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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닝 브리핑] 美연방하원 ‘미국 내 이산상봉 촉구안’

    북한에 가족이나 친척을 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한국계 미국인과 북한 내 친지의 상봉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미국 연방하원에서 발의됐다. 8일(현지시간)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의 찰스 랭글(민주), 존 코니어스(민주), 샘 존슨(공화), 하워드 코블(공화) 하원의원은 최근 이런 내용의 공동 결의안을 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의 상당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에 있는 친지를 만날 기회를 얻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며 “따라서 미 상·하원은 북한 당국에 한국계 미국인이 북한 내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하기로 결의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부고] 美서 귀화 원로 국악학자 해의만 선생

    [부고] 美서 귀화 원로 국악학자 해의만 선생

    ‘푸른 눈’의 원로 국악학자 해의만(미국명 앨런 C 헤이먼) 선생이 지난 1일 오후 9시 20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3세. 미국 뉴욕 태생인 고인은 위생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들었던 태평소 소리를 잊지 못한 고인은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국 유학생에게 한국의 전통문화와 음악, 악기에 대해 배우며 국악에 대한 관심을 키워 갔다.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서양음악을 공부한 고인은 1960년 입국해 1995년 한국으로 귀화했고 민속 음악학자 등으로부터 우리 전통음악과 악기, 무용 등을 배운 뒤 국민대와 한세대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고인은 국악 관련 자료도 꾸준히 수집했다. 2010년에는 수십년간 모은 서애악부(1504년), 정축진찬의궤(1877년), 설중회춘곡(1905년 추정)과 같은 악서, 희귀 도서와 고서 등60점을 국립국악원에 기증했다. 주요 저서로 ‘삼천리 나라의 무용’, ‘한국판소리해설’ 등을 남겼고 미국 대학과 카네기홀에서 공연과 강연을 하며 국악 알리기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국악 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11년 은관훈장, 1995년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옥자 여사와 아들 성광(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선주(사업)씨, 딸 람(캐나다 요크대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6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6시다. (02)2227-7566.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작은 아씨들(KBS1 밤 12시 10분) 마치가의 네 자매는 남북전쟁에 참전 중인 아버지의 안전을 기원하며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겨울 생활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가족 간의 사랑이 넘쳐흐르고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열심이다. 작가를 꿈꾸는 조는 꿈을 찾아 뉴욕으로 떠나고, 어느 날 동생 베스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VJ특공대(KBS2 밤 10시) 숨겨왔던 깊은 맛이 속 시원하게 공개된다. 내장 요리들이 그 주인공이다. 소의 내장이란 내장은 총집합해 모두 모였다는 경기 광명의 한 식당. 소 내장 전문점답게 전라도 나주에서 일주일에 세 번 들여오는 소 내장의 양만해도 한번에 500근에 달한다. 게다가 주인장의 고생스러운 정성에 감탄사를 자아낸다. ■신통방통 호기심 탐험대(MBC 오후 4시 30분) 칠판은 왜 초록색으로 만드는 걸까. 학교 수업이 끝나고 오늘의 호기심 칠판을 관찰하는 신통방통 탐험대. 과연 오늘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을지 함께한다. 또한 호기심 사연으로 ‘그래도 넌 내 짝꿍’에서는 부러진 뼈가 다시 붙으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한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뼈에 대한 궁금증을 퍼즐로 맞추어 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할머니 앞에서는 방긋 잘 웃는 5개월 윤성이. 그런데 부모의 얼굴만 보면 울음부터 나온다. 맞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긴 부부는 늘 편하게 안아보지도 못하고 우는 윤성이를 바라만 볼 뿐이다. 할머니 없이는 윤성이의 울음을 멈추게 할 자신이 없어 집으로 데리고 오지도 못하는 부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까. ■리얼토크 여왕의 외출(EBS 오전 9시 40분)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지내던 대한민국 주부들이 화려한 외출에 나섰다. 아이들 돌보랴 남편 챙기랴 거기다 시댁까지 챙겨야 하는 주부들은 할 일도 산더미요, 할 말도 많다. 단 하루만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들을 위해 준비했다. 첫 번째 여행은 여왕들을 미치게 하는 그 사람에 대한 수다로 시작된다. ■상하이(OBS 밤 11시 5분) 1941년 진주만 공격 60일 전. 세계열강의 세력 다툼과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격정적인 도시 중국 상하이. 미 정보부 요원인 폴은 동료의 의문스러운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기자로 위장해 상하이에 잠입한다. 그렇게 사건을 조사하던 폴은 혼란의 도시 상하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대국 간의 거대한 음모를 눈치채고 마는데….
  • 오바마, 한국전 참전용사 9명 명예훈장 추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9명에게 군인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추서했다고 백악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밝혔다. 훈장 수여식은 다음 달 18일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새로 명예훈장에 추서된 참전용사들은 바로 아래 급인 수훈십자훈장(DSC)을 받은 용사들 가운데 용맹무쌍함과 영웅적 행동이 재평가된 경우다. 백악관은 “2002년 의회가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유대계 및 히스패닉계 미국인 참전용사 가운데 인종적 편견 때문에 명예훈장 수여가 거부된 사례가 없는지 검토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명예훈장을 받는 한국전 참전용사는 히스패닉계가 대부분으로, 1950년 11월 강동전투에서 공을 세운 조 R 발도나도 상병 등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美 입양 간 세살배기, 양아버지에게 구타당해 숨져

