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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 (13)저학년 논술지도

    [선생님과 함께하는 초등논술] (13)저학년 논술지도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상상력은 풍부하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종합·비판하는 사고력은 부족한 시기이다. 따라서 저학년에서는 논술의 기본인 이유나 근거를 들어 말하고 쓰는 활동에서 기초를 닦고, 그 이유나 근거가 되는 배경지식을 상상의 세계까지 넓혀 다양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이 필요하다. 이에 그 구체적인 지도 방안을 밝히면 아래와 같다. ●똑소리 나는 발표 태도 기르기 학습에 즐겁게 참여하고 논리적인 사고 형성을 위해 상황에 따른 말하기의 기능을 습득하도록 한다.1단계로 시작하여 점차 3단계로 발전시키는데, 이를 위해서는 형제들을 함께 활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좋고 형제가 없다면 친구들을 모아 이야기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이 때, 부모님도 존대어를 사용하여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책 읽고 인물이 한 일에 대한 내 생각 쓰기 예를 들어 권정생님의 ‘강아지 똥’이란 책을 읽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글을 써보게 한다. -참새와 흙덩이의 말을 듣고 강아지 똥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강아지 똥이 민들레를 위해 한 일, 강아지가 한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자세히 써 보자. -내가 강아지 똥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신문을 활용한 논리적인 생각 키우기 신문은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신문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해보면 아동의 흥미도 높고 사고력의 향상도 거둘 수 있다. -신문에서 가장 재미있는 표정을 찾아내어 A4용지에 오려 붙이고 어떤 표정인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자세히 써보기 -신문에서 가족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골라 붙이고 그 선물을 고른 까닭 쓰기 -신문 기사를 읽고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있는 대로 쓰기 서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교사 유경미
  • [책꽂이]

    |실용|●미국 땅을 울린 한 마디, 잘 하겠습니다(남문기 지음, 더북컴퍼니 펴냄) “로키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1m 서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태평양으로 흐르고 1m 동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시작은 불과 1m 차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다. 계획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부동산 중개업으로 일가를 이룬 저자는 “계획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한인으로서 최대의 미국 부동산 그룹을 일군 저자의 석세스 스토리가 담겼다.1만원.●바다에서 배우는 경영이야기, 지혜(지앙용 지음, 김주아 옮김, 비즈니스맵 펴냄) 노자의 명언 중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처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책에는 경영인으로서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경구가 가득하다.‘물고기만 바라볼 바엔 그물을 거둬라.’는 말은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 또 공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얄팍한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군자는 고기는 잡되 그물질은 하지 않으며 사냥은 하되 둥지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1만원.●케네디 리더십(존 바네스 지음, 김명철 옮김, 마젤란 펴냄) 지미 카터는 1976년 선거운동 당시 ‘타임’지가 자신을 “케네디 같다(Kennedyesque)”라고 평가하자 무척 반겼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F 케리는 하인스에서 요트를 즐기던 케네디를 의도적으로 모방해 낸터킷 아일랜드에서 윈드서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현대 미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의 삶에서 케네디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책은 불굴의 낙관주의적 비전으로 국민을 사로잡은 케네디 대통령이 리더십의 핵심을 소개한다.1만 8000원.●사람을 이끄는 힘 인망력(도몬 후유지 지음, 이규원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일본은 중세에서 근대로 접어드는 기간에 전국시대라 불리는 극심한 변혁기를 거쳤다.1467년 무로마치 바쿠후의 후계자 문제로 시작된 ‘오닌의 난’은 기나긴 전국시대의 시작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일본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으며 무사와 다이묘(영지를 소유한 봉건시대의 영주)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100년에 걸쳐 300명 이상의 군웅이 할거해 각축을 벌이던 시기였다. 이마가와 요시모토,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이들의 리더십과 용병술을 소개한다.1만 2000원.●화술 노하우 총정리(윤치영 지음, 책이있는마을 펴냄) 경영평론가 피터 드러커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자기표현이며,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이 책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화술 포인트가 담겼다.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의 이야기가 1분이 넘으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고 가장 잘 이해하는 시간은 45초∼1분 정도다. 그리고 듣기 쉬운 속도는 1분에 270자 정도다. 때문에 말의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야 한다.1만원.●건강 약차(곽순애·최재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질병을 치료하는 맞춤형 웰빙약차를 소개. 우울증을 해소하는데 좋은 파극천용안육차, 다이어트에 좋은 동과자차, 으슬으슬 춥고 떨리는 감기 초기에 마시는 갈근차, 피부보호에 좋은 금연감차, 밥맛을 좋게 하는 맥아사인차, 고운 피부를 만들어주는 무화과율무차 탈모를 예방해주는 뽕잎돌삼잎차, 노화를 방지하는 두충하수오차, 생리통을 제거해 주는 쑥생강차 등을 다뤘다.1만 2000원.|유아·아동|●좋아좋아 이솝(글·구연 동화사랑연구소, 동화사랑 펴냄) ‘여우와 두루미’‘사자와 호랑이’‘서울쥐와 시골쥐’ 등 이솝 대표우화 22편을 담은 그림책 1권과 구연 CD 1장이 묶였다.‘콩쥐 팥쥐’‘견우와 직녀’ 전래동화 16편과 구연 CD가 담긴 ‘좋아좋아 전래’가 함께 나왔다.7세까지. 각권 1만 5000원.●나비(오오시마 신이치 글·그림, 진선출판사 펴냄) 알에서 어른벌레가 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비 64종이 펼쳐보이는 생생한 성장 앨범. 정밀한 날개 문양 등 나비의 다양한 생태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사실적으로 묘사된 세밀화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4세 이상.7500원.|초등·청소년|●참새네 칠판(박덕규 편저, 이가서 펴냄) 평론가이기도 한 박덕규 시인이 한국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동시 40편을 간추렸다. 윤석중의 ‘먼 길’, 강소천의 ‘사슴 뿔’, 정지용의 ‘별똥’ 등 주옥 같은 동시들에 일일이 붙여진 박덕규 시인의 맛깔난 해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초등생.8900원.●고인돌(이종호·윤석연 글, 안진균 외 그림, 열린박물관 펴냄) ‘과학과 상상력으로 만나는 우리 문화유산’ 시리즈 첫번째.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및 고대국가 형성의 역사를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진 고인돌을 통해 만나보는 접근방식이 새롭다.2권은 고구려인의 기상을 재조명한 ‘700년 고구려 역사를 지켜온 불패의 상징, 개마무사’. 초등생. 각권 9500원.
  •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사업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사업

    나의 92세 노모께서 강건한 ‘늙은이’이므로 그분의 아들은 예의상 싱싱한 ‘풋 늙은이’여야 한다. 나이 들면서 일과 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집착이고 탐욕인지도 모른다. 꽃을 보면 허기진 듯 코를 대고 향을 맡곤 한다. 색을 밝히는 남자들은 사랑해야 할 여인이 없으면 꽃이라도 희롱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꽃을 탐하는 것은 무어라 흉허물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꽃들의 사업 사랑하기라고 말한다. 꽃 한 송이 피는 것을 보고 우주의 변환을 헤아린다. 꽃들이 하는 사업처럼 화사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우주 율동의 원리에 따라 천하 인민들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이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살이를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실사구시적인 글쓰기가 사업이었다. 사업을 통해 정심(깨달음)에 이르곤 하신 그분의 한 권 한 권의 결과물들은 거대한 꽃 타래이다. 꽃들의 사업은 열정으로 자기를 불태우듯이 터뜨리는 것이고, 세상을 황홀하게 장식하는 것이고, 향기 퍼뜨리고 꿀벌에게 화분 주고 꿀 주고, 열매 맺어 번식한다. 세상을 온통 자기 꽃으로 덮으려 하고, 자기가 언제 떨어져 썩어 없어질 것인가를 알고 스스로 땅에 떨어진다. 꽃은 사람으로 치자면 생식기인 것인데, 사람의 그것과는 정 반대쪽에 향기롭고 화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자기의 꽃을 몸의 아래 땅 쪽(陰)의 깊숙한 옷 속에 감춘다면 그들은 몸 위의 하늘(陽)을 향해 드러내어 장엄하다. 나무의 뿌리와 사람의 머리털은 모양새가 비슷하다. 뿌리는 땅 속에 숨어 영양소를 빨아들이고, 머리털은 하늘 쪽으로 뻗어 신령스러움을 빨아들인다. 식물과 사람은 정 반대의 삶을 살면서 서로 교통하고 교감한다. 가장 불가사의한 것들은, 초봄에 잎사귀보다 먼저 꽃을 터뜨리는 족속들이다. 상식적으로는 줄기와 잎사귀들이 나온 다음에 꽃을 터뜨리는 순서여야 하는데, 그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겨울철을 보낸 다음 꽃망울을 키웠다가 펑펑 터뜨린다. 입춘 훨씬 전, 눈보라 치는 소한·대한 때부터 나는 매화나무 산수유나무의 꽃망울들을 살피며 기다려왔다. 시인 김영랑이 한 해의 모란꽃잎 떨어져 시드는 5월의 어느 날부터 다음해 그 꽃 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내 기다렸듯이. 내 기다림에 보답하듯 매화나무는 입춘이 지나면서부터 좁쌀만하던 꽃망울들을 참새의 검은자위만하게 키우고 다시 녹두알만하게 키우고 콩알만하게 키웠다. 그리고 바야흐로 폭죽처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내 토굴 앞 정원의 매화 꽃망울 커지는 것을 보면서 한 원로 영화감독의 사업을 생각한다. 소설가에게는 소설쓰기가 사업이고 영화감독에게는 영화 찍는 일이 사업이다. 사람이 치열하게 자기 사업을 하면서 영육을 소진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행운인가. 또 그 사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불행인가. 나는 살아 있는 한 내 사업을 할 것이고 사업을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업을 하지 않는 나의 생물학적인 생명은 무의미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가 찍으려 하는 영화가 돈이 안 될 것이라며 처음의 제작사가 매정하게 그를 배반했을 때,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각박한 인심에 분노하고 슬퍼했었다. 그런데 감격적이게도 그는 다른 제작사의 도움으로 그 영화를 다시 찍게 되었고 그의 영화는 천년 동안을 기다려 온 신화 속의 학처럼 비상을 꿈꾸고 있다. 청매화 꽃망울들은 가장자리가 진한 옥색으로 변하고 홍매화 꽃망울들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그의 마음은 지금 광양의 매화 꽃 지천으로 피는 마을에 가 있을 터이다. 젊은 시절에 그가 영화 찍는 것을 따라다니며 구경한 적이 있다. 그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하여 하루 혹은 며칠을 허비하곤 했다. 허비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찍을 대상에 내리는 빛과 어리는 그림자가 마음에 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차례 봄비가 내린 다음에는 날씨가 연일 따스할 거라고 한다. 올해의 매화꽃들은 넉넉하게 그의 사업을 도와주는 향기로운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매화 꽃망울들아, 그의 천년학의 비상을 위해 한사코 곱고 예쁘게 터져라.
  • “야생동물에 먹이 나눠주실 분~”

    서울시 푸른도시국은 14일 시민들과 함께 관악산과 청계산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나누어주는 행사를 24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진행한다고 밝혔다. 시는 2∼3월이 야생동물들에게 가장 먹이가 부족한 시기인 만큼 다음달말까지 상설 조류 먹이대를 설치하는 등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사에 참여하고 싶은 시민들은 15일(수) 오전 10시부터 자연생태과 홈페이지(sanrim.seoul.go.kr)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행사 참여자는 500명 안팎으로 선발하며 자원봉사 활동증서도 수여한다. 관악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등 야생조류 20종과 다람쥐 청설모 너구리 등 포유류 10종이 살고 있다. 청계산에는 꿩 참새 등 야생조류 36종과 너구리 산토끼 다람쥐 등 포유류 12종이 서식하고 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김혜자 살림해도 연극못잊어

