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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 수호의 날 앞두고 참배하는 연평해전 용사

    서해 수호의 날 앞두고 참배하는 연평해전 용사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참전 용사인 LIG넥스원 직원 곽진성(왼쪽)씨가 ‘서해 수호의 날’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 후배 신입사원과 함께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전사한 박경수 상사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 등 북한의 ‘3대 서해 도발’을 상기시키기 위해 25일 첫 서해 수호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LIG넥스원 제공
  • 조종사 출신 콜롬비아 대사, T50 타보더니 ‘엄지 척’

    조종사 출신 콜롬비아 대사, T50 타보더니 ‘엄지 척’

    중남미 지역 수출 활로 열릴지 주목 공군 장성 출신인 주한 콜롬비아 대사가 22일 국산 초음속 훈련기 T50을 타 본 뒤 극찬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T50 훈련기의 해외 수출을 추진하는 가운데 중남미 지역으로 수출 활로를 넓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티토 피니야(60) 주한 콜롬비아 대사는 이날 오후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서 216비행교육대대 교관 양정환(37) 소령이 조종하는 T50 후방석에 탑승해 서해 상공에서 1시간 동안 다양한 공중 기동을 체험했다. 콜롬비아 공군사령관(중장)을 지낸 피니야 대사는 약 8000시간의 비행 기록을 보유한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다. 공군은 6·25 참전국이기도 한 콜롬비아에 국산 항공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계기라고 판단해 피니야 대사의 비행 체험 요청을 수락했다. 피니야 대사는 비행을 마친 뒤 “T50을 직접 타 보니 조종하기도 수월해 조종 교육생에게 최적화된 항공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비행 기회를 준 한국 공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공군 관계자는 “이번 비행을 계기로 양국 간 군사교류와 협력이 증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T50은 최고속도가 마하 1.5(시속 1836㎞)로 1400㎞의 항속거리를 자랑하며 미국 공군이 내년을 목표로 추진하는 고등훈련기 구매사업(TX)의 후보 기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슬람국가(IS) 173명 사살한 ‘62세 스나이퍼’ 화제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무려 173명의 이슬람국가(IS) 대원을 사살한 노년의 스나이퍼 소식이 알려져 관심을 끌고있다. 최근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은 이라크 정부군과 IS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북부 바이지 지역을 거점으로 활약 중인 한 노년 병사의 사연을 전했다. 저격용 총기를 들고 전선을 사수하고 있는 이 병사의 이름은 시아파 출신의 아부 타신이다. 회색의 턱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놀랍게도 62세. 그러나 그는 지난해 5월 시아파 민병대에 자원 입대해 지금까지 저격용 소총을 들고 IS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타신에 따르면 그의 총알에 사망한 IS 대원은 모두 173명. 이는 지난해 영국 국방부가 자랑한 해병대 소속의 한 스나이퍼 최고기록과 같은 숫자다. 또한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나이퍼로 불린 크리스 카일(1974-2013)이 과거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기록한 160명(비공식 255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타신이 이처럼 최고의 저격 실력을 가진 것은 풍부한 실전경험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제4차 중동 전쟁과 이란-이라크전 등 총 5차례의 굵직한 전쟁을 겪은 참전용사 출신이다. 타신은 "전쟁 후 은퇴해 지내다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잡았다"면서 "IS의 어느 누구도 우리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하겠다고 신께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향이 한 눈에 보이는 산 위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에 머물며 임무를 수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IS 173명 사살한 노년의 ‘62세 스나이퍼’ 화제

    IS 173명 사살한 노년의 ‘62세 스나이퍼’ 화제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무려 173명의 이슬람국가(IS) 대원을 사살한 노년의 스나이퍼 소식이 알려져 관심을 끌고있다. 최근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은 이라크 정부군과 IS간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북부 바이지 지역을 거점으로 활약 중인 한 노년 병사의 사연을 전했다. 저격용 총기를 들고 전선을 사수하고 있는 이 병사의 이름은 시아파 출신의 아부 타신이다. 회색의 턱수염이 인상적인 그는 놀랍게도 집에서 손자나 볼 나이는 62세. 그러나 그는 지난해 5월 시아파 민병대에 자원 입대해 지금까지 저격용 소총을 들고 IS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타신에 따르면 그의 총알에 사망한 IS 대원은 모두 173명. 이는 지난해 영국 국방부가 자랑한 해병대 소속의 한 스나이퍼 최고기록과 같은 숫자다. 또한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나이퍼로 불린 크리스 카일(1974-2013)이 과거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기록한 160명(비공식 255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타신이 이처럼 최고의 저격 실력을 가진 것은 풍부한 실전경험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제4차 중동 전쟁과 이란-이라크전 등 총 5차례의 굵직한 전쟁을 겪은 참전용사 출신이다. 타신은 "전쟁 후 은퇴해 지내다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잡았다"면서 "IS의 어느 누구도 우리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하겠다고 신께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향이 한 눈에 보이는 산 위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에 머물며 임무를 수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시리아 피흘린 5년… 25만명 사망·1130만명 유랑 생활

