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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프전 참전군 2세 기형 발생비율 높아/미 국방부 보고서

    【워싱턴 DPA 연합】 지난 91∼95년 걸프전 기간중 걸프외 지역에서 복무했던 군인들보다 걸프지역에서 복무했던 군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 가운데 눈·턱·척추 등의 선천적 기형 발생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한 보고서가 1일 밝혔다. 걸프전이후 임신돼 93년 10월 1일 이전에 군병원에서 태어난 7만5천414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연구결과 걸프전 참전 군인 자녀중 골든하 신드롬 발생비율은 3만4천69명당 5명인 반면,걸프외 지역에서 복무했던 군인자녀에서는 4만1천3백45명중 2명이 이 증세를 보였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상당수 걸프전 참전 군인들에게 만성피로,관절통,피부 발진,두통 등 알수 없는 증세들이 나타나자 이들 2세들에 대한 선천적 기형 발생 우려가 제기되면서 95년 10월 이번 연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 한국 금융안정 협력 합의/한·일 정상회담/4자회담 공조 재확인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2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밴쿠버 포시즌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서로 협력키로 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한국의 금융위기 상황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설명한 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에 일본정부가 주도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하시모토 총리는 “한국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며 한국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IMF가 결정할 지원의 틀내에서 가능한 협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4자회담 본회담이 12월9일 제네바에서 열리는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명한 뒤 회담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거둘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는 한편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3국이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어 김대통령은 웨스틴 베이쇼어 호텔에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4자회담 본회담 개최에 따른 양국간 협력방안을 논의했으며 어업협정 및 총영사관 개설 문제 등 현안에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4일 상오 숙소인 쉐라톤 월 센터 호텔에서 캐나다한국전참전용사회 태평양 지역회장인 에드워드 그란트씨 등 참전용사 18명을 접견하고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캐나다와는 한국의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가 됐다”며 양국간 우의를 강조한 뒤 “지금도 우리는 캐나다 젊은이들이 한반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워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 APEC 정상회의 여로

    ◎“금융위기 전염병 한국서 끝내야”/“우리 경제실상 적극 홍보” 대표단 회견/김 대통령,한국전 참전용사 접견 격려 김영삼 대통령은 밴쿠버 도착 이틀째를 맞아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접견한데 이어 2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에는 한·일,한·중 정상회담을 잇따라 갖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지사 접견=김대통령은 24일 상오 숙소인 쉐라톤 월센터 호텔에서 글렌 클라크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지사를 만나 한국과B·C주 사이의 협력관계 증진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대통령은 “이곳에 우리 동포가 3만5천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모범시민으로 정착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별히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클라크지사는 이에 대해 “한국 교민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내 지지자”라며 “대통령 각하와 사진만 찍어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한국전 참전용사 접견=이에앞서 김대통령은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회 태평양지역회 회장인 에드워드 그란트씨등 한국전 참전용사 18명을 만나 격려했다.김대통령은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당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각오하고 싸워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고인사했다. 김대통령은 이들 참전용사에게 단체표창장을 수여하고 용사회 깃발에 직접 수치를 달아주고 격려했으며 참전용사들도 나무로 깎아 모두가 서명한 기념품을 김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경제실상 홍보=정부대표단은 24일 하오 밴쿠버 무역센터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회견을 열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요청 배경과 우리경제 실상을 알리는 등 대외홍보활동에 나섰다. 25일에는 양수길 한국경제정책연구원장을 미 CNN의 대담프로에 출연시켜 외국 언론에 한국의 IMF자금 요청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노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약 1시간동안 진행된 이날 외신기자회견에는 김기환 대외경제협력대사,양원장,그리고 허로중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이 참석했는데 동남아는 물론 미국 일본중국 호주 등 각국 외신기자 1백여명이 모습을 보여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김대사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우리 경제가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6% 수준을 유지하고 경상수지 적자도 작년말의 2백40억달러에서 1백4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되는 등 기본적인 경제여건 자체는 매우 양호한 상태임을 강조했다.특히 김대사는 한국의 금융위기를 멕시코 태국 필리핀에 이어 발생한‘전염병’에 비유하면서 “이러한 전염병을 한국을 마지막으로 끝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더이상 다른 나라에 번지지 않도록 선진국들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서울신문 52년 일지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 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한국전쟁 중공군 참전으로 부산 피난 △4.6 서울 환도 진중 신문 발행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 연재 [1956년] △10.18 신문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첫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국내 최초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주간지 ‘선데이서울’ 창간 △11.22 전면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스포츠’ 창간 △11.2 ‘주간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 필름화 [1980년] △12.2 조간으로 전환 [1981년] △7.18 주간지 ‘TV가이드’ 창간 [1985년] △1.1 언론사상 최초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전문일간지 ‘스포츠 서울’ 창간 [1990년] △여성월간지 ‘퀸’ 창간 [1992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서울’ 폐간 [1992년] △1.5주간 ‘피플’ 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피플’을 ‘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본부’ 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1997년] △7.1 세계최초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 배치 △11.20 5세대 CTS 및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 본격 가동
  • WVF총회(외언내언)

    제대군인들의 유엔총회라 할 수 있는 세계제대군인연맹(WVF)서울총회가 1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공식일정에 들어갔다.74개국 138개 참전단체가 가입한 세계 최대 규모의 비정부기구인 WVF총회를 서울에서 갖는 것은 아시아에서 두번째며 극동지역에서는 처음이다.이번 서울총회에 참석하는 60여개국 대표 300여명은 모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거나 레지스탕스활동을 벌였고 한국전쟁을 비롯한 각종 전쟁과 지역분쟁에 참여했던 역전의 용사들이다.한국전쟁에 나섰던 대표만도 55명이나 된다.누구보다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과 인권존중의 중요성을 체험적으로 깨닫고 전파하려는 사람들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보다 평화의 귀중함을 깊이있게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세계도처의 참전제대군인들의 평화를 갈망하는 목소리들이 이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평화없이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희망이 없다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다…”‘WVF의 신조’는 자유스럽고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이를 위해 더욱 헌신할 수 있는 십자군 전사가 될 것을 다짐한다.기억속에 남아 있는 ‘어제의 용사들’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희망을 안겨주는 평화의 사도가 되겠다는 각오다. 이들이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 토론하고 다짐하며 평화를 실현시킬수 있는 방안을 채택해 각국에 권고하는 회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의를 지닌다.총회기간 동안 각국 대표들은 전방지역을 방문,한반도 분단현실을 직접 확인한다.그들이 피흘려 지키려고 했던 평화가 이 땅에서는 왜 아직도 요원한 지를 얼어붙은 북녘 땅을 바라보며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이번 총회에 상정된 52건의 안건 가운데 분쟁의 평화적 해결방안과 대인지뢰의 포괄적 금지협정,종군위안부 문제,핵무기 생산 및 핵실험 금지와 같은 문제는 우리와 직접 관계되는 사안들이다.자유와 평화,그것은 우리 모두의 갈망이며 쟁취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 삼성,콜롬비아 한국전 용사 자녀에 장학금

