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외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수반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산타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방북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 산모
    2026-04-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19
  • 메탄가스 활용 방울토마토 재배 성공

    광주시 북구 운정동 광주 광역위생매립장에서 근무하는 기능직 공무원들이 이곳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활용해 방울토마토 등 농작물재배에 성공했다. 지난해 광주시정연구모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광주시 매립장 활용방안 연구모임(회장 金鍾生·기계원 8급)’ 회원들이다. 김 회장을 비롯한 임철욱(任哲旭·32·기계원 9급),고순상(高純相·40·기계원 10급),정선근(鄭宣根·33·위생원 10급),강훈(姜勳·33·조무원 8급)씨 등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공원이나 나무심는 토지 조성 및 체육시설 용도로만 사용토록 제한된 매립장의 활용방안을 연구한 끝에 농작물 재배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들은 99년 12월 개인당 100여만원씩을 거둬 매립이 완료된 곳에 63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한동을 설치하고 매립지 밑바닥에 묻은 수집관로를 통해 메탄가스 모아 직접 개발한 난방보일러를 가동했다. 이듬해 이들은 1월 방울토마토 380그루를 심었다.농작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인근 담양군의 시설재배하우스를 직접 방문해 농민들의자문을 구하기도 했다.한겨울에도 15도를 유지하는 등 정성껏 돌본끝에 800㎏의 방울토마토를 생산했다. 연구모임 회원들은 생산된 방울토마토를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과서울시립대,환경관리공단 등에 성분 검사를 의뢰해 ‘식용가능’ 판정을 받아냈다. 이들은 지난해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경북 상주의 특산품인 금싸라기 참외 300여 그루를 심어 오는 2∼3월중에 수확할 예정이다. 김종생 회장은 “매립장 침출수에서 중금속이 검출되지 않아 식용작물 을 시험재배했다”며 “이를 계기로 매립장이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곳 매립장은 광주시가 93년 8만여평 규모로 조성해 2002년 매립을 완료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28)제5장 사랑과 맛

    지나간 날의 사랑을 기억해내는 데 있어서도 남자와 여자는 차이가있다고 한다.즉 여자는 연장되지 않은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현재의 사람에 관한 가까운 기억으로 대치 시킨다는것이며,그도 아니면 할머니나 삼촌이나 사촌 형제나 또는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를 떠올리듯이 친근하고 일상적이던 추억을 간직한다.그에 비하면 남자들의 흘러간 사랑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이 퍼즐을 맞추어 놓듯이 여자와 가졌던 에로틱한 순간들을 모아서 간직하거나,좋고 나쁜 일에 대해서도 전체의 줄거리는 잊어버리고 어느 시간의 미세한 부분을 곰살스럽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흔히는 남녀가 그 반대일 것이라고 여기다가도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맞는 구석이 많은 것 같다.잠재된 욕정과 거친 세상으로부터 따로 떼어 놓은 감각적이고 부질없는 순간들이 오히려 남자들의 옛사랑에 대한 추억의 본모습이라니 어쩐지 수컷이 슬프게 여겨진다. 프로이트 선생의 말씀을 들지 않더라도 성욕과 식욕은 어릴 적부터잠재되어 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배한다.남녀가 함께 밥을 먹으면 ‘정든다’는 우리네 속담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영혼의 집’으로 유명한 칠레의 작가 이자벨 아옌데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같이 먹었던 요리에 대한 얘기로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어느 먼 산골이나 바닷가 어촌에서 두 사람이 먹던 음식의 맛은 지금아무데서나 다시 찾아 먹을 수 있는 흔한 먹거리라 할지라도 다시는되살려낼 수가 없다.또한 그네가 가끔씩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하던 달그락 거리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식탁 맞은편에서 따뜻한눈빛으로 이편을 건너다 보던 날의 맛을 어디서 되살려 낼 것인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물처럼 지나간 시간은 자취도 없지만 그감각만은 생생하다. 전쟁 때,우리 식구는 지금은 경기도 광명이라고 부르는 괭메이에 피란을 갔었는데 농가의 외양간을 빌려서 여름 한 철을 보냈다.벽이 삼면만 있고 앞은 툭 터진 대신에 통나무 속을 파낸 여물 구유가 버티고 있었다.소는 전쟁 통이라 없어지고 더러운 건초더미만 쌓였는데쇠똥이며 짚덤불을 깨끗이 치우고나서 흙바닥 위에멍석을 깔고 기둥네 귀퉁이에 모기장을 쳐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도회지 사람들의 피란살이라는 게 어디나 같아서 쓸만한 물건들을 식량 가진 촌 사람들에게 야금야금 내주며 버티기 마련이었다.재봉틀이없어지고 옷가지와 귀금속이 없어지고 자전거가 사라지는 식이었다. 나는 근처 개천에 가서 송사리도 잡고 개구리도 잡으면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는데 지금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내 또래의 계집아이가 생각난다.당시의 시골 아이들은 여름철이면 그냥 고무줄 넣은 검은 무명 팬티 하나로 벌거숭이가 되어 뛰어 다녔는데 그래도 나는 어머니때문에 위에다 런닝은 걸쳐야 했다.우리 식구가 빌어 살던 집 건너편에 그 아이가 살았다.그 아이네 집에선 참외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집앞에 멍석을 펴놓고 함지에 가득 참외를 갖다 놓고 팔았다. 함지에는 참외나 찐옥수수가 있기 마련이고 아이의 할머니가 나와서앉아 있곤 했다.어느 저녁녘에 어머니는 나와 누나들을 데리고가서참외를 사주었고 계집아이를 알게 되었다.아이는 시골 아이 같지않게누나들처럼 간따후꾸(원피스)를 입고 있었다.그리고 작은 코고무신을신었던 것도 생각난다.할머니와 어머니가 주고 받던 먼 고장에 대한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신기했으며 모깃불이 타는 냄새와 별이 우수수쏟아질 것같던 밤하늘은 아주 가깝게 머리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멍석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계집아이와 북두칠성 찾기 내기도 하고 별똥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데 그애가 나를 불렀다.그애는 한 손을 치마자락 안에 감추고 있다가 가까이 간 내게 내밀었다.그건 방금 솥에서 긁어낸 누룽지였다.아주 딱딱하게 탄 것이 아니라 거죽의 밥알과 덜 탄 누룽지를 함께 긁어내어 동그랗게 뭉친 것이다.사실은 그런 상태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누룽지다.한입 베어물면 부드러운 밥알이 씹히면서도 속에서 바삭바삭 누른 쌀알이 씹힌다.아이가 작은 소리로 말한다.수남아,너만 먹어! 나는 누룽지를받아 먹으면서 어쩐지 좀 부끄러웠다.그리고 이상하게도 죄를 지은듯한 은밀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 고추 잠자리가 가득히 날아다니던 날이었으니 팔월말 쯤이었을 것이다. 우리 식구는 그 무렵에 괭메이를 떠나 영등포로 돌아갔다.한낮이었는데 건너편 사립문 앞에서 그애가 나를 불렀다.마당으로 들어가니 집안에는 모두 들에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다.그애가 부엌에 들어가더니큰 쇠솥 안에서 찐 단호박 몇 토막을 들고 나왔다.우리는 마루에 앉아서 함께 먹었다.호박은 식었지만 말랑하고 단맛이 그만이었다.마당에는 장닭과 암탉들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벌레 사냥을 하던 중이었다.그애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누워서 할머니처럼 배를 쓸어 달라고 했다.나는 참새의 가슴처럼 따뜻하고 쉴새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애의 배에 손을 얹었다.그리고 몇번인가 아래 위로 쓸어내리는중에 갑자기 멈추고는 화가 난 것처럼 얼른 일어나서 달아나버렸다. 고추가 갑자기 뜨겁고 아픈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Y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집을 나가서 남도를 돌아다니다가 왔을 무렵이니까 자신이 이미 세상을 다 겪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흑인 올페’라는 영화를 둘이서 보았던 생각이 난다.대학에 갔을때였는지 군대에 나갈 준비를 하던 해였는지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서해안의 어느 섬에 갔다가 태풍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배가 끊겨서갇혀 있었다.몇가지 특별한 기억이 있다.민박을 하던 집의 뒷간은 마당 뒷편에 텃밭을 건너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냥 항아리를 묻고 소나무 가지로 나지막한 울타리를 세워 놓은 게 전부였다.Y가 밤에 뒷간엘 가려면 무섭다고 꼭 나를 데려가서 울 밖에 파수를 세워놓곤 했다.그러면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확실하게 보초를 선다는보증으로 노래를 불러 주어야 했다.날 저무른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같은 노래였을 것이다.그건 누나가 변소에 간 나를 지키러 와서 저도 무서우니까 부르던 노래들이다.하여튼그 집에서 배가 올 때까지 몇날 몇밤을 지내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에 그댁 아주머니가 맛이나 보라고 굿떡을 했다고 보시기를 우리 문간방으로 건네 주었다.이게 웬 떡! 호박 시루떡이다. 늙은 호박 속을 길게 깎아서 말려 두었다가 쌀가루 한켜,검은 콩 한켜, 호박 한 켜를 차례로 깔아 시루에 쪄낸 것이다.어느 때에는 대추나 밤도 박아 넣는다. 호박의 단맛은 은근하고 너무 달지는 않아서 구수한 단맛이라고나 할까.우리는 뜨거운 떡을 호호 불면서 가끔씩 손가락에 달라붙는 찐득한 호박을 빨면서 떡을 먹었다.그래서 괭메이의 소녀를 기억해내게된 것일까,아니면 괭메이의 단호박을 떠올리다 그 섬에서의 민박을생각하게 된 것이었을까. 황석영
  • 제20회 농어촌청소년 대상발표/ 본상

