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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다함께 건배!’…박대통령,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참석

    [서울포토] ‘다함께 건배!’…박대통령,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참석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6·25전쟁 제66주년을 맞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서 건배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포토]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서 인사말 하는 박대통령

    [서울포토]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서 인사말 하는 박대통령

    2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6·25전쟁 제66주년을 맞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UN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서울에 베트남전 참전 기념탑 첫 건립

    서울시는 서울 출신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탑의 건립을 지원한다고 24일 밝혔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탑이 서울에 세워지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현재 서울 보훈공원에 있는 참전 유공자 명비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유공자 중 동대문구 출신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시는 또 월남전참전자회가 베트남 이주여성들을 위해 여는 다문화 가족화합 행사와 개화산 전투 조형물 건립(강서구 개화산 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위령비는 너무 작아 개화산 전투의 의미를 충분히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6·25 참전 용사 합동 회혼례

    6·25 참전 용사 합동 회혼례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예식장에서 열린 ‘6·25전쟁 65주년 기념 참전유공자 합동 결혼식(회혼례)’에 참가한 참전 용사들과 배우자들이 예식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포토] 6.25 전쟁 65주년 기념 참전유공자 합동결혼식

    [포토] 6.25 전쟁 65주년 기념 참전유공자 합동결혼식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예식장에서 열린 ’6.25 전쟁 65주년 기념 참전유공자 합동결혼식’에 참가한 노병과 그 부인들이 식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2015.11.10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세월의 恨’ 희망으로 승화시킨 한국전쟁 노병들] ‘60년 해로’ 호국영웅 부부들의 뒤늦은 혼례

    [‘세월의 恨’ 희망으로 승화시킨 한국전쟁 노병들] ‘60년 해로’ 호국영웅 부부들의 뒤늦은 혼례

    서울지방보훈청은 10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에서 고령의 6·25 참전유공자 부부 12쌍을 위한 합동결혼식을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6·25전쟁 당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예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60년을 해로한 호국영웅 부부들을 위한 ‘60주년 합동 회혼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합동 회혼례의 최고령자인 김창도(왼쪽·93)씨는 “어려운 시절 아내를 만나 결혼식도 간단하게 했다”며 “전쟁이 한창일 때 만나 고생만 시키다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하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김씨는 예식에서 아내 우숙자(오른쪽·80)씨에게 보내는 ‘60년의 행복한 동행’이란 편지를 낭송할 예정이다. 합동 회혼례에서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주례사를 맡고 평균연령 65세의 ‘청춘합창단’이 축가를 부른다. 국가보훈처는 해마다 6·25 참전용사를 예우하기 위해 지방보훈청 주관으로 결혼 60주년을 맞은 참전용사 부부들의 합동 회혼례를 개최하고 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문재인 “분단장벽 허물 때까지 미완의 광복..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문재인 “분단장벽 허물 때까지 미완의 광복..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은 적대와 대결을 반복하는 분단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이날 서울 남산 백범광장에서 열린 ‘남산 거북이 마라톤’에 참석해 축사에서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에게 광복은 미완의 광복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도 우리는 통일을 향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사건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70년 동안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이뤘지만,그냥 만들어진 성과가 아니다.독립을 위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정신과 민주화를 위한 많은 희생과 헌신,경제성장을 위해 땀 흘린 국민의 근면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광복 70년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자축하면서,또 한편으로 통일의 염원을 가슴에 새기면서 70년 전 순국선열들이 하셨던 것과 같은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함께 힘차게 달리자”고 말했다. 행사에는 6·25 참전유공자들도 참석, 문 대표가 다가가 인사하자 유공자 보상에 더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표는 이에 대해 ”6·25 및 월남전 참전수당,특수유공자와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전부 ‘민주정부’ 시절 한 일이지만 많이 부족하고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또 ”세월호 유가족에 수십억을 썼는데 연평해전 장병에 대한 보상금이 3100만원에 불과하다“라는 한 참석자의 지적에 ”연평해전 장병들에게는 국민성금까지 합해서 4억원 이상씩 보상해 드렸다“고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오늘 6·25 65주년] “희생영웅 기려야 나라도 발전” 朴대통령, 참전유공자 위로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6·25전쟁 제65주년 기념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서 “우리나라가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애국심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애국심을 역사의 거울로 삼아 기록하고, 국민이 그 영웅들을 마음속 깊이 기리는 것이야말로 나라 발전의 토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참전용사 여러분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참전유공자로 미처 등록하지 못한 분들을 직접 찾아내 등록하고, 보상과 예우를 해드리는 사업을 펼쳐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아직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마지막 한 분의 영웅을 찾아내는 그날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사회적으로 참전유공자를 우대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그 공적이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사에는 6·25 참전 원로 장성과 참전 유공자, 6·25 관련 보훈단체 회장 및 회원, 유엔군 참전 9개국의 주한 외교단, 한·미 양국의 주요 지휘관 등 480여명이 참석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독자의 소리] 호국보훈의 달, 참전 용사들이 운다/진진화 예비역 육군 대령

