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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85㎜포 초반 파괴”

    10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발생한 남북 교전에서 우리 해군이 북한 경비정 ‘383호(155t급)’의 85㎜ 대구경 함포를 무력화시켰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해군 고속정은 북 경비정의 지휘통제실인 ‘함교’와 ‘주포’인 85㎜ 함포를 집중 공격했고 이 때문에 북 경비정은 지휘통제 및 반격 기능을 상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 해군이 전차포를 떼어내 경비정에 장착한 85㎜ 주포로 응사하지 않은 의문이 풀린 셈이다. ●北경비정, 99년 연평해전 참가 군 소식통은 12일 “북 경비정이 당시 조준사격을 가하는 순간 출동한 고속정 2척은 함교와 주포를 겨냥해 대응사격했고 이로 인해 주포가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북 경비정은 함교와 조타실에 구멍이 났지만 ‘격벽 구조’여서 침몰은 면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 서해함대사령부 예하 8전대 소속인 이 경비정은 시속 13㎞ 속력으로 NLL을 넘어 장산곶 아래 월래도 해역에서 예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교전에 참여한 북 경비정 ‘383호’는 남측 해군의 선봉을 맡은 참수리 ‘325호’와 마찬가지로 지난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 때 참가한 동일 함정으로 확인됐다. 북 경비정은 우리측 참수리 ‘325호’에 50여발의 함포를 발사했으나 함교 등 선체 주요 부분이 방탄처리돼 외부 격벽에 15발의 총탄 자국만 남았다. 남측은 고속정 4척, 호위함과 초계함 각각 1척 등 총 6척이 작전에 참여했다. 군 관계자는 “고속정 4척의 사격 발수는 교전 2분여 동안 40㎜ 함포 250여발, 20㎜ 시(sea)벌컨포 4700여발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출동한 호위함과 초계함은 후방 지원을 주로 맡았다. 참수리 고속정의 주요 무기인 40㎜ 함포는 분당 600발이 발사되며 20㎜ 시벌컨포는 분당 3000발이 발사된다. ●최신구축함 최영함 추가배치 군 당국은 이날 NLL 해상에서의 북측 보복 도발이 예상됨에 따라 최신예 한국형 구축함(KDX-Ⅱ·45 00t급)인 최영함을 추가 배치했다. 이에 따라 기존 NLL 남쪽 해상에 배치된 강감찬함(KDX-Ⅱ)에 이어 구축함과 초계함 각각 2척, 호위함까지 우리 해군 2함대의 해상 전력이 총 대비 태세에 나서게 됐다. 한편 해군은 이번 교전에 어떤 명칭을 부여할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과 2002년에 각각 발생한 서해교전은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해 ‘1차 연평해전’, ‘2차 연평해전’이라는 명칭이 각각 붙었다. 이번에는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만큼 대청도 지명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군 기록상 ‘해전’ 명명은 병력 규모와 교전 시간을 고려할 때 일단 부정적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남북 7년만에 서해교전] 南, 2.2㎞ 월선하자 경고사격… 北 즉각 기관포 불뿜어

    [남북 7년만에 서해교전] 南, 2.2㎞ 월선하자 경고사격… 北 즉각 기관포 불뿜어

    10일 오전 11시37분.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대청도 동쪽 11.3㎞ 해상. ‘뚜뚜뚜뚜’. 북 경비정의 기관포가 화염을 내뿜기 시작했다. 북측 경비정의 선수를 차단하고 경고사격을 하던 남측 고속정에 대한 직접사격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2002년 6월29일 제2차 연평해전에 이어 7년 만에 남북 해군이 서해상에서 무력 충돌한 순간이다. 남북 해군은 서해에서 1999년 6월15일, 2002년 6월29일에 이어 이날까지 3차례 충돌을 빚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 1척이 백령도 레이더기지에 처음 포착된 시각은 오전 10시33분. 북 경비정이 남하를 지속하자 해군 2함대 소속 참수리 고속정 1개 편대(3척 구성)가 “귀측은 우리 해역에 과도하게 접근했다. 즉시 북상하라.”는 경고방송을 오전 11시22분부터 시작했다. 북 경비정은 5분 뒤 대청도 동쪽 11.3㎞ 지점에서 NLL을 침범했다. 북 경비정은 선수를 남쪽으로 돌린 채 밀고 내려왔다. 해군 고속정은 11시32분까지 모두 5차례 경고방송을 보냈지만 북 경비정은 NLL을 이미 2.2㎞가량 침범한 상태였다. 북 경비정을 저지하던 해군 고속정 2척은 오전 11시36분 교전규칙에 따라 북 경비정의 선수 전방에 경고사격을 가했다. 그 순간 북 경비정은 고속정을 향해 기관포 50여발을 직접사격했다. 해군은 확전에 대비, 1000t급 초계함 2척을 후방 10㎞ 지점에 대기시켰다. 우리 고속정은 좌현 함교와 조타실 사이의 외부 격벽에 15발을 맞았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군 관계자는 “북 경비정이 참수리 고속정의 조타실을 집중 조준사격했지만 2차 연평해전 후 조타실 전면을 방탄 소재로 교체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남측 고속정도 응사를 시작했다. 40㎜ 함포 200여발로 대응사격을 가했다. 교전은 오전 11시37분부터 11시39분까지 2분 동안 벌어졌다. 피해는 북측이 컸다. 참수리 고속정은 20㎜ 기관포 2문, 30~40㎜ 함포 1문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사격 정확도가 높은 자동사격통제장치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북한 경비정은 수동으로 사격을 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북 경비정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고 육안으로 관측할 때 ‘반파’ 수준의 피해를 입고 북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북 경비정이 NLL 북방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후 완충지역 밖으로 물러섰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측의 정확한 피해 상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북한군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는 첩보가 나오고 있다. 이날 교전을 전후로 북한 해안포와 실크웜, 샘릿 지대함미사일 등의 발사 징후는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은 교전 전후로 KF-16 4대를 서해 해역에 출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한·미 정보당국은서해 NLL 일대뿐 아니라 북한군의 전 전선에서의 추가 도발을 감시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10년 만에 또 승전 ‘참수리 325호정’ 화제

    10년 만에 또 승전 ‘참수리 325호정’ 화제

    11일 서해상 대청도 인근해상에서 발생한 남북한간의 교전에서 활약한 해군의 ‘참수리 325호’정이 화제다. 이 날 교전에서 15발의 적탄에 명중당하고도 신속히 40mm 보포스 함포를 응사해 북측 경비정을 반파시킨 참수리 325호정은 10년 전인 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제 1차 연평해전 당시에도 가장 선두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 경비정에 충돌공격을 감행하던 참수리 325호정에게 북측이 사격을 퍼부으면서 14분간의 교전이 시작됐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교전을 하기 전, 배끼리 부딪히는 충돌공격을 통한 ‘밀어내기 전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습 선제공격을 받은 325호정은 즉각 40mm 보포스 함포와 20mm 시벌컨 등을 이용해 수백발을 응사했다. 이 과정에서 참수리 325호정은 무려 157발의 적탄을 뒤집어썼지만 다행히 7명의 경상자 외에 사망자는 없었다. 특히 정장이었던 안지영 소령(당시 대위, 해사 47기)은 북한군이 사격한 4발의 소총탄에 피격됐으나, 방탄조끼 덕분에 경미한 부상에 그쳤다. 참수리 325호정의 활약으로 북측은 신흥급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상해급 중형경비정 1척이 대파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안지영 소령은 현재 440톤 급 ‘윤영하함’(PKG-711)의 초대함장을 맡고 있는데, 이 배의 함명은 2002년 제 2차 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참수리 357호정의 정장 故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윤영하함은 두 번의 해전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참수리급 고속정의 무장과 기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형 전투함으로, 우연찮게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연결고리가 생긴 셈이다. <사진설명 : 1차 연평해전 당시 북측 381 경비정에 충돌공격을 하고 있는 참수리 325호정, 촬영 직후 교전이 시작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경비정 퇴각시킨 업그레이드 南고속정

