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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참전 해외영웅들 한시도 안 잊어”

    “6·25참전 해외영웅들 한시도 안 잊어”

    한국전쟁 정전 61주년(27일)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에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들이 열렸다. 한·미 정부는 이날 오전 알링턴 국립묘지 원형극장에서 한국전 정전 6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안호영 주미대사와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 데이비드 핼비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 래리 키나드 참전용사협회장과 참전용사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헌화를 시작으로 연방우정국의 ‘한국전 명예훈장 우표’ 헌정식 등이 열렸다. 오후에는 알링턴 셰라톤호텔로 자리를 옮겨 오찬을 겸한 기념행사가 이어졌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신경수 국방무관이 대독한 기념 축사에서 “어떤 이는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모르는 나라에 와서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은 한·미 동맹의 뿌리가 돼 지금도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알링턴 하야트호텔에서는 한국전쟁유업재단(이사장 한종우 시러큐스대 교수)이 개최한 참전용사 후손 청년봉사단 행사가 열렸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등 13개국에서 온 후손 70여명이 참전용사 10여명과 만나 이들의 경험을 기록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특히 조지아주 고교 역사교사 2명을 초청, 미 고교 역사교과서의 한국전쟁 기술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한국전쟁 관련 내용이 소홀히 취급됐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청원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한 이사장은 “미 고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국전쟁 관련 부분은 베트남전쟁에 비해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고작 한두 문단으로 처리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행사를 후원한 국가보훈처 최완근 차장은 “여러분의 할아버지는 여러분의 나이에 전쟁의 공포와 추위를 겪으면서도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고 격려했다. 낙동강 전투에서 한·미 합동작전을 이끌었던 백선엽 장군 딸 백남희씨도 행사에 참석, “할아버지의 활동을 돌이켜 보려는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제61주년 정전협정기념식, 미국, 캐나다에서도...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제61주년 정전협정기념식, 미국, 캐나다에서도...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정부는 27일 오후 3시 코엑스에서 ’제61주년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정홍원 국무총리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는 6·25전쟁 참전군인과 유엔군 참전용사,국군과 주한미군 장병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사물놀이와 의장대 시범, 6·25 참전국 국가 메들리 등 식전행사에 이어 열린 본행사는 참전국 국기 입장을 시작으로 국민의례, 6·25 전쟁과 한미동맹을 주제로 한 영상물 상영, 참전국 대표 인사말, 훈장 수여,기념공연 등의 순으로 이뤄졌다. 기념식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기획자 가운데 한 명인 에드워드 로우니 중장과 로널드 유진 로서 중사, 히로시 미야무라 하사, 아이너 잉만 병장(이상 미국 예비역), 메흐멧 고넨츠(터키) 예비역 대위 등 유엔군 참전용사 5명이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창군 원로인 김영관 대장과 지리산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한 김용주 옹 등 6·25 전쟁 이전 유공자와 그 유족 20명 및 6·25 전쟁 참전자 150명, 유엔군 참전용사 120명 등도 참석했다. 6·25전쟁 출격 조종사인 신관식 대령,켈로부대 출신 최일도 목사,6·25전쟁 소년전차병 오명섭 옹,흥남철수 작전의 영웅 현봉학 박사의 가족 등도 참석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기념식이 거행된다. 미국에서는 현지시간 27일 10시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한국전참전협회(KWVA) 주관으로 정전협정 체결 기념식이 개최된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일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오후 9시40분 황해도 장산곶 일대에서 스커드 계열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훈련을 현지에서 지도했다면서 “전승절(정전협정일)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 발사 훈련에는 남조선 주둔 미제 침략군기지 타격 임무를 맡고 있는 인민군 전략군 화력타격부대가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뉴스 플러스] 제61주년 정전협정 기념식 거행

    국가보훈처는 오는 27일 오후 3시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제61주년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22일 밝혔다. 기념식은 6·25전쟁 참전 군인과 유엔군 참전용사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상물 상영, 훈장 수여, 기념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창군 원로인 김영관 대장과 지리산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한 김용주 옹, 6·25전쟁 출격 조종사인 신관식 대령 등도 참석한다.
  • 심재철 카톡, 세월호 특별법 반대 메시지 논란에 유가족 “사퇴하라”…심재철 “직접 작성한 글 아니다”

    심재철 카톡, 세월호 특별법 반대 메시지 논란에 유가족 “사퇴하라”…심재철 “직접 작성한 글 아니다”

