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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5)짐바브웨 흑백 갈등

    지난 4월 중순,아프리카의 짐바브웨가 흑인들의 백인 농장점거 및 살상이 격화되면서 서방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짐바브웨는 흑백간 화해로 새로운 도약을 일군 남아공의 접경 국가.21세기 초입의 국제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 짐바브웨의 흑백토지 분쟁은 3개월로 접어든 지금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지난 2월 이후 흑인들에 의해 습격당한 백인 농장은 모두 1,600여개.백인 4명을 포함,33명이 숨졌다.백인들로 구성된 민간농장주연맹(CFU)은 하루에 5번꼴로 농장습격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밝힌다. “백인의 땅을 짐바브웨의 주인 흑인들에게”란 슬로건으로 흑백 유혈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지난 달 24∼25일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사태해결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 짐바브웨 토지 소유권 갈등은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시작됐다.그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무가베 대통령은 이때부터 “백인의토지를 토지 없는 흑인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앞서 1890년부터 짐바브웨에 정착한 영국인 중심의 백인들은 광산과 담배농장 등 알짜배기 땅을 모두 거머쥐었다.1923년 정식으로 식민지로 접수한 영국은 자국민들에게 헐값에 땅을 분배했다. 짐바브웨 백인 인구는 7만명.0.6%에 불과한 이들이 토지의 32%를 차지하고있다.농장수는 4,500여개로 짐바브웨 비옥한 토지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반면 흑인들이 소유한 땅은 38%.대부분 극심한 한발지역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다.소수 백인과 나머지 흑인들의 극심한 빈부격차는 당연한 일. ●서방의 시각. 20년 독재통치기간 중 부패 등으로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한 무가베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집권연장을 위해 사태를 꾸몄다고 보고 있다.짐바브웨 야당도 같은 시각이다.무가베 대통령은 ‘식민시대의 청산’‘제국주의 타파’‘우리 땅을 짐바브웨 주인인 흑인손에’를 외치며 민족의식을 자극하고 있다.짐바브웨 독립전쟁 참전전우회(ZNLWVA)가 중심이 된 토지 몰수단은 전국의 백인소유 농장들을 돌며 농장주를 감금,폭행하고 농장에 고용된 흑인들을살상하고 있다.짐바브웨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총선 직전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무가베는 몰수대상 농장 804개를 발표,보상없이 토지를 강제 접수할 수 있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과의 관계. 대부분 자국 정착민의 후손인 백인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영국 정부는 짐바브웨 정부에 대해 지난 20년간 토지 개혁을 위해 지원한 400만 파운드의 돈이 모두 무가베 대통령 측근에 돌아갔다며 경제제재 및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남아공 등 영연방 국가들도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전망. 총선에서 무가베 대통령이 이끄는 짐바브웨 아프리카민족연합 애국전선(ZANU-PF)이 승리하긴 했으나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 확보엔 실패,‘토지 무보상 강제몰수법’을 추진하는데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야당의 약진은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20년 동안 3명 이상의 의원을 낸적이 없는 야당은 이번에 민주변화운동당(MDC)이 도시에서 선전,58석을확보했다. 당수인 모건 츠반지라이는 2002년 대선의 강력한 후보. 백인소유농장의 무조건적인 몰수가 아닌 점진적 국유화,고용 우선 해결을 내세운다. 서방의 지원도 받고 있다. 이에 심적부담을 느끼고 있는 무가베가 경기침체와 직결되는 토지몰수 등강공책을 그대로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짐으로써 해결전망에 한가닥희망을 던져주고 있다.영국 등 국제사회 개입정도도 흑백토지 유혈 분쟁 타개의 관건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무가베 대통령 '독립영웅'서 '독재자' 전락. 최근의 흑백 토지 유혈 분쟁을 사주하고 있다는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는로버트 무가베 대통령(76).80년 독립과 함께 집권,20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했다.그에 대한 서방 언론의 정의도 ‘혁명적 독립 영웅’에서 ‘아프리카의전형적인 독재자’로 변해왔다. 백인 통치시절인 66년부터 13년간 게릴라 지도자로 이름을 날린 무가베는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독립과 함께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뒤 취임사에서“백인이 훔쳐간 땅을 재분배하겠다”며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인들에게 ‘약속의땅’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다. 그는 자신의 통치 철학은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에서 배운 것이라고 주장해왔는데 80년대 초반 영국으로부터 받은 토지개혁 지원금을 측근들과 나눠쓰는 등 권력층 부패 고리를 형성하면서 집권욕에 눈이 먼 독재자란 오명을 얻기 시작했다. 1924년 백인들의 담배 농장에 둘러싸인 쿠타마 미션이라는 두메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종간 경제적 불평등을 실감하며 자랐다. 정치에 입문하기전 20년동안 교사생활을 했던 무가베는 ‘교육이야말로 최대의 투자’라는 신념의 소유자.영국 언론들은 무가베의 유일한 업적을 ‘교육 투자’로 꼽고 있다.짐바브웨 문맹율은 15% 이하.아프리카 국가 가운데교육수준이 가장 높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무가베의 교육정책이 무가베 스스로 판 무덤이라고 말한다.이번 총선 결과에서 드러났듯 도시의 젊은 층들이 짐바브웨 문제의 원인을 정부 부패와 국정운영 실패에 있다는 분석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투표율도 65%로 사상 최고였다. 무가베 대통령은 일흔 여섯의 나이를 무색하게할 정도의 왕성한 기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영국 언론들은 그의 잇단 해외순방과 쉼없는 국정운영을 젊은 기자들과 관료들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새벽 4시에 어김없이 기상,체력단련을 하고 있으며 97년엔 일흔 세살의 나이로 두번째 부인 그레이스(35)와 사이에 세번째 아이를 얻기도 했다. 김수정기자
