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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어버린 정총리

    울어버린 정총리

    정홍원 국무총리는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관으로 6·25 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정 총리는 오찬에 앞서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인사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고 국무조정실이 전했다. 정 총리는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어렸던 시절이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고 되찾은 과정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국 수호에 바친 값진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참전 유공자의 예우와 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오찬에는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팔과 다리를 다친 박형수(83)씨, 영천지구 전투에서 적군의 탱크 3대를 폭파한 박재홍(83)씨 등 무공훈장 수상자 11명을 포함한 25명이 참석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美 국가보다 먼저 연주된 애국가… 심금 울린 미군 ‘아리랑’ 독창

    [정전협정 60년] 美 국가보다 먼저 연주된 애국가… 심금 울린 미군 ‘아리랑’ 독창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이 시작된 27일 오전 10시쯤(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국민의례를 위해 일어난 참석자들 중 한국인들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미국 국가에 앞서 한국 국가(애국가)가 먼저 연주됐기 때문이다. 군악대는 애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를 장엄하게 연주했고, 백발이 성성한 참전용사들은 두 국가가 연주되는 내내 거수경례로 답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한 이날 기념식은 시종일관 한국을 먼저 배려한 인상이었다. 국가 연주에 이어 군악대 병사 한 명이 한국인 못지않은 구슬픈 음색으로 아리랑을 독창해 심금을 울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모두에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첫 기념식 연설인 점을 의식한 듯 연설문 곳곳에 한반도 내 지명과 참전용사 사례를 촘촘히 집어넣는 등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묻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서 기념식 직전 식장 옆에 자리한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러 이동할 때도 한국 측 박근혜 대통령 특사인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 정승조 합참의장 등과 나란히 걷고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 미국 측 각료들은 그 뒤를 따르게 했다. 기념식은 샐리 주얼 미 내무장관의 환영사에 이어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과 한국 측 김정훈 특사, 정승조 합참의장, 미국 측 제임스 윈펠드 합참차장, 헤이글 국방장관의 기념사 순으로 진행됐다. 김정훈 특사는 “한국전은 결코 잊힌 전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식장 단상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전을 승리한 전쟁으로 명예회복 선언한 것에 걸맞게 ‘기억되는 영웅들’(Heroes remembered)이란 슬로건이 크게 걸려 있었다. 잊힌 영웅들을 60년 만에 ‘승리한 영웅들’로 되살려 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잡혀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정전 이후 풀려난 참전용사 보니타 스프링스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기념식에는 미국 측에서 행정부 요인들 외에 참전용사인 찰스 랭글(민주), 하워드 코블(공화)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는 안호영 주미대사와 박 대통령 특사단 일원인 백선엽 육군협회장,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또 한국과 미국의 참전용사와 가족, 희생자 유가족, 일반시민 등을 포함해 기념식 사상 최다 인원인 7000여명이 자리를 메웠다. 한국전 명예회복 운동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벌어졌다. 한국전쟁기념사업회(회장 피트 맥클로스키)는 금문교 인근 프리시디오 국립공원에 한국전쟁 기념탑을 2015년까지 건립하기 위해 이날 이곳에서 한동만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부지 헌정식을 가졌다. 맥클로스키 회장은 “기념탑을 세워 후대에도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27일 정전협정 60년] “한국, 수십년 흘러도 할아버지의 희생 가치 있게 여겨 감명”

    [27일 정전협정 60년] “한국, 수십년 흘러도 할아버지의 희생 가치 있게 여겨 감명”