    [글로벌 인사이트] 시리아 피흘린 5년… 25만명 사망·1130만명 유랑 생활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발생 5년을 맞았다. 초반 반독재 투쟁의 성격을 띠었던 거리 시위에 이슬람 종파 간 갈등,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및 강대국의 개입 등이 얽히면서 내전으로 비화됐다.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들은 유럽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국제사회의 중재에도 시리아 평화회담은 진척을 보이지 않아 내전의 끝은 아득히 멀어 보인다. 최근 시리아 분할론이 부상하고 있지만 중동 국가들은 이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중동의 반정부 시위 물결인 ‘아랍의 봄’ 영향으로 시리아에서는 남부 도시인 데라에서 청년 15명이 “국민은 정권을 무너뜨리길 원한다”라는 구호를 벽에 낙서했다. 시리아 당국이 이들을 체포해 고문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011년 3월 15일 수도 다마스쿠스, 데라 등 주요 도시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정권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3월 18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에 발포해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반정부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외신들에 따르면 시리아 시민들이 분노한 배경에는 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부패, 종파와 민족에 따른 차별, 그리고 개혁 실패로 인한 경제 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2000년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대통령직을 세습한 알아사드는 영국 유학을 다녀온 의사 출신으로 아버지보다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 활동을 부분적으로 자유화하고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경제 개방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반발로 정치 개혁은 무산됐으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그의 경제 개혁은 소득 불평등만 확대시켰다. 시리아 국민의 74%를 차지하지만 시아파 주도의 정권에서 배제됐던 수니파의 오랜 불만은 경제 악화로 더욱 고조됐다. 민주적 개혁, 정치범 석방, 부패 척결 등을 정권에 요구하던 시위대는 4월에 접어들며 알아사드 정권 축출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알아사드 정권도 시위 진압을 위해 기갑부대를 동원하면서 5월 말 민간인 사상자는 1000여명에 이르렀다고 BBC가 전했다. 시위대에 대한 정권의 무력 행사가 거세지면서 정부군에 대항해 무기를 든 시민군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정권 지지 기반인 군대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했다. 7~8월에 이르러 반정부 무장단체인 자유시리아군과 국내외 반정부 인사들이 주도한 시리아국가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반정부 세력이 조직화되면서 내전이 본격화됐다. 2012년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수니파 국가와 미국 등 서방 국가가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면서 반정부군은 정부군과 무력으로 맞설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게 됐다. 알아사드 정권이 반정부 세력과 민간인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시리아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실시하지 못하자 이들 국가가 개별적으로 반정부 세력 지원에 나선 것이다. 걸프 연안 국가들은 반정부 세력의 무기 구입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터키는 자유시리아군을 지지하며 군사작전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미국도 2012년 7월 자유시리아군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민간단체로 승인했다. 반면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시리아의 우방인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에 재정적·군사적으로 지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2013년에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에 참전해 시리아 정부군과 함께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갈등이자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2013년 시리아 영토의 60%가 반정부 세력의 손에 떨어지자 정부군은 이란, 헤즈볼라, 그리고 시아파 민병대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때 반정부군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의 테러와 과도정부 역할을 했던 시리아국가위원회의 내부 갈등으로 정부군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변수가 시리아 내전에 등장하면서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IS는 2014년 6월 칼리프 국가를 선언하고 8월 시리아의 락까를 점령해 사실상의 수도로 삼았다. IS가 전 세계를 상대로 잔혹한 테러를 저지르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넓히자 미국은 2014년 8월 알아사드 정권 대신 IS 격퇴로 전략을 수정하고 IS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러시아도 2015년 9월부터 대IS 공습에 나섰으나, 알아사드 정권을 돕기 위해 IS가 아닌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이 IS 격퇴에 힘을 쏟는 사이 알아사드 정권은 올해 초부터 반정부 세력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 반정부 세력의 핵심 근거지인 알레포까지 압박해 들어갔다. 시리아 내전 5년 동안 사망자 수는 25만명을 넘어섰다고 BBC가 전했다. 유엔 난민기구에 따르면 내전 발발 전 2300만명에 이르던 시리아 인구 중 절반가량이 거주지를 잃고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중 650만명은 국내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으며, 480만명은 유럽 등 국외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의 70%가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3분의1가량이 생존에 필요한 식품조차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리아를 떠난 480만명의 난민 가운데 지난해 100만명가량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유럽 또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시리아 난민의 급증으로 반이민 정서가 유럽 각지에 팽배해지면서 극우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각국이 난민 유입 저지를 위해 국경을 봉쇄하면서 유럽 통합의 근간이었던 각국 간 자유로운 이동 보장이 흔들리고 있다. 유엔이 주도하는 시리아 평화회담이 14일(현지시간) 열렸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평화회담 개최를 위해 지난달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내 임시 휴전에 합의했으나,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상대방이 공격 행위를 해 합의를 깼다고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동정치를 전공한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휴전 합의로 시리아 내전의 강도는 낮아질 것으로 보이나, 내전 상황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IS와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격인 알누스라 전선이 평화회담에서 배제돼 회담의 실효성이 낮고, 회담 당사자 간 이해관계와 목표가 매우 달라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현재 서방 등 미국과 수니파 온건 반정부 세력은 알아사드 정권의 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러시아와 이란·시리아 정부는 정권 교체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고착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시아파 정부, 수니파 반군, 쿠르드족이 시리아를 삼분하는 플랜B 계획이 미국 정부와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평화회담을 주도하는 스테판 데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는 13일 “평화회담에서 정치적 해결안을 성공적으로 도출하는 것 외에 실제 가능한 플랜 B는 없다”고 못박았다. 서 교수는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가 임의로 설정한 국경을 따라 다양한 종파와 민족을 불안정하게 아우르고 있는 중동 국가들이 시리아의 3분할론을 받아들일 리 없다”면서 “시리아가 내전으로 분할된다면 이웃 중동 국가들도 국내 여러 종파와 민족의 독립 또는 자치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섬’ 산에 빠지다, 능선 물결 속에