    ◎10만달러규모 재단 설립… 매년 2만불 지급 삼성그룹이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용사의 자녀들을 지원하기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최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공식 출범한 ‘한국전 참전용사 지원 장학재단 FCCS’는 10만달러의 기금으로 참전용사 자녀들에게 연간 2만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다. 삼성은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 재향군인회가 활동과 영향력에 비해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지 판매법인의 보고에 따라 장학재단을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콜롬비아는 한국전 당시 중남미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4천500명의 병력을 파견,216명의 전사자를 냈으며 현재 생존자 2천∼3천명이 참전장교회와 참전용사회를 조직,매년 자체적으로 참전기념행사를 가져왔다. 한편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재향군인연맹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45년만에 한국을 찾은 콜롬비아의 카이세도 예비역 대령(한국전 참전장교회 회장)과 실바 예비역 상사(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장)는 삼성그룹을 방문,장학재단설립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 미 전임 대통령의 도서관/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6일 텍사주 칼리지 스테이션의 텍사스A&M대학교 교정에서 열린 조지 부시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은,5년전 예상을 뒤엎고 중앙정치무대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빌 클린턴 현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부시 전대통령을 뉴스의 전면에 다시 부각시켰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로 냉전시대를 종식시켰으며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용기있는 대통령으로 미국인들에 남아있는 그의 기념도서관 개관식에는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 생존 전직대통령인 포드,카터,레이건을 대신한 낸시 레이건 여사등 내노라하는 미국의 저명인사들이 참석,성황을 이뤘다. 텍사스A&M대학교 교정에 들어선 이 도서관에는 그의 대통령4년 재임기간중 문서자료 3천8백만페이지(1만1천개 박스 분량)를 주축으로 하여,부통령8년,주중대사,CIA국장 등 모든 정치역정과 2차대전 참전,예일대학 학창시절,바바라 부시여사와의 연애편지 등 전생애의 기록이 보존 전시돼 있다.이번 가을 이 대학 부설로 개원,19명의 신입생을 뽑은 조지 부시 행정대학원과 함께 부시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현재 미국내 존재하는 대통령도서관은 모두 11개.국립문서보관소의 관할 아래 31대 후버 대통령부터 주로 생가 혹은 정치적 입신지에 건립돼 있다.건립은 대통령 후원회나 지인들이 맡아서 하고 관리는 국가에서 맡아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재임시 공식적으로 만들거나 받은 모든 문서 및 사신 ▲취임전과 퇴임후의 모든 자료 ▲오디오 비디오 자료 ▲개인소장 물품과 공식적 선물 등으로 구분되고 있다. 미 대통령 도서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의 모든 행위는 국가 역사상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국민들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서였다.그는 39년 자신의 모든 자료를 국가에 기증했고 도서관 건물은 이듬해 후원회에서 건립,국가에 헌납됐다.의회에서는 55년 대통령도서관법을 제정,국가가 관리토록 했다. 부시 대통령 도서관의 건립취지는 단순히 전대통령의 업적과 생애의 이해를 돕는데 머무르지 않는다.이른바 ‘부시 시대’가 본격적인 역사의 도마위에 올랐다는 의미가 된다.그의 공과와 역사적 평가를 위한 작업의 개시를 의미하는 것이다.물론 그것은 미래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는 전제가 붙어있다.모든 과거를 미래의 거름으로 삼는 미국인들의 지혜를 곰곰 생각해볼 때다.
  • 류민 특파원,러 최정예 타만스카야사단 방문

