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전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최정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소풍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차선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 입주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98
  • 정부“인권보호”확고한 의지/미전향 장기수 2.25특면 배경

    22일 새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단행한 특별사면 및 복권의 핵심내용은 미전향 장기수 17명에 대한 조건없는 석방과 향후 특단의 조치 검토를 꼽을 수 있다. 미전향 장기수의 조건없는 석방은 새정부의 인권 보호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함께 대북 관계에서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39년째 복역중인 남파간첩 禹용각씨(71)를 비롯,형집행정지로 풀려나게 될미전향 장기수 17명은 지금까지 국제 인권단체 등에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거론해 왔다. 법무부는 이날 “고령으로 더이상 대한민국의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이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禹씨 등에게 공안사범에게 요구하는 준법서약서를 강요하지 않았다.준법서약서는 북의 가족에 대한 위협인 만큼 비인도적·반인간적행위라는 고려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일부 장기수는 검사들과의 개별면담을 통해 공개적인 준법서약은 곤란하지만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고가 없는 장기수들을 위해 서울 ‘만남의 집’,대전 ‘사랑의 집’ 등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생계대책까지 마련했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이날 특별사면 및 복권 기자회견에서 이들 미전향 장기수에 대한 특단의 조치와 관련,“지금 그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했으나 ‘북송’ 등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관계당국에서는 이미 각종 대화채널을 통해 북한당국과 이들의 처리문제를 놓고 어느 정도 논의가 이뤄졌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李인모 노인 북한송환 때처럼 아무런 대가없는 일방적인 ‘시혜’조치로 끝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인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간 협상에 따라 지난 87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중납북된 유학생 李在煥씨(37)나 같은해 납북된 동진27호 선장 崔宗錫씨(51)와의 맞교환이나,6·25참전 국군포로와의 맞교환 등도 실현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朴弘基 hkpark@
  • 金三雄 칼럼-장면박사 출생100년

    “자기의 명성이 자기의 진실보다 더 빛나지 않는 자는 축복이다”―인도시인 타고르의 말을 올해 출생 100주년을 맞는 제2공화국 張勉총리에게 드리는 헌사로 삼으면 어떨까. 격동의 현대사에서 장면박사처럼 잘못 평가된 정치지도자도 흔치 않다. 그가 이끈 야당과 시민 학생에 의해 타도된 독재자나 합법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가 ‘존경받는 인물’의 상위를 차지하는 반면 인격적이고도덕적인 품성과 자질로써 ‘단군 이래의 자유’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동시적으로 추진하다 좌절한 민주지도자는 망각되고 있다. 이것은 5·16이래 거듭된 군사쿠데타와 그 아류 정권에 의한 ‘승자의 기록’의 결과이지만, 진실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교사·언론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4월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장면정권은, 프랑스대혁명이 입헌군주주의자와 시민계급, 온건파와 과격파싸움으로 나폴레옹쿠데타를 불러오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사회를 구현한다면서 극좌·극우싸움의 혼돈끝에 히틀러 나치스를 맞았듯이, 집권8개월만에 박정희쿠데타로 붕괴되었다. [인간 장면의 인품] 역사상 대부분의 시민혁명이나 개혁이 쿠데타나 반동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처럼 장면정권 역시 5·16쿠데타를 겪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능과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혔으며, 독재자들이 역사인물로 격상되는 가치전도현상이 나타났다. 우리 현대사나 국민정신면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장면박사는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으로 평가된다. 한없이 온후하고 어진 분으로서 인자하면서도 강직하며 사려깊은 분이었다. 외유내강의 독실한신앙인이고 지식인이었다. 그는 ‘각하’의 호칭보다 ‘장박사’로 불리기를 원했으며 집권 8개월 동안‘단군 이래의 자유’로 불릴만큼 민주주의를 허용했다. 물론 무질서와 정치사회적 혼란이 따르기도 했지만 오랜 억압구조에서 시달리던 국민에게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반민주행위자와 부정축재자의 처단등 4·19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 너무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정권으로서의 시대적 한계와, 민주정치 제도에서 가장 운영이 어렵고 높은 민도와 양식있는 국회의원들을 전제로 하는 의원내각제에 발이 묶여서 과단성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따랐다. 여기에 야당의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이상주의적 조급성에 기운 혁신계와 일부 지식인·학생들의 급진적 통일론도 장면정권 좌절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평가와 교훈찾아야] 장면은 비록 군인들에게 탈권당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그가 한국현대사에남긴 족적은 너무 크다. 무엇보다 제3차 유엔총회 한국수석대표로서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는데 기여한 일이다. 또 6·25전란 당시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참전을 위해 발휘한 역량도 큰 업적이다. 특히 민주당을 결성하여 이승만정권으로부터 암살 저격까지 받으면서 끝까지 반독재투쟁을 벌인 것이나, 집권기 혼란속에서도 일관되게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착실히 마련한 것등은 큰 업적이다. 그러나 교과서적 민주주의나 미온적인 시국 대처는 프랑스혁명기와 독일 바이마르공화정 시기처럼 반동세력에게 기회를 주게 되고 결국 역사를 후퇴시킨 행위로서오늘의 김대중정부에도 교훈으로 남는다. 곧 시작될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장면박사의 재평가를 통해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고 제2공화국 좌절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데 있다.
  • 99지구촌 점검 NGO(5회)-군축-평화단체

