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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분향소」 2백명이상 참배/국감자료

    【광주=최치봉기자】 지난 7월 전남대 제1학생회관에 설치된 김일성분향소에는 당초 알려진 10여명보다 훨씬 많은 2백50여명의 광주지역 운동권 학생이 분향,참배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분향소설치자료는 일본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범청학련∼한총련∼남총련을 거치는 연락체계를 통해 전달돼 김일성사망 다음날 하오 남총련 간부들의 모의과정을 거쳐 조직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29일 하오 전남지방경찰청에 대한 국회 내무위의 국정감사보고자료에서 밝혀졌다.
  • 고개:상(서울 6백년 만상:59)

    ◎남태령/여우고래로 불리다 정조때 개명/춘향전서도 언급… 서울∼사남 잇는 길목/산적 많아 행인들 넘을때 월치전 준비 『전라도로 내려갈제 청파역졸 분부하고 숭례문밖 내다라서…동자기(지금의 동작동)밧비 건너 승방들(승방뜰)·남태령·과천·인덕원 중화(점심)하고…』­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전라도로 내려가는 대목에서 알수 있듯 남태령은 서울과 삼남을 잇는 길목이었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승방뜰(승방평)과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을 잇는 남태령은 그 길이가 무려 3.3㎞에 이른다.지난 63년 서울로 편입되면서 2.2㎞는 서울에,나머지 1.1㎞는 경기도 땅으로 남아있다.관악산의 북동쪽 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개의 남서쪽에는 관악산 정상이,북동쪽에는 우면산 정상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남태령의 이름이 아직 「여우고개」로 불리고 있을 때 정조는 이고개를 넘어 수원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자주 참배했다고 한다.정조는 당시 배로 한강을 건너 남태령과 과천,사그내(현재의 의왕시)를 지나 수원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어느날 임금의 행차가 남태령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을 때 정조는 수행하는 시종들에게 고개이름을 물었다.이때 과천현 이방은 「남태령」이라고 선뜻 대답했다.「여우고개」라고 알고 있던 임금은 『왜 남태령이라고 했느냐』고 되물었다.그는 『임금께 요망스런 짐승 이름을 댈 수가 없어 서울 남쪽의 가장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 둘러댔다』고 아뢰었다.정조는 그의 뜻을 가상히 여겨 거짓고함을 책망하지 않고 남태령으로 부르도록 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고 전해진다. 미아리고개등 서울의 대표적인 고개가 다 그렇듯 남태령 역시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고개가 험준해 옛날에는 관아에서 젊은이들을 고용해 여러사람이 모인뒤에야 행인들을 호송,고개를 넘도록 했다.행인들은 고용된 젊은이들의 요구에 따라 월치전(고개넘잇돈)을 준비해야만 했다.돈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혼자 고갯길을 넘어야 했고 그때마다 산적들에게 약탈을 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땔감장수들 가운데서도 험준한 관악산에서 나무를 해다 파는 사람이 많아 지게나 소의 바소쿠리에 장작을 가득얹어 남태령을 넘는 과천나무장수들의 모습은 서울 사람들의 눈에 익은 풍물의 하나이기도 했다. 6·25때는 격전지로 바뀌기도 했다.관악산을 장악한 인민군과 북상하는 국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과천부터 긴다』는 옛말이 있다.이는 어떤일을 앞두고 미리 겁부터 먹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쓰던 말이다.서울나들이에 나선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각박스럽고 사나운 장안인심이 겁나 가파른 남태령을 기어넘듯 과천에서 부터 몸을 사렸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과천 안양 시흥등 도시들이 집중 개발되면서 남태령은 출퇴근 시간은 물론 거의 하루종일 몰려드는 차량들로 홍수를 이뤄 남태령을 기어 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기존 4차선도로가 8차선으로 넓혀졌고 최근에는 고개밑으로 지하철 과천선이 통과해 사정은 전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그러나 평촌·산본신도시를 비롯,과천정부종합청사,서울대공원,서울경마장을 드나드는 차량이 하루 3만여대에 이르는등 이용차량이 갈수록 늘어 서울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중 하나가 됐다.
  • “「정치재개」 심사숙고해 결정”/박철언씨 출소 주변

