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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전 고엽제용사 전재산 대학기부

    고엽제 후유증을 앓던 월남전 참전용사가 숨지기 전 평생 모은 돈을 선뜻 대학에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동국대(총장 宋錫球)는 월남전 참전용사 이영춘(사진·60)씨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투병중이던 지난 4월22일 “좋은 일에 써달라.”며 학교측에 2000만원을 기부한 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고 3일 밝혔다. 지난 67년 해병대 부사관으로 월남전에 2년간 참전했던 이씨는 전역한 뒤 30여년간 국가유공자에게 나오는 연금 외에 따로 군납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이씨는 방송을 통해 동국대가 병원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식들에게 물려줘도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게 보람이 있을 것 같다.”며 동국대에 돈을 맡겼다. 이씨의 부인 이미경(57)씨는 “남편이 먼 길도 꼭 걸어다니고 옷도 기워서 입는 등 평생을 절약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을 기부하겠다고 해 처음에는 무척 반대했다.”면서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떠나고 싶다.’는 생전 남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학교측은 고인의 뜻에 따라 이 돈을 모두 동국대 일산병원 건립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동국대 관계자는 “고인이 자신의 사연을 전혀 알리지 않고 돈을 기부해 학교측에서도 나중에서야 고인의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됐다.”면서 “고인의 선행은 삭막한 세상에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서해교전/ 근본원인-南 북방한계선·北 경계선 해석 차이 해상 무력충돌의 ‘씨앗’

    남북한 사이에 실질적인 군사분계선인 북방한계선(NLL)과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의 차이가 서해에서 무력 충돌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방송들이 6·29 서해교전 직후 “남조선이 해상경계선을 넘어 먼저 도발했다.”고 억측 보도한 데에는 그들 나름의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우리 어선들이 연평도 주변 NLL을 넘어 이번 사태가 비롯됐다는 일부의 관측은 사실무근으로 확인됐으나,정부 차원에서 무력충돌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NLL과 해상경계선=연평도 북단 3㎞ 지점에 어업통제선이 지나간다.어민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 통제선 바깥쪽 어장에서 조업할 수 없다.어업통제선북쪽 2.7㎞에 월선(越線)을 경고하는 어로저지선(적색선)이 있다.저지선 북쪽 8.1㎞ 지점을 지나는 선이 지난 53년 유엔군사령부가 정한 NLL이다. 반면 북측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은 우도를 중심으로 서남쪽 45도로 이어지는 직선이다.이번에 교전이 발생한 곳은 적색선을 3㎞ 가까이지난 연평도 서북쪽 지점이다.해군 2함대 소속 고속정과 북측의 경비정은 NLL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으나,북측은 NLL 우리측 안쪽까지 관할 해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적색선 주변에서 우리 어선들이 불법조업을 하면 가끔씩 북측 경비정이 출몰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연평도 주민의 어로 실태=최근들어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 56척 가운데 상당수가 통제선 안쪽 어장을 벗어나 적색선 주변에서 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연평도 해안경찰대가 파악한 바로는 교전이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과 28일에 각각 30여척씩 이곳에서 불법조업을 했다는 것이다.그 곳에는 해군 고속정의 순찰을 방해하기 위한 버려진 어망이 수없이 떠다닌다. 이례적으로 이틀에 걸쳐 북한 경비정이 그 해역에 출몰한 것이 이때다.그러나 27일 새벽 조업통제권을 지닌 해병 6여단이 주민들의 요구에 못이겨 적색선 주변의 조업을 허락했다는 어민들의 증언은 해군측의 해명과 다른 만큼 3일 현지에 파견된 합참전비태세검열단의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민들은 이른바 ‘손때가 덜 묻은 어장’을 찾아 자꾸 북쪽으로 진출하고 해군 고속정은 이를 막느라 자주 숨바꼭질을 하는 처지다.따라서 저지선과 NLL 사이 8.1㎞ 해역은 북한 경비정,남한 고속정과 함께 우리 어선들이 가끔 뒤엉키는 곳이다. ◇남북 공동어로구역 설정=정부가 서해 5개도 해역의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보다 남북한간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있다. 한국해양대 김영구(金榮球) 교수는 “공동어로구역 설정과 주요 해로 공동지정 문제가 비교적 쉬운 문제해결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는 “북측은 장관급회담에서 동해 원산항 주변 해역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것을 먼저 제안한 일도 있는 만큼 합리적인 평화유지 방안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측 북의 도발증거 확보 리언 라포트 유엔군사령관은 지난 1일 국방부를 방문,“대북 감시·정찰 활동을 크게 강화했다.”고 밝혔다. 합참과 해군은 미군이 한반도 상공을 맴도는 첨보위성과 U-2 정찰기의 첩보 수집을통해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 장면이나 피해규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및 영상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보고 정보제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측은 99년 서해교전 당시에는 북측 함정들이 피해 규모를 해군기지와 평양 등에 보고하는 내용을 감청하는 데 성공,사상자 수를 정확히 파악한 바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사설] 아쉬움 남긴 한·터키전