    北경비정 퇴각시킨 업그레이드 南고속정

    남북한 해군 함정이 10일 오전 11시 37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교전했다.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교전은 북측 경비정이 NLL을 넘어 남하하는 상황에서 우리측 고속정이 5차례의 경고방송 후에 경고사격을 가하자 북측이 직접 조준사격을 하면서 발생했다. 이번 교전에 참가한 우리측 함정은 제 1, 2차 연평해전에서 활약한 것과 같은 참수리급 고속정으로 2차 연평해전의 교훈으로 성능을 개량하는 작업을 거쳤다. 당시 북측의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 357호정에서 故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등 6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결국 배가 침몰했기 때문이다. 이후 작전에 투입된 참수리급 고속정들은 선체에 장갑판을 덧대고 방탄판을 설치해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개량을 받았다. 또 침수를 막을 수 있는 펌프를 대용량으로 교체하고 현측에 설치된 M-60 기관총도 K-6 중기관총으로 교체해 공격력도 향상시켰다. 특히 이번 교전에서 우리측 함정에 북측이 사격한 총탄 15발이 명중됐으나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개량이 적절했음이 증명됐다. 또 2차 연평해전 이후 개정된 교전수칙으로 북측 경비정과 충분한 교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명중률이 우수한 우리측 고속정들이 큰 피해없이 북측 경비정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참전한 참수리급 고속정의 길이는 37m이며 만재배수량은 약 170톤이고 최대속도는 35노트(약 64km/h) 이상이다. 40mm 단장포와 20mm 발칸 2문, 12.7mm 중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한편, 참수리급 고속정을 대체하기 위해 건조돼 최근 2함대에 실전배치 된 윤영하함(PKG-711)은 교전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해는 우리가 지킨다!”…1함대 부산함을 가다

    “동해는 우리가 지킨다!”…1함대 부산함을 가다

    2000일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우리 바다를 지켜온 해군 함정이 있다. 바로 동해를 지키는 1함대 11전대 소속 ‘부산함’(FF-959). 이 대기록은 지난 2004년 4월 9일 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5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특히 동해의 높은 파도와 계속되는 경비임무 등으로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일선의 전투함이 세워 더욱 뜻깊다. 취재가 늦어진 것도 부산함이 연이은 경비임무와 정비 등으로 바쁜 탓에 일정을 잡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취재당일에도 다음 임무를 준비하며 함포를 정비하는 승조원들의 바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서로를 존중하는 함 승조원의 노력, 그것이 비결” 기록을 달성하는데 있어 함장인 유재만 중령(해사 44기)의 노력을 빼놓긴 힘들다.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먼저 함장을 지내셨던 선배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겸손한 대답을 앞세운다. 하지만 질문을 계속하자 “나보다는 우리, 부산함은 하나라는 생각을 부하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부산함의 승조원들은 단합이 잘되기로 유명하다고 동행한 함대 정훈과장이 귀띔해 줬다. ◆ 참수리 357정의 교훈 “이겨놓고 싸운다” 그렇다고 부산함의 분위기가 풀어져있는 것은 아니다. 유 중령은 “부산함은 최일선의 전투함”으로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태세 완비를 최우선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 중령은 2002년에는 서해 2함대 232 고속정 편대의 지휘관을 맡았었는데, 232 고속정 편대는 제 2 연평해전 당시 북한해군과 교전했던 바로 그 부대다. 비록 해전이 일어나기 4개월 전에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당시 전사한 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참수리 357정의 승조원들과는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전투태세 완비’를 강조하는 유 중령의 말에는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 1년 넘게 함장으로 근무하면서 사고가 날 뻔 했던 아찔했던 적은 없었는지 묻자 “크게 염려스러웠던 적은 없었다.”면서도 “기상이 안 좋을 때, 멀미를 하는 승조원들을 보며 안전사고가 나진 않을까 하며 걱정했던 적은 있었다.”고 답한다. 그런 걱정을 하다 보니 승조원들의 생활을 좀 더 둘러보게 됐고, 자연스레 불편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실제로 침실 한 쪽에는 세면도구 보관함 같은 사소하지만 매우 필요한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파도가 칠 때마다 쓸려 다니는 세면도구를 보고 직접 지시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 군함에 음악방송과 복권이? 그 외에도 부산함은 승조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여러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다. 바로 ‘음악방송’과 ‘복권’이다. ‘12시 네 고향’이란 이름의 음악방송은 매일 정오에 신청곡과 함께 사연을 들려준다. 목소리 좋은 전문 아나운서(?)도 있다. 염 문섭 일병은 “밥을 먹다 방송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멘트가 나오면 서로서로 축하해주곤 한다.”며 “덕분에 좀 더 친근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을 주는 복권’은 당첨되면 상금 대신 휴가가 주어진다. 주로 바다에 나갔을 때 장교나 직별장(원, 상사)이 칭찬할 만한 대원들에게 수여(?)하게 되는데, 입항할 때 5명을 무작위로 추첨해 바로 휴가를 보내준다고. ◆ 해군차원의 노력도 한 몫 이러한 대기록을 달성하는데 해군차원의 노력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해군은 올해 초부터 부산함같은 ‘호위함’(FF) 이하 전 해군함정의 노후 침대를 개조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캔버스 재질의 구형침대는 천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누웠을 때 몸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승조원들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해군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바닥을 알루미늄 소재의 금속으로 교체하고 있는데, 현재 약 80%대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어 올해 안에 모든 함정의 침실이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또 화장실 개선사업과 함께 조리시설 교체도 완료했다. 특히 조리시설의 경우, 과거 증기를 이용했으나 현재는 전기를 이용해 전기밥솥, 오븐 등이 새로 설치돼 보다 다양하고 맛있는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증기를 만들기 위해 끼니때마다 보일러를 가동해야 했으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 작전능력 향상에도 일조하고 있다. 부산함은 ‘울산’급 호위함의 8번함으로 만재배수량은 약 2300톤, 길이는 102m에 달하며 하픈 대함미사일과 청상어 대잠어뢰, 각종 함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동해 =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의대 사태’ 순직경찰관 추모비 제막

    ‘동의대 사태’ 순직경찰관 추모비 제막

    ‘5·3 동의대 사태’ 순직 경찰관들을 위한 추모비가 13일 부산 연제구 연산5동 부산지방경찰청 앞 동백광장에서 사건 발생 20년 만에 제막됐다. 이날 오전 11시에 열린 제막식에는 강희락 경찰청장, 허남식 부산시장,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김중확 부산경찰청장, 당시 동료와 유가족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비 건립은 지난 5월3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동의대 사태 순직 경찰관 2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강희락 경찰청장의 지시로 이뤄졌다. 유가족 등이 추도식 때마다 대전현충원까지 가지 않고 부산에서 추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추모비는 문종승 세명대 교수가 제작했다. 건립비는 7000여만원. 추모비는 가로 8m, 너비 4.8m, 높이 1.1m의 검은색 화강암으로 돼 있다. 순직한 경찰관들을 상징하는 7개의 조형물이 반원 형태로 연결돼 참수리(경찰의 상징)가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을 하고 있다. 조형물 뒤에는 순직 경찰관을 추모하는 시가 새겨져 있다. ‘5·3 동의대 사태’는 1989년 5월3일 학내 입시부정 사건을 규탄하던 대학생들을 진압하던 전경 5명이 도서관에 감금되자 경찰이 이들을 구하려고 진압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경찰관과 전경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사건이다. 이에 따라 학생 70여명이 구속됐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객원칼럼] 돼지를 잡아야 신뢰가 생긴다/김동률 KDI 연구위원

