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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盧대통령 독일·터키 방문 마치고 귀국

    노무현 대통령은 8박9일 동안의 독일·터키 방문을 마치고 18일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으로 귀국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영국·프랑스·폴란드 방문에 이어 유럽연합(EU) 주요국가들과 정상외교 활동을 일단락지었다. 노 대통령은 독일 방문에서 교역 및 투자 기반 확대의 계기를 마련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 등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독일 정부의 협조와 지지를 재확인했다. 노 대통령은 1957년 수교 후 48년만에 우리나라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터키를 방문해 터키의 6·25 전쟁 참전으로 맺어진 전통적 우호관계를 돈독히 했으며 이라크 인접지대에 파병된 국군 자이툰 부대의 활동에 관한 터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확약받았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사랑으로 빚은 ‘통일빵’

    사랑으로 빚은 ‘통일빵’

    “함께 어울려 살게 될 친구들인데, 배 고파 아프면 안 되잖아요.” 초등학교 1학년인 임세희(7·광주시 광산구 운남동)양은 최근 피아노를 산다며 3년 동안 동전을 모아둔 돼지저금통을 깼다. 어머니 송순희(34)씨에게 “배고픈 북쪽 친구에게 빵을 만들어 주는 사업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내가 가진 것도 나눠 주고 싶다.”고 나선 것. 세희는 저금통에서 꺼낸 10만 380원 전부를 후원금으로 보냈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도 하나둘씩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꼬마부터 할머니까지 십시일반 대동강변의 공장에서 만든 빵을 북녘 어린이에게 나눠 주기 위한 ‘영양빵 사업’에 십시일반의 정성이 모이고 있다. 여섯 살배기 꼬마에서부터 수십년을 통일운동에 바친 할머니, 장기수 출신 80대 할아버지까지 갖가지 사연이 담긴 손길이 이 사업을 돕고 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가 북쪽의 민족화해협의회와 함께 지난해 7월부터 추진한 끝에 지난 1일 처음 공장에서 빵을 만들어 냈다. 하루 생산량은 1만여개로, 평양 동부지역인 대동강·동대원·선교 구역 유치원과 탁아소에 공급된다. 이 사업을 위해 남쪽은 원료와 기계설비를 지원하고 북쪽은 ‘대동강 어린이빵 공장’과 인력을 제공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김주완(6)군은 신발 가지런히 놓기, 할머니 물 떠다 드리기 등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고 어머니 강미순(33)씨에게 200원씩 받는다. 한달 동안 6000원을 모아 용돈을 뺀 5000원은 빵공장 후원금으로 보낸다. 강씨는 “아직 어려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배고픈 친구를 돕는 일’이라는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고 말했다. 장기수 출신으로 택시를 운전하다 두달 전부터 쉬고 있는 유기준(80) 할아버지도 매달 5000원씩 후원금을 낸다. 지난달에는 아들들에게 받은 용돈 40만원을 전부 보탰다. 함흥 출신으로 1951년 인민군으로 참전해 포로로 잡힌 뒤 10년을 복역한 유씨는 연탄 배달과 두부공장일 등을 하며 근근이 살아 왔다. 가족은 모두 북한에 두고 왔고 2001년 이산가족 상봉때 여동생을 만나기도 했다. 유씨는 “내 친척과 가족을 먹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통일운동의 원로로 꼽히는 김선분(80)·박정숙(88) 할머니는 정부에서 받는 생활보조금을 쪼개 후원금을 내고 있다. 또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45)씨는 지난 2년간 공연 수익금인 2000만원 전액을 기부했다. ●“지원늘면 진짜 영양빵 만들것” 사업을 홍보한 지는 4개월도 되지 않지만, 후원자가 몰려 매달 5000원씩 내는 후원회원이 4522명,100만원씩 내는 운영이사가 165명이나 된다. 후원금 5000원이면 어른주먹 크기의 빵 30개를 만들 수 있다. 원래 이 사업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여성위원회가 “통일의 미래인 아이들을 남·북쪽 어머니가 함께 키워 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신수경 사무처장은 “정부 차원의 북한 지원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모은 민간의 현물 지원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직은 속재료를 넣지 않은 밀가루빵 수준이지만, 지원이 늘면 신선한 육류와 야채를 넣은 ‘영양빵’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후원은 영양빵공장사업본부 홈페이지(okbbang.org)나 전화 02-3210-1005 로 신청하면 된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盧·세제르 대통령 회담 “터키에 구매사절단 파견”

    터키를 공식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5일 터키와의 경제협력 강화를 위해 올 하반기 중 터키에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궁에서 아흐메트 네즈데트 세제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교역의 확대 균형을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는 구매 상담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금년 하반기 터키에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파견키로 했다.”고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전했다. 세제르 대통령은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대(자이툰군)가 파병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터키측에서 변함없는 지원을 하고 긴급상황 발생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노 대통령은 사의를 표시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세제르 대통령 앞에서 터키민요인 ‘위스크다르(Uskdar)’를 읊조려 터키측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터키 최대도시 이스탄불 근교의 지명인 위스크다르는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 자격으로 참전한 터키 군인들이 행군 중 불러 국내에서 크게 유행했던 터키의 전통 민요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베트남 이해 젊은작가 모임’ 방현석교수