    ‘섬’ 산에 빠지다, 능선 물결 속에

    섬 산행은 뭍의 산을 오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바다 위를 거니는 듯, 발아래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고도를 높여 가는 맛이 그만이다. 물론 반론도 있겠다. 등산 한 번 하자고 뭍의 유명산 다 제치고 섬까지 가랴. 한데 섬 산행은 긴 여정 자체가 여행이다. 뭍의 막다른 곳에 항구가 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 북부의 네 섬에서 명산으로 꼽히는 곳은 두 개다. 암태도의 승봉산(356m)과 자은도의 두봉산(364m)이다. 둘 다 빼어난 조망을 가진 산이긴 하나, 높이와 풍경의 깊이 등에서 두봉산이 반 발짝 정도 앞서는 형국이다. 자은도 사람들은 두봉산을 말봉산, 암태도 사람들은 승봉산을 되봉산이라 각각 부른다. 여기엔 전설이 깃들었다. 오래전 바닷물에 잠겨 있던 이 지역에 한 말(斗)가량의 땅이 솟았다. 세월이 흘러 점점 바닷물이 줄면서 한 말의 땅이 산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두봉산(斗峰山)이다. 승봉산(升峰山) 이야기는 대충 짐작이 된다. 한 말보다 작은 한 되(升)가량의 땅이 솟아 승봉산이 됐을 터다. 지금도 두 산의 꼭대기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된다고 하니 전설이 마냥 황당한 건 아닌 듯하다. ●갈 길 바쁜 외지인은 ‘대율재 코스’ 적합 두봉산은 신안 전체에서도 전망 좋은 산으로 꼽힌다. 암릉지대에 오르면 ‘천사(1004) 섬’이라 불리는 신안의 여러 섬들이 줄곧 발아래 펼쳐진다. 주변 산들보다 월등히 높고, 정상부가 암릉으로 이뤄져 뱃사람들이 두봉산을 곧잘 이정표로 삼았다고 한다. 산행 코스는 세 개로 나뉜다. 구영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도명사~정상~대율재~구영저수지를 돌아 원점회귀하는 코스는 3시간 남짓 소요된다. 자은초등학교를 출발해 무선기지국~성재봉 봉화대터~대율재~암릉지대~정상~도명사로 내려오는 코스는 얼추 4시간을 잡아야 한다. 갈 길 바쁜 외지인에게 적합한 코스는 대율재 코스다. 줄곧 오르막만 이어지는 자은초등학교 구간을 지름길로 통과한 뒤 대율재와 암릉지대를 거쳐 정상을 찍고 원점회귀한다. 보폭을 빨리하면 2시간 30분 안쪽에 오갈 수 있다. 들머리는 구영리(舊營里)다. 조선시대 수군영(水軍營)이 있던 곳이다. 현재 자은초등학교 자리가 당시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다고 한다. 구영리에서 대율재 이정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이층집이 나온다. 산행의 실질적인 들머리다. 등산로는 집 왼쪽의 산자락을 따라 나 있다. 여기서 콧잔등에 땀이 맺힐 정도의 비탈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대율재 안부다. 자은초등학교에서 출발한 등산로도 이곳에서 합류된다. 대율재부터 첫 번째 암릉지대까지 능선길과 바위지대가 번갈아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10여분 정도 고도를 올리면 한순간 하늘이 열리고 쉬어 갈 만한 암릉지대가 나온다. 여기부터 약 1㎞ 구간이 두봉산 산행의 백미다. 쉴 틈 없이 빼어난 풍경들이 몰아친다. 멀리 자은도 둔장해변 등이 한눈에 담기고, 코앞으로는 두봉산 정상부의 암릉들이 우뚝 솟았다. ●명나라 장수 살린 사랑과 은혜 ‘자은’ 놀라운 건 고도를 높여 만나는 암릉 구간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는 거다. 암릉 등에 가려졌던 풍경들이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철봉을 잡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방으로 ‘1004’개에 이르는 섬들이 물결친다. 그야말로 섬들의 파도다. 오른쪽으로 해남반도와 진도, 하의도 등이 아련하다.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에 속한 팔금, 안좌, 암태, 도초 등도 눈에 잡힌다. 왼쪽으로는 임자도와 사옥도, 증도, 무안의 해제반도까지 볼 수 있다. 두봉산은 정상보다 바로 아래 암릉의 전망이 더 낫다. 맑은 날엔 제주도까지 보인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그런 행운은 없었다. 원점회귀가 아닌 경우 정상 삼거리에서 내려가는 코스는 둘이다. 중국의 장수 두사춘이 머물렀다는 굴, 천혜방(天惠房)을 지나는 유천리 코스와 도명사로 내려가는 코스다. 두사춘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참전한 병사다. 남의 나라에 와서 싸우다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던 두사춘은 탈영을 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전전하다 자은도까지 왔다. 섬에 도착한 그는 난세에 생명을 보전할 수 있게 섬이 베푼 사랑(慈)과 은혜(恩)를 못 잊어 했고, 섬 이름도 자은도(慈恩島)가 됐다는 속설이 있다. 면소재지가 있는 구영리로 가려면 도명사 방면이 무난하다. 초반부터 급경사 지대를 통과하는 등 다소 험하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다. 글 사진 신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그리운 남편 품으로…‘美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 별세

    그리운 남편 품으로…‘美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 별세

    마약 퇴치 ‘Just say no’ 주도오바마 “온화·관대함의 본보기” 경선 후보들도 공방 멈추고 추모 6일 오후 8시(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에서 열린 미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 TV토론은 이날 세상을 떠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 여사를 위한 추모 묵념으로 시작했다. 낸시 여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미 정치권은 모처럼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목소리로 그를 추모하며 애도를 표했다. 낸시 여사 측 조앤 드레이크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제40대 미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가 이날 오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벨어에 자택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94세. 낸시 여사는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 위치한 ‘로널드 레이건 기념관’ 내 레이건 전 대통령 묘지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 남편이 떠난 지 12년 만에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921년생으로 뉴욕 출신 영화배우였던 낸시 여사는 역시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레이건을 만나 1952년 결혼했다. 1964년 정계에 뛰어든 레이건을 내조했으며,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1967~1975년)로 활동할 때 베트남전 참전 군인 돕기 등 대외 활동을 펼치는 등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남편을 따라 1981년 백악관에 입성, 1988년까지 퍼스트레이디로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미 언론들은 낸시 여사를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라고 평가했다. 낸시 여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약 퇴치 캠페인으로 꼽히는 ‘아니라고 말하라’(Just say no) 운동을 주도했으며, 퇴임 후에는 남편이 앓던 알츠하이머병 퇴치 운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지인들은 “낸시가 없었다면 주지사 레이건도, 대통령 레이건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백악관에서 정책과 정치에 관여하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상을 처음 세웠다는 평을 받는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은 잇따라 애도성명을 내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는 그가 “온화하고 관대함의 자랑스러운 본보기”였다며 추모한 뒤 그가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아픈 현실을 겪어야 하는 많은 미국인들의 목소리가 됐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낸시 여사는 남편과 나라에 맹렬히 헌신했다”고 회고하고 “백악관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완벽하고 항구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제 부인이자 동반자와 다시 결합하게 됐지만, 미국과 레이건 일가는 우아하고 강인한 여성을 잃었다”고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경선 후보들도 잠시 정치 공방을 멈추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같은 퍼스트레이디 출신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낸 애도성명에서 “낸시는 비상한 여성”이라며 “자애로운 퍼스트레이디이자 자랑스러운 어머니였으며 남편에 대해 헌신적 부인이었다”고 밝혔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적통’임을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등은 앞다퉈 성명을 내고 낸시 여사를 추모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北, 핵실험·미사일 ‘뒤통수’… 항일·항미 혈맹서 제재대상 급변

