특별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유엔본부 근처에서는 수천명의 군중들이 모여 유엔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실태를 제대로파악하지 않고 있다며 시위를 전개. 특히 이중 노란색 앞치마와 머리띠를 두른 수백명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좌석배정과 중국의 티베트 통치 종식을 요구하며 시위. ○…클린턴 미대통령 주최의 만찬장에 참석하지 못한 이란,이라크,쿠바,수단,북한,리비아,소말리아등 7개국은 개가 초청장을 먹어버리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는 수모까지 당하기도. ○…카스트로 의장의 유엔 방문에 반대시위를 벌이던 선박 1척이 뉴욕 근처까지 다가갔으나 카스트로를 볼 수 있는 지점에 도착하기 직전 해안경비대 순시선에 의해 저지. 마이애미에 살고있는 쿠바 난민들은 최근 카스트로의 36년 공산통치 종식을 요구하며 선상시위를 벌여 왔다. ◎유엔 16국 정상회의 선언 전문/평화·진보향한 세계협력 다지자 우리 16개국 호주,브라질,캐나다,코트디부아르,체코,이집트,인도,인도네시아,아일랜드,자메이카,일본,멕시코,네덜란드,대한민국,남아프리카공화국 및 스웨덴 정상들은 세계 다자협력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신념을 재확인하기 위해유엔 창설 제50주년 전야에 뉴욕에 함께 모였다.우리는 공동으로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1,세계 협력은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이다.우리는 내일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이제 미래에 투자하여야 한다.우리가 지금 신속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는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재앙들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장차 세대들도 그러할 것이다. 2,우리는 서로 다른 신념,문화적 유산및 전통,그리고 서로 다른 경제·사회 구조를 가진 모든 대륙으로부터의 작고 큰 나라를 대표한다.우리는 그간 경험에 따라 동일한 결론­평화와 진보를 위한 세계협력에의 확고한 신념­에 도달하였다.우리는 세계 문제들에 대한 일방주의적 접근을 배격한다. 3,50년간 유엔은 평화와 안보유지,정의와 형평 및 개발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동수단이었다.국가들은 이제 유엔의 막대한 잠재력을 이용할 필요가 있으며 유엔에 새로운 기풍,새로운 활력,그리고 새로운 방향감각을 주입할 필요가 있다. 4,우리는 새로운 범세계적인 지역협력 추세를 환영한다.개방 지역주의는세계협력의 지지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세계협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유엔은 세계문명을 구성하는 모든 민족들의 효과적인 협력의 장이 되어야 한다. 5,사회적 단결의 문화 소외,그리고 폭력과 테러리즘 자행을 이겨내야 한다.우리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필요에 주목하여야 한다.우리는 분쟁 방지를 원하며 민족및 국가간 정치·경제적 대등성을 증진할 것을 원한다.우리 모두는 민주주의의 제원칙,그리고 국제사회의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을 다짐한다. 6,우리는 특히 다음 4개 중요분야에 있어 유엔체제 개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엔의 분쟁 예방및 평화구현 기능은 크게 증진되어야 한다. ­다자경제 체제는 개편되어야 하며 세계경제에 있어 모든 국가들의 유익한 참여를 추진하기 위해 유엔의 다른 유관기관들과의 협력관계는 강화되어야 한다. ­유엔은 사람들이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들이 존중되는,그러한 민주적인 세계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유엔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대표성이 있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적절한 재원이 마련되어야 한다.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분담금을 전액 그리고 적시에 납부하여야 한다. 7,50주년은 아주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이 기회를 상실해서는 안된다. 이미 유엔 체제내에서 개혁과정은 특히 총회에서 회원국들에 의해,그리고 사무총장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러한 모든 노력들의 성공여부는 우리가 위에서 설정한 분야들에서 얼마나 소요를 충족할 수 있느냐에 따라 판단되어질 것이다. 8,우리는 모든 회원국들의 새로운 정치적 의지를 기반으로 시민사회내 각 단체들의 에너지와 신념을 활용하는 개선된 세계 다자체제에 대한 광범한 지지를 창출할 것을 원한다.우리는 개혁 절차를 촉진시키기 위한 방법과 방안 마련을 위한 토의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이다.
  • “한­가 협력관계 국제사회 모범”­김대통령/김대통령 여로·오타와

    ◎만찬장에 가 유력인사 3백명 참석 성황 캐나다를 국빈방문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20일 상오(한국시간 20일 하오·이하 현지시간) 수도 오타와에서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와 확대정상회담 및 공동기자회견을 갖는등 양국의 협력관계를 다졌다. ▷한·캐나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20일 상오 오타와의 국회의사당에서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와 1시간여에 걸쳐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의 「특별동반자관계」를 재확인했다. 김대통령은 숙소인 총독관저를 출발,10여분만에 의사당 평화의 탑 입구에 도착해 의사당 중앙홀에서 크레티앵총리의 소개로 영접나온 상·하원 의장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상원 및 하원 귀빈방명록에 차례로 서명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크레티앵총리의 안내로 의사당 3층에 있는 총리집무실로 이동해 유종하 외교안보수석과 신기복 주캐나다 대사만을 배석시킨 뒤 바틀먼 총리외교국방보좌관,페로 주한대사를 배석시킨 크레티앵총리와 20여분간에 걸친 단독정상회담에 돌입했다. 두 정상은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며 지난해 11월 보고르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만난 이후의 안부를 물으며 한국과 캐나다의 가을날씨등을 화제로 잠시 환담했다. ▷전쟁기념비 헌화◁ ○…정상회담을 마친 김대통령은 20일 상오 공식수행원 전원과 함께 국회의사당 앞쪽 연방광장 중앙에 위치한 전쟁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전몰장병의 넋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레더먼의전장의 안내로 군악대의 애국가 연주속에 사열대에 등단,1분동안 1·2차대전및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했고 이어 진혼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헌화하고 다시 묵념했다.이어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나눈뒤 방명록에 서명했다. ▷손여사 아동병원 방문◁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20일 상오 오타와 시내 스미스 로드에 있는 아동종합병원을 방문,18세이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진료현황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에 앞서 손여사는 변성옥 주캐나다대사부인등 대사관 직원 부인들을 접견한데 이어 다이애나 폴러 총독부인과 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했다. ▷총리주최 공식만찬◁ ○…김대통령은 19일 저녁 오타와 문명박물관 그랜드홀에서 열린 크레티앵총리 주최 공식만찬에 참석해 한국과 캐나다간 협력증진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부인 손여사와 함께 레더먼 캐나다의전장의 안내로 숙소인 총독관저를 출발해 문명박물관에 도착,입구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크레티앵총리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했다. 김대통령내외는 크레티앵총리와 함께 박물관 2층 캐나다홀을 20분간 둘러본 뒤 크레티앵총리의 안내로 만찬장인 그랜드홀로 자리를 옮겨 2시간10여분동안 만찬을 함께 하며 우의를 교환했다. 이날 만찬에는 캐나다 각계 유력인사 3백여명이 참석했으며 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크레티앵총리는 환영사에서 『2년전 시애틀에서 양국간 특별동반자관계를 선포한 이후 올해 상반기 교역량이 지난해에 비해 40% 이상 증가하는등 양국관계가 확대일로에 있다』면서 『이번 김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기업간 새로운 합작사업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두나라가 국제사회에서도 모범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21세기 희망찬 아태시대를 함께 열어나가자』며 건배를 제의했다.
  • 「전진」부대 백전노장과 병사의 만남