    ‘전쟁과 무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가 간다.’ 핵무기를 비롯한 모든 살상무기를 제거해 전쟁없는 세계를 건설하려는 군축·평화 NGO는 세계적으로 5만여개.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군축 NGO들은 군비축소,반핵,난민구호,재래식무기 철거,최근의 대인지뢰 금지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동을 벌여왔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국제지뢰금지운동(ICBL)과 미국 최대 반핵단체인 피스액션(PA).91년 미국의 베트남 참전용사회를 모태로한 ICBL은 영국 다이애나비의 보스니아 방문을 주선해 대인지뢰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부각시켰다. 97년에는 미국의 대인지뢰 포기 선언과 132개국이 서명한 ‘대인지뢰금지협약'을 끌어냈다.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ICBL과 집행위원장 조디 윌리엄스(여·45)는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PA는 125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집회때마다 전세계적으로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위력을 발휘한다.2단계 전략핵무기 감축협상(START II)비준과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체결을 위해 세계 정상들을 강하게 압박했고핵실험을 재개했던 프랑스는 이 단체의 제품 불매운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의사와 과학자들로 구성된 군축·평화 NGO의 활약도 눈부시다.8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핵전쟁예방의사연맹(IPPNW)은 41개국 14만 5,000여명의 의사들로 구성됐다. 91년 이라크의 화학무기 살포를 최초로 폭로한 국경없는의사회(MSF)는 후원자가 70만명에 이르고 예산은 750억원에 달한다.북한의 식량난을 세계적인문제로 부각시키기도 했다.아인슈타인이 활동했던 시카고 핵과학자 협회(ASC)는 협회지 표지에 1947년부터 핵전쟁의 위협을 경고하는 ‘지구종말시계’를 게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군축·평화NGO는 개별 국가의 국방정책에 반하는 운동을 하기 때문에 거센장애가 뒤따른다.또한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철저한 정치적 중립이 살상의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비판도 있다.李昌求 window2@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자유부인’의 정치사회적 접근(1회)

    휴전 직후인 1954년 1월 1일부터 8월6일까지 ‘서울신문’에 215회(많은 연구서와 논문들이 8월 9일까지 251회라고 하나 잘못임)에 걸쳐 연재되었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두 달 남짓만에 서울법대 황산덕교수가 “대학교수를양공주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스탈린의 흉내”를 내는 작가의 고집으로 “중공군 50만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는 공격으로 야기된 논쟁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왜 하필 중공군 50만명인가란 문제는 한국전 때 참전했던 중국인민해방군의 숫자가 적게는 10만부터 많게는 100만명 설까지 분분한데 당시에는 대략 50만명으로 잡았던 데서 유래한 것 같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대목은 공격자가 매카시즘적 수사법을 태연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말하자면 이 소설의 작가는 ‘빨갱이’같은 한국사회 파괴범이라는 은유가 스며있어 휴전 직후의 상황에서는 끔찍한 사상적 표적사격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역사는 ‘자유부인’이 중공군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전후사회 체제를 공고히 다져준 유엔군과 같은 역할을 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지라 굳이 이 냉전체제의 낡은 논쟁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다만 황교수가 제기한 문제 때문에 ‘자유부인’이 윤리적인 측면에서만 논의되어 왔다는 점은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황교수가 첫 공격의 화살을 쏜 것은 ‘대학신문’ 1954년 3월 1일자였다.그러니까 ‘자유부인’의 장태연 교수가 아내를 찾아온 이웃집의 미군부대 타이피스트(황교수는 그녀를 양공주라 했다) 박은미양을 맞아 “감색 스커트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에 “별안간 가슴이 설레었다”는 유명한 장면이 나오고(이 소설 중 가장 에로틱한 장면인데 그 싱거움이라니!),그녀의 전화를 받고 아내가 사 준 약혼기념 회중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곤 돈 3,000원을 갖고 나갔으나 그녀가 낸 돈으로 영화를 한 편 보았으며,아내가 돌아오지 않은 밤 열 시 넘은 시각에 자신도 모르게 백지에다 박은미란 이름을 낙서하는 이야기가 2월 28일 경까지의 내용이다. 장교수의 아내 오선영은 옆집 대학생 신춘호의 방에서 춤을 배우던 중 “입술을 고요히 스쳐”가자 “그의 미지근한 태도에 오히려 불만”을 느끼는가하면 두 번째엔 짙은 포옹과 탱고 스텝으로 발전하며,화장품 상점 파리양행관리인으로 취직해 사기꾼 백광진과 사장 한태석을 번갈아가며 만나는 게 2월 말일 까지의 줄거리다. 1950년대 중반 무렵의 한국사회는 이혼율이 0.27%(1955년도 수치)에다 댄스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70여 여성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1954)이 터졌던가 하면 부산 피난 국회에서 개정된 간통쌍벌죄 형법의 첫 고소 사건(1954)이세인의 시선을 끄는 등에서 엿볼수 있듯이 윤리의 붕괴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었다.다만 춤다운 춤을 추자면 해군 장교구락부에나 가야할 정도로 사회적인 시설은 미비했었음을 이 소설은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황교수의 우려와는 달리 논쟁 이후의 소설 전개에서 장교수는 박은미를 처음 보았을 때의 에로티시즘에서 오히려 후퇴해 버렸는데,‘교수’의위신 세우기에 작가가 협조한 흔적이 역력하다.오선영은 신춘호와 세 번,한태석과 한 번,도합 네 번이나 육체관계 직전까지의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아이들이 부르러 오거가 오빠나 남편이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본처가 미행하다가 현장을 덮치는 등 번번이 방해 당하고 만다. 결국 ‘자유부인’은 ‘자유를 꿈꾸는 부인’으로 자유의 미수에 그치고 말았는데도 세인들은 이 소설의 윤리적인 측면만을 주시해 왔다.그러나 작가는 신춘호의 뺨을 쓸어주는 오선영을 “젊은 대학생이 제멋대로 씨부리는 말을 그대로 믿고” 황홀해 하는 어리석음을 꼬집으며 결국은 가정의 소중함을깨닫는 귀가형 결말로 대미를 장식하지 않았는가. [任軒永 문학평론가]
  • 백범 41년 7월 2차대전 미국 참전 예견

    “박신애 누이 보시요.그간에 편지를 하랴고 하였지만 년전에 알튼 각기가발작이 되여서 고생을 하고 둘제(둘째)로는 중경에 공습이 심하여서 방공동(방공호)으로 피란하러 다니고 또는 더위가 백여도까지 더워서 잇때까지 집필을 못하였소…” 백범 金九 선생 서거 50주기를 앞두고 선생이 중경(重慶)임시정부 시절 하와이 거주 재미동포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처음 공개됐다.‘박신애 누이 보시오…’로 시작하여 ‘오라비 金九’로 맺고 있는 이 편지는 백범이 평소 남매간처럼 가깝게 지낸 지인에게 보낸 사신(私信).그러나 이 편지에는 당시 중경의 전황(戰況)과 재미교포사회의 이야기 등도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우수하다. 1941년 7월 25일자로 작성된 이 편지에서 백범은 “지난 유월 오일 중경에서 큰 불행한 사건으로 숨이 막혀죽은 수 천명의 송장뎅이를 친히 봤소”라고 적고는 “이제 미국이 참전하는 날이면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날이니 세계낙원 하와이 동포들도 우리와 같이 방공동 생활을 하시리라 생각하오”라며 “공습 피난명령이 내리면 명령대로 꼭 피하시오”라는 ‘오래비’의 당부의 말도 잊지않고 있다.편지에서 백범이 언급한 ‘불행한 사건’은 일본군이 41년 6월초 ‘중원(中原)작전’이란 이름하에 일본해군 항공대가 중경을 8차례나 맹폭한 것
  • 한국전 사망 60여 무명용사 하천변 가매장 48년 방치