    ‘베트남 이해 젊은작가 모임’ 방현석교수

    참 간사한 게 기억이다. 제가 저지른 것보다 당한 것만 담아두려 하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이 한 예다. 동아시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과거가 아니라 핵폭탄이 투하된 과거만 기억하려 든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과거를 공정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젊은이들이 피 흘렸고 베트남 양민들이 눈물 흘렸던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올해가 을사조약 100주년, 한·일수교 40주년이란 것만 알았지 베트남에는 종전 30주년이자 해방 60주년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10여년째 주도하면서 베트남과의 교류에 힘쓰고 있는 소설가 방현석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만났다. ●베트남과 참전군인 모두 피해자 베트남전에 대한 사과·배상은 일본 우익의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너희는 안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시비냐.’는 반론인 셈이다. 방 교수는 두 문제가 “차원을 달리한다.”고 설명했다.“대동아·태평양전쟁은 일본 스스로가 주체였고 지금도 군국주의 부활을 통해 꿈꾸고 있는 미래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미국이 주체였는 데다 우리 스스로 미화하거나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유감의 뜻을 표시했었다. 또 한국군이 주둔한 베트남 중부 지역에 병원과 학교도 지어주는 등 “부족하지만” 한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이게 일본 우익과의 차별성이다. 방 교수는 그러나 더 적극적인 액션을 주문했다. 베트남과 참전군인들에게 국가가 정식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트남전의 궁극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었다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한마디로 일본 우익들과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방 교수는 참전군인 역시 강제적으로 전쟁터에 내몰린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그들 역시 까닭 모를 전쟁터에 내몰린 피해자들입니다.‘골수’ 베트남 게릴라의 책을 번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 것 같던 참전군인들조차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며 전화를 해왔습니다. 피해자로서의 공감이었습니다.” ●일본 우경화, 동아시아로 막아야 방 교수가 이런 제안을 내놓은 것은 역사교과서와 독도문제로 표면화된 일본 우경화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이라 믿기 때문이다.“일본 우경화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항마’로서 일본을 키우겠다는 미국의 전략, 더이상 미국의 그늘에서 안주할 수 없다는 일본의 판단이 그 배경입니다. 결국 동아시아권의 연대로 이를 막아야 합니다.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함으로써 아시아의 모범국가로 다시 태어난 한국이 이것을 주도해야 합니다.”객관적인 국력 차이가 분명한 만큼 ‘평화와 공존’이라는 도덕적인 명분과 논리를 선점해야 일본 우경화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이 상황을 잘 다뤄나가면 한국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우리나라는 대문을 열고 살아야 합니다. 개방성과 포용성을 과시해야 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패권국가의 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베트남은 우리와 동질감 느껴 다행히 베트남은 한국에 우호적이다. 한국군의 잔혹행위를 목격했다는 사람조차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미국에 이용당했으니 오히려 더 불쌍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프랑스·미국 등 강대국들을 잇따라 물리쳤다는 자부심과 지금은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한다는 현실이 배경에 깔려 있다. 또 실제 베트남전 참상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폭격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방 교수는 “베트남은 한국과 베트남을 ‘아시아로 통하는 두개의 문’이라고 표현합니다. 동북아에 한국이 있다면 동남아에는 베트남이 있다는 말이지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열강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왔던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뜻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그래서인지 지난해 베트남 작가 겸 기자 15명을 한국에 초대했는데 이들이 되돌아가서는 한국에 관한 호의적인 기사들을 대거 쏟아냈다. 북한쪽에서 “섭섭하다.”고 불평할 정도였다고 한다.“미국이나 일본이 아무리 돈을 뿌려대도 얻을 수 없는” 공감대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심포지엄·문학작품 번역 모색” “베트남이 전쟁기념관을 크게 짓는데 일본이 돈을 대고 있어요. 말하자면 일본도 베트남처럼 ‘미제국주의자들’에게서 피해를 입었다는, 그런 의미겠지요. 그런데 한국은 어떤지 아세요? 한류 한류하지만 그 쪽 한국학 전공자가 보는 책이라곤 ‘월간 무역동향’이 전부입니다.” 방현석 교수는 동북아균형자론과 아시아속 한국의 지위에 대해 묻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이 때문에 최근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외연을 넓혀 ‘아시아문화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싸이더스의 차승재 사장, 연극배우 김지숙씨 등도 끌어들였다. 목표는 문화교류를 통한 동아시아 국가간 공감이다. 올해 6월 일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4개국을 돌며 심포지엄을 연다. 한국 문학 서적도 기증하고 한국문학 특강도 진행한다. 가을쯤에는 ‘아시아작가포럼’을 열어 아시아 8개국 작가들을 한국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풍물 등 전통문화를 직접 배우게 하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그 나라 노동자와 함께 직접 자국의 시나 소설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하는 작업도 시도해볼 예정이다. 이게 바로 ‘동아시아의 연대’에 다가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쪽에서 주최하는 행사와 비교해보면 항상 빈 주머니가 걱정이다.“한류를 민족의 자부심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보면 몇년 못 갑니다. 그보다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게 내다보는 투자가 아쉽습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⑤ 청해진에서 해법을 찾는다