    ◎“이번 공비 사살로 김정일 KO 됐다”/백선엽·최영희씨 등 후배들 격려·칭송/“총 쏠때 무섭지 않았나”… 얘기꽃 만발 『이번에 간첩잡느라 총쏘면서 무섭지 않았어.나도 6·25때 총 많이 쐈지』 19일 1사단(사단장 이강언 소장)연병장에서는 6·25당시 이 부대 소속으로 싸웠던 70대 선배전우들과 지난 17일 임진강 하류를 통해 수중 무장침투하려던 북한 특수부대원을 사살한 정인제(21)상병 및 이종훈(20)이병 등 후배전우들이 함께 자리해 화기애애하게 얘기꽃을 피웠다. 선배전우들은 남진하던 북한군을 낙동강에서 대파,한국전쟁사에 오른 「다부동전투」의 주역으로 이날 이 부대가 주관한 「평양입성 전승기념행사」에 참석차 부대를 찾아온 것. 6·25 전세가 역전된뒤 처음으로 평양에 입성,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진」이라는 명칭을 수여받은 이 부대는 평양 입성 45주년인 19일을 맞아 올해 처음으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사단장 백선엽(75)예비역대장과 15연대장 최영희(74)예비역대장,12연대장 김점곤 경희대 명예교수등 고희에 이른 참전용사 1백여명이 참석,후배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 12연대10중대장으로 활약했던 엄동길(67·예비역준장)씨는 손자뻘인 이이병의 손을 꼭쥐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정상병과 이이병이 북한군을 눈앞까지 유도,총을 쏜 것은 고도의 훈련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지』 선배들과 격의없이 얘기를 나누던 정상병등은 기념촬영을 위해 30여분에 걸친 간담회 시간이 끝나자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한 참석자는 『후배들이 신체도 건강하고 훈련도 잘 돼있어 마음이 든든합니다.모든 젊은이들이 정상병같은 후배들을 본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라고 자리를 일어서며 말했다. 백선엽 장군은 기념사를 통해 『이번 정상병등의 전공으로 김정일이 KO됐다』고 격려하고 『김정일도 김일성과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며 장병들이 투철한 안보의식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행사는 열병,수색대대 특공무술 시범,전차등 장비 전시,도라전망대 관람 및 제3땅굴 견학등의 순으로 하루종일 진행됐다.
  • 김 대통령 여로/서울∼밴쿠버

    ◎야 불참속 조 서울시장 공항배웅 눈길 ○…김영삼 대통령은 캐나다와 유엔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16일 하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특별기편으로 출국. 김대통령은 출국에 앞서 서울공항에서 열린 환송식에서 이홍구총리와 김기재총무처장관의 안내로 3군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출국인사를 통해 『다가오는 21세기 우리나라가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국제적 신망을 쌓아가야 한다』고 이번 순방의 의미를 설명. 김대통령은 『유엔 창설 5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이 추구하는 이상인 국제평화와 인류복지 증진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뜻을 세계에 전할 것』이라면서 『유엔 방문은 우리나라의 유엔 안보리 진출을 위한 지지를 확보하고 유엔 활동과 개혁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 김대통령은 환송나온 국무위원과 김윤환 대표위원을 비롯한 민자당 당직자등과 차례로 악수한 뒤 특별기에 탑승.이날 환송행사에는 야당측 인사들은 불참한 가운데 조순서울시장이 나와 김대통령과 악수를 나눠 눈길. ◎김 대통령 출국 인사 요지 저는 오늘 캐나다를 국빈방문하고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50주년기념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합니다. 캐나다 방문중 저는 수도 오타와에서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는 밴쿠버와 토론토도 방문할 계획입니다. G7의 회원국인 캐나다는 한국동란 참전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전통우방입니다.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세계 정상급의 첨단 산업기술을 지니고 있는 캐나다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경제협력 동반자입니다. 저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두나라는 산업기술협력위원회 설치약정 등을 체결할 것입니다.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두나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캐나다에는 또한 10만명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저는 2년전 시애틀 APEC정상회담 때 크레티앵총리와 만나 양국간에 특별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이번 캐나다 방문을 통해 저는 양국관계를 한층 튼튼한 기반 위에 올려놓고자 합니다. 캐나다 방문을 마친 후 저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창설 50주년기념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합니다. 이 회의에서 저는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이 추구하는 이상인 국제평화와 인류복지의 증진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뜻을 세계에 전할 것입니다. 저는 유엔의 역할과 기능 강화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16개국 정상 모임인 「유엔강화를 위한 국제회의」에도 참석하여 유엔의 개혁방안을 논의할 것입니다.저는 또한 이번 유엔회의에 참석하는 주요국가 정상들과 개별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의 협력 증진방안을 협의할 예정입니다. 저의 이번 유엔방문은 우리의 유엔안보리 진출을 위한 지지를 확보하고 유엔의 활동과 개혁에 우리가 보다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에 우리나라가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국제적인 신망을 쌓아나가야 합니다.오늘날 세계화라는 시대적 조류에 따라 자본과 상품은 물론 정보와 기술,그리고 사상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습니다.모든 국가가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 아래 상호협력하지 않고서는 번영을 나눌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해외 순방기간중 여러 우방국들과의 협력기반을 더욱 다짐으로써 세계화로 가는 길을 탄탄히 닦고 돌아오겠습니다.오는 28일 돌아와서 국민 여러분에게 순방결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 장백현 민간 예인(압록강 2천리:8)

