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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잉글랜드-독일 친선경기 양귀비 완장 차는 이유는?

    11일 잉글랜드-독일 친선경기 양귀비 완장 차는 이유는?

    10일(이하 현지시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친선경기를 벌이는 잉글랜드와 독일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유니폼 어깨에 검정 완장을 두르게 된다. 완장 안에는 붉은색 양귀비 그림이 들어간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와 독일축구협회(DFB)는 1918년 11월 11일 영연방 국가들이 1차 세계대전 종전 선언을 한 날로 기리고 있는 현충일(Remembrance Day)을 하루 앞둔 이날 전몰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양귀비 완장을 차기로 합의했다고 BBC가 8일 전했다. 마틴 글렌 FA 최고경영자(CEO)는 “연대와 단합을 보여주려는 몸짓”이라고 규정했다.  사실 불과 1년 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대표팀은 양귀비 패치를 붙이고 나와 모두 벌금을 물어낸 일이 있다. 정치적 행동을 금지한 FIFA 규칙을 위배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FIFA 규칙이 개정됐다. 홈 팀과 원정 팀, 경기를 주최한 쪽이 모두 합의하면 양귀비 패치를 붙여도 되는 것으로 완화했다. 앞의 네 축구협회 모두 규칙 개정 이후 이번 A매치 기간에 양귀비 패치를 유니폼에 부착하는 것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레인하르트 그린델 DFB 회장은 양귀비 패치는 정치적 선전이 결코 아니라며 “두 차례 세계대전을 끝내게 하고 이제 축구에서 향유하고 있는 가치들, 존중과 관용, 그리고 인간애를 기억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왜 양귀비 꽃이 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상징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1915년 캐나다의 참전 의사인 존 맥크래가 쓴 시 ‘플랜더스 전쟁터’에서 유래했다. 벨기에의 플랜더스에서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쓴 시가 널리 퍼지면서 이 시에 등장한 양귀비가 추모의 상징물이 됐다. 그 뒤 영연방을 넘어 프랑스, 미국 등도 이날을 기리고 있다.  이날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바비 무어 동상 옆에 1914년 성탄절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이 휴전하고 축구를 즐겼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휴전 기념탑 모형이 세워진다. 경기를 앞두고 영국 육해공군 장병들이 사열을 진행하며 국가가 연주된 뒤 전몰 장병에 대한 묵념이 2분 동안 진행된다. 스타디움 아치는 붉은 색으로 타오르며 전광판에는 ‘축구는 기억하고 있다’는 문구가 새겨진다. 스타디움 안에서는 깃발 행진이 진행되고 동쪽과 서쪽 스탠드에서는 양귀비와 티셔츠 등으로 카드섹션이 펼쳐진다.  웨일스 대표팀도 9일 프랑스와 원정 친선경기를 치르면서 양귀비 완장을 두르게 된다. 10일 북아일랜드는 스위스와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 1차전을, 스코틀랜드는 9일 네덜란드를 홈으로 불러 들여 친선경기를 치르는데 두 대표팀도 양귀비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설지 눈길이 간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첨예하게 대립한 북아일랜드, 양귀비가 재료가 되는 아편 때문에 커다란 고통을 겪은 중국, 오랜 식민 통치에 시달린 인도 등에서는 양귀비꽃 추모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갖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유엔기념공원 향해 묵념…11일 턴 투워드 부산 행사 개최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영령을 추모하고자 11일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부산시는 11일 오전 11시 부산 전역에 1분간 추모 사이렌을 울리고 부산유엔기념공원을 향해 전 세계가 동시에 묵념을 하는 ‘턴 투워드 부산’ 행사를 한다고 8일 밝혔다. 이 행사는 2007년 6·25 참전용사인 캐나다 빈센트 커트니가 제안해 매년 열리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시간에 전 세계가 한 도시로 향하는 특별한 행사다. ‘세계가 부산을 향해 하나 되는 순간’(Moment to be One,Turn Toward Busan)이라는 턴 투워드 부산 행사는 11월 11일 오전 11시에 1분간 부산을 향해 추모 묵념을 한다는 숫자 1의 의미와 국경을 초월해 같은 마음으로 하나(One)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부산시는 재해·재난 경보 등 비상사태와 현충일을 제외하면 이례적으로 턴 투워드 부산 행사에서 사이렌을 울린다. 시는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을 보유한 ‘평화 도시’라는 부산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턴 투워드 부산 행사를 활용할 계획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앞으로 이 행사가 세계적인 추모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번 행사에 6·25 참전 11개국 유엔 참전용사와 전몰장병 유가족 등 70여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8~13일 5박 6일 일정으로 방한해 행사참석과 한국문화체험 등의 시간을 가진다. 특히 한-터키 수교 60주년을 맞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터키 전몰장병의 유가족 23명과 독일 의료지원단 단원 가족·후손 등 18명도 특별초청됐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오랜 벗 같아…한미 항상 함께할 것”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오랜 벗 같아…한미 항상 함께할 것”

    문재인 대통령은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오랜 벗 같이 막역하게 느껴진다. 한미는 위대한 동맹으로 가는 여정에 항상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빈만찬 만찬사를 통해 “한미 양국의 긴밀한 공조와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압도적 힘의 우위는 결국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멈추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게 할 것”이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이어 “한반도에서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내일의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보장하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고 든든한 팀워크로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2차대전 후 자유세계 재건을 위한 트루먼 대통령을 회고했다.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에 따라 한국전쟁이 벌어진 한반도에 외국 참전이 이뤄졌고, 양국 군인이 전쟁터에서 함께 흘린 애국심의 붉은 피로 한미동맹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또 “저는 6월 워싱턴의 장진호 전투비에 헌화했다.참전용사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를 전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한미동맹의 숭고한 가치를 상기했다. 지금도 양국이 함께 피 흘리며 지킨 이 땅의 평화가 다시 위협을 받지만, 한미동맹은 그 위협을 막아내는 길이 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한 세계 최대 최첨단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가 바로 한미동맹의 굳건함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1년 전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가 지금 위대한 미국을 만들고 있다. 우리 앞에는 위대한 미국과 함께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과제도 모여있다. 한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함께 평화 재건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빈곤해결 같은 공공가치의 구현에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공동 노력이야말로 6월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제가 합의한 한미동맹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길인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더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8일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1년이 되는 날임을 상기하면서 “한국에서는 첫 번째 생일을 특별히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당선 1년을 어떻게 축하드릴까 고민 끝에 한국 국빈으로 모셔 축하 파티를 열기로 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좌중에 웃음이 터지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쳐달라. 존경하는 트럼프 대통령 내외분의 첫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25년 만의 국빈방문이다. 지난 6월 방미 때 제가 받은 환대에 보답할 기회가 이렇게 빨리 주어져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했는데 오늘 내외분을 청와대 경내로 모셔서 같이 지내다 보니 아주 오랜 벗처럼 막역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더욱 위대한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여정에 항상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1년을 축하하며 내외분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한다”며 건배사를 마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프랜드 베트남 돕기 11년째, 9일부터 디엔비엔성 찾아