    ◎러 정치격변속 중립지킨 ‘문화부대’/주임무 정부건물·요인보호/자체박물관 갖춰 전사 보존/중대원전원 2개방서 생활 러시아 최정예부대로 정평난 타만스카야사단을 우리나라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본사 모스크바 특파원이 방문했다.유사시 크렘린을 비롯한 수도 모스크바의 주요 정부건물 및 요인보호를 주임무로 하는 이 사단은 볼셰비키 혁명전후에 탄생,2차대전에 참전해 독일을 패퇴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해왔다.러시아 군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이 사단은 또 지난 수십년간 각종 러시아의 정치적인 소용돌이속에서도 엄정한 중립을 지키온 군부대로 이름나 있다. 모스크바시 서남쪽 50㎞ 지점.러시아 최정예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타만스카야 사단은 오히려 민간인 가옥들이 적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시골 소로길을 따라 여느 민간가옥으로 들어가듯 느꼈을때 차량은 어느새 부대안에 들어와 있었다.주변위장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자를 따라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은 사단 역사박물관.이곳은 1917년 러시아혁명을 전후해 탄생한 이 사단의전사를 한눈에 잘 볼 수 있게 해놓았다.차르시대때의 각종화포와 군복도 이채를 띠었다.피터대제 때부터의 군 발전상이 잘 정리돼 있었다.가만히 보니 타만스카야 사단은 사병을 특히 아끼는 부대 같았다.2차대전때 전공을 세운 사람이라면 장군·사병 차별없이 소형구조물로 이름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우리네 사단에서는 보기 힘든 이같은 자체 박물관은 러시아 사단 수만큼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연병장으로 나섰다.한 중대 막사 앞에는 부동자세,거수경례 요령 등이 자세히 적힌 입간판을 볼 수 있었다.우리나라 연병장과 차이는 없었다.다만 사열대 옆에는 역대 사단장을 동부조물로 만들어 놓아 방문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이윽고 들어간 곳이 사단의 1연대 1대대 1중대 내무반.내무반 정문 앞에서 보초를 선 한 사병이 힘껏 거수경례를 해댄다.하지만 중대원은 모두 훈련을 나가고 없다.내부반 침상은 우리가 소대 혹은 분대별로 따로 되어있는데 반해 중대원 전원이 두 방에 나눠 자도록 돼 있었다.한꺼번에 몰아넣는 이유는 유사시 동원을쉽게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침상옆 다른 방은 10평 남짓한 사병휴게실.여기에는 전화 TV 체스 등이 구비돼 있었다.휴게실 벽은 사병들의 솜씨가 담긴 각종 벽화,그림으로 가득차 있었다.‘문화적’ 군대라는 인상이 들었다.장교 휴게실은 사병 내무반 맞은편 ‘클럽하우스’에 따로 마련돼 있었다.이 클럽하우스에는 3층 정도 높이에 사단병력을 동시 수용하는 강당이 구비돼 있었다. 내무반을 다 돌 무렵 안내자는 일행을 훈련장으로 안내했다.1연대 소속의 훈련장이었다.타만스카야 사단은 우리식으로는 기계화 보병사단.반경이 10㎞쯤 되어보일 정도로 끝이 안보이는 이 훈련장에서 한 중대원이 명중율 100%를 자랑하는 대전차 로켓포 발사시범을 보였다.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할 무렵 갑자기 우뢰를 동반한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일행은 비를 피해 임시로 설치해놓은 천막안으로 들어섰다.임시로 가설해 놓은 천막이 곧 무너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10여분쯤 뒤 비가 그친뒤 일행은 임시천막을 빠져 나왔다.모진 폭풍우의 영향으로 천막주위의 수십년된 포플러 나무가 여기저기 뿌리째 뽑혀 있었다.또 주위 대부분 나무들의 가지가 상당수 부러져 있었다.최악의 기상에 임시가설된 텐트가 조금도 흐뜨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악조건을 견뎌내는 붉은 군대’였다.〈마루쉬키노〈러시아〉=류민 특파원〉
  • 개천에서 난 ‘조선족 용’(흑룡강 7천리:10)

    ◎한때 중국 행정부·군 최고자리 올라/“30∼40년대 한족간부와 항일운동·해방전쟁 참가 정치적으로 한자리씩 감투…” 흑룡강이 가음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도도한 강을 이루었다.가음하와 결렬하,오운하 등 26갈래의 지류를 품에 안아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지기 시작했다.강 저쪽 러시아의 바스커워가 가물가물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극동 시베리아의 대철도가 지나는 화물집산지라서 중국쪽 흑룡강 대안은 가음통상구가 되었다. 그 흑룡강에는 20만t급 화물선들이 드나들고 있다.그런데 강폭이 넓은 가음현 경내의 흑룡강은 이름 그대로 용이 살던 곳인지도 모른다.강변공원에는 ‘공룡가족’과 ‘공룡세계’ 조각품이 들어선 것을 보면 태고때 공룡이 살았던 모양이다.그래서 가음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화석 발굴지역이라는 것이다.1915년부터 지금까지 가음현 용골산에서는 모두 6마리몫의 완형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다.러시아 레닌그라드박물관과 흑룡강성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성 행정 최고간부도 배출 강변공원 입구에 세운 안내판에는 ‘중화민족은 용의 자손’이라는 글귀를 담았다.중화민족은 물론 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용의 후손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족들은 뿌리깊은 용문화를 지키고 있다.음력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아직도 용춤을 추고 단오날에는 용주를 타는 민족이다.그리고 용은 지고의 권력을 상징했다.임금의 옷을 용포,얼굴은 용안,앉는 의자를 용상이라 하지 않았던가.우리 민족도 용을 우러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족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한족의 용은 어마어마한 권력의 상징물이다.그 권력은 타고난 것이거니와,세습이었다.그래서 여느 사람이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말을 한다.한족사회에서 조선족의 출세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그런 조선족으로는 전 중앙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주임과 전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장 조남기상장을 꼽을수 있다.이들은 중국의 행정부와 군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선족들인 것이다. 흑룡강성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조선족중에는 전 성민족사무위원회 이민주임이 있다.그녀의 남편 진뢰는 성장이었는데,부가 항일투사였다.지금은 항일과 해방전쟁 출신의 조선족 간부들은 다 퇴직하고 새로운 조선족 세대들이 들어섰다.그러나 옛날처럼 정치적인 출세라기보다는 기술직과 전문행정직이 대부분이다.흑하시에 사는 퇴직간부 한정순씨(64)는 조선족들이 기술이나 전문직에서만 출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의 조선족 간부들은 한족 간부들과 어울려 항일이나 해방전에 함께 참여한 동지이자 전우였디요.기래서리 정치적으로 길이 열려 한 자리씩을 했던거우다.요즘은 사정이 달라져 한족 틈새에서 간부를 하자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는 퍽 어렸습네다.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도 다 갔디요.” 그도 역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족들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조선족이다.평북 신의주 태생인 그는 1958년 대퇴한 이후 흑룡강성 밀산현 농업개간국에서 근무하다 1964년 흑하시 당학교로 전근했다.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던 덕분에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아내의친척들이 남과 북에 산다는 이유로 조선간첩 누명을 썼다.당시 흑하시의 조선족 간부 13명 모두 간첩이 되었다.조선족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북한도 백안시했던 때라 기쁜 소식을 말하는 ‘해보’를 통해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어떻든 조선족은 연변과 같은 자치구역이 아닌 한족구역 공공직장에서 제1인자가 되기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용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이무기만 되어도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로 조선족 위치가 변했다.자리가 높아진다 해도 자리를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치치하얼시에서 12년간 물자국장으로 일했던 성영석씨(58)의 회고담에는 그런 어려운 사연이 역역히 들어있다.소수민족이 다수민족 사이에서 홀로 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만했다. “물자국 직원은 600명이나 됐드랬디요.그런데 조선족은 내 혼자였디요.내가 총경리가 되고 나서리 밑에 있는 직원들이 상급기관에 고자질하기를 밥먹듯 합데다.그때 고자질 내용이 흑룡강신문에도 났디요.시에서 전문조사단을 통해 1년동안 검사를 해봤디만 헛물만 켠꼴이 되었댔습네다.내가 청렴하게 살았는데 걸려들 것이 있을리 만무했디요.내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부에 아첨 잘한 것도 아닙네다.오로지 실력과 청렴으로 버틴 것이우다.” ○물가국장 12년간 봉직 그는 1964년에 치치하얼 물자국에 배치되어 1982년 총경리로 올라갔다.그리고 1994년까지 꼭 12년간 국장을 지냈다. 그는 당시 북한의 유일한 공과대학이었던 김책공대 출신의 기술엘리트다.흑룡강성 용강현에서 태어나 내몽골 우란하오터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1960년에 하얼빈공업대학에 입학했다.그런데 3학년때 북한으로 도망을 가서 김책공대에 시험을 쳤다.북한은 조선족을 무조건 받아주고 공부도 시켜주는 때라 김책대학에 들어가 매달 20원의 생활비도 받았다.김책공대를 졸업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중국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날 흑룡강유역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개천의 용’은 겨우 두 손가락을 꼽을수 밖에 없다.막하현 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0)과 흑하시 우전국 서리희 국장(53)이 그들이다.그런 현실을 보면 기술전문분야를 파고들지 않고는 조선족중에서 ‘개천의 용’이 나올수 없다는 사실이 예견되었다.2백만 조선족을 대변할 정치적 ‘용’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인가.그 숙제는 조선족의 부단한 노력과 단결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 노벨평화상 지뢰금지운동과 대표 윌리엄스

