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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근리 진상/ 공동발표문 요약

    ◆조사경과. 노근리 사건에 대한 한·미 합동조사는 1999년 9월29일 AP통신의 보도를 바탕으로 양국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양국 조사반은 현장상황과 증언,문서 등을 충분히 공유했으며,50년이란 세월로 제한적인요소가 많았지만 주변 상황과 관련 사실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조사내용. ●사건배경,전투상황 한국전쟁 초기 한국에 투입됐던 미군들은 나이가 어렸고 전투경험이 없었다.그들은 북한군의 무기체계나 전술,북한군의 진격 속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만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미제7기병연대 제2대대는 영동에 도착한 직후 1950년 7월25∼26일 야간에 와해된 상태에서 노근리 주변지역으로 무질서하게 후퇴 중이었다. ●피란민 통제 1950년 7월20일 대전 전투 이후 피란민 이동 통제 문제는 한국군과 미군 작전의 주요한 고려 요소였다.1950년 7월 하순쯤한국정부와 미 8군은 긴밀한 협조를 통해 피란민과 한국군 및 미군을보호하고 도로로 이동하는 피란민들이 군작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란민 통제를 시작했다. ●임계리·주곡리주민들의 집결 및 이동 일부 한국측 증언자들은 1950년 7월25일 야간에 미군이 산속의 안전한 마을인 임계리에 있던 수미상의 피란민들을 주곡리를 지나 노근리 방향으로 인솔했다고 말했다.7월25일 주곡리에서 1.5㎞ 떨어진 하가리 근처 개활지에서 미군의명령에 따라 노숙할 때 피란민 1∼4명이 사살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증언했다.그러나 이에 연루된 미군이 누구였는지, 이런 행위가 당시시행 중이던 피란민 통제정책을 위반한 것에 대한 대응조치였는지는확인할 수 없었다. ●공중 공격 다수의 한국 증언자들은 1950년 7월26일 정오쯤 미군 항공기가 피란민들에게 기총공격 또는 폭격을 했다고 증언했다.미 공군의 당시 기록 검토결과 1950년 7월27일 아침 일찍 노근리 주변의 미제7기병연대 제1대대 지역에 실제로 공중공격이 있었다.따라서 노근리 주변지역에서 1950년 7월26일 공중공격의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다.공식 기록에 의하면 1950년 7월27∼29일 노근리 지역에서미군과 북한군 상호간에 야포 및 박격포 사격이 있었다.일부 한국측증언자들은미 지상군이 당시 보유 중이던 무전기를 이용,피란민에대한 공중공격을 요청했다고 증언했다.그러나 양국 조사반은 당시 미지상군 병력이 휴대한 무전기로는 미 지상군과 공군 전술항공 통제관이 직접 교신해 공중공격을 요청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지상사격 및 사격명령 여부 미 지상군은 노근리 사건 발생 기간 동안 노근리 주변에서 피란민을 향해 사격을 했다.1950년 7월26일과 29일 사이에 일부 미군은 쌍굴 내부를 포함하여 여러 지역에 있는 피란민을 향해 사격했다.미군들은 피란민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또는피란민이 있던 곳으로부터 소화기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해 사격했다. 그 결과 수 미상의 피란민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사격명령 하달 여부에 대한 증거는 증언자들의 증언 불일치로 찾지 못했다. ●사상자 수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전쟁중에 발생하였기 때문에 한국측 증언자들과 미 참전장병들의 증언 사이에는 노근리 주변지역에서 발생한 사망자나,부상 또는 실종된 인원에 대해 상당한 차이가있다.한국 피해자들은 확인된 숫자는 아니지만,사망·부상·실종된 인원을 248명이라고 영동군청에 신고했다.미참전장병들은 이보다 적은 인원수라고 증언했다. ◆결론. 절박한 한국전쟁 초기의 수세적인 전투상황하에서 강요에 의해 철수중이던 미군은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 주변에서 수 미상의 피란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혔다.피해자들의 오랜 기간의 아픔과 미참전장병의 희생을 고려하면서,인권을 중시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양국 공동 협력의 표본이 될 것으로 믿는다.
  • 永川호국용사묘지 안장대상자 확정

    국가보훈처는 12일 경북 영천시 고경면 청정2리에 문을 연 호국용사묘지에 안장할 대상자를 확정했다.4만8,000기 수용규모인 영천묘지에는 6·25전쟁 및 베트남전 참전 군인,참전 경찰,종군기자를 비롯,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과 지리적 여건 등으로 국립묘지보다 영천묘소를 희망하는 전몰군경,전상군경,순직군경,공상군경,무공수훈자등이 안장 대상이다.문의는 보훈처 제대군인정책과(02-780-9645),호국용사 묘지(054-336-0775). 노주석기자 joo@
  • 클린턴 “노근리사건 유감”

