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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남방정책] 文대통령 “김수로왕 왕비 허황후의 고향… 귀한 인연”

    [新남방정책] 文대통령 “김수로왕 왕비 허황후의 고향… 귀한 인연”

    모디 총리, 허황후 주제 공연 지시 간디기념관 방문·삼성 준공 참석 외국 정상과 처음 특별 일정 예우한반도 고대 왕국인 가야국의 김수로왕과 결혼해 허황후가 된 아유타국 공주의 이야기가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에서 양국 국민을 이어 주는 오작교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은 순방 둘째 날인 9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의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곳 우타르프라데시주에는 2000년 전 가야를 찾아온 김수로왕의 비 허황옥의 고향 아요디아가 있다”며 “저는 이곳 노이다 공장에서 오래전 인도와 한국이 만나 빚어낸 귀한 인연과 찬란한 문명을 다시 떠올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인도 국빈방문(8~11일)에 앞서 지난 5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양국 교류의 역사는 2000년에 이른다”며 “한반도 고대 왕국인 가야국의 김수로왕과 결혼해 허황후가 된 아유타국 공주에서 시작된 인연은 60여년 전 한국전에 참전한 인도 의료부대까지 이어졌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에 화답하듯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이날 저녁 문 대통령이 인도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150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할 때 유명한 인도 전통무용수들에게 수로왕과 허황후 이야기를 주제로 공연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영원한 동반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인도 전통무용인 ‘카탁’ 특유의 율동적인 발의 움직임, 작은 종인 ‘궁구루’ 장식과 음악이 조화된 공연이 펼쳐졌다. 문 대통령에 대한 모디 총리의 예우는 이날 일정 내내 이어졌다. 모디 총리는 문 대통령과 간디기념관을 방문하고 삼성전자 노이다 준공식 신공장에도 참석했는데, 모디 총리가 외국 정상과 이런 일정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도 측이 외국 정상 접수에 통상 수반되는 일정 외에 양국 정상이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일정을 우리 측과 협의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공식 환영식, 소규모 정상회담, 확대 정상회담, 오찬 등을 비롯해 문 대통령의 인도 국빈방문 기간 동안 모두 11차례 일정에 함께한다. 인도 정부는 문 대통령 방문 일정에 맞춰 영빈관 리모델링도 완공했다. 문 대통령은 리모델링 후 방문한 첫 외빈이 됐다. 문 대통령이 지나는 길목 곳곳에는 문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환영합니다’라는 선간판과 표지판이 나붙었다. 현지 언론도 이날 문 대통령의 인도 국빈방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악샤르담 힌두 사원을 방문했을 때는 숙소 호텔 로비에 세종학당 소속 인도인 남녀 학생 20여명이 환영 나왔다. 학생들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 인도 방문을 환영합니다’는 팻말을 흔들었다. 또 문 대통령 부부가 로비에 입장하자 ‘나마스테’(환영합니다)를 외치며 환호성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개인사를 들어 인도와의 친근함을 표시했다. 이날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제 양국의 교류는 국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인도 국민들은 현대차를 타고 삼성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한국 국민들은 요가로 건강을 지키고 카레를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딸도 한국에서 요가 강사를 한다”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20년 전 인도 라다크를 트레킹한 경험을 전하며 인도와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뉴델리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118년 지난 초콜릿, 경매 나온다…英 여왕이 내린 하사품

    118년 지난 초콜릿, 경매 나온다…英 여왕이 내린 하사품

    생산년도로부터 무려 118년이나 지난 초콜릿이 경매에 나온다. 영국 BBC 등 현지 언론의 8일 보도에 따르면 해당 초콜릿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1900년 보어전쟁(Boer War)에 참전 중인 군인들을 위해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어 전쟁은 1899~1902년 영국과 트란스발공화국이 벌인 전쟁으로, 남아프리카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빅토리아여왕은 이 전쟁에 참전한 자국 군인들을 위해 생산연도가 새겨진 초콜릿을 하사했다. 이 초콜릿은 철제 케이스에 담겨진 채로 한 세기 넘게 벽장 속에 보관돼 있다 최근 빛을 보게 됐다. 경매 전문가인 폴 쿠퍼는 “이 초콜릿 선물은 당시 프랑스 만화가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초콜릿을 직접 받았던 군인들은 여왕의 선물을 매우 좋아했으며, 대부분이 이를 뜯지도 않은 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경매에 나온 초콜릿은 런던에 사는 한 노인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경매업체에 직접 연락해 해당 초콜릿을 경매에 내놓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업체 측은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던 초콜릿 주인은 당시에도 이 초콜릿을 팔지 않고 소장하고 있었다. 25년 전 가게를 닫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초콜릿을 벽장 속에 보관해 왔다”고 설명했다. 틴 케이스 안에 있는 초콜릿은 오랜 세월을 입증하듯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있지만, 여왕의 얼굴과 생산연도가 새겨진 케이스는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해당 초콜릿의 경매는 현지시간으로 오는 10일 열릴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박종철, 탁 치니 억 하고…”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사망

