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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인권운동의 영원한 대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자 광주지역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홍남순 변호사가 14일 오전 2시10분 타계했다.94세. 유족으로는 13∼14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기훈(53)씨를 포함해 기원, 원숙, 광숙, 기섭, 성욱, 영욱 등 5남2녀가 있고 부인 윤이정씨는 1992년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광주시 민주시민장(장의위원장 박광태 광주시장)으로 치러진다.그는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생애를 바친 ‘우리시대의 어른’이자 ‘행동하는 양심’‘광주의 혼’이었다. 고인은 1912년 전남 화순의 중농 집안에서 2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고인은 땔감을 해다 팔아 모은 돈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물한살이던 1933년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고물장사를 하며 와카야마(和歌山)시립 상공학교를 졸업했다. 고국에 돌아와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마흔의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1953년부터 10년 동안 광주지법과 고법, 대전지법에서 판사를 지냈고 1963년 ‘호남 민주화 운동의 산실’인 광주 동구 궁동 자택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 그의 삶은 한국 민주화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발언으로 문제가 된 전 국회의원 유옥우 사건을 필두로 학생, 문인, 정치인 등 양심수들을 위해 60건 이상의 무료 변론을 해 ‘법보다는 양심’을 중시하는 변호사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73년 전남대 ‘함성지 사건’,1976년 ‘3·1 구국선언’,1977년 시 ‘겨울공화국’으로 파면된 양성우 시인의 노예수첩 필화사건,1978년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의 교육지표사건 등 30여건의 긴급조치법 위반 사건을 맡아 ‘긴급조치 전문변호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1980년 5월20일 서울을 출발, 다음날에야 광주에 도착해 ‘피의 화요일’을 목격한 그는 같은 달 26일 16명의 수습위원들과 함께 소위 ‘죽음의 행진’에 나선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 뒤 다음해 12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석방된 뒤 그는 광주 구속자협회 회장,5·18광주민중혁명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추진위원장 등을 맡아 ‘끝나지 않은 5·18’의 진상규명과 시민들의 명예회복 활동에 진력했다. 그러나 본인은 피해보상을 신청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죽은 사람들에게 부끄럽다.”며 거부하다 지난해 5·18 유공자로 인정됐다.1985년 가톨릭 인권상과 1986년 대한변호사회 인권상,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터키 파묵 ‘노벨 문학상’

    ‘내 이름은 빨강’‘눈’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54)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력 후보로 꼽혔던 고은 시인은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12일 “(파묵이)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화간 충돌과 얽힘에 대한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부터 유력후보로 거론돼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예측불허였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파묵의 수상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사건 때문이다. 당시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영국 일간지에 매우 이례적인 보도가 나왔다. 심사위원들이 한 명의 유력후보를 두고 심각한 의견대립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언급된 작가가 바로 오르한 파묵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파묵은 고배를 마신 지 1년 만에 노벨문학상을 되찾아온 것이다. 파묵은 1952년 이스탄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명문 로버트 칼리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스탄불 대학에서 건축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물세살때 전업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그만뒀다. 1982년 첫번째 소설 ‘제브뎃씨와 그의 아들들’로 터키의 대표적 문학상인 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두번째 소설 ‘고요한 집’으로 마다라르 소설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하얀성’‘흑서’‘새로운 인생’‘눈’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하얀 성’부터다. 뉴욕타임스는 그에게 ‘동양에 샛별이 떠올랐다.’고 극찬했다.‘내이름은 빨강’은 전세계 32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유수 문학상을 휩쓸었다. 타임지는 올해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현실 문제에도 적극 참여 문학적 성과와 더불어 정치사회적인 발언도 고려하는 노벨문학상의 성향은 올해 수상자인 파묵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파묵 역시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해 스위스 신문과의 회견에서 터키가 90년 전에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한 것과 지난 20년간 분리독립 운동을 벌여온 쿠르드인 3만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에 대해 비판했다가 국가모독죄 혐의로 기소됐다. 스웨덴 한림원이 지난해 그의 수상여부를 두고 의견대립을 벌인 이유도 터키 정부의 반발을 우려해서라는 지적이 높다. 파묵의 혐의는 올초 이스탄불의 시슬리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파묵은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갈등을 매혹적인 서사구조 안에 풀어놓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견지하고 있다.‘내 이름은 빨강’이나 ‘눈’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간 충돌이라는 터키의 당면 과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파묵은 지난해 5월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 “이모부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며 남다른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파묵은 “나는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적이다. 독자는 작가의 국적이나 종교, 문화에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소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라는 신념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노벨문학상 상금은 1000만 스웨덴 크로네(미화 140만달러)이며, 시상식은 12월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오르한 파묵 ▲ 1952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 1982년 첫 소설 ‘제브뎃과 아들들’로 오르한 케말소설상 수상 ▲ 1984년 ‘고요한 집’으로 마다랄르 소설상 수상. 프랑스 ‘유럽 발견상’수상 ▲ 1985년 ‘하얀 성’발표. ▲ 1985∼88년 미국 컬럼비아대 방문교수 ▲ 1994년 ‘새로운 인생’ 발표 ▲ 1998년 ‘내 이름은 빨강’ 발표.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아일랜드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수상 ▲ 2002년 ‘눈’ 발표
  • [OUR STORY] 설악四季 찰칵찰칵 30년 사진작가 성동규씨