    * 농업 宋海東씨. ■93년 군제대후 영농에 정착,가평의 특산물인 포도 과수원 조성으로소득증대에 노력해왔다.98년에는 포도착즙기 설치,천연포도즙 생산가공 판매로 부가가치를 올리고,인근 농가에까지 파급해 소득향상에기여했다.화학비료 사용을 줄이고 유기농법으로 저공해 농산물을 생산해오고 있다.가평군 특수사업으로 민족문화계승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농업 韓在順씨. ■91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4-H회 총무를 맡으면서 참깨 과제포 600평을 운영하고 공동자금 200만원을 조성했다.96년 집중호우가 일어났을때는 4-H회원 50여명으로 특별구호반을 편성,10ha의 농경지를 복구하고 수재물품 200점을 전달했다. 내고장 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꽃길 2㎞를 조성하기도 했다. * 농업 愼在明씨. ■93년부터 4-H면회장,도총무,도감사를 맡아 면 연합회 사무실에서 학생회원 공부방을 운영하고,학교 4-H지원을 위한 국화를 가꿔왔다. 무연고 묘 벌초 작업용 기계 5대 구입을 지원하고,야영교육용 텐트20조를 구입해 군연합회에 기증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복숭아 2,000그루를 심어 진안군 도화원 조성사업에 기여했다. * 농업 金原坤씨. ■한우,개,멧돼지 사육 및 참외·밤·벼 재배로 1억3,35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97년 2,000평,98년 2,200평,99년 3,000평,올해 1,200평 등 휴경답경작을 왕성하게 펼쳐왔다.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매월 방문하는 등 봉사활동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 농업 劉允吾씨. ■비닐하우스 시설을 이용한 고랭지배추 육묘 상업화를 시도,고소득을올렸다. 자가톱밥 시설을 갖추고 지력증진을 바탕으로 한 고품질 우수농산물생산기반 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5년주기 객토 실시와 토양유기물 함량 향상을 위하여 매년 300평당 2t의 우드칩을 전면살포하고 있다.농업신기술 도입 등으로 농가간 농업기술 격차해소에 주력해왔다. * 농업 盧載相씨. ■청풍명월 주말농장 기반조성 사업을 대행하여 농협 청년부 공동기금을 조성했다.휴경논을 이용한 유기농업 시범포운영으로 친환경농업을보급했다.농협청년부 기금으로 관내 초등학교에 매년 40만원씩을 기탁,결식아동을 지원했다. 수박 작목반을 결성하여 품질좋은 우수 농산물을 생산해 농가소득을높이고,소비자와 생산자가 직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 농업 裵權世씨. ■92년 영지버섯을 장흥군에 최초로 도입,고소득 작목으로 정착시켰다. 이후 영지버섯 작목반을 만들어 규모화 영농 및 조직력을 강화했다. 향유 원료의 100% 국산화 추진으로 외화 절약에 일익을 담당했다. 전남 농협 벤처농업인 연구클럽 감사를 지내는 등 ‘벤처농업 연구클럽’을 조직,연구하는 농업인상을 정립했다. *농업 韓盛弼씨. ■국내 최초로 새송이버섯 동굴 시험재배에 성공,새로운 소득자원으로농업인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안전하고 품질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친환경농업을 실천해왔다. 지역의 농업경영인과 함께 휴경지 3,000평을 경작하여 경영인 공동기금으로 적립하는 등 식량생산 증대에 노력해왔다. 청년부 공동소득사업을 높이고,지역개발 사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수산 金鎭萬씨. ■96년도 어업인 후계자로 선정되어 3,000만원의 지원자금 등으로 현대화된 어선을 구입,소득증대에 힘썼다.어입인후계자가 되기전 소득이 1,850만원에서,99년에는 무려 8,500만원으로 늘었다.94년부터 청년회장을 맡아오면서 매년 마을과 항포구에 쌓여있는 각종 쓰레기 제거지도로 50t을 수거처리하는 한편 마을 하수도 정비 등 해양오염 방지 등에 노력했다. *수산 許吉浩씨. ■대학졸업후 다른 취업의 기회도,어촌생활에 반대하는 부모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고향 앞바다를 가꾸겠다는 일념으로 어촌에 정착했다. 80년 후반부터 침체에 빠진 피조개양식사업을 어장 환경개선과 적정시설 준수로 생산성을 크게 늘렸다. 97년 ha당 2,200만원이던 수익이 98년에는 2,300만원,99년에는 3,500만원으로 늘었다. *수산 趙薰基씨. ■당초 굴양식을 하던 것을 지역 특성에 맞는 전복 육상양식으로 바꿔고소득을 올렸다. 고소득 품종 양식으로 98년 1,800㎏이던 생산량이 99년에는 3,000㎏으로 늘어났다.순수익도 98년 1억100만원에서 99년에는 1억8,000만원으로 증대됐다.지역의 청년들을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기술을전수하고 숙식을 제공,어촌에 정착할수있는 기반확보에 기여했다. *수산 金長石씨. ■집안의 가장,청년회 총무,마을의 반장 등을 겸하면서 낮에는 조업하고,밤에는 야간에 학교를 다니는 성실성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또한 다른 어업인들에게도 정보를 제공,고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마을의 치안 및 환경정화,불법어업 근절 등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1)西安-延安

    *광복군-조선 의용군 마지막 활동지 西安-延安. 서안은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1천여년 동안 중국 역사에서 서주(西周) 서한(西漢) 당(唐)등 12개 나라의 왕도로 영광을 누렸던 도시다.따라서 도시 전체가 유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적이 많다.우리의 항일유적지도 상당히 많다.조선청년전지공작대 주둔지,한청반 훈련장,광복군 전선사령부,그리고 미국 OSS(전략첩보국)과 합작해 국내진공을 준비했던 광복군의 흔적도 있다. 취재팀이 아시아나항공 직항편을 이용해 바로 서울에서 서안으로 날아간 것은 서안 교외에 있는 광복군 OSS훈련장을 먼저 찾아보기 위해서 였다.공항에서 차를 대절해 서안시 남쪽 25㎞ 지점에 위치한 광복군 제2지대 기지와 OSS 훈련장이 있던 두곡진(杜曲鎭)으로 향하는 길은 끝이 없어 보이는 짙푸른 옥수수밭이 이어진다.산이라곤 거의없는 황토고원지대인 이 지역의 주 생산물이다.안내인은 몇년전 한국에서 상영된 중국영화 ‘붉은 수수밭’도 이 지역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그동안 기자는 실크로드 답사를 위해 몇차례 서안을 지나간 적이 있다.그때마다 서안의 변화모습에 놀랐는데 이번에는 정말 몰라볼만큼달라져 있었다.새로 뚫린 서안시내 우회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옆으로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다.이따금 거대한 왕릉이 보였다.서안 외곽의 작은 시가지를 스쳐가고,참외·수박을 파는 저자거리를 지나고다시 평원이 나타난다.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리자 멀리 제법 높아 보이는 산이 나타났다.광복군 대원들이 OSS훈련을 받은 종남산(宗南山)이었다. 1945년 3월 15일 한국 광복군과 미군은 한미 군사합작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공동의 적인 일본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하여공동작전을 전개한다는 것.광복군은 미군으로부터 필요한 전술을 훈련받고 적진과 한반도에 잠입해 연합군작전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한다는 것 등이었다.그리하여 서안 근교에 주둔한,‘청산리 전투’의 영웅 이범석이 이끄는 제2지대가,안휘성 부양(阜陽)에서는 조선혁명군 참모장 출신 김학규가 이끄는 제3지대가 낙하산 강하 폭파,암호 무전통신 등 특수전훈련을 받았다.그리고 8월 11일을 국내진공일로잡고 작전계획을 세웠다.그러나 8월 9일,원자폭탄 세례를 받은 일본은 연합국측에 무조건 항복을 통고함으로써 광복군의 국내 잠입작전은 무산되고 말았다. 취재진은 당시 제2지대 본부 겸 훈련소가 있던 곳을 찾았다.그곳은지금은 두곡 양참(糧站)이라 불리는 곳으로 서안시 양식국의 창고로변해 있었다.당시의 자취는 없고 창고건물에 둘러싸인 1,000여평의마당이 옛 모습을 암시할 뿐이었다.사무실로 들어가서 책임자인 진강정(陳康正) 참장(43세)을 만났다. “한국손님들이 더러 찾아옵니다.지난해에는 원로 몇 분을 모시고온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구보도 했지요” 문화혁명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노예묘’라는 상당히 큰 규모의도교사원이 있었는데 문화혁명때 완전히 없어지고 양참이 들어섰다고 한다.그는 측백나무 소나무 등 나무들이 우거져 거주지로 삼았던 것같다며 멀리 건너다보이는 종남산 아래에도 절이 있었다고 말한다.광복군 OSS 훈련대원들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종남산 아래 종남사라는불교 사찰에서 훈련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두곡 양참을 둘러본 취재팀은 그곳에서 2㎞ 떨어진 인근의 흥교사(興敎寺)를 찾아갔다.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났던 고승 현장법사(玄裝法師)의 사리를 모신곳인데 신라유학승 원측(圓側)탑이 현장법사의 탑 옆에 천년의 세월은 안은 채 서있다. 그곳에서 차를 돌려 시내로 들어가는데 진 참장이 두곡에 있던 옛날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들려준 가슴아픈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예전에 한 한국인이 아이를 데리고 와 훈련받다가 그곳을 떠날 때 남겨두고 갔는데 아이는 그후에도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는 것이다.광복군 아버지가 남겨둔 그 어린 아이는 그 후 어찌 됐을까.지금 살았으면 아마 50살도 넘었을 텐데….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취재진은 서안 시내로 들어갔다.전지공작대와 광복군 전선사령부가 있었던 자리를 찾기 위해서 였다. 전지공작대는 1939년 11월 중경에서 나월한·김동수·김인 등 청년투사들이 조직한 아나키스트성격이 강한 단체였다.그들은 일본군 점령지 교란작전을 위해 전선에서 가까운 서안으로 이동,중국군 전시간부훈련단 안에 한국청년특별반(약칭 한청반)을 만들었다.수료생들은소위로 임관되고 뒷날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에서 큰 역할을 했다. 서안 성내 이부가(二府街)29호,전지공작대가 주둔했던 자리는 중급인민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같은 골목의 4호,옛 광복군 전선사령부가 있던 장소는 유명한 당대(唐代)의 유물인 종루(鐘樓)로 향하는 길을 넓히면서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전지공작대원들이 장교교육을 받은 ‘한청반’ 자리는 지금의 서북대학 안에 있었다.백양나무 그늘이 시원한 현장을 찾으니 연병장은 잔디가 깔려 있고 일부는 도서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당시의 사열대는 국기게양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서안시내의 유적을 찾아본 뒤 취재팀은 한밤중에 침대열차를 타고중국 공산당 혁명성지인 연안으로 떠났다.연안은 서안 정북 방향,깊숙한 분지에 있다.중국 공산당의 장정(長征)과 관련깊은 곳이다.1934년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 홍군 30만명은 국민당의 공격을 피해 화남(華南)의 비옥한 근거지를 버리고 행군을 거듭,최후의 근거지인 연안에 도착했다.남은 병력은 3만.그러나 모택동은 이를 기반으로 국민당 군대에 저항하고 항일전을 전개하면서 재기하는데 성공한다. 1930년대 후반 김원봉과 의열단원들은 발전적으로 해체,조선의용대를 만들었다.우리동포들이 많이 이주한 화북에 진출해서 투쟁한 대원들을 화북지대라 불렀다.그들은 김원봉이 이끄는 대본부가 광복군으로 통합되자 화북독립동맹 산하의 조선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 공산군인 팔로군의 지원을 받으며 인근의 태항산에서 싸우다가 연안으로 들어가서 해방을 맞았다.독립동맹의 대표는 유명한 국학자인김두봉,조선의용군 사령관은 김무정이었다. 침대열차는 에어컨이 잘 들어왔고 시설도 좋은 편이었다.이따금 터널을 달리는 듯 소리가 커져 잠을 깨곤 했는데 둔중한 느낌을 주며용을 쓰듯 달리는 것으로 보아 끊임없이 경사진 고원을 오르는 듯 했다.차창으로 새벽빛이 스며들어 창문을 여니 보이는 것이라곤 황토뿐이었다.벼랑에 뚫린 구멍이 있어 눈여겨 보니 그게 유명한 토굴집인 요동(寮洞)이었다.연안역 앞에서 만두로 아침을 때운우리는 조선의용대와 독립동맹이 있던 라가평(羅家坪)마을을 찾아갔다. 라가평 마을은 연하(延河) 위에 놓인 다리 건너에 있었다.마을어구비탈에 기념표시판이 있어 다가가 보니 조선혁명군정학교 자리 표지석이었다.먼지가 일어나는 비탈길을 올라 노인을 찾아 물었다.83세의 고영유(高零有)노인은 벼랑에서 가장 높은 곳을 가리켰다.모두 8개의 요동이 보였다.그곳에는 8개의 요동을 포함 모두 20여개의 요동이 있었는데 군정학교와 독립동맹,조선의용군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요동은 아무 보존조치를 취하지 않아 무너질듯 위태해 보였다. 다시 연하를 건너 동북쪽으로 달려가면 교얼구로 갔다.길가 버스정거장 장려한 천주교회당이 보였다.그것이 유명한 노신기념관으로 옛날에 노신예술학원으로 사용한 건물이었다.최근 다시 예술학원이 개교해 교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가 김산(金山)을 처음 만난 도서관은 여학생들의 기숙사가 돼 있었다. 취재팀은 밤 기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넉넉해 연안 서북쪽에 위치한 중국공산당의 여러 근거지중 모택동이 교시한 ‘문예강화(文藝講話)’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양가령(楊家嶺)을 돌아봤다.이밖에 연안시내 중심가에는 항일군정대학의 옛터가 보존돼있는데 이곳은 김산이 일본의 첩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숙청될 때까지 ‘일본경제사’를 강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안(중국) 박찬기자 parkchan@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 (18)나그네살이