    “박종철, 탁 치니 억 하고…”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 사망

    1987년 6월 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발언으로 전국민적 분노를 불러왔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이 6일 오후 11시 40분쯤 노환으로 사망했다. 86세.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1933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한 강민창 전 본부장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안동사범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해 전쟁에 참전했다. 종전 후 경찰에 입문해 1986년 1월 제10대 치안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씨가 고문 수사로 악명이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조사를 받다가 수사관들의 물고문으로 사망했을 때 강민창 전 본부장이 경찰의 최고 책임자였다. 경찰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고 했지만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갖가지 노력으로 사건의 진상이 언론에 보도됐다. 강민창 전 본부장은 박종철씨 사인이 물고문과 관계 없는 단순 쇼크사라면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이 해명은 더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물고문이 있었을 것이라는 전국민적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영화 ‘1987’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박종철씨를 고문했던 경찰관과 함께 강민창 전 본부장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1993년 7월 27일 대법원은 강민창 전 본부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전두환 정권 시절 자행됐던 경찰의 수많은 고문 수사의 최고책임자로서 너무 가벼운 판결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강민창 전 본부장의 장례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리스 美대사 부임… “한미동맹 더 강하게 할 것”

    해리스 美대사 부임… “한미동맹 더 강하게 할 것”

    해리 해리스(62)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7일 입국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 국민과 더불어 우리 동맹을 더욱 강력하게, 우리 국민을 가깝게 만들기 위해 일하기를 기대한다”며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그의 부임으로 1년 6개월간 이어진 주한 미국대사 공백이 해소됐다.그는 “지난 65년 동안 한·미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과 이를 넘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의 기둥 역할을 했다”면서 “미국은 한국보다 더 나은 친구, 파트너, 동맹국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 비핵화와 관련한 활동 계획에 대해 “동맹국인 한국과 워싱턴의 국무부와 함께 한·미 관계 및 북한과의 관계의 미래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군 장성으로서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과 부친의 6·25전쟁 참전 사실을 소개하며 “저와 아내는 한국과의 우정을 얻었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깊이 알게 됐다. 또 양국의 강력한 관계의 핵심인 공동의 가치, 즉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해군 4성 장군을 지낸 해리스 대사는 일본 요코스카에서 태어나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폼페이오, 평양 도착···비핵화 2라운드 협상 돌입

    폼페이오, 평양 도착···비핵화 2라운드 협상 돌입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오후 6·12 북미정상회담 후속 협상을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 AFP와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폼페이오 장관과 미 국무부 고위 관리, 수행기자 등 방북단 일행을 태운 전용기가 이날 오후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지난 부활절 주말(3월 31일∼4월 1일)과 5월 9일 두 차례 방북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7일 오전까지 1박2일간 머물며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도 예정돼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기간에 맞춰 북한이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를 미국 측에 인도할 가능성도 있다. 그의 방북에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과 알렉스 웡 동아태 부차관보, 6·12 정상회담 전부터 판문점 실무회담을 이끈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KMC) 센터장 등이 회담을 위해 합류한다고 미국 ABC방송이 보도했다. 또 미국 국무부 출입 기자 6명도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워트 대변인 등 국무부 관계자들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5일 새벽 워싱턴DC를 출발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판문점으로 이동, 북측과의 판문점 실무접촉에 참석했던 김 대사와 김 센터장은 별도의 경로로 방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대사와 김 센터장 모두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도 수행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데스크 시각] 트럼프와 MBS 그리고 김정은/김미경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트럼프와 MBS 그리고 김정은/김미경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전격적으로 손잡은 30대 젊은 지도자 두 명이 있다. 지난해 3월에 이어 올 3월 워싱턴DC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무함마드 빈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일명 MBS)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들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올해 만 33살, 김 위원장은 35살이다.트럼프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와의 회동에서 사우디가 구입한 미국산 무기를 설명하며 “사우디의 무기 구매로 미국 내 일자리 4만개가 새로 생겼다”며 “양국이 버락 오바마 전 정부에서는 불편한 관계였지만 지금은 역대 가장 강한, 대단한 우정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경제개혁 ‘비전 2030’을 진행 중인 빈살만 왕세자는 향후 20년간 원자력발전소 16기를 건설할 계획인데, 미측에 원전 수주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등이 가능하도록 ‘미 원자력법 123조’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허용할 경우 미국의 사우디 원전 수주는 물론 이란을 견제할 사우디의 핵무장까지 용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가 어디까지 손잡을지가 중동 문제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언론인 마이클 울프가 쓴 ‘화염과 분노’에 따르면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MBS는 새로운 유형의 지도자이자 개방적이고 대범한 국제적 인물로, 귀족이라기보다 기민한 세일즈맨이다. 여성 운전 첫 허용 등 새롭고 현대적인 왕국을 추구하는 MBS는 미 대선 후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에게 손을 내밀어 자신이 사우디의 접촉 창구가 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자주 비방했던 사우디의 지도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면서 지난해 5월 사우디 답방길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과 MBS의 외교정책은 “당신이 우리가 원하는 걸 주면 우리도 당신이 원하는 걸 주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 등 전 정부가 중동을 잘못 다뤘다며 “더이상 긴장 관계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MBS의 관계 형성은 북·미 최고지도자의 그것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정부의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나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대선 전후로 김 위원장을 ‘미치광이’, ‘로켓맨’ 등으로 부르며 비난했지만, 문재인 정부를 통해 비핵화와 체제 보장 협상을 타진해 온 김 위원장을 전격적으로 만나 4개 항으로 이뤄진 공동성명을 도출했다. 구체성 결여라는 지적에도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과 6·25 참전 미군 유해 송환을 각각 얻어 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일본 언론인 고미 요지는 최근 저서 ‘김정은’을 통해 12~17세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김 위원장이 “다소 거친 면도 있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주변 국가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조국의 앞날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전했다. 조국의 앞날을 위해 핵개발이 아니라 ‘경제건설 총력’을 결정했다면 남북 관계 발전뿐 아니라 북·미 관계 정상화는 필수적이다.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30대 지도자인 MBS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얼마나 큰 일을 도모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chaplin7@seoul.co.kr
  • [열린세상] 4자 종전선언과 남북 주도의 평화체제 구축/김천식 우석대 초빙교수·전 통일부 차관