    ‘심재철 카톡’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특별법을 반대하는 취지의 심재철 카톡 메시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특위위원장을 맡은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지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제2차 연평해전과 비교하며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는 20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재철 의원이 보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 메시지는 “학교 수학여행을 가다가 개인회사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 달라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며 “6·25 전쟁에서 국가를 지킨 참전용사들도 힘겨운 여생을 말없이 살아가는데 특별법이란 말도 안 된다고 본다”고 적혀 있다. 또 “안전사고로 죽은 사망자들을 국가유공자보다 몇 배 더 좋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주장”이라며 “(연평도 2차해전에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에게는 국가로부터 5000만원의 보상금만 주어졌다”고 돼 있다. 유족들은 “정부에 구조 책임이 있음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고, 세월호 참사를 청해진해운만의 문제로 축소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인식을 가진 심재철 의원을 국정조사 특위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가족대책위는 여야를 향해서는 “지난 16일까지 약속했던 특별법을 참사 100일이 되는 24일까지 반드시 제정하라”고 재차 촉구했다. 가족대책위는 오는 21일 7·30 재보선에 출마하는 여야 후보를 대상으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서를 보낼 계획이다. 심재철 의원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글은 6월부터 인터넷에 돌던 글로 심재철 의원이 쓴 글이 아니며 법안 관련 의견 수렴용으로 몇 명에게 전달한 것”이라며 “심재철 의원의 개인 견해와는 다를 수 있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글도 첨언했다”고 해명했다. 또 “법안 검토 과정에서 다양한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긴요한만큼 소수에게 법안 여론 수렴용으로 글을 전송한 것은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며 “세월호 특별법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과 유가족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에서 협의 중인만큼 조속한 통과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 측은 “심재철 위원장이 직접 발송한 메시지인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라며 “우리 가족들은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심재철 의원을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버즈 올드린 촬영 1966년 인류 최초 ‘우주 셀카’

    버즈 올드린 촬영 1966년 인류 최초 ‘우주 셀카’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45년 전인 오늘(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달에 첫 발을 내딛은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미국을 넘어 전세계의 영웅이 됐지만 바로 뒤이어 발자국을 남긴 ‘그’는 항상 ‘조연’에 머물러야 했다. 바로 ‘비운의 우주인’으로도 불리는 버즈 올드린(84) 이야기다. 항상 2인자에 만족해야 했던 그에게도 그러나 암스트롱에 앞서는 ‘인류 최초’ 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최근 올드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 셀카’를 공개해 관심을 끌고있다. 트위터 상에 공개한 이 셀카는 파란색 지구를 배경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올드린의 모습을 담고있다. 이 사진은 지난 1966년 달 탐사 중 촬영된 것으로 당시 그는 제미니 12호에 탑승해 5시간에 걸친 우주유영에도 성공했었다. 인류 최초의 우주 셀카사진은 재미있게도 별 다른 뜻은 없었다. 올드린은 “그냥 찍었을 뿐 왜 찍었는지는 모르겠다” 면서 “어떻게 사진이 나올지 궁금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951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올드린은 한국전쟁에도 전투기 조종사로 참여한 참전용사다. 이후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돼 인류 최초로 달을 탐사하는 영예를 얻었다. 지구 귀환직후 그는 부담감을 느끼고 대중과 거리를 둔 암스트롱을 대신해 우주 개발 전도사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60살넘은 ‘늙은’ 폭격기에 목멘 ‘첨단’미국, 왜?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60살넘은 ‘늙은’ 폭격기에 목멘 ‘첨단’미국, 왜?

