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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단운영 복지시설 관료주의 팽배”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충렬(48) 감사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최근 보훈 복지 정책의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보훈 복지 정책의 혁신 비전(학민사 간)’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공단이 운영중인 각 복지시설의 경우 관료주의가 팽배해 복지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또 공단 역시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린 데다, 보훈처와의 관계 역시 유기적이지 못해 책임경영을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자체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보훈제도가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참전유공자→독립유공자→민주화 유공자’ 순으로 확대된 것은 군사정권 시절 친일파들이 권력 중추에 포진, 독립유공자들을 홀대한 것에 기인한 것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이 감사는 공단의 혁신과제로 공단 경영의 책임자인 이사장에게 임원진의 임면권을 부여하고 임원 중간평가를 실시해 자율과 책임경영의 풍토를 조성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혁신의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감사제도를 대안을 제시하는 ‘시스템 감사’, 경영 혁신을 보조하는 ‘도우미 감사’로 바꿔야 한다며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 감사는 17일 국가유공자 26만여명의 평균 연령은 65세로 초고령 집단임에도 이들을 위한 노후 복지 제도는 낯뜨거울 정도라고 지적한 뒤 사회의 관심을 일깨워야겠다는 소명감에 자기고백성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감사는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민주화운동을 했으며, 전국노동조합협의회(현 민주노총) 조직부장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 책임전문위원,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책특보 등을 지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사설] 유홍준 문화재청장 너무 튄다

    평양 6·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지난 14일 북측이 마련한 만찬회 석상에서 북한영화 주제가를 부른 사실이 공개됐다.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기려 남북간 화합을 다지자고 만난 자리에서 북한 인기가요를 불러 흥을 돋우겠다는 데 시비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노래가 과연 우리쪽 인사가 부르기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유 청장이 부른 노래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주제가로, 이 영화는 6·25전쟁 중 북한 첩보원들의 활약상을 강조한 시리즈물이라고 한다. 전쟁에는 적이 있기 마련이고 6·25에서 북한 인민군의 적은 국군 및 미군을 비롯한 유엔참전국 군대이다. 따라서 국군 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랑하는 북한영화의 주제가를 ‘적국’ 출신 정부대표단의 한 사람이 부른 것이다. 이 얼마나 해괴한 짓인가. 그렇다고 우리는 유 청장의 노래에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민족의 문화유산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그는 북한 방문이 거의 불가능하던 1990년대 말 한달동안 북한을 돌며 문화유산을 답사한 적이 있다. 이날도 만찬 테이블에 동석한 북측 인사들과 당시 체험을 이야기하던 끝에 영화 주제가를 떠올렸고, 그들의 권유에 못 이겨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지 유 청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북이 화합·공조해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은 남·북 모두에 주어진 민족의 과제이다. 그 과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번번이 북쪽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크게 나무랄 것은 없다. 다만 모든 일에는 금도가 있는 법이다. 많은 이들에게 6·25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일부 인사들의 분별력 없는 행동이 남북관계를 저해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
  • 유청장, 北영웅찬양가 뒤탈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등은 16일 평양 6·15 통일대축전 참석차 방북 중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전날 남북 대표단 만찬에서 북한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의 주제곡을 부른 것과 관련,“납득할 수 없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유 청장이 부른 노래는 6·25 때 남파간첩을 영웅으로 예찬하는 노래”라며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로서 북한 간첩 찬양가를 북한 고위층 앞에서 불러댄 저의가 도대체 뭐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자리에 따라 부를 노래가 있고 못 부를 노래가 있다.”면서 “남북 화해를 위한 자리에서 북측의 영웅은 물론 남측의 ‘구월산 호랑이’와 같은 영웅을 찬양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는데 남북 어느 일방의 영웅 찬양가를 부른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고 주제에 어긋한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회장 채명신)도 성명을 내고 “유 청장이 북한 내각 총리 주최 만찬장에서 북한군의 전쟁 승리를 찬양하는 ‘이름없는 영웅들’을 부른 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주장했다. 조승진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50년 ‘목소리 인생’ 성우 고은정씨

