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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베트남/김 대통령­도 무오이 회담 의미

    ◎경협바탕 정치적 협력관계 구축/기술­풍부한 자원 교류… 개발경험 진수/안보리 진출·북개방 협력 약속 큰 성과 김영삼 대통령과 도 무오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12일 정상회담은 한­베트남 관계가 과거의 적대관계를 완전히 청산,새로운 협력관계로 돌입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월남전이라는 냉전 시대의 구원을 간직하기 보다는 경제 발전을 위해 두나라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이날 열린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통해 집중적으로 논의된 사안도 역시 경제협력 분야였다.한­베트남 양국은 지난 92년 수교이래 무역규모가 엄청나게 증가했고,우리측의 투자도 계속 늘고 있다.지난해말을 기준으로 우리는 베트남에 1백건에 8억8천만달러를 투자,제4의 투자국이 됐다.또 지난해 수출 10억2천7백만 달러,수입 1억1천4백만 달러로 베트남의 세번째 교역상대국이 되었다. 이날 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베트남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에 한국기업들이 참여하기를 희망했고,도 무오이 서기장은 베트남의 경제개발에 한국이적극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트남은 우리를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고,우리나라도 오는 7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하는 베트남의 지리적 요건과 풍부한 자원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양국의 경제협력관계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물론 양국의 관계발전이 경제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도 무오이 서기장의 방한과 양국 정상회담은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두 나라가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당국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정상은 폐쇄적이고,동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상호협력하기로 했다. 또 김대통령은 우리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으며,우리나라도 베트남이 각종 국제기구등의 진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함께 이날 정상회담은 개혁을 지향하는 양국 정상간의 우정을 다지는 자리도 됐다.김대통령은 또 베트남의 「도이 모이(쇄신)」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으며,도 무오이서기장은 한국 문민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정책의 성공을 기원했다. 수교이후 한­베트남 관계가 급속하게 진전된데는 베트남의 실권자인 도 무오이 서기장의 우리나라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우리측도 그런 점을 감안,도 무오이 서기장이 공식적인 국가원수가 아닌데도 이에 상응하는 의전적 예우를 했다.도 무오이 서기장은 우리가 월남전에 참가한 64년부터 73년까지 상무부 장관,건설부 장관,부수상등을 역임,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그 점도 우리나라와의 관계개선에 순작용을 했다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노혁명자의 간곡한 투자 요청/도 무오이 서기장 서울 행보/“전쟁만 했지 국가메커니즘 못갖춰”/“기댈곳 한국뿐” 채산보장을 약속 12일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도 무오이 베트남공산당서기장은 올해 78세다.19살에 공산당에 입당한 이래 그의 이름 도 무오이(10차례의 탈출)가 말해주듯 「조국해방전선」에서 평생을 보낸 인물이다. 이 노혁명가가 청와대 회담에서 「평화시대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이야기하며 간곡한 세일즈 활동을 펴 우리측 관계자들을 감동시켰다.그는 베트남이 중국과 1천년,프랑스와 1백년에 걸쳐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치렀다는데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그가 이러한 독립투쟁을 이야기한 것은 한국과의 역사적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우리는 여러가지면에서 비슷하다』 고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혁명가.그의 입에서 감동적인 연설이 나왔다.『우리는 통일을 이뤘다.그러나 우리는 전쟁만 했고 평화시대에 필요한 국가 메커니즘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평화시대에는 주변국과 새로운 관계,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그는 이어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을 들어 『한국과 베트남간에 최근세에 들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것은 전쟁의 메커니즘이었다』고 말하고 『두 나라가 이제는 평화시대의 새로운 체제아래서 과거를 덮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한국이 필요하다고 매달리다시피 했다. 『한국이 아세안과 갖고 있는 관계처럼 우리와도 그렇게 지내자』면서 『우리의 국제화,경제개발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그는 특히 『우리에게는 전략적으로 제철·조선분야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한국기업이 이분야를 도와줄 수 있는 최적격』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중국남부·캄보디아까지를 포함하면 베트남에의 투자는 결국 3억인구의 거대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된다고 베트남에의 인식전환을 요청하기도 했다.한국기업이 투자하면 채산을 맞출 수 있도록 국가차원의 지원을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한국은 베트남에 네번째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나라.그러나 앞의 세나라는 대만·싱가포르·홍콩등 모두 중국계이고 투자도 서비스업에 치우쳐 있다.도 무오이서기장은 『한국만이 베트남의 제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감사해했다.그는 도로·통신분야에 장기저리 차관을 주고,민간공동위를 구성해 인적접촉을 강화하며 베트남의 풍부한 인력을 산업연수생으로 많이 받아달라고 열거하기도 했다. 노혁명가의 간곡하고 진지한 세일즈에 김대통령은 『베트남의 경제개발에 지속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도 무오이서기장의 발언요지는 「악연도 인연」이니 한국이 베트남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 항일투사들의 유택(두만강 7백리:7)

    ◎나철·김교헌·서일 선생 묘 새 단장/강양안 마을마다 혁명열사비 우뚝 솟아/한·중수교후 관심 높아져… 모국이장 한창 연길시 사수에서 북쪽 골짜기로 20리가량 올라가노라면 금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이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소나무숲이 나오는데 그안에 유달리 깨끗이 가꾼 묘소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묘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누구도 그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왔으며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길이 없다.다만 숨을 거둘 당시 19살이라는 것과 조선족 항일독립군 젊은 전사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서 연세가 높은 이상헌(79)노인은 그 무명의 젊은 전사가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정황을 소상히 기억했다. 『꼭 쉰 일곱해전 일입네다.뒷산에서 드문이 총소리가 들려오더니만 일본놈들과 자위단들이 어린애 같이 앳된 새파란 청년을 끌고 마을로 들어왔디요.그 놈들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내다 보는 앞에서 청년을 신문합데다.이름을 물으니까 「항일독립군」이라고만 기래요.그 날 왜놈 장교의 군도에 목이 잘려 죽고 말았디요.하도 기막히고 딱해서 유체를 마을 사람들이 묻어주었댔습네다』 ○무명열사 묘지는 쓸쓸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 양지 바른 언덕위에는 혁명열사비가 세워졌지만 산 언덕 공동묘지에 임자 없이 쓸쓸히 있는 독립투사들의 묘지는 풍우의 시달림에 자취를 잃었거나 훼손되어 가고 있다.용정시 삼합진 안미대골로 얼마간 들어 가다가 화선 누비골에 있는 묘지앞에는 돌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고 한다.비석에는 김병덕 지묘라고 씌어있었다.부근 마을 사람들은 독립군 대장의 묘라고 했다.똑같은 항일투사의 묘지이다.하지만 계급투쟁 세월에 그 누군들 감히 돌볼 수가 있었으랴.몇해전 김병덕의 묘지는 파엎어졌고 대리석 비석도 도난을 당했다.오소리가 묘지에 굴을 뚫고 보금자리를 꾸민 것을 발견한 부근의 사람이 묘를 헤치고 오소리를 잡아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열 항일열사들의 시신은 일찍 북한으로 이장되었다.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때 친선을 다졌던 터이라 이장이 쉬워 1950년대말에서 60년대 사이에 시신이라도 두만강을 건넜다.이에 비해 한국에 가까운 연고를 둔 항일열사들은 상대적으로 대접이 소홀했다.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항일유적이나 열사들의 묘소가 큰 수모를 겪었다.한중수교가 이루어지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오늘날은 사정이 달라져 항일열사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그 넋이라도 살아서 가장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을 열사가 있다면 나철,김교헌,서일 선생일 것이다.한국 대종교의 3종사로,또 항일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묘소는 화룡시 삼도구 청호촌에 있다.지금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가 항일역사유적지로 지정한데다 한국의 대종교가 묘역을 정화했기 때문에 제법 볼품이 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청산리전투를 총지휘 이 묘역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패거리와 추종자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겪었다.비석을 모두 내동댕이 쳐서 청호촌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 댓돌로 쓸 정도였다.문화혁명이 가시고 뜻있는 사람들이 묘비석을 찾아내 세웠지만 김교헌선생의 묘비는 끝내 못찾았다.그래서 몇해전에 묘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대종교는 독립군조직 서로군정서를 만드는데 주역을 담당했고 서안선생은 그 총재로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였다. 지금은 일본인들까지 유골을 찾으려 두만강변의 연변땅을 방문하고 있다.물론 침략자로 두만강을 건넜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다.얼마전에 한 일본 여인이 용정시 백금향으로 와서 자기의 오빠 묘를 찾았다.묘지 자리를 상세히 그린 지도까지 들고 온 일본 여인을 마을 노인들이 안내했다.묘가 있었다는 장소는 본래 일본 삼림경찰의 묘역이었다.1940년 홍기하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은 일본경찰은 둘 뿐이었다는데 목숨을 살려 평정대 마을까지 이르렀다가 그중 하나가 병으로 죽어 그곳에 묘를 썼던 것이다.그런데 봉분이 사라져서 어방으로 묘자리가 짐작은 가도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독립군 김덕형의사는 웅진,나진 등 두만강 연안의 조선을 다니며 군자금을 모았던 사람이다.1921년 경술년 토벌 때 어느날 저녁 군자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흥에 있는 집으로 들어 왔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포위에 걸려희생되었다.그가 죽은 후 식구들은 군자금을 독립군에 전달할 수 없었다.많은 액수의 군자금은 그 집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다.김덕형의 아들 두 형제는 시름없이 공부를 하였다.광복이 나고 1947년 토지개혁을 하게 되자 생활이 유족했던 그 일가는 청산을 당해 러시아제 금장표 재봉틀마저 빼앗겼다.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던 재봉틀은 얼마전에 고장이 나서 고철로 팔아버렸다.그집 큰 아들은 북한에 들어가 죽고 작은 아들 김성록은 지금 한국에 산다.6·26전쟁 때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북한에 온 김성록은 중국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북흥의 조선족 친구가 만난 일도 있다.그는 한국군 대좌(대령)군함(계급장)을 달고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보훈처에서는 연변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안화춘 선생의 도움으로 중국내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이장하고 있다.안화춘 선생은 갖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이 땅을 메주 밟듯 하고 다닌다.이번 두만강 답사길에서 연변 도처에서 희생된 선열들의 자취를 잡을 수 있었다.조창렬노인이 들려준 경신년 대토벌 당시 상황도 그 한토막이다. ○선열들 발자취 곳곳에 부암동에서 독립군 한창준과 이씨가 체포되어 불에 타 죽었댔습니다.시체를 감장하려니 누가 누구인지 가릴 수가 없었디요.일제 놈들은 의병대장 최덕균과 남상윤(남풍수로 불림)선생도 모진 고문을 했다고 기래요.눈에다가 고춧물을 부어 넣고 신문을 했으니끼리 죽을 수 밖에….』 선열들의 비장한 최후는 눈물 없이는 들을수 없었고 일제와 주구들의 만행은 의분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가 흔히 북간도라고 부르는 독립운동의 무대 연변은 이렇듯 많은 항일투쟁의 사연을 안고 있다.나는 옛 용정 대성중학교(현재 용정시 제2중학교)앞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새겨진 시 한구절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무수한 선열들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시련이 아닐 수 없다.
  • 포레스트 검프(임춘웅 칼럼)