    ◎가족·지역구민 등 50여명 마중나와 슬롯머신사건으로 구속돼 1년4개월을 복역하고 16일 가석방된 박철언전의원은 『유죄판결을 내려도 없는 죄를 만들지는 못한다』는 말로 거듭 무죄임을 주장했다.박전의원은 그러나 『이제 모든 분노와 통한은 감옥에 묻었다』면서 『앞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생활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구치소 앞에는 부인 현경자의원등 가족과 비서진,친지,지역구 관계자등 50여명이 마중나와 비교적 조촐하게 박전의원의 출소를 환영했다.신민당 관계자들은 같은 시간에 당무회의가 예정돼 있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박전의원은 이날 상오 10시 정각에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서 기다리고 있던 부인 현의원과 맏딸 지영양(24),아들 종현군(20)등과 포옹.박전의원은 특히 지난 8·2보선때 현의원의 당선에 헌신한 지영양을 힘껏 껴안으면서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연한 갈색양복차림에 비교적 건강한 모습의 박전의원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부인과 맏딸의 어깨를 감싸안고 잠시 포즈를 취한 뒤즉석에서 기자회견. 박전의원은 『지난 1년4개월동안 뜨겁게 성원해준 국민과 대구시민,그리고 따뜻하게 대해준 교도관들에게 우선 감사하다』고 소감을 피력. 이어 『감옥도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히고 『다만 면회온 팔순 노모를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뵐 때는 마음이 아팠다』고 술회. 정치재개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주위의 여러분들과 의논한 뒤 심사숙고해 결정하겠다』고 신중하게 답변.그러나 뇌물수수혐의에 대해서는 결연한 표정으로 『천지신명께 맹세코 결백하다』면서 『유죄판결로 없는 죄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은 역사가 밝혀줄 것』이라고 강조.「정부가 가석방한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초범으로 행형성적이 좋으면 대부분 석달정도 형기를 면해 주는 것이 통례 아니냐』고 답변. 부인의 정치입문에 대해서는 『입후보할 때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다』고 밝힌뒤 『내 결백을 믿고 집사람에게 승리를 안겨준 대구시민들에게 감사한다』고 언급. 한편 현의원은 남편의 가석방에대해 『어제 뉴스를 통해서야 알게됐다』면서 『늦게나마 남편이 가족의 품에 돌아와 기쁘지만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 착잡하다』고 소감을 피력. 박의원은 회견에 이어 10시20분 가족과 함께 구치소를 떠나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곧바로 양재동 자택으로 귀가.
  • 북기자 20명 “후계지명 끝났다”/미군유해송환 판문점 표정