    ‘목소리의 마술사’가 있다. 반세기 동안 격동의 현대사를 ‘목소리’ 하나로 관통했다. 질곡의 50년 세월속에 가느다란 성대의 떨림으로 감동과 추억의 파노라마를 무수히 연출했다. 타고난 ‘천(千)의 목소리’는 대중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다. 암울했던 1960∼70년대, 라디오의 ‘연속방송극’과 ‘추억의 영화’ 등 무려 1000여편에 출연했다. 엄앵란 문희 남정임 정윤희 등 내로라하는 당대 여배우들의 목소리를 도맡아 ‘얼굴없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뿐만 아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권 주변에서 이꼴저꼴 다 보면서 연설과 다큐멘터리 대역(代役) 등을 해 흥미진진한 야화도 간직하고 있다. ●‘여자의용군 예술대’ 자원입대 고은정(70)씨.1954년 12월 KBS 성우 공채 1기로 출발,50년 ‘목소리 인생’을 걸어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과 올 4월 단막극을 직접 쓰고 출연까지 했다. 최근에는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모호텔 정원에서 만났다. 먼저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고백했다. 다름 아닌 6·25에 참전했던 것.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50년 11월 어느날. 수도여중 3학년 재학 중이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국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금방 통일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고은정은 친구들과 모여 “서울고와 용산고 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뽑혀 북진대열에 합류하는데 우리 여학생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고은정은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여자의용군에 자원입대했다. 훈련막사는 서울 충무로의 일신초등학교(현 극동빌딩 자리). 때마침 한성여고 밴드부와 동덕여고 무용반 학생들도 와 있었다. 가칭 ‘여자의용군 예술대’가 결성됐다. 고은정의 군번은 0995862. 훈련은 주로 아침 일찍 남산을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었다. 20일쯤 지나자 외출허가가 떨어졌다. 이때 가족들이 “난리통에 여자가 무슨 군입대냐.”며 귀대하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러나 “어떻게 외출나왔다가 안 들어가느냐.”며 귀대했다. 그런데 동료 3분의1가량이 귀대하지 않았다. 남은 예술대원은 20여명. 이튿날 예술대원은 부산으로 떠나기 위해 겨울용 잠바와 담요 한장씩을 들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남자군인 틈에 끼어 무개화차에 막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나타나 “왜 여자들을 지붕 없는 차에 태우느냐.”고 호통을 쳤다. 할 수 없이 다음날 별도의 트럭을 이용해 인천항을 거쳐 함정(LST)을 타고 3일 만에 부산항에 당도했다.(관련자료에 따르면 50년 9월 여군교육대가 부산에서 결성됐으며, 군부대와 병원 등의 위문을 위해 군악 및 예술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군번 0995862 육군 제대 부산에 도착한 예술대원은 영도초등학교의 임시막사에서 지냈다. 며칠 뒤 크리스마스 이브때 고은정은 면회 온 목사의 도움으로 십수권의 책을 장만할 수 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한 데다 병원위문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숙소 앞에 ‘소공녀의 방’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그러던 51년 2월 부대에서 휴가를 다녀오란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지난번 도움을 받은 목사가 있는 대구로 향했다. 때마침 목사는 제주도의 피란민들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고은정도 목사와 함께 떠났다. 도착했더니 돌아올 여객선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 목사의 강력한 권유로 부대복귀를 하지 못했다. 고은정은 관계요로를 통해 이같은 사정을 전한 뒤 그해 2월 제주 오현중에 설치된 피란민학교에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이와 관련, 고씨는 “얼마전 육군에 확인해 보니 군번도 있고 제대처리돼 있었다.”면서 당시 입대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담을 나눈다고 귀띔했다. # 에피소드 1. 74년 8월14일이었다. 영화 ‘맹물로 가는 자동차’ 더빙을 하느라 밤을 새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고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로 초청했다. 고씨는 의사 동생과 함께 갔다. 육 여사는 진작 보고 싶었다며 “조국을 위해 고생이 많은데 부탁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고씨는 “서울신문에 다니던 오빠가 필화사건으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고씨는 육 여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단골로 등장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얼마만큼 잤을까.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니 아이들이 TV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탕탕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TV 전원이 꺼졌다.8·15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영부인 피격사건’이었다.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육 여사 다큐멘터리에 더욱 많이 출연하게 됐다. 박근혜씨가 영부인 역할을 맡을 때 방송국으로 찾아왔다. 박씨는 “아버지는 고 선생의 목소리가 엄마하고 똑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 뒤 연말마다 청와대에서 금시계를 보내왔다. ●대통령 부인들과 자주 만나 # 에피소드 2. 5·16 직후였다. 동아방송에서 ‘천일야화’라는 대담프로그램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김종필(JP)씨를 초청했다. 시간이 됐는데도 그가 오지 않아 찾아나섰다. 점퍼차람의 한 사람이 방송실 입구에서 “나를 찾는 겁니까.”하고 말했다. 인사를 하자 JP는 “고 선생은 골라쓰는 단어가 아주 달라요.”라고 했다. 인연이 돼 나중에는 JP자택에서 부인과 자주 만나게 됐다. “80년대 초반 민정당 창당대회 때 권정달씨의 부탁으로 봉두완씨와 사회를 같이 보게 됐지요. 이때부터 본의 아니게 정치 언저리에 맴돌게 된 것 같아요. 여성계 대표라는 명분으로 종종 청와대에서 이순자·김옥숙 여사와 식사도 했지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마침 우리 아들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습니다.” 87년 대선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노태우 후보측에서 63빌딩에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갔더니 이종찬씨도 함께 있었다. 노 후보는 목이 꽉 잠겨 있었다. 노씨는 “고 선생, 어떻게 하면 목을 살릴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이종찬씨는 달걀을 먹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고씨는 “소염제를 먹고 당분간 필담으로 대화할 것”을 주문한 뒤 연설 때 5만,10만 관중을 염두에 두지 말고 오직 자신 앞에 있는 마이크를 상대로 감동을 시킬 것을 권했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오히려 장점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이어 노 후보가 여성정책 아이디어를 달라고 하자 “이제와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들 먹혀들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까지 애처가라는 소문만 잔뜩 퍼뜨릴 것”을 주문했다. 전직 대통령의 목소리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설득력은 있으나 노 전 대통령의 현대적 감각에는 뒤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10분 동안 113개의 언어가 틀릴 정도였는데 대통령에 당선돼 ‘우리나라에선 통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지만 발음을 비교적 정확하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라고 했다. 고씨는 “스피치는 공인의 덕목 가운데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출강에 여전히 방송활동 고씨는 4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고흥숙.‘흥’자 돌림이다. 막내동생이 한나라당 국회의원 고흥길(성남시 분당갑)씨. 오빠 고흥욱(72)씨는 청와대 출입을 오래한 기자출신으로 현재 LA에 산다. 얼마전 국제전화를 걸어와 “네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뜬금없이 물어 “아냐, 길은정이 죽은 것을 보고 그러겠지.”하고 대답했단다. 어머니는 5남매를 남겨놓고 30대 나이에 요절했다. 새 장가를 든 아버지도 54년 교통사고로 일찍 명을 달리했다. 새어머니는 5남매를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다. 현재 94세로 분당 아들집에서 산다. 고씨 자신은 59년에 결혼, 이듬해부터 연년생으로 자식 넷을 낳았다. 함께 지내는 둘째딸(44)을 제외하곤 다들 결혼했다. 고씨는 5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해 고비를 맞았지만 요즘은 서울예대 장로신학대 출강과 극동방송에서 매일 10분짜리 방송 등을 하며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족사를 쓰고 있어요. 여름방학 때는 밀린 대본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일생을 담은 모노드라마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36년 서울 출생 ▲ 51년 제주 피란민학교에서 수도여자중학 졸업 ▲ 54년 수도여고 졸업, 숙명여대 영문과 재학시절 KBS 성우공채 1기 ▲ 56년 최초 연속방송극 ‘청실홍실’ 성우 ▲ 58년 연속방송극 ‘산너머 바다건너’에서 상하이 여자 ‘미라’역을 맡아 주목받음. ▲ 이후 ‘장희빈’‘고운정 미운정’‘왕비열전’‘대동강은 알고 있다.’‘불꽃의 소리’‘113수사본부’등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1000여편 출연. ▲ 77년 드라마 ‘대니할머니’당선으로 방송작가 데뷔. ▲ 97년 고은정언어예술원 개원 ▲ 98년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2000년 방송위원회 위원,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장 ■ 방송극본 가을에 온 손님, 불모의 수령, 저녁노을, 사랑의 계절, 두고온 언니에게 등. ■ 소설작품 고운정 미운정, 위험한 체험 등. ■ 상훈 국민훈장동백장(2000년)
  • 한국전부상 ‘휠체어 55년’ 윤재철씨

    한국전부상 ‘휠체어 55년’ 윤재철씨

    “전쟁에서 총칼을 겨누었던 참전군인들이 먼저 화해해야 남북 대립을 풀 수 있습니다.”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10일 남측 대표단으로 확정된 윤재철(72·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상이군경회 고문의 소회 속에는 회한과 기대가 동시에 묻어났다. 윤 고문은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해 11월 연천지구 전투에서 ‘양 대퇴부 절단’이라는 중상을 입었다.55년 동안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오면서 다시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1993년부터 8년 동안 상이군경회 회장을 맡는 동안 2000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 회원단체로 가입하기까지 주변의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에서 민족 공조를 주장하는 것에 의아해하는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북측과 화해하는 일에 동참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대하던 회원들을 달래는 일이 급선무였다. 윤 고문은 “우리가 먼저 적대적인 감정을 풀지 않으면 영원히 분단국가로 살아야 한다.”라고 전국을 돌며 설득했다.2002년과 2003년 2번의 방북을 결정하면서도 전쟁 희생자가 북측과 교류해 손해날 짓을 왜 하느냐는 거부반응을 이겨내야 했다고 한다. 윤 고문은 앞서 1997년 세계제대군인연맹총회(WVF)를 서울에 유치할 당시에도 북측과 교감있는 스웨덴에 도움을 요청해 북측에 참관자격을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이 모든 노력은 전쟁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탄탄해지는 것을 보며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도 윤 고문의 확신에 힘을 보탰다. 이념과 사상 대립은 또다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윤 고문의 생각이다. 이번 방북길에서는 북측의 전쟁 희생자들을 찾아 실상을 파악해볼 계획이다. 윤 고문은 “진보와 보수로 나눠 갈등만 키우지 말고 숙명적으로 우리 민족은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통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쏟아진 이색제안들