    아쉬운 한판이었다.한국축구팀은 대구 월드컵 3,4위전에서 터키에 1골 차로 패배,4위에 머물렀다.한국과 터키는 이번 대회에서 다같이 돌풍을 일으키며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지만,이날 한국은 기량과 골 운에서 터키에 한수 뒤졌다.월드컵 본선 첫승과 함께 4강에 진출하는 기적 같은 이변을 일으켰던 한국 선수들은 돌풍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으나,선수들간 긴장의 네트워크가 느슨해져 근성의 투르크 전사들에게 자주 빈 틈을 내주었다.한국 팀의 월드컵 3위 승리가 아니라 월드컵 4강다운 기량과 선전을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은 실망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한국 팀은 전반에는 어이없는 수비 미비를,후반에는 안타까운 골 결정력 부족을 노정했다.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2골차에서 1골을 만회하긴 했으나,한국 팀은 월드컵 4강을 자랑하기보다는 같은 4강에 내용적으로 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성과 배움의 계기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다행히 한국축구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행운도 따르긴 했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 주도로 근본적 혁신을 세계 앞에 확실하게 구현했다. 경기와는 달리 우리 국민들의 응원과 성원이 3,4위전을 알차고 아름다운 ‘우리들의’결승전으로 격상시켰다.붉은악마가 주도하는 길거리 응원단은 비록 외형적 규모에서는 전만 못했지만,진심어린 열광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이 열광에 한국전 참전국인 상대 터키 팀에 대한 격려와 박수가 더해져 한국 월드컵의 트레이드마크로 떠오른 축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특히 붉은악마의 응원 구호 ‘CU@K리그’(K리그에서 만나자)는 스탠드에서 빛났다.한국축구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폭발시킨 이번 월드컵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내건 약속이다.축포가 끝나도 잊지 말자.
  • 월드컵/ 한·터키전 길거리응원 표정

    “코리아팀 파이팅,터키팀 파이팅” ‘태극전사’한국팀이 ‘투르크 전사’터키팀과 3,4위전을 벌인 29일 전국에서는 마지막 ‘붉은 물결’의 장관이 연출됐다.이미 ‘4강 신화’의 짜릿함을 맛본 시민들은 패배의 아쉬움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양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일부 응원단은 뜻밖의 서해교전에서 숨진 해군들을 위해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를 표했으나 축구 경기는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아쉬운 피날레- 이날 서울 시청앞 광장 50만명,광화문 30만명 등 전국 311곳에서 214만명이 거리응원에 나섰다.연휴와 서해교전 등의 여파로 지난 25일 독일전 당시 700만명에 비해 훨씬 줄어든 규모였지만 이번 월드컵 마지막 길거리 응원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응원열기는 더 뜨거웠다. 경북 영주에서 시청까지 왔다는 김형준(24·강릉대 4년)씨는 “지난 한국전쟁때 우리를 도와준 터키에 승리를 내줬기 때문에 크게 분하지는 않다.”면서 “비록 4위에 머물렀지만 축구도 응원도 후회없이 온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3살된 아들을 데리고 광화문에 나온 주부 이영숙(34)씨는 “아들이 크면 월드컵으로 행복했던 2002년 6월의 추억을 말해 주겠다.”면서 “이제 선수들이 마음의 짐을 벗고 푹 쉬었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서울시청 앞에서는 인터넷 동호회 ‘터키팀을 응원하는 모임’회원 500여명이 응원전을 펼쳤다.허윤정(30·여)씨는 “터키팀이 너무 잘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호주인 마이클 앤더슨(33)은 “고액연봉을 받으면서도 몸을 사리는 유럽 선수들과 달리 최선을 다한 한국 선수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붉게 물든 달구벌- 지난 10일 미국전에 이어 두번째 한국팀의 경기를 치른 대구는 온통 붉은 물결과 함성으로 뒤덮였다.시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혈맹국인 터키와의 경기를 화합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며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다.거리 곳곳에는 ‘우리는 터키를 사랑합니다’라는 터키어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함께 태극기,터키 국기가 나란히 게양됐다.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 길거리 응원장에 나온 시민들은 패배를 아쉬워하면서도 밤늦게까지 폐막을앞둔 월드컵 열기를 만끽했다. 김종술(24·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월드컵 추억을 남겼다.”면서 “월드컵의 열기가 계속 이어져 우리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해교전 여파- 이날 거리 응원에 나선 시민들은 서해교전 소식이 전해지자 “잔치 한마당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날 수 있느냐.”며 한때 술렁거렸으나 곧 안정을 되찾았다.유상호(47)씨는 “북한이 월드컵 녹화방송을 주민들에게 내보내 기뻐했는데 뜻밖의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경색될까 염려스럽다.”며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숨진 해군을 추모하는 뜻에서 검은색 리본을 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가슴에 검은색 나비 모양 리본을 단 한명우(28·서울 성동구 성수동)씨는“우리가 즐겁게 응원을 할 수 있도록 나라를 지키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은 군인들의 명복을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에 주둔하는 해병부대는 그동안 월드컵 한국전이 있을 때마다 인근 농협 마당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장병과 주민 700∼800명이 함께 응원전을 펼쳐왔으나 이날은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발생하자 계획된 응원전을 취소하고 경계강화에 나섰다. -홀가분한 선수가족- 이날 대표선수 가족들은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제야 두 다리를 펴고 잠잘 수 있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송종국 선수의 아버지 송민배(53)씨는 “4년뒤 독일 월드컵때는 더 체계적으로 준비해 4강은 물론이고 우승까지 가자.”고 다짐했다.박지성 선수의 아버지 박성동(44)씨는 “한국전쟁 때 참전한 우방국인 터키와 거친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일”이라며 “4년 후엔 우리 지성이가 대표팀의 주축이 되어 더 멋진 경기를 펼칠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아침 남편에게 ‘승리의 선물을 보여 달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유상철 선수의 아내 최희선(30)씨는 “딸 다빈이가 아빠를 너무나보고 싶어 한다.”면서 “남편이 돌아오면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마련할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 황경근·이창구 윤창수기자 window2@
  • 한인 미국이민 100주년 美상원, 기념결의안 채택