    [열린세상] 4자 종전선언과 남북 주도의 평화체제 구축/김천식 우석대 초빙교수·전 통일부 차관

    남북한은 46년 전인 1972년 7월 자주적 통일 원칙에 합의했다. 이것이 남북한 관계를 규율하는 제1의 원칙이다. 한반도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외세에 의해 결정됐다. 그러나 그들은 한반도 통일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한민족 자주적 통일의 전제는 한반도의 평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파괴되면 주변국들은 그냥 구경만 하지 않는다. 남북한이 평화를 위협하면 외세 개입의 초청장을 발급하는 것이나 같다. 6ㆍ25와 북한의 핵개발이 이를 증명한다. 남북이 평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주적 통일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남북한은 계속해서 평화를 말해 왔지만, 아직도 진정한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몇 차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이 있었으나 모두 성과 없이 끝났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 이후 종전선언의 주체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중국이 종전선언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종전선언 이후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있다. 통상 종전(終戰)은 평화협정의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평화협정과 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틀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주요 전쟁 당사자였던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어떠한 형태로든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분리한다면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은 전쟁 상태를 종결시키는 행위다. 따라서 그 주체는 전쟁에 실질적으로 참여했던 당사자들이다. 6ㆍ25전쟁은 정확히 말하자면 남북한 간의 전쟁에 미국과 중국이 참전했으니 실질적으로는 4자 전쟁이었다. 따라서 남·북·미·중 4자가 종전선언의 주체가 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에서 종전선언이 분리되면 남는 과제는 한반도의 장래 문제를 규정하는 일이다. 그 첫째는 전쟁 당사자 간 적대관계를 정상관계로 전환하는 일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양자 간 국교수립 문제인바 다자간 협상에서 다루기에는 부적절하다. 한·중 수교는 이미 끝났고, 현재 북·미 간 관계정상화 문제가 남아 있다.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관계개선을 해나가기로 약속한바 양자가 이 문제를 다루어 나갈 것이다. 둘째는 장래 한반도에서의 평화보장과 통일의 문제가 남는다. 이는 한반도 평화 유지와 경계선 관리, 군사적 신뢰 구축, 군축 등을 실현하는 문제와 남북한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로 구성된다. 이는 남북한 문제이고 남북한이 주도해 풀어야 한다. 이것을 다자체제로 다루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우스운 일이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다자 틀로 다룬다는 것은 주변 외세에게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는 지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반도의 장래 문제를 관리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한민족 남북한이 주인이고 남북한이 당사자인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 남북한 간 합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가 필요해서 주변국의 협조를 구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한민족의 재량권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스스로 지키겠다는 그러한 힘과 책임의식 없이는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없다.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반드시 북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사상누각이고 위험하며 통일도 어려워진다.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공언한 만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 비핵화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장돼야 한다. 남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그 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임이 분명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한반도 영구 분단의 빌미를 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편의적으로라도 한민족 2개 국가론을 주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남북한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공동체를 강화한다. 이런 방향에 대해서는 남북한 간에 이미 대강의 합의가 있다.
  • “한국서 근무는 큰 영광…비빔밥·안동소주 즐겨”

    “한국서 근무는 큰 영광…비빔밥·안동소주 즐겨”

    해리 해리스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정식 부임을 앞두고 주한미국대사관 공식 트위터를 통해 한국 국민에게 첫 인사를 보냈다.주한미국대사관은 5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해리 해리스 신임 주한미국대사를 소개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1분 29초 분량의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지난달 29일 미국 국무부에서 취임 선서를 해 조만간 정식 부임을 앞둔 해리스 신임 대사는 영상에서 “수십년간 한·미 양국은 함께해 왔고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동맹국으로 거듭났다”며 “저는 이 유대관계를 유지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요한 파트너인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는 것은 저에게 큰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해리스 신임 대사는 특히 “저는 한국 음식과 술도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 비빔밥과 안동소주를 즐긴다”며 “제 아내 브루니와 저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존중하고 한국 전통 탈을 수집하기도 한다”고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 드러냈다. 그는 “미 해군이셨던 제 아버지는 저에게 한국전 참전 경험에 대해 들려주곤 하셨고 진해에서 한국 해군과 함께 근무했던 경험담도 이야기해 주셨다”며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소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美 폼페이오 1박2일 방북... 고위급 ‘2라운드’ 시작