    한국전 미국 참전 용사들의 후손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참전 용사의 손녀들이 정전 60주년을 이틀 앞둔 2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서울신문을 비롯한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합동 인터뷰를 가졌다. 이들은 재미 민간단체인 ‘한국전 참전 용사 디지털 기념관 재단’(이사장 한종우)이 26일 발족하는 ‘한국전 참전 용사 청년봉사단’에 참여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모인 젊은이들 중 일부였다. ■서맨사 프레이저(30·교사) 교과서에 너무 짧게 기술돼 제대로 알리는 데 힘쓰고 싶어 조지아주 체로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서맨사 프레이저는 인터뷰에서 미국 교과서에 한국전쟁이 너무 짤막하게 기술돼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참전 용사인 외할아버지 헤럴드 메이플스로부터 어려서부터 한국전에 대해 들어 왔다는 그녀는 “교과서에 2차 세계대전은 15~20쪽의 장(chapter)이 별도로 배정돼 있고 베트남전도 여러 쪽에 걸쳐 기술돼 있는 반면 한국전쟁은 두 단락이 전부”라고 했다. ‘미국은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북한이 침공해서 유엔과 함께 참전했고 나중에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후퇴했으며 결국에 가서는 정전과 함께 공산주의 확산도 멈췄다’는 내용 정도라는 것이다. 그녀는 “수업에서 2차 대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다 보니 한국전쟁 부분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을 짧게 알려주거나 소련,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식”이라며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한국전에 관심이 없고 질문을 안 한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전에 대해 증언해 줄 참전 용사들이 갈수록 연로해져서 마음이 급하다”면서 “앞으로 한국전이 제대로 알려지는 데 진력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링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데인 웨버(23·연구원) 팔다리 잃은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 갔을때 시민들 진심 반겨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데인 웨버는 미국 내 대표적인 참전 용사로 유명한 ‘한국전 미군 참전 용사 기념재단’의 윌리엄 웨버 회장의 손녀다. 그녀는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전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가 정전 이후 지금까지 한국전을 기념하는 데 진력을 다하는 모습은 내게 깊은 영감을 준다”면서 “내 인생 전체가 할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의 잘린 팔다리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철이 들면서 그것이 얼마나 할아버지에게 힘든 부분이었을지 생각하게 됐다”면서 “할아버지가 한국전에 몸을 바쳤다면 나는 시간을 바쳐서 현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한국전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2010년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몰랐다”면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시민들이 반가워하며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수십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할아버지의 희생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게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다. 알링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재클린 맥그레이스(19·대학생) 잿더미 속 경제발전 이룬 한국 할아버지 너무 자랑스러워해 웰즐리대학 1학년생인 재클린 맥그레이스는 외할아버지 앨빈 밸더스가 한국전 참전 용사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주한 미군 2사단에 근무한 데 이어 현재는 오빠가 주한 미군 2사단에 근무 중인 ‘3대 세습 주한 미군’ 집안이다. 그런데도 재클린은 올여름에야 난생 처음 할아버지로부터 한국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그녀는 “이번에 내가 ‘한국전 참전 용사 청년봉사단’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가 비로소 한국전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면서 “그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끔찍했던 전쟁의 참상을 차마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묻지도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참전 용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전에 대해 배운 것은 할아버지에게서가 아니라 학교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한국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기 시작한 건 내게 아주 뜻깊은 일”이라면서 “할아버지의 희생을 듣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전후 잿더미에서 지금은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룬 한국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알링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朴대통령 “뉴질랜드 참전용사 헌신 잊지 않을 것”

    朴대통령 “뉴질랜드 참전용사 헌신 잊지 않을 것”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비핵화 등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와 양국 간 교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비핵화 등 북한 문제 공조 방안,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을 놓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양 정상은 아울러 양국이 1962년 수교 이래 이어온 전통적 우호 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두 정상은 또 2009년 협상을 개시한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의 협상 진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박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국내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지난 5월 말과 지난달 초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아르만도 게부자 모잠비크 대통령과 연달아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세 번째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의 협력 동반자로서 전략적 가치가 크며 자원개발, 과학기술, 남극협력 및 영화 등 문화산업 분야에서 협력의 필요성이 상당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키 총리는 정전 60주년 기념행사 참석 등을 위해 100명에 달하는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키 총리에게 “정전 6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줘 대단히 감사하다”며 “뉴질랜드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가 있었고, 오늘의 한국도 가능했다”고 사의를 표했다. 뉴질랜드는 6·25 때 6000여명을 파병했으며 이 가운데 40여명이 숨졌다. 박 대통령은 이어 “한국 국민은 뉴질랜드 참전용사 여러분의 그런 헌신과 사랑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며 “내일 정전 6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한국 정부와 국민의 감사한 마음이 뉴질랜드 국민에게 잘 전달됐으면 한다”며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美의회 한국전 정전 60년 기념 발언 봇물

