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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원한 관계 털고 北·中, 화해무드?

    소원한 관계를 보이던 북한과 중국 사이에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년 만에 북한 내에 조성된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에 조화를 보내며 화해 제스처를 취한 데 대해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린성 방문 9일 만에 다시 선양을 방문해 북한에 화해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김 제1위원장이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능원에 조화를 보냈으며 조화 증정식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 전사자의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도 이곳에 묻혀 있다.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에 헌화한 것은 201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이후 2년 만으로 당시에는 김 제1위원장이 직접 찾았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26일에도 평양에서 열린 제4차 전국노병대회 축하 연설에서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해 두 차례 경의를 표했다. 이 같은 김 제1위원장의 행보는 냉랭했던 북·중 관계를 풀어 보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는 “관계 정상화의 신호를 북한이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 중국 간에 고위급 접촉 없이 소원해진 상태로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이제 정상 관계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북한 고위층을 만나고 농촌 봉사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는 것은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한 중국의 신호라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들도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인민지원군 전사자 묘지에 조화를 보낸 사실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화답하듯 시 주석도 북한과 국경을 접한 랴오닝성의 성도 선양을 지난 27일 하루 일정으로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선양 방문은 2013년 8월 이후 1년 11개월 만으로 2년 전 지시했던 일대일로 관련 잉커우(營口)자유무역시범구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동북 3성의 경제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북한과의 교역 활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연스럽게 북한에도 화해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美 노병들 “통일되면 그 땅에 꼭 다시…”

    美 노병들 “통일되면 그 땅에 꼭 다시…”