    *밤새 플라멩코춤 이방인도 한식구 올리브축제. ‘페데리고 가르샤 로르카’는 안달루시아의 시인이다.파블로 네루다와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집시 노래집’이 유명한 시집이고 ‘피의 결혼’이나 ‘베르나르도 알바의 집’ 같은 희곡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 공연 되었다.그는 ‘집시마차’라는 문화패를 이끌고 벽촌을 찾아 다니며 안달루시아 빈농들을 위해서 공연했다.내전 중 그라나다 부근의 마을에서 프랑코의 파시스트들에게 피살된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작은 언덕이나 골짜기마다 우리네 산골 마을 같은 작은 동네가 나타나곤 했다.거의가 산등성이에 올리브 농사를 짓고 있어서 작은 터전마다 올리브 나무가 빽빽했다.올리브는 절여서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름을 짠다.지중해 연안 나라들은 모두 올리브 기름으로 조리하고 샐러드를 무친다. 올리브 기름은 아직 덜 익은 것을 따서 짜야 최상급인데 거의 푸르스름한 녹색을 띠며 익히는 용으로 쓰지않고 싱싱한 채로 음식에 쳐먹는다.멀리서 보면 우리네 지리산 산자락에 붙은 작은 산골 마을처럼보인다.여기 아이들도 또한 눈이 새카맣고 머리가 곱슬곱슬할뿐 표정이나 장난끼 어린 웃음이 우리네 촌 아이들과 똑 같아 보인다. 이런 마을들을 지나다가 때마침 올리브 축제가 열린 마을에 당도하게되었다. 마을의 중심부에 제법 너른 광장이 있었고 앞쪽에 일 미터쯤되는 높이의 무대를 설치해 놓았고 광장 둘레에는 둥글게 나무 의자와 길다란 나무 탁자를 놓았다.가운데는 역시 둥글게 비워둔 셈이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올리브 축제는 온 마을이 협동해서 올리브를 딴뒤에 밤새도록 마시고 춤추며 노는 행사다.이런 잔치는 또 우리네가그렇듯이 타관의 나그네나 이방인도 한 식구로 받아들인다.탁자 위에는 포도주와 통밀 빵이 있고 이 동네 특산물인 햄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서로 자기네 테이블로 오라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웃음소리를헤치고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을 향하고 앉았다.앉자마자 사방에서 잔을 권하고 포도주를 따라 준다.무대 위에서는 플라멩코 가수와무희들이 손뼉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있다.근방 마을에서 온 집시들이다.그러나 그들의 노래 솜씨에 못잖은 마을 사람 누군가가 올라가서 차례로 뒷소리를 이어 받는다.빠른 박자의 박수치기는 옆사람이 하는 시늉을 따라서 해보면 쉽게도 비슷한 신명나는 소리가 난다. 남자들은 프릴이 달린 소매 넓은 흰 셔츠에 허리가 꼭 끼는 검은 나팔바지를 입고 발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여자들은 원색의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치맛자락을 쳐들고 흔들면서춤을 춘다. 탬버린이 흔들린다.주위에 둘러앉은 마을 사람들이 취기가 돌고 신이 오르면 가운데의 빈터로 나가서 플라멩코 춤을 춘다. 이런 밤에 포도주를 마시고 구수한 통밀 빵을 손으로 아무렇게나 뜯어 먹고 간간이 전채로 잘 먹는 ‘멜론 콘 자몬’을 먹는다.스페인의훈제 햄은 유명해서 대도시의 의류를 파는 상가들 틈에도 진열창에줄지어 매달린 돼지의 뒷다리를 볼 수 있다.바싹 훈제하여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기름기가 완전히 빠진다고 한다. 이것을 날 것인 채로 얇게 썰어 놓으면 젖은 종잇장처럼 보인다.서양참외인 스페인 멜론은 전 유럽에서 유명할정도로 달고 향기롭다. 기후가 건조하고 햇빛이 강열하기 때문이다.가뭄에 과일이 잘 익는다는말처럼. 붉은 주황색 속을 가진 것도 있고 우리네 청참외처럼 푸른속도 있고 흰 속도 있다.생햄에는 푸른 멜론이 보기에도 좋고 입맛도난다. 스페인의 한달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으랴.시에라네바다의 정상을차를 몰고 넘던 생각이 난다.몇 시간이고 꼬불거리며 비탈길을 느릿느릿 올라가서 제법 너른 공지에 이르렀는데 노랗게 마른 풀들만 조금씩 보였고 한라산 백록담만이나 한 아담한 분화구 연못이 있었고주위의 그늘진 곳에는 두터운 얼음이 남아 있었다.물은 푸르고 맑았다.가운데는 제법 깊어 보였다.부랑자와 나는 기념으로 발가벗고 그순수한 물에 뛰어들어 잠깐 수영을 했다.산을 넘어 코르도바 쪽으로가면서 생각해보니 스페인에서 파는 생수의 이름이 ‘아구아 데 시에라네바다’인 것이 생각났다.‘시에라네바의 물’이란 소리다.이를테면 모든 스페인 사람이 마시는 물의 원천지에서 못된 짓을 하였으니추방감이다. ‘파에야’는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알려진 음식이다.우리식으로 보면‘해물밥’인 셈인데 누구나 먹어 보면 집에 돌아가 다시 해 먹고 싶은 만만함과 친근한 느낌이 든다.파에야라는 말은 밑이 넙적하고 둥근 프라이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조개,홍합,왕새우 등속과 닭날개등을 재료로 한다.붉은 피망과 양파,마늘은 다져서 쓴다.해물은 따로마늘과 화이트 와인을 넣어 타임 잎을 넣고 끓여 익혀 두고 국물은따라 둔다.새우는 살짝 볶아 둔다.닭날개는 양파 마늘을 넣고 볶아서쌀과 토마토와 피망을 넣는다.모든 준비한 재료를 쌀 위에 얹고 준비해 둔 닭국물과 해물 국물을 자박자박하게 부어서 익힌다. 중앙 고원 지대의 알려진 음식은 ‘아사도’인데 새끼돼지의 통구이다.갖 태어난 돼지새끼는 어미의 젖 밖에 먹은 것이 없어 고기가 매우 연하고 정갈하다.‘엘 쿠아르토데 아사도’는 새끼양 다리 로스트인데 마늘 소금 후춧가루로만 양념하여 샐러리 당근 양파를 깔고 오븐에 고르게 구은 것이다. 말라가의 해변 좌판에서 링이 되도록 둥글게 썬 오징어 튀김과,정어리 튀김에 새우와 조개를 넣고끓인 ‘살스에라’를 먹던 생각이 난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과 동굴에서 집시 가족이 부르던 플라멩코도생각나고,고성이나 수도원을 호텔로 만든 호화판 파라도르의 방 창문으로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던 일,그날 아침에 전통 복장을한 웨이터들이 뷔페를 차리던 것이며.마드리드에 심야에 도착했을 때레스토랑은 모두 문을 닫았고,어느 노천 카페에 앉아‘마늘 수프’를먹었다.그야말로 우리 뚝배기처럼 생긴 볼에 뜨거운 수프와 빵을 내왔는데 어두워서 내용물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묵은 치즈 냄새며 마늘이 어우러져 된장찌개 맛이 났다. 황석영.
  • 관악구, 학습장·주민쉼터 제공

