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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세기만에 띄우는 편지/ 장두현씨가 돌아가신 어버이께

    “한가위날,음식을 앞에 놓고 50년 세월을 아버님 어머님께 봉양 못한 죄 때문에 한숨짓고 울부짖습니다.…어머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소리치지만 대답이 없으시군요.…살아 생전 뵙지 못하더라도 이 불효자를 용서하시고 부디 만수무강 하소서.” 오는 15일 동생들을 찾아 북한을 방문하는 장두현(張斗顯·74·경기도 화성군 장안면)씨는 9일 지난해 추석명절 때 쓴 편지 등 북한의 부모님 묘소에바칠 30여통의 편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명절 때만 되면 전해지지 못할 줄알면서도 ‘부모님 보약 다리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편지들이다. 장씨는 지난 80년 추석부터 부모님이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부디 살아 계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장씨는 “행여 아내나 자식들이 괜한 짓한다고 핀잔이라도 줄까봐 한번 쓴편지는 남몰래 혼자서만 다시 읽고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고 말했다.그리고는 10년 동안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방문을 신청하면서 그렇게도 그리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동생 6명만이 살아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용강군 귀성면 별옥리.19살 때인 46년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고향을 떠나 개성에서 공립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그만 6·25전쟁이 나고 말았다. 공부하러 떠나는 아들을 진남포역에서 배웅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돼 돌아오라”는 당부가 마지막으로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장씨는 고향의 가족들을 데려 오기 위해 육군 장교가 돼 참전하기도 했고,나이가 들어서는 북의 부모를 만날 때까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술과 담배를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 쓴 편지에서는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을이렇게 적었다. “철 따라 피고지는 진달래는 무려 53번이나 피고 졌습니다.…남과 북이 엇갈린 155마일 휴전선 녹슨 철조망 밑에도 진달래가 피고지건만 한 많은 세월 속에 두고온 푸른 산하가 그리워서 울면서 잔뼈가 굵었고 50년 세월 속에늙었으나 해마다 쓰고 또 쓰는 편지는 전달할 길이 없구나.”장씨는 “비록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묘소 앞에 그동안 쓴 편지를 내놓고 못다한 불효를용서해 달라고 빌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한산대첩 참전 후손 한자리에

    408년전 이충무공과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수군 무장들의 후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경남 통영시는 오는 13일부터 5일 일정으로 열리는 한산대첩축제때 이충무공과 함께 해전에 참가했던 함장급 이상의 수군 무장 후손 9명을 초청한다고8일 밝혔다. 이번에 참가하는 후손들은 한산대첩을 전후해 이충무공과 함께 해전에 참가했던 수군 무장 후손들로 나갑주(75),선호일(68),이갑환(60),원길상(67),이원상(54),이재엽(31),이종원(64),정경원(64),진종만씨(70)등 9명이다. 이들은 ‘다시쓰는 임진왜란사(학민사)’와 ‘바로잡는 임진왜란사(삶과 꿈)’의 저자인 향토사학자 조중화(趙重華)씨의 추천으로 선정됐다. 나갑주씨는 이순신에게 거북선 제작을 건의하고 직접 제작을 진두 지휘한나대용(羅大用)의 13대 후손이고 선호일씨는 이충무공의 지근거리에서 전투에 참가한 함장출신인 선거이(宣居怡)의 14대 후손이다. 또 원길상씨는 이순신과 잦은 의견차이를 보인 원균(元均)의 후손으로 화해와 한산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참석하게 된다.이밖에 이원상씨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때 전라우수사를 지낸 함장출신 이억기(李億棋)의 14대 손이며 이재엽(李載燁)씨는 이순신의 15대 손이다. 후손들의 모임을 마련한 작가 조씨는 “임진왜란 관련 문헌과 족보,종친회등을 통한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정했다”며 “이들의 초청으로 한산대첩축제는 더욱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 이정규기자 jeong@
  • [네티즌 이슈] 주한미군과 미국