    [어촌은 지금 구조조정중] ⑤ 청해진에서 해법을 찾는다

    ■ 어류양식 ‘쪽박’… 전복양식은 ‘대박’ “빼도 박도 못하요.”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전남 완도군 신지도. 쪽빛 바다와 모래사장, 해송 등 빼어난 경관 뒤로는 어민들의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육지와 바다에 온통 어류 양식장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지금 빚과의 전쟁 중이다. 불과 5년 전, 완도읍 내 단란주점 등 술집에서 “신지도 사장님과 사모님들 덕분에 산다.”는 말이 돌았다.90년대 말 광어와 우럭을 키워 뭉텅이 돈을 만졌을 때다. 신지면사무소 앞 금모래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5년 전에는 면 소재지에 다방만 9개나 됐고 여종업원만 20명 가까이 됐으나 지금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완도수협 신지지점 남자 직원도 “신지도 수협 대출자 1000여명 중 10% 가량이 악성 연체자”라고 실상을 전했다. 완도군 내 어류양식 400여 가구 중 신지도(1900여가구)에만 160여 가구가 우럭과 광어를 기르고 있다. 나머지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 양식을 한다. 이 섬에서 ‘부자마을’로 통하던 송곡리.163가구 중 45가구는 어류양식이고 나머지는 패류와 해조류를 기른다. 어류양식 중 35가구는 바다에서 가두리를 막아 우럭을,10가구는 육상 축양장에서 광어를 키운다. 이 마을 김원재(59) 이장은 “마을 주민 중 50명 이상이 신용불량자이고 빚 5억원은 기본,10억∼20억원도 부지기수다. 일반대출 때 서로가 연대보증해 줄초상 났다.”고 말했다. 사모님 소리 듣던 이 마을 젊은 아낙들 가운데는 완도읍 내 전복 선별장이나 미역·톳 가공공장을 전전하며 날품을 팔고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던 박종두(50·송곡리)씨는 “수협과 농협 빚이 10억원도 넘소.2년 동안 키운 우럭이 30만마리나 되는 데도 본전은 커녕 연체이자(17.0%)도 못낼 판이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해상 우럭과는 달리 육상 광어는 값이 지난해 절반으로 폭락하면서 부도자가 속출하고 있다. 신지도에서는 지난해 말이후 네집이 부도처리됐고 서너집이 경매로 나올 태세다. 2㎏짜리 광어는 마리당 5000원가량 손해보고 1만 500원이나 1만원에 넘긴다. 사료값을 아끼기 위해서다.8만마리 기르는데 한 달에 사료값 3600만원, 전기료 700만원, 영양제·어병 약품비·인건비(3명) 600만원 등 5000만원이 든다. 20∼50% 수입관세를 무는 중국산 농어는 ㎏에 5000원선이다. 완도지역 양식업자들이 중국으로 건너 가 기른 뒤 다시 들여오기도 한다. 수입된 농어와 점성어는 완도읍 내 농공단지 축양장에서 기른다. 지난해 완도항으로 수입된 중국산 활어는 1만 7000㎏. 농어·점성어·감성돔 순이다. 지지난해는 2만㎏ 넘게 들어왔다. 반면 완도군 노화읍은 대박을 터트린 전복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미역과 다시마 등 전복 먹이를 직접 기르는 복합양식으로 생산원가를 줄였고 남들보다 먼저 시작해 성공했다. 지난해 노화읍 내 830㏊에서 400억원을 벌어들였다. 미라리 마을에서만 150억원을 벌었다. 미라리 최운재(45) 자율어촌계장은 “92년 전복 시험양식을 거쳐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고 지금은 70가구가 호당 연 평균 3억원을 번다.”고 말했다. 글 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기고] 어획량 제한 어종 확대해야/ 김영규 국립수산과학원 원장 최근 우리나라의 수산자원은 지속적인 생산을 위협할 정도로 자원이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어획물의 구성도 고급어종에서 저급어종으로 바뀌고 각 어종의 미성어 어획비율도 증가하는 등 생태적으로 불안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수산자원 회복정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정부뿐만 아니라 과학자, 업계, 어업인 등 수산관련분야에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과학자들은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자원을 보다 정확히 진단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자원조사전용선 등을 이용해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원조사를 하고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 주요 어종들에 대한 정확한 자원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산란, 성숙, 성장, 분포 이동 등 자원생태학적 변동요인 역시 주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어업인 스스로 자원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자율관리어업체제의 확산을 유도하고, 현재 고등어 등 9개 어종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총허용어획량 대상 어종을 연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수산자원보호를 위한 법령, 규제 등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하며, 수산자원관리법 같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법령제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과다사용 어구수를 제한하고 어구의 실명제를 적극 시행해야 한다. 생분해성어구, 치어탈출장치 등 환경친화적이고 자원관리형의 어구를 어업인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적극적인 자원조성을 위해서 생태학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우량품종인 수산종묘의 연구개발 및 환경보전을 위한 연안환경의 변화와 예측능력을 높이는 연구도 뒤따라야 한다. 황폐화되어 가는 연안어장에 대해서는 연안 해조장, 해중림의 조성, 종묘생산과 방류, 인공어초어장 조성 등을 통해 산란장과 성육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생활하수의 유입을 차단하는 하수처리종말처리 시설 등을 확충해 바다 오염을 최대한 막고 해상쓰레기 수거시설을 확대해 깨끗한 바다를 유지하는데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산자원을 이용하는 어업인들은 수산자원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우리 앞바다 자원은 내가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양식 성공사례 2題-경남 거제수협 김선기 조합장 “품종 선택만 잘하면 해외시장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습니다.” 경남 거제수협 김선기(42) 조합장은 내로라하는 어류양식업체 3개를 경영하면서 2000여 조합원의 소득증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경영자다. 김 조합장은 지난해 7월 아무도 생각지 못한 해삼 종묘생산에 성공, 이를 어민들의 소득증대로 연결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해삼은 해저의 모래나 뻘 속에 포함된 유기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어느 해역에서도 양식이 가능하다.”며 “양식대체 품종으로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진 넙치·우럭 등을 대신할 경우 생산량 조절로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해삼은 판매가 용이해 1석2조라는 것이다. 지난해 울진 어류센터로부터 종묘를 분양받은 ‘강도다리’도 ‘대박’이 예감된다. 곧 채란할 수 있어 종묘를 대량으로 생산할 채비도 갖췄다. 희귀종을 선호하는 중국 바이어들이 몸길이 5㎝를 기준으로 마리당 3달러에 사겠다며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6남매의 맏이로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그는 거제고를 졸업한 84년 피조개 양식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2년 후 우렁쉥이 종묘생산에 성공했다. 이를 발판으로 한창 인기를 끌던 넙치와 우럭 종묘를 생산, 히트를 쳤다. 그는 “대량생산의 ‘노하우’는 초기 먹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먹이의 영양과 양, 방법, 시기 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의 수산통계는 엉터리”라며 정확한 통계와 어자원 보호를 위해서는 수산물 ‘강제상장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임의상장제로는 집계가 제대로 될리 없고, 치어 남획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1차 산업도 하늘만 쳐다보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배우고 연구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거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양식 성공사례 2題-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 아미노산이 풍부한 건강식품 참전복 등의 양식사업으로 ‘부자(富者) 어촌’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2리 어촌계. 이 마을은 지난 96년부터 황폐화된 마을어장을 새롭게 단장, 고부가 품종인 참전복을 비롯해 성게·미역·해삼 등을 대량 생산해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자연산 참전복 6.6t을 비롯해 미역 등 어패류 50여t을 생산,37명의 계원들이 가구당 27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을어장의 연간 어업생산에 따른 어촌계원들의 수입은 50만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어촌계는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 어린 전복 100만 마리를 방류하는가 하면, 불가사리 등 어패류 해적생물 퇴치와 함께 오·폐수 수거작업 등을 꾸준히 벌여 왔다. 이른바 어촌계원들이 타율적 어업관리에서 벗어나 어장과 어자원을 직접 관리하는 ‘자율관리형 어업’을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2002년 전국 최우수 어촌계로 선정돼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사업비 10억원 전액도 양식장 개발사업에 투자했다. 아울러 매년 어촌계원들의 수익금 가운데 20%를 적립했다가 다시 어장에 투자하는 등 ‘기르는 어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어촌계는 이와 함께 양식장 개발과 관광기반 조성을 위해 1㏊의 먹이어장을 개발하고, 전복초를 이용한 양식 및 보라성게 채취 체험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근 들어 나정2리 어촌계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서·남해 어민 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신규섭(53) 나정2리 어촌계장은 “이런 추세라면 2007년쯤에는 가구당 4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기고] 대통령의 ‘형제나라’ 터키 방문/권영재 주 터키대사