    ◎「전단살포」 보도엔 “남조선이 조작”/북병사 4명 관이송… 35분간 엄수 지난 7월8일 북한이 김일성의 사망을 발표한 이후 처음으로 13일 유엔측과 북한측이 유엔군유해 반환을 위해 만남으로써 남북한기자들도 서로 대화를 가졌다. ○…이날 판문점에 나타난 북한군이나 북한기자들은 김사망전과 다름없이 모두 왼쪽 가슴에 김일성배지를 단채 김일성에 대한 상투적인 칭송을 늘어놓았다.또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일성사망 때문인지 가급적 한국기자들과 대화를 회피하고 전혀 웃음을 보이지 않는등 풀죽은 기색이 역력했다. 북한군들은 짙은 밤색의 정복이 다소 낡아보였으나 검은색 구두만은 깨끗하게 빛나 눈길을 끌었다. ○…이날 북측에서는 기자 20여명이 나와 유해반환식을 주시. 북한군들은 한국측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전혀 답변을 하지 않았으며 북한기자들은 한사람이 한국기자들과 대화를 하면 즉시 여러사람들이 몰려들어 마치 대화를 감시하는 듯한 인상. 한 북한기자는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해『70년대 권력승계작업이 진행돼 80년대들어 후계자 지명이 끝났는데 무슨 권력승계작업을 하느냐』며 『뚱딴지 같은 소리좀 하지 말라』고 신경질적으로 답변. 그는 또 『국제사회에서는 오는 10월중순 지명대회를 열고 대대적인 추대식을 가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한국기자들이 말을 건네자 『이미 후계자지명이 끝났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추대식이 있느냐』며 거듭 밝혀 김정일이 공식행사없이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을 시사. ○…『왜 아직도 김일성배지를 달고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함께 계신다」는 구호를 내렸다』면서 『두고보라,김정일동지의 배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 ○…다른 북한기자는 김일성시신 처리와 관련,『단군릉은 10월3일 공사가 끝나며 시신안치와는 관계없다』고 말하면서 『모택동처럼 시신을 유리관에 넣어 인민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또 어느 곳에 시신을 안치할 것인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한국측의 보도에 대해모두 거짓말이라고 맹공격. 또 신의주에 김정일 초상화가 걸렸다는 보도 및 평양시내에 반금정일삐라가 뿌려졌다는 보도,김평일의 망명설등에 대해 『남조선이 꾸민 거짓말』이라면서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한심하다는 표정. ○…유엔측과 북한측 유해반환공동위원회가 주관한 유해반환식이 이날 상오 11시부터 35분동안 엄수. 북한군은 유해인도가 시작되기전 미리 유해 14구가 들어있는 관을 북한측 지역에 일렬로 배열.
  • 호치민과 김일성의 차이/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우리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이영덕총리가 31일 상오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잡은 호치민(호지명)묘소를 찾았다.이총리는 나라안에서의 「주사파」논란을 우려한 듯 호치민묘소에 헌화만 하고 시신을 보존하고 있는 내부는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눈으로 볼때 이총리는 하지 않아도 될 몸조심을 한 듯 여겨졌다.호치민과 김일성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이데올로기를 떠난 국민적 영웅이었다.이총리가 그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화창했으나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그런 빗속을 뚫고 맨발에 후줄그레한 차림의 참배객들이 그의 묘소에 줄을 이었다. 한 베트남 참배객은 이렇게 말했다.『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미국과 싸우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호치민은 공산주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민족의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이 참배객의 말은 실제에서도 일치했다. 이총리가 총리회담을 하고 국가주석을 예방한 하노이의 주석궁은 일반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정문을 지키는 위병은 슬리퍼를 신은 자유스런 복장이었다.주석궁 안에서 경호를 하는 경찰관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귀빈의 방문을 전혀 개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북한처럼 삼엄하고 강요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주체사상」이라는 명목아래 김일성·김정일을 「살아있는 신」이라 주장하는 북한과는 확연히 달랐다.물론 「기쁨조」도 없고 「어버이수령」이란 말도 없었다.그만큼 「인간적」이었다.사회주의에 앞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표현과 감정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따라서 호치민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통일도 보지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민족지도자였지 「주체사상」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압제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지난 69년에 사망한 그는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지도 않았다.그의 사망후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그가 물려준 「청렴주의」도 철저히 이행,25년동안 무리없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최근들어 중간관리들의 부패가 일부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나오지만 최고지도층은 아직도 그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사파」도 이데올로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 무거운 침묵속의 평양/김사망 50여일후… 일기자 취재

    ◎밤 12시에도 군인들 김일성동상 참배/「금」배치 착용 여전… “정일 아버지” 호칭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죽은지 50여일이 지난 지금도 평양 만수대에 있는 그의 대형 동상앞에는 장송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고 도쿄신문이 30일 보도했다.도쿄신문의 사카모토 미치타카(판본충효)기자는 지난 23일부터 5일간 일본인 관광객 34명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후 다음과 같이 오늘의 북한상황을 전했다. 북한관광은 핵문제등으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고조로 중단됐었다.이번 일본 관광단의 북한 방문은 지난 7월8일 김일성 사망이후 처음 이뤄진 것이다.도쿄소재 「중외여행사」가 기획한 이번 북한관광은 평양·개성·판문점·묘향산 방문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평양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 동상(높이 20m) 앞에는 지금도 매일 밤낮으로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장송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민과 군인들이 삼삼오오 머리를 숙여 묵념한뒤 꽃다발를 바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동상 양쪽에는 부동자세로 나란히 선 군인과 민간인이 교대로 밤을새며 조문객을 지켜보고 있었다. 밤 11시.육군복을 입은 남녀군인 2백여명이 일사불란한 행진으로 동상앞으로 가 묵도를 했다.묵도가 끝난후 그들은 한목소리로 『조국통일』,『김정일장군에 더욱 충성하는 결사대가 됩시다』라고 외치며 충성을 다짐했다. 국가주석 후계문제는 아직 공식 발표되지않고 있으나 거리 여기저기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초상화가 걸려 있다.북한주민들의 가슴에는 여전히 김일성배지가 달려 있었으며 중학생들은 김정일서기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으나 모두 말이 없는 무거운 표정이었다.그러나 38도선에 있는 판문점은 「정치관광지」 같은 분위기였다.북한군 장교가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 도쿄 전몰자묘역서 일 총리에 보상 직소/한국유족대표