    “통일이 되면 장진호에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한국전쟁 정전 62주년인 27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시 해병대박물관에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삽을 들고 모였다. 미 전쟁사에 ‘불멸의 동투(冬鬪)’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6일~12월 11일)를 기리는 기념비 건립을 위한 기공식이 열린 것이다. 65년 전 처절했던 혹한의 사투에서 살아남은 노병들은 더 늦기 전에 장진호 전투 현장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밝혔다. 존 그레이(90) 예비역 중령은 “엄지발가락이 동상에 걸리고 물이 부족해 길가의 눈을 먹었던 일, 고토리를 탈출해 흥남으로 향하던 고통스러웠던 행군의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며 “그래도 다시 그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브루스 우드워드(85) 장진호 기념비 추진위원장도 “빨리 통일이 돼 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기념비 건립을 위해 첫 삽을 뜬 참전용사들은 모두 ‘고토리의 별’을 장식한 배지를 달았다. ‘고토리의 별’은 장진호 전투가 정점으로 치닫던 1950년 11월 26일 밤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 지역에 뜬 밝은 별을 뜻한다. 이 별을 신호탄으로 미 해병1사단이 이중 삼중의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기리고자 ‘고토리의 별’ 장식을 만든 것이다. 내년 완공 목표인 기념비 꼭대기에도 같은 장식이 올려진다. 장진호 전투의 주역으로 꼽히는 스티븐 옴스테드(85) 예비역 중장은 “한국은 내 가족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옴스테드 중장은 이어 “이 기념비는 단순히 미국 해병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유엔의 이름으로 싸웠던 모든 동맹국의 병사들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동상 후유증이 남아있다는 리처드 케리(88) 예비역 중장은 “지난 3년간의 건립 추진 노력이 결실을 거둬 너무 기쁘다”며 “우리는 장진호 전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두 7억원이 드는 소요되는 기념비 건립에 국가보훈처가 1억 5000만원을 건립위원회 측에 전달했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자문위원들의 도움을 받아 15만 달러를 모아 전달했다. 한편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 현직 미 의원들인 찰스 랭글(민주), 존 코니어스(민주), 샘 존슨(공화) 하원의원 등은 이날 ‘휴전 상태인 한국전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참전용사들에 경의를 표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꼭 살아서 갈게요. 어머니!”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쟁. 우리에겐 너무나 아픈 역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을 시작으로 낙동강 방어, 서울 수복, 평양 탈환, 다시 1.4후퇴와 서울 수복으로 이어진 공방전은 한반도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장병 전사자만 16만명. 여전히 유해조차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가 13만명에 달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한 전사자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군 8477명, UN군 13명,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1189명 등 9500여명에 불과합니다. 정전협정일(7월 27일)을 맞아 저마다 아픔을 간직한 그들의 사연을 되돌아 봤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을 가면 특이한 묘비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이름없는 묘’라고 불리는 묘비인데요. 묘비에는 ‘육군소위 김○○의 묘’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부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아예 새긴 흔적조차 없습니다. ‘김 소위’의 묘라니, 무명용사의 묘비를 직접 보면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는데요. 현충원에서 유일한 이름없는 묘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14년 만에 찾은 전우 故 김수영 소위 6·25 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동쪽 지역인 안강지구의 도음산(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학천리)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기세가 오른 북한군 12사단은 이 지역을 돌파해 포항을 손에 넣으려 했고, 수도사단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병력을 정비해 맹렬하게 반격했습니다. 당시 한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황규만 소위는 이 치열한 전투의 중심에 있었죠. 전투로 녹초가 되다시피한 어느 날, 다른 부대의 소대장 김모 소위가 지원 병력으로 도착했습니다.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올랐습니다. 두 사람과 소대 장병들은 힘을 합쳐 싸웠지만, 27일 안타깝게도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식으로 매장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황 소위는 김 소위의 주검을 능선 아래쪽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돌로 표시하고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지 14년이 지난 시점에 황 소위는 진급을 거듭해 어느새 대령이 돼있었습니다. 1군 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직접 도음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산속을 헤맨 끝에 다행히 유해는 찾았지만 전우의 이름을 알 길이 없었죠.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한 끝에 1964년 5월 29일 국립묘지 제54묘역 1659호에 이름없는 전우의 유해를 안장하게 됩니다. 황규만씨는 준장까지 오른 뒤 1976년 예편했지만, 단 한시도 이름없는 전우의 묘비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0년 11월 드디어 가족과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故) 김수영 소위. 비극적인 역사와 전우애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그의 묘비는 지금도 여전히 ‘육군소위 김○○의 묘’로 남아있습니다. 6·25 전쟁에 형제가 나란히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례도 있습니다. 전사한 지 60년 만에 만나 현충원에 묻힌 고 이만우 하사와 이천우 이등중사, 65년 만인 올해 나란히 묻힌 고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가 그들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만우, 이천우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과 9월 차례로 자원입대했습니다. 형과 동생의 나이는 각각 21세와 18세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한창 공부에 매진하거나 한껏 젊음을 누릴 나이지만, 형이 먼저 입대한 뒤 홀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남매의 막내인 동생도 기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뒤를 따랐습니다. ●홀어머니 만류도 뿌리치고 형과 함께 군으로 형은 1사단, 동생은 7사단 소속으로 두 사람 모두 서울 수복에 이어 북진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에 참여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1년 5월 경기 고양지구 봉일천 전투에서 형이 먼저 전사한 데 이어 9월에는 동생도 강원 양구군의 백석산 탈환을 앞두고 무명 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들이 1년 남짓 참전기간 동안 군화를 신고 걸었던 거리는 3400km. 서울과 부산을 4번 가까이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두 형제는 싸우고, 또 싸우며 걸었습니다. 형은 1960년 5월 서울현충원에 몸을 누일 수 있었지만, 동생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그렇게 강산이 여섯 번 바뀔 동안 쓸쓸히 차디찬 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현충원에서 안식처를 찾은 형조차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신원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음해 두 사람은 현충원에 나란히 묻혔고, 가족들도 소중한 유품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호국형제의 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강영만 하사와 동생 강영안 이등상사의 합동안장식이 열렸습니다. 두 번째 형제의 묘입니다. 강 하사는 중공군 공세가 한창이던 1951년 1월 자원입대해 횡성전투, 호남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8월 북한군 1만여명과 일주일 동안 치열한 고지전을 벌인 2차 노전평 전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죠. 동생인 강영안 2등 상사는 6·25 전쟁 발발 전인 1949년 1월에 입대해 2사단 소속으로 옹진반도 전투,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역전의 용사였습니다. 1952년 10월 강원 철원군 김화읍 부근에서 벌어진 저격능선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고지를 빼앗으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저지한 저격능선전투는 백마고지전투와 함께 6·25 전쟁 2대 격전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동생 강 이등상사의 유해는 전투 직후 수습돼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었지만 형의 유해는 찾지 못해 위패만 있었죠. 형제는 65년 만인 올해 현충원에서 유골로나마 서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박격포탄 들고 육탄으로 백마고지 탈환에 나서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 들어가면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육탄 3용사상’이 있습니다. 9사단 30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장인 고 강승우 소위와 부하였던 오규봉·안영권 일병은 395고지(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했습니다. 오규봉 일병이 먼저 대공포판을 등에 메고 돌격했고, 안 일병과 강 소위가 엄호사격을 했습니다. 강 소위는 직접 박격포탄과 TNT를 들고 기관총 진지 7m 지점까지 접근했고, 폭발물을 던지는 순간 총상을 입었지만 안 일병이 다시 주워 진지에 던져 넣었습니다. 이후 오 일병도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졌고, 세 사람은 현장에서 산화했습니다. 9사단은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고지를 탈환했죠. 이후 강 소위는 중위로, 오 일병과 안 일병은 각각 하사로 추서됐습니다. 강 중위와 안 하사는 고향과 모교에서 추모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직계 자손이 없었던 오 하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국가 유공자 보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변변한 추모비조차 없었죠.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동생으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9사단 관계자와 전우회 등이 2013년 1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이고 고향인 천안시에서 부지를 제공해 그 해 오 하사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정규군조차 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영웅적인 전투를 벌인 학도병의 슬픈 사연도 많습니다. 특히 1950년 8월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단 김석원 준장의 명성을 듣고 온 학도병 수백명 가운데 71명은 김 준장이 3사단으로 옮기자 함께 싸우겠다며 8월 8일 포항으로 왔습니다. 이들은 변변한 무장도 하지 못한 빈몸이었습니다. 3사단은 학도병 1명당 미 해병대에서 받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지급했죠. 이들은 9일부터 사단 후방지휘소가 있는 포항여중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연락장교와 소규모 지원인력만 있었을 뿐 전투병은 모두 전방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당장 지휘소로 적군이 몰려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일부 각색돼 영화 ‘포화속으로’의 소재가 되기도 했죠. 일부 학도병은 소년원에 가기 싫어 끌려온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비록 군번은 없었지만 모두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었죠.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학도병들의 비극 비극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11일 새벽 4시 30분부터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진격해오는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이 학교 앞 50m 지점까지 다가오자 학도병들의 사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20여명을 잃은 북한군은 해가 뜨자 전열을 정비해 공격했고, 학도병들의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실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무기 창고를 부순 뒤 수류탄 약간과 실탄을 다시 확보해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북한군은 장갑차 5대를 동원해 전진했고, 그 중 2대가 학교 정문으로 돌입하며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실탄이 떨어진 학도병들은 적이 눈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려 수류탄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결국 48명이 전사했습니다. 6명은 부상당했고 4명이 실종, 13명은 포로가 됐습니다. 포로가 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탈출했지만 2명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3사단 지휘부와 포항 시민들은 학도병들이 전투를 벌이는 사이 무사히 남쪽으로 대피했고, 14일 전열을 재정비한 1군단이 다시 포항을 탈환하게 됩니다. 전사한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 대원의 옷속 수첩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절절한 내용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아래는 편지 내용입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100세 시대 新노년] 사회봉사로 인생 2막 연 젊은 노인들

