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가미… ‘다양성 수혈’ 미흡
대법관 후보들이 임명되면 대법원의 지형이 바뀐다. 보수 일색에서 중도 성향이 가미되는 형국이 된다. 그러나 대법원의 다양화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0대 남성, 보수 성향의 대법관 일색
이용훈 대법원장 이전 대법원은 보수성향 일색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법관들은 50대 남성으로 법원 안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친 말 그대로 ‘엘리트’들이었다. 여성이나 인권, 노동관련 판결에서 보수적 성향의 판결이 많았다.1·2심에서 아무리 진보적 판결이 나와도 “대법원에 가면 다 뒤집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가보안법과 관련,2003년 6월 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나모씨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한 현수막을 금지광고물로 규정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춘천시장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하급심과 헌법재판소 등에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취지의 판결 및 결정을 이미 내렸지만 최고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의 보수화는 전원합의체를 연 횟수에서도 나타난다. 대법원 한 부에서 소수의견을 낼 경우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가게 된다.1997∼2001년 전원합의체가 열린 횟수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고친 경우까지 합쳐 15건을 넘지 않는다. 대법원에 1만여건의 사건이 처리되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의견이 일치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이전의 대법관들이 보수적 성향을 보인 것은 개인적 배경과 함께 법원의 관료화된 인사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대법관 제청파문’ 이후 다양화 시작
이런 대법관들의 보수화 성향에 변화가 보인 것은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 첫 대법관 인사인 2003년 서성 대법관의 후임인사 때부터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최종영 대법원장이 기존의 관행대로 법원장 3명을 제청자문위원회에 제시했다. 박재승 대한변협 회장과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제청자문위원회가 진행되던 중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판사 144명이 항의서명을 하는 등 ‘대법관 제청파문’으로 이어졌다.
이후 최 대법원장은 전효숙(사시 17회) 당시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한대현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조무제 대법관의 후임으로 40대의 김영란(사시 20회) 당시 대전고법 부장판사를 임명하는 등 여성카드를 꺼내 다양화의 요구에 대응했다.
●이용훈 원장 “대법원 다양화하겠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뒤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대법원 구성을 다양화하겠다.”고 밝혀 왔고 지난해 김황식·김지형·박시환 대법관을 임명제청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당시 이 대법원장은 각각 기존의 관행에 따른 이른바 ‘엘리트 법관’,‘비서울대 출신’, 외부 인사 1명씩을 제청했다.
남아 있는 대법관들을 성향으로 분류하면 보수 4명(고현철, 김용담, 양승태, 김황식 대법관), 중도 3명(이용훈 대법원장, 김영란, 김지형 대법관), 진보 1명(박시환 대법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새로 제청된 신임 대법관 5명도 보수(김능환, 박일환, 안대희, 전수안)가 중도(이홍훈)보다 많다. 이들이 모두 임명될 경우 대법원은 여전히 보수가 8명, 중도가 4명, 진보가 1명으로 보수 성향이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명의 여성 대법관을 비롯해 보수성향 법관 일색의 대법관에서 다양한 출신과 성향의 대법관으로 구성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적 다양성 반영해야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판결의 잣대가 되는 동시에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인생과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오는 결정들을 포괄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사회적 갈등을 재판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 그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대법관의 다양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9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주최로 열린 대법관 후보제청 관련 토론회에서 임지봉 서강대 법대 교수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단순한 판사, 학계, 검사 등 출신 직역의 고려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성향의 다양성”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