  • 베트남전 희생자 추모 평화음악제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천주교 인권위원회,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국제민주연대 등 1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진실위원회’는 6일 서울 숭실대에서 베트남전 희생자를 위한 첫 시민행사로 ‘사이공,그 날의 노래’라는 평화음악제를 갖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장사익,노영심씨 등 국내 음악인들이 참전 국군의 잘못을 사과하는 마음을담은 ‘미안해요 베트남(작사·작곡 박치음 순천대교수)’을 부르고,무용가김경란씨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진혼무도 출 예정이다. 베트남국립예술단의 특별공연도 펼쳐지며,부대행사로 베트남 풍물시장,베트남 음식판매,베트남전 사진전도 열린다. 위원회측은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에 앞서 30년 전의 베트남 전쟁,한국과베트남의 과거와 오늘을 동시에 돌아보며 전쟁 학살로 피해받는 이들을 추모하고 사과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또 “일본군 종군위안부 생활을 했던 문명금 할머니가 기탁한 성금 4,200만원에 국민 성금을 보태 베트남 현지에 역사기념관도 건립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참전 군인들은 시민단체들의 이같은 행사 계획에 대해 “참전 군인들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한수기자 onekor@
  • [사설] ‘민주화 보상’ 전향적으로

    군사독재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법 정비작업이 마무리됐다.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시행령이 지난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민주화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의문사진상규명 시행령도 함께 통과됨으로써 지금까지 베일 속에 가려졌던 민주인사들의 사인도 상당 부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불행한 과거를 국민적 합의과정을 통해 정리하고 매듭짓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도 크다. 민주화운동 보상법 시행령의 대상은 박정희(朴正熙)정권의 3선 개헌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69년 8월7일 이후의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피해자들이다.시행령의 가장 큰 특징은 모법(母法)이 규정한 ‘항거’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했다는 점이다.국가권력을 상대로 직접 항거한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이 사회 각 분야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 또는 고용자의 폭력 등에 저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에 항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도 보상 대상에 포함시켰다.이에 따라 민주화운동을 하다 해직된 교수나 교사,언론인,해고근로자,학사처분을 받은 학생들도 국가의 보상을 받게 됐다.이들의 수는 1만5,000∼1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정부는 다음 달 초까지총리실 산하에 보상위원회를 설치,신청을 받을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항거’의 개념을 포괄적으로규정함에 따라 대상자 포함 여부를 둘러싼 시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대 후반의 전교조 활동과 노사분규사태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재단비리와 관련한학내분규로 해직된 교사나 단순한 노사갈등으로 직장을 잃은 근로자를 대상자에 포함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상금 산정과 관련한 형평성 시비의 가능성도 크다.광주민주화 운동 사망자의 보상금이 1억1,000만원이었던 데 비해 민주화운동 사망자에게는 최고 2억원이 지급될 것으로 알려졌다.보상액이 훨씬 적은 6·25 전쟁 및 베트남참전용사들의 반발도 배제할 수 없다.피해 입증을 본인이나 유족이 책임져야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군사독재 정권의 압제에 맞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보상이라는 숭고한 뜻을 살리려면 시비나 갈등은 최소화해야 한다.구체적인사실 관계 규명이 다소 미흡하다 하더라도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라는 본질자체만 분명하다면 대상자에 포함시키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실무적으로 까다로운 일은 많겠지만 오랜 기간 고통 속에 희생의 나날을 살아온 민주인사와 가족들이 또다시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대한광장] 통일시대 역사인식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11년 전 1989년 3월의 문익환 목사를 생각해 본다.당시 언론에 나타난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대한 기사제목을 보자.“실정법을 어겼다,” “밀행에 충격과 경악,” “성급한 행동,” “혼란이 우려된다,” “통일창구를 깬 무분별한 행동,” “그는 대한민국을 무시했다”등으로 비판 일색의 기사였다. 그러나 바로 전 1월에 있었던 정주영 회장의방북에 대해서는 “민족경제공동체건설을 위한 첫걸음”,“남북화해 교류의큰 이정표요 크나큰 노력”이라고 긍정적인 보도를 했다.기업인이 정부에 미리 알리고 간 경우와 민간단체의 통일운동가가 알리지 않고 간 차이는 있지만,문목사를 밀행의 입북으로,정회장은 방북으로 표현하였다.한쪽은 실정법위반이며,한쪽은 남북 경제교류의 물꼬를 튼 민족역량 과시로 그 성과를 강조했다.