    [100세 시대 新노년] 사회봉사로 인생 2막 연 젊은 노인들

    경기 의왕시 오전동에 사는 유창희(67)씨는 지난해 4월부터 경기도 시니어 감시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7년 전 공직을 그만두고 의료 장비를 제조, 수출하는 업체에서 2년 남짓 근무한 뒤 봉사활동으로 소일을 하다 택한 일이다. 감시단은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보조식품을 고혈압, 당뇨병 등 만병통치약인 양 허위로 판매하는 이른바 ‘떴다방’ 근절을 위해 경기도와 시·군에서 만든 단체다. 보건직으로 평생을 지내 온 유씨에게는 딱 맞는 일자리였다. 그는 경로당과 마을회관, 노인정 등을 돌며 떴다방 단속과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면서 피해 예방을 위한 상담 활동도 하고 있다. 유씨는 “피해자들의 허위 과대광고에 대한 낮은 인식과 음성적인 행태 등으로 신고가 적어 피해 사례를 늘고 있다. 일단 교육을 통한 피해 예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로부터 교통비 명목의 활동비를 받고 월 10여 차례 복지관, 노인대학 등을 다니며 감시 및 교육 활동을 벌인다. 그러면서도 틈나는 대로 평소 알고 있는 경로당 2곳의 회계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고 40여평의 텃밭을 가꾸며 수확한 각종 채소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아내와 함께 정부에서 공모하는 노인 복지시설 또는 안전시설 개선 대책 아이디어에 응모하는 것도 유씨의 소일거리다. 그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하루가 즐겁고 힘이 솟는다. 특히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일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처럼 사회·봉사활동에 나서는 신노인들이 늘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 이웃을 돕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2의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은 아내 등 가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데다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실비 수준의 활동비가 지급되고 있어 노인들의 평생직장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최재기(67)씨는 매일 아침 경기 의정부 신곡노인종합복지관 실버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증명사진을 찍어 주거나 시민들이 갖고 온 사진을 편집해 주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꿈을 찍는 사진관’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스튜디오는 조명, 카메라 등 웬만한 장비를 갖추고 있는 데다 인화지 비용만 내면 누구나 사진을 찍어 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최씨는 또 함께 활동하고 있는 의정부실버사진연구회 회원들과 의정부 회룡문화제, 복지한마당, 의정부 음악극축제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사진을 촬영해 주고 있다. 공직자 출신인 최씨는 2013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사진 교실에서 사진 찍는 법을 처음 배운 후 이 일에 전념하고 있다.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슈퍼마켓 운영 수입과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최씨는 “모든 걸 만족하며 살 수는 없다. 조금은 부족해야 기대감도, 희망도 갖게 된다”면서 “이 나이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월남전 참전 유공자인 김완영(69)씨는 경기 용인처인노인복지회관의 스타 노인이다. 매주 화·수요일 회관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며 찾아오는 주민들에게 주옥같은 음률을 선사한다. 그는 목회자로 활동하다 2년 전 후배 목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공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복지회관은 물론 인근 요양원이나 노인병원에 의지하고 있는 노인들의 적적함을 달래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3년여 동안 색소폰을 배웠고 평생학습센터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월남전 당시 몸을 다쳐 필리핀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외국 공연단의 색소폰 연주에 감명을 받아 나도 언젠가는 같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봉사활동 동기를 밝혔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노인들이 오히려 남을 위해 사회·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데는 지역의 시니어클럽이나 노인종합복지관 등의 역할이 크다. 시설에서 운영하고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평소 해보고 싶었던 취미 생활을 습득하면서 은퇴 후의 인생을 설계하곤 한다. 복지관 등의 봉사활동 등 나눔 프로그램은 이들의 주 활동 무대다. 의정부 신곡노인종합복지관 이지영 과장은 “그동안 경제활동 때문에 취미생활을 갖지 못했던 어르신들이 은퇴 후 자신이 갖고 있던 재능을 나누거나 새로 배운 취미 생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그것을 남에게 베푸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김무성 “한국전 참전 美용사들에 감사” 묘역 찾아 큰절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미국 워싱턴DC 방문 이틀째인 27일(한국시간)에도 안보 행보를 이어갔다. 김 대표는 한국전 참전용사 묘역을 방문해 한국식 ‘큰절’을 두 차례 올리며 참전 영웅들에 대한 존경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이날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을 방문해 한국전 기념비에 헌화하며 함께 자리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김 대표는 헌화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코리아’의 역사나 이름도 모른 채 공산주의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미군이 참전해서 3만 6940명이 전사하고 9만 2134명이 부상하고 8157명이 아직 실종 상태다. 이분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전 참전 당시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 대령을 소개하면서 “이분의 꿈이 유리벽을 세워서 전사한 동지들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것”이라면서 “미국 의회에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우리 한국 새누리당 의원들이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는 이어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해 한국전 참전 당시 사망한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를 찾았다. 그는 “월턴 워커 장군은 낙동강까지 전선이 밀려오는데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장본인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이고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운명을 지켜주신 노장군님께 존경의 뜻을 담아 이렇게 왔다”면서 한국식으로 절을 두 번 하겠다”고 말한 뒤 수행단과 함께 큰절을 두 번 올렸다. 김 대표는 손수건으로 묘비에 묻은 새똥을 손수 닦아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오후에는 ‘한국의 사위’로 불리는 친한파 정치인인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를 만나 10분간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호건 주지사는 림프종암으로 투병 중이라서 공식 행사에는 불참했다. 호건 주지사는 김 대표에게 “한국의 사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 대표는 “주지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빠른 쾌유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워싱턴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6·25 정전협정 체결 62주년 기념식…유엔 참전용사 4명 태극무공훈장

    정부는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6·25 정전협정 체결 62주년 기념식을 열고 전쟁 당시 유엔군 참전용사 4명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6·25 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원으로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싸운 헥터 캐퍼라타(86)와 영국 육군 출신 월리엄 스피크먼(88), 캐나다의 에드워드 존 매스트로나디(90), 미 해군 출신 토마스 허드너 주니어(91) 등 참전용사 4명이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젊은 세대, 부끄러운 역사 기억해야 할 책임 있어”

    “젊은 세대, 부끄러운 역사 기억해야 할 책임 있어”