    (워싱턴 연합) 미국 상원은 27일(현지시간) 한인의 미국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 이민의 해’를 선포하도록 촉구했다. 상원은 조지 앨런(공화·버지니아) 의원과 조지프 바이든 외교위원장,제시 헬름즈 전 외교위원장 등 34명이 공동 발의한 결의안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100년 동안 이룩한 업적과 미국 사회에 끼친 기여를 인정한다.”고 강조하고 “미국 국민이 적절한 프로그램과 의식 및 활동으로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리도록 촉구하는 포고령을 발표할 것을 대통령에게 요청한다.”고 밝혔다. 결의안은 “1902년 12월 남성 56명과 여성 21명,어린이 25명이 갤릭호를 타고 한국을 떠난 후 태평양을 건너 1903년 1월13일 하와이의 호놀룰루에 안착했다.”고 말하고 한인 이민자들은 이후 “강한 가족적 연대와 건강한 지역사회의 지원 및 무수한 시간의 고된 노력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해 왔다.”고 평가했다. 결의안은 미국 선교사의 한국 내 활동,미국의 한국전 참전,한국계 미국인의 제1·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 참전 등 재미 교포의 기여,한·미 경제 교류,한·미 동반자 관계 구축 등 모두 14개 항에 걸쳐 한·미 관계를 조명하며 한인 미국 이민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 [2002 길섶에서] 인터넷 터키사랑

    어느 포털사이트의 터키 카페.“터키는 지금 엄청 벼르고 있더군요.삼바가 이러다 지르박 되는 게 아닐는지….” “안타깝습니다.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일본 원정응원은 무산됐습니다.” “신촌 홍익대 정문앞 호프집 TSR로 모이세요.” 26일 4강전에서 브라질과의 재격돌을 앞두고 터키팀을 응원하는 격문들이다.또 다른 격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터키인의 조상인 돌궐은 고조선,고구려,발해 때 우리와는 한나라를 이루었던 부족연맹이었습니다.당연히 그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 서울 상암구장에서 터키·중국전이 있던 날.인터넷에서 만난 이들 ‘터키 서포터스’ 회원들은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자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경기장이 내려다 보이는 주변 야산으로 올라가 대형 터키국기를 펼쳐 들고 장외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요즘 인터넷에는 터키팀을 응원하는 커뮤니티가 100개를 넘어서고 있다.1만 5000여 투르크(터키의 현지식 발음) 전사들이 한국전에 참전해 피를 나눈지 벌써 반세기.까맣게 잊고 지낸 보은의 터키 사랑이 50년 늦게 인터넷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염주영 논설위원
  • [사설] 축구로 남북화해 앞당기자

