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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애 “섹시함은 저의 본능이에요”

    수애 “섹시함은 저의 본능이에요”

    수애, 정진영, 정경호 주연의 영화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님은 먼곳에’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주연배우 수애, 정진영과 특별출연한 엄태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 수애는 이날 자신이 캐스팅된 이유가 “촌스러운 외모 때문인것 같다.”고 발언해 네티즌 사이에 ‘수애 망언’(?)이라는 말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조민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수애 “섹시함은 저의 본능이에요”

    [NOW포토] 수애 “섹시함은 저의 본능이에요”

    수애,정진영, 정경호 주연의 영화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님은 먼곳에’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주연배우 수애, 정진영과 특별출연한 엄태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조민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엄태웅 “아직도 여운이 남네요”

    [NOW포토] 엄태웅 “아직도 여운이 남네요”

    수애,정진영, 정경호 주연의 영화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님은 먼곳에’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주연배우 수애, 정진영과 특별출연한 엄태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조민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님은 먼 곳에’ 주역들 한 자리에

    [NOW포토] ‘님은 먼 곳에’ 주역들 한 자리에

    수애, 정진영, 정경호 주연의 영화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님은 먼곳에’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주연배우 수애, 정진영과 특별출현한 엄태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조민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정진영 “‘님은먼곳에’ 사랑해주세요”

    [NOW포토] 정진영 “‘님은먼곳에’ 사랑해주세요”

    수애,정진영, 정경호 주연의 영화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님은 먼곳에’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주연배우 수애, 정진영과 특별출연한 엄태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조민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수애 “사랑이란 용서라고 생각해요”

    [NOW포토] 수애 “사랑이란 용서라고 생각해요”

    수애,정진영, 정경호 주연의 영화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의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8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님은 먼곳에’의 언론 시사회에서는 주연배우 수애, 정진영과 특별출연한 엄태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특히 수애는 이날 자신이 캐스팅된 이유가 “촌스러운 외모 때문인것 같다.”고 발언해 네티즌 사이에 수애 망언(?)이라는 말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조민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 한국전 휴전일 조기게양 법안 추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한국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휴전기념일인 매년 7월27일 미국 전역에서 조기게양을 의무화하자는 법안이 최근 미 의회에 제출됐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랑겔 하원 세입위원장(민주·뉴욕주)은 3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법안(KWVRA,H.R.6363)’을 발의, 하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랑겔 위원장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헌신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 한국전 휴전협정일에 조기를 게양토록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kmkim@seoul.co.kr
  • [03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8시20분) 결혼 후 잘 지내던 도시생활을 접고 무작정 소를 키우자고 했던 아내를 따른 지 벌써 27년. 힘든 목장 일에 그동안 수십 번 보따리를 싸고 푸는 것을 반복했다. 이제는 아내가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소 키우는 사람 아니랄까봐 황소고집인 아내를 말릴 수 없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남편은 더 열심히 일한다.   ●코끼리(MBC 오후 7시45분) 우연히 장롱에서 해영 이름으로 된 5000만원짜리 통장을 발견한 영수. 장을 볼 때마다 지나쳐야 했던 웰빙 농수산물 코너와 꿈 같은 스포츠카, 그리고 식구들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한편 미래 한영의 신랑으로 영수네 식구들에게 점수를 따고 싶은 복수는 영수네 세 자매에게 공을 들인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피터 로빈스는 50년 동안 자신의 잠수함을 만드는 순간을 꿈꾸어 왔다. 쥘 베른의 공상 과학소설 ‘해저 2만리’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해저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거대한 투명창이 달린 잠수함을 만들고자 꿈을 키워왔다. 피터는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미스터리 특공대(SBS 오후 11시5분) ‘혼령을 가진 나무가 있다?’. 나무에 해를 입히는 사람은 반드시 병을 앓거나 다친다는 믿을 수 없는 제보. 논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한 그루의 나무. 나무를 베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기이한 일을 겪는다. 반신반의하는 대원들. 나무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나섰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장마철이면 집안 가득한 습기 덕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곰팡이. 집안 어두운 곳부터 차례로 점령해 나가는 기분 나쁜 곰팡이는 악취는 물론,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곰팡이의 원인이 되는 습기를 현명하게 퇴치하는 방법은 없을까. 집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아이디어를 살펴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6·25 전쟁 당시 8000명이 참전한 호주에 내년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건립될 예정이어서 동포들은 물론 호주인들도 기대가 크다. 호주인 참전 용사들은 한국의 발전상에 만만찮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전쟁의 기억은 멀어져가고 있지만, 한국전 참전 기념비는 후세까지 영원토록 그들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 패럴림픽 향한 이라크의 도전

