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전용사
    2026-01-28
    검색기록 지우기
  • 무역 협정
    2026-01-28
    검색기록 지우기
  • 외교부
    2026-01-28
    검색기록 지우기
  • 장난감
    2026-01-28
    검색기록 지우기
  • 연료전지
    2026-01-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47
  • 美 정계서 立身한 자랑스런 코리안/孫薰(해외기고)

    ◎성실·정직·실력으로 무장/미 정치문화 원리 철저 체득/한인들 권익신장 토대 마련/양국 유대관계 증진 큰 기대 지난 11월3일 미 중간선거에서 60대 한국계 노신사 신호범(미국명 폴 신) 박사가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내에서도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인 시애틀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넘어 당선됐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신박사는 6개월간 2만7,000가구의 지역구내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선거구민과 악수하는 등 풀뿌리 정치에 심혈을 기울였다.자신이 한국전쟁의 고아였다고 말문을 연 그는 어린 나이인 50년대 미국에 입양돼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피부색깔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대를 기초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현재 워싱턴,오리건,아이다호,몬태나주 등 서북미 4개주에는 재미동포 1.5세,2세 정치인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2선 의원이자 20억달러에 달하는 시예산을 다루는 예산위원장인 마사 최 시애틀 시의원,보잉사 엔지니어면서 75%의 압도적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이승영 쇼라인 시의원 등 한인출신 정치인들이 미국 본류사회에 파고들어 재선을 거듭하면서 내일의 유망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또 미 본류사회에서의 한인 권익신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참여할 2,3세 예비 정치후보자군이 성장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곳 정치문화에 순응해야 한다.정직과 공정을 생명으로 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그대로 적용되는 미국선거와 정치에서 정치인으로 입신하기 위해선 이러한 원리를 철저하게 체득하는 게 선결과제다. 신의원의 승리는 이러한 명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결과다.성실과 정직,겸손과 실력,그리고 전문성과 용기에 더해 유창한 영어로 무장하고 선거자금과 관련한 선거법의 철저한 준수가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신의원의 당선은 그가 최근 몇년간 연방하원,주·부지사 선거에서 연속 패배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의원의 탄생으로 서북미 한인동포들은 크게 고무돼 있고 어려운 이민생활과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본류사회에의 정치적 참여를 기초로 한 동포사회의 발전은 우리 정부의 주요한 동포사회정책 목표의 하나기도 하다.동포의 권익보호 및 증진 등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선 한국계 정치인의 활발한 미 의회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의원이 혈맹으로서 한국과 미국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서북미지역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특히 워싱턴주는 미국내 한국전 참전용사가 가장 많은 주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다.워싱턴주에게 있어 한국은 제4의 교역대상국으로 상호 통상규모가 연 70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한국의 대미 총수출의 약 10%가 이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와같은 워싱턴주와 한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 제반분야에서의 한국과 워싱턴주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한 신의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게리 락 워싱턴주지사는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전북 柳鍾根 지사의 초청으로 내년중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신의원은이 방문에 동행,한국과 워싱턴주간의 통상교류 증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 ‘병역비리’ 공방속 ‘9형제 복무’ 화제/국감 이모저모

    ◎환란 책임문제 싸고 진통/서울시 감사 2시간여 늦어져 국회 국정감사 열이틀째인 3일에도 여야 의원들과 피감기관 사이에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계속됐다. ▷병무청◁ ○…국방위의 병무청에 대한 국감에서는 병역비리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전이 벌어졌다. 적잖은 상류층 인사들이 병역기피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군 복무기간을 합치면 81년이나 되는 9형제 얘기가 으뜸 화제로 부각됐다. 현재 소령으로 복무중인 막내 南相馝씨(41)와 여덟명의 형들이 그 주인공. 장남 相赫씨(73·일등중사 예편)등 3명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2남 相起씨는 50년 임진강 전선에서 일등병으로 전사했다. 8남 相喆씨(중사 예편)는 해병대 출신으로 2년간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조부도 1882년 임오군란 당시 正衛(현재 대위)계급을 단 군인이라는 설명이다. 국민회의 林福鎭 의원은 이날 “참 군인을 많이 발굴해내 모범병역상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 ○…행정자치위의 서울시 감사에서는 전날 경기도 감사에서 논란을 빚은 ‘환란 책임문제’와 ‘DJ비자금 조성 조작유포’ 문제를 둘러싸고 무려 2시간20분 늦게 시작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한나라당측은 이날 林昌烈 경기도지사를 지목,국가 환란의 책임문제를 또다시 거론했다. 이에 秋美愛 의원이 “李會昌 총재가 있는 한나라당 姜모의원 등이 환란 책임을 호도하기 위해 DJ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맞받아쳤다. 한나라당측은 李총재 모독에 대한 사과와 속기록 삭제가 안되면 감사를 거부하겠다고 버티다 간사간 격론 끝에 ‘환란주범’ ‘DJ 비자금조성 조작유포’란 단어를 속기록에서 삭제키로 하고 감사에 들어갔다.
  • 내일 국군의 날 民·軍 도심 행진

    ◎오늘∼10월2일 수도권 교통 부분통제 제5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10월 1일 3부 요인과 군 관계자,참전용사 등 3만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남서울공항과 서울시내에서 열린다.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치러지는 행사에서는 서울공항 기념식에 이어 민·군이 함께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도심에서 실시된다. 군 당국은 이에 따라 “30일부터 10월 2일 사이 서울과 경기 일원에서 부분적으로 교통이 통제된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전쟁기념관은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리는 1일 하루동안 임시휴관한다.
  • 건군 50주년 국군의 날/‘民·軍 한마음’ 시가행진 거행