    ◎“살상무기 추방” 국제조약 끌어내 국제지뢰금지운동(ICBL)과 그 지도자 조디 윌리엄스(미국·여)가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이들이 129 후보중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에 가장 부합하는 활동을 벌여왔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살상용 무기를 추방해달라는 노벨의 유지를 받들기라도 하듯 윌리엄스와 ICBL은 지난 6년간 대인지뢰의 완전한 추방을 목표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왔다. 그 결과 95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정 통상병기 사용금지·제한조약(지뢰금지 조약)’ 개정회의가 열리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스마트 지뢰’만을 사용토록 규정한 지뢰금지조약 개정(96년5월10일),미국의 대인지뢰 포기 선언(96년5월16일) 등을 속속 이끌어냈다. 업적이 두드러지면서 단체의 규모도 점차 확장됐다.91년 미국·독일의 지뢰금지 운동 단체가 합쳐지면서 탄생한 ICBL은 오늘날 55개국 1천여 각종 사회단체의 지지세를 바탕으로 9개의 운영위원회를 거느린 국제적 비정부기구(NGO)로 성장했다.미국에 기반을 둔 이 단체의 지도자 윌리엄스는 월남전 참전용사 미국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달 1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지뢰금지조약 회의 결과였다.90여개국이 모인 당시 회의에서는 대인지뢰의 완전금지를 규정한 조약 초안이 만들어졌다.이들이 쏟아온 노력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발생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사망사건도 이들이 평화상을 받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ICBL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다이애나가 죽음으로써 ICBL이 국제적인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상 위원회가 단순히 과거의 공적에 대한 평가만으로 상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과거 공적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 말고도 26년간이나 위험한 지역에서 목숨 걸고 활약했으며 올해까지 5번이나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국경 없는 의사회’ 등 쟁쟁한 단체 및 개인이 많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가 이들을 선정한데는 지뢰금지를 향한 국제여론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ICBL과 윌리엄스의 평화상 수상은 오는 12월 시한까지 지뢰금지조약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는 미국·중국·인도 등에 대한 비난여론을 확산시키는 한편 한반도 지뢰문제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스 “한반도 지뢰금지 예외 불가” 금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의 책임자인 조디 윌리엄스(여)는 10일 “대인지뢰금지협정에서 한반도를 예외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윌리엄스는 미 버몬트주 푸트니소재 자신의 거처에서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연합통신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한반도 지뢰 문제에 대한 ICBL의 견해를 묻는 질문에 “종전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라고 지뢰금지협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주한미군 문제 등을 명분으로 한 클린턴 미 행정부의 예외 인정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연합〉
  • 런던 미 뉴욕대 교수 워싱턴타임스지 기고 요지(해외논단)

    ◎미 정부 ‘북의 무기판매’ 방치말라/망명외교관 파일 공개… 적성국에 기술유입 차단을 미국은 최근 북한 고위외교관의 망명으로 입수하게 된 북한의 대중동 미사일수출 정보에 따른 후속조치에 고민을 하고 있다고 미 허드슨연구소 소장인 허버트 런던 뉴욕대 교수가 3일 워싱턴타임스에의 기고문에서 주장했다.‘망명자들에 숨겨진 내용들’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요약 소개한다. 최근 북한 고위 외교관 두명의 미국으로의 망명은 의심할 여지없이 평양측의 이란,시리아,리비아 등 부랑아국가들에 대한 첨단 미사일 판매 내역을 드러나게 해줄 것이다. 이들중 북한의 이집트대사를 지낸 장승길은 중동에서의 북한의 미사일기술 이전 내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어떤 국가에 의해서든지 불법적인 미사일 기술이전이 발각되면 법에 의해 제재받아야 한다.그러나 그것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촉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미국은 상당량의 중유와 식량 등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 원조가 화살로 돌아와 미 행정부는 지난 2년동안 1억3천5백만달러 상당의 원조를 해준데 이어 수주전에는 올여름 태풍피해를 입은 북한에 2천7백만달러 상당의 식량원조를 제공했다.이같은 기여는 북한이 뚜렷한 위협도 없는 상황에서 GDP의 25%를 군사비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아이러니칼한 사실이다. 혹자는 미국의 이같은 원조가 소련 개발 첨단기술을 중동에 있는 미국의 적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만일 미국이 또다른 중동전에 참전하게 된다면 이같이 넘겨진 중거리 미사일들은 동맹국들의 공동대처 노력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미사일들이 로마나 파리,런던까지 미친다면 이들 유럽동맹국들이 미국 주도의 작전에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북한의 중동 적대국에의 첨단 미사일 판매는 이스라엘이나 석유수송로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 있어서의 모든 미국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은 이미 뉴욕에서의 미사일회담을 보이코트함에 따라 보복을 위협하고 있다.정보기관의 추측에 따르면 북한은 매년 150기가 넘는 스커드미사일을 생산할 능력이 있고,하와이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어떠한 종류의 미사일에 대해서도 방어대책 없이는 한국은 완전히 북한으로부터 노출될 수 밖에 없으며 DMZ를 따라 배치된 3만7천명의 미군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 북 위협에 노출 미 국무부는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다.만일 북한의 미사일거래에 대한 정보를 밝힌다면 현재의 정책을 보다 강경하게 펴도록 압력을 받게될 것이다.그러나 밝히지 않는다면,북한의 부랑아국가에의 판매가 드러났을때 미사일 기술이전문제로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이같은 문제의 민감성을 인식,행정부의 모든 공식 발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그러나 미사일 기술이전문제는 이제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란,시리아와 같은 국가들의 능력 수준과 그리고 그들의 첨단미사일 기술의 소유에 따라 어떻게 중동에서의 전략적 균형이 변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뚜렷한 대북메시지 필요 비확산조약들이 전반적으로성공을 거두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핵무기를 위한 시장이 존재하면 파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북한의 경제정책은 대량 기아와 영양실조에 책임이 있다.그러나 평양은 그 주요 수출품이 핵기술이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분명히 세계무대의 많은 외교관들이 이 핵드라마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클린턴 행정부는 다음 세기를 위한 국제 외교무대에 뚜렷한 메시지로 북한의 무기판매를 중단시키거나 통제해야 할 것이다.〈정리=워싱턴 나윤도 특파원〉
  • 국립의료원 매각방침 재고를/김명 충북대 교수·국민윤리과(기고)