    패럴림픽 향한 이라크의 도전

    이라크의 스타급 휠체어 펜싱선수 파라즈 쿠드하이르(41)는 이란-이라크전이 한창이던 1986년, 박격포 유탄에 무릎 아래 다리를 잃었다. 군인이었던 그는 당시 미군이 바그다드 근처 디얄라 다리를 공격했을 때 훈련 중이었다. 요즈음 그는 바그다드 동부의 구불구불한 뒷골목길에 있는 양철지붕 체육관에서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이하 패럴림픽) 준비에 한창이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고물 휠체어를 돌려가며 피하기와 되찌르기를 연습한다. 최근 20여년동안 3번이나 전쟁의 포화를 맞은 이라크인들은 아직도 화염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에 대한 염원만큼은 다른 나라 국민들 못지않다. 특히 참전용사 출신의 장애인들로 구성된 패럴림픽 선수들은 9월 대회를 앞두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9일(현지시간) 전했다.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역도선수 라울 카심도 전쟁과 가난 속에 ‘배고프게’ 운동하는 선수들 중 한명이다. 바그다드 슬럼가 사드르 시티에서 호두 행상을 하던 그를 운동의 길로 이끈 건 그의 형이었다. 그러나 형은 지난 2006년 카심이 일하던 바로 그 거리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다부진 근육질의 카심은 약 91㎏짜리 벤치프레스를 들면서 “조국을 위해 이번 패럴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겠다.”고 되뇐다. 이라크 패럴림픽위원회 알리 알-자말리 사무총장은 “2003년 이라크전 이후 도전정신이 국제 스포츠경쟁에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과 애국심이 스포츠 경쟁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전투에서 불구가 된 이들은 대표팀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1980년대 이란-이라크전과 1991년 걸프전 참전용사들도 포함됐다. 운동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번듯한 운동기구도, 첨단과학의 체력훈련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선수들은 땀내에 전 체육관에서 투지로 혹독한 여름 더위와 싸우고 있다. 휄체어 펜싱 코치인 아흐메드 아산은 “우리 팀은 하계 올림픽팀보다 실력이 월등하다.”면서 “이라크 올림픽팀 선수는 현재 단 1명인데 반해 패럴림픽팀 선수는 2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 중 12명이 참전용사다. 올해 이라크는 20개 종목 중 휠체어 펜싱, 수영, 육상 등 7개 종목에 참가한다. 선수 20명 중 7명은 메달을 딴 경험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기고] 제2연평해전 6주년을 보내며/박상은 해군OCS장교 중앙회 명예회장·국회의원