    ‘아파트 숲속에서 자연을 체험하세요’ 서울 관악구(구청장 金熙喆)가 최근 봉천2동 일대 대규모 아파트단지내에자연체험학습장과 주민쉼터를 만들어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관악구는 연인원 350명의 공공근로인력과 450만원의 저예산을 투입,자투리땅 100평을 이 시설을 일궈 만들었다. 50평의 자연체험학습장에는 1,000여송이의 꽃과 참외 수박 가지 고추 오이등 17종 500여본의 채소가 심어져 있어 학생들이 도심속에서 자연을 체험을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주민쉼터에는 수령 40년된 은행나무를 심고 18개의 원형 벤치를 설치,주민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만들었다.특히 쉼터 주변에는 대형 산수화 등 7폭의 벽화를 그려놓아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7)잃어버린 먹거리

    최초의 도시락은 아마도 주먹밥이었을 것이다. 집 부근의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 아낙네들이 대광주리나 채반에 밥과 반찬을 얹어 나르던 일은 오래된 행사였을 터이다.조선 시대의 민화에보면 들밥 먹는 그림이 심심찮게 나온다.춘향전에도 걸인 차림의 어사또가들밥을 얻어 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나도 예전에 남도를 방랑하던 청소년 시절에 들밥을 종종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당시에는 아직도 농촌이 별로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여름철에는 대개가 푹 삶아 퍼진 보리밥을 먹었다. 깡보리도 있고 이밥에 보리를 나우 섞은 밥도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아도 호박나물이나 알감자 조림 또는 가지나물 등속의 맛이라든가 상추며 깻잎이며데친 호박 잎에 장을 쳐서 풋고추 툭 부러뜨려서 싸먹던 기억이 새롭다. 들밥은 품앗이나 두레로 이루어진 공동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였다.한 마을에서 집집이 돌아가면서 여럿의 농사 일을 협동하여 서로 해주는데 이 때에 새참이나 끼니도 공동으로 해결하였다.비록 햇보리밥에 제철 푸성귀 뿐이었지만 인심은 풍성하여 일하는 남정네는 물론이고 부엌 일을 거드는 노약자나집에서 놀던 어린 것들까지 손목 잡혀 나와서 함께 먹었다.그뿐인가,지나는나그네라도 보이면 서로 손짓하여,들밥 좀 같이 자시고 쉬어서 가시라고 불러대는 것이었다.들밥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인데 대광주리에는 식반찬과 함께 닷되들이 술병이 들어있다.밥 먹으랴 서로 권커니 잣커니 하는 밥주발의 막걸리 마시랴 하다보면,식곤증으로 축 늘어져서 제각기 땡볕을 피하여 나무 그늘을 찾아가 짧은 낮잠 한 숨을 부치게 된다.담배 한 두어 죽 피울만치 오침을 하고나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 아침처럼 새로운 기운이 부쩍난다. 덧붙여 말하자면,이제 이러한 들밥은 사라져 버렸다.요즈음은 농촌에서도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하루 일당 노임이 전국적으로 또박 또박 정해져 있고 서로 나누는 인심 따위는 없어졌다.들에서 일하다가 핸드폰으로 짜장면 시켜 먹고 커피까지 배달해다 먹는다.새참이라고 하여도 대광주리로 이어나르는 일은 없고 빵이나 우유나 코카콜라 음료수가 나온다. 집 근처에서는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들밥을 어울려 먹었지만 혼자서 깊은산에 나무나 약초를 하러 간다든가 먼길을 떠날 적에는 주먹밥이나 떡이나곡물가루 같은 비상식량을 해가지고 다녔다.옛날 전쟁 기록에서도 그렇고 구한말 동학사 같은 데서 보자면 병정들도 마찬가지였다.밥을 주먹만하게 뭉쳐서 가운데에다 장을 찍어 바르거나 소금을 적당히 풀어 놓은 물에 두 손을담궜다가 간간하게 밥을 뭉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육이오 때에는 나도 그런 주먹밥을 먹은 기억이 있고 전선의 군인들도 고지 위로 보급 되어 올라온돌처럼 얼어붙은 주먹밥을 으깨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동양에서는 봉건시대의 전형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까지도 주먹밥 문화가 생생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주먹밥과 다꾸앙은 사무라이의 야전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김밥이나 각종스시의 원형도 그러할 것이다. 주먹밥에서 시작하여 가랑잎,연잎,파초잎,호박잎 같이 넓적한 나뭇잎에 밥을 싸서 간수하는 데서부터 베보자기나 헝겊에 싸기도 하다가 도시락이 탄생한다. 도시락은 대나무나 왕골이나 덩굴 줄기로 작은 고리 상자를 짜서 만들었다. 이것을 허릿춤 또는 지게 모퉁이에 매달기도 하고 일터에 가서는 바람이 잘통하는 서늘한 나뭇가지에 걸어 놓기도 하고 옹달샘에 담궈 두었다. 하여튼 입맛이란,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과 노동을 한 뒤의 것이 훨씬 맛있고풍성한 자연 속에서는 더욱 살아나기 마련이다. 우리 기억 속에 ‘도시락’은 우리말 가꾸기로 나중에 바뀐 말일뿐 그 맛과함께 남아있는 말은 일본 말인 ‘벤또’였다.근대를 일제의 식민지로 치뤄낸 우리의 점심 문화는 벤또로 시작했던 것이다.즉 직장이며 학교며 근대적 의미에서의 일터란 모두 일제가 가져온 것들이었다.알미늄으로 만든 그릇들을총칭해서 양은 그릇이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아르마이또 라고 불렀다.아낙네들은 일터에 나가는 가장에게 알미늄으로 만든 깊숙하고 네모난 벤또를 작은 손수건만한 보자기에 싸서 주었고 남정네는 제 점심을 자전거 화물칸 위에얹고 출발했다.퇴근 길에는 빈 벤또 속에서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딸그락거렸다. 나는 소학교 시절부터 장성해서까지 오랫동안 이 벤또를 ‘까먹고’ 하루를보냈다.겨울날 조개탄 난로 위에 이것을 층층이 올려놓고 식은 밥과 김치를데워 먹던 생각이 난다. 도시락 반찬의 변천사도 만만치 않다.반찬 칸이 밥과 함께 있던 터라 뭔가양이 적으면서도 짭짤한 것이 필요했다.김치가 도시락 반찬의 대종을 이루었지만 때로는 멸치볶음이니 콩자반이니 각종 건어조림이나 어포 볶음 등이 많았고 해방 뒤에 무슨 서양요리처럼 등장한 계란 프라이는 밥 위에 그대로 얹어서 부잣집 반찬 행세를 했다.그러나 어디 우리네 전래의 장아찌에 비길만한 도시락 반찬이 있을 건가!철철이 나오는 채소와 해물을 뒷뜰의 장독대에 있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덜어내어 담궈 두기만 하면 되었다.대개는 한 해만 묵히면 깊은 맛에 쫄깃하고 아삭거리는 장과를 만들 수 있었다.채소를 일단 소금에 절여서 풀을 죽이거나 수분을 줄이고 간이 배게 한 다음에 장에 박거나 담근다.가장 기초적인것이 무나 마늘이나 오이를 된장 고추장 그리고 간장에 담그는 것이다.특히된장과 고추장에박은 무는 노랗고 발갛게 색깔이 서로 다르고 맛도 다르다. 소금에 절이기만한 오이와 무도 담백한데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쳐서 무치기도 한다.마늘과 마늘쫑은 각각 간장과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이 다르다.더덕은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있고 풋고추와 깻잎은 간장에 담근 것이 맛이 있다.감이나 오이 참외 가지 등속은 된장에 담그면 아삭거리고 깊은 맛이 든다. 무말랭이는 간장에 담았다가 무칠 때에 고춧가루 등속을 쓴다.김이며 미역다시마 등속은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있다. 작년에 제주도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망명과 투옥으로 십여년 이상이나 국내여행을 못했다가 오랜만에 찾아가니 친구들이 반겨주었다.하루는 나를 바닷가의 사라봉으로 점심 초대를 하길래 따라 나섰다.몇집에서 그날 먹으려던음식들을 제각기 싸가지고 나왔는데 모두 싱싱한 푸성귀에 짭쪼롬한 밑반찬종류였다.콩잎에 멸치 젓을 넣어 밥을 싸먹기도 하고 잘게 토막쳐서 양념에버무린 자리돔을 상추에 싸먹기도 하였는데 특히 입맛을 돋구었던 것은 된장에 버무려 담은 제주도식의 갓김치였다. 하여튼 돌아온 뒤에도 그런 소박한 반찬을 싸들고 집 부근으로 나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취미가 생겼다.또 달랑 제 식구만 나가는 게 아니라 이웃이나 친구 가족도 불러서 함께 갔다.어떤 날은 옛날식 양은 도시락에 짭짤한 밑반찬과 밥을 싸서 하다못해 동네 공원에 나가서 먹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어지게 지글지글 구어서 독주에다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기계 틀어놓고 법석댄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서로 담 넘어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황석영
  • [황석영의맛따라추억따라](2)노티맛으로 이산가족의 연줄이어

