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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지 않는 참전용사들 눈물… 현충일 2題

    ■경북, 학도 의용군 선양비 백지화 경북도가 6·25전쟁 참전 학도 의용군의 명예 선양비 건립 사업을 논란 끝에 철회해 졸속 행정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도는 한국전쟁 당시 학도 의용군의 출신 학교를 대상으로 명예 선양비를 건립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고 6일 밝혔다. 도는 지난해 6월부터 학도 의용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한국전쟁에 대한 교훈과 선배들의 애국심을 선양할 목적으로 명예 선양비 건립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 예산 확보 방안은 물론, 해당 시·군 및 학도 의용군 출신 학교와 사전 협의 없이 사업을 추진하려다 전시 행정이라는 비난을 샀다. 또 국가보훈청이 국가 사무로 추진 중인 의용군 명예 선양비 건립 사업을 도가 별도로 추진할 경우 예산 낭비라는 논란도 일었다. 도 관계자는 “학도 의용군 명예 선양비 건립은 도가 추진할 사업이 아닌 것으로 결론내렸다.”면서 “보훈청이 학도 의용군 선양비 건립과 관련, 예산 지원을 요청해 올 경우 이를 적극 검토해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도는 이 사업을 백지화하는 대신 ‘학도병 명예 증언록’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경북 도내 학교 중 전몰 의용군이 생긴 학교는 경주공업중과 안동사범학교 등 30여곳이다. 지금까지 이들 학교의 학도 의용군 출신 전사자는 모두 140여명으로 확인됐다. 특히 경주중·고교의 학도 의용군은 도내에서 가장 많은 320명으로, 이 중 48명이 전장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인천, 보훈병원 유치 수년째 표류 인천시의 보훈병원 유치 노력이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6일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에도 보훈병원이 들어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미 7~8년 전부터 지역 보훈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대부분 고령인 데다 거동이 힘든 인천권 보훈 진료 대상자 10만여명이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서울보훈병원을 이용하기에는 상당한 불편이 따르기 때문이다. 또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5개 특별·광역시에 보훈병원이 설치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정책적인 관점에서 이를 인천에도 균형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에서는 2005년 국립보훈병원 인천유치위원회가 결성돼 시민 13만명이 서명 운동에 동참하는 등 보훈병원 건립을 위한 활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그러나 2007년 국가보훈처의 신청에 따라 기획예산처가 실시한 예비 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 편익 비율 분석 및 정책적 타당성이 기준 이하인 것으로 나타나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그러나 인천시는 “보훈병원 추진 여부를 단순히 경제적 타당성 분석에 의해 결정해선 안 된다.”면서 2008년 보훈병원 건립을 정부에 다시 건의했지만 이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인천 지역 보훈단체들은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인천에 보훈병원을 세우지 않은 채 병들고 연로한 이들에게 장거리 이동을 강요해선 안 된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권 대상자의 불편을 감안할 때 보훈병원 건립은 지역의 숙원 사업이지만 타당성 조사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변화 요인이 발생하기 전에는 추가 요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현충일 특집 끝나지 않은 귀환(KBS1 오전 10시 45분)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느 덧 61년이 지났다. 13만명에 달하는 호국영령들은 여전히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잠들어 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이자, 아버지였지만 조국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쳤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은 오늘도 산에 오른다. ●월화 드라마 동안미녀(KBS2 밤 9시 55분) 진짜 나이를 밝힌 소영은 즉각 해고된다. 진욱은 배신감과 충격에 분노를 터뜨린다. 그리고 소영은 진욱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가슴 아픈 고백을 한다. 냉정히 돌아선 승일 역시 그녀에 대한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편 현 이사와 백 부장은 아웃도어 경합을 벌이게 된다. ●일일시트콤 몽땅 내 사랑(MBC 밤 7시 45분) 두준에게 비키니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순덕. 하지만 옥엽과 어울려 다니느라 두준이 항상 혼자가 아닌 탓에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다. 순덕은 옥엽을 떼어놓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한편 혜옥은 잃어버린 스카프를 주워준 신사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찾으러 간 장소마다 김 집사와 마주치게 된다. ●꾸러기 천사들(EBS 밤 8시) 푸름이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런 푸름이가 어느 날 빨강반 재원이와 벌인 합기도 대련에서 지고 만다. 보라반 꾸러기 친구들은 그 사실이 믿기 어렵다. 민이는 푸름이가 졌을 리 없다는 친구들에게 재원이의 발차기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재원이를 데려와 발차기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 ●한국특선영화 현충일특집-5인의 해병(EBS 낮 12시 10분)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 소위 오덕수는 일선의 소대장을 자원하여 전선으로 간다. 덕수는 아버지 오성만 중령이 대대장으로 있는 부대로 가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반갑게 맞이하지만, 덕수는 어릴 적부터 항상 자신보다 형을 더 아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5월 중순,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날 밤. 김포 부근에서 소름끼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던 한 여학생이 낯선 남자에게 붙잡혀 한적한 주차장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다. 남자는 여학생을 협박하며 강간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다른 이들의 삶은 짓밟아버리는 파렴치한을 잡기 위한 수사과정을 함께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참전 유공자 많아”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참전 유공자 많아”