    ◎4년만에 도보·기계화부대 도심행렬 선봬/‘호국의 불’ 점화·특수비행 시범 등 행사 다채 제50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가 오는 10월1일 3부 요인 및 군 관계자,참전용사,시민 등 3만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과 서울시내에서 거행된다. 건국 50주년을 맞아 ‘조국과 함께 국민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치러지는 이번 행사에서는 서울공항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이어 민·군이 함께 참여하는 시가행진이 94년 이후 4년만에 서울시내에서 펼쳐진다. 기념식은 오전 10시부터 2시간여동안 서울공항 행사장에서 군 취타대 및의 장대 고적대의 식전행사에 이어 특전부대 집단강하,호국의 불 점화,민·군행진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호국의 불’은 건군 이후 처음으로 화랑도 정신의 본산인 경주 통일전에서 오는 26일 채화돼 6일간 전국 각지의 군부대와 전적지를 돈 뒤 식장에 도착,점화된다. 공군 특수비행팀인 블랙이글은 F­16,F­5 전투기 6대로 편대를 이루어 건국50주년을 상징하는 특수 비행시범을 선보인다. 이어 오후 2시∼5시30분남대문과 광화문 등 시내 일원에서는 도보 및 기계화부대의 행진 및 ‘전국 16개 시·도 행진’,각계각층 시민 1만여명이 참여하는 ‘제2건국을 위한 국민과 국군의 한마음 대행진’ 등 시가행진이 동시에 열린다.
  • CNN 오보 사과/美軍 신경가스 살포 보도

    ◎조사 결과 “증거 불충분” 【워싱턴 AP AFP 연합】 미국의 세계적인 케이블 뉴스방송 CNN이 2일 지난달 방영된 ‘미군의 독가스 사린 사용’과 관련한 보도를 전면취소하는 사과방송을 내보내 그동안 수많은 특종과 신속보도로 쌓은 명성에 먹칠했다. CNN은 지난달 7일 미군이 지난 70년 베트남전쟁 기간중 라오스에 수용된 미군 탈영병들을 제거하기 위해 치명적인 신경가스를 투하했다는 보도를 특종보도했었다. 하지만 방송후 미국방부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로부터 보도내용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CNN은 최근 자체조사를 벌였으며 그 결과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 국군포로 송환 촉구/어제 ‘6·25’48주년/전국서 행사 잇따라

    6·25 48돌인 2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5,000여명의 유가족들과 참배객들의 찾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넋을 기렸다. 대한재향군인회(회장 張泰玩) 소속 참전용사 2,000여명은 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하고 호국종을 48번 울렸다.재향군인회는 이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金鍾泌 총리서리 등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군포로 송환촉구 범국민대회’도 열었다. 300여명의 원불교 신도들도 현충원 무명용사탑에서 합동위령제를 가졌다. 전국연합(상임의장 李昌馥)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 기원제’를 개최하고 명동성당까지 촛불을 들고 행진했다.
  • 순국영령 추모 진혼예술제/내일 현충원 참전용사묘역

    순국영령을 추모하는 진혼예술제 ‘우리들의 슬픈 얘기’가 25일 하오 6시30분 서울 동작동 현충원 참전용사묘역에서 펼쳐진다. 6·25의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호국정신에 대한 자성을 새롭게 하기위해 ‘비목마을 사람들’ 주최로 열리는 이번 예술제에는 문화계 인사와 보훈가족,실향민이 참가한다. ‘비목마을 사람들’은 시인 신경림,가곡 ‘비목’의 작사자이자 국립국악원장 한명희,방송인 황인용씨를 공동대표로 지난 96년부터 일명 ‘비목의 계곡’으로 불리는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에서 문화제를 갖고 순국영령 추모제를 개최해온 단체. 이번 예술제에는 6·25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참가인원을 625명으로 제한했으며 이들이 하얀 광목으로 띠를 이뤄 장관을 연출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이애주씨의 진혼춤이 공연되고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와 추모가,소프라노 박미혜씨의 ‘비목’ ‘기다리는 마음’이 이어진다.또 남유소화백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김대환(타악기),최선배(트럼펫) 강은일씨(해금)의즉흥 연주도 곁들여진다.580­3000.
  • 6·25 용사에‘작은 보훈’/3년째 안경 무료제공 해온 邊永玉씨