    [객원칼럼] 돼지를 잡아야 신뢰가 생긴다/김동률 KDI 연구위원

    나는 강의 첫날 나눠주는 강의계획서에 어떤 경우라도 지각, 결석을 두 번 이상 할 경우 F학점을 준다고 적어 두었고 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과제물도 기한을 넘기면 아예 받지 않는다. 종강날 복도에 예닐곱 학부모와 오토바이 택배가 과제물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수강생들의 연락을 받고 황급하게 달려온 어머니 얼굴에 “원 성격 안 좋은 교수가 다 있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환한 얼굴로 과제물을 받는다. 기말시험이 끝나면 메일들이 날아든다. 학점 관련 메일은 보내지 말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사정을 호소하는 절박한 수강생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강의평가서에는 “조폭교수는 지구를 떠나라.”라는 등 별별 비난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이런 나의 방침을 이해해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그네들만의 카페에 내 강의가 ‘강추’ 과목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들었다. 원칙의 중요성은 제갈공명의 읍참마속 고사로도 이해된다. 약한 초나라를 어렵게 삼국 정립의 대등한 위치에 오르게 한 것도 아들 같이 사랑했던 장수인 마속을 울면서 참수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도 원칙주의자였다. 하루는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아이가 울면서 매달리자 “시장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저녁을 해주겠다.”고 구슬린다. 시장을 다녀온 아내는 난데없는 돼지비명을 듣게 된다. 증자가 뒷간에서 돼지를 잡을 태세다. 깜짝 놀란 아내가 만류했지만 “신뢰가 없으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며 주저없이 돼지 멱을 땄다. 로마제국의 천년 영화도 따지고 보면 상황논리에 기댄 재량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법의 지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실제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키드랜드와 프레스콧은 1977년 ‘재량보다는 원칙(Rules rather than discretion)’이라는 논문에서 비록 정직한 정부라 해도 융통성보다는 원칙을 지킬 때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왜 재량보다는 원칙이 먼저일까? 그것은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거래나 계약은 거래당사자 간의 신뢰를 필요로 한다. 원칙 준수는 신뢰를 높이고 거래비용을 낮추지만 재량은 반대로 거래비용을 높인다.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대국민 약속이니만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령도시가 될 위험이 크니 이쯤에서 중단해야 한다는 양쪽의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옛 증권거래소 벽에는 ‘나의 말은 나의 문서(Dictum Meum Pactum)’라는 경구가 있다. 사회적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서, 조그만 섬나라 영국을 세계 최고의 금융국가로 가능케 한 금언이다. 한국은 이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중심국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예의 바르고 참을성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아시아 유일의 완벽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 우뚝 섰다. 그러나 눈부신 발전에 비해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여전히 상황논리가 우세하고 원칙이 먹히지 않는 심각한 저신뢰 사회(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것이다. 고스톱도 돌린 패를 바꾸는 법은 없다고 했다. 비록 눈앞에 상당한 손실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킬 때 신뢰 속에 더욱 빛나는 조국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김동률 KDI 연구위원
  • 伊도 부르키니 금지논란

    프랑스에서 시작된 부르키니(이슬람 수영복) 착용 논란이 영국을 거쳐 이탈리아에도 도착했다.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은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바랄로 세지아의 지안루카 부오나노 시장이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명분이 인종 차별 성격이 강한 데다 범위와 강도가 높아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파 정당 북부동맹의 당원이기도 한 부오나노 시장은 “얼굴을 가린 여성은 어린이들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면서 수영장만이 아니라 (강이나 계곡 등) 유수(流水)에서도 부르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나아가 규정을 위반하면 500유로(약 89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그는 “무슬림 국가에서 서양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면 참수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한다.”면서 “우리가 관용의 마음을 의무적으로 가질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사람은 집 욕조에서 수영하면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르키니 착용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프랑스의 한 도시에서 무슬림 여성이 부르키니를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려다 ‘위생에 안 좋다.’는 수영장측의 반대로 입장하지 못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영국에서는 한 수영장에서 일정 시간에는 부르키니만 입고 수영할 수 있도록 해 반대 양상의 논란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바랄로 세지아시(市)의 논란은 또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시장이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이유로 위생 상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인종 차별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모닝 브리핑] 제2연평해전 부상자 2명 국가유공자 인정

    지난 2002년 6월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 전·사상자 가운데 2명이 추가로 국가유공자가 됐다. 국가보훈처는 4일 “참수리 357호의 병기병과 기관병으로서, 북한 함정과 전투를 벌인 고경락(28·당시 병장)·김면주(29·당시 상병)씨가 ‘전상군경 7급’ 판정을 받아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고 밝혔다. 당시 전·사상자 가운데 국가유공자 심사 대상은 전사자 6명, 전상자 7명, 상이등급 미달자 5명 등 모두 18명이다. 이 가운데 고씨 등을 포함, 15명이 유공자로 인정 받았다. 고씨와 김씨는 그동안 환청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북한 함정의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제2연평해전에서는 우리 쪽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오바마 암살위협 하루에 30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는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루에 30번이나 암살위협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가 로널드 케슬러가 새 저서 ‘대통령의 비밀경호국’(In the President’s Secret Service)에서 밝힌 사실이다. 이는 1년에 3000번의 살해위협을 받아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비해 무려 400%나 높은 수치라고 텔레그래프가 3일(현지시간) 책 내용을 인용, 보도했다. 이때문에 비밀경호국의 업무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호 암호명이 ‘변절자’인 오바마를 노린 집단에는 미 테네시주의 백인우월주의자 그룹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한 총기상을 털어 88명의 흑인을 총격 사살하고, 14명을 참수하는 잔혹극을 벌였다. 그리고 마지막 암살 대상이 미국 역사상 첫번째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였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치러진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도 ‘비상 중의 비상’이었다. 소말리아에 기반을 둔 이슬람 극단주의단체인 알샤바브와 관련된 인물들이 취임식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당시 경호국은 94개 경찰과 군, 정보기관에서 차출된 4만명의 경호 요원을 동원해 ‘철통경호’를 폈다. 인근 빌딩의 직원과 호텔 투숙객들의 범죄 기록까지 샅샅이 뒤질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살정보는 기밀에 부친다. 구체적인 정황이 알려지면 모방범죄만 들끓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협은 신빙성이 없지만 개별사항들은 면밀히 조사한다.최근 업무 가중에 치이는 한 경호국 요원은 “필요한 인력의 반밖에 없다고 본부에 건의하지만 ‘귀머거리 본부’는 “너희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며 우리의 요구를 번번이 좌절시킨다.”고 호소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족·위구르 서로 “무섭다”… 불안한 평온