    미국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7월 27일)을 앞두고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의회에 따르면 윌리엄 키팅(민주) 하원의원은 전날 본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면서 한국의 평화를 수호하고 미국의 동맹을 지킨 미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해안수비대 장병들의 사심 없는 행동을 기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에 오래도록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딘 헬러(공화) 하원의원도 의사진행 발언에서 “한국전쟁은 종종 미국의 ‘잊힌 전쟁’이라고 불리지만 국내외에서 자유를 수호하다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브라이언 히긴스(민주) 하원의원은 지난 22일 본회의에서 “한국전쟁 이후 평화협정도 체결되지 않았다. 한국의 비무장지대에는 군대가 배치돼 있고 때때로 총격도 벌어지면서 많은 장병이 자유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전쟁의 별칭은 ‘잊힌 전쟁’인데, 이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제대군인원호법’도 없고, 본국 귀환 축하행사도 없었으며, 종전일도 없기 때문”이라면서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병의 공로를 기린다”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단장의 미아리고개 평화의 상징으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평화의 상징으로

    ‘미아리 눈물고~개/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눈 못 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한 많~~은 미아리~고~개’ 미아리고개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사대문 안팎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우마차도 쉽게 다니지 못할 정도로 가파르고 험준한 탓에 중간에 쉬었다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고 한다. 6·25전쟁 때 북한군 탱크가 이곳을 넘어 서울을 점령했다. 또 퇴각하는 북한군에 끌려가는 가족들을 피눈물 속에 마지막으로 배웅한 곳이기도 하다. 반야월이 쓴 대중가요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에는 그 사연이 구구절절 담겼다. 미아리고개는 1960년대 중반 본격 개발되며 점점 낮아지고 넓혀졌다. 지금은 고개 정상에 있는 유래비와 노래비 등이 옛 사연을 귀띔할 뿐이다. 전쟁의 상흔으로 슬픔과 눈물, 한(恨)을 간직한 미아리고개가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성북구는 전쟁과 평화라는 독특한 공간성을 지닌 이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25일 밝혔다.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재평가하는 세계 추세에 맞춰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흩어져 있는 미아리고개를 비극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겠다는 뜻이다. 구는 조만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타당성 조사 등을 벌일 예정이다. 구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KBS 이산가족찾기 영상의 세계 기록유산 등재와 연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 구는 이날 미아리고개 구름다리에서 ‘정전 협정 60주년 미아리고개 추모·평화의 밤’ 행사를 열었다. 미아리고개를 평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공간으로 도약시키려는 바람을 담은 행사다. 6·25 참전용사와 전쟁을 직접 경험한 주민, 그리고 청소년 등 성북을 대표하는 인물로 구성된 ‘평화 60인’을 비롯해 김영배 구청장과 주민 등 150여명이 함께했다. 전쟁 희생자를 위한 넋풀이 공연, 평화를 기원하는 시 낭독 및 해금 연주 공연에 이어 촛불잇기 행사가 펼쳐졌다. 김 구청장은 “미아리고개에 얽힌 뼈아픈 스토리를 통해 오히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극과 평화가 공존하는 공간을 세계 명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6·25 참전 21개국 용사들, 60년만에 방한

