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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25일 첫 삽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25일 첫 삽

    서울 광화문 국가상징거리의 중심이 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조감도) 건립이 첫발을 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5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옛 문화부 청사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착공식을 갖는다.”고 23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를 기록하고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역사박물관을 짓겠다.”고 밝힌 뒤 2년여 만에 첫 삽을 뜨게 됐다. 개관 예정은 2013년 2월이다. 착공식에는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와 독립유공자, 정부수립 유공자, 민주화운동 및 한국전쟁 참전 인사, 독일파견 광부·간호사, 경부고속도로 건설 관계자, 1960∼7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 해외파병 군인, 청소년단체 대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각 분야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 400여명이 참석한다. 이날 사전행사로 옛 문화부 청사를 개방해 청사 이력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미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준비됐다. 또 축시 낭송과 기원무, 전통 터다지기, ‘역사의 나무’에 희망 메시지 달기 등 식후 행사도 마련됐다. 주로 근·현대사의 성장과정에 주안점을 두게 될 박물관은 대한민국 태동·기초 확립·성장과 발전·선진화 및 세계로의 도약 등 4개의 대주제와 13개의 중주제를 토대로 조성된다. 이에 따라 각 전시관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망라한 실물 전시는 물론 세계 수준의 정보기술(IT)과 문화기술(CT)이 융합된 디지로그 등 첨단 전시기법을 동원해 대한민국 발전사의 다양한 장면을 소개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현 문화부 청사를 리모델링하되 별관 부지 일부를 증축하는 형식으로 조성된다. 부지는 6446㎡(약 2000평), 연면적은 9500㎡(약 3000평)다. 건축방향은 울타리 없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광화문광장 및 열린시민광장과 연계한다. 아울러 바로 옆 미국대사관이 예정대로 2012년 이전할 경우 대사관 부지와 건물 등도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진현 건립위원장은 “미국대사관까지 포함한 구상을 하고 있으나 이전 시기가 불투명해 우선 1단계로 문화부 청사만 리모델링하기로 했다.”며 “옛 문화부 청사는 상설 전시, 미 대사관은 특별전시 공간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진짜’ 해리 포터의 무덤이 관광명소로 인기?

    “해리 포터의 무덤에 놀러오세요.” 최근 이스라엘의 한 공동묘지는 때 아닌 관광객들로 난감함을 표하고 있다. 이스라엘 람레 지역의 한 공동묘지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묘는 다름 아닌 ‘해리 포터’씨의 묘다. 실제 비석에는 정확히 ‘Harry Potter‘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를 보는 관광객들은 저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 이 묘의 진짜 주인은 영화 속 꼬마 마술사 해리 포터가 아니라, 1939년에 사망한 영국 군인이다. 묘지 관리소 측은 “뒤늦게 이 묘의 주인 이름이 유명 영화의 주인공 이름과 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떼 아닌 관광명소가 됐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지 셀 수가 없다.”고 놀라워했다. 이스라엘 국내 여행자들의 가이드를 맡고 있는 론 펠레드는 “사실 영화 속 ‘해리 포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름 자체가 시장성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숨진 군인인 해리 포터는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나 1938년 영국 군대에 입대했다. 그는 영국 위임통치 하에서 팔레스타인 전쟁에 참전했다가 입대한 다음해인 1939년 1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묘지 관리소 측은 이 묘비와 사망한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약 5년 전부터 시작됐으며 이젠 여행 사이트에도 올라있을 만큼 명소가 됐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美 브라운백 상원의원에 수교훈장 광화장

    샘 브라운백(캔자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한·미 동맹 발전과 북한 인권 개선 등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는다. 한덕수 주미 대사는 17일 저녁(현지시간) 대사 관저에서 브라운백 의원에게 한국 정부를 대표해 수교훈장 광화장을 전달한다. 브라운백 의원은 1996년부터 14년째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 한인 이민 100주년과 한·미 동맹 50주년 기념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지 서한에 참여하는 등 한·미 관계 증진에 힘써 왔다. 상원 내 대북 강경파인 브라운백 의원은 북한자유법안, 탈북 고아 입양법안을 발의하는 등 북한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브라운백 의원은 지난 2일 중간선거에서 캔자스 주지사에 당선됐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의 존 워너 전 상원의원,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노력했던 고(故) 톰 랜토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 등에게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오바마 그림책 ‘딸에게 보내는 편지’ 출간