    [기고] 제2연평해전 6주년을 보내며/박상은 해군OCS장교 중앙회 명예회장·국회의원

    어제는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6주년 되는 날이었다. 월드컵 축구로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에 들떠 있던 2002년 6월,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산화한 참수리357호 장병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죽는 그 순간까지도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은 여섯 영웅들의 영전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이번 6주년은 여섯 영웅들과 유가족, 그리고 참전용사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뜻 깊은 날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부대 자체행사로 거행되어 오던 추모행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희생자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국가가 이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국가추모식으로 승격되었다.‘서해교전’으로 불리던 당시 전투가 지난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되었고, 전사자들의 흉상이 제작되어 지난 6월13일 해군사관학교에서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15일에는 1999년에 발발한 제1연평해전의 전승비가 평택의 제2함대 충무동산에 세워졌다. 어느덧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6년, 제1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목숨을 바쳐 조국을 수호한 젊은이들이 어째서 이토록 오랫동안 제대로 예우 받지 못하고 쓸쓸히 묻혀 있어야만 했는가. 그간 곯을 대로 곯은 유가족과 참전용사들의 마음이 쉬이 아물 리 만무하겠지만 뒤늦게나마 그분들의 명예가 회복되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여섯 영웅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연평도 앞 바다는 바로 270만 인천시민들의 앞마당이자 삶의 터전이다. 지금도 서해 바다에는 수시로 긴장이 고조되곤 하지만,4700만 국민이 이처럼 평화롭게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바로 여섯 영웅들과 참전용사들 덕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설들은 그들이 숨져갔던 곳과 인접한 인천이 아닌 다른 곳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군사시설 내에 있다. 이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은 정부를 비난하기 전에 가장 큰 은혜를 입은 우리들은 참수리357호의 장병들을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경북 칠곡에는 6·25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다부동전투의 승전을 기념해 1951년에 칠곡 군민들이 건립한 ‘백선엽장군 호국구민비’가 있다.1981년과 95년에 정부에서 세운 전적기념관과 충혼비가 있지만, 주민들이 정부보다도 먼저 자발적으로 건립한 것이란 데에서 이 비석의 가치가 있다.‘호국구민’이란 비석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민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켜준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칠곡 군민들의 사례를 보며, 최근 인천자유공원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를 떠올렸다. 조국과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켜준 이들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어쩌면 이렇게 다른지 안타까울 뿐이다. 때문에 이참에 인천에 제2연평해전 추모비를 세워 삶의 터전을 지켜준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인천의 월미공원이나 연안부두와 같은 접근이 용이한 곳에 세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작은 정성을 통해서 후세의 사람들이 그들을 영원히 잊지 않고 감사하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상은 해군OCS장교 중앙회 명예회장·국회의원
  • “유공자 예우 확대… 국립호국원 더 조성”

    6·25전쟁 58주년 기념행사가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거행됐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주관하고 국가보훈처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요인과 국내외 6·25 참전용사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한 총리는 기념사에서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에 평화를 더욱 확고히 정착시키고 남북관계도 선언의 시대를 넘어 실천의 시대로 나아가도록 할 것”이라며 “6·25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확대하고 국립호국원을 추가로 조성하는 한편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도 더욱 활발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은 대회사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아직도 통일전선전술로 ‘같은 민족’이니 ‘민족 공조’니,‘자주 통일’이니 하는 거짓 선동으로 우리 국민들을 기만하고 분열시키고 있다.”며 “북한 김정일 체제를 옹호하는 친북 좌파들은 척결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조지 가드 국제 한국전 참전 향군연맹(IFKWA) 회장은 북한의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 및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장충체육관에서 동대문까지 1.4㎞ 구간을 시가행진했다. 서울 외에 전국에서 향군의 13개 시·도회별로 6·25 58주년 행사와 안보강연회, 사진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잊혀진 전쟁/ 구본영 논설위원