    【도쿄 연합】 광복절인 15일 낮 1시40분쯤 한국 유족대표인 양순임씨(49·서울거주)가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한뒤 도쿄 치도리가부치(천조연) 전몰자 묘역에 참배하고 나오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에게 달려가 전후보상을 해달라고 직접 호소했다. 전후보상 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온 양씨는 이날 사회당이 같은 곳에서 주최한 「전쟁희생자 추도및 평화를 서약하는 8·15집회」에 해외대표로 참석했다가 약 1시간정도 무라야마 총리가 오기를 기다린뒤 통역을 통해 『우리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 법상 등 일각료 8명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종전(패전)기념일인 15일 20명의 각료중 7명의 각료와 많은 국회의원들이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정국)신사를 참배했다. 참배한 각료는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마에다 이사오(전전훈남)법상,노나카 히로무(야중광무)자치상,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을 비롯,7명으로 지난해 호소카와내각때보다 1명이 늘었다.하지만 오사토 사다토시(소리정리)북해도·오카나와개발청장관은 지난 2일 참배를 마쳐 올해 참배각료는 모두 8명이다.
  • 「전후청산 계획」에 불신만 키운다/되풀이 되는 일지도층 「망언」

    ◎53년부터 계속… 진정한 반성 “회의적”/도처에 군국주의 망령… 현정권에 부담 군국주의 망령이 부활하는 일본의 8월.많은 각료와 일본인들은 매년 8월15일을 전후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정국)신사를 참배한다.사쿠라이 신(앵정신) 전환경청장관의 「침략전쟁 부인」발언은 일본의 이러한 군국주의가 사회저변에 뿌리깊게 남아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사쿠라이 전장관(자민당)은 지난 12일 『일본은 침략전쟁이라는 생각으로 전쟁을 하지않았다.태평양전쟁으로 오히려 아시아는 식민지지배에서 벗어났고 경제부흥과 민족 활성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망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보수세력의 전형적인 왜곡된 역사관이다.그는 자신의 발언이 한국·중국 등 아시아국가들과 연립정부내의 사회당으로부터 강력한 비판과 반발을 불러일으키자 결국 14일 사임했다.후임에는 자민당의 미야시타 소헤이(궁하창평) 전방위청장관이 취임했다. 자민당 지도부는 연립정권의 유지를 위해 우선 사회당의 요구대로 환경청장관을 교체한 것으로 분석된다.일본언론들은 사쿠라이 전환경청장관의 발언과 사임파동이 연립정권내의 사회당과 자민당의 역사인식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며 전후청산과 「비둘기파 정권」임을 강조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 정권에 중대한 타격으로 정권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다.정권이 바뀌어도 일본의 침략전쟁과 군국주의·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망언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불과 3개월전인 지난 5월에도 하타정권때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법상이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다』라는 망언으로 국내외의 강력한 비판과 반발이 있자 사임한바 있다. 일본 각료 및 지도자들의 망언의 역사는 길다.그 첫번째는 지난 53년 한·일회담때의 구보다 간이치로 일본측 수석대표의 망언.그는 『일본의 식민지지배는 한국에 유익했다』고 말했다.그후 다카스기 신이치 제7차 한·일회담 일본측 수석대표,나카소네 내각때의 후지오 마사오 문부상(84년),다케시타내각때의 오쿠노 세이스케 국토청장관(88년)등의 망언이 계속됐다. 자민당을 중심으로한 일본의 보수·우익세력은 이같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지지배의 「은혜론」을 강조할뿐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단절시키려 했던 식민지지배의 고통과 비참함에는 눈을 감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일본은 또 문제의 발언으로 주변국가가 반발을 보이면 사후해명·유감표시와 각료의 사임이라는 편리한 「이중행동」을 반복해오고 있다. 무라야마내각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후청산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그러나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올바른 역사인식이 없는 전후 청산은 일본이 과거사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져 다시 군사·정치대국화를 지향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국가들의 불신감만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 김용순·김영남·계응태 두각/김정일 뒷받침 인물들