    여야 의원들은 7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각종 정치현안과 관련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스타워즈3 의상 한복 응용… 홍보를 열린우리당 이근식(서울 송파병) 의원은 “전세계적인 흥행작인 영화 ‘스타워즈 3’ 여주인공의 의상 컨셉트는 한국인 이상준씨가 한복을 응용해 만든 것”이라며 이 영화를 이용한 국가 이미지 제고 방안을 촉구했다. 또 “해외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통해 국가 이미지 제고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독도박물관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논박할 수 있는 결정적 사료들이 있다.”면서 “독도 접근이 용의하지 않는 만큼 서울에 ‘독도박물관 분관’을 건립하자.”고 말했다. ●‘특별시’ 권위 잔재… 서울광역시로 한나라당 김정훈(부산 남갑) 의원은 “과거 공작정치의 실체를 밝히고 추후 공작정치라는 말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여야 합의로 ‘정치공작 근절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국회내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정복(경기 김포) 의원은 서울특별시 명칭과 관련,“특별시란 명칭은 특권문화의 상징으로 권위주의적 잔재”라면서 “서울특별시 명칭을 서울광역시 또는 서울대도시로 변경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또한 “6·15평양행사 참가를 취소하고 대신 국회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한 남북 국회의원 회담’ 개최를 제안하자.”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칠순 넘어서도 은퇴 모르는 ‘원조 한류열풍’ 한명숙씨

    [어떻게 지내세요] 칠순 넘어서도 은퇴 모르는 ‘원조 한류열풍’ 한명숙씨

    “요즘 가수들은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우리 때만 해도 가슴 잔잔히 들려주는 것을 멋으로 알았거든요.” 원로 가수 한명숙(71)씨. 추억의 노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로 유명하다. 아직도 40대 이상은 이 노래를 얘기하면 ‘아, 그거’ 하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릴 만큼 여전히 인상 깊다.‘노오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한씨는 1961년 데뷔곡으로 이 노래를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다. 노래가 나오자마자 전국을 노란색으로 물들인 것은 물론 일본과 타이완 프랑스 미국 등에까지 번져 한류 열풍의 원조로 가요사에 기록된다. 당시 언론에도 “한명숙의 트위스트 곡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미8군 가수들의 인기 신호탄으로서,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 선거와 4·19혁명 등으로 우울했던 사람들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다. 또 타이완,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요즘 가수들은 들려주기보다 보여주기만 해” 현충일인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파주의 ‘필리핀 6·25참전기념탑’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한씨를 만났다. 작곡가로 활동 중인 장남 이일권씨, 어린 손자도 함께 나왔다. 이씨의 대표곡은 ‘내사랑 영아’(이명훈 노래). 먼저 지난해 12월 칠순잔치 때의 사진을 건네준다.6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하자 한씨는 “다들 그래요.”하며 소녀처럼 수줍게 미소짓는다. 근황을 들려준다. 지난 1일부터 3박4일 동안 전남 완도와 진도 등에 여행을 다녀왔단다. 사단법인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위원장 박일서)에서 원로 가수 40여명을 초청한 연례행사였다.‘대전부르스’를 부른 안정애씨,‘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서∼’로 시작되는 ‘바닷가에서’의 안다성씨 등 왕년의 스타 가수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앞서 지난달에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원로 연예인들을 위한 초청행사에도 참가, 존경하는 작곡가 손석우씨 등을 만나기도 했다. 손씨는 ‘노오란 샤쓰∼’를 작사·작곡했다. “그때(61년) 최희준씨가 손 선생님을 소개해줘 ‘노오란 샤쓰∼’를 만났지요. 이후 ‘우리마을’‘그리운 얼굴’‘사랑의 송가’ 등 300곡 정도를 불렀습니다.” 한씨는 당시 ‘노오란 샤쓰∼’의 영화에 신영균 엄앵란 김희갑씨 등과 함께 출연했으며 이때 신영균씨가 노란셔츠를 입어 유행을 더욱 부추겼다. ●“가수에게 은퇴란 없어… 9일 호주서 교민 위로공연” 한씨는 “가수에게는 은퇴란 없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10여년 동안 외국공연을 20여차례 다녀왔다고 했다.1년전에는 캐나다 밴쿠버 공연을 했고 9일에는 호주 교민회를 방문,‘노오란 샤쓰∼’ 등 히트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한씨는 “외국에 갈 때마다 교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꼭 붙잡고 고국생각에 눈물을 흘린다.”고 만난 소감을 전했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저 밝게 웃고 또 노래는 즐거운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평남 진남포 출신인 한씨는 남편과 일찍 사별(70년)했으며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딸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고(故) 신성모씨의 손자와 결혼, 미국 시애틀에서 산다. 차남 이일준(43)씨는 미 샌디에이고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씨는 경기도 파주에서 장남과 함께 살고 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여야 보훈경쟁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여야가 앞다퉈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등 이슈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훈 콘텐츠’보강을 먼저 주창한 측은 한나라당. 지난 4월부터 6월 임시국회를 ‘호국·보훈 국회’로 명명한 뒤 관련 법안 정비에 박차를 가해왔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보훈의 달을 앞두고 국가유공자 가족을 제대로 보상할 수 있도록 각별히 챙기자.”고 강조했다. ●해외 전사자 시체송환 국가책임으로 이와 관련, 당 정책위는 ‘6월 임시국회 중점 추진 법안’에 6·25 및 월남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비롯, 국군포로대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외국에서 전투 중 목숨을 잃은 군인의 시체 송환을 국가가 책임지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군인사법 개정안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도 이에 뒤질세라 호국·보훈 법안 및 각종 이벤트를 쏟아내며 발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일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4·19혁명 희생자유족회 등 보훈단체 대표들을 잇따라 만나면서 애로사항을 들었다. 이어 5일에는 국군통합병원을 방문해 장병들을 위로하는 등 호국 관련 대상자들과의 직접 접촉을 강화했다. ●고엽제환자지원법 등 처리키로 열린우리당은 또 관련 정책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제대군인 지원법’ ‘고엽제후유증의증환자지원법’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법’ 등을 처리할 예정이다. 제대군인 지원법은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중기복무 제대군인의 취·창업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김성곤 제2정조위원장은 “자녀들을 가르칠 중요한 시기인 40대 중반에 많은 군인들이 제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이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 강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종합적인 군 복지체계 확립을 위한 장병 및 군가족 생활실태 조사 작업도 벌여나갈 계획이다. ●골프 자제·비무장지대 방문 한편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현충일인 6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문 의장 명의로 소속 의원에게 ‘골프행사 등은 자제하고, 보훈관련 행사에 주력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표를 비롯, 맹형규 정책위의장 등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은 이달 중순께 판문점 비무장지대를 방문하고 29일에는 서해교전 3주년 추도식에 참석해 ‘호국·보훈 국회’의 실천 의지를 다질 예정이다. 이종수 박준석기자 vielee@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현충일 50주년을 맞아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이 날을 기리는 뜻에서 ‘6·25 참전전우회’가 선정한 ‘6월의 가요’를 마련했다.‘전선야곡’,‘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통해 당시 민족의 아픔을 추모하며, 이미 고인이 된 최갑석씨의 그때 그 모습 ‘삼팔선의 봄’을 들어본다. ●생활의 달인(SBS 오후 7시5분) 칼 한자루로 주방을 평정한 과일 깎기의 달인 이길호 조리장. 주방장 경력 15년의 깎기 비법을 공개한다. 경마중계 아나운서 김경준씨는 1분에 400단어를 내뱉는 언변의 달인이다. 과연 그 속도의 비결은? 마지막으로 주차의 달인 김현복씨의 놀라운 후진 주차 기술을 공개한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지난해 9월과 올 1월, 국내 한 대학이 독일 지멘스사, 미국 하버드대학과 손잡고 ‘PET-MRI 뇌영상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국내 의료계와 전 세계 뇌 과학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세계적인 과학자 조장희 박사. 세계 뇌 과학을 선도하는 조장희 박사를 만난다. ●애니토피아(EBS 오후 10시50분) ‘애니의 전설’ 코너에서는 벨기에 애니메이션의 전설인 라울 세르베의 ‘밤의 나비’를 만나본다.‘밤의 나비’는 마치 꿈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시각화한 듯 몽환적이고 낯선 이미지로 가득한 작품으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폴 델보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안녕! 프란체스카(MBC 오후 11시5분) 프란체스카를 위해 차를 빌려 온 두일이 덕분에 처음으로 놀이공원 나들이에 나선 프란체 가족.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유이용권이 너무 비싸다. 가족들을 위해 놀이공원을 포기한 소피아는 공원 밖에서 가족들을 기다린다. 한편 어렵게 빌려온 고물 자동차가 부실해 안드레는 차에 갇히고…. ●폭소클럽(KBS2 오후 11시5분 ‘떴다!김샘’에서는 학생들의 장래 희망, 간단한 질문으로 알아보는 아이큐테스트 등이 소개된다.‘매직 타임’에서는 박기훈 마술사 등이 관객과 함께하는 신기한 멘탈매직이 펼쳐진다. 또 ‘록기 & 루키 개그퍼레이드’에서는 홍록기와 신인 개그맨 3팀의 개그퍼레이드가 펼쳐진다.
  • [여야 원내대표 인터뷰] (2) 강재섭 한나라 원내대표