    글로벌 프랜드 베트남 돕기 11년째, 9일부터 디엔비엔성 찾아

    봉사단체 ‘글로벌 프랜드(Global Friends)’가 2006년 베트남 봉사 활동을 시작한 지 11주년을 맞아 9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북서부 디엔비엔성(省)으로 떠난다. 이 단체는 1966년 12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430여명이 희생된 쾅아이성 빈호아현를 찾아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빌고 과거의 악연을 풀어 상생(相生)의 미래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베트남 소수민족과 농촌 지역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의료 봉사와 컴퓨터와 장학금 기증, 새끼돼지 후원 등으로 점차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봉사단체가 10년을 넘겨 이 나라에서 꾸준히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특히 이번 봉사활동은 지난달 홍수와 산사태로 70여명이 죽거나 실종된 지역을 돕기 위해 하노이 한인회와 힘을 합쳐 이뤄진다. 핀호, 나붕 현의 중고교 학생 60명에게 50달러씩 모두 3000달러를 전달하고 농민들에게 새끼돼지 30마리를 전한다. 또 우물 두 곳을 파주고, 하노이 한인회가 제공하는 점퍼 800벌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또 3년 동안 30명의 무료 백내장 검진과 시술을 해준 충주밝은의원 송기영 원장이 하이퐁안과와 손잡고 10명의 백내장 수술을 해준다. 특히 송 원장은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의 아들이자 사위로 선대의 악업을 씻고, 아버지의 나라를 찾은 라이따이한들의 안과 진료를 해주는 등 좋은 일에 앞장서고 있다. 베트남 한인사회 월간지 ‘좋은 베트남(Good Vietnam)’에서도 하노이에서 500㎞ 이상 떨어진 오지에서 이뤄지는 이번 봉사활동을 동행 취재하기로 했다. 글로벌 프랜드는 지금까지 북부에 치우쳤던 베트남 봉사활동을 중남부로 확대, 하고 호치민한인회와도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프랜드는 지금까지 송기영 원장이 30여명의 백내장 검진과 시술, 의약품과 돋보기 안경을 기증했고 LS전선 하이퐁 지사의 도움으로 9년 동안 컴퓨터 90여대 값과 운반, 설치 등으로 1억 2000만원어치를 후원받아 전달했다. 초중고 학생 30명에게 100달러씩 3만달러를 전했다. 새끼돼지는 3년 동안 100여마리를, 의류업체 ‘성민’에서 양말과 신발 등 500만원어치, LS전선 베트남 직원들이 학용품과 아동용 점퍼 등 3000달러 이상을 후원했다. 글로벌 프랜드는 앞으로 국내에 정착한 다문화가정 2세 등에게 진로 지도를 연계시키고, 한국 대학생 등 청소년들의 아세안(ASEAN) 연수 및 봉사를 돕고, 베트남을 넘어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세안 국가로 봉사 활동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터키 독자에게 영감 주는 것이 곧 연대”

    “터키 독자에게 영감 주는 것이 곧 연대”

    “터키인들 문화적으로 유연… 한국 문학 잘 받아들여 놀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주목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통을 겪는 터키인들을 떠올렸습니다. 터키는 역사적으로 쿠데타가 많았는데 그런 게 국민에게 늘 상처였죠. 이런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치료하기조차 힘들죠. 소설의 화자인 소년이 극단적인 고통에 내몰려도 동정을 자아내기보다 오히려 독자를 웃게 만들었다는 점이 감동적이었습니다.”●한국전 참전했던 터키인 이야기 소설가 손홍규의 장편소설 ‘이슬람 정육점’에 대한 터키 영화감독이자 소설 평론가인 르자 카르치의 평이다. 2010년 출간된 이 작품은 터키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남아 정육점을 운영하게 된 터키인 하산이 주인공이다. 그가 마음속 상처가 큰 고아 소년을 입양해 함께 생활하면서 세상의 따뜻함을 알아 간다는 내용이다. 터키에는 2013년 소개됐다. 5일 이스탄불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튜얍전시장 내 한국관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카르치 감독과 손 작가는 40여명의 독자 앞에 앉았다. 대부분 참석자들이 젊은 학생들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행사 이후 이어진 사인회에서도 현지 독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참전했고, 온 가족이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나왔다”는 22세 청년(얄츤 오주유렉)부터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책을 샀다”는 40대 중년 여성(귤친 요르군)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한국·터키 문학인들 소통 중요” 이날 서울신문과 만난 손 작가는 “한국 문학에 대한 터키 독자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한류의 덕인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손 작가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든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든 아무래도 괜찮다”면서 “터키인들이 한국에 대해 폭넓은 호기심을 가지게 되면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 작가는 특히 “문학을 알게 된다는 것은 우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소통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작가는 터키인들이 문화적으로 융통성이 있고 개방적이어서 우리 문학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무슬림이 정육점을 운영하는 설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이곳 인터넷 서평 별점이 박하다고 들었는데, 많은 터키인들이 소설의 설정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놀랐다”면서 “터키는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세속주의를 추구해 유연하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터키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의 매력을 알리려면 우선 양국의 문학인들이 소통, 교류하는 장이 필요할 터다. 카르치 감독과도 이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는 손 작가는 “촛불 혁명을 거치고, 험난한 시국에도 당당히 맞서 온 한국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터키 작가와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영감과 힘을 전해 주는 것이야말로 최소한의 방식이지만 이것이 곧 연대”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이스탄불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별세…향년 92세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별세…향년 92세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제17대 합참의장(1981.5∼1982.5)과 제23대 국방부 장관(1982.5∼1986.1)을 지낸 윤성민 예비역 육군대장은 1926년 전남 무안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1월 육군 소위로 임관(육사 9기)해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으며, 5사단장·3군단장·제1야전군사령관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사단 25연대 소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전장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는 등 조국수호를 위해 헌신했다. 베트남전쟁 중이던 1968년에는 주월 한국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을지·화랑무공훈장,보국훈장 통일장,미국 은성훈장,월남국가 3등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훈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합참의장 재직 중에는 야전군 전력보강과 수도권 방위전력을 크게 발전시키는 등 탁월한 업무능력으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면서 “후배들에 대한 배려와 부하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 군과 국방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전했다. 12·12 때는 육군참모차장으로 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우정해씨와 두 딸이 있다. 합참은 영결식을 9일 오전 9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합참장으로 거행할 예정이다. 빈소 서울삼성의료원 장례식장 9호실 02-3410-315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1월 11일 11시를 기억하자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양훈모>

    11월 11일 11시를 기억하자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양훈모>

    인터넷에서 11월 11일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기념일들이 나온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빼빼로 데이로 기억 될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며, 영연방 국가 사람들에게는 현충일, 미국 사람들에게는 제대 군인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 날은 우리나라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올해로 9년째 진행 중인 Turn Toward Busan(부산을 향하여)이라는 행사가 진행되는 날이다. 우리는 6.25전쟁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만 기억하고, 이 전쟁에는 일면식도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자유, 평화를 위하여 참여했던 UN군이 있었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그들의 공훈과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행사는 6.25전쟁에 참여했던 캐나다의 빈스커트니씨가 2007년에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고자 제안하여 시작된 행사로 2008년부터 국가보훈처 주관 행사로 진행되고 있고, 2014년부터 유엔참전 21개국과 함께하는 국제추모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왜 부산인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유엔군 사령부 묘지를 시작으로 59년 유엔과 대한민국간 협정을 체결하여 6.25에 참여했던 11개국, 2,300기의 묘지가 안장되어 있고, 유해를 찾지 못한 전몰장병들의 추모명비가 있다. 6.25전쟁기간 유엔군의 전사자는 총 4만여명이다.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11월 11일, 11시에 1분간 부산을 향해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11시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1분간만 부산을 향해서 우리를 위해 스러져간 무명의 용사들을 위해 추모의 묵념을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게 원조를 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는 6.25전쟁에 참여했던 유엔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하자. 11월 11일 11시 그 시간을.
  • [이광식의 천문학+] ‘빅뱅’이 성서의 ‘천지창조’일까?