    “전쟁 얘기를 하고 또 하시지만, 당신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가 봐요.” 충북 청원군 내수읍에 살고 있는 6·25 참전 국가유공자들은 1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신재옥(46·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씨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청주보훈지청 보훈도우미로 일하는 신씨가 물리치료를 해주고 청소, 빨래, 반찬 만들기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자신들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착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신씨는 2008년 11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내수읍과 청주 북부권 참전 유공자 10여명의 생활을 돕는 그 역시 보훈가족이다. 아버지(80)는 참전 유공자이고, 1980년대 초반 군 장교로 있던 오빠를 사고로 잃었다. 신씨는 “전몰군경유족회 괴산지회장을 지낸 아버지의 권유로 보훈도우미로 나서게 됐다.”면서 “우리 가족의 아픔이 보훈가족에 대한 정을 새록새록 쌓게 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오전 9시부터 퇴근할 때까지 곳곳을 돌면서 참전 유공자들을 보살핀다. 이제는 “딸 하나를 얻었다.”며 끔찍하게 아껴주는 할아버지도 있고, “밥 먹고 가라.”고 옷자락을 놓지 않는 할머니도 생겼다. 단순히 보살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해도 은행에 제때 못 가는 할아버지를 차에 태워 데려다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는 6·25전쟁 때 수류탄이 터져 고막을 다치고도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전상군경 지정신청을 포기하고 사는 유모(84) 할아버지를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며 보훈급여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신씨는 “도시보다 시골 참전 유공자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더 놓여 있다.”면서 “아직 젊어서인지 힘든 줄을 모르겠다.”고 활짝 웃었다. 청원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라이더’ 페일린 대권행보 시동?

    요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보는 미국 정치 분석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과거 대선주자들한테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행보를 하기 때문이다. 페일린은 ‘메모리얼데이’(미국의 현충일)를 하루 앞둔 2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연례 오토바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검은 가죽 재킷과 바지에 검은 헬멧과 선글라스를 쓴 페일린의 모습은 분명 전형적인 정치인의 그것은 아니었다. 페일린은 행사장에서 환호와 주목을 받았으나 정치적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녀의 대선 출마 여부에 관심을 쏟고 있는 정치권의 호사가들은 애가 탈 만하다. 페일린은 행사 이후 버스를 타고 몇 주일간 뉴햄프셔 등 전국 주요 지역을 순회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행보가 대선 운동의 일환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선거에 대비해 이사하거나 민생 행보를 하는 것은 한국 정치판에서는 종종 목격되지만, 미국에서는 생경한 게 사실이다. 페일린이 뭔가 용의주도한 대선 전략을 가동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하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미군, 1955년 DMZ에 고엽제 공중살포”

    “미군, 1955년 DMZ에 고엽제 공중살포”

    주한미군이 한국전쟁 종전 직후 비무장지대(DMZ)에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 강원 철원군에서 육군 상사로 근무했던 음도남(77·경기 연천군 신서면)씨는 30일 “1955년 육군 15사단 소속으로 철원군의 백마고지에서 근무할 당시 미군이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한 달에 3~4차례씩 DMZ에 고엽제를 공중 살포했다.”고 밝혔다. 이는 1960년대 말 DMZ에 고엽제가 뿌려졌다는 기존 주장과 조금 다른 내용이다. 음씨는 “당시 고엽제 살포는 미군이 독자적으로 진행했으며 한국군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미군이 고엽제를 공중살포할 때마다 한국군에는 방독면과 우의를 착용하고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특히 음씨는 “연천군 신서면 천덕산 인근에서 선임하사로 근무하던 1967년에 미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군 중대장의 지휘 아래 병사들이 고엽제 분말을 맨손으로 떠서 뿌렸다.”고 증언했다. 이로 인해 음씨는 20여년 전부터 손가락 끝마디가 구부러지고 왼쪽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2007년 ‘국내 고엽제 피해자’로 인정받아 국가보훈처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고엽제 피해자’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과 달리 1967년 10월 9일부터 1970년 7월 31일 사이에 남방한계선 인접 지역에서 고엽제 살포에 참가한 군인이나 군무원을 의미한다. 고엽제 피해와 더불어 현재 고혈압에 당뇨병까지 앓고 있는 음씨는 “고엽제를 뿌리고 나면 잡초들이 순식간에 죽어 없어졌다.”며 “위험한 약품인 줄 알았다면 절대 맨손으로 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美, 60년대 한국 등 5개국서 제초제 실험”

    미국이 1960년대에 미국 안에서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해외 5개국에서 고엽제 실험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참전용사단체 ‘용사를 돕는 용사회’가 26일 언론에 공개한 정부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1968년 3차례에 걸쳐 메릴랜드주의 ‘포트 디트릭 식물과학연구소’에서 한국 전방부대로 각종 제초제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실험용 제초제 공수는 1968년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제3여단 제2사단 지역을 대상으로 했으며, 발암성 물질이 함유돼 있는 하이바엑스를 비롯해 탄덱스, 유록스 등의 화학약품이 보내졌다. 이어 같은 해 8월과 10월 3일에도 같은 종류의 제초제가 2차례에 걸쳐 2, 3, 4여단 지역 등에 공수됐으며 미 국방부도 이에 관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은 그러나 공수된 제초제의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적시하지 않았다. 문건은 공수 목적에 대해 “초목의 생장 억제 효과를 실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 비슷한 시기 비무장지대(DMZ)에서 이뤄진 제초제 살포와는 다른 용도임을 시사했다.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캄보디아(1969년)와 캐나다(1967년), 라오스(1965~1967년), 태국(1965년) 등에서도 제초제 살포나 실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미국은 인도에서는 1945~1946년, 푸에르토리코에서는 1956년 2~6월에 제초제 실험을 했으며, 1977년에는 해상에서 고엽제 840만ℓ를 소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또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내 20개 주에서도 각종 제초제를 저장했거나 이를 이용한 실험을 했다고 이 문건은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통큰’ 자치구들 세계와 교류