    [여야 원내대표 인터뷰] (2) 강재섭 한나라 원내대표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는 3일 임시국회 쟁점의 하나로 예상되는 공직자부패수사처(공수처)와 관련,“열린우리당 내부에서 공수처 도입을 밀어붙이면 국민 지지를 잃는다고 판단, 이미 포기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강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신문과 단독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한 뒤 “여당 의원 상당 수가 야당이 주장하는 상설특검법안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행담도 개발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권도 없는 감사원이 쥐고 있어 봤자 감당도 못하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바로 특검 도입을 요구했던 ‘오일게이트’와는 다른 접근법이다. 이에 대해 강 원내대표는 “무조건 특검 도입이나 국정조사를 요구할 게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 기관의 기능을 중시해야 한다.”며 “다만 ‘오일 게이트’ 때는 검찰이 청와대 눈치 보며 수사를 망설이기에 미덥지 않아서 특검 도입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법안보단 민생 법안이 더 마찰 가능성” 여대야소(與大野小) 붕괴 후 첫 국회인데 전망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상생과 화합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되 상임위에서 따질 것은 따지면서 야성을 보여 줄 것이다.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여전히 마찰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정치적 쟁점보다는 오히려 민생 관련 법안을 놓고 마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내다보는 이유는. -여권이 지금까지 흔드는 재미로 감당 못할 안을 제시했다가 정작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물러서는 경우가 많았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처우 개선문제나 LPG세 인하, 참전유공자 예우 등 민생 법안과 관련, 여당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난항이 예고된다. 쟁점 법안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국가보안법의 경우 지난해 말 여야가 합의한 선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고 사학법 개정안도 당 ‘교육 선진화 특위’에서 사학의 비리 척결과 자율성 보장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공교육 등 전반적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돼 있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고 당이 변화했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최근 상습적 성폭행범 근절을 위한 전자팔찌제도 제시와 국적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낸 것이나 ‘봉숭아 학당’ 이미지에서 벗어난 데 대해 국민들이 평가해준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전 전당대회 불가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결국 의원들이 잘 움직인 덕분이다. 이를 위해선 의사소통이 중요한데 지도부가 의원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면서 유기적 기능을 발휘하도록 해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스킨십도 무지하게 많이 한다.(웃음) 소장파 등 일부에선 당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궤변이다. 다만 더 변화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한다. 식물인간 상태에서 이제 겨우 수술할 정도로 몸을 만든 상태이기에 더 변화하고 혁신적인 안을 내놓아야지 여기에 머물고 ‘대세론’ 등의 논쟁에 함몰된다면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 당이 더 혁신해야 한다는 얘긴데 구체적인 복안이 있다면. -박근혜 대표의 임기는 보장하되 내년 6월 지방 선거 이전에 전당대회나 당 대표자 대회 등을 통해 당이 혁신적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이벤트’를 통해 ▲당권·대권 분리 ▲관리형 지도체제의 구체적 형태 ▲지나치게 보수적인 정강정책 개정 등을 결정해 당이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권·당권의 조기 분리가 역기능도 있지 않을까. -내년 6월 이후 전당대회에서 결정할 문제이지만 관리형 대표가 1년은 끌고 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전 김영삼·이회창 후보 때처럼 대선 한 달 전에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면 당이 깨질 것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대학생 45% “전쟁나면 군지원 안해”

    “북핵 위기가 악화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군대에 지원할 의사가 있느냐.” “있다.”(53.1%) “없다.”(45.5%) 정치컨설팅그룹 민(MIN·대표 박성민)이 서울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해 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지난 17∼24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10개 대학 학생 71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남학생은 431명, 여학생은 285명이다. 지난해 11월 한길리서치가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군 관련 의식조사에서 참전 의사를 묻자 57.3%가 긍정적 의사를,36.6%가 부정적 입장이었다고 민은 덧붙였다. 이 수치대로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참전에 긍정적인 대학생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또 조사에선 국적 포기자의 권리 박탈 입법에 대해 75.8%는 찬성한 반면, 반대는 23.5%에 그쳐 찬성 의견이 훨씬 높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0년’ 기념 신곡낸 남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0년’ 기념 신곡낸 남진