    [이광식의 천문학+] ‘빅뱅’이 성서의 ‘천지창조’일까?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는 우주인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교황은 우주인들에게 “우주 속 인간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우주생활에 대한 관심과 함께 세상을 신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우주인들에게 부러움을 표하면서 20분간 우주인들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 로마 교황들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오랜 전통이다. 자신들의 신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의 대학 동문이었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모질게 박해한 것도 교리 문제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가 “성서는 하늘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줄 뿐이며, 하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라고 항변했지만, 끝내 종신 연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과학을 억압했던 기독교이지만, 20세기 들어서 세불리를 느끼자 더이상 저항을 멈추고 과학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마침 나타난 빅뱅 이론이 기독교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되어주었다. 영원 이전부터 우주가 존재했다는 정상 우주론은 한마디로 ‘반기독교적인 우주론’이었다. 기독교에서 볼 때 가당찮은 주장이었다. 영원 이전이라니, 우주는 분명 하나님이 6000년 전에 창조하신 것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잖은가.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한 공직자 후보가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 말해 세상을 경악시킨 일이 있었다. 성서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빅뱅 이론이 바로 이 천지창조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도 시작이 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욱이 이 빅뱅 이론을 맨먼저 주창한 이는 벨기에 출신의 천문학자인 가톨릭 신부였다. 조르주 르메트르.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다가 1차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 인생 항로를 크게 틀어 천문학자가 되었다. 우주가 탄생한 날은 ‘어제 없는 오늘’ 수학에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에 나오는 중력장 방정식을 깊이 연구한 끝에, 우주는 과거 한 시점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팽창우주 모델’을 세상에 선보였다. 르메트르는 후일 빅뱅 이론으로 발전된 ‘원시원자’(primeval atom) 개념을 도입하여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기원, 즉 그가 ‘어제가 없는 오늘’(The Day without yesterday)이라고 불렀던 태초의 시공간에 도달한다는 선구적 이론을 펼쳐냈다. 1927년 브뤼셀에서 열렸던 세계 물리학자들의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팽창우주 모델을 설명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당신의 계산은 옳지만, 당신의 물리는 끔찍합니다”라는 끔찍한 말을 들었다. 아인슈타인이 거부한다는 것은 곧 전 과학계가 거부한다는 뜻으로,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론에 흥미를 잃고 한동안 잊은 듯이 지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인 1929년 혜성처럼 나타난 미국의 신참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관측 증거를 내놓았다. 이 하나의 발견으로 허블은 20세기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등극했고, 빅뱅 이론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르메트르의 팽창우주 모형, 즉 원시원자 이론이 유신론의 증거로, “성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주었다”고 선언했다. 르메트르는 이 교황의 말에 크게 화를 내며, 개인적으로 종교와 과학을 섞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아직 빅뱅 이론이 정상 우주론과 치열한 논쟁을 하는 중으로, 교황의 개입이 오히려 빅뱅 이론을 궁지로 몰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레드 호일 등 정상 우주론자들은 르메트르를 비판하면서, 가톨릭 신부 교육이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그의 관점을 왜곡시켜 원시원자 이론이 성서의 창세기에서 ‘창조’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고 공격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팽창하는 우주라는 개념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일개 신부의 신분이었지만 르메트르는 빅뱅 이론을 종교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삼가줄 것을 교황에게 건의했고, 그후 비오 12세는 두번 다시 빅뱅이 창세기의 천지창조라는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르메트르가 ‘솔베이의 절망’을 맛본 지 6년 만인 1933년, 마침내 아인슈타인의 항복을 받아냈다. 우주 팽창을 발견한 허블의 윌슨산 천문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르메트르는 에드윈 허블을 비롯한 쟁쟁한 천문학자와 우주론자들 앞에서 빅뱅 모델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가미하여 현재의 우주 시간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모든 것의 최초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불꽃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폭발이 있었고, 그후엔 하늘이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우주가 창조된 생일의 장관을 보기엔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의 팽창우주 강의를 듣고 “내가 들어본 것 중에서 창조에 대해서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설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의 승부는 르메트르가 말한 ‘태초의 휘광’의 증거물이 1965년에 발견됨으로써 결정되었다. 바로 대폭발의 화석이라 불리는 우주배경복사였다. 미국 물리학자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으로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지금도 우리는 우주배경복사를 직접 볼 수 있는데, 방송이 없는 채널의 텔레비전에 지글거리는 줄무늬 중의 1%는 바로 그것이다. 138억 년이란 억겁의 세월 저편에서 달려온 빅뱅의 잔재가 당신 눈의 시신경을 건드리는 거라고 생각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빅뱅이 과연 신의 ‘천지창조’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답은 이렇다. 인과(因果)에는 반드시 시간이 개입되며, 시간 역시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 묻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질문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빅뱅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임종을 앞둔 르메트르에게도 전해졌다. 평생 신과 과학을 함께 믿었던 빅뱅의 아버지 르메트르는 1966년 우주 속으로 떠나갔다. 향년 72세였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푸틴·로하니, 벌써 10번째 만남… ‘反美’로 밀착

    러 “美, 핵합의 일방적 파기 반대” 이란, 자국화로 무역거래 제안 등 美 제재 피해 전략적 동맹 강화 반미(反美)의 깃발 아래 러시아와 이란의 밀월은 깊어져만 간다. 카스피해 연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란에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등 수뇌부와 잇따라 회담했다. 이번 만남은 푸틴 대통령과 로하니 대통령의 10번째 회담이었다. 특정 국가 정상들이 10번이나 만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푸틴 대통령이 10차례 만난 정상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로하니 대통령뿐이다. 로하니 대통령이 10회 회담한 정상도 푸틴 대통령밖에 없다. 양국은 ‘공동의 적’ 미국과 대립 중이다. 회담이 끝난 뒤 로하니 대통령은 “러시아는 친구이자 이웃이며 전략적 파트너”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 역시 “이란은 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핵합의 파기 위협에 대해 “국제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은 핵합의 위반이 아니라 자주국방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이란의 관계는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더 단단해졌다. 러시아는 2015년 9월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냉전 시기가 끝난 이후 러시아가 외국에서 벌인 첫 군사작전이었다. 러시아의 참전에는 이란의 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러시아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란은 2011년 시작된 내전 초반부터 시아파 민병대를 참전시켜 정부군을 도왔다. 지난 6월에는 자국에서 테러를 벌인 IS를 응징하겠다며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즈조르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공개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국이 지난 7월 내전에서 발을 빼면서 러시아와 이란을 등에 업은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 가는 모양새다. 정부군이 시리아 영토의 85% 이상을 장악했다. 알자지라는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참전은 성공적이었다”면서 “일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다가 수많은 사상자를 낸 미국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는 선에 머물렀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발판으로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 지난달 5일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했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자 이란의 적국이다. 뉴욕타임스는 살만 국왕의 방러에 대해 “사우디가 반발해 온 러시아의 시리아 정부군 지원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산유국인 러시아와 사우디는 최근 석유 감산 합의 연장 가능성을 함께 시사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란의 정치평론가 무스타파 코슈체흠은 “러시아가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았다”며 “소련이 분해되고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는 곧 과거의 힘을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는 이란에도 반갑다. 알자지라는 “강력한 동맹국을 얻는 것은 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그 강력한 동맹국이 이란이 믿을 만한 국가인 러시아라면 더할 나위 없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해빙 무드에 관해서는 “이란과 관계가 악화될 경우 러시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관계 개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이란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만남은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매우 중요한 회담”이라면서 “모스크바가 이란과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양국 관계가 향후 중동 질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로하니 대통령에 앞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하메네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목적은 같다. 우리가 협력해 미국을 고립시킬 수 있다”며 “양국 간 무역거래를 달러화가 아닌 자국화로 해 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를 무력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와 이란 국영석유회사(NIOC)는 300억 달러(약 33조 4000억원) 규모의 합작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경찰·집배원 증원 등 일자리 19조 2000억…4차산업 핵심기술 개발 1조 5000억 투자