    北, 핵실험·미사일 ‘뒤통수’… 항일·항미 혈맹서 제재대상 급변

    북한의 혈맹이자 가장 큰 교역국이기도 한 중국이 결국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양국 관계의 변화가 주목된다. 중국은 그동안 전통적인 우방인 북한을 옹호하는 입장이었으나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입장이 점차 변하고 있다. 이를 두고 ‘피로써 맺어진 동맹’이란 뜻에서 불리던 ‘혈맹’에서 보통의 외교 관계를 설정하는 ‘국가 대 국가’로 퇴조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 대 당… 장성택 이후 쇠락 최룡해가 가늘어진 끈 역할 북·중 관계는 공산주의 완성을 공동의 목표로 하는 ‘당’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정부가 우선하지만 북·중은 당이 군, 관, 민보다 우선한다. 특히 북·중은 일본의 영토 야욕에 저항했던 ‘항일’이라는 공통분모와 한국전쟁 참전을 매개로 ‘항미’라는 일체감으로 서로의 체제 존속에 협력해 왔다. 양국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당 사이의 교류는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실종되다시피 했다. 장성택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행정부장은 북한의 대표적 친중파로 통했던 인물로 2012년 8월 중국을 방문해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면담까지 한 인물이다. 시진핑 지도부는 장성택의 처형을 중국에 대한 북한의 ‘도전’으로 간주했다는 후문이다. 이로 인해 양국 관계는 지난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권력 서열 5위인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북하기 이전까지 냉랭한 관계가 지속됐다. 하지만 류윈산의 방북으로 소원하던 북·중 관계가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도 잠시였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두 나라 관계는 다시 멀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기념식에 참가하면서 끊어진 양국 관계의 복원자 역할을 맡고 있지만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군 대 군… ‘동맹’ 유지 ‘혈맹’ 약해져 당 대 당의 관계가 악화되자 군사 분야에서도 냉랭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양측은 표면적으로 군사 동맹을 유지하고 있지만 혈맹 인식은 약해졌다. 양국이 1961년에 체결한 ‘우호협력 상호원조 조약’에 중국은 한반도에 전쟁 발생 시 ‘자동 참전’하는 조항이 있지만 최근에는 이 조항이 사문화된 것이라는 주장이 중국 측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고위급 군사대표단의 방북도 2011년 11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명령 불복을 이유로 처형된 북한 변인선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도 북·중 간 군사 ‘핫라인’을 끊으라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의견을 제시했다가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소식통은 “한·중 관계가 어느 때보다 긴밀해지는 것에 화가 난 김정은이 중국이 더이상 필요없다며 군사 분야를 포함한 모든 관계를 단절하라고 지시했다”며 “이에 변인선이 한·미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북·중 간 핫라인만은 꼭 남겨 놔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가 처형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변인선 처형 후 북·중 간 핫라인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 파견된 외교무관들 전부가 교체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대 정부… 교류 줄어들어 정부 대 정부 관계도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이 가시화되면서 악화되고 있다. 특히 북·중 무역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북한 광물자원의 수출 금지가 북한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북·중 간 교역 규모는 2013년 정점을 찍은 뒤 2년 연속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2013년 약 65억 4000만 달러를 기록한 뒤 2014년과 2015년에는 각각 전년도보다 3%와 15% 가까이 줄어들었다. 북·중 ‘경제무역문화관광박람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지만 이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그 규모가 매우 작다. 과학·기술 분야도 중국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1990년대부터 북한 국가과학원과 중국 과학원 간의 교류가 활발했지만 2011년 이후로는 중단됐다. 북한은 중국으로 유학생들을 많이 파견하지만 중국은 반대로 감소되는 추세다. 문화 교류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지난해 김 제1위원장의 ‘기쁨조’인 모란봉악단이 중국 공연에 나섰지만 돌연 귀국해 무성한 뒷말을 남겼다. 스포츠 교류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중국의 홀대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지도자 대 지도자… 시진핑 vs 김정은 관계는 역대 최악 무엇보다도 북·중 관계 악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국 지도자 간의 불신이다. 역대 북·중 지도자들과 비교해도 현재처럼 골이 깊고 앙금이 쌓인 적이 없을 정도다. 시 주석은 역대 중국 지도자들이 취임 이후 북한을 방문하던 관례도 무시할 정도로 북한에 대한 분노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국가주석 취임 해인 2013년 북한이 전격적으로 3차 핵실험을 한 것은 시 주석 입장에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사건이다. 물론 김 제1위원장 입장에서도 시 주석이 북한이 아닌 한국을 방문한 것과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승인한 것에 대한 배신감이 결코 작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까지 김 제1위원장은 중국을 공식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비공식적으로 김 제1위원장을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밖에도 중국이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보호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현재와 대조적으로 과거 중국 최고 지도층은 틈날 때마다 북한과의 우의를 강조해 왔다. 특히 북·중 혈맹 1세대인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각별했다. 마오는 김일성에게 “우리 두 집안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이 돕고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도와야 하는 그런 사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5성홍기에는 조선열사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과 장쩌민, 후진타오도 선대들의 우의를 지켜 가고자 노력했다. 김정일은 실제로 북한을 통치한 1980년대부터 사망 전인 2011년까지 총 9차례의 중국 방문을 통해 양국 간 우애를 다져 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육군 3사 51기 졸업식 ‘3대째 장교’ 진기록 나와

    육군 3사 51기 졸업식 ‘3대째 장교’ 진기록 나와

    2년제 편입학 사관학교인 육군3사관학교가 24일 경북 영천 학교 연병장에서 제51기 졸업식을 거행했다. 이날 졸업한 생도 498명은 2014년 입학 이후 전공 학문과 군사학 학위를 동시에 취득했고 다음달 4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리는 합동 임관식에서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특히 졸업생 가운데 이준혁(왼쪽·25), 정성제(오른쪽·24) 생도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장교의 길을 걷게 됐다. 특히 두 생도 모두 할아버지가 6·25전쟁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한 유공자로 손자의 군 생활 선택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한글날·가계 살림·女교도소 지킴이들

    한글날·가계 살림·女교도소 지킴이들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공무원상 시상식에서 93명이 영예를 안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고(故) 김혜선(왼쪽) 과장은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과 세계 각국의 한글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의 확대,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에 업적을 남겼다. 특히 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업무에 매달리다 지난해 9월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손병두(가운데·52)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가계부채의 안정적인 관리를 위한 종합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안심전환대출 출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법무부 설옥희(오른쪽·54·여) 교위는 전국에서 유일한 여자 교도소인 충북 청주교도소에서 26년 동안 근무하며 여성 수용자 등의 교화에 힘썼다. 서울 강북경찰서 김창곤(47) 경위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장으로 재직하면서 800여명의 인명을 구조했다. 또 하반신 마비 중증장애인인 국가인권위원회 정호균(46) 사무관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장애인에 대해 제1종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한 현행 제도의 개선에 힘썼다. 국가보훈처 류미선(47·여) 주무관은 6·25전쟁 참전자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은 5724명을 발굴해 4403명을 등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이중(48) 과장은 외국산에 의존하던 과학수사 관련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는 등 다양한 특허를 출원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조윤섭(47) 연구사는 국산 골드키위 ‘해금’ 품종을 개발했다. 인사혁신처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경제단체, 협회 등 69개 기관으로부터 후보자 287명을 추천받은 뒤 학계, 언론계 등의 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세 차례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확정했다. 이들에겐 특별승진, 승급, 성과급 최고등급, 승진 가점 등의 인사상 우대 조치를 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거꾸로 간 이집트, 붕괴 직전 시리아… 신기루 같은 ‘아랍의 봄’