    ‘오빠부대’에도 원조가 있다. 지난 1971년 9월16일 서울 세종로 시민회관 분장실. 당시 스물 여섯살의 젊은 가수가 초조하게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과연 관객이 얼마나 올까.’ 베트남전에 청룡부대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지 3개월 만인 데다 국내 가수로는 첫 리사이틀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날 따라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공연시작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관객의 발길이 뜸했다. 그러나 30분 전. 약속이나 한 듯이 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여성 관객이 70%. 역사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엘비스 프레슬리 의상을 차려 입은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여기저기에서 ‘오빠, 오빠’ 하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공연은 전례없는 대성공. 이후 공식 팬클럽이 생기면서 ‘오빠부대’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오빠부대’ 원조…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른바 ‘오빠부대의 기수’ 남진씨. 흔히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남씨와 프레슬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프레슬리는 21세때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자신이 부른 노래를 소재로 한 영화에도 출연, 팬들을 사로 잡았다. 남씨 역시 21세때 ‘가슴아프게’로 스타가 됐다. 또한 자신의 노래를 영화화한 ‘가슴아프게’‘울려고 내가 왔나’‘별아 내가슴에’ 등에 출연, 더욱 인기를 모았다. 헤어 스타일이나 몸동작 그리고 하얀 가죽옷에 금속장식이 있는 프레슬리 의상 차림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남씨는 올해로 만 60세이자 가수로 데뷔한 지 꼭 40년째. 그동안 두세 차례 공백기가 있었지만 가요 40년사를 관통하는 빅스타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블루스 트로트 왈츠 차차차 트위스트 등 장르를 뛰어넘는 천부적인 가창력과 특유의 무대동작은 인기의 보증수표. 아울러 숙명의 라이벌인 나훈아씨도 아직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어 둘이 함께하는 ‘빅쇼’를 기대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남씨는 ‘노래인생 40년’을 기념해 최근 신곡을 무려 여섯곡이나 내놓으며 새로운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신곡은 ‘둥지’와 ‘모르리’에 이어 2년 만이다. 서울 여의도 모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남방셔츠의 윗단추를 두 개 정도 풀어헤치는 평소의 모습을 연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탈하면서 깔끔한 옷차림었다.‘원조 오빠’의 멋은 여전히 풍겼다. 우선 신곡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지난 2년 동안 신곡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다.”면서 원래 일곱 곡을 예정했으나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우선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대표곡은 ‘저리가’(김동찬 작사·차태일 작곡). 지난 40년 세월을 잘 녹여 담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8월 특별무대 이어 가을부턴 전국투어 어쨌든 이번 신곡발표를 계기로 제2의 노래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오는 8월 두시간여 동안 특별무대를 마련한다. 신곡과 추억의 히트곡, 또 잘 알려지지 않은 금지곡 등으로 팬들과 새롭게 만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 가을부터 전국투어를 나서 또 한번 ‘바람몰이’에 도전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와 관련,“노래를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다. 정말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 하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데뷔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소회를 피력했다. 잠시 지난 세월을 회상하던 그에게 공전의 히트곡 ‘가슴아프게’를 불쑥 꺼냈다. 그러자 “원래 제목은 ‘낙도 가는 연락선’이었다.”면서 “작사가 정두수씨의 고향이 하동이라 하동포구를 연상하며 글을 썼는데 너무 올드패션 느낌이 들어 고민 끝에 ‘가슴아프게’로 바꾸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님과 함께’는 작곡가 남국인씨의 부인이 작사한 곡. 처음에는 동요처럼 느껴졌지만 때마침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삽시간에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는 국민가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반면 금지된 곡도 여럿 된다고 했다. 데뷔하던 해에 ‘서울 플레이보이’‘울려고 내가 왔나’‘연애 0번지’ 등 신곡을 잇달아 발표했다.‘연애 0번지’의 경우 ‘달콤한 입술로 윙크하는 연애 0번지여∼’라는 노래인데 곧 ‘퇴폐곡’으로 낙인찍혀 금지되고 말았다. 또 이 무렵 발표된 ‘사랑하고 있어요’도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러다 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울려고 내가 왔나’가 오히려 인기를 끌었던 것. 시골에서 상경해 고생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가닥 위안을 주는 노래라는 이유에서였다. 문득 ‘라이벌 나훈아’와 합동공연 여부가 궁금해졌다. 주저없이 “팬들이 원하고 있는 만큼 내년 정도에는 (합동)공연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제는 (팬들에게)보답할 때가 됐다.”며 웃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우정’이든 ‘라이벌’이든 무대에 같이 서면 나름대로 가요계에 의미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모 언론사에서 흥미있는 조사를 했더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라이벌 1위는 ‘정주영-이병철’ 2위는 ‘남진-나훈아’라고요. 사실 나훈아는 나이로 보나 가요계 데뷔로 보나 4,5년 후배지요.‘라이벌’은 흥행사들이 만들어냈지요. 하긴 술자리나 여학교 등에서 ‘남진 팬’과 ‘나훈아 팬’이 서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많았지요. 아무튼 우리 가요사에서 남인수-현인 선배 이후 최고의 라이벌이라고들 합디다. 특히 스타일과 분위기, 고향 등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빅이벤트감이지요.” 나훈아씨와 만나느냐는 질문에 “어쩌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있어도 별도의 만남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목포 부잣집 장남… 해병대로 베트남 참전 남씨는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목포 부잣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포 북초등학교를 나온 후 부친을 따라 서울에서 경복중학교를 다녔다. 다시 고향에서 목포고를 나온 뒤 평소의 꿈인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부친이 돌아가시던 65년에 어머니(13년 전 작고)의 전폭적 지지로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인기가수로서 명성을 막 날리기 시작할 때 돌연 해병대에 입대했다. 일본 공연을 앞두고 병역미필로 불발되자 곧바로 해병대를 자원했던 것. 훈련을 마친 후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의 다낭과 호이안 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여기에서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사과상자에 가득 담길 분량의 팬레터를 받았다. 대부분 여성팬. 주위 전우들 사이에는 팬레터와 예쁜 사진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에 골인한 전우도 있었다. “영화 출연은 지금까지 50여편되지요. 윤정희 남정임 문희 등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자주 출연했습니다. 특히 남정임은 같은 학과 메이트였지요. 최근에는 2년 전 상영된 ‘대한민국헌법 1조’에서 신부역을 맡았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달리 스스로 ‘마마보이’라고 말하는 남씨. 그런 가정적 영향 때문인지 자녀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이고 싶어한다. 남씨는 부산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 3녀1남을 연년생으로 두었다. 딸 셋은 국내에서 대학에 다닌다. 막내인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 중. 남씨의 딸 사랑은 극진하다. 하루에도 십여차례 전화를 걸어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눈다. 대신 해가 떨어질 무렵이면 반드시 귀가해야 한다는 엄한 규정을 정했다. ●“더욱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 부르겠다” 건강관리를 위해 자택(경기도 분당) 주변의 헬스클럽을 가끔 찾는다. 골프 핸디캡은 10정도이며, 이탈리아 칸초네와 프랑스 샹송을 듣는 취미도 있다. “(노래 부를)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경험을 잘 살려 더욱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본명은 김남진(金湳鎭). 데뷔 직전 문여송 감독이 ‘남쪽의 보배’라는 뜻을 담긴 ‘남진(南珍)’으로 예명을 지어주었다. 이후 가요계의 보배로 40년 동안 이름값을 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목포 출생 ▲56년 목포 북초교 촐업 ▲60년 경복중학 졸업 ▲62년 목포고 졸업 ▲65년 한양대 영화과 졸업 ▲65년 ‘서울플레이보이’로 데뷔,‘울려고 내가 왔나’ 등 발표 ▲66년 ‘가슴아프게’ 발표, 영화 ‘형수’‘가슴아프게’ 데뷔 ▲67년 MBC방송 신인상 수상 ▲69년∼73년 TBC방송 남자 가수상 대상 3회 수상 ▲69년∼71년 베트남전 참전 ▲71년 서울 시민회관 첫 리사이틀공연, 한국 무대예술상 그랑프리2회 수상 ▲71년∼73년 MBC10대가수왕 연속 3회 ▲72년∼77년 리사이틀 5회 공연 ▲91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2000년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 대표곡 가슴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 별아 내가슴에, 미워도 다시한번,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마오, 지금 그사람은, 빈잔, 둥지 등.
  • [씨줄날줄] 유해발굴/이목희 논설위원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미군 숫자가 개전 2년만에 1600명을 넘어섰다. 미국은 아까운 젊은이들의 희생을 방치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한편으론 미국이 가진 저력의 일단이 드러난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전통과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충분한 때문이다.‘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거기서 시작된다. 참전군인을 예우하는 대표사례가 ‘유골찾기’다. 미국은 “생사 관계없이 단 한사람의 미군도 전장에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에 철저하다. 세계 53개국에서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실종자수는 8000여명. 북한 지역에는 1996년부터 직접 발굴단을 파견하고 있다. 앞서 북한이 162구의 유해를 건넸으나 진짜 미군유해는 다섯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200만달러를 지불했다. 지난해까지 1500만달러를 유해발굴 대가로 북한에 주었다. 대북지원에 인색한 미국이 미군유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셈이다. 미국은 북한에서 10년간 220구의 미군유해를 발굴해 25구의 신원을 확인, 가족들에게 인계했다. 올해는 500만달러를 지급하고 지난달부터 한국전쟁 격전지인 평북 운산과 함남 장진호에서 대대적 발굴작업을 벌였다. 최신 장비를 갖춘 발굴단 27명이 야전텐트를 치고 하나의 뼛조각이라도 발견하려고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런데 미 국방부는 지난 25일 북한내 미군 유해발굴 작업을 돌연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현지작업반이 미군 당국과의 연락을 제한받았기 때문이라지만 석연치 않다. 이들이 북에 인질로 잡힐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있다.1990년대 1차 핵위기때 제한북폭을 위해 주한 미국인 철수계획을 세웠던 것의 전조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미군이 F-117스텔스기 15대를 한반도에 배치, 훈련하려는 계획과 맞물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2002년 10월에도 유해발굴 작업이 잠시 중단됐던 적이 있다. 북한이 미국의 제임스 켈리 특사에게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직후였다. 자국군 유해찾기에 집착하는 미국이 이를 중단한 행위는 우려스럽다. 한반도위기설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미국의 협상안 제시 등이 실현되고 유해찾기가 하루빨리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 현대 터키문학의 대표주자 오르한 파묵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 현대 터키문학의 대표주자 오르한 파묵