    한국과 일본, 한국와 베트남 사이에 얽힌 역사적 갈등의 고리를 풀기 위해 아시아 청년들이 뭉쳤다. 베트남 출신 한국 유학생 2명과 재일교포 대학원생 1명, 국내 대학 및 대학원생 6명 등 모두 9명이 역사 연구 모임 ‘홀로그램’을 만들어 본격 활동에 나선 것.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게 이들의 모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모임 결성을 주도한 유세화(27·중앙대)씨는 26일 서울신문과 만나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현장을 답사하고 토론하며 기존과는 다른 다각적인 시각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베트남 전쟁 종전 40주년이 되는 해. 일제강점기 때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강제 징용 등을 당한 ‘피해자’였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는 현지 민간인 수백명을 숨지게 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와 참전용사 단체들은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홀로그램은 본격적인 첫 활동으로 지난 8~14일 한국군 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 빈호아, 하미 마을을 찾아 현장 답사를 벌였다. 이 마을들에는 민간인 희생자 명단이 적힌 위령비와 한국군 학살 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은 증오비가 세워져 있었다. 한국군 학살 문제는 베트남 청년들에게도 낯선 이야기다. 성균관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지티화(23·여)는 “초·중·고교에 다닐 때 ‘항미 전쟁’(베트남 전쟁의 현지 표현)을 중요하게 배웠지만, 미군 학살과 달리 한국군 학살은 교과서에서 전혀 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함께 현장을 찾은 서울대 대학원생 계은진(24·여)씨는 “위령비 등을 매일 가까이서 지켜보는 유족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것”이라며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홀로그램은 ‘피해·가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도는 지양하고 있다. 임혜지(21·여·중앙대)씨는 “한국군 참전용사들도 끔찍했던 베트남 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상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홀로그램은 이번 베트남 답사 결과를 일반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리를 다음달 초에 가질 예정이다. 이들은 또 일본 현장 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현지 인사들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 ‘또 다른 일본’의 모습을 조사하고 알릴 예정이다. 재일교포 류유자(26·여·오사카대 대학원)씨는 “젊은 세대들이 과거 침략 전쟁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생각해야 할 ‘책임’은 있다”면서 “젊은 세대의 힘으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한·일 정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무성 “북핵 수습 위해 美와 긴밀히 협조”

    김무성 “북핵 수습 위해 美와 긴밀히 협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해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정당 외교 차원의 방미 일정에 착수했다. 김 대표는 첫날부터 안보 행보에 박차를 가하며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영원한 맹방인 미국과의 우정을 확인하고 다지는 정당 외교를 하겠다”면서 “국제 정세가 복잡하지만 피를 나눈 미국과 영원히 같이 간다”고 말했다. 또 미국 방문에서 꼭 해야 할 일에 대해 “북핵을 다스리고 수습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에 가면 긴밀하게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첫날 일정으로 워싱턴DC 보훈용사촌을 찾아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게 한국식으로 ‘큰절’을 했다. 그는 “오늘 오전 워싱턴에 도착했는데 미국에서 가장 먼저 여러분을 뵙는 것이 우리 한국인의 예의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찾아왔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 “65년 전 옛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대한민국에 침공해 왔을 때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이름과 위치와 역사도 모르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다”면서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은인이다. 집권당 대표로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또 워싱턴DC 더블트리호텔에서 가진 한국전 참전 용사 환영 리셉션 및 만찬에서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을 언급하며 “지난해 겨울 한국에서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개봉해 많은 한국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셨는데 영화를 보면 흥남부두 철수 작전 장면에서 미국 화물선 메를리스빅토리아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 얘기가 나온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워싱턴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한국전서 전사한 미군 3만 6574명 첫 호명식

    한국전서 전사한 미군 3만 6574명 첫 호명식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동료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25일 낮 12시(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 서쪽 링컨기념관 앞에 위치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 한국전 참전 용사인 글렌 윈호프가 3분간 미군 전사자 90명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한국전기념공원 건립 2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열린 전사자 호명식에서 참전 용사 10여명은 전사한 동료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윈호프는 “동료 전사자들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어 행복하다. 한국전쟁 후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이 보여준 우정에 감사한다”며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이 이곳에 건립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개최한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 이병희 이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추모의 벽’ 건립을 미 의회에 요청했으나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며 “기념공원 건립 20주년을 맞아 미군 전사자 3만 6574명의 이름을 부르는 행사를 열어 의회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전사자들의 명예를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8시까지 진행된 호명식은 정전 62주년이자 기념공원 건립 20주년 기념일인 27일 낮 12시까지 사흘간 열린다. 한국전기념공원은 미 25보병사단 소속 참전 용사들이 1985년 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한·미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추진됐다. 역시 참전 용사 출신인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미군사령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5년 완공됐다. 기념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전 용사 19명의 동상이다. 실물보다 큰 2m 10㎝ 정도 높이에 완장을 하고 적을 향해 움직이는 이들의 얼굴에는 비장감이 흘러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쟁의 긴박함을 느끼게 한다. 이들 19명은 육군 14명과 해병대 3명, 해군·공군 각각 1명을 상징하는데 이들 중 육군 1명의 동상은 한국전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윌리엄 웨버 육군 대령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에서 오른 팔다리를 잃은 웨버 대령은 “실제 모델이 된 것도 기쁘지만 19명에 백인뿐 아니라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모든 인종을 포함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당초 38선의 의미를 담기 위해 동상 38개를 추진했으나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에 따라 절반으로 줄였다고 한다”며 “대신 동상 옆 벽화에 이들 동상이 비춰 결과적으로 38개 동상을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 이사는 “한국전쟁이 베트남전쟁보다 먼저였지만 무관심으로 인해 한국전기념공원이 베트남기념공원보다 10여년 늦게 생겼고, 베트남공원에는 있는 추모의 벽도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한국전쟁 참전 용사 인터뷰 등 관련 자료를 디지털화해 온 한국전쟁유업재단은 이날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제1회 미 역사·사회 교사 콘퍼런스’에서 미 중·고교 교사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가르칠 때 웹사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쟁 관련 디지털 자료를 활용하는 ‘한국전쟁 디지털 교과서’의 시안을 발표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오늘 訪美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부터 9일 동안 미국 방문길에 나선다.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정당외교 차원이라지만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 대표는 워싱턴DC와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잇따라 방문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해 미국 주요 정·관계 인사들과 면담을 한다. 또한 미국 주요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와 우드로윌슨센터 등도 방문한다. 뉴욕 컬럼비아대 특강과 재외동포·참전용사 간담회 등을 통해 현지 교민들과의 접점도 넓힌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미국 해병대 박물관에 장진호 기념비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의 기념비가 미국 해병대 박물관에 세워진다고 23일 밝혔다. 정전협정 체결 62주년인 오는 27일 미국 버지니아 주 관티코 시의 해병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기공식에는 해병대 이등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장군과 리처드 캐리 장군 등 미 참전용사들이 함께하며 최완근 보훈처 차장이 한국 대표로 참석한다. 해병대 박물관에 세워질 기념비는 8각 모양에 약 2m 높이이며 장진호 전투를 상징하는 ‘고토리의 별’ 장식이 올려질 예정이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에는 약 7억원이 소요되고 보훈처는 이 사업에 3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 일대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7일 동안 영하 30~40도의 혹한 속에 미 제1해병사단 1만 5000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의 철수에 성공한 작전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유엔군 전쟁영웅 4명 한국서 태극무공훈장