    ◎민족혼 담긴 「함경도 수박춤」 사라질판/예인 김학천옹 와병… 생활고로 은둔 생활/중앙정부 지원금 적어 유·무형 문화재 관리 엄두 못내/한글판 잡지 「장백」… 재정난으로 발행 중단 장백현에는 문화전반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문화관이 있다.문화예술은 물론 체육과 오락,성인교육활동을 담당해온 장백현문화관은 지난 194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이 문화관은 현안에 92개 촌단위 문화실과 연계되었다.문화실은 대개 저마다 특색을 가진 문화오락활동을 벌여왔다.반달이나 한달을 주기로 여는 노인무도회·장기대회·문예공연·이야기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촌 문화실마다 마치 공통과목과 같은 별도의 활동이 또 있다.어느 촌이든 농악대를 운영하는 것이다.특히 태양촌 농민악대가 유명하다.지난 1989년 길림성 혼강시(장백은 혼강시 관할에 속함) 제2차 농민문예공연에서 1등을 차지한 농악대다.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장백현문화관의 문예보도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장백현문화관은 19 92년부터 3년간 내리 길림성 전체에서 2등 자리에 올라서는 영예를 안았다.기관지로 한족어 위주의 「장백문화보」와 한글판 「장백」잡지를 내고 있다.「장백」은 제5호를 끝으로 마감했다.그 이유는 재정난 때문이었다.국가에서 해마다 주는 16만원의 사업비로는 20명 직원들의 임금을 주고나면 전화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악대 촌 단위로 운용 장백현문화관장은 조선족 문단에서 꽤나 문명을 날리는 이성태 선생이다.중편소설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발표한 이후 여러 문인을 길러냈고 많은 전설과 문화유산을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그는 문화관의 어려운 살림을 하소연 삼아 털어놓았다. 『문화사업은 본래 돈을 들여야 되는 일이 아니겠습네까.그런데 지난달 15일 장백조선족자치현 창립기념 조선족예술절 경비로 문화관 수입이 벌써 거덜이 났디요.문화유산 발굴은 커녕 문화재 관리도 어려운 판이야요.그 유명한 민간예인 한분이 병환에 계신줄 알면서도 도움을 못드리고 있디요.한국 같았으면 인간문화재라 해서 생활보장은 될텐데…』 그의 민간예인이라는 말이귀에 번쩍 들어왔다.아니나 다를까 와병 중이라는 민간예인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김학천(64)노인이었다.그는 장백현문화관장을 지낸 동생 김학현(60)선생과 함께 지난 1990년 요령성 단동에서 열린 전국 소수민족문예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분이다.그 때의 수상작품은 수박춤이었다.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심사위원들이 며칠 계속된 콩쿠르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 수박춤을 구경하던 관객들의 박수에 놀라깨어 침을 흘리면서 춤에 도취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김학천·학현 형제는 울로초를 가지고 미니스커트 모양으로 짧게 엮은 치마만을 팬티위에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수박춤에는 이렇다 할 악기반주가 없다.다만 주연격인 형이 발가벗은 사지를 이리저리 치면서 입으로 갖가지 소리를 냈다.그 소리는 바람,우레,비,짐승,새 소리 등 무궁무진했다.동생은 함지박 물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두들겨 형의 손바닥 장단을 따라 맞추었다.흥이 한껏 돋아나면 형이 여러 형태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리고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몸을 손바닥으로 쳤다.이들 일가는 함경북도 단천군에서 지난 1962년 77세로 작고한 아버지 김달순대에 장백현으로 들어왔다.이주지는 14도구 간구자였는데 슬하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두었다.아버지가 가보로 여긴 수박춤은 셋째 아들 김학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이미 고인이 된 맏아들은 목청이 나빠 아버지 마음에 들지 못했고 둘째는 조선(한국)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친한테서 전수 받아 그리고 넷째 아들 김학현은 어려서 집을 나와 공부를 하다가 조선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았다.그렇지만 그 핏줄이 그 핏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재질이 뛰어났다.넷째는 공부도 제대로 한터라 1959년 장백현문예공작단(문공단)이 생겨나면서 부단장과 단장을 지내고 장백현문화관장을 끝으로 사회공작(사회생활과 일)을 마무리 했다.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 문공단은 통화지구에서 유일한 조선족단체여서 현 밖을 자주 나갔디 않았겠수.통화,유화,임강,혼강,휘남 같은 도시에 나가면 극장이 미어졌수다.인근 농촌 조선족들은 찰떡을 해서리 기차를 타고 버스도 타고 와서 친척집이나 여관에 묵으며 관람을 했지 않슴메.도시공연이 끝나면 농촌을 돌았는데 돈과는 거리가 멀었지비.그래도 인심이 좋아 동구 밖까지 와서 환대했댔수다.어떤 사람들은 타지로 떠나면 짐을 지고 따라와 같은 공연을 며칠씩 보기도 했으니 인기가 대단했디우』 김학현 선생과 함께 그의 형님 김학천 노인을 찾아나섰다.집은 장백현 14도구진에 있었으나 겨울이 오기전까지는 늙은 양주가 더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들어가 과수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했다.차가 더 기어올라갈 수가 없어서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포수막을 닮은 귀틀집이 보였다.좁은 마당에 배추며 부추가 자랐다.그러나 지난해 옮겨심었다는 사과나무는 몸살에 걸려 아직 사과 한톨도 매달고 있지 않았다. ○올로초 치마입고 춤춰 그 집에서 나오던 김학천 노인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겨 맞았다.나이에 비해 너무 겉늙었으려니와 허리가 잔뜩 굽어 1m67㎝라는 키가 1m20㎝도 안되어 보였다.얼굴의 피부는 소나무껍질 같이 주름 투성이었고 러닝 밖으로 드러난 살결이 무척이나 검었다.설상가상으로 근육위축병에 걸려 손발이 쪼그라 들었다.목불인견의 몰골 그것이었다. 노인은 윗옷을 훌훌 벗었다.그리고 벽에 걸린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모처럼 찾아온 나그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동생 김학현선생도 따라서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노인은 손바닥으로 앙상한 몸골을 치면서 갖가지 소리를 내고 앙천대소 하기도 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로애락을 연출했다.인간의 마지막 절규로 들려왔다.노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물기가 어렸다.초점을 잃은 노인의 동공이 풀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나는 허공을 바라다 보았다.
  • 군장성 89명 인사/기무사령관 중장 보임

    정부는 10일 기무사령관 임재문 소장(학군3기)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현보직에 유임시킨 것을 비롯,소장 6명을 중장으로,준장 18명을 소장으로,대령 65명을 준장으로 진급시키는 등 모두 89명에 대한 정기진급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계급별 인사를 달리하던 종전 방식과는 달리 함께 진급을 시켜 사상 유례없이 규모가 커졌다. 육군의 경우 임재문 사령관 외에 교육사령관 대리 최돈걸 소장(육사21기)이 중장으로 진급해 현 직책에 보임됐으며 박용득 2군사령부참모장(육사22기),박영익 교육사령부 전력개발부장,김석재 육본인사참모부장(이상 육사23기),조영길 합참전력기획차장(갑종 172기) 등 4명이 중장으로 진급,군단장에 보임됐다. 기무사령관에 중장이 임명된 것은 현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93년3월 군개혁작업의 일환으로 하나회출신인 서완수사령관을 전역조치 하면서 김도윤소장이 사령관에 보임된 이래 2년7개월 만이다. 정부는 군단장임기를 끝낸 이규환 중장(육사21기)은 합참인사군수참모부장에,유재열 중장(〃)은군수사령관에 각각 보임했다. 또 김승광 국방부장관보좌관(육사25기),김효수 학군교참모장(학군6기)등 8명이 소장으로 진급,사단장에 진출했으며 손문성준장(육사23기)등 5명은 현직책에서 직위진급,임기를 마치면 전역하는 조건으로 소장으로 진급했다. 이와 함께 하나회 출신인 유보선 준장(육사 24기)이 소장으로 진급,국방부 군비통제관에 보임됐다. 아울러 해군의 문정일 준장(해사 23기)등 2명과 공군의 고종무준장(공사 17기)등 3명도 소장으로 진급했다. 한편 양점석 대령(갑종 213기)등 육군 46명이 내년 준장진급 예정자로 확정됐으며 이 가운데 지난 70년 임관한 3사관학교 1기출신 2명이 포함됐다. 그러나 하나회 출신은 사단장등 주요지휘관과 준장진급 예정자에는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해군의 조부근 대령(해사 26기)등 11명과 공군의 8명도 준장진급 예정자로 확정됐다. 이로써 3사1기,학군8기,육사28기,해사26기,공사20기의 「장군시대」가 열렸다.
  • 고엽제피해 2세 유전/보훈병원/「말초신경병」 첫 확인