이러한 기사는 북한을 우리의 적이며,체제 경쟁에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는 냉전적 시각에서 비롯됨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1995년 국방부는 한 6·25포스터를 시중에 배포했다.당시 냉전시대보수언론의 대표격인 한 신문은 그 포스터에 대해서 6·25를 도발한 북한의 침략성과 불법성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국방부에반공적 색깔논쟁을 제기했다. 이 포스터는 6·25를 맞아 국방부가 공모한 작품 중 당선작이었는데,태극기를 바탕에 깔고 국군 장병과 인민군 사병이 서로 껴안고 있는 도안이었다.그림 밑에는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어야만 했던 아픈 기억 6·25”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그 신문은 이 문제의 포스터가 6·25를 왜곡하고 북의 전쟁도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이에 대해 국방부는 국군으로 참전한 형과 인민군으로 징집된 동생이 전장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만나야했던 비극적 실화를 형상화 한 것으로 민족의 비극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냉전적 사고방식을 가진 언론은 남북이 같은 동포이고 형제라도 이념을 달리하기 때문에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조차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관점이었다. 문익환 목사는 남북의 동족이 피로써 피를 씻는 참담한 비극을 방지해 보고자 백범 김구 선생이 북행을 나섰듯이 자신도 그로부터 41년 후 “통일에 대한 온 겨레의 염원을 이 이상 방치해 둘 수 없는 상황이 방북을 결행하게 했다”고 말했다.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치욕을 씻을 수 없고,인권·민주화·경제발전의 궁극적 해결이 있을 수 없다는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그는 다섯 번째 수감되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민족사적 최대의 과제인 통일운동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남북정상의 만남으로 통일민족주의의 새 역사가 열린것이다. 7,000만 민족과 500만 해외동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기적이다.두 남북 정상의 만남은 민족적 자주성의 상징이요,우리의 불행의 역사를 청산하는 민족사적 쾌거이다. 이제 적대의식에서 동족의식으로,국민들의 대북한인식을 바꾸는 통일환경을조성해야 한다. 분단시대의 모든 제도적 유제,극우적 보수의식은 청산되어야한다. 북한을 돕는 일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동포애적 시각에서통일시대의 관건이 된다. 북한을 더 이상 적국이 아니라 동족의 나라로 보는 새로운 민족관이 요청되는 시기이다.역사적 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립에서 화해로의 바뀜이다.대북 동족의식이 자리잡게 되는 날 남북 평화통일론,남북 대등 통일론이 확실히 정착되리라 믿는다. 徐紘一 한신대교수·국사학
  • [매체비평] 사건 ‘본질’ 에 대한 ‘균형’ 보도 절실

    한국언론의 2000년 6월 하순은 너무도 뜨거웠다.엠바고를 깬 중앙일보 청와대 출입정지조치,의사들의 전면폐업,월남참전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의 한겨레신문에 대한 폭력행사,롯데호텔과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강제진압 등 연일 언론보도의 방향과 방법,그리고 공정성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만드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중앙일보가 엠바고를 깨고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노동당규약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데 대하여 청와대는 그 보도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고 비보도 합의의신뢰를 깼다는 판단에 따라 출입금지조치를 취했다가 6일만에 해제했다.국익이 우선인가,언론의 상업주의가 우선인가,그리고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고엽제전우회’의 폭력행사는 그동안 어느 매체보다 가장 적극적으로 고엽제 피해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여론환기를 하고 문제해결을 해왔던 한겨레신문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었다.더우기 폭력사태의 책임과 원인을한겨레에 돌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절망적이었다. 언론은 의사들의 전면폐업을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이라고 보는 국민적 상식과 분노에 충실했다.의사들은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도 못하고 언론에 의해 초토화되었다.결과적으로 국민전체를 적으로 삼아 버리고 말았던 이번 폐업사태는 의사 전체의 역사적 실패요,치유불가능한 상처로 기록될 만하다.겨우 며칠 사이에 의사들은 남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아름다운 존재’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밥그릇싸움이나 벌이는 ‘집단이기주의의 화신’ 쯤으로 전락하고 말았다.의사들에게는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언론홍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케 한 사태였다.이 과정에서 한국언론은 상당한부분 직무유기를 했다.어느 매체도 의사들이 어쩌다가 극단적인 폐업에까지이르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밝히질 않았다.국민들만 영문도 모르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폐업사태를 맞았고 고통을 받았다.심지어 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던 신문도 의사들이 내세우는 논리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언론은 의사들의 폐업원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한편 롯데호텔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인 원인에 대해서도 침묵했다.롯데사태가 악화된 데에는 호텔소유주와 경영진이 성실교섭의 의무를 어겼다는 혐의가 있건만 그것을 지적하는 언론은 없다.