    어머니는 목사이며 교육자였던 집안의 둘째 딸이었다. 큰오빠가 있었고 위로 맏딸인 언니가 있었으니 형제들 순으로 따지자면 셋째인 셈이다.어머니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고 남동생이 하나 있었단다.그러니까 딸 넷에 아들 둘,모두 육남매였다는데 내가 어릴적에 부모님이 월남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본적이 없다. 그들 중에서 우리 식구처럼 월남했던 어머니의 바로 아래인 셋째 이모와 오라비인 큰아버지(이북에서는 외삼촌의 경우에도 큰아버지라고 부른다)만을알고있을 뿐이다. 셋째 이모는 딸 하나를 낳았는데 네 살 때인가 죽었다.이름이 인옥이었다.셋째 이모네는 우리 보다 좀 뒤늦게 월남해서 어떻게 수소문을 해가지고 우리동네에서 가까운 이웃 동네로 이사를 왔다.이모부는 몸집이 마르고 얼굴도창백한 병약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옥이도 보채기를 잘하고 병치레를 많이 했다.내가 여섯 살 때였으니까 나하고는 아마 두 살 차이가 날 것이다. 인옥이는 오빠 오빠,하면서 나를 따라다녔고 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 로타리를 한바퀴 돌아오려고 출발하면 징징 울면서 쫓아왔다.이모부는 그래서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그 애가 죽었을 때 이모네 집에 가보았는데 비좁은 마당이 있는 방 세 칸짜리 한옥이었다.맞은편 담 가에 우리 집 뒷마당처럼 일년초가 피었는데 분꽃이 빨갛게 피어 있던 게 기억난다.이모부는 마루에 앉아서 술에 취한 채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고 이모는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그들이 살던 마루의 건넌방 미닫이가 열려 있었는데 멜방처럼 광목끈을 매어 놓은 작은 널판자의 상자가 보였다.나는 그것이 뭔지 대번 알아보았다.어릴적에 인옥이 생각만 하면 후회했다.자전거를 좀 많이 태워줄걸. 어머니의 오라비인 큰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의사였다.내가 오래 전에 그분을 빌어서 ‘한씨년대기’라는 중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전쟁이 터지고나서 1.4후퇴 때에 우리 식구는 대구로 피난을 갔다.대구 역에서 중앙통은 그때에도 제법 대도시처럼 붐볐는데 아버지와 내가 둘이서 길을가다가 큰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큰아버지는 멋쟁이었다.그이는 어머니처럼 키가 크고 굽실굽실한 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는데 깃이 넓은 헐렁한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안에는 당시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목 앞에 단추가 달린 국방색 털쉐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앞에서 우리를 지나쳐 가려던 키 큰 남자가 우뚝 섰다.두 사람은 잠시 그대로 서서 외마디 고함을 지르더니 서로 부둥켜 안았다.그래서 어머니는 오라비와 바로 손아래 여동생을 가까이 두고살수가 있었다. 셋째 이모는 교사가 되었는데 중년에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았다.이모부가 다른 데서 아들을 낳고 살림을 따로 냈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소설에 썼던 대로 오십년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허무러졌다. 그를 고용했던 무면허 의사의 모함으로 동창생들과 술자리에서 말 몇마디 한 것으로 반공법에 걸려서 호된 고문을 당했다.그리고는 다른 죄목으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뒤로 세상살이에 뜻을 잃어버린 듯했다.그이도 두 번인가재혼을 하더니 말년에 딸 하나 보고 외롭게 살았다.그들은 요즈음 말로 이산가족 일 세대인 셈인데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러한 쓸쓸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노티’ 때문이다.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먹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했다는 그것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잊고 있었다.어머니쪽 외가 식구들이 영등포에 모여 살 적에는 추석이나 설이 되면 꼭 이틀 밤낮을 모여서 명절을 같이 쇠고는 했다.좁아 터진 집에 세 집이 모이면 불편할 것 같지만 이모는 독신이고 큰아버지도 그때는 아직 혼자여서 다른 집처럼 아이들로 붐빌 것도 없었다.큰아버지는 노상술만 마셨는데 그의 주정을 아버지 혼자 다 감당하곤 했다.그는 언제나 술이취하면 어머니에게 성화였다. 야야 노티 좀 해먹자꾸나. 오라반두 참…여게 어디 고향 같은 기장쌀이 있습네까. 어쨌든 어머니가 그 무렵에 구정 설이 되면 찹쌀을 빻아서 노티를 했다.그렇지만 나는 그 맛을 잊고 지냈다.아마도 약과 비슷한 것도 같고 모양은 지짐이(녹두 빈대떡) 비슷했을 것이다.얼마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나는 장성해서 떠돌다가 뒤늦게 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는 그동안한번도 노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재봉틀을 돌리거나 뜨개질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워낙에 말 재간과 기억력이 대단한 분이라 도깨비 이야기며 소설책 이야기며 고향 이야기들이 재미 있어서 나는 졸린 눈을 부비며 자꾸 되묻고는 하였다. 당신이 어릴 적에 형제들과 방에서 하던 놀이도 많이 배웠다.팥을 쪼개어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그 안에 집어 던지는 벼룩이 윷이며,남포불이 비춘 벽위에다 그림자 놀이를 하는 법이며,서로 다리를 포개고 헤아리면서 ‘한알대 두알대 삼새’하다가 끝나는 다리의 임자가 술래가 되는 놀이며,손을 서로잡고 엄지 손가락을 세워서 상대방의 엄지를 찍어 누르는 엄지 씨름,뭐 끝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남 것은 과일도 밭 작물도 별로 맛이 없다고,이를테면 내가 참외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도 그런 식으로 입맛을 버려 놓고는 했다.나중에 커서야 그게 일리가 있음을 알았다.어머니의 입맛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였던 셈이기도 하고,또한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위도나 기후 상으로도 그렇고 논 보다는 밭이 많던 북선 지방의 작물이 맛이 월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그 맛도 잃었던 나는 팔십 구년에 방북했을 적에 기적처럼 노티와 만나게 된다. 누나와 내가 어렴풋이 기억한 외가 식구들과 사촌들의 이름을 적어 갔는데정확하게는 큰외삼촌네 아들 형제들,그러니까 내 사촌 형제들과 어머니의 여동생인 막내 이모를 찾았다.막내 이모네도 아들이 셋에 딸 하나가 있었다. 고려 호텔의 지정된 방에 갔더니 낡은 한복 차림의 할머니가 낯선 형제들과앉아 있었는데 나는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이었다.어쩌면…돌아가신 어머니가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닌가.어머니의 말년 모습과 똑같았다.울고 불고,서로소식 묻고,형제들 소개하고,그런 법석을 하다가 차츰 침착해졌다.나는 특별히 시내에 있는 사촌 맏형의 집에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서 밤늦게까지 이모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물론 어머니의 임종 얘기와 노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떠나오던 날 이모는 사촌들과 순안 비행장에 배웅을 나왔다.헤어지기전에 휴게실에서 이모가 푸른색 보퉁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개져다 먹어보라. 그게 노티였다.나는 비행기 안에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두 개나 먹었고 북경에서 나머지를 다 먹어 치웠다.이모가 일러준 대로 한번 만들어 먹어 볼작정이지만 내 기억이 맞는지는 잘모르겠다. 요즈음은 구수한 기장쌀을 구하기 힘들테니 찹쌀을 빻아다 시루에 찐다.엿기름가루에 물을 내려 우려낸다.익은 찹쌀가루와 엿기름가루를 섞어,우려낸 엿기름 물을 붓고,소금 간을 하고 참기름 넣어서 반죽을 한다.반죽을 아랫목에 한 두 시간 덮어 두어 삭힌 다음에 손바닥만한 크기로 약한 불로 지져낸다. 이것을 식혀서 꿀에 재어 항아리에 채곡채곡 넣어서 장독대에 내다 놓고 먹는다고 한다. 순안 비행장에서 막내 이모와 그렇게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그로부터 석 달 뒤에 이모는 이산가족 일세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세상을 떠났다.나의 어거지 방북으로 겨우 혈육의 연줄을 이은 셈이다. 어머니의 언니인 큰이모와 남동생은 진작에 전쟁 때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어머니가 갖고 있던사진은 본 적이 있었다.큰이모는 여학생 때부터 광주학생사건 등이 전국으로 번졌을 때 주동자 노릇을 하더니 일찍이 만주로 달아나서 독립군에 들었고 해방이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언니가 어찌나 노티를 좋아했던지,겨울 밤에 몰래 장독대에 나가 동생들 몫까지 먹어치우는 바람에 둘째 딸인 어머니와 다투곤 했다고 하는데. 황석영
  • 5월 소비자물가 내렸다