    한국과 미국 양국은 12일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노근리양민학살사건에 관한 공동조사 결과를 발표,“노근리 사건은 철수중이던 미군에의해 피란민 다수가 사살되거나 부상을 입은 사건”이라고 공식 규정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노근리에서 한국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해 깊은 유감(regret)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유감의 뜻을 전했다.미국이 전쟁 중 발생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통령 명의의 유감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처음이다. 하지만 양국은 노근리사건의 핵심쟁점인 미군측의 발포명령 여부와의도적인 살상여부,피해규모 등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해 조사결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특히 미국측은 피해주민들에대해서 어떤 보상 및 배상도 할 수 없다고 나서 해당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양국은 공동발표문에서 1950년 7월25일 미공군의 공중공격지침을 명기한 ‘로저스 대령 메모’의 핵심내용과 다음날인 26일 노근리지역공중공격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자료 ‘제5공군 항공작전 일일요약 보고서’ 외에 26일부터 29일 사이 노근리 쌍굴 등지에 있는 피란민에 대한 지상사격이 자행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희생자 수는 영동군청에 신고된 피해자수 사망 177명,부상 51명,행방불명 20명 등 248명이라는 한국측 입장과,그보다는 적을 것이라는미국측 참전장병의 증언내용을 병기했다. 양국은 미국정부 예산으로영동군 또는 노근리에 100만달러 규모의 추모비를 건립하고,75만달러를 조성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노근리 유족자녀 대학생과 지방대학생 등 30여명을 선정,장학금을 전달키로 했다. 한편 노근리 대책위는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정부가 노근리 사건이 학살에 의한 것임을 완전히 인정하지않았고 피해자 보상부분도 언급이 없었다”며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미국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다각적인 법적 대응을 추진할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 최철호 특파원·서울 최광숙기자 bori@
  • 노근리 진상/ 美國의 입장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 조사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두 가지다. 민간인 사살을 명령한 지휘관을 찾을 수 없다는 점과 보상을 할 수 없다는 것.미국이 참전한 전쟁에서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지금까지 보상한 전례는 없다. 희생자 수도 ‘미상’으로 처리했다.한국으로부터 신고·접수된 248명의 명단을 건네받았으나 희생자 수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50년동안 부인해 온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11일 배포한 언론 발표문을 통해 ‘깊은 유감(deeply regret)’을 표시했다.사과(apology)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깊은’이란 수식어까지 썼을 정도면 외교상 미국민을 대표해 ‘사실상 사과’를 한 것과 같다. 미국은 15개월이 넘는 조사에서 사격 명령권자를 찾지 못한 이유를‘자료의 부재’로 들고 있다.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을 청취했지만 자세히 증언한 병사는 단 11명 뿐이다.그나마 50년 세월로 인한 기억의한계 때문에 정확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한국인 피해자들의 증언도일부 사실의나열에 불과,확인이 안된다고 내비쳤다. 보고서를 설명한 찰스 크레이근 국방부 인사기율담당 차관보는 “전쟁에는 민간인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며 미군은 한국의 자유수호를위해 3만6,000명의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한국전 당시 미군 사망자 수도 적지 않음을 거듭 상기시켰다. 미국 관계자들의 표정에선 노근리 희생자의 추모비나 한·미 장학사업을 펼침으로써 하루 빨리 최악의 상황으로부타 빠져나오려는 심경이 엿보인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열화우라늄탄 파문 ‘폭발일로’

    유럽이 열화(劣化) 우라늄탄 파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유럽연합(EU)에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10일 ‘발칸 신드롬’으로불리는 열화 우라늄탄의 유해성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이라크는 걸프전쟁 당시 열화 우라늄탄을 사용한 미국과 영국에 피해보상을 요청했으며 유럽 각국은 앞다투어 발칸반도에 파병한 장병들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고 있다.미국이 인체에는 해가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영국군이 4년전에 “열화 우라늄탄이 암을유발할 수 있다“는 문서를 작성,파장이 증폭되고 있다. [진상조사 확대] 유럽 각국의 요구에 완강히 맞서던 나토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북대서양위원회를 열어모든 정보가 공유되도록 최선을 다하고,특히 우라늄탄이 사용된 지점을 공개하기로 했다.유엔환경계획(UNEP)의 방사능 오염 현지조사에도 협력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우라늄탄과 발칸 참전병사의 질병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앞서 UE가 9일부터 공식조사에 들어가자 헝가리와리투아니아 등 동구권 국가도 파병 군인들을 상대로 방사능 피폭검사를 하기로 했다. 아일랜드공화국은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범유럽대책기구’의 발족을 제안했으며 그리스는 발칸 분쟁을 현지에서 취재한 언론인까지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유해성 공방] 이라크는 국영이라크통신(INA)을 통해 “걸프전 당시미국과 영국이 사용한 열화 우라늄으로 이라크 국민이 막대한 피해를입었다”며 “미국과 영국은 이를 보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라크 정부는 “수백t의 열화 우라늄탄이 투하된 이라크 남부지역에서 암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91년 4,341명이던 암환자 수는 97년에 6,158명으로 급증했다”고 주장했다. 99년 유고공습에 반대한 러시아도 서방측에 열화 우라늄탄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미국을 비롯한 나토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10일 기자회견에서 “공기중의 열화 우라늄 입자를 직접 흡입하지 않으면 인체에 해가 없다”며 “백혈병이나 다른 종류의 암이 열화 우라늄탄과 연관이 있다는과학적인연구결과는 전혀 없다”고 유해성을 강력히 부인했다. [영국군 내부문서] 걸프전 이후의 임상결과를 바탕으로 군사령부 병참감은 97년에 “열화 우라늄탄에 노출되면 폐·림프·뇌 등에 암이발생할 수 있다”는 내부문서를 작성했다.문서는 우라늄탄의 먼지는독성은 적지만 마시면 폐에 축적돼 방사능에 의한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백문일기자 mip@
  • 열화우라늄탄 커지는 폭발력 유럽연합·나토 균열