    6·25전쟁 당시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했다 숨진 60여명의 무명용사들이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천변 묘지에 가매장된 채 50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어 적절한 조치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1일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동 주민들에 따르면 이 집단 무덤은 대천동 강정초등학교 부근 하천변인 ‘난쟁이도’ 일대에 비문도 연고자도 없이 방치되고 있다.이곳에 묻힌 무명용사들은 17∼40세의 나이로 50년 12월 국민방위군으로 입대해 북한 인민군과 싸우다 1·4후퇴 당시 제주도까지 내려온 후 강정초등학교에 수용됐다가 기아와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서귀포시는 이들의 구체적인 신원을 모른다는 이유로 충혼 묘지로 이장 등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매년 한차례 벌초나 주변환경 정비에 그치고 있다.제주 l 金榮洲 chejukyj@
  • 대한광장-1999년,과거와 미래의 기로

    국회는 529호실 사건으로 여야가 극한적인 대립과 정쟁의 모습을 보이고,여권 내에서는 내각제 문제로 물밑 암투가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새해 벽두,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지난 11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매닝(Robert D.Manning)은 ‘시한폭탄’이란 글에서 북한의 금창리 시설 문제로 부각된 핵위기가 94년의 그것보다심각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그렇다면 94년의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그 위기의 전말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북한의 핵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한반도는 돌연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고,주한미군은 전쟁시나리오 OpPlan 5027을 마련하였다.오버도퍼(Don Oberdorfer) 시갈(Leon V.Sigal) 등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그해 6월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에 와 있던 딸과 손자·손녀에게 ‘3일 내로 한국을 떠나라’고 할 정도로 전쟁은 긴박한 것이었다. OpPlan 5027에 의하면 54만5,000명의 미군이 참전하여 4개월 정도의 강도높은 전쟁을 수행하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지만 미군을 포함한100만명 정도의 인명 손실,북한 미사일에 의한 남한과 일본의 핵발전소 파괴와 광범위한 방사능 유출,서울·경기지역의 파괴와 남한 경제의 붕괴,1조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전쟁비용 등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당시 집권초기의 클린턴 행정부가 전쟁을 선택할 경우,공약한 수많은 국내외 과제들을 연기해야 했고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도 전쟁에 반대하여 결국 클린턴 대통령이 제3차 북미 고위급 협상을 제안하는 등 외교적 해결로 급선회하기 시작하였다.이후 카터의 방북 중재로 남북정상회담까지 약속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그런데 최근 미 언론인 핼로랜(Richard D.Halloran)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침략으로 보며 북한의 정권을 대체하는 전면전으로 나아간다”는 주한 미군의 새로운 전쟁계획을 보도한 바있다. 새해,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으로 공식일정을 시작하여 “위기를기회로 극복하자”고 표명하였으며 1∼2월 한반도에는 또다시 북한 핵문제의 높은 파고가 예상되고 있다.물론 1994년과 1999년은 여러모로 다르다.그러나 현재 한반도에서는 무력성이 노정된 휴전체제의 새로운 재편을 앞두고 화전양면의 대립과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전략적 상황은 유사한 것이다.휴전협정이 반세기간 한반도를 지배하였듯이 새로운 체제는 상당기간 우리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우리가 20세기의 낡은 유물에 여전히 얽매일 것인가,아니면새로운 21세기로 나아갈 것인가의 갈림길은 다름 아닌 이 문제의 해결에서비롯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전쟁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기대하지만 OpPlan 5027에서 볼수 있듯이 전쟁은 북에는 물론 남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때문에 우리가5년 전의 위기국면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정부의 햇볕정책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강화되어야 한다.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의 통합작전,나아가 일본군과 우리 군대의 공동훈련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제도적 평화정착은 더욱 더 필요한 것이다. 여야 대립,내각제,정계개편 등도 모두 이유있고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도정착이란 역사적인 틀에서 수렴되어야한다.이러한 새해의 소망이 지나친 것인가.그렇다면‘21세기’니 ‘미래’니 하는 섣부른 기대어들은 삼가자.차라리 그냥 과거처럼 이해관계를 위해서라고,솔직해지기나 하자. [都 珍 淳창원대 교수·한국사]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주한 영국대사 스티븐 브라운