    한국축구가 아시아의 신화를 썼다.16강 진출이 최대 목표였던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40위 팀이 쟁쟁한 우승 후보들을 물리치고 4강에 오른 것을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신화라 한대서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이것이 어찌 축구만의 신화일까. 한국대표팀이 4강 티켓을 놓고 스페인과 일전을 벌일 때 붉은악마가 펼친 카드섹션은 ‘아시아의 긍지(Pride of Asia)’였다.아시아 지역 관중들은 이 슬로건에 한마음이었고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강국을 물리칠 때마다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 주었다. 아시아가 이웃사촌의 끈끈한 연대감을 갖게 된 것은 월드컵을 공동개최한 한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최대 수확이다.우리와 나란히 8강에 진출했다가 4강 문턱에서 주저앉은 일본이 한국의 선전을 자국의 경사처럼 환호해 주었고 한때 우리가 참전해 전쟁을 치른 베트남까지 태극전사의 승전보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축구가 아시아를 이웃사촌으로 묶어준 셈이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의 연대의식을 일깨운 월드컵축제가 남북의 화해를 앞당기는데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다행히 이번 월드컵 기간에 보여준 북한의 태도도 물보다 진한 ‘동족의 정’을 확인해 주었다.북한은 한국팀이 선전한 게임을 녹화방영했고 민통선 지역에서도 한국의 승전보에 환호하는 북한 병사들의 함성이 들렸다고 한다. 마침 남북한은 오는 9월6일 서울 상암구장에서 경평축구를 열기로 돼있다.1929년부터 해방 이듬해인 1946년 3월까지 이어온 경평축구는 1990년 통일축구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평양을 한 차례씩 오간 후 12년만의 부활이다.이의 부활이 2000년 9월 3차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됐다가 흐지부지된 후 최근 박근혜 의원의 방북을 계기로 다시 열리게 됐다.남북축구 교환경기가 정례화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일제하 민족혼을 일깨운 축제를 매개로 민족화해를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오늘의 눈] 국방부, 엉뚱한 ‘히딩크 배우기’

    서울 태평로에 있는 본사 건물의 창을 통해 젊은이들이 목이 쉬도록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을 내려다보면 코끝이 찡해진다.‘애국심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느낌이 든다. 온 국민에게 나라사랑의 마음을 심어준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거스 히딩크 감독이 고마울 뿐이다. 요즘 히딩크 감독을 배우자는 열기가 뜨겁다.정부와 기업·학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에게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훌륭하다.”고 일러준다는 얘기도 들린다.‘히딩크 배우기’열풍은 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국방부가 선정,일선 부대에 전파한 ‘히딩크의 교훈’이라는 지침을 곱씹어보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침은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강조한 사항 등을 군이 배울 점으로 연결시켰다.기초체력 강화는 평소 군에서 강조하던 ‘21세기 신국방의 기본은 체력’방침과 같다고 설명했다. 히딩크 감독이 중시한 강한 정신력은 ‘불퇴전 의지의 자신감’이고,선수들 사이의 선후배 화합은 ‘상·하의 병영문화 구축’으로 연결지었다.그의 고른 선수기용은 ‘군 인사의 공정성’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 나아가 히딩크가 외국인이라는 점은 바로 ‘군의 세계화·국제화’와 일맥상통하는 교훈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시중의 돈 버는 일이야 시류를 가볍게 타도 되겠지만 국방정책이나 부대지침은 이와 다른 측면이 있다. 6·25전쟁이 터진 지 올해로 52주년이 됐다.언제 일인가 싶게 잊고 지내다 이맘때만 되면 겉치레 행사가 줄을 잇는다. 재향군인회는 해외참전용사들을 초청해 놓고 직원들조차 행사 진행에는 관심도 없다. 마찬가지로 국방부의 히딩크 배우기는 무슨 말인 줄은 알겠는데 왠지 가슴에 와닿지를 않는다.월드컵이 끝나면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 같은 내용들이다. 붉은악마와 엇비슷한 또래의 젊은 장병들이 가슴속 깊이 감동할 수 있는 것은 히딩크 감독처럼 누가 뭐라고 해도 꿋꿋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아닐까 여겨진다. 김경운 정치팀기자kkwoon@
  • 6·25참전 무공훈장 주인 찾아준다

    6·25 당시 무공훈장 수훈자가 됐으나 알고도 찾아가지 못했거나 50여년간 수훈사실조차 몰랐던 참전군인 3524명이 훈장을 받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3월 육군으로부터 무공훈장 미수령자 9만 6000여명의 명단을 건네받아 모두 3524명의 신원을 확인,이들에게 연말까지 훈장을 되돌려 준다고 24일 밝혔다. 보훈처는 수훈자로 확인된 김우석(74·충무무공훈장)씨 등 10명을 대표 수상자로 선정,25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6·25 52주년 기념식에서 훈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和6·25용사도 붉은악마로