    │우루무치(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박홍환특파원│9일 돌아본 우루무치 시내는 전날보다는 비교적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상점은 3일간의 임시휴업을 끝내고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았고, 위구르인 거주 지역의 시장도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수이모거우(水磨溝)구의 시장에서 만난 위구르인 상인 누얼메메티(24)는 “이번 사태 발생 후 처음 문을 열었다.”며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루무치가 조금씩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증원된 병력은 길가에 주둔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뿐 도로 봉쇄는 대부분 풀린 상태다. 시위 집중지역이었던 난먼(南門)광장과 얼다오차오(二道橋), 경마장 부근의 다완난(大灣南) 시장 등에서도 진압 병력이 대열을 갖춰 한쪽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등 전날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해 아직도 이번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가용 영업을 하는 한족 쉬(許)는 위구르인 거주지역으로 가자고 하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곳은 못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위사태 당시의 악몽을 떠올린 듯 연신 “위구르인들은 무섭다.”며 “어제도 위구르인들이 한족 2명을 살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위구르인 역시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위구르 의과대학에서 만난 2학년생 아리무장(阿里木江·22)은 “기숙사가 아닌 학교 밖에서 생활하는데 그곳 주민들은 대부분 한족이어서 집을 오갈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뛰어간다.”고 말했다. 우루무치 의대는 세계위구르대회에서 “한족들이 몰려가 여대생들을 참수했다.”고 지목한 곳이지만 위구르인 학생들은 모두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위구르 대학생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관련, 이름 공개와 사진 촬영을 거부한 채 “위구르인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 양꼬치 식당을 운영하는 메메티장(36) 역시 “위구르인들에게는 모든 권리가 박탈돼 있다.”고 하소연했다. 중국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광둥성 한족·위구르족 충돌 사건과 관련, “광둥성 완구공장에서 2명의 위구르인이 죽었다는 정부 발표는 거짓”이라며 “위구르인들은 사망자가 20여명에 이른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위구르자치구 일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관광객 120명 중 일부가 한 때 연락이 끊겼다가 다행히 모두 연락이 닿아 10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stinger@seoul.co.kr
  • 조국의 바다 온몸으로 지킨 ‘승리의 해전’

    조국의 바다 온몸으로 지킨 ‘승리의 해전’

    지난 2002년 6월29일 최후의 순간까지 조국의 바다를 지켜낸 해군 영웅들을 기리는 제2연평해전 7주년 기념식이 29일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렸다. 지난해 처음 정부 행사로 격상된 뒤 올해는 우리 해군이 승리한 해전으로 공식 재조명되면서 한승수 국무총리, 정당대표, 시민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호국영령들 국민 가슴 속에 영원히” 제2연평해전은 당시 한·일 월드컵 3, 4위전이 열리던 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척이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25분여의 교전으로 우리측 윤영하 소령,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했다. 이희완 대위(당시 중위) 등 18명이 중경상을 입고 참수리 357호는 침몰했다. 한 총리는 이날 기념사에서 전사자 6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호국영웅들은 국민 가슴 속에 살아 있으며 대한민국은 이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 총리는 “제2연평해전은 서해 NLL을 사수하기 위해 우리의 용감한 해군 장병들이 북한의 기습도발을 온 몸으로 막아낸 승리의 해전”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때에는 변변한 추모행사도 없이 외롭게 여섯분의 영웅을 떠나 보냈다.”면서 “제2연평해전을 우리 해군의 승전으로 다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국방부는 2002년 7월7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남한 함정 8척이 3450여발을 집중 응사해 북한 함정 등산곶 648호에서 30명 이상 사상자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었다. ●“북한군 13명 사망, 25명 부상” 이와 관련, 권영달 당시 합동참모분부 군사정보부장(예비역 소장)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여러 첩보들을 종합·분석한 결과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인명피해는 사망 13명, 부상 25명 등 모두 38명으로 최종 집계됐다.”며 “이는 청와대에도 보고가 됐다.”고 말했다. 권 예비역 소장은 “북한군의 도발은 의도된 계획에 따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북한) 서해함대사령부와 8전대가 조종 통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해군 “北 도발장소가 침몰장소”

    해군 “北 도발장소가 침몰장소”

    1999년 6월15일 오전 9시28분. 엷은 안개를 헤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25㎜ 기관포로 해군 고속정을 선제 공격했다. 교전 14분 만인 9시42분 북한 어뢰정 1척이 침몰했다. 5척은 크게 부서졌다. 4척도 재기불능의 피해를 봤다. 그날의 전투는 우리 해전사에 제1연평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6·25 전쟁 후 첫 남북간 정규전으로 기록된 제1연평해전이 15일 승전 10주년을 맞았다. 이날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기념식은 승전 시각과 같은 시간대인 오전 9시40분 시작됐다. 당시 참수리 325호의 정장으로 전과를 올린 안지영(39·해사47기) 소령은 제2연평해전 때 적탄에 전사한 고(故)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PKG) 초대함장으로 참석해 승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은 기념사에서 “첨단 무기체계와 강인한 정신전력, 완벽한 작전이 조화를 이룬 기념비적 승리”라며 “과거 두 차례 해전을 돌아볼 때 ‘제3의 연평해전’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하고 10년 전 완벽한 승리의 전통을 계승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해군 장병들은 NLL 사수, 현장격멸, 필승 전통 계승을 담은 결의문을 통해 “조국의 바다를 사수해 적의 도발장소가 침몰장소가 되도록 현장에서 격멸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욕설·폭력 당한 경관, 소송걸면 위로금

    욕설·폭력 당한 경관, 소송걸면 위로금

    앞으로 경찰관이 민원인한테서 폭행을 당하거나 욕설을 들으면 형사처벌외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소송을 제기하는 경찰관은 특별위로금까지 받을 수 있다.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경찰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이는 일반인을 보호해야 할 경찰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권력 남용 우려도 나온다. 경찰청은 8일 전국 일선 경찰서에 배상명령, 소액심판 등 민사 구제방안을 적극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내부 통신망에는 폭행, 모욕을 당했을 때 민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과 상황별 대처 요령을 설명하고 있다. 또 소송업무지원은 법률구조공단의 협조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돼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순직, 공상 경찰관을 지원하는 재단법인 ‘참수리사랑’과 함께 민사소송을 내는 경찰관 가운데 선착순 100명에게 1인당 10만원의 특별위로금을 주는 방안도 협의 중이라고 경찰청은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의 공무집행 방해사범 검거건수는 2006년 9783건에서 2007년 1만 3803건, 지난해 1만 5646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이명박 정부가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한 경찰관은 “모욕죄를 적용할 수도 있었지만 귀찮은 측면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이같은 내부 지침 등으로 경찰 업무가 좀 더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경찰관은 “민원업무가 험한 건 사실이지만 격려금까지 지급하려고 하는 것은 경찰에게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부추기는 정책 같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박근용 팀장은 “민생 수사과정에서 무조건 출두를 종용하는 등 공권력 침해를 받은 국민들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반성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된 적이 있는 한 시민은 “술에 취해서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주취자라고 바로 수갑이 채워지는데, 민사소송까지 하면 경찰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박건형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용어 클릭 ●배상명령 법원이 직권 또는 피해자 신청에 따라 피고인에게 범죄행위로 발생한 손해의 배상을 명령하는 제도. ●소액심판 청구금액 2000만원 이하인 소액 사건을 1회 변론 등 간단한 절차로 심판하는 재판.
  • ‘오감만족’ 목포로 떠나요