    美 폼페이오 1박2일 방북... 고위급 ‘2라운드’ 시작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북미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위해 평양을 추가 방문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고위급 담판 ‘2라운드’의 막이 올랐다. AFP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과 국무부 고위급 참모들을 포함한 방북단 일행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전 2시쯤 워싱턴을 출발해 1박 2일 일정으로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로, 현지에서 숙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북미정상회담 이전이었던 지난 1, 2차 방북은 당일치기 방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기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인사들과 만나 지난 주말 사이 판문점에서 진행된 북미간 탐색전 결과를 토대로 후속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방북에서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하고, 특히 최대 쟁점인 ‘핵 신고 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와 관련해 북측의 답변을 받아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북에는 미국 국무부 출입 기자 6명도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단 동행과 관련,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시점에 맞춰 북한이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를 미국 측에 인도하고, 이 과정 역시 동행한 외신 기자단을 통해 중계하면서 양측 간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북한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중국은 북미 양측이 후속 접촉을 갖는 데 대해 기쁨을 느낀다며 환영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미 양국이 긴밀한 접촉을 통해 협상을 강화하고, 서로 마주 보고, 상호 선의를 표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달성한 공동 인식을 이행하는 것이자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한 발 더 발전시키는 것”이라며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 체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산대 전호환 총장 ‘펜의 힘’ 역서 발간 .

    부산대 전호환 총장 ‘펜의 힘’ 역서 발간 .

    “대학 교육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건전한 비판정신을 가진 민주시민을 기르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역서 출간을 서둘렀습니다”. 1850년대 크림전쟁의 실상과 당시 영국 타임스의 언론 보도로 인한 영국 내각의 총사퇴 과정을 다룬 역서 ‘펜의 힘’을 최근 공동번역 출간한 전호환(59) 부산대 총장은 5일 역서 발간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펜의 힘’의 원서는 영국의 팀 코티스가 저술한 ‘딜레인의 전쟁’으로 을 1854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4개월 동안 크림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의 전투에 관해 언론사인 타임스와 영국 정부 간의 진실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보냈던 전 총장은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정숙진 번역가와 함께 번역 작업을 진행, 번역책을 출간했다.이 책에서 타임스 편집장인 딜레인은 저널리즘 정신과 ‘펜의 힘’으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인 오늘의 영국을 만드는 데 공헌한 인물로 그려진다. 나이팅게일은 160여 년 전 이미 ‘데이터의 힘’을 보여준 혁신가로서 소개됐다. 전 총장은 “나이팅게일과 타임스 딜레인 편집장이 보여준 것처럼 ‘의미 있는 데이터’가 세상을 바꾼다는 확고한 신념과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크림전쟁은 1853년 10월부터 1856년 2월까지 크림반도에서 있었던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의 연합군과 러시아제국 간의 전쟁을 일컫는다. 160여 년 전 크림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 만에 5만3000여 명의 영국 병사 중 2만 1097명이 사망했다.하지만 이들 중 2755명만 전투 중에 사망했을 뿐, 나머지 2019명은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악화돼 사망했거나 1만6323명은 전투와 관계없는 질병으로 사망했다. 영국의 타임스지는 역사상 최초의 종군기자인 하워드 러셀을 크림반도에 파견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신문을 이용한 전쟁지원 모금활동을 펼쳐 간호사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크림반도의 군 병원에서 활약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러셀과 나이팅게일의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임스는 생생한 전장의 소식을 전하고 정부의 거짓 발표를 반박했다. 전투와 관계없는 질병으로 죽은 병사가 총 사망자의 77%에 달하자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의 위생시설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1854년 겨울에는 입원환자의 43%가 사망했지만, 위생시설을 개선하고 6개월이 지나자 사망률이 2%대로 크게 줄었다.데이터를 분석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전총장은 “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월드피플+] 두 팔 잃은 참전 군인, 손 대신 갈고리로 화가되다

    [월드피플+] 두 팔 잃은 참전 군인, 손 대신 갈고리로 화가되다

    인생에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닥쳐도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존재한다. 군 복무 중 두 팔을 잃은 미국인 남성도 뒤늦게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해 다시 일어섰다. 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BS 뉴스에 따르면, 매사추세츠 미들버로 출신의 피터 데이먼(46)은 2003년 이라크에 파병돼 육군 헬기 정비사 임무를 맡았다. 같은 해, 헬기의 가압 기체 탱크가 폭발하는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한 명의 군인이 숨졌고, 데이먼은 양쪽 팔을 잃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입대 직전에 전기공으로 일한 그는 두 손 없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가족을 돌볼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새로운 미래가 열린 것이다. 데이먼은 1년에 약 30점의 그림을 그려내며 이를 한 점당 250달러(약 28만원)에서 1500달러(약 167만원)에 판매한다. 그는 “그림 판매로 충분한 수입을 거두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 건강한 사람들도 가지지 못한 재능을 내가 가졌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기적이었다. 내게 큰 힘이 되었으며, 아직 이 세상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고 설명했다. 데이먼은 최신식 인공 팔 대신 갈고리를 착용하고 그림을 그린다. 조잡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작품 활동을 하는데 효과적이며 그의 신체 일부분이나 마찬가지다. 아내 젠과 함께 미술관을 운영하며, 지역 예술자가들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는 데이먼은 “내 처지가 불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상으로 고통받으며 오히려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자신의 앞날이 창창하게 빛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CBS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박승원 광명시장 “노인과 보훈회원 복지 증진에 힘쓰겠다”