    [글로벌 인사이트] 거꾸로 간 이집트, 붕괴 직전 시리아… 신기루 같은 ‘아랍의 봄’

    ‘봄은 없었다.’ 2011년 1월 14일 튀니지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하야 성명은 중동·아프리카에 거대한 시민혁명을 촉발시켰다. 재스민혁명으로도 불리는 ‘아랍의 봄’이다. 과일 행상을 하던 20대 청년이 경찰 단속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인 게 도화선이 됐다. 이후 주변국들로 불똥이 튀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 등이 잇따라 사임하거나 성난 군중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20~40여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독재자들은 불과 1년 사이에 축출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아랍의 봄’은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재자를 몰아낸 민주화 바람 뒤에는 부족·종파 간 갈등이 불거졌고, “빵과 자유를 달라”던 외침 이후에는 더욱 가혹한 경기 침체가 닥쳤다. 주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고, 모든 게 아랍의 봄 탓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21일(현지시간) 시리아 중부도시 홈스에서는 연쇄 차량 폭탄테러로 최소 57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국영 TV 등이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시아파 사원에서도 폭발로 최소 83명이 숨졌다. 북부 외곽 알레포에서는 러시아의 공습으로 이슬람국가(IS) 대원 50명 이상이 숨지는 등 대규모 유혈사태가 잇따랐다. 사망자 대다수는 민간인이었다. 시리아에서 5년째 계속되는 선연한 피냄새가 아랍의 봄 현주소를 대변한 셈이다. 민주화라는 ‘이상’이 힘의 공백이란 ‘현실’에 밀리면서 혼란은 극대화됐다. 쿠데타와 내전,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의 발호는 혼란을 부추겼다. 이집트에선 또다시 군부가 등장했고, 리비아는 국토가 동서로 갈라져 좀처럼 분열의 끝을 알 수 없다.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튀니지나 모로코에서도 정치·경제적 불안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봄은 왔으나 한겨울 냉기가 넘치는 아랍의 봄을 놓고 “이런 혼란을 겪으려고 우리가 혁명을 했나”란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이집트 다시 독재 정권… 시리아 24만명 희생 민주화 성공 사례로 꼽혔던 이집트는 거꾸로 갔다. 지난 12일, 30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임 5주년을 맞았으나 혼란의 종점은 보이지 않는다. 2011년 11월 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한 무슬림형제단이 선거를 통해 합법적 정부를 수립했으나 2013년 압둘팟타흐 시시가 주도한 군부 쿠데타로 독재 정부로 회귀했다. 시시는 스스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이 됐다. 올해에도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봉쇄하고 대대적인 반정부 인사 탄압을 이어 갔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이집트에선 지금까지 최소 4만명이 반정부 시위로 체포됐다. 독재에 맞섰던 리비아, 예멘, 시리아에선 내전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리비아와 예멘은 독재자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권 이양 과정에서 내전에 휘말렸다. 리비아는 42년간 독재를 펼친 카다피가 시민군에 사살된 뒤 불과 한 달 만인 2011년 11월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일 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다. 종파·부족 간 분열 탓이다. 수도 트리폴리에 거점을 둔 세력과 토브루크에 거점을 둔 세력이 서로 정통 정부라며 경쟁하는 사이 북부 해안 지역을 IS와 알샤바브 등 극단주의 단체들이 점령했다. 예멘은 2012년 2월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선출돼 평화적 정권 이양에 성공했다. 하지만 경제난이 발목을 잡았다. 2014년 9월 연료비 인상에 반대하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공격했고, 이듬해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연합군이 참전하는 종파 간 내전을 불러왔다. 시리아는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퇴진을 거부했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5년째 반군과 내전을 이어오면서 벌써 24만명 가까운 국민이 희생됐다.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 영국 등 서방국과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 이란이 전선을 형성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리아 북부 락까를 근거로 한 IS가 세력을 넓히고, 자치정부를 구성한 쿠르드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혼란은 커졌다. 여기에 수니파 국가인 터키와 사우디가 개입을 선언하면서 ‘완전한’ 휴전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내전을 피해 시리아를 탈출한 500만명 가까운 난민 상당수가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유럽까지 시리아 내전의 후폭풍에 휘말린 상태다. 바레인에선 시민 봉기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 다수를 차지한 시아파는 수니파 왕정 타도를 부르짖고 있다. 발원지인 튀니지는 2014년 민주 정부를 수립했으나 경기 침체와 정치 불안정으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 가고 있다. 실업률은 15%에 육박했다. 2011년 7월 입헌군주정을 출범시킨 모로코도 경제난 탓에 정국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종파 간 갈등·쿠르드족 문제 불씨로 남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칼럼에서 “이 지역에선 힘의 공백뿐 아니라 ‘가치의 공백’도 큰 문제”라며 “과거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발흥한 ‘아랍민족주의’가 아랍 국민 대다수를 한데 모을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랍국은 서구 제국주의가 인위적으로 국경을 긋고 식민통치한 뒤 불과 반세기 전에야 독립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국민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데다 냉전시대를 거치며각기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재자들이 철권통치를 공고히 했다. 서방국이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선 유럽 민주화에 200년, 아시아가 50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된 만큼 벌써부터 아랍의 봄의 성패를 논하는 건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아랍권에선 포스트 아랍의 봄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정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아파 국가에 영향력을 확대 중인 이란과 쿠르드족 문제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득세는 아랍의 봄으로 상처 입은 주변 시아파 무슬림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전망이다. 쿠르드족도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중동 국가는 쿠르드족 자치권을 놓고 큰 갈등을 빚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서방 국가의 도움을 얻어 이 지역에서 자치정부를 수립한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향후 아랍권 안보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예컨대 터키에만 1500만명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시리아 북부에 근거한 쿠르드 무장조직인 인민수비대(YPG)와 연계되면서 터키는 남과 북이 쿠르드 세력으로 둘러싸인 상황이 됐다. 쿠르드족을 탄압해 온 터키 정부로선 쿠르드족 단체들과 사실상 전쟁을 수행 중이다. 미국의 역할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랍권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 온 미국은 알카에다와 IS라는 괴물을 키운 장본인이다. 하지만 최근 시리아 휴전협정을 주도하면서 복잡한 이 지역 정세에서 서서히 발을 빼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미국이 등을 돌리면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러시아와 이란을 등에 업고 가혹한 탄압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반군 상당수는 같은 수니파 계열인 IS로 합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라며 “오바마 행정부는 내부적으로 이제 중동에 다시 군사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만큼 휴전 성립이야말로 미국이 도출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동남아 韓流산타… 태권도로 국제사회봉사 ‘기부 하이킥’

    동남아 韓流산타… 태권도로 국제사회봉사 ‘기부 하이킥’