    ‘오감만족’ 목포로 떠나요

    목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는 아니다. 그렇다고 숨가쁘게 변화를 이끌어가는 산업도시 또한 아니다. 그저 서해와 남해를 이어주는 반도의 서남쪽 모퉁이에 자리잡아 뭍과 바다의 시작이자 끝으로서 1897년 10월 일제의 조선 수탈의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도시일 뿐이다. 여기에 억센 이들이 많아 최근에는 이름깨나 얻은 주먹잡이들의 고향으로만 여겨졌을 뿐이다. 목포 110년의 기억을 말없이 담고 있는 옛 골목길, 항구에 늘어선 채 어디론가 당장 떠날 듯 시동 걸려 흔들거리고 있는 뱃전, 그리고 분주한 거리마다 축음기 속의 환청처럼 아련하게 들리는 듯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감상(感傷)을 자극한다. 하지만 아픈 ‘출생의 과거’는 특유의 억척스러움으로 이미 다 지워졌다. 목포는 지금 적당한 부산함과 흥청거림으로 오롯한 내일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일단 목포를 찾았으면 얕은 감상에 젖을 겨를이 없다. 거리 곳곳의 식당마다 열린 문틈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냄새는 객의 발걸음을 멈춰세운다. 곰삭은 젓갈의 깊음, 신선한 바다의 펄떡거림, 삼학도 해풍에 잘 말라가는 짭조름함이 있다. 그렇다. 목포 여행의 시작은 ‘맛’이다. 홍탁삼합, 세발낙지, 민어, 갈치, 꽃게무침을 대표적 ‘목포 5미(五味)’로 꼽는다. 이밖에도 준치 회무침, 숭어, 광어, 농어, 붕장어, 전복 등 맛있는 바다 먹거리는 널렸다. 목포에 가면 진짜 흑산도 홍어를 먹어보아야 한다. 흑산도에서는 딱 19명만 홍어잡이 허가를 갖고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홍어값은 칠레산, 일본산이라도 결코 싸지 않다. 게다가 흑산도 것은 목포 어시장에서도 1㎏에 8만원이다. 칠레산이 3만원이니 세 배 가까이 비싼 셈이다. 하지만 먹어보면 ‘역시 흑산도 홍어’다. 식당에 가면 적당히 삭힌 것과 푹 삭힌 것 등 기호에 맞춰 준다. 여기에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가 어우러지면 환상의 음식, 삼합으로 거듭나게 된다. 술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 곁들이는 술은 목포 지역 인동초로 만든 인동주가 제격이다. 쌉싸름하게 달콤하다. 여기에 도마에서 탕탕 두드려가며 다진다고 해서 이른바 ‘탕탕이’로 통하는 낙지회무침이 있다. 참기름, 참깨, 마늘 양념으로 무친 뒤 숟가락으로 푹 떠서 우물거리다 꿀꺽 삼키면 뱃속이 든든하다. 낙지는 또 얄팍썰어놓은 무와 함께 끓이면 시원함의 극치를 이루는 연포탕으로 변신한다. 아주 옛날 여름철 복달임으로 백성들이 흔히 즐겨 먹던 민어(民魚)는 이제 비싼 몸이 됐다. 목포 근대역사관 동쪽으로 만호동 일대에 민어횟집 거리가 있다. 7, 8월이 제격이라 아직 이른 듯하지만 맛은 벌써부터 물이 올랐다. 민어 부레, 껍질, 내장 등 부산물도 쫄깃쫄깃하게 맛있다. 또한 꽃게는 흔히 간장 게장으로 많이들 먹지만 목포에서는 꽃게 무침으로 내놓는다. 맵거나 짜지 않다. 꽃게살이 뭉개져 흘러나와 걸쭉해진, 달콤매콤한 양념에 밥을 비벼먹으면 더할 나위 없다. 목포 앞바다에서 잡히는 어른 손바닥 합쳐놓은 것만 한 두께의 먹갈치 구이까지 곁들이면 포만감을 느낄 새도 없이 빈 밥공기 두어 개가 식탁 위에 나뒹군다. ●외달도 한옥민박 꼭 묵어보세요 배가 든든해졌으면 이 고장이 내밀히 숨겨둔 바다의 매력 외달도를 찾아보자. 23가구가 띄엄띄엄 살고 있다.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비수기에는 2시간 간격, 7~8월 성수기에는 1시간 간격으로 배가 다닌다. 비수기에는 달리도·율도 등을 돌아 50분 정도 걸리고, 성수기에는 직통 여객선이 다녀 30분으로 줄어든다. 요금은 왕복 8000원. 외달도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야트막한 매봉산(해발 64m)이 섬 절반에 펼쳐져 있어 1시간 남짓 산책하기에 좋다. 또한 청정바다의 팔뚝 만한 대어가 강태공들을 손짓한다. 심사가 복잡한 이에게는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볼 수 있는 간명한 자유를 준다. 고운 모래밭 해수욕장과 갯벌, 갯바위가 고르게 해변을 둘러싸고 있다. 해수풀장이 있어 아이들도 안심하고 놀 수 있다. 하룻밤 쉬어가기에는 한옥 민박이 100만불짜리 숙소다. 방문을 열면 대청마루가 있고 바로 앞으로 모래사장의 해변이 펼쳐진다. 해외 유명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와 흡사하다. 남해 앞바다를 정원으로 둔 셈이다. 외달도 주민 김한용(57)씨는 “산책로와 해수욕, 낚시 등 휴양을 위한 여건이 잘 갖춰진 섬”이라면서 “꼭 여름철이 아니라도 몸과 마음을 재충전시키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한껏 자랑했다. ●목포 여행 마무리는 문화·역사 목포시내의 근대역사기념관은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자리에 있다. ‘목포의 눈물’을 떨구게 만든 곳이다. 1층에는 목포의 옛 모습, 2층에는 참수 장면, 성폭행 장면 등 잔혹한 일제의 기억을 전시해놓았다.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일제가 꼼꼼하게 남겨둔 기록에는 새삼 경탄할 수밖에 없다. 목포역 광장을 나와 왼쪽 주차장이 ‘시티 투어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국도 1, 2호선이 시작되는 기점부터 근대역사관, 유달산, 삼학도, 갓바위 등 주요 볼거리를 빠짐없이 데려다준다. 어른 3000원, 학생 1000원. 월요일은 쉰다. 특히 ‘목포판 박물관 거리’는 빼놓으면 안될 곳이다. 갓바위를 지나 5분 정도 서쪽으로 걸어가면 문학관, 자연사박물관, 생활도자박물관, 문예역사관,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남농미술관 등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있다. 자연사박물관 표(3000원)를 사면 생활도자박물관, 문예역사관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차범석, 김우진, 박화성 등 목포 출신 세 문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문학관은 별도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1960년대 후반 샛별처럼 떠올라 문단의 한 축을 평정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의 추억거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김현은 전후 문단에서 리얼리즘, 모더니즘의 총아였던 김지하(68), 최하림(70) 등과 함께 목포 출신이다. 문학관 옆 주차장에 문학비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여행수첩 ▲가는 길 : KTX가 있다. 용산역에서 3시간20분이면 목포다. 요금은 4만 500원. 목포는 또한 서해안고속도로의 종점이다. 주말이면 서울-목포간 고속버스가 32차례 다닌다. 2만 6200원. ▲맛집 : 홍어삼합의 대표주자는 인동주마을(061-284-4068)이다. 인동주를 처음으로 만들어 ‘평화주’라는 이름으로 특허출원까지 했다. 간장 꽃게장도 맛있다. 혼자 온 손님에게는 ‘결코’ 밥값을 받지 않는 것이 우정단 사장의 장사 철칙이라고 한다. 하루 열명 남짓 된다고 한다. 민어회는 영란횟집(061-243-7311)이 좋다. 선경준치횟집(061-242-5653)에서는 병어회, 갈치구이, 꽃게무침, 준치회덮밥, 마른우럭탕 등을 두루 갖춰 목포의 대표적 음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묵을 곳 : 일부러 외달도를 찾아가 한옥민박(011-631-8156)에 묵어볼 만하다. 4인실부터 12인실까지 방 7개가 있다. 비수기엔 5만~8만원 정도. 목포 시내라면 샹그리아비치호텔(061-285-0100)이 깔끔하다. 온돌방 11만원. 글 사진 목포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인터폴」에 등장한 국제 금고털이