    의자에 파묻혀 대본(臺本)을 읽다가 그걸 무릎위에 놓은 채 잠이 들었던 모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주 천천히 눈을 뜨고 나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만진다. 극단 실험극장(實驗劇場) 사무실 안. 연극 대본을 읽다가 잠이 든 한 여배우의 잠과 잠 뒤의 화장은 보는 사람의 마을을 「센티멘털」하게 만들려고 하는 구석이 있다. 극본은 오태석(吳泰錫)작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김혜자(金惠子·28)는 이 연극에서 「히로인」 변이순역을 맡게된다. 극단 실험극장의 제20회 무대인 이 작품은 6월20일부터 24일까지 「드라마·센터」에서 공연. 김혜자는 최지숙(崔芝淑)과 더불어 이 땅 연극계에 있어서의 청춘의 「심벌」이자 가장 사랑받는 25대여배우중의 하나(老役을 많이 맡는 여운계(呂運計)의 연기력을 포함해서). 백성희(白星姬) 나옥주(羅玉珠)의 계보로 이어지는 1급의 배우의 「바통」계승을 착실히 닦고 있다. 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안한다기 보다도 천성으로 할 줄을 모르고 성실한 여자라는 것이 연극계의 일반적인 평인데 예컨데 누가 남의 욕을 하면서 『같이 욕하자』는 표정으로 金양을 쳐다보면 『전 몰라요』라는 말 밖에는 못한단다. 그게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역시 천성. 金양이 처음 무대에 선 것은 23세 되던 62년 민중극장(民衆劇場) 창립공연으로 올린 『달걀』(페르시앙·마르소作). 경기여고 선배인 권영주(權寧珠)씨의 권유로 무대에 섰다. 『해보라고 해서 그냥 했는데 해보니까 참 좋아서 그냥 계속했어요』 그러니까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굉장, 단단한 결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또는 절로 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담담하기 짝이 없다 못해 시들해 보이기 까지 하는 어투. 「민중」에서 『국물 있사옵니다』 『토끼와 포수』 『도적들의 무도회』등에 출연했고 자유극장(自由劇場)으로 옮겨 『따라지의 향연』 『피크닉 작전』 『神의 대리인』 『해녀 뭍에 오르다』등에 출연. 실험극장에 오자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등에 출연하면서 그 재능을 평가 받았다. 그 동안 주역을 맡은 연극이 『피크닉 작전』 『사할린스크의 하늘과 땅』 『상아의 집』 『피가로의 결혼』. 제일 애착이 가는 역은 『국물…』에서의 창부(현소희) 역인데 『왜 좋은지 모르지만』 역시 그냥 좋다. 『사할린스크…』의 「도시꼬」역도. 이번의 『유다여 닭이 울기전에』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서로 팔아 먹는 배신의 「드라마」이자 심층심리의 어떤 진실을 그린 것. 지금까지의 인습적인 연기「테크닉」과는 달리 가령「실망」같은 걸 대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발목의 관절이 딱 꺾인다거나 또는 뒤로 나가자빠지는 장면 등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해낼지 걱정이라는 이야기. 어떻든 어색·딱딱이라는 때는 거의 완전히 벗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맑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보는 사람을 삼키기 시작한 김혜자는 자기 자신의 「행동」과 「톤」을 보여주는 타고난 배우라는 느낌. 한편 KBS-TV 1기생으로 들어갔다가 TV출연을 4년간 쉬었고 다시 시작한 것이 재작년. 『무죄』 『탑』 『여고 동창생』 『2백50조』 『역류(逆流)』 『나는 참새올시다』 『잡았네요』 『아홉명이 찾는 여인』등에 출연. 현재는 『그림자』에 출연중이다. 김혜자는 부군 임종찬(林鍾璨·40)씨와의 사이에 1男을 둔 어머니. 『아빠는 밀어주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아요. 안하는 걸 속으로 바라고 있겠지만, 말해봤자 들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가만히 있겠죠 뭐. 집에서도 대본을 읽고 있으면 아이가 같이 놀자고 칭얼대요』 제2회 한국 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수상. 주량은 남들 말로는 맥주 1병이고 자신이 말한다면 1「컵」정도.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길섶에서] 겨울소묘/최종찬 편집부 차장

    마음의 빗살문 외롭지 않으려 떨어진 수은주만큼 잠그는 실골목 참새떼 씩씩하게도 겨울아침 쪼아댄다 하얀 공장 가시눈에 된바람도 몸져눕고 아파트에 버림받은 자국눈 꼬막잠 자는데 수화로 잉걸불 안고 사람들이 손짓한다 불가에서 그리운 건 펄펄끊는 아랫목 속살거리는 불씨와 숨바꼭질하다 보면 그림자 고개 숙인 채 여기저기 흩어진다 주름살 한세상도 돌아보면 동전 앞뒤면 갈개꾼 된바람 한 마당 펄쩍 뛰어 잉걸불 꺼지기 전에 불꾸러미 하나 줍는다 수은주가 뚝 떨어진 어느 겨울날 아침 마을을 나갔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달래 말입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추위를 쫓느라 드럼통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그 불을 같이 쬐면서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최종찬 편집부 차장 siinjc@seoul.co.kr
  • [주말화제] 꽃사슴 ‘황제’의 첫 겨울

    [주말화제] 꽃사슴 ‘황제’의 첫 겨울

    ‘이름 황제. 나이 5세. 성별 ♂. 고향 서울대공원. 가족 조강지처 ‘미자’와 첩으로 꽃사슴 50마리를 둠’서울시의 꽃사슴 집단이주 정책에 따라 서울숲으로 이사한 지 7개월 만에 사슴계를 평정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꽃사슴 ‘황제’의 프로필이다. 칼바람이 몰아친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내 사슴방목장. 기자가 황제에게 특별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좀처럼 응해주질 않았다. 황제는 건초로 지어진 자택 안에서 ‘아랫것’들이 노는 모습을 감상할 뿐이다. 낯선 환경에서 첫 겨울을 보내는 황제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암사슴 50마리 거느려 주치의와 요리사가 딸린 서울대공원에서 명문가 사슴들과 친분을 맺어온 황제가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한 것은 지난해 6월. 그와 함께 서울숲에 정착한 사슴은 모두 80마리에 달하나 90%는 전국의 사슴농장 출신. 녹용과 사슴피를 탐내는 인간들에 의해 마구 교배된 잡종들이 대부분이다. 새 땅에서 꽃사슴의 새 시대를 연 황제는 서울대공원 출신인 수놈에게 ‘넘버투’의 자리를 주고 왕국의 모든 암컷들이 자신과 넘버투의 혈통을 이어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발정기가 찾아오면서 사슴왕국에 지방출신 일부 수컷들이 반기를 들었다. 호시탐탐 황제자리를 노리던 A가 조강지처인 ‘미자’에게 수작을 걸었다. 이에 열받은 황제는 A를 향해 돌진,1m 가까운 뿔로 A를 단숨에 받아버렸다.A는 급기야 엉덩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숲밖으로 격리조치됐다. 다른 농장출신 B는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했다.‘쿵’소리와 함께 뿔과 뿔이 부딪치자 B의 뿔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갔다. 또 황제의 승리였다. 이로써 황제는 서울숲의 진정한 넘버원이 됐다. 이때부터 황제는 본격적으로 넘버투와 함께 2세 만들기 작업에 돌입, 현재 30마리의 암사슴이 이들의 순수 꽃사슴 혈통을 이을 새끼를 잉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제에게 팽당한 미자 ‘이름 미자. 나이 4세. 성별 ♀. 고향 서울대공원. 가족 7개월된 딸 소녀’ 황제의 아이를 임신한 채 이주해 지난해 8월 서울숲에서 딸을 낳은 ‘미자’. 미자는 황제가 서울숲의 모든 암사슴 50마리를 첩으로 삼은 뒤 잊혀졌다. 그래서 미자는 소녀를 잘 키우며 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딸의 미모를 탐내는 인간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다. 마약과도 같은 사탕과 과자로 자신은 물론 딸을 자꾸 유인하는 것이다. 모녀는 이를 먹고 여러차례 복통과 설사에 시달려야 했다. ●봄엔 대가족 기대를 자유롭고 마음껏 뛰놀게 해주겠다던 서울시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이사온 황제 가족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여전히 동물원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쉰다. 가끔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면 다음날 여지없이 그 나무에 대나무 보호대가 둘러쳐진다. 오후 3시에 식사하고 나면 살이 찔까봐 사육사가 사슴왕국의 온 사슴을 놀래키며 달리기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인간의 돌팔매질이다. 왕국의 영역 4만 5000평에 표시로 철망을 쳐준 것은 고마우나, 이 사이로 돌을 마구 던지거나 구름다리 위에서 이물질을 뿌리는 몇몇 인간 때문에 이주해온 것을 후회한 적이 많았다. 황제와 미자에겐 그래도 희망이 있다. 봄이 오는 새달이면 황제의 아이를 잉태한 암사슴들의 출산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황제에겐 순수 꽃사슴 혈통을 이어갈 자손이, 미자에겐 딸 소녀의 친구가 돼줄 형제자매가 생겨날 터이다. 요즘은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청둥오리는 물론 얼음속 잉어와 사귀고, 집에 놀러온 까치·참새 텃새들과도 친하게 지내 그럭저럭 추운 겨울을 보낼 만하단다. 황제 가족은 꽃피는 봄에 다시 만날 것을 윙크하며 겨울의 끝자락을 즐기고 있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7080 추억의 설 풍경

    7080 추억의 설 풍경

    “세 밤 남았다, 두 밤 남았다.” 섣달 그믐날 밤이 왔습니다. 눈썹이 셀까 조바심에 눈꺼풀을 열심히 비빕니다. 아버지가 안타까웠는지 화롯불로 손짓합니다. 가래떡을 살짝 구워주시며 화장실 귀신, 참새 귀신, 처녀 귀신 얘기로 공포스럽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 동이 터오를 새벽녘에 그만 꾸벅 잠이 들었습니다. 때때옷이랑 새 신발을 손에 꼭꼭 쥔 채로…. 드디어 정월 초하루가 밝았습니다. 눈 비비고 일어나니 마당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한 달 된 강아지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 블루스를 춥니다. 볏을 꼿꼿이 세우고 닭이 바짝 경계를 합니다. 백옥같이 흰 가래떡을 쑥쑥 썰던 어머니가 힐끔 쳐다보더니 “저것들도 명절인 줄 아는가벼.” 하면서 밤새 음식을 장만하느라 지친 몸을 달래 봅니다. 아버지가 어깨를 툭 치며 어서 가자고 손짓합니다. 이끌려 할아버지한테 세배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복주머니를 꼭꼭 쥔 채로…. 설날 저녁이었습니다. 삼촌이랑 건넛마을에 사는 친척 형제들이 세배하러 왔습니다. 아버지가 술과 음식을 권합니다.“느그들 명절엔 온갖 근심을 다 내려놓그라. 가족이 있어 이렇게 보는 게 얼마나 좋으냐.”고 몇 번이고 강조하십니다. 어머니는 “어여 많이들 먹어.”라며 분위기를 돋웁니다. 쌀밥과 쇠고기, 기름진 떡을 실컷 먹었습니다. 이날 밤처럼 변소간을 자주 들락거린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지를 찢어가며 손에 꼭꼭 쥔 채로…. 자라서 나중에 아버지가 됐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똥개 ‘도그’와 올가미에 걸린 꿩을 잡으러 갔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꿩은 해산한 순이 엄마한테 갖다 주라던 어머니 말씀에 막 울었던 나의 살던 고향이 그립습니다. 성질부려 흘리는 코를 손으로 닦아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좋아했던 술을 줄여 동네 꼬마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설 선물로 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에 새삼 머리 숙여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왔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고향은 늘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들뜨고 설레는 마음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손가락으로 ‘세 밤’‘두 밤’을 헤아렸던 아이가 “고향 가면 할아버지 산소에 가야지.” 하는 얘기에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독자 여러분 올해는 더욱 가족을 챙기시고 꼭꼭 부자되세요∼. WE팀
  • [통계로 본 서울] (10) 한강 겨울철새