    6·25전쟁 당시 계급이나 군번 없이 비군인 신분(학도병, 유격군, 노무자 등)으로 참전한 분들이 대략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현역병과 동일하게 전투 현장으로 가거나 향토방위대 등으로 참전했다. 수많은 사람이 전사하거나 부상하는 등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정부는 이분들을 위해 2002년 ‘참전유공자예우법’을 제정해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 주고 있다. 국방부는 비군인 신분으로 참전한 분들에게 심의를 거쳐 ‘참전사실확인서’를 발급해 주고 있으나 현재까지 참전 사실 확인을 인정받은 사람은 3만여명에 불과하다. 국방부에서 참전 사실 확인을 받는다는 게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이유는 당시 참전했다는 징용장, 증명서 등 객관적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 없는 분들은 같이 참전했던 인우보증인을 세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대부분 80세가 넘은 고령인 데다 당시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같이 참전한 분들이 대부분 사망해 인우보증서를 받는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국방부는 당시 참전 관련 기록과 정부의 객관적인 자료, 유족(신청자)이 제출한 자료, 기존에 인정받았던 사례 등을 좀 더 전향적으로 검토해 아직 참전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최소한의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이분들의 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속히 국방부 심의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참전 사실 확인을 받도록 도와야 한다. 진진화 예비역 육군 대령
  • 딜라이트 보청기, 호국보훈의 달 이벤트 진행…최대 20% 가격 할인 제공

    딜라이트 보청기, 호국보훈의 달 이벤트 진행…최대 20% 가격 할인 제공

    보청기 전문기업 ‘딜라이트 보청기’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해당 업체는 6월 1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호국보훈의 달 이벤트를 통해 최대 20%의 가격할인은 물론, 기간 내 보청기를 구입하는 국가보훈처 지정 보훈대상자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제공한다. 가격할인 대상 제품은 딜라이트 보청기의 대표상품인 ‘혜음’ 전 제품으로, 혜음 보청기 한 쪽 구매시 최대 14%, 양쪽 구입 시 최대 20%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게 된다. 또한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 5.18민주유공자 등 국가 보훈처가 지정한 보훈대상자가 보청기를 구매하면 7만 원 상당의 전자식 습기 제거기를 선물로 증정받을 수 있다. 이번 가격할인 대상 제품인 ‘혜음’은 딜라이트 보청기의 기술력이 집대성된 프리미엄 라인으로, 높은 IC성능과 피팅프로그램으로 더욱 깨끗하고 정확한 음질을 전달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보청기 구입 보훈대상자에게 증정되는 전자식 습기 제거기의 경우, 습기에 취약한 보청기 및 각종 전자기기를 보호해 주어 사용 연한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6월 호국보훈의 달 기념 특별 이벤트를 마련한 딜라이트 보청기의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도 합당한 처우와 존경을 받지 못하는 보훈대상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자 특별한 가격할인과 선물 증정의 기회를 마련했다”라며, “본 이벤트를 통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많은 분들께 세상의 맑은 소리를 선사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본 이벤트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딜라이트 보청기 각 지점 및 대표번호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플러스-정치·사회]