    정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군의 이미지는 ‘첨단’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전 세계에 군대를 배치하면서 독재자나 군벌, 이슬람 무장 단체부터 해적과 마약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과 지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다.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인 만큼 전장에서 올라오는 교훈은 재빨리 새로운 무기 개발에 반영되고, 이렇게 전장 환경과 사용자의 니즈로 탄생한 새로운 무기들은 전 세계 전쟁터에서 얼굴을 내밀며 미국의 군사력과 과학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 무기 구매에 엄청난 국방예산을 쓴다하여 ‘천조국’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진 미국조차 60년 넘게 바꾸지 못한 무기가 있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힘의 심볼인 ‘전략폭격기’였다. -집안 대대로 조종하는 유서 깊은 폭격기 종류를 막론하고 무기체계의 한 세대는 약 30년 정도로 잡는다. 소총부터 전차는 물론 전투기와 군함도 30년을 기준으로 해서 퇴역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무기의 수명이 30년을 넘긴다면? 전차나 장갑차는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더 쓰거나 굴러가지 않으면 고정식 포탑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고, 군함도 최소한 가라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공기는 다르다. 낡은 항공기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하늘을 나는 관(Flying casket)’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진다. 항공기 수명 30년이라는 것은 연간 비행시간을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것을 지켰을 때 수명이 30년이라는 이야기지만, 미국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상황 때문에 항공기들이 혹사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입 25~30년이 경과한 항공기들은 종류를 막론하고 현역에서 도태시켜 매각하거나 ‘항공기의 공동묘지’로 불리는 AMARC(Aircraft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Center)에 장기 보관 처리를 하고 새로운 항공기로 대체된다. 현재 AMARC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당당한 1선급 전투기로 활약하고 있는 F-15/16/18 계열 전투기들이 500여대 이상 보관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여대나 보관 중인 어떤 폭격기는 비슷한 숫자가 현재 미 공군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바로 B-52H다. 1952년부터 생산되어 1955년부터 실전 배치된 이 폭격기는 ‘3대가 모는 폭격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 폭격기 조종사로 근무하는 집안이 있다. 지난해 B-52H 조종사가 된 미 공군 데이비드 웰시(David Welsh) 대위의 아버지 돈 웰시(Don Welsh) 예비역 대령은 베트남전에서 B-52 폭격기를 몰았던 참전용사이고, 할아버지인 돈 스프레이그(Don Sprague) 예비역 대령 역시 냉전시기 B-52 폭격기를 이용한 핵공격 임무를 수행했던 파일럿이었다. 문자 그대로 집안 대대로 조종하는 유서 깊은 폭격기인 것이다. -여러번의 교체 시도, 하지만 구관이 명관? 사실 미 공군도 B-52 폭격기가 좋아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다. 제트기가 대중화되면서 자고 일어나면 항공기의 세대가 바뀌어 있을 정도로 항공기술 발전이 빨랐던 1960년대에 미 공군은 B-52를 마하 3의 초음속으로 날아가 소련에게 핵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XB-70 발키리(Valkyrie) 폭격기로 대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기술로도 무리가 있는 초음속 폭격기를 60년대 기술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고, 천문학적인 예산만 쏟아 붓고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초음속 폭격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기술 수준의 한계를 감안해 속도를 마하 2 정도로 낮추고 당시 유행하던 가변익을 채택한 B-1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미 공군은 “소련 근처까지는 마하 2로 접근하고, 소련 영공에서는 레이더에 잘 걸리지 않도록 낮은 고도를 마하 1.2의 속도로 침투해 빠르게 타격하고 돌아오면 된다”라는 발상이었지만, 1976년 소련공군의 빅토르 발렌코(Viktor Belenk) 중위가 MIG-25 전투기를 타고 귀순하면서 이 같은 발상은 산산조각 났다. 소련은 이미 미국의 이러한 발상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마하 3의 속도와 장거리 미사일, 저고도 침투 항공기를 장거리에서 잡아낼 수 있는 대형 요격기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격도 1977년 기준으로 당시 최신예 전투기였던 F-15A 전투기의 10배가 넘는 1억 달러에 달했고, B-1B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던 1988년 당시에도 대당 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등장해 애초에 244대를 생산해 B-52를 대체한다는 계획은 98대 생산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결국 B-52 대체에 실패한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 미 공군은 더 이상 초음속 폭격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바로 스텔스(Stealth) 폭격기였다. 미 공군은 초음속 비행 성능은 포기하는 대신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성능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B-2A 폭격기가 등장했지만, 애초에 133대가 생산되어 B-52를 대체할 계획이었던 이 폭격기는 달랑 21대만 생산되고 말았다. 직전 모델인 B-1B의 3억 달러보다 7배 이상 폭등한 대당 22억 달러의 가격 때문이었다. B-2A는 흔히 ‘금값보다 비싼 폭격기’라고 하는데, 실제로 B-2A의 기체 중량을 가격으로 나눠보면 1g당 50달러가 넘게 나오는데, 이는 1g당 45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 금보다 더 비싼 가격이다. 날아다니는 45톤짜리 금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컨대 미 공군은 지난 50년 동안 B-52를 대체하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거듭했고 눈물을 머금으며 개량과 보수를 거쳐 B-52를 60년째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전노장 B-52, 이제는 은퇴할 수 있을까?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조사국(CRS :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이 지난 7월 9일(현지시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미 공군이 미국내 주요 방산업체들에게 차세대 전략폭격기 사업, 일명 LRSB(Long-Range Strike Bomber) 사업을 위한 제안요청서(RFP : RFP : Request for proposal)를 발송했다고 밝히고 있다. CRS 보고서는 미 공군이 2025년 이후부터 신형 폭격기 80~100여대를 도입해 현재 운용중인 B-52H 76대 전부와 B-1B 36대를 대체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대당 가격은 5억 5,000만 달러 수준으로 억제하겠지만 최대 8억 1,000만 달러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사업이 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Sequester)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 공군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지난해 가을, 마크 웰시(Mark A. Welsh) 공군참모총장은 “차세대 폭격기 프로그램을 취소 또는 연기해야 한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한 이 사업과 관련한 그 어떤 예산 변경이나 축소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었다. 한술 더 떠 미 공군은 지금까지 비밀 예산으로 차세대 폭격기 설계 작업을 상당한 수준까지 진척시킨 것이 이번 CRS 보고서를 통해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강력한 의지를 통해 준비되고 있는 차세대 폭격기가 과연 B-52 폭격기의 유구한 전통(?)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 위에서부터 ▲ B-52 핵공격 파일럿이었던 할아버지(사진 왼쪽) B-52로 하노이를 폭격했던 아버지(오른쪽)에 이어 B-52 파일럿이 된 데이비스 웰시 미공군 대위(가운데) ▲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비쌌던 B-2A 스텔스 폭격기 ▲ 60년째 자리를 지켰지만 앞으로 10년은 더 현역에 남아 있어야 할 B-52 폭격기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 전승행사

    해병대,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 전승행사

    해병대는 13일 전북 군산시 일대에서 6·25전쟁 당시 해병대 최초 전투인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 전승기념행사를 해병대전우회와 공동으로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은파전적지에서 열린 전승기념식은 참전용사와 지역주민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군악·의장대의 식전 행사, 전황보고, 회고사, 기념사, 표창장 및 감사패 수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영주 해병대사령관은 기념사를 통해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해병대는 국가가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달려나가 언제나 승리하는 가장 충성스러운 군대로 자리매김했다”며 “앞으로도 ‘소수정예 강한해병’으로서 더욱 강력하게 무장하고 철저히 준비해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군산·장항·이리지구 전투는 개전 초기인 1950년 7월 14일 해병대 작전명령 제1호에 의거해 해병대가 북한군 6사단의 호남지역 남침을 지연시킨 ‘무적 해병대’ 신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전 참전한 588인을 기억합니다