    ◎조문대표 접견·추도대회 주도… 활동 활발 서열이 중시되는 북한 권력상층부에 아직 이렇다할 변화가 감지되지않고 있는 가운데 김일성사망이후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등 몇몇 사람의 행보가 두드러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김용순과 함께 주목되는 인사는 부총리겸 외교부장인 김영남,노동당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인민무력부 부부장인 김광진등. 이중에서도 그동안 활동이 활발했던 사람은 남북정상회담 실무접촉 북측단장이기도했던 김용순.대남및 대외업무를 다루어온 그는 김일성의 장의위원 서열로는 29위에 불과하나 김일성의 시신이 처음으로 공개됐을때 참배하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를 부축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으며 북한 지도부를 대표해 조문차 방북중이던 조총련대표들을 만나는등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그는 김정일이 김일성사망이후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인 이탈리아의 국제관계연구소 총서기 면담때도 배석했을 정도.또 최근엔 외국방송으로 김일성사후 평양에서 첫 실황방송을 했던 미국의 CNN방송의 대표단과 만나고 5일엔 방북중인 독일자유민주당 간부들을 만나기도 했다. 김영남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김일성추도대회에서 김정일의 위임에 의해 대표 추도사를 하면서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그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나온 김정일의 핵심측근.이날 군을 대표해서 나온 차수 김광진도 『김정일을 당정군의 최고수위로 받들자』는 내용의 추도사를 낭독해 주목을 끌었다. 김일성 추도대회때 사회를 본 계응태는 지난달 27일 열린 「전승기념일」행사에서 보고를 해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그 역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곧 모습을 드러낼 김정일체제의 권력핵심부에서 요직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북한,“김정일은 효자” 선전 급급(특파원 코너)

    ◎상중 수척한 얼굴 홍보… 세습 정당화 김일성사망이후 김정일에게 당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안겨주는 「대관식」이 계속 늦어지고 있어 궁금증을 더해가는 가운데 요즘 북한당국은 「김정일이 대단한 효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분주한 모습이다. 북한사정에 정통한 북경의 한 서방소식통은 『북한에서는 요즘 각 직장과 마을단위로 김정일이 대단한 효자라는 칭송이 당국의 교묘한 공작의 손길에 의해 유포되고 있다』고 밝혔다.또 다른 서방소식통은 상중에 수척해 보인 김정일의 외모가 이같은 칭송을 전파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같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같은 북한 움직임에 대해 일부관측통들은 『김일성에 쏠렸던 주민들의 마음을 자연스레 김정일로 옮겨가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분석하고 『TV에 비친 김정일의 수척한 모습은 고도의 정치적 연기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김정일의 대관식이 늦어지는 이유는 효자로 부각되기를 원하는 김정일이 서둘러 당총서기나 국가주석을 차지할 경우 「불효자식」이란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미 북한의 권력은 사실상 김정일이 완벽하게 잡고 있는데 서둘러 대관식을 가짐으로써 눈총을 살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그래서 49제 등을 마치고 상복을 벗은 다음 새 직책을 맡아야 동양사회의 특성상 김일성의 후광을 더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비슷한 견해로 주민정서론이 나돌기도 한다.북한주민들이 김일성사망으로 너무 큰 충격과 슬픔속에 젖어 있는데 이같은 분위기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축제분위기로 바꿀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물론 공산국가에서는 국가주석이나 당총서기 등이 되었다해서 취임식을 갖지는 않는다.하지만 북한의 경우 공식취임식은 없다해도 전매스컴을 총동원해 축제분위기를 만들어갈 게 뻔한데 아직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이르다는 계산인 것이다. 한편 최근 북한을 다녀온 중국인들은 이제 김일성동상 앞에서 우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지난달말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동상을 돌아보았다는 한 중국인은 『마침 30여명의단체참배객들이 꽃을 바치고 묵념을 올리고 있었는데 우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그의 증언대로라면 김정일의 대관식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 일본각료 10명 신사참배 계획/8월15일 예정

    【도쿄 로이터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 총리 내각의 각료 10명이 패전기념일인 오는 8월15일 야쓰쿠니(정국)신사를 참배할 계획인 것으로 3일 발표된 요미우리(독매)신문 조사결과 나타났다. 이같은 참배 예정자수는 전체의 각료 20명중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지난해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 정부의 참배자수 5명에 비해 두배나 많은 것이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예정인 주요 각료는 마에다이사오(전전훈남)법무상,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요시노 가오루(흥사야형)문부상,다마자와 도쿠이치로(옥택덕일낭)방위청장관 등이다.
  • 김정일에 주석 호칭/김일성 사망후 처음