    「인터폴」에 등장한 국제 금고털이

    송창환(宋昌桓)(55)하면 고참수사관들사이에선 금고털이 전문절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전과4범. 동료들의 대량학살로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군파(赤軍派) 학생들의 소행으로 추측되던 일본의 은행금고털이가 바로 그 송의 원정범행이라고 전해져 일경은 물론 우리 경찰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일경은 송의 여죄를 추궁하기 위해「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을 통해 한국경찰에 수사협조의뢰까지 해 왔는데 현대판「루팡」의 해외원정털이를 추척해보면-. 송이 최근 일본에 밀항한 것은 71년 2월. 그후 송은 일본경찰에서 자백한 털이만도「효고」현에 있는「히메지」시 사회보험사무소,「아카시」시의「도요쿠니」산업동해안도시의 사무실에서 60만여「엔」(일화)을 털었다는 것. 송이 일경에 검거된 것은 지난해 10월 31일. 「지바현」「이치가와시」에 있는 농업협동조합에 침입, 금고털이를 하려다 경비원에게 들켜 달아나다 강도상해 현행범으로 잡힌 것이다. 송이 일본을 드나든 것은 이번으로 3번째. 52년에 외항선을 타고갔던 40일동안을 비롯해서 64년「도쿄 올림픽」때, 71년 2월 등으로 알려졌다. 또 그는 치안국의 전과조회 결과 6·25직후에는 서울 모 물산회사에 근무한 일이 있고 그후 70년도까지 모섬유회사 기계공으로 일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금고털이로 징역1년6월, 징역2년 등 4차례의 교도소 신세를 진 것으로 밝혀졌다. 송은「이노우에」·「가네요시」등 일본이름을 가지고 행세를 해왔으며, 주로「도쿄」에서 간이여관 고용원, 술집접대부와 동거생활을 하며 전전했다. 또 송은 작년 5월「오사카」형사대의 검문을 받고 외인등록증이 없어 밀입국혐의를 받아 30만「엔」의 보증금을 내고 가석방된 일까지 있었다. 가족은 판잣집서 끼니 걱정 일본경찰은 63년 12월 19일「고베」시「후지」은행「효고」지점의 7백60만「엔」금고털이 사건, 64년 4월「고베」시「쿄와」은행「효고」지점의 9백만「엔」 도난사건, 그해 11월「니시미야」시「야마토」은행 「니시미야」지점의 7백52만「엔」털이사건 등도 송의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경찰은 송의 여죄를 가려내기 위해 지난 1월말「효고」경찰 수사1과「이치마루」경부「야노」경부 등을 한국으로 보냈으며, 치안국 금고털이 전담의 협조를 얻어 송의 범행수법 공범관계 송금여부 등을 캐고 있다. 송은 젊었을 때부터 여자를 좋아해 첩살림까지 한「플레이·보이」였다는 것. 송은 일본경찰에서 턴 돈의 행방을 추궁 받았을 때 사업자금으로 쓰기 위해 처에게 보냈다고 자백했다는 것. 그러나 서울 성북구 송의 집은 싯가 10만원짜리의 방 2개가 있는 판잣집이었고 4식구는 겨우 끼니를 연명해 가고있는 처지였다. 또 송이 작년 2월 일본원정 때는 부산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자금이 달린다며 1만~3만원씩 60만원씩을 이웃으로부터 빌어갔다는 것이다. 송은 작년 6월 일본에서 편지 한통을 보냈으며 그해 10월에 온 두번째 편지에는『11월중순에는 돌아간다. 돈을 벌어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써 보내왔다고 한다. [선데이서울 72년 3월 26일호 제5권 13호 통권 제 181호]
  • 금강 유역 정비할 때 이곳만은 보존해야

    금강 유역 정비할 때 이곳만은 보존해야

    ‘금강 정비시 보존이 필요하고 훼손이 우려되는 곳은 어디일까.’ 4대 강의 하나인 금강 곳곳에는 보존이 필요하고 민원 발생이 예상되는 지역이 널려 있다.사업착공 과정에서도 사사건건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19일 충남도에 따르면 정부는 전북 장수에서 발원,대청댐을 거쳐 흐르고 있는 금강(396㎞) 가운데 대전 갑천과 합류하는 유성구 대동지점에서 충남 서천군 금강하구둑까지 126㎞를 집중적으로 정비한다. ●세계적 희귀새 검독수리 발견 충남 연기군 동면 합강리 미호천과 만나는 지점에는 100㎡ 안팎의 조그만 섬이 여러개 있다.대전환경운동연합 금강순례단은 지난해 이곳에서 황조롱이,소쩍새,노랑부리저어새,원앙,큰고니,말똥가리 등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종이 관찰됐다는 보고서를 올해 초 발표했다. 이 단체 이경호 시민참여팀장은 “미호천에만 있는 물고기 미호종개가 살던 곳이고,세계적 희귀조류인 검독수리와 참수리도 발견될 정도로 생태계가 우수한 곳”이라면서 “금강에 갑문이나 보(洑)를 설치하면 수위가 높아져 이 섬들이 물속에 잠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주시 소학동 오야골 앞 금강에도 모래 섬들이 있다.황조롱이,말똥가리 등이 서식하고 있지만 수위가 높아지면 물속에 잠겨 이 서식처들도 온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산성 등 문화재·수박농 보호 절실 인근 석장리 구석기박물관과 백제 유적지 공산성은 500m와 1㎞ 이상 금강변에 걸쳐 있다.문화재보호구역이다.곰나루(웅진·熊津)도 있다.곰 전설이 깃든 백제 수도의 상징으로 주민들 애정이 깊다.부여에는 문화재가 널려 있다.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이 있고 맞은편에 왕릉사지가 있는 백제역사재현단지가 있다.각각 금강 본류인 백마강변을 1㎞ 안팎씩 점유하고 있다.부여 백제대교 아래 양쪽으로는 비닐하우스가 펼쳐진다.강 북쪽은 부여읍 군수리~현북리간 8㎞ 정도,남쪽은 장암면 석동리~세도면 가회리간 15㎞에 이른다.이곳에서는 500여 농민이 하우스를 짓고 수박과 토마토 등을 기르고 있다. 이들은 국유지인 이곳을 연간 ㎡당 140원의 임대료를 내고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공주시 공산성 맞은편 금강변에도 국유지 임대농이 많이 있다.부여군 관계자는 “백마강에 토사가 많이 쌓여 준설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강변 양쪽 둔치 비닐하우스는 수박 주산지여서 농민들의 반발이 극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창오리 등 철새 50만마리 도래 논산시 강경 밑에서 금강하구둑까지는 갈대숲이 10㎞ 이상 군락을 이룬다.겨울철 50만마리의 철새가 찾는 도래지이다.여길욱 전 서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창오리가 가장 많이 찾는다.”면서 “잘못 정비하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고 경고했다.특히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로 유명하다.여 전 사무국장은 “10만평에 이르던 갈대밭이 금강하구둑 때문에 수변이 좁아져 갈수록 육지화되고 있다.”면서 “둑이 생기면서 재첩도 사라졌다.”고 전했다.그는 정비보다 금강하구둑을 없애 바닷물과 왕래케 하면 수량이 늘어나고 준설효과도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물 순환 막는 금강하구둑 철거 마땅” 이완구 충남지사는 “금강하구둑이 물 순환을 막아 금강이 죽어가고 있는 만큼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하천환경정비 등 금강살리기 사업비로 정부 예산보다 4배 가까이 많은 6조 9000억원을 투입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제2 연평해전 여섯 영웅의 구국 혼 기린 유도탄고속함 ‘윤영하 함’ 실전 배치