    여군 등 참전유공자 2320명 발굴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여군으로 참전했으나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16명을 새로 발굴했다고 5일 밝혔다. 6·25전쟁에 참전한 여군 출신 기존 국가유공자는 1788명이나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6·25 참전유공자 발굴 사업에서 여군을 유공자로 등록한 사례는 올해가 처음이다. 보훈처는 이들을 포함해 올해 6·25 참전 유공자 2320명을 새로 발굴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발굴 사업을 통해 유공자로 등록된 사람은 모두 5120명으로 집계됐다. 합수단 軍 비리 현역장성 첫 구속 방위사업 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5일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고 행사한 혐의로 박모(57) 해군 소장을 구속했다. 합수단 출범 이후 현역 장성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소장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부하들을 시켜 ‘와일드캣’이 해군이 요구하는 작전 성능을 충족하는 것처럼 시험평가결과서를 허위 작성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태아 시신 택배’ 발송한 생모 체포 태아의 시신을 택배로 배달시킨 장본인은 생모 A(35)씨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나주경찰서는 5일 여아 시신을 상자에 담아 나주에 사는 어머니에게 택배로 보낸 혐의(사체유기)로 A씨를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지난달 28일 자택에서 홀로 낳은 아이를 숨지게 한 뒤 지난 3일까지 함께 지내다가 어머니에게 택배로 부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에게 영아살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독자의 소리] 잊혀가는 6·25 참전군인을 찾아서/심귀득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장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4년이 되는 해다. 6·25 참전군인 중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지 않은 분이 42만여명이나 된다. 지난 52년간 국가유공자 등록은 본인과 유족의 신청에 의해서 이뤄졌으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6·25 참전군인의 희생과 공헌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가 이분들을 직접 찾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이에 걸맞은 예우와 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지방보훈청도 탐문팀을 꾸려 지난 3개월 동안 110여명을 새로 국가유공자로 등록해 드렸다. 이분들 중에는 생활고·질병·가족 병간호 등으로 등록제도 자체를 몰랐거나 6·25전쟁 기간 중 군복무는 했지만 전사했거나 부상을 입은 분과 실제 전투에 참전한 분만 국가유공자로 등록되는 줄 알고 등록을 하지 않은 분, 참전유공자 등록제도를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전우들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등록하지 않은 분도 계셨다. 보훈공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했지만 잊혀 가는 6·25 참전유공자 발굴·등록을 위해 참전 어르신들을 직접 찾은 일은 진한 감동과 보람을 주었다. 6·25전쟁 당시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켜낸 자신들의 큰 공을 내세우지 않는 나라사랑 정신이 오늘날 발전된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6·25전쟁 참전용사의 평균연령이 84세를 넘어서고 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참전용사들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 예우하고 명예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 우리 보훈공무원의 소임이기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다. 심귀득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장
  • 6·25참전유공자 2152명 새로 찾아

    6·25참전유공자 2152명 새로 찾아

    국가보훈처는 올해부터 정부 주도로 6·25 전쟁 참전 유공자 발굴사업을 추진한 결과 유공자 2100여명을 새로 찾았다고 6일 밝혔다. 6·25 전쟁 참전자는 90여만명으로 추산되나 현재 47만 8000여명이 참전유공자로 등록돼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올해 국정과제인 ‘명예로운 보훈’의 핵심과제로 6·25 참전유공자 미등록자 발굴사업을 추진해 지금까지 2152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미등록된 6·25전쟁 참전유공자가 42만여명에 이르는 것은 그동안 국가유공자 등록이 본인이나 직계가족의 신청에 의해서만 이뤄져 등록 대상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국가유공자법과 국가보훈기본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보훈처가 직접 국가유공자로 등록 가능한 사람을 찾아 예우와 보상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올해 1월부터 전담조직을 신설해 관련 병적자료를 수집·조사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1950년대에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없어 60년 전에 작성한 군 관련 자료에서 미등록된 참전용사의 본적지를 찾아 신상을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상당수가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참전 유공자 가운데 이미 사망한 사람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유해를 국립호국원으로 이장해 예우할 계획이다. 생존한 참전용사에게는 월 17만원의 참전명예수당과 보훈병원 이용 시 본인부담액의 60% 감면, 사망 시 국립호국원 안장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6·25 전쟁에 참전했지만 아직 국가유공자로 등록 못 한 참전자는 보훈처 대표전화(1577-0606)로 연락하면 등록 심사를 받을 수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여진구, 현충일 추념식 참석 ‘국민대표 5인에 선정..왜?’