    ‘통큰’ 자치구들 세계와 교류

    ‘서울은 좁다.’ 서울 자치구들이 지역을 넘어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과거 선진행정을 벤치마킹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단순 교류를 뛰어넘었다. 강남구는 26일 러시아 자치공화국 사하에서 ‘의료관광 설명회’를 개최한다. 의료 수준이 열악한 사하공화국의 부유층 공략에 나선 것이다. 한반도의 14배에 달하는 사하공화국은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로, 차가운 기후와 자원개발 등으로 인한 부작용 탓에 호흡계·암·심장·척추질환자 등이 적절한 진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구는 공화국과 양해각서(MOU)를 교환, 지역 의료기관과 함께 어린이 대상 의료봉사활동, 의료 전문인력 육성 등의 활동도 펼 예정이다. 중구는 패션산업의 메카인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와 중국 패션의 중심지인 광저우 월수구 복장협의회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지원하고, 남대문시장의 해외판로 개척을 돕는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880만명 중 동대문패션타운 방문객이 45%인 399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나 패션을 통한 해외 관광객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송파구는 25일 신천동 송파구여성축구장에서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편지와 축구공, 학용품을 전달하는 행사를 열었다. 구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투게더’와 함께 아프리카 어린이날(6월 16일)을 앞두고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와 다디웨레다 지역 초등학생 300여명에게 초등학교 학생이 작성한 그림 편지와 축구공 2500개를 전달한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빈국이지만 반세기 전 한국전쟁에 참전한 오랜 우방국이다. 행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에티오피아 유학생 라지라 게타초 군이 참석해 구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구는 지난달 28일에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우물 개발사업과 태양광램프 지원 등 지구촌 희망나누기 사업도 벌였다. 광진구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자원봉사자 기본소양교육의 일환으로 ‘생명의 우물파주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식수가 부족한 캄보디아 농촌에 우물을 만들어 주는 사업으로 국제개발구호 단체인 ‘지구촌공생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기본 소양 교육을 받은 선화예술고와 대원고, 동대부속여고 등은 십시일반으로 모금활동을 펼쳐 지구촌공생회에 전달했다. 영등포구는 해외자원봉사활동 참여 방법 등 전문자원봉사자 양성을 위해 다음달 7일부터 23일까지 문래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자원봉사대학’을 운영한다. 자원봉사대학은 2005년부터 다양한 자원봉사 관련 교육을 통해 전문 자원봉사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현재 수료생 2600여명을 배출했다. 서울시는 한국 관광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시는 다음 달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리는 ‘서울 서머세일’을 앞두고 25일 중국 항저우에서 대규모 관광설명회를 개최했다. 시는 지난달 중국 칭다오에서 관광설명회를 개최한데 이어 8월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관광설명회를 열어 최근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동남아 관광시장을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조현석·강동삼기자 hyun68@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공공성 외면한 경쟁체제 동의 안해…혁명?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게 낫다

    →왜 정치를 하는가. -정치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개인적인 문제보다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양극화와 저출산 등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자유시장경제 위협 요소를 정치가 제거해야 한다. →언제까지 정치를 하고 싶은가. -재선은 하고 싶다. 많이 떨어져 봐서 초조함은 없다. 다만 재선을 한다면 강물을 거스르는 한 마리 연어에 그치지 않고, 건전한 보수가 신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본다. →재선이 가능하다고 보나. -내년 총선이 정당 대결 투표로 가면 힘들다. 능력 있는 국회의원은 살려 놓자는 기류가 형성된다면 기대해 볼 수 있다.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중도 실용론자다. 자유민주주를 강조하는 게 보수이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게 진보라면 보수에 가깝다. 하지만 공공성을 외면한 채 개인의 경쟁만 강조하는 보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나. -아내 덕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투옥·낙선 등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아내는 “당신은 공공적 인간”이라며 배려해 줬다(김 의원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는 고졸의 구로공단 노동자 출신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의 신념이 변했나. -운동할 때는 혁명을 꿈꿨다. 하지만 정치는 긍정적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다. 작은 한 걸음이 선명하기만 한 정체보다 낫다. →어떤 정치를 꿈꾸나 -정치 축제를 벌이고 싶다. 6·25 참전 용사, 구로공단 여공들, 중동의 건설 노동자, 민주화 투사들이 모두 어우러지는 축제 말이다. →정치적 스승은 누구인가. -정치인의 길로 인도한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존경한다. 장기표 선배님은 나의 경직된 사고를 깨웠고,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선 한국 경제를 보는 안목과 지식을 배웠다. 요즘은 안철수 교수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지 않았나. -한 분을 택했으면 아마 3선 의원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제정구 전 의원의 가르침대로 지역 정치·보스 정치를 깨기 위해 민중당에 참여했다. →한나라당과 잘 맞는다고 보나.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바꿔 나가면 된다. 한나라당을 개혁하는 게 정치 개혁의 지름길이다. →한나라당을 얼마나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나. -이제 시작이다. 건강한 보수는 항상 변방에 있었다. 진보와 대화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가 힘을 얻어야 한다. →정부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관료들에게 막힌 장벽을 뚫는 정치를 하고 싶다. 좋은 대통령을 만나 내가 설계한 공정한 시장경제를 실현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정책위 부의장으로서 뭘 할 수 있나. -국민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서민 정책을 만들고 싶다. 일자리 창출과 복지사각지대를 줄이는 예산을 짜고 싶다. →한나라당의 쇄신이 가능하다고 보나. -원내대표 경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변화를 이끌 리더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전당대회 투표 인원을 20만명 이상으로 늘려 줄 세우기를 차단하면 당 중심 세력 교체가 가능하다. →쇄신파들이 당권 투쟁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치는 권력을 누가 수임받느냐를 놓고 벌이는 경합이다. 당권 투쟁은 당연한 현상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편협한 비난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사설] 고엽제 묻은 미군이 진상 밝히고 책임져라