    [통계로 본 서울] (10) 한강 겨울철새

    고층빌딩과 버스, 승용차가 늘어나는 등 도시 산업화가 가속화하면서 서울 하늘에서 새를 관찰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그러나 최근 생태계가 조금씩 복원되면서 한강을 찾는 겨울 철새가 증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강에는 어떤 겨울철새들이 얼마나 살고, 찾아오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야생동물생태관리 연구소와 한강시민공원사업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강 겨울철새는 모두 30여종 2만 7500여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시베리아 지역에서 서식하다 겨울이 되면 한강을 찾는다. 겨울철새 가운데 오리류가 다수를 차지한다. 몸길이 35㎝밖에 안되는 쇠오리와 날개가 흰빛을 띠는 흰죽지 등을 포함하는 오리류는 15종류,2만 6000여마리나 된다. 또 논병아리와 뿔논병아리 등 북한 산악지역에서 살다가 늦가을에 내려오는 검정색과 갈색빛을 띠는 잠수성 조류인 5종류의 논병아리류도 130여마리가 있다. 사할린 지역에서 내려온 검은색 몸에 흰색 이마를 가진 물닭은 320여마리가 관찰되고 있다. 갈매기류는 괭이갈매기와 재갈매기, 붉은부리 갈매기 등 3종류,340여마리가 있는데 이 가운데 320여마리가 재갈매기다. 이 외에도 되새류인 되새와 콩새, 수리류인 흰꼬리수리와 말똥가리, 참새류인 백할미새 등도 있다. 철새가 많은 대표적 장소를 보면 경안천합류부∼산곡천합류부에 논병아리와 알락오리, 재갈매기 등 4337마리, 왕숙천합류부∼고덕천합류부에 홍머리오리를 포함해 오리류 다수와 되새와 물닭 등 1161마리, 고덕천합류부∼성내천합류부에 오리류와 말똥가리, 재갈매기 2497마리, 탄천합류부∼중랑천합류부에 논병아리류와 오리류 1750마리, 반포천합류부∼봉원천합류부에 오리류 3927마리, 창륭천합류부∼신곡수중보에 오리류와 떼까마귀 3128마리, 탄천지역에 오리류와 붉은부리갈매기, 백할미새, 콩새 1839마리, 중랑천에 오리류와 제갈매기 3429마리가 있다. 유정칠 경희대 부설 한국조류연구소장은 “철새는 배나 낚시를 하는 사람 등 방해요인이 생기면 피하느라 에너지를 소모, 봄에 북으로 갈 때 힘이 달려 죽기도 한다.”면서 “최근 생태계보존지역이 느는 등 서울의 환경이 좋아지고 있어 한강을 찾는 철새가 늘고 있고, 먹이도 풍부해져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등 일부 철새는 텃새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현대인의 필수덕목 ‘夜食 만만’

    현대인의 필수덕목 ‘夜食 만만’

    “찹쌀떡∼ 메밀묵∼” 겨울 밤 골목을 누비던 구성진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웰빙, 다이어트 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야식까지 챙겨먹는 것은 마치 야만인들이 하는 듯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일하고 노는 것이 보편화된 오늘날 생활문화에서 야식을 무조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칼로리 낮고 맛난 야식정보를 챙겨두는 것은 현대인의 당연한 센스. 칼로리 낮은 야식이 있다면 기∼인 겨울밤도 외롭지 않다. 밤늦게 먹는 만큼 야식은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되며, 조리과정이 단순해야 한다. 푸드앤컬처 코리아(www.fnckorea.com) 김수진원장은 “특히 잠자기 전에는 너무 기름지거나 칼로리가 높고 양이 많은 야식은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좋다.”며 “위나 장 등 장기도 잠자는 동안 쉬어야 하므로 밤중에 과식하면 다음날 더 피곤하거나 몸이 붓는 등 부작용이 따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원장은 두부, 도토리묵, 브로콜리 등 열량이 낮은 식물성 음식을 이용한 요리를 권했다. (1) 두부 브로콜리 샐러드 참깨의 씹히는 맛과 식초의 상큼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소스에 시원한 생두부와 브로콜리까지. 저칼로로 밤에 먹어도 안심이다. 재료는 두부 1모, 브로콜리 300g, 소스(참깨 1/2컵, 맛술 1/2컵, 사과식초 1/2컵, 소금 1작은술, 설탕 1큰술) 만드는 법은 1. 두부를 끓는 물에 데친 후, 차게 식힌 다음 깍둑썰기를 한다. 2. 브로콜리는 데친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3. 소스는 참깨를 믹서기에 적당히 갈고 모든 소스 재료를 넣고 섞는다. 4. 두부와 브로콜리를 접시에 올리고 참깨 소스를 듬뿍 뿌린다. (2) 라면 새우 계란찜 계란찜의 부드러움과 라면발의 쫄깃함을 동시에 즐기는 신세대 야식의 대명사.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재료는 라면 반개, 스프 반봉지, 당근 4분의 1, 햄 30g, 계란 2개, 파 2분의 1개, 물 100㏄(보통 컵으로 두 컵 정도) 만드는 방법은 1. 라면을 2∼3㎝정도 되게 부순 뒤에 물에 담가 뒀다가 물기를 뺀다.2. 대파와 햄과 당근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이때 냉장고 속의 재료들은 모두 잘게 썰어 놓는다. 버섯, 김치, 소시지 등 무엇을 넣어도 좋다.3. 계란을 거품기로 젓고 라면과 물 스프 그리고 준비한 재료를 넣는다.4. 그릇에 3을 담는다. 이때 모양을 위해 새우와 브로콜리를 맨위에 보기 좋게 얹는다. 랩을 잘 씌우고 전자레인지에서 5∼7분 동안 가열한다. 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면 5분, 익은 것을 좋아하면 7분 정도 돌리면 된다. 팁:이때 그릇 안에 참기름을 좀 발라주면 냄새도 좋고 계란이 그릇에 붙지 않는다. (3) 라면 골뱅이 무침 저녁에 술 생각이 난다면 가장 좋은 안주거리이자 야식으로도 강추. 재료는 라면 1개, 골뱅이 반 캔, 대파 흰부분 약간, 양념장(초고추장 3큰술, 고춧가루 1큰술, 참기름 1큰술, 설탕 1작은술) 만드는 법은 1. 라면은 삶아 냉수에 헹궈 참기름에 무친다. 2. 골뱅이는 국물을 제거하고 반씩 자른다. 3. 대파는 곱게 채 썰어 냉수에 헹군 후 물기를 뺀다. 4. 모든 재료를 큰 그릇에 넣고 양념장에 무친다. 5. 예쁜 그릇에 담아 내면 소주나 맥주 안주로 그만. (4) 묵밥 우리 전통적인 겨울 야식으로 사랑받는 도토리 묵. 김치의 매콤함과 국물의 시원함이 그만이다. 또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하는 사람들도 OK. 도토리 묵 1모, 김치 1/4포기, 김치 국물 2컵, 물 1컵, 채썬 김 1장. 양념(다진 마늘 1작은술, 참기름 2큰술, 설탕 1큰술, 깨소금 1큰술) 만드는 법은 1. 도토리묵은 깨끗하게 씻은 후 1㎝ 두께 정도로 약간 길게 채썬다. 2. 김치는 채썰어 물기를 꼭 짠 다음 준비한 양념을 넣고 무친다. 3. 김치 국물과 물을 혼합해둔다. 이때 물 대신 멸치 국물을 차게 식혀서 간장으로 색을 내고 소금, 설탕, 식초로 간을 한 육수를 쓰면 더욱 맛나다. 4. 묵과 김치를 살살 버무려 접시에 담고 만들어 놓은 김치 국물을 접시에 부은 다음 채썬 김을 위에 올린다. 팁:도토리묵에서 떫은 맛이 심하게 날 때는 따끈한 물에 담가두었다가 꺼내서 쓰면 떫은 맛이 우러나서 맛이 부드러워진다. 또 김은 기름을 바르지 말고 구워 물기 없는 가위로 가늘게 잘라야 맛이 더하다. 夜한 별미 임도 보고 속도 풀고 # 품위있게 한 잔 새벽 2시까지 하는 메드포갈릭을 추천한다. 압구정, 여의도, 광화문, 삼성동 등에 있다. 여의도점은 02-783-5296. 메드포갈릭은 정통 이탈리아 음식 40여 종류와 100여종의 와인,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인근 샐러리맨들이 밤늦게 출출한 배를 채우기도 하고 가볍게 한 잔하기도 한다. 통마늘·멸치를 기름으로 익혀낸 치즈를 올린 드라큘라 킬러(8400원), 홍합찜(1만 3800원)을 추천. 또 저녁 9시 이후에는 일부 와인은 30% 할인한다. 새벽 2시까지 영업. # 한잔 더 생각나면 주당들이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문 닫을 시간인데요.”라 한다. 그래서 밤새워 먹을 수 있는 곳의 정보도 필요하다. 청담동 m.net건물 옆의 으악새(02-3442-1170)는 꼼장어구이(2만원)가 맛있다. 얼큰한 해장국(5000원)과 계란탕(8000원)도 인기. 아침 6시까지 영업. 2호선 홍대 전철역에서 주차장 골목 가는 길의 참새골(02-323-3656)은 동태·김치찌개에 소주를 한잔 할 수 있는 집이기도 하지만 웰빙 음식인 날치알쌈(1만 5000원)도 강추. 큰 접시에 날치알과 굵게 채 썬 깻잎·다진 양파·버섯·무순 등이 삥 둘러져서 김과 함께 나오는데, 김에 땅콩 버터를 바른 다음 원하는 재료를 올려 싸먹는데 맛과 향에 반하게 된다. 새벽 4시까지 영업. 야식하려면 여기로! # 누가 뭐래도 최고의 야식 최고의 야식은 누가 뭐래도 오뎅과 떡볶이. 대학로에서 성균관대로 올라가는 길 왼쪽에 있는 맛나 김밥 부산 오뎅(02-747-0881)은 이곳의 명물. 매콤하면서 달달한 떡볶이(2000원)는 쌀떡이라 쫄깃해 더욱 맛있다. 시원한 멸치 육수에 양파 등 갖은 야채를 넣고 끓인 오뎅국물은 담백하고 맛이 깊다. 모둠오뎅(5000원)도 특별하다. 순대(2000원)도 많이 찾는다.24시간 영업. # 속을 달래주는 쌀국수 욱지와 사태 등에서 우린 담백하고 뜨거운 육수에 숙주와 양파 등 넣고 푹 우려 먹는 쌀국수의 매력은 겨울에 더한다. 성수대교 남단 LG패션 골목의 포호아(02-546-9330)의 쌀국수(7000원)는 뽀얀 쌀국수 위에 살짝 익혀 나오는 쇠고기 편육이 그만이다. 새벽 4시30분까지 영업한다. # 속풀이 그만 통통한 콩나물과 각종 해물을 넣고 끓인 콩나물 해장국만한 속풀이국도 없다. 서울 청담동 엘루이호텔 뒷골목 새벽집(02-546-5739)은 근처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젊은이들에게 유명한 집. 걸쭉하면서 칼칼한 국물 맛이 좋은 따로국밥도 인기.6000원씩.24시간 영업. # 역시 얼큰한 맛이 최고 돼지 등뼈에 감자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감자탕은 새벽에 더욱 빛을 발한다. 동교동로터리 근처의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의 송가네 감자탕(02-3141-6557)은 두툼한 살점이 붙은 뼈를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시원한 국물 맛에 택시기사들이 많이 찾는다. 감자탕 1만 5000원. 쫄깃한 돼지고기와 시원한 보쌈(1만원)도 인기.24시간 영업. 김수진원장은 2002년에 푸드앤컬처코리아를 설립, 푸드스타일 리스트를 배출했으며 각종 방송과 신문에 출연했다.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한국문화 알리기의 일환으로 중국, 일본 등에서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35년… ‘문인들이 좋아하는 화가’ 이왈종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35년… ‘문인들이 좋아하는 화가’ 이왈종 씨