    유엔군 전쟁영웅 4명 한국서 태극무공훈장

    6·25 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해 빛나는 무공을 세운 노병들이 23일 한국을 방문해 무공훈장을 받는다. 국가보훈처는 21일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62주년을 맞아 15개국 유엔군 참전용사와 가족 등 150여명이 23~28일 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6·25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소총수였던 헥터 캐퍼라타(86)와 영국 육군 병장이었던 윌리엄 스피크먼(88)은 27일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태극무공훈장을 직접 받는다. 이번에 방한하지 못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였던 토머스 허드너 주니어(91)와 캐나다 왕립연대 중위로 참전했던 에드워드 존 매스트로나디(90)도 태극무공훈장 서훈을 받는다. 윈턴 마샬(96) 미 공군 예비역 중장은 6·25 전쟁 당시 335전투기 전대장으로 참전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방한단에는 6·25 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으로 참전해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 조지프 맥크리스천 주니어도 포함됐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김무성 25일 방미… 유력 정치인들과 회동

    김무성 25일 방미… 유력 정치인들과 회동

    새누리당 김무성(얼굴) 대표가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6박 9일 일정으로 미국 순방길에 나선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방미 기간 중 어떤 인물들을 만나고, 어떤 행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6박9일간 순방… ‘유승민 사퇴’ 파동으로 일정 축소 김 대표는 이번 순방길에 워싱턴 DC와 뉴욕·로스앤젤레스(LA) 등 동·서부를 오가며 미국의 행정부 및 의회 주요 인사들과 동포들을 만날 예정이다. 당초 실리콘밸리도 방문하려 했지만 ‘유승민 사퇴 파동’을 고려해 일정을 축소했다는 후문이다. 수행 의원들 역시 당초보다 대폭 축소된 10명 안팎이다. 김 대표와 미 정치인들의 면담 일정 조율은 주로 당 국제위원장인 김종훈 의원이 담당하고 있다. 재외국민위원장인 심윤조 의원은 재외동포간담회 등을 조율한다. 미국 측에서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랭걸 민주당 하원의원 등이 측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도 김 대표의 방미 일정을 돕기 위해 워싱턴 주미대사관을 통해 요인 면담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무 차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존 케리 국무장관·베이너 하원의장 등 고위급 면담 추진 2007년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예비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순방길에 올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을 면담했다. 김 대표 역시 미 상원의장인 조 바이든 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 등 고위급 인사들과의 면담을 추진 중이다. 또 오는 27일에는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과도 면담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이달 말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할 것으로 보여 면담 일정을 잡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당 관계자는 “최대한 고위급 인사들과의 면담을 추진 중이지만 최종적으로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했다. ●29일 반기문 총장과 회동… 대권주자 간 만남에 관심 김 대표는 29일쯤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날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도 여권의 잠재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만큼 면담에서 어떤 얘기가 오갈지 관심사다. 당에서는 김 대표의 이번 방미를 정당 외교 차원에서 이뤄지는 관례적 행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앞선 대권주자들의 방미를 감안하면, 김 대표가 이번 방미를 통해 차기 대권주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내딛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기고] 2015쿠바문화예술축제를 보고/정경원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장

    [기고] 2015쿠바문화예술축제를 보고/정경원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한국은 북한과 3년간의 치열한 6·25전쟁을 치렀다. 당시 한국은 쿠바를 포함한 67개 유엔 회원국의 도움으로 북한과 중국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당시 우방의 병력과 물자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후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도 정보기술(IT) 산업을 중심으로 굳건한 성장을 거듭해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이러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모했다. 외국에 대한 지원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IT 등 산업정책 자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6·25전쟁에 참여했던 참전 용사들을 초청하고 그 후손들에게 한국 유학의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쿠바도 279만 달러의 지원금을 보내와 우리를 도왔다. 그들로부터 받은 도움을 우리가 돌려줘야 할 때인데 안타깝게 1960년 단교 이후 쿠바와의 인적 교류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는 단교 이전의 우방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선 쿠바에는 한인 후손들이 1000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 1921년 멕시코를 거쳐 쿠바 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이주한 우리 선조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2006년 작고한 헤로니모 임 전 동아바나 지역 인민위원장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은 한국으로 유학 오는 쿠바 젊은이들도 많지는 않지만 2013년부터 꾸준히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양국은 이미 수교 이상의 관계다. 2005년 아바나에 코트라 무역관이 개설된 이후 양국 교역이 급성장해 한국은 중국·베트남에 이어 쿠바의 아시아 3대 교역 대상국이 됐다. 최근에는 문화 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2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한국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5월에는 아바나 비엔날레에 초청된 사진작가 한성필씨가 시내 7층 건물 앞면에 국보 제112호 ‘감은사지 3층 석탑’ 사진을 가로 33m 세로 28m의 대형 가림막에 프린트한 작품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가 하면 한류는 쿠바 안방까지 침투했다. ‘내조의 여왕’이 공중파에서 방영되면서 시청률 70%를 넘기며 돌풍을 일으켰고, 이어 ‘아가씨를 부탁해’, ‘시크릿 가든’ 등이 쿠바에서 한국 드라마 붐을 선도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외교부가 2006년부터 쌍방향 문화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쿠바문화예술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에는 6월 26일부터 7월 5일까지 ‘누에보 쿠바 재즈콘서트’와 ‘쿠바 현대영화제’로 나뉘어 개최됐다. 특히 예년과 달리 알프레도 루이스 쿠바 문화부 국장이 단장으로 참석해 격을 높였다. 앞으로 한·쿠바 문화예술 교류를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꾸는 것이 과제다. 이렇게 함으로써 민간 차원의 지속적이고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와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지혜를 생각하며 양국 관계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됐다.
  • 日미쓰비시, 강제노동 美포로에게 공식 사과… “왜 韓·中만 빼놓고 사과하나”