    “한국인들은 어떤 일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6·25전쟁 5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우리 국민에게 ‘4강 신화’의 감격을 안겨준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6·25 참전 노병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해외참전용사 보훈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부인들과 함께 입국한 참전용사 5명은 50여년 만에 본 우리나라 모습에 대해 “이렇게 발전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놀라워했다.참전용사 보훈행사에는 해외교민 용사들,네덜란드·그리스·남아공·미국 등 4개국 참전군인들이 참가했다. 네덜란드 참전 용사 5명은 모두 건강한 모습이었다.플로락스 마르텡(75)은 숙소인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 호텔에서 “한국이 월드컵에서 독일과 맞붙게 된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인은 우수한 사람들이라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슈퀘르망스 얀(73)은 “히딩크는 암스테르담 인근 페르세페츠 사람인데 내 고향도 그 근처”라면서 “한국인들이 그를 그렇게 좋아하다니 우리도 매우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메이보그 린더(73)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지난 53년 1월 한강 입구에서 적진에 침투중인 배가 얼음 덩어리에 둘러싸여 꼼짝없이 중공군에게 죽게 될 뻔한 일이 생각난다.”면서 “한국이 죽을 목숨을 건진 곳이라고 여기고 평생 이 곳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보병 1개 대대와 해군 함정 4척을 지원했다.참전 인원 5322명 가운데 120명이 전사하고 645명이 부상했다. 부산시 대연동 유엔기념묘지에는 네덜란드군 전사자 117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네덜란드군은 유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전사자 대부분이 한국 땅에 묻혔다.이에 대해 마르텡은 “네덜란드인들은 북유럽 해상민족의 전통에 따라 발길이 머문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목숨이 다해 쓰러진 그곳이 뼈가 묻히는 제2의 고향이 된다.”면서 “아마 히딩크에게도 한국이 두 번째 고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병들은 25일 한국과 독일전이 열리는 서울 상암경기장에는 못 가지만 호텔에 모여 TV를 보며 한국을 응원하기로 했다.건강만 괜찮다면 거리에서 붉은악마들과 함께 응원하는 일정도 짜겠다고 일행의 가이드가 귀띔했다. 참전 노병들은 이날 오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주최하는 환영행사에 참석,훈장을 받았다.이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된 월미도를 둘러본 뒤 전쟁기념관과 판문점·참전기념비 등을 찾아보고 28일 돌아갈 예정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 정치 뉴스라인/ 선거전략 미래세대위 구성

    ◇한나라당은 연말의 대통령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유도하고 이들의 감성에 맞는 선거전략을 짜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20∼30대의 소장파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미래세대 위원회’를 구성,운용한다.성별·학력·지역 등에 무관하게 선발될 위원들은 앞으로 토론 등을 통해 젊은이들의 관심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또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논의하게 된다.한편 한나라당은 25일 1차로 위원에 위촉된 10여명에게 임명장을 줄 예정이다. ◇주요 정당 지도부가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참전 군인들을 찾는 등 군심(軍心)잡기에 대거 나섰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와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24일 서울 둔촌동의 서울보훈병원을 방문,병상에 있는 독립 유공자와 6·25 전상자들을 위문한 뒤 위문금을 전달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는 오는 27일 육군 25사단을 방문,국토방위에 여념이 없는 장병들을 위로 격려하기로 했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24일 부패방지위원회를 방문, “”한국이소득수준은 세계 20위권인데 반부패 수준은 40위권 바깥에 있다.””면서 “”다음 대통령 임기인 5년 안에 우리나라의 반부패 수준을 세계 20위권으로, 10년 안에 1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 후보는 김홍일 의원 탈당 문제에 대해서는 “”한 두 사람 조사받고 당적을 가지고 이러쿵 하는 것은 정국 문제를 풀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6·25참전 소년지원병 회고