    폴 고갱은 나이 마흔셋에 문명 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느껴 남태평양의 작은 섬 타히티로 훌쩍 떠났다. 여기에서 ‘타히티의 여인들’ 등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대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껴 지중해로 떠나 걸작 ‘해바라기’를 남겼다. 아마 예술가의 포부를 위해 자기유배의 길을 스스로 떠나지 않았을까. 이왈종(60)씨.‘생활속에서-중도 시리즈’로 잘 알려진 한국 화단의 중견작가다. 지난 1990년, 그해 어느날 교수직(추계예술대)을 홀연히 버리고 따뜻한 남쪽의 섬 제주를 택했다. 주위에서는 서울로 곧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예술가적인 기(氣)를 충전하고 돌아올 것으로 다들 생각했지만 15년째 눌러 살고 있는 것. 이젠, 자신을 해방시킨 제주를 왜 떠나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또 복잡한 서울을 더 이상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푹 파묻혀 있다. 이 화백은 올해로 화단 데뷔 35년째를 맞고 있다. 그러니까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이듬해인 스물여섯 나이에 국립공보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그동안 국내외 개인전만 20여차례, 단체전의 경우 매년 1∼2차례 참가했으니 그의 왕성한 작품활동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난주 제주의 밤 바다가 보이는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때마침 서울에서 온 손님(화랑 관계자)과 싱싱한 복어회에다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후래삼배’를 먼저 권한다. 이 화백이 약간 취기가 있었기에 같이 보조를 맞추자는 뜻에서였다. 창너머 서귀포 앞바다에는 한치잡이 어선에서 켠 불빛이 아름답게 빛나 장관을 이루었다. 문득 한마디 건넨다.“선생님, 아름답죠?” 그러자 “암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돌아왔다. “……?” “자연입니다. 인간에게 맞추면 괴롭고요, 자연에 맞추면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지요. 괴로움도 즐거움도 말입니다. 파리나 참새도 똑같은 생명입니다.” 술잔이 다시 오고갔다. 안주도 권했다. 사전에 질문 거리를 몇 가지 생각했지만 취기가 있어서인지 갑자기 순서가 헷갈린다. 들켰을까. 이 화백도 그걸 아는지 껄껄 웃으며 선문답 형태의 얘기로 분위기를 설렁설렁 몰아간다. 에라 모르겠다,“선생님은 그동안 제주 어디에다 맞춤표를 두셨는지요?”라고 질문을 툭 던졌다. “아닌 곳이 없지요. 제주에 왔을 때 시장바닥을 봐도, 잡초나 동백꽃을 봐도 행복했습니다. 마음이 어디에 치우치느냐가 문제이지요. 꽃을 봐도 괴로울 수가 있습니다. 제주란 아름다움이고 그렇게 맞추었습니다. 또 집착하지 않고 평등하게 바라보면서 ‘중도관’을 생각했습니다.” 이 화백은 제주 생활을 하면서 ‘중도시리즈’를 표방해 왔다. 또 오랜 금욕적인 생활방식과 돌담처럼 쌓인 열정으로 붓의 힘이 더욱 세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석한 화랑 관계자도 “이 화백은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면서 “(그림이)흥분된 에너지를 능란한 서예의 획으로 쓱쓱 그려진다.”고 거들었다. “중도란 무엇입니까.” “너무 가까이 가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도 괴롭지요. 하나는 전부요, 전부는 하나입니다.” “지난 제주생활의 15년을 관통한다면 어떤 의미로 새겨집니까?” “행복,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몸속에 채워져 있을 때가 괴롭지요. 비운 마음은 작은 것도 크게 보입니다. 사람 만날 일도 없고, 그림 그리고 밥 먹는 게 전부입니다.(제주)올 때 모든 것을 놓았어요.” 처음 5년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실컷 그리다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벌써 15년이 됐단다. 어디서나, 아무때나 들을 수 있는 새소리, 파도소리, 장중하고 때론 감미로운 바람소리, 그리고 동백꽃, 매화, 수선화 등 온갖 꽃들 향기에 취해 살아온 몽유의 세월이었다고 했다. 까닭에 화폭에는 꽃, 새, 물고기, 노루, 자동차, 전화기 등이 자주 등장했다. 요즘에는 골프장 풍경을 많이 그린다. 예술성이든, 상업성이든 따지지 않고 즐겁게 그렸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활짝 웃는다. “최근에는 도자기 작업에도 열중하고 있지요. 향로를 만들고 거기에 그림을 집어넣는 향로들이지요.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의 영혼 안식을 빌어주고 또 다사다난한 현실에서 많은 번뇌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심사를 편안케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지요.” 다시 건배를 하고 나서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때를 놓칠세라 제주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곡선입니다. 인간은 수직적이고 상하관계로 연결되고 이해관계로 얽혀져 있습니다. 해안선과 돌담, 다들 아름다운 곡선이지요. 제주의 자연을 보면 마음을 덜어내는 행복을 느낍니다. 또 솟구치는 파도를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새삼 절감하지요.” “선생님, 왜 서울을 버리고 제주를 택했나요? 그리고 다시 서울 갈 생각은 없나요?” “그곳은 와글와글합니다. 먼지 속으로 사람 많은 곳으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지요.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평생 제주에 있을 작정입니다. 여기에서 놓고 가야지, 어떡하겠습니까.” 요즘 그는 어린이들과 일주일에 두번씩 동심의 세계에 푹 빠져든다. 지난 10월 초부터 서귀포시 평생학습센터 ‘엄마랑 아이랑 함께하는 미술교실’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 매주 월요일 유아반, 화요일 초등반으로 나눠 각각 한시간반씩 그림 지도를 해주고 있다. 친근감을 주는 ‘동시’와 ‘동요’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초부터 틈틈이 어린이들에게 지도를 해오다 아예 고정적인 시간을 마련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학부모들로부터 수강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서귀포시 관계자는 전했다. “어린이들한테 많이 배우고 있어요. 어른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어린이들에게 그림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확충시켜 주지요.” 이 화백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버린 자식처럼 들꽃과 산꽃을 무작정 만나기도 하고 붓을 들어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두달에 한번 만나는, 서귀포 시내의 향토예술인 모임 ‘문화사업회’에 참석하는 것이 유일한 개인생활이다. 슬쩍 젊었을 적 시절을 물었더니 “국전에서 아홉번 낙선하고 아홉번 당선(입선)했다.”는 말이 금방 나온다. 자료를 뒤졌더니 국전 15회(66년)부터 27회까지 17∼19회를 제외하곤 연이어 심사에 뽑힌 것으로 확인된다.‘9전9기’가 아니냐고 했더니 그냥 멋쩍게 웃기만 한다. 경기도 화성 출신인 그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어려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몸이 하도 허약해 농사꾼조차 못되는 쓸모없는 아이로 취급받았다. 중학때 미술 선생이 좋아 특활시간에 미술반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소정 변관식(76년 작고) 화백 등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데뷔 초기에는 실경산수를 자주 그렸다. 그는 슬하에 딸과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딸은 동양화를 전공, 현재 전시회를 준비 중이고 아들은 영국 켄트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생로병사의 근심을 털고 모두들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행복과 안식이 온 누리에 펼쳐지길 희망합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5 경기도 화성 출생 ▲70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한국미술대상전(국립현대미술관) 전시 ▲88년 건국대 교육대학원 회화과 석사 ▲79∼90년 추계예술대 교수 ▲90년∼현재 제주에서 생활 ▲71년 국립공보관 첫 개인전 ▲76년 2회 개인전 미도파화랑 ▲80년 3회 개인전 미도파화랑 ▲이후 2005년까지 19회 국내외 개인전 ▲단체전은 75년 아시아 현대미술전(도쿄)을 시작으로 50여회 참여 ■ 상훈 국전 제15,16,20,21,22,23,25,26,27회 입선. 한국미술대상전 입선(70년), 한국미술대전 문공부장관상(74년), 미술기자협회 미술기자상(83년), 미술시대 미술작가상(91년), 월전미술문화재단 제5회 월전미술상 수상(2001년) ■ 저서 ‘생활속에서-중도의 세계 이왈종의 회화’ ‘도가와 왈종’‘중국 회화 사상 및 문학성에 대한 연구’‘이왈종 화집’ km@seoul.co.kr
  • 성북구 성북천 복원사업 금상

    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추진하는 성북천 복원화 사업이 환경부와 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가 주최한 제5회 생태 조경 녹화대상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환경부 등은 성북천 복원시범구간은 청계천에 앞서 완료됐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 도심내 생태하천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며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성북구는 2001년 12월 성북천을 덮고 있던 상가를 철거하고 134m를 복원, 확 트인 녹색의 공간과 자연형 하천을 만들었다. 달뿌리풀 물억새 갯버들 등 69종 식물과 황조롱 노랑할미새 직박구리 산솔새 박새 참새 등이 서식하고 있다. 공모전은 건축물주변이나 공원 하천 등을 생태적으로 우수하게 조경·복원한 사례를 발굴, 자연보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매년 개최된다.
  • [데스크시각] 2% 부족한 서울시 행정/김성곤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25일 동안 520만명,4개월 만에 700만명’‘동막골’이나 ‘말아톤’의 관객 얘기가 아니라 청계천과 서울숲의 관람객 숫자다. 지난 10월 1일 개통 이래 청계천에는 하루 평균 20여만명의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주말이면 걷기 힘들 정도로 혼잡할 때도 있다. 청계천은 하루에도 몇번씩 변신한다. 점심 때가 되면 청계천은 직장동료 등 도심 샐러리맨의 산책로가 된다. 저녁에는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에서 섞인다. 서울사람도 있고, 서울 아닌 다른 곳 사람도 있다. 술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조의 발걸음과 마주치기도 한다.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는 웰빙족도 등장한다. 청계천이 낳은 새 도심 풍속도다. 청계천에는 가끔씩 유채꽃도 만발한다. 노란색 유니폼, 노란색 가방의 행렬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청계천 나들이 풍경이다. 이들은 청계천을 찾는 김에 서울광장도 반드시 들른다. 올망졸망한 어린이들이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서툰 젓가락질로 도시락을 먹는 모습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스스로 마음 속에 가둬버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담 너머 고궁이나 야외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서울 도심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서울숲도 마찬가지다. 하루 평균 1만∼1만 5000명이 찾는다. 주말에는 5만∼6만명이 서울숲을 누빈다. 청계천∼서울숲 코스는 지방 학생들의 수학여행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내국인뿐만이 아니다. 외국인들에게도 청계천은 이제 명소다. 여행사마다 청계천 투어 상품을 개발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굳이 상품으로 내놓지 않더라도 한국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제 청계천 정도는 알고 들어 온다. 타임지가 청계천과 청계천 개발의 주역 이명박 서울시장을 커버로 소개했고, 디스커버리채널도 최근 청계천을 경이로운 눈으로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지천을 먼저 살리지 않고, 청계천을 복원하는 바람에 한강물을 길어다 청계천 유지용수로 쓴다느니, 졸속으로 복원을 추진, 자연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았고, 후세에 제대로 된 개발을 아예 막았다는 비판적인 얘기도 있지만 청계천이 낳은 효과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적절한 비판이 아닐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묻는 외국인 친구에게 “고궁과 남산, 한강유람선…” 하다가 머뭇거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청계천과 서울숲 등은 이런 군색한 필자의 메뉴판을 풍성하게 해줬다. 세계 어디에 내놓더라도 손색이 없는 명소인 것이다. 이런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굳이 계량화한다면 2%쯤 될까.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너무 외과수술에만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또 외과수술의 효과를 과신한 나머지 다른 수술들을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다. 서울에는 겉병 말고도 속병들이 적지 않다. 외과수술 말고도 내과수술이 적잖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간혹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잠시 메스를 거두고, 이제 속병을 들여다볼 때라는 생각이다. 서울시가 제시한 대형 프로젝트 가운데 마지막 남은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의 착공시기를 놓고도 말이 많다.2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착공하는데 좀더 시간을 두고 철저한 검토와 연구를 거치자는 얘기도 만만치 않다. 혹자는 다음 세대나 다음 시장에게 이 일은 맡기자는 얘기도 나온다. 새겨들을 만한 얘기이다. 부족한 2%는 청계천 복원을 전후한 각종 사고의 처리에서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복원 첫날 실족사가 난 이후 유족의 섭섭함이나 이후 사고가 난 삼일교 조형물 설계자와 서울시와의 책임공방, 또 “한낮 청계천 복원 기념 마라톤에 참석했던 남편이 저녁에 뇌졸중으로 돌아왔지만 서울시에서 나몰라라 한다.”며 하소연한 경기도 분당에 사는 어느 가정주부의 섭섭함 등도 서울시가 메울 수 있었던 2%로 다가온다. 때론 2% 부족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2% 때문에 선거에 지기도 한다는 점을 이명박 시장이나 서울시는 알았으면 한다. 김성곤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sunggone@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2)차의 보관과 선별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2)차의 보관과 선별