    【내외】 북한이 처음으로 김정일에 대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호칭을 사용해 주목되고 있다. 북한 해주방송은 26일 황해남도 도당위원회,행정경제위원회,해주공산대학 교직원들을 비롯한 도민들이 지난 22일 김일성동상을 집단참배하는 가운데 김정일을 『노동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국가주석으로 높이 받들것』을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이처럼 방송매체를 통해 김정일이 승계하게 될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거명한 것은 김일성 사망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한편 북한 중앙방송은 26일 김정일을 남북통일시대의 「통일대통령」으로 추대할 것을 강조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 일총리 “신사참배 위헌 아니다”/“나카소네노선 고수”… 파문일듯

    ◎참의원서 답변 【도쿄 연합】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자위대가 합헌이라고 인정하고 사회당의 비무장원칙을 포기한데 이어 22일 공중조기경보기(AWACS)의 도입과 1천해리 해상교통로방위도 헌법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무라야마총리는 이날 참의원 본회의 답변을 통해 미국과 한국등이 공동으로 실시하는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림팩)에 일본자위대가 참여하는 것도 전수방어의 범위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해 이를 중단시킬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야스쿠니(정국)신사를 각료들이 공식적으로 참배하는 것이 위헌이 아니라는 앞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내각의 정부견해를 앞으로도 고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무라야마총리는 주일미군의 체류경비를 일본정부가 상당부분 부담하고 있는데 대해 『미국과 각동맹국간 협력관계는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과)비교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주둔경비를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 정오 북전역서 3분 묵념/김일성 추도대회 이모저모

    ◎김정일 「교시」없이 참관만 북한 김일성의 추도대회는 20일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 18분동안 평양 시내 중심부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일을 비롯한 당정군핵심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 북한방송은 이날 추도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행사진행상황을 생방송으로 북한전역에 중계했고 이를 수신한 미CNN이 세계로 송출.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김일성광장과 연결된 모든 대로와 주체사상탑앞 광장,전승광장등 평양시내 곳곳에는 대형스피커가 설치돼 수백만명의 주민들이 이를 청취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보도.또한 평양시내 모든 경기장과 체육관,학교운동장에는 수많은 시민들과 북한군 장병들이 운집해 인산인해. ○…추도대회 참석 규모는 김일성광장에 20만명,대동강 건너편의 주체탑 아래 10만명등 약 30만명에 이른다고 평양주재 한 외교관이 추산.이들 북한주민은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이 외교관은 덧붙였다. ○…추도대회에서는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김정일의 위임으로 대표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이어 근로자대표,농민대표,군대표 김광진인민군차수,해외동포대표등의 순으로 추도사를 낭독. 이들의 추도사는 하나같이 반제혁명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열거,추앙한 데 이어 김정일을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자는 내용.특히 추도사 내용가운데는 과거 「미제국주의」를 극렬히 비방하던 내용이 없어 북·미3단계 회담 등 향후 북한의 대미외교 노선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모습. ○…김정일은 김일성 광장 앞면에 마련된 주석단 단상 중앙에서 검은색 상하의에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차고 선 채로 추도대회에 참석.그는 전날 장례식때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상체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서 있었는데 무척 초췌한 모습.당초 추도대회장에서 김정일이 새 지도자로서 북한 인민들을 향해 추도사를 겸해 「교시」를 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 마디 말 없이 묵묵히 참관. ○…북한 주민들은 이날 김일성참배나 장례식때처럼 광적으로 울부짖는 모습과 달리 비교적 엄숙한 표정으로 대오를 지키며 질서있게 참석.그러나 추도대회가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데다 날씨가 무척 더운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고 자리를 벗어나거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이들은 남자의 경우 검은색 상하의,여자들은 검은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로 동일한 복장이며 군인들은 인민군 제복 차림. 이어 낮 12시에는 북한 전역에서 추모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한주민들은 3분간 묵념을 올렸다. ○…김일성 추도대회는 예정보다 40분 일찍 끝나 참가자들은 11시30분부터 해산하기 시작. 평양 주재 외교관들은 이처럼 추도대회가 예정보다 빨리 끝난 것은 무더운 날씨로 인해 대회장 곳곳에서 여성들이 쓰러지고 대형 스탠드에 있던 일부 초청 손님들도 견디지 못해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추측.
  • 평양시내 40㎞ 운구… 2백만 광적 애도/김일성 장례식 이모저모