    *더이상 굽신거리지 말자 나의 공식적인 출생지는 ‘서울시 중구’이지만 사실 처음 세상 빛을 맞이한 곳은 동두천 외가에서였다.실향민이셨던 외조부모님께서는 그래도 북녘땅과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두실 작정이셨는지 경의선 철도가 눈앞에 보이는동두천땅에 터를 잡으셨을 것이다.어릴 때 동두천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며 뛰놀았지만 절대로 갈수 없었던 데가 있었다.바로 밤이면 조악한 영어 간판과 색색의 꼬마전구가 켜지고 코 큰 양키들이 넘치던 곳이었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흘렀지만 기지촌은 여전하고 양키들의 폭력과 멸시가횡행하며 이따금 우리의 누이들이 죽어 나가는 곳.최근에는 한강의 독극물방류사건에다 매향리 사태까지 불거졌다.현재 진통을 거듭하는 SOFA 개정협상이 큰 주목을 끄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7월 말 동두천시의 소요록페스티발도 그런 경우다.한데 이제 반미 감정이 그런 것으로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자 보수언론과 대통령도 국익을내세우며 국민들의 분통을 잠재우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주한미군을 통해 미국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반미’가 아닌 ‘평등’관계의 회복이다.또 그 ‘반미’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과거의 막막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이다.이런데도 미국의 행동만 트집잡으면 보수세력은 용공이니,근시안적이니,감정적이니하면서 호도하는 데 혈안이다. 현재 한창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SOFA.하지만 그 끝은 그리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오히려 미국은 남북 해빙 무드에 딴지를 걸든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더욱 베팅하고 싶어 안달이다.또 여전히 만만한 상대를 대하듯 거드럼을 피우고 있다.때문에 이번 SOFA 협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자기 점검의 계기이며 동시에 자존을 세우는 기회일 수 있다.우리가 이번에도 어깨를 굽신거리게 된다면 또다시 힘없는 상대로 완전히 낙인찍히고 만다.또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우리의 주장을 완강히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시 핏발을 세우고 외쳐야만 한다.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한 양키여! 고우 홈”하라고. 우먼드림 컨텐츠팀 이혁상 nomad@womandream.com. *감정적 反美운동 도리어 손해. 주한미군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미군이 온지 어언 50년이다.옛날 한국전쟁전후,없이 살던 때엔 초콜릿과 사탕을 쥐어준 코 높은 양키들을 졸졸 따라다녔단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지만 동맹국으로서 젊은이들의 피를 뿌려가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지켜주었다.일부에서는 미국의 국익이 있기 때문에 치른 전쟁이고 분단 책임이 미국에 있으므로 실은 그 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좀 억지라고 본다.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이 땅이 어떻게 됐을 것인가.지금 이만한 경제성장을 한 것은 미국이 도와줬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젠 우리도 좀 컸다는 것이다.물론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고 당당한 것은 좋다.SOFA 협상도 그런 점에서 다시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하지만 불평등 협상은 그것대로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잘해 나가면 된다. 일본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오키나와기지를 둘러싸 평화시위를 벌였다.하지만 우리의 매향리는 어떤가.일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반미의 시퍼런 서슬로 이번 문제를 키우려고 안달이다.이건 우리 국익에 마이너스면 마이너스지 결코 좋은 게 아니다.매향리 문제는 매향리 주민대표와 협상해 우리 정부가 좋은 방편을 찾으면 되고 한강 독극물 방류도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하면 된다.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주둔군 협정도 재조정하면 되는 것이다.이게 순리적이고 말끔하다.하지만 감정적인 것만 두드러지고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끓다가 식는 악순환은 제발 보지 말았으면 싶다. 미국은 우방이다.밤낮 ‘물러가라 물러가라’ 데모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커지고 우리 자존을 회복한 만큼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무조건 냄비가 끓는다고 손을 대 냄비를 불에서 꺼내야 할까? 아니다.차분히 미국을 봐야 한다.주한미군을 봐야 한다.아직 휴전 상태인데다가 동북아의 향후 세력 균형을 위해서도 반드시 미군은 있어야 한다.우리에게 정녕 국익이 무엇인가를살피면서 주한미군,나아가 대미관계를 설정해야 한다.뜨거워서는 어떤 것도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튜터라인 대표 홍 성 건 htil@chollian.net
  • 광진구,장애인·유공자 민원서류 무료

    서울 광진구는 관내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등에 대해 구청 및 동사무소의각종 증명서류를 무료로 발급해주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광진구에는 장애인 4,950명,국가유공자 1,3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전쟁참전용사도 900여명이 살고 있다.광진구 전체 인구의 1.8%에 이른다.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는 각종 증명서류는 인감증명,호적 등·초본,주민등록등·초본 등 모두 47종 104건이다. 문창동기자 moon@
  • 캐나다, 북한 승인

    [오타와 토론토 방콕 AFP AP 교도 연합] 캐나다는 북한과의 정식 외교관계수립을 위한 첫 단계로 북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한다고 26일 발표했다. 로이드 액스워디 캐나다 외무장관은 백남순(白南淳) 북한 외무상과 이날 오전 회담을 가진 뒤 “캐나다는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액스워디 장관은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로 진출하고 있으며 외교관계 수립국가의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캐나다는 북한의 이런 활동을 환영하고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액스워디 장관은 금년내 외교관계가 수립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답했다.북한도 성명에서 캐나다가 고위급 대표단을 조만간 북한에 파견,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접촉을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캐나다는 지금까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캐나다 비정부기구(NGO)는 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활동해왔으며캐나다 국제개발기구는 97년 이래 인도적인 목적으로 2,000만달러를 북한에기부했다. 캐나다가 북한과 수교하면 선진 7개국(G7) 가운데 이탈리아에 이어 두번째대북 수교국이 된다.
  • 韓赤 이산가족 창구 이모저모