    터키인은 우랄알타이어를 쓰고 몽고반점이 있는 몽골리안으로 우리와 민족의 뿌리가 같으며, 한국전에 참전한 혈맹의 우방으로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우호감을 갖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대만에 이어 세번째로 1957년도에 우리와 수교한 원로 우방국이다. 양국간 수교 이후 터키의 대통령과 총리는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한국 대통령은 그동안 한번도 터키를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혈맹의 우방국으로서 외교적으로 큰 빚을 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수교 48년만에 최초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방문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처음 터키에 근무하던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터키는 그들의 따뜻한 우호감과는 달리, 한국이 터키를 잘 모르고 냉랭하게 대하는데 대해 서운함과 불만의 감정을 갖고 있었으며, 양국간 투자는 전무했고 교역량은 불과 1억달러에도 못 미쳤다. 그러다가,1990년대 말부터 5년 동안 한국과 터키의 관계는 극적인 발전을 이룩해왔다.1999년 터키가 대지진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운동을 통해 전달한 200만달러에 이르는 현금과 물자는 터키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아울러 2002년도 월드컵대회에서 보여 주었던 우리 국민들의 열렬한 터키 사랑 표현은, 그동안 쌓여왔던 한국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말끔히 씻어내고 피를 나눈 우방의 확신을 갖게 했다. 그 결과,2004년말 한국의 대 터키 투자액은 3억달러에 육박했고, 양국간 교역량은 23억달러를 돌파했으며, 방한 교류협력도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여, 바야흐로 양국관계는 상승일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터키 방문은 양국간 기존 우호관계의 한 단계 격상은 물론 국익 차원의 경제통상 증진에도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에 그 중요성이 있다. 터키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의 중앙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소련의 개방에 때맞추어 독립한 터키어를 쓰는 신생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특별한 우호관계에 있어, 이들 국가들과 통상과 투자 진출의 거점으로 터키의 가치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 더구나, 오는 10월 터키의 유럽연합(EU)의 가입을 위한 협상 개시는 터키 경제에 대한 대외신뢰도 제고와 활력을 불어넣어 향후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부응하여 양국간 투자·교역량도 각별한 우호관계에 걸맞게 지속적으로 증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난해 우리 군의 이라크 북부지역 파병은 인접국 터키의 전적인 이해와 후원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노 대통령의 터키 방문은 1·30 총선을 치른 이라크 국내 상황을 조율하고 평화유지 및 향후 재건사업을 위한 진출을 고려해볼 때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고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오는 2007년은 한·터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로, 대통령의 이번 터키 방문을 계기로 2007년을 ‘한·터 우정의 해’로 선포, 양국에서 폭넓은 경제·사회·문화·예술 교류행사 등 대대적 연중행사를 계획·추진하는 것도 큰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지난 반세기동안 다져온 양국관계가 종합적으로 극대화되어 진정한 ‘형제의 나라’ 차원으로 승화되는 새로운 장(章)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을 진정으로 마음 속으로부터 좋아하고 ‘형제의 나라’라고까지 표현하는 국가가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터키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터키는 우리에게 진정 ‘멀지만 가까운 나라’로 다가오고 있다. 권영재 주 터키대사
  • 세월속의 서북간도와 조선인, 나의 생활/이지북스 펴냄

    우리 나라 정형외과학의 태두로 알려진 이선호 박사가 자전적 회고록 ‘세월속의 서북간도와 조선인, 나의 생활’(이지북스 펴냄)을 냈다. 지은이는 어릴 적 서북간도에서 생활하며 동포들의 삶을 직접 경험했고,6·25전쟁때는 군의관으로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도했다. 조국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며 어린 눈에 비친 동포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또 피란지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일기, 전쟁터에서 날마다 짤막하게나마 적어나간 일지 등을 통해 혼란과 공포, 그리고 기아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격동과 혼란의 와중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온 지은이와 그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인의 끈기와 삶에 대한 투지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1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독도, 알아야 지킨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명시한 교과서들이 최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는 그동안 ‘망언’으로 치부해 왔던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 그들은 자국 청소년들에게 독도 영유권 귀속의 논리를 가르칠 것이고, 사전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왜 우리땅인지, 일본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인지 체계적 논리적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침 최근 독도 영유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독도 역사와 독도 관련 분쟁의 역사를 다룬 것부터 목숨을 걸고 독도 지키기에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 지도로 본 독도 영유권 논쟁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것들이다. ●CD로 듣는 독도 이야기(문철영 지음, 경세원 펴냄) 이 책은 단국대 역사학과 문철영 교수가 KBS 라디오 사회교육방송의 ‘역사이야기’란 코너에서 나누었던 대담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대화하듯 쉽게 풀어낸 내용이어서 독도 영유권 문제의 윤곽을 더듬고 맥을 짚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책에 따르면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까지 크게 세번이다. 울릉도·독도는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 우리의 영토로 지속되다가 1693년 첫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 극심했던 왜구의 피해 예방차원에서 조선 조정이 공도(空島)정책을 취한 틈을 타 일본 어선들이 울릉도에 출몰하면서 조선 어선들과 큰 충돌이 벌어진 것. 그러나 이때 어민 대표인 안영복의 활약으로 도쿠가와 막부는 1699년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최종 확인해주게 된다. 두번째 논쟁은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을 표방한 메이지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일본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쳐 울릉도·독도 문제를 재조사했으나, 역시 조선 영토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에게 보고했다. 태정관도 이를 바탕으로 1877년 최종 지령문을 내무성에 내렸고, 내무성은 이를 시마네현에 통보했다. 책은 1905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도를 주권이 미치지 않는 ‘무주지’로 규정,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고,2차대전에서 패전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의 애매성을 구실로 지금까지도 억지주장을 펴는 과정을 소상히 살핀다. 대담 내용을 담은 CD도 있다.1만원.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호사카 유지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지은이는 일본인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그는 독도가 한국 땅임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주장만을 들으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믿어버릴 만큼 논리와 자료를 정교하게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로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을 논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다. 일본은 1693년 한·일 어민들간의 충돌때 도쿠카와 막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은 울릉도일 뿐 독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837년 에도막부로부터 독도까지 간다는 도해 허가증을 받고 울릉도까지 넘어간 상인이 사형에 처해진 일을 내세우며, 이는 자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항해를 일본이 허용했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에도막부가 도해허가증을 내줄 때는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였으므로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해 허가증을 발행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3자까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자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도다. 책에선 우선 ‘대일본국군여지전도’와 ‘개정대일본도’,‘교정대일본여지전도’ 등 에도시대에 작성된 상당수의 지도에 독도가 빠져 있는 점을 주목한다. 독도에서 일본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오키섬은 그려져 있으나 독도는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바로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증거라는 것이다. 또 ‘대일본전도’‘관판 실측전도’ 등 메이지시대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총 17장의 일본 고지도를 통해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밝히고 있다.1만 3500원.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양태진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아, 독도수비대(김교식 지음, 제이제이북스 펴냄)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는 독도의 지세와 생태는 물론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의 독도 관리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지도와 지명,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측의 주장, 독도문제의 본질, 독도 수호인 안영복과 홍순칠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포진한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 시마네현 의회에서 거론돼온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1만 5000원. ‘아, 독도수비대’는 1950년대 조직된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약을 뼈대로 한 실화소설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 한국 어부들을 방해하고 테러를 가하는 등 침탈행위를 일삼자 젊은이들이 수비대를 조직해 방어에 나서는 이야기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들을 쫓아내고,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 암벽의 ‘한국령’이라는 표식도 이들이 새긴 것이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독도 의용수비대 활약상 재조명