    [OUR STORY] 설악四季 찰칵찰칵 30년 사진작가 성동규씨

    만산홍엽. 국내 단풍 1번지 설악산이 붉디 붉은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등령은 물론, 수렴동 대피소와 양폭산장 등 설악산의 단풍명소들은 마치 빨간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지난달 하순 대청봉을 중심으로 시작된 단풍은 하루 25㎞씩 남진(南進)을 거듭하며 설악산은 물론 전국의 산들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설악산에는 단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설악의 비경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산악 사진작가 성동규씨 또한 설악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다. 설악산 길이라면-설령 길이 아니라 해도-모르는 곳이 없고, 풀 한 포기인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전설적인 인물. 쉰아홉의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설악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추석연휴로 인한 교통체증 때문에 다녀올 엄두를 못냈다면 이번 주가 설악의 단풍을 감상할 절호의 시기. 도발적인 자태로 우리곁에 다가온 설악의 유혹에 흠뻑 빠져 보자. 성씨가 견마잡이를 자청하고 나섰다. 글 사진 속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사진작가 성동규씨의 설악산 단풍예찬 “설악의 단풍은 맑고 윤기가 납니다. 수분과 일조량이 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죠.” 중청봉 대피소앞 바위에 올라 선 성씨가 산아래를 굽어보며 설악단풍 예찬론을 펼쳤다. “위도상 한대성 수종의 남방한계선과 온대성 수종의 북방한계선이 맞물린 곳에 위치해, 수종이 다양하고 색채변화가 심한 것도 자랑입니다. 단풍이나 벚나무처럼 잎이 붉어지는 나무와, 신갈나무 등 잎이 노랗게 변하는 나무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죠. 게다가 몸빛깔이 하얀 사스래나무와 일년내내 푸른 소나무 등이 뒤섞여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해요. 단풍색깔이 온통 붉기만 하다면, 그 단순함에 금방 싫증을 내고 말겠죠. 마치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우리네 인생살이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이산 저산의 빨갛고 노란 단풍들이 서로가 자기 색깔을 뽐내며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서 신비로움마저 느껴집니다.” 한줄기 바람소리가 짐승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처럼 귓전을 찢으며 계곡사이를 내달렸다. 그리고 운무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설악. 용의 이빨처럼 생긴 용아장성도,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공룡능선도 온통 울긋불긋한 빛깔을 한 채 아래로 줄달음을 치고 있다. 천하절경이 따로 없다. 설악의 요염한 자태에 취한 이방인의 볼 또한 점차 붉게 변해가던 즈음, 문득 성씨의 이력이 궁금해졌다.30여년동안 오로지 설악산만을 카메라에 담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충남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68년, 맹호부대 통신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부터 그의 사진인생은 시작된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에서 접한 미국의 사진 전문잡지 ‘라이프’는 그를 평생 사진에만 빠져 살게 할 만큼 강렬한 충격을 안겨주었다.71년 베트남에서 돌아와 사진현상소를 운영하며 지내던 그는 산악사진가 안승일씨를 따라 설악산을 둘러보다 이번엔 설악의 자태에 매료되고 만다. “내설악 백담골을 지나 양폭산장까지 가던 중에 그만 맑고 고운 설악의 속살을 보고 말았어요. 마음으로만 설악산을 짝사랑하다가 73년 봄 마침내 이곳으로 이사를 왔죠. 설악을 영원히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요.” 그때부터 기다림, 외로움 등과 싸우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계속됐다. 굶는 일은 예사. 몇날며칠을 세수 한번 못하고 꼬박 한자리에서 지낸 적도 허다했다. 어느 해 겨울인가는 꼬박 30일을 야영하다 한 컷도 못찍고 내려온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고통의 순간들은 마침내 산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희열로 용솟음치죠. 그리고 떨리는 가슴으로 셔터를 누르면 금속음이 정적을 깨면서 산은 정지된 채 사진가의 가슴에 흡인됩니다.” 그의 사진일기를 보면 설악에 대한 연모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해볼 수 있다.‘산은 평등하고, 평화와 자유가 있다. 찬밥 한덩이와 된장찌개, 필름 몇 롤만 있으면 무한정 산에 머무는 행복이 있다.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나만의 생각으로 사각틀 속에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그런 산을 나는 좋아한다. 아직까지도 자연의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난 시각장애인이나 다름없다. 설악은 그런 나를 여전히 포용하고 가르쳐 준다. 그래서 나는 설악을 사랑하고, 오늘도 산에 오른다.’ 성씨가 당일 단풍산행 포인트로 추천한 곳은 세 곳.“우선 설악동에서 출발해 천불동 계곡의 양폭산장 주변을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어요. 단풍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고, 암석사이에 뿌리박고 선 식물들의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리도록 푸르른 계곡수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이죠.” 두번째 포인트는 수렴동 대피소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등산로. 노란 단풍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군데군데 빨간 단풍이 액센트를 더해준다. 백담계곡을 지나 수렴동계곡과 상류의 구곡담계곡에 이르는 지역이 그중 압권이다. 만해 한용운이 이 곳을 오르내리며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고 전해진다. 수렴동대피소에서 수렴동계곡과 갈라지는 가야동계곡은 행락객들의 발길이 드물어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 여유있는 산행을 즐기기에 적당한 곳이다. 세번째 포인트는 마등령 오르는 길. 공룡능선 등 기골이 장대한 산세와 어우러진 단풍이 일품인 곳이다. 역광으로 단풍을 보며 오르기 때문에 가장 설악산답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중청봉 대피소처럼 쉬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이 한가지 흠. “각 지역에 따라 단풍이 어떤 특색을 보이는지, 주변의 생명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 보세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는 인간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때쯤이면 비로소 산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요.” 묘한 화두를 던진 성씨는 단풍이 구름과 조화를 이룬 마등령을 찍겠다며 능선너머로 총총이 사라져 갔다.
  • [이용원 칼럼] ‘안보민감증’은 없다