    북한이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을 보낸지 3일째인 18일에도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에는 명단을 확인하려는 이산가족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들른 실향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이산가족들은 벌써 상봉이라도 한 듯 울음을 터뜨렸고,일부는 “상봉단 1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며 적십자사 직원들에게 매달렸다. ■변호사 박찬운(朴燦運·37·사시26회)씨는 국민학교 교사로서 월북했던 외삼촌 리길영씨(71)를 만나기 위해 상봉신청서를 작성한 뒤 “우리 집안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가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외가는 좌익,본가는 우익,처가는 월남자 가족”이라며 “집안의복잡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시에 합격하고도 검사 진출은 엄두도 못내고 변호사를 선택했으며,외삼촌이 오시면 자세한 사연을 물어 가족사를 책으로 내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국군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나 외삼촌은 월북했고충남 인민위원장이던 외할아버지는 국군에게 처형됐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정춘자씨(72·여·경기도 이천군 율면)는 “이미 재혼해 남편을 볼 면목은 없지만 50년전헤어졌던 남편을 꼭한번 만나고 싶다”며 전 남편인 김희영씨(72)의 망부가(望婦歌)에 조심스럽게 화답했다. ■12남매중 셋째 오빠 림순응씨(65)의 생사를 확인한 영숙씨(54·서울 영등포구 문래동)는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오빠가 살아있기만 빌던 어머니는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오빠를 찾았다”며 “이제서야 오빠의 생사를 확인했는데 100명의 상봉단에 들지 못하면 어쩌냐”며 상봉이 이루어지길 간절히소망했다.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무작정 적십자사를 찾거나 북측에서 보낸 200명의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이유를 따지기 위해 온 사람도 제법 많았다.이영준씨(78·서울 서대문구 천연동)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고향에보내 준다더니 왜 나를 명단에서 제외시켰느냐”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北 후보자 명단…학자·예술인 다수 포함

    북한이 통보해온 이산가족방문단 후보 명단에는 북한에서 이름난 유명 학자와 연예인들이 다수 끼여 있다.‘비날론’을 개발한 화학자 이승기박사(96년사망)의 부인 황의분씨(84)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이들의 신상과 활동상을알아본다. ■학계. [류렬] 일제 때 중학교만 졸업한 후 독학으로 공부해 고려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참가,북한으로 넘어갔다.경남산청군이 고향으로 현재 평양시 경림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사회과학원언어학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 지난 83년 북한 국어학계의 ‘기념비’라고 일컬어지는 ‘세 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과학백과사전출판사)를 집필했다. [조주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이다.경북 영양군이 고향으로 서울대문리대를 중퇴한 뒤 지난 50년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영천 전투에 참전,왼팔을 잃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23세부터 교단에 섰다.40여년간 8명의 박사,33명의 학사(석사),12명의 후보학사를 비롯해 수많은 과학자를 양성했다.지난91년 남한의 어머니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고 노동신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김영황] 북한 어문학 계열에서 손꼽히는 권위자 중 한명이다.입북 경위는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6·25전쟁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입북전 동국대학 문학부에 재학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북한에서도 어문학에꾸준히 매진했으며 지난 60년대 초반 언어학 학사로 되면서 김일성종합대학교원으로 근무했다. [조용관] 북한 방직부문 기술의 대가이자 공훈과학자이다.전북 장수군 출신으로 지난해 7월 21일 평양방송을 통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경공업방직분원 방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북한에서 교수,박사,공훈과학자의 칭호를 받았으며,‘조선지식인대회’를 비롯해 각종 과학부문 대회에 대표로 참석하는등 북한당국으로부터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하재경] 평양시 김책종합공업대학에서 강좌장으로 있다.서울 중앙중학교에입학했다가 금전적인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가슴아픈 경험을 갖고있다.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에 입대해 참전,북한으로 넘어갔다.30여년동안 교편을 잡았으며,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봉회] 한덕수 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으로 일하고 있다.전북 고창군 고창면 도산리가 고향으로 고창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입학을 기다리다의용군으로 소집돼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술계.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화가로 일한다.인물화,풍경화,화조화,정물화 등 조선화의 각 장르에 걸쳐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화가이다. 6·25전쟁 때 의용군으로 입대해 월북했으며,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조선화학부에서 공부했다.지난 76년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집무실로 사용했던 금수산의사당(현재 금수산기념궁전) 기념촬영대에 비치될 ‘비봉폭포의 가을’을성공적으로 완성해 김 주석과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77년 공훈예술가,88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오영재]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자타가 공인하는북한 최고의 시인이다.김 총비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50년 의용군으로 월북,김형직사범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했다.20대 중반부터 개성있고 형상성이 뛰어난 시를 창작해 두각을 나타냈다. 수백편의 시와 수십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대표작으로 시집 ‘대동강’과‘영원히 당과 함께’,노랫말 ‘인민은 우리 당에 영광 드리네’,서사시 ‘인민의 태양’등이 있다.평양에 있는 주체사상탑의 비문에 새겨진 시 ‘오,주체사상탑이여’를 짓기도 했다.89년 ‘김일성상’을 수상했다.지난 89년 3월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참가했다. [박 섭] 서울에서 극단 ‘신향’의 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현재 북한 최고의영화더빙 전문 성우이자 인민배우로 활약하고 있다.외국영화를 전문적으로번역하는 조선번역영화제작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다’‘처녀리발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김 총비서에게 올라가는 외국영화치고 그가 출연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북한 성우계의 거봉으로자리잡고 있다.[김점순] 북한의 국립민족예술단 성악지도원이자 고음독창가수로 활동하고있다.6살 때 가족을 따라 만주 땅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후 서울로 귀국했다.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와 함께 의용군에 편입됐다. 6·25 이후북한의 첫 가극인 ‘콩쥐팥쥐’를 비롯해 ‘온달과 공주’‘밝은 태양 아래서’ 등 수많은 가극에서 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신임을 얻었다.60년 ‘공훈배우’칭호를 받았다. 서울연합
  • “베트남전때 국군 포로 北에 끌려간 9명 생존”