    얼마전 정부가 국내 유일의 국립병원인 국립의료원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국립의료원 부지를 매각하고 그 돈으로 경인지역 고속도로 인근에 국립응급의료센터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재고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국가발전 과정에서 의사직에 대한 인기가 높아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에 몰렸고,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의대를 설립했다.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의료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렇게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의료기관이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국립의료원을 경영하는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국립의료원의 발전에 소홀했다. ○의료봉사로 경영 악화 반면 국립이라는 이유로 공익성을 강조하면서 극빈자 무료 진료와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는 진료 등 민간 의료기관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의료봉사를 의무화시켰다.따라서 국립의료원의 경영 악화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국립의료원은 사실 우리나라가 직접 설립한 ‘국립’이 아니다.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이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을 발전시키기 위해 ‘메디컬 센터’를 최고 수준으로 설립해 운영하다가 우리나라에 기증하면서 국립의료원이 탄생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우리나라의 거물급 요인들이 대부분 국립의료원을 이용했다.그런데 외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을 발전시키지 못한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기는 커녕 기증국들의 양해없이 이를 해체한다는 것은 국가간 신의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창립정시 되새겨 볼때 병원설립과 운영에 참여했던 이 세 나라의 대사가 이사로 있는 한스재단(이사장 유재흥)도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3국과의 우애정신을 바탕으로 건립된 국립의료원이 없어지면 양국간 민간외교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와 정부에 전달키로 했다고 한다.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공공 의료서비스를 위해 시·군·구 단위에서도 지방의료원과 보건소를 두고 있다.그런 마당에 국가의 중앙 의료기관인 국립의료원이 없어진다면 그간 수행해 온 무료 인공신장투석치료와 심장수술 등은 누가 맡아 할 것인가. ○저소득층 환자 어디로 의료비를 마련할 수 없는 저소득층 환자와 극빈자들에 대한 공익 차원의 의료봉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지구촌 모든 국가들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제를 기본적 국가 목표로 삼고 있다.만약 국립의료원이 해체된다면 이같은 명제에서 가장 핵심적 주제인 의료봉사에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국립의료원은 정부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또 의료수준의 발전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립의료원이라는 그 상징성만으로도 절대적인 존립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국립의료원을 계속 유지한다면 ‘국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도 서울 중심가에 있는 현 위치가 그 기능을 맡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 치치하얼의 조선족(흑룡강 7천리:6)