    지난달 29일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퀴노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미(24·여·필리핀)를 만났다. 처음에는 아이미가 다음날 마닐라 국군회관에서 열린 부영그룹 이중근(74·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 회장의 디지털피아노 및 칠판 기증식에 참석하는 한국 취재진을 위해 고용된 현지 코디네이터인 줄 알았는데 가이드를 하기에는 유창한 영어에 비해 한국어가 많이 서툴렀다. 아이미는 “한국 유학생 시절만 해도 한국어가 괜찮았는데 필리핀에 돌아와서 많이 잊어버렸다”며 쑥스러워했다. 아이미는 이 회장이 국내로 유학 온 아시아·아프리카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 2008년 자신의 아호를 따 설립한 우정(宇庭)교육문화재단의 장학생 790명 중 한 명이었다. 아이미는 2011년부터 3년간 한국의 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에서 에너지시스템공학을 공부한 뒤 2년 전 고향 마닐라로 돌아와 한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현재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잡은 아이미는 이 회장이 기부를 위해 필리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작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휴가를 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러다가 회사 잘리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수력발전 관련 전공을 했는데, 내 전공은 수요가 많아 갈 곳이 많다. 괜찮다”고 여유 있게 받아쳤다. 아이미는 첫날 이른 아침부터 이튿날 오후 기증식 행사가 끝나는 동안 한시도 한국에서 온 일행 곁을 떠나지 않고 통역부터 행사 진행 등을 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아이미뿐만이 아니었다. 이 회장이 필리핀 정부에 교육용 디지털피아노 5000대와 칠판 5만개를 기증하기 위해 치러진 기증식 행사에서는 필리핀의 또 다른 우정교육문화재단 출신 장학생들이 통역과 사회를 맡았다. 평소 “교육에 투자하면, 한번 사용하고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가 최고의 기부 활동”이라고 말해 온 이 회장을 기증식이 끝난 뒤 만났다. “음악과 태권도처럼 아무런 마찰 없이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게 어딨습니까.” 이 회장은 동남아시아에서 ‘산타클로스’로 통한다. 2003년부터 교육 시설이 열악한 동남아 14개국에 디지털 피아노 6만대와 칠판 60만개를 기증했고 학교가 부족한 캄보디아, 라오스, 동티모르, 스리랑카, 태국 등에는 600개의 초등학교 건립을 지원했다. 이 중 부영그룹이 사업적으로 진출한 곳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세 나라뿐이다. 이 회장이 기부한 피아노와 칠판만 돈으로 환산해도 5000억원이 훨씬 넘는다. 부영 관계자는 “현재 베트남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이 회장이 기부한 칠판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어릴 적 고향 사람들과 우물물을 나눠 마시고 자랐어요. 교육 관련 기부는 우물을 파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성장 밑거름이 되는 제일 가치 있는 투자가 교육이니까요.” 이 회장은 기부를 하는 것을 ‘우물 파는 일’에 비유했지만, 이 ‘우물’에 한국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디지털피아노를 기증할 때 딱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아리랑’ ‘고향의 봄’ 등 반드시 한국 노래가 녹음 돼 있는 피아노를 보낸다는 겁니다.” 2009년 6월 한·아세안 정상회의때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부아손 라오스 총리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졸업식 노래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이 회장은 디지털피아노를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이왕이면 동남아 각지에 한국 노래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한국의 졸업식 노래를 녹음해 피아노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 노래가 들어간 피아노를 기부하는 것이 자칫하면 문화 침략이 될 수도 있어서 항상 현지 교육부의 승인을 받은 뒤 피아노를 보냅니다. 동남아 학생들이 한국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여러번 봤지만 볼 때마다 감동적입니다.” 지난달 6일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로 취임한 이 회장은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로 국제 사회에 봉사를 하는 일이 평소 해 온 ‘기부를 통한 한류 전파’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 총재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은 ‘태권도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상생에 이바지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2009년 9월 출범해 현재까지 337개국에 1579명의 단원을 파견했다. 그동안 이 회장은 교육 기부뿐만 아니라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에 태권도훈련센터를 건립해주고 이들 국가에 태권도협회 발전 기금을 지원하는 등 꾸준히 동남아 지역에 태권도 기부 활동을 펼쳐 왔다. 이러한 지원 덕에 캄보디아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태권도로 건국 이래 처음으로 대회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년 전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1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글로벌 스폰서 협약을 맺고 태권도 세계화를 위한 적극적인 후원에 나서고 있다. “제가 능력은 없는데 저 보고 (총재를)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웃음). 현재는 (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 예산도 더 확보해서 제대로 한번 해볼 예정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인프라가 없어 태권도를 배우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을 찾아 더욱 지원을 늘려 나가고 싶습니다. 음악이나 태권도를 전파하는 것처럼 순수한 국위선양은 없으니까요.” 이 회장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피아노, 칠판 등 교육 기자재 기부도 교육재단을 만들어 앞으로 더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같은 경우는 디지털피아노를 기증하기로 협약까지 맺었는데 현지 운송 사정이 좋지 않아 보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6·25전쟁 때 얼마나 많은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로 성장했으니 나눠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업 오너로서는 이례적으로 6·25전쟁 요약본 등 3질의 역사서를 직접 쓰기도 한 그는 동남아뿐만 아니라 르완다, 세네갈 등 아프리카의 6·25 참전국 학생들에게도 피아노와 칠판을 기증하고, 장학생을 선발해 배움의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아이미와 같은) 장학생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엘리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견해요. 저의 기부 활동을 통해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었음을 전 세계에 알려주고 싶습니다.” 마닐라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이중근 회장은…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고려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1992년 학교법인 우정학원 이사장 ▲1994년 ㈜ 부영그룹 대표이사 회장 ▲1999~2001년 학교법인 건국대학교 제20대 이사장 ▲2000~2004년 한국주택협회 회장 ▲2012년 (재)우정교육문화재단 이사장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부의장 ▲2016년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 ▲1995년 금탑산업훈장 ▲1996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9년 전경련 IMI경영대상 사회공헌대상 ▲2009년 대통령표창 ▲2007년 캄보디아 국왕 수교훈장 ▲2007년 베트남 우호훈장 ▲2007년 라오스 일등훈장 ▲2011년 동티모르 공훈훈장 ▲2013년 캄보디아 국왕 대십자 훈장
  • “독도는 이젠 내 삶… 日 자꾸 넘봐 골치”

    “독도는 이젠 내 삶… 日 자꾸 넘봐 골치”