    베트남전쟁 당시 월맹군 포로가 돼 북한으로 압송된 한국군 참전용사 가운데 9명이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월남전 참전용사인 박정환(朴定煥·58·미국 플로리다 한인회장)씨는 13일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월남전 참전수기인 ‘느시’(전2권·문예당) 출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박씨는 “포로가 된 참전용사 가운데 9명이 지금도 북한에 살고 있다는 미국 국방부의 사실 확인이 있었다”면서 “오는 9월초 북한측과 비전향 장기수 및 국군포로 맞송환을 논의할 때 북한에 억류된 월남전 포로 문제도 함께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지난 67년 육군 소위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68년 1월 월맹군 포로가 돼 2개월 동안 포로 생활을 했다.캄보디아 국경 근처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으나 다시 붙잡혀 6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 한 미국인의 도움으로석방됐다.박씨는 “수감생활을 할 때 월맹군 장교로부터 ‘너도 북으로 가라.이미 북한에는 많은 국군 포로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국방부는 박씨의 주장에 대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김경운기자 kkwoon@
  • 日 한국전 참전 문서 첫 발견

    [도쿄 연합] 6·25전쟁에 일본군이 참가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문서가 일 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견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8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 교아이(共愛)학원 마에바시(前橋)국제대의 오누마 히사오(大沼久夫)교수 등이 유엔군 총사령부(GHQ)로부터 일본 외무성에 통보한‘시체 처리’라는 제하의 1951년 9월13일자 문서를 발견,분석한 결과 일본인 참가가 처음으로 사료로서 확인됐다. 문서는 “1951년 9월6일 미군의 양륙함(LST)에 승선했던 ‘나카하라 가쿠이치’라는 해군 병사가 ‘우발적’으로 사망했다.시체 및 유품이 한국의 유엔군 묘지에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히로시마(廣島)현에 사는 부인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란다”고 일본 정부에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로 볼 때 한반도 지리에 소상한 전(前) 일본 병사가 미군 중심이었던 유엔군의 작전행동에 관계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오누마 교수는 “일련의 문서에서 ‘mariner’라는 단어는 선원(seaman)과는 구별되어 사용하고 있다.사망에 대해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지만 양륙함에 승선했다는 것은 모종의 작전행동에 참가해 사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에 일본인이 참가했거나 생사에 관한 사실이 사료로서 뒷받침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5)짐바브웨 흑백 갈등