    ◎20년대 첫 이주… 1만9천명 ‘공생’/눈강평원 드넓은 초원/서광촌·명성촌·선명촌서 농사일­상업으로 생계 이어 흑룡강 한 지류인 눈강유역의 평원은 장관이다.달리는 열차에서 바라본 차창밖으로 푸른 벌판이 아득했다.하늘을 흐르는 흰 뭉게구름과 초원에서 풀을 뜯는 새하얀 양떼가 어울린 평원은 그야말로 목가적이었다.그 망망한 초원 한 가운데 옹기종기한 마을은 마치 섬처럼 보였다.조선족들도 일찍 눈강평원에 들어와 그 섬같은 외로운 마을을 꾸렸다.눈강유역인 흑룡강성 치치하얼지구의 조선족은 지금 1만9천명을 넘는다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눈강평원의 조선족 이주는 1929년에 시작되었다.조선시대 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을 배출한 성씨가문의 22대손이 식솔을 이끌고 첫발을 들여놓았다.오늘의 흑룡강성 용광현 서광촌이었는데,당시 지명은 눈강성 대유수다.그 손자 성영석씨(46)는 지금 서광촌에 살고있다.할아버지가 처음 서광촌으로 들어올때 이끌고 온 식구는 여섯이었다는 것이다.지금은 성씨네 일가가 100명으로 늘어났다는 그는 이주해온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당시 지식인이었던 모양입네다.한일합방이 되자 벼슬할 꿈을 버리고 경상도 청도읍에서 서당을 꾸렸다고 기래요.한학에 능하셨던 할아버지는 일제의 농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서리 관리들의 밉상을 받았디요.그래서리 고향을 등지고 만 것입네다.아들 삼형제와 사촌까지 여섯이 고향을 떠나왔다고 합데다.봉천까지는 기차로 왔으나 더 갈만한 노자가 있어야디요.꼬박 두달을 남부여대하고 걸어서 대유수(서광촌)에 도착했다는 것이디요” ○성삼문 22세계 첫발 그들 일가는 비록 일망무제한 옥토에 짐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부릴 소나 말은 고사하고 씨앗도 없었기 때문이다.그 할아버지는 당시 눈강성 이몽기 성장에게 글을 올렸다.문장에 감복한 성장은 성소재지 치치하얼로 불러들였다.한주일여를 성장집에 머물면서 필담으로 교유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다.성장은 마차 두대에 쟁기며 양식,씨앗을 선물했다.첫해의 농사도 대풍을 이루었다.그래서 사람을 고향 청도로 보내 일가친척들을 서광촌으로 데리고 왔다. ○일제때 강제이주 시작 오늘날 눈강유역 평원에는 서광촌 말고 치치하얼시 메리스구 명성촌과 선명촌에도 조선족이 몰려있다.서광촌이 자생마을인 것과는 달리 이들 명성촌과 선명촌은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다.당시 눈강성에는 이같은 집단 이주마을이 13군데나 되었다고 한다.한 마을에 100호씩이 자리잡았다.모두가 경상북도 사람들이었는데,이주 초기인 1942년에는 일제가 배급도 주었다.그러다 일제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른바 대동아전쟁에 광분한 일제는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놓은 쌀을 모두 군량미로 빼앗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 등쌀에 견디다 못해 마을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경상도에서 온 전병형씨네 일가도 겨우 이태를 살고 도망치다시피 내몽골로 들어갔다.해방을 맞고서도 십수년이 지난뒤 그들 일가는 치치하얼로 돌아왔다.아들 성렬씨가 한국전쟁때 북한 인민군 소대장으로 참전했다가 대퇴하고 식솔 모두를 치치하얼시 메리스구로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한때 선명소학교 교장을 지낸 아들도 이미 세상을 떴다.지금은 치치하얼시 교육위원회 종교처장으로 일하는 손자 창국씨(49)가 가계를 잇고 있다.창국씨는 1968년 치치하얼 조선족고급중학 재학 당시 반혁명분자로 몰렸다.그는 이듬해 제적되어 선명촌으로 쫓겨났다.반혁명분자이기는 했지만 선명촌에서 촌장 아래 직급인 생산대장으로 올라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그가 쫓겨나서 일했던 선명촌은 눈강을 사이에 두고 명성촌과 마주한 마을이다.모두 조선족 마을이지만,한때는 남조선 북조선이라 불렀다.요새는 한국 북조선으로 바뀌었다.그렇다고 다른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단지 강남북에 자리한 마을 위치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그가 반혁명분자로 쫓겨났던 선명촌은 말하자면 북한이다.요즘에 와서 보면 두 마을의 별칭에는 유머러스한 구석도 있다.그러나 문화혁명 당시 그의 선명촌생활은 말이 아니었다.1975년 중앙민족대학으로 진학하기 이전까지 옹근 여섯해를 오로지 농촌에 매달렸다.기왕 농촌으로 들어온 바에야 조선족 농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각오로 별별 궂은 일을 다 맡았다. “아마 1973년인가 그럴겁네다.그 무렵 여기서는 농사일에 부릴 수 있는 한마리 말값이 3천원이라 싼 말을 사러 내몽골로 갔디요.하라이얼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자동차와 말을 갈아 타고 우숴무에 도착했수다.거기서는 말 한마리에 550원을 해서리 20마리를 사디 않았갔수.그 말을 끌고 초원을 지나 대흥안령을 넘어오는데 40일이 걸렸디요” 그 시절 총각 전창국은 마을 처녀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처녀들은 아무런 사심없이 일에만 매달린 그의 열정에 흠뻑 반했던 것이다.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전통가치관이 사뭇 달라졌다.그런 신랑감이라면 거들떠 보지않는 세월로 변한 것이다.농촌처녀들은 파랑새처럼 도시로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그래서 힘을 들여 농사일을 하는 총각들이 짝을 못 찾는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그런데 치치하얼에 머무는 동안 선명촌으로 가는 강가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를 만났다.“옳지,아직은 짝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총각은 치치하얼시에서 소문난 업소 금복문술집(금복문주점)주인 김홍률씨(51)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내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외지 농촌에서 왔다는 예쁘장한 처녀는 바로 금복문주점 종업원으로 주인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2백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치치하얼시에서 손꼽는 금복문주점을 들렀다.남향으로 나앉은 술집은 칸막이 온돌방에 식탁을 갖춘 홀을 갖추었다.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출수 있는 또 다른 홀과 별채의 숙소가 있어서 마시고 놀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아가씨가 열둘에 강씨라는 마담 한사람을 둔 금복문주점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제법 흥청댔다. ○시골주점 손님 북적 강마담은 한달에 천원을 받는다고 했다.아가씨들은 아예 월급이 없다는 것이다.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라서 아가씨들은 팁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연변에서 왔다는 미스김은 말이 아가씨였지 사실은 유부녀라고 실토했다.연길시 철남구가 집인 그녀는 한국으로 갔던 남편이 빚 5만원만을 진채 강제 송환되어하는 수 없이 치치하얼로 흘러들어왔다.내가 연길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시콜콜한 화류계 속사정을 다 까발려 놓았다. “팁이야 주는 사람 마음에 달렸디요.한국사람들은 보통 백원씩은 줍데다.그것도 침대에 올라가야 백원을 주디요.한국사람은 팁은 꽤 주지만 손이 점잖지 않아서 싫더라…”
  • 중국 새 국방부장 내정 전전유(뉴스의 인물)

    ◎한국전 참전한 정통 야전지휘관/95년 총참모장에… 강 신임 다터워 중국의 신임 국방부장으로 지명된 전전유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40년대 중국대륙내의 ‘해방전쟁’,한국전쟁,중국­베트남 전쟁 등 주요 전쟁에 참전한 작전·지휘에 정통한 야전군인이다. 산서성 출신인 전 국방부장 지명자는 고 등소평과 강택민 국가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의 국방부장 지명으로 강 국가주석의 군부내 기반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난주 등 주요 군구사령관을 거치면서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지휘 및 작전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1946년 인민해방군에 참가한 그는 지난 92년 11월 조선족 출신 조남기 대장 후임으로 해방군 요직인 총후근부장직(군비·물자 보급 책임)에 임명됐다.92년과 93년에는 해방군 실세였던 장만연과 함께 각각 중장과 상장으로 진급했다.93년에는 중앙군사위 위원에 임명됐다. 그는 지난 95년 해방군에 참여한지 반세기만에 장만연의 뒤를 이어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 임명됐다.
  • 경기대 고준환 교수 작 ‘굼벵이의 꿈 매미의 노래’