    KBS1 ‘인물현대사’(오후 10시)는 8일 ‘독도 수호!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독도 의용수비대’를 통해 50년 전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던 독도 의용수비대를 다시 조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1954년 11월21일, 독도로 접근해오던 일본 함정이 폭격을 당한다. 당시 독도는 치안 공백지대. 일본 함정을 향해 공격을 했던 이들은 군경이 아니라,33인의 울릉도 청년으로 구성된 독도 의용수비대였다. 독도 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청년 33명으로 결성됐다.6·25의 혼란을 틈타 일본의 독도 침범이 잦아지자 이들 민간인이 분연히 나섰던 것.1956년 12월 경찰에 인계할 때까지 이들은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을 축출, 일본 영토표지를 철거하고 일본 순시선과 여러차례 총격전까지 벌였다.1953년 8월에는 독도 암벽에 ‘한국령’이라 새기고 독도 수호의 결의를 다졌다. 방송은 당시 의용수비대원 가운데 정원도, 이필영, 이규현 대원과 함께 직접 독도에 들어가 당시의 치열했던 독도전투를 생생히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무기라고 해야 고작 박격포 1문, 기관총, 소총이 전부였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뭉쳤던 이들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는다. 당시 대장이었던 홍순칠씨는 독도에서의 생활을 수기로 남겨놓았다. 그의 육필 수기를 통해 그들의 힘겨웠던 3년8개월간의 생활도 되짚어볼 예정이다. 이와 함께 1955년 제작된 영화 ‘독도와 평화선’에 담긴 의용수비대원들의 모습도 공개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최장집교수도 7년만에 ‘무혐의’

    최장집교수도 7년만에 ‘무혐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구본민)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전쟁의 성격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된 고려대 최장집 교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고 31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학 교수로서 한국현대사의 연구 결과를 개진하면서 기존의 학설이나 주장과 다른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전체적 내용과 집필 당시 상황으로 미뤄 학문 연구의 일환으로 판단되고 북한을 이롭게 할 인식을 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무혐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견해표명에 불과하고 비방 목적도 인정키 어럽다.”면서 역시 무혐의 처분했다. 건국회 회장 등 16명은 1998년 11월 “최 교수가 저서인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에서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6·25 참전군인들을 비방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최 교수를 고소·고발했다. 한편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94년 고발된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씨에 대해서도 이날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함께 고발된 한길사 김언호 사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서울중앙지검 김수민 2차장검사는 “독자와 평론가로부터 예술작품으로서 객관적·미학적 가치를 획득했고, 그런 표현들은 자유토론과 상호 비판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충분히 여과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BBC­블레어 또 맞장뜨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라크 전쟁 발발 9개월 전부터 미국 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했으며 공격 목표가 대량살상무기(WMD) 색출이 아닌 정권교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국민들에게 감춰왔다고 영국 공영방송 BBC가 폭로했다. 20일 밤 10시15분(현지시간) BBC1의 간판 프로그램인 ‘파노라마’를 통해 방영된 다큐멘터리 ‘이라크와 토니(블레어 총리의 애칭) 그리고 진실’은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전쟁으로 가는 과정은 물론, 전쟁이 끝난 뒤까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BBC는 지난해 영국 정부가 이라크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정보기관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폭로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오보’ 판결을 받고 이사장과 사장이 퇴진하는 등 수모를 겪은 뒤라 이번 2라운드는 핵심 각료의 증언을 따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인상을 준다. 방송에 따르면 영국의 해외정보국(MI6) 책임자인 리처드 디어러브 국장은 워싱턴에서 미 당국과 비밀협의를 갖고 2002년 7월23일 돌아와 블레어 총리와 핵심 각료들에게 미 정부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이라크 침공을 ‘확정’했음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디어러브 국장은 블레어 총리 등에게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이라크를 치기로 결정했다.”고 보고했다. 방송은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블레어 총리가 디어러브 국장의 보고 전부터 이같은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에 반발, 노동당 하원지도자 자리를 그만뒀던 로빈 쿡 전 외무장관은 BBC와 인터뷰에서 “블레어 총리는 자신이 부시 대통령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영국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국민을 오도했다.”고 말했다.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이라크 관련 잇단 폭로가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나라사랑 대사에 권해선씨