    주한 미군이 1978년 경북 칠곡에 위치한 캠프 캐럴에서 “독극물인 고엽제를 묻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당시 캠프 캐럴에 근무했던 주한 미군 3명이 지난 13일 미국 CBS방송 계열사인 애리조나주 지역방송 KPHO-TV에서 밝힌 내용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까닭에 듣는 우리의 귀를 의심해야 할 정도였다.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이들은 방송에서 “55갤런짜리 드럼통 250개를 부대 내에 매립했다.”며 “겉에는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라고 쓰여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아직도 그날 파묻은 것을 잊을 수 없다.”며 “자신들도 고엽제 피해자”라며 죄책감을 토로했다. 한·미 양국은 즉각적인 진상 규명과 함께 공동대처에 나서야 한다. 고엽제의 치명적 위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주저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철저하게 파악해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고엽제는 숲을 고사시키는 데 사용되는 맹독성 제초제로 인체 및 토양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미군은 1962년부터 10년 동안 베트남전쟁에서 1900만 갤런의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베트남은 여태껏 토양 복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 역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환자들을 통해 고엽제의 위험성과 파괴력을 일찍이 확인했다. 현재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3만 5363명, 후유증 의심 환자는 9만 239명에 이른다. 미군 측은 우리 정부가 요구한 사실관계를 서둘러 파악하는 동시에 현장 조사에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환경부는 우선 주변 토양과 지하수 검사를 실시해 주민들의 증폭되는 불안감을 덜어줘야 한다. 오염 사실이 드러나면 지체 없이 비상체제에 돌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미군 측은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매립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관련자들을 불러와야 한다. 특히 고엽제를 일반쓰레기 버리듯 처리했다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차원을 넘어서는 범죄행위다. 만약 그렇다면 파장은 훨씬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미군 측은 모든 책임을 떠안는 자세로 진상규명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한·미동맹에 별다른 훼손 없이 이번 고엽제 문제를 수습할 수 있다.
  •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캐나다 첫 한국계 상원의원 “한국은 희망의 상징”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9일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개막식을 한국 속담으로 시작했다. 박 의장은 오전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모인 세계 입법부 수장들에게 “여럿이 힘을 합치면 쉽게 풀 수 있다는 뜻”이라면서 각국의 공조를 강조했다. ●국회 ‘중앙홀’에 모인 의회 수장들 앞서 오전 8시 30분 개막식을 앞두고 박 의장은 8시부터 국회의사당 내 정현문 앞에서 각국 의회 정상들을 직접 맞았다. 의회 정상들은 레드카펫을 따라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말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몸싸움을 벌였던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공식 회의장이 마련됐다. 푸른색으로 장식된 회의장에는 정중앙의 대형 테이블에 각국 의회 대표들의 자리가 놓여졌다. 원형 테이블 안쪽 바닥에는 태극을 형상화한 ‘서울 G20 국회의장 회의’ 엠블럼이 새겨졌고, 회의는 9개국 언어로 동시통역됐다. 회의가 열리는 국회 본청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철통 보안·경비가 펼쳐졌다. 국회 외곽 및 경내 경비를 위해 회의 기간 4500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된다. 의장단의 근접 경호는 서울·부산·경기·울산 등 지방경찰청에서 파견한 외빈경호팀이 맡았다. 회의에 참석한 25개 의장단은 서울 하얏트·롯데·신라·프라자 등 4개의 지정호텔에 묵는다. 호텔에서 국회로 이동할 때는 현대차가 무상 제공한 ‘에쿠스 VS 380’을 이용했다. 캐나다 최초 한국계 상원의원인 연아 마틴 의원은 회의 도중 “한국 태생으로 캐나다 대표로 한국에 와 감회가 새롭다.”면서 “한국은 희망의 상징”이라고 밝혔다. 마틴 의원은 “1972년 떠난 한국을 와보니 많이 달라졌다.”면서 “최근 캐나다 6·25 참전용사와도 한국을 방문했는데 세계가 함께하고 국민 의지가 모였을 때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목도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각국 입법 수장들의 ‘한류’ 체험 회의에 참석한 의장단은 국회 내 전통 한옥인 ‘사랑재’에서 공식 오찬을 가졌다. 전복 잡채와 인삼닭죽, 삼색전, 한우 갈비구이, 떡, 한과 등의 메뉴에 복분자주를 곁들여 올렸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산물로 천일염이 선물로 전달됐다. 사랑재에서는 한복을 입은 직원들이 음식을 날랐고 가야금 앙상블그룹의 가야금 연주가 고즈넉하게 울려퍼졌다. 박 의장은 “한옥에서 한식을 먹으며 한류에 듬뿍 젖어달라.”면서 “또 불어오는 봄바람과 함께 한류의 바람을 세계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의장의 건배제의로 참석자들은 한국어로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부딪혔다. 저녁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국회의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환영 만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대한민국은 전후 최초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첫 나라가 됐다.”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한국형 개발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회의에 참석한 의장들의 부인들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의장 부인들은 오전 가회동 북촌한옥마을에서 전통 자수 작품을 둘러보며 ‘아름답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어 직접 수를 놓는 체험시간도 가졌다. 오후에는 한남동 리움박물관에서 고미술품을 감상한 뒤 국회의장공관으로 이동해 전통 가정 문화를 체험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키신저 前 美국무 회고록서 한국전쟁 비화 공개