    국가보훈처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30일까지 6·25 전쟁에 참전한 21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220여명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행사를 연다고 24일 밝혔다. 미국 56명, 터키 32명, 노르웨이 18명, 영국·필리핀·태국 각각 12명, 벨기에 11명, 캐나다 10명의 참전용사와 가족이 방한한다. 참전용사 방한단은 서울 국립현충원 참배는 물론 유엔참전국 교향악단 평화음악회, 유엔군 참전 및 정전 60주년 기념식, 참전용사 감사 만찬 등에 참석한다. 한편 보훈처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6·25 전쟁 참전 21개국 음악인들과 국내 정상급 음악인들이 참여하는 평화음악회를 26일 오후 7시 도라산역에서 개최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오바마, 한국전 정전60년 기념 연설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는 2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국전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라고 백악관이 22일 공식 발표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27일 오전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서 열리는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한다”면서 “척 헤이글 국방장관도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 열린 정전 53주년 기념식에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이 참석한 적은 있으나 현직 대통령 참석은 처음이다. 한국 쪽에서는 새누리당 소속 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박근혜 대통령 특사단과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 백선엽 육군협회장, 권태오 육군 중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27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한국전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미국 측 대표단 명단도 이날 발표했다. 대표단은 성 김 주한 미국대사를 단장으로 제임스 서먼 주한 미군사령관, 제임스 줌월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데이비드 헬비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 데이비드 스틸월 합참 아시아 담당 준장 등으로 구성됐다. 헤이글 국방장관은 이날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열린 제113차 해외참전용사회(VFW) 전국 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행사에 참석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한 뒤 “이번 60주년 기념식은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봉사에 큰 감사를 표시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박대통령 “국민안전 문제 생기면 책임 엄중히 물을 것”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 및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와 관련, “앞으로 관리·감독 소홀로 국민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시에는 반드시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켰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드린다”면서 “앞으로 모든 청소년 활동 프로그램은 신고를 의무화하고 청소년 수련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해서 안전성 등의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속개된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과 관련,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한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한 뒤 북한을 겨냥해 “중국과 베트남을 보면서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투자 여건을 보장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지역발전 전략과 관련한 지방대학의 ‘역할론’도 제기했다. 그는 “새 정부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지역발전 정책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게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발전 정책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면서 “이런 방향 전환이 성공을 거두려면 지역발전의 견인차이자 성장 거점으로 지방대학을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오후에는 취임 후 처음 부산을 찾았다. 박 대통령의 부산행은 지난해 12월 18일 대선 유세 이후 7개월여 만이며, 대통령 취임 후 지방 현장 방문은 지난달 5일 대구에 이어 두 번째다. 박 대통령은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정전 60주년 유엔 참전용사 추모식’에 참석한 뒤 부산 북항 재개발사업 현장을 찾았다. 올해로 개항 137년이 된 북항은 시설이 노후화돼 2008년 부산신항 건설 이후 최초로 항만 재개발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북항 재개발사업 현장사무실에서 열린 비공개 환담회에서 2020년으로 예정돼 있는 부산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 착공 시기와 관련해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시기를) 당길 수 있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부산 방문을 계기로 한동안 중단했던 지방 방문을 재개할 계획이다. 정책 현장을 찾아 새 정부의 국정기조와 정책과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등 박 대통령 특유의 ‘현장 정치’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朴대통령 “정책금융체계, 기업 관점서 개편해야”

    朴대통령 “정책금융체계, 기업 관점서 개편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그동안 정책금융 기능이 여러 기관에 분산되고 중복돼 있어 효율도 떨어지고 리스크 관리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정책금융 체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책금융 체계 개편 보고와 관련,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중소·중견기업 수출 지원,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률 70% 달성 등 경제활성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정책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또 “정책 기능을 재조정하려고 하다 보면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여러 논란이 발생하게 된다”며 “정책금융 체계 개편도 수요자인 기업의 관점에서 추진해 나가야 되고, 국가 전체 경제에 대한 고민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정책금융의 전달 경로와 집행의 효율성, 리스크 관리 강화 등도 충분히 고려해 가면서 개편 방안을 추진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정전 60주년 유엔 참전용사 추모식’에 참석,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확고한 억지력과 대비태세를 갖추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유도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 롯데, 유엔군 참전용사 돕기 나서