    실물경제의 과열기미가 진정된 가운데 물가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31일 발표한 5월 중 물가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전달에비해 0.1% 하락하고 지난해 말보다는 0.3%,지난해 같은달보다는 1.1% 각각상승하는 데 그쳤다.지난해말보다 0.3% 오른 것은 65년 물가통계 작성 이후가장 낮은 수치다. 5월 중 물가가 떨어진 것은 개인 서비스요금,집세 등이 소폭 상승했으나 석유류 등 공업제품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6월에는 유가상승 영향으로 일부 석유류 제품 가격이 오르겠지만 농축산물 가격 안정으로 소비자물가는 소폭 상승에 그쳐 올 상반기중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 정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부문별로 보면 농축수산물은 참외,배추,돼지고기 등이 올랐으나 열무,파,호박 등이 하락해 지난달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공업제품은 의류가격이 상승한 반면 휘발유 등 석유류와 금반지 가격이 떨어져 전달보다 0.1% 하락했다. 공공요금은 이동전화료가 12.6% 떨어졌으나 일반 시내버스 요금 인상등으로 0.1% 상승했다. 집세의 경우 전세 0.1%,월세 0.2%가 올랐으며 개인 서비스요금도 입시종합학원비 0.2%,외국어학원비 0.5% 상승 등의 영향으로 0.1% 올랐다.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과 같았으며 월 1회 이상 구입하는 품목을 대상으로 한 구입빈도별지수는 0.3% 상승했고 계절적 변동이큰 생선·채소·과실류를 대상으로 한 신선식품지수는 1.3% 하락했다. 생산자물가는 석유·화학제품을 중심으로 공업제품 가격이 하락해 전달보다0.3% 하락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2% 상승했다. 손성진기자 sonsj@
  • 대한매일을 읽고/ 수박·참외·딸기 ‘열매채소’로 표기해야

    ‘아이들과 딸기 간식 만들어 보세요’라는 제하의 조리법 설명 중 ‘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과일은 바로 딸기’란 기사(대한매일 9일자 18면)를 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딸기나 수박,참외 등을 과일로 알고 있다.그러나 과일류란 다년생의 유실수 열매인 사과나 배,감,복숭아 등을 일컫는 것이고 우리가 통상 과일로 지칭하는 수박이나 참외,딸기는 줄기에서 열리는 채소류로서열매채소류에 속한다. 또 수박이나 참외 등은 열매채소류라는 표현 외에 ‘과채류’나 ‘원두’라는 표현도 있다.수박밭이나 참외밭에 지어놓은 막을 원두막이라고 부르는 것도 원두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실생활에 별 불편이 없다 하더라도 초등학생들의 올바른 학습을 위해 수박이나 참외,딸기 등은 반드시 열매채소나 과채류,원두로 정확하게 표기해주길바란다. 차형수[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 민중가수·노래패 “새앨범 향해 진군”

    민중음악을 표방하고 나선 곽주림,김호철,이지상 등 한국민족음악인협회소속 가수들이 일제히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 운동권 가요의 ‘2000년대 버전업’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로고송 ‘바꿔’를 불러 주목받았던,대학노래패 ‘조국과 청춘’출신 곽주림은 여성로커로서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 독집을 12일부터녹음한다.“음악으로 승부하겠다”며 극구 내용 공개를 꺼리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조국과 청춘 분위기의 노래들과 ‘노란 참외’ 등이 수록될 예정이다. 역시 같은 단체와 ‘노래마을’ 소속이었던 손병휘가 포크를 기조로 한 프로그레시브 분위기의 새 앨범을 만들고 있다.도종환 시 ‘오늘 하루’와 안도현 시 ‘그대를 만나기 전에’ 등을 담아 5월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전대협노래단 준비위 출신으로 손병휘와 함께 작업했던 이지상은 ‘사람이사는 마을 2집-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에서 치열한 삶의 뒤안길에서 고통받는 공허와 허무에 대해 노래한다.백창우,정지원,신동호,민병일 등의 시에 곡을 붙여 조선독립군 출신 노인과 북한동포,기지촌 여성으로 살다 미군에 의해 살해당한 고 윤금이씨 사연 등을 노래한다.‘통일은 됐어’‘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철길’등. 노래마을에서 활동하고 ‘산책’ 영화음악에도 참여했던 윤정희도 서정적인삶과 희망을 노래한 앨범을 기획 중이다.가장 고전적인 의미의 민중음악 진영에 속하는 대구지역 노래패 ‘소리타래’는 준비중인 4집 ‘화수분’에서우리 가락과 록리듬의 접목을 꾀해 솔직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다.불러도 불러도 지치지 않는 희망의 화수분을 퍼올리겠다는 것이다. 80년대 ‘단결투쟁가’‘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등 전투적인 노동가요히트곡들을 양산한 바 있고 90년대 들어 인터넷 방송 ‘노동의 소리’를 운영중인 김호철도 박준 2집,박은영,류금신 등의 새음반을 통해 그간 가다듬은목소리를 토해낼 계획이다. 이들의 실험정신이 21세기들어 어떤 변화를 치러낼지 주목된다. 임병선기자
  • 무역의 날 드러난 실적

    ‘개미군단의 약진’ 36회째인 올해 ‘무역의 날’의 주인공은 단연 중소기업이다.대우그룹 해체 등으로 올해 대기업 수출은 0.8% 줄었지만 중소기업 수출은 오히려 10.8%나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주역임이 입증된 셈이다. 때문에 1일 열린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는 지난해 469개에서 34%가 증가한 628개 중소기업이 100만달러 이상 수출한 기업에게 주는 ‘수출의 탑’을 받았다. ?인터넷으로 수출홍보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한우건설기계(대표 양철우)는 해마다 300% 이상의 수출성장을 거듭,올해 2,003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굴삭기 등 건설장비와 유압브레이크를 만드는 이 회사는 중소기업으로는 흔치 않게 인터넷 홈페이지로 해외홍보를 하는 등 선진국 시장을 적극 개척해왔다. ?소량 다품종 등 다양한 전략 케이비씨산업(동탑산업훈장·이영숙)은 오토바이헬멧 하나로 1,088만달러 수출을 일궜다.제품을 전량 수출하고 있으며특히 선진국 수출이 95%나 된다.무전기·MP3플레이어(디지털오디오 재생기)제조회사인메이콤(산업포장·배수원)은 최소 100달러에서 최대 5만달러까지 수많은 품종을 수출하는 ‘티끌모아 태산’전략으로 1,008만달러를 벌어들였다.특히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안 걸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시장이 다양하다. ?틈새시장 공략 스테인리스 진공 보온제품 제조업체인 서울보온(산업자원부장관 표창·박주웅)은 고정관념을 깬 신제품 머그컵으로 미국과 250만개 수출계약을 하는 등 올해 지난해의 11배인 521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오케이지(산자부장관 표창·지옥주)는 방울토마토 토마토 참외 등 채소류 수출로,벤처기업에 등록된 첫 화훼업체인 만경 화훼영농조합(100만불 수출탑·박종기)은 110만달러어치의 한국꽃 수출을 통해 ‘달러 박스’로 자리잡았다.대한성서공회(1,000만불수출탑·이영찬)는 148개국에 성경책 1,394만달러어치를 수출,세계 성서시장의 20%를 장악했다. 나도성(羅道成) 산자부 수출과장은 “세계 무역의 흐름이 다품종 소량주문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대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노리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이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대한광장] 찐고구마·열무김치의 향수