    日미쓰비시, 강제노동 美포로에게 공식 사과… “왜 韓·中만 빼놓고 사과하나”

    “미쓰비시가 강제 노동(forced to work)을 행한 데 대해 도의적 책임을 통감합니다.”(기무라 히카루 미쓰비시 머티리얼 상무) “70년 동안 기다린 사과입니다. 오늘의 영광을 기억하겠습니다.”(강제 노동 미군 포로 제임스 머피) ●구두 사과만… 금전적 배상 없어 일본 미쓰비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노동에 동원된 미군 포로 피해자를 찾아가 머리를 숙여 공식 사과했다. 전쟁 때 강제 노동을 시킨 일본 기업이 한 첫 사과다. 하지만 한국, 중국, 영국, 네덜란드, 동남아시아 국민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이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 기무라 상무 등 대표단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이먼비젠탈센터에서 징용 피해자인 머피(94)에게 사과했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기무라 상무는 “당시 미군 징용 피해자 900여명이 미쓰비시 운영 탄광 4곳에서 혹독한 강제 노동을 했다”면서 “포로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머피는 기무라 상무와 악수하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1942년 필리핀 전선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힌 뒤 구리 광산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던 머피는 “종전 이후 지금까지 사과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기무라 상무는 다음달 15일 종전 70주년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유독 미군 포로에게만 사과한 까닭에 대해 “지난해 7월 강제 징용 피해자 단체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다른 나라 징용자에 대한 사과도 검토할 수 있다”고 모호하게 답했다. 한국과 중국 징용자에 대한 유감 표명이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2차 대전 당시 강제 징용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의견을 밝힐 수 없다”고 회피 반응을 보였다. 머피에게 구두 사과만 했을 뿐 금전적인 배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쓰비시가 사법절차적 고려에 따라 미군에 우선 사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회사가 미국만 우대했던 전례에 비쳐볼 때 이번 사과는 ‘선별 사과’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타카 마사토 주미 일본대사관 대변인은 “(이번 사과에) 일본 정부는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인 포로 징용 문제에 대해 앞서 2009년과 2010년 공식 사과했다. ●英 참전군인·유가족 “왜 사과 않나” 한편 영국 참전군인과 유가족들은 머피와 같은 처지였지만 미쓰비시가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성토했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이날 전했다. 미쓰비시에서 강제 노동을 한 영국군 포로는 672명이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미쓰비시, 우리한테도 사과하라” 英 참전군인 유족 요구

    “미쓰비시, 우리한테도 사과하라” 英 참전군인 유족 요구

    지난 19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터리얼이 2차 대전 당시 강제 동원됐던 미군 포로들에 대해 공식 사과입장을 밝히면서도 영국, 네덜란드, 한국 등 다른 피해 국가는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가운데, 영국 참전군인 유가족들이 미쓰비시의 태도를 성토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미쓰비시의 강제노역 피해자면서도 미국인들과는 달리 아직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한 영국인 피해자 및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42년 일본군 포로로 잡혔던 영국군 제임스 깁슨은 3년 동안 미쓰비시 소유 탄광 및 조선소에서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린 뒤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다가 1982년 사망했다. 제임스 깁슨의 아들 샌디 깁슨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미쓰비시가 제임스의 고충에 대해 지금이라도 직접 사과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제임스가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기온이 매우 낮았지만 포로들에겐 원래 입고 있던 얇은 옷 이외 어떤 의류도 지급되지 않았다. 적십자 구호품은 일본 군인들이 독식했기에 포로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부족한 물자에 배가 고파 소량의 음식을 훔친 병사는 잔인하게 구타당한 뒤 처형되기도 했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제임스는 마침내 포로 신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가혹한 취급으로 생긴 심신의 피해는 지워지지 않았다. 굶주렸던 기억 때문에 항상 강박적으로 많은 식량을 집안에 비축해두고 살았으며 말년에는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사과가 이루어졌다면 아버지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전쟁포로 출신 영국인들은 사과를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없이 살다가 죽었다”며 “그들은 모두 수많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을 안고 살아야만 했고, 지금도 지속적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95년에 사망한 또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레슬리 휴튼의 아내 베라 휴튼은 설령 사과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지나치게 늦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지금 이루어지는 사과는 본인들이 아닌 그 증손들에 의한 것일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미쓰비시가 운영한 6개의 강제 노역장에서 일한 전쟁포로는 총 2000여명, 그 중 30%가 넘는 672명은 영국인이었으나 미쓰비시는 당시 미군 포로였던 제임스 머피를 위시한 미국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했을 뿐 다른 국가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미쓰비시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 프로젝트 경매 입찰에 참여하는 등 미국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英참전군인 포로 유족 “미쓰비시, 우리에게도 사과하라”

    英참전군인 포로 유족 “미쓰비시, 우리에게도 사과하라”