    ◎잊혀져 가는 6·25 현실 안타까워…/해마다 국립묘지 찾아 호국영령 기리기도 “각박한 세태속에서 잊혀져 가는 6·25 참전용사들에게 작은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서울 명동 세일콘택트 안경원 邊永玉 사장(43).邊사장은 이제는 노인이 된 6·25 참전용사들에게 3년째 노안용 돋보기를 무료로 기증해 오고 있다. 올해도 보훈의 달 첫날인 지난 1일부터 참전용사들에게 돋보기를 선사하고 있다.7월말까지 2,000명에게 줄 계획이다.재향군인회에 보낸 교환 쿠폰을 갖고 안경점을 찾는 사람은 하루 20∼30명.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안경원은 할아버지 참전용사들로 유난히 북적댔다. 邊사장은 군복무중 사고로 숨진 조카의 무덤을 돌보기 위해 해마다 국립묘지를 찾으면서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노안용 돋보기를 무료로 기증하기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邊사장은 “참전용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정작 안타까워하는 것은 물질적 도움이 아니라 6·25의 의미가 잊혀져 가는 현실임을 알게 됐다”면서 “작은정성이지만 우리 사회가 일흔살 안팎의 고령이 된 ‘백발의 용사’들에 대해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보훈의 달’ 6월 곳곳 추념 행사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1일 상오 7시30분 서울 63빌딩에서 열리는 국가유공자 조찬기도회를 시작으로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국가유공자 등을 위무·격려하는 행사가 한달동안 다양하게 개최된다. 제43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문 앞 광장에서는 3부 요인 및 각계 대표,전물 군경유족,학생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념식이 거행된다. 25일에는 서울 올림픽 제2체육관에서 유엔참전용사 205명 등 1만여명이 참가하는 6·25기념행사가 열린다. 또 정부 포상 등 국가유공자 포상,국군 모범용사 초청·위로(22일·서울신문사 주최),8천여명의 신규 국가유공자에 대한 증서 수여,6·25 및 월남 참전용사에 대한 ‘참전용사 증서’ 수여,6·25참전비 순례,범국민 호국안보 강연회,백일장 및 사진 전시회 등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 제2회 참전수기­호국문예작품 공모/서울신문사­보훈처 주관

    ◎중고등부 최우수상­황치영(시) 박소희(수필)/초등부­이미현(시) 최지숙(수필)/일반부­김충규(시) 한동철(수필)/참전수기­이종학/1,206편 응모… 당선작 35편 선정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2회 참전 수기 및 호국 문예 작품 공모에서 이미현양(경남 양산시 평산초등 4년)이 출품한 ‘그분들이 주신 숙제’가 초등부 시 부문 최우작으로 뽑혔다.당선작은 모두 35편이다. 초등부 수필 부문 최우수상은 최지숙양(서울 거여초등 6년)이 선정됐다. 중·고등부 시 부문 최우수상은 황치영군(청주 용암중 3년),수필 부문 최우수상은 박소희양(경기 하남시 남한고 2년)에게 돌아갔다. 일부부 시 부문 최우수상은 김충규씨(경기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3동 156),수필 부문은 한동철씨(서울 구로구 개봉2동 470)가 뽑혔다. 참전용사 부문에서는 이종학씨(서울 강남구 역삼동 636)가 선정됐다. 응모 작품은 모두 1,206편이었다. 입상자에게는 상패와 10만∼1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6월1일 하오 3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 日王 英 국민에 “깊은 아픔 통감”/공식방문 첫날

    ◎英 참전용사들 거센 항의시위 【런던 AFP DPA 연합】 영국을 방문중인 일본의 아키히토(明仁) 국왕은 26일 2차대전 당시 영국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日王)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이날 버킹엄궁에서 베푼 만찬에서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사람이 겪은 갖가지의 고통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전쟁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손상을 입은 것은 나에게 진정으로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아키히토는 또 “전쟁의 상처를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은 깊은 슬픔과 아픔으로 차오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 영국군 참전용사들은 이같은 아키히토의 유감 표명을 충분치 못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헌법상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아키히토 왕은 1만명의 영국군 참전용사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편 아키히토의 영국 공식방문은 첫날인 26일부터 거센 항의 시위를 겪는등 수난으로 얼룩졌다.
  • 도쿄 국제기독대학 로저 버클리 교수 IHT 공동 기고(해외논단)

    ◎英·日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을 영국 정부가 공식 방문중인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크게 반기고 있지만 영국 국민들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2차 대전중 일본군의 포로였던 이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도쿄 국제기독대학의 역사 교수인 로저 버클리씨와 영국 BBC방송의 유럽전문가 윌리암 호슬레이씨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과거청산이 있어야만 양국 미래를 위한 경제협력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다음은 기고문의 요약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최근 영국 경제에 대한 일본의 공헌도를 강조하며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함께 공조해나갈 것을 역설했다. 하지만 영국에 일본의 공장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잇는 살인적인 철도 공사현장이나 싱가포르의 창이 감옥에서 저질러진 일본의 만행을 잊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왕의 방문은 영국민들에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함께 또다른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재향군인회의 한 간부는 영국 왕실이 최고 명예작위를 아키히토 일왕에게 수여하는 것은 당시 참전용사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의 영국군 참전용사그룹은 전쟁에서 입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협정으로 일단락된 정부 차원의 보상책을 거부하며 가해국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당하게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협정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일시불로 76파운드(약 17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마무리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보상책은 악몽과도 같은 전쟁의 상처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모욕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 아키히토 일왕의 영국 방문에 강도높게 항의하고 있는 영국의 재향군인회와 유가족,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좀더 책임있는 태도를 원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서 불성실하고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던 터다. 향후 다각도의 경제협력을 모색중인 일본과 영국 정부는 좀더 전체적인 협력체제의 모양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정부간의 경제적 이해에 앞서 먼저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을 막고 있는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하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전쟁희생 당사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한 해결책으로 최근 독일과 체코 정부가 조성한 ‘화해기금’의 사례를 검토해 볼 수 있다.독일과 체코 정부는 이 기금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체코 상이군인들의 노후생활을 지원키로 했다. 영국과 일본이 이같은 조치들을 함께 실행해 갈 수 있을 때 두 나라 역시 진정으로 아픈 과거사를 묻고 미래를 위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국군의 발자취(대한민국 50년:15)