    경찰·집배원 증원 등 일자리 19조 2000억…4차산업 핵심기술 개발 1조 5000억 투자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새 정부 출범 뒤 처음 편성한 내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에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항목을 넣었다며 통과시켜 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새해 예산안은 총 429조원이다. 올해보다 7.1% 늘었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부자·대기업 증세… 세법 개정 추진 우선 일자리에 올해보다 2조 1000억원 늘어난 19조 2000억원을 배정했다. 경찰, 집배원, 근로감독관 등 민생현장 공무원과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늘릴 계획이다. 가계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현실화하고 월 10만원의 아동수당도 신설한다. 아동수당은 내년 7월 처음 지급될 예정이다. 의료비 부담 축소, 기초연금 및 장애인연금 인상,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 지원 확대, 참전수당 인상, 독립유공자 후손 예우 등도 예산안에 담겼다. 이를 위한 재원은 ‘핀셋 증세’ 등으로 충당한다. 재벌그룹과 슈퍼리치의 세금 부담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과표(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 3억원 초과 초고소득자의 소득세 최고세율과 2000억원 이상 초대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각각 올리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문 대통령은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좀더 부담하고 그만큼 더 존경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투·융자 복합 금융지원 확대, 재도전 성공패키지 지원 대상 확대, 사내 창업 프로그램 도입, 사회적기업 창업 지원 확대 등을 지원한다. ● 환경·안전·안보 예산 대폭 늘려 환경, 안전, 안보 분야 예산도 늘렸다. 특히 가습기 특별구제 계정에 100억원을 신규 출연했으며 비슷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살생물제 안전관리에도 183억원을 배정했다. 국방예산은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인 6.9%(전년 대비)를 증액했다. 방위력 개선 예산을 대폭(10.5%) 늘려 잡았고, 병사 봉급도 병장 기준 월 21만 6000원에서 40만 6000원으로 올렸다. 문 대통령은 “청년실업 대책, 비정규직 문제, 국공립보육시설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함께 제안한 공통 공약사업도 많다”며 대승적 차원의 국회 협조를 부탁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전문] 문재인 대통령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전문] 문재인 대통령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세균 국회의장님과 국회의원 여러분.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국민과 국회에 직접 설명드리고,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리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을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정확히 20년 전입니다. 그것은 어느 날 불쑥 날아든 해고통지였고, 가장의 실직이었으며, 구조조정과 실업의 공포였습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가해진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경제적 충격만이 아니었습니다. 심리적·정서적 충격이 국민의 삶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건실해졌습니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9위 수준이 되었습니다. 금융과 기업의 수익성도 크게 나아졌습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도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던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힘이 컸습니다. 국민들은 대대적인 금모으기 운동으로 국가경제를 살리고, 기업을 살렸습니다.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세월을 견디고 버텨 위기를 극복해냈고, 국가경제는 더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국민들의 삶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저성장과 실업이 구조화되었고,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졌습니다. 송두리째 흔들린 삶의 기반을 복구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책임에 맡겨졌습니다.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습니다. 과로는 실직의 공포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실패를 내 자식이 다시 겪지 않도록 자녀교육과 입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선배 세대들의 좌절은 청년들로 하여금 전문직이나 공공부문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열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무한경쟁사회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상식과 원칙이 아니더라는 생각도 커져갔습니다.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구조에서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외환 위기가 바꾸어놓은 사회경제구조는 이렇듯 국민의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세월호 광장과 촛불집회는 지난 세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공론의 장이었습니다. 국민들은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부정부패와 단호히 결별하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선언이었습니다.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힌 이정표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라다운 나라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보다 민주적인 나라,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국민이 요구한 새 정부의 책무입니다. 저는 이 책무를 다하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여깁니다. 저는 다른 욕심이 없습니다. 제가 이 책무를 절반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저의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감히 바라건대 국회도, 나아가서는 우리 정치 모두가 적어도 이 책무만큼은 공동의 책무로 여겨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국민은 누구나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성실하게 하루 8시간 일하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도록 정책을 혁신해야 합니다. 아프면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칠 기회를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못된 관행을 청산해야 합니다. 저와 정부는 지난 6개월,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나라답게, 정의롭게 혁신하기 위한 국가혁신의 기반을 마련해 왔습니다. 경제를 새롭게 하겠습니다. 경제가 성장해도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양극화가 경제성장과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상황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삶에도, 국가에도 미래가 있습니다. 새 정부가 표방하는 ‘사람중심 경제’는 결코 수사가 아닙니다. 바로 이런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람중심 경제’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는 빠르게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일으켜 세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놀라운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체된 성장과 고단한 국민의 삶이 증명하듯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사람중심 경제’는 우리 자신과 우리 후대들을 위한 담대한 변화입니다. 저는 바로 지금이 변화의 적기라고 믿습니다. 20년 전 우리는 국가부도를 막고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또한 변화의 기대가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려는 방향에 세계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 IMF,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다보스 포럼에서도 양극화 해소와 포용적 성장 그리고 사람중심 경제가 화두였습니다. 유엔총회도 ‘사람을 중심으로(Focusing on people)’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저는 세계가 고민하는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선구적으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사람중심 경제’를 이뤄내면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것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입니다. 일자리와 늘어난 가계소득이 내수를 이끌어 성장하는 경제입니다. 혁신창업과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제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기업이 공정한 기회와 규칙 속에서 경쟁하는 경제입니다. 저는 이것을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개의 축으로 말씀드려 왔습니다. 혁신적 도전과 성공에 대한 확신이 우리 경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고, 사람중심 경제를 힘차게 추진하겠습니다. 경제와 사회가 따로일 수 없습니다. 경제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불공정과 특권의 구조를 바꾸겠습니다. 국민 누구라도 낡은 질서나 관행에 좌절하지 않도록, 국민 누구라도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바꿔나가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적폐청산입니다. 국가권력기관의 개혁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선결과제입니다. 국정원(국가정보원)은 국민의 정보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국정원이 국내정치와 절연하고 해외와 대북 정보에만 전념하도록 개혁하겠습니다. 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요청합니다. 검찰도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검찰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이 하늘처럼 무겁습니다. 법무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방안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국민들의 여망을 반영한 것입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통령인 저와 제 주변부터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될 것입니다. 법안이 조속히 논의되고 법제화될 수 있도록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권력이 국민의 기회를 빼앗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최근 드러난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 청년들이 무엇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공공기관이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구조적인 채용비리 관행을 반드시 혁파하겠습니다. 공공기관의 전반적 채용비리 실태를 철저히 규명하여 부정행위자는 물론 청탁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추겠습니다. 정부는 국가기관과 공공부문, 더 나아가 사회전반의 부정과 부패, 불공정이 국민의 삶을 억압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갈 것입니다. 더 이상 반칙과 특권이 용인되지 않는 나라로 정의롭게 혁신하겠습니다. 그 일에 국회가 함께 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한반도는 우리 국민이 살고 있고 살아갈 삶의 공간입니다. 안전해야 합니다. 평화로워야 합니다. 이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책무이기도 합니다. 새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안보환경에서 출범했습니다. 정부는 당면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출범 이래로 지금까지 확고하고도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에 임해왔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첫째, 한반도 평화정착입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한반도 평화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은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사전 동의 없는 군사적 행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 한반도 비핵화입니다.  남북이 공동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따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용납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도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식민과 분단처럼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 운명이 결정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넷째,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입니다. 