    한국전 참전한 588인을 기억합니다

    “태극기가 안 보이니 이상하지요? 그래서 미국 성조기 한 개를 태극기로 바꾸기로 했답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인근 메타리 지역 중심가. 상당한 규모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비가 눈길을 끌었다. 미 한국전참전용사협회 루이지애나지부가 1996년에 세운 참전 기념비는 대리석 비가 가운데에 자리 잡았고 양옆으로는 화강암 비가 4개씩 연결돼 있었다. 대리석 비 앞면에는 ‘한국전(1950~1953)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희생한 588명의 루이지애나 참전 용사들을 존경하고 기리며’라는 문구와 함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부름에 응했다’고 적혀 있었다. 비 뒷면에는 기념비를 세운 루이지애나지부 참전 용사 대표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화강암 비 8개에는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귀국해 루이지애나에서 사망한 참전 용사 588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곳으로 기자를 안내한 뉴올리언스 한인회 강홍조 회장은 기념비 앞에 높이 서 있는 성조기 2개를 가리켰다. 그는 “매년 참전 용사들을 여기로 초청해 6·25 기념 행사를 하는데 성조기만 2개 있을 것이 아니라 태극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참전용사협회, 휴스턴 총영사관 등과 협의해 조만간 성조기 한 개를 태극기로 바꾸려 한다. 기념비 앞에 향도 놓아 더 많은 사람이 이들을 찾고 기억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인회에 따르면 멕시코만에 인접한 뉴올리언스 등 루이지애나에서 한국전에 파병된 용사들은 해군으로, 2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상당수 참전 용사들이 해마다 세상을 떠나고 있어 한인회가 파악하고 있는 생존자는 3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인회는 한국전쟁 64주년을 맞아 지난달 22일 이들을 기념비 앞 공원으로 초청해 기념행사를 열었다. 강 회장은 “생존자가 줄어들고 있어 이들의 참전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6·25 수기전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뉴올리언스에서 한국전 참전 해군의 가장 생생한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올리언스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100살 맞은 참전용사 고교졸업 감동 사연

    100살 맞은 참전용사 고교졸업 감동 사연

    1941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올해 100살이 된 참전 용사에게 고등학교 졸업장이 수여되어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2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조지 헐카(100)는 이날 스카일러빌 고등학교로부터 졸업장을 수여 받았다. 조지는 중학교까지는 졸업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분유 목장에서 일하다 27세에 전투병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1941년 최전선에서 독일 나치 부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등 3년 동안 여덟 번이 넘는 치열한 전투를 경험했다. 특히, 가까이서 떨어진 포탄으로 인해 청력 일부를 상실하는 등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1945년에는 미군으로부터 명예 훈장을 수여 받고 이후 기술 부사관으로 근무했다. 조지의 이번 고등학교 졸업장 수여는 사정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2차 세계대전은 물론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조지와 함께 6명의 참전 용사들에게 수여됐다. 조지는 부인 셜리와 64년간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살았으나 부인 셜리는 지난 2010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다, 올해 67세가 되는 큰딸은 “아버지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소감을 피력했다. 조지는 최근 다리가 부려져 수술을 받아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4명의 자녀 밑으로 10명의 손자가 있고 그 아래로 6명의 증손자를 두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현지 언론 menrec.com 캡처 김원식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6·25 참전용사 유해 봉안

    6·25 참전용사 유해 봉안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6·25전쟁 전사자 유해 합동 안장식에서 영현병들이 전사자들의 유골함을 안장지로 옮기는 가운데 유족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할아버지처럼 터키·한국 가교 역할 하고파”

    “할아버지처럼 터키·한국 가교 역할 하고파”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터키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터키의 6·25전쟁 참전용사 후손인 제일린 사르펠(29·여)은 23일 인터뷰에서 “할아버지 덕에 한국을 만나게 됐고, 이젠 나도 이 땅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며 그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누리 사르펠(82)이 6·25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인연으로 한국에 온 지 어느덧 4년째, 제일린은 이번 달 한국외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1951~54년 부산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군의관으로 활동했다. 제일린은 “할아버지는 다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어 하는 분이었다고 들었다”면서 “사람들을 치료했을 뿐 아니라 밥과 옷도 나눠주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터키어와 한국어까지 가르쳤다”고 전했다. 한국을 남달리 사랑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제일린도 어릴 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할아버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해신’, ‘궁’ 등 한국 드라마를 보고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며 웃었다. 터키에서 셀쿡대학에서 농업과학을 전공하고 건축 회사에 취직까지 했던 터라 유학 결정이 쉽진 않았지만, 한국전쟁기념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기회를 잡았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한국에 꼭 오고 싶었기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졸랐다”면서 “어렵게 허락을 받고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땐 정말 꿈만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낯선 곳에서의 유학 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제일린은 “처음 왔을 때 아는 한국말이 ‘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예요?’ 밖에 없었다”면서 “한국 친구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석사과정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참전용사 후손이라고 하면 모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라고 말해줘 나도 고마웠다”고도 했다. “대사관 등에서 외교 관련한 업무를 하고 싶다”는 제일린은 “형제의 나라인 터키와 한국이 모두 외교적으로 강한 나라가 되도록 기여하는 것이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2012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갔을 때 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면서 “할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듯이 이 땅에서 더는 전쟁으로 피 흘리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부친은 6·25·아들은 아덴만서… 국군과 공조