    롯데그룹이 국방부와 함께 생활고를 겪고 있는 한국전쟁 해외 참전 용사 지원에 나선다. 롯데그룹은 17일 국방부와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유엔군 참전용사를 지원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롯데그룹은 향후 5년간 국방부가 추진하는 한국전쟁 해외 참전용사 보은 활동에 소요될 사업비를 지원한다. 롯데와 국방부는 매년 사업 규모와 대상 등을 협의하기 위한 공동 실무위원회를 운용하기로 했다. 다음 달 태국에서 첫 활동을 시작한다. 롯데와 국방부는 참전용사들의 거주마을인 방콕 외곽 ‘람인트라’ 지역을 방문해 복지회관 건립 및 주거시설 개·보수 작업을 진행한다. 롯데는 이 활동에 7억원을 지원한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500인 원탁토론-함께하는 수원교육을 말하다(OBS 토요일 밤 8시 15분) 찬성과 반대가 아닌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합의를 이루어가는 새로운 형식의 500인 원탁토론을 펼친다. 이번 시간에는 ‘올바른 공교육 혁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평생학습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의제로 생생한 시민의 의견을 듣는다. ■정전 60년 특별기획-내 기억 속의 전쟁 앙카라 학교(KBS1 토요일 밤 9시 40분) 정전 60년, 이제는 전쟁의 상흔조차 찾아볼 수 없는 도시 서울에서 처참했던 기억을 수집하는 남자가 있다. 터키에서 변호사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건너온 부라크 카라쿠르트. 그가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의 조건(KBS2 토요일 밤 11시 15분) 경환의 초대로 숙소를 방문한 ‘짐승돌’ 2PM. 불이 없어 컴컴한 집안 분위기에 당황한 손님을 자가발전 자전거에 태워 페달을 밟게 하는 ‘인간의 조건’ 멤버들. 한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고깃집에서 빌려온 불판으로 마당에 펼친 전기 없는 가든파티를 보여준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5분) 2013년 4월 경기 파주시 문산읍 여우고개 부근. 흙 사이로 사람의 다리로 추정되는 물체가 보인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이 출동해 흙을 파내기 시작했고 곧 들짐승에게 왼쪽 다리가 훼손된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신원확인 결과 피해자는 2012년 12월 겨울 서울에서 실종됐던 남성 김석준씨였다. ■강연 100℃(KBS1 일요일 밤 8시) 74세 요가의 달인 조정부씨. 지금은 누구보다 유연하고 건강한 몸을 자랑하는 그는 어려서부터 각종 질병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40대 이후 찾아온 위염, 대장염, 비염, 만성 간염까지 누구보다 힘들었던 그다. 걷기 운동과 등산으로 건강을 되찾은 것도 잠시. 60대에는 척추관 협착증이 그를 다시 괴롭혔는데…. ■금 나와라 뚝딱(MBC 일요일 밤 8시 45분) 성은은 심덕에게 몽희가 현수의 도움으로 보석회사에 근무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심덕과 몽희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몽현은 덕희에게 돈을 돌려주지만, 미나의 집안인 성산 그룹으로부터 성산 백화점 입점 제안 전화를 받은 순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비만전문의 박용우 원장이 기존의 다이어트 상식을 깨고 간헐적 단식에 도전했다. 아침은 꼭꼭 챙겨 먹고 하루 네 끼를 먹어야 한다는 철칙으로 살았던 박 원장의 5대2(일주일에 5일은 정상식, 2일은 24시간 단식) 간헐적 단식법과 그가 말하는 간헐적 단식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꼼꼼히 따져본다.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고물·참전수당 모아 900만원…더 힘든 이웃들에게”

    “고물·참전수당 모아 900만원…더 힘든 이웃들에게”