    지난 4월 중순,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흑인들의 백인 농장점거 및 살상이 격화되면서 서방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짐바브웨는 흑백간 화해로 새로운 도약을 일군 남아공의 접경 국가.21세기 초입의 국제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 짐바브웨의 흑백토지 분쟁은 3개월로 접어든 지금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지난 2월 이후 흑인들에 의해 습격당한 백인 농장은 모두 1,600여개.백인 4명을 포함,33명이 숨졌다.백인들로 구성된 민간농장주연맹(CFU)은 하루에 5번꼴로 농장습격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힌다. “백인의 땅을 짐바브웨의 주인 흑인들에게”란 슬로건으로 흑백 유혈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지난 달 24∼25일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사태해결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 짐바브웨 토지 소유권 갈등은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시작됐다.그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무가베 대통령은 이때부터 “백인의토지를 토지 없는 흑인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앞서 1890년부터 짐바브웨에 정착한 영국인 중심의 백인들은 광산과 담배농장 등 알짜배기 땅을 모두 거머쥐었다.1923년 정식으로 식민지로 접수한 영국은 자국민들에게 헐값에 땅을 분배했다. 짐바브웨 백인 인구는 7만명.0.6%에 불과한 이들이 토지의 32%를 차지하고있다.농장수는 4,500여개로 짐바브웨 비옥한 토지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반면 흑인들이 소유한 땅은 38%.대부분 극심한 한발지역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다.소수 백인과 나머지 흑인들의 극심한 빈부격차는 당연한 일. ●서방의 시각. 20년 독재통치기간 중 부패 등으로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무가베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집권연장을 위해 사태를 꾸몄다고 보고 있다.짐바브웨 야당도 같은 시각이다.무가베 대통령은 ‘식민시대의 청산’‘제국주의 타파’‘우리 땅을 짐바브웨 주인인 흑인손에’를 외치며 민족의식을 자극하고 있다.짐바브웨 독립전쟁 참전전우회(ZNLWVA)가 중심이 된 토지 몰수단은 전국의 백인소유 농장들을 돌며 농장주를 감금,폭행하고 농장에 고용된 흑인들을살상하고 있다.짐바브웨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총선 직전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무가베는 몰수대상 농장 804개를 발표,보상없이 토지를 강제 접수할 수 있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과의 관계. 대부분 자국 정착민의 후손인 백인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영국 정부는 짐바브웨 정부에 대해 지난 20년간 토지 개혁을 위해 지원한 400만 파운드의 돈이 모두 무가베 대통령 측근에 돌아갔다며 경제제재 및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남아공 등 영연방 국가들도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전망. 총선에서 무가베 대통령이 이끄는 짐바브웨 아프리카민족연합 애국전선(ZANU-PF)이 승리하긴 했으나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엔 실패,‘토지 무보상 강제몰수법’을 추진하는데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야당의 약진은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20년 동안 3명 이상의 의원을 낸적이 없는 야당은 이번에 민주변화운동당(MDC)이 도시에서 선전,58석을확보했다. 당수인 모건 츠반지라이는 2002년 대선의 강력한 후보. 백인소유농장의 무조건적인 몰수가 아닌 점진적 국유화,고용 우선 해결을 내세운다. 서방의 지원도 받고 있다. 이에 심적부담을 느끼고 있는 무가베가 경기침체와 직결되는 토지몰수 등강공책을 그대로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짐으로써 해결전망에 한가닥희망을 던져주고 있다.영국 등 국제사회 개입정도도 흑백토지 유혈 분쟁 타개의 관건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무가베 대통령 '독립영웅'서 '독재자' 전락. 최근의 흑백 토지 유혈 분쟁을 사주하고 있다는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는로버트 무가베 대통령(76).80년 독립과 함께 집권,20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했다.그에 대한 서방 언론의 정의도 ‘혁명적 독립 영웅’에서 ‘아프리카의전형적인 독재자’로 변해왔다. 백인 통치시절인 66년부터 13년간 게릴라 지도자로 이름을 날린 무가베는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독립과 함께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뒤 취임사에서“백인이 훔쳐간 땅을 재분배하겠다”며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인들에게 ‘약속의땅’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다. 그는 자신의 통치 철학은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에서 배운 것이라고 주장해왔는데 80년대 초반 영국으로부터 받은 토지개혁 지원금을 측근들과 나눠쓰는 등 권력층 부패 고리를 형성하면서 집권욕에 눈이 먼 독재자란 오명을 얻기 시작했다. 1924년 백인들의 담배 농장에 둘러싸인 쿠타마 미션이라는 두메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종간 경제적 불평등을 실감하며 자랐다. 정치에 입문하기전 20년동안 교사생활을 했던 무가베는 ‘교육이야말로 최대의 투자’라는 신념의 소유자.영국 언론들은 무가베의 유일한 업적을 ‘교육 투자’로 꼽고 있다.짐바브웨 문맹율은 15% 이하.아프리카 국가 가운데교육수준이 가장 높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무가베의 교육정책이 무가베 스스로 판 무덤이라고 말한다.이번 총선 결과에서 드러났듯 도시의 젊은 층들이 짐바브웨 문제의 원인을 정부 부패와 국정운영 실패에 있다는 분석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투표율도 65%로 사상 최고였다. 무가베 대통령은 일흔 여섯의 나이를 무색하게할 정도의 왕성한 기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영국 언론들은 그의 잇단 해외순방과 쉼없는 국정운영을 젊은 기자들과 관료들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새벽 4시에 어김없이 기상,체력단련을 하고 있으며 97년엔 일흔 세살의 나이로 두번째 부인 그레이스(35)와 사이에 세번째 아이를 얻기도 했다. 김수정기자
  • 베트남전 희생자 추모 평화음악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천주교 인권위원회,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국제민주연대 등 1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는 6일 서울 숭실대에서 베트남전 희생자를 위한 첫 시민행사로 ‘사이공,그 날의 노래’라는 평화음악제를 갖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장사익,노영심씨 등 국내 음악인들이 참전 국군의 잘못을 사과하는 마음을담은 ‘미안해요 베트남(작사·작곡 박치음 순천대교수)’을 부르고,무용가김경란씨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진혼무도 출 예정이다. 베트남국립예술단의 특별공연도 펼쳐지며,부대행사로 베트남 풍물시장,베트남 음식판매,베트남전 사진전도 열린다. 위원회측은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에 앞서 30년 전의 베트남 전쟁,한국과베트남의 과거와 오늘을 동시에 돌아보며 전쟁 학살로 피해받는 이들을 추모하고 사과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또 “일본군 종군위안부 생활을 했던 문명금 할머니가 기탁한 성금 4,200만원에 국민 성금을 보태 베트남 현지에 역사기념관도 건립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참전 군인들은 시민단체들의 이같은 행사 계획에 대해 “참전 군인들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한수기자 onekor@
  • [사설] ‘민주화 보상’ 전향적으로