    미국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다시 화제가 되고있다. 이 영화가 지난 28일 발표된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주연남우상 등 무려 6개부문을 휩쓸었기 때문이다.한 영화가 권위를 가진 이 영화상을,그것도 한꺼번에 여럿받게되면 영화팬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렇긴해도 「포레스트 검프」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한 인간이 살아온 역정이 2시간 20여분에 걸쳐 잔잔히 펼쳐지는 뛰어난 서정성이나 다큐멘터리와 영화이야기를 절묘하게 접합시킨 영상기법도 좋다.그러나 이 영화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바보 주인공 검프의 인간상이다. 검프의 IQ75는 보통 어린이들이 다 들어가는 국민학교에 들어갈수 없는 수준의 지능이다.그러나 검프는 어머니의 후원으로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대학까지 마치게 된다.대학에서는 미식축구선수로 활약했고 졸업해서는 월남전에 참전해 전쟁영웅이 된다.탁구의 미국대표선수가 돼 북경에서 「핑퐁외교」에 일조하기도 한다.제대해서는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둔다.뭐든지 열심히 하고 뭐든지 해낸다.그러니까 검프는 바보가 아니다.다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바보로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가 작년에 미국에서 개봉되자 금방 화제가 됐었다.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작년 말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2백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대단한 인기라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검프를 모방한 인형,검프식 광고가 판을 치고 있다.만화영화계까지 검프같이 바보스런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으면 장사가 되질 않는다고 비명이다. 검프의 마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한때 미국에는 「람보」열풍이 불었었다.강인한 체구로 마구 죽이고 마구 해치우는 「람보」는 월남에서 패배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상처받은 미국민들에게 「강력한 미국」에의 자극과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검프바람은 「람보」에 대한 역작용이란 분석도 있다.아둔하고 바보스럽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검프가 미국사람들에게 하나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정직하고 성실했던 지난날의 전통적인 미국사회에 대한 동경이란 해석이다. 황량해진 인간관계,힘과 실력만이 말하는 오늘의 미국사회에서 검프는 하나의 청량제 같은 것 인지도 모른다.사랑하는 여자가 방탕해도,멀리 떠나가도 감싸주고 다시 받아들이는 검프의 사랑이 「바보처럼 순수하게」느껴지게 하는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다.검프는 아둔한 사람도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검프가 많은 사회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검프도 한 인간으로서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다.검프를 사랑하는 세계도 아름답다.
  • 참전용사가 쓴 월남전 소설 “화제”

    ◎남태호 「콘툼을 향하여」/신복균 「푸른 태양」/콘툼…/전사자 처리 영현병이 본 미의 패인/…태양/임무 마치고 귀국하는 병사 회고담 월남전을 소재로 한 두편의 소설이 나란히 출간됐다.남태호씨의 「콘툼을 향하여」(한솔미디어 펴냄)와 신복균씨의 「푸른 태양」(삶과꿈 펴냄)이 그것이다.각각 월남전 참전경험을 토대로 한 신진작가들의 작품으로 지금까지의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소재의 다양함을 더해주고 있다. 남태호씨는 파월 백마부대에 전사자를 처리하는 영현병으로 참가했으며 신복균씨는 파월 청룡부대 해병대원으로 참가했던 참전 용사 출신의 작가.소속이 서로 달랐던만큼 두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월남전의 모습은 사뭇 대조적이다.남태호씨의 「콘툼을 향하여」가 정적이고 사색적이라면 신복균씨의 「푸른 태양」은 동적이고 즉물적인 편이다. 「콘툼을 향하여」는 월남전을 양자역학으로 풀어보이는,다분히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작품.월남에서 영현병으로 근무하는 임성도병장은 미국이 월남전에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투입하면서도베트콩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풀어간다.그는 자연스럽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대표되는 양자역학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뉴턴의 역학이 보증하는 확실성의 원리에 따르면 군사력이 월등한 미국이 당연히 베트콩을 이겨야 하는데,그렇지 못한것은 월남전의 이면에 불확실성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같은 지적 방황을 통해 임병장은 양자세계의 기본입자들이 입자와 파동으로서 이중적으로 존재하듯 자연의 밑바닥에는 육체와 정신이 공존하며,우주는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고 상호보완적인 완전한 하나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모든 사물은 우주적 피륙으로 짜여진 하나의 전체적 관계로서 존재한다.따라서 어떤 한 형태나 현상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은 자연의 도에 어긋나며 이제까지의 역사가 그랬듯 불가피하게 충동과 대결을 초래하게 된다.인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인과법칙과 이원론에 의한 역사의 암석논리로부터 물처럼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유수논리로 전환해야 한다』 이같은깨달음에 따라 임병장은 근무지를 이탈,콘툼이라는 지역에서 열리는 평화회의에 참석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마치고 병사하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맺고 있다. 한편 「푸른 태양」은 자전적인 체험에 바탕해 파월 전투병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주인공 김희진이병이 파월특수훈련을 받고 월남에 와 전투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엮었다. 베트남 전장 최전방의 살육전,전사보상금을 노린 병사의 자살,미군지역에서 벌이는 한국군의 대리전,장병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갈등과 하극상,미군기지 안팎의 갖가지 부정,한국병사의 옛 애인과의 비련과 베트남 여자와의 짧은 사랑 등 월남전의 실상을 보여주는 많은 에피소드가 소개된다.월남전에 관한한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지만 일기체 서간체 대화체 보고문형식 등으로 문체에 다양한 변화를 주어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소설이다.
  • 마사이족/초지따라 생활… 국경없는 유목민(아프리카 기행:3)

    ◎케냐·탄자니아∼나트론호 동서로 이어진 삶터/일부다처제… 같은 연령끼리는 아내도 빌려줘/13∼17세 할례식… 전사는 무한대의 성적자유 누려 국경없는 자유인들 마사이족의 유목지대 초원은 케냐의 나쿠루로부터 탄자니아에 이르는 남위 6도까지 펼쳐진다.동쪽으로는 케냐의 차보국립공원과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산과 연결되어 있다.서쪽으로는 나트론호 주변을 포함해서 마냐라호로 이어진 이 지역은 풀이나 관목들밖에 자라지 않는 불모지이기 때문에 소와 염소의 유목지로 이용된다.케냐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종족들중에서도 특히 이들 마사이족에 관심을 갖게 된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 정책엔 무관심 첫째,이들 마사이족은 케냐정부가 벌이고 있는 복지정책이든 규제정책이든간에 전연 개의치 않고 그들 종족이 지켜오던 오랜 전통생활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이다.이들은 국경개념조차 없어서 그것이 케냐의 땅이든 탄자니아의 땅이든 아랑곳않고 다만 가축들의 목초지를 따라 이동할 뿐이다.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고삐풀린 망아지에 비결될만하다.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바로 코 앞에 현대식 빌딩이 들어선다 할지라도 관심을 갖거나 혹은 거부감을 나타내지도 않는다.너는 너의 일이 있고 나는 내 일이 있다는 식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마사이는 보통 소떼나 염소들과 함께 초원으로 내보내져 생활하다가 13세부터 17세 사이에 마을장로들 모임의 결정에 따라 할례의 의식이 치러진다.할례를 치르는 날 할례를 받을 소년은 검은 가죽으로 사추리만 가린채 자기 집 앞에서 할례를 베풀 장로를 기다린다.장로가 당도하면 흙을 이겨 만든 회색물감을 소년의 눈 주위에 칠해준다.그리고 몸을 가린 가죽을 벗기고 찬물을 붓는다.소가죽이 땅에 깔리고 야생 올리브가지가 소가죽 가녁에 꽂힌다.소년이 소가죽 위에 눕게 되면 곧장 할례가 시작되는데,이때 소년은 미동도 않고 고통을 참아야 한다.다만 자신의 고통을 대신하여 땅을 치며 울부짖는 가족들의 모습을 침묵으로 바라보는 것만 허용될 뿐이다.할례가 끝나면 소의 정맥에서 뽑아낸 생혈에 우유를 타서 마신다.할례의식을 마친 소년 마사이는 바로 후보전사가 되는데,이들 후보전사의 집단을 마냐타(MANYATTA)라 한다. ○소 생혈에 우유마셔 마냐타 집단의 구성원이 되면 이들은 평생의 형제로서 항상 또래들과 어울려 다녀야 하고,혼자 잠자는 것도 혼자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된다.이 마냐타를 구성할 때도 의식이 있다.검은 소를 잡아다가 결혼한 여인의 치마를 둘러씌워 질식시키고 그 고기를 구워서 마을사람들이 나눠 먹는데,이때 고기를 굽던 모닥불은 절대 끄지 않고 불이 남아있는 나뭇가지 하나씩을 각 마냐타의 집으로 가져가서 평생동안 그 불씨가 꺼지지 않게 조처한다.마사이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두 눈이 항상 충혈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협소한 집에 밤낮없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생활하기 때문이다.이들 모닥불은 물론 전통적으로 그들의 거처에 접근하려는 맹수들을 멀리 물리치는 역할도 해왔다. 이들은 그로부터 머리장식에 쓸 새를 잡거나 동물을 사냥하면서 용맹과 인내를 키운다.마사이들에겐 이때가 가장 호전적이고 위험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이들은 자신의 용맹을 시험하고자 할뿐더러 그것을 부족들에게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기 때문이다.각자 자신의 방패에 특별한 무늬나 표시를 하기도 하고 그 용맹이나 공로가 인정되면 그것을 상징하는 무늬를 방패에 그려넣을 수 있도록 허용된다. 마냐타를 구성한 또래들은 스스로의 용맹을 뽐내며 고참전사들을 찾아가서 이제 전사들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전사들은 후배들의 용기에 감탄해서 물러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노에서 한밤중에 마냐타의 캠프를 습격하여 혼쭐을 빼기도 한다. ○전사승진식 「유노토」 그들이 치르는 또 하나의 의식으로는 유노토(EUNOTO)가 있다.예비전사들이 진정한 전사로 승진하는 의식이다.이 의식에는 죽은 소의 목에 칼집을 내어 흘러나오는 피를 전사와 예비전사들이 돌아가며 직접 입을 대고 마신다.그리고 예비전사들은 그 생고기를 한 입씩 뜯어먹는다.유노토의식을 치르고 나면 마침내 전사들은 마사이사회의 중심인물로 자리잡는다.그들은 소부족간의 물건 거래,치안과 생존을 위한 노동과 수확의 분배 등을 분쟁없이 이끌어 가고 해결해야할 책임을 물려받는다.소는 전통적으로 그들 종족만의 독점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이 소떼를 소유하고 있으면 그것을 약탈해오는 것도 전사들의 의무이다.전사들은 미혼여성에 대해서도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성적자유를 누린다.뿐만아니라 어느 가정에 가서나 우유나 쇠고기를 요구할 수 있는 특권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성습관은 상당히 자유로워서 같은 나이집단끼리라면 근친상간이 아닌 한 여자와 여러 남자의 관계가 허용되고 같은 연령집단에 속한 남자들끼리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다.일부다처제로 결혼한 신랑은 신부의 집에 상당량의 가축을 지불해야 한다.마사이들은 쇠기름을 비롯한 많은 동물성기름을 일생동안 섭취하는데도 불구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미국성인들의 평균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이러한 뛰어난 심장기능이 바로 마사이 전사들의 강건한 신체를 뒷받침 해주는 것 같다. ○곳곳에 버펄로 무리 아프리카 특유의 가시나무숲과 초원이 교차하는 미로 같은 먼 길을 따라 마사이마라지역에 있는한 마을에 당도했다.도중에 가뭄에 시달리는 목초지 위로 이동하는 수천마리의 누우(ENU)떼를 보았다.또 숲속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백여마리를 헤아리는 버펄로(BUFFALO)의 무리를 보았다.이들의 천적은 사자라고 하지만 성질이 거칠기 때문에 여러마리의 사자가 공격할 대상은 무리로부터 이탈한 단 한마리에 그친다.그 버펄로무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불과 백여미터 곁에 마사이족의 마을이 있었다.안내자가 그들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절차와 흥정을 벌이는 동안 어느새 마을 안에서 여러 아이들이 몰려나와 환영의 노래를 부르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 “김대통령이 EU­APEC 채널 계속맡아주오”(김대통령 순방여로)