    [이용원 칼럼] ‘안보민감증’은 없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뒤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느닷없는 ‘안보 체감’ 논쟁이 터졌다. 우리사회가 안보불감증 상태이냐, 아니면 안보민감증 상태이냐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 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안보불감증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안보불감증도 곤란하지만 지나친 안보민감증도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노 대통령 특유의 명쾌한 이분법 논리를 잘 보여준다. 안보에 관한 우리 국민의식은 마치 안보불감증이나 안보민감증 둘 중의 하나에 속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 보면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안보민감증 앞에 ‘지나친’이란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안보민감증은 졸지에 안보불감증과 같은 수준의 문제 있는 의식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는 공정한 비교방식이 아니므로 ‘지나친’을 뺀 안보민감증만을 놓고 그 의미를 따져 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보민감증’은 없다. 안보민감증에 붙은 ‘증’(症)’은 개인에게는 병의 증세 또는 병 자체를 뜻하고, 사회적으로는 병리현상을 지칭한다. 예컨대 우울증·불면증·도박중독증·명품강박증처럼 쓰이는 접미사이다. 그렇다면 안보에 민감한 것이, 곧 외부의 위협·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민감한 것이 개인적·사회적 병리현상인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아무도 ‘자식사랑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부모가 자식을 학대할 때에야 아동학대증으로 문제가 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안보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안보에 무신경·무관심한 안보불감증만이 버려야 할 병리현상인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은 언젠가 통일을 이루어야 하고, 그 결실을 맺을 때까지 남북은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통일과 민족공영이 지상과제라고 해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실은, 북한이 우리에게 실재하는 군사적 위협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1945년 광복이래로 한국과 무력충돌은 빚은 나라는-베트남 파병같은 특수상황을 제외하면-북한과 6·25에 참전한 중국뿐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총부리를 겨눈 상대는 한국과,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병사뿐이다. 결국 남북한 양쪽 모두에 앞으로도 무력 충돌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대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동족인 것이다. 아울러 남북간 무력 충돌은 그리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월드컵 열기로 전국이 한창 뜨거웠던 2002년 6월 서해상에서 발생한 남북 해군의 교전으로 우리 장병 6명이 숨진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3년 전에도 남북은 이미 서해상에서 한 차례 격돌한 사실이 있다. 북한이 이미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공표했는데도,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우리 국민 가운데 ‘북의 핵보유는 민족의 경사’라는 식으로 철없는 반응을 보이거나, 북이 설마 남쪽을 향해 핵을 사용하겠느냐라고 믿는 어리석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되는 현상이다. 안보는 국가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이어야 한다. 국민이 생존하고 국가가 유지되고서야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안보민감증은 없다. 문제되는 것은 턱없는 안보불감증뿐이다.ywyi@seoul.co.kr
  • 日 전쟁박물관 유슈칸 美 관련 기록 일부 수정

    |도쿄 이춘규특파원|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부설 전쟁박물관 유슈칸의 전시물 가운데 미국으로부터 비판이 제기된 2차대전 미국관련 기록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6일 보도했다. 변경되는 부분은 2차대전과 관련된 기록 가운데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전략’이라는 제목 아래 “불황시 루스벨트에게 남겨진 길은 자원이 부족한 일본을 수출금지로 압박, 전쟁 개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일본의) 참전에 의해 미국 경제는 완전히 부흥했다.”는 대목이다. 신사측은 제목을 ‘루스벨트와 미국의 2차대전 참가’로 바꾸고 내용에서도 ‘전쟁 개시를 강요’ ‘미국 경제는 완전히 부흥했다.’ 등을 삭제하는 동시에 일본의 침략주의를 비판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을 새로 넣기로 했다. 그러나 신사측은 “침략전쟁이 아시아의 독립을 재촉했다.”며 정당화하는 등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기록은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덧붙였다.taein@seoul.co.kr
  • [책꽂이]

    ●새로운 한국식물도감(이영노 지음, 교학사 펴냄) 전세계에서 나는 식물은 대략 20여만종. 그 중 한반도에서 나는 관속식물은 4000여종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는 종자식물과 귀화식물, 양치식물, 원예식물 등 한반도에 야생하는 식물들이 망라됐다. 식물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으며 사진은 식물의 특징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데 역점을 뒀다. 식물이름이 흉한 느낌을 주는 개불알꽃은 복주머니란으로, 풀솜대와 석산은 각각 지장보살(전남 구례의 지방명), 꽃무릇(전남 백양산 근처의 지방명)등 정다운 지방 특유의 이름으로 부르는 등 새로운 감각을 살렸다. 전2권. 한 세트 30만원.●현대 고고학의 이해(콜린 렌프류·폴 반 지음, 이희준 옮김, 사회평론 펴냄) ‘삽의 증언’이라 불리는 고고학의 세계를 종합적으로 다룬 현대고고학 개설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과 열형광연대측정법,GIS와 DNA연구기법 등 과학적 기법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과정주의고고학이라 불리는 ‘신고고학’, 인지고고학, 공공고고학 등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고고학에 관한 최신 논의들이 실렸다.4만원.●역사를 움직인 157인의 마지막 한마디, 유언(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 성인들의 유언은 감동스러운 데가 있다. 공자는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 구나.”라고 끝맺었다. 폭군 네로는 “한 예술가가 가고 세계는 혼란스러워지는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칭기즈칸은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잠을 잤구나.”라고 말한 뒤 저세상으로 갔고, 대영제국의 초석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아주 짧은 한순간을 위한 것이었어.”라며 자신을 뒤돌아봤다.“다시 볼게요. 다시 보자구요.”라는 한없이 슬픈 유언은 마릴린 먼로의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의 유언 백과사전.1만 8500원.●도산 안창호 평전(이태복 지음, 동녘 펴냄)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삶을 조명. 도산은 1898년 평양에서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18개 쾌재와 18개 불쾌로 탐관오리들의 학정을 규탄하고 외세의 침탈에 대응할 것을 호소하면서 이름을 알렸다.1907년에 신민회를,1913년에 흥사단을 조직했으며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직을 맡았다. 일부에선 도산을 단순한 인격수양파, 무장투쟁론에 반대한 준비론자, 조선혁명이 아닌 개량주의자로 규정하지만 도산이야말로 현실적인 조건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구체화된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이라는 주장이 담겼다.1만 5000원. ●로맹가리(도미니크 보나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펴냄)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이자 외교관, 전쟁영웅이었던 로맹가리. 참전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비평가상을 받으며 명성을 얻은 그는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받은 데 이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소설 ‘자기 앞의 생’으로 다시 한번 공쿠르 상을 수상, 프랑스 역사상 유일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작가로 기록됐다. 이 전기에는 24살 연하 진 시버그와의 운명적 사랑 등 일화도 실렸다.1만 8000원.
  • ‘거지왕’ 김춘삼 힘겨운 투병