    열화 우라늄탄의 유해성 여부를 놓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이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양측은 각각 열화 우라늄탄의유해성 조사에 착수했지만 사용중단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를내고 있다. 19개 회원국 전문가로 구성된 나토 전문가들은 9일(이하 현지시간)감손우라늄(DU)을 원료로한 열화 우라늄탄이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에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EU 안보정책위원회도 이날 나토가 발칸반도 등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의 사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유해성을 논의했다. 나토는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가 요구한 열화 우라늄탄 사용중지요구는 단호하게 거부했다.세계보건기구(WHO)나 코소보에 파견된 유엔 특사가 열화 우라늄탄의 유해성을 일축한 만큼 사용중지는 무리한요구라는 것이다. 나토는 오는 20일 열리는 북대서양위원회에 정치위원회 논의 결과를회부해 코소보 참전 병사들 사이에 나타나는 각종 건강이상 증세인이른바 ‘발칸신드롬’에 대한 자체조사 개시,조사위원회 구성 여부등을 결정하겠다면서 EU측을 달래고있다.실제로 일부 코소보 파병병사들은 최근 백혈병이나 각종 암으로 사망하거나 두통,불면증 등을호소하고 있다. EU는 브뤼셀에서 회원국 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칸신드롬에 대한자체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EU는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핵에너지청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열화 우라늄탄의 인체유해성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발칸신드롬은 EU 전체 문제로 다뤄지게 됐다. EU 차원의공식조사를 요구해왔던 이탈리아,포르투갈,그리스의 입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과학자,의사 등으로 구성되는 EU 전문가팀은 발칸 현장조사,발칸신드롬 실태,나토 자료 등을 토대로 열화 우라늄탄이 발칸신드롬을 유발하는지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EU 전문가팀은 열화우라늄탄 잔해물의 질병 유발 가능성에 대해서도조사를 벌이며 EU는 발칸지역이 나토 공격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판명날 경우 이 지역에 대한 원조를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국방부는 열화 우라늄탄에 함유된 방사능 양이 돌,흙 등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방사능 양보다 40% 이상 적다며 열화 우라늄탄의부작용을 부인하고 있다.그러나 EU측은 열화 우라늄탄은 비교적 적은양의 방사능을 누출하지만 흡입하거나 상처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면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열화 우라늄탄은 강력한 철판을 뚫는데 효과가 있는 첨단 무기로,주로 전차나 탱크를 파괴하는데 쓰인다.미 공군은 90년 초 걸프전은 물론 지난 95년 보스니아 사태때와 99년 유고 공습때 수만발의 열화 우라늄탄을 사용한 바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유럽 ‘발칸 방사능’ 공포

    광우병 파동으로 몸살을 겪은 유럽이 ‘발칸 신드롬’ 파문에 휩싸였다.유고의 보스니아와 코소보에 평화유지군으로 참전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군인들이 백혈병 등으로 잇달아 숨진 원인을 둘러싸고 방사능 누출 의혹과 공포가 증폭되고 있는 것.99년 유고공습당시 미군이 사용한 ‘열화(劣化) 우라늄탄’의 방사성 누출이 주범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미국과 나토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6명의 참전군인이 백혈병으로 숨진 이탈리아의 줄리아노 아마토 총리는 미국을 겨냥,“동맹국의 과실이 드러날 경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4명의 군인이 백혈병에 걸린 프랑스도 미국과 나토에 정보공개를 요구했다.네델란드,스페인,포르투갈,핀란드,벨기에,그리스,터키 등은 파병군인들에 대한 정밀진단을 실시키로 했다. 그러나 케네스 베이컨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라늄탄이 처음 사용된 걸프전 이후 여러차례 연구했으나 암 등을 일으킨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독일,프랑스,스페인 군 당국도 우라늄탄의 부작용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벨기에 5명,덴마크·체코,포르투갈 각각 1명 등 암 발생자가 늘어나자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진실을 알고 싶다”며 미국에 정보공개를 촉구했다.그는 “경미한 위험이라도있으면 당장 그런 무기는 사용이 금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특히 EU는 미국이 자국 병사들에게는 우라늄탄의 방사능 방출 가능성을 주지시킨 반면 EU 회원국에는 통보하지 않은데 불만을 터뜨렸다. 한편 조지 로버트슨 나토 사무총장은 5일 보스니아의 열화 우라늄탄 피폭 지역이 어디인지와 폭력량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일 것을 지시했다. ◆열화 우라늄탄이란=핵연료의 유효성분인 ‘우라늄235’의 비율이낮으면서 납 등 중금속 함유비율이 높은 감손(減損)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한다.강력한 철판을 뚫을 수 있는 대전차 및 대장갑차 무기로명중시 유독성 방사성 연기가 나온다.유고공습 때 미국은 3만1,000발을 쐈다. 백문일기자 mip@
  • 부시 취임식 경비 360억원