    키신저 前 美국무 회고록서 한국전쟁 비화 공개

    지난 17일 시판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저서 ‘중국에 관하여’(On China)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과도한 자신감, 미국의 한국 중요성 무시와 판단 착오, 스탈린의 욕심과 오판, 소련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보 경쟁 등이 복합 작용해 일어났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동아시아 미군 방어선(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북한에 ‘청신호’를 던졌다. 애치슨은 의회에서 한국이 방어선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고 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실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미국의 국제안보 개념에 한국에 대한 방어는 고려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거듭된 남침 승인 요구에 대해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해 부정적이던 스탈린이 태도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스파이망을 통해 입수된 미국의 극비 문서였다. ‘NSC-48/2’라는 이름의 이 문서는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입안해 1949년 12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한 안보정책 보고서다. 문서는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어선 외곽에 둔다.”고 명시, ‘애치슨라인’을 반신반의하던 스탈린에게 확신을 안겨 준다. 이 문서는 이중 스파이인 영국 정보부 출신 도널드 매클린을 통해 소련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스탈린이 마오쩌둥과의 회담에서 중국이 소련에 부여해온 특혜를 곧 종료시킬 것임을 통보받은 것도 남침 승인의 한 요인일 수 있다. 스탈린은 다롄항 사용권을 잃을 경우 대안으로 통일된 한반도의 부동항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어 했을 법하다. 그러면서도 음흉하고 조작에 능한 스탈린은 나중에 혹시 일이 잘못됐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는다. 그는 김일성에게 유럽 쪽을 방위하느라 여력이 없다며 “소련으로부터 큰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정 도움이 필요하다면 마오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마오는 타이완을 정복할 때까지는 전쟁을 피하고 싶었지만, 김일성이 스탈린의 승인을 받았다고 하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소련에 빼앗길 것을 우려해 마지못해 동의했다. 김일성은 마오가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냐고 묻자 북한군과 남한 내 빨치산의 공조만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거만하게 말했다. 애치슨라인의 목적은 중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소련을 견제하려는 계산이 담겨 있다. 애치슨은 중국은 소련과 분리된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와 같은 노선을 밟아야 한다며 스탈린의 신경을 자극했다. 스탈린은 마오에게 애치슨의 연설이 중상모략이라고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할 것을 종용했지만, 마오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목표가 부재했다.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물리치는 것까지가 목표인지, 북한군을 궤멸시키고 통일을 시키는 게 목표인지 좌표가 없었다. 이에 따라 군사작전의 결과가 정치적 판단을 이끌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에야 트루먼 행정부는 한반도 통일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한다는 입장을 택했다. 마오가 한국전 참전을 결심한 시기는 미군이 1950년 10월 38선 이북을 넘어 두만강으로 북진했을 때가 아니라 미군이 참전을 결정한 때부터였다. 미군 개입은 바로 북한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장도영 美플로리다서 치매 투병… 군부가 정착지 정해줘”

    “장도영 美플로리다서 치매 투병… 군부가 정착지 정해줘”