제재와 압박은 북한을 바른 선택과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 정부의 원칙에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인식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해야겠습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국제사회와도 적극 공조하겠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상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과 헌법 앞에 선서한 대로 국민을 보호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북핵문제 앞에서 정부와 국회, 여와 야가 따로일 수 없습니다.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초당적인 협조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정부는 ‘사람중심 경제’를 본격 추진하고, 민생과 튼튼한 안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18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429조원입니다. 올해보다 7.1% 증가한 수준으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입니다.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편성한 예산입니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정건전성 유지에도 만전을 기했습니다. 불요불급한 예산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11조5천억원의 지출을 줄였습니다. 5조5천억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되도록 세법개정안도 제출했습니다. 국가채무는 GDP 대비 39.6%로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은 ‘일자리’, ‘가계소득 증대’, ‘혁신성장’, ‘국민안전과 안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먼저 일자리 예산을 대폭 증액했습니다. 올해보다 2조 1천억원 증가한 19조 2000억원입니다. 우리 국민들, 특히 청년들에게 가장 절실한 예산입니다. 요즘 우리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데, 고용상황이 개선된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상승세를 탈 수 있을 것입니다. 공공부문이 고용창출을 선도하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찰, 집배원, 근로감독관 등 민생현장 공무원 3만 명을 늘리고,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도 1만 2000개 만들겠습니다. 민간부문에서도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경우 한명 분 임금을 지원하는 중소기업 추가채용 제도를 내년에 2만 명으로 늘리겠습니다. 고용을 늘린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했습니다.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도 강화했습니다. 예산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중소기업은 1인당 전환지원금과 세제지원이 대폭 늘어납니다. 임금을 인상한 중소기업의 세액공제율도 2배 확대됩니다. 둘째,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는 예산을 대폭 증액했습니다. 가계의 기초소득을 늘리고, 생계비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소비나 저축에 여력이 생기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서민층의 소득증대는 소득주도 성장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주거급여와 교육급여를 인상해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현실화하겠습니다. 저소득층 청년들이 활용하도록 청년희망키움통장 제도를 신설했습니다. 가계의 의료비 부담을 대폭 줄이고 국가 책임을 높였습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 대상을 4대 중증질환에서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고, 치매안심센터와 요양시설 등 치매국가책임제 시설을 확충하도록 했습니다. 5세 이하 아동의 아동수당을 도입하여 내년 7월부터 월 10만원씩 지원하겠습니다. 아이들 양육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노인 빈곤율은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기초연금을 월 25만원으로 인상하고 지급대상을 확대하겠습니다. 어르신 일자리 지원 대상을 51만 4000명으로 확대하겠습니다.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과 함께 25만원으로 인상하고, 장애인 일자리도 1만 6000명으로 확대하겠습니다.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 지원도 확대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고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일자리 안정자금을 2조 9704억원 편성했습니다. 1인 영세자영업자에게는 2년간 고용보험료 30%를 지원합니다. 국가유공자 예우는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참전수당과 무공수당을 월 8만원씩 인상했습니다. 참전수당은 월 22만원에서 30만원으로 늘어납니다. 참전유공자 의료비 감면율도 60%에서 90%로 대폭 확대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께는 최대 46만 8000원까지 생활비를 지원할 것입니다.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법 개정도 추진합니다.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과 과표 2000억원 이상 초대기업의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서민·중산층,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좀 더 부담하고, 그만큼 더 존경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4차 산업혁명과 벤처창업으로 새로운 성장기반과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혁신성장 예산을 중점 반영했습니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융합기술 개발을 위해 총 1조 5000억원을 투자하겠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간 공동연구 지원을 확대하고, 스마트 공장 지원 등 지능정보화에 착수하겠습니다. 성장동력을 찾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혁신창업에 특히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추경을 통해 8천억원을 추가 출자한 중소기업지원펀드에 이어서 내년에는 투융자 복합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재도전 성공패키지 지원대상을 늘리겠습니다. 사내창업프로그램 지원을 새로 도입하고, 민관합동 창업지원, 사회적기업 창업지원도 대폭 확대했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창업으로 연결시키는 핵심기반으로 한국형 창작활동공간을 75곳 설치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사업화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지역의 혁신도시를 대단지 혁신클러스터로 발전시키겠습니다. 넷째,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환경・안전・안보분야 예산을 확대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며, 나라다운 나라의 출발점입니다. 국민들의 염려가 큰 미세먼지 등 환경 개선을 위해 노후경유차와 화물차 조기폐차를 늘리고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에 대해 국가도 책임을 함께 하겠습니다. 피해자들이 피해구제를 받는 데 차질이 없도록 가습기 특별구제 계정에 정부가 100억 원을 신규 출연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유사한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생물제 안전관리 예산 183억도 반영하였습니다. 먹거리 안전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농수산물 안전성 조사를 확대하여 안전관리를 강화하겠습니다. 되풀이되는 가축질병에 조기 대응하기 위한 예산도 확대했습니다. 재해와 재난에 대한 국민의 염려를 덜어드리겠습니다. 연례적 가뭄에 대비한 저수지간 수계연계사업을 실시하겠습니다. 버스와 화물차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지원하겠습니다. 국방예산은 자주국방능력을 갖춘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인 6.9%를 증액하였습니다. 특히, 방위력 개선 예산을 10.5% 대폭 확대하였습니다.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형 3축 체계를 조기에 구축하겠습니다. 아울러, 병사 봉급을 병장기준 월 21만 6000원에서 40만 6000원으로 대폭 인상하여 사병 복지와 사기를 높이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국가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방예산, 안전예산, 일자리예산, 아동수당, 창업예산 등이 씨줄 날줄로 엮여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방향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이번 예산은 당면한 우리 경제・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입니다. 이번 예산편성에서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부분은 ‘국민참여예산제’의 시범적 도입입니다. 국민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 사업들입니다. 500억원의 범위 안에서 여성안심 임대주택 지원사업 356억원, 재택 원격근무 인프라 지원 20억원 등 6개 사업이 편성되었습니다. 앞으로 재정정보 공개를 더욱 확대하고 국민참여예산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국민과 함께하는 예산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번 예산사업에는 지난 선거에서 야당이 함께 제안한 공통 공약사업도 많습니다. 청년대책, 비정규직 문제, 아동수당 도입, 육아휴직 확대, 국공립보육시설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입니다.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정과제와 지난 대선의 공통공약, 안보 문제에 대해서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특별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여러분. 우리는 지금,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국민들에게 성실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나라답고 정의로운 국가를 돌려드리겠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그동안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국민들께 이제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안보와 민생에는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의 운영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개헌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일입니다. 변화한 시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해야 합니다.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개헌은 내용에 있어서도, 과정에 있어서도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어야 합니다.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어야 합니다. 저는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이 개헌에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에서 일정을 헤아려 개헌을 논의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개헌과 함께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개편도 여야 합의로 이뤄지기를 희망합니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으로 새로운 국가의 틀이 완성되길 기대하며 정부도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세균 국회의장님과 국회의원 여러분. 지난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시민참여단은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배려하며 통합과 상생의 힘을 보여주셨습니다.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언제나 정치의 변화를 주도해 왔습니다. 지금도 국민들은 정치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를 요구하며 스스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이 국민의 의지를 받들어 실천할 때입니다. 우리 정치가 뒤처지지 않고 협력하여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합니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은 국가적 과제입니다. 오늘은 그리스에서 출발한 성화가 도착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한반도의 평화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국회와 의원님들께서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상식과 정의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나라, 양보와 타협,연대와 배려가 미덕이 되는 나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위해 국회가 함께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의 희망이 반드시 국회에서 피어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11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 ‘11월의 전쟁영웅’ 벨기에 소령… 독립운동가엔 홍주의병 이근주