    ‘민주주의와 경제의 병행발전’을 모토로 한 지난 1년 동안의 金大中대통령의 활발한 실리 위주 정상외교는 한국을 국제외교의 중심으로 도약케 했고또 IMF체제 탈출의 돌파구를 열게 했다.세계 주요국과 진정한 21세기 동반자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순발력,돌파력,격식파괴 등 ‘DJ식 외교스타일’의 파장을 주재국 대사들을 통해 들어본다.▒먼저 현재의 한·영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여러가지 이유에서 양국관계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선 통상분야의 경우 지난 98년 영국의 한국 수출은 50% 감소했지만 한국의 영국 수출은 5%나 증가했습니다.영국은 유럽의 한국 수출시장인 셈입니다. 영국의 대한 투자도 관계변화의 일면입니다.종전에는 한국의 대기업이 영국에 투자했지만 지금은 반대현상이 일고 있습니다.지역안보 측면도 공고합니다.영국은 한국전에 참전했고 정치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현재 미국과 북한은 금창리 지하시설 사찰을 위한 협상을 진행중입니다.영국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방안은 무엇입니까. 정치적으로 영국은 4자회담과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합니다.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기를 권고했고 경제·사회 개방과 긴장완화를 위한 남북한 협상을 촉구해왔습니다.또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오는 4월로 계획된 엘리자베스 여왕의 한국 방문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여왕의 방문은 정치와는 무관합니다.金대통령께서 지난 4월 영국 방문시 방한을 정식으로 초청했고 여왕께서 응한 것입니다.여왕은 1년에 단 두번 해외방문을 합니다.한번은 영연방국가를 방문하고 다른 한번은 영국에 중요한 국가를 방문합니다.바로 여기에 한국 방문의 의미가 있으며 양국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한국정부는 현재 외국인 투자를 경제위기 극복차원에서 적극 유치하고 있습니다.꼭 필요한 정책적 노력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정부는 외국인 투자가에게 ‘공개적이며 투명한’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따라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노동법의 유연화와 토지의 정부매입 지원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 봅니다.▒한국정부는 외자유치와 함께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부문 축소도 강도높게추진하고 있는데 영국의 경험이 도움이 될까요. 영국은 지난 20년간 구조개혁을 추진한 결과 경제 체질이 강건해졌습니다.먼저 기업에 질의서를 보내 정부와 국민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했고 중앙정부와 독립된 기관을 만들어 개혁업무를 담당하게 했습니다.이 기관은 자체예산과 인력을 확보,특별업무를 수행했습니다.정책적인 쟁점이 생길 때만 중앙정부와 협의를 했습니다.정부는 더 이상 기업을 경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민영화도 성공적으로 진행됐습니다.▒올초 유럽 11개국은 유로를 출범시켰는데 영국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향후 가입가능성과 시기는. 유로체제와 관련,영국의 입장은 분명합니다.유로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현재 경제여건을 고려할 때 지금 가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 정부 외교문서 공개

    지난 68년 1월 23일 발생한 미해군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사건 직후 한·미 양국이 대응방식을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다.이같은사실은 ‘생산·접수후 30년 경과 외교문서의 공개' 규정에 따라 외교통상부가 13일 공개한 ‘1·21 무장공비 침투와 푸에블로호 납북 관련 외교문서'에 담겨있다. 당시 한·미 갈등은 1·21사태에 대한 미국의 소홀한 대처에서 비롯됐다.미국은 1·21 청와대 기습사건을 단순한 무장공비 사건으로 취급했다.백악관국가안전보장회의도 열지 않고 주한미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이 문제를위임,한국의 대북 강경대응을 억제하는데 주력했다. 이틀후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하자 1·21사건과 연계처리하자는 한국의 주장을 무시하고 미국은 북한과 비밀협상에 나서 승무원 송환을 위한 판문점회담을 성사시켰다.푸에블로호의 유엔 안보리 상정과 관련,한국은 안보리 상정은 북한에게 선전장을 차려주는 것이라며 반대했으나 미국은 남북한의 동석을 요구,갈등을 빚었다.사건 발생 열흘이 지난 2월 2일 당시 외무장관이주한미대사에게 “1·21사건과 푸에블로호를 똑같이 중요시한다”는 각서를 썼다.각서에는 물론 판문점 북·미회담에 한국군이 참석 못해 유감이란 우리의의사도 명시됐다.또 사건 종료직후 미국은 대북 사과문 합의 경위를 담은 해명서를 한국에 전달했으나 한국은 이에 불만을 품고 돌려보냈다. 한국은 푸에블로호 사건 직후 프랑스,태국,콜롬비아,남아공,에티오피아 등한국전 참전 16개국을 대상으로 대북규탄과 한국지지 성명을 얻어내려 했으나 미국의 소극적 자세로 실패했다.한국은 또 미국정부가 북한에 의한 억류선원을 중시,1·21사건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인데 대해 항의하고 그 대가로 군사원조 확대를 요청했다.3월 28일 주미대사관이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는 미 국방부 차관보가 하원외교위에 나가 한국군 전투태세 개선을 위해 69년 군사원조예산 4억2,000만달러 전액의 승인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 발목절단 회한의 눈물/全永祐 사회팀(현장)

    “제가 꾸민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자식들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22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강남성심병원 병실.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양발목을 절단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丁모씨(51·서울 금천구 독산동)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보험금을 타 3억8,800여만원에 이르는 빚을 갚으려던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 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눈을 의식한 듯 가족들도 병실방문을 꺼렸다. 丁씨는 자작극임이 밝혀져 불입금 등 일부 이외에는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데다 1급 장애로 인해 생활능력을 잃었다. 게다가 당장 1,000만원에 이르는 수술비와 입원비,진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다. 또 상처부위가 아물지 않아 무릎 아래 20㎝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다시 받았다. 丁씨는 발목을 자르게 된 이유를 묻자 “오죽하면 다리를 잘랐겠습니까…”라는 말만 되뇌였다. 충남 홍성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68년 서울로 올라온 丁씨는 검정고시를 통해 K대 법대에 입학하는 등 유망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월남전에 위생병으로 참전했다가 마약에 손을 대 이등병으로 강등,불명예 제대했다. 그 뒤 대학도 중퇴하고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그럭저럭 살만했으나 96년 주식투자와 사채에 손을 대면서 엄청난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보험금을 타내려는 계획을 세웠고 돈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丁씨의 창백한 얼굴은 창밖의 겨울만큼이나 춥고 쓸쓸했다.
  • 金大中 대통령 과거사 언급은 “미래지향” 메시지

    ◎“냉전의 세계사속 불행 겪었던 시기”/국군파월 우회 표현 【하노이 梁承賢 특파원】 베트남을 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의 정상외교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두나라 과거문제에 대한 언급과 호치민 묘소 참배이다. 베트남이 외교적으로 아무런 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金대통령은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을 르엉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공식 거론했다. 요지는 ‘냉전이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도 있었으나…’이다. 비록 우회적인 표현이나 한국군의 참전을 확인시켜주는 언급이다.金대통령은 16일 르엉 국가주석 초청 만찬에서도 “두나라 사이엔 불행했던 과거도 있었다”는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金대통령의 언급은 한때의 불행을 극복하고 이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자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이를 위해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가자는 외교적 구상이다. 베트남인들이 국부로 추앙하는 호치민 묘소의 참배 및 헌화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이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양국관계가 그만큼성숙했다는 의미이자 베트남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인식 또한 크게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金泳三 전 대통령은 지난 96년 11월 베트남을 방문했지만 외교관계자들의 건의를 물리쳐 가면서까지 끝내 호치민 묘소를 참배하지 않았다.반미(反美)전쟁을 주도한 공산혁명가였던 호치민의 부정적 이미지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정부의 한 외교관계자는 “베트남인들은 자국에 대한 최고 예우를 호치민묘소 참배와 헌화로 보고 있다”며 “金대통령의 묘소 참배와 과거문제 언급은 곧 양국 관계발전의 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즉 정상의 확고한 의지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행보라는 것이다.
  • 국군포로 2명 3국 거쳐 귀환