    5·16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88)씨가 현재 미국 플로리다에 생존해 있으며, 치매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5·16 당시 모호한 처신으로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5·16 성공 후 혁명세력에 의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장관, 내각수반에까지 추대됐으나 결국 반혁명 모의 혐의로 숙청돼 미국으로 쫓겨났고, 근래 5·16 관련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생사와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다. 5·16 당시 육군 6군단장이었던 김웅수(88)씨는 15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자택에서 기자와 만나 “얼마 전 버지니아에 사는 장도영씨의 친척으로부터 들었다.”면서 장씨가 투병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김씨는 “5년 전 내가 플로리다 올랜도 근교의 장씨 집을 찾았을 때는 장씨가 건강했는데, 몇년 사이 건강이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5·16 당시 반혁명분자로 몰려 1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풀려난 뒤 군사정권의 간접적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김씨는 “장씨와 나는 1962년, 같은 해에 미국으로 왔다.”면서 “나는 건강이 안 좋아 공기가 좋은 워싱턴 주 시애틀로 갔고, 장씨는 한국 사람이 적은 미시간 주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미국 내 정착지는 사실상 혁명정부가 정해준 것”이라며 “혁명정부는 장씨가 한국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무슨 사단을 일으키는 것을 경계한 것 같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장도영씨는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정착했으며 부인과 단 둘이 지금껏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장씨의 부인은 과거 서울의 유명 병원인 ‘백내과’의 딸”이라면서 “장씨 가족의 생계는 주로 유학생 출신이었던 장씨의 부인이 꾸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장씨가 전 부인과 낳은 아들은 한국 재벌가 딸과 결혼했다.”고 했다. 김씨는 “6년 전인가 장씨가 버지니아주 친척 집을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그를 봤다.”면서 “당시 버지니아에 사는 교민 몇 명과 장씨를 만났는데, 시종 5·16 때 자신의 처신에 대한 변명만 늘어놓더라.”라고 했다. 김씨는 “장씨가 5·16 때 취한 처신 때문에 그를 안 좋아해서 미국 생활 중 적극적으로 그를 찾지는 않았다.”고 했다. 장씨는 김씨와의 대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혁명세력에 대한 원망을 나타내지는 않았다고 한다. 장씨는 1968년 일시 귀국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만났으며, 박 전 대통령의 권유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던 현지 한국부대를 시찰한 적도 있다고 김씨에게 밝혔다고 한다. 장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로당 전력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구명운동을 해준 인연이 있으나, 5·16 때 혁명세력에게 자진해산을 종용했다.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진압은 하지 않았다. 그는 ‘참모총장’이란 간판이 필요했던 혁명세력에 의해 떠받들어졌으나, 결국 2개월 뒤 김종필씨 등 소장파에 의해 투옥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MB “韓 반도체·자동차 - 佛 소재 결합땐 최강” 코리아 세일즈

    MB “韓 반도체·자동차 - 佛 소재 결합땐 최강” 코리아 세일즈

    이명박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오전 파리 개선문의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면서 프랑스 공식방문 첫 일정을 시작했다. 개선문에는 2004년 프랑스의 6·25 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이 설치돼 있어 한국과 프랑스 양국에는 혈맹관계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어 프랑스 경제인연합회 본부에서 열린 한·프랑스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적극적인 ‘코리아 세일즈’에 나섰다. 간담회에는 아레바, 알스톰 등 프랑스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정만원 SK 부회장 등 양국 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양국의 경제 규모와 경제 협력의 잠재력에 비해 그간의 교역과 투자가 기대에 못 미친다.”면서 “여러분들이 더 노력해 주신다면 5년 이내에 양국 교역이 지금의 2~3배로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는 기초 소재·항공우주·방위산업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한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정보통신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라면서 “서로의 강점을 결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에는 엘리제궁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겸 오찬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오는 11월 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로 채택된 ‘에너지와 식량 가격 안정’에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회담에서 파리 남부의 시테 위니베르시테(국제학생기숙사촌)에 한국관을 건립할 수 있도록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정부가 제공하는 한국관 건립 부지는 6000㎡ 정도이며,우리 정부가 건축비를 들여 200실 규모의 한국유학생 전용 ‘한국관’이 지어질 계획이다. 한편 김윤옥 여사는 양국 정상이 회담하는 동안 모델 출신인 프랑스 대통령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와 별도로 환담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이 대통령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잇따라 접견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파리 7대학을 방문해 예술·문학·철학·인문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7대학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한국학과를 설립한 곳으로, 이 대학 벵상 베르제 총장은 프랑스 지식인을 중심으로 협회를 결성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타당성을 역설해 왔다. 이 대통령은 학위수락 연설에서 “이 학위가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자 프랑스가 대한민국에 보내는 깊은 이해와 신뢰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따뜻한 형제애가 앞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MB “GGGI, 개도국 녹색성장 기여할 것”

    MB “GGGI, 개도국 녹색성장 기여할 것”

    3박 4일간의 독일방문 일정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오전(현지시간) 덴마크를 국빈 방문해 본격적인 ‘녹색외교’에 돌입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엔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최초의 국제기구가 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의 첫 해외지사인 코펜하겐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덴마크 공대 내 리소센터에 설립된 사무소의 개소식에는 프레데리크 덴마크 왕세자가 동행했다. 이 대통령은 “코펜하겐은 약 1년반 전 GGGI 설립계획을 발표한 장소로, 이런 의미 있는 곳에 첫번째 해외사무소를 개소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코펜하겐 사무소의 녹색기술을 매개로 민·관협력이 활성화되면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 지원활동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개도국들이 GGGI가 자국의 녹색성장 정책 개발을 지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개발의 패러다임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개도국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12일에는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덴마크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공동성명’과 ‘한·덴마크 녹색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개소식 참석에 앞서 이 대통령은 왕세자궁에서 세계적인 완구기업인 레고(LEGO)를 비롯해 풍력 세계 1위인 베스타스, 펌프 세계 1위인 그런포스 등 덴마크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참석한 기업들은 한국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할 예정인 곳들이다. 이 대통령은 “덴마크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을 갖춘 기술강국이자, 녹색시장 선진국”이라면서 “양국의 교역구조가 상호보완적임을 고려할 때 이번 국빈방문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녹색성장 분야 협력증진과 더불어 양국 간 교역과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덴마크의 주상복합형 환경친화 주택단지를 방문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으로부터 외국 국가원수와 외국 왕족에게만 수여하는 최고훈장인 ‘코끼리 훈장’을 받았다. 코펜하겐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英 해리왕자가 빈라덴 사살 보복 표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에 대한 보복으로 일부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들이 영국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자를 노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인터넷판은 8일(현지시간) 영국의 급진 이슬람 단체인 ‘반(反)십자군 무슬림’(MAC)이 홈페이지를 통해 해리 왕자를 혐오하는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무슬림 급진주의 단체들이 해리 왕자를 빈라덴의 죽음에 대한 보복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MAC가 홈페이지에 올린 ‘나치주의자 해리’라는 제목의 3분짜리 영상에는 해리 왕자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10주간 영국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당시 모습이 나온다. 아프간전 복무 동영상에 이어 2005년 해리 왕자가 한 파티에 나치 군복을 입고 등장했던 사진이 화면에 나오는 것으로 영상은 끝난다. 신문은 문제의 동영상이 최근 영국 육군항공대 대위로 진급한 해리 왕자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기 위해 제작됐고 실제로 유튜브에 소개된 동영상에는 이에 동조하는 과격한 내용의 답글들이 달렸다고 지적했다. 한 네티즌은 “알라가 해리를 파괴하기를”이라고 썼고 또 다른 네티즌은 “그가 지옥에서 썩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영국의 한 보안소식통은 “해리 왕자는 불가피하게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위험이 커질수록 그에 대한 경호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MAC 대변인 안젬 추다리는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참전과 관련해 영국 왕실과 해리 왕자에 대한 분노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다리는 문제의 영상이 해리 왕자에 대한 테러를 선동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자신들은 군사적 행동이 아닌 정치적 행동을 추구한다고 해명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김상연 워싱턴특파원