    오바마 그림책 ‘딸에게 보내는 편지’ 출간

    “너희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말해 줬던가? 멀리서 들려오는 너희들의 발소리가 아빠의 하루에 얼마나 활력을 주는지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대선 기간부터 지난해 취임 전까지 틈틈이 쓴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16일(현지시간)부터 시판된다. ‘나는 그대를 노래합니다-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이 그림책은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 말리아(12)와 사샤(9)에게 미국의 위인 13명의 삶을 들려주며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이야기를 31쪽에 걸쳐 싣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선정한 13명의 위대한 미국인은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덕목들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대통령에서 인디언 추장, 과학자, 운동선수, 가수, 화가, 우주인 등 다양하다. 화실에서 뛰쳐나가 사막의 꽃과 나무 껍질, 동물들의 뼈를 그린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창의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총명함), 첫 흑인 메이저리거가 된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용기), 미국에 끝까지 대항했던 전설적인 인디언 추장 ‘앉아 있는 황소’(치유자),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운동가가 된 헬렌 켈러(강인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설적인 재즈 가수 빌리 할리데이, 베트남 참전 기념비로 유명한 천재 건축가 마야 린, 사회사업가 제인 애덤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 노동·인권운동가 시저 차베스, 노예 해방에 앞장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도 담겼다. 오바마 대통령의 두 딸이 애견 보를 데리고 풀밭을 산책하는 모습이 실린 표지와 삽화는 로렌 롱이 맡았다. 인세 수입은 전액 전쟁 중 전사했거나 부상당한 미군 장병들의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될 예정이다. 책값은 17.99달러.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정대협 오늘부터 20주년 행사

    조선왕실의궤 등의 반환을 두고 떠들썩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의 한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7일부터 3일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우선 17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20주년 기념 수요시위를 연다. 19일에는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고마워요, 함께 해요, 어우러져요’라는 이름으로 기념 문화제도 연다. 18일에는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201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말한다’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전소소 중국 허베이(河北)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이 중국 문서기록소에서 발굴한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발표한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 대신 내놓은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 에 대한 비판적 분석 작업도 함께 이뤄진다. 학술대회 직전 다나카 노부유키는 아버지 일기장 등을 기증한다. 중일전쟁에 참전한 다나카의 아버지는 이를 참회하면서 위안부 얘기 등을 담은 일기장을 남겼는데, 이를 사죄의 의미로 한국에 기증하는 것이다. 또 피해자 증언으로 만든 3D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도 상영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람의 몸과 꽃·나무·자연이 서로 엉기며… ‘나’의 숲은 희망을 꿈꾼다

    사람의 몸과 꽃·나무·자연이 서로 엉기며… ‘나’의 숲은 희망을 꿈꾼다

    소설가 박완서가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내 살갗을 저미는 것 같았다.’라고 평했던 김훈(52)의 문장이 신작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 펴냄)에서는 훨씬 누그러진 느낌이다. 주인공인 화자가 1인칭 여성이어서일까. 디자인회사에 다니는 미혼인 ‘나’(조연주)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다. 하위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그 작은 직권으로 성병에 걸린 접객업소 여종업원을 협박하거나 검진증을 팔아먹는다. 단속정보를 미리 빼돌려 영업정지 처분을 막아주거나 풀어주면서 벌어온 돈으로 미술대학 디자인과에 합격해 서울에 올라온 연주에게 방 두칸짜리 아파트를 구해준다. 4년간에 걸친 등록금, 미술 재료비, 용돈 그리고 첫 직장에 취직했을 때 출퇴근용으로 쓰라고 소형 자동차도 마련해준다. 6급 지방 공무원인 아버지가 뇌물죄로 구속 수감되면서 더 이상 이 세상과 부딪치거나 비비적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연주는 편안해한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사직한 연주는 계약직 공무원 공채 선발과정을 거쳐 최북단 민간인 통제선 안 국립 수목원의 세밀화가로 채용된다. 민통선 검문소에서 연주는 김민수 중위를 처음 만난다. 연주가 수목원에서 패랭이꽃, 목련, 작약꽃, 서어나무, 겨울눈 등의 세밀화를 수채화로 그리는 동안 아버지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일곱달 만에 뇌일혈 발작으로 세상을 뜬다. 김 중위의 부탁으로 정전 50주년 기념 전사자 유해발굴단이 찾아낸 뼈 그림도 그린다. 수목원의 예산 부족으로 재계약이 되지 않은 연주는 서울로 돌아온다. 연주의 핸드백에는 제대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한 김 중위의 명함 한장만이 들어 있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번도 ‘사랑’이나 ‘희망’ 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내 젊은 날의 숲’에서도 김 중위는 연주에게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없이 자신의 개인사를 술술 말한 뒤 뼛조각 이야기를 하고 명함을 건넨다. 주인공이 수목원에서 일하는 화가인 만큼 소설에는 사람의 몸과 꽃,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 서로 엉기어 드는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미술학원 원장의 자살이나 공무원의 비리 구조, 연주 아버지의 병세, 유해발굴단의 작업을 묘사할 때는 잠시 소설 주인공이 화가에서 사회부 기자로 바뀐 듯한 착각이 든다. 6·25전쟁에 참전한 병사의 편지와 삐라의 내용은 자세하게 인용한 출처를 밝혀놓았다. 최근 작가들이 소설에 다른 책이나 기사의 내용을 인용했다가 표절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어 무심하게 보아 넘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단편 ‘언니의 폐경’을 제외하면 여성 주인공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일이 흔치 않은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은 “여생의 시간들이, 사랑과 희망이 말하여지는 날들이기를 나는 갈구한다.”라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잿더미서 일군 나라… G20 주최국 감격”