    ‘어머니 지금 내 곁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듯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1950년 8월 한국전쟁 중 경북 포항전투에서 숨진 소년지원병의 일기 내용이다.일기장에는 전쟁이 빨리 끝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적혀 있다.그러나 동족끼리 겨눈 총부리는 소년의 간절한 소망을 비정하게 뿌리쳤다.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2년.당시 17세 이하의 어린 나이로 참전했던 노병들이 고희를 바라보면서 다시 모였다.이들은 국군이 인민군에 밀려 내려와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던 50년 7월과 8월 징병대상이 아닌데도 자원해 정규군에 입대했다. 내 나라를 붉은 군화로부터 지키겠다는 생각 하나로 펜 대신 총을 들었던 것이다.군복 없이 학생복과 학생모자 차림으로 훈련 한번 제대로 받지 않고 카빈총을 끌면서 전선에 나갔다.지난 96년 결성된 ‘6·25 참전 소년지원병 전우회’(회장 朴泰承·69)가 그동안 각종 전사(戰史)기록 등을 통해 찾아낸 참전 소년지원병은 3000여명. 중학교 2학년인 15세때 입대했던 안봉근(安奉根·67·참전소년지원병 전우회 사무총장)씨는 “나라가 위태롭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친구 12명과 함께 전선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일부 소년지원병들은 ‘나이가 어려서 안된다.’는 만류에 나이를 속이기까지 했다고 전했다.이들의 전과도 만만찮았다.임일재(任一宰·67)씨는 특공대 10명과 함께 함경도 청천강변을 수색하다 김일성 차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인민군 3800여명을 사살하고 309명을 포로로 잡는 등 큰 전과를 올린 50년 9월 초순의 경북 영천전투에도 상당수 소년지원병들이 활약했다. 글·사진 칠곡 한찬규기자 cghan@
  • “비극의 6·25를 환희의 6·25로”/70대 참전용사의 한-독戰 승리기원

    “태극전사들이 독일전에서도 꼭 이기리라 믿어.그날이 어떤 날인데….”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잃고 서울 길동 보훈병원에서 지내고 있는 차경옥(71)씨는 25일을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1950년 겨울 함남 장진 전투에서 중공군을 상대로 육탄 돌격을 하다 머리에 포탄파편을 맞고 두 다리에 심한 동상까지 걸린 차씨는 이후 반세기 동안 전쟁의 상흔에 만신창이가 됐다.오랜 투병생활에 따른 합병증으로 지난 92년과 2000년 두 다리를 차례로 잘라낸 그는 장기입원 생활에 줄곧 환자복만 입어야 했다. 그러나 월드컵 한국팀 경기가 있을 때면 그는 붉은색 티셔츠로 갈아입었다.휠체어에 의지해 TV를 보는 것이 응원의 전부였지만,그에게는 벅찬 감동이었다. 악몽 같은 전쟁을 떠올리며 매년 쓸쓸하게 6월25일을 보냈지만 올해는 결코 외롭지 않다.그날 열리는 독일과의 4강전에서 파죽지세로 진군하는 태극전사들의 늠름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는 잃었어도 나라사랑,축구사랑은 죽을 때까지 잃을 수 없어.” 프로축구단 성남일화의 차경복 감독의 친형인 그는 “푸른 잔디에서 펄펄 나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지긋지긋한 병마와 싸웠다.”고 회상했다. 22일 스페인을 이겼을 때는 너무 기뻐서 병실에서 아내 김명자(61)씨와 부둥켜안고 울었다. 차씨는 전북 익산 이리공고 2학년 때 전쟁을 맞았다.18살의 나이로 학도병에 입대해 단 2주간 군사교육을 받고 전장으로 나갔다.차씨는 “월드컵 응원에 나선 젊은이들이 열정을 통일을 위해서도 바쳤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5개 보훈병원에서는 500여명의 상의용사들이 쓸쓸히 황혼을 보내고 있다. 이창구 장세훈기자 shjang@
  • 6·25참전 육사생도 유골 첫발굴

    6·25전쟁 첫날 참전한 육군사관학교 1·2기생 유해 가운데 4구가 처음 발굴됐다.육군 유해발굴사업단은 생도 신분으로 전투에 투입된 1·2기생 539명의 첫 전투지인 경기도 포천에서 지난 5월7일부터 11일간 발굴 작업중 완전 유해 2구,부분 유해 2구,의복·철모 등 유품 557점을 찾아냈다. 육군은 21일 “유해와 함께 발굴된 철모에 ‘육사’라는 표식이 있고 의복·전투화가 당시 사용한 것과 일치한다는 동기생들의 증언 등으로 생도의 유해인 것이 확인됐다.”면서 “그러나 신원까지 확인할 유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모범 국가유공자 18명 포상

    정부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모범국가유공자 18명에게 국민훈장 동백장과 목련장,대통령 표창 등을 수여했다. 포상식에서 김삼근(金三根)씨는 국민훈장 동백장,박종갑(朴種甲)씨는 국민훈장 목련장,유재구(柳在九)·이진영(李振榮)씨는 국민포장을 각각 받았다.정효현(鄭孝鉉)씨 등 7명에게는 대통령 표창이,이정찬(李正贊)씨 등 7명에게는 국무총리 표창이수여됐다.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김삼근씨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화랑용사촌을 건립,중견 중소기업으로 육성시켜 불우 상이군경 등을 도왔다. 김경운기자 kkwoon@
  • 월드컵/외교부 한국팀 승리에 고민?