    조지 W 부시 미국 제 43대 대통령의 취임 축하경비로 3,000만 달러(한화 약 360억원)가 소요될 것이라고 미국 일간 유에스에이 투데이가3일 보도했다. 신문은 부시·체니 취임위원회의 계획을 인용,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9번의 무도회와 취임식,축하행진이 열린다고 전했다.퍼레이드는 20일 정오 의회 의사당에서 열리는 취임식이 끝난 뒤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따라 백악관까지 펼쳐진다. ‘미국의 정신을 다함께 축하하기’라는 주제로 열리는 취임행사는18일 링컨 메모리얼(기념관)에서 개막식을 시작으로 19일 부시 대통령당선자 부인 로라 여사가 주최하는 작가연회,딕 체니 부통령당선자가 주재하는 참전용사 경축식,청년음악회로 진행된다. 21일에는 워싱턴 가톨릭 교회 예배와 부시 내외의 백악관 공개가 예정돼 있다.장당 125달러인 무도회 입장권은 정치적 연고가 있는 인사들이 대부분 구입하는데 약 3만 5,000장이 팔릴 것으로 추정됐다.행사비중 약 3분의 2는 개인 헌금과 입장권,기념품 판매대금으로,나머지는 취임식 퍼레이드의 보안 및무대설치를 위한 공적 자금으로 충당된다. 로스앤젤레스 연합
  • 1월의 호국인물 김종식 해병대령

    ‘1월의 호국인물’로 김종식(金種植) 해병대령이 선정돼 오는 5일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헌양행사를 갖는다.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한 김 대령은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중국에 머물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1948년 3월 해사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입대,같은 해 9월 해군소위로 임관했다.이듬해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49년 4월15일 해병대가 창설될 때까지 선발대 요원으로 활약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지역 진동리지구 전투에 참전,수류탄전을 전개하는 과감한 공격으로 적 정찰대대를 기습 타격해 마산으로통하는 요충지인 진동리를 확보하는 등 전공을 세워 전 대원이 일계급 특진했다. 1952년 3월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으며,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고 해군소령 김종식 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놓고 출전하는 일화를 남겼다. 전쟁기간 해병대가 수행한 모든 전투에 참전하여 귀신 잡는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는데 기여한 그는 휴전 이후 해병대 1연대장,헌병감을 역임했으며,1991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금성을지훈장과 금성충무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한편 전쟁기념관은 2001년 호국인물로 김 대령과 함께 2월 권영도(權永道)경찰 순경,3월 김금성(金錦成) 공군준장,4월 임충식(任忠植)육군대장,5월 백재덕(白載德) 육군 이등상사,6월 장세풍(蔣世豊) 육군소령,7월 김용배(金龍培) 육군 준장,8월 변규영(卞圭瑛) 육군 일병,9월 김용식(金龍植) 육군 일병,10월 백마3용사 강승우 외 2명,11월신철수(辛鐵洙)공군 소령,12월 김동하(金東河) 해병중장을 각각 선정했다. 노주석기자 joo@
  • [외언내언] 진짜 21세기의 시작