    여진구, 현충일 추념식 참석 ‘국민대표 5인에 선정..왜?’

    배우 여진구가 국민을 대표해 현충일 추념식에서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를 달았다. 여진구는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앞 광장에서 열린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를 받았다. 이날 여진구는 전 국가대표 역도선수 장미란, 6.25참전유공자 자손인 그룹 씨클라운의 레이(본명 김현일) 등과 함께 국민대표 5인에 선정돼 행사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진구에 직접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를 달아주고 격려했다. 나라사랑 큰 나무 배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와 관심을 일깨우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제작된 것. 지난해 현충일 추념식에서는 김유정이 국민대표로 선정돼 배지를 받았다. 영화 ‘내 심장을 쏴라’ 지방 촬영 중 행사 참석을 위해 짬을 낸 여진구는 행사를 마친 후 곧바로 전주로 내려가 촬영에 복귀한다. 한편 이날 추념식에서는 배우 최불암이 추모헌시 ‘조국을 위하여’를 낭송해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북핵·미사일 맞춤형 억제전략 이달 키리졸브 훈련부터 적용

    국방부가 6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한 맞춤형 억제전략에 대해 보고하고 이를 올해 훈련에서 검증하기로 한 것은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맞춤형 억제전략은 전·평시 북한의 핵 위기 상황을 위협 단계, 사용 임박 단계, 사용 단계 등 3단계로 구분해 군사·외교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0월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이 전략에 합의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해 2월까지 세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의 소형·경량화 기술을 상당히 축적했을 것으로 평가한다. 북한이 현재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무게 4~4.7t 규모의 초보적 수준의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추가 핵실험 등을 통해 이를 1t 이하로 경량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대륙간탄도탄(ICBM)에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이용한 핵무기 투하 등 다양한 핵 공격 유형을 상정해 대응전략을 연구했고 이를 이달 마지막 주 키리졸브 군사연습부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맞춤형 억제전략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행 가이드라인도 제정하기로 했다. 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탐지를 위해 2020년대 초까지 영상과 신호정보를 동시에 수집할 수 있는 군사정찰위성 5기를 확보할 예정이다.이 밖에 전시작전통제권 연기 시기도 연내 합의를 목표로 협의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또 예비군 훈련 대상자가 선출직 공무원이나 장차관으로 임명되면 임기 동안 예비군 훈련을 면제받던 동원예비군 훈련 보류 제도를 개정해 이들도 훈련을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1월부터 6·25 공적발굴팀을 구성해 참전유공자를 직접 발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별이 된 ‘베트남의 별’