    ◎상테 위장,“한국상품 덤핑규제 개선” 약속 김영삼 대통령은 벨기에 방문 사흘째인 14일 유럽연합(EU)의 상테 집행위원장과 회담을 갖는 것을 끝으로 유럽순방 공식일정을 마치고 이날 귀국길에 올랐다. 김 대통령은 이에 앞서 수행기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지난 2일부터 시작된 유럽순방의 성과를 평가했고 이어 브뤼셀의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헌화했다. ▷EU집행위원장◁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상테EU집행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한·EU 사이의 경제협력확대 방안등에 대해 논의. EU본부 12층 집행위원장실에서 열린 이날 회담은 우리측에서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 등 수행원들과 EU측에서 브리탕 부위원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약 1시간동안 진행. 김 대통령은 EU본부에 도착,현관에서 상테 위원장의 영접을 받고 악수와 인사를 나누고 EU기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집행위원장실로 자리를 옮겨 회담을 시작. 회담에서 김 대통령은 한·EU 관계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희망하면서 특히 한국상품에 대한 EU측의 반덤핑규제조치의남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 상테 위원장은 반덤핑절차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고 아·태지역과 유럽의 협력확대를 위해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EU 사이의 대화채널을 유지해 줄 것을 김 대통령에게 요청,APEC에서 김 대통령의 위상을 활용하는 모습. 김대통령과 상테위원장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EU 기본협력협정과 공동정치선언의 조기체결이 필요함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로 합의하고 회담을 종료. ▷참전기념비◁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공식수행원및 수행경제인들과 함께 드그로브 브뤼셀시장과 마에스 국내군사령관의 안내로 브뤼셀시내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헌화하고 참전용사들을 격려. 이날 기념비 앞에는 한국전 참전용사회의 우웨라르 회장등 1백50여명이 나와 행사를 지켜봤는데 김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면서 『어느 전투에 참여했느냐』 『한국에 다시 와본 일이 있느냐』고 관심을 표명. 또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벨기에 제3대대의 후예들이 나와 도열했는데 이 부대는 아직도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참전용사들은 이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부터 벨기에전역에서 출발해 현지에 도착. 김 대통령은 드그로브 브뤼셀시장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 ▷총리만찬◁ ○…13일 저녁 브뤼셀의 에그몽궁에서 열린 드안총리 주최 환영만찬은 두나라 인사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15분동안 진행. 김 대통령 내외는 에그몽궁에 도착,드안총리 내외의 영접을 받고 칵테일장에서 기념촬영. 드안총리는 만찬사에서 한·벨기에 두나라 관계가 모든 분야에서 착실히 발전돼 온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고 『두나라가 더욱 관계를 증진해 아시아와 유럽의 거리를 좁히자』고 역설.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벨기에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첫번째로 우리나라를 승인했으며 한국전 때 벨기에의 젊은이들이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다』고 상기시키고 각별한 우호관계를 강조. 김대통령은 이어 『두나라는 끊임 없는 외세의 도전 속에서도 자유와 독립을 굳건히 지켜낸 역사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 ▷손여사◁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13일 하오 브뤼셀 자유대학 의대부설 탁아소를 방문. 손 여사는 탁아소 입구에서 위트 자유대학총장 등 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은 뒤 탁아소장으로부터 탁아소의 조직 운영 설립이념등에 대한 설명을 메모를 하면서 듣고 『설립이념과 운영방법에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피력.
  • “한­영 경협 새경제 질서 형성에 기여”(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42살 영 야당당수 만나 「세대교체」 강조/상원의장 만찬 정·재계인사 50명 참석 김영삼 대통령은 영국방문 이틀째인 9일 야당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를 접견한 데 이어 웨스트민스터사원을 방문,헌화했으며 영국 산업연합회 초청으로 연설을 한 뒤 낮에는 런던시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김 대통령은 이날 저녁에는 존 메이저 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산업연합회 연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2세 국제회의센터에서 영국 통산부및 산업연합회(CBI)가 주관한 연설회에 참석. 김대통령은 영국 기업인대표 10여명을 접견한 뒤 연설회장으로 이동,한·영 두나라의 경제협력증진방안등에 관해 연설. 김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오랜 투쟁과정에서 영국의 민주주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그런 점에서 나의 이번 영국방문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 김대통령은 『유럽연합(EU)을 주도하는 영국과 무역·금융·운송등의 분야에서 아·태지역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협력은 두나라의 경제발전은 물론 새로운 세계경제질서형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 이날 연설회장에는 최종현 전경련회장과 정세영 현대그룹회장,김만제포철회장등 수행기업인들과 현지주재 기업인등을 비롯,우리측과 거래하는 영국기업인등 6백여명이 참석,대성황. 청와대측은 이날 행사에 3백명의 영국기업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참석을 희망하는 영국기업인들이 쇄도,CBI측이 2백여명 이상을 추가 참석자로 요청해 김 대통령의 영문연설문 3백부를 더 준비. 김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고드윈 CBI의장은 『더 타임스지가 특집기사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은 활활 타고 있는 경제호랑이』라면서 『한국과의 상호투자가 증진되기를 기대한다』고 희망. ▷런던시장 오찬◁ ○…모닝코트 차림의 김영삼 대통령과 한복을 입은 손명순 여사는 이날 낮 런던시장 공관에서 공식수행원및 수행경제인들과 함께 크리스토퍼 월포드시장 내외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 김 대통령 내외는 월포드시장의 안내로 1층에서방명록에 서명한 뒤 2층 응접실로 가 메케이 클레시펀 상원의장 내외에게 우리측 수행원들을 소개하고 환담. 김 대통령 내외는 이어 영국식 「느린 걸음」으로 도열병을 통과,오찬장으로 이동했으며 참석자들도 「느린 박수」로 환영. 김 대통령은 답사에서 『한국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을 때 영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귀중한 목숨을 바쳤다』고 말하고 『런던시민과 서울시민,영국국민과 한국국민이 서로 손을 맞잡고 협력할 때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게 빛날 것』이라고 강조. ▷웨스트민스터사원◁ ○…연설회 참석에 앞서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사원에 헌화. 김대통령은 한·영 두나라 국기기수와 한국전참전협회기수,영국의 전통적인 백파이퍼악대등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사원에 도착,마이클 매인 사원장의 영접을 받은 뒤 헌화대로 이동. 사원장의 환영사가 끝난 뒤 김대통령은 주영대사관 무관의 보좌로 헌화를 하고 목례. 이어 김대통령은 손여사와 함께 매인 사원장의 안내로 사원내부를 관람하고 방명록에 서명했으며매인 사원장은 김대통령에게 사원안내책자를 증정. ▷노동당 당수 접견◁ ○…김 대통령은 런던의 숙소인 클라리지호텔에서 야당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를 접견하고 30분동안 환담. 김 대통령은 42세인 블레어당수에게 『30대로 보인다.이렇게 젊은 줄 몰랐다』고 인사를 건넸고 블레어당수는 『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오늘 아침 리젠트공원에서 조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화답. 김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블레어당수를 가리키며 『여러분 이렇게 세대교체가 된 것을 알겠지요』라고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대한 강한 집념을 표출. 이에 블레어 당수는 『노동당도 세대교체작업을 하고 있다.하나 노동당당수가 되면 빨리 늙는다』고 말해 폭소. 블레어 당수는 『내 선거구에 삼성전자에서 대규모투자를 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실업률이 높았는데 참으로 잘됐다』고 감사를 표시했으며 김 대통령은 『고용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 김 대통령이 『보수당에 비해 노동당 인기가 배 이상 높은 것을 알고 있다.다음 선거에 집권할 자신이 있느냐』고 묻자 『자신 있다.그러나 여론은 언제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고 따라서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우리는 정책의 변화,특히 경제정책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답변. ▷상원의장 만찬◁ ○…8일 저녁 런던의 랭커스터하우스에서 열린 매케이 상원의장내외 초청 만찬은 2시간15분동안 진행. 김대통령은 부인 손여사와 함께 매케이 상원의장의 영접을 받고 중앙홀에서 상원의장내외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2층 칵테일장으로 가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눈 뒤 만찬장으로 이동. 랭커스터하우스는 1800년대에 지어진 3층건물로 루벤스와 반 다이크의 그림을 비롯해 고가의 예술품으로 내부를 장식. 만찬에는 우리측 공식수행원들과 영국측 정계·재계·문화계인사등 모두 50여명의 제한된 인사만 참석. ▷손여사◁ ○…대통령부인 손여사는 이날 상오 런던의 「도로시 가드너 데이」탁아소를 방문,놀이방과 장난감도서관 등을 돌아보고 어린이들에게 곰인형 한개씩을 선물. 손여사는 이어 숙소인 클라리지호텔에서 런던한인학교및 북부런던한인학교 교장과 교사10여명을 접견,격려.
  • 김 대통령/불 대혁명사상 문민한국서 만개(김대통령 유럽순방 여로)