    한국에서 태어난 세 살 남자아이가 미국으로 입양된 지 4개월여 만에 구타를 당해 숨졌다. 피의자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한국 담당 책임자로 근무했던 양아버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 법원에서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 현수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브라이언 패트릭 오캘러건(36)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지난 3일 숨진 현수의 시신 부검 결과 두개골 골절과 내부출혈, 타박상이 나타났다. 오캘러건은 지난달 31일 아이를 목욕시키던 중 아이가 욕조에서 미끄러지면서 어깨를 부딪쳤고, 다음 날 공원에서 낮잠을 재웠는데 깨어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현수의 코에서 점액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인근 응급실로 데려갔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현수가 뇌와 눈에서 출혈을 일으켰다”고 진단했고 경찰은 “극심한 두부 손상에 대해 오캘러건이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지방법원 검사는 머리와 목, 등에 있는 상처를 지적하며 “숨진 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타를 당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체포돼 구속된 오캘러건에게는 보석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현수를 입양한 오캘러건은 해병대원으로 코소보, 이라크 등에 참전했으며 이후 수많은 작전에 참여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거주 해외입양인모임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TRACK) 관계자들은 19일 입양을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입양 가정에 대한 조사 강화를 해당국에 요구할 것을 촉구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영원한 야전 사령관’ 채명신 장군 추모석 제막식

    ‘영원한 야전 사령관’ 채명신 장군 추모석 제막식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사병 묘역에서 고(故) 채명신 장군 묘지 추모석 준공기념 제막식이 유가족과 파월 참전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美 1000만 가구 찾는 아리랑TV… 위안부·한류 등 특집 편성

    美 1000만 가구 찾는 아리랑TV… 위안부·한류 등 특집 편성

    영어방송사 아리랑TV가 20일 밤 8시(한국시간)부터 미국의 1000만 가구에 방송된다. 세계적 위성방송사업자인 디렉TV의 채널로 선정된 것으로, 한인사회를 넘어 미국 주류사회를 대상으로 한국의 정치와 사회, 경제 소식과 문화, 스포츠 등의 콘텐츠가 방송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디렉TV는 총 295개 채널을 갖춘 세계적인 위성방송사로, 미국 및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자회사 및 협력업체를 통해 미국 2000만 가구, 중남미 1600만 가구에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디렉TV는 보편적 서비스의 일환으로 공익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리랑TV가 지난해 12월 이 공익채널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HD 방송 수신이 가능한 2000만 가입가구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시청가구수를 확보하게 된다. 디렉TV의 공익채널로 선정된 외국 방송은 중국 CCTV에 이어 아리랑TV가 두 번째다. 1997년 처음 방송을 시작한 아리랑TV는 미국에 디지털TV 방송국을 개국하는 등 미국, 아시아, 유럽 등 세계 188개국에 1억 1200만 가구를 대상으로 방송하고 있다. 손지애 아리랑TV 사장은 “이번 디렉TV로의 진입이 아리랑TV가 아시아계 미국인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한국과 한국인의 문화를 미국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리랑TV는 20일부터 3월 중순까지 시사 보도, 토크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특집 편성을 통해 미국 내 새로운 시청자층을 찾아간다. 첫 방송일인 20일 오후 8시부터 28일까지 ‘아리랑 뉴스’를 통해 글렌데일 위안부 소녀상 추가 건립과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 과정, 한국 영화의 할리우드 진출 등의 소식을 전한다. 생방송 뉴스 쇼 프로그램인 ‘코리아 투데이’는 21일 서울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는 이원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또 24일부터 28일까지 주간 특집 코너를 운영하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참전용사, 미국 내 이산가족 등을 보도한다. ‘애프터 텐’에는 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마이크 혼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데이비드 강 USC 한국학연구소장이 출연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콤포트 우먼 원 라스트 크라이’, 아리랑의 의미를 조명한 ‘어콜레이즈 포 아리랑’, 제주 해녀의 삶을 기리는 다큐영화 ‘라스트 머메이즈’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편성했다. 또 쌍방향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그램인 ‘애프터 스쿨 클럽’은 26일과 27일 각각 그룹 엑소 편과 엠블랙 편을 방송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눈앞에서 터지는 ‘227㎏짜리 항공폭탄’…충격 영상