    찬 서리가 새벽 산봉우리 구름에 걸리더니 어느새 빨간 화염(火焰)들이 두륜산을 하나 둘씩 점령해나가고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설악대청을 넘어 이곳 두륜산에 도착한 것이다. 그 하얀 무서리 위로 하얀 차꽃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 차꽃사이로 노란 꽃술을 잔뜩 묻힌 벌들이 윙윙거리며 바쁘게 꿀을 모으고 있다. 온갖 만물이 풍성하고 바쁜 계절들을 뒤로하고 서서히 생을 마감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금쯤 차인들은 자신의 차 곳간이 비어가고 있음에 벌써 초조해진다. 이때부터 차인들의 ‘차 인심’은 각박해진다. 봄은 아직 멀리있기 때문이다. 보관하고 있는 차 역시 마찬가지다. 장마가 지나고 가을이 오면 햇차맛은 사라지고 묵은 차 밭이 시작될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차와 아닌 차가 감별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차는 그 성질이 매우 까다롭다. 그래서 차를 고르고 보관하는 법 역시 매우 신중해야 한다. 만든 지 한 두 달이 된 햇차는 대부분 어떤 것을 고르더라도 색과 향 그리고 맛이 좋다. 찻잎이 가지고 있는 맛 향 색이 신선함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초의스님은 (다신전)에서 “차에는 스스로 진향(眞香), 진색(眞色), 진미(眞味)가 있으니 한번 한점이라도 물들게 되면 곧 참다움을 잃게 된다. 예컨대 물에 소금기가 있는 것과 차에 다른 물질이 있는 것과 다완에 생강이 있으면 모두 참됨을 잃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차의 보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차를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에는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하며, 탕을 끓일 때는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 정성을 다하고 건조하게 보관하고 청결하게 끓이게 되면 다도를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있다.”며 차의 보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초의스님의 차 보관법은 그런 점에서 매우 특이했다고 보여진다. 초의스님은 먼저 차를 청결한 병에 담아 대나무로 만든 피편(皮編)으로 눌렀다. 그리고 몇 차례 종이와 죽순 껍질로 빈틈없이 차통을 봉해버렸다. 그리고 예쁜 기와를 얹어 다실에 두었다. 명나라때 다서인 (다소)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다.(다소)에서는 “차를 자기 항아리에 넣고 죽순껍질로 누르고 죽피를 채워 봉한 후 상끈으로 매어 새로 구운 곱돌을 그위에 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의스님이 다성인 이유를 우리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봉지의 차를 보관하기 위해 손수 만든 차통을 밀봉한 후 그 차의 올곧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따로 다실까지 만드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차를 직접 제다했던 다인으로 차 한잎에도 늘 그 가치를 부여했다. 송나라 채양의 (다록)에도 차의 성질에 대해 논하고 있다.(다록)에는 “차는 대껍질과 상화하고 향이나 약 냄새를 싫어한다. 또 건조한 곳을 좋아하며, 축축한 곳을 꺼린다.”고 되어 있다. 옛날 우리 다인들은 차를 대나무로 만든 상자나 죽통에 보관하기도 했다. 또한 오동나무통에 넣어 끈으로 묶어서 처마 밑에 걸어두었다. 그것은 땅의 단열성과 흡수성으로 온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자연식 김치냉장고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바로 먹을 차의 용기는 한지같은 종이재료를 사용했고, 오래 두고먹을 차는 옹기같은 흙을 재료로한 것을 많이 이용했다. 과거 우리 차인들은 이렇게 차를 저장하는 집을 따로 마련,‘찻집’이라고 불렀고 차를 보관하는 방을 ‘다실’ 또는 ‘차실’이라고 불렀다. 자연을 이용해 그 사물을 보호하고 활용하는 우리선조들의 지혜가 경이로울 뿐이다. 먼저 법제된 차가 변질되지 않으려면 습도 온도 광선 산소 냄새 등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차가 지닌 본래의 맛과 향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차는 먼저 햇볕을 피해야 한다. 차가 햇빛에 직접 닿으면 폴리페놀 성분이 쉽게 산화될 뿐만 아니라 온도가 높으면 차의 엽록소가 쉽게 분해되어 찻잎이 누렇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차는 또한 섭씨 5도 가량 저온에 저장하는 것이 매우 좋다. 그래서 요즘 어떤 차인중엔 김치냉장고 같은 냉장고를 차 전용 냉장고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만약 여러 음식과 함께있는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면 흡착성이 매우 강한 차의 성질을 막아내기 위해 철저하게 밀봉하여 넣어두는 것이 좋다. 차는 가능한 한 차통에 보관해야 한다. 요즘 차를 보관하는 차통은 상품에 따라 다양한 재료들이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통적으로 쓰이고 있는 차통은 자기나 토기 금속 유리 종이 등이다. 그중 가장 무난한 것은 바로 자기나 토기로 된 차통이다. 금속 중에서는 주석통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차중에서도 녹차나 말차는 그 보관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황차나 홍차등 발효차에 비해 공기중에 노출되면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차가 공기중에 노출되면 습기를 흡수해 수분 함량이 높아진다. 차가 수분에 의해 용해되면 재빨리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차는 자체 변질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오룡차나 반야병차처럼 발효시켜 만든 차는 오래 저장할수록 그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만 생잎을 가지고 만든 덖음차나 녹차는 아무리 잘 보관하더라도 일년이 지나면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차를 개봉해서 마시며 보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개봉한 차는 늘 사람의 손보다는 찻숟가락 같은 도구를 이용해 마실 양을 꺼내야 한다. 사람의 손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도구들을 사용하면 그 냄새를 차가 흡수해 좋은 차맛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 보관에 못지 않게 좋은 차를 고르는 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차는 먼저 어떤 곳에서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등 사용하는 곳에 따라 차를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여러사람들이 차를 마셔야 한다면 값싸고 가볍게 마실수 있는 중작 정도의 차나 발효차가 무난하다. 특별히 격식을 갖추지 않고 여러사람이 두루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나 귀한 손님을 접대할 차를 원한다면 가장 최고의 차로 꼽히는 첫물차 즉 우전 같은 차를 선택해야 한다. 가장 품질이 뛰어난 첫물차는 귀한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최상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 등 시기별로 고르는 차의 종류는 보통 차를 처음 대하는 일반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차를 감별하는 방법은 색·향·미다. 차는 초의스님이 말했듯이 진미, 진향, 진색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차는 그 발효정도에 따라 고유한 맛과 향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녹차는 신선한 자연의 풋냄새와 열처리에 의한 깊은 향이 제맛이다. 차를 끓였을때 찻물은 맑고 신선한 것이 매우 좋으며 색이 어둡고 잡티가 섞인 것 같은 것은 좋지 않은 차에 속한다. 찻잎은 가늘고 말려진 상태가 균일한 것이 좋은 차다. 찻잎이 고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표면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좋다. 차의 빛깔을 보는 것을 완상(玩賞)이라고 한다. 완상은 오른손으로 찻잔을 쥐고 왼손으로 가볍게 받쳐서 가슴까지 가져간 후 눈으로 차의 빛깔을 보는 것이다. 이때 차의 빛깔은 봄날 갓 돋아난 여린 잎에서만 볼 수 있는 맑은 취색(翠色)을 으뜸으로 친다. 다음은 차의 향이다. 차의 향에서는 사향 즉 네가지의 향이 있다. 진향 난향 청향 순향을 말하는데 겉과 속이 똑같이 순수한 것을 순향, 설익지도 타지도 않은 것을 난향, 싱그러운 냄새를 갖춘 것을 진향이라고 한다. 차맛을 감미할때는 먼저 차 한모금을 입에물고 입안에서 한바퀴 굴려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차가 가진 색·향·미의 감미로움과 상태를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차에 대해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차 한잎은 마치 참새의 혓바닥처럼 작고 가늘다. 그 참새의 혀같은 차를 한통 채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다. 그 차를 법제하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진기가 소모되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차는 탄생에서 소비까지 모든 인간의 순수한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정심한 것이다. 과거 우리 차인들이 차방을 만들고 다실을 만드는 행위가 자칫 지배계층의 유희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한가지 음식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연과 합일된 생명사상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차를 마시기 위해 투여된 중생들의 뜨거운 눈물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차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발아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역설의 미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일지암 암주 ■ 정약용의 걸명소 차는 사람의 마음속에 차분한 기운으로 깃들어 있을 때 비로소 차가 된다. 차는 그 어떤 것보다 신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묘함이란 것은 우리가 말하는 형이상학적인 신비스러움이 아니다.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청정한 그 자리에 차는 있다는 것이다. 삶의 형식과 내용도 마찬가지다.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영위하지 않고 오염이 된다면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평생을 치욕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지도층의 추문은 그같은 삶의 또다른 반영이다. 한잎의 차에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것은 바로 그속에 생멸의 윤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가 일상에서 하나의 삶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것이 일상과 현실속에서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삶의 비밀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는 또하나의 반영체로 자리잡을때 비로소 살아 숨쉬는 것이 된다. 차가 우리시대에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삶에서 거칠게 부대끼는 중생들의 삶속에 여유와 평안함을 줄수 있는 간절한 힘이 바로 차속에 충만하게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예는 조선시대 최대의 실학자요, 당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정약용의 (걸명소)에서 확인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소외된 자의 마음을 달래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차의 마음을 정약용이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 차의 마음속에 깃든 힘을 통해 그는 새롭게 시대를 관통해내는 살아있는 지식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다산이 초의스님에게 보낸 차를 구하는 마음은 그같은 철학적 현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요새 차에 걸신이 들려 차를 약으로 하고 있다오, 다서 중에 중요한 것은 육우의 (다경)3편에 능통해야 하고 병든 주제에 꿀떡꿀떡 노동의 일곱잔을 다 마시고 있소, 비록 정력이 가라앉고 기력이 없어진다는 기 모경의 말을 잊지 않고 소화를 돕고 기미가 없어진다고 해서 이찬황의 버릇만 생겼소.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맑은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떴을 때,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시냇가에 떠있을 때, 한잔의 차가 목마르다오. 바람 부는 산, 등잔 밑 따끈한 차 한잔은 자순의 향이요, 물을 긷고 불을 지펴 마당에서 달인 차는 백토의 맛이지요. 화자 홍옥잔의 사치는 부호 노공에 미칠 수 없고, 돌솥에 푸른연기 지피는 검소는 한비자를 따를 수 없소, 게 눈이니 고기 눈이니 하는 옛 사람들의 완호는 부질없고, 궁궐의 용단봉단은 너무 심한 사치라오. 땔감나무조차 하지 못할 깊은 병이 들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차를 얻고자 할 뿐이오. 살짝 훔쳐듣건대, 고해의 다리를 건너는 데는 스님들의 보시가 제일이고, 명산의 고액인 서초의 우두머리인 차를 살짝 베풀어 주시는 것이라 했소, 목마르게 바라노니, 부디 그 은혜를 아끼지 마옵소서” 한사람의 생활인으로 차인으로서 간절한 마음은 시공을 초월해 있다. 난마같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듯 다산은 차의 모든 것을 일거에 관통해내고 있다. 그리고 또한 차를 법제하고 보내는 그마음이 바다보다 넓은 은혜임을 일깨우고 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차인의 마음자리인 것이다. 차 한잎에 깃든 우주의 생멸을 깨닫는 것이…
  • 악어 삼키다 배터진 비단뱀