    대(對) 터키 외교 관계는 냉전 뒤 해빙,스페인 외교는 긴장국면,네덜란드 외교는 우호동맹구축…. 우리 외교부 구주(歐洲)국에 비상이 걸렸다.한국 국가대표팀이 파란을 일으키며 월드컵 8강에 진입하는 동안 우리가 꺾은 팀은 미국을 제외하곤 모두 유럽팀. 오는 22일 광주에서 4강진입을 놓고 결전을 치러야하는 나라도 유럽의 스페인이다. 우리팀의 8강 진입을 두고 외교부는 승리의 기쁨 한편으로,상대국을 위로해야 하는 남모를 고민(?)이 있다.한국을 방문한 ‘축구 패전국’각료나 주한 대사들을 위로하는 한편,현지의 우리 공관에는 반한(反韓)감정 등에 대비하라는 공문을 보내느라 분주하다.유럽지역 출전 국가의 주한 대사들과 경기를 관전한 외교부 김중재(金仲宰) 구주국장은 매번 경기가 끝난 뒤 표정관리를 하며 이들을 위로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우리가 이긴 나라는 폴란드(2대0),포르투갈(1대0),이탈리아(2대1).현재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이탈리아다.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이탈리아의 경우 과격 시위대들이 주 이탈리아 한국대사관에 몰려들어 경적을 울리는 등 반발상황이 심상치 않다. 히딩크 감독의 고향인 네덜란드는 우호친선 관계가 눈에 띄게 돈독해지고 있다.주 네덜란드 대사관에 연일 현지 언론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터키 관계는 전화위복이 된 경우다.지난 4일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 한국인주심이 두명의 터키선수를 퇴장시키면서 터키 국민들 사이에 반한 감정이 치솟았으나 우리 군 수뇌부와 참전용사들이 열렬히 응원한 사실이 터키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시 우호적으로 돌아섰다.외교부에선 전 터키대사였던 조상훈(趙商勳) 기획관리실장까지 나서 한국을 방문한 터키 체육부장관을 만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크바시니에프스키 대통령까지 와서 응원했던 폴란드는 비록 우리에게 졌지만 폴란드-포르투갈 전과 폴란드-미국 전에서 한국인들의 일방적인 폴란드 응원을 계기로 잠시 냉각에서 관계가 원상회복됐다. 김중재 국장은 “‘스포츠는 스포츠’이고,이들 국가가 유럽리그에서의 승패에 익숙한 나라들이어서 사실상 우리와의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아니다.”면서 그러나 “국민감정은 논리와는 다른 측면이 있는 만큼 나름의 외교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장한 아내상 송인숙씨 효자효부상 전영자씨

    국가보훈처는 17일 대한상이군경회(회장 吳秉寬) 주관으로 송인숙(宋仁淑·54·서울 구로구 구로동)씨 등 19명을 제1회 장한 아내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송씨는 지난 68년 월남전에 참전,두 다리를 잃고 1급 상이용사가 된 이모씨와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이뤘고,이씨가 간염으로 사경을 헤매자 아버지 이씨를 위해 간이식을 한 효자를 키웠다.시상식은 1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열린다. 보훈처는 이와 함께 6·25전쟁 당시 큰 오빠가 전사한 뒤 치매에 걸린 친정 어머니를 평생 극진히 모신 전영자(67)씨 등 19명을 제25회 효자효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시상식은 18일 오전 10시 중앙보훈회관에서 열린다. 김경운기자
  • [2002 길섶에서] ‘추카추카 터키’

    터키가 중국을 꺾고 16강에 오르자 우리 국민들도 마음의 빚을 조금 덜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동안 터키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것은 브라질전의 오심 시비 탓이었으리라.한국인 주심 김영주씨는 그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선언하고 터키 선수 2명을 퇴장시켰다.하지만 페널티 선언은 모호했다.터키 선수가 찬 공에 맞고 쓰러진 브라질의 히바우두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1만 1500스위스 프랑(약 92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은혜를 베풀었을 때는 그것을 기억하지 말고,은혜를 입었으면 잊어서는 안 된다는말이 있다. 터키는 6·25때 1만 4936명을 보내 전사자 991명을 포함,3545명의 사상자를 낸 참전국이다.우리 국민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이제 터키도 섭섭했던 감정을 말끔하게 날려버린 것 같다.터키 선수들은 중국 전이 끝난 뒤 노란색 셔츠를 입고 보은(報恩)의 응원을 펼친 2000여명의 한국인 앞으로와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시했다.‘추카추카(축하축하) 터키.' 황진선 논설위원
  • 월드컵/ 터키, 한국인 응원에 서운함 풀어