    별이 된 ‘베트남의 별’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예비역 중장)이 25일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 소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소련군 주둔 이후인 1947년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로 월남했다. 모태신앙을 지닌 그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5기로 임관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 9연대로 발령받아 토벌작전에 가담했다. 6·25전쟁 때에는 육군 중령으로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로 불리는 ‘백골병단’을 이끌고 신화적인 전공을 세웠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4후퇴 무렵,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백골부대는 정식 군번도 없이 적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을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 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 휴전 후 9사단 참모장이던 박정희 당시 대령과 인연을 맺었다. 백골병단 생존자들과 강릉을 찾은 그를 박정희 대령은 ‘죽을 줄 알면서도 이북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니 대단하다’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 5사단장이던 그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 박정희 당시 소장을 도왔다. 당시 혁명 5인 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여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 1965년 8월 맹호부대장 겸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인 1969년 4월 헬리콥터로 이동 도중 베트콩의 공격을 받고 국군 28연대 주둔지역인 투이 호아에서 헬기가 추락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69년 귀국한 이후 2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1972년 박 대통령은 그를 불러 유신의 뜻을 내비치며 군부 내의 지지를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국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고 같은 해 6월 전역했다. 사실상 강제 예편이었다. 군 복무기간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세운 공로로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최고2등훈장, 미국 공로훈장, 타이완 공로훈장, 필리핀 명예훈장, 태국 왕관훈장, 브라질 문화훈장 등 외국 훈장도 다수 받았다. 2000년 베트남 참전 전우회 회장과 2004년 사단법인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을 거쳐 같은 해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총재 등을 맡아 활동했다. 저서로는 ‘베트남전쟁과 나(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여사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28일 발인을 거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02)3010-2631.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별이 된 ‘베트남의 별’

    별이 된 ‘베트남의 별’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예비역 중장)이 25일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진남포 소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소련군 주둔 이후인 1947년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홀로 월남했다. 모태신앙을 지닌 그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5기로 임관했다.  1948년 제주 4·3사건 때 9연대로 발령받아 토벌작전에 가담했다. 6·25전쟁 때에는 육군 중령으로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로 불리는 ‘백골병단’을 이끌고 신화적인 전공을 세웠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박해진 1951년 1·4후퇴 무렵, 대구에서 단 3주간 교육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백골부대는 정식 군번도 없이 적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벌였다. 인민군 중장이자 빨치산 총사령관인 길원팔을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1951년 4월 강릉으로 귀환했을 때 살아남은 병력은 647명 중 283명밖에 되지 않았다.  휴전 후 9사단 참모장이던 박정희 당시 대령과 인연을 맺었다. 백골병단 생존자들과 강릉을 찾은 그를 박정희 대령은 ‘죽을 줄 알면서도 이북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하니 대단하다’며 고깃집으로 데려가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다. 5사단장이던 그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 박정희 당시 소장을 도왔다. 당시 혁명 5인 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여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 1965년 8월 맹호부대장 겸 초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인 1969년 4월 헬리콥터로 이동 도중 베트콩의 공격을 받고 국군 28연대 주둔지역인 투이 호아에서 헬기가 추락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69년 귀국한 이후 2군사령관으로 부임했다. 1972년 박 대통령은 그를 불러 유신의 뜻을 내비치며 군부 내의 지지를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국 대장 진급에서 탈락하고 같은 해 6월 전역했다. 사실상 강제 예편이었다. 이후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군 복무기간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세운 공로로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베트남 최고2등훈장, 미국 공로훈장, 타이완 공로훈장, 필리핀 명예훈장, 태국 왕관훈장, 브라질 문화훈장 등 외국 훈장도 다수 받았다.  2000년 베트남 참전 전우회 회장과 2004년 사단법인 6·25참전유공자회 회장을 거쳐 같은 해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총재 등을 맡아 활동했다. 저서로는 ‘베트남전쟁과 나(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여사와 1남 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28일 발인을 거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02)3010-2631.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고물·참전수당 모아 900만원…더 힘든 이웃들에게”

    “고물·참전수당 모아 900만원…더 힘든 이웃들에게”