    한국보훈병원이 8일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뿌린 고엽제 후유증이 피해자의 2세에게 유전돼 발병한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민회의 한광옥의원에게 통보해왔다. 보훈병원측은 이날 국정감사 질의에 대한 추가답변을 통해 『베트남 전쟁 참전자인 박모씨(48·경기도 부천시)의 아들(16)이 고엽제 후유증인 말초신경병을 앓고 있으며 이는 유전에 따른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헌치 보훈병원장은 지난 6일 보훈병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의원이 『고엽제 후유증이 2세에게 유전된 사실이 있는가』라고 묻자 『최근 한 사례가 처음 확인됐다』고 답변한 바 있다.
  • 휴전협정의 뒤안(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9)

    ◎미·유엔군,중공군 개입으로 확전전략 수정/군사분계선·포로문제로 2년남짓 줄다리기 1950년 6월25일 새벽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은 19 53년 7월27일 상오10시 유엔군과 공산군측 대표가 판문점에서 휴전 조인식을 가짐으로써 형식적인 종지부를 찍었다.전쟁 발발 만 3년1개월2일만이었다.전선에서의 공방만큼이나 휴전을 이루어내기 위한 협상전도 치열했다.유엔군과 공산군측은 장장 2년여에 걸쳐 험난한 설전을 계속했던 것이다. ○중공군 46만명 손실 그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어거지로 마감했던 휴전회담의 결과는 개전 이전보다 한국의 영토를 조금 더 확보하는 것으로 그쳤다.그러나 휴전회담에서는 한반도 통일을 꿈꾸었던 대다수 한국민들의 의지가 도외시됐다.휴전회담에 따라 종결된 「승리없는 전쟁」에서 비롯된 분단과 갈등이라는 후유증은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은채 중병으로 번져있다. 휴전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51년 5월 하순 중공군이 총공세에서 실패,열세에 빠지면서부터다.중공군은 이때쯤 한국전 개입이후 46만명에 달하는 병력손실을 입었다.더이상의 공격작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그럼에도 미국과 유엔군은 당초 38도선 이북의 공산군을 격멸한다는 목표에서 후퇴했다.중공군 개입에 부닥치자 전략을 「명예로운 휴전성립」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미국은 5월31일 소련문제 전문가 케넌을 시켜 소련의 유엔대표 말리크에게 협상의사를 타진했다.이어 유엔사무총장 T 리는 6월1일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 따라 어떤 형태의 협상을 통해 한국문제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미 행정부의 주장을 반영한 성명을 내놓았다.「대략 38도선에 머무는 휴전이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회복한다면 유엔은 주목적을 달성할 것」이라는게 그 내용이었다. 그와 동시에 애치슨 장관도 맥아더 청문회를 통해 같은 견해를 공식으로 밝혔다.6월22일 미 국무부의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말리크에게 리의 호소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그 다음날 말리크도 마침내 유엔 라디오방송을 통해 휴전을 제의해왔다.이 제의에 대해 중공은 25일,북한은 27일 각각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이처럼 한국전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입장이 협상쪽으로 기울면서 한국정부는 범국민적인 휴전반대운동을 벌여나갔다.6월5일 국회가 휴전반대 결의를 표명하자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38도선 휴전반대 국민궐기대회」가 일어났다.특히 6월30일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원산항 앞바다에 정박한 덴마크 병원선에서 휴전회담을 열자는 제의가 나오자 변영태 외무부장관은 이날 즉각 5개항의 휴전조건 5개항을 발표하는 것으로 맞섰다. ○남한선 휴전에 반대 한국정부의 이 휴전조건은 중공군의 완전철수와 북한군의 무장해제,유엔이 북한공산당에 대한 제3국의 원조제공을 차단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사실상 휴전반대를 표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런 가운데 공산군측은 7월3일 회담개최에 동의한다는 회신을 보내왔다.공산군측은 회담장소를 원산대신 개성으로 바꿔 제의해왔다.유엔군측이 이를 받아들여 7월8일 개성의 연락장교단 예비회담을 열었다.그리고 7월10일 상오11시 개성시 고려동 내봉장에서 그리도 지루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예측하지 못한채 첫 회담에 들어갔다. 그러나 회담은 처음부터 암초에 걸렸다.전세가 불리했던 공산측은 현 상황에 관계없이 군사문제 일체를 전쟁전의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입장이었다.이에반해 유엔군은 군사적 문제만을 의제로 삼자는 제안을 내놓았다.공산측은 또 외국군 철수를 고집해와 5개항의 의제합의는 10차회담에서 겨우 이끌어냈다.그러나 군사분계선 설정을 놓고 공산군측은 종래 주장대로 38도선을,유엔군측은 쌍방 전투부대의 현 접촉선을 양보하지 않았다. 교착상태의 협상은 8월22일 공산측 대표 이상조가 38도선 안을 수정할 뜻을 비치면서 진전기미를 보이는듯 했다.그러나 공산측이 돌연 개성폭격 사건을 조작하는 통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유엔공군이 회담장소를 폭격했다는 북한측의 주장은 날조로 증명됐지만 결국 회담중단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10월말까지 대 공세에 나서 임진강 북쪽 연안∼역곡천∼중강리∼금성천변까지 장악했다.이로써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변경한다는데 공산측도 동의했다.10월25일 휴전회담이 재개됐다.11월27일 마침내 대치중인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결정하는 소위 11·27합의가 이루어졌다.그러나 이 합의는 30일 이내에 휴전협정 조인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이는 미국의 의도였지만 조기 종전노력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개성 폭격사건 날조 그 다음 협상에서 공산군측의 유엔군 인원교체와 장비보충 금지,비행장 복구문제는 줄곧 협상을 가로 막았다.유엔군 수뇌부는 공산군의 공군력 증강을 막기위해 북한의 비행장 복구에 대해 크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해가 바뀌었다.그래도 유엔군 인원교체와 장비보충 문제는 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유엔군측은 미국정부의 훈령을 받아들여 결국 비행장 복구문제를 공산측에 양보했다.인원교체에 대한 공산측의 완강한 반대와 송환 거부 포로문제 처리에 막힌 회담은 결국 그해 9월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그로부터 10개월후인 1953년 7월10일 판문점에서 재개된 휴전회담은 종전과는 달리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7월19일 양측은 그동안 대립했던 포로송환 문제등 모든 부분에서 최종 합의를 보았다.곧이어 20일 양측 참모장교들은 휴전협정 세부사항과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긋기 시작했다. 마침내 27일 상오10시 판문점에서는 두 개의 서류가 서명을 기다리고 있었다.휴전협정과 비무장지대에서 중립국송환위원회로 송환 거부포로의 인도를 인정하는 간단한 보조협정이 그것이었다.유엔군측 수석대표 해리슨과 북한의 남일은 휴전 조인식 내내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두 사람은 각각 9부의 서류사본에 서명한후 교환하고 상대방의 사본에 서명했다.조인식이 끝난 것은 10시12분이었는데 불과 12분이 걸렸다.그러나 양쪽의 포병사격과 해·공군 작전은 휴전 발효시간인 그날밤 10시까지 계속됐다. ◎미 방첨대 보고서/미·북한,휴전회담중 비밀교섭/박진목 등 3명 남북한 오가며 「특수 업무」/“전쟁 수행 능력 한계” 북한측 입장 전해와 한국전쟁을 일단 끝낸 휴전회담에도 미국과 북한의 비밀교섭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정황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으로부터 입수한 문서군(Record Group) 319상자 방첩대(CIC)보고서에서 확인됐다. 1951년 12월7일에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박진목(당시 39세)등 3명이 등장한다.박은 본래 공산주의자였으나 보도연맹에 가입,무사히 자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이후 안동전선에 참가했다.그이후 춘천에서 이탈,대구에서 머물다 어떤 경로를 통해 월북했다. 그리고 나서 북한에서 돌아온 박은 CIC요원을 만나 북한은 남침전쟁을 통해 조기승리를 예상했지만 유엔의 참전은 의외라는 북한의 입장을 전해주었다.또 중공군이 개입해도 더이상 전쟁수행 능력이 없다는 사실과 중공군 개입은 국제공산주의의 역량을 과시한 것이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1951년 1월 공산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하자 박은 서울시인민위원회로 이승엽을 찾아가 만났다.박은 그해 7월28일 미군의 배려로 다시 월북했다가 40일만에 남하해 미군 CIC로 연행되어 간첩활동에 대한 신문을 받는 것으로 돼있다.미군 CIC는 박의 효용성을 인정,1천만원을 제공하고자 했고,또 다른 인물 최익환(당시 56세)은 미 국무부 요청으로 평양에서 업무를 수행중이라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어떻든 이 CIC 보고서는 박진목의 말 그대로 북한이 도발한 전쟁이 더이상 수행할 수 없었다는 당시의 현실을 명백히 드러낸 것이다.이는 한국전쟁의 휴전을 재촉한 요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 부전유는 누구/한국전­중월전 참전한 야전통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 임명된 부전유 대장은 40년대 중국대륙내의 「해방전쟁」,한국전쟁 및 중국­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작전·지휘에 정통한 야전통. 그는 지난 92년 11월 조선족 출신 조남기대장 후임으로 군비·물자 보급을 책임지는 해방군 총후근부장직을 맡아왔었다. 산서성 출신인 그는 등소평과 강택민 국가주석의 신임이 두터우나 군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상곤·양백빙 형제의 사조직인 양가장의 견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공 외무 유엔외교 결산 문답 “북 인권은 인류 보편적 문제”