    국가안전기획부는 6.25 참전 중 중공군 포로가 돼 북한으로 끌려간 朴동일(71)·金복기씨(67)와 이들의 가족 2명이 최근 북한을 탈출,제3국을 거쳐 귀환해왔다고 14일 발표했다.국군포로 귀환은 趙昌浩·梁珣瑢·張茂煥씨에 이어 네번째다.함께 입국한 金씨의 차남 영구씨(31)와 朴씨의 4녀 정심씨(30)는 91년 4월 결혼한 부부다.
  • 호치민/李慶衡 논설위원(外言內言)

    金大中 대통령은 15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정상회의에 참석중 베트남을 국빈방문,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호치민(胡志明)묘소를 참배할 예정이다. 베트남 민족의 위대한 ‘붉은 별’로 추앙을 받고 있는 호치민(1890∼1969)은 프랑스 식민지 치하의 베트남 북부 예안에서 출생,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아래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베트남 독립의 초석을 닦은 인물. 그가 사망한지 30년이 가까운 오늘날까지도 베트남 국민들의 정신적 우상이 되고 있으며 언제나 다정한 ‘胡아저씨’로 통하고 있다. 호치민은 청년기에 고국을 떠나 파리 등 해외에서 30년간을 보내며 혁명의 지도자로 성장했고 51세 때 귀국하여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을 결성해 주석자리에 올랐다.2차 대전후 프랑스가 영국·중국과 거래끝에 베트남 전역에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는 대불(對佛)항전을 시작했다. 프랑스와의 전쟁은 1954년 그의 동지인 지압장군이 이끈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으나 이어 체결된 제네바평화협정으로 베트남은 북위17도선을 경계로하여 남북으로 분할되고 말았다. 프랑스군이 물러나자 동서냉전체제하의 미국이 그 공백을 메웠고 1960년대에 접어 들어서는 베트콩·북베트남(越盟)과 미군이 맞붙은 ‘정글속의 지루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가 사망한지 6년 뒤인 75년4월 월맹은 월남을 적화하고 전체 베트남을 통일하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월남전 참전기간(64년 9월∼75년 4월)동안 연인원 31만명의 장병을 파견했고 이중 4,624명이 전사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호치민의 월맹군과 베트콩을 상대로 피를 흘렸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국제사회에선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96년 당시 金泳三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했지만 베트남측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월남참전의 과거사를 의식,호치민묘소를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金대통령의 호치민묘소 참배는 양국이 솔직하게 구원(舊怨)을 씻고 양국관계를 한 단계 끌어 올려 놓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인 것같다. 우리로서도 이제 베트남 인민들이 국부(國父)로 우러러 보는 호치민을 그들의 입장에 서서,그리고 우리만의 존재가 아니라 상호간의 관계속에서 바라보는 성숙한 외교적 시각을 가져볼 시기가 온 것 같다.
  • 빨치산 루트 관광코스 만든다/하동군,내년부터 2억원 들여 개발

    절경(絶景) 못지 않게 ‘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의 빨치산 활동장소들이 관광코스로 개발된다. 경남 하동군은 6·25 전쟁 당시 지리산 빨치산들의 루트와 아지트를 복원해 문화관광코스로 개발하겠다고 9일 밝혔다. 하동군은 이를 위해 내년부터 2년간 2억원을 들여 군내 지리산 지역인 화개와 청암지구의 빨치산 근거지를 복원할 계획이다. 군은 빨치산이 활동했던 지난 48년부터 55년까지 8년 동안 큰 전투나 사상자가 많은 지역에 대해 대·소형 안내판을 설치하고,이들 지역을 연결하는 등산로를 재정비하는 한편 관련자료와 참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토굴 등 빨치산 근거지를 복원할 방침이다. 군은 부군수를 위원장으로,당시 빨치산 토벌에 참여했거나 납치된 토벌 중대장 등 14명으로 ‘빨치산루트 개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들은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사료를 토대로 아지트,활동루트,주요 격전지 등을 현지 답사할 예정이다.
  • 프로레슬러 출신 미네소타 주지사 벤추라(뉴스 인사이드)

    ◎허위 군경력으로 곤욕/“베트남전 특수공작요원 참전 무공훈장 받았다” 자랑/전 주정부 1등서기관 “새빨간 거짓말쟁이” 공개 비난/군기록은 보급계요원… 반론거리 없어 논란 계속될듯 미국의 ‘11월3일 중간선거’에서 일약 미네소타주지사로 당선,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제시 벤추라가 다시한번 지구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인 벤추라는 정치경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 양당의 막강 경쟁자들을 물리쳐 중간선거 최대의 화제가 됐던 인물.당시 CNN등 미국 언론들이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경악할 정도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국의 주간지 글로브는 최신호에서 프로레슬러 외에 영화 ‘프레덱터’와 ‘배트맨과 로빈’ 등에도 출연했던 벤추라가 주지사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군대경력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중간선거때 벤추라는 자신의 터프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로 혁혁한 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떠벌렸다.다른 후보들과 달리 자랑삼을 경력이 없었던 그가 베트남전의 전쟁영웅으로 자신을 묘사했던 것. 비장의 ‘출세 무기’가 시비거리가 된 것은 최근.미네소타주 정부에서 1등서기관으로 일했던 딕 프란슨(69)이 이같은 그의 군 경력은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이라고 공개 비난하면서 시작됐다.벤추라의 주지사 입성으로 퇴출까지 당하자 프란슨은 아예 벤추라를 ‘새빨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요원으로 최전방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과장된 것으로 진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벤추라는 “맹세코 당시 전장에 있었으며 매일 600달러의 위험수당도 받았다”고 맞서고 있지만 정작 확실한 반론거리는 내세우지 못해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한편 글로브지는 자체 조사를 해본 결과 벤추라는 해군 특수부대에서 기본적인 훈련과정을 마쳤으며 베트남전이 끝나갈 무렵인 72∼73년에는 미군 해군기지가 있는 필리핀의 수빅만에서 복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군 기록에 따르면 벤추라는 군수품 수송을 위한 보급계 요원이었지 베트남에 침투할 특수공작 대원은 아니었다는 것.이와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해 받았다는 무공훈장 역시 특수부대의 기본적인 훈련만 수료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던 ‘졸업메달’ 같은 것이었다고 글로브지는 전했다.
  • 美 정계서 立身한 자랑스런 코리안/孫薰(해외기고)