    “잿더미서 일군 나라… G20 주최국 감격”

    “잿더미에서 일군 나라예요. 20대 강국 안에 든 것도 우리세대로서는 기적처럼 느껴지는데, 주최국이라니 감격스럽습니다.” G20 정상회의 최고령 자원봉사자인 최재원(80)옹은 11일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옹은 이달 8일부터 지하철 2호선 을지로 4가 전철역에서 하루 4시간씩 외국인들을 상대로 노선 및 관광지·유적지를 안내하고 있다. ●“콘사이스 씹어먹으며 영어 공부” 그는 자원봉사자 지원 동기에 대해 “국제적인 행사가 열리지만 내가 별로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잘하고 좋아하는 게 영어라서 지원했다. 거창하게 의미부여 할 것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겠다.”고 말했다. 최옹이 영어를 처음 접한 건 1948년. 62년째 영어를 쓰고 있다. 요즘도 매일 영어단어를 외우는 ‘영어 마니아’다. 2007년 8월부터는 집 주변에 있는 노원정보도서관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화·목요일) 무료로 영어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내가 아마 콘사이스(영어사전)를 씹어먹으면서 공부한 첫 세대일 것”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그의 영어는 더욱 깊어졌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그는 육군 사병으로 입대, 1957년 제대했다. 제대할 때쯤 28사단에서 근무하다 당시 동두천에 주둔해 있던 미군 간부들의 눈에 띄어 제대한 직후 행정서기로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언어·문화 등의 차이로 미군과 국군의 다툼이 심했지만, 통역을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초를 서면서 영어단어를 중얼거리다 고참한테 ‘빠따’를 맞을 만큼 영어를 좋아했던 그가 돋보였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1982년까지 미 8군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그 뒤 영어실력을 살려 주로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2년 퇴직, 부인과 함께 서울 월계동의 한 아파트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노동계 등 일부 시민단체가 G20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해야 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최옹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같이 살아가는 게 선진국 아니겠느냐.”면서도 “이번 회담이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실무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돈·재능 자꾸 써야 썩지 않아” 또 G20에서 잘사는 나라가 못사는 나라를 돕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문제가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가끔 TV를 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 등 못사는 나라에 가서 우물도 파 주고 하는데 참 흐믓하다.”면서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변해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또 “강대국이 강대국인 데에는 이런 활발한 기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돈이건 재능이건 자꾸 써야 썩지 않고 생겨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누드 브리핑] “터키에서 목민관상 되새겨”