    ◎OECD 총장엔 “국제적 기여 확대” 약속/오찬에 불 기업인 2백명… 대한투자 관심 김영삼 대통령은 프랑스 방문 이틀째인 3일(이하 현지시간)현지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을 수여받고 파리시청에서 열린 공식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한·불 경영인들과 오찬을 나누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사무총장 일행을 접견했고 현지교민들과의 리셉션에 참석한 뒤 공식수행원들을 위해 만찬을 베풀었다. ○문민정부의 밑거름 ▷소르본 대학◁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취득.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 도착,푸수 총장과 투봉 문화장관 등의 영접을 받은뒤 학위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약 1시간동안 진행된 학위수여식에 참석. 파리대학학구 교육총감인 장드로 마살루여사는 학위수여 이유로 김대통령의 지적 자주성,국가에 대한 봉사,공명정대한 정신,대화와 교류에 대한 믿음등의 덕목을 열거. 푸수 총장은 학위수여연설에서『김 대통령은 한국에서 권위주의적 사고에 대한 저항을 대표해 왔으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이끌고 정치현실에서 이를 실천해 왔다』고 소개. 푸수총장은 이어 『서울대를 졸업하고 두해 뒤에 한국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 국회의원,4번의 야당총재를 기록한 김대통령은 바로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였다』고 설명하고 『김대통령은 철학도들의 이상국가실현을 몸소 구현하고 있으며 우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최초의 국가원수』라고 강조. 김 대통령은 학위수락연설을 통해 『지난 68년 소르본대학을 중심으로 울려퍼진 자유의 목소리가 우리에게도 큰 힘을 주었으며 나 자신도 오랜 투쟁끝에 마침내 정통성있는 민주정부를 세웠다』면서 프랑스의 자유정신이 문민정부출범에 하나의 밑거름이 됐음을 강조.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프랑스 상원 뒷 정원인 룩생부르그공원에서 조깅을 마치고 개선문 무명용사묘로 가 헌화한뒤 재향군인회 회장단 및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사를 교환. ○환경·교통 협력 제시 ▷파리시청◁ ○…김 대통령은 소르본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파리시청에 도착,공식 환영행사에 참석. 자크 시락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제 서울과 부산간 TGV건설을 계기로 프랑스의 또다른 면모도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에 있으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한민족이 열망하는 통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 김 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파리는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요람이 되었고 파리에서 싹튼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문민정부출범과 더불어 만개하고 있다』고 피력. 김 대통령은 특히 『한·프랑스 두나라사이의 우의와 협력증진에 발맞추어 양국 수도간에도 우호협력관계가 발전하고 있음을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문화말고도 파리와 서울사이에는 상호협력할 분야가 많다』면서 그 예로 환경 및 교통문제를 제시. ○지원정책 질문 쇄도 ▷오찬◁ ○…김 대통령은 이날 낮 파리시내 파비용 가브리엘에서 열린 프랑스경영인연합회 주최 오찬에 참석,『한국정부는 프랑스기업의 한국진출을 비롯,한국기업과의 협력,그리고 제3국 공동진출을 원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강조. 김 대통령은 또 『프랑스기업이 에너지 통신 우주항공 환경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 분야에서 한국기업과 보다 적극적인 산업·기술협력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부연. 이날 오찬모임에는 장쿠르 갈리냐니 한·프랑스경영자협회장을 비롯한 2백여명의 프랑스측 기업인이 참석했으며 우리측에서는 최종현전경련회장과 김석원한·불경협위원장등 프랑스투자기업인 35명이 참석. 김 대통령이 오찬에 참석하는 동안 부인 손명순여사는 미테랑 대통령부인 다니엘여사와 오찬을 나눈 뒤 루블박물관을 관람. ○한국가입 지원 약속 ▷OECD총장 면담◁ ○…오찬을 끝낸 김대통령은 영빈관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날 하오5시 장 클로드 페이유 OECD사무총장의 방문을 받고 30분 남짓 면담. 김 대통령은 먼저 『한국이 이제 교역량으로 세계 12위에 이르고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기여를 하기 위해 OECD에 가입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 회원국과의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 이에 페이유 총장은 이미 실무차원의 교섭을 통해 우리나라의 가입이 기정사실화된 듯 『한국의 OECD가입을 환영한다』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 ▷특파원 조찬◁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파리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을 겸해 간담회를 갖고 한불문제와 통일관등에 대해 설명. 김 대통령은 『미테랑 대통령은 생각보다 상당히 건강하더라』고 전날 미테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소감을 밝히고 『미테랑 대통령은 실무자선에서 그렇게 강경하게 나오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고문서 반환문제에 대통령선거 이후에도 연속성을 갖고 틀림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소개. 『그들이 생존전략상 가상적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 김 대통령은 이어 유학생들의 독립된 기숙사를 파리에 세워 유럽문화의 거점으로 만들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좋은 생각』이라고 긍정적인 반응.
  • 키스논쟁/영화 「침묵속의 봉사」(브로드웨이 “새바람”:7)

    ◎동성애자 진한 입맞춤이 문제로/강제퇴역 당한 여군대령의 실제 이야기/2월 NBC­TV방영… 외부서 삭제 압력/제작진,뮤지컬「거미여인 키스」들어 반발/“남자 동성애 얘기는 2년째 버젓이 공연” 브로드웨이에 밤이 깊어지면 40여개의 대형 브로드웨이극장과 3백여개의 오프 혹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소극장 무대의 막이 일제히 오른다.이 매일 오르는 막은 쉴새 없는 흐름이 되어 브로드웨이가 정체되지 않은 창조공간으로서 생명력을 갖는 원천이 되고 있다. ○공연 시간엔 거리 한산 메디슨 스퀘어파크에서 5번가와 해럴드 스퀘어에서 아메리카스 애브뉴(6번가)와 교차한 브로드웨이는 7번가와 만나는 43스트리트 일대에 타임스 스퀘어를 형성한다.반경 5백m도 못되는 이 일대는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중심지역으로 날이 저물면 몰려드는 인파로 시끌시끌 해지기 시작한다.그러나 막상 하오8시 극이 시작되면 10시30분까지의 두시간 반 동안은 현란한 네온만 남겨둔채 인적이 끊어진다. 이 브로드웨이에서 최근 입맞춤 논쟁이 한창이다.그것도 남녀간의 입맞춤이 아닌 여자끼리의 입맞춤과 남자끼리의 입맞춤에 대한 논쟁이어서 더욱 묘한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이 논쟁은 동성애자로 밝혀져 강제 전역당한 여군대령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한 「침묵속의 봉사­ 마거릿 캐머마이어 스토리」를 지난 2월초 NBC텔레비전이 방영하면서부터 불붙기 시작했다.이 영화에 나오는 캐머마이어대령(글렌 크로스)과 상대역인 화가 다이앤(주디 데이비스)의 진한 키스장면이 광고주들의 광고 보이콧 위협 등 갖은 삭제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제기됐을때 이 영화의 제작진들은 대뜸 뮤지컬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를 예로 들며 강력히 항의했다.남자끼리의 진한 키스는 물론 한 담요안에서의 정사 묘사까지 나오는 이 뮤지컬이 버젓이 2년째 히트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자들의 키스 장면이 문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뮤지컬은 아르헨티나 태생의 소설가 마누엘 퓌그가 1976년 발표한 소설을 극화한 것으로 극도의 공포정치로 매년 수만명이 재판도 없이 「사라지는」 중남미 독재정권치하의감방안 이라는 한계상황을 설정하여 전혀 이질적인 성격의 두 주인공이 극도의 공포감을 이겨나가며 상상속의 구세주인 거미여인으로부터 구원을 받게된다는 내용의 인간애를 바탕으로한 정치극이다. ○토니상 7개부문 석권 영화로도 상영됐으며 92년 런던에서 첫 뮤지컬무대에 올려졌던 이 작품은 93년 5월 브로드웨이 44스트리트에 있는 브로드허스트 극장에서 개막된후 그해의 토니상(영화의 아카데미상과 같이 브로드웨이 연극과 뮤지컬에 주는 상) 7개부문을 휩쓸 정도로 인기를 모았으며 롱런 채비를 차리고 있던차에 이번의 키스논쟁으로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극은 윗부분의 환기구와 아랫부분의 밥그릇이 드나드는 구멍을 제외하고는 육중한 철문으로 외부와 차단된 감방에 정치범 발렌틴(브리안 미첼)과 그로부터 정보를 빼내기 위해 보내진 잡범 몰리나(하워드 맥길린)가 함께 수감돼 있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모진 고문과 옆방의 비명소리,매일 수십명씩 죽어나가는 정치범 감옥의 질식할 듯한 상황에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발렌틴은 시름시름 앓으며 한마디의 말도 없이 조그만 책 한권에 의지해 지낸다.동성애자인 몰리나는 붉은 꽃무늬의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매일 면도를 하며 머리모양을 매만지는 등 여성적인 몸가짐으로 은근히 발렌틴을 유혹한다. 겉으로는 활기 있게 보이지만 몰리나 역시 두려움과 초조감에서 벗어나려 자신이 우상으로 생각해오던 여배우 오로라가 나오는 영화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아라비안 나이트」에서 하룻밤만 지나면 신부를 죽여버리는 샤플리 왕으로부터의 죽음을 면키 위해 매일밤 재미있는 얘기를 천날씩 들려주던 셰하라자데 왕비처럼 그는 매일같이 독백으로 영화얘기들을 해 나간다. 정치적 투쟁으로 살아온 발렌틴은 동성애자를 극도로 경멸하며 몰리나의 얘기는 물론 모습도 보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지낸다.그래도 몰리나의 얘기는 지속되고 영화속의 여주인공 오로라는 점차 거미여인(바세나 윌리엄스)이라는 구원의 화신으로 바뀌어 간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발렌틴은 점차 몰리나의 얘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그리고 마침내 몰리나를이해하고 자신도 거미여인의 구원을 기다리는 가운데 몰리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얼마후 몰리나는 출옥하고 발렌틴은 애인 마르타에게 비밀연락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몰리나는 마르타와 접선하려다 기관원들과 벌인 총격전에서 총에 맞아 잡힌다.그는 끝내 자신이 부탁받은 마르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밝히지 않은 채 숨을 거둔다.무대전체에 거미줄이 깔리고 그 가운데서 나온 거미여인과 몰리나의 키스가 길게 계속된다. 또다시 악독한 고문을 받은 발렌틴도 차가운 감옥에서 서서히 죽어간다.마침내 그에게도 거미여인의 구원의 손길이 뻗친다.결국 몰리나와 발렌틴이 함께 피안의 세계로 향하면서 막이 내린다. 뮤지컬 「카바레」,「쇼 보트」,「오페라의 유령」 등을 제작한 뮤지컬의 대가 해럴드 프린스 감독이 만든 이 극은 암울한 시대 분위기를 수많은 인물들이 군집한 배경화면에 실종자 가족들이 촛불과 사진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으로 처리했다. ○아들 넷 가진 이혼녀 은빛 쇠창살로 된 감옥은 무대에 7층높이의 감옥에 죄수들이 빽빽이 들어찬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감방과 취조실등 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가 하면 순식간에 남태평양의 해변으로 바뀌기도 하는 등 무대장치와 다양한 조명으로 내용전개에 활력을 주고 있다. 특히 무대 전체를 덮으며 나타나는 커다란 거미줄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쇠창살로 표현되는 독재정권의 탄압·감금에 대한 도피와 구원의 상징으로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한편 「침묵속의 봉사」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동성훈장까지 받은 간호장교 캐머마이어대령이 89년 시애틀에서 미방위군 간호장교 총사령관에 지원하면서 인터뷰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다가 강제퇴역을 당한 뒤 군당국과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서독 근무 때 탱크부대소속 장교와 결혼해 네아들까지 둔 이혼녀 캐머마이어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느끼게 된 것은 88년 7월.아들들과 오레곤의 한 해변으로 휴가갔다가 한 여류화가와 만나 과거 경험하지 못한 만족감을 느끼게 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현재 그 화가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가 강제퇴역에불복해 군당국을 미연방법원에 제소하여 법정투쟁이 벌어지면서 동성애자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그녀의 인권투쟁이 전미국의 빅뉴스로 등장했다.그녀는 지난해 6월 복직판결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군당국이 이에 불복,이 사건은 현재 상고심에 계류돼 있다. 이 영화는 칠레의 아옌데 독재정권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혼의 집」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글렌 크로스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제작하고 출연한 작품이다. 이번 영화가 예상외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당분간 브로드웨이의 동성간 키스논쟁도 지속될 전망이다.
  • 오진우는 누구/항일유격대 출신 혁명 1세대