    길이 4m의 미얀마 비단뱀이 1.8m짜리 악어를 통째로 삼켰다가 배가 터져 죽은 채 발견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국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순찰하던 헬리콥터 조종사와 동물학자들은 지난주에 비단뱀의 옆구리가 터져 악어의 꼬리 부분이 튀어나온 처참한 현장을 발견했다. 죽은 비단뱀의 머리는 근처에 없었다. 물론 악어도 숨졌다. 프랭크 마조티 플로리다 주립대 야생동물학과 교수는 “비단뱀 뱃속에서 악어가 발톱으로 쥐어뜯는 바람에 배가 터진 것 같다.”며 “소화 습관으로 볼 때 악어는 뱀의 위 속에서 삭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뱀 머리가 사라진 것은 평소 엄청나게 큰 뱀을 삼키길 꿈꿔온 다른 악어가 ‘꿀꺽’한 것으로 동물학자들은 보고 있다. 악어와 비단뱀은 지난 3년 동안 4차례 혈투를 벌였는데 대부분 악어가 승리하거나 비겼고, 이번에도 비단뱀은 절반의 승리만 거둔 셈이다. 5929㎢의 광활한 늪 지대에 수천마리 악어가 살고 있는 에버글레이즈 공원 근처 주민들이 지난 몇년새 애완용으로 키우던 비단뱀을 늪에 버리는 사례가 부쩍 늘어 지난 2년간 최소 150마리가 잡혔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비단뱀과 악어의 대결 소식을 듣고 일부 농장 주인들이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미얀마 비단뱀을 늪에 풀어놓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이번에 확인된 ‘최후의 만찬’ 장면은 외래종인 비단뱀들이 토착 동물들을 위협해 먹이사슬에서 맨 위 포식자였던 악어를 제압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동물학자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마조티 교수는 “이제 에버글레이즈에서 어떤 동물도 비단뱀으로부터 안전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6m까지 자라는 비단뱀은 수많은 파충류와 수달, 다람쥐, 황새, 참새 등 공원내 보호 대상 동물들을 마구 잡아 먹으며 방심한 사람, 특히 어린이까지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74세의 국민학교 졸업

      강원도 삼척군 장성읍의 철암국민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김용태(23)선생은 요즘 학교의 먼 변소에 가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동교 6년생이던 홍순식(洪淳植)(74)노인이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국어공부 제일 좋아 손자 복습시키고, 산수공부에는 끙끙 앓아 만학(晩學)이라는 말이 숫제 미안해진다. 68세로 국민하교 1학년에 입학을 해서 6년간을 개근하고 졸업을 했으니 말이다. 한국 교육사상 가장 나이 많은 국교졸업생이 홍노인이다. 바로 주요광산지대로 알려져 있는 머리보다 육체노동이 판을 치는 고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홍노인은 2월 10일 제24회 졸업식에서 손자 성덕(13)군과 함께 정든 교실을 떠났다. 제3312호의 졸업장과 6년 개근상과 그리고 군 교육장의 공로표창장과 상품을 한아름 안고 눈길을 걸어 나오는 노인의 얼굴엔 착잡한 감정이 어리고 있었다. 이날 꼬마졸업생 334명에 끼여 홍노인은 남자자리 앞 셋째줄 의자에 손자와 나란히 앉아 귀빈과 학부형들의 눈을 모았다. 재학생 대표 이정아양의 송사(送辭)와 졸업생 답사가 낭독될 때 노인은 두툼한 돋보기 안경을 벗고 노란 손수건을 온통 주름투성이인 얼굴에 연상 갖다 대며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에 눈물을 적시었다. 「70줄을 넘어선 놈」이 손자뻘 되는 꼬마들과 6년간 학교에 다니는 사이에는 홍노인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그는 처음 손자가 입학한 68년 3월 7일 병에 앓아 누운 애를 업어 갔고 8일 동안을 내처 그렇게 했다. 이때였다. 못 배운 한을 풀자는 소원이 솟구쳐 손자 보호 겸 자기 공부를 위한 입학수속을 취했다. 1, 2학년 때는 학교서 배운 ㄱ, ㄴ, ㄷ이나「참새 한 마리」같은 것이 재미가 있어 집에 돌아와서는 꼬마놈에게 복습을 시키는 등 열심이었다. 그것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사과 반쪽을 칠판에 그려놓고 1/2 혹은 1/3 하는 산수공부가 시작되자 어찌나 어려운지 집에 가서도 손자 앞에 큰 소리 한번 못치고 끙끙 앓아야 하기도 했다. 등교길에 손자와 간판 읽기 경쟁, 학교선 청소하고 불피워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노인이 손자를 앞세우고 집을 나서면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짓이 대단했다. 그렇지만 노인은 즐거웠다. 학교에 가는 길가에 광부모집광고나 영화선전「포스터」가 나붙어 있으면 으레 손자와 알아맞히기 내기를 걸었고 판가름을 담임선생에게 부탁했다. 노인은 이 내기에서 이기면 이긴대로 지면 진대로 신이 났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을 청소하고 난로불을 피워놓고 담임선생을 교무실에 가서 모셔왔다. 공부가 끝나면 손자 또래를 모두 집으로 보내고 교실 복도 유리창 변소청소를 도맡았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됐다. 6년 동안 한 책상에서 할아버지와 나란히 공부한 손자 성덕군에게도 여러가지 감상이 없을 리 없다. 성덕군은 졸업생 중의 가장 친한「클라스·메이트」나 길동무로는 할아버지 한 사람밖에 가지지 않는다. 『4학년 때부터는 할아버지가 내 책가방을 들고 가면 창피해서 할아버지 것도 내가 들고 다녔어요. 공부시간에는 할아버지한테서 담배냄새가 자꾸 나서 참는데 혼나기도 했구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것도 구수해졌어요』라고 말한다. - 할아버지는 어떤 공부를 제일 많이 했니? 『참 우스워요. 할아버진 집에서 국어공부만 자꾸 하자고 조르거든요. 과학 산수 미술 음악 공부는 전혀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시험 때는 내가 할아버지를 도로 가르치느라고 혼이 나기도 했죠』 공부시간에 가끔 담배생각 나는지, 라이터 뚜껑을 잘칵잘칵 - 공부시간에 할아버지가 장난도 쳤니? 『그럼요, 이따금 뚜껑이 떨어져 나간「라이터」를 꺼내 가지고 잘칵잘칵 켜보곤 해요. 담배생각이 나서 그러는 지도 모르겠어요』 체육시간에 손자 또래들이 공차기 시합을 하면 홍노인은 옆에서 지켜 서있는다. 그러다가 애들이 넘어지면 얼른 뛰어가서 일으켜준다. 이 때문에 시합이 잠깐 중단되곤 한다. 노소(老少)가 동락하는 6년이었다. 6학년 담임 김용태 교사는 노인을 깍듯이 모셨다. 맨 처음 담임을 맡아 교실에 쓱 들어섰을 때가 제일 거북했다. 출석부를 부르는데 할아버지뻘 되는 홍노인의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익힌 수법은 눈으로 슬그머니 노인의 모습을 확인하면 그대로 출석란에 도장을 찍었다. 선생님은 출석점호 이름 못부르고 담배도 노인 안보는 곳서 그래서 홍노인은 6년 동안 한 번도 출석부로 호명받지 않으면서도 개근상을 타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민학교생도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 담임선생이 거북했던 것은 담배 피우는 장소. 꽤 먼 변소에 가서 피워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학급운영, 아이들 싸움, 시설물 유지 같은 까다로운 일은 담임이 나서지 않아도 홍노인이 도맡아 처리했다. 더욱이 할아버지가 열심히 공부를 하는 통에 덕을 본 사람이 김선생이다. 이 학교에 있는 6학년 6개반 중 김선생의 반이 제일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유는 노인이 열심히 공부하는 통에 꼬마들도 덩달아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김교사는『노인이 우리반에 계셨기 때문에 교과서대로의 공부를 가르치기는 했지만 내가 인생을 배운 것은 가르친 것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노인은 잘못하면 졸업장을 못탈 뻔도 했다. 교직원 중에서 주자는 파는 김준한 교장 단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 45명은 반대파였다. 1주일 동안이나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교직원들은 의무교육법상 칠순 노인에게 졸업장을 줄 수 없다는 유권적 해석(?)을 내세웠고 김교장은 배움에 무슨 나이냐고 주장, 끝내 교장의 교육관이 이겨 졸업대장명부에 3312번으로 등록되고 졸업장이 나갔다. 학교에서 3km나 떨어진 곳에서 매일 등교할 때면 3곳의 철도 건널목을 지켜 꼬마들의 안전통학을 보장한 임시교통순경도 홍노인이었다고. 학교의 시설보수, 학풍조성, 문제아동선도 등에 나서 교사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홍노인이었다. 소원을 푼 노인은 글을 익힌 눈으로 죽을 때까지「소설책」을 많이 읽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날 졸업식을 끝낸 노인은 교문까지 따라 나온 담임선생과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나누었다. 손자 같은 교사에게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사는『선생님 감사합니다』였다. <삼척 = 송병훈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3 제2권 제8호 통권 제22호 ]
  • 주인없는 팔뚝 하나