    ◎軍 정치적 중립 5·16구데타로 무너져/65년 월남 파병 계기로 환골탈태/軍장비 현대화­전투력 강화 한몫/6·25 직전 10만서 69만 大軍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대한민국 국군의 총병력은 10만5천여명이었다.이 가운데 지상군이 9만6천여명,해군 7천여명,공군 2천명가량이다.참고로 북한 인민군은 총 19만8천명 규모였다. 국군은 6·25를 거치면서 미국의 원조와 지원 아래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다.전쟁중에는 최고 80만에 이르기도 했지만 종전 무렵에는 60만 대군으로 자리잡았다.게다가 사회 각 부문의 성장이 더딘 상태에서 군은 미국식 교육·관리제도를 도입,운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조직이 되었다. ○李承晩의 정치이용 거부 그러나 덩치가 커지긴 했어도 군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했다.제1공화국 시절 李承晩 대통령은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보완하고 집권을 연장하는 도구로 군을 이용하려 했다.이에 따라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하고 부정선거를 강요했으며,정치자금 조달을 요구하기도 했다. 갓 독립한신생국가에서,4억달러쯤에 이르는 미국의 군사원조와 국가예산의 40%가량을 이용하는 군만큼 재정능력이 풍부한 집단은 없었다.따라서 정치권으로서는 군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유당 정부 때의 군이 일방적으로 정치에 끌려다닌 것만은 아니다.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 정치파동’ 당시 이종찬 장군은 육군훈령을 내려 군의 정치개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60년 4·19가 일어났을때도 군은 질서유지에만 나섰을뿐 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던 군의 자세는 5·16군사쿠데타가 터지면서 일시에 무너진다.인사문제를 비롯한 군 내부의 부정부패가 누적되고 정치불안이 야기한 사회혼란이 이어지자 이를 빌미삼아 朴正熙 소장과 일부 영관급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5·16은 朴正熙 집권 18년에 이어 全斗煥·盧泰愚로 연장되는 군사정권 시대의 출발점이 됐다.이 기간 군출신 정치세력은 특유의 기획력과 추진력으로 일정부분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민주주의 발전은 억압됐고 인권탄압이 공공연히 자행됐다.국민의 군대여야 할 군은 국민에게 사랑받기 보다는 경원의 대상이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특히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은 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한편 대한민국 국군은 월남파병을 거치면서 다시 한번 환골탈태한다.1965년 1월8일 朴正熙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월남에 국군 2천명을 파견하기로 결의했다.다음달 24일 비둘기부대장병 583명이 첫 전투부대로 파병됐다.이에앞서 64년 9월11일에는 의료진과 태권도 사범 164명이 부산항을 떠나 열하룻만에 월남 사이공(현 호지명시)에 도착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은 1961년 11월 朴正熙 당시 최고회의 의장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 처음 논의됐다.파병의 명분은 ▲한미 양국은 자유우방으로서 아시아의 집단안보에 공동책임이 있고 ▲월남의 안전은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며 ▲한국으로서는 6·25때 우방 16개국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제 빚을 되갚아야 한다는것 등이었다. ○8년간 31만2천명 파병 하지만 파병이 쉽게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우리 정부로서는 파병에 따른 제반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얻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한미간의 줄다리기는 월남전 내내 계속됐고,이같은 상황은 65년 5월17일 미국에서 열린 朴正熙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후의 사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여하튼 65년 6월14일 월남공화국 수상이 우리 정부에 1개 전투사단 지원을 공식요청한 것을 계기로 국군의 월남 참전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그해 10월16일 첫 전투사단인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났고 이어 백마부대·백구부대·청룡부대가 속속 파병대열에 합류했다. 1973년 3월23일 마지막 부대가 귀국하기까지 8년동안 대한민국 국군은 모두 31만2천여명을 월남에 파견했다.그땅에서 국군은 대대급 이상 작전만 1천100회를 실행했고,민간지원 사업으로는 3천500여채의 건물을 지어주고 1천700㎞의 길을 닦아주는 노력을 기울였다. 월남파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종적으로 내리긴 아직 이르지만 국군장비 현대화와 전투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만 따질 때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아울러 국군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한몫을 했다. 최근 국군은 UN평화유지활동(PKO)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93년 7월 소말리아에 공병대대를 파견한 것을 시발로 그동안 앙골라,서부사하라,인도·파키스탄,그루지아 등지의 분쟁지역에서 평화유지군 활동을 벌였으며 이에 따른 국제사회는 그 증거라 할 만하다. 6공화국에서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했다.이어 문민정부는 하나회 조직을 정비하는 등 군의 정치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군도 국방백서를 발간,군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군내 민주화를 이루고자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는 등 국민의 군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지상군 56만,해군 6만7천,공군 6만3천 등 총 69만병력에 이른다.이에 견줘 북한군 규모는 1백14만7천명이다. ◎朴正熙­존슨 대통령 65년 월남 파병 담판/“전투병력 추가 파병 안하면 주한美軍월남으로 빼겠다”/“對韓 경제원조 확대 한국 군장비 현대화 해달라” 65년 5월 미국에서 만난 朴正熙 대통령과 존슨 미국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확인한 뒤 동아시아 안보에 관해 깊이있는 논의를 나누었다.그러나 실질적인 초점은 단연 한국군의 월남 증파 건에 맞춰졌다. 존슨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한국군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이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미상호방위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역설했다.이때는 한국이 전투부대로 비둘기부대 2천명을 파견한 정도였기 때문에 존슨의 치하처럼 월남에서 큰몫을 담당하지 못한 상태였다.존슨의 언사는 결국 한미상호방위에 더욱 관심을 가질테니 한국도 월남에 병력을 더 많이 보내라는 정치적 요구에 다름아니었다.이 자리에서 존슨은,한국이 병력 파견을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월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암시도 함께 했다. 두 정상은 이 만남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원조와 한국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군사원조를 늘이기로 합의했다.또 주월한국군 유지비용의 인상과 주한미군 유지 약속 등에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음해 3월7일 브라운 주한 미대사는 국군의 월남 추가파병에 따른 미국측 보상조치를 약속한 14항목의 문서를 한국정부에 전달했다.주요 내용은 ▲추가파병 비용은 미국이 부담 ▲한국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 사단의 장비 현대화 ▲월남 재건 및 구호사업에 한국업체 참가 ▲미국의 차관·군사원조 계속 및 신규차관 제공 등이다. 이 각서이후 곧바로 국군은 2만여명을 월남으로 보냈고,월남전이 끝날 때까지의 병력 31만여명은 월남전 참전국 가운데 미군에 이은 두번째 규모 였다.또 민간업체의 월남에 대한 수출액 할당도 연 6천만달러로 늘어났으며 건설사업 등에의 참여도 활발해져 우리 사회는 ‘월남특수’를 노렸다.그러나 월남에서 숱한 한국청년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하였다든지,참전용사와 그 자녀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일따위는 월남파병에 따른 손실이기도 하다.
  • 역경 이긴 반세기…한국혼 다시 일깨운다/정부수립50주년 기념사업