    ◎안보리 진출 30개국과 충분히 협의/APEC 무역자유화 각국 사정 고려돼야 유엔을 방문중인 공로명 외무장관은 3일 하오(현지시간)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유엔총회 방문성과와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다음은 공장관과의 일문일답. ­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공식 거론했는데. ▲남북경제협력등 전반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하지만 인류 보편적 사안인 인권문제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안보리 이사국 진출교섭등 유엔외교를 평가한다면. ▲기본틀은 지난 3월 코펜하겐 사회개발정상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스리랑카측과 정상회담을 통해 아시아 단일후보로서 우리가 입후보할 수있는 발판을 마련한데 있었다.이번 방문중 30개국 외무장관과 가진 개별회담과 17회 공식만찬등을 통해 우리의 안보리 진출문제에 대해 충분히 협의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의 역내 무역자유화 이행에 대한 의견은. ▲지난해 APEC 정상회의에서 규정한 무역및 투자 자유화 이행에 대한 기본원칙에는 동의하나 회원국의 특수한 사정이 고려돼야 한다.우리를 비롯한 중국등이 관심을 갖는 미묘한 분야인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의 방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구체적인 날짜를 놓고 협의중이며 조만간 양국이 공동발표하게 될 것이다. ­유엔개혁 논의에 대한 입장은. ▲유엔 개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지역대표권을 잘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유연하고 신축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다른 나라와 합의를 이뤄나가도록 하겠다.유엔의 재정문제 해결에도 역할을 찾아나가겠다. ­비동맹국가와 많이 접촉했는데. ▲북한이 조만간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비동맹정상회의를 통해 한반도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관련국에 의한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추진중이다.북한은 특히 「관련국」이라는 애매한 용어로써 유엔 참전 16개국및 중국이 포함되는 것처럼 인식시키며 순진한 비동맹국을 현혹시키고 있다.물론 북한의 결의안 채택 추진은 국제여론을 업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로 나가기 위한 것이다. ­북한 결의안 채택가능성은.▲현재로선 가능성이 별로 없다.이번 유엔외교에서 특히 비동맹국가 외무장관등과 집중적으로 회담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아세안국가를 포함,여러 비동맹회원국은 물론 중국도 북한측 제안에 반대하고 있다.
  • 해외필진 미 클라크 CSIS 일본 실장(인터뷰)

    ◎“미는 북한에 강하게 나가라”/미국 이익 추구보다 대한지원 앞서야/한반도 안정 동맹관계 강화가 “주춧돌”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등 한반도정책에서 워싱턴의 이익보다는 한국을 지원한다는 큰 차원으로 접근해야하며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서는 좀더 강하게 나가야한다고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역임했던 윌리엄 클라크 국제전략연구소(CSIS) 일본실장(서울신문지구촌칼럼 필자)이 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냉전체제붕괴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속의 바람직한 한·미관계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중국은 정치·군사 뿐만아니라 경제면에서도 강대국이 되고 있으며 일본도 이미 지역강대국이 되었다.러시아도 한반도와 극동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더욱이 한국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이러한 복잡한 주변 정세속에서의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는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한다.미국만이 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할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아시아에 정치적 이익을 갖고 있는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세력균형 유지를 도와야한다.아시아정세는 급변하고 있지만 그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양국은 확신을 갖고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보다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해야한다. ­한·미관계에서도 경제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무역마찰이 심화될 것으로 보는가. ▲양국관계에서 경제문제가 점점 중시되는 것은 사실이며 무역마찰도 나타나고 있다.그러나 경제마찰문제는 양국이 충분히 해결할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냉전이후 경제문제가 더욱 중시되고 있지만 경제는 복잡한 양국관계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는다.한·미관계는 전체적으로 보아야하며 정치·안보·군사적 동맹관계도 여전히 중요하다. ­미·북한 관계는 어떤가.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좀더 강해져야한다.북한은 취약한 입장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조금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북한은 벼랑끝외교를 펼치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고 과거에 쓰던 수법을 되풀이하고 있다.북한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며 미국도 북한과의 관계에서 한국을 지원한다는 큰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한반도문제에서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남북한이다.미국은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기업들의 북한투자 전망은. ▲미국기업들은 북한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그러나 서둘러 평양으로 몰려갈 것으로는 생각지않는다.북한의 경제개방 실험은 중국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경제특구는 대규모 시장을 배경으로 대만·홍콩을 비롯,많은 나라 기업들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물론 북한의 경제개방실험이 반드시 비관적이라는 말은 아니다.북한이 하기에 달려 있다.하지만 중국보다는 환경이 나쁘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수 있다고 보는가. ▲한국은 경제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고 생각한다.한국은 물론 베트남 참전의 경험이 있지만 군사적 역할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중국은 지역강국으로 재등장했다.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과의 충돌은 없겠는가. ▲대만문제등을 둘러싸고 양국간의 긴장은 있지만 심각하게 대립할 것으로는 보지않는다.중국이 영토야욕을 버리고 투명성을 높이면 미국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다.미국은 중국을 봉쇄시킬 것이 아니라 국제무대로 끌어들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여야 한다.중국을 봉쇄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군사대국이 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지않다.일본은 이미 지역강국이지만 군사적이 아니라 경제적 강대국이다. ­아시아로부터의 미군철수를 상상할수 있는가. ▲상상할수 있다.그러나 아시아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정책이다.
  • 김 대통령 “평화 힘있을때만 가능”/「국군의 날」 행사 이모저모