    “예산을 따내기 위해 이리저리 구걸하러 뛰는 내 모습이 마치 몰락한 양반의 머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이 10일 “구청장이란 직업은 3D 업종인 것 같다.”면서 “공무원이란 직업이 체질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남들에게 입에 발린 소리를 못하고 입바른 소리만 하는 성격 탓이다. 1980~83년 건설부 주택정책과, 1983~92년 서울시 건설관리국·기획관리실·도시계획국·주택국에서 오래 사무관 생활을 한 연유도 자신의 이런 대쪽(?) 같은 성격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까닭에 승진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언제나 털털하고 소탈한 성격을 잊지 못하는 시청 공무원 후배들이 많다. 그는 6·2지방선거에서 거창한 슬로건 대신 정책자문단을 통해 “광진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먹고살 수 있나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건국대병원을 기점으로 의료관광서비스산업 육성, 동쪽 관문으로서 광나루를 기점으로 한 대표적인 트렌드 거리 조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내놓을 것을 요청한 상태다. 그는 광진구를 “하얀 도화지처럼 잠재력이 뛰어난 도시”라고 비유했다. 김 구청장은 바로 이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 구청장은 자매도시 터키 콘야시 에레일리구(區)의 자매공원 ‘광진로’ 준공식 참석차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 현지에 다녀온 뒷얘기도 들려줬다. “행사에서 애국가를 불러 주고, 도보행진 때 유치원생들이 직접 그린 태극기를 흔들었는데 눈물이 절로 났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참전용사 10명이 형제의 나라라며 집에 초대하는 등 환대를 해주는 모습에서 주민에게 감동을 주는 머슴이 되겠다는 목민관상을 또 한번 떠올렸습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참전용사들 불굴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참전용사들 불굴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곳곳에서 파란 눈의 이국인들이 한반도를 찾아 얼굴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특히 그해 겨울 영하 40℃의 혹한 속에 개마고원 일대에서 치러진 미 해병 1사단의 장진호 전투는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미 해병 1사단은 7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이 겹겹이 에워싼 죽음의 협곡지대를 유엔 공군의 항공근접지원 아래 돌파하면서 중공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중공군은 그날의 피해로 함흥 지역 진출이 2주간 늦어졌다. 덕분에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참전과 혹독한 추위로 어려움에 처했던 국군 1군단과 미 10군단 장병 10만여명은 큰 피해 없이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한 기념행사가 10일 열렸다. 국방부가 주관한 6·25전쟁 60주년 행사 중 마지막 행사로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다. 국방부와 한·미 연합사가 함께 준비한 행사에는 장진호 전투의 기억을 생생히 가지고 있는 파란 눈의 참전용사를 비롯해 2000여명의 한국과 미국인들이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광일 국방정책실장이 대독한 기념행사 축전에서 “그들은 불굴의 정신을 가진 참군인이었고 자유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마침내 용은 잠에서 깨어난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사뭇 놀랍다. 올들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 세계 2위로 솟아올랐다. 사상 최대인 관람객 7300만명의 상하이엑스포도 거뜬히 치러냈다. 어디 그뿐인가. 드넓은 품으로 전세계에 상품과 자본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480개가 진출했다니, 중국이야말로 현대판 엘도라도(黃鄕)가 아닌가 싶다.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용틀임은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환율전쟁을 불사할 결기를 보였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희토류 수출 금지란 비장의 카드로 일본의 얼도 반쯤 빼놓았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엊그제 영향력 세계 1위 인물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꼽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나선 이래 중국의 외교기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하지만 “칼날의 빛을 감춘 채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라.”던 덩의 유지는 벌써 잊은 것인가. 후진타오-원자바오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뜻)를 표방하더니 슬슬 ‘화평’이라는 접두어를 뺀 채 ‘중화굴기’(中華堀起)를 전면에 내거는 인상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의 외교기조는 이제 ‘돌돌핍인’( 逼人·기세등등하다는 뜻)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되살아난 중화의 위용에 화들짝 놀랐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국제적 대북 제재 분위기가 중국이 제동을 걸자 슬그머니 가라앉을 때부터 말이다. 지난 8월엔 ‘주체의 나라’라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의 세자책봉을 받으려고 병든 몸을 이끌고 방중길에 올랐다. 얼마 전엔 5세대 최고지도자 자리를 예약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6·25 참전이 정의로웠다고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새삼 제기된다. 우리는 중국과 반만년 역사를 통해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사대교린정책’이란 수사와 함께 굴신(屈身)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랴. ‘공룡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이라면. 이미 한·중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외면하려야 할 수 없는 처지다. 굳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외교 레토릭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우리와 중국과의 교역규모는 일본·미국과의 교역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 중국 내 외국인 학생 중 한국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한국 내 중국 유학생도 마찬가지 비중이다. 까닭에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이다. 위협적 요소를 줄이고 호혜적 요인을 늘리기는 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따지고 보면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더 풍요로웠던 때가 최근 수십년간 말고 얼마나 더 있었던가.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섰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던 ‘좋은 시절’(벨에포크)이 나른한 한여름의 짤막한 낮잠처럼 끝나서야 될 말인가. 글로벌 슈퍼파워로 떠오른 중국과 동렬에서 공존하려면 그들의 ‘분리통치’에 휘둘릴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촉발한 ‘한반도의 평화 훼방꾼’ 논란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시진핑 부주석 측이 그런 비외교적 언사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분단상황에서 외세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일은 애당초 삼가야 했다. 수·당과 어깨를 겨뤘던 고구려의 패망도 국력의 열세를 떠나 당시 실권자 연개소문 아들들의 분열이 결정타였다. 때마침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우리가 산업화와 정보화에 한발 앞섰다는 자만심에 빠질 게 아니라 경제력에다 기초과학과 문화를 결합한 스마트파워에서 중국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때다. 이제 ‘어둠 속에서 칼을 가는’ 일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 kby7@seoul.co.kr
  • [시론] 중국도 스마트 외교를 배워라/김승채 서울평화상 기획·연구실장 고려대 겸임교수