그 배경에는 광고를 쥐고 로비활동을 하는 롯데호텔과 롯데그룹,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재벌들의 싸늘한 눈초리가 어른거린다. 관광호텔업이란 주로 외국인 투숙객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이미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이미지란 한번 나빠지면 회복하기 어렵고,그것이 가져오는 경제적 손상은 계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호텔 종사자는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안다.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파업에까지이르게 되었는지를 국민들은 알지 못한다.언론이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한편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그 사실만 알뿐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며 불안해할 뿐이다.사태가 논리적인 연속선을 벗어나서 비약해 버렸기 때문이다.의사들의 폐업이나 한겨레신문에대한 폭력사태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던 경찰이 겨우 며칠이 지난 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류한호 의사·노동자 목소리엔 소홀
  • [굄돌] 전쟁의 슬픔

    바오닌이라고,베트남의 작가가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간 일이생각난다. 때마침 그의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을 읽은 터였기에 관심이부쩍 생겨 그를 보려 가기도 했었다.그는 베트남전에 직접 오랫동안 참전하여 상대방 병사를 향해 총을 겨눈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아름다운 소설이었다.페이지마다 스민 ‘전쟁의 슬픔’은 어떤 그럴듯한 명분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정의의 전쟁이란없는 것이다. 전쟁은 살아남은 자조차 산 것 같지 않은 자로 만들어버리기때문이다. 바로 며칠 전,파주의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사고로 인해 두 중령이 무릎과 발목 아래를 절단 당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있었다.참으로 마음이 아팠다.그러나,졸지에 일을 당한 이들의 참담한 마음을 내가 헤아릴 재주는 없을 것이다.그저께인가는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가‘난리’를 벌인 일도 있었다.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 보도가 고엽제 피해보상 소송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조금만 더고개를 뒤로 돌리면 매향리 미군 사격장을 둘러싼 문제…… 이것들이 내게는 모두 ‘전쟁의 슬픔’으로 보인다. 기억을 더 거슬러 오르면,몇 년 전 잠수함이 고장 나 남쪽의 산야에 들어와이리저리 쫓기다 죽어간 북한 병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특히,열 명이 넘는병사들이 벌거벗은 채 나란히 쓰러져 있던 모습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그런가 하면,토벌작전에 나가 아까운 목숨을 잃은 남쪽의 병사들도 있지 않았던가.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는나의 세대도 실은 전쟁의 기운 속에서 ‘전쟁의 슬픔’을 목도하면서 살아온 셈이다.변화만큼이나 논란 많았던 6월을 보내며 생각해 본다. 이제서야 한반도는 전쟁이 강제하는 죽음의 기운으로부터 겨우 한 발자국 멀어진 셈이라고. [방민호 문학평
  • 한겨레신문사에 난입한 고엽제전우회 4명 영장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원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은 29일 연행한 회원 42명 가운데 사진 및 비디오 채증작업을 통해 극렬시위자로입증된 고모씨(54) 등 4명에 대해 건조물 침입, 특수공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나머지 38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27일 오후 3시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 앞에서 “한겨레신문의 ‘월남 참전용사 베트남 양민학살’보도가 참전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사옥에 난입,사무용품 등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7월의 호국인물 김홍일장군

    전쟁기념관은 29일 ‘7월의 호국인물’로 6·25 전쟁 때 한강 및 낙동강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한 김홍일(金弘壹·1898∼1980) 육군 중장을 선정했다. 김 장군은 평북 용천에서 출생,일제 당시 한국의용군사령관,중국군사단장,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했으며,이봉창 의사의 항일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한국군 육군 준장으로 임관돼 6·25 전쟁에 참여했다. 김 장군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서울이 실함(失陷)되자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을 맡아 북한군 1군단을 상대로 6일동안 한강전선을 지켰다.이 전투로 국군이 후퇴하고 미국 지상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김장군은 이후 1군단 창설 군단장으로 진천전투,화령장전투,안동전투에서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했다. 5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 후 중화민국 대사,7대 국회의원,신민당 당수,광복회장 등을 역임했다.건국훈장 독립장과 태극무공·을지무공·청조근정 훈장을 받았다. 노주석기자 joo@