    ◎백선엽 장군 등 군원로 6명 사열 받아/6·25참정 용사·유가족에 격려의 박수 건군 47주년 국군의 날인 1일 충남 계룡대에서 기념식이 개최된 것과 함께 한강변에서도 「장년국군」을 축하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상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계룡대에서 거행된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기념행사를 참관했다. 김대통령이 이날 치사 도중 6·25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잠시 일어나 주십시오』라고 주문한 뒤 『여러분과 전우,그리고 그 가족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에 조국은 언제나 경의를 표할 것이며 역사는 여러분을 참다운 영웅으로 기록할 것』이라며 박수를 보내자 1만2천여 참석자도 일제히 박수로 이들을 격려하기도. 행사 참석자들은 김대통령이 내년도 국방예산을 크게 늘렸다고 밝힌 대목에서 큰 박수로 호응하는 등 치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섯차례 박수를 쳤다.김대통령은 이어 열린 경축연회에서도 『진실한 평화는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면서 대북 경계심을 늦추지 말도록 당부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총재도 소속의원과 함께 처음으로 국군의 날 행사에 참석했으며,김대통령은 경축연회 헤드테이블에서 김대중총재와 만나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교환했다. 김총재는 이날 행사가 끝난 뒤 『국방에는 여야가 따로 없으며 앞으로 군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설훈국민회의 부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역전의 용사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백선엽장군 등 군원로 6명이 사열차에 분승,김대통령과 함께 국군장병을 사열했다. 기념식은 국군의장대의 식전행사,기념식,열병,분열 및 공중분열,폐회식 순으로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특히 6명의 여성대원을 포함한 특전사요원 2백50명이 1천m상공에서 집단강하를 실시했으며 70명의 고공전담반 요원은 3천m상공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려 오색연막을 내뿜으며 다이아몬드·계단모양의 각종 대형을 이루는 묘기를 선보인 뒤 1천m상공에서 낙하산을 펴고 주행사장에 내려앉아 갈채를 받았다. ◎김 대통령 국군의 날 치사 요지 오늘의 우리 국군은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세계평화에도 기여하는 막강한 「장년국군」으로 성장했습니다.이제는 분단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군의 사명은 통일의 기반이 되는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지켜내는 일입니다. 북한은 「세계사적인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성의와 노력을 외면하고 있습니다.지금 북한은 식량과 에너지부족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북한의 이러한 어려움은 가까운 장래에 해소되기 어려운 실정이며 그 앞날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2∼3년은 국가안보면에서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우리 군은 북한의 모든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어떤 사태에도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확고한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군은 이제 21세기와 통일시대를 내다보며 세계사의 큰 흐름을 따라 힘차게 전진해야 합니다.우리 군의 역량을 모든 분야에서 세계일류수준으로 정예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군의 「세계화」일 것입니다. 군의 정예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철저한 군인정신을 확립해야 합니다.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려는 불퇴전의 의지와 드높은 사기,그리고 추상같은 기강이야말로 군인정신의 정수일 것입니다.군인은 이제 첨단의 무기는 물론 최신 정보체계도 원활히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군은 그동안 각 분야에 걸쳐 엄청난 변화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개혁을 통해 우리 국군은 본연의 임무인 국토방위에 전념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의 군대」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군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목숨을 바쳐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강한 국군을 원한다면 장병이 투철한 사명감과 드높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온 국민이 군을 존중하고 뒷받침해야 합니다.
  • 오늘 국군의 날/계룡대서 47주년 행사… 1만3천명 참가

    1일은 47번째 맞는 국군의 날. 육·해·공군은 이날 대전 계룡대에서 김영삼대통령 및 3부요인을 비롯한 정부와 군관계자·참전용사·시민·장병등 1만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7주년 국군의 날 행사를 가진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치러지는 올해 행사는 육·해군 정예부대와 공군 최신예 F­16전투기등이 참가,장년으로 성장한 막강 국군의 위용을 대내외에 과시하게 된다. 특히 올해 행사에는 역전의 용사들에 대한 예우로 군 원로 1천여명이 처음으로 초청되며,군 원로 가운데 장태완재향군인회장 등 6명은 김영삼대통령과 함께 오픈카에 분승,국군장병을 사열한다.
  • 아 코모로 쿠데타 20년동안 17차례

    ◎「반란전문」 불 용병 드나르 수차례 기도/인구 53만명… 70년간 불 통치 75년 독립 28일 쿠데타가 발생한 아프리카 동안도양의 섬나라 코모로는 지난 75년 독립이래 이번까지 무려 17차례에 걸친 쿠데타로 점철된 인구 53만의 소국.흥미로운 것은 코모로의 복잡한 쿠데타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이번 쿠데타의 주역인 용병출신의 프랑스인 봅 드나르(66)가 있었다는 점이다. 1천년의 역사를 가진 코모로는 1904년 프랑스가 군도 전체를 합병한 이래 70여년간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아오다 75년 7월 그랑드 코모로,아주앙,모엘리 등 3개 섬이 일방적인 독립을 선포하고 공화국을 수립했다.독립이후 아흐메드 압달라가 새 공화국 대통령이 됐으나 한달후 용병 드나르의 지원을 받은 알리 소일리 총리에 의해 축출됐다.그러나 78년에는 거꾸로 드나르가 소일리를 타도하고 압달라를 권좌에 복귀시킨채 10여년간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했다. 드나르는 다시 89년에 자신이 지휘하던 대통령 경호대를 동원,압달라 대통령을 살해하고 권좌에 올랐으나 프랑스군의 개입으로 3주만에 쫓겨나고 당시 대법원장 모하메드 사이드 조하르가 90년 3월 대통령에 선출됐다.이후 92년 9월에도 일단의 군인들이 조하르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를 감행했다가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이번에 또한번의 쿠데타를 성공시킨 드나르는 50년대 프랑스 해군 특공대 출신으로 인도차이나반도와 알제리 등지에서 복무한뒤 모로코의 프랑스 식민지 경찰에 투신하면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었다.드나르는 이후 자이르 내전과 콩고·북예멘·비아프라·앙골라 전투 등에 용병으로 참전하는 등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분쟁과 쿠데타전문가(?)로 깊숙히 간여해 왔다. 드나르가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기도한 정확한 의도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모로니의 교도소를 공격해 지난 92년 쿠데타 실패로 체포된 측근들을 모두 풀어준 것으로 보아 자신의 추종세력이 수감돼 있는 것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 63조원 새해 예산/신규 사업