    ◎‘경제50년사’ 등 백서 발간… 고난 극복의 역사 재조명/창작극 ‘대한국 창조’ 순회공연… 국민축제 행사 다양/21세기 걸맞는 정책 수립… 학술대회 통해 비전 제시/‘겨레의 노래’ 재정·보급 등 나라사랑운동 지속 전개 98년은 정부 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반세기동안의 발전과 우여곡절을 되돌아보는 한 해이면서 동시에 21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정부의 회갑’을 맞아 알뜰하고 다양한 기념사업 계획을 범정부적으로 추진중이다.특히 광복 50주년 행사를 이미 3년전 치른 만큼 내실있는 행사 위주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연중 기념사업을 펼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오는 8월15일에 행사가 절정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 수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미 지난해 말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 강영훈 전 총리)를 구성,사업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또 기념사업위원회 산하에는 정부 14개 부처 관계자들과 국회·법원 등 범정부적으로기념사업실무위원회(위원장 우근민 총무처 차관)가 구성돼 기념사업 계획의 수립·추진 및 조정작업을 맡고 있다.이와 함께 기획추진반(반장 최석충 총무처의정국장)이 구성돼 부처별 추진계획을 종합지원하고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각 분야별 기념사업 계획안은 다음과 같다. ▷정부수립의 의의 부각◁ ▲세미나 개최=서울 뿐 아니라 미국·캐나다·프랑스·독일 등의 지역을 순회하는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정부수립의 의의를 재조명한다.통계숫자로 사회변화를 알아보는 통계세미나를 개최한다. ▲독립운동 사료집 발간=해외에서 전개된 각종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문헌을 발굴,보급한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개관=애국지사들의 영혼이 서려있는 서대문 형무소를 역사관으로 꾸며 선열들의 옥중 수감생활과 모습을 재현해 청소년들과 후세들을 위한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한다. ▷역사·기록의 재정리◁ ▲정부 백서 발간=‘교육 50년사’로 교육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등 각 부처별로 백서를 발간해 반세기를 정리한다. ▲‘정부조직 변천사’ 발간=확장과 축소를 거듭하면서 50년동안 우여곡절을 겪어온 정부 조직 변천의 모습과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또 ‘한국지방행정 50년사’를 발간해 지방행정의 변화상을 알아본다. ▲기념 영상물 제작=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룩한 과정을 영상물로 제작하고 사진과 그림 등을 통한 화보집을 발간한다. ▲기념전시회=기록으로 우리나라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국가기록물을 전시한다.또 정부수립 이후 발간된 문헌과 자료 가운데 현존하면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한다. ▷정부수립 유공자 발굴◁ ▲유공자 발굴=아직도 가려있는 정부수립 유공자를 찾아내 훈·포장을 하고 생존 애국지사와 제헌의원 및 초대 각료들을 위문해 격려행사를 갖는다. ▲유엔 참전용사 초청=생존해 있는 유엔참전용사들의 방한을 초청해 격려하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를 갖는다. ▷국민과 함께하는 행사◁ ▲8·15 경축식=국민 각계 각층이 참석하고 정부수립 유공 외국인 및 재외교민을 초청해 국가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도록 한다.동대문 운동장에서 광화문 사이에서 길놀이 행사를 갖고 국민적인 축제행사로 승화시킨다. ▲문화행사=종합가무극을 열고 표어 및 포스터를 공모해 국민의 참여의식을 높인다.또 지난 반세기동안의 생활용품을 전시한다.한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한국의 발전과 역동적인 모습을 세계에 소개하는 영상자료를 제작한다. 서울미술제를 개최해 공예대전,서예대전,사진대전,미술대전,도시와 영상전 등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갖는다. 특히 충청북도는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의 변화과정을 연극으로 만는 창작극 ‘대한국 창조’를 전국 순회공연할 계획이다.이와함께 봉화올리기 행사를 재현해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한다. ▲국가상징물의 선양=태극기 거리를 조성하고 건물에는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등 태극기 사랑운동을 전개한다.나라꽃인무궁화 사랑하기 운동을 펼쳐 무궁화 분재·사진전시회·글짓기대회를 개최한다. 또 무궁화를 널리 선양한 남궁억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한다.이와함께 나라사랑하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겨레의 노래­응원가’를 제정해 보급한다. ▲건군행사=건군 50주년을 맞아 국민과 군의 안보 공감대 형성을 위한 건군 행사를 갖는다.군부대를 공개하고 안보현장에 대한 견학 기회를 넓혀 국민과 함께하는 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회개원 행사=국회내에 헌정기념관을 세워 헌정에 관련되는 영상물과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대한민국 국회 50년사를 발간한다. ▷새시대를 미래상 정립◁ ▲21세기 정부의 비전 제시=지난 50년을 새롭게 조명하는 과거지향적인 행사와 함께 미래지향적인 정부의 미래상을 정립한다.이를 위해 앞으로 지향해야 할 정부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고 부처별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 ▲학술대회 개최=21세기에 걸맞는 정부 미래상의 의견수렴을 위해 종합학술대회인 ‘21세기 정부의과제와 전망’을 개최한다.학술대회는 정치·행정·경제·사회 등의 분야별로 개최한다.