    박승원 광명시장 “노인과 보훈회원 복지 증진에 힘쓰겠다”

    “노인과 보훈회원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연구하고 힘쓰겠습니다.” 박승원 경기 광명시장은 지난 2일 지역 어르신들과 보훈회원들의 고견과 지혜를 듣기 위해 취임 첫 대한노인회 광명시지회와 보훈회관을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박 시장은 취임 첫날 먼저 대한노인회 시지회를 방문해 임원·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노인복지 발전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어 그는 “어르신들의 높은 연륜과 경험이 광명시를 이끌어 가고 있다”며 “노인복지가 향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시정에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또 보훈회관 9개 단체 사무실도 모두 방문해 임직원들과 취임 인사를 나눴다. 박 시장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여러분들이 있기에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게 됐다”고 강조하며 “‘우리 삶을 바꾸는 광명시, 더 따뜻하고 밝은 도시 광명’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 우리 시가 나아갈 방향에 보훈회원님들의 고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어 “보훈회원 복지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시행중인 시책을 꼼꼼히 살펴 불편한 게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시는 보훈대상자 사업으로 현재 사망한 참전유공자의 배우자에게 달마다 복지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또 보훈회원 맞춤형일자리 시행을 비롯해 건강검진실시, 병원진료 이동편의 차량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고향 친구 강기주·김우종·김덕용이 위령제 전사자 명단에 있었다”