    ◎노인 복지타운 5곳·장례식장 10개 건립/46억원 투입,치매전문병원 3개 설립/65세 이상 의보수혜 일수 3백65일로/전문번역가 양성… 한국문학 세계화 부축/회화교육위한 외국어 교원연수원 설립/고엽제 후유의증환자에 매월 수당 지급 내년 예산엔 색다른 정책사업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한국문학 세계화지원 금고나 고엽제 후유의증(응증)수당 신설,장례예식장·치매전문 요양병원·노인종합복지타운·외국어교원연수원 신설이 눈길을 끈다. ◇한국문학 지원 한국문학의 세계적 발전기틀을 마련,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자는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의 착상에서 비롯됐다. 문학수준은 높은 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번역이 이뤄지지 못해 우리 문학의 진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못했던 게 문학계 현실이다.산발적인 번역작업이 있었지만 출판업계의 영세성때문에 한국 문학작품의 해외 번역·출판은 고작 3백여종에 불과하다. 정부는 따라서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을 선정,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번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국문학 세계화 지원금고」를 신설해 2001년까지 총 1백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내년에 우선 10억원을 들여 전문 번역인의 양성과 해외 번역 및 출판·홍보를 지원할 생각이다.이 금고의 설치를 계기로 전문적인 해외 번역을 통해 우리문학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림으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날을 기대해 볼 만하게 됐다. ◇고엽제 환자 지원 월남전에 참전했던 고엽제 환자는 후유증과 후유의증 환자로 나뉜다.고엽제 후유증은 말초신경병 등 10가지의 질병이 있고,이 중 말초신경병이 83% 가량 된다.후유증 환자는 현재 6백여명 가량.「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이군인과 같이 연금과 취업알선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는 보훈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만 받을 뿐 연금이나 수당지급은 않고 있다.당뇨와 고혈압 등에 시달리는 이들 환자는 약 1천6백50여명에 이른다.그러나 내년부터 이들에도 「후유의증 수당」이 신설돼,월 20만원씩 지급된다.국가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생활보조 수당의 성격이다. 박세직 의원 등 국회의원 63명이후유의증 환자에게도 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진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올 정기국회에 통과할 예정으로 있다.월남전 참전용사들의 힘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오는 98년까지 계획으로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에 들어가 역학조사 결과 후유의증이 고엽제와 관련된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수당지급은 중단된다.98년까지 한시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장례예식장 내년에 장례예식장이 선보인다.가정의례에 관한 제도개선을 위해 내년에 국고로 57억원(사업비의 50%)을 지원,전국에 10개소의 장례예식장을 세우기로 했다. 주거문화가 과거의 단독주택 위주에서 아파트같은 공동 주택으로 바뀜에 따라 장례관습이 달라져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시범사업으로 하며 운영은 민간이 하게 된다.현행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도 장례예식장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는 있으나 병원영안실이 하고 있다.일본 등의 선진국은 이미 장례예식장을 도입,운영한 지 오래다.혼례식장처럼 일정한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설립지역은 보건복지부가 나중에 정한다.10개소 중 2∼3개소는 서울에 설치될 전망이다. ◇치매요양병원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현재 전국에는 10만여명의 치매노인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이 중 10% 안팎은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이다. 치매환자는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그러나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불치병으로 분류돼 요양시설에 가야 한다.정부는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치매노인 환자도 급증할 것으로 보고 내년에 46억원을 들여 3개소에 치매노인 전문요양병원을 짓기로 했다.사업비의 50%를 국고에서 보조한다. 시·도립 병원형태로 운영하며 기존 의료법인에 건립 및 운영을 위탁할 수도 있다.공중 보건의와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배치된다.정부는 치매노인 환자들이 전문 요양병원을 많이 이용할 것에 대비,현재 2백10일인 65세 이상 노인의 의료보험 수혜일수를 내년부터 3백65일로 늘려,연중 의보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노인 복지타운 현재 대전시 동구에서 시범사업으로 건설 중인 「실버토피아」에서 노인종합복지타운의 도입을 착상했다.내년에 국고로 54억원(사업비의 50%)을 보조,전국 5개 곳에 노인종합복지타운을 세울 계획이다. 시·도에서 운영하며 이발소나 목욕탕 등의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소외감을 덜어주기 위해 레저스포츠 시설 등 각종 휴식시설과 목욕탕·이발소도 갖춘다. ◇외국어 연수원 외국어 교사들에게 정통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연수원으로 내년에 25억원을 들여 청주 한국교원대부지 2천1백45평에 설립된다.외국어 교사들이 회화보다는 문법위주로 배워 회화교육에 비중이 더해지는 최근 추세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어 교사들이 유창한 회화실력을 갖추도록 전국 중·고교에서 선발,4∼5개월간 합숙 회화교육을 시키겠다는 구상이다.운영성과를 보아 국민학교 교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이곳에서는 외국인 강사와 24시간 숙식하며,말도 외국어로만 해야 한다. 지난 해부터 운용하고 있는 원어민교사(네이티브 스피커)를 내년에 59명에서 2백명으로늘려 이 중 20여명을 연수원에 배치할 계획이다.미국의 중동부 등 표준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집중 선발된 원어민 교사들은 지난 해부터 국내에 들어와 시·군 교육청에서 외국어 교사들을 지도하고 있다.
  • 미 「힉컬슨 문서」를 보고/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원