    제2 연평해전 여섯 영웅의 구국 혼 기린 유도탄고속함 ‘윤영하 함’ 실전 배치

    차기 고속정사업(PKX)의 결실인 유도탄고속함(PKG) 1번함 윤영하함(440t)이 17일 경남 진해 기지에서 취역했다. 함정 이름은 지난 2002년 6월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의 선제공격으로 발생한 ‘제2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참수리호 357호 함정장 윤영하 소령과 대원인 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및 박동혁 병장을 기린 것이다. 윤영하함은 전장 63m,폭 9m,최대속력 40노트로 76㎜ 함포 1문과 대함(對艦) 유도탄 등으로 무장됐다. 선체 방화벽과 스텔스 기능을 갖췄다.지휘 및 기관통제 기능을 분산해 생존성이 보강됐다. 함정이나 항공기,미사일 등 적 표적 100여개를 동시에 탐지할 수 있는 최신형 ‘3차원 레이더’와 위성을 통해 자동으로 적에 대한 정보와 위협을 수집·분석하고 이를 무기체계와 연결해 대함,대공(對空),전자전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사거리 140㎞ 이상의 한국형 대함 미사일 KSSM 유도탄도 장착돼 장거리 표적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다.기존 참수리급 고속정은 레이더와 함포가 단순 연결된 사격통제 시스템인 데다 대공 표적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없어 대공전 능력이 제한됐었다. 초대 함장은 1999년 6월15일 제1 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연평해전 영웅’ 안지영(38·해사 47기) 소령이 맡았다. 윤영하함과 같은 급인 유도탄고속함 후속함은 2009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가 2015년까지 20여대가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고(故)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66)씨는 “아들과 산화한 동료들이 멋진 고속함으로 다시 태어나 서해를 지키게 돼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면서 “제2 연평해전 기념식을 국가 행사로 격상시켜준 정부와 국민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배트맨 “이름 함부로 짓지 마,후손들이 애 먹어”

    배트맨 “이름 함부로 짓지 마,후손들이 애 먹어”

     아이들의 이름을 잘못 지어 후회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나도 그런 축일까.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이름을 ‘은별’이라 지었더니 “그럼 첫째는 금별이겠네요?”라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딴에는 ‘(그리운) 임은 별(같은 존재)’란 식으로 ‘문학적으로 지었다.’고 우기지만 그딴 설명이 통할 리 없다.  그래도 다음 사람들에 견주면 난,꽤 성의있게 이름을 지은 축에 들지 않을까.1일 야후 닷컴에 그레이엄 우드란 블로거가 올린 글 ‘아이 이름으로 지어선 안 될 6가지 이름’에 소개된 사례들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아이 이름으로 ‘애플’이나 ‘파일럿’을 떠올리는 건 애교로 보아 넘겨야 한다.정말로 아이가 자랄 때 어려움을 겪기 원한다면 다음 6개 리스트에서 골라 내기만 하면 된다.    1.배트맨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민족 중 하나다.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 정부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으로 아이들 이름을 짓는 이들이 하도 늘어 100가지의 스페인식 이름(예를 들어 후아티나나 미구엘 같은)을 권장하기까지 했다.그랬더니 왠걸,호치민(베트남 공산당 창건자)과 아이젠하워(미국 대통령)를 아기 이름으로 붙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단다.물론 히틀러란 독창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베네수엘라인은 적어도 60명이나 된다.    2.이클립스 글래시스  2001년 6월 아프리카 남부에서 완전 개기일식이 있었다.짐바브웨와 잠비아 정부는 주민들에게 태양을 맨눈으로 쳐다보지 말 것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 캠페인이 참 잘도 먹혔던 것 같다.이때 출생부를 들여다 보면 이클립스 글래시스 반다,토털리티 주,애뉼라 맥홈보 같은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3.NAAKTGEBOREN(벌거숭이)  나폴레옹이 1810년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현지인들은 이름 하나 만으로 살고 있었다.즉 라스트 네임이 없었다.프랑스인들 역시 수십년 전에는 이랬었다.해서 나폴레옹은 모든 네덜란드인들은 성을 갖도록 명령했고 네덜란드인들은 저항 정신을 드러낸답시고 기발한 성을 갖다붙였다.이렇게 해서 NAAKTGEBOREN(벌거숭이),SPRING INT VELD(들판에 점프),PIESTS(오줌발)란 성이 탄생했다.후손들에겐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나폴레옹의 정책은 꽤 오래 버텼고 때문에 이들 성은 오늘날 네덜란드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4.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아이슬랜드 사람들은 이름을 매우 신중하게 짓기로 유명하다.절대 남의 나라 사람들의 성을 따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러시아의 거장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아이슬랜드에 귀화를 신청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정부는 고민 끝에 예외를 인정했고 이 이름은 아이슬랜드에서 공인된 몇 안 되는 이름에 오르게 됐다.    5.YAZID  이맘 후세인 이븐 알리는 시아파 무슬림 신도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 중 하나.7세기쯤 그는 수니파 칼리프인 야지드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그리고 이슬람 역사 최대의 음모극이 된 이 사건 이후 야지드는 수니파에게선 흔한 이름으로,시아파 사이에선 경멸스러운 이름으로 각인됐다.말하자면 스탈린이나 히틀러를 아들의 이름으로 붙이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6.아돌프  죽음의 수용소와 파시즘으로 상징되는 아돌프란 이름 역시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름으로 금기시하던 것이었다.그러나 1949년에 한 불행한 젊은이가 그 이름을 얻었다.히틀러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의 아들이었다.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1930년대 히틀러와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인물인데 왜 그가 개명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지금 57세인 알렉산더 아돌프 히틀러를 포함한 아들 넷은 ‘총통’의 가계도를 끝내 버리기 위해 자손을 갖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9) 조선,혼돈 속 청의 번국 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9) 조선,혼돈 속 청의 번국 되다