    눈앞에서 터지는 ‘227㎏짜리 항공폭탄’…충격 영상

    10층 규모의 건물을 붕괴시킬 수 있는 500파운드(약 227㎏)짜리 폭탄이 미군 폭격기의 실수로 같은 편 미군 벙커에 떨어져 폭발하는 충격적인 영상이 공개돼 네티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행히도 해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실수로 미군 벙커에 떨어진 500파운드 폭탄(500 Pound Bomb Dropped on U.S. Soldiers By Mistake)’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해당 영상은 총 3분 21초의 길이로 전쟁 한 복판에 존재하는 긴장감과 눈앞에서 폭발하는 폭탄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영상은 벙커에서 바깥 상황을 주시하는 미군 시점에서 시작한다. 별다른 문제없이 영상이 진행되다 갑자기 18초 부분에서 벙커는 아수라장이 된다. 폭격기에서 투하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이 미군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영상 속 벙커로 떨어져 폭발한 것이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과 기침,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상은 미군들이 상황을 수습하면서 기지에 다른 무너진 곳이 없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비춰주며 끝을 맺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아프가니스탄 팍티카(Paktika) 지역 미 육군 보병 전초 기지의 모습으로 주둔중인 한 군인의 헬멧 카메라로 촬영된 것이다. 영상 속 상황이 벌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론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 Funker350.com(미 참전용사 웹사이트)는 해당 사고가 미 공군 폭격기의 실수로 벌어진 것 같다는 주장을 제기해 온라인상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병사 한 명은 웹사이트를 통해 “당시 해당 지역 인근에서 탈레반 기지가 발견됐다는 첨보가 입수됐다. 지역 좌표가 공군에 전해졌고 폭격기가 출동했다”며 “아마 조종사가 좌표를 잘못 인식했거나 탈레반 기지와 미군 기지가 너무 근접하게 위치해서 벌어진 사고 인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해당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영상 보러가기 동영상·사진=유튜브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육군·현대차 사회공헌 협약

    육군·현대차 사회공헌 협약

    정진행(왼쪽) 현대자동차 사장과 권오성(오른쪽) 육군참모총장이 18일 충남 계룡시 육군본부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공자의 집을 고쳐 주는 ‘육군본부 사회공헌사업’ 업무협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 [데스크 시각] 귀화인 빅토르 안의 잔상/김경운 정책뉴스 부장