    2001년 1월1일 진짜 21세기에 들어섰다.이 날은 진짜 세번째 밀레니엄 36만5,242날의 첫 날이다.이미 2000년초에 새 세기,새 천년 축하잔치를 앞당겨 해 버려,정작 ‘진짜’를 맞는 감회는 싱거운 것이 돼버렸다. 식전 행사가 요란해 본행사가 시들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 시간은 당긴다고 일찍 오지 않는다.그런데도 인간은 조급해서 미래를 앞당겨 보고 싶어한다.헌 세기를 빨리 치우고 새 세기를 빨리 맞으려 했다.새 천년까지 겹쳐지니 더욱 그랬다.뭔가 달라지겠지 하는희망에서였을 것이다.이런 조급성을 이용해서 득을 볼 수 있는 축들이 세기의 출발점을 한 해 슬쩍 당겨 잔치놀음을 벌였다. 시간의 시작을 알 수 있는가.시간의 끝은 또 어디인가.시간에 어디매듭이 있는가.흐르는 시간에 인간이 눈금을 매겼을 뿐이다.올해가 2001년이란 것은 서양 사람이 햇수 헤아리는 방식이고 단군기원으로는4334년이다. 세계 대부분이 서력기원을 따르니까 우리도 따른다.이렇게 생각하면 새 세기의 첫 해가 2000년이냐 2001년이냐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있다.그러나,인위적으로 세월을 도막낸 것이라 해도 그도막의 끝이나 첫머리에서 한 번씩 마음을 가다듬어 보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지난 한 해는 20세기 마지막 해니까 한 세기를 정리해 보는 해가 되어야 옳았으나 앞당긴 새 세기의 첫 해로 써 버렸다.차분한 종무식을해야 할 때 들뜬 시무식을 한 것이었다. 지난 세기를 돌아본다면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까.20세기는 우리에게 고통의 세기였다고 해야할 것이다. 20세기 절반은 포악무도한 일본의 압제 아래서 덫에 걸린짐승처럼 신음했고, 나머지 절반은 동족 불화로 파괴의 참화를 겪은뒤 전쟁 공포 속에서 살았다.20개 가까운 국가의 군대가 참전한 국제전쟁이 우리 땅에서 일어났다.20세기의 큰 재앙 가운데 하나였다.그리고,20세기가 다 가도록 우리는 주변국가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해갖가지 설움을 맛보았다. 21세기의 벽두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우리에 대한 일본의모멸행위는 과연 끝났는가.통일국가를 경영할 역량을 우리는 지니고있는가.국제관계에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지금 얼마나 있는가.국가적 자존심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가.한숨과 비탄이 더필요한가. 우리에게 21세기는 영광의 세기여야 한다.우리가 중심국가,선도국가가 되는 세기여야 한다.남이 대양을 가르고 우주로 뻗을 때 우리가작은 울 안에서 이기주의와 패거리짓기의 뻘밭싸움을 계속해서는 21세기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없다.울 밖으로 나와 눈을 들어 넓게 보아야 한다.미래는 개척하는 자의 것이다. 박강문 논설위원 pensanto@
  • 민주당 총재비서실장 李協의원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9일 총재비서실장에 이협(李協·4선) 의원을 임명했다. [프로필] 4선의 중진이지만 주로 재선급에서 맡아 온 총재비서실장을흔쾌히 수락한 데서 알 수 있듯 소탈한 성품. 국회의원을 13년째 하면서도 서울 도곡동의 13평 아파트에서 자녀들과 함께 살 정도로 소박하다.이 때문에 깨끗하고 청렴하다는 평을 듣는다.서울법대 시절 6·3운동에 참여해 제적당했고 월남전에도 참전했다.중앙일보 기자로있다가 79년 10·26사태 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공보비서로 일했다. 민추협 대변인 등을 거쳐 88년 13대 때 당선됐다. ▲황해도 서흥·49세 ▲서울법대 ▲중앙일보 기자 ▲13·14·15·16대 의원 ▲국민회의 수석부총무 ▲총재특보단장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 미국산 구축함 역사속으로

    새 밀레니엄의 첫해가 저물어가는 29일 오후 해군의 모항 경남 진해 군항부두에서는 미국에서 들여와 22년 이상 활약해 온 ‘광주함’과 ‘강원함’ 등 3,000t급 구축함 2척과 1,800t급 고속 전투수송함 ‘경남함’의 전역식이 열렸다. 진해 군항에 도열한 해군군악대의 연주 속에 선체번호 921호(광주함)와 922호(강원함) 게양대에서 나부끼던 태극기와 해군기가 내려졌다.군항에 정박해 있던 모든 군함들이 7초 동안 기적을 울려 경의를 표했다. 63년 ‘충무함’을 시작으로 우리 해역을 지켜온 12척의 미국제 구축함 중 마지막 구축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이제 광개토대왕함 등 국내기술로 설계·건조한 국산 구축함이 우리 해역과해상교통로를 지키게 된 것을 뜻한다. 45년 건조된 광주함은 77년 해군이 도입,23년 9개월 동안 활약했다. 44년 건조돼 6·25 전쟁에도 참전한 강원함은 78년 국내에 인도돼 22년 4개월간의 임무를 마쳤다.41년의 취역사를 자랑하는 경남함은 이승만·윤보선·박정희 대통령 등 VIP가 5번이나 승선한 50∼60년대국내최대함이었다. 강원함은 내년 6월쯤 군함박물관으로 개조돼 진해항에 전시된다.두구축함의 선체번호 921번과 922번은 영구결번,보존된다. 해군은 98년 ‘광개토대왕함’‘을지문덕함’‘양만춘함’ 등 3,800t급 한국형 구축함 3척을 건조해 최근 실전배치했다.2003년에는 4,500t급 한국형 신형 구축함 3척이 선보이며 2008년부터는 ‘꿈의 구축함’으로 불리는 이지스급(7,000t급) 차세대 구축함 3척이 국내에서건조돼 바다를 누비게 된다. 노주석기자 joo@
  • SOFA 관련 주요 일지

    ■1950.7.12 6·25 참전 미군 지위와 권한보호에 관한 대전협정 조인■1966.7.9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 체결■1967.2.9 SOFA 발효 및 대전협정 폐기■1991.1.4 SOFA 1차 개정.형사재판권 자동포기조항 삭제 등■1992.10.28 마이클 이병,윤금이씨 살해■1995.11∼1996.9 7차례의 협상.한국의 미군피의자 조기 신병인도주장에 대해 미국의 대질신문권 인정 등 인권보호장치 요구로 결렬■2000.2.19 매카시 상병,이태원 여종업원 살해.재판도중 도주.SOFA 문제점 노출■5.8 매향리 사건 발생. ■7.13 미군 독극물 무단 방류사건.SOFA내 환경조항 삽입 필요성 대두■8.2∼3 SOFA 8차개정협상(서울).‘외국 수준 개정’ 합의■10.17∼18 9차 협상(워싱턴)■11.29∼12.11 10차 협상(서울)■12.28 SOFA 개정협상 타결
  • 국제교류기금등 5개기금 내년 폐지