    국가보훈처는 18일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이자 국가 유공자 자녀인 권해선(44·여)씨를 나라사랑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1984년 독일 비스바덴 국립오페라에서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으로 데뷔한 권씨는 1987년 함부르크 오페라극장 정식 단원으로 입단,18년째 주역으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오는 22∼26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공연을 위해 최근 고국을 찾았다. 부친 권인현(상이 1급)씨는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 유공자이며, 외할아버지 정운수 선생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공훈으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ㆍ호국’ 명문가 출신이다. 오는 24일 상이군경 복지회관의 ‘리프트 버스 발대식’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홍보대사로서의 첫 활동을 시작한다.
  • 伊 “이라크서 9월부터 철군”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임병선기자|미국의 이라크 침공 2주년을 닷새 앞둔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가 이라크 주둔 병력의 단계적 철수 일정을 밝혀 ‘철군 도미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연합군 가운데 미국, 영국, 한국에 이어 네번째 규모의 파병국으로 그동안 미국을 강력히 지지해왔기 때문에 백악관으로선 더욱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라크 제헌의회 개원 16일 역사적인 제헌의회 개원식이 열린 엄중한 경계속에 열렸다.275명의 제헌의원들은 이날 무장헬기가 경계비행을 하는 가운데 바그다드 시내 안전지대(그린존)안에 위치한 회의장에서 첫 회합을 가졌다. 제헌의원들은 정파간 입장 차로 대통령과 제헌의회 의장은 선출하지 못했다. 개원식이 열린 이날 바그다드 시내에서 폭탄이 터지고 바그다드 북쪽 60㎞ 떨어진 바쿠바에서도 차량폭탄 공격으로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불안한 치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미군의 오인 사격이 결정적 배경?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1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 가능하다면 오는 9월부터 이라크 파병 이탈리아군을 철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총리실이 밝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앞서 15일 국영 RAI TV와의 회견에서 “이라크가 자체 치안능력을 갖춘다는 전제 아래 9월부터 3000여명에 이르는 이탈리아군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입장 발표는 이탈리아 병사 1명이 작전 도중 사망한 데다 이를 계기로 중도 야당 진영이 철군 압력을 높여가는 시점에서 나왔다. 이탈리아가 미국의 강력한 동맹이란 점이 무장세력의 타깃이 돼 그동안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탈리아군 25명과 민간인 2명이 저항세력의 공격과 사고 등으로 희생됐으며 민간인 9명이 납치됐다. 잇단 자국민 희생에도 꿈쩍않던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마음을 돌린 것은 저항세력에 납치됐다 지난 4일 풀려난 ‘일 마니페스토’신문사의 줄리아나 스그레나 기자와 정보요원 니콜라 칼리파리에게 미군이 가한 오인사격.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미군 책임자들이 진실을 규명해야 함은 물론, 부시 대통령도 이 문제가 조속히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비등하는 철군 여론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15일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번 결정은 오인 사격과 무관하며 이라크 정부의 치안능력 확보를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궁색해 보인다. 무엇보다 오인사격과 무관하다고 강조한 것이 눈길을 끈다. ●자체 치안능력 확보 의문 하지만 이라크 군경이 올 하반기 마무리되는 참전국의 철군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스페인, 필리핀 등 8개국이 철군을 완료한 데 이어 폴란드군 지휘 아래 이라크 중남부를 담당하던 우크라이나군 1650명이 10월까지 철군하고 네덜란드(1345명)는 이달 중순, 폴란드(1700명)는 7월부터 철군에 들어간다. 10월쯤이면 미군 12만여명을 포함, 잔류 연합군은 13만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미 국방부가 제대로 훈련받고 장비를 갖췄다고 평가한 이라크 군경 14만 2000명을 합쳐 총 치안요원은 27만명을 조금 웃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500만명 인구에 저항세력이 도처에서 암약하는 이라크 실정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국방부 소속은 6만여명에 불과하며 경찰에는 고속도로 순찰대원까지 포함돼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최대 정파인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권력배분 협상이 계속됐지만 키르쿠크 관할권 등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한동안 ‘무정부’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도했다. lotus@seoul.co.kr
  • ‘실전외교’ 박근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5일부터 미국 워싱턴·뉴욕·로스앤젤레스 등지를 잇달아 방문, 대미 외교무대에 ‘첫선’을 보인다. 박 대표가 개인 자격이 아닌 정치인 자격으로 대미 외교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표는 지난 1974년 8월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숨진 뒤 79년 ‘10·26사태’ 때까지 5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면서 청와대를 방문한 외국 지도자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단 한 차례도 외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79년 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그나마 ‘10·26사태’로 무산됐다. 박 대표는 이날 방미 길에 오르면서 “지금 우리 안보문제에 있어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핵문제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한·미 동맹문제, 양국간 통상마찰 문제 등에 대해 미측 인사들과 진솔한 얘기를 나눌 것”이라면서 “당과 국민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필요하면 미측의 이해와 협조도 구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번 방미 기간 중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비롯해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리사 머코스키 상원 동아태소위원장, 짐 리치 하원 동아태소위원장 등을 만나기로 돼 있다. 또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조찬간담회,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주최 오찬연설회, 월스트리트 금융인 간담회, 컬럼비아대학 연설, 워싱턴포스트·뉴스위크 등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 등도 예정돼 있다. 박 대표는 이밖에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뉴욕의 9·11테러현장 등을 둘러보고 현지 교민 및 기업인들이 주최하는 간담회 및 환영행사에도 참석, 격려할 계획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그린버그 AIG회장 불명예 퇴진

    |뉴욕 AFP 연합|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미국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79)가 사임했다. 14일 AIG 이사회는 ‘경영승계계획’에 따라 그린버그를 퇴진시키고 마틴 설리번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회장을 새 CEO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그린버그는 비등기 이사 회장직은 계속 맡을 것이라고 성명은 밝혔으나 그의 경영 책임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프랭크 자브 AIG 이사회 의장은 회사의 성장과 성공에 대한 그린버그 회장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사회는 지금 새 지도부로 개편하는게 주주와 고객, 직원들 이익을 위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언론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AIG가 증권거래소와 뉴욕 검찰 등으로부터 부정거래 의혹에 대해 잇따라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과 관련, 이 회사 이사회가 13일 모임을 갖고 그린버그의 퇴임 조건을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출신으로 미국 재계의 대표적인 지한(知韓)파인 그린버그 회장은 1960년대초 이름도 없던 AIG의 중간 관리자로 출발,1967년 CEO 자리에 오른 뒤 특유의 공격 경영으로 4년만에 AIG를 세계 최대의 보험사로 키운 월가의 거인이다. 그는 20대에 한국전에 참전, 동성무공훈장을 받는 등 한국과 인연이 남다르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교수가 된 마지막 황손 이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교수가 된 마지막 황손 이석