    ◎매미가 주는 교훈 삶의 지혜로 터득 〈아 매미여,마법에 걸린 곤충이여!… 나를 위해 그 연주를 조금만 약하게 해주지 않겠니?〉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는 매미를 보며 이렇게 읊었다.길게는 17년이라는 세월을 땅속에 묻혀 굼벵이로서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는 매미.파브르가 그랬듯이 우리 인간도 괴로울때 힘을 북돋아줄수 있는 삶의 표본으로 매미를 관찰해보면 어떨까.경기대 고준환 교수(법학과)가 매미로부터 얻는 삶의 지혜를 가득히 담은 우화집 ‘굼벵이의 꿈 매미의 노래’(밀알)를 냈다.굼벵이가 무려 7차례의 허물벗기를 통해 갖은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매미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경쾌한 문체로 그렸다. “맴 맴 쓸음 쓸음 쓰라람 쓰르쓰르 샤 줄…” 이야기는 시원한 매미의 노래로부터 시작된다.무엇을 위해 그토록 힘차게 노래 부르는 것일까. ‘굼벵이의 꿈…’은 카오스로 치닫는 이 시대 우리 모두를 위한 자그마한 인생독본으로 읽힌다.‘인생교사’로서의 매미.이 작은 미물은 우리에게 체질화된 조급증을 털어버리고 기다림의 미학을 터득할 것을 권한다.전주대 하수경 교수(미술학과)의 삽화가 함께 실려 이야기의 생동감을 더해준다.깨달음을 위한 길잡이로 ‘신선이 되는 길’이란 부록도 실었다.신선도에 이르는 구체적 수련법으로 기체조,단전호흡,수식선을 소개하며 천부경·삼일신고·반야심경·참전계경·아하경 등 경전의 세계로 안내한다.오직 ‘참된 나’로 돌아가야만 영원한 광명세계에서 자유자재롭게 살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 반포천 둔치 오물 10t 말끔히/서울신문사주최 한강지키기 캠페인

    ◎28개 중·고생 등 5천명 참가 서울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주최한 ‘깨끗한 한강지키기 반포천 현장캠페인’이 21일 상오 서울 동작구 반포천 둔치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 한강중 성남중 남성중 남강중 봉천중 광신고 당곡고 서울여상고 등 28개교 중·고생 4천2백여명과 동작구 녹색환경봉사단,동작구 대한해외참전전우회,동작구민 등 모두 5천여명이 한강지키기 환경파수꾼으로 나섰다. 올들어 8번째로 실시한 이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상오 9시30분 반포천 한강시민공원에 모여 행사 선언식을 갖고 하천을 따라 이수교까지 2㎞를 걸으며 반포천주변에 마구버려진 빈병과 캔,비닐류 등 생활쓰레기 10여t을 치웠다. 특히 광신고 학생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강물에 들어가 갈퀴로 쓰레기를 건져내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교육부 환경부 서울시교육청 한국방송공사(KBS)가 후원하고 한국암웨이가 협찬했다.
  • 교과서 보완요구 이유있다(사설)

    국가보훈처가 ‘국적없는 교육’을 우려하며 교과서 내용들의 보완을 요구했다고 한다.매우 타당해보이는 요구라고 생각한다.청소년들은 교육기회를 통해 국가관이나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해간다.또한 위생이나 보건행정이 그러듯이 국민정신의 건전성을 보완하고 보전하기 위해서도 끊임없는 검증작업이 있어야 한다.국가보훈처는 그런 역할을 중심적으로 맡은 부처다.그 결과를 주무부서에 알려 ‘보완’을 협의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 보훈처가 지적한 주요부문은 ‘6·25전쟁’과 ‘월남 파병’항목이다.지난 96년 개정분의 교과서들에서 6·25 전쟁부분은 전의 교과서에 비해 그 양이 대폭 줄고 내용도 희석되었으며 베트남전 참전에 관한 것은 아예 취급도 안되었을 지경이라고 한다.사실이라면 보훈처의 ‘우려’에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우리에게 6·25전쟁은 단순한 전쟁의 참상만이 문제가 아니다.민족의 사활과 관계된 사건이다.누가 왜 일으켰으며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떻게 살아 남았는가를 가르치는 것으로 국가의 존립과 민족의 생존을 가르쳐야 한다. 베트남 참전도 우리의 근대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중요한 역사적 사안이다.그것을 없었던 일처럼 ‘지워버린’것은 중대한 오류다.어떤 민족에게든 ‘살아남는 일’은 그 민족의 일차적 정의다.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국사’는 애국사의 성격을 담게 마련이다. 하물며 ‘6·25’나 ‘베트남 전쟁’은 세계사에 기록된 현대사의 중대한 국면이다.그것을 직접 당사자로 겪은 우리가 그 정당성과 타당성을 기술하는데 침묵하고 외면한다면 커다란 실책이다.반성할 일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반성하되 정당한 평가를 하고 새세대에게 밝혀 주어야 한다.그것이 정체성확립의 교육이고 국가관교육이다.그럼으로써 조국애도 기르고 국가에 공헌하는 길도 알게 해준다.따라서 이같은 문제는 정부부처간에 충분한 협의와 합의를 거쳐 보완되고 개정되어야 한다.
  • 한일·한영포럼 개막/양국협력·문화과학 교류 등 토론

    한국과 일본간의 우호협력 증진과 관계발전을 위한 제5차 한·일 포럼이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막됐다. 양국의 정계 학계 언론계 재계인사 등 각 20명이 참석한 이 포럼은 이날 양측 회장인 배재식 서울대 명예교수와 오와다 히사시 주유엔대사의 개회사에 이어 ‘한국과 일본의 국내정세’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뒤 이날 하오 리셉션과 만찬을 가졌다.포럼 참가자들은 6일에는 청와대를 예방한뒤 쉐라톤워커힐호텔로 장소를 옮겨 ‘북한문제와 한일협력’ 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또 마지막날인 7일에는 ‘동북아정세와 한일 안보협력’ ‘한일협력의 새로운 차원’ ‘한일교류 증진방안’ 등을 주제로 토론을 한뒤 양국간 교류를 체계화하기 위해 한일교류추진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교류기금 조성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서울성명’을 채택할 예정이다. 포럼에는 한국측에서 이부영 민주당 의원,신동원 전 외무차관,나웅배 전 부총리,안병준 연세대교수,손주환 서울신문사장 등이,일본측에서는 아사오 시니치로 국제교류기금이사장,마치무라 노부다카 중의원의원,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편 한국과 영국간 현안토의 및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민간차원의 한·영 미래포럼 5차회의도 이날 이틀간의 일정으로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개막됐다. 첫날 회의에서는 양국회장인 한승수 신한국당 의원과 앤서니 파랄 호클리 한국전 참전용사회 고문의 개회사에 이어 ‘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한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 ‘한국과 북아시아의 최근 개발’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6일에는 ‘한·영 양국 경제협력’ ‘교육,과학,문화교류’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뒤 폐막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측에서 이홍구 전총리,강영훈 세종재단이사장 등 50여명이,영국측에서 존 모건 전주한 영국대사,존 스탠리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 4자예비회담­한·미·중 입장