    군사독재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법 정비작업이 마무리됐다.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시행령이 지난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민주화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의문사진상규명 시행령도 함께 통과됨으로써 지금까지 베일 속에 가려졌던 민주인사들의 사인도 상당 부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불행한 과거를 국민적 합의과정을 통해 정리하고 매듭짓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도 크다. 민주화운동 보상법 시행령의 대상은 박정희(朴正熙)정권의 3선 개헌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69년 8월7일 이후의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피해자들이다.시행령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법(母法)이 규정한 ‘항거’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했다는 점이다.국가권력을 상대로 직접 항거한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이 사회 각 분야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또는 고용자의 폭력 등에 저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에 항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도 보상 대상에 포함시켰다.이에 따라 민주화운동을 하다 해직된 교수나 교사,언론인,해고근로자,학사처분을 받은 학생들도 국가의 보상을 받게 됐다.이들의 수는 1만5,000∼1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정부는 다음 달 초까지총리실 산하에 보상위원회를 설치,신청을 받을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항거’의 개념을 포괄적으로규정함에 따라 대상자 포함 여부를 둘러싼 시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대 후반의 전교조 활동과 노사분규사태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재단비리와 관련한학내분규로 해직된 교사나 단순한 노사갈등으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를 대상자에 포함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상금 산정과 관련한 형평성 시비의 가능성도 크다.광주민주화 운동 사망자의 보상금이 1억1,000만원이었던 데 비해 민주화운동 사망자에게는 최고 2억원이 지급될 것으로 알려졌다.보상액이 훨씬 적은 6·25 전쟁 및 베트남참전용사들의 반발도 배제할 수 없다.피해 입증을 본인이나 유족이 책임져야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의 압제에 맞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보상이라는 숭고한 뜻을 살리려면 시비나 갈등은 최소화해야 한다.구체적인사실 관계 규명이 다소 미흡하다 하더라도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라는 본질자체만 분명하다면 대상자에 포함시키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실무적으로 까다로운 일은 많겠지만 오랜 기간 고통 속에 희생의 나날을 살아온 민주인사와 가족들이 또다시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대한광장] 통일시대 역사인식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11년 전 1989년 3월의 문익환 목사를 생각해 본다.당시 언론에 나타난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대한 기사제목을 보자.“실정법을 어겼다,” “밀행에 충격과 경악,” “성급한 행동,” “혼란이 우려된다,” “통일창구를 깬 무분별한 행동,” “그는 대한민국을 무시했다”등으로 비판 일색의 기사였다. 그러나 바로 전 1월에 있었던 정주영 회장의방북에 대해서는 “민족경제공동체건설을 위한 첫걸음”,“남북화해 교류의큰 이정표요 크나큰 노력”이라고 긍정적인 보도를 했다.기업인이 정부에 미리 알리고 간 경우와 민간단체의 통일운동가가 알리지 않고 간 차이는 있지만,문목사를 밀행의 입북으로,정회장은 방북으로 표현하였다.한쪽은 실정법위반이며,한쪽은 남북 경제교류의 물꼬를 튼 민족역량 과시로 그 성과를 강조했다.이러한 기사는 북한을 우리의 적이며,체제 경쟁에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는 냉전적 시각에서 비롯됨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1995년 국방부는 한 6·25포스터를 시중에 배포했다.당시 냉전시대보수언론의 대표격인 한 신문은 그 포스터에 대해서 6·25를 도발한 북한의 침략성과 불법성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국방부에반공적 색깔논쟁을 제기했다. 이 포스터는 6·25를 맞아 국방부가 공모한 작품 중 당선작이었는데,태극기를 바탕에 깔고 국군 장병과 인민군 사병이 서로 껴안고 있는 도안이었다.그림 밑에는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어야만 했던 아픈 기억 6·25”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그 신문은 이 문제의 포스터가 6·25를 왜곡하고 북의 전쟁도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이에 대해 국방부는 국군으로 참전한 형과 인민군으로 징집된 동생이 전장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만나야했던 비극적 실화를 형상화 한 것으로 민족의 비극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냉전적 사고방식을 가진 언론은 남북이 같은 동포이고 형제라도 이념을 달리하기 때문에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조차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관점이었다. 문익환 목사는 남북의 동족이 피로써 피를 씻는 참담한 비극을 방지해 보고자 백범 김구 선생이 북행을 나섰듯이 자신도 그로부터 41년 후 “통일에 대한 온 겨레의 염원을 이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는 상황이 방북을 결행하게 했다”고 말했다.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치욕을 씻을 수 없고,인권·민주화·경제발전의 궁극적 해결이 있을 수 없다는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그는 다섯 번째 수감되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민족사적 최대의 과제인 통일운동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남북정상의 만남으로 통일민족주의의 새 역사가 열린것이다. 7,000만 민족과 500만 해외동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기적이다.두 남북 정상의 만남은 민족적 자주성의 상징이요,우리의 불행의 역사를 청산하는 민족사적 쾌거이다. 이제 적대의식에서 동족의식으로,국민들의 대북한인식을 바꾸는 통일환경을조성해야 한다. 분단시대의 모든 제도적 유제,극우적 보수의식은 청산되어야한다. 북한을 돕는 일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동포애적 시각에서통일시대의 관건이 된다. 북한을 더 이상 적국이 아니라 동족의 나라로 보는 새로운 민족관이 요청되는 시기이다.역사적 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립에서 화해로의 바뀜이다.대북 동족의식이 자리잡게 되는 날 남북 평화통일론,남북 대등 통일론이 확실히 정착되리라 믿는다. 徐紘一 한신대교수·국사학
  • [매체비평] 사건 ‘본질’ 에 대한 ‘균형’ 보도 절실