통일에 대비한 해양정책토론회와 태평양 해양과학기술회의를 개최해 해양국가로의 잠재력을 높인다. ▷연중 추진계획◁ ▲1월 기념사업 공식 휘장 선정·보급 ▲2월 기념사업 표어 및 홍보 ▲3월 대한민국 정부50주년 기념사업 세부추진계획 확정 ▲4월 부처 및 단체별 세부추진계획 시행 착수 ▲5월 국회개원 50주년기념 관련행사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의 달 선포 ▲8월15일 정부수립 50주년 중앙경축식 ▲10월 건군 50주년 행사 ▲12월 기념사업 평가 및 정리,결과 보고서 채택 ◎정부조직 개편사/‘11부4처’로 출발… 40차례 변화/50년대 부흥부 전후부흥·경제정책 기획 조정/5·16뒤 경제기획원 신설… 수출드라이브 주도 대한민국 정부 50주년 역사는 정부조직 개편에서 찾을 수 있다.정부조직은 시대 변화와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48년 8월15일 11부4처로 출발한 ‘미니 정부’는그동안 40여차례에 걸쳐 변화를 거듭했다. 광복과 6·25를 겪은 50년대에는 체제형성 및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총리제의 폐지로 대통령중심의 체제정비와 3차례의 조직개편을 통해 전쟁 이후 부흥과 경제정책을 종합적으로 기획·조정하는 기구로 부흥부가 신설됐다. 60년 제2공화국 출범으로 행정권이 국무원에 소속되면서 정부조직은 또다시 개편을 맞았다.3·15 부정선거를 겪은 직후여서 경찰의 중립 확보를 위해 공안위원회가 구성됐고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감찰위원회가 부활됐다. 5·16 이후에는 경제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조직의 근간이 바뀌었다.부흥부(건설부로 바뀜)가 건설부로 바뀌면서 산업정책기능과 산하 산업개발위원회를 통합한 경제기획원이 탄생했다.공보처와 중앙경제위원회 등이 신설됐다. 60·70년대에는 늘어나는 민원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청 단위의 행정단위가 급격히 늘어난 점이 특징이다.노동·철도·검찰청(63년),국세·수산·산림청(66년),관세·병무청(70년),항만청(75년),특허청(76년) 등으로 행정조직은 확대됐다.또 77년에는 동력자원부가 신설됐고 환경문제가 증가됨에 따라 79년에는 환경청이 새로 생겼다. 70년대 말에 들어서자 경제규모의 급격한 확대와 산업구조의 다변화로 거대한 정부조직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이에따라 81년 정의사회 구현과 복지사회 건설을 기치로 내건 출범한 5공화국은 행정개혁을 통해 과감한 중앙행정부처의 부서 통합과 인원감축을 단행했다.공무원 숫자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신설된 부처는 올림픽 개최 결정으로 인한 체육부 정도에 불과했다. 88년 출범한 6공화국 역시 ‘작은 정부’ 정책을 유지했다.환경청이 환경처로,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89년) 바뀌었다.문민정부 들어서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해 군살빼기가 계속됐다.집권초기인 93년3월 문화부와 청소년체육부가 문화체육부로,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상공자원부로 각각 통합됐다. 대대적인 정부조직 개편은 행정쇄신위원회가 1년10개월 작업한 끝에 이뤄졌다.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재정경제원으로 거대화됐으며 이 과정에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건설부과 교통부가 건설교통부로 합쳐졌으며 상공자원부가 통상산업부로,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환경처가 환경부로 바뀌었다. 새정부의 출범과 함께 비대해진 경제기획원이 최근의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또다시 정부조직에 또다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정부조직이 어떤 형태로 짜여질지 주목된다.
  • 한국 금융안정 협력 합의/한·일 정상회담/4자회담 공조 재확인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2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밴쿠버 포시즌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서로 협력키로 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한국의 금융위기 상황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설명한 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에 일본정부가 주도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하시모토 총리는 “한국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며 한국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IMF가 결정할 지원의 틀내에서 가능한 협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4자회담 본회담이 12월9일 제네바에서 열리는데 대해 환영의 뜻을 표명한 뒤 회담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거둘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는 한편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3국이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어 김대통령은 웨스틴 베이쇼어 호텔에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4자회담 본회담 개최에 따른 양국간 협력방안을 논의했으며 어업협정 및 총영사관 개설 문제 등 현안에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4일 상오 숙소인 쉐라톤 월 센터 호텔에서 캐나다한국전참전용사회 태평양 지역회장인 에드워드 그란트씨 등 참전용사 18명을 접견하고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캐나다와는 한국의 문제를 공동으로 논의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가 됐다”며 양국간 우의를 강조한 뒤 “지금도 우리는 캐나다 젊은이들이 한반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워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 APEC 정상회의 여로