    부친은 6·25·아들은 아덴만서… 국군과 공조

    미국 해군 제독의 아버지가 아들의 권유로 6·25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생생하게 밝혔다. 미국 내 6·25 참전용사 기록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을 벌여온 한국전참전용사디지털기념관 한정우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6·25 전쟁 발발 64주년을 앞두고 22일(현지시간) 기념관 측이 홈페이지에 올린 인터뷰 동영상에 따르면 해군 함대 사령관을 맡고 있는 윌리엄 E 고트니(59) 제독의 아버지 윌리엄 고트니(90)는 1950년 6·25전쟁 당시 38선을 처음으로 넘어 평양 공중폭격에 나섰던 해군 전투기 조종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서해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우리는 38선을 최초로 넘어 평양으로 향했고, 도착 직후 활주로부터 집중 폭격했다”며 “야크기를 앞세운 북한 공군은 우리 제트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7월 3일 출격일이 되자 전체 항공편대 지휘관과 그의 호위를 맡은 고트니가 최선두로 나섰다. 이들은 신형 제트기를 타고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했고, 북한 전투기들이 운집한 평양 활주로부터 집중 폭격했다. 북한의 대공방어망의 주력은 40㎜ 대공포였으나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에는 북한군의 주요 진지를 폭격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를 폭파하는 임무도 맡았다. 1961년 미국 7함대에서 근무하며 한국을 방문했던 고트니는 “전쟁 당시 건물조차 남아있지 않던 한국이 단기간에 이룩한 산업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는 자신의 뒤를 이어 전투기 조종사가 된 아들 고트니 제독이 지난 4월 말 한 이사장 등과 만나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용사라고 소개해 이뤄졌다. 고트니 제독은 지난해 9월 아덴만에 파병된 한국 청해부대와도 협업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독자의 소리] 잊혀가는 6·25 참전군인을 찾아서/심귀득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장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4년이 되는 해다. 6·25 참전군인 중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지 않은 분이 42만여명이나 된다. 지난 52년간 국가유공자 등록은 본인과 유족의 신청에 의해서 이뤄졌으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6·25 참전군인의 희생과 공헌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가 이분들을 직접 찾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이에 걸맞은 예우와 지원을 하고 있다. 서울지방보훈청도 탐문팀을 꾸려 지난 3개월 동안 110여명을 새로 국가유공자로 등록해 드렸다. 이분들 중에는 생활고·질병·가족 병간호 등으로 등록제도 자체를 몰랐거나 6·25전쟁 기간 중 군복무는 했지만 전사했거나 부상을 입은 분과 실제 전투에 참전한 분만 국가유공자로 등록되는 줄 알고 등록을 하지 않은 분, 참전유공자 등록제도를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전우들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등록하지 않은 분도 계셨다. 보훈공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했지만 잊혀 가는 6·25 참전유공자 발굴·등록을 위해 참전 어르신들을 직접 찾은 일은 진한 감동과 보람을 주었다. 6·25전쟁 당시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켜낸 자신들의 큰 공을 내세우지 않는 나라사랑 정신이 오늘날 발전된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6·25전쟁 참전용사의 평균연령이 84세를 넘어서고 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참전용사들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 예우하고 명예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 우리 보훈공무원의 소임이기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다. 심귀득 서울지방보훈청 보상과장
  • 6·25참전유공자 2152명 새로 찾아