    내년에 국제교류기금과 우체국보험기금 등 5개 기금은 폐지되고 3개기금은 통폐합된다. 2003년까지 모두 10개 기금이 없어지거나 통폐합된다.또 내년부터모든 기금은 국회에 운영계획과 결산을 보고해야 한다. 정부와 민주당은 22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장관과 남궁석(南宮晳)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금제도 개혁을 위한 당정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 61개인 기금을 통폐합해 2003년까지 51개로 축소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내년에 없어지는 기금은 국제교류기금과 우체국보험기금·법률구조기금·도로교통안전관리기금·재형저축장려기금 등 5개다. 또 산업재해예방기금과 산업재해보상기금은 통합된다.참전군인 등지원기금과 보훈기금도 통합되고 산업기반신용보증기금과 중소기업창업 및 진흥기금도 내년에는 통합된다.내년에 폐지되거나 통폐합되는 기금은 8개인 셈이다. 또 2002년에는 염안전기금,2003년에는 국민투자기금이 폐지된다. 정부와 여당은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금을 대폭 폐지하거나 통폐합하기로 했다. 또 현재는 공공기금과 기타기금으로 구분돼 있으나 내년부터는 모두하나의 기금으로 돼 국회에 운영계획과 결산 등을 보고해야 한다. 현재 기타기금은 국회에 보고하지도 않아 운영이 방만하다는 지적이있었다. 당정은 또 51개로 축소되는 각종 기금의 심의·의결·결산 등에 대해 국회 예결위보고를 제도화해 기금의 잘못된 사용을 막기로 했다. 다만 기금에 대한 주무장관의 자율 변경한도(지출금액의 50%) 문제는 추후논의를 통해 범위를 조정하기로 했다.당정은 이같은 내용의개정안을 내년 1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곽태헌 이지운기자 tiger@
  • 파월 국무 내정자는/ 걸프전 승리 이끈 영웅

    [워싱턴 연합] 콜린 파월(63) 전 미국 합참의장이 16일 미국의 65번째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자메이카 이민 2세로 뉴욕 빈민가에서 백악관 입성을 이룩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된 것. 그는 베트남전 패배와 걸프전 승리라는 미 현대사의 명암을 모두 겪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로 다양한 계층의 존경을 받고 있다.조지 W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는 그를 지명하는 연설에서 “파월 장군은 미국의 영웅이며 모범이고 위대한 미국의 역사”라며 “미국을 대표할수 있는 위대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임명으로 미국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이란 수식어를 보탠 파월은 63년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69년 워싱턴 군사령부로 이동한 뒤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거쳤다.70년대에는 한국에서 포병대 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89∼93년 흑인 최초의 합참의장으로 레이건,부시,클린턴 대통령 등 3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걸프전 승리로 유명세를 탔고 합참의장 시절인 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축출해 큰 인기를 얻었다.96년에는미국최초의 흑인 대통령감으로 지목됐으나 그는 언론으로부터의 가족보호를 이유로 공직 출마를 고사,퇴역 이래 청소년 운동에만 전념해 왔다. 그의 군사정책인 ‘파월 독트린’은 미국이 불가피하게 해외분쟁에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명료한 정치적 목표를 세운 뒤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최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그러나 파월은 보수적 군사정책과는 달리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낙태 찬성 ▲총기규제 지지 ▲소수민족 보호조치 지지 등 진보적 성향을 보여왔다.
  • [부시시대 美國](1)’법원이 만든 대통령’의 과제