    한국전의 기원과 관련해 이른바 수정주의 사관이 풍미한 적이 있었다.6·25의 책임을 북한이나 소련에서 찾는 게 아니라 미국에 묻는 게 그 핵심이었다. 전통주의 사관이었던, 북한의 남침설을 부인하면서 남침유도설 등을 제기한 게 골자다.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 등이 들고 나온 학설이다. 지나친 반공교육에 따른 역풍이었을까. 이런 사관은 1980년대 초 우리 대학가에서도 득세했다. 당시 기자에게도 얼마간 솔깃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구소련의 붕괴로 각종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스탈린 소련 공산당 총서기가 북한 김일성 수상에게 남침을 승인한 사실 등이 속속 공개되면서다. 이로 인해 남침유도설을 주창한 국내외 학자들도 수세에 몰렸다.‘한국전쟁의 기원 1·2’를 쓴 커밍스조차도 “1권을 쓴 뒤에 구소련의 비밀자료를 보고 매우 놀랐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미국이 애치슨라인에서 한반도를 의도적으로 제외해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 등이 설 자리를 잃게 된 셈이다. 국내 학자로선 진보적 성향의 박명림 교수가 커밍스를 합리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제는 베이징대 김동길 교수가 러시아의 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스탈린이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에게 보낸 극비전문이 일부 언론에 공개됐다. 이 전문에서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한국전 시나리오를 짰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며칠 전 이런 학계의 흐름을 무색케 하는 안보의식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고생 절반 이상이 6·25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전쟁 발발 연도를 아는 학생도 드물었다. 이쯤 되면 한국전은 우리 청소년들에겐 이미 ‘잊혀진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E H 카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 끊임없이 재해석해 공급돼야겠지만, 그런 역사교육도 좌든 우든 이념이 아니라 정확한 사료를 근거로 해야 할 듯싶다. 과거를 쉬이 잊거나 잘못 해석해 대비를 못하는 민족에게 비극은 되풀이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국가가 보훈가족 끝까지 책임질 것”

    “국가가 보훈가족 끝까지 책임질 것”

    이명박 대통령은 25일 6·25 제58주년을 맞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참전용사 위로연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박세직 향군회장, 박세환 전 국회의원 등 향군 회장단과 참전용사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 무한 의지를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변화에 나선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경제가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면서 “우리는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확대하고 교류를 늘려나가기 위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한국전 희생자 유해발굴에 더욱 힘을 쏟고 전장에서 피와 우정을 함께 했던 여러분의 동료들을 찾아내 숭고한 넋을 기릴 것”이라면서 “젊은 세대에게 전몰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가르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분단의 현실 속에서 튼튼한 국가안보 없이는 선진화와 경제발전도 있을 수 없다.”면서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이 없도록 투철한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첨단화된 선진강군을 육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성사시키고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도 인도적으로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재임 중 위로연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1시간 정도 지켜본 것은 이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한국전쟁 개전, 고려인 유성철이 명령”

    6·25전쟁 때 남침을 시작하는 개전 명령은 소련 국적의 고려인이면서 참전한 유성철 북한 인민군 작전국장이 내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1945년 소련군 장교로 김일성 부대와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6·25전쟁에 참전한 정상진(90·문학평론가)씨는 24일 카자흐스탄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씨로부터 말을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정씨는 “김일성이 1949년초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남침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이듬해 4월 다시 소련을 비공식 방문, 끈질긴 설득 끝에 승인을 받아 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뒤 소련파 숙청으로 쫓겨간 정씨는 “북한은 평화통일을 외치면서도 1946년부터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착실히 남침을 준비했고, 남한의 이승만 정부도 공공연하게 무력통일을 외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승만 도당이 북침해 인민군이 2시간 만에 격퇴한 것으로 선전했다.”고 털어 놨다.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 내야 한다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소련군에 자원입대했다는 정씨는 “6·25전쟁 직전에 자신은 김일성종합대학 러시아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여단장급)으로 임명돼 참전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1952년 12월초 김일성이 불러 찾아갔더니 “전쟁이 거의 끝났으니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선전성 부상에 임명된 직후 고려인 동료인 유 인민군 총부참모장 겸 작전국장(중장)이 평양의 한 술집에서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으며, 내가 6월25일 오전 4시 (공격개시를 위한) 신호탄을 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전후 자신과 유씨를 포함해 소련국적 고려인 428명이 숙청을 당했다.”고 덧붙였다.연합뉴스
  • [유로 2008] 게르만 vs 투르크 ‘민족 충돌’