    6·25참전유공자 2152명 새로 찾아

    국가보훈처는 올해부터 정부 주도로 6·25 전쟁 참전 유공자 발굴사업을 추진한 결과 유공자 2100여명을 새로 찾았다고 6일 밝혔다. 6·25 전쟁 참전자는 90여만명으로 추산되나 현재 47만 8000여명이 참전유공자로 등록돼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올해 국정과제인 ‘명예로운 보훈’의 핵심과제로 6·25 참전유공자 미등록자 발굴사업을 추진해 지금까지 2152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미등록된 6·25전쟁 참전유공자가 42만여명에 이르는 것은 그동안 국가유공자 등록이 본인이나 직계가족의 신청에 의해서만 이뤄져 등록 대상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국가유공자법과 국가보훈기본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보훈처가 직접 국가유공자로 등록 가능한 사람을 찾아 예우와 보상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올해 1월부터 전담조직을 신설해 관련 병적자료를 수집·조사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1950년대에는 주민등록번호 제도가 없어 60년 전에 작성한 군 관련 자료에서 미등록된 참전용사의 본적지를 찾아 신상을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상당수가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된다”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참전 유공자 가운데 이미 사망한 사람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유해를 국립호국원으로 이장해 예우할 계획이다. 생존한 참전용사에게는 월 17만원의 참전명예수당과 보훈병원 이용 시 본인부담액의 60% 감면, 사망 시 국립호국원 안장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6·25 전쟁에 참전했지만 아직 국가유공자로 등록 못 한 참전자는 보훈처 대표전화(1577-0606)로 연락하면 등록 심사를 받을 수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낙동강 전투 전승 기념 행사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회장 김종욱)는 오는 6일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 미 제2보병사단과 함께 ‘낙동강 전투 전승 기념행사 및 카투사, 유엔군 전몰용사 추모제’ 행사를 개최한다. 현충일을 맞아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토머스 밴들 미2사단장과 앤드루 제임스 미 2사단 주임원사 등 미 2사단 지휘부와 장병들이 참석한다. 이들은 현역 및 예비역 카투사들과 함께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헌화와 묵념으로 전몰 카투사와 미군 참전용사, 해외 참전국 용사들을 추모한다. 미2사단은 6·25 전쟁 때 가장 먼저 한국에 도착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됐다.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미2사단에 배속된 한국군 요원인 카투사들이 많이 희생됐고, 유엔군사령부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유엔기념공원 내 상징구역에 카투사 전몰용사들을 안장했다. 공원에는 국군 카투사를 비롯해 휴전 후 한국에 주둔해 있다가 이곳에 안장되기를 희망한 유엔군(미군) 36명의 유해도 함께 안장돼 있다. 카투사연합회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미 양국의 우호증진과 동맹 강화를 위해 미2사단과 협력을 지속하는 한편 사회 봉사를 위한 다양한 ‘굿 네이버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로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美, 보훈병원 예약명단 조작 수사 확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예비역 하사인 아이작 심스(23)가 자신의 부모 집에서 총기를 든 채 경찰과 대치하던 중 사살됐다. 심스는 고교 졸업 후 군에 입대해 두 차례 이라크에 파병됐던 참전용사였다. 우발적인 총기난동 사건으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심스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었으며, 지역 보훈병원의 방치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최근 미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보훈병원 스캔들’과 맞물려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심스의 유가족은 그가 두 차례 이라크에 투입된 뒤로 PTSD를 겪어 왔지만 캔자스 보훈병원은 예약이 밀렸다며 진찰을 미뤄 왔다고 주장했다. 심스의 어머니는 “의사들에게 병원 바닥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진료를 취소했다”고 울부짖었다. 심스의 사건은 최근 애리조나주 피닉스 보훈병원에서 퇴역 군인 40명이 입원 대기 기간에 사망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미국이 충격에 빠진 와중에 나왔다. 피닉스 보훈병원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무능력이 드러났다고 맹공을 퍼부었으며, 이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사건의 조사를 맡은 퇴역군인국 소속 리처드 그리핀 감찰관은 이날 중간보고에서 피닉스 보훈병원이 진료 예약 명단을 조작해 1700명의 진료 예약이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가 조사한 226명은 초진을 받기까지 평균 115일을 대기했다. 피닉스 보훈병원이 발표한 24일의 5배에 육박하는 기간이다. 보고서는 평균 대기 시간을 줄인 임직원이 승진과 상여금 등 인사혜택을 받기 때문에 대기 기간을 짧게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조작 행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리핀 감찰관은 “퇴역 군인 의료보험은 150개 병원에서 매년 800만명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면서 “수사를 전국 42개 보훈병원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릭 신세키 보훈부 장관은 보고서 내용에 대해 “부끄럽다”면서 1700명의 전역자를 즉각 우선치료대상자로 분류하겠다고 밝혔지만 존 매케인 등 공화당 의원들은 신세키 장관이 사임해야 한다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핀 감찰관은 1700명과는 별도로 1400명의 퇴역 장병이 진료 대기 명단에 있지만 아직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감찰팀의 최종 보고서는 오는 8월 발표될 예정이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장성 요양병원 화재] 병실 출입문 없어 유독가스 순식간에 퍼져… 환자 질식 무방비