    오랜 산고 끝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출범을 눈앞에 두게 됐다.공화당으로서는 8년 만에 백악관 주인 자리를 되찾는 쾌거이지만 지루한 법정 공방은 대통령 선출 방법 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시켰다.심화된 국론 분열 해소 등 국내문제와 보수화로점쳐지는 대외정책 등 부시호의 앞날을 시리즈로 짚어본다. 12일 연방대법원의 플로리다주 수작업 검표불법 판결로 부시 후보는선거를 승리로 마감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부시 후보는 플로리다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25석을 보태 총선거인단 271석을 차지,백악관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지난 11월7일 선거일 이후 무려 35일 만에 다가온 승리의 날이다.부시의 당선은 개인적으로 부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패배시킨 팀을아들이 설욕했다는 정치 드라마적인 요소를 안고 있다.또한 그의 당선으로 1825년 제6대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 이후 175년 만에 ‘부자(父子) 대통령’의 탄생이 재연됐다. 당선이 확정됨으로써 앞으로 부시팀은 한달 이상 미적거려 오던 정권 인수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를 중심으로 콜린 파월 국무,콘돌리자 라이사 안보보좌관 등 차기 행정부의 진용이 곧 공식화될 것이다. 그러나 혼돈 끝에 그가 차지한 승자의 위치는 영광스럽고 화려해 보이기보다는 도처에 남겨진 상처로 인해 빛이 다소 바랜 모습이다.우선 승자 지위가 투표가 아닌 소송을 통한 법원에서 완성됐다는 점이그렇다.그만큼 그는 국민들의 전적인 지지와 축복 속에서 대통령에당선되지 못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안게 됐다. 국민과의 이러한 거리감은 반분된 여론에서 잘 나타난다.엎치락뒤치락한 법정 싸움에서 나뉜 여론으로 그는 ‘반쪽 대통령’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여론 조사는 그의 대통령 취임을 원치 않는 미국인이 절반에 달함을 보여준다.원치 않는다는 말보다 반대한다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반쪽의 반감이 큰 실정이다. 이처럼 찢어진 여론은 실망과 좌절감으로 인해 당분간 정치 혐오 증세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부시가 대통령이 됐을 때 흑인 9명 중 1명은 그를 반대할 것이란 언론의 지적이 등장했다.인권운동가 제시잭슨 목사는 반대를 위한 거리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위정자들을 비웃는 젊은 층의 정치 냉소현상이 높아질 것이나 이에 대응할 이념 논리는 약해 보인다.부시로서는 당장 의회가 민주·공화로 양분된 것이 문제다.양분된 의회가 힘을 실어주지 못할경우 정치적 입지 축소는 뻔한 일이다.119년 만에 50 대 50으로 나뉜상원과 하원의 절대 우위 확보 실패는 부시에게 자칫 시작부터 ‘레임덕 대통령’이란 꼬리를 붙여줄지 모른다. 아울러 대외적으로 미국을 보는 외국의 시각도 집권 초기 대외정책추진에 큰 걸림돌이 될 여지가 많다.연약한 대통령직에서 오는 대외정책은 그만큼 걸림돌이 많을 것이고,결국은 최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수장’이란 과거 면모가 퇴색될 수도 있다. 사법부에 대한 권위도 이번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으며 사법부의 특정 정당 편향성도 앞으로 내내 국민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갖가지 선거 후유증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부시 행정부가 풀어야할 첫번째 과제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부시 인생역정·집안. 조지 W 부시는 알코올 없는 맥주 ‘오둘스’를 마신다.40세 생일 이후부터는 ‘진짜 술’을 한 모금도 안 마셨다고 한다.청년 시절 술에찌들고 독설을 퍼붓던 ‘술 취한 싸움닭’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웠다. 스스로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자기 변신에 철저했지만 소탈한 성격은 그대로다.청바지에 면셔츠차림으로 대중 앞에 서기를 즐긴다.플로리다주에서 재검표 전쟁이 진행될 때도 태연히 옆구리에 운동화를 끼고 텍사스주지사 관저를 들락거렸다.그런 그가 43번째 백악관행 티켓을 거머쥐며 부자(父子) 대통령의 신화를 일궜다. 그는 부시가(家)의 후광을 업고 예일대와 하버드대에 진학했으나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그를 장래 대통령감으로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특유의 친화력으로 21세기 미국의 첫 대통령을 확정지었다. 부시는 78년 32세의 젊은 혈기로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으나 ‘부시 주니어’라는 이미지 때문에 고배를 마셨다.이후석유사업에 손을댔지만 빚더미에 올랐다. 다시 술에 젖자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 취급을 했다.인생의 전환점은 40세.술을 딱 끊은 뒤 그는 정치 명문가 자손답게 정계에 눈을 돌렸다.아버지 부시의 선거운동원으로 뛰면서 정치 감각을 익혔다.주지사 출마도 이때 결심했다. 94년 텍사스주지사에 취임한 뒤 교육·사법·복지·청소년 범죄 개혁을 단행했다. 부시 집안은 3대에 걸친 명문가다.할아버지 프레스콧 셀던 부시는은행업으로 돈을 번 뒤 코네티컷주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다.폭격기조종사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 영웅으로 귀환한 아버지 부시는 공화당 하원의원과 부통령을 거쳐 제40대 대통령이 됐다.동생인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다.대통령과 상원의원을 배출한 케네디가를 능가한다고 한다. 부시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꼬인다.대학때부터 그랬다.세세한 결정은 부하에게 맡기고 자신은 최종 결정만 내리는 보스 기질 때문이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실무형 리더’인 것과는 다르다.플로리다법정 공방에서 고어는 변호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작전 지시를 직접 내렸다.그러나 부시는 모든 권한을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에게 일임했다.대신 텍사스 목장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한가로운’생활을 즐겼다.부시의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이미지가 고어의 지적인 이미지를 이겼다. 백문일기자 mip@
  • 美, 노근리 학살 공식 인정

    [워싱턴 연합] 미국 국방부는 노근리 학살사건에 대한 1년여의 조사에서 미군이 비무장 피란민들을 위협,사격을 가했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군이 민간인에게 사격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는지에 대해선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6일 보도했다.참전군인 100여 명의 인터뷰와 100만 페이지 이상의 서류를 재검토해 작성된 국방부 보고서 초안은 노근리 학살사건에 미군이 관련됐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 것이다.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AP 통신이 지난해 9월 노근리 학살사건을처음 보도한 뒤 이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다.보고서 초안은 군 조사관들이 미군 제7기갑연대가 1950년 7월 26일 퇴각과정에서 북한군 침투를 우려해 피난민에게 발포했으나 이 과정에서 몇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밝혀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 美 대통령 선거/ 잠정 당선 부시의 인생역전