    ‘하얀 성’ ‘내 이름은 빨강’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오르한 파묵(53)은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갈등을 매혹적인 서사구조 안에 풀어놓는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30여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전세계 독자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마지막날인 26일 만난 그는 “이모부가 한국전에 참전했고, 어린 시절 한국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터키인들에게 한국은 형제 같은 나라”라고 첫 방문 소감을 밝혔다. 한국어로 번역된 ‘하얀 성’ ‘내 이름은 빨강’ 덕에 국내에도 상당수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전날 사인회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인 ‘눈’도 그의 방한에 맞춰 지난주 출간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받아 ▶소설을 구성하는 상상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모든 소설책은 터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일례로 ‘눈’은 신문기자가 쓰는 리포트 형식의 정치소설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초현실적인 부분이 강하다고 말한다. 작가의 비밀스러움은 현실의 답답함을 상상력의 즐거움으로 보완하는 데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어떤 상상력으로 탄생한 것인가. -일곱살부터 스물두살 때까지 화가가 꿈이었다. 소설은 스물세살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오래전부터 그림과 관련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 특히 이슬람세계의 시각예술이 서양 문명의 영향으로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한마디로 그림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의 고뇌를 다룬 소설이다. 서구 문화에 대한 반발이 느껴지는데. -정치·경제적으로는 터키가 서구화되길 바란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건축이나 시각예술 등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것에는 화가 난다.‘내 이름은 빨강’은 이런 현실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나는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적이다. 이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터키인들이 서구화를 지향하면서 과거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서구화 지향하면서 전통 잃어버려 ▶화가지망생, 건축학도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소설가가 된 계기와 문학수업 과정에서 영향받은 서구 작가들은. -소설은 서양에서 태어나고 발전한 것이다. 때문에 초기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에서 보르헤스까지 서양 작가의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이슬람의 신비주의 경향도 크다. 터키의 전통을 보르헤스 스타일로 쓰는 것, 즉 전혀 닮지 않은 두 가지를 한 선상에 놓을 수 있는 능력이 독창성의 비밀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먼저 썼다. 시인은 신이 할 말을 대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상상했던 것을 썼고, 그것이 소설이 됐다. 터키의 문학적 전통과 현재 상황은. -오스만제국 당시 지식인들이 좋아했던 장르는 시였다. 최근 100년간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소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예전 시가 누렸던 영광을 소설이 이어받은 건 아니다. 나는 터키인들에게 과거 우리 선조들이 시인에게 보여줬던 관심을 지금 소설가들에게 보여달라고 외치고 있다. 서구와 아시아 사이에 놓인 터키인들의 정체성 고민이 클 텐데. -터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인 것도 정치적으로 비화된다는 점이다. 거리 가로등 하나 바꾸는 것조차도 프랑스적인지, 이슬람적인지를 놓고 논쟁한다. 터키가 동서양의 접점에 있다는 건 터키의 운명이고 특성이다. 제발 터키인들에게 동양과 서양의 양분구조를 강요하지 말아달라. ●터키에 동·서양 양분구조 강요말라 ▶터키 고유의 문화를 다룬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독자가 얼마나 될까를 따지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좋은 작품을 쓰면 세계적으로 읽힌다. 독자는 작가의 국적이나 종교, 문화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다. 그는 이어 “중동분쟁을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의 충돌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일본은 熱…熱 양국 관계 冷…冷