      2일 밤 8시께 서울 종로구 충신동 6가 164 앞 골목길에서 어깨로부터 잘린 남자의 팔이 버려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 주인없는 팔은 몹시 말라있고 피부에「SUR」이란 문신이 새겨 있었는데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이 팔을 보내 잘려진 시기와 혈액형 등에 관한 감정을 의뢰했다.(2월 3일자 모 일간지 기사) 밤 8시께 한 잔 하고 귀가하던 길, 골목 접어들다 깜짝 놀라 그 날도 H씨는 하오 5시 30분 정각 회사문을 나섰다.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길은 무척 미끄럽고 보행이 불편했으나 대포친구 K씨가 이끄는 대로 무교동 어느 참새구이집에 들러 정종을 반되쯤 마셨다. 참새구이집에서 나온 것이 8시께. H씨는 한 잔 더 하자는 K씨의 유혹을 뿌리치고 합승에 올랐다. 합승에서 내린 H씨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의지삼아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골목길은 빙판처럼 미끄럽고 군데군데 눈더미가 쌓여 있었다. H씨의 집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드는 순간, H씨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버렸다. 일순 호흡까지 멎어 버렸다. 희미한 불빛 수북이 쌓인 눈더미 속에 팔뚝 하나가 삐죽이 솟아 H씨 앞 5~6미터쯤 되는 곳에 수북이 쌓인 눈더미 속에 사람의 팔 하나가 약 15도 각도로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H씨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한 발 더 다가갔다. 삐죽이 삐져나온 그 팔은 무섭도록 말라 있었으며 옷이라곤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게다가 흰 눈 때문인지 무척 검어 보였다. H씨는 한참 동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사람이 하나 파묻혀 있기엔 눈더미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용기를 낸 H씨가 그 팔을 잡아당기자 어깨서부터 잘린 사람의 팔 하나가 덩그렇게 딸려 나오는 것이었다. 눈더미 속에 버려진 팔 하나를 발견했다는 H씨의 신고를 받은 동대문경찰서는 바짝 긴장했다. 수사2과의 당직형사들은 즉각 백차를 타고 현장에 나타났다. 알고보니 해부학 교실서 나온 시체 근래에 드문 엽기적 토막살인사건의 발생이라고 추리했던 형사들은,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서 실물을 보고 나자 좀 당황했다. 토막살인사건의 시체라면 보통 부패해 있게 마련인데 이 임자없는 팔은 전혀 부패한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말라있고 팔에는 뭔지 알 수 없는「알파베트」가 무수히 씌어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수사진은 우선 신고인 H씨로부터 신고경위를 듣고 철저한 현장조사를 마친 다음, 날이 새기를 기다려 3일 아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이 팔의 감정을 의뢰했다. 여기서부터 사태는 좀「코미컬」하게 발전되었다. 발견되면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겨지기까지 13시간 동안 여러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이 임자없는 팔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 우선 문신이라고 착각했던「알파베트」가 문신이 아니라「잉크」로 쓰인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리고 그 팔에 쓰인 ECRL, ECRB, BR, FCU, FCR, PT, RT, ECR의 8개 약자는 바로 해부학 용어들. 예를 들어 ECRL은 단요측수근신근(短橈側手根伸筋)이란 근육의 약자(略字). 이래서 이 팔은 살인사건 피살자의 팔이 아니라 해부학교실 해부용 시체의 일부임이 밝혀진 것이다. 동대문경찰서에선 혈액감정까지 의뢰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선 워낙 시체가 말라있고 또 방부제「포르말린」속에 저장되어 있던 것이라 혈액형은 알아낼 수 없다는 결론. 이 팔은 어깨에서 팔꿈치까지가 34cm,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가 27cm, 합계 61cm의 길이. 검정 결론은 아주 지능적인 범인이 토막살인시체를 해부용으로 위장해버리지 않은 한 이 팔은 어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서 흘러나온 것이란 결론. 남은 문제는 이 팔이 어떻게 해부학교실을 빠져 나왔으며 어떻게 충신동 으슥한 골목길 눈더미 속에 파묻히게 되었느냐 하는 점. 발없는 팔이 걸어나왔을 리는 없고 더군다나 팔 혼자 기어나왔을 리는 더욱 없다. 누군가, 무엇엔가 의해 운반되어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럼 과연 이 운반범은 누구일까? 다음 이 사건에 관계했던 실무자와 의대교수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이문호박사(서울의대교수) = 원래 해부학교실에서 다루는 시체는 어떤 것을 막론하고 해부학교실 밖으로 내어갈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러나 의대 1년 시절은 호기심 많은 시절이므로 인체의 두개골이나 그밖의 장기들을 교수 눈을 피해 몰래 집에 가져가는 일이 있다. 내 생각으론 어떤 의대생이 공부하러 집에 가지고 갔다가 집안사람들도 싫어하고 하니까 버린다는 게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 윤순웅씨(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의무기좌) = 감정해본 결과 해부용임이 확실하다. 아마 해부가 끈난 뒤 가매장을 한다는 것이 소홀히 되어 노출된 것을 개가 물고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의대생이 운반하기엔 61cm란 길이가 너무 길어 가방 속에 도저히 들어가지 않으니까. 반출자는 누구냐에 두 갈래 추리, 학생이다 개다로 엇갈려 이래서 엽기적 토막 살인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취재기자는「코믹·드릴러」를 본 것 같은 기분으로 물러서야 했지만 그래도 몇 가지 문제점은 남아 있다. 아무리 해부용으로 시체가 필요하다 해도 학문적으로 다루어지고 난 뒤엔 정중히 처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가령 범인이 의대생이든 개든 사람의 팔이 길에 버려진다는 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것. 각 의대에선 대부분 연고자 없는 행려사망자(行旅死亡者)들을 해부용으로 쓰고 있으며 이따금 사자 생존시의 부탁 또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시체를 기증받고 있다. 일단 해부가 끝나면 이를 화장하는 것이 통례. 그러나 해부학 실습시간에 인체의 부분 부분을 의대생들이 교수 눈을 피해 외부로 반출해내는 것은 거의 하나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우선 이 버릇부터 없애야 할 일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2/16 제2권 7호 통권 제21호 ]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8)한국의 토산 명차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8)한국의 토산 명차들

    대롱꽃나무에 붉은고추잠자리가 서성이는 것을 보니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일지암 초당앞 차밭엔 어느새 차꽃이 피었다. 하얀 소화(小花)다.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하얀 소화꽃을 보고 태맥산맥의 조정래 선생은 그 여주인공 이름을 소화라고 했다. 차꽃이 열리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향기가 벙그러진 꽃들사이로 작설의 기운을 차곡 차곡 안으로 안으로 안아낼 것이다. 삶과 영혼의 기쁨이 깃든 한잔의 따뜻한 차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조선시대 시대를 반역하며 산중에 은거한 거인(巨人)이었던 설잠 김시습의 살림살이가 떠오른다. 경주 용장사에 은거해 작은 초당을 짓고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달여 마시던 설잠은 형편따라 살림을 사는 안분지족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무를 푹 삶고 또 오이를 구워서/형편 따라 먹는 산중의 공양 차도 달이네/배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아 한가로이 누웠으니/이제사 알겠네, 뜬 뗏목 같은 신세인 줄을!” 설잠은 ‘삶은 부평초 같은 것이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삶은 또한 뿌리깊은 나무같은 것이다. 머뭇거리는 구름도, 석양의 햇살을 몰고가는 바람도 그 흔적이 없지만 삶은 손님을 보내버린 주인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우리차의 흔적도 마찬가지다. 마치 허공에 갈아 놓은 밭처럼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여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그 황금의 차향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명차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의 ‘뇌원차’다.(고려사 열전)에는 ‘최승로가 죽으니 문정이라 휘하였는데, 나이는 63세였다. 왕이 슬퍼하며 하교하여 그 훈덕을 보상하여 태사로 중하고, 베 천필, 면 삼백석, 경미 오백석, 유향 200량, 뇌원차 200각, 대차 10근을 부의하였다.´고 적고 있다. 왕이 국가에 큰 공덕을 세운 신하에게 ‘차’를 상으로 내리는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그 당시 차를 살펴보면 중국의 명차였던 ‘용병봉단’등 대부분 중국차 이름이 등장한다. 그 당시에도 우리 차는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야 신라의 문헌들은 그같은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삼국유사)에는 문무왕때 가야의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음식으로 밥 떡 과일과 함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보여진다. 또한 보천 효명태자의 헌공다례에 대한 기록, 쌍계사 진감국사비에 새겨져 있는 ‘음다유복’, 고구려무덤에서 발견된 전차(錢茶)등의 기록을 보면 가야 삼국시대에도 우리 토산차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건 민심 달래려 백성들에 차 하사 그러나 불행하게도 왕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은 문화적 선진국이었던 중국 차를 매우 선호했던 것 같다. 차를 하사한 여러 가지 문헌에 우리차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려사 열전)에 기록된 ‘뇌원차’에 대한 것은 우리명차와 관련해 귀중한 기록 중 하나인 것이다.‘뇌원차’는 덩이차였던 각차였다. 헤아렸던 단위는 각이며 주로 국가 최대의 행사였던 팔관회 공덕제등 국가행사, 국빈급 외교관의 방문에 답하는 예물이었던 ‘어용단차’(御用團茶)였던 것으로 보여진다.‘어용단차’였던 ‘뇌원차’는 그런 점에서 우리토산차의 역사를 신라를 비롯한 삼국시대까지 끌어올리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고려가 후백제와 신라를 병합하기 전 차를 생산했던 전라 경상도에 영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신라의 경순왕이 그의 권좌를 넘겨준 것은 935년이다.‘뇌원차’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최고품질의 토산차였다는 것이다. 뇌원차, 즉 단차의 제조는 조선시대 말엽까지 이어져왔다. 찻잎을 찌거나 데쳐낸 다음 절구에 찧은 후 모양을 찍어 말렸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음다법은 우리가 보리차를 끓이듯 차를 물에 끓여서 마셨다. 그런 점에서 뇌원차는 차를 물에 넣고 오랫동안 끓여도 쓰거나 떫지 않은 발효차였을 것이다. 이 시기 또 다른 토산차에 대한 기록은 ‘대차’(大茶)에 대한 것이다. 대차가 사용된 시기는 뇌원차가 사용된 시기와 비슷하다. 그시대 토산차 중 하나였던 ‘대차’는 외교사절이나 국가행사때 하사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일반대중들이 마시는, 등급 낮은 대중토산차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에 또 다른 기록이 있다.‘태조 14년(931년) 8월 계축일에 보윤과 선규등을 보내어 신라의 왕에게 안마 능라 채금을 전하고 아울러 백관들에게 채면을, 국민들에게는 차와 복두, 승려들에게는 차와 향을 각각 하사하였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국민과 승려들에게 차를 하사했다는 대목이다. 차는 당시 매우 귀한 물품이었다. 그것은 곧 차의 국내생산이 매우 적었다는 것을 뜻한다. 역설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민중들이 차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새롭게 국가를 건설한 태조왕건이 국내의 흉흉한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위해 하사한 선물이라면 많은 민중들의 애장품이었던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우리차의 대명사랄수 있는 ‘작설차’다.‘작설’은 고려시대의 연고차를 거쳐 조선중기에 우리가 현재 마시는 잎차로 정착했다.(동국여지승람)(동의보감)에 등재되어 있는 ‘차’ 또는 ‘작설’의 명칭이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은 바로 고려시대 문인이었던 이제현의 시에서다. 이제현은 차를 매우 잘 제다했던 송광스님에게 차를 받고 다음과 같은 답시를 보낸다. “가을 감 먼저 따서 나에게 보내주고/봄날 불쬐어 말린 작설도 여러번 나누어 주었네/맑은 향기 한식전에 딴 것인가/고운 빛깔 숲속의 이슬을 머금었는 듯/돌솥에 물 끓으니 솔바람소리/자기 잔에 따르니 빙빙돌며 젖빛 꽃이 피어난다.” 조선시대 작설차에 대한 기록은 매월당 김시습의 ‘작설’이란 시에 잘나타나 있다.“남쪽나라의 봄 바람이 일렁이는데/차 나무 숲 잎들은 뾰족한 부리 내미네/어린싹을 가려내니 신령스러움과 통하고/그 맛은 이미 육홍점의 다경에 기록되었네/기창 사이에서 자주빛 싹을 가려내어/용병봉단의 모습만 헛되이 흉내 내었네/산집에 밤 고요하여 객들은 둘러 앉았는데/한번 마신 운유차에 두 눈이 밝아진다/당시 집에서 잔일이나 하던 저 사람이/어찌 알겠나 눈으로 다린 차가 이처럼 맑다는 것을” ●참새 혀 형상 작설차 우리명차 대명사로 고려후기부터 조선까지 이어져 우리차의 대명사가 된 ‘작설차’는 아주 이른시기인 경칩을 전후해 어린 잎으로 만들어진 차라는 것이 여러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중국의 다서인 (선화북원공다록)에는 찻잎의 품격을 논할 때 가장 으뜸가는 찻잎을 작은 싹 즉 소아(小芽)라고 하면서 그 모양은 참새 혀(雀舌)와 발톱 같다고 했다. 다음은 이규보가 거론한 유차(孺茶)와 향차에 대한 것이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차 벗인 노규선사가 보내준 ‘조아차’(早芽茶)를 스스로 ‘유차’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규보는 ‘운봉에 사는 노규선사가 조아차를 내놓기에 내가 유차라 이름 짓고 스님이 시를 청하기에 읊노라’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스님은 어디서 차를 얻었을까. 받자마자 코에 밀어닥치는 향기에 먼저 놀라네. 벽돌화로에 활활 타는 불로 차를 시험삼아 달여, 꽃무늬 오지사발에 차를 일구니 그 빛깔과 맛을 자랑하네. 진한 차 입에 들어가니 연하고도 부드러운데, 어린아이의 젖내와 같은 향기가 있구나. 부귀한 가문에서도 이런 차를 볼 수 없는데, 우리 스님이 이 차를 얻은 것이 이상도 하네.” ‘유차’라는 명칭은 소동파의 (주인에게 유차를 붙이며)라는 시에서 맨 처음 등장한다. 이규보는 아주 작은 조아차를 보고 ‘유차’라고 명명한 것이다. 여기서 조아차는 당시 중국의 명차였던 몽정차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최고의 명품차였던 몽정차와 유차를 비교한 것은 유차 역시 뛰어난 명품차였다는 또다른 반증이기도 하다. 유차는 당시 화계에서 생산되었다. 이규보가 손한장에게 화계의 유차에 대해 적어보내고 있다.“우연히 유차의 시를 지었는데, 그대에게 전해질 줄 생각지도 못했네. 시를 보자 화계에서 놀던 일 문득 생각나 눈물이 나네. 운봉의 차를 맛보니 남녘에서 마시던 일이 완연하구나.”고 말하고 있다. 이규보는 또 “화계에서 차 따던 일 생각해보세. 관에서는 감독하여 아이 늙은이 모두 불러내어 험준산 산속에서 겨우 차를 따모아 머나먼 서울까지 등짐지어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피와 땀이니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서울로 오게 되었네.”라며 당시 차 공납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초의스님 ‘떡차´ 반야병다로 재현 고려시대 뇌원차에 비견할 만한 ‘향차’도 과거 우리 명품차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음선정요)와 (고려사)에서는 “흰 차 한자루, 용뇌조각 석돈, 백약전 반돈, 사향 두돈을 가늘게 갈아서 멥쌀로 쑨 죽과 섞어서 떡 모양으로 틀에 박아서 만든다. 충렬왕 임진 18년(1292)10월 을사일에 홍군상이 돌아갈 때 장군인 홍선을 보내어 홍군상과 함께 원나라에 가서 향차와 목과 등을 바치게 하였다.”며 향차가 뇌원차 만큼 귀한 차였음을 알게 한다. 신라 고려시대 등 우리나라 차인들은 중국명품차의 성분을 분석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맛과 향을 모방해내 창조적인 차들을 많이 생산했을 것이다. 과거의 기록에서 사찰이나 귀족들이 고급차를 직접 제다해 서로 ‘투다’(鬪茶)를 한 것을 보면 많은 차들이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토산차로는 초의스님의 ‘떡차’를 들 수 있다. 초의스님의 제자인 범해 각안스님은 ‘초의차’란 시에서 “곡우절 맑은날 /노오란 싹은 아직 잎이 피지 않았는데/솥에서 데쳐내어 밀실에서 말리네/모나거나 둥근 차 찍어내고/죽순껍질로 안을 말아서 싸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 초의스님의 떡차는 일지암에서 ‘반야병다’라는 이름을 재현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과거 우리명차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허전하고 빈약하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근현대 차인들은 우리차의 명맥을 살려내고 있다.‘잭살영감’ 조병권옹, 김복순 조태연씨, 그리고 1939년 전남 강진에서 ‘백운옥판차’를 생산한 이한영씨 등이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의재 허백련 선생의 춘설차, 효당 최범술 스님의 반야로, 화개제다의 홍소술사장, 광주 서양원사장, 보성 대한다업의 장영섭씨 등이 그뒤를 잇고 있다. 일지암 암주 ■ 차 몇통과 바꾼 1년 양식 우리차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화개골의 전설이 되어버린 ‘잭살영감’ 청파 조병곤옹의 이야기다. 그의 정확한 이력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은 없다. 그는 중국에서 머물다 해방후 죽을 때 까지 쌍계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에 대한 일화 몇가지를 소개해보자. 해방후 한국차는 그 명맥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다. 당시 몇몇 스님들과 선비들을 제외하고 민중들의 머리엔 ‘차’라는 이름이 거의 사라졌을 때였다. 중국에서 귀국한 잭살영감은 아마도 중국에서 차에 대한 깊은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는 먼저 쌍계사 대밭숲에 자생하던 어린 차나무들을 파내어 차밭을 조성했다. 그때 조옹은 화개골 사람들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세상’이 열릴 것이라며 차밭 조성을 종용하는 예언을 했다. 그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도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봄이 되면 조옹은 손수 가꾼 차밭에서 차를 따고 덖어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던 경무대를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차 몇통을 전달한 뒤 그가 먹을 1년치 양식값을 가져왔다고 한다. 가장 서구적인 대통령으로만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은 차를 아는 차인이었던 셈이다. 조옹은 또 가장 현대적인 차 상품을 직접 만든 차인이었다. 당시 매우 귀했던 깡통을 차통으로 디자인해 수백통의 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차를 모르던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낙심한 그는 그 귀한 차들을 해우소에 쏟아버렸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차가 외면당하자 조옹은 그만 몸져 눕고 말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차를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근현대사 차이야기 중 하나다. 기록되지 않는 화개차의 전설로 우리곁에 머물고 있는 ‘잭살영감’이 만든 차는 ‘작설차’와 ‘발효차’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찔레꽃같은 향편차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평가해보면 ‘잭살영감’은 대단히 선각적인 차인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화개에는 또다른 전설들도 있다. 김복순 할머니와 조태연씨가 1960년 중후반 ‘죽로차’와 ‘작설차’라는 이름을 가진 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판매했다. 조선시대를 지나 한일합병으로 우리들에게 잊혔던 우리차가 이름없는 이들에 의해 그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은 바로 차의 향기와 문화의 위대함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 儒林(41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1)