    ◎“금융위기 전염병 한국서 끝내야”/“우리 경제실상 적극 홍보” 대표단 회견/김 대통령,한국전 참전용사 접견 격려 김영삼 대통령은 밴쿠버 도착 이틀째를 맞아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접견한데 이어 2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에는 한·일,한·중 정상회담을 잇따라 갖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지사 접견=김대통령은 24일 상오 숙소인 쉐라톤 월센터 호텔에서 글렌 클라크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지사를 만나 한국과B·C주 사이의 협력관계 증진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대통령은 “이곳에 우리 동포가 3만5천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모범시민으로 정착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별히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클라크지사는 이에 대해 “한국 교민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내 지지자”라며 “대통령 각하와 사진만 찍어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한국전 참전용사 접견=이에앞서 김대통령은 캐나다의 한국전 참전용사회 태평양지역회 회장인 에드워드 그란트씨등 한국전 참전용사 18명을 만나 격려했다.김대통령은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당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각오하고 싸워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고인사했다. 김대통령은 이들 참전용사에게 단체표창장을 수여하고 용사회 깃발에 직접 수치를 달아주고 격려했으며 참전용사들도 나무로 깎아 모두가 서명한 기념품을 김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경제실상 홍보=정부대표단은 24일 하오 밴쿠버 무역센터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회견을 열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요청 배경과 우리경제 실상을 알리는 등 대외홍보활동에 나섰다. 25일에는 양수길 한국경제정책연구원장을 미 CNN의 대담프로에 출연시켜 외국 언론에 한국의 IMF자금 요청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노력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약 1시간동안 진행된 이날 외신기자회견에는 김기환 대외경제협력대사,양원장,그리고 허로중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이 참석했는데 동남아는 물론 미국 일본중국 호주 등 각국 외신기자 1백여명이 모습을 보여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김대사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면서 우리 경제가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6% 수준을 유지하고 경상수지 적자도 작년말의 2백40억달러에서 1백4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되는 등 기본적인 경제여건 자체는 매우 양호한 상태임을 강조했다.특히 김대사는 한국의 금융위기를 멕시코 태국 필리핀에 이어 발생한‘전염병’에 비유하면서 “이러한 전염병을 한국을 마지막으로 끝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더이상 다른 나라에 번지지 않도록 선진국들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삼성,콜롬비아 한국전 용사 자녀에 장학금