  • 의료계 집단폐업…정치권, 강력대처 합창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 27일 의료계의 집단폐업 등과 관련,‘집단이기주의’를 강력히 경고한 데 대해 정치권도 발걸음을 같이 했다.특히 민주당은 공권력 수호 차원에서 보다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한나라당은 한 발씩 양보할 것을 먼저 요구하면서도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28일 김대통령의 경고를 또다시 상기시켰다.박대변인은 “정부는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합법이면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전제,“그러나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의 한겨레 신문사 난입 및 롯데호텔 파업 등 불법·탈법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롯데호텔 문제가 스위스 그랜드 호텔 등으로 확대되어 가는데 이대로방치할 수는 없다”면서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경고했다. 김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불법과 폭력으로 자기 의사를 관철할 수있다는 생각을 갖게되면 안된다”면서 “법질서를 엄정히 지키도록 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특별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민주당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은 이날 열린 지도위원회 회의에서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과 관련,“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장병의 고통을 모르는 바아니지만 폭력으로 언론사를 무단점거하는 것은 안될 일”이라며 “불만이있다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정보도를 요구하거나 피해보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선(安東善) 지도위원은 “치안을 담당한 경찰이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신낙균(申樂均) 지도위원도 “인명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사나 나라를 위해 싸웠던 국군들이 국가 공권력에 대해 도전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면서 “힘과 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가세했다. 이처럼 강도높은 경고는 의료계 폐업사태의 여파로 분출되는 사회 각 집단의 ‘집단이기주의’를 조속히 차단하지 않을 경우 국가 공권력마저 무뎌질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오전에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식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최근 들어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데 대해 우려의목소리가 많았다. 장광근(張光根)수석부대변인은 “100% 관철을 고집하는 벼랑끝식 요구가 넘쳐나면 온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을 서로 자제하고 양보해서 지혜롭게 접근하는 슬기가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오풍연 진경호기자 poongynn@
  • [사설] ‘正論紙’ 유린 안된다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 회원 2,200여명이 27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앞에 몰려가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보도에 항의,시위를 하는과정에서 일부 회원들이 신문사 사옥에 난입,신문제작 설비 등을 파손하는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자체적인 판단에따라 보도하는 권리가 보장돼 있다.또한 일반 시민이나 단체도 언론보도에이의가 있을 경우 얼마든지 항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항의는 어디까지나 적법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보도에 불만이 있다고 신문사에 쳐들어가 물리력을 행사한 전우회 회원들의 행위는 언론자유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이들의 ‘난동’에 대해 정부와 여야,언론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언론자유를 명백히 위협하는 폭거’라며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나오는 것도 그때문이다. 전우회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현지 주민의 희생은 불가피한데도 한겨레신문사가 마치 참전용사들이 고의적으로 베트남 주민들을 학살한 것처럼 보도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전우들의 인격을 매도했다”며 보도중지와 함께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있다.이같은 주장에 대해 한겨레신문사는“베트남 양민들의 억울한 희생을 보도한 것은 결코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존중돼야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한국전쟁 중에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크게 보도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전우회쪽은 또 “서울민사지법에 낸 미국의 고엽제생산 업체 상대의 손해배상 임시지급 가처분 신청이 ‘한겨레’의 보도에 영향을 받아 심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과연 재판부가 정론지로 인정받고 있는 이 신문보도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되,그동안 ‘한겨레’가 누구보다앞장서서 고엽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보상을 주장해온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황당함을 느낀다.전우회는 고엽제 피해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줄 것과 ‘미국 상대 손배소송’에 국가가적극으로 앞장서줄 것을 요구해왔다. 정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에 대한 물리력 행사는 결코 용납돼서 안된다. 또한 정부의 치안능력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0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에 대해 손을 쓰지 못하고 ‘난동’으로까지 번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폭력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당국의 조처를 지켜 볼 것이다.