    TV 드라마 ‘왕초’의 실제 주인공인 ‘거지왕’ 김춘삼(78)씨가 고령과 폐질환으로 힘겹게 투병하고 있다. 27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13일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뒤 지금까지 40일이 넘도록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고령인 데다 만성 폐색성 폐질환, 기흉, 만성 신부전증 등 6∼7개 질환이 겹쳐 신체기능이 매우 약해져 있다.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거동도 전혀 못해 코에 연결된 호스로 미음식을 주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1928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8세 때 대전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짐승을 유혹하는 미끼 노릇을 하면서 ‘거지 세계’에 들어섰다.20대에 전국의 거지를 통솔하는 ‘거지왕’이 된 뒤 거지 구제사업에 앞장서면서 전설적 인물이 됐다. 1950년대에는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을 전국 10여곳에 세웠으며 20여차례에 걸쳐 거지 합동결혼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아내 남윤자(63)씨와 서울 마포구 망원동 다세대 주택에서 살고 있는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정부보조금과 한국전쟁 참전에 따른 국가유공자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보험급여 항목을 제외하고 현재 김씨가 부담해야 할 병원비가 600만원 정도 된다. 김씨의 사정을 감안해 병원 복지기금으로 일부는 충당할 예정이지만 지원 손길이 없으면 딱히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부고] 한국전 ‘장진호 전투 영웅’ 로런스 사망

    한국전 당시 미군과 중공군 간에 가장 참혹한 전투로 평가받는 장진호 전투의 영웅 제임스 로런스 전 해병대 준장이 지난 18일 국립 해군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88세. 로런스 준장은 1950년 9월 미 제7연대 보병대대 소령으로 인천에 상륙한 뒤 그해 11월 장진호 전투에서 부대원들을 지휘, 혹한 속에서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5일간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적진을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는 미 해병대 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로런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을 상대로 한 과달카날 전투로 동성 훈장을 받았고, 장진호 전투로 두 번째 동성훈장과 미 해군 수훈장을 받았다. 그는 한국전 참전 후 조지 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 해병대 태평양사령부 법률담당 수석장교, 국방부 부차관보 등을 역임하고 1972년 전역했다.워싱턴 연합뉴스
  • 벨기에 한국전참전 용사 위문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첫 해외 방문에 나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4일(현지시간) 한국전 참전용사의 미망인을 찾았다. 이날 오후 벨기에 북동쪽에 위치한 리에주에서 모로 드 멜렌 전 국방장관의 부인인 자클린 드 라랭(95) 여사를 위문했다. 멜렌 전 장관은 1950년 한국전 당시 국방장관이자 상원의원을 지냈다. 물자만 지원하려던 벨기에 정부 방침에 강력히 항의해 파병에 기여했다. 파병군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된 법령까지 개정해 한국전에 참전했던 일화가 밝혀지기도 했다. 회고록에서 2차대전 당시 벨기에가 미국의 도움으로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빚을 갚는 취지에서 한국전에 참전을 결심했다고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자클린 여사는 “(남편이) 50세의 나이에 장관직을 그만두고 참전한 것이어서 상당히 특별한 케이스였다.참전하기 위해 공수부대에서 훈련도 받았으며, 임진강 전투에서 전공도 세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95세의 고령에도 불구, 기억력이 좋고 말도 잘해 박 전 대표를 놀라게 한 자클린 여사는 “한국이 세계 11위 경제 강국이 된 것도 그러한 희생과 도움 때문으로 감사드린다.”는 박 전 대표의 말을 받아 “한국은 번영했는데 북한은 잠잠해졌느냐.”고 묻는 재치도 보였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영진 영등포구의회 의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영진 영등포구의회 의장