    [시론] 중국도 스마트 외교를 배워라/김승채 서울평화상 기획·연구실장 고려대 겸임교수

    중국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지난달 24일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뒤 이어 중국 정부도 “중국 정부의 정론 (定論)”이라고 못박고 나섰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학자들을 동원해 한국전쟁과 중국 인민의용군이 참전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은 다르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인정과 지원 아래 이뤄진 김일성의 남침이라는 사실은 옛 소련 등에서 비밀해제된 다양한 문건을 통해 이미 규명된 것이다. 중국의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한국전쟁에 대해 “6·25전쟁이 발발했고 미 제국주의가 침략했다.”는 표현으로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평화·안전을 위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막으려 북한을 지원하고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현실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국이 강대국으로 신뢰를 얻으려면 최소한 한국전쟁이 남침이었음을 인정하고, 한국전 개입은 1949년 건국한 신생 중국이 자국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결정이었다는 정도까지는 인정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 시대에 걸맞은 국격을 갖춘 나라라고 인정할 것인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지각 있는 사람으로 강한 감정 절제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시진핑 부주석이 격에 맞지 않게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주변국들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뒤에 국격 있는 중국을 만드는 데 앞장설 최고 지도자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2위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계층·지역·세대 간 불균형과 민족문제, 정치개혁 문제 등 내부 모순이 고조되는 와중에 외부 모순까지 만들려고 하는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하드 파워는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최근 중국은 소프트 파워까지 증대시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다자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공자학원 등을 세워 유교문화 등 중국의 전통 문화를 적극 홍보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중심, 미국 표준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하는 중국적 가치와 규범을 세계 표준으로 하려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하여 권위를 증대시키는 21세기의 종합국력인 스마트 파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막대한 달러 자산과 전세계가 군침을 흘리는 거대한 소비시장,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공장으로 충족될 수 있다. 그러나 공자상을 세우고, 중국 전통 가치를 선양하고, 중국어를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중국의 가치와 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 보편적인 행동 규범, 올바른 역사인식에 근거한 외교활동이 충족되어야 한다. 중국은 이미 평화로운 발전(和平發展), 조화로운 세계(和諧世界), 대국책임론이라는 훌륭한 말들을 만들어 냈다. 이 수려한 언어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 이미 30년 전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지도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코 패권을 가지려 하지 마라. 나서지 마라.(決不當頭)” 그의 말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행동 방침이 돼 왔다. 그것이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뿌리이다. 중국 지도부는 역사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고, 국격을 갖춘 중국, 친해지고 싶은 중국을 만드는 길이다.
  • “신뢰 높이려면 행정·시민 눈높이 맞춰야”

    “신뢰 높이려면 행정·시민 눈높이 맞춰야”

    염태영 수원시장이 시민들과 소통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최근 수도관 공사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일부 지역에서 흙탕물이 발생하고 단수조치가 이뤄진 데 대해서는 머리 숙여 사과했다. 염 시장은 “안전한 수돗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시장으로서 무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고 피해를 접수해 3일치 수도요금을 감면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수돗물에서 흙탕물이 나온 문제로 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염 시장이 과거의 관행과 문화를 사람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염 시장의 미래비전과 발전 전략이 하나둘씩 빛을 내고 있다. ‘따뜻한 나눔’이 뿌리를 내리고 ‘소통의 창구’도 곳곳에 마련되고 있다. 그는 “행정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시민과 행정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며 취임 이후 줄곧 현장에서 주민과 토론하고 대안을 찾았다. 수원에 변화와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기초공사를 다진 셈이다. 염 시장은 3일 “시민이 주인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생명이 존중받고, 경제적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 반가운 휴먼시티를 만들겠다.”며 “이를 위해 인구 110만명의 수원시 위상확립은 물론 기존의 행정 관행과 문화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거버넌스 행정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민과의 소통과 참여, 토론과 합의를 통한 실질적인 주민자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염 시장은 “시민들의 시정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정 주요 쟁점이나 정책에 시민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시민배심원제와 주민 스스로 마을의 주요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시민이 주인이 되는 마을 만들기’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슈가 되는 사항이나 시민 관심사항을 주제로 시 홈페이지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정책 토크박스’도 운영한다. 사람에 대한 투자 약속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그는 “의회와 공동노력으로 올해부터 초등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기로 했고, 참전 유공자들에게는 참전명예수당을, 어르신들에게는 효사랑 지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공립 보육시설과 24시간 보육시설도 확대하고 여성건강센터와 수원휴먼서비스센터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청렴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청렴은 경쟁력과 생산성의 원천이며 수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열심히 일하는 공직 분위기를 조성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시장 집무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관제도’를 도입하는 등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전국 대도시 시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염 시장은 “대도시에 걸맞은 권한과 자율성이 부여될 수 있게 다른 대도시들과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발언대] G20 성공, 시민 협력에 달렸다/김환목 안산공대 경찰경호과 교수

    [발언대] G20 성공, 시민 협력에 달렸다/김환목 안산공대 경찰경호과 교수

    2000년에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서울회의, 2005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부산회의가 열린 데 이어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ASEM 이후 5년 단위로 다자정상회의가 반복되면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경제도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였다. ASEM의 가장 큰 이슈는 IMF 경제위기 극복이었다. 50년 전 전쟁을 치른 분단국가에서 25개국이 참석한 다자정상회의 성공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ASEM을 계기로 국가 신인도가 2~3단계 뛰어오르며 경제적으로도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회의장 주변 통제로 이웃 주민과 상가 입주자들의 불편이 있었지만, 시민들은 2박 3일의 행사 동안 통제에 적극 협조했고 승용차2부제 참여율도 93.4%를 기록했다. 20개국이 참여한 부산 APEC에는 미국과 러시아 정상도 참석했다. 당시는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발발 이후 세계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뉴테러리즘의 공포에 빠져든 상황이었다. 탈레반은 이라크 참전국에 대한 테러를 공언하여 참전국인 우리나라도 테러 대상국이 될 수 있었고, 반세계화·반APEC 단체들이 대규모 집회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 여기에 항구 연안 도시의 지리적 취약 요인까지 겹쳐 빈틈 없는 경호경비가 필수적이었다. 역시 시민들의 협조 덕택에 부산 APEC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988 서울올림픽 이후 ASEM과 2002 월드컵축구대회, 부산 APEC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가장 큰 원동력은 손님을 잘 대접하는 전통문화와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행사장 안전이었다. ASEM과 APEC이 끝난 뒤 국가원수가 가장 먼저 경호안전책임자를 불러 높이 평가하고 격려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G20정상회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와 국가 신인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는 대회가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할 것이다.
  • 남측가족 보훈혜택은…생존자로 지위 변경돼도 연금혜택 불변