    “밥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으면 가진 것을 모두 사회에 베풀고 떠나려고 해.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이 남지만 그래도 이북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삶이었지.” 폐지와 고철을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오던 6·25 참전 유공자가 그동안 모은 전 재산 900여만원을 사후(死後)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허름한 옥탑방에서 홀로 사는 최귀옥(81)옹. 최옹은 5일 옥탑방에서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관계자와 만나 이를 상의했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인천에서 일용직 건설노무자로 일하던 최옹은 군대에서 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듬해 입대했다. 2군단 소속으로 화천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웠다는 최옹은 당시 군대 야학에서 글을 깨우쳤고, 제대 후에는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하지만 개인사는 순탄치 못했다. 가정불화로 부인, 자식들과 헤어지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최옹은 이후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16년간 폐지와 고철을 수집하며 생활하고 있다. 최옹이 폐지를 모아 얻는 수익은 한 달에 2만원 정도. 그나마 요즘엔 몸이 불편해 한 달 이상 일을 못 하고 있다. 6·25 참전 수당 15만원과 구청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합해도 월 30만원이 채 안 되는 빠듯한 살림이다. 최옹은 이 가운데 매월 2만원을 6·25 참전유공자회에 회비로 납부하고, 폐지를 통해 얻은 수입은 쓰지 않고 따로 모아 뒀다. 최옹은 “나 자신도 어릴 때 아버지 없이 자라서인지 수십년 전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밝혔다. 최옹의 나눔은 6·25 참전용사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최옹은 정월이 되면 구청에서 지급한 쌀의 절반을 6·25 참전유공자회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다른 참전용사에게 보낸다. 3년째 자신의 몫을 나눠 온 최옹은 “난 밥은 먹고 살지만 형편이 더 안 좋은 참전 용사도 많다”면서 “6·25 참전 수당 15만원은 생계를 잇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北에 나라 뺏기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싸웠단다”

    “北에 나라 뺏기지 않으려 죽기 살기로 싸웠단다”

    “안개 속에서 포탄이 떨어지는데 피란민들은 보따리를 메고 갈팡질팡하고 어린 아이들은 울부짖고 난리도 아니었지. 우리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열악한 총을 들고 지리산에 숨어 있는 북한군과 싸우느라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 6·25 참전용사인 이덕회(82)옹은 3일 서울 강북구 번동 자택에서 손자·손녀뻘 되는 인근 화계중학교 2학년 5반 학생 12명에게 전쟁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경청하던 학생들은 때때로 “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화계중학생 754명에게 이날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사단법인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주관한 ‘6·25 참전 영웅과 함께하는 세대 공감 친구데이’ 행사를 통해 평소 보기 힘들었던 고령의 6·25 참전용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0여명씩 한 조를 이뤄 각각 서울 소재 참전용사 69명의 자택으로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고 청소와 설거지, 안마 등의 봉사 활동을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받는 참전수당 월 19만원으로 겨우 살아간다는 이옹은 “대학생들도 6·25의 의미를 잘 모르는 요즘 중학생들이 이렇게 찾아와줘 고맙다”면서 “그때 나라를 빼앗겼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김다솔(14)군은 “집 청소를 깨끗이 해드리려고 했는데 저희가 온다고 할아버지께서 청소를 다 해 놓으셔서 죄송스럽다”면서 “어르신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반 황건희(14)군은 “평소 집에서 어른들께 듣지 못했던 6·25 전쟁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으니 신기하다”면서 “저희도 커서 군대에 가겠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진광 인추협 대표는 “나라의 소중함과 어르신에 대한 고마움을 새로 깨닫게 돼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인성교육이 될 것”이라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기고] 정전과 한·미동맹 60주년의 의미/길병옥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교수

    [기고] 정전과 한·미동맹 60주년의 의미/길병옥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교수