    “벌써 10년이네요. 뭐 독도 이장이라고 별거 있겠는교? 우리 땅 독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열심히 사는 기지요.” 독도리 이장 취임 10년째인 주민 김성도(76)씨는 1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 저것들이 내가 사는 곳을 자꾸 넘보며 별의별 짓을 다 해 골치가 아프다”고 밝혔다. 일본이 아직도 ‘독도 침탈 야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시마네현이 올해도 강행하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4년 연속 차관급을 보내기로 했다. 시마네현은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이날은 시마네현이 1905년 독도를 일방적으로 편입한다고 고시한 날이다. 현재 김 이장 아내 김신열(79)씨와 독도경비대원 22명 등 모두 24명이 독도 주소를 갖고 있다. 1970년도부터 독도에서 생활한 김씨가 이장에 취임한 것은 2007년 4월 6일이다. 당시 정윤열 울릉군수가 독도에서 임명장을 줬다.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한 행정 역량 강화 차원에서였다. 김 이장은 “이장질이라 해 봤자 별거 있는교? 독도를 찾아오는 정부 및 자치단체 관계자, 국내외 취재진, 연구기관 직원 등을 안내하는 기 전부 아인교. 그래도 내가 독도에서 가장 오래 살아서 젤 전문가 아인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독도에서 일본의 침탈 야욕 규탄 대회가 열릴 때는 앞장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남전 참전 용사인 김 이장은 독도를 지켜 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17,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중앙 단상 맨 앞줄에 자리를 배정받은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내가 10여년 전부터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요청했다. 그러다 2012년 초 이명박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방문 약속을 받아내 그해 이 대통령이 방문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독도 1호 사업자이기도 한 그는 2013년 5월부터 독도 선착장에서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티셔츠와 손수건 등 기념품을 판매한다. 2년 전 암 수술을 받은 그는 당뇨 등 합병증까지 겹쳐 힘들게 지낸다. 김씨 부부는 경북도가 매달 지원하는 생활비 100만원과 이장 수당 20만원이 주 수입원이다. 김 이장은 “독도에서 사는 게 외롭고 힘들지만 청춘을 바쳐 지켜 온 터전이고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땅”이라며 “아내와 함께 독도를 열심히 지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 사진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일본이 내가 사는 곳을 자꾸 넘봐 골치 아픕니다”

    “일본이 내가 사는 곳을 자꾸 넘봐 골치 아픕니다”

    “벌써 10년이네요, 뭐 독도 이장이라고 별거 있겠는교? 우리 땅 독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열심히 사는 기지요.” 독도리 이장 취임 10년째인 주민 김성도(76)씨는 1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 저것들이 내가 사는 곳을 자꾸 넘보며 별의별 짓을 다 해 골치가 아프다”고 밝혔다. 일본이 아직도 ‘독도 침탈 야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시마네현이 올해도 강행하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4년 연속 차관급을 보내기로 했다. 시마네현은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이날은 시마네현이 1905년 독도를 일방적으로 편입한다고 고시한 날이다. 현재 김 이장 아내 김신열(79)씨와 독도경비대원 22명 등 모두 24명이 독도 주소를 갖고 있다. 1970년도부터 독도에서 생활한 김씨가 이장에 취임한 것은 2007년 4월 6일. 당시 정윤열 울릉군수가 독도에서 임명장을 줬다.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한 행정 역량 강화 차원에서였다. 김 이장은 “이장질이라 해 봤자 별거 있는교? 독도를 찾아오는 정부 및 자치단체 관계자, 국내외 취재진, 연구기관 직원 등을 안내하는 기 전부 아인교. 그래도 내가 독도에서 가장 오래 살아서 젤 전문가 아인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독도에서 일본의 침탈 야욕 규탄대회가 열릴 때는 앞장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남전 참전 용사인 김 이장은 독도를 지켜 온 공로를 인정받아 제17, 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아 중앙 단상 맨 앞줄에 자리를 배정받은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내가 10여년 전부터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요청했다. 그러다 2012년 초 이명박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방문 약속을 받아내 그해 이 대통령이 방문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독도 1호 사업자이기도 한 그는 2013년 5월부터 독도 선착장에서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티셔츠와 손수건 등 기념품을 판매한다. 2년 전 암 수술을 받은 그는 당뇨 등 합병증까지 겹쳐 힘들게 지낸다. 김씨 부부는 경북도가 매달 지원하는 생활비 100만원과 이장 수당 20만원이 주수입원이다. 김 이장은 “독도에서 사는 게 외롭고 힘들지만 청춘을 바쳐 지켜 온 터전이고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땅”이라며 “아내와 함께 독도를 열심히 지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찰스 캠벨 前 주한 미8군 사령관 별세

    찰스 캠벨 前 주한 미8군 사령관 별세

    주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찰스 캠벨 육군 대장이 지난 8일 고향인 미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별세했다. 68세. 1970년 루이지애나주립대 학군단(ROTC)에서 군 경력을 시작한 캠벨 대장은 베트남전에 참전해 참모와 지휘관으로 복무한 바 있다. 그는 베트남전을 실제 목격한 마지막 육군 장교 세대다. 캠벨 대장은 중장이던 2002년 중학생 신효순, 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한국 사회에 반미 감정이 높았을 때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주한미군 감축, 재배치 등 한·미 간 민감한 안보 문제를 다루는 책임자 역할을 했다. 고인은 2007년부터 미 육군 전력사령부 사령관으로 복무한 뒤 2010년 퇴임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산업화 기적’ 이끌었던 50세 KIST

    ‘산업화 기적’ 이끌었던 50세 KIST

    베트남전 참전 대가 2000만弗로 설립 포철 건설 계획·컬러TV 개발 등 주도 “향후 50년 에너지 등 미래 문제 해결”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4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KIST는 이날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본원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등 450여명의 국내외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KIST는 1965년 5월 18일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대가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에 관한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설립됐다. 공동 성명을 통해 두 나라 정부는 1000만 달러(약 120억원)씩 총 20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1966년 2월 10일 최형섭 박사를 초대 소장으로 공식 출범했다. KIST는 포항제철소 건설계획 수립, 전자공업 육성계획 수립, 컬러TV 수상기 개발 등을 주도했다. 현재 26개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15곳이 KIST 부설 연구소나 센터로 운영되다가 분리된 것이다. KIST는 이날 행사에서 ‘KIST 2066, 비욘드 미라클(기적을 넘어서)’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KIST 관계자는 “미지의 연구 영역에 도전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맏형으로서 국가 연구개발(R&D)의 구심체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창립 50주년 기념식과 함께 본관 뒤쪽에 조성된 ‘50주년 기념 공원’에는 KIST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과 책자, 기념품, 50년 뒤 후배에게 남기는 편지 등이 담긴 타임캡슐 봉인식도 가졌다. 당초 연구원 출신 동문 모임인 ‘연우회’가 윤종용(전 삼성전자 부회장) 전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이 기부한 2억원으로 제작한 박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갖기로 했지만, 일부에서 “과학기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연기됐다. 이병권 KIST 원장은 “지난 50년간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면 앞으로 50년은 에너지 문제, 고령화, 기후변화, 도시화 등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 종합과학연구소로서 역할을 더욱 확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한국전쟁 참전 노병들, 61년전 세운 중학교 찾아 ‘경례’