  • 다양한 시각의 베트남전 특집 마련

    올해는 월맹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영화나 소설은 베트남전을 다양하게 다뤘지만 TV는 고엽제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가 고작이었다.베트남전을 보는 시각이 그만큼 협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들어 TV도 베트남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려 한다.어려서는한국전쟁을 겪고 나이 스물이 넘는 청년기에 머나먼 이국땅 전쟁터로 떠나야했던 월남 파병용사들.반백의 나이가 훌쩍 넘긴 파월장병의 인간적 고뇌를다룬 프로그램이 선을 보인다. MBC는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29일 밤10시55분)을 준비했다.1부인 ‘전쟁의 기억’과 2부인 ‘희생’으로 나눠 방송된다.‘전쟁의 기억’에서는 30년전 32만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을 살펴본다.맹호·백마·청룡부대의 부산항 파월 환송식,베트남 도착,당시의 낯설고도 이국적인 월남풍경을 소개한다.백마작전,안케패스 작전 등 큰 전투 속에서 숨진 전우들,그 죽음을 통해 확산되는 전쟁의 공포 등을 보여준다. 2부 ‘희생’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다룬다.하미마을,락빈부락,땅띠마을 등 베트남 현지 마을에 남아있는 증오비석과 당시목격자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전달할 계획이다.제작을 맡은 민운기PD는 “공과(功過)는 짚어야겠지만 누가 잘못했다는 일방적 매도는 아니다.한 걸음 물러서 당시 상황을 총체적으로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KBS는 특집 드라마 ‘유리구슬’(7월3,4일 밤9시50분)을 준비했다.줄거리는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베트남전에서본의 아니게 양민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50년전의 피해자가 20년 뒤에는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을 설정했다.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고엽제 후유증과 황폐해진 인생 속에서 전쟁의 참혹성을 깨닫고 반전 운동가로 변신한다.베트남 현지 촬영으로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을 맡은 김형일PD는 “한 개인이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가를 담고자 했다”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을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전경하기자 lark3@
  • “고엽제전우회 폭력행동 언론자유 위협하는 폭거”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공동대표 김중배)는 28일 고엽제 전우회원들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사건과 관련,성명서를 내고 “고엽제 전우회의 폭력행동은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명백한 폭거”라고 지적하고 “이번 폭력사태를 반성하고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동당(대표 권영길)도 성명서를 통해 “한겨레신문사의 보도는 참전용사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생각하면 정식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고엽제피해 500여명 한겨레신문사 난입

    대한민국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회장 양상규) 소속 회원 2,400명이 27일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이 중 일부가신문사 사옥에 난입,사무실 집기를 부수고 직원들의 출입을 막는 등 난동을부려 신문제작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쯤 신문사 앞에 모여 “ 한겨레신문의 ‘베트남 참전용사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보도가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다 각목 등을 휘두르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8층 논설위원실과 5층 출판국 등으로 난입,유리창과 컴퓨터 등 집기류를 부수고 차량을뒤집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집회에서 한겨레 신문대금 영수증 수천장을 쌓아놓고 불을 지른뒤오후3시5분쯤 500여명의 회원들이 윤전실 앞 경비초소로 몰려가 쇠파이프로때려 부수고 배차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승용차 2대를 뒤집어 엎는 한편,사옥 근처에 주차된 승용차 1대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흥분한 일부 회원들은 특히 사옥안으로 난입,5층 출판국 사무실 등에 들어가대형 유리창 5장,소형 유리창 3장을 깨고 노트북 컴퓨터 1개,데스크탑 컴퓨터 2대,프린트 2대 등 집기류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창구기자
  • 콩쉬엘로의 회고록 ‘장미의 기억’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나는 내 장미에게 책임이 있다’생 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다.장미는 작가의 부인 콩쉬엘로를 형상화한 것. 생텍쥐페리 탄생 100주년(6월29일)에 맞춰 콩쉬엘로의 회고록 ‘장미의 기억’(창해)이 나왔다.지난 79년 사망한 그녀의 가방에 들어 있던 자필원고가 20년만에 빛을 봐 지난 4월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지 2개월 만이다.생텍쥐페리가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해 44년 실종될 때까지 13년 동안 그와 함께한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콩쉬엘로가 30살의 미망인이던 193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티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장문의 러브레터와 달콤한 행복.그러나 그들의 삶은 이별과 재회의 연속이었다.잦은 야간비행과 사고,간호하며 가슴 졸이던 시간들,그의 배신,그녀의 방황,그리고 화해. 생텍쥐페리는 자유롭게 살려는 욕망이 강했다.그러나 타인에게 의지하려는또 다른 욕망과 충돌할 때면 “활짝 핀 당신을 보고 싶소”라며 그녀에게 돌아왔다.콩쉬엘로는 “당신과 같이 있을 수도 없고,당신 없이는 살 수 없는”,별들 사이에 사는 이 남자를 어느 누구도 붙잡을 수 없음을 깨달으며 포용력으로 감싼다.김선겸 옮김.값 9,000원. 김주혁기자 jhkm@