    1988년 텍사스 주지사 출마를 결심하기 전까지 조지 W 부시는 그저‘대통령의 아들’에 불과했다.78년 텍사스주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한경험이 있으나 그에게 붙어다니던 별명은 ‘핏대(feisting guy)’,‘촌닭(country man)’ 정도가 전부였다.부시가(家)의 후광을 업고예일대와 하버드대에 진학했으나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의리의 텍사스 사나이’로통했다.당시 그를 대통령감으로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시는 명문가 자손인 게 부담스러웠다. 할아버지 프레스콧 셀던은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을 지냈다.폭격기 조종사로 참전,2차 세계대전의영웅이 된 아버지 조지 부시는 하원의원과 부통령을 거쳐 88년 41대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부시가(家)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택했다.알콜 중독자에 버금갈 만큼 과음했다. 그가 술을 끊고 현실정치를 익히기 시작한 40세 이전까지 방탕한 생활의 연속이었다.예일대 4학년때는 엘리트 학생들의 비밀모임인 ‘두개골과 뼈(skull and bone)’에 참가,현실도피적 성향을 보였다.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하바드대 경영대학원에 들어갔으나 성적은 변변치 못했다. 77년 미드랜드 출신의 조지 메이흔 의원이 의원생활을 은퇴하자 부시는 이듬해 공화당 후보로 나섰으나 ‘부시 주니어’라는 비난속에고배를 마셨다.선거에 패한 부시는 석유사업에 손을 댔으나 실패를거듭,85년에는 빚더미에 올랐다.그는 술에 다시 빠졌고 음주벽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86년 40세 생일을 맞았다.그는 친구들과 폭음한 다음날 조깅을 하다 졸도할 뻔했다.그는 술을 끊기로 결심했으며 이후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88년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선거운동원으로 뛰며 정치감각을 익혔다.이때 자신감을 얻어 주지사 출마를 결심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는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부시 주니어’가 되기는 싫었다.92년 아버지가 클린턴에 지자 비로소 93년 주지사 출마를 선언,홀로서기에 나섰다.94년 주지사에 취임한 그는 보수진영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교육·사법·복지·청소년범죄 개혁을 단행했다.특히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의 성적을 높여 교육개혁에 성공한 것은 유명하다.89년에 사들인 텍사스 레인저스 야구단을94년에 되팔아 1,490만달러의 자금도 마련, 백악관 진군을 예고했다. 그러나 부시는 백인귀족과 대기업의 앞잡이라는 공격에 직면했다.그래서 ‘온정적 보수주의자’라는 기치를 내걸었다.진보세력의 예봉을피하기 위해 ‘친절하고 부드러운 아메리카’를 내세운 아버지의 슬로건과 비슷하다. 부시의 친화력은 아버지를 압도한다.선거자금 마련모임에선 60만원짜리 점심과 120만원짜리 저녁이 불티나게 팔렸다.그는 거듭되는 실수를 솔직함으로 극복한다.음주운전 경력을 시인하듯 스스로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고 강조한다.부자(父子) 대통령의 탄생이멀지 않았다. 백문일기자 mip@
  • 국군포로 1명 또 귀환

    국가정보원은 6·25 전쟁 때 북한군에게 억류됐던 국군포로 김준서씨(66·가명)가 가족과 함께 최근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을 거쳐 귀환했다고 27일 밝혔다. 김씨는 51년 7월 국군 7사단 5연대 소총수로 참전중 강원도 태백지구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생포돼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탄광 등에서 광부로 생활해오다 지난 10월 북한을 탈출했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캠퍼스의 눈/ 노근리·베트남 ‘양민학살’의 진실

    베트남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68년 2월 퐁니·퐁넛 마을에선 부녀자 69명이 한국군에게 처참히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최근까지 이 사건의 진상과 관련,공방이 계속된다.그런데 퐁니 마을뿐만 아니라 10월에 호앙쩌우 마을,69년 4월 푸옥마이 마을에서도 ‘베트남민간인이 살해됐다’는 관련 문건들이 잇따라 공개돼 그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양민학살 사건들은 지난 14일 주베트남 미군사령부의 각종 수사보고서와 20여장의 흑백사진 등이 공개되면서 일파만파로번져간다.월남전에 참가한 한국군에 의한 양민학살은 그동안 수많은의혹이 제기됐으나 관련 당사자들은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며 부인했다. 문서에는 “1969년 4월 푸옥마이 마을 사건은 당시 한·미·베트남3자가 공동조사를 벌여 사실을 입증했다”고 나와 있어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물론 참전군인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적과 민간인이 구분되지 않은 베트남전 속성을 너무도 모른다’고 주장한다.또 학살자라는 멍에가 웬말인가라며 안타까워한다.이 사건은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로 유명한 ‘노근리’와 흡사하다. 미군의 잔혹성과 비도덕성을 나무라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막상 우리가 베트남에서 ‘가해자’로 지목되자 조용히 가라앉기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우리가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고발하며 핏대를 세울 때도,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자행된 노근리사건을 얘기할 때도 모두 그 밑바탕에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의식이 배경이 됐다.우리가 당한 오욕의 역사에 대한 책임규명을 요구하기에 앞서 이제 우리도 과오를 투명하게 시인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박 지 영 연세대학보사 poppy777@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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