    “그네들도 진짜 게르만의 혼을 지니고 있다.” 겁 없기로 유명한 발라크가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독일 축구대표팀의 주장 미하엘 발라크(31)가 26일 새벽 3시45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터키와의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8 준결승을 앞두고 엄살인지, 경계책인지 모를 말을 남겼다. 프란츠 베켄바우어 같은, 리더의 지배력이 강한 독일축구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라크는 대표팀의 야전사령관으로 모든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휘하고 통제한다. 발라크는 24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터키가) 준결승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는 자세로 나설 것으로 보여 힘든 상대가 될 것”이라며 “경기 막판 기어이 골을 터뜨리는 그들의 능력은 오직 독일인만이 가져왔던 것”이라고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발라크의 말은 준결에 오르기까지 사투를 벌이느라 부상자와 경고누적 선수가 많아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를 13명밖에 가동하지 못하는 터키를 상대로 늘어놓는 ‘엄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욱이 유럽축구연맹(UEFA)은 필드플레이어로 보직 변경을 검토했던 후보 골키퍼 톨가 젠진 대신 다른 필드플레이어를 충원하도록 해달라는 터키의 청원을 일언지하에 거절,‘투르크 전사’들은 퇴로마저 차단당한 셈.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터키 선수들의 승부욕과 집념에 불을 질러 독일의 참극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점. 터키 선수들은 크로아티아와의 8강전에서 10명의 필드플레이어들이 모두 139㎞를 뛰어다녀 통상 정규경기 100㎞ 안팎을 훨씬 웃돌았다. 투르크 민족의 엄청난 영토확장욕(?)을 입증한 이런 활동폭에 독일이 긴장하고 있는 것. 독일이 역대전적에서 11승3무3패의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고 1951년 친선경기 1-2 패배 뒤 1992년까지 무패(11승2무)를 이어갔지만 최근 10년새 상황이 뒤바뀐 것도 꺼림칙하다. 터키는 유로2000 예선에서 1승1무로 앞선 데 이어 2005년 평가전에서도 2-1로 이겼다. 민족감정도 걸린다. 터키가 1차대전에 뒤늦게 주축국으로 참전해 영토를 빼앗긴 데다 옛 서독이 경제부흥기에 엄청난 터키 이주노동자를 불러다 쓴 뒤 ‘폐기처분’하는 분위기가 맞물려 투르크 전사들의 전의를 불태우게 한다. 게르만과 투르크 두 민족의 충돌이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영세중립국에서.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망처리 국군포로 55년만에 탈북… 中 체류

    6·25전쟁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총상을 입고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가 이달 초 탈북에 성공, 한국행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1951년 8월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한 김진수(74·가명·전북 완주)씨가 지난 14일 오후 두만강을 건너 탈북에 성공, 중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최 대표에 따르면 김씨는 1953년 7월 중공군이 최후 공격을 감행했던 강원도 금성지구전투 때 총탄을 무릎에 맞고 쓰러져 포로가 됐다. 남측에는 김씨가 이 때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고 육군 전사자 명단에도 포함됐다. 김씨는 북한에서 결혼해 아들·딸 5명을 뒀으나 이들은 함께 탈북하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 17일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보낸 탄원서에서 “현재 몸도 아프고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저를 한국에 빨리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밝혔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美 첫 여성 4성장군 탄생