    “고향 친구 강기주·김우종·김덕용이 위령제 전사자 명단에 있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12회●장순산 인터뷰 일시 1997년 12월 3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1층) 대담 장순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중학교 2학년 때 일어난 6·25 사변 6·25 사변은 내(장순산)가 영종중학교 2학년 재학 중일 때 일어났다. 전쟁이 터지면서 내가 사는 인천 중구 영종도에도 북한 괴뢰군(傀儡軍)이 들어와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당시 제일 고통스러웠던 일은 어린 학생들까지도 북한 인민의용군(義勇軍)으로 잡아가는 일이었다.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간 많은 학생은 결국 실종되었다. 나도 인민 의용군으로 잡혀가지 않으려고 숨어 지내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우리 영종도도 밝은 세상을 맞게 되었다.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 창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수복이 되면서 인천에서 학도의용대가 창설되면서 각 지대가 생기게 되어, 영종지대도 조직되었다. 영종지대장은 건국대학생인 장치복이었다. 적화(赤化) 후에 영종도 지역도 공산 괴뢰군들의 탄압으로 많은 섬 주민들이 고통을 당해 수복되었을 때는 많은 학생이 학도의용대에 가입해 빨갱이와 부역자들을 색출하는데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영종지대에는 여학생 대원들도 많았다. 그들은 주로 인천학도의용대가(仁川學徒義勇隊歌)를 보급시켜 주기도 하고 홍보도 하면서, 잔일을 도맡아 하기도 하였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1950년 12월 초 전황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 국군과 UN군이 매일 후퇴 중이었다.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따라 남하 드디어 1950년 12월 18일 새벽에 영종나루터에 나가 우리 영종지대 대원들은 배를 타고 인천으로 건너갔다. 그때 내 마음은 우리들이 일단 후퇴했다가 인천이 다시 수복되면 고향에 돌아오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났다. 그날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 병무청)에서 나온 국민방위군 소위를 따라서 인천축현국민학교를 출발하여,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교)를 향하여 걸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양에서 1박을 하고, 수원까지 걸어서 갔다. 수원에서는 기차 화물차를 타고 대구까지 갔으며 대구에서 모여 있다가 대구를 출발하여 청도, 밀양을 지나 마산으로 해서 통영까지 갔다. 1951년 1월 4일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 인천에서 출발한 지 18일 만에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한 우리들은 곧바로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로 입소하였다. 국민방위군 제3 수용소에서 수용소 생활을 한 지 며칠 지나서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수용소에서는 우리들 전원을 학교 운동장에 집합하라 하더니 단체 기합을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우리들이 한참 단체 기합을 받고 있을 때 어디를 갔다 왔는지 인천학도의용대 이계송 대장이 갑자기 나타나서 통영 국민방위군 수용소 책임자한테 “지금 여기 있는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은 인천에서부터 이곳 통영까지 걸어와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군에 입대할 예정인데, 기합이 웬 말이냐 오늘 통영을 떠나 부산으로 갈 것이니 빨리 아침 식사를 시키시오”라고 말하여 기합을 중지시켰다. 우리들은 그날 아침을 먹고, 통영에서 배를 타고 마산을 들러서 부산에 도착하였다. 1950년 1월 10일 부산에서 자원입대 인천학도의용대의 많은 중학생이 부산 동대신동에 있었던 육군통신학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육군통신학교의 유선교육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출신 신봉순 대위님으로 아마도 지휘관 옆에서 군 복무하게 되는 통신병이 어린 중학생들에게는 좀 더 나은 군 복무가 될 거로 예상하시고 우리들을 통신병으로 이끌었다고 나중에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인천상업중학교 교사 출신 신봉순 유선교육대장님의 엄한 명령으로 그 당시 우리들이 통신교육 받을 때는 기합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1951년 4월 말 강원도 5사단 27연대 3대대 대대본부 무전병으로 배치받았다. 참혹한 전쟁터를 보다 내가 처음 5사단에 갔을 때 5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고, 서하리에서 경북 풍기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그때는 전투 상황이라 야전식량을 자주 주었으며 어떤 때는 며칠 분을 한꺼번에 줘서 그럴 때는 “아… 또 후퇴로구나” 하고 미리 준비를 하곤 하였다. 그때 많은 전사자 시신과 그리고 팔다리가 잘린 중상의 부상병이 발생하는 끔찍한 전투 현장을 모두 봤다. 평소 잘 작동됐던 무전기가 전투만 벌어지면 이상하게 탈이 나서 난처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무전기가 불통되면 대대장으로부터 “야! 너 고치지 못하면, 넌 총살이야” 하는 고함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당시 지휘관들은 무전기를 다루는 통신병들을 많이 아껴주었다.신흥동 해광사에서 거행된 위령제 참석 우리 5사단은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후 다시 최전방으로 배치되어 전투 지역에서 휴전을 맞았으며, 이후 2년을 더한 군 생활 4년 3개월 만에 파란의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제대하였다. 제대한 1955년 12월 17일날 신흥동 해광사에서 거행된 위령제(慰靈祭)에 참석했는데, 나하고 인천학도의용대 영종지대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같이 남하하여 자원입대한 강기주·김우종·김덕용 3명의 이름이 전사자 명단에 있는 것을 봤다. 남기고 싶은 말 전사한 내 고향 친구들의 이름(강기주·김우종·김덕용)과 인천학도의용대의 호국(護國)활동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에 기록으로 남겨지는, 이 큰일을 이경종, 그리고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 2부자(父子)께서 해준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3회 계속참전기 12회를 마치며 중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자원입대하여 조국을 지켰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섭섭해하지 않았던 장순산은 인천이 고향입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68년 전 인천에서 있었던 슬픈 일 1950년 12월 18일 인천을 출발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1951년 1월 10일 자원입대한 인천 출신 중학생들은 약 2000명이었고, 그중 전사자는 정확히 208명이었다. ①중학교 1~3학년생 700여명은 통신병으로 참전하여, 약 35명이 전사하였다. ②중학교 4~6학년생 약 600명은 해병으로 참전하여, 100여명이 전사하였다. ③중학교 1~6학년생 약 700명이 육군으로 참전하여, 70여명이 전사하였다. ※인천학생 6·25 참전사 제1~제4권에 있는 ‘6·25전사 인천학생’편 참고.
  •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슬픔 딛고 지역에 헌신·봉사…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슬픔 딛고 지역에 헌신·봉사…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와 우리 안보 환경은 큰 변화를 맞이하였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가 경색 일로를 걸었고, 군사옵션이 거론될 정도로 북·미 관계는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평화·대화의 흐름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한반도 정세 안정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국민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기치 아래 과거의 묵은 감정을 청산하고 평화적인 노선을 취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칫 ‘평화’라는 단어 자체가 부여하는 안락함과 달콤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는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피와 눈물에 의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이 물려준 이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호국 보훈의 가치를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어느덧 45회를 맞은 ‘서울보훈대상’은 국가를 위해 공헌 및 희생을 하신 분들을 발굴·포상함으로써 그분들이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되고 영예가 됨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 호국 보훈 의식의 싹을 틔우고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올해 선정된 분들을 살펴보면 국가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거나 가족을 잃는 등 커다란 아픔이 있었지만 오히려 국가와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했습니다. 우선 6·25 전쟁의 참전유공자로서 고령임에도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 의식으로 현충시설 정화 및 봉사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또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특수임무 유공자로서 나라 사랑 활동, 비정부기구(NGO) 재난 구조 활동, 보훈 활동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공상군경으로서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보훈 선양 활동으로 보훈 문화 확산에 기여한 분이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세계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였고 이후 국가유공자 복지 향상과 나라사랑 정신 확산에 진력하신 분도 선정됐습니다. 전몰군경 유족으로서 어렵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보훈 문화의 확산과 나라 사랑·애국정신을 고양하고, 독거·고령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신 분까지 한분 한분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간 갈등과 반목으로 혼란했던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모습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아울러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유족들을 따뜻이 보살피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수단이 없는 민족이나 국가에게 평화와 안정이 거저 주어질 리 없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지난 역사를 아는 만큼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선열들의 호국 의지와 나라 사랑 정신을 본받아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향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되새겨 보고, 그 고귀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 받들고 키워 나가야 합니다. 끝으로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애국선열과 국가유공자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제광 건국대 박물관 학예실장
  • [제45회 서울보훈대상] 무공수훈자 문성주, 환경보호·질서 캠페인·순국선열 유적지 헌화