    ◎성실·정직·실력으로 무장/미 정치문화 원리 철저 체득/한인들 권익신장 토대 마련/양국 유대관계 증진 큰 기대 지난 11월3일 미 중간선거에서 60대 한국계 노신사 신호범(미국명 폴 신) 박사가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내에서도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인 시애틀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넘어 당선됐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신박사는 6개월간 2만7,000가구의 지역구내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선거구민과 악수하는 등 풀뿌리 정치에 심혈을 기울였다.자신이 한국전쟁의 고아였다고 말문을 연 그는 어린 나이인 50년대 미국에 입양돼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피부색깔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대를 기초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현재 워싱턴,오리건,아이다호,몬태나주 등 서북미 4개주에는 재미동포 1.5세,2세 정치인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2선 의원이자 20억달러에 달하는 시예산을 다루는 예산위원장인 마사 최 시애틀 시의원,보잉사 엔지니어면서 75%의 압도적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이승영 쇼라인 시의원 등 한인출신 정치인들이 미국 본류사회에 파고들어 재선을 거듭하면서 내일의 유망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또 미 본류사회에서의 한인 권익신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참여할 2,3세 예비 정치후보자군이 성장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곳 정치문화에 순응해야 한다.정직과 공정을 생명으로 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그대로 적용되는 미국선거와 정치에서 정치인으로 입신하기 위해선 이러한 원리를 철저하게 체득하는 게 선결과제다. 신의원의 승리는 이러한 명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결과다.성실과 정직,겸손과 실력,그리고 전문성과 용기에 더해 유창한 영어로 무장하고 선거자금과 관련한 선거법의 철저한 준수가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신의원의 당선은 그가 최근 몇년간 연방하원,주·부지사 선거에서 연속 패배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의원의 탄생으로 서북미 한인동포들은 크게 고무돼 있고 어려운 이민생활과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본류사회에의 정치적 참여를 기초로 한 동포사회의 발전은 우리 정부의 주요한 동포사회정책 목표의 하나기도 하다.동포의 권익보호 및 증진 등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선 한국계 정치인의 활발한 미 의회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의원이 혈맹으로서 한국과 미국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서북미지역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특히 워싱턴주는 미국내 한국전 참전용사가 가장 많은 주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다.워싱턴주에게 있어 한국은 제4의 교역대상국으로 상호 통상규모가 연 70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한국의 대미 총수출의 약 10%가 이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와같은 워싱턴주와 한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 제반분야에서의 한국과 워싱턴주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한 신의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게리 락 워싱턴주지사는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전북 柳鍾根 지사의 초청으로 내년중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신의원은이 방문에 동행,한국과 워싱턴주간의 통상교류 증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 ‘병역비리’ 공방속 ‘9형제 복무’ 화제/국감 이모저모

    ◎환란 책임문제 싸고 진통/서울시 감사 2시간여 늦어져 국회 국정감사 열이틀째인 3일에도 여야 의원들과 피감기관 사이에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계속됐다. ▷병무청◁ ○…국방위의 병무청에 대한 국감에서는 병역비리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전이 벌어졌다. 적잖은 상류층 인사들이 병역기피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군 복무기간을 합치면 81년이나 되는 9형제 얘기가 으뜸 화제로 부각됐다. 현재 소령으로 복무중인 막내 南相馝씨(41)와 여덟명의 형들이 그 주인공. 장남 相赫씨(73·일등중사 예편)등 3명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2남 相起씨는 50년 임진강 전선에서 일등병으로 전사했다. 8남 相喆씨(중사 예편)는 해병대 출신으로 2년간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조부도 1882년 임오군란 당시 正衛(현재 대위)계급을 단 군인이라는 설명이다. 국민회의 林福鎭 의원은 이날 “참 군인을 많이 발굴해내 모범병역상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 ○…행정자치위의 서울시 감사에서는 전날 경기도 감사에서 논란을 빚은 ‘환란 책임문제’와 ‘DJ비자금 조성 조작유포’ 문제를 둘러싸고 무려 2시간20분 늦게 시작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한나라당측은 이날 林昌烈 경기도지사를 지목,국가 환란의 책임문제를 또다시 거론했다. 이에 秋美愛 의원이 “李會昌 총재가 있는 한나라당 姜모의원 등이 환란 책임을 호도하기 위해 DJ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맞받아쳤다. 한나라당측은 李총재 모독에 대한 사과와 속기록 삭제가 안되면 감사를 거부하겠다고 버티다 간사간 격론 끝에 ‘환란주범’ ‘DJ 비자금조성 조작유포’란 단어를 속기록에서 삭제키로 하고 감사에 들어갔다.
  • 에티오피아 총리 내한/오늘 金 대통령과 회담

    金大中 대통령은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경제협력 방안과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한다.이날 저녁에는 金대통령 내외가 청와대에서 베푸는 공식 환영만찬이 예정되어 있다. 이에 앞서 멜레스 총리는 민간경제사절단 57명 등과 함께 25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방한했다. 이번 방한에서 멜레스 총리는 대우자동차 공장,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탑 방문,수출 및 투자진흥 세미나 등에 참석한뒤 28일 이한한다.
  • 개혁·경제 활성화­삶의 질 향상/金 대통령 시정연설 함축