    지난 19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터리얼이 2차 대전 당시 강제 동원됐던 미군 포로들에 대해 공식 사과입장을 밝히면서도 영국, 네덜란드, 한국 등 다른 피해 국가는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가운데, 영국 참전군인 유가족들이 미쓰비시의 태도를 성토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미쓰비시의 강제노역 피해자면서도 미국인들과는 달리 아직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한 영국인 피해자 및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42년 일본군 포로로 잡혔던 영국군 제임스 깁슨은 3년 동안 미쓰비시 소유 탄광 및 조선소에서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린 뒤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다가 1982년 사망했다. 제임스 깁슨의 아들 샌디 깁슨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미쓰비시가 제임스의 고충에 대해 지금이라도 직접 사과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제임스가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기온이 매우 낮았지만 포로들에겐 원래 입고 있던 얇은 옷 이외 어떤 의류도 지급되지 않았다. 적십자 구호품은 일본 군인들이 독식했기에 포로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부족한 물자에 배가 고파 소량의 음식을 훔친 병사는 잔인하게 구타당한 뒤 처형되기도 했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제임스는 마침내 포로 신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가혹한 취급으로 생긴 심신의 피해는 지워지지 않았다. 굶주렸던 기억 때문에 항상 강박적으로 많은 식량을 집안에 비축해두고 살았으며 말년에는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사과가 이루어졌다면 아버지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전쟁포로 출신 영국인들은 사과를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없이 살다가 죽었다”며 “그들은 모두 수많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을 안고 살아야만 했고, 지금도 지속적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95년에 사망한 또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레슬리 휴튼의 아내 베라 휴튼은 설령 사과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지나치게 늦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지금 이루어지는 사과는 본인들이 아닌 그 증손들에 의한 것일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미쓰비시가 운영한 6개의 강제 노역장에서 일한 전쟁포로는 총 2000여명, 그 중 30%가 넘는 672명은 영국인이었으나 미쓰비시는 당시 미군 포로였던 제임스 머피를 위시한 미국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했을 뿐 다른 국가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미쓰비시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 프로젝트 경매 입찰에 참여하는 등 미국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아베에게 힘 실어주기/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에게 힘 실어주기/이석우 도쿄 특파원

    아베 신조 총리는 안보 관련 제·개정 법안 11가지가 중의원에서 통과되던 지난 16일 종교적 신념에 가득 찬 전도사처럼 표결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발하는 야당의 퇴장 속에서 집권당 의원들만의 표결로 법안 통과가 확정되자 아베 총리는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더 엄중해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전쟁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정당화했다. 아베의 애국적 처사에도 국민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 응답이 40% 밑으로 내려앉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42%로 올랐다. 안보 관련 법안 개정에 반대하는 응답도 50%를 훌쩍 넘어섰지만 아베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평화헌법을 무력화·사문화시키고 일본을 남의 전쟁에 휘말리게 하는 ‘전쟁 법안’”이란 반대 주장도 무시됐다. 위헌 논란에다 반대 여론이 더 많은 개정안을 아베 정권은 중의원에서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였다. 참의원에서 표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민·공명 양당은 재가결할 수 있어 법안은 오는 9월 말 정기국회 폐회 이전에 처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보 법안이 개정되면 자위대가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합법적으로 파견될 수 있게 된다. 아베 총리가 자위대 해외 파견에 대한 국회 동의 등 견제 장치를 강조하지만 분쟁 지역에서 교전에 참전할 수 있게 된다. 국제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위대원의 희생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상황들은 전쟁에 간여하지 못하게 한 일본 헌법에 어긋날 소지가 크다. 일본 헌법학자 거의 절대 다수가 집단자위권을 골자로 한 법안이 평화헌법에 배치된다고 한 것만 봐도 이 법안의 논란 정도를 익히 알 수 있다. 예전 같으면 꺼내지도 못했을 이 같은 안보 법제의 개정안을 수적 우세에 기대, 강행 처리했다는 사실은 일본 국내 정치 상황과 주변 환경의 변화상을 보여 준다. 이같이 일본이 조바심을 낸 가장 큰 외적 요인은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이다. 일본을 제치고 아·태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려는 듯한 중국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은 아베 행보에 정당성을 주고 있다. 남중국해 스프라틀리군도 주변에 대규모 인공섬을 만들고, 주변 국가들과 영토 분쟁을 일으키면서 공격적인 해상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적 행보 확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우경화를 획책하는 아베의 가장 큰 지원군은 중국 군부와 강경파”란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전후 70년 동안 일본의 평화와 발전의 기초가 됐고, 동북아 안정을 유지시켰던 평화헌법이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공격적인 중화민족주의의 대두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아베 정권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 군사대국으로 변신시키는 데 활용하고 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사죄 요구 발언 등은 일본 우경화 세력들에게 이용됐고, 일본의 보수 우경화 분위기 강화에 일조했다. 잃어버린 20년 속에 위축되고 불안한 일본 국민에게 ‘자랑스런 역사, 아름다운 과거의 부활’을 강조하는 아베에게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힘을 실어 줬을까. 한국의 대일 외교가 국내 정치용으로 맴돌 때 일본과 중국, 미국은 동아시아의 새 판을 짜기 위한 샅바싸움과 포석 경쟁을 벌여 왔다. 우리는 아베가 강조하는 안보 환경의 변화 물결을 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때다. jun88@seoul.co.kr
  •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한국 대기업들, 스타벅스에게 배워라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한국 대기업들, 스타벅스에게 배워라