    한국언론의 2000년 6월 하순은 너무도 뜨거웠다.엠바고를 깬 중앙일보 청와대 출입정지조치,의사들의 전면폐업,월남참전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의 한겨레신문에 대한 폭력행사,롯데호텔과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강제진압 등 연일 언론보도의 방향과 방법,그리고 공정성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만드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중앙일보가 엠바고를 깨고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노동당규약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데 대하여 청와대는 그 보도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고 비보도 합의의신뢰를 깼다는 판단에 따라 출입금지조치를 취했다가 6일만에 해제했다.국익이 우선인가,언론의 상업주의가 우선인가,그리고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고엽제전우회’의 폭력행사는 그동안 어느 매체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고엽제 피해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여론환기를 하고 문제해결을 해왔던 한겨레신문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었다.더우기 폭력사태의 책임과 원인을한겨레에 돌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절망적이었다. 언론은 의사들의 전면폐업을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이라고 보는 국민적 상식과 분노에 충실했다.의사들은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도 못하고 언론에 의해 초토화되었다.결과적으로 국민전체를 적으로 삼아 버리고 말았던 이번 폐업사태는 의사 전체의 역사적 실패요,치유불가능한 상처로 기록될 만하다.겨우 며칠 사이에 의사들은 남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아름다운 존재’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싸움이나 벌이는 ‘집단이기주의의 화신’ 쯤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의사들에게는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언론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케 한 사태였다.이 과정에서 한국언론은 상당한부분 직무유기를 했다.어느 매체도 의사들이 어쩌다가 극단적인 폐업에까지이르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밝히질 않았다.국민들만 영문도 모르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폐업사태를 맞았고 고통을 받았다.심지어 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던 신문도 의사들이 내세우는 논리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언론은 의사들의 폐업원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한편 롯데호텔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인 원인에 대해서도 침묵했다.롯데사태가 악화된 데에는 호텔소유주와 경영진이 성실교섭의 의무를 어겼다는 혐의가 있건만 그것을 지적하는 언론은 없다.그 배경에는 광고를 쥐고 로비활동을 하는 롯데호텔과 롯데그룹,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재벌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어른거린다. 관광호텔업이란 주로 외국인 투숙객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이미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이미지란 한번 나빠지면 회복하기 어렵고,그것이 가져오는 경제적 손상은 계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호텔 종사자는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안다.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파업에까지이르게 되었는지를 국민들은 알지 못한다.언론이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그 사실만 알뿐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며 불안해할 뿐이다.사태가 논리적인 연속선을 벗어나서 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의사들의 폐업이나 한겨레신문에대한 폭력사태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던 경찰이 겨우 며칠이 지난 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류한호 의사·노동자 목소리엔 소홀
  • [굄돌] 전쟁의 슬픔

    바오닌이라고,베트남의 작가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간 일이생각난다. 때마침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을 읽은 터였기에 관심이부쩍 생겨 그를 보려 가기도 했었다.그는 베트남전에 직접 오랫동안 참전하여 상대방 병사를 향해 총을 겨눈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아름다운 소설이었다.페이지마다 스민 ‘전쟁의 슬픔’은 어떤 그럴듯한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정의의 전쟁이란없는 것이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조차 산 것 같지 않은 자로 만들어버리기때문이다. 바로 며칠 전,파주의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사고로 인해 두 중령이 무릎과 발목 아래를 절단 당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참으로 마음이 아팠다.그러나,졸지에 일을 당한 이들의 참담한 마음을 내가 헤아릴 재주는 없을 것이다.그저께인가는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가‘난리’를 벌인 일도 있었다.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보도가 고엽제 피해보상 소송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조금만 더고개를 뒤로 돌리면 매향리 미군 사격장을 둘러싼 문제…… 이것들이 내게는 모두 ‘전쟁의 슬픔’으로 보인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오르면,몇 년 전 잠수함이 고장 나 남쪽의 산야에 들어와이리저리 쫓기다 죽어간 북한 병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특히,열 명이 넘는병사들이 벌거벗은 채 나란히 쓰러져 있던 모습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그런가 하면,토벌작전에 나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남쪽의 병사들도 있지 않았던가.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는나의 세대도 실은 전쟁의 기운 속에서 ‘전쟁의 슬픔’을 목도하면서 살아온 셈이다.변화만큼이나 논란 많았던 6월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이제서야 한반도는 전쟁이 강제하는 죽음의 기운으로부터 겨우 한 발자국 멀어진 셈이라고. [방민호 문학평
  • 한겨레신문사에 난입한 고엽제전우회 4명 영장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원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29일 연행한 회원 42명 가운데 사진 및 비디오 채증작업을 통해 극렬시위자로입증된 고모씨(54) 등 4명에 대해 건조물 침입, 특수공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38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27일 오후 3시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 앞에서 “한겨레신문의 ‘월남 참전용사 베트남 양민학살’보도가 참전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사옥에 난입,사무용품 등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7월의 호국인물 김홍일장군