    [제45회 서울보훈대상] 무공수훈자 문성주, 환경보호·질서 캠페인·순국선열 유적지 헌화

    문성주(88)씨는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서울특별시지부 중구지회장이다. 6·25 전쟁 때 단신으로 북에서 월남해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했고 25년간 군 생활을 했다. 2013년부터 중구지회장에 임명돼 회원들과 함께 쓰레기·담배꽁초 줍기 등 지역 내 환경보호 활동을 했고, 현충 시설 정화 활동도 실시했다. 주민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퇴계로, 장충단로, 난계로, 다산로 등)에서 기초질서 캠페인을 실시했고, 저소득층 고령 회원을 발굴해 위로연과 선물을 제공하는 등 국가유공자로서의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또 6·25 월남참전자를 강사로 초빙해 체험담을 들으며 국가안보관을 확립하였고 안보 현장,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 유적지를 찾아 헌화, 참배하고 추모 행사를 진행하는 등 애국심 함양을 위해 단체 차원의 활동도 이어 왔다.
  •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전몰군경 유족 이맹임, 나라 사랑 배지 달기·지역·현충 시설 정화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전몰군경 유족 이맹임, 나라 사랑 배지 달기·지역·현충 시설 정화

    이맹임(66)씨는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서울특별시지부 용산구지회장이다. 서울·대전현충원의 참배객 안내를 진행하고 환경 정화 운동 및 현충일 행사 시 내방객에게 음료를 제공하는 봉사 활동을 펼쳤다. 또 나라 사랑 배지 달기와 함께 초등학교 앞에서 태극기 알기 운동을 펼치는 등 다양한 선양 활동으로 보훈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독거·고령 회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명절 위문품 전달, 청소 등을 함께 하며 재가회원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했고 효창공원 등 지역사회 정화 활동을 위한 길거리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기초질서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또 6·25참전학도순적비(용산), 이원등상사상(노들) 현충 시설 오물 제거, 낙엽 쓸기, 비석 닦기 등 현충 시설 정화활동을 통해 애국 정신을 고양하고자 했다.
  •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월남참전유공자 전우천, 서화 작품 제작·전시 등 예술문화 통한 호국보훈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월남참전유공자 전우천, 서화 작품 제작·전시 등 예술문화 통한 호국보훈

    전우천(69)씨는 월남참전유공자로서 현재 한국예술문화원 이사장이다. 다양한 예술문화 활동으로 나라 사랑과 호국 보훈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2017년 ‘호국보훈 페스티벌’에 참여해 67년 전 한강에서 일어난 한강방어선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공유했고, 전투 참전자와 전사자 유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호국보훈’을 직접 서예로 써 보는 체험을 시민에 선보였다. 또 2018년 ‘호국보훈의 달 특별초대전’을 주관하며 독립·호국·민주를 주제로 한국 서화 작가들의 작품을 제작·전시해 국민 화합과 미래 대한민국의 번영을 기원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한문, 회화, 캘리그래피, 서각 등 200여 작품을 통해 그 안에 스며든 독립·호국·민주 정신을 일반 시민에게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 ‘복싱 전설’ 알리, 종교적 이유로 베트남전 징집 거부

    알리 영향 받은 킹 목사 반전 운동 집총 거부 도스는 의무병과 지원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28일 나오면서 과거의 대표적인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복싱 전설’ 무하마드 알리는 미국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첫 번째 공인이다. 무슬림인 알리는 1967년 6월 종교적 이유로 베트남전쟁 징집 영장을 거부했다. 당시 알리는 병역거부로 기소돼 징역 5년에 벌금 1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나아가 세계챔피언 타이틀과 함께 프로 권투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한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에 시달려야 했다. 알리는 1971년 연방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 전까지 3년간 링에 오르지 못했다. 그사이 미국 전역을 돌면서 흑인 인권 운동 연설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알리의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은 흑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이끈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킹 목사는 젊은이들이 양심에 따라 반전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의무병으로 전장을 누빈 데즈먼드 도스는 미국 최초의 양심적 집총 거부자로 유명하다. 포화에 휘말린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에 자진입대하고도 종교적 신념 때문에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하고 의무병과에 자원한다. 결국 총 없이 의무병으로 태평양 전선에 참전한 도스는 1945년 5월 오키나와 전투에서 부상당한 동료 75명의 목숨을 구해내는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뒤 미군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비무장 전투원으로는 최초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헌재 “남북 대치, 대체복무 미룰 이유 못 돼” 전향적 판단