    [장성 요양병원 화재] 병실 출입문 없어 유독가스 순식간에 퍼져… 환자 질식 무방비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병원(이하 효사랑병원) 참사는 병원 측의 허술한 환자 관리, 화재에 취약한 병실 구조, 방화시설 미비 등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 불이 난 별관은 연면적 4656㎡,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 건물(5000㎡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집단 수용된 만큼 병원 측은 이런 요소를 고려해 방화 시설물을 갖춰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환자 대부분이 잠들어 있었고 갑자기 발생한 불로 거동이 불편한 70~80대 고령자들이 신속히 탈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2층 환자 34명 가운데 5명은 사실상 거동이 불가능한 ‘와상 환자’(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환자)였으며 25명은 치매 환자 및 알코올 중독 환자, 4명은 노인성 질환자로 대부분 자력 탈출이 어려웠다. 입원실에 배치된 담당자는 여성 간호조무사 김귀남(53·여)씨 1명뿐이었다. 비상시에 환자를 대피시킬 인력이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김씨는 불이 나자 자체 소화전으로 불을 끄기 위해 3006호실로 접근했다가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병실 구조도 피해를 키웠다. 별관 2층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편에 3개씩 7개(1개는 불이 난 다용도실)의 병실이 있었지만 각 병실엔 출입문이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삽시간에 연기가 복도와 병실로 스며들었고 이를 들이마신 고령의 환자들은 곧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독가스 차단막 역할을 해야 할 출입문 등이 설치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실제로 불이 난 2층 계단을 따라 복도에 들어서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각 병실에는 5~6개의 침대가 뒤섞여 있었고 담요와 매트리스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병실은 출입문이 없이 모두 개방된 상태였다. 검은 그을음이 복도와 각 병실의 벽면 천장에까지 시커멓게 쌓여 있었다. 그을음의 두께로 볼 때 화재 당시 강한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발화 지점인 3006호의 알루미늄 창틀은 불에 녹아내렸고 천장 쪽에서는 배수관이 터져 복도와 병실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복도 바닥에는 환자들이 우왕좌왕한 흔적인 듯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경찰은 이날 치매 환자인 김모(81)씨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김씨가 불나기 1분 전인 이날 0시 26분 다용도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김씨는 “내가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서 “잠이 오지 않아 다용도실에 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효사랑병원 관계자는 “김씨는 6·25 참전용사로 보훈 대상자인 걸로 안다”면서 “사회에 불만이 많지 않았는데 워낙 중증 치매였다”고 말했다. 이어 “가끔 ‘내가 보훈 대상자야’라며 악을 쓰고 난리를 피우기는 했다”고 덧붙였다. 김씨와 잘 알고 지냈다는 한 생존자는 “김씨 자식들이 면회도 자주 오고 올 때마다 아버지 드실 음식도 냉장고에 채워 놓고 갔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불에 타다 남은 일회용 라이터가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방화 경위를 추궁하고 있다. 또 이철구 전남지방경찰청 2부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꾸리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병원 측의 과실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화재 현장을 정밀 감식하는 등 원인 규명에 나섰다. 장성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오바마, 단원고에 백악관 목련 기증 “봄마다 피는 부활 의미”

    오바마, 단원고에 백악관 목련 기증 “봄마다 피는 부활 의미”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5일 정상회담은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한 위로와 추모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진행됐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슬픔에 잠긴 우리 국민에게 성조기와 백악관 목련 묘목을 선물하는 등 ‘위로 외교’의 진수를 보여 줬다. 회담에서도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제의하는 등 한국 국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기 안산 단원고에 전달한 목련 묘목은 ‘잭슨 목련’으로도 불린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재임 기간 1829~1837년)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기려 집에서 가져온 싹을 백악관에 심은 이래 180여년간 백악관 잔디밭을 장식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장에 들어선 뒤 인사말을 통해 “오늘 만남을 사고 희생자, 그리고 실종자와 사망자들을 기리는 시간으로 시작했으면 한다. 이들을 위해 잠깐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한 “한국 국민들이 깊은 비탄에 빠진 시기에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미국 국민을 대표해 이런 사고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에 양국 정상을 비롯한 회담 참석자들은 30초간 고개를 숙여 묵념한 뒤 자리에 앉아 회담을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지난 9·11 테러 후에 미국 국민이 모두 힘을 모아 그 힘든 과정을 극복해 냈듯이 한국 국민들도 이 위기를 반드시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낼 것으로 믿고 있다”며 사의를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전달한 삼각 나무케이스에 담긴 성조기에 대해 “미국에는 군인이나 참전용사가 목숨을 잃었을 때 그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국기를 증정하는 전통이 있다”며 “우리의 깊은 애도의 뜻과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는 우리의 마음, 그리고 한국을 동맹국이자 우방으로 부르는 미국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그런 국기”라고 설명했다. 해당 성조기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백악관에 내걸렸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나는 두 딸을 가진 아버지이고 우리 딸들의 나이가 희생당한 학생들과 거의 비슷하다”며 “지금 그 부모님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위로했다. 또 단원고에 기증할 백악관 남쪽 정원의 목련 묘목을 소개한 뒤 “이 목련은 아름다움을 뜻하고 또 봄마다 새로 피는 부활을 의미한다”면서 “그들의 아름다운 생명과 양국의 우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낮 전용기 편으로 경기 평택시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아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장병을 추모하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전쟁기념관 외부 복도에는 주별로 구분된 미군 전사자 명비(名碑)가 설치돼 있다. 하와이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은 하와이 출신 전몰 미군의 이름이 있는 명비에 헌화했다. 이어 경복궁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은 박상미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안내로 25분가량 근정전, 경회루 등을 관람했다. 애초 한국 전통문화 체험 행사 등을 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세월호 참사를 감안해 차분하게 관람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복궁 사정전에서 박 교수로부터 “조선 임금은 오전 5시부터 신하를 접견해야 할 정도로 근면하게 일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미국 대통령 자리도 바로 그렇다”고 맞장구쳤다. 미국 대통령이 경복궁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배석한 가운데 6·25전쟁 참전 미군이 불법으로 반출해 간 ‘황제지보’(皇帝之寶),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등 우리 문화재 9점을 인수하는 행사를 가졌다.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 직후 청와대 소정원에서 함께 산책함으로써 우의를 과시했다. 회담이 늦어져 어둑어둑했으나 박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미국 방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으로 백악관 내 로즈가든 옆 복도를 산책한 데 대한 ‘화답’ 성격이다. 일본 국빈 방문을 마치고 이날 정오쯤 네 번째 방한을 위해 입국한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양국 경제인 초청 행사와 한미연합사 방문 등 1박 2일(24시간가량 체류)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음 기착지인 말레이시아로 떠난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템스강에 한·영 새 역사를 세우자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템스강에 한·영 새 역사를 세우자