    儒林(416)-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1)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1) 맹자가 순우곤의 힐난에 공자의 제육이야기로 답변하였던 것은 공자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공자가 제육을 나누어 주지 않자 떠난 것은 ‘한갓 고기 때문에 화를 냈기 때문’이라고 비웃었으며, 학식이 많은 학자들은 한갓 고기 때문에 고국을 버리고 떠나는 공자를 임금에 대한 무례(無禮) 때문이라고 비난하였지만 맹자는 공자가 ‘진리를 실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떠나는데 자기 나라 임금과 대부의 약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고국의 잘못을 외국에 널리 알리는 것이 되므로 제육이라는 작은 허물을 핑계거리로 삼아서 떠난 것’이라고 답변하였던 것이다. 맹자의 이 말은 한갓 소인배나 조무래기들은 감히 큰 인물의 원대한 이상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인 것이다. 즉 공자가 제육을 핑계 삼아서 고국을 떠난 것에 대해서 ‘공자가 고기에 눈이 멀었다.’라고 비난하거나 ‘공자가 임금에 대해서 무례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은 ‘제비나 참새는 큰 기러기나 백조의 뜻을 알 수 없다.’는 뜻의 ‘연작부지홍곡지지(燕雀不知鴻鵠之志)’와 다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군자가 하는 것을 중인들은 원래 알지 못한다(君子之所爲 衆人固不識也).” 졸지에 중인이 되어버린 순우곤. 초라하게 쫓겨나듯 출국하는 맹자를 멀리서 찾아와 먼젓번의 패배를 씻고 복수를 꾀했던 순우곤은 이로써 삽시간에 소인배로 전락함으로써 또다시 비참한 패배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혹을 떼러 왔다가 또 하나의 혹을 붙이고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던 순우곤은 유가의 투장 맹자에게 이처럼 초개처럼 베어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순우곤이 돌아간 뒤 맹자는 마침내 제나라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 버린다. 마지막 환상이 깨지자마자 맹자는 두 차례에 걸쳐 오랫동안 빈객으로 지낸 제나라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모습을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제나라의 선왕을 섬기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혜왕도 맹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맹자를 친견해보니 하는 말들의 의미가 너무 멀어서 현실사정에 어둡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중략)…또 제나라의 선왕은 손자(孫子), 전기(田忌) 등을 등용하여 제후를 동으로 향하여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연횡에 미쳐 날뛰어 싸움하고 공격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생각하고 있던 혼돈의 시대였다. 그런데 맹자는 오로지 요순과 삼대(夏,殷,周)의 제왕의 덕을 부르짖어 시세의 요구와 멀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말을 하여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러한 맹자의 모습을 ‘맹자순경열전’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중니(仲尼: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굶주려 배추 잎새와 같은 얼굴이 되었으며,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지극히 곤궁하였다.” 사마천의 기록처럼 지극히 곤궁하였던 맹자는 마침내 제나라를 떠난다. 이때가 BC312년, 맹자의 나이 60세 때의 일이었다.
  • 톱스타가 전하는 ‘주유소 이야기’

    “최민식 두번 웃다. 에쓰-오일에서 좋은 기름 넣고, 선물도 챙기고” “김태희 자꾸 쳐다보다. 좋은 기름 넣으려고 에쓰-오일만 보면 눈금 확인” 지난 1일부터 서울신문을 비롯한 인쇄 매체에 등장한 에쓰-오일의 광고다. 다소 쌩뚱맞아 보인다. 하지만 CF를 찬찬히 보면 메시지가 명확하다. “제가 뭘 바라고 오는 건 아닙니다. 저는….”이라고 최민식이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노란색 복장의 도우미가 뭔가를 들고 뛰어나온다. 김태희의 차가 주유소 앞에 선다. 그러나 기름을 넣지도 않은 채 “미안해요.”라며 주유소를 떠나버린다. 그러기를 몇 번…. 이달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에쓰-오일의 캠페인성 광고에서 차사랑 전도사로 최민식과 김태희가 등장한다. 이들은 ‘좋은 기름’과 ‘습관’편에서 에쓰-오일 주유소로 가는 이유를 전하고 있다. 최민식은 “그저, 좋은 기름 그거 하나 보고 에쓰-오일에 오는 거죠.”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참새들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본 좋게 핸들을 잡은 최민식은 “내가 에쓰-오일에 가는 까닭”이라는 멘트와 함께 도로를 질주한다. 에쓰-오일 주유소 앞에서 김태희가 자꾸 멈추는 이유는?“전 에쓰-오일만 보면 차를 세우고 눈금을 보게 돼요. 급해서 아무 기름이나 넣으면 곤란하잖아요.”김태희의 말에 공감하듯 뒷좌석 개도 끄덕인다. 최민식이나 김태희 광고 모두 참새와 개가 의인화돼 친근감을 극대화했다. 에쓰-오일 광고 가운데 처음으로 실제 주유소에서 촬영한 이번 광고는 ‘에쓰-오일에 가는 까닭’을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처럼 전하는 증언식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은연중에 신뢰감이 가도록 만들었다.또 생활속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주유소에 대한 소재를 활용해 광고가 아니라 차 사랑의 메시지처럼 보이게 둔갑시켰다.노란색을 직사각형 안에 배치해 에쓰-오일과의 연상효과를 강조했다. 또 최민식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잡음방지를 이유로 에어컨을 끈 차 안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연방 웃으면서 연기를 해 역시 프로답다는 찬사를 들었다. 김태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레오’라는 이름의 골든 리트리버종 개는 긴장을 많이 한 듯 촬영할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고 산만해졌다. 급기야는 별도로 촬영하여 김태희 연기 부분과 합성을 해야만 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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