    한반도 4자회담 예비회담이 5일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차관보급 수석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역사적인 막을 올린다.어떻게 하면 북한을 한반도 평화의 틀로 끌어낼 것인지를 포함,4자회담 예비회담에 임하는 한국 미국 중국 등 3개국의 입장을 정리해본다. ◎한국/본회담 보장땐 태분야 탄력대응/긴장완화 등 기본의제 상정/식량지원·경협도 논의 “수용” 정부는 예비회담 개최로 4자회담 과정이 시작됐다고 보고 빠른 시일내에 본회담을 개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본회담 개최만 약속받는다면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융통성있는 자세를 취할 생각이다.예비회담에서는 절차적 문제만을 논의하자는 당초 방침을 바꿔 식량지원 등 실질적인 논의도 할 수 있다는 유연한 분위기다. 본회담 장소에 대해서는 ▲한반도내 개최 ▲4개국 순회개최 ▲제네바를 포함한 제3국 개최등 어느쪽도 좋다는 신축적인 태도다.대표단 수준은 장관급을 수석대표로 하고 차관급 교체수석대표를 두자는 입장이다.교체수석대표의 경우 4자회담 전담대사를 두는 방안도 고려중이다.정부는 또 본회담이 진전될 경우 지난 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교류협력분과위’ ‘남북군사공동위’ ‘남북핵통제공동위’ 등 항목별 분과위원회를 재가동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회담에서 정부는 4자회담의 기본의제로 평화체제 수립문제,긴장완화와 신뢰구축조치문제를 상정하고 대북식량지원과 남북경협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측에 전할 예정이다.긴장완화조치에는 ▲상호비방중지,남북간 인적·물적교류등 정치사회적 긴장완화 방안과 ▲대규모 군대이동 및 군사훈련의 사전통보,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남북한간 핫라인 설치,상호 군사관계자의 교류,전방에 배치된 병력의 후방배치 및 감축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방안이 포함돼 있다.그러나 주한미군 감축문제는 의제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이는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본회담 직결… 실질평화 구축/북 돌발행동 대비 단계적 제재완화 연계미국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 방안 논의를 위해 5일 열리는 4자회담 예비회담을 곧바로 본회담으로 연결시키고 이어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를 촉진시킴으로써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미정부의 입장은 찰스 카트먼 미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4자회담을 수락한 이상 이제 다음 단계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통일 등을 위한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그러나 “북한이 4자회담에 참석한다고 해서 미 적성국 교역법에 의거한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당장 해제하기는 어렵다”고 밝혀 본회담의 성사 등 향후 진전과 북한에 대한 단계적인 제재완화및 관계정상화를 연계시킬 방침임을 시사했다. 결국 미국은 이번 예비회담에서 남북대화를 촉진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우발적인 군사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핫라인 개설,군인사 상호방문,군사훈련 사전통보 등 양측의 신뢰구축방안을 본회담 의제로 포함시킬 것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동시에 북한의 식량난 해소,농업체계개선 등에의 지원의사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이미 성명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가장 민감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어 이번 예비회담은 본회담의 의제 채택을 둘러싸고 처음부터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미국측은 지난해 4월 제의 이래 예비회담까지만 16개월이 걸린 이 회담의 본회담 개최를 낙관하면서도 북한이 늘상 보여온 예측불허 행동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중립 표명속 발언권 제고 포석/남북 주도적 해결 강조… 미 세력확대 견제 중국은 4자회담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 입장이다.중국은 4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한반도 안정은 물론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에도 필요하고 유익한 일이라며 4자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국은 한반도문제,특히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4자회담의 주요 의제에 대해선 당사자라고 밝히고 있다.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정전협정 서명의 일원이란 역사적 배경등으로 중국은 이 문제에서 빠질수 없는 참여 발언권을 지닌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중국은 ‘직접 당사자’는 남북한이며 중국과 미국은 ‘당사자’라는 표현을 사용,입장과 역할을 구분하고 있다.우선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며 중국과 미국은 이를 부수적으로 보장하고 문제 해결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다시 말해 중국은 4자회담에 참여는 하지만 직접 당사국인 남북한간의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때 이를 무리하게 진전시켜 나가지 않고 지켜볼 것이란 이야기다.이점에서 과도한 영향력 행사도 자제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최근 몇년간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시도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미국세력 확대를 우려해 왔다.한반도문제에 대한 발언권 상실을 경계하며 미국세력의 한반도 장악을 견제하는 것도 중국의 적극적 참여 배경이다.중국을 배제한 한반도 문제의 해법은 없다는 것이 중국정부의 메시지다.북한이 주장한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아직 중국의 공식적인 반응은 없다.중국은 해외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대는 철수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지만 시기와 방법에선 북한의 주장과 이견이 있다. 중국은 한반도와 국토가 맞붙어 있고 한반도의 안정이 자국의 번영·안정에도 밀접하게 관계된다고 강조하면서 중국은 한반도의 안정및 평화유지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 강조한다.한반도문제에 대한 발언권 강조로 해석된다.그러나 중국정부는 4자회담에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것으로 전망하지 않고 있다.
  • 미 새 공참총장 라이언 지명

    【워싱턴 연합】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조기 사임한 로널드 포글먼 미국 공군참모총장 후임으로 마이클 라이언 미국 유럽공군사령관을 지명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공군사령관도 겸하고 있는 라이언 대장은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2년 전 단행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공습도 지휘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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