    전쟁기념관은 29일 ‘7월의 호국인물’로 6·25 전쟁 때 한강 및 낙동강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한 김홍일(金弘壹·1898∼1980) 육군 중장을 선정했다. 김 장군은 평북 용천에서 출생,일제 당시 한국의용군사령관,중국군사단장,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했으며,이봉창 의사의 항일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한국군 육군 준장으로 임관돼 6·25 전쟁에 참여했다. 김 장군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서울이 실함(失陷)되자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을 맡아 북한군 1군단을 상대로 6일동안 한강전선을 지켰다.이 전투로 국군이 후퇴하고 미국 지상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김장군은 이후 1군단 창설 군단장으로 진천전투,화령장전투,안동전투에서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했다. 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 후 중화민국 대사,7대 국회의원,신민당 당수,광복회장 등을 역임했다.건국훈장 독립장과 태극무공·을지무공·청조근정 훈장을 받았다. 노주석기자 joo@
  • 다양한 시각의 베트남전 특집 마련

    올해는 월맹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영화나 소설은 베트남전을 다양하게 다뤘지만 TV는 고엽제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가 고작이었다.베트남전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협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들어 TV도 베트남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어려서는한국전쟁을 겪고 나이 스물이 넘는 청년기에 머나먼 이국땅 전쟁터로 떠나야했던 월남 파병용사들.반백의 나이가 훌쩍 넘긴 파월장병의 인간적 고뇌를다룬 프로그램이 선을 보인다. MBC는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29일 밤10시55분)을 준비했다.1부인 ‘전쟁의 기억’과 2부인 ‘희생’으로 나눠 방송된다.‘전쟁의 기억’에서는 30년전 32만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을 살펴본다.맹호·백마·청룡부대의 부산항 파월 환송식,베트남 도착,당시의 낯설고도 이국적인 월남풍경을 소개한다.백마작전,안케패스 작전 등 큰 전투 속에서 숨진 전우들,그 죽음을 통해 확산되는 전쟁의 공포 등을 보여준다. 2부 ‘희생’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다룬다.하미마을,락빈부락,땅띠마을 등 베트남 현지 마을에 남아있는 증오비석과 당시목격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전달할 계획이다.제작을 맡은 민운기PD는 “공과(功過)는 짚어야겠지만 누가 잘못했다는 일방적 매도는 아니다.한 걸음 물러서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KBS는 특집 드라마 ‘유리구슬’(7월3,4일 밤9시50분)을 준비했다.줄거리는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베트남전에서본의 아니게 양민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50년전의 피해자가 20년 뒤에는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을 설정했다.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고엽제 후유증과 황폐해진 인생 속에서 전쟁의 참혹성을 깨닫고 반전 운동가로 변신한다.베트남 현지 촬영으로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을 맡은 김형일PD는 “한 개인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가를 담고자 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고엽제전우회 폭력행동 언론자유 위협하는 폭거”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공동대표 김중배)는 28일 고엽제 전우회원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과 관련,성명서를 내고 “고엽제 전우회의 폭력행동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명백한 폭거”라고 지적하고 “이번 폭력사태를 반성하고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동당(대표 권영길)도 성명서를 통해 “한겨레신문사의 보도는 참전용사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생각하면 정식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의료계 집단폐업…정치권, 강력대처 합창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27일 의료계의 집단폐업 등과 관련,‘집단이기주의’를 강력히 경고한 데 대해 정치권도 발걸음을 같이 했다.특히 민주당은 공권력 수호 차원에서 보다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한나라당은 한 발씩 양보할 것을 먼저 요구하면서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28일 김대통령의 경고를 또다시 상기시켰다.박대변인은 “정부는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합법이면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전제,“그러나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의 한겨레 신문사 난입 및 롯데호텔 파업 등 불법·탈법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롯데호텔 문제가 스위스 그랜드 호텔 등으로 확대되어 가는데 이대로방치할 수는 없다”면서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경고했다. 김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불법과 폭력으로 자기 의사를 관철할 수있다는 생각을 갖게되면 안된다”면서 “법질서를 엄정히 지키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특별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민주당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은 이날 열린 지도위원회 회의에서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과 관련,“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장병의 고통을 모르는 바아니지만 폭력으로 언론사를 무단점거하는 것은 안될 일”이라며 “불만이있다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정보도를 요구하거나 피해보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선(安東善) 지도위원은 “치안을 담당한 경찰이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신낙균(申樂均) 지도위원도 “인명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사나 나라를 위해 싸웠던 국군들이 국가 공권력에 대해 도전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면서 “힘과 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가세했다. 이처럼 강도높은 경고는 의료계 폐업사태의 여파로 분출되는 사회 각 집단의 ‘집단이기주의’를 조속히 차단하지 않을 경우 국가 공권력마저 무뎌질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오전에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최근 들어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데 대해 우려의목소리가 많았다. 장광근(張光根)수석부대변인은 “100% 관철을 고집하는 벼랑끝식 요구가 넘쳐나면 온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을 서로 자제하고 양보해서 지혜롭게 접근하는 슬기가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오풍연 진경호기자 poong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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