    노래가 있다. 집을 잃은 방랑자의 한이 담겨 있다. 화합과 행복을 그리워한다.‘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메아리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영화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가 문득 생각난다. 어린 세 살에 청나라 황제가 된 푸이의 파란곡절의 삶…. 말년에는 식물원의 초라한 정원사가 된다. 그는 한 많은 생애를 마감한 지 28년 만인 1995년 청나라의 황릉으로 이장되면서 황제로 복권된다. ●떠돌이 생활 접고 전주에 둥지 최근 프랑스의 AFP통신은 다음과 같이 눈길 끄는 보도를 했다. “이석(63)씨는 고종의 손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가수 군인 방랑자, 알코올 중독자, 수도승 등으로 전전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씨 조선의 본향인 전주에서 안착하게 된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은 마치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삶을 옮겨놓은 듯하다.” 통신은 “그의 존재는 한국의 과거 역사와 현재, 전쟁과 가난, 풍요와 산업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국내에 남아 있는 ‘마지막 황손’ 이씨. 외신 보도처럼 떠돌이 생활을 완전히 접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에 있는 승광재(承光齋·광주 항쟁의 뜻을 이어나가자)에 머물면서 ‘황실보존’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제는 대학강단에 섰다. 황손이 교수가 됐다는 사실 자체만 보더라도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그의 첫 강의가 궁금해진다.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난 8일 오전 9시. 전주대학교 백마관 110호. 남녀 학생 50여명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강의실 뒤쪽에는 학교 관계자들이 서 있었다. 이씨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역사적인 순간, 그는 감개가 무량한 듯 창밖을 잠시 응시했다. 이윽고 준비된 슬라이드 자료를 펼쳐보이며 “딱딱한 강의로 듣지 마시고 살아있는 역사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칠판 쪽으로 돌아선다. 자신의 할아버지(고종)부터 내려오는 가계(家系)를 그린다. 글씨를 잘 못쓴다며 애써 겸손해했다. “저의 할아버지는 26대 고종 임금입니다. 이후 큰아버지 순종을 27대 임금으로, 그리고 작은아버지 영친왕을 28대 임금에 책봉했지요. 그러나 영친왕은 열한살 때인 1907년 일본에 인질로 잡혀갑니다. 일본에서 강제로 일본식 군대교육을 받았고 별셋(육군 중장)을 답니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 때문에 한국에 오지 못하다가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의 허락으로 귀국했지만 7년 동안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셨지요.” ‘잃어버린 황실의 삶’을 재현하는 자리여서 그런지 학생들 사이에는 묵직한 침묵이 흐른다. 이씨 역시 이런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순종 임금은 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몰래 커피 속에 자꾸 아편을 탔지요. 그러다 49살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일합방에 도장을 절대 안 찍었습니다. 을사오적이 찍었지요.” 이씨는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어릴 적 추억담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강의 노트는 ‘황실의 추억’ “저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있는 사동궁(寺洞宮)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친왕이 예순두살에 저를 낳았지요. 사동궁은 구한말에 지은 서양식 건축으로 많은 상궁, 나인, 손님, 청각씨(궁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섞여 살았지요. 궁궐의 대문에는 일본 순사들이 칼을 들고 보초를 섰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이왕직장관(李王職長官)이라는 일본인이 까만 넥타이 정장 차림으로 아버님 의친왕께 큰절로 문안드리며 생활비를 주는 것을 봤지요.” 하얀 분필을 들고 칠판에 써내려가는 그의 ‘강의노트’는 많은 세월의 기다림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의 회상은 계속됐다. “아침 일찍에 나이 많은 영감님들이 아버님 침전에서 ‘전하, 기침하셨습니까.’하고 여쭈면 ‘에헴.’하고 대답하셨지요. 그러면 상궁들이 아버님 조찬(깨죽, 잣죽)을 준비해 올려드렸습니다. 다 드시고 난 후에 저를 말 앞에 태우시고 마당을 돌며 운동하셨지요. 저는 어릴 적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도 못 들어가고 엄한 궁중의 예절을 학습했습니다. 조금만 뛰어도, 천둥벼락이 쳐 놀라는 기색이 있어도 상궁들은 금세 달려와 ‘애기마마, 아니되옵니다. 절대 뛰시면 아니되옵니다.’라고 엄한 눈초리를 받고 살았습니다. 또 어두워지면 상궁 나인들이 옆에서 ‘컴컴한 곳에 가면 망태할아버지가 나온다.’며 겁을 주어 못가게 했습니다.” 이 대목에 이르자 학생들이 웃었다. 강의실 분위기도 한껏 고조된 느낌이었다. “저의 아버지는 저녁마다 양주 조니워커를 마셨지요. 한번은 술에 취해 데라우치가 찾아오자 권총을 꺼내 “내가 죽어야지.”하면서 방바닥을 마구 쳤습니다. 데라우치는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3·1운동 직전에 이완용이 의친왕의 김상궁을 독살하자 손병희를 불러 ‘오호 통재라.’라며 무척 슬퍼했습니다.” ●올 겨울 무료 콘서트 열 계획 그는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올 겨울에는 ‘비둘기집’‘베사메 무쵸’ 등을 부르며 콘서트를 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주 시민이 자신을 받아주었기에 공짜로 하겠단다. 아울러 “자신의 꿈은 이 나라가 잘 사는 것”이라면서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보다 한살 밑이며 이 나라가 뭉치지 않으면 중국한테 빼앗긴다. 역사가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의를 들은 홍연정(20)양은 “배울 점이 많았다. 앞으로 역사공부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피력했으며, 박세진(20)양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서 좋았다. 감회가 새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매주 화·목요일 두 차례씩 구한말 이후의 황실가족사(사학과 교양강좌 3학점)를 강의한다. 그는 59년 의친왕이 사망하면서 떠돌이 생활로 전전긍긍한다. 종로 음악다방에서 DJ일로 학비를 충당하고 대학(외국어대 서반어과) 재학 시에는 미8군에서 노래를 불렀다.66년 6월 이등병을 달고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69년 맹호부대에서 병장으로 제대했다. 제대 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 빌딩청소, 가게점원 등 온갖 궂은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이씨는 슬하에 2녀1남을 두었다. 맏딸 이홍(28)씨는 영화배우 한영광씨와 결혼해 딸(3)을 낳았다. 둘째딸 이진(25)양은 경희대 도예과를 졸업한 뒤 캐나다 유학 중이다. 한국 황실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윌리엄 데이빗(49·언론인·캐나다 거주)이 학비를 대주고 있다고 이씨는 귀띔했다. 그리고 막내인 이정훈(24)군은 최근 육군으로 만기제대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이달말 미국 롱아일랜드에 사는 바로 윗형(이해룡·68)을 서울에서 20년 만에 만난다.”면서 “둘째형은 히로시마에서 원폭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승광재 거실벽에 걸린 의친왕의 친필 ‘제1강산(第一江山) 인(忍)’자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km@seoul.co.kr
  • [부고]