    우리 국방부 등 군 관련 단체들의 ‘터키 응원’ 열성이 효과를 낸 것일까.지난 3일 터키-브라질 전에서 한국인 주심이 터키 선수 2명을 퇴장시킨 이후 악화일로를 치닫던 터키 국민들의 반한(反韓)감정이 이번주 들어 급속히 수그러들고 있다. 월드컵 취재차 한국에 온 터키 기자들이 본국에 송고한 기사도 상당히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기자들은 한결같이 한국민들의 응원 열기에 감격한 내용의 기사를 보내고 있다. 터키팀의 부진을 아쉬워하는 기사보다는 오히려 한국인들의 터키팀 응원 열기가 더 충실하게 보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터키 주재 한국대사관(대사 김영기)에 따르면 후리예트,사바,밀리예트 등 터키의 3대 일간지에는 터키 국기를 들고 거수 경례하고 있는 우리 재향군인 사진들이 큼직하게 1면과 스포츠면을 장식하고 있다.터키방송공사(TRK)는 한국인 주심이 터키선수 2명을 퇴장시킨 데 대해 한국국민들이 미안해하며 모두들 터키를 응원하고 있다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12일 “지난주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는 화난 터키국민들의 항의성 메일이 폭주하고 항의전화도 빗발쳤으나 이번 주 들어 급속히 수그러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경기 이후 터키의 반한 감정을 우려한 우리 군관계자들이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방위산업 협력국인 터키 축구팀 응원에 적극 나선 ‘정성’이 이들을 감동시켰다는 반증이다. ‘여기가 터키인가’란 제목으로 인천 문학경기장 터키-코스타리카전에서 한국인들의 응원열기를 소개한 ‘사바’지 파티 도안 특파원의 10일자 칼럼은 대표적이다.다음은 도안 기자의 기사 요약. “한국 국민들은 지난 1950∼53년 한국전쟁에서 자신들의 나라를 위해 희생된 1000여명 터키 참전용사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한 듯 터키 대표팀을 전례없이 응원했다.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터키팀은 마치 홈구장에서 경기를 갖는 것 같았다.한국의 군도 나섰다.군은 팔리지 않은 입장권을 구입해 사병들에게 나누어주었고,이남신 합참의장과 다른 군장성들도 VIP석에서 터키-코스타리카전을 관전했다.군인들은 터키 국기를 들고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터키를 열렬히 응원했다.언론이 홍보를 잘해서인지 인천시민들도 터키-코스타리카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수천명의 한국인들이 터키 국기를 흔들었으며,이들은 대부분 팔과 얼굴,몸 등에 터키팀 유니폼 색깔인 빨강색과 흰색으로 페인팅을 했고 이 모습은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응원은 조직적이었다.외쳐댄 응원구호도 터키어였다.관중석에는 터키팀을 응원하는 플래카드가 많이 보였는데,이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터키인들은 우리 형제’라는 플래카드였다.이번 응원에 참가한 한국인들은 중국과 가질 경기에서도 터키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인천은 한국전 당시 중요한 지역이었고,인천시민들은 터키팀을 응원함으로써 과거의 빚에 보답하려 했다. 터키팀이 경기종료 4분 전에 코스타리카에 골을 허용하자 경기장에 한순간 정적이 감돌았다.그 만큼 한국민들이 실망했다는 것이다.경기가 끝나자 수천명의 터키인과 한국인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문학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정승화 前육참총장 별세

    12·12사태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다 쿠데타를 일으킨 부하 장교들에게 연행되는 수모를 겪었던 정승화(鄭昇和·사진)예비역 대장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향년 76세. 정승화 전 총장은 최근 노환으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이날밤 9시쯤 숨을 거뒀다. 정 전 총장은 쿠데타가 일어난 79년 12월12일 서울 한남동 참모총장 공관으로 들이닥친 허삼수 당시 보안사령부 인사처장과 우경윤 수도경비사령부 제33헌병대장의 병력 50여명에 의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됐다.군사 재판을 거쳐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정 전 총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1948년 육사 5기로 임관,6·25전쟁 당시 대대장과 부연대장 등으로 참전했고 휴전후에 연대장·사단장·육군본부 특전감을 거쳐 3군단장·육사교장·1군사령관을 지냈다. 87년 한때 통일민주당 고문을 지내기도 했으며 지난 95년 12·12사태 수사과정에서 명예를 회복했다.2000년 1월 예비역 장성의 모임인 성우회 6대 회장으로 취임,국군포로 송환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고인은31년간의 군 생활에서 충무무공훈장,미 은성무공훈장,보국훈장 천수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신유경 여사와 3남 1녀가 있다.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며,영결식은 16일 오후 2시 대전 국립묘지에서 육군장으로 치러진다. 한편 육군은 장례기간 예하 전 부대에서 조기를 게양하고 고인을추모할 방침이다. 김경운기자 kkw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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