    뜰의 나무들이 죽은 듯 서 있다.하얗게 이글거리는 태양 속에 몸통을 내맡긴 채 차라리 죽여줍시사,열사 직전의 순간처럼 보인다.스쳐가는 헛바람조차한가닥 없고 끝 없는 적막만이 뜰 안 가득 드리워져 있다. 실제 독오른 매미소리가 진작부터 귀청을 뚫고 있는데도 미동이 없는 나뭇잎들 때문인지 사위가 숨을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 꼼짝 않고 마루의 대자리에 등을 누인 채 살인적인 한낮의 폭염을 마당의 나무들과 함께 맞고 있다.눈을 감는다.잦아드는 나른한 의식을곧추세우고 찬 샘물의 물을 퍼올리듯 소년적 고향으로 내닫는다. 벼가 알을 맺는 중복 전후의 한여름이다.수초가 일렁이는 도랑물에서 텀벙텀벙 멱을 감는다.새까맣게 그을은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깔깔거리며개헤엄·개구리헤엄을 닥치는 대로 휘젓는다.그러다 문득문득 수초 사이로물뱀이라도 미끄러져 나올까 겁먹은 큰 눈을 휘번득이며 샅을 오므리기도 한다.발 밑의 새까만 물고동도 잡고 물방개도 잡고 물 위에 띄워놓은 개똥참외를 한입 가득 우적우적 깨물어허기를 채우기도 한다.햇살이 뜨거운지도,한낮이 기우는지도 모르고 도랑가·천변가·강가에서만 온 낮을 보내고 으스름녘에사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간다.감자·고구마 으깬 보리밥 한 그릇에 멸치물 우려낸 된장 한 뚝배기,콩밭 열무김치 한 사발,생된장에 풋고추가 전부인 밥상이 순식간에 바닥이 난다. 어쩌다 장날 저녁 밥상에 댕기머리 같은 새끼갈치 토막이라도 밥상에 오르면 남는 뼈가 없다.삽짝의 검둥이가 뼈까지 부숴 먹는 비린내에 걸신들린 주인가솔들을 조소하며 눈을 흘긴다. 으스름이 스러지고 별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하면 흙마당에 모깃불이 지펴지고 집안은 매캐한 쑥향·잡풀향으로 넘친다.어른들이 하나 둘 담뱃대를 물고 혹은 창호지 부채를 흔들며 마당으로 내려선다.마당에는 대여섯명의 가족들이 쉴 수 있는 시원한 대(竹)평상이 있고 도시에서 친척들이라도 내려오면커다란 멍석이 펼쳐진다. 이웃집 아재 아지매들도 마실을 나온다. 그때부터소박한 화제의 꽃이 핀다.동네소식이며 가족들의 하루 일과 개인신상 이야기가 풀어지면서 좁게는 가족회의,넓게는 동네 사랑방의 정보센터가 된다. 별빛이 좀더 청명해지고 달이 하늘 가운데로 다가들면 어머니와 누나는 김이 무럭무럭 솟는 찐 옥수수와 고구마를 열무김치 한 뚝배기와 내오고,사람들은 담소하면서 그것들을 서둘러 집어든다.꾹꾹 눌러담은 보리밥 한 그릇을언제 먹었느냐는 듯 찐고구마에 열무김치 곁들여,아니면 구수한 옥수수를 입귀가 아프도록 먹어댄다. 그때사 어머니와 누나는 수건 챙겨들고 뒷개울로 멱감으러 나가고 할머니의무릎을 베고 부채바람을 받던 막내는 새근새근 잠이 든다. 이렇게 고향집 하루는 저물고 정이 많은 소박한 사람들은 깊은 잠 속으로 하루의 휴식을 취한다. 눈을 떠본다.여전히 뜰의 나뭇잎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작렬하는 태양 외에사위는 괴괴로울 만큼 적막하다.감나무에 붙은 도시의 매미는 어구차게 울어대도 생명 있는 것의 소리로 가슴에 닿지 않는다.기계의 소음으로만 한결같을 뿐 사방이 시종 막막한 느낌이다. TV를 켜본다.피서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굴러 30여명의 사상자가 나고,승용차와 트럭이 충돌하여 승용차 속의 다섯명이 즉사했다는 보도가 화면 가득펼쳐지고 있다. 물난리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어느 단체회장의 할복(割腹)광경이 화면에비쳐지더니 벌써 옛일이듯 흘러가고 새로운 사고가 줄을 잇는 것이다. 전율스런 사실은,그런 엄청난 사건들에 별다른 잡음이 일어나지 않는 점이다.중추신경 마비나 정신쪽의 별다른 장애도 갖고 있지 아니한데 무감각의증상이 시종되는 것이다. 독오른 매미가 피맺히게 울어대도 사방이 적막할 만큼 고요하게 느껴지던반응과 유사한 것일까.짬만 나면 소년적의 향수를 철따라 떠올린다.그런 향수를 가진 세대인 것을 진실로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납덩이처럼 무디어지는심성을 건져올리려 애를 쓰고 있다.바람 한 점 없는 폭염 속의 이날 한낮처럼.[김지연 작가]
  • 버릴 참외로 식초만든다…경북農技院 기술개발

    상품성이 떨어지는 참외를 이용한 참외식초 제조기술이 개발됐다. 경북도 농업기술원은 20일 2년간의 연구끝에 참외식초 제조기술을 개발,지역 참외 재배농가 등을 대상으로 기술보급에 나섰다고 밝혔다. 특히 참외식초는 전체 생산량의 35%를 차지하는 기형과실 등 상품성이 떨어져 대부분 폐기되는 참외를 원료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끈다. 게다가 경북지역의 참외 생산량은 연간 22만t으로 전국 생산량 29만8,000t의 74%를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이 기술이 보급되면 참외재배 농가 소득향상에 큰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충남 토종 희귀동식물 보존 기획단 구성 서식실태 조사

    충남도는 19일 도 산림환경연구소와 농업기술원 관계 직원 24명으로 ‘토종희귀동식물 발굴기획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기획단은 내년까지 도내 토종 희귀동식물의 서식지와 서식 실태 등을 조사한 뒤 보존대책을 세우게 된다.도는 앞서 교수 등 전문가 자문을 얻어 동물68종,식물 180종 등 모두 248종의 조사대상 토종을 선정했다.선정된 토종 중에는 어름치 수달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천연기념물과 오골계 웅어 황복등이 포함돼 있다. 전래 벼인 다마금과 자주감자,서산종마늘 등과 함께 개구리참외 머루 잔대돌배 할미꽃 금낭화 등도 조사 대상으로 분류됐다. 대전 이천열기자sky@
  • 沿海州의 카레이스키(중)-고려인의 생활상

    “고려인이 손대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 17일 스파스크군의 고려인촌에서 만난 한 러시아 주민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고려인을 칭찬했다. 이 지역에서는 토양과 기후가 맞지 않아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박과 토마토가 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겨울 이곳으로 이주해 온 고려인들이 올 여름수박 등의 과일을 수확했다는 것이다.과일과 야채는 중국산이 있었지만 맛이 없었다.이곳에서 양파와 참외를 처음 수확한 것도 고려인이다.감자 밖에 없던 이곳에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선물한 고려인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다른 일화도 소개했다.한 고려인이 배추를 수확해 시장에 팔러 나갔다.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전에 다니던 야채가게만 찾았다.그러자 이 고려인은 손님들에게 “이 배추와 중국배추를 사다가 며칠 놓아두면 어떤 것이 좋은지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과연 중국배추는 이틀만에 썩기 시작했다.비료를 많이쓴 탓이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고려인들의 배추는 날개돋친 듯 팔렸다. 농사에 관한한 고려인은 연해주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강제 이주된 뒤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언 땅에 씨를 뿌려 벼를 수확한 것은 기적으로평가받는다.연해주 정부도 영농기술과 성실함을 높이 사 고려인들을 환영한다. 하지만 고려인의 생활은 아직 넉넉한 편은 못된다.중앙아시아에서 풍족한재산을 모으지 못한 이들은 집값 등 평균 4,000달러나 되는 이주비를 감당하느라 여유가 없다.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는 사람도 많다.이들은 90년대 초독립국가연합의 형성으로 민족차별이 심할 때 무작정 건너온 사람들이다.재산을 몰수당한 사람도 적지 않다.일부는 러시아 정부가 내준 군용막사에서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민족 동질감을 지켜가려는 그들의 노력은 눈물겹다.농활대 학생들은 이날 밤 ‘고려인 위안 행사’를 열었다.이 자리에서 ‘아리랑 민속무용단’의 6∼13세 어린이들이 보여준 무용은 고려인과 러시아인의 심금을 울렸다.무용단은 김 발레리아(39·여)씨가 95년 어렵게 만든 것이다.90년 연해주로 온 김씨는 “민속과 풍습,고려인의 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그는“중앙아시아에는 민속무용단이 많았는데 당시 연해주에는 하나도 없었다”면서 “고려인은 물론 러시아인들도 우리 춤을 아주 좋아한다”고 전했다.최근에는 ‘고려인 기업가 연합회’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라즈돌노예’에서는 ‘고려인 중심센터’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문화자치주를 만드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지난해 말에는 고려인들의 소식지인 월간 ‘원동신문’이 어렵사리 만들어졌다.기자가 만난 고려인들은 한결같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책이나 비디오테이프를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우리말과 글을 잃은 사람들.그러나 ‘한핏줄’이라는 의식은 분명 살아있었다. 연해주 이지운기자 jj@
  • “각 분야 ‘고수들’ 모여라”…송파구‘으뜸이’선발대회