    ◎‘미래지향적 국정 수행’ 의지 金大中 대통령은 19일 金鍾泌 총리가 국회 본회의에서 대독한 ‘1999년 정부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 전반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정책방향과 내년도 예산편성의 기조를 밝혔다.시정연설은 크게 지속적인 개혁과 경제활성화,삶의 질 향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분야는 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의 구조조정작업을 조기에 매듭짓고,경제활성화와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또 공직사회 및 정치권의 개혁을 위해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고,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지속적으로 척결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사회복지분야는 삶의 질 향상,교육분야는 학생들을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해방시키고,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이밖에 통일·안보·외교분야에서도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특히 북한측에 남북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겨레의 염원에 호응하고,이산가족문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촉구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이같은 국정운영방안을 바탕으로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밝혔다.우선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적자규모를 GDP의 5%수준으로 확대,사회간접투자 규모를 올 예산보다 20.5% 늘렸다.실업자와 저소득층의 지원 확대,환경개선 등 삶의 질 향상에 주력하고,국방·농업·교육분야의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예산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주력했다.공공부문의 고통분담과 경영쇄신을 위해 공무원의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고 공직사회에 연봉제와 성과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99년에는 IMF체제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2000년부터는 재도약을 반드시 이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게 金대통령의 마지막 다짐이다. □金 대통령 시정연설에 담긴 분야별 주요시책 ●경제 ­금융,기업,노동부문 구조조정 마무리 및 지원 ­재정적자 GDP 5%수준 확대(경부고속철 인천국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등 대형국책사업 투자) ­외국인 투자확대를 위한 제도정비 및 지원책 강구 ­과감한 규제개혁 추진,각종 인허가 제도 및 경제규제 과감한 철폐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활동지원 강화 및 지역개발사업지원 ­농어업구조개선사업추지,농수산물유통구조개선사업 적극 지원,21세기 환경보전형 농업육성 ­과학기술개발과 정보화 사업 투자확대 및 출연연구소 책임경영체제구축,컴퓨터 2000년 대책수립 ●사회 복지 ◇복지 ­사회보장 5개년계획수립,사회안전망 체제완비 ­생활보호대상자,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 및 자활자립기반 확충 ­4대 의료보험 통합,의료보험급여기간 330일 확대,국민연금제 도시지역주민 확대,공공근로사업확대 ◇환경 ­물관리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다목적 댐 건설 및 광역상수도 지방상수도 확충 ­4대강 수계별 권역별 지천별 수질개선대책 수립 시행. 한강수계 2005년까지 1급수개선 물이용 부담금제 도입,상류지역 주민 지원. ­쓰레기 종량제 정착과 포장 폐기물,음식물 쓰레기 발생 억제. 폐기물 처리시설 확충 ­저공해 자동차 공급 확대 및 오염물질 배출 규제 강화 ­환경 인구 교통영향평가 통합제도 도입 ­첨단 환경기술개발 투자확대 ◇여성 ­여성의 사회적 역할 증진을 위해여성정책 기본계획 지속추진 ­고용현장에서의 여성지위보장 및 실직여성가장 생활안정지원 ◇유공자 ­국가유공자 의료복지서비스 향상. 참전군의 지원기금 확충 및 고 엽제 피해자 의료혜택 확대 ­대한민국 임정 수립 80주년 기념사업 추진 ●교육 ­대학입시제도 학교장 추천제를 근간으로한 무시험 전형 확대 ­학생 인권선언 제정 ­학교급식 확충 및 결식아동지원 ­세계적인 대학원중심대학 및 학부중심대학 육성 ­아래로부터,그리고 현장중심의 교육개혁 ●문화 ­디자인 영상 애니메이션 게임사업 등 문화사업육성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경복궁 복원사업 백제역사복원사업추진 ­관광지원 개발 ­2002년 월드컵대회,부산아시아경기대회 지원,생활체육육성 ●공직기강 ­투명한 정부구현을 위한 국가시책 심사 및 평가기능강화 ­음성불로소득자 세무조사,불공정 거래행위단속 강화 ­중하위직 공직풍토개선 ­부패방지대책수립 ●통일 안보 외교 ◇통일 ­북한의 무력도발 불용과 흡수통일배제,화해협력이라는 대북정책 3대원칙 아래대북 공존 공영관계정립 ­남북상설대화기구 설치와 특사교환 추진 ­이산가족 문제 해결 ­민간 차원의 경제교류 활성화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추진 ◇안보 ­안보태세 철저 확립,방위력 개선사업,장병처우개선 및 사가진작노력, 한·미 방위 태세와 주변국과의 안보협력증진 ◇외교 ­미·일 우호적 관계심화 및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호혜적 관계강화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와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협력강화 ­550만 재외동포 적극 지원 ●정치 ­정경유착 단절을 위한 지속적인 부정부패척결 ­국회제도 정당제도 선거제도 개혁
  • 방송인 서유석­가수 안혜경(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말한다:11)