    ◎세습체제 구축 「절대적 후원자」 25일 새벽 사망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북한 군부를 장악해 온 권력서열 2위의 핵심인물이다.그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 혁명 1세대로 김정일 후계체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절대적 후원자」였다. 오진우는 1917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을 만주 간도에서 보낸 그는 33년부터 김일성을 따라 항일 빨치산 투쟁에 나섰으며 옛 소련 보병학교와 육군대학에서 군사학을 배우기도 했다.6·25전쟁 때는 특수부대인 766유격부대장으로 참전했고 61년 당 중앙위원,6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올랐다.67년 3월에는 김정일이 박금철 등 갑산파를 숙청하는데 돌격대로 나서 대장승진과 함께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영전했다.오는 이때부터 책략가로서 김정일의 반대파 숙청에 앞장서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67년1월 군당 제4기4차 확대회의에서 민족보위상인 김창봉과 대남사업총책 허봉학·총참모장 최광 등 군수뇌부 대숙청을 진두지휘한 뒤 군참모장으로 승진했고 76년5월 인민무력부장 최현을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격상시키면서 인민무력부장을 맡았다.이후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20년이 넘게 자리를 유지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던 그는 김일성 사망후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특히 김일성 장례식에 김정일과 함께 나타남으로써 북한의 권력 승계작업이 그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지난해 7월 16일 평양 금수산의사당에서 거행된 김일성사망 1백일 중앙추모회에 참석했을 때 한쪽 다리를 저는등 부쩍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보였다.
  • 파 대표단 철수압력… 한·미의 강경대응 안팎

    ◎북의 정전체제 무력화 기도쐐기/“평화협정 논의 않겠다” 입장단호/6·25참전 16국과 대북압력 공조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유지하려는 한국과 미국,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북한 사이의 힘겨루기가 폴란드의 중립국감독위원회 철수문제를 둘러싸고 표면화되고 있다. 북한은 23일 『오는 28일까지 중감위 대표단 6명을 철수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간주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폴란드측에 전달했다.폴란드를 중감위에서 축출함으로써 정전체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제네바 합의로 관계정상화의 물꼬를 튼 미국과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협의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는 24일 각각 외무부대변인 명의의 논평과 유엔사측 성명을 통해 『북한의 정전체제 와해 책동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미국측은 아예 『절대 북한측과 평화협정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아버렸다.또 한·미 양국은 폴란드외에 스웨덴,스위스등 중감위 3국,중국,유럽연합(EU),그리고 한국전 참전 16개국을 통해 북한에 국제적 압력을 행사할태세다.경우에 따라서는 이 문제가 유엔차원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폴란드도 『유엔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며 중감위 대표단 고수의 뜻을 거듭 천명했다.이는 김영삼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폴란드대통령간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이 국제적인 압력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로 축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이는 북한이 바라고 있는 미국,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이 물리력을 동원하면 폴란드 대표단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어떤 형식이든 폴란드가 판문점에서 철수케 된다면 체코에 이어 북한측이 지명한 중감위 대표가 모두 철수하는 결과가 돼 이미 상당부분 기능이 축소된 정전체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타격을 입게된다.따라서 북한이 폴란드 대표단 축출을 감행한다면 제네바 북미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한·미 양측의 공통된 입장이다.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네바 합의의 기본 목적은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 한다면 미북합의의 성실한 이행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감위는 군사정전위원회와 함께 지난 53년 7월 유엔사·중국군·북한군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을 이행하는 기구이다.그러나 지난 92년 유엔사측이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미군에서 한국군측의 황원탁소장으로 바꾼뒤부터 북한측은 정전체제 무력화공작에 나섰다.93년 체코를 중감위에서 철수케 하고 자신들의 「군사정전위 조선인민공화국대표」를 「조선인민군대표부」로 바꿨다.또 군사정전위의 중국대표를 철수토록 요청,이를 관철시켰다.이들의 공세는 대미 평화협정체결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주한미군철수가 이뤄질때까지 계속될 것임은 불을 보듯 분명한 상황이다.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작가 제임스 월러 새소설 「보더 뮤직」

    ◎“중년의 사랑 노래한 한편의 서정시”/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의 이야기/NYT,“나이 든 성인용 소설 개척” 평 우리나라에서도 40대 여성을 독자층으로 끌어들여 베스트셀러가 됐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저자 로버트 제임스 월러가 최근 세번째 소설을 써냈다.제목은 「보더 뮤직」(Border music·미국 워너 북스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시더벤드에서 느린 왈츠를」등 두편의 소설을 관통한 중년의 낭만적 사랑은 이 소설에서도 여전하다.월러의 소설은 『줄거리가 단순하고 유치하다』는 일부의 혹평속에서도 최근 몇년동안의 초베스트셀러로 꼽힌다.이에 대해 미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소설가 로버트 플렁킷의 입을 빌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장르,「나이 든 성인용」(OLD ADULT)을 개척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동안 소설의 주류였던 「젊은 성인용」(YOUNG ADULT)은 세상에 나혼자라는 외로움속에서 무언가 확신이 필요한 불안한 청년들을 집중 공략한데 반해 월러의 소설은 삶이 허무하게 지나갔으며 나를 평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래전에 선택했던 것들­자식,결혼등에 꽁꽁 묶여 있다고 느끼는 위기의(?) 중년을 포섭한다. 물론 중년층을 다룬 책은 많지만 월러가 차별성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허무감에 대해 단호히 「노」라고 주장하는 것.월러는 그의 책을 통해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며 당신의 고통은 절대 침울한 것이 아니다』고 속삭인다.또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인생에 단한번뿐인 황홀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이 공식을 전형적으로 따르고 있는 「보더 뮤직」은 베트남전 참전 퇴역군인 텍사스 잭 카민의 이야기.이 책은 잭이 한 술집에서 손님으로부터 희롱당하고 있는 무희 린다 로보를 구해 함께 차를 타고 전전하다가 서부 텍사스에 있는 그의 목장에 도달하는 것이 기둥 줄거리다.여기다 늘 모험을 꿈꾸다가 결국 이를 이루고 마는 잭의 아저씨 본 로머의 이야기가 병렬된다.주인공 잭은 린다나 본 아저씨에게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즉 일정한 선을 넘나들도록 부추기는 촉매역할을 하지만 자신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이는 잭의 공포에 가득찬 베트남전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행동 또는 도덕적 갈등보다는 감정을 최우선으로 다루는 월러답게 「보더 뮤직」은 서정시와 노래를 연상케 하는 문장으로 감정의 파고를 극대화하고 있다.세파에 치인 중년들은 이 소설로 꽤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같다.
  • 태권도(한국문화 세계화의 길:5)