  • 클린턴 “한반도에 아직 긴장 남아”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5일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미국이 ‘냉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불가결한 요소였으며오늘날의 한국이 있게 한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시내 한국전 기념비 부근에서 참전용사 및 가족 등 약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전 50주년 기념식’ 연설을 통해 한국전 참전으로 옛소련 등 공산국가들에 미국이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라는 분명한 교훈을 주지 않았더라면 3차 대전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면서이같이 밝혔다.그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특출한 민주 지도자”라면서지난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대통령이 평양에 들어간 것은 용감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50여년 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이 “희망적이며 역사적인 단계”이지만 김대통령은 환상을 갖지 않았다고 말하고 아직 한반도에 긴장이 남아 있는 등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hay@
  • 대동강 철교 사진기자·피란민 ‘감격의 상봉’

    6·25당시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건너던 피란민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인 종군 사진기자가 평양에서 대동강 철교를 통해 탈출했던 피란민을만났다. 6·25 50주년 기념으로 방한한 맥스 데스포(87·전 AP통신기자)씨는 26일오전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중동 창대교회에 살고 있는 피란민 생존자 안창섭옹(94)과 만났다. 데스포씨와 안옹은 전쟁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진기자와 피란민으로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을 만난다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채 두손을 꼭 붙잡고반가운 첫인사를 나눴다. 데스포씨는 자신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던 끊어진 대동강 철교사진을 안옹에게 보여주며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안옹도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 주어 고맙고 비록 사진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당시 고통을 함께 했던 사람을 만나 감회가 새롭다”고 답했다. 데스포씨는 자신이 가져온 끊어진 대동강 철교 사진에 ‘커다란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과 이름을 적어 처음으로 피란민 생존자를 만난 기념으로 안옹에게 선물했다. 전 AP기자로 6·25때 종군기자로 참전,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사진 촬영해지난 51년 퓰리처상을 받았던 데스포씨는 최근 국정홍보처가 초청한 6개국 33명의 외국 종군기자단의 일원으로 방한,이날 안옹의 집을 찾았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어제 6·25 50주년 기념행사 전국서 일제히

    6·25전쟁 50주년 기념행사가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재향군인회와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전국에서 다채롭게 열렸다. 국방부는 2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조영길(曺永吉)합참의장,각군 장성,보훈가족과 18개 참전국의 국방부 장·차관,참전용사 등 1만여명이참석한 가운데 중앙기념식을 열어 순국·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남·북의화해 협력과 평화를 기원했다. 참전국 대표로는 토고 웨스트 미국 향군성장관,제프리 훈 영국 국방장관,아트 이글튼 캐나다 국방장관,샤바하틴 차크마콜루 터키 국방장관,장 피에르마세레 프랑스 향군성장관,브루스 스콧 호주향군성 장관과 뉴질랜드·그리스·태국·덴마크·이탈리아·노르웨이의 국방차관 등이 참석했다. 또 국무위원,국회의원,해외참전용사,참전국 대표 및 주한외교사절 등 500여명을 초청한 참전용사 위로연이 이날 오후 6시 신라호텔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렸다. 재향군인회 산하 237개 지회도 이날 오전 지방자치단체별로 지방 기념식과참전용사 위로연을 갖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기원했다. 노주석기자 joo@