    “구민 세금을 받은 의원과 무보수 명예직 의원이 똑같은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영등포구의회 김영진(56) 의장은 “기본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가 월급의 3배 이상은 일해야 회사가 굴러가듯 의원도 보수 적다고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했다. 영등포구 구의원 연봉은 3744만원, 월 실수령액은 280만∼290만원이다. “정기회가 끝나니까 어떤 주민이 ‘이제 방학이냐.’고 물어요.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은지….”달라진 의회를 보여주기 위해 김 의장은 우선 상임위원회 활동을 적극 독려했다. 의원들이 지역 사회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어두운 곳을 밝혀야만 ‘365일 살아 숨쉬는 의회’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운영·행정·사회건설위원회가 한 달에 두 차례씩 모임을 갖고 월별 활동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달에는 민속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과 할인점, 재래시장을 돌며 물가동향과 원산지 표시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영등포구의회는 의욕적인 초선의원 11명과 경륜 있는 재선의원 6명이 손발을 척척 맞추고 있다고 김 의장이 자랑했다. 당적별로는 한나라당 9명, 열린우리당 7명, 무소속 1명이다. 그는 “3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조화롭게 현안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조화와 협동을 바탕으로 김 의장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바로 ‘공약 공동 실천’이다..“선거를 하면서 구의원들이 많은 공약을 쏟아냅니다. 일부는 지역발전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홀로 실천하기 힘든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구는 공약을 한데 모아 공동으로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각 의원이 내놓은 공약을 한데 모아 구청과 예산 등을 논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시급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순위를 매겨 실행하는 것이다. 공약 실행 과정도 완전히 공개할 계획이다. 의회 입구에 공약 사항을 적은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진척 사항을 그래프로 일일이 표시한다. 김 의장은 “예전에는 도로에 육교 하나를 놓고도 누구 공이냐를 따졌다.”면서 “이제 한데 뭉쳐서 지역사회 발전만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김 의장은 또 의회 기능을 강화, 구청 집행부를 상시 감시·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연말에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감사로는 의회가 견제자 노릇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는 “구청 감사관의 역할을 축소하고, 그 기능을 의회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를 향한 김 의장의 도전은 계속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걸어온 길 육군3사관학교(4기), 육군대위 전역, 베트남참전 영등포지회 고문, 영등포구 평통자문위원, 한나라당 중앙위원, 제4대 구의회 의원.
  • 美 참전비 방문때 수행원차 길 착각 노대통령 홀로 헌화 할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주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식수행원이 탄 차를 모는 미국인 운전사가 길을 착각,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대통령 일정에 맞추느라 헐레벌떡 달리는 해프닝이 있었던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13일 워싱턴 DC공원의 한국전 참전비로 가고 있었는데 행사장 근처에서 공식수행원 차 4대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선도 운전사가 길을 잘못 인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 장관을 비롯해 이태식 주미대사,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 김세옥 경호실장 등이 당초 목적지에서는 200m쯤 떨어진 곳에 차를 내려 현장으로 내달렸다. 다행히 반 장관 등은 대통령보다 먼저 헌화장소에 도착, 별탈없이 대통령을 영접하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노 대통령도 공식수행원 차량과는 잠시 떨어졌지만, 청와대 경호실의 근접 경호원 차량이 밀착해서 함께 이동했고, 행사장에서 대기하던 경호요원이 있어 경호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미국 백악관 경호실은 공식수행원 차량의 미국인 운전사가 길을 잘못 인도해 공식수행원들을 잠시나마 당황하게 하는 ‘해프닝’이 초래된 데 대해 김세옥 경호실장에게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충주길(하)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1) 충주길(하)