    ‘11월의 전쟁영웅’ 벨기에 소령… 독립운동가엔 홍주의병 이근주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근주(1860~1910) 선생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이 선생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해 홍주의병에 참여했고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접하자 자결로 항거했다. 선생은 홍주의병 과정을 기록한 ‘을미록’, 나라가 매군매국(賣君賣國)의 무리로 더럽혀짐을 한탄한 ‘절의가’, 민영환의 순국을 기린 ‘혈죽시’ 등 여러 항일 기록을 남겼다.‘11월의 전쟁영웅’에는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이 선정됐다. 그는 벨기에 상원의원이자 국방부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1950년 6·25전쟁 파병을 주도했다. 그는 1951년 50세의 나이에 국방부 장관 직을 내려놓고 소령 계급의 통신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1992년 사망한 그는 1988년 펴낸 회고록에서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했다”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참전 인천학생·남하 여학생의 구국정신은 역사적 귀감이자 교훈”

    “참전 인천학생·남하 여학생의 구국정신은 역사적 귀감이자 교훈”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참전 스승’ 신봉순 인터뷰] 일시 1997년 6월 4일 장소 부천 소사의 신봉순 자택 대담 신봉순 이경종(참전 학생/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큰아들)“나의 모교 인천상업중학교 은사님 신봉순 선생님께서는 뜻한 바 있어 학교를 그만두시고, 육사 8기로 입학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 부산까지 남하하여, 방황하던 인천학도의용대의 중학교 2~3학년 어린 학생들 600여명을 선생님이 유선교육대장으로 근무하시던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켜 통신병이 되게 하였다. 또한, 오갈 곳 없게 된 인천학도의용대의 여학생 100여명을 1951년 1월 초부터 3개월간 육군통신학교 행정보조요원으로 근무하게 하여 숙식(宿食)을 마련해 주었고 그 뒤, 인천이 수복되어 여학생들이 무사히 고향ㆍ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던 6·25 참전 인천학생들과 남하(南下) 여학생들의 영원한 스승님이시다.” 인천상업중학교 제자 이경종(6·25 편찬위원)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과 6·25 한국전쟁 나(신봉순)는 1947년 9월 달에 배다리에 있었던 6년제 공립인천상업중학교(현재의 인천고등학교와 상인천중학교의 전신)로 발령받아서 물리(物理)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는 1949년 1월에 뜻한 바 있어 인천상업중학교 교사직을 사직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육사(陸士) 8기로 졸업, 1949년 3월에 임관하여 육군 소위가 되었다. 나는 소위로 임관이 되자마자 공비가 많았던 전남 화순 전투 사령부에 배치되어 공비토벌 작전에 참전하고 있을 때 6·25가 터졌다. 그때 광주에 있었던 나는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 대장으로 발령을 받아 영등포 육군통신학교로 와보니 영등포의 육군통신학교는 벌써 수원으로 후퇴하였다. 북한 인민군에게 학살당한 부모님 한강 철교가 폭파되고 얼마 지난 후쯤 나는 후퇴 중에 우연히 수원에서 우리 형님(신능순(申能淳) 대위·육사 5기)을 만났다. 이때 형님이 갑자기 울면서 하시는 말씀이 “ 지방 빨갱이들이 인민군을 시켜 우리 부모님을 모두 학살(虐殺)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큰 소리로 통곡(痛哭)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그 당시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현 소사동)에 있었으며 당시 부천군 일대에서는 형제 장교를 배출한 집안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 때문에 부모님께서 화(禍)를 당하시게 된 것을 나는 지금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오산에서 치른 첫 번째 전투 내가 부딪힌 첫 번째 전투가 오산 전투였는데 이때 인민군 야크기를 만났다. 야크기가 우리 앞과 뒤를 폭격하고, 기관총 사격을 해서 거기서 많이 전사했다. 나는 지프를 타고 이동하던 길이었는데 인민군 야크기가 사라지고 얼마 뒤 지프에 가보니 운전병은 이미 전사하였고 피란민들은 마구 밀려 뒤엉켜, 운전병이 없으니까 지프는 포기한 채 그때부터 걸어서 오산을 지나 평택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평택에 들어서자 인민군 야크기 기관총 소리가 또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한편에 대나무밭이 있었는데 대나무밭에 숨어 들어가 우리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는 다시 재정비하고 천안을 지나 계속 후퇴하며 대전과 대구를 거쳐서 부산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1월 부산에서 만난 인천 제자들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 근무 중이던 1951년 1월 초 어느 날이었다. 내가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천에서 내려온 이계송 등 옛 제자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대원들이라고 하였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해방 이후 인천상업중학교에서 물리 교사로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많았으며 그때 내가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제자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여학생들도 많이 왔었다. 이때가 1951년 1월 초로, 제자들이 “인천에서 2500명이 1950년 12월 18일 날, 국민방위군 소위의 인솔하에 출발하여 경상남도 통영 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굶어 죽고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많이 보고 통영충렬국민학교(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로 가는 걸 포기하고 마산에서 중학교 4~6학년생 600여명이 해병 6기로 자원·입대하고 나머지가 부산으로 왔다”고 말해 주었다. 이때 전황(戰況)은 수원·평택까지 인민군이 점령해서 우리 국군과 UN군이 크게 밀린 1·4 후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인천 중학생들 부산육군통신학교 입교 1951년 1월 초에 나는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서 유선교육대장으로 있었으며 이때 내 나이는 29살이었다. 당시 600여명의 인천학생들이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하게 된 경위는 나이 어린 중학생들이 보병으로 입대하면 고된 훈련을 받고 전방으로 배치될 것이 뻔한 일인데 어린 제자들 걱정에 나는 육군통신학교 교장인 조응천 박사께 “인천학생들의 남하(南下) 경위와 교육받은 학생들이니까 통신병으로 적합하다”는 설명을 하였다. 육군통신학교 교장 조응천 박사로부터 좋다는 승낙을 받고 그 즉시 인사과에서 육군본부에 공문을 띄워 인천학생들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키게 됐던 것이다. 인천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인도한 이유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한 인천의 중학생들은 기초실력이 있어서 교육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 당시 육군통신학교에서는 조교들의 횡포가 심해서 나는 조교들에게 인천학생들에게 심한 욕설이나 기압으로 고통을 주는 놈들이 있으면 전방으로 쫓아 버린다는 엄포를 내리기도 하였다. 또한 가벼운 기합은 주되 절대로 구타는 하지 말라 해서 교육 기간에 인천 출신 통신병들은 구타는 당하지 않은 거로 기억하고 있다. 4주간 통신 교육으로 졸업할 때는 모두 무사히 탈락 없이 졸업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통신병들은 대부분 지휘관과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 보병보다는 위험성이 적어서 인천의 중학생들을 통신병으로 입대하게 하였다. 또한, 인천 출신의 제자들이 부산육군통신학교를 졸업하고 통신병이 된 뒤에는 가급적 후방에 떨어지게 많이 노력했다.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의 힘든 피란 생활 나와 인천상업중학교 제자들과의 인연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천학도의용대 여학생들이 많이 통신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내 기억으로는 100명 정도의 많은 인원이었다. 일단 숙식(宿食) 해결이 급선무였는데 어디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서 부산통신학교에서 행정보조로 일을 시키면서 숙식을 해결해 주었다. 1950년 1월 초는 1·4 후퇴로 수도권이 다시 북한 인민군이 점령하여 인천으로 여학생들을 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3개월이 지나서 우리 국군과 UN군이 수도권을 탈환하자 인천이 수복되어 무사히 귀향시켜준 여학생 중 몇 명은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연락을 하며 그때의 고마움을 내게 표시하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내가 평생 느껴 왔던 마음 마지막으로 내가 평생 느껴왔던 마음을 한번 말해 볼까 한다. 나는 부산에서 인천상업중학교 제자들을 만났을 때는 1·4 후퇴로 학생들이 단체로 피란(避亂) 내려온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 후로 차차 알아보니까 국난을 당해 어려울 때에 나라를 위하여 학생들 스스로 인천학도의용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어쩔 수 없는 후퇴로 부산까지 20일간 걸어서 내려와 자원·입대하였으며 군 복무는 보통 5~6년씩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나는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구국(救國)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구국정신은 인천의 역사 기록에 꼭 남겨야 할 가치 있는 귀감이며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천학생 6·25 참전 역사 찾기 일은 어떤 명예를 남기려는 목적보다도 후손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남기고 싶은 말 인천 지역의 자랑거리인 인천학생들의 6·25참전 사실이 담긴 기념비(記念碑) 하나 없는 것을 항상 안타깝게 여겨 오던 중 우연한 장소에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때 자원입대하여 참전했었던 제자 이 경종을 만났고 그 큰아들 이규원(치과원장)과 제자 이경종이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를 찾겠다는 말을 듣고 ‘아! 역시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숭고한 구국정신, 그 혼(魂)이 살아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내 비록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나도 인천학생 6·25참전 역사 찾기 사업에 일조할 것을 다짐하면서 부디 인천학생 6·25 참전역사 편찬 사업이 꼭 성공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신봉순 ▲공립 6년제 인천상업중 물리 교사 역임 ▲육사 8기 졸업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 1922년 12월 1일 :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송내동 408번지에서 출생 1947년 7월 : 동경전자 통신대학 졸업 1947년 9월 :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발령 1949년 1월 : 공립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사직 1949년 3월 :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및 소위 임관 1951년 1월 : 부산 동대신동 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 대장 1965년 3월 : 육군 중령으로 예편 1998년 10월 10일 0시 04분 : 별세 참전기 5회를 마치며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이 인천에 계셨다. 선생님은 뜻한 바 있어 교직을 사직하시고 육사 8기로 졸업하여 부산 육군통신학교에 유선교육대장으로 군에 복무하셨는데 1951년 1월 초 1·4 후퇴 때 인천의 옛 제자들이 갑자기 단체로 찾아왔다. 군에서 통신병은 지휘관 옆에 있기 때문에 인천에서 걸어 내려온 어린 중학생들이 좀 더 나은 군 복무를 하기를 바라시면서 통신병이 되게 인도하셨다. 또한 갈 곳 없어 방황하던 남하 여학생 100명도 3개월간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행정보조로 데리고 있다가 무사히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게 해 주셨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6·25 참전(參戰) 인천학생들과 남하 여학생들의 영원한 스승님 신봉순(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역임) 부산육군통신학교 유선교육대장님의 제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이 참전기에 기록한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佛참전용사, DMZ에 잠든다