    ‘전사자’에서 ‘생존자’로 지위가 바뀌더라도 보훈연금과 관련 혜택이 중지되지는 않는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전사자에서 생존자로 지위가 바뀌더라도 남측으로 완전한 귀환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전사자에 준하는 예우를 해주고 있다. 국립현충원에 현재 있는 전사자 위패도 생존 사실이 확인됐지만, 국방부와 보훈처의 처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대로 유지된다. 또 이들이 남측으로 귀환하더라도 보훈처가 연금에 대한 환수에 나서지는 않는다. 원칙적으로 잘못 지급된 연금이기 때문에 환수대상이지만, 환수조치를 위해서는 본인이나 가족의 잘못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1957년 이들의 생존을 확인할 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의 일괄적인 전사 처리로 연금을 받게 된 가족들에게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 다만 귀환 후 신분이 변화되면 전사자로 지정돼서 받고 있던 유족연금 등은 중지된다. 그 대신 건강 상태에 따라 상이 또는 참전유공자로 지위가 바뀌고 국가에서 주는 훈장에 따른 대우를 받게 된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방부가 국가유공자 변경을 통보해 오면 연금을 중지하게 되지만 그 경우도 본인이 귀환했을 때 가능한 것으로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 국가로부터 전사자로서의 예우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60년만에 아버지 만난 아들 “지금껏 제사 지내왔는데…”

    60년만에 아버지 만난 아들 “지금껏 제사 지내왔는데…”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북측 90세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지금껏 제사도 지내 왔어요.”(남측 61세 아들) 지난 3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행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슬프고도 감격스러운 가족 드라마였다. 60년간 헤어져 있던 남북 이산가족 533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하지 못한 날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북측 가족 97명과 남측 436명은 3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 이어 환영만찬을 함께 하며 분단의 아픔을 달랬다. 이어 31일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점심식사를 한 뒤 2차 단체상봉을 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지난 60년간 만나지 못했거나 생전 처음 만나는 상황의 어색함도 잠시, 이들은 어느새 한 가족, 한 민족으로 묶여 있었다. 2차 단체상봉에서는 북측 사촌동생 김은숙(83)씨를 만나러 온 남측 김운한(88)씨가 서로 다른 가족으로 참가한 북측 김재국(83)씨를 어릴 적 고향에서 헤어진 8촌 동생으로 알아차리고 상봉하는 극적 인연을 보여 줬다. 특히 6·25전쟁 참전 전사자로 처리돼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렀다. 북측 최고령이기도 한 리종렬(90)씨는 전쟁 통에 입대 당시 생후 100일 된 갓난아기였던 아들 민관(61)씨를 만나 감격을 더했다. 당시 리씨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아들 이름을 지어 주고 떠났고, 민관씨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한테 받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 민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믿고 이산가족 상봉에 신경 쓰지 않다가 북측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준 덕분에 상봉을 이뤘다.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던 리씨는 10여분이 지나서야 진정된 듯 “민관아,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리씨가 북한에서 재혼해 얻은 아들 명국(55)씨도 함께 나와 남측 이복형을 처음 만났다. 역시 국군 출신인 리원직(77)씨는 남측 누나 운조(83)씨와 동생 원술(72)씨 등으로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경북 선산이 고향인 리씨는 6·25전쟁 때 청도로 피란을 갔다가 국군에 징집된 후 소식이 끊겼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스무살 때 군대에 갔다가 전사자로 통보된 윤태영(79)씨는 남측 동생 4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다가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애통해했다. 형의 전사 통보를 받았으나 그의 사망 날짜를 정확히 몰랐던 동생들은 9월 9일을 기일로 정해 형의 제사를 지내 왔다. 면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다 전쟁이 터져 국군에 자원입대했다는 방영원(81)씨는 형수 이이순(88)씨를 만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소식을 듣고 애통해했다. 방씨는 또 누나 순필(94)씨가 한달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이번에 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남북 이산가족 중 최고령인 김례정(96)씨는 북측 딸 우정혜(71)씨를 만나자 “꿈에만 보던 너를 어떻게…. 너를 만나려고 내가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혜씨는 “저는 잘 있습니다.”라며 어머니를 품에 안은 뒤 가족사진과 훈·포장 20여개를 꺼내 보여 줬다. 단체상봉 때 치매로 북측 여동생 전순식(79)씨를 알아보지 못했던 남측 전순심(84)씨는 밤새 잠시 정신이 맑아져 순식씨의 이름을 불렀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남북 가족들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눈길을 끌었다. 북측 오빠 정기형(79)씨에게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기옥(62)·기연(58)씨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떡·미역 등으로 미리 차린 생일상 앞에서 절을 올렸다. 여동생들이 내민 선물은 털신과 가죽신 등 신발 4켤레. 오빠가 60년 전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군의 짐꾼으로 따라나섰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동네 사람에게 전해 들은 기억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북측 작은아버지 윤재설(80)씨를 만난 남측 윤상호(50)씨는 재설씨의 북측 아들인 수공예 전문가 윤호(46)씨가 골뱅이를 재료로 만든 꽃병과 남측 고향집 모습을 담은 목공예를 받았다. 상호씨는 “얼굴도 보지 못한 사촌인데 정성 어린 선물을 받으니 감동적”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상봉 테이블마다 폴라로이드(즉석) 사진기로 가족사진을 2장씩 찍어 제공했다.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인화할 곳이 없어 가족들이 안타까워하자 마련한 것이다. 김미경기자·금강산공동취재단 chaplin7@seoul.co.kr
  • ‘전사처리’ 국군출신 4명 극적 상봉