    마당바위를 지나쳐 달리던 영남대로는 국도 3호선과 갈라져 충주시내로 접어든다. 달천(달래강) 오른쪽에 길이 나 있다. 지금은 시가지가 발달돼 있지만 험준한 산들이 없고 널따란 평야지대가 펼쳐져 예전에는 여기부터 행인의 발걸음이 훨씬 빨라졌을 듯하다.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서 국도와 잠시 결별한 옛길을 따라 300m쯤 올라가면 대림산성이 나온다. 단월동 창골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성은 둘레 4906m의 토석혼축이다. 높이 4∼6m로 충북도기념물 110호이다. 충주박물관 길경택 학예연구실장은 “신라말·고려초 지은 성으로 앞에 달천이 해자(垓字·성 밖으로 둘러판 못) 역할을 하는 ‘천혜의 요새’”라고 말했다. ●임장군, 이심바위 전설로 이 성에 조선 선조 때 지어진 ‘정심사’라는 절이 있고 그 앞을 ‘삼초대’라고 부른다. 작은 산이나 골이 깊고 경사가 크게 져 있다. 입석 안내판에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이 대림산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고 3단계로 석축을 쌓아 무술을 연마했다.’고 써있다. 건너편 산 밑에 장군의 묘가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다. 달천을 건너 임경업 장군의 묘가 있는 풍동에서 만난 주민 김희순(73)씨는 “이 마을에 임장군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다 매년 시제에 전국에서 임씨들이 와 제사를 지낸다.”고 전했다. 달천을 따라 삼초대를 거쳐 1㎞남짓 가던 길은 유주막 마을에서 시내 도로와 합쳐진다. 단월역이 있었던 곳으로, 예전에는 주막촌이 형성됐었다. 조선조 학자인 유영길과 동생인 영의정 유영록 등 유씨 가문 사람이 많이 왕래한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유주막에서 풍동으로 가는 달천변 절벽에 이심바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도로확장 공사로 사라지고 없다. 이 바위는 임장군이 새벽 훈련을 하고 달천 물을 떠마시려는 순간, 강 속에서 이무기가 나타나자 꼬리를 잡고 내동댕이치자 바위가 움푹 파이며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길은 시 외곽을 흐르는 달천을 따라 가다 임경업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렬사와 철불좌상(보물 512호)이 있는 단호사를 지나 달천교에 다다른다. 이 철불좌상은 충주가 예전에는 주요 철 생산지였음을 방증하고 있다. 현재 달천교는 두개가 있다. 모두 2차선으로 서울쪽으로 가는 다리는 1990년에 건설됐고 시내쪽으로 들어오는 것은 1999년에 바로 옆에 만들어졌다. 충주문화원 김영대 사무국장은 “일제시대 초까지 이곳에 나루터가 있고 부근에 뱃사공촌과 주막촌이 발달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피눈물 흘린 당간지주 달천교를 건넌 옛길은 국도 3호선과 겹치면서 충주시 주덕읍까지 한참을 내달린 뒤 신니면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3호선을 타고 5∼6분간 달리다 군도 27호로 빠져 면사무소 앞을 지나쳐 다시 그만큼을 달리면 신덕저수지에 도착한다. 널따랗고 시원하게 펼쳐진 저수지 곳곳에 낚시꾼들이 보인다. 당초 군도 27호가 국도 3호선이었으나 몇년 전 국도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이전 길이 군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길에서 오른쪽으로 저수지를 끼고 돌아 깊숙이 들어가면 ‘숭선마을’이 있다. 행정구역은 신니면 문숭리에 해당한다. 이 마을회관 앞에 높이 4.2m에 이르는 사찰의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초 숭선사에서 기를 꽂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숭선사는 고려 광종이 954년에 어머니인 신명순성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이다. 마을이름도 이 절에서 따와 내려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명순성 왕후는 고려 태조의 비(妃)로 충주유씨 유긍달의 딸이다. 정종과 광종 등 5남2녀를 낳았다. 당간지주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당간지주는 동서 한 쌍이 서 있었으나 일제가 신덕저수지를 만들 때 석재로 쓰기 위해 동쪽 지주를 잘랐다. 하지만 이를 자른 사람이 화를 입어 서쪽 지주가 보존됐다.’고 써 있다. 주민 정건양(88·여)씨는 “일본 사람이 수놈을 가져가 저수지 만드는데 쓰고 암놈을 더 자르려는 데 이 징대(지주)에서 피가 나 못 가져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주의 무릎 부근에 주먹 크기로 파인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지주는 검은 이끼에 덮인 채 볏가마니를 쌓아두는 기둥으로 쓰이고 있었다. 되돌아 나오면 저수지 바로 위에 동락초등학교가 나타난다. 한국전쟁에서 첫 승리를 거둔 곳이 이 학교이다. ●전쟁과 여교사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김재옥 교사 기념관’이다. 김 교사는 이 학교에 재직하던 한국전쟁 때 승리의 주역이었다.6·25가 터진 1950년 7월7일. 이 학교를 점령 중이던 북한군의 정보를 국군 6사단 7연대 1·2대대에 알려줘 저녁식사 때 기습적으로 공격, 전쟁후 첫 승리를 거두게 한다. 이튿날까지 계속된 소탕작전으로 북한군 800명이 사살되고 90여명이 포로로 잡혔다. 장갑차 3대와 각종 총기를 포획하고 ‘소련제’임을 알리는 총기 1점을 유엔에 보내 참전을 이끌어내는 데 힘이 됐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1명만 경상을 입는 완승을 거뒀다. 김 교사는 이 부대 소대장과 결혼, 남편을 따라 강원도 인제에서 학교 설립에 힘을 보태며 단란하게 지내다 1963년 10월 ‘고재봉사건’ 때 원한대상으로 오인받아 일가족이 몰살되며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는 김 교사의 반공정신을 알리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만들어 전국에 상영하기도 했다. 교정에는 ‘김재옥 여교사 충혼탑’이 있고 200여m 전방에 별도로 ‘동락전승비’를 세워 김 교사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곳에서 얼마 안 가면 신니면 모남리가 나온다.‘모도원’이란 돌팻말만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조선조 나그네들이 쉬었다 가던 길로 주막이 많았다. 주민 김성숙(66·여)씨는 “30년전 이사왔을 때는 70가구가 넘었는데 지금은 20가구도 안 된다.”면서 갈수록 작아지는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폐가도 더러 보이고 길 건너에는 폐가조차 한 채도 없어 썰렁했다. 이 마을을 넘자마자 충북 음성군 생극면으로 빠지고 군도나 지방도를 따라 옛길은 경기도 용인으로 들어간다. 글 사진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달래강 전설과 문학 옛날 충주 달래강변에 오누이가 있었다. 오누이는 강 건너편에 있는 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어느 날 오누이는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은 소나기가 퍼부은 뒤라 많이 불어 있었다. 앞서 강을 건너던 여동생의 옷이 불어난 물에 흠뻑 젖으면서 속살이 훤히 내비쳤다. 여체가 아름답게 드러났다. 오빠는 욕정이 솟구쳤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오빠는 들고 있던 낫으로 자기의 성기를 찍었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러자 누이가 통곡하면서 말했다.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했다고 한다. 이 말에서 ‘달래강’이란 강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은 ‘달래’라는 지명이 있는 다른 지방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떠돌고 있다.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낫으로 찍었는지 돌로 찍었는지 명확하지 않게 뒤섞여 내려오는 것을 보면 부풀려져 오랫동안 생명을 이어온 듯하다. 더구나 충주 달래강은 영남대로를 따라 흘러 행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던 곳이 아니던가. 호기심이 동할 ‘근친상간’ 내용을 담은데다 내용도 애달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전설이다. 충주에서 태어난 ‘농무’의 시인 신경림은 ‘달래강 옛나루에’ 시에서 ‘달래강 옛나루에 목을 잡고/이렁저렁 한세월 녹두적이나 구웠지/여름도 유월 진종일 돌개바람 일고/돌개바람 일어 모래기둥 올리고/어리석은 길손들만 찾아 들더라’고 노래하고 있다. 달래강은 속리산에서 발원해 탄금대까지 120여㎞를 달리는 조그만 천이다. 임진왜란 때 중국의 한 명장이 달래강 물을 떠먹은 뒤 “명나라에서 유명한 여산의 약수보다 낫다.”고 칭송했다고 한다. 이런 일로 맛이 단 냇물이라고 해 단냇물이 됐다.‘달다’의 달냇물로 변했으며 한자로 바뀌어 지금의 ‘달천’이 됐다는 설도 있다. ‘저 건너…억새꽃 무더기여, 그걸 보고가면 제일 얕은 여울이여’ 등 달래강을 시로 노래해온 향토시인 임연규(52)씨는 “어릴 적 놀이터인 달래강이 버릴 것 같아 남들에게 자랑도 하지 않는다.”고 애틋함을 내보였다.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 엄인순 사무국장은 “충주에서 태어난 문인치고 달래강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에티오피아인 12명 망명 신청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 중이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자녀들과 공연단 등 12명이 14일 오전 법무부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과 협조, 이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할지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 “야당인 ‘통합과 민주주의를 위한 연합(CUD)’ 당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조국으로 돌아가면 정치적으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난민신청 이유를 밝혔다.맬레스 제나위 총리가 집권중인 에티오피아에서는 지난해 11월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40여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당국은 시위 배후로 제1야당인 CUD를 지목, 야당 지지자 3000여명을 체포하고 수뇌부의 사법처리 방침을 세웠다. 난민신청을 한 12명 가운데 6명은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자녀이고 공연단 6명은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음악 공연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이다. 나이는 20세 전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에티오피아인들은 13일 오후 10시 숙소인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을 이탈했다. 앞서 보훈처는 강원도 춘천에 건립된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 준공식 공연을 위해 한국전쟁 참전용사 12명과 그들의 손자녀 12명, 공연단 9명을 초청했다. 현재 이들은 서울 모처에서 법무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인터뷰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난민지위를 부여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기초조사에만 최소 3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김상연 홍희경기자 carlos@seoul.co.kr
  • 작통권 환수하면 뭐가 달라지나