    佛참전용사, DMZ에 잠든다

    10대의 나이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고국으로 돌아간 프랑스군 참전용사의 유해가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에 묻힌다. ‘죽으면 유해를 한국에 묻어 달라’던 고인의 요청에 따라서다.국가보훈처는 30일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프랑스 참전용사 장 르우의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을 다음달 1∼2일 거행한다”고 밝혔다. 장 르우의 유해는 다음달 1일 인천공항으로 들어와 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됐다가 2일 강원 철원군 대마리의 ‘화살머리고지’와 가까운 육군 5사단 DMZ 소초 근처 프랑스군 참전비 앞에 안장된다. 화살머리고지는 참전 당시 그가 전우들과 함께 싸웠던 전장이다. 르우는 19세이던 1951년 12월 프랑스 육군 소속으로 참전해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웠다. 또 1952년 티본 전투에서는 두 차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에는 전역한 뒤 프랑스로 돌아가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했다. 2007년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했던 르우는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싸운 전장을 둘러보며 ‘죽으면 이곳에 유해를 묻어 달라’는 희망을 털어놨다. 보훈처 관계자는 “르우가 지난해 12월 84세 나이로 숨을 거둔 뒤 보훈처와 국방부는 프랑스 한국전쟁 참전협회와 유해 봉환 및 안장 절차 등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인천공항 입국장과 DMZ에서 각각 열릴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에는 한국전쟁 참전협회장이자 생망데 시장인 파트리크 보두앵을 포함한 프랑스군 참전용사들이 참석한다. 안장식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화환이 헌화된다. 6·25전쟁 참전을 인연으로 한국에 돌아와 묻힌 유엔군 참전용사는 2015년 5월 프랑스인 레몽 베르나르를 시작으로 르우가 일곱 번째다. 이들 중 부산 유엔기념공원이 아닌 DMZ에 묻히는 참전용사는 르우가 처음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앞으로도 참전용사가 한국으로 사후 안장을 희망할 경우 정부 차원의 의전과 예우를 지원할 것”이라며 “세대를 이어 참전용사 후손들과의 유대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그 시절 공직 한 컷] 6·25참전한 그녀들… 여군시대 연 진정한 걸크러쉬

    [그 시절 공직 한 컷] 6·25참전한 그녀들… 여군시대 연 진정한 걸크러쉬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출전을 자원하는 여성이 쇄도했다. 그렇게 ‘여자 의용군’ 1기생은 같은 해 8월 대구여중과 부산 대신초등학교에서 실시한 필기시험과 신체검사를 거쳐 선발됐다. 지원 자격은 18∼25세 미혼에 중등교(6년제) 졸업 이상의 학력자였다. 2000여명의 응시자 중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500명으로 같은 해 9월 6일 부산에서 ‘여자의용군 교육대’를 창설함으로써 본격적인 여군시대를 열었다. 사진은 1952년 당시 여자 의용군의 훈련 모습이다. 지난해 6월 기준 여군은 총 1만 263명으로 사상 처음 1만명을 넘어섰다. 또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여성도 국방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청원이 추천 수 2위(4만 2000여건)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 [주말 하이라이트]

    ■더 유닛(KBS2 토요일 밤 9시 15분) 지상파 방송사 처음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이 첫 방송을 시작한다. 아이돌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이미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거나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한 가수들을 새로운 아이돌 유닛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린다. 예선을 통과한 126명의 참가자 가운데 남자 9명, 여자 9명을 시청자 투표에 부쳐 최종 선발한다. 이미 첫 남녀 단체곡 ‘마이 턴’과 남자 단체곡 ‘빛’, 여자 단체곡 ‘샤인’이 선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멘토로는 가수 비와 황치열, 현아, 태민, 산이, 조현아가 나온다. ■세계의 눈(EBS 일요일 오후 4시 45분) 베트남 전쟁에 관한 10부작 다큐멘터리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다. 미국의 켄 번스와 린 노빅 감독이 10년에 걸쳐 제작한 10시간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리즈를 10회에 걸쳐 방송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이들과 전쟁을 반대했던 이들 등 60여명의 증언을 토대로 베트남 전쟁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연주곡들이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 ■살짝 미쳐도 좋아(SBS 토요일 밤 12시 25분) 스타들의 은밀하고도 특별한 일상이 공개된다. 새 심야 예능 ‘살짝 미쳐도 좋아’는 다양한 스타들이 출연해 취미와 관심사를 소개한다. 생활 정보뿐만 아니라 스타들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예능 스타 이상민은 궁상맞으면서도 ‘럭셔리’함을 잃지 않는 ‘궁셔리’ 인생을 즐긴다.
  • [인터뷰 플러스] ‘정성과 섬김’의 노인 뒷바라지…“받은 도움 갚는 겁니다”

    [인터뷰 플러스] ‘정성과 섬김’의 노인 뒷바라지…“받은 도움 갚는 겁니다”

    복지는 근래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이슈 중 하나다. 특히 고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 복지에 대한 필요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노인 복지는 부모를 직접 모시는 것이 자녀들의 능력이자 효라고 여겨 온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하며 사회적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경기도 화성시 상록요양병원의 김성곤 이사장은 1995년부터 일찍이 상록원을 준비하며 노인복지와 관련된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환자들을 이해하는 맞춤형 시설을 갖췄으면서도 서민들을 위해 문턱을 낮춘 상록요양병원에는 그의 가치관이 묻어 있다. ‘정성과 섬김’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김 이사장에게 이 일은 사업이 아닌 사회를 위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을 만나 그 헌신적인 삶과 상록요양병원이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상록요양병원은 최고의 노인 요양 시설로 알려져 있고 이사장님 또한 우리 사회에서 손에 꼽히는 노인복지 활동가이신 데요, 어떻게 봉사와 복지 관련된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한국으로 들어와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냈어요. 초등학교 이후로는 진학을 위해 고아원에서 자랐지요. 곡절이 많았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어요. 그 기억이 사회봉사 활동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럼 어렸을 때부터 복지시설을 세울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아닙니다. 특히나 병원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지요. 제가 고아원에서 나온 뒤에 문구점에서 일하면서 종이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 계기로 종이 만드는 기능공으로 공장을 다니다가 종이로 사업을 했습니다. 이후에 여러 사업을 했어요. 아마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성공한 사업가로 불릴 수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정치를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차피 사업이란 것은 노력으로 버는 돈에는 한계가 있어요. 저는 어려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면 그때부턴 제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록요양병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최상의 의료서비스로 유명하더군요. -대지 3000평에 지상 5층, 건평 1600평 규모로 지어졌고 280병상을 갖췄습니다. 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면 꽤 큰 거죠. 화성시에서 단일로는 제일 많은 환자를 모시고 있어요. 최신식 집중치료실을 비롯해 물리치료실, 엑스레이실 등이 있고요. 특히 인공신장실, 즉 투석 시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풍이나 당뇨를 앓으면 투석을 해야만 하는데 저희 병원에서는 원내에서 가능하도록 한 겁니다. 옛날에는 이런 투석 시설은 대학병원에나 있던 것이죠. 요양원과 병원이 같이 붙어 있는 곳이 수도권에서는 저희 하나일 겁니다. 어르신들이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을 오가야 하는데 병원 시설이 된 곳이 없어요. 이권개입이 되니까 개인이 수익사업으로는 못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저희는 복지재단이라서 가능한 겁니다.→시설이 좋으니 아무래도 소위 ´있는 분들´이 오실 것 같은 생각도 좀 드는데요. 주로 어떤 분들이 이용하시는지요. -저희는 65세 이상 분들만 모십니다. 노환이 온 분들이 편안하게 계시면서 쉬실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곳이니까요. 저희는 특히 어려운 서민을 위한 곳입니다. 산속에 있다 보니 부유층 어르신들은 오라고 해도 안 오세요. 생활보호대상자나 어렵게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많이 들어와 계세요. →얼마 전에는 이곳 환자들과 임직원들이 통일나눔펀드에 참여한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어려운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하니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지금 고향을 못 가는 실향민들이 많아요. 또 참전했던 군인도 많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들 통일을 바라겠지만, 이분들은 정말 통일을 바라고 있어요. 환자분들이 먼저 신문과 방송을 보고 모금을 원하셨고 저희가 조금 거들었습니다.→복지현장에서 보실 때,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처음에 이런 시설을 만들 땐 우리나라가 복지에 관련해서 제도나 시설이나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복지 제도와 시설이 선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잘 되어 있어요. 예컨대, 우리 시설 인공신장실을 통원 치료로 이용하는 분이 계세요. 아침에 정부에서 지원된 장애인 이동차량을 타고 무료로 여기까지 와요. 자식들이 모시고 오는 게 아니라 정부에서 지원된 간병인들이 와서 도와요. 그런 제도들을 잘 알아서 100% 이용하는 겁니다. →노인복지를 위해 사회에 제안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제는 부모세대도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해요. 어차피 재산이 있다면, 자식에게 상속하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면 좋겠어요. 복지가 잘 갖춰지고 있는 만큼 사회에 환원되는 재산이 많아지면 복지에 들어가는 돈도 많아지겠죠. 결국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상속세를 엄하게 물려야 된다고 봐요. 상속은 불로소득이잖아요. 상속세는 더 올려야 해요. →더 올리지는 않더라도,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내게 해야 하는데 말이죠. -상속 증여도 문제지만,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선 자녀들도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부모 재산이 다 자기 것인 줄 알아요. 제가 영국에 견학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우리와 다른 점이 있더라고요. 그곳이라고 상속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던 집 정도지 모았던 노후 연금을 자녀에게 준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퇴직하면 요양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낚시하고 승마하면서 친구들과 자기 취미 생활 하며 지내는 겁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없고 자식도 부모에게 물려받을 마음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가 보군요. -선진국 사람들은 확실한 선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처럼 빚을 내서 물려주거나 하지는 않아요. 한국에서는 자녀들이 부모 것을 다 뺏어서 쓰고, 집에서 감당 못하면 여기 요양원 같은 곳에 데리고 와요. 요양시설에 온다고 해도 그런 점에서 다른 거죠.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이 자기 재산 가지고 알아서 들어오니까. 여기도 공무원으로 일하시다가 퇴직하셨는데 생활보호 대상자로 밀려서 여기에 오신 분이 계세요. 자식이 사업한다고 다 털어먹고 보내더라고. 지금 식대 내시는 것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해외에 다니시면서 선진 복지사회 견학을 많이 하셨군요. -많이 했지요. 그래서 이곳과 같은 시설을 생각한 겁니다. 여기서는 땅속 지열로 난방을 해요. 불을 아예 안 땝니다. 2005년에 7억원을 들여서 공사했어요. 이런 것들도 다 견학과 공부를 통해서 떠올리는 겁니다. →끝으로, 상록원에 새로운 계획이나 이벤트가 혹시 있습니까? -우리가 뒤에 건물을 지어놨는데, 이걸 이용해서 호스피스 시설을 많이 늘리려고 합니다. 마지막을 정리하고 편안히 가실 수 있는 병동을 만들고 싶습니다. 실행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났어요.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현장 행정] 유공자 가슴에 ‘두 번째 훈장’ 바칩니다