    올해는 6·25전쟁 정전 및 한·미동맹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63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미국 등 16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전 세계 93개의 독립국가 중 63개국이 대한민국을 도왔다. 3년 1개월이 넘는 1129일 동안의 전쟁으로 13만여명의 국군 전사자, 4만여명의 유엔군 전사자, 국군과 유엔군을 포함하여 60만여명의 부상자와 포로·실종자 등이 발생했다. 게다가 300만여명의 인명 피해와 1000만여명의 이산가족, 수많은 상이군인, 전쟁미망인, 전쟁고아 발생 등의 피해가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국군이 제외된 유엔 측과 북한 측 대표가 정전협정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동족상잔의 비극은 일단락됐고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NLL)을 경계로 분단의 상태를 오늘날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한국은 1953년 10월 1일 휴전 성립에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경제 원조를 약속받고 미국과 한·미군사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전후 60년이 지났지만 남북 분단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전 이후에도 북한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해 오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자행한 정전협정 위반사례는 43만건 이상이다. 직접적인 침투 및 국지도발만 약 3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6·25전쟁의 상처와 참혹상들이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잊혀 가고 있고 우리의 대북 안보의식이 불감증에까지 이른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있을 때만 지켜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한·미동맹 60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지대하다. 그동안 한·미동맹은 북한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유지에 핵심 축으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 지난 60년간 한·미동맹의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가 가능했다. 한반도 평화유지, 경제적 번영, 민주주의의 성숙에는 6·25전쟁 이후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과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역할이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서 지켜낸 호국영웅들을 잊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그런 국민이 1등 국민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6·25전쟁에서 목숨 바쳐 공산화를 막아낸 호국영웅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호국 의지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타국민들을 구해낸 유엔 참전용사, 언어는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이 땅에서 목숨을 바쳤던 젊은 병사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때마침 육군이 6·25전쟁의 위기에서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참전용사들의 높은 뜻을 기리고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국군 전쟁영웅뿐 아니라 미군 참전영웅에 대한 표창까지 추가 제정하여 전승기념행사 식장에서 수여키로 한 것은 의미가 있다.
  • 한국전쟁서 피흘린 그들의 영혼 기리며…