    [데스크 시각] 귀화인 빅토르 안의 잔상/김경운 정책뉴스 부장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의 화려한 부활과 한국 쇼트트랙의 비참한 몰락을 두고 말들이 많다. 네티즌들은 안 선수의 귀화 배경에 한국 빙상계의 추잡한 작태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안 선수 스스로는 귀화 이유에 대해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말한다. 그러나 조국을 등지고 낯선 국기를 가슴에 단 채 모국 선수들과 겨뤄야 하는 귀화를 선택했을 때에는 그의 등을 떠다 민 사연이 분명히 따로 있다. 빅토르 안은 조선시대 김충선(1571~1642) 장군을 떠오르게 한다. 장군의 본명은 사야가(沙也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장수로 참전했으나,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인이다. 그는 조총 제조법을 적국이었던 조선에 전하고 화포에 화약 섞는 법을 이순신 장군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 쇼트트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과 비슷하다. 선조가 “바다 건너온 모래(沙)를 걸러 금(金)을 얻었다”며 기뻐했던 것처럼 안 선수의 귀화를 무심사 통과시키도록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사야가가 밝힌 귀화의 이유는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어서…” 등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사야가는 일본 전국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반대 진영에서 싸우다가 굴복하고 몸을 낮춰 지내야 하는 처지였다. 애써 전공을 세워봐야 소용없고, 싸우다가 하릴없이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안 선수도 결코 러시아가 운동하기 좋은 나라여서 선택한 게 아니라 한국에는 피하고 싶은 고질적인 이유가 존재했기 때문이리라. ‘한국 빙상계의 부조리’는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낱낱이 파헤쳐져야 한다. 네티즌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안 선수의 귀화를 더 이상 아쉬워하지 말며, 특히 색안경을 끼고 그에게 뭐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에 잘 정착해서 그 나라 빙상계의 우뚝한 발자취를 남기도록 기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찬가지로 이를 계기로 다문화가족이 빠르게 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귀화 문제도 함께 되돌아보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국내에 들어와 사는 결혼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는 26만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 이주여성이 절반 이상인 52.6%나 된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한국인 자식도 낳았는데, 그 나라 국적도 없이 산다는 게 어찌 힘든 일이 아니겠는가. 한국인으로 귀화하려면 3000만원의 재정증명이나 번듯한 직장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구비해도 국적 취득에 1~2년이 걸리고, 자식이 없으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다만 서류를 심사하는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잘 만나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도 한다니 이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어렵사리 국적을 취득해도 안전행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서는 여전히 귀화 한국인을 ‘국내에 90일 이상 거주하는 등록외국인’과 똑같은 신분으로 취급한다. 빅토르 안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을 되돌아보자. kkwoon@seoul.co.kr
  • “태풍 피해 필리핀 학교·병원 복구… 한국만 계속 도와”

    “태풍 피해 필리핀 학교·병원 복구… 한국만 계속 도와”

    정부가 지난해 말 필리핀의 태풍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파견한 우리 군 합동지원단(아라우부대)이 현지에서 피해 복구 작업을 개시한 지 한 달여 만에 현지 초등학교와 병원 등을 재건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해 12월 28일 필리핀 레이테주에 도착한 아라우 부대원 280여명이 지난달 24일 작전 지역인 톨로사 지역의 오퐁초등학교를 복구한 데 이어 이달 13일에는 타나완 지역의 센트럴초등학교 복구를 완료했다고 16일 밝혔다. 센트럴초등학교는 지난해 11월 불어닥친 태풍 ‘하이옌’으로 학생 1200명 가운데 2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될 정도로 피해가 컸다. 공병과 의료지원단 위주로 구성된 아라우부대는 지난 5일에는 팔로 지역의 레이터주립병원의 복구도 완료했다. 이들은 6·25전쟁에 참전한 필리핀 퇴역군인의 가옥 복구도 지원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현지책임자 카오루코 셰키는 “필리핀 태풍 피해 당시 긴급 구호를 위해 많은 국가와 단체에서 도움을 줬지만 긴급 구호가 끝나자 모두 철수했다”면서 “복구 단계인 지금 병력을 보내 계속 도움을 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면서 감사를 표시했다. 아라우부대는 연말까지 현지에서 학교, 고아원, 보육원, 병원 등 50개 이상의 공공시설을 복구할 계획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자위권 열망 불탔던 일본에 한국전쟁은 ‘하늘이 내린 은혜’

    [지구촌 책세상] 자위권 열망 불탔던 일본에 한국전쟁은 ‘하늘이 내린 은혜’