    ●한학자 권우 홍찬유 옹> 한학자인 권우(卷宇) 홍찬유 옹이 11일 오후 1시 서울 광진구 중곡동 자택에서 타계했다.90세. 홍 옹은 영산대 석좌교수로 사단법인 유도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한문연수원을 열어 한학을 후학들에게 전수했다. 공동 한시집 ‘관수회’를 남겼으며 ‘시화총림’,‘근역서화징’,‘연려실기술’ 등 한문서적으로 한글로 번역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유족은 아들 사성(69)씨와 미국에 사는 딸 현숙(63)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3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석장리 선산.(02)2072-2018. ●김진완(한맥레프코 선물투자공학팀장)씨 모친상 1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92-2299 ●전우진(홍성신경외과 원장)씨 부친상 박광업(새한 대표)박재화(자영업)씨 빙부상 1일 홍성의료원, 발인 13일 오전 9시30분 (041)630-6245 ●박영근(대한민국 6.25참전 경찰 전우회원)씨 별세 용진(사업)인희(N.F실업 이사)정희(서울대 생활과학대 부학장)씨 부친상 김병학(N.F실업 대표)채수원(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씨 빙부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8 ●이석균(전 교보투자자문 사장)씨 별세 상엽(대우종합기계 기획홍보팀 이사)상호(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상진(목포대 신소재공학과 〃)씨 부친상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30분 (02)392-0299 ●김희수(전 삼덕공인회계사 대표)씨 별세 윤기(강동가톨릭병원 마취통증의학과장)영희(마라톤글러브 영업부장)영기(삼성전자 전무)씨 부친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3410-6916 ●임현호(삼성SDS 미디어사업부 수석)씨 형님상 11일 춘천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33)263-4406 ●원삼영(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 차장)삼헌(합일무역 대표)씨 부친상 이장희(동대문구청 과장)씨 빙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237 ●옥종화(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씨 별세 건호(신송약품 전무)건우(파인골프랜드 대표)건성(캐나다 거주)씨 부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1 ●김종인(전 예일초등학교 교장)홍현창(동신농원 대표)씨 빙부상 1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92-3499 ●이덕교(자영업)제교(문화일보 산업부 기자)씨 부친상 이광훈(부천왓앤와이 이사)박재혁(대림대 교수)송병욱(서울시 공무원)씨 빙부상 10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2001-1096 ●김광해(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씨 별세 신정균(신양중 교사)씨 상부 김기형(사업)씨 형님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30분 (02)3410-6990 ●고종주(울산지법 수석부장판사)씨 부친상 11일 남해전문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55)863-5216 ●서덕권(전 신일기업 감사)씨 별세 선호(J.ROSY 대표)혜심(미주한글학교연합회 회장)혜연(서울대 성악과 교수)혜명(한양대 분자생명과학부 〃)씨 부친상 이상육(미주 건설업)김영진(성악가)김명훈(SBC 기획조정실 과장)씨 빙부상 이미미(디자이너)씨 시부상 11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31)787-1501 ●임하영(감사원 총무과장)수영(대상㈜ 중국지역본부장)현승(한국전력 뉴욕지사)씨 모친상 박정택(대전대 교수)씨 빙모상 11일 서울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2072-2020
  • [피플 인 포커스] 소니 신임회장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의 신임 회장에 선임된 하워드 스트링거(63)는 사람들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질을 타고 났다는 평이다.1980년대 말 위기에 처한 CBS에서 방송국장을 맡으며 수백명을 자르고도 떠나는 사람들로부터 거의 비난을 받지 않은 것은 유명하다. 일에 대한 열정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 때 잘 드러난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인 그는 당시 미 시민권자가 아닌데도 징병 대상에 포함됐다. 베트남에 가든지 아니면 영국으로 돌아가라는 ‘희한한 통첩’에 그는 미 해병대원으로 참전했다. 이후 1985년 시민권을 땄다. 그는 CBS 프로듀서로 출발했으나 결국 뉴스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진가를 발휘했다.1993년 코미디언 데이비드 레터맨을 ‘레이트 나이트쇼’의 진행자로 발탁,10년간 CBS에 수천만달러의 수익을 안겨줬다. 그가 소니의 미국법인에 와서 처음 맡은 분야는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일부 극장과 쇼핑몰이었다. 당시만해도 ‘전자왕국’인 소니의 주주들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시큰둥했다. 스트링거는 매달 도쿄로 건너가 소니 경영진들과 저녁을 했다. 각종 국제회의에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을 초청했고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파티에선 TV앵커 바버라 월터스 등 유명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게 했다. 그런 뒤에야 그는 영상과 음악부문의 사령탑을 맡아 영화사 MGM과 음반사 BMG를 인수했다.‘스파이더 맨’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소니에는 수십억달러의 이익을 남겼다. 그럼에도 지난해 열린 소니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그에게 관심을 표시하지 않자 노부유키 회장이 발언권을 줬다. 스트링거는 “고객이 하드웨어 자체를 좋아해서 영상기기나 음악재생 장치를 사지는 않는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기 위해 살 뿐이다.”고 강조,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그의 회장 취임으로 소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美국방부 모병광고 유색인종 타깃 논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국방부가 모자라는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죽음의 마케팅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전에 이어 이라크에서 장기전을 벌이면서 지난해부터 극심한 병력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예비군과 주 방위군은 물론 주한미군까지 총동원했지만 효과적으로 전투병력을 충원하거나 교체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병사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등 전반적인 군 사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군은 지난해 말부터 대대적인 모병 캠페인에 나섰다. 문제는 이같은 캠페인이 흑인과 히스패닉 등 소수민족에게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홍보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이전시인 ‘리오 버넷’과 계약을 맺어 TV광고 제작 등 전반적인 모병 홍보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이와 별도로 히스패닉을 겨냥해 ‘카르텔 크리아티보’를, 흑인을 타깃으로 ‘뮤즈 코데로 첸’과 ‘바이탈 마케팅 그룹’을 각각 홍보 에이전시로 고용했다. 홍보사들은 흑인 및 히스패닉 계층의 취향에 맞는 컨셉트와 언어로 광고를 제작, 이들이 자주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방송하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를 대상으로 제작됐다. 가족의 힘을 빌려 흑인과 히스패닉 젊은이들을 군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대표적인 마케팅 전문지인 ‘애드버타이징 에이지’는 3일(현지시간) 국방부에 고용된 홍보대행사들을 ‘죽음의 마케터(Marketers of Death)’라고 지칭하는 비판기사를 게재했다. 이 잡지는 “아무리 홍보를 해도 이라크전에 참전하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피터 피버 듀크대 정치학 교수의 비판적 견해를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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