    미국에서 사상 최초의 여성 4성 장군이 탄생한다. 미 국방부는 23일(현지시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앤 던우디 중장을 육군 군수사령관으로 지명했다고 CNN 등 미 언론들이 전했다.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국방부 역사상 기록적인 일”이라면서 “33년에 걸친 경력과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던우디 중장의 대장 진급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던우디 중장은 형식적 절차인 미 상원의 인준동의만 거치면 미 역사상 최초의 ‘별4개 장군’에 오르게 된다. 미국 국내법상 여군의 직접적인 전투보직은 금지돼 있어 군최고위직인 4성장군 진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뉴욕 출신인 던우디 장군은 1975년 뉴욕주립대(코트랜드)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군생활 대부분을 병참 분야에서 보내고 1991년 걸프전 때 제82공수사단으로 참전했다. 현재는 군수담당 합참차장직을 맡고 있다. 1970년 최초의 간호장교(준장)가 나온 후 미군 내 현직 여성 장군은 중장 5명을 포함해 57명이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한국전쟁 참전용사 자손 美 공군장병 14명 초청

    공군작전사령부는 24일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근무하는 미 공군 장병 가운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6·25에 참전했던 장병들을 초청해 격려행사를 가졌다.2∼3대째 대(代)를 이어 한국을 지키고 있는 미 공군 장병 14명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미 51전투비행단 기지 병원에서 정형외과 군의관으로 복무 중인 션 니컬스(36) 소령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군에 입대했고 한국 근무도 자원했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념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에 초청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앵그스 니컬스는 6·25 때 미 68전대 소속 B-29 폭격기 승무원으로 참전했다. 미 607항공정보대대 소속 줄리 그리저(24·여) 병장의 경우 할아버지가 6·25 때 참전, 시설 부대에 근무하면서 기지 재건축 임무를 담당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모범 국가유공자 17명 포상

    정부는 20일 장순기(66)씨 등 17명을 2008년도 모범 국가유공자로 선정했다. 23일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장순기씨는 군 복무 중 척추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전역한 뒤 1969년부터 서울 상도동 천막집에 모여 살던 6·25 및 베트남 참전 상이용사 27명과 ‘상도용사촌’을 결성했다. 이후 장씨는 상이군경회 대방동 특별분회 사무장, 신생원호아파트 관리소장 등으로 활동하며 상이용사들의 생활기반 마련에 기여했다.2004년에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보훈체육회를 결성, 회원들의 재활체육을 위해 헌신했다. 다음은 포상자 명단.◇국민훈장 동백장=장순기 ◇국민훈장 목련장=서분점 ◇국민포장=강영수, 김성복 ◇대통령 표창=박재신, 황구연, 구제선, 신옥균, 이강수, 박원범 ◇국무총리 표창=신두균, 유상호, 정교석, 송기성, 이미자, 김옥희, 김상규.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한국과 그리스는 아픈 역사 공유”

    “한국과 그리스는 아픈 역사 공유”

    “한국과 그리스는 식민지 압제와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두 차례 한국에 체류하면서 싹튼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한 작품입니다.” 6·25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던 그리스 정교회 성직자가 실화를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송연 이야기’(안티쿠스 펴냄)를 냈다. 책 출간에 맞춰 서울에 온 저자 콘스탄티노스 할바차키스(79)씨가 19일 기자들과 만나 집필 동기 등을 밝혔다. 할바차키스는 휴전협정 이후인 1953년부터 1954년까지 유엔군 산하 그리스군 소대장으로 파견돼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국 사회를 경험했다.1955년 그리스 정교회 성직자가 된 그는 1967년 정교회 사제로 다시 한국에 와 6개월 동안 머물기도 했다. ‘송연 이야기’는 작가가 참전 당시 송연 출신 주민들을 만나 전해들은 이야기에다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왔을 때의 기록을 보충해 1967년 탈고한 작품. 서울 북동쪽에 위치한 송연이라는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일제하 민중의 삶을 진솔하게 그렸다. 소설에는 이방인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씨받이 등의 한국 풍습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작가는 “나라마다 나름의 전통과 풍습이 있고, 그것을 존중한다.”며 “씨받이 이야기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스 내에서 소설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한 작가는 전쟁 후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한국:위대한 시간들’이라는 책을 1965년에 현지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과 한국인들의 습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쓴 작품이어서 혹시 한국인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글 사진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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