    쇼와 25년 최후의 전사자 미국 극동해군사령부의 참모부장인 알레이 버크 소장은 1950년 10월 2일 아침 일본 해상보안청의 오쿠보 다케오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긴급 면담을 요청한다. 당시는 패전국 일본이 미 군정하에 놓여 있던 시기. 한걸음에 극동해군사령부로 달려간 오쿠보 장관에게 버크 소장은 미군이 상륙하려는 원산 앞바다에 북한 인민군이 대량의 기뢰를 설치했을 가능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유엔군이 곤란에 빠져 있는 지금 일본 소해(掃海)부대의 조력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무겁게 입을 뗀다. 1945년 해방 5년 만에 일본군의 한국전쟁 참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4년 야심차게 추진하려는 정책 중 하나가 일본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다. 1950년 미국의 요청, 실은 미국의 명령에 의해 전장(戰場)에 투입된 일본 해상보안청의 기뢰 제거 활동은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에 이뤄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다름없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버크 소장으로부터 일본 소해부대의 한국전쟁 참전을 재차 요청받는다. 요시다 총리는 소해부대의 참전이 미 군정하에 만들어진 ‘평화헌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에 일순 주저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 재군비의 길을 연다. ‘쇼와 25년 최후의 전사자’(쇼가쿠칸)는 요시다 총리의 참전 결정과 특별소해부대 파견에서부터 그해 12월 해산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당시 승조원의 수기, 보도, 출판물과 생존해 있는 승조원의 인터뷰를 통해 정리한 저작이다. 한국전쟁에 일본 소해부대가 참전한 사실은 간간이 알려지긴 했지만 이처럼 소상히 2개월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책은 드물다. 참전한 소해부대의 일부가 명령을 어기고 일본에 귀환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 주변에서 소해, 전쟁물자 해상수송 등에 관여했던 일본인은 2000여명이었다. 도쿄신문 서울특파원 출신으로 현재 외보부 기자인 저자 시로우치 야스노부는 후기에서 ‘일본의 재군비-나는 일본을 재무장했다’의 저자인 프랭크 코왈스키 주일 미군사고문단 초대참모장의 저서를 인용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은혜’에 의해 발발되어 일본인 깊숙이 숨어 있던 열망을 불러냈다.(중략) 한국전쟁이란 기적 덕분으로 빈사상태의 일본은 다시 제대로 된 국가로 복귀하는 기회를 잡았다.” 일본 보수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군대 창설’ 같은 염원을 한국전쟁의 역사 속으로 되돌아가 반추해 볼 만한 책이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 [2014 공직열전] 국가보훈처

    [2014 공직열전] 국가보훈처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 등 보훈대상자 240만여명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는 1관 4국의 본부(305명)와 보훈심사위원회 등 소속기관(962명)으로 구성된 차관급 기관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작은 정부’ 기조에 발맞춰 처장의 지위가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조정됐지만 구성원들은 제대군인, 독립·민주화 유공자에 대한 서비스와 보훈외교 등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해 장관급 기관이나 마찬가지라고 자부한다. 행정고시 출신이 1267명 중 21명으로 1.65%에 불과하고 타 부처에 비해 배타적 분위기가 적어 외부 출신이 쉽게 안착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처·차장을 제외한 주요 고위직 10명 중 군 출신 영입 인사가 2명으로 국방부와의 업무 협력이 많다. ‘넘버투’ 최완근 차장은 정통 ‘보훈맨’으로 꼽힌다. 28년 공직 생활 동안 국가보훈처에서 감사담당관, 기획예산담당관, 보훈선양국장, 기획조정관 등 정책기획 총괄 업무를 두루두루 수행해 왔다. 특히 보훈선양국장 재직 시절인 2005~2006년 문화관광부 소속인 독립기념관과 국방부 소속이던 국립대전현충원을 보훈처로 이관받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정도로 뛰어난 대외 교섭 능력이 강점이다. 이성국 기획조정관은 1990년 공보처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2000년 보훈처로 옮긴 외부 출신 인사다. 하지만 본부의 국장과 지방청장을 두루 거쳐 현장업무 집행에 밝고 어려운 현안에 대해 상황 판단과 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업무를 꼼꼼하고 강단 있게 챙기는 스타일로 국가보훈위원회 위원장을 국무총리로 격상하는 국가보훈기본법 개정에 앞장섰다. 본부 국장 4명은 ‘4인 4색’이라고 불릴 만큼 개성이 다양하다. 이병구 보상정책국장은 23세 때인 1986년 30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인재로 선양정책국장, 서울지방보훈청장, 기획조정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보훈 전문가다.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 난제를 쉽고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평이다. 이경근 보훈선양국장은 34세 때 공직에 입문한 대기만성형이다. 하지만 보훈처장 비서관, 창의혁신담당관 등을 거쳤고 조직과 업무 전반에 대해 깊이 이해한다는 평이다. 2012년 괴산호국원 신규 조성사업 등 지방자치단체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업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뚝심 있게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 소통의 아이콘으로도 통한다. 복지업무 총괄을 맡은 신영교 복지증진국장은 7급 공채 출신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의료복지 전문가로 통한다. 보훈의료과장 시절 위탁병원관리단 운영을 통해 과잉 진료와 약물 오남용을 사전에 예방하고 국가유공자들의 진료비 절감에 기여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 밖에 국가유공자를 위한 대부금을 인상하는 데 기여했다. 군 출신인 박종왕(예비역 육군 준장) 제대군인국장은 경력직 경쟁 채용을 통해 2011년 보훈처에 입성했다.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을 살려 군의 인적 자원 활용과 사회 복귀를 꿈꾸는 제대군인 지원 업무에 밝고 5년 이상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의 복지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 특히 지난해에는 유엔군 참전·정전 60주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합의제 의결기관인 보훈심사위원회를 이끄는 권율정 위원장은 복지증진국장과 국립대전현충원장을 지내는 등 28년간의 보훈공무원 생활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를 직원들과 아낌없이 공유하기로 유명하다. 임기제 고위 공무원인 보훈심사위원회 상임위원들도 다양한 전문성을 갖췄다. 이성춘 보훈심사위원회 사무국장은 제대군인국장 등을 거친 위원회 사무국의 조정자로 통한다. 성준환 상임의원은 다년간의 법제처 경험이 빛나는 법제업무 전문가다. 예비역 육군 준장인 권두환 상임위원은 군 시절부터 부지런한 ‘일벌레’로 통했고 국방부와 육군 본부에서의 경험을 살려 주요 질병 등 국가유공자 심사를 맡고 있다. 비교적 젊은 전종호 상임위원은 보훈 현장에서의 20년 경력이 공정한 심사업무에 있어 강점으로 통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법원, 실종처리 납북주민 상속권 첫 인정