    미국은 무서운 나라다. 테러를 저지르고 가뭇없이 사라진 범인을 10년 만에 기어이 찾아낸 정보력이 섬뜩하고, 전광석화처럼 작전을 뚝딱 해치운 군사력이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이 ‘할리우드적 스펙터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미국이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이다. 그들은 시신을 물로 씻기고 하얀 천으로 감싼 뒤 이슬람식으로 장례를 치러줬다. 정말 그렇게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했다고 밝힌 게 중요하다. 3000여명의 국민을 죽인 ‘나라의 원수’라면 능지처참해도 분이 안 풀리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미국은 망자에 대한 예를 갖췄음을 애써 부각시켰다. 람보의 덩치를 가진 나라의 이런 소심한 뒤처리는 반미 감정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에서 나왔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 그 감성의 상황에서 어쩌면 그토록 ‘드라이한’ 이성적 계산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미국이란 나라가 소름 끼친다. 어떤 나라의 의사결정이 이성과 감성의 배합으로 이뤄진다고 할 때,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성의 비율이 큰 판단구조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참혹한 시신 사진이 이슬람권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사진을 (승리의)트로피로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정말 그런 나라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토머스 윌슨 대통령은 “승리 없는 평화”를 주장한다. 미국은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으면서도 후환을 우려해 패전국을 가혹하게 징벌하는 데는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성적 판단은 다른 승전국들에 의해 무시됐고, 이는 결국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미국은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등을 빼앗을 때도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방식을 구사한다. 전승국이라면 그냥 눈을 부라리며 새 땅을 꿀꺽하면 될 텐데 굳이 멕시코에 돈을 주고 구매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후환의 싹을 잘라 버린 셈이다. 미국은 판단을 내릴 때 머릿속에서 희로애락은 사라지고 딱딱한 계산기만 남는 것 같다. 미국의 ‘이성으로 판단하기’는 역설적으로 지금껏 북한 정권의 생존에 도움을 줘 왔다. 만약 미국이 조금만 더 감정적인 나라였다면 판문점에서 미군이 북한군의 도끼에 맞아 죽었을 때 평양을 폭격했거나, 그보다 앞서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참전했을 때 베이징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머릿속에 북한 침공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게임이다. 북한은 석유가 나는 금싸라기 땅도 아닌 데다 중국이라는 거구의 후견인이 뒤에 버티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북한은 미국의 ‘이성으로 판단하기’로 인해 치명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때문이다. 최근 미군 수뇌부는 “북한은 5년 안에 미 본토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 북한은 점점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우려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성으로 사고하는 미국의 이런 우려를 허풍이나 과장, 엄살과 같은 감성적 언어로 해석하면 오산이다. 북한이 핵과 단거리 미사일로 동북아에서 장난치는 것과 미 본토를 위협하는 ICBM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이 감성적인 국가라면 ‘설마 북한이 우리한테 쏘겠어. 허풍이겠지.’라면서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을 하는 미국은 단 1%의 확률이라도 미 본토로 미사일이 날아올 것이라는 계산을 내리면 북한을 반드시 손보려 할 것이다. 그때는 중국이건, 어떤 나라건 아무리 반발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미국의 전쟁사는 웅변하고 있다. 벼랑끝 전술은 ‘고위험 고수익’의 매력이 있지만, 단 한번의 아차하는 실수로 파국을 맞는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치명적이다. 이 위험성을 무시했다가 미국한테 사담 후세인도 당했고, 오사마 빈라덴도 당했다. carlos@seoul.co.kr
  • 박근혜, 원내대표 경선 전날 어떤 얘기…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방문 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어서 현안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마침 당내 역학구도의 향배를 가를 원내대표 경선 전날이어서 결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전 대표가 특정한 주제 없이 여러 현안을 놓고 기자간담회를 갖는 것은 2009년 7월 몽골 방문 이후 대략 2년 만이다. 특사 대표단으로 동행한 이정현 의원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동행 취재 중인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면서 “다만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해 온 지금까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5일이라는 시점이 공식적인 특사활동이 마무리되는 때여서 그렇게 정한 것일 뿐, 다른 고려는 없었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간담회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진행 중인 특사 활동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겠지만, 4·27 재·보선 이후 여권을 강타한 국정 쇄신책 등 현안에 대한 언급도 어떤 수준으로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는 4·27 재·보선 패배와 관련한 여권 주류의 ‘2선 퇴진론’, ‘박근혜 역할론’, 정부·청와대 쇄신 등을 두고 격론이 펼쳐졌었다. 나아가 박 전 대표는 대권 행보를 내다보게 할 큰 틀의 구상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 전 대표는 이날 아테네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등을 차례로 예방하고 수교 50주년을 맞은 양국 간 우의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아테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씨줄날줄] 인간방패/박대출 논설위원