    한국전쟁 참전 노병들, 61년전 세운 중학교 찾아 ‘경례’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 40사단 노병들이 3일 경기 포천 관인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미 40사단은 6·25전쟁 뒤 1955년 4월 관인면에 마을을 만들고 관인중학교를 세웠다. 연합뉴스
  • 기록물로 입증된 조선 첫 女비행사

    기록물로 입증된 조선 첫 女비행사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날아가서 조선총독부와 천왕궁을 폭파하리라.” 한국과 중국에서 첫 여류비행사로 꼽히는 독립운동가 권기옥(1901~1988) 지사가 1920년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만난 도산 선생과 임시정부 군무총장을 지낸 노백린 장군에게 한 말이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권 지사의 비행사 참전활동을 입증하는 기록물이 최근 국가기록원에서 복원됐다. 2일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권 지사가 항공학교에서 받은 필업증서(졸업장·오른쪽)와 국민정부 군정부에서 받은 상위 관찰사 위임장(왼쪽) 등 권 지사 관련 기록물 7건 24개를 복원했다고 2일 밝혔다. 이 가운데 필업증서와 위임장은 권 지사의 모교이자 소장기관인 숭의여고가 복원을 의뢰했다. 평양 출신인 권 지사는 1919년 숭의여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어린 나이에 옥고를 치렀다. 일본 경찰에 쫓겨 중국으로 망명한 후 1925년 2월 중국 남서부의 운남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졸업해 한·중 양국에서 최초의 여류비행사가 됐다. 이번에 복원된 필업증서는 2005년 영화 ‘청연’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 여류비행사로 잘못 알려진 박경원보다 권 지사가 2년 정도 앞선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권 지사는 1933년 국민정부군 정부 본부 항공서 교육과 편역원 겸 공군 상위에 임명됐는데, 이번 복원물 가운데 이 임명장도 포함됐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피아노·칠판 선물에 필리핀 아이들 웃음꽃

    피아노·칠판 선물에 필리핀 아이들 웃음꽃

    아프리카·한국전 참전국 기증 일환 “아이들 더 나은 환경서 꿈 이루길”디지털피아노 속 한국 노래 저장돼 “필리핀에서 아리랑을 들으니 아직도 60여년 전 한국에 있는 느낌입니다.” 지난 29일 부영그룹의 디지털피아노 및 칠판 기증식이 열린 필리핀 마닐라 국군회관. 8~12살 필리핀 초등학생 60여명이 피아노로 ‘아리랑’을 합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객석 맨 앞줄에 앉은 도맹개스(90·필리핀)는 서투른 발음으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구절을 따라했다. 도맹개스는 1952년부터 1년간 필리핀 파브트리 부대 19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밤마다 고지에서 전투를 하면서 적군이 몰려올 때마다 전우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며 “60년 전 우리(필리핀)가 한국을 도와줬는데, 한국의 기업이 기증한 피아노로 필리핀 아이들이 아리랑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새 피아노로 손발을 맞춘 아이들은 마닐라 인근 10여개 초등학교에서 선발됐다. 교사 제니(30·여)는 “공연을 위해 3개월 전부터 맹연습을 시켰다”며 “그동안 학교에 피아노가 없어 집에 있는 개인 피아노를 학교에 갖다 놓고 음악 수업을 했는데 이젠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피아노 연주를 한 아이린(12·여)은 “처음 한국 노래를 들었을 때 낯설게 느껴졌는데 피아노로 쳐 보니 멜로디가 아름답고 가사도 좋다”며 “덕분에 한국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새 피아노가 있는 학교에 빨리 가고 싶다”며 웃었다. 공연이 끝난 뒤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은 디지털피아노 5000대와 칠판 5만개를 필리핀 정부에 기증했다. 이 회장은 “한국이 큰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 덕분”이라며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이자 아시아 국가 중 한국과 가장 먼저 수교한 국가인 필리핀 아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꿈을 펼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이 회장은 기증식에 참석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6명에게 자신이 쓴 역사서 ‘6·25 전쟁 1129일’을 전달하기도 했다. 기증식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루이스트로 필리핀 교육부 장관과 차관, 김재신 주필리핀 한국대사, 필리핀 학생과 교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루이스트로 장관은 “디지털피아노 기증으로 양국이 음악을 통해 우정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부영이 기증한 피아노에는 아리랑을 비롯해 고향의 봄, 졸업식 노래 등 한국 노래가 필리핀어로 번안된 버전과 함께 저장돼 있다. 피아노와 칠판은 필리핀 전국 초등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인다. 이 회장은 동남아,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 및 한국전쟁 참전국을 대상으로 한국 노래가 담긴 디지털피아노 6만여대와 칠판 60만여개를 기증하는 등 활발한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닐라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중국군 유해 36구 3월 말 추가 송환

    한국과 중국이 지난해 발굴한 6·25 전쟁 참전 중국군 유해 36구를 오는 3월 31일 중국 측에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 수위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을 놓고 한·중 관계가 기로에 선 가운데 부실한 검증 과정으로 논란이 된 중국군 유해 송환 행사는 지속함으로써 양국 우호 관계를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28일 “중국 정부와 어제 베이징에서 실무협의를 열고 지난해 3월 2차 유해 송환 이후 추가로 발견된 중국군 유해 36구와 관련 유품을 3월 31일 인천공항에서 인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실무협의에는 장학명 국방부 군비통제차장과 리귀광 중국 민정부 보훈국 부국장이 양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한·중 양국은 2014년 1월 한국에서 전사한 6·25 참전 중국군 유해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매년 청명절을 앞두고 송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그해 3월 중국군 유해 437구를 송환한 데 이어 지난해 3월 68구를 추가로 중국에 인도한 바 있다. 하지만 유해발굴 사업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중국군 유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국방부가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에 따라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중국군 유해 송환 행사를 강행함으로써 북한 핵실험 등에도 한·중 우호 관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까지는 원하지 않는 양국의 속내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은 지난달 22일 환구시보를 통해 중국군 유해 송환에 오류가 있었다고 해도 단순한 실수일 뿐 “양국 간 우호관계에 금이 가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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