    6·25 전쟁 중 북한에 끌려간 주민이 실종 처리돼 상속 자격을 잃은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상속 당시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상속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현행법상 북한 주민이 상속 회복 소송을 낼 수 있는 기한을 정해 놓은 별도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상속권 행사 기간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밝힌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서영효 판사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북에 끌려가 36년 전에 실종 처리된 이모(1933~2006)씨의 딸(45)이 ‘아버지의 상속분을 돌려 달라’고 친척들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 회복 청구소송에서 “선산 315분의45 지분 소유권을 이전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는 1950년 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갔고 1977년 법원에서 실종 선고를 받아 제적에서 말소됐다. 실종 선고 이듬해인 1978년 이씨 아버지의 충남 연기군 선산 5만여㎡는 어머니와 다른 자녀들에게 상속됐다. 그러나 2004년 이씨는 중국에서 동생 등과 상봉했고 가족도 이씨의 생존을 알게 됐다. 남한 가족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 조사를 받던 이씨는 2006년 북한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이씨의 딸은 이듬해 탈북해 2009년 입국했다. 이후 이씨의 딸은 “조부가 재산을 물려줄 때 부친이 살아 있었으니 상속 자격이 있었고 나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며 2011년 친척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민법에는 상속권이 없어진 지 10년이 지나면 상속 회복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예외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전쟁 중에 납북돼 실종 처리됐다가 생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북한 주민과 자손들의 상속권 회복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북핵·미사일 맞춤형 억제전략 이달 키리졸브 훈련부터 적용

    국방부가 6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전략에 대해 보고하고 이를 올해 훈련에서 검증하기로 한 것은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맞춤형 억제전략은 전·평시 북한의 핵 위기 상황을 위협 단계, 사용 임박 단계, 사용 단계 등 3단계로 구분해 군사·외교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0월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이 전략에 합의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해 2월까지 세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의 소형·경량화 기술을 상당히 축적했을 것으로 평가한다. 북한이 현재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무게 4~4.7t 규모의 초보적 수준의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추가 핵실험 등을 통해 이를 1t 이하로 경량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대륙간탄도탄(ICBM)에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이용한 핵무기 투하 등 다양한 핵 공격 유형을 상정해 대응전략을 연구했고 이를 이달 마지막 주 키리졸브 군사연습부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맞춤형 억제전략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행 가이드라인도 제정하기로 했다. 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탐지를 위해 2020년대 초까지 영상과 신호정보를 동시에 수집할 수 있는 군사정찰위성 5기를 확보할 예정이다.이 밖에 전시작전통제권 연기 시기도 연내 합의를 목표로 협의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또 예비군 훈련 대상자가 선출직 공무원이나 장차관으로 임명되면 임기 동안 예비군 훈련을 면제받던 동원예비군 훈련 보류 제도를 개정해 이들도 훈련을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1월부터 6·25 공적발굴팀을 구성해 참전유공자를 직접 발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웃 봉사 위해 뭉친 ‘장군의 부인들’