  • 美, 6·25전쟁 50주년기념 다양한 행사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 정부는 6·25전쟁 50주년을 맞는 25일(한국시간 26일) 워싱턴 한국전기념비 앞에서 기념식을 갖는 것을 비롯,다양한 행사를 치른다. 이날 오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존 글렌 상원의원 등 참전용사,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이홍구 주미대사 등 1,000여명이 참석,50주년 기념식본행사가 열릴 예정이다.특히 이 자리에서는 전투기 조종사로 경주지구 전투등에 참전했던 존 글렌 상원의원 등 6명이 50년만에 우리정부가 수여하는 한국전 참전기장을 참전군인을 대표해 받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최근 한반도 변화상황과 이에 따른 한·미의 공조,변함없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그리고 최근 미국 내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6·25전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연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전쟁에서의 희생이 오늘날 민주주의 자유를 누리는데 큰 도움이됐음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hay@
  • “남북 불가침 구체 협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5일 “7,000만 민족이 전쟁의 두려움 없이 살게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남북간) 군사위원회를 설치해서 긴장완화와 불가침 등 평화를 위한 조치에 대해 적극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 참전 50주년 기념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양측이 가장 힘써야 할 것은 군사적대결을 지양하고 서로에 대한 적대행위를 감소시키는 노력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하고 “북한 김정일 (金正日) 국방위원장도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한미군에 대해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체제 정착과 통일후 동북아세력균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북측에 설명했다”며 “이러한설명에 북측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남과 북은 북한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우리의 남북연합제를갖고 앞으로 계속 협의키로 했다”면서 “남북은 앞으로도 민족적 열의와 정성을 다해 양측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단계적 통일방안을 일구어낼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경협에 대해 “이는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 경제에도 크게 혜택이 돌아올 것”이라며 철도 연결,발전소 및 공장건설 등의 예를 열거한 뒤 “경협을통해 우리는 남한만의 경제권으로부터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경제권으로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대통령은 “완전한 통일이 이룩되고,평화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이뤄질때까지 우리는 결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지적하고 “튼튼한 안보와확고한 안보태세만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만큼 강력한 국가안보를 유지하는 데 추호의 흔들림도 없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기념식에는 3부요인 및 정당대표,외교사절,국내외 참전용사 대표,재향군인회·시민단체 대표,학생·군인 등 각계각층에서 8,400여명이 참석했다.6·2550주년을 맞아 행사내용이 과거 전쟁희생자를 기리던 데서 벗어나 평화공존과 번영을 다짐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어 김 대통령은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국내외 6·25 참전용사와 가족등1,200명을 초청,‘참전용사 위로연’을 베풀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한국전 참전美軍 50년만에 旗章받는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50년 만에 한국전 참전기장을 수여받는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6·25 참전 미군 및 유가족들에게전쟁 발발 50주년이 되는 올해 기념일에 한국전 참전기장을 수여키로 했다고22일 밝혔다. 한국 정부는 6·25전쟁 종전 이듬해인 54년 참전 16개국 가운데 미국과 호주,캐나다 등 영연방국가들을 제외한 모든 군인들에게 참전기장을 수여한 바있다. 당시 이들 국가는 외국에서 수여하는 훈포장을 받으려면 자국 의회의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이를 사양했다. 미국의 경우 의회 동의 규정이 3년 뒤 폐지됐다.그동안 참전 미군들 가운데는 한국 정부가 수여하는 기장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50주년인 올해 미국방부가 우리 정부에 요청,이번에 수여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약 30억원의 예산을 책정,올해 15만개를 비롯해 앞으로 3년 동안 모두 45만개의 참전기장을 제작해 금년에 미국,내년부터 2002년까지는 영연방국가들의 참전 군인과 유가족들에게 전달,뒤늦게나마 감사의뜻을 전하기로 했다. 참전기장 제작은 한국 정부가 맡되 미국으로의 수송과 분배,개별 전달은 미공군이 담당한다.참전기장 전달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감사 서한도 함께전달할 방침이다. 기장과 서한은 오는 25일 워싱턴 한국전기념공원에서 열리는 ‘한국전 발발5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홍구(李洪九)주미대사를 통해 참전 용사 6명에게전달될 예정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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