    작통권 환수하면 뭐가 달라지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전직 장성·외교관·경찰간부·종교단체들이 ‘5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등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환수 이후 한·미 양국군의 각종 권한체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새로운 궁금증들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 궁금증들을 국방부 당국자와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 분석해 본다. ●유엔군은 미사령관이 지휘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다. 한 명이 3개의 모자를 쓰고 있는 셈이다. 전쟁이 나면 이 한 사람이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21개 회원국의 병력을 총지휘하게 된다. 이들 참전국은 별도의 유엔결의 없이 바로 참전이 가능하다. 작통권 환수로 연합사가 없어지면, 주한미군사령관에겐 2개의 모자만 남게 된다. 전쟁이 터지면 유엔군은 명목상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것이다. 이때 한국군은 유엔군에 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은 한국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유엔군은 한국군을 지원하는 형태가 된다. ●미 증원전력 보장 현행 체제에서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사령관은 ‘작전계획 5027’에 따라 주한미군 이외의 미군 병력 69만명, 함정 160여척, 항공기 2000여대 증파를 본국에 요구할 수 있다. 작통권 환수로 한·미연합사가 없어지면, 자동적으로 작계 5027도 폐기된다. 이에 따라 현재 한·미 당국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작계 마련을 협의 중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일각에서는 연합사가 없어지면 증원 전력에 차질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주한미군사령관이 증원 전력을 요구하는 식의 새로운 작계를 수립하면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휴전선 이북지역 행정관할권 만일 북의 남침이 재발, 이것을 우리가 격퇴해 이북지역을 수복할 경우 현행체제에서는 북한지역에 대한 행정관할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다. 당장은 ‘미군정’ 체제로 가는 것이다. 반면 작통권 환수로 우리가 전쟁을 주도하게 되면 이 권한을 한국군사령관이 행사할 수 있다. 만일 전쟁이 아니고 북한 정권이 자체 정변으로 붕괴될 경우는 작통권 단독 행사 여부와 상관없이 상황이 복잡해진다. 한 군사전문가는 “북한 정권 붕괴시 최악의 경우엔 유엔 신탁통치로도 갈 수 있다.”면서 “따라서 미국과 사전에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김성곤家’ 3代 11명 모두 현역복무

    ‘김성곤家’ 3代 11명 모두 현역복무

    입으로는 번드르르하게 애국을 말하면서 뒤로는 병역 의무를 피하는 비(非)애국자보다는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애국자들이 더 많기에 이 나라가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강국이자 8대 군사강국의 자리로 도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병무청은 8일 ‘2006년도 병역이행 명문가(名門家)’에 총 92개 가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병역회피자에게는 부끄러움을, 평범한 국민에게는 놀라움을 줄 만큼 이들의 나라사랑 족적은 기념비적이다. 최고의 병역이행 명문가인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성곤(37·경기도 하남시)씨 가문은 무려 3대 가족 11명이 현역 복무를 마쳤다. 김씨 가족의 경우 1대인 김인석(90)씨가 6·25전쟁 중인 1951년 입대해 같은 해 12월 일병으로 제대한 것을 비롯해 그의 아들 4명과 손자 6명도 현역병 출신이다. 금상(국무총리상)을 받은 윤희철(26)씨 가문도 조부 윤용진(87)씨가 1949년 9월 입영,6·25 참전을 거쳐 1970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그의 아들 3형제와 손자 4명 등 모두 8명이 현역복무를 마쳤다. 병무청은 이날 서울 공군회관에서 윤광웅 국방장관과 강광석 병무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병역이행 명문가 시상식을 가졌다. 수상자들은 상금(대상 300만원, 금상 200만원 등)과 함께 이름이 병무청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에 영구 등재되는 영예를 누린다. 또 국군의 날 계룡대에서 열리는 대통령 참석 행사에 초대된다. 시상식에서는 또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판정으로 제2국민역에 편입됐지만 질병을 치유한 뒤 자진 입대한 윤성재 일병과 국외 영주권자로 병역의무를 면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진 입대해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박명균 상병 등 총 10명의 병사가 모범병사로 선정돼 병무청장 표창을 받았다. 이들에게는 상금 20만원이 수여됐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블레어 “1년내 사임할 것”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1년 안에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는 7일 TV로 중계된 성명에서 “즉각적인 사퇴를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몇 주 뒤 열리는 차기 전당대회가 당수로서의 나의 마지막 전대가 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그는 그러나 “사임 날짜를 지금 꼭 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동안 노동당 내에서 총리직 조기 이양 압력이 빗발친 가운데 1년 내 사임설이 흘러 나왔지만 그가 스스로 퇴진 의사를 드러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블레어 총리는 교육 개혁 등에선 점수를 얻었지만 이라크 참전 등으로 지지도 하락을 면치 못했다. 특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무조건 추종한다며 ‘부시의 푸들’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지난 1994년 노동당 당수로 선출돼 97년 2월 총리로 취임한 뒤 3번 연임인 그는 앞으로 임기가 3년 남아 있다.하지만 내년 5월 중간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할 경우 사임을 앞당겨야 한다는 여론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블레어 총리의 지지자로 알려진 톰 왓슨 국방부 차관 등 8명의 고위 내각 관리들은 전날 블레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사표를 제출했었다. 차기 총리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100세 생일에도 출근 “은퇴는 없다”