    육군본부가 24일 지역의 보훈시설 및 복지시설을 후원하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자 ‘Army 사랑 나눔회’를 결성했다. 부대별 또는 개인적으로 펼치던 봉사활동을 체계적,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계룡대와 대전권에 복무하며 관사에 거주하는 장군 부인 45명으로 봉사대를 구성해 첫발을 뗐다. 앞으로 20여명이 더 동참할 것으로 회원들은 내다봤다. 이들은 이날 대전 유성구 죽동 대전보훈요양원을 찾아가 첫 봉사활동을 벌이며 산뜻하게 출발을 했다. 봉사대는 시설 곳곳을 말끔하게 청소한 것은 물론 노인들의 말동무를 해 주며 발을 씻겨 주는 등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또한 요양원 1층 강당에선 계룡대근무지원단 군악대의 국악, 사물놀이 공연이 펼쳐져 노인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들은 앞으로 매달 한 차례씩 봉사활동에 나서고 분기별로 회비를 걷어 보훈복지시설과 장애인시설 등을 후원하기로 했다. 육군본부 관계자는 “육군의 이름으로 뜻깊은 일을 해 보자는 취지에서 나눔회를 결성하게 됐다”면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역 내 참전용사에 대한 후원을 확대하고 후원금 모금 행사 등을 개최해 나눔문화를 확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계룡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6·25 참전’ 미군 지원재단 출범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생존자와 후손을 지원하는 ‘미군 한국전참전용사지원재단’이 23일 주한 미국대사관저에서 창립식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 재단 초대 이사장은 국회 정무위원장인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맡았다. 이날 창립식에는 성 김 주한 미국대사와 레슬리 바셋 주한 미국부대사,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마크 딜런 주한미군사령부 부참모장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김규현 외교부 차관, 백승주 국방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 재단 설립은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국전 정전 60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 특사로 참석했던 김정훈 의원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시리아 반군 참여할까… 기로에 선 평화회담

    시리아 반군 참여할까… 기로에 선 평화회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국제평화회담(제네바 2회담)이 오는 22일부터 시작된다. 3년간 계속된 최악의 내전으로 13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평화회담을 둘러싼 안팎의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상 전망이 밝지 않다. 17일 AFP, BBC, 알자지라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 반군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 대표자들은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 모여 평화회담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벌였다.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는 SNC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과도정부 관리는 물론 향후 대선에 출마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반군 대표들이 반드시 협상에 들어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시리아 정부가 이날 국지적 휴전과 포로 교환에 동의한다고 밝혀 회담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했다. 왈리드 알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시리아 북부 최대 도시인) 알레포에서 휴전하고, 포로 교환을 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협상 참여 여부도 논쟁거리다. 미국은 이란이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의 대량 학살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란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년 6월 열린 첫 제네바 회담에서도 미국과 러시아가 알아사드 대통령의 과도정부 참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결실을 맺지 못했다. 반군 내의 분쟁도 골칫거리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 등은 SNC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정부군보다 SNC를 대상으로 한 테러에 주력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반군 내 충돌로 106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유럽의 이슬람 교도들이 ‘용병’을 자처해 참전하는 것도 사태 해결을 꼬이게 하고 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나 아랍계 이주민들이 시리아 반군에 자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국가들은 내전 해결보다 참전한 자국민들의 동향과 귀국 후 테러리스트로 활동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700여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참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인 1200명 이상이 참전을 위해 시리아로 건너갔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샐린저 사생활 낱낱이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샐린저 사생활 낱낱이