    ◎“재미있게” 규칙 개정·장비 개선 필요/동호인 세계 145개국 4천만명… 해마다 늘어/체계적 무도철학 정립,인성교육 도움돼야 무도철학의 신체적 발현인 태권도는 아름다움을 신체적 동작으로 추구하는 사물놀이,탈춤등 처럼 우리의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인이 낳은 문화 가운데 태권도처럼 세계적으로 보급된 문화는 없을 것이다.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조의 도자기나 현대의 자동차보다도,어쩌면 김치나 갈비보다도 온세계에 널리 퍼져 침투한 것이 태권도다.예컨대 격투기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도 무도체육관의 70%는 태권도가 차지하고 있고 그 비율은 지금도 상승하고 있단다』(일본의 스포츠전문잡지인 「스포츠 그래픽 넘버」의 88서울올림픽특집호).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회원국은 145개국이며 수련생은 약4천만명에 이르고 있다.앞으로도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가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수련생의 증가도 예상된다』(WTF이경명사무차장). 태권도가 동양의 다른 타격기(정격기)무도를 제치면서 세계화의 선두를 달리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마디로 무도의 합리적인 스포츠화에 가장 먼저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치러지고있는 태권도는 한국전통무예인 태권도가 아니라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다.안전성에 대한 배려,알기쉬운 승패,기타 경기를 성립시키는 갖가지 요소를 지금의 태권도는 모두 갖추고 있다』(일본의 격투기전문잡지 「격투기통신」88년12월호). 태권도의 뿌리는 태껸이다.그러나 현재의 태권도는 태껸과 크게 다르다. 『태껸이란 한마디로 한국무도의 근원이다.태권도도 태껸으로부터 태어났다.태껸을 현대적인 스포츠로 만든 것이 태권도다.태껸과 태권도의 차이는 태권도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견주어 태껸의 움직임은 곡선적인 것과 종합무도이기 때문에 태껸에는 기술에 제한이 없어 손에 의한 안면공격과 메치기기술도 있다는 점등이다』(정경화태껸지도자). 태권도는 73년5월에 WTF를 창설하고 눈부신 세계화를 이룬끝에 94년9월 파리에서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 02년 시드니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지구가족으로부터 가장 합리적인 동양의 타격기로 받아들여지도록 태권도를 스포츠화한 것이 세계화 달성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단 20년 남짓 사이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다음 두가지가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과 함께 전쟁터로 건너간 태권도가 다른 나라군대에게 실전무도로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으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월남전이후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온세계로 퍼져나갔다. 또 구 서독에 광부로 건너간 사람들 가운데에도 태권도지도자들이 적지않게 끼어있어 광부로서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귀국하지 않고 세계각국에 태권도체육관을 연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중남미를 향한 이민붐을 타고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남북미대륙으로 건너가 태권도보급에 힘썼다. 또하나는 외국어구사능력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비올림픽경기종목인 태권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IOC부위원장의 자리에 올라간 김운용WTF총재가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각 대륙의 스포츠통활체등을 설득해서 선수권대회 창설과 대륙단위종합체전의 정식종목으로 태권도를 채택하도록 만든 것도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까지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할 것이다. 태권도가 세계속에 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태권도를 보다 재미있는 경기로 만들기 위한 경기규칙개정과 장비의 개선등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태권도철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세계화 시키는 것이 앞으로 치러야할 제2단계 작업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될 것같다. 『유도의 세계화가 이루어지자 88서울올림픽에서 유도의 종주국인 일본은 금메달을 한개밖에 따지 못했다.어쩌면 이 결과야 말로 유도의 참된 세계화일는지도 모른다.태권도의 세계화도 언젠가는 유도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경기기술의 부단한 개발과 아울러 태권도철학의 이론적 체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태권도 철학이야말로 태권도를 세계속에 보다깊이 뿌리내리도록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민경호·UC버클리교수·초대 미국태권도협회회장). 『미국에서는 이제 학교선생님의 말씀도 잘 안듣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아직도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사람은 신부나 목사등의 성직자와 무도사범뿐이다.태권도지도자들에게도 경기기술뿐만아니라 수련생의 인간교육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많다』(메어리 추·재미 여성태권도지도자). 온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태권도수련을 통해 전인교육이 베풀어질때 태권도의 세계화는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태권도의 역사/태껸이 뿌리… 소림사권법보다 3백년 앞서 태권도의 기원은 삼국시대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역사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고구려 제10대 산상왕13년(209년)부터 수도였던 환도산성에 있는 무용총벽화에는 오늘날의 태권도와 같은 자유대련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 벽화는 우리 태권도의 역사가 중국의 소림사권법 보다도100년에서 300년이상 앞선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놀라운 역사적 자료다』(김광성,김경지 교수가 함께 지은 「한국태권도사」). 태권도의 원형은 태껸,수박,권법,수박희,수벽타,각저,날파람등 여러가지로 불렸으며 고구려의 청년무사집단인 선배,신라의 화랑등이 이 격투기를 익혔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군사를 뽑는 시험과목의 하나로 태권도겨루기가 실시됐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 옛기록에 보면 몸을 날려 상대방의 상투를 발로 스치는 비각술이라는 것도 있었다. 오늘날의 태권도가 가라데나 쿵후보다도 다채로운 발기술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역시 옛날부터의 전통이 살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제때 탄압을 받았던 태껸,혹은 수박은 광복후 여러유파의 도장이 난립했으나 61년에 통합을 이루어 대한태수도협회를 탄생시켰고 65년에 명칭을 대한태권도협회로 고쳤다. 태권도의 어원을 살펴보면 태는 발로 뛰고 차고 내려친다는 뜻을,권은 손 또는 주먹으로 친다는 뜻을,도는 철학적 태도 또는 생활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인이 말하는 태권도의 길◁ ◎새로운 경기기술 개발 노력을/김운용씨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태권도의 세계화는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열리는 올림픽의 조직위원회들이 그때마다 태권도를 선택해 주어야만 한다. 육상이나 수영등의 기본종목은 조직위원회가 빼버릴수 없지만 유도,복싱,태권도등은 조직위원회만 외면하면 그 올림픽에서는 빠지게 된다. 조직위원회가 종목을 선정할때 그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있다. 막대한 방영권료를 지불해서 올림픽을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해주고 있는 TV방송국이 바로 그것이다. 선수의 뇌에 손상을 준다는 우려와 판정을 둘러싼 말썽 때문에 늘 IOC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복싱이 그래도 올림픽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복싱을 선호하는 미국TV방송국이 바람막이 노릇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호구의 착용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어 있고 전자심판기의 등장으로 판정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또한컬러도복착용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는 유도와는 달리 일찍부터 호구의 컬러화로 TV쪽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다만 팬들과 TV의 관심을 보다 끌기위해 경기규칙과 장비의 개선,그리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스포츠와 무도 융화시켜야/박동근씨 미태권도협 기술분과위원장 『태권도는 스포츠에 앞서 하나의 정신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운동경기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는 안되고 무도,즉 정신적 측면을 적절하게 융화시켜야 합니다』 25년동안 미국에서 태권도보급을 위해 애써온 미국태권도협회(USTU) 기술분과위원장 박동근(55·뉴욕대·태권도9단)교수는 태권도 세계화의 요체를 정신력강조라면서 『가라데·쿵후 등 미국에 소개된 동양경기중 태권도만 그 주도권을 미국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한국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정신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내의 태권도가 지나치게 기술위주의 경기력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박교수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서는단순한 스포츠만이 아닌 무도로서의 체계화와 세계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룰과 폼의 정립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뮤지컬(브로드웨이 “새바람”:5)

    ◎「팬태스틱스」 35년째 공연 “세계최장”/작년 내한 「캐츠」도 13년째 막올려… 인기는 여전/감미로운 선율·치밀한 구성에 관객 갈채/서쪽 소호·그리니치 빌리지 지역 소극장 몰려/연기·노래·춤 어우러진 총체적 공연예술 워싱턴 스퀘어(광장)를 중심으로 한 그리니치 빌리지의 겨울 낮 동안은 매서운 추위와 수북한 눈덩이 속에서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하다.그러나 날이 저물면 밤의 열기로 거리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남쪽으로 커낼 스트리트에서 북쪽으로 14 스트리트에까지 이르는 브로드웨이 서쪽의 소호와 그리니치 빌리지는 수많은 화랑과 소극장·라이브 하우스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예술의 거리를 이룬다. ○예술기행의 필수 코스 브로드웨이의 예술은 뮤지컬로 대표된다.워싱턴 스퀘어 아래쪽 설리번 스트리트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팬태스틱스」는 브로드웨이 공연예술 기행의 필수 입문코스다. 『9월을 기억해 보세요,생명이 서서히 익어가는/9월을 기억해 보세요,풀은 파랗고 곡식은 누렇게 변해가는/9월을 기억해 보세요,당신이 부드럽고 가냘프던 때를/기억해 보세요,기억이 나거들랑 그대로 따르세요…/12월이 깊어지면 기억하기 좋을 거예요,상처가 없는 가슴은 공허 뿐인 것을/12월이 깊어지면 기억하기 좋을 거예요,우리를 익게 한 9월의 열기를/12월이 깊어지면 우리의 가슴은 기억해야 해요,그리고 따라야 해요』 이 뮤지컬의 극중 해설자인 로버트 스미스가 고음으로 부르는 주제곡 「기억해 보세요」(Try to Remember)의 감미로운 선율은 눈덮인 브로드웨이의 겨울에 한송이 눈꽃으로 피어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 한 모퉁이에서 19 60년 공연을 시작하여 세계 최장수 뮤지컬의 명성을 얻고 있는 이 극은 극장이 위치한 설리번 스트리트 도로표지판 위에 팬태스틱스 레인(골목)이라는 표지판을 하나 더 달게 할 정도로 기념비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시골의 한 마을에 사는 16살의 소녀와 20살 청년의 사랑이야기인 단순한 내용에 등장인물 8명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 외각을 뜻하며 이곳의 소극장들은 브로드웨이 극장들보다는 규모가 작고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경향이 있다)의 작은 극장에서 시작한 평범한 뮤지컬임에도 한 장소에서 한 세대를 뛰어넘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설리번 스트리트 플레이하우스는 10m도 채안되는 폭에 길이 50여m의 작은 극장.관람석은 둥그렇게 무대가 자리잡은 중앙부분에는 세줄 밖에 놓일 수 없고 양쪽 옆으로 놓인 7∼8줄을 포함,모두 1백52석에 불과하다.브로드웨이 대형극장의 오케스트라 역할은 무대 뒤와 옆에 놓인 피아노와 하프 한대가 맡는다. 세트는 네개의 쇠기둥이 달린 마루판과 소품을 꺼내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드나들기도 하는 커다란 검은 상자 두개와 의자 하나가 고작이다.좁은 무대에서의 공간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극에는 검은 옷에 마술사 모자를 쓴 무언배우(Mute)가 등장,유연한 몸짓으로 담장이 되기도,나무가 되기도 하며 눈도 뿌리고 배우들에게 소품을 공급해주는 등 바쁘게 오간다. 반대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들과 딸의 결합을 원하는 양측 아버지들이 연극을 꾸며 극적인 해피 엔딩의 결합을 가져오게 하는 이 극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캐루젤」과 「캐츠」의 주연으로 활동한 바 있는 소녀역의 리자 메이어와 「오클라호마」,「쇼보트」 등에서 명성을 날린 해설자역의 로버트 스미스 등으로부터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의 신인인 남자역의 조시 밀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의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제곡 40여명이 불러 이 극은 또 35년동안 공연해 오며 온갖 기록을 보유한 브로드웨이의 산 역사로 남아 있다.70여개국 1천여회의 외국 공연을 포함,모두 1만4천여회를 공연했으며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유명배우들 대부분이 이 극을 거쳐갔다.소년의 아버지 허클비로 나오는 65세의 고든 존스는 브로드웨이 최고령 배우이며 늙은 배우 헨리역의 브리안 헐은 한 극에서 14년 연속출연이라는 진기록을 지니고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한 9명의 역대 미국대통령이 관람한 기록도 갖고 있는 이 극은 특히 주제곡 「기억해 보세요」와 「곧 비가 내릴 거야」(Soon It’s Gonna Rain)를 에드 에임스,앤디 윌리엄스 등 40여명의 가수들이 레코드로 취입,공전의 히트를 시킨 기록도 갖고 있다.이 극장의 2층은 조그만 박물관으로 각종 사진자료들과 4달러에서 현재의 33달러에 이르기까지의 입장료 변천사 등이 진열돼 있다. 61년부터 이 극에 출연,뮤트역과 인디언역 등을 거쳐 현재 무대감독을 맡고 있는 제임스 쿡씨(58)는 『이 극의 제작자인 탐 존스와 하베이 슈미트는 50년초 서로 시기를 달리해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편지를 통해 대본과 음악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전쟁에의 공포가 없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서 『젊은층과 노년층,미국인과 외국인,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내용과 제한된 상황에서의 치밀한 무대 구성이 장수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일본에는 세차례나 가서 공연했는데 한국은 막상 한차례도 갈 기회를 갖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팬태스틱스」 다음으로 현재 공연중인 작품 가운데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를 통틀어 장수의 기록을 갖고 있는 작품은 「캐츠」다.지난해 한국에서도 공연된 이 작품은 1982년의 첫공연 이래 13년동안 브로드웨이 50 스트리트의 윈터 가든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지금 그리고 영원히」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아직도 그 인기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9월29일 5천회 공연기념으로 맨해튼의 국민학생 1천명을 초청해 기념공연을 가진 「캐츠」는 지금까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갖고 있는 슈버트 극장의 「코러스라인」(6천1백37회)과 에디슨 극장의 「오! 캘커타」(5천9백59회)의 기록을 깨는 것이 시간문제로 돼있다. ○일정한 대사없이 진행 뮤지컬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로버트 웨버의 대표적인 영국 뮤지컬인 「캐츠」는 시 「황무지」로 유명한 티 에스 엘리엇의 고양이에 대한 단편들을 모아 각색한 것이다.관람석을 포함한 무대 전체를 타이어 등이 쌓이고 지저분한 쓰레기가 널려 있는 폐차장으로 꾸민 무대장치에서 파격미가 느껴진다.일정한 대사도 없고 20여곡의 노래로만 진행된다. 제각기 독특한 의상을 차려 입은 의인화된 고양이들이 매력적인 춤과 노래로 재미 있거나 때로는 슬픈 과거를 회상하는 이 뮤지컬에는 하루종일 앉아 있기만 하는 늙은 굼비,신비의 힘이 있는 매캐비티,철도변에 사는 스킴블레생크,바지선을 타고 여행하는 난폭한 그롤티거,매력적인 그리자벨라 등 수많은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무대 벽면이 앞으로 내려와 거대한 배로 변하기도 하고 또 바퀴와 기관·연통 등을 제각기 갖고 나와 기차를 만들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무대변화가 극의 흥미를 더해준다. 특히 그리자벨라가 올라탄 타이어가 로켓처럼 불을 뿜으며 공중으로 치솟아 하늘에서 내려온 계단과 연결돼 그리자벨라가 하늘로 오르는 장면은 다양한 현대 무대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리자벨라 고양이로 분한 리즈 콜라웨이가 두차례 간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 뮤지컬의 주제곡 「메모리」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주디 콜린스가 이 노래로 음반을 제작,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의 최장수 뮤지컬의 주제가는 공교롭게도 아름다운 회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그러나 연기와 노래와 춤이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 공연예술의 메카 브로드웨이는 끊임없는 변신의 몸부림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풀브라이트와 한국/김학준 단국대이사장·정치학(기고)