    지난주 영국의 이른바 스마트 복지 정책을 취재하러 런던에 다녀왔다. 원조 복지국가로 과잉복지가 사회문제인 영국과 과소복지에서 점차 복지를 늘려가고 있는 한국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천문학적인 복지예산의 누수를 최대한 막아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원이 필요한, 상대적으로 어려운 계층에 도움을 집중한다는 정책적 목표에는 맞닿아 있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인 국가의료서비스(NHS)에 대해 보건부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나오는데 현지 가이드가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세워질 곳을 가리켰다. 런던 시내 국방부 청사 뒤편의 강변에 위치한 빅토리아 엠뱅크먼트 공원이었다. 템스강 너머로 런던의 상징인 대관람차 ‘런던 아이’ (London Eye)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었다. 날이 풀리면서 부지 기초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영 수교 130주년과 정전 60주년을 맞아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윌리엄 왕세손이 기공식에 함께 참석했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기념비는 약 5m 높이의 포틀랜드석으로 된 오벨리스크 앞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겨울 군복 차림의 영국 군인이 동료 전우의 묘 앞에서 군모를 벗은 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청동 동상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모후의 동상과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전 감독 동상을 제작했던 영국의 유명 조각가 필립 잭슨이 동상 제작을 맡았다. 영국은 한국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5만 6000여명을 파병해 1000여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한국에는 각별한 나라다. 영국군의 주력부대 중 하나였던 글로스터 연대 병사 750명은 1951년 4월 22일부터 나흘 동안 경기도 파주 적성면 설마리에서 벌어진 임진강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병력 2만 7000여명에 맞서 싸우다 59명이 전사하고 526명이 포로로 잡혔다. 겨우 67명만 전장에서 살아나왔다고 한다. 해외 참전군인들에 대한 영국 정부와 국민의 존경이 남다른 것에 비춰볼 때 수도 런던에 기념비가 없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영국인에게도 ‘잊혀진 전쟁’이었던 셈이다. 우리 정부는 2011년 초 뒤늦게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을 추진해 지난해 박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웨스트민스터시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당시 시의 기록(2013년 10월 15일)에는 ‘기념비 포화 지구’에 한국전 참전 기념비의 건립을 예외적으로 허가한 이유를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이 영국군이 참전했던 대규모 분쟁이면서도 아직까지 런던에 영구적인 기념비가 없다는 점, 더욱이 참전 국가 중 유일하게 수도에 기념비가 없다는 점, 1000여명의 병사가 희생된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유엔 정신에 따라 이뤄진 국제적인 군사행동이라는 점 등을 강조했다. 한국전이 갖는 의미다. 어렵게 첫 삽을 뜬 기념비는 올 연말 완공이 목표다. 외교부 등에 따르면 예상 총공사비 100만 파운드(약 17억 4000만원) 중 60만 파운드(약 10억 4000만원)는 우리 정부에서 부담하고 나머지 40만 파운드(약 7억원)는 모금과 기업 후원금 등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기념비 건립을 적극 지원한 영국 한국전참전용사협회와 로더미어재단이 교민과 국내외 기업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모두 십시일반으로 보태고 있다. 매년 수천만명의 영국인과 외국 관광객이 런던을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템스강변을 거닐면서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게 될 것이고, 지친 영국 군인 동상과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들을 통해 한국과 영국의 특별한 관계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한국전에서 희생된 영국 군인들과 영국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고마움의 징표를 기억할 것이다. 템스강변에 세워질 한국전 참전 기념비는 단순한 새로운 명소가 아니라 한·영 두 나라 관계를 더욱 든든한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한 단계 격상시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템스강에 새 역사를 세우자.
  • 정청래 “무인기 서체가 왜 우리 한글…” 황우여 “책임있는 조치 취해라”

    정청래 “무인기 서체가 왜 우리 한글…” 황우여 “책임있는 조치 취해라”

    정청래 “무인기 서체가 왜 우리 한글…” 황우여 “책임있는 조치 취해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최근 북한 무인기 논란과 관련, “북한에서 보낸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데 대해 새정치연합의 분명한 입장 표명과 함께 정 의원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황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 소행이 명백한 무인기 영공침입 사건에 대해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의원께서 ‘북한 소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북한의 ‘무인기 자작극’ 주장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과거 천안함 사건을 비롯해 국가안보 사건이 있을 때마다 야권은 앞장서 음모론을 제기했다”면서 “더이상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행동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새정치연합은 최근 창당 때 천안함 참전용사 추모행사에 참석했는데 이것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해당 의원의 북한 무인기 발언에 대한 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앞서 지난 11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북한 무인기에 적힌 ‘서체’를 거론, “북한 무인기라는데 왜 우리의 아래아 한글 서체가 붙어 있느냐”며 북한무인기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황 대표는 이어 일본 총무상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논란과 관련, “16일로 예정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회담을 앞두고 아베 내각의 총무상이 또다시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은 심각한 도발행위”라면서 “심각한 유감을 다시 한번 표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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