    [현장 행정] 유공자 가슴에 ‘두 번째 훈장’ 바칩니다

    “국가유공자 가슴에 가득 달린 훈장은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입니다. 그 자부심을 후손들이 소중히 여겨서 더 드러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지난 25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1427, 보훈회관 건립부지.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국가유공자들과 함께 보훈회관 신축을 위한 첫 삽을 떴다. 낙성대동에 위치한 기존 보훈회관은 설립된 지 40년이 지난 건물로 지역 내 5400여명의 보훈 대상자가 이용하기엔 턱없이 협소하고 낡았다. 최근에는 건물 측면 담장이 붕괴되고, 외벽에 균열이 생겼으며 우기에는 물까지 새는 등 안전 관련 문제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지역 내 보훈회관이 3곳으로 나눠 있다 보니 유공단체별로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유 구청장은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이 낡은 계단 난간을 잡고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며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보훈회관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 구청장은 또 “선진국일수록 보훈 가족에 대한 예우가 철저하다”며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용사 등 조국을 위해 산화한 분들의 희생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보훈회관 신축 배경을 설명했다. 총예산 49억 2000만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재원 확보 방안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부지는 구 소유의 재활용센터 자리를 활용했다. 부족한 예산은 국가보훈처와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해결했다. 신축 보훈회관은 지하 1층, 지상 7층(전체면적 1479㎡)이며 9개 보훈단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목욕탕, 강당, 휴게실, 체력증진실 등도 들어올 계획이다. 특히 구는 이번 보훈회관을 만드는 전체 과정을 민관 협치로 진행해 보훈 유공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제대로 된 건물을 만들어 낼 구상이다. 유 구청장은 “보훈단체 회장과 건축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보훈회관 건립 자문위원회와 함께 건물 용도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며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의견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밝혔다. 현장을 찾은 이종천 구 보훈단체협의회장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지회장은 “흩어져 있던 9개 보훈단체가 새롭게 건립되는 보훈회관에 함께 입주할 수 있게 돼 회원 간 유대가 끈끈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이 공간에서 일반주민을 대상으로 한 보훈복지대학을 운영하고 각종 봉사, 문화행사를 벌이고 싶다”고 말했다. 관악구의 신축 보훈회관은 내년 12월 완공 예정이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여행 가방]

    [여행 가방]

    ●여주 오곡나루 축제 27일 개막 경기 여주의 농특산물을 맛보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2017여주오곡나루축제가 27~29일 신륵사관광지 일원에서 열린다. 쌀, 고구마, 땅콩, 과일 등 여주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특산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가을 잔치다. 여주의 옛 나루터 풍경을 재현한 축제장에서 여주 오곡을 주제로 마당극이 펼쳐지고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하게 구성된다. 특히 초대형 통에 구워 먹는 고구마와 가마솥에 지어 먹는 쌀밥에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토끼, 돼지 등의 동물경주와 수십 개의 허수아비가 설치된 포토존 등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은하수 낙화놀이와 오색풍등, 오색 불꽃놀이 등 가을 낭만 가득한 행사도 마련됐다. ●터키영화제 여의도 CGV서 터키영화제가 27~29일 서울 CGV여의도에서 열린다. 한국·터키 수교 60주년과 ‘2017 한국·터키 문화의 해’를 기념한 행사다. 한국전쟁 당시 터키 참전 군인과 전쟁 고아의 감동 실화를 다룬 개막작 ‘아일라’를 비롯해 2014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윈터 슬립’, 전쟁 액션 영화 ‘스페셜 포스’ 등 7편의 터키 대표 영화들이 상영된다. 모든 영화는 선착순 무료다. 상영 30분 전부터 극장에서 티켓을 배부한다. 터키영화제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turkishfilmfestival2017)과 CGV 누리집 참조. ●곤지암리조트, 가을 프로모션 서브원 곤지암리조트의 스파라스파가 27일~11월 말 ‘가을 에너지 스파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환절기 면역력이 떨어진 몸에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심신의 긴장을 푸는 사우나와 전문 테라피스트의 ‘전신 수기 테라피’, 공기압으로 혈액 순환을 돕는 ‘에어프레소’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2시간 프로그램으로 요금은 17만 6000원이다. 방문 전 예약해야 한다.
  • 文대통령 “굳건한 한미동맹…北도발 반드시 막겠다”

    文대통령 “굳건한 한미동맹…北도발 반드시 막겠다”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 추념사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굳건한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공조로 반드시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에 보낸 추념사를 통해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북한 도발에 대응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긴밀한 공조로 역대 최고 수준의 제재와 압박이 이뤄지고 있으며 반드시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의 평화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고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2주 후에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며 “강하고 위대한 한·미동맹의 힘을 확인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추도식은 6·25 전쟁의 가장 참혹한 전투로 꼽히는 1950년 11~12월 장진호 전투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거행됐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추도식에 참석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은 유엔군에 불리했던 당시 전세를 역전시켜냈다”며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저의 부모님은 흥남철수작전으로 구출된 피난민이었다”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장진호 용사들에게 저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한 참전용사와 한·미 양국 장병을 향해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의 공헌이 더욱 귀하게 기록되고 국민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추도식에는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군과 카투사 생존자, 전진구 해병대사령관, 루크먼 제임스 주한 미 해병대사령관,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회원 등이 참석했다. 흥남철수작전을 이끈 고 에드워드 포니 미 해군 대령의 증손자인 벤 포니 씨도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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