    |도쿄 이춘규특파원·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우이(吳儀)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전날 ‘긴급 공무’를 이유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귀국한 데 따른 책임 소재를 놓고 양국은 감정싸움 양상을 띤 공방을 벌였다. 일본 조야는 일제히 중국의 ‘무례’를 규탄하고 나섰고 중국 외교부는 오히려 일본 지도자들의 신사 참배 발언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며 맞섰다. 이에 따라 한동안 잦아들었던 중국에서의 반일 시위가 8월15일을 전후해 재연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마저 나오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문 회담 취소는 우 부총리가 직접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협상을 했지만 여의치 않다.’라는 이유를 들어 본국에 제의한 것을 중국 지도부가 받아들여 내려졌다고 교도통신이 24일 보도했다. 통신은 복수 소식통의 말을 인용, 중국 지도부가 22일 밤 긴급회의를 열어 동의 회신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에 이어 24일에도 “유감스럽게도 우 부총리의 방문 기간에 일본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거듭 거론해 중ㆍ일 관계를 해쳤고 중국은 이를 몹시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쿵 대변인은 외교적인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면담 취소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중국 인민의 감정에 상처를 입힌 것은 생각하느냐.”라고 되물었다. 이어 ‘사본축말(捨本逐末-본말전도와 같은 뜻)’이라는 사자성어까지 동원, 중요한 것은 면담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일본측의 태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며칠 전 침략전쟁에 참전했던 91세 일본인이 과거사를 사죄한 사실을 들며 “어째서 일본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느냐.”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와 관련, 중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스인훙(時殷弘) 교수는 타이완 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면담 취소 전 양측은 참배 문제를 두고 무려 1주일간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라고 지적했다. 중국측은 이 협상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다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일본측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고이즈미 “그런 것은 통하지 않을 것” 일본은 중국의 일방적인 회담 취소가 전례없는 ‘국제적 결례’라고 성토했다. 특히 우 부총리가 베이징이 아닌 다롄(大連)으로 귀국한 데다 예정대로 24일 몽골 방문 길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은 “사과 한마디도 없다.”며 “외교적인 매너 같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 국가간의 교제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사자인 고이즈미 총리도 회담 취소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답을 7번이나 되풀이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그런 것(회담 취소)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시사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회견에서 “일국 총리와의 회담을 돌연 취소하는 것은 예를 잃은 것”이라며 “중국은 원래 ‘예의 나라’였는데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산케이신문 등 언론들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강한 불쾌감과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 간부는 “회담 취소는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치다 공산당 서기국장는 이번 사태에 대한 논평을 거부하면서도 “야스쿠니 참배는 아시아와 일본의 우호와 관련된 근본 문제”라고 강조했다. oilman@seoul.co.kr
  • 장교3代…송상호 예비역 중령가족

    최근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려는 국적 포기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버지, 손자·손녀가 국군 장교로 국토 방위에 헌신하는 가족이 있어 화제다. 게다가 사위마저 현역 장교를 맞을 예정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르노삼성자동차 직장예비군 대대장인 송상호(52·3사 12기·예비역 중령)씨와 육군 제53사단 126연대 군수장교인 아들 기선(26·중위)씨, 육군 제2군수지원사령부 15보급대대 소대장인 딸 미라(25·소위)씨가 주인공이다. 23일 육군 제53사단 관계자는 지난 91년 작고한 송씨의 부친 재철씨는 6·25전쟁 때인 지난 53년 포병장교로 참전한 예비역 중위라고 전했다. 기선씨는 2003년 학군장교(ROTC)로 임관했고, 지난해 여군 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한 미라씨는 오는 7월 중위 진급을 앞두고 있다. 특히 미라씨는 오는 6월12일 육사 59기인 이상규(26) 중위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송씨는 “나를 따라 24차례나 이사하면서 초등학교만 6번이나 옮긴 아들과 딸이 대를 이어 육군 장교의 길을 택해 대견하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사설] 25년전 실종 아들 기다리는 母情

    어제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25년째 되는 날이었다. 광주 국립 5·18묘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각당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그동안 5·18 관련행사에 참여하지 않던 상이군경회 등 8개 참전·유족 단체들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념과 지역의 갈등을 넘어, 국민 모두가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 뜻깊은 행사였다. 하지만 5·18을 역사의 장으로 넘기기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적잖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한다. 2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행방불명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대문을 열어 놓은 채 잠자리에 드는 어머니, 사진에서 아들의 주검을 확인한 뒤 유해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아버지가 여전히 존재한다.18일 현재 행방불명으로 공식 인정된 희생자는 70명, 인정 받지 못한 신고사례는 300건 가까이 된다. 이들의 유해를 찾아 유족의 한을 풀어주려면 당시 학살·암매장에 가담한 이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에 와서 책임을 묻고 처벌하자는 뜻은 아니므로 당사자들은 실상을 밝히고 실종자 찾기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발포 명령자를 가려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전두환 씨를 비롯한 신군부 핵심인물 8명이 내란 혐의로 처벌받았지만 발포명령자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5·18민주화운동을 이에 포함시켜 발포명령자를 밝혀내야 한다. 아울러 ‘5·18학살’이 내란 행위로 규정됐는데도 그와 관련해 신군부 세력이 나눠 가진 훈·포장을 여태 치탈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회에 제출된 상훈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이들에게서 훈·포장을 박탈해야 한다.
  • “존경하는 美의원 여러분… 더러운 협잡을 그만두시오”