    ‘전사처리’ 국군출신 4명 극적 상봉

    지난 30일부터 1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행사에 참가한 북측 상봉신청자 가운데 6·25전쟁에 참전한 뒤 전사자로 처리됐던 국군 출신 4명이 포함돼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도 북측 상봉신청자에 국군 출신 1명이 포함됐으나 이번처럼 다수가 포함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500여명으로 파악된 국군포로 현황을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은 이들을 국군포로라고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31일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앞서 교환한 북측 상봉신청자 97명 중에는 1957년 정부에 의해 전사처리됐던 리종렬(90)·리원직(77)·윤태영(79)·방영원(81)씨 등 국군 출신 4명이 포함됐다. 이는 북측이 알려온 것이 아니라 통일부와 국방부가 병적기록부 등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들은 30일 열린 첫 단체상봉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측 가족들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과의 상봉에서 국군포로 여부에 대해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국군포로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국군포로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민감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가했던 국군 출신 1명도 남측이 그를 ‘국군포로’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반발, 남북 간 껄끄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들의 지위에 대해 남측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 처리할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사자로 처리된 국군포로의 생존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남측으로 귀환하지 않는 한 전사자라는 법적 지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족들이 원하면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지위는 상봉 행사 이후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국방부가 정리하게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이번 국군 출신 4명의 생존 확인을 계기로 국군포로 현황을 추가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더라도 북측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긴 쉽지 않아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간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 차가 크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십자회담 등에서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오이석기자 chaplin7@seoul.co.kr
  • 생존확인 4명 지위 어떻게 되나

    1957년 정부의 일괄적인 전사 처리로 ‘전사자’가 된 국군 출신 리종렬(90)씨 등 4명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이들의 지위와 보훈혜택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정부는 생존이 확인된 리씨와 리원직(77)·윤태영(79)·방영원(81)씨 등에 대한 법상 지위 문제를 남측 가족들과 논의하기로 했다. 원칙적으로는 이들의 생존이 확인됐기 때문에 전사자에서 생존자인 국군포로로 지위를 변경해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국군 포로’로 지위를 변경할 수는 없다. 전사자로 처리된 본인과 가족들, 남북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남측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전사 처리된 채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본인 입장에서는 ‘국군 포로’라는 수식어가 부담이 된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에서 생존이 확인된 국군 출신 북측 이산가족 1명도 남측 언론이 ‘국군 포로’라고 보도한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남쪽 가족들도 북에 살고 있는 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에서 북한 당국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를 원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다시 물꼬를 튼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자칫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섣불리 ‘국군 포로’로 부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군으로 참전했지만 이들의 신병이 북측으로 넘어간 경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이들의 지위 변경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이런 까닭에 지난해 확인된 국군 출신 이산가족 1명은 공식적으로 우리 측에서는 ‘전사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에 생존이 확인된 국군 출신 북측 이산가족 4명의 지위를 전사자로 계속 남겨 둘지, 국군포로로 변경할지 등은 행사가 끝난 뒤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국방부가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또 현재까지 파악된 500여명의 국군 포로 현황 외에 국군 출신이 더 살아 있을 것으로 보고 탈북자와 국내 송환 국군 포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한편 북한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단에 국군 출신을 4명이나 포함시킨 것은 남쪽이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해주면 국군 포로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읽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고민에 빠진 외교부