    “밥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베풀고 떠나려고 해.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이 남지만 그래도 이북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삶이었지.” 폐지와 고철을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6·25 참전 유공자가 그동안 모은 전 재산 900여만원을 사후(死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허름한 옥탑방에서 홀로 사는 최귀옥(81)옹. 최옹은 5일 옥탑방에서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관계자와 만나 이를 상의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인천에서 일용직 건설노무자로 일하던 최옹은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듬해 입대했다. 2군단 소속으로 화천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웠다는 최옹은 당시 군대 야학에서 글을 깨우쳤고, 제대 후에는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개인사는 순탄치 못했다. 가정불화로 부인, 자식들과 헤어지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최옹은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16년간 폐지와 고철을 수집하며 생활하고 있다. 최옹이 폐지를 모아 얻는 수익은 한 달에 2만원 정도. 그나마 요즘엔 몸이 불편해 한 달 이상 일을 못 하고 있다. 6·25 참전 수당 15만원과 구청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합해도 월 30만원이 채 안 되는 빠듯한 살림이다. 최옹은 이 가운데 매월 2만원을 6·25 참전유공자회에 회비로 납부하고, 폐지를 통해 얻은 수입은 쓰지 않고 따로 모아 뒀다. 최옹은 “나 자신도 어릴 때 아버지 없이 자라서인지 수십년 전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밝혔다. 최옹의 나눔은 6·25 참전용사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최옹은 정월이 되면 구청에서 지급한 쌀의 절반을 6·25 참전유공자회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다른 참전용사에게 보낸다. 3년째 자신의 몫을 나눠 온 최옹은 “난 밥은 먹고 살지만 형편이 더 안 좋은 참전 용사도 많다”면서 “6·25 참전 수당 15만원은 생계를 잇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사설] 들쭉날쭉 참전 유공자 복지 정비하라

    참전 유공자들이 받는 의료혜택이 나이나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가 손자들까지 무상보육을 시키는 마당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 유공자들이 노년에 차등 대우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명예훼손’이 아닐 수 없다. 국가에 대한 건전한 의식과 애국정신의 함양을 위해서도 하루속히 시정해야 할 일이다. 보훈병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참전 유공자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병원 진료비의 60%를 감면받는다. 서울·부산·광주·대전·대구 등 5곳이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아플 경우 위탁병원을 이용한다. 그런데 보훈병원과 같은 수준의 감면 혜택은 75세 이상이라야 받을 수 있다. 그 이하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훈병원이 없는 곳에 사는 참전 유공자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돈이 아까우면 보훈병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진료를 받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전 여부가 지역이나 나이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면 보훈 혜택 또한 다를 이유가 없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참전유공자는 한국전 참전유공자 14만 5000여명, 월남전 참전 13만 3000여명 등 모두 27만 8000여명에 이른다. 한국전 참전 유공자들의 경우,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으로 해마다 1만명 정도 줄어드는 추세다. 국가보훈처는 인천에 보훈병원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올해 중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도권에도 보훈병원이 필요하다는 유공자들의 오랜 요청에 따른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훈병원 추가 설치뿐만 아니라 위탁병원에서 제공하는 질병별 감면 혜택 수준을 올리는 정책도 함께 추진하기 바란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근거해 보훈처와 별개로 제각각 지급하는 참전 명예수당에 대해서도 지원기준의 통일을 요청하기보다는 보훈 대상자는 나라에서 모두 책임진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품격 있는 국가다. 보훈 대상자를 단순한 원호 내지 구호대상자가 아닌 ‘명예로운 인물’로 예우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진정한 국민통합도 이뤄질 것이다. 차제에 차관급 부처로 돼 있는 보훈처의 위상을 제고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참전유공자 명예수당 月 12만원→15만원

    참전유공자에게 지급되는 참전명예수당이 오는 15일부터 매월 3만원씩 오르고, 독립유공자 등에 대한 각종 보상금과 수당도 각각 4%가량씩 인상된다. 정부는 8일 세종로 서울청사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참전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령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령안은 65세 이상의 참전유공자에게 매달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을 12만원에서 15만원으로 올렸다. 또 독립유공자와 유족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을 4% 인상하는 독립유공자예우법 시행령 개정령안도 심의·의결했다. 4·19혁명 공로자에 대한 보상금을 새로 만들어 다달이 15만원을 지급하고, 국가유공자 보상금과 6·25전몰군경자녀수당을 각각 4% 인상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법 시행령 개정령안도 처리했다. 고엽제후유증 환자와 고엽제후유증 2세 환자에게 지급하는 수당도 각각 4% 인상하는 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법 시행령 개정령안도 통과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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