    지난 2월9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윌리엄 풀브라이트 전 미국 연방 상원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은 적어도 세가지 맥락에서 한국에 연결돼 있다. 첫째,그가 상원의원으로 활약하면서 입법한 풀브라이트 교환계획이다.국제적 이해의 증진이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믿었던 그는 이 교환계획을 입법화하는데 성공해 사실상 미국 정부의 돈으로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연구하게 했고 또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로부터 미국으로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국은 이 계획의 대표적 수혜자들 가운데 하나이다.적지않은 한국인들이 풀브라이트 스칼라십을 통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또 연수를 받았다. 둘째,그는 미국의 베트남정책을 매섭게 비판했으며 그러기에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여겼다.베트남 전쟁을 민족적 정통성을 지닌 북베트남이 외세의존적 부패정권인 남베트남을 「해방」하기 위한 내전으로 파악한 그였기에 남베트남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많은 군인들을 쏟아넣는 존슨 대통령의 확전정책,그리고 거기에 발맞추는 한국 정부의 베트남 참전이 아주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는 상원 대외관계위원장이라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통해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베트남 전쟁에 대한 청문회를 자주 열어 문제점들을 사정없이 노출시킴으로써 정부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다. 60년대 말에 미국의 대학가를 휩쓸다시피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은 어떻게 보면 풀브라이트 청문회에 자극된 것이기도 했다.그리고 그 반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존슨 대통령은 68년 봄에 「대통령 재출마 포기」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브라이트의 베트남 청문회와 관련해 특히 우리로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김치」발언과 「용병」발언이다.그는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군인들을 「용병」이라고 매도해 우리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산 일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그때 주한 미국대사이던 윌리엄 제임스 포터와 김치 문답을 벌인 것이다. 발단은 『한국 군인들은 김치를 먹지 않으면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렇게되면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는 포터대사의 발언이었다.그러자 풀브라이트가 『김치가 뭐냐』고 물었고 포터는 『배추를 소금에 절인 뒤 고춧가루와 마늘을 배합해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셋째,그는 미국의 정치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2개의 코리아 정책」을 미국 정부가 채택하도록 제의했다. 풀브라이트의 의견으로 한반도에는 2개의 국가가 실존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이 현실을 공인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는 그 논리위에서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제의했다.그리고 남과 북이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대화하고 협상하는 가운데 평화공존을 이룩해 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마침내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풀브라이트가 이러한 구상을 내놓았던 때가 지난 70년이었으니 우리 정부로서는 「하나의 코리아」정책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이른바 「한국판 할슈타인 원칙」을 고집스럽게 밀고나갈 때였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풀브라이트의 제의를 비판했다.그렇지 않아도「용병」발언으로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2개의 코리아」를 들고 나오니 풀브라이트가 곱게 보일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특히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풀브라이트의 제안이 현실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셈이다.한국 정부는 73년의 6·23선언을 통해 사실상 「2개의 코리아」정책으로 돌아섰으며 91년 가을에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은 실현됐다. 베트남 전쟁도 풀브라이트가 내다본 방향에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군사력으로는 결코 베트남 민족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리라고 늘 주장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풀브라이트의 죽음을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미국의 유력지들은 미국이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던 지혜로운 정치가」를 잃었다면서 그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대단히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풀브라이트가 했던 말들 가운데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말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의 구상들 가운데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 정계에도 그만한 인물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본다.
  • 징용한인 보상문제/유엔인권위에 제기/국제 인권단체서…여론 고조계기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인 인권옹호단체인 「반차별국제운동」(IMADR)은 11일 일본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의 전쟁희생자원호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조선인인 전 일본군 군인과 군속에 대한 보상실현을 요구하는 의견을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고 일본 도쿄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일본군 군인과 군속으로 제2차대전에 참전한 재일동포의 보상문제가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관례상 해당 정부가 답변을 하도록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일본에 전후보상을 구하는 국제여론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 워싱턴 DC(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11)