    “최근 수년동안 이곳 워싱턴에서의 판단 기준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쯤은 나도 익히 알고 있소.” 영국의 이라크 참전에 반대했다가 노동당으로부터 제명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조지 갤러웨이(존경당) 하원의원이 17일(현지시간) 유엔의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비리 의혹을 추궁하기 위해 자신을 소환한 미국 상원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놈 콜먼(공화·미네소타) 위원장에게 던진 핀잔이다. 갤러웨이 의원은 이날 2시간 가까이 계속된 미 상원의원들의 추궁에 맞서 시종 여유있고 당당한 자세로 공박하는 한편,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을 역설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갤러웨이 의원은 샤를 파스콰 전 프랑스 내무장관과 함께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이라크로 하여금 석유를 수출, 식량을 구입하도록 하는 유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대가로 각각 2000∼2003년 2000만배럴의 석유를,1999∼2000년에 1100만배럴을 할당받았다는 혐의를 미 상원으로부터 받고 있다. 그는 증언대에서 “석유 한 배럴 보거나, 사거나, 판 적이 없으며 이라크로부터 단 10센트도 받은 적이 없다.”며 자신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는 ‘거짓투성이’라고 말했다. 갤러웨이 의원은 오히려 자신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두번씩이나 만나 경제제재와 궁핍·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논의했으며, 미·영 정부 각료 누구보다 더 열심히 후세인 정권에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전쟁 명분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세계가 자신이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말을 들었더라면 “(이라크전쟁과 같은) 결정적 재앙은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1980년 2월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장실.50여일 동안 감방생활을 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운명적으로 만났다. 장 사령관은 전 사령관보다 장교임관 5년선배였다.. “장 선배,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사령관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순간 장 사령관은 쿠데타 계획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전 사령관의 얘기는 계속됐다. “장 선배가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지금 금값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3만원하던 것이 7만원으로 뛰었고, 국제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생뚱맞는 얘기인가. 장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전 장군, 정 총장은 나를 수경사령관으로 임명한 상관이요. 총장을 연행해 갔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소.” “장 선배, 사실은 밑에 사람들이 장 선배를 사전에 연금시키자는 것을 내가 야단을 쳤어요.‘그 어른은 우리가 모시고 큰 일을 함께 할 분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나.’라고 했지요. 장 선배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리들은 그 다음날 장 선배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쉬고 계시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6.25전쟁도 겪지 않은 후배한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장군, 군인이 군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승부는 깨끗하게 합시다. 이 패장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니 나가야지.” 장 사령관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거 예편서입니다.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뭐라고 쓰면 돼?” “네,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예편을 상신합니다.” “알았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때 태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19세 어린 나이에 구국의 일념으로 6.25에 참전했다. 또 베트남전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다. 명예롭기는 커녕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역지원서를 쓴 장 사령관은 연행돼 올 때 입었던 소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노을지는 저녁무렵이었다. 서울 봉천동의 집에 도착하자 아들과 딸 부인과 누나 내외, 그리고 장모가 울음으로 맞이했다. ●드라마서 전두환을 유비·관우처럼 취급 이후 장 장군의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선 장 장군은 강제로 전역된 뒤 자택에서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장 장군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82년 2월에는 외아들이 장 장군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꼭 25년 세월이 흘렀다. 쿠데타 세력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장 장군은 재향군인회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묻어둔 천추의 한을 어찌 씻을 수 있으랴. 특히 요즘 TV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장 장군을 만났다.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하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거실 의자에 앉자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전두환을 무슨 유비나 관우처첨 취급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샌님이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거야.” 또한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오류. 첫째 쿠데타의 배경과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가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쏙 빼버렸다는 것.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좌의 안위를 위해 전두환씨를 보안사령관에 임명한 배경과 하나회를 통해 전씨에게 힘이 쏠린 과정, 그리고 10.26때 모든 요직의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해 사실상 직무유기한 부분 등 교훈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안사서 정보 완전 장악, 12·12진압 못해 두번째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한곳으로 모아지면 안된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10·26직후 보안사령관이 군과 경찰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까지 완전히 장악,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2·12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군사반란이란 어떤 것이며, 발생했을 경우 방어와 진압의 수순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12·12를 진압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묻자 “무슨 명령만 내리면 저놈들이 죄다 알고 있는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라고 한탄했다. ●일과의 60% 독서… 쿠데타 막는 법 책낼 것 장 장군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71년 1월 별을 단 그는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요즘 장 장군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 때문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를 모으고 있다.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군력(軍力)으로 정부를 뒤집은 데서 유래한 쿠데타 막는 법을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일과의 60%를 독서에 쏟아붓고 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제갈공명은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다.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2년 5군단 참모장 ▲73년 수경사 참모장 ▲75년 26사단장 ▲78년 육본 교육참모부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1년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장 ▲94년∼2000년 제27대,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입당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 저서 12·12쿠데타와 나(93년, 명성출판사) km@seoul.co.kr
  • 시인 최영미 가족소설 ‘흉터와 무늬’ 로 데뷔

    시인 최영미 가족소설 ‘흉터와 무늬’ 로 데뷔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그해 문단을 폭풍처럼 강타했다. 불현듯 불어닥친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건 50만 독자들만이 아니었다. 작가 자신도 사방에서 불어오는 역풍에 속절없이 몸을 내맡겨야 했다. 인신공격성 폭언과 험악한 글들 속에서 작가도, 작가의 가족들도 심하게 마음을 다쳤다. 십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작가는 그때 일을 사뭇 담담하게 회상한다.“‘잔치’가 ‘운동’의 상징으로 읽힐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썼을 것”이라고.“사회화가 덜 된 탓에 의도하지 않게 오해를 많이 샀다.”고. 그리고 고백했다. 마흔 즈음에서야 지나온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고, 혹독한 자기반성을 거쳐 비로소 자신과 화해했음을. 시인 최영미(44)의 첫 소설 ‘흉터와 무늬’(랜덤하우스중앙 펴냄)는 그렇게 작가가 삶의 한 고비를 아프게 통과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고의 결실이다.‘갑자기 왜 소설을?’이라는 궁금증에 작가는 “소설쓰기는 시인이 되기 이전부터 품어왔던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92년 등단하기 전 300장 분량의 습작 원고를 들고 소설가 이문열을 찾아갔던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이문열은 “아직은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세 번쯤 고치면 소설가가 되겠다.”는 말로 소설가 지망생을 격려했다. 그러나 첫 시집이 너무 잘 나간 탓일까. 등단 이후 소설가의 꿈은 뒤로 밀렸고, 마흔이 가까워져서야 옛 꿈이 다시 절실해졌다고 한다. 소설에 매달린 지난 4년간을 그는 “시인이었던 과거의 ‘나’와 소설가가 되려는 현재의 ‘나’가 치열하게 투쟁한 시간”이라고 규정했다.‘엄살 같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시는 정신노동이고, 소설은 정신노동에 육체노동이 더해진 노역”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글을 길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였다 조였다 하는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는 수고로움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첫 작품 ‘흉터와 무늬’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이자 끝이 없는 이야기’인 가족 소설이다. 방송작가 정하경을 작중 화자로 삼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정씨 일가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소설은 마흔넷의 하경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의 흉터를 의식하는 첫 장면에서 시작해 그녀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말살했던 가족의 불운한 과거가 서서히 베일을 벗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불치병으로 숨진 언니와 한국전쟁에 참전해 실수로 부하를 사살하고, 평생을 우익으로 살다간 아버지 정일도가 있다. 작가는 “한국 현대사 틈바구니에서 고통받은 사람들, 훈장없는 상처를 짊어진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신념에 찬 우익 정일도의 삶을 통해 흑백논리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단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137편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된 사건을 서술한 글들은 저마다 완결된 형식이면서 동시에 조각보처럼 맞대어져 큰 그림을 완성하는 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불연속적인 장면들로 한 사람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형식적 특징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어느 바보의 일생’에서 영향받았다. 작가와 생년월일이 같은 화자, 작가가 지나온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겹치는 탓에 얼핏 자전적 소설로도 읽힌다. 하지만 작가는 “나와 하경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면서 “그럼에도 자전적으로 읽힌다면 독자가 속아넘어갈 만큼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비껴갔다. 당분간은 소설만 쓸 생각이라는 그에게 다음 작품 계획을 물었다.“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다른 빛깔의 연애소설 3부작을 구상중” 이라고 귀뜸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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