    세상의 모든 노동자가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휴가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100번째 생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영국 런던 남부의 배관회사에서 일하는 버스터 마틴 할아버지는 100회 생일인 지난 1일에도 여러 대의 밴 차량을 열심히 닦았다.17명의 자녀와 70명 이상의 손자와 증손자를 둔 마틴 할아버지는 아마도 영국에서 가장 나이많은 현역 노동자임에 틀림없어 화제를 낳고 있다고 일간 데일리 메일이 전했다. 올해로 직장 생활만 90년째인 그는 신문 인터뷰에서 “나에게 은퇴라는 말을 꺼내면 엄청 비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시장 매점 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남겨져 있음을 깨닫고 몇주 뒤 집 근처의 배관회사에 찾아가 다시 일하게 됐다.나이 탓에 하루 서너시간 자동차 정비나 주차를 돕고 있지만 125세까지 일하고 싶은 것이 할아버지의 소망이다. 100회 생일날에도 그에게 평소와 다름없는 일을 시킨 상사 찰리 멀린스는 “97세에도 일자리를 구한다는 데 한번 놀랐고 그가 한몫 단단히 하는 데 두번 놀랐다.”고 말했다. 콘월 지방의 고아원에서 자라난 마틴은 10세 때인 1916년 런던에 와 새벽 2시30분 문을 여는 시장 매점에서 일했다.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한 그는 1955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해군으로 옮겨 복무해 왔다. 그는 지금 전화도 없이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집에서 쉴 때 시끄럽게 울어대는 전화를 아주 싫어해서다. 가장 혐오하는 단어 역시 “지겨움”이라고 밝혔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정크푸드 맨’

    평생 하루 세끼를 소시지와 와플 등 정크푸드로 때워오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미국의 112세 노인이 영양학 전문가들을 경악시키고 있다고 AP통신이 2일(현지시간)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리치먼드에 살았던 조지 존슨은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두기 전까지 이 주 최고령자로 1차대전 참전 경력이 있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해체된 건물에서 나온 목재를 어렵게 구해 지난 1935년 자신이 직접 지은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앞을 볼 수 없었던 존슨옹은 110회 생일을 맞을 때까지 홀로 지내왔다. 그는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던 102세까지 직접 차를 몰았으며 최근까지도 부축을 받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다. 그러나 그에겐 아주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다. 소시지와 와플만으로 식단을 꾸밀 정도로 먹는 게 부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망 이튿날 행해진 부검에 참여했던 UCLA대학 노인학연구소 창립자인 스티븐 콜스 박사는 “그의 모든 장기는 놀랄 만큼 멀쩡했다.”며 “50대의 장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는데 이는 유전자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너무 깨끗했다.”며 “암이나 당뇨, 치매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존슨옹은 생전에 과학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시신을 부검해도 좋다고 밝혔기 때문에 유족들도 동의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콜스 박사는 “누구나 좋은 습관이나 나쁜 습관 둘 다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생각하거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습관보다 유전자가 위력을 발휘하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존슨옹의 경우가 그렇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노대통령 첫 순방국 그리스 도착

    노대통령 첫 순방국 그리스 도착

    |아테네(그리스) 박홍기특파원|13박14일 일정으로 유럽·미국 등 4개국 순방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3일 오후(현지시간)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그리스에 도착,2박3일 동안의 국빈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 내외는 첫 공식행사로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전몰자 2명의 유족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했다. 노 대통령은 또 참전용사를 위한 격려사에서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큰 도움을 준 데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혈맹의 토대 위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4일 카를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해운·조선 및 항만 분야에서의 협력증진 방안을 협의한다. 이어 루마니아(5∼7일), 핀란드(7∼9일)를 국빈방문한다. 노 대통령은 10∼11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창설 10주년을 맞아 ‘세계적 도전과 공동대응’이란 주제로 열리는 제6차 ASEM에 참석, 개회식 연설을 한다. 특히 노 대통령은 12일 미국을 방문,14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회담에서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비롯, 동북아 지역의 정세 등에 대해 폭넓고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를 놓고 정상간의 의견교환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조율 여부가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오는 16일 귀국한다. hkpark@seoul.co.kr
  • 공군 20전투비행단 장병 위문

    윤기태 6·25참전기념사업회장은 9월1일 공군 제20전투 비행단을 방문하여 장병들을 위로하고 감정가 5000만원 상당의 미술품·서예작품 30점과 서적 500권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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