    ◎10만달러규모 재단 설립… 매년 2만불 지급 삼성그룹이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용사의 자녀들을 지원하기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최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공식 출범한 ‘한국전 참전용사 지원 장학재단 FCCS’는 10만달러의 기금으로 참전용사 자녀들에게 연간 2만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하게 된다. 삼성은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 재향군인회가 활동과 영향력에 비해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지 판매법인의 보고에 따라 장학재단을 세우게 됐다”고 밝혔다.콜롬비아는 한국전 당시 중남미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4천500명의 병력을 파견,216명의 전사자를 냈으며 현재 생존자 2천∼3천명이 참전장교회와 참전용사회를 조직,매년 자체적으로 참전기념행사를 가져왔다. 한편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재향군인연맹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45년만에 한국을 찾은 콜롬비아의 카이세도 예비역 대령(한국전 참전장교회 회장)과 실바 예비역 상사(한국전 참전용사회 회장)는 삼성그룹을 방문,장학재단설립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 노벨평화상 지뢰금지운동과 대표 윌리엄스

    ◎“살상무기 추방” 국제조약 끌어내 국제지뢰금지운동(ICBL)과 그 지도자 조디 윌리엄스(미국·여)가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이들이 129 후보중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에 가장 부합하는 활동을 벌여왔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살상용 무기를 추방해달라는 노벨의 유지를 받들기라도 하듯 윌리엄스와 ICBL은 지난 6년간 대인지뢰의 완전한 추방을 목표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왔다. 그 결과 95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정 통상병기 사용금지·제한조약(지뢰금지 조약)’ 개정회의가 열리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스마트 지뢰’만을 사용토록 규정한 지뢰금지조약 개정(96년5월10일),미국의 대인지뢰 포기 선언(96년5월16일) 등을 속속 이끌어냈다. 업적이 두드러지면서 단체의 규모도 점차 확장됐다.91년 미국·독일의 지뢰금지 운동 단체가 합쳐지면서 탄생한 ICBL은 오늘날 55개국 1천여 각종 사회단체의 지지세를 바탕으로 9개의 운영위원회를 거느린 국제적 비정부기구(NGO)로 성장했다.미국에 기반을 둔 이 단체의 지도자 윌리엄스는 월남전 참전용사 미국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달 1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지뢰금지조약 회의 결과였다.90여개국이 모인 당시 회의에서는 대인지뢰의 완전금지를 규정한 조약 초안이 만들어졌다.이들이 쏟아온 노력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발생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사망사건도 이들이 평화상을 받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ICBL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다이애나가 죽음으로써 ICBL이 국제적인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상 위원회가 단순히 과거의 공적에 대한 평가만으로 상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과거 공적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들 말고도 26년간이나 위험한 지역에서 목숨 걸고 활약했으며 올해까지 5번이나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국경 없는 의사회’ 등 쟁쟁한 단체 및 개인이 많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가 이들을 선정한데는 지뢰금지를 향한 국제여론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ICBL과 윌리엄스의 평화상 수상은 오는 12월 시한까지 지뢰금지조약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는 미국·중국·인도 등에 대한 비난여론을 확산시키는 한편 한반도 지뢰문제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스 “한반도 지뢰금지 예외 불가” 금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의 책임자인 조디 윌리엄스(여)는 10일 “대인지뢰금지협정에서 한반도를 예외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윌리엄스는 미 버몬트주 푸트니소재 자신의 거처에서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연합통신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한반도 지뢰 문제에 대한 ICBL의 견해를 묻는 질문에 “종전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라고 지뢰금지협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주한미군 문제 등을 명분으로 한 클린턴 미 행정부의 예외 인정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연합〉
  • 한일·한영포럼 개막/양국협력·문화과학 교류 등 토론

    한국과 일본간의 우호협력 증진과 관계발전을 위한 제5차 한·일 포럼이 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막됐다. 양국의 정계 학계 언론계 재계인사 등 각 20명이 참석한 이 포럼은 이날 양측 회장인 배재식 서울대 명예교수와 오와다 히사시 주유엔대사의 개회사에 이어 ‘한국과 일본의 국내정세’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뒤 이날 하오 리셉션과 만찬을 가졌다.포럼 참가자들은 6일에는 청와대를 예방한뒤 쉐라톤워커힐호텔로 장소를 옮겨 ‘북한문제와 한일협력’ 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또 마지막날인 7일에는 ‘동북아정세와 한일 안보협력’ ‘한일협력의 새로운 차원’ ‘한일교류 증진방안’ 등을 주제로 토론을 한뒤 양국간 교류를 체계화하기 위해 한일교류추진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교류기금 조성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서울성명’을 채택할 예정이다. 포럼에는 한국측에서 이부영 민주당 의원,신동원 전 외무차관,나웅배 전 부총리,안병준 연세대교수,손주환 서울신문사장 등이,일본측에서는 아사오 시니치로 국제교류기금이사장,마치무라 노부다카 중의원의원,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한편 한국과 영국간 현안토의 및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민간차원의 한·영 미래포럼 5차회의도 이날 이틀간의 일정으로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개막됐다. 첫날 회의에서는 양국회장인 한승수 신한국당 의원과 앤서니 파랄 호클리 한국전 참전용사회 고문의 개회사에 이어 ‘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한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 ‘한국과 북아시아의 최근 개발’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6일에는 ‘한·영 양국 경제협력’ ‘교육,과학,문화교류’ 등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뒤 폐막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측에서 이홍구 전총리,강영훈 세종재단이사장 등 50여명이,영국측에서 존 모건 전주한 영국대사,존 스탠리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 중공군(외언내언)

    1950년 겨울은 참으로 혹독했다.그래서 미국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을 만나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으면 하나같이 “추운나라”라고 말한다.한국전쟁이 발발했던 50년 그해 겨울만이 아니라 전쟁이 계속됐던 51,52년 겨울도 매섭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참전용사들에게 또하나 잊혀지지 않는대목이 있다.중공군이다.추운 겨울밤 전선에서 잠시 눈을 붙일라치면 징을 치고 피리를 불어대며 개미떼처럼 중공군이 고지를 향해 달려들었다.죽여도 죽여도 밀려드는 인해전술앞에 미군은 물론 한국군도 진저리를 쳤던 것이다. 당시의 한국군중에 아직까지 피리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그들은 지금도 피리소리를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는 것이다.중공군이 얼마나 전근대적 전술을 구사했는지는 전사자 수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3년동안 중공군 전사자가 약90만명.북한군 전사자 52만명의 거의 두배,유엔군 전체전사자 9만5천800명(한국군 5만9천명 포함)의 9배를 넘는 희생자 숫자다. 중국인민해방군이 1일로 창군 70돌을 맞았다.북경 창군기념행사장에 나타난 중국군의 모습은 아주 산뜻해 보인다.50대 이상의 한국사람들에게 각인된(각인)된 중공군에 대한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아직도 중공군은 서구 선진국 군대에 비교되지는 않는다.병력수에서는 세계 최대지만 장비나 현대전의 전반적인 훈련도에서 처진다.그래서 중국에는 병력규모가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오는 2000년까지 병력수를 2백만(현재2백93만)으로 줄이는것이 급선무다. 대신 장비의 현대화에 주력하고 있다.핵무기에 미사일을 갖췄으나 전체적으로 중국군은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지금 성장하는 중국의 군사력에 적지않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중국군의 잠재력때문이다.중국이 열정적으로 추진중인 중국군현대화 계획이 2020년 일단 마무리됐을 때가 문제인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