    1945년 4월.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 일본은 소년병 1만명을 최전방에 세웠다. 그들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갔다. 미군은 인간방패(Human Shield)라고 불렀다. 인간방패란 말이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후 전쟁사에서 공식 용어가 됐다. 하지만 전례는 꽤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은 소련 민간인 포로들을 앞줄에 세웠다. 스탈린은 단호했다. “적을 돕는 자는 적이다.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 부대도 적이다.” 포로들 역시 인간방패였다. 칭기즈칸은 포로들을 화살받이로 삼았다. 인간방패는 오래된 전술이다. 미군이 영어 표현으로 쓴 뒤부터 공식 용어가 됐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강제성을 근간으로 한다. 비인도적이고 반인륜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발적인 인간방패들이다. 우리 학도병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은 27만 5200명에 이른다. 군사편찬연구소의 한국전쟁 통계집에 나온다. 학도병은 총알받이를 자처했다. 고대 스파르타와 아테네 전쟁 때도 전례가 있다. 아테네 부녀자들은 손을 묶고 성을 둘러쌌다. 화살받이였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다. 자기 희생이다. 상반된 사례는 진행형이다.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포로를 인간방패로 내세웠다. 탈레반 반군은 파키스탄 주민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장갑차에 묶었다. 강제적 사례들이다. 반면 반전 운동가들도 애용한다. 인간방패프로그램(HSP), 이라크 평화팀(IPT) 등은 국제적인 단체다. 그들은 이라크전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했다. 자발적 사례들이다. “오사마 빈라덴이 부인을 인간방패로 삼았다.” 미국은 이 발표를 하루 만에 뒤집었다. 빈라덴은 비무장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악관 측은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를 악으로만 몰려다가 곤혹스럽게 됐다. 이 때문에 의혹이 꼬리를 문다. 처음부터 사살을 의도했다는 의문을 낳았다. 국제법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부인이 빈라덴 앞에 선 이유도 확실치 않게 됐다. 강제적인지, 자발적인지. 지난 1월 아덴만 여명작전 때가 연상된다. 특수전 요원들이 피랍 선원 21명을 구출했다. 합참은 모두 무사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위독했다. 생과 사를 넘나들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했지만. 무혈 작전을 부각시키려다가 힘이 너무 들어갔다. 과잉 홍보는 효과를 반감케 한다. 괜스레 의혹을 낳을 수도 있다. 솔직하면 탈이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고금의 진리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시신 공개 않고 수장 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밝혔음에도 왜 빈라덴의 시신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왜 시신을 수장시켰는지 등의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일단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빈라덴이 무슬림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슬람 전통에 따라 시신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슬람 전통은 무슬림이 사망하면 염(殮·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것)을 포함한 간단한 의식을 행한 뒤 24시간 안에 매장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슬람에선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다가 전사한 터키 군인들의 묘가 한국에 있는 것처럼 사망한 곳에 시신을 묻는다는 점에서 미국 측 해명과 차이가 난다. 외신들은 미국이 시신을 수장한 것은 추종 세력이 그의 시신을 탈취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정 지역에 매장했다가 위치가 노출될 경우 이른바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미 관리는 이와 관련, “전 세계에서 수배 대상 1순위인 사람의 시신을 받아들일 국가를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수장 위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보스턴헤럴드는 빈라덴 사살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의문점들을 2일 소개했다. 보스턴헤럴드는 무엇보다 빈라덴에게 걸려 있는 2500만 달러나 되는 현상금을 받게 되는 사람, 즉 그를 사살한 사람의 이름이 공개된 적이 없으며, 빈라덴을 재판에 세우지 않기 위해 생포가 아니라 사살을 택한 것은 아닌지 등을 꼽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미국 한국전쟁 참전용사 2인 오바마정부 첫 최고무공훈장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 2명에게 명예훈장을 안겼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앤서니 카호오하노하노, 헨리 스벨라 일병에게 숨진 지 60년 만에 최고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카호오하노하노, 스벨라 일병은 각각 1951년, 1952년 전투 도중 숨졌다. 스벨라 일병은 1952년 적군과 사투를 벌이다 진지 안으로 적군의 수류탄이 날아들자 전우들을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졌으나 깨어나지 못했다. 카호오하노하노 일병도 1951년 동료들의 후퇴를 돕다 적군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 명예훈장은 미군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무공훈장으로 1861년 미국 의회가 승인한 이후 지금까지 3400명이 받았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명예훈장을 받은 사람은 이들을 포함, 총 135명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전쟁 참전 병사들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한 것은 처음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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