    헌재 “남북 대치, 대체복무 미룰 이유 못 돼” 전향적 판단

    “양심적 병역거부는 방어행위…특정종교 보호 아니다” 규정 “거부자 수감, 국방력 영향 적어” 군병력 단계적 감축계획도 반영 “美, 2차대전 중에도 대체 인정 통일 전 서독도 냉전 중 도입” 2004년 권고 14년간 지지부진…헌법불합치 결정해 행동 담보대체복무 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2004년, 2011년 잇따라 합헌 결정을 내렸던 헌법재판소가 2019년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고 입법부에 권고하는 전향적인 결정을 28일 내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재 판단은 여전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감옥 대신 대체복무 선택지를 제공하게 됐다는 점에서 대체입법 완료와 함께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사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2000년대 이후 처벌했거나 처벌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2만여명의 축적된 사례가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길을 여는 동력이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를 “사회공동체의 법질서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행위”라고 규정했다. 대체복무가 여호와의 증인 등에 국한된 문제라는 인식에 헌재는 “특정 종교나 교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 공통의 염원인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양심을 보호하고자 하는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미 군대가 아닌 감옥으로 갔음에도 국방력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았다는 점 역시 시간이 증명해 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출산율 저하 때문에 병역자원이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정보전·과학전의 양상을 띠는 현대전에서 병역자원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있다고 헌재는 설명했다. 특히 헌재는 ‘2017년 현재 61만 8000명인 상비병력을 2022년까지 50만명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라는 국방부의 2018년 업무보고를 결정문에 인용했다. 문재인 정부의 군 감축 계획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체복무지로 유도할 근거가 된 셈이다. 국방력에 큰 손실이 없는 반면 20대 초반에 수감 생활을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불이익이 크다는 점도 고려됐다. 헌재는 “최소 1년 6개월 이상 징역형을 받으면 그에 따른 공무원 임용 제한 및 해직, 각종 관허업의 특허·허가·인가·면허 상실, 인적사항 공개, 전과자로서의 냉대와 취업곤란 등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면서 “이들을 공익 관련 업무에 종사하도록 한다면, 이들을 처벌해 교도소에 수용하는 것보다 넓은 의미의 안보와 공익 실현에 더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헌재 재판관 다수는 남북 대치 상태라는 특수한 안보상황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미룰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대목에서 헌재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종교적 사유로 참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전투 복무 대신 비전투복무를 하게 했고 아제르바이잔과 1994년까지 전쟁 후 현재는 휴전 상태로 소규모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아르메니아도 2003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는 해외 사례를 제시했다. 통일 전 서독도 냉전 중이던 1949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1956년에 대체복무제를 기본법에 규정했다. 앞서 2004년 합헌 결정 당시에도 대체복무 방안을 검토할 것을 입법부에 소극적으로 권고했지만 14년 동안 입법이 지지부진했던 점도 헌재가 대체복무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란 행동을 취한 이유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2004년 입법자에 대해 국가안보라는 공익 실현을 확보하면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을 권고했는데, 그로부터 14년이 경과하도록 이에 관한 입법적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였다”면서 “그 사이 국가인권위, 행정부, 국회 등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을 검토하거나 권고하고, 법원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선고 사례가 증가했다”며 입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날 헌재 결정으로 국회는 2019년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한 대체복무 방안을 입법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상처 잊지 않아야 역사가 보완될 수 있어”

    “상처 잊지 않아야 역사가 보완될 수 있어”

    초·중·고생 5500여명 참가 김소민·황지호·정혜원 대상 태국 참전용사에 감사편지 전달“당신의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제16회 한국전쟁 참전용사 감사편지’ 공모전 3차 실기 시험이 진행됐다. 이날은 태국의 한국전쟁 파병 기념일인 10월 22일 현지의 참전용사들을 직접 찾아 감사편지를 전달할 대상 수상자를 뽑는 날이었다. 올해 공모전에 참가한 5500여명의 학생 중 1, 2차 시험을 통과한 32명(초등학교 7명, 중학교 7명, 고등학교 18명)은 유창한 영어 실력 등을 뽐내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그로부터 10일 후인 지난 26일 공모전을 공동 주최한 국가보훈처와 H20품앗이운동본부는 최종 수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대상에는 서울 한영외고 2학년 김소민(왼쪽·17)양, 부산 해연중 2학년 황지호(가운데·14)군, 인천 수정비전학교 5학년 정혜원(오른쪽·11)양이 선정됐다. 이들은 다음달 7일 전쟁기념관에서 국가보훈처장상을 받는다. 고등부 대상을 받은 김양은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책과 영화를 보면서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됐지만 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우리를 지금 여기 있게 해 준 참전용사들이 얼마나 고마운지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양은 이번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참전용사가 전쟁 이후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았을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처를 잊지 않고 같이 아파 해야 역사가 보완될 수 있다고 봤다”며 “이분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김양의 영문편지 끝 부분에도 “당신 덕분에 남북 관계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면서 “이 긴 여정의 끝에 좋은 결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감사의 메시지가 나온다. 중등부 대상을 받은 황군은 “참전용사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공모전에 참가했는데 상까지 타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평소 전쟁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면서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에서 유엔군이 무기와 식량을 버리고 주민들을 배에 태우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훌륭한 참전용사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초등부 대상에 선정된 정양은 미국에서 오래 지내 아직 한국말이 서툴지만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할아버지를 통해 많이 배웠다고 자랑했다. 정양은 “참전용사들이 가족도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을 기쁜 마음으로 도와줬다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면서 “나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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