    ◎현실비판·운동권 노래… 고난의 ‘언더’ 인생/가수·방송인 서유석/유신반대 ‘맷돌’ 공연중단 시련/심의 묶인 금지곡만 10여편/방송에서도 강한 정치풍자/‘윗분’에 밉보여 도중하차 가시밭길 “가는세월 그 누구가/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막을 수가 있나요/…/이내몸이 흙이돼도/내마음은 영원하리”(가는 세월). 70년대 텁텁한 목소리로 사회성짙은 노래를 부르던 청년문화의 기수 徐酉錫씨(53)의 대표곡이다. 가수와 방송인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낸 徐씨의 체념한듯 하면서 굽히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徐씨가 부른 노래는 ‘가는 세월’ 말고도 창작곡만 70곡. 1985년 마지막 레코드 ‘뚝잘라 말해’를 발표할 때까지 낸 음반도 11집이나 된다. ‘타박네’‘파란많은 세상’‘세상은 요지경’‘대답은 없어라’ 등 심의에서 묶인 금지곡도 10여곡. 이가운데 녹음을 끝내놓고도 가사내용 때문에 레코드를 수거당했던 ‘마지막 노래’는 2년뒤 다른 가수가 불러 심의를 통과한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교통관련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20년째 맡아 이젠 가수보다 방송인과 교통 전문가로 더 알려진 徐씨. 세월은 흘렀지만 사회성 짙은 ‘운동권 가수’로 찍힌뒤 극적으로 시작한 방송인 생활의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균관대 졸업무렵 학교앞 카페 ‘카사노바’에서 지배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금직전 具鳳書씨가 徐永春씨(86년 작고)등 연예인들과 함께 들러 徐씨의 노래를 청해 듣고 다음날 다시 TBC 쇼프로듀서와 함께 들러 徐씨를 소개했다. 그 다음날 곧바로 쇼쇼쇼에 출연한게 가수 생활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대학시절 핸드볼선수 경력을 살려 한동안 직장 핸드볼선수로 활약하며 안양예술인학교에서 묵고 있던 70년도 봄이었다. 신세계레코드사 작사가가 찾아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본뒤 주제가 ‘어타임포어스(A time for us)’를 번안해 레코드를 취입하자고 했다.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옴니버스 레코드 타이틀사진으로 실렸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徐씨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이때는 매일 YWCA강당에서 ‘청개구리모임’을 갖던 시절. ‘청개구리’가 알려지면서 통기타 언더그라운드 계열 가수들이 모인게 바로 ‘맷돌’이다. 매주 수요일 명동 코리아나백화점 강당에서 자작곡 공연을 가졌는데 ‘군사독재반대’‘유신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14회 공연도중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끝이 났다. 그리고 73년 4월 TBC 심야 라디오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가을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이 제2차 한국군 월남파병 압력차 방한했을 때다. 방송도중 UPI 종군기자의 월남전 참전미군의 만행을 기록한 ‘추악한 미국인’을 죽죽 읽어내렸다. 즉각 중앙정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잡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방송국 앞 목욕탕으로 도망,4일간 숨어 지냈다. 그리고 3년간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금지됐다. 그때 당국이 대마초사건을 핑계로 대중가수들을 줄줄이 묶어 들여 빈사상태에 빠진 연예계의 대안을 찾던중 徐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전까지 내려와서 상경을 권유해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그리고 당국의 통제를 시험해보기 위해 취입한 노래가 ‘가는 세월’이다. 그때 MBC 라디오에서 ‘정오의 희망곡’ 진행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당국의 입김이었다. 같은 방송 라디오프로 ‘안녕하십니까 서유석입니다’와 TV프로 ‘여의도1번지’를 맡아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77년 ‘푸른 신호등’을 맡아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무렵 청와대로부터 진행자 교체지시가 떨어졌다. 프로 시작전 항상 정치판과 사회비리를 강도높게 비판한게 문제였다. 그후 동아방송으로 옮겨 ‘명랑 교차로’를 맡았다가 시사풍자 코너 ‘형님 이래도 됩니까’로 인해 79년 단명으로 끝났다. 81년 ‘푸른 신호등’을 맡았고 이후 지난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때까지 이 프로를 진행했다. 15대 총선이 끝난뒤 지금까지 줄곧 교통방송 ‘출발서울대행진’을 맡고 있다. 교통관련 논문도 2편을 발표하고 (주)다물대표로 교통관련 기기를 2건이나 상품화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70·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통기타 가수들은 현실과 벗어난 노래를 부르기가 어색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 부도덕을 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니 당연 제약이 많았고 음악계로서도 퇴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수 안혜경/반체제로 옥고 아버지에 영향/성악도서 운동권 가수 변신/계엄령 속에서도 민중가요 배포/여성밴드 결성 ‘저항 노래’ 197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대학가에서 변함없이 불리는 ‘민주’란 노래가 있다. 운동권 노래의 고전중 하나지만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인조 여성 록밴드 ‘마고’를 이끌고 있는 安惠敬씨(41). 이화여대 성악과 재학시절 노래운동에 뛰어든뒤 노동·여성·환경과 관련한 메시지 강한 노래들을 쉼 없이 발표해오고 있는 개성파다. ‘까치길’‘민주’‘황혼’ 등 초기의 노래에서 우리 역사와 사회의 모순들을 담았다면 ‘커피카피 아가씨’‘일이 필요해’에선 여성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또 ‘침묵의 봄’‘검은 민들레’ 등은 환경오염을 다룬 것이고 ‘평화공원’‘너희나라를 위해’등은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모두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이 흠씬 밴 자작곡이다. “70년대 사회 부조리와 부패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지요. 반체제적인 발언으로 옥고를 반복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는 제삶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감중이던 아버지에게 음악대 진학의 꿈을 알렸고 “대중을 위한 진정한 예술인이 돼라”는 아버지의 편지글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악과에 진학해 현실과 동떨어진 귀족적인 음악에 반발했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중 金敏基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 참여한 게 노래운동의 시초. 1학년때 사전 정보누출로 불발에 그친 집회때문에 줄곧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레슨을 받으러 교수 집에 갈때도 항상 검은 색 짚차에 태워져 갈 정도였다. 졸업음악회 대신 혼자 작업한 노래 16곡을 담은 불법테이프를 만들어 선후배 동료들에게 돌렸다. ‘민주’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이 자신도 모르게 대학 노래패들을 통해 퍼졌다. 80년도 대학 졸업후 바로 교사생활을시작했지만 노래 만들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TBC 방송국에서 ‘횃불’‘해방가’‘농민의 노래’ 등 민중가요 20곡을 숨죽이며 녹음해 배포했는데 이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청계천 복사가계에서 복사한 테이프 20여개를 돌렸고 임진각에 가서 통일을 생각하며 이 테이프 1개를 던졌다. 온산 여천공단의 오염실태를 고발한 마당극 ‘청산리 벽폐수야’ 금지도 잊지못할 일.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냈는데 전면 공연금지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워크샵 형식을 가장해 서울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4회공연을 어렵게 가졌다. 87년부터는 여성 환경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학 교회무대와 소극장 운동을 벌였다. 92년 첫 공식 음반 ‘여성 환경 노래’를 출반했는데 이때도 노래 ‘평화공원에서’가 탈락됐다. 그리고 95년 2집 음반부터는 비교적 편한 음악을 택해 실었다고 한다. 지난해 여성5인조 록밴드 ‘마고’를 조직해 전국을 다니고 있고 지난 91년 결성된 ‘여성문화예술’에도 기획위원을 맡아 문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솔로로 전국의 공연장을 다니며 공연을 병행한다. 성악과 출신이면서 운동권 가수로 방향을 잡았고 일부러 고전악기를 배웠다는 安씨. 1남1녀의 자녀를 둔 주부 가수지만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베이스 기타를 배워 그룹 마고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고집센 여성이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에 달려들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