    ‘신문배달왕,으뜸철가방,구두닦기왕을 찾습니다’ 송파구(구청장 金聖順)가 다양한 분야의 ‘으뜸이’ 선발대회를 열기로 해화제가 되고 있다.주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소외된 직종 종사자들에게 소명감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행사. 구는 1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13개 분야를 대상으로 신청받아 예선과 본선을 거쳐 종목별로 1∼3위를 선발,구민의날인 9월 17일 인증패와 상금을 줄예정이다. 으뜸이로는 우선 수염이 제일 긴 사람,몸무게가 제일 많이 나가는 사람,발이 제일 큰 사람,키가 제일 큰 사람 등 신체와 관련해 4명을 뽑는다. 사과와 참외 등 과일껍질을 가장 예쁘고 길게 깎는 주민도 선발대상이며 팔씨름왕도 뽑는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직업과 관련된 으뜸이.제한된 시간에 가장 많고 깨끗하게 구두를 닦는 사람을 뽑고 자전거를 가장 빨리 해체한뒤 다시 조립하는 주민도 선발한다.자동차 정비사를 대상으로 엔진부품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조립하는 기능보유자도 찾는다. 신문보급소에 근무하는 배달원을 대상으로 일정거리에서 신문을투입함에가장 정확하게 던져넣는 ‘신문배달왕’과 색다른 피자만들기 왕도 뽑는다. 중국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중 손자장면을 만들어 빨리 배달하는 ‘으뜸 철가방’과 벽돌과 시멘트로 집의 모형을 만드는 ‘벽돌쌓기왕’도 선발한다. 조덕현기자 hyoun@
  • [대한광장] 토마토 만세!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토마토’사랑법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제가 왜 토마토를 좋아하는지 아세요?토마토는 겉과 속이 똑같아요.겉이푸를 때면 속도 푸르고,속이 빨갛게 익으면 겉도 빨개져요”.SBS 인기드라마‘토마토’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대사 한 토막이다. “언젠가 토마토를 좋아한다고 하셨죠.저를 토마토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나요? 저도 겉과 속이 똑같아요.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면 안되나요?”이건 남자주인공의 대사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과일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가.잘 익은 수박의 겉모습은 싱싱한 초록빛이지만 절반을 뚝 잘라내면 보기에도 먹음직한 꽃분홍빛이 돈다.사과 역시 새빨간 껍질을 벗겨내면 부드러운 연노란빛 속살이 드러나고,배도 노란 껍질을 벗겨내면 폭삭폭삭 하얀 살에 물이 뚝뚝 들지 않던가. “참외를 잘 고르면 신랑을 잘 고른다더라”하던 집안 할머니들께서 하신말씀이 새삼 생각난다.참외의 겉모양만 보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에 단물이잘 든 참외를 고르기는 정말 쉽지 않다.단내음이 진동해서 샀는데 깎아보면곯은 참외를 고른 경우도 종종 있고,빛깔 좋고 모양새가 잘 생겨 골랐는데오이만 못한 참외가 걸리기도 한다. 참외 하나도 겉 다르고 속이 달라 고르기가 쉽지 않거늘 평생을 함께 할 신랑감 고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울 것이냐,할머니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 백번 옳으신 게다. 미국에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을 일컬어 ‘바나나’라 부른다는 얘기를 들었다.겉은 분명 ‘노란’ 황인종인데 속은 하얀 백인종으로,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복합정체성’(double identity)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무조건백인을 모델로 백인이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풍자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요즘 ‘토마토’사랑법이 인기를 얻고 있음은 겉과 속이 다른 우리 모습을향한 비판이자 반성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우리는 친밀한 인간관계에서부터 사회구조 전반에 걸쳐 겉과 속이 매우 다양하지 않은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자네가 알아서 하게” 했을 때 그 말의 진정한 뜻은 ‘내 뜻을 헤아려서 알아서 하게’이다.‘이번 사건은 유리창같이 투명하게 밝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은 ‘그러고 싶긴 한데 그렇게 하기가 참 어려우니 봐달라’는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전문성을 결여한 장관 인선’운운하는 것도 “여성 장관을 앉힌다는 것은 우리 부의 위상이 낮아진다는 것 아닙니까? 찬밥되는 것 싫습니다”가 보다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또 “여성 중에 그렇게도 인물이 없습니까?결과는 뻔합니다.여성에게 장관을 줘보니,역시 별 수 없구먼….이렇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여성 중에 인물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일할 만한 인물들을 발굴하고,정말로 인물이 없다면늦기 전에 인물을 키워야죠”.이렇게 주장하고 싶은데 차마 여성들간의 싸움으로 비칠까봐 벙어리 냉가슴 앓고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고관 부인들의 고급옷 파동’을 바라보며 그것이 드러내고 있는 현상과숨기고 있는 실재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으리라,심증은 있는데 물증이없어 감히 말 못하노라는 지식인의 기회주의적 속성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얼마 전 여자를 과일에 빗대면서 10대는 호두,20대는 밤,30대는 수박,40대는 석류,하다가 50대는 토마토라 했다.과일도 아닌 것이 과일인줄 알고 과일 전 앞에 올라앉아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맞다 맞아!손뼉까지 치면서 웃으면서도 왠지 씁쓸했었다.그런데 이제는 정말 ‘토마토만세’를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과일인 줄 착각하는 게 아니라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기에 진솔할 수 있고,신산(辛酸)한 삶을 헤쳐나오다 보니 별로 잃어버릴 게 없어진 덕에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시대 ‘보통의 아줌마들’에게 희망을 걸고 싶은 것이다. [咸 仁 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대한광장] 瓜田不納履

    고위공직자 부인들의 옷 로비 미수사건이 온 국민과 정계를 짜증나게 하고있다.대통령이 인용한 청와대 여론조사도,법무부장관 유임결정도 민심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으로 비쳐지면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수사결과는 법무부장관 부인의 잘못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이 사건의핵심적 문제인물의 남편인 법무부장관이 지휘하는 법무부 검사들의 수사는원천적으로 불신의 소이(所以)를 안고 있어 그 결과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있다.검찰청이 아니라 법원이라면 이런 인연이 개재된 관계에서는 충분히 법적인 ‘기피사유’에 해당할 것이다. 법무부장관 부인의 행동거지,수사,유임결정이 다 개운치 않다.법무부장관부인의 행태는 뇌물수수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의심받을 만한 얄궂은 정황에처해 있고 동시에 자기 양심과 숨바꼭질한 흔적도 있다. 수사 행태도 의심받을 만한 정황 속에 들어 있다.대통령 부재중에 법무부장관이 자기직책을 건다는 의미에서 조건부로 사표를 내고 비교적 무관한 지방검사들에게 수사를 맡겼어야 하지 않을까?유임결정도 인사권 방어 논리가 뒤섞인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수사발표 이후 모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75%의 응답자가 법무부장관이 퇴진해야 한다고응답한 것을 보면,대통령이 인용한 청와대 여론조사 결과도 빗나간 것 같다.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상황에서는 오류의 위험이 있는 여론조사보다 고전적 ‘분별력’이 필요한 법이다.‘오얏(자두)나무 밑에서는 관을 고치지 말고오이 밭에서는 신발끈을 매지 말라’는 뜻의 ‘이하부정관 과전불납리’(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라는 옛말이 있다.이 말은 의심받을 만한 정황에서는의심받을 만한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이지만,더 깊은 뜻은 그런 정황을 일부러 피해 마음을 정갈히 하라는 데 있다.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바로하거나 오이밭에서 벗겨진 신발을 줍다 보면,자두나 오이에 손대고 싶은 탐심(貪心)이생기는 법이다. 관을 고치는 척,신발을 줍는 척하면서 자기도 몰래 자두나 참외를 만지작거리다 가까스로 탐심을 억눌렀다 하더라도 그것은 점잖지 못한 ‘양심과의 숨바꼭질’인 것이다.이런 까닭에 공직자윤리강령은 부정부패만이 아니라 이것으로 의심받을 만한 행동도 금하고 있다. 아직도 정권주변에 이하(李下)와 과전(瓜田)은 널려있다.고관 부인들과 재벌부인들이 공용차를 이용해 회동한다는 적십자사 ‘수요봉사회’는 뭐고 ‘낮은 울타리’는 또 뭔가? 정경유착의 제2채널 같아 보인다.의심과 위화감을 조성하는 권위주의 시절의 유산인 이런 작당은 모두 즉각 종식돼야 할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남편이나 부인이 고관이더라도 그 배우자는 평범한 시민이다. 이 민주적 정치규범을 어겨온 세월이 길더라도 이 정부에서는 이 권위주의적 작태를 단절시켜야 한다.유행하는 ‘혈액검사론’에 따르면 사건에 연루된사람들의 남편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권위주의 정권에 봉사해온 사람들이다. 이래서 구태가 반복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만든 정권이고 어떤 성격의 정권인데,구태를 반복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5년,어떤 사람은 10년,또 어떤 사람은 30년 동안 유혈(流血)의 헌신과 무보수 희생을 치러 이룩한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로 탄생한민주정권 아닌가.민주화운동 출신인 한 여당 국회의원은 이 사건으로 인한 따가운 여론의 폭우를 맞고 있자니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그러나 그것은 억울하다기보다 민주화운동 시절 탄압의 편에 섰으나 대통령의 은덕으로 높은관직에 앉고서도 이 은덕에 보답하지 않는 고관들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하루빨리 구태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IMF 고통속에서 이 사건으로 크게 상심한 국민을 위무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용퇴’가 속출해야 한다.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 이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황태연/동국대교수·정치학
  • 자치구 ‘도심속 농심 가꾸기’ 활발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도심 한가운데서도 시골 정취와 수확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파종기를 맞은 요즘 각 자치구들이 빌딩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서울의 도심 곳곳에 주말농장과 자연학습장 등을 속속 개장,주민들을 불러모으고 있기 때문이다.도심속 주말농장과 자연학습장은 일상에 찌든도시민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자연을 배우는 산교육장으로,노인들에게는 유용한 소일거리가 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도심에서 농심(農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강동구는 지난 22일 주택가의 빈터 42곳 2,262평을 찾아 ‘작은 두레농장’을 열었다.호박씨 8㎏,찰옥수수씨 1.8㎏ 등 농작물 씨앗을 구입,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영농기술도 지도하고 있다. 세계 식량의 날인 오는 10월 16일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대상으로경진대회를 열어 우수농작물을 선정,시상하고 생산된 농작물은 경로당이나홀로사는 노인들에게 지원할 예정이다 성동구는 관내 아파트단지 37곳의 자투리땅에 미니농장을 조성했다.고추 감자 등 농작물을 재배해 어린이들을 위한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도시미관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아파트 출입구나 담장에는 넝쿨담쟁이 등을 심고 옥상에는 꽃단지를,도로주변에는 계절별로 꽃을 심거나 화분을 배치해 단지별로 특화된 녹화거리를 꾸민다는 구상이다. 양천구는 지난 24일 신정7동 등 2곳에 1만7,749㎡에 이르는 주말농장을 개장했다.지난달 11일부터 1주일동안 경작희망자 신청을 받은 결과 700명 모집에 1,767명이 신청할 만큼 주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다. 서초구는 원지동 대원농장 등 관내 8개 주말농장의 전체 넓이가 무려 4만3,400여㎡에 이를 만큼 주말농장이 활성화돼 있다.이곳에서 작물을 경작하는‘농민’도 2,150가구에 이른다. 계절별로 봄에는 열무 케일 참외,여름에는 김장용 무 배추 쪽파 등을 재배한다.농장주가 각종 씨앗과 비료,농기구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전문적인 기술도 지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성북구는 동사무소 빈터를 활용해 기른 토끼새끼를 주민에게무상으로 분양,도심에서 양축의 묘미를 맛볼수 있는 색다른 기회를 제공하고있다. 양천구 지역경제과 문병철(文炳哲) 과장은 “가까운 곳에서 농촌생활을 체험하고 향수와 수확의 기쁨도 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