     청군의 철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조정에서는 또 다른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그것은 전란을 불러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불거졌다.인조는 그 책임을 온전히 척화파들에게 돌렸다.‘그들이 명분만 앞세워 경거망동하는 바람에 임금과 종사(宗社)를 불측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인조는 척화파들을 조정에서 내쫓고 최명길을 비롯한 주화파 대신들을 중용했다.척화신들을 옹호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주화파 대신들 가운데도 척화에 동조하는 자들이 있었는데,이제 와서 척화신들만 희생양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논리였다.하지만 ‘책임 공방’에만 몰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혹했다.청측의 서슬은 여전히 시퍼랬고,감시의 눈길은 여기저기서 번뜩이고 있었다.조정은 결국 혼돈 속에서 점차 청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전란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  1637년 3월21일 도승지 이경석(李景奭)이 나섰다.그는 조정에서 쫓겨난 윤황(尹煌)이나 조경(趙絅) 등의 이야기가 부당한 듯하지만,실제로는 국가의 대의(大義)를 지키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선처하라고 촉구했다.사간 김세렴(世濂)은 ‘윤황 등이 죄를 입어 조정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있다.’며 그들을 복직시키라고 촉구했다.  인조도 물러서지 않았다.‘작년에 윤황 등이 헛된 명분에 매몰되어 실사(實事)를 도외시하는 부박(浮薄)한 행동을 저질렀다.’며 사면 요청을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3월26일 부제학 윤지(尹?),교리 정치화(鄭致和),윤강(尹絳) 등이 다시 들고일어났다.그들은 ‘윤황 등이 망령된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어찌 유독 윤황 등의 책임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묘당(廟堂)의 책임입니다.’라고 비변사와 대신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인조는 다시 격앙되었다.‘작년 용골대 등이 왔을 때,그들이 우리에게 바로 표(表)를 받들고 칭신(稱臣)하라고 강요했다면 척화신들의 언동이 정당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척화신들이 망령되이 들고일어나 용골대의 목을 치라고 주장했다.그 이후 청에 사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은 국가를 도모하기 위한 권도(權道·임시 방편)였는데 이들이 한갓 큰소리로 저지하여 나랏일을 혼미하게 만들었다.’고 일갈했다.인조는 척화파들이 앞뒤를 따져 보지도 않고 ‘참수(斬首)’ 운운하면서 ‘오버’했던 것이 청의 침략을 부르고,궁극에는 자신과 백성들을 끔찍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  신료들도 다시 반격에 나섰다.6월21일 유백증(兪伯曾)은 영의정 김류(?) 등 주화파 대신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작년 가을 이전에는 김류 또한 화친을 배척하여 ‘청국(淸國)’이란 말을 쓰지 말고 사신을 보내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전하께서 ‘적이 깊이 들어오면 체찰사는 그 죄를 면할 수 없다.’고 하자마자 주화(主和)로 돌아서 윤집(尹集) 등을 묶어 보내고 윤황 등의 죄를 다스리자고 했습니다.자신이 모든 책임을 맡아 임금이 성을 나가게 하고도 잘못을 인정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유백증의 반박에 인조는 입을 다물었다. ●주화파 최명길,인조를 위로하다  병자호란 직후 김류는 분명 인조에게 ‘뜨거운 감자’였다.전쟁 수행의 총책임자인 영의정이자 체찰사로서 김류가 보여준 난맥상이나 그의 아들 김경징의 과오를 생각하면 김류를 당장 내치는 것이 정상이었다.실제 삼사 신료들은 ‘종사를 망친 죄’를 들어 김류의 관작을 삭탈하고 조정에서 쫓아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인조에게 김류는 분명 특별한 존재였다.그는 일개 왕손에 지나지 않았던 인조를 보위(寶位)에 추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원훈(元勳)이었다.김류가 없었다면 ‘국왕’ 인조도 있을 수 없었다.인조는 끝내 그를 버릴 수 없었다.더욱이 당시 인조는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은’ 원죄 때문에 권위가 말이 아닌 상태였다.위기 상황이었다.위기 상황일수록 무조건 충성을 다하는 측근이 필요했다.인조는 결국 유백증 등의 탄핵을 무시하고 김류를 감싸주었다.  호란 직후 전란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는 와중에 조정의 대소사를 주도한 사람은 단연 최명길이었다.환도 직후 우의정으로 승진한 그는 시종일관 주화론을 견지한 데다,전란 초 적진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담판을 벌여 인조에게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공로가 있었다.자연히 인조는 그를 신임했고,최명길은 전후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최명길은 5월15일 장문의 상소를 올려 인조를 다독이려고 시도했다.그는 상소에서 ‘지난번의 호란은 천지 개벽 이래 일찍이 없던 병란(兵亂)입니다.전하께서 융통성 없이 필부(匹夫)의 절개를 지키려고 하셨다면 종묘사직은 멸망하고 백성들은 다 죽었을 것입니다.다행히 전하께서 묘당의 의견을 받아들이시고 백성들의 바람을 따라 종묘사직의 혈식(血食)을 연장하게 되고 생령이 어육(魚肉)됨을 면하게 되었습니다.전하의 지극한 어짐과 큰 용맹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최명길은 인조가 순간의 굴욕을 참음으로써 종사가 유지되었으니 항복은 ‘치욕’이 아니라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고 찬양했다.  최명길은 이어 ‘전하께서는 이 일로 속상해하지 마십시오.하늘의 운세는 돌고 돌아,흘러가면 되돌아오기 마련이며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회생하고 비(否)가 극에 달하면 태(泰)가 오는 법’이라며 인조를 위로했다.‘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자괴감 때문에 우울해져 있는 인조를 격려하고,그를 움직여 전란 후의 난제들을 풀어가 보려는 충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인조,홍타이지에게 다시 책봉 받아  사실 당시 조선의 처지는 ‘책임 공방’에 몰두할 겨를이 없었다.당장 폭주하는 청의 압박과 이런 저런 요구 사항을 처리하는 데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병력을 뽑아 보내라.’ ‘대신들의 자제를 빨리 들여보내라.’ ‘도망친 포로들을 잡아 보내라.’ ‘처녀를 뽑아 바쳐라.’ 등등 요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미 1637년 3월21일 의주부윤 임경업이 장계를 올렸다.내용은 청이 곧 용골대에게 어보(御寶)를 들려 조선으로 보낸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었다.그것은 다름 아닌 인조를 다시 책봉한다는 소식이었다. 용골대는 이제 ‘상국(上國)’의 책봉사(冊封使)로서 조선에 오는 것이었다.조정은 비상이 걸렸다.원접사(遠接使)와 관반(館伴)을 선발하고 각 지점에서 그를 접대하는 문제를 놓고 법석을 떨었다.바로 과거 명사(明使)들이 왔을 때 접대를 준비하던 방식이었다.  이윽고 11월20일 용골대가 홍타이지의 칙서를 갖고 서울로 들어왔다.인조는 서쪽 교외까지 거둥하여 용골대 일행을 맞았다.칙서의 핵심은 간단했다.‘왕이 전의 잘못을 뉘우쳤으니,이제부터는 네가 새로워지는 것을 아름답게 여길 것이다.이미 번봉(藩封)을 정하였으므로 전국(傳國)의 인(印)을 만들어 너를 조선 국왕으로 봉한다.이제 우리의 번병(藩屛)이 되었으니 황하(黃河)가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泰山)이 숫돌처럼 닳도록 변하지 말라.’  ‘옥새를 내리나니 황하가 띠가 되고 태산이 숫돌이 될 때까지 충성을 다하라.’는 내용이었다.인조는 삼전도에서 항복할 때,명으로부터 받은 옥새를 청측에 넘겨 주었었다.그리고 열 달이 지난 지금,청은 조선 국왕의 옥새를 새로 만들어 가져온 것이다.  인조는 ‘칙사’ 용골대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 뒤 홍타이지의 칙서를 받았다.홍타이지는 인조를 다시 조선 국왕으로 책봉한 것이고,조선은 청의 번국(藩國)이 되기로 다시 맹세하는 순간이었다.청은 철저히 과거 명의 행태를 흉내내고 있었다.  이튿날 신료들은 인조에게 하례를 올리고,전국에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황제의 칙서가 내린 것을 축하하는 조처였다. 하지만 조정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침울했다.‘ 책봉’을 마친 용골대 일행은 다시 요구 조건들을 쏟아냈고,자괴감과 부담감 때문에 조선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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