    한국전쟁서 피흘린 그들의 영혼 기리며…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앞둔 2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워싱턴카운티의 헤이거스타운에서 한국전 참전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앤티텀 312지부(회장 레스 비숍)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노병들은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이 지역 출신 전우 42명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바라보며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행사에는 비숍 회장 등 참전용사들과 에드워드 초우 메릴랜드주 보훈부 장관, 미 국방부 및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존 도너휴 메릴랜드주 하원의원은 축사에서 “지난 3년간에 걸친 노력 끝에 기념비 제막식이라는 결실을 거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참전용사들께 감사한다”면서 “이 기념비는 후세대에 대한 교육 목적도 될 수 있고, 발전된 한국과의 관계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와 시민 기부금 등 총 10만 달러가 투입된 한국전 참전기념비 공원에는 3개의 대형 비석과 3개의 깃발이 나란히 세워졌으며, 벤치도 마련돼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될 예정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헤이글 “한국보다 더 나은 동맹은 없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한국이 짧은 기간에 놀라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6·25 정전 60주년을 맞아 미국 워싱턴DC 인근 펜타곤(국방부 청사)에 18일(현지시간) 한국전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주미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한국전에 참전한 ‘백전노장’ 30여명과 함께 개관식에 참석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축사를 통해 “나는 한국과 같이 짧은 기간에 이만큼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나라를 알지 못하고, 한국보다 더 나은 미국의 동맹을 알지 못한다”면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했다. 안호영 주미 대사는 “지난 1일 미국에 부임한 뒤 첫 일정으로 한국전 기념비를 찾았다”고 소개한 뒤 “그렇게 한 이유는 참전용사 여러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대사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끼어 있어 미국 젊은이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붙여진 한국전의 별칭 ‘잊혀진 전쟁’을 ‘잊혀진 승리’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전용사 대표로 참석한 루이스 유잉 한국전참전용사협회 사무국장은 “이 전시관은 우리가 왜 한국에 갔고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교육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전시관은 국방부 직원과 방문객이 가장 많이 다니는 1층 5·6번 복도가 만나는 공간에 자리 잡았으며, 한국전 동영상과 사진을 담은 15개 모니터와 당시 신문 기사, 무기, 전투복 등이 진열돼 있다. 전시관은 또 한 해 10만명 이상이 찾는 ‘펜타곤 투어’ 코스에도 포함돼 미국인과 관광객 교육의 장이 될 전망이다. 전시관은 지난해 미 연방 상·하원에서 2012~2013년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지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설치됐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글로벌 시대] 비목의 계절, 당신을 기억합니다/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비목의 계절, 당신을 기억합니다/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한때 필자가 즐겨 부르던 가곡 ‘비목’은 6·25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무명용사들의 헌시’가 바로 비목이다. 그 노랫말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용사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을 공감할 수 있다. 얼마 전 ‘영화로 이해하는 한국과 국제정치’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고지전’을 감상했다. 6·25전쟁 당시 휴전협상 동안 한 치의 땅도 양보할 수 없었던, 휴전선 일대에서 가장 치열했던 고지쟁탈전을 소재로 한 영화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막바지 전쟁의 상황을 생생하게 잘 그려냈다. 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 세워진 이름 모를 비목”의 의미를 연상케 했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와 그러지 못한 세대 간에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인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공동체 의식과 헌신한 이들을 잊지 않고 보훈을 실천하는 것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류 역사상 6·25전쟁과 유사했던 사례는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 민족의 결사항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아테네는 고작 3만~4만 군사로 50만의 페르시아 대군을 용감하게 물리쳤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여타 도시국가들은 항복했지만, 아테네군은 결연한 전의를 다지고 그것을 공동체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승화시켰다. 이들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항복하지 않았다. “살아서 굴복하기보다는 저항하면서 죽기를 선택했고, 정치적 삶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막대한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낼 수 있었다. 남북전쟁의 내전을 극복하고 세계 문명의 중심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국가 부흥도 공동체를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목숨으로 지키고자 하는 결의와 헌신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필자는 2006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PACOM)와 진주만의 푸른 바다 위에 세워진 ‘메모리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새겨진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보면서 순국선열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서도 그런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단지 266개의 단어로 구성된 전몰장병을 위한 추모연설을 통해 남북전쟁 당시 목숨 바쳐 싸운 용감한 전사자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 헌신한 이들을 명예롭게 여겨야 하며,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후손들은 자유를 지켜야함을 당부했다. 실제로 미국에는 웰링턴 국립묘지를 비롯해 많은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1944년 제대군인보호법 등을 제정해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상과 보훈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20세기 국제정치를 되돌아보면, 국가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발전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페르시아 전쟁에서 보여준 아테네 무명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한 페리클레스의 전몰용사에 대한 추모연설을 되새겨봤으면 한다. 그는 “죽은 자들의 용맹을 기리며 그들의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것”을 강조했다. 이처럼 세계문명을 주도한 국가들은 모두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켜낸 전몰용사와 상이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호국보훈의 달 6월과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이런 소중한 정신을 잘 되새겨보고, 이젠 고령이 된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은혜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 英 런던에 한국전 참전비 세운다

    정전협정 60년 만에 영국 런던에 한국전쟁 참전기념비가 건립된다. 14일 주영국 대사관 등에 따르면 한국전 참전 16개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영국에 참전기념비가 설립된다. 대사관 측은 런던 중심부 템스강변에 부지를 확보해 내년 완공을 목표로 오는 11월 기공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영국은 한국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5만 6000명을 파병해 1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지만 이를 기릴 만한 시설이 없어 그동안 주영 대사관과 영국참전용사협회를 중심으로 기념비 건립 작업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올해 종전 60주년 및 한·영 수교 130주년을 맞아 참전기념비 건립위원회가 구성돼 결실을 보게 됐다. 올가을 박근혜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할 예정이어서 기념비 건립 의미가 더욱 각별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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