    샐린저 평전/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김현우 옮김/민음사/604쪽/3만원 미국 작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 봤는가.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독백이 쉽게 와 닿던가.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고 감동했다면 당신은 감수성이 아주 뛰어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만만하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주인공의 내적 변화를 추적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을 잘 이해하려면 작가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의 다른 소설들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도 작가가 살아온 과정들을 짚어 보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2010년 1월 27일 샐린저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그에 대한 평론을 곁들인 전기가 번역돼 나왔다. 이 책 ‘샐린저 평전’이다.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 뉴욕에서 육류와 치즈 수입상을 하던 유대계 아버지 솔로몬과 어머니 미리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업이 날로 번창해 1932년 가족이 마지막으로 이사한 집은 센트럴파크 맞은편 파크애비뉴의 호화 아파트였다. 샐린저는 맨해튼의 맥버니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나빠 퇴학당했다. 그 후 다시 들어간 학교가 펜실베이니아주의 밸리 포지 사관학교. 이 학교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퇴학당하는 기숙학교의 모델이 됐다. 1937년 뉴욕대에서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치자 샐린저는 자퇴했다. 이듬해 가을 샐린저는 밸리 포지 사관학교에서 멀지 않은 어시너스대에 등록해 글쓰기와 어학 수업을 주로 들었다. 그는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 한 학기 만에 관뒀다. 그러나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찾았다. 전업 작가였다. 1939년 1월 샐린저는 컬럼비아대에 등록해 문학잡지 ‘스토리’의 편집자인 휘트 버넷이 가르치는 단편소설 작법을 들었다. 그는 버넷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교실 밖에서도, 집에서도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0년 ‘스토리’ 봄 호에 그의 첫 작품인 단편소설 ‘젊은 친구들’이 실린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에 컬럼비아대를 자퇴했다. 학창 시절은 그렇게 끝났다. 1941년 여름 22세의 샐린저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미모가 출중한 우나 오닐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자기보다 6세 아래인 이 아가씨는 속은 얕고 자기중심적이며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샐린저가 자신의 글에서 통렬하게 묘사하고 경멸했던 여성의 유형이었다. 그는 우나의 현란한 취향에 자신을 맞췄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급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영화 배우나 상류층 유명 인사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연애는 거기서 멈췄다. 그 이듬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사간 우나는 36세 연상의 전설적 배우 찰리 채플린과 사귄다는 얘기가 들려오더니 1943년에는 그와 결혼까지 했다. 샐린저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역설적인 사실은 그 후 샐린저의 작품세계가 대외적으로 크게 조명받기 시작했다는 대목이다. 1946년 그의 작품 ‘매디슨에서 시작한 작은 반란’이 미국 최고의 문학잡지 ‘뉴요커’에 실렸다. 1951년 7월 16일 마침내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10년 전부터 구상한 작품의 완성판이었다. 소설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7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의 이름은 비로소 미국 문화의 흐름을 바꾸고 세대를 초월한 시대정신을 규정한 작가의 대명사로 자리매김됐다. 평전은 샐린저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 신비에 싸인 여인 실비아와의 첫 결혼과 이혼, 출판사 및 언론사들과의 신경전, 헤밍웨이에 대한 신랄한 비평, 그가 영향 받았던 선(禪 ) 사상 등 다양한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참전영웅 기리고 후손 돕는 것도 국격 높이는 일”

    “참전영웅 기리고 후손 돕는 것도 국격 높이는 일”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영웅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경험을 영원히 보존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참전용사의 후손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활동입니다.” 미국 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그들의 참전 관련 자료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디지털박물관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미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행정대학원) 교수인 한종우(52) ‘한국전참전용사디지털기념관재단’(www.kwvdm.org) 이사장이 벌이고 있는 야심찬 사업이다. 아주대 초빙교수로 최근 방한한 한 이사장을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참전용사·후손 지원사업의 중요성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었다. 한 이사장이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한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한·미 관계에 대한 강좌 시리즈를 마련하면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초청했고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게 됐다. 이 과정에서 참전용사들이 6·25 때 사진, 편지, 일기, 신문 등을 가지고 와 당시 자료들이 모였다. 한 이사장은 “참전용사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들의 경험과 자료를 축적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며 “내친김에 2012년 비영리재단인 한국전참전용사디지털기념관을 설립, 대학 차원의 아카이브를 디지털박물관으로 확대했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이 지난 2년간 미 한국전참전용사협회(KWVA) 등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한 참전용사는 180여명. 참전용사들과 이들의 가족으로부터 기증받은 당시 자료도 5000여점에 이른다. 인터뷰와 자료를 모두 디지털화해 디지털박물관에 올리자 잊혀졌던 참전용사들의 연락과 자료 기증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올랐는데 이들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있다”며 “그들을 찾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격 향상을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정부의 김치나 태권도 사업 등은 한국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참전용사 지원이야말로 가장 비정치적인 방법으로 한·미 동맹과 국격 강화, 국가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 이사장은 올해 국가보훈처 등의 지원을 받아 참전용사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내 5개 지역 담당자를 지정, 참전용사 인터뷰를 강화하고 후손 참여 활동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미국 내 참전용사 후손 50여명을 초청해 ‘청년봉사단’을 발족했으며 올해 7월 2차 회의는 1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후손들이 직접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분들께 상을 드리는 행사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조직이 활성화하면 앞으로 전 세계 한국전 참전 21개국 후손들이 참여하는 세계조직으로 만드는 꿈도 갖고 있다. 한 이사장은 또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교류재단(KF) 등과 함께 한국 내 참전용사 후손들을 참전국이자 원조국인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에 봉사활동을 보내고, 미국 내 후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국제대학원 등에서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참전용사 후손들이 한국을 제대로 배운다면 한국을 알리는 전도사, 홍보대사가 될 수 있다”며 “그들을 통해 민간 공공외교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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