    지난 열흘 동안 한국 외교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발언을 해명하고 반박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급부상하는 강대국의 차기 지도자와 좋은 관계를 가꿔 나가려 애면글면해온 ‘정성’이 무색하게도 초장부터 자꾸만 삐걱거리자 난감한 표정이다. 정작 외교부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기대와 달리 시진핑의 성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보다 권위주의적임을 보여 주는 단면이 이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 시진핑이 ‘정의로운 전쟁’ 발언을 했던 지난 25일 6·25 참전 기념행사에서 후진타오는 참전군인들에게 “동지들은 당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커다란 공헌을 했다.” 는 정도의 말만 했다. 알고보면 시진핑은 후진타오는 물론 장쩌민 전 주석보다 군 경력이 화려할 만큼 친군(親軍)적인 인물이다. 시진핑은 또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밀어붙이던 시기에 중·고 교육을 받아 근본주의적 공산주의 사상에 깊숙이 물들어 있을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날로 커지는 몸집으로 미국과 2강 체제를 구축한 데서 오는 자신감이 우월감으로 전환될 경우 상대국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외교가 남발될 수도 있다. 실제 시진핑은 지난해 2월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서방 외국인들이 중국의 일에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간섭한다.”라는 원색적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이 차세대 지도자라고 해서 미래지향적이고 개혁적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큰 오판이 될 수 있다.”면서 “매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6·25 참전 정의롭다는 중국의 자가당착

    중국의 6·25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미화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발언이 일파만파다. 중국 외교부는 그제 “이는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시 부주석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국 내 부정적 여론과 “6·25는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우리 측의 우회적 문제 제기에 대한 대응이었다. 양국 간 이런 무익한 논란이 종식되려면 중국 측이 한국전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시 부주석의 발언은 지난 25일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개전 60주년 좌담회에서 나왔다.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란 표현 자체가 마오쩌뚱 시대 중국의 한국전 참전을 아전인수로 합리화한 논리다. 6·25가 김일성이 마오와 옛소련 스탈린의 승인하에 감행한 남침임은 객관적 사료로 이미 입증됐다. 그런 엄연한 사실에 눈감은 채 참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일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려는 꼴이다. “60년 전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들에게 강제한 것”이라는 시 부주석의 언급도 자가당착이긴 마찬가지다. 남침 후 유엔의 개입으로 세가 불리해진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한·만 국경을 넘었다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한국전 발발 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남침이라고 결의한 뒤 유엔군을 파견했다. 그럼에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 중국이 새삼 남침을 정의의 전쟁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스스로를 냉전의 올무로 묶는 자승자박이다. 2년 뒤의 5세대 최고지도자가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중국이 주요 2개국(G2)의 위상에 걸맞은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냉전적 혈맹 의식에 갇혀 북을 무조건 싸고돌 게 아니라 정확한 사실(史實)을 기반으로 남북 간 공정한 평화 중재역을 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베이징 어느 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마오와 김일성의 대화록 등 외교문서부터 들여다보기 바란다. 정부도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진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물렁하게만 대응하다가는 훗날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외교노선에 대해 분명한 팩트를 토대로 당당한 목소리를 낼 때 양국 관계는 장기적으로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 中학계 “6·25참전은 마오쩌둥의 오판”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항미원조(抗美援朝·한국전쟁의 중국명)전쟁 발언과 한국·미국의 강력 반박, 중국 정부의 시 부주석 옹호 등 한반도 주변이 60년 전의 역사 논란으로 뜨겁다. 중국 측은 항미원조 전쟁에 대해 ‘1950년 10월, 조국의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에 맞서 지원군을 보내 조국과 사회주의 진영을 지켜낸 전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6·25전쟁의 발발에 대해 1992년 한·중 수교 이전 북한의 북침설을 따랐던 중국은 이후 비밀해제된 옛 소련 외교문서 등을 통해 남침의 증거가 잇따라 나오자 ‘내전’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해 왔다. 문제는 중국의 참전 이유에 대한 인식이다. 중국 인터넷 포털 바이두 백과사전은 ▲미국 등 연합군이 38선을 넘어 북한을 침략, 북·중 국경으로 진격하며 중국의 단둥지역을 폭격하는 등 신중국의 안전을 위협한 데다 ▲미군 7함대가 타이완해협에 진입, 중국의 통일전쟁에 무력으로 간섭했고 ▲북한의 참전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중국 내 학계에서는 비밀해제된 옛 소련 등의 외교문서 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당시 참전 결정을 내린 마오쩌둥의 오판과 참전의 정당성 결여 등을 지적하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산혁명 반동세력의 위협 등 국내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마오쩌둥이 국가 밖의 전쟁을 필요로 했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은 바 있다. “미군의 참전으로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중국 측 주장과 달리 “혁명의 동력을 지속시키면서 중국의 국제지위를 높이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참전의 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전쟁 전문가인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종신교수는 마오쩌둥이 유엔의 휴전 제안을 뿌리치고 전쟁을 지속해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선 교수는 “중국군 희생자의 절대 다수가 유엔의 휴전 제의 이후에 발생했다.”며 “중국군의 힘을 너무 과시한 것은 마오쩌둥 주석의 가장 큰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선 교수는 “결과적으로 중국이 참전의 최초 목표를 억지로라도 달성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많은 불필요한 대가를 치렀다.”며 항미원조전쟁을 사실상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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