    ◎국회의사당/링컨기념관/재퍼슨기념관/백악관/워싱턴 기념탑 축으로 동서남북 배치/불 건축가 설계… 1792년이후 계속 건설/워싱턴기념탑­의사당 사이엔 국립미술관·스미소니언박물관 자리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중심부에 위치한 링컨 기념관에 대리석 링컨이 엄숙한 표정으로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그 뒤로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이 새겨진 석판이 있다.「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링컨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여기서 1㎞쯤 동쪽으로 링컨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높이 1백69m의 워싱턴 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다.백색 대리석 기념비가 낮에는 희게 빛나고,밤에는 조명을 받아 어둔 밤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기념비 주위로는 미국 50개주를 상징하는 성조기 50개가 펄럭인다.미국 건국의 확고부동한 표상이다. ○나라사랑… 공간초월 링컨의 시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워싱턴 기념비 너머로는 또 약2㎞ 떨어져 미국 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다.국민들의 대표인 상하원 의원들이 모여 밤이 깊도록 쉴 틈 없이 국사를 논하는 장소다.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면 워싱턴 기념비의 그림자가 점점 국회의사당 안에서 국사에 골몰하는 상하원 의원들에게 다가간다.물론 링컨의 엄숙하되 자애로운 눈길도 이쪽으로 향해 있다.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명의 대통령의 나라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토록 계속 이어진다. 링컨 기념관,워싱턴 기념비,국회의사당이 이루는 동·서 직선축을 직각으로 교차하는 남·북 직선축의 남쪽 끝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의 기념관이 있다.제퍼슨은 초창기 미국의 정치제도를 확립한 대통령이다.그는 또한 그가 작성한 미국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삶과 자유와 행복추구의 권리를 지님을 주장하기도 했다.미국 대통령의 귀감이 되는 이 제퍼슨의 입상은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그의 시선 역시 워싱턴 기념비에 닿게 된다.또 이 워싱턴 기념비 너머 북쪽 끝에는 다름아닌 백악관이 있다.오늘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백악관 안의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워싱턴 기념비의 모습이 보일 것이요,제퍼슨 대통령의 지혜로운 눈길이 와닿을 것이다. 이렇듯 워싱턴 기념비를 중심으로해서 동서남북에 각기 국회의사당,링컨 기념관,제퍼슨 기념관,백악관이 놓여 이루는 광장을 「워싱턴 몰」이라한다.이곳이야 말로 미국의 심장부라는 워싱턴시의 핵심부가 된다. 이 광장 주변,특히 워싱턴 기념비에서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지역에는 물론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우리네 상식으로는 이 건물들은 관청건물들이 될만하다.그런데 이들은 모두 미술관 아니면 박물관 건물들이다.국립미술관이 있고,우리 귀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항공­우주 박물관 등이 이 곳에 몰려 있는 것이다. ○V자형 참전기념비 이 워싱턴 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하나 더 있다.미국이 치른 전쟁중 전무후무하게도 패전한 월남전 참전용사비다.이것은 용감무쌍한 군인들의 동상을 나열하게 되는 여느 전쟁기념비와는 다르다.검은 대리석 벽으로 V자를 만들어 놓았는데,이 V자를 우뚝 세운 것이 아니라 땅 위에 뉘어 놓았다.이 대리석 벽에는 월남전에서 전사한모든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용산에 있는 우리네 전쟁기념관에도 이것을 흉내내어 놓은 것이 있다).이곳을 찾는 옛 전우들과 유족들은 검은 대리석 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죽은 자의 이름이 겹쳐지는 것을 보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린다. 워싱턴 몰의 건축·구조물 배치의 공통된 특징은 「시각적 중첩」이다.워싱턴 기념비를 사이에 두고 링컨 기념관은 국회의사당을 건너보고,제퍼슨 기념관은 백악관을 건너보고 있다.초창기 대통령이었던 링컨과 제퍼슨은 미국 국부인 워싱턴을 매개로 해서 나름대로의 애정어린 감시의 눈초리를 오늘의 미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월남전 참전용사비에서는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검은 대리석 벽을 매개로해서 서로 겹쳐지며 만나고 있다. 이러한 절묘한 배치기법이 애당초 의도된 바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두고 이들 건축·구조물들이 각기 들어서면서 자연히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워싱턴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성장해 온 도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 열다섯째 해가 되던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현재의 워싱턴을 미국의 수도로 정하고 도시건설을 시작한다.무릇 새 국가의 시작은 새로운 수도의 건설로 이어지게 마련인가 보다.피에르 랑팡이라는 프랑스인 건축가가 신수도의 설계를 맡았는데 이때 이미 국회의사당,백악관의 위치가 정해졌고 게다가 추후에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광장을 도시 곳곳에 미리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워싱턴 기념비는 1888년에,링컨 기념관은 1922년,제퍼슨 기념관은 1942년,월남전 기념비는 1982년에 완성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로,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의 수도 설계라는 중책을 주저없이 프랑스인 건축가에게 맡겼다는 것이다.잘 할 수만 있으면 누구라도 데려다 쓴다는 미국인의 실용주의는 이미 2백년 전에 「세계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둘째로,프랑스인 건축가 랑팡의 마스터플랜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후로 2백년간 이것을 충실히 따라 각종 기념물의 놀라운 시각적 중첩효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미국인들의 신중함과 철두철미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불과 3∼4년만에 신도시들을 뚝딱 건설해 놓고도 이제와 보니 도시계획이 잘못 되었다느니 원래 계획대로 지어지지 못했으니 뜯어고쳐야 한다느니 말도 많은 우리네 현실이 새삼 낯뜨거워진다. 세계의 대도시는 다 미리 계획된 도시가 아니라 자연히 발생하여 성장해 온 것이 대부분인데 워싱턴만큼은 앞서 보았듯 예외가 된다.또 하나의 예외로서 우리의 수도 서울이 있다.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지금부터 6백년 전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정도전을 시켜 신도시를 건설한다.북악의 줄기가 뻗어내려 온 곳에 경복궁을 짓고 그 앞에 광화문을 세우며 이를 지나 남대문으로 향하는 탄탄대로를 세운다.이것이 오늘의 세종로다.서울의 마지막 백년이 지나는 동안 이 세종로에는 청와대에서 시작되어 경복궁,구 중앙청을 지나 이순신장군 동상에 이르는 일종의 선형배치가 이루어진다.얼핏 보면 워싱턴 몰의 선형배치와 비슷하기도 하다. ○타산지석재고할만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링컨 동상과는 다르다.링컨이 오늘의 미국을 움직이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앉아 애정어린 감시의 눈길을 주고 있다면 이순신 장군은 몇해전까지도 오늘의 한국을 움직이던 중앙청과 현재의 청와대를 아예 등지고 서 있다.링컨의 엄숙함이 미국의 상하원 국민대표들을 향한다면 이순신 장군의 위용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에게만 떨쳐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몰과 세종로의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세종로 주변에는 박물관이 없다.단지 세종문화회관이 하나 있을 뿐이다.나머지는 정부종합청사,보험회사 건물,통신회사 건물,그리고 남의 나라 대사관 건물 등이 있다.또 세종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이 넓은 길이기는 하되,그 길이 모두 아스팔트가 깔린 차도로 되어있다.국민들은 이 길 양쪽으로 걸으려면 여기저기 워키토키를 들고 서 있는 사복의 전경들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어디에서고 잔디가 깔린 워싱턴 몰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조선총독부(중앙청)건물이 지어진지 70년만에 헐린다고 한다.이것이 지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은 슬프다.그래도 남들은 2백년에 걸쳐 원래의 마스터플랜을 따라 차근차근 예술품에 비견 될 만한 건축·구조물들을 자기 나라의 심장부에 세워오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나라의 심장부에 아무런 마스터플랜이 없이 건물을 짓고 허물고 또 짓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그것도 기념비적으로 지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건물들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혼자서 멋진 상업건물들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 칸스 미 CIA국장 지명자(뉴스인물)

    ◎공군 정보통… 예비역 4성장군/월남전 참전… 2백회 출격 경력 새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된 마이클 칸즈(57) 장군은 35년간 공군에 복무한 뒤 지난해 9월 전역한 4성장군 출신.전투기 조종사로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전역 직전 공군참모차장으로 일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칸즈 장군은 정보를 다뤄본 바 있기 때문에 정보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칸즈 장군은 『냉전은 사라졌지만 지역의 불안정,테러리즘,마약거래,범죄및 핵무기 확산 등이 문제로 등장했다』면서 『이런 시기를 맞아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대통령에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91년 걸프전 때 국방부에서 합참의장의 수석행정보좌관을 맡아 다국적군의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일조했다.그가 보좌했던 콜린 파월 전합참의장은 칸즈 장군의 일처리 솜씨를 높이 평가하고 정보국장직에 적합한 인물로 추천했다고 백악관측은 밝히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2백회 이상 출격했으며 6천4백시간의 비행시간을 기록.지난 87∼89년 태평양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재직했던 칸즈 국장은 군출신으로는 7번째로 중앙정보국장직을 맡았다. 37년 캔자스주 정크션시티에서 출생,59년 공사를 졸업.77년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가족으론 부인과 두자녀.
  • 윌리엄 풀브라이트/미상원의원 별세

    【워싱턴 AP AFP 연합 특약】 전직 미 상원의원으로 지난 30여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던 윌리엄 풀브라이트가 9일 뇌일혈로 숨졌다.향년 89세. 지난 45년부터 74년까지 30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풀브라이트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반대했던 대표적인 인사로 유명하다.
  • 변화시대의 덕목/통찰력·조정력에 전문성 갖춰야(신지도자론:6)

    ◎국제조류 꿰뚫고 세계화 과제 해결 힘써야/시대상황 감안,옛지도자 용퇴선택 바람직/나카소네 전총리,미국 모르면 일본발전 없다”갈파 12년전인 83년1월 어느날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일본총리에 취임한지 두달 밖에 안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를 위해 부시부통령이 만찬을 베풀고 있었다.만찬도중 나카소네는 지난날을 회상하다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는 『27살의 병사로 미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전하고 반드시 고국을 부흥시키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둘째딸이 11살 되던 해 홀로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내 딸을 맡아준 미국인 역시 2차대전에 참전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다 끝내 목이 메고만 것이었다.부시부통령도,배석한 슐츠국무장관과 와인버거국방장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다음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레이건대통령은 크게 감동한 나머지 나카소네를 만나자 서로 「론」 「야스」라고 스스럼 없이 부르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나카소네의 정치리더십이 최선은 아니다.그러나 「미국을 모르고서 일본의발전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꿰뚫은 통찰력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그가 총리가 된 뒤의 캐치프레이즈는 「전후정치의 총결산」이었다.50년대에 둘째딸을 미국에 보낼 때는 80년대를 내다본 것이고 총리에 올라서는 「미국의 그늘을 벗어난 새 일본」을 외친 것이다.그의 생각은 아직도 일본 정계를 지배한다.일본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의 「일본개조계획」으로 이어지며 일본열도에 공감대를 얻고 있다. 국민 다수가 21세기형 지도자의 대두를 기다리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정치학자는 물론 정치인 스스로도 세계화시대의 가장 큰 덕목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비전)」을 첫손으로 꼽는다.20∼30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는 지도자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알맞는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가 없다. 서울신문이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사와 공동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서울신문 28일자 시리즈5 참조)도 새로운 정치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미래지향적 비전」을 꼽은 이가 45.8%로 가장 많았다.경희대 오세덕교수는 『비전제시 능력은 앞을 내다보는 직관력과 함께 과거와 현재,미래를 관통하는 분별력을 의미한다』고 했다.외국어대 김인철,단국대 강태훈교수도 『세계화라는 시대과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꿰뚫고 그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가 새 정치지도자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시대과제가 무엇인지는 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가 잘 요약한 바 있다.「생명으로 인식해야 할 자원과 환경,미지의 문명을 열어갈 과학기술 정보,지역주의와 다자주의가 혼합된 국제경제 질서」가 그것이다.여기에 분단 반세기를 넘기는 우리로서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지상명제를 하나 더 안고 있다.이러한 미래의 명제 가운데 한두분야 이상에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지식을 갖추지 않고는 대통령은 물론,국회의원이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박종웅의원(민자당)은 말한다. 전문지식을 갖추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정치인의 전형으로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꼽힌다.그는 부통령 취임후 초고속정보화계획과 행정개혁을 주도했다.「환경지도자」 하면 그가 떠오를 정도가 됐다.지난해 한때 우리 정계에서는 「고어를 배우자」라는 바람이 일기도 했다.그런 고어도 최선의 대통령감이냐 하는데는 사람마다 견해가 갈린다.현실정치를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전문능력은 좀 뒤떨어지지만 조정력과 협상력이 뛰어나 독일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콜총리도 훌륭한 지도자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미래의 우리 정치지도자도 통찰력,전문성과 함께 조정력을 지녀야 한다.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손학규의원(민자당)은 『앞으로는 지도자가 권력분산을 수용하는 정치개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권력을 공유하면서도 전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인하대 이영희교수도 『새 리더십은 개인적 카리스마 보다는 그룹리더십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인 면에서 우리의 새 지도자에게 또하나 필요한 덕목은 지역감정의 타파와 분명한 진퇴라고 할 수 있다.한림대 김재한교수는 『냉전적 대결구도,지역당 구도를 해결하는 사람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화여대 김석준교수는 「기존 지도자들의 솔선」을 요구한다.『급변하는 시대상황을 감안하면 옛 지도자가 새 유형의 지도자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만 바라는 것은 시간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김교수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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