    ◎포로처리 싸고 첨예대립 입증/한국측 일방적 북 포로 석방에 미 당황/반공포로 중립국 송환위 이양도 검토 한국전쟁 시기 북한군 포로관계 문서의 소개는 한국전쟁 연구의 실증성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서울신문 발굴 관련자료들에 의하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북한군 포로문제는 중요한 관심사항이었다.1950년 7월4일 맥아더 사령관은 북한당국에 자신의 부대에 의해 포획된 북한인들은 『문명국가에 의해 인식되고 있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대우받을 것』을 보증하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그는 포로가 된 그의 부대원들에게도 같은 대우를 기대하는 경고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1950∼19 51년간의 문서에는 북한군 포로명단,포로중 장교명단,포로사망자 명단등을 비롯해 북한군 포로에 대한 심문,중공군 참전 이후 포획한 중공군 포로 처리문제,1.4후퇴 이후 북한군 전쟁포로의 철수문제등이 주요하게 다루어졌다.아울러 공산군이 행한 포로잔학행위에 대한 항의문서,전쟁포로들이 유엔사무총장에 보내는 탄원서,전쟁포로 석방문제등까지 언급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시기 북한군과 중공군측도 미군과 유엔이 포로를 학대했다고 유엔에 항의했다.이에대해 미군측은 미군포로를 위한 국제 적십자활동의 강화,북한 점령지역내 한·미간의 항공수송협정,한일간의 어업분쟁,미군·유엔군 포로에 대한 구조,원호문제등을 검토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또한 공산군측의 포로학대 비난에 강력히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유엔군 포로수용소에 대한 중립국의 검사방안을 신중히 검토했고 이에따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1952년 하반기가 되면서 포로문제는 정전협정과 맞물려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1952년 10월1일 발생한 제주도의 중공군 포로문제를 필두로 거제도포로수용소 폭동은 이들에 대한 처벌여부를 둘러싸고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정전협상이 궤도에 오르면서 전쟁포로의 송환,교환문제가 검토되기 시작해서 포로 전반에 대한 송환,교환문제가 제기되었다. 1953년 초반부터 판문점에서 벌어진 정전협상에서는 이들 포로에 대한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중국 공산측과 미국·유엔군측이 날카롭게 대립했음을 문서들은 보여준다.한편 정전협상의 고비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한 일방적 북한포로 석방으로 미국측이 혼비백산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이와함께 반공포로를 중립국 송환위원회에 넘기는 문제도 적극 검토되었으며 특히 인도가 중립국 감시단에 참가하는 문제가 심도 깊게 논의되었다. 결국 이같이 한국전쟁기 북한군 포로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대립은 전쟁이 전선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포로수용소와 포로문제를 둘러싼 선전전,심리전의 일환으로도 이용되었다는 것이 포로관계 문서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세대교체 꼭 실현” 집권당 의지 확고

    ◎김윤환 민자당 대표의 정국 구상/생활개혁 강화… 민심잡기 전력투구/차기대권 둘러싼 당내 불협화 제거 「허주(김윤환 민자당 대표위원의 아호)체제」는 민자당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까.지금 김대표에게 맡겨진 역할은 민자당의 「인기회복」과 「총선승리」로 요약된다.그는 15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 초청간담회에서 취임후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와 구상을 조목조목 밝혔다. 그는 세대교체·지역감정해소·개혁추진·개헌·당의 역할·대권후보문제·총선공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모두 언급했다.특히 그가 이날 언급한 세대교체문제 등 대부분이 김영삼 대통령이 그동안 밝힌 정국운영구상들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집권당의 향후 행보를 짐작케 한다. 먼저 그는 『이 나라 정치의 일부분을 책임맡은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세대교체와 지역감정 해소라는 정치적 과제를 위해 모든 정치역량을 다할 각오』라고 강조했다.그는 『지역을 볼모삼아 지역 패권주의를 부추겨 대권욕심을 키우기 위해 세대교체를 가로막고 있다면 참다운 정치지도자의 덕목이 아니다』고 김대중 새정치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를 겨냥했다. 특히 그는 『세대교체를 위해 정치적 희생이 필요하다면 이를 수용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해 주목됐다.이는 다소 충격적인 방법,또는 자신을 포함해 일부의 희생을 수반하는 세대교체라도 해야 한다는 집권당의 강력한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대표는 최근 일부 당내 인사들의 발언으로 부상한 대권후보 가시화 시기및 방법,지역대표성 문제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그는 대통령의 임기가 2년반이나 남은 시점에서 후계구도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 차기대권 문제로 인한 당내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을 차단했다.다만 대권후보는 총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후보군이 가시화된 뒤 대통령의 임기만료 직전에 당내경선을 통해 확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이는 그가 계속 주장해 왔던 「신주체론」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그러나 당내 일부에서는 총선승리를 위해서는 지역대표성을 가진 인사들의 대권도전 가능성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의견도제기되고 있어 김대표가 당을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 논란이 제기될 소지도 있다. 김대표는 총선을 앞둔 민자당의 노선과 관련해서는 『보수·중산층세력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은 민자당 뿐』이라고 강조했다.이는 중산층의 민심이반과 지역감정의 부활이라는 지난 6·27선거의 패배원인을 자인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생활개혁」쪽에 무게를 둠으로써 민심의 지지를 회복하겠다는 총선에 임하는 민자당의 기본노선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날 김대표의 연설은 세대교체와 지역감정해소,지속적인 생활개혁으로 민심을 끌어들인다는 집권당의 양대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 된다. ◎김윤환 민자당대표 일문일답/당정 토론­조정 거쳐야 민주적 정책 탄생/「세대교체」 위해서라면 정치적 희생 감수 민자당의 김윤환 대표위원은 15일 한국신문편집인 협회 초청 조찬간담회에 참석,기조연설을 한 뒤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97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의 두 김씨를 이길만한 대권주자가민자당에서 나올 수 있나. ▲내년 총선을 계기로 특정인이 아니라 대권후보가 될만한 사람들이 민자당에 있다는 가시적 판단은 이루어 질 것이다.대권후보는 당내경선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그러나 경선은 임기말에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져야 한다.임기를 2년반이나 남겨둔 상황에서는 정치와 국가운영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세법개정을 놓고 당정 사이에 혼선이 있는 것 같은 데. ▲작금의 당정간 논란은 오히려 바람직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정부가 입안하고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당에 안기는 권위주의적 스타일은 없어져야 한다.당정간에 정책을 놓고 이견이 있고 토론을 통해 조정되는 과정을 거쳐야 오히려 정책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당도 산다. ­정부는 대북정책에 실패해 6·25세대의 지지를 잃었는 데. ▲나도 6·25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정부가 너무 저자세로,특히 쌀 문제로 농민들을 화나게 만든 것을 잘 안다.북한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과,북한체제를 보완하고 민족동질성을 확보해 가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이있다.어느 정도 양쪽 다 고려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수재를 입은 북한을 다시 지원하는 문제는 북한 당국이 정식 지원요청을 하지 않는 한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정서다. ­총선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깨끗한 새인물 위주로 공천할 생각은. ▲현실과 이상을 잘 조화시켜 나갈 때 안정된 정치가 이루어진다.우리도 깨끗한 사람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 정책결정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는 데. ▲앞으로 분명히 시정될 것이다.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30분전에 통보받는 그런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5공말 청와대비서실장을 지내는 등 흠결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권력을 휘두르기보다는 정치를 만들어왔다.어떤 자리에 있었느냐 보다는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내각제 개헌 가능성은. ▲김대중총재도 새정치국민회의의 정강정책에 대통령중심제를 명기한 상황이다.헌법개정논의는 다음 대선 직전에 각당의 후계구도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모르지만 현재는 바람직스럽지 않다. ­김대표가 주장하는 세대교체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또 김대표 자신은 세대교체의 대상이 아닌가.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3김정치가 30년,40년동안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정치발전이나 지역감정해소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김대통령 정권이 탄생된 만큼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이제 바람직스럽지 않다.세대교체를 위해 정치적 희생이 필요하다면 이를 수용할 각오가 돼 있다. ­대권후보경쟁에 참여할 의사는. ▲지역을 배경으로 대권에 도전할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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