    “(기업들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다. 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지난 13일 하워드 슐츠(62) 스타벅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2018년까지 3년 동안 미국의 16개 대기업과 함께 청년 일자리 10만개를 만들겠다는 대형 일자리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한 대목이다. 전체 실업률보다 최고 3배 이상 높은 청년 실업률을 잡기 위해 직접 기업들이 나서야 하는 당위를 담고 있다. 슐츠 회장의 글은 우리나라 6월 청년(15~29세) 실업률이 10.2%로 IMF 위기 직후인 1999년 6월 11.3%를 찍은 뒤 16년 만에 가장 높은데도 정부는 더이상 내놓을 뾰족한 대책이 없고 기업들도 실적 악화 탓만 하며 고용 확대에 소극적인 가운데 전해져 그 울림의 정도가 남다르다. 슐츠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여러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CEO로 이름이 높다. 1996년 사재를 출연해 가족재단을 설립한 뒤 저소득층과 참전 군인,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 캠페인을 벌이고 인종차별금지운동을 해 왔다. 이번에 호텔체인 힐튼,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타코벨, JP모건체이스 등 16개 대기업이 참여한 ‘청년 일자리 10만개 만들기 프로젝트’도 슐츠 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직업을 구하지 못해 ‘백수’로 지내고 있는 16~24세의 저소득층 청년 560만명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등 소수 인종 젊은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3년간 10만명을 수습·인턴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뽑게 된다. 당장 다음달 13일 시카고에서 취업박람회를 열어 2000명에게 직능 훈련을 제공하고 200명을 현장에서 즉석 채용할 계획이다. 앞서 슐츠 회장은 지난 3월 가족재단을 통해 3000만 달러(약 344억원)를 청년 직능 훈련과 멘토링 프로그램에 투입해 3년간 청년 일자리 1만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업계로 확대한 결과물로, 직능 훈련이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고용절벽에 부딪힌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고용 창출이야말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자 역할이라는 슐츠 회장의 지적은 한국 대기업들이 꼭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 활동이 기업 가치를 따지는 주요 기준이 된 지 오래다. 한국도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들까지 몇 년 전부터 경쟁적으로 사회적 공헌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아예 활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구색 갖추기용이라는 인상을 완전히 지울 수 없다. 더욱이 청년 일자리 만들기에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난색을 표해 왔던 대기업들이 최근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강조하는 모습에는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립서비스에 그칠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든다. 대기업들은 언제까지 우리 경제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부에 요구만 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청년 실업이라는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문제 해결에 사회적 책임을 갖고 직접 나서야 한다. 슐츠 회장의 말처럼 정부와 정치인들이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더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슐츠 회장이 회사 돈이 아닌 사재를 출연해 만든 가족재단의 재원을 내놓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빌 게이츠를 비롯해 폴 앨런 등 창업주의 이름을 내건 공익재단들이 많다. 워런 버핏이나 애플 CEO 팀 쿡처럼 재단을 직접 세우기보다 자신의 철학이나 비전에 부합하는 기존 재단에 기부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도 재벌 오너의 이름을 단 재단을 비롯해 5000여개의 공익재단이 있다. 3년 전 서울신문에서 국내 공익재단을 기획 보도하면서 장학사업에 집중돼 있어 재단 설립자의 관심과 비전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창조적으로 지원하라고 주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회적 책임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기업에 요구되는 ‘뉴노멀’이다.
  • 아리랑TV, 한국 방송 최초 ‘유엔본부 채널’ 방송개시

    아리랑TV, 한국 방송 최초 ‘유엔본부 채널’ 방송개시

    아리랑TV(사장 방석호)가 한국방송 사상 최초로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 뉴스 및 시사정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유엔본부는 14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11시) 아리랑TV의 한국관련 영어뉴스 및 시사정보 프로그램을 유엔채널(UN In-house Network)을 통해 방송한다. 이날은 유엔창설 70주년, 6·25 전쟁 유엔군 참전결정 65주년을 맞은 뜻깊은 날이다. 본격적인 방송에서 앞서 유엔본부 3층 익스프레스룸에서 크리스티나 갈라치 유엔사무차장, 오준 유엔대표부 한국대사, 방석호 아리랑TV 사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방송 론칭 계약 체결식도 갖는다. 현재 유엔채널에는 미국의 CNN International, Fox News 영국 BBC World, 카타르의 Al Jazeera, 프랑스 TV5 Monde, France 24 등 20여개 유력 매체가 참여한 상태다. 일본의 NHK World는 1년간 협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5월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이밖에도 Euro News, Russia Today, France 24 Arabic 등도 채널 계약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리랑TV는 영어뉴스와 시사정보 위주의 채널을 신설하고 한국과 유엔본부 간 송수신망 및 유엔본부 내부 설비를 완료하는 등 방송을 위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앞으로 ‘Korea Arirang’이란 이름으로 유엔채널 65번을 통해 공식 방송을 시작한다. 방석호 사장은 “대한민국 국가홍보방송으로 아리랑TV가 전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과 본부 직원들이 활동하는 유엔본부 내부채널에 공식 진입함으로서 기아와 기후, 전쟁과 테러 등 국제사회의 공통 이슈는 물론 통일 등 남북문제, 역사 및 영토문제 등 극동지역의 첨예한 외교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전세계 외교관들의 활동무대인 유엔본부에서 미디어 공공외교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리랑TV가 이번에 유엔채널과 계약한 채널은 뉴스 및 시사정보 프로그램 위주의 신설 채널로, 기존 방송과는 차별화된 24시간 영어뉴스와 시사정보 프로그램을 다룬다. 기존 아리랑TV에서는 평일 생방송 뉴스를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총 6번 방송하지만 UN채널에서는 경제뉴스 위주의 재방송 5회를 포함해 총 11회 뉴스를 방송한다. 시사정보 프로그램인 <Newstellers>, <Money Matters>, <Peninsula Inside>, <4 Angles>, <Global Business Report>, <Bizline>, <Technologize>, <Upfront> 등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공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축하 영상메시지를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어방송 아리랑TV를 통해 여러분과 만나게 돼 대단히 반갑다”면서 “오늘 문을 여는 아리랑TV가 각국의 외교관과 유엔본부 근무자들이 한반도의 현안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여는 채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격려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유엔채널에 이렇게 역동적인 방송사가 진입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이제 아리랑TV는 세계적인 뉴스채널들과 함께하게 됐으며 유엔과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적 관계 속에서 이런 가치 있는 만남은 향후에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세계 각국은 방송을 통해 해외에 자국의 입장을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월부터 역사문제, 영토문제 등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민당 차원서 국가홍보 전담 국제방송 신설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국제 이슈에 대해 서방국가의 뉴스와 차별화된 자국의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국영 뉴스매체 ‘스푸트니크(Sputnik)’를 출범시킨 바 있다. 아리랑TV는 이번 유엔채널 진입을 계기로 한국의 주요이슈 및 콘텐츠를 방송해 한국적 시각을 알리는 것 외에도 기후변화, 물부족, 저탄소, 환경, 식량, 인권, 평화와 안보, 테러, 인구, 고령화 문제 등 유엔이 관심을 갖고 있는 글로벌 이슈와 북한 핵 문제, 인접국의 역사인식 문제, 영토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이슈와 관련된 현상들을 세계 각국에서 직접 취재해 제작한 ‘21th Century’, 유엔의 활동현장을 직접 취재해 제작한 ‘UN in Action’을 주당 2편씩 30분 분량으로 방송한다. 아리랑TV는 비엔나, 나이로비, 제네바 등에 있는 유엔 산하기구 채널에도 방송을 진입시켜 공공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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