    ◎곳곳 전군 수십대 배치… 경비 대폭 강화/김성애·평일모자 TV서 모습 안보여 김일성의 장례식은2백여만명에 이르는 평양주민들의 광적인 애도 속에 치러졌다고 북한 방송들이 보도. 이날 상오 10시께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을 출발한 운구행렬은 금성거리∼영웅거리∼보통문∼천리마거리∼통일거리∼옥류교∼김일성광장 등 평양시 일원의 40㎞의 시가지를 지나 주석궁으로 되돌아가 영구는 다시 이곳에 안치됐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이날 릴레이식 녹음중계로 사이사이 조곡을 내보내면서 운구행렬이 지나는 연도의 근로자와 군인 및 학생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도. 남녀 아나운서들은 『하늘과도 같고 태양과도 같은 수령님,우리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그렇게 간단 말입니까』라며 울음을 터뜨려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이날 영결식에는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이종옥·박성철·김영주·김병식부주석,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장의위원 전원이 참석,김정일의 건재를 과시. 김일성의 시신이우리의 장례풍속과는 달리 다시 주석궁에 되돌아옴으로써 특수처리된 그의 시신은 영구보존될 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이날 장례식 식순과 운구행렬의 코스는 물론 장지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으며 해외홍보 TV용 장례장면도 검열을 거쳐 하오 3시가 넘어서야 첫송출. 이와 관련,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운구행렬에 사용된 관이 주석궁에서 김일성 시신을 담고 있던 수정관이 아닌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 ○…운구되기에 앞서 수정관 속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앞에는 공화국영웅메달과 노력영웅메달등 생전에 그가 받은 각종 훈장과 메달들이 놓여있었고 시신옆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 명의의 화환이 배치. 김정일은 당정군간부들을 대동한채 식장에 들어서 곧바로 김일성시신앞으로 가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참배.이 순간 엄숙히 서있던 참석자들은 큰 슬픔과 비애에 젖어 가슴을 저미며 흐느꼈다고 북한TV가 보도했으나 김성애·김평일 모자의 얼굴은 끝내 비치지 않아 주목. ○…김일성 영구가 평양시내 주요 시가지를 지나는 동안 연도에는 주민들이 몰려나와 『수령님 못 가십니다』를 외치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고 북한방송들이 보도. “인민의 심장속 영생” ○…북한방송들은 이날 중계방송을 마치며 『김일성 수령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수령은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생할 것』이라며 앞으로 김정일을 혁명무력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 또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를 비롯한 김정일 찬양가요를 집중적으로 방송해 영결식 시작전 조곡 일변도의 애도분위기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목. ○…미국 CCN방송은 이날 하오 북한방송국이 그들의 의도대로 촬영,편집한 녹화실황을 장시간에 걸쳐 방송. CNN방송에 따르면 영결식을 마친 뒤 김주석의 시신이 들어있는 검은 관은 붉은 천으로 절반이 덮인 채 흰꽃으로 지붕을 단장한 검은 리무진 위에 놓여 출발. 운구행렬이 김정일의 배웅과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주석궁 정문을 빠져나가자 국가장의위원 등 상당수의 북한 당정군 고위 간부들은 손으로 눈물을 닦기도.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식을 앞두고 경비강화를 위해 지난 17일까지 평양시내 요소요소에 전차를 배치했다고 일본 요미우리(독매)신문이 한국 정부소식통을 인용해 19일 보도. ○…운구행렬의 길 양쪽으로는 평양교외및 지방에서 올라온 시민들이 늘어서 통곡하면서 애도하는 모습들. 한 외교관은 광장곳곳에 종이조각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운구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에서 밤을 지샌 것같다고 전언. ○…김일성의 장례식은 거창하게 치러질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었다. 평양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한 중국기자는 서울신문 북경지국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영결식은 주석궁을 출발한 운구차량이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를 거쳐 김일성광장까지 간 후 다시 주석궁으로 되돌아오는게 전부였다고 전언. ◎단동·연길·도문서 본 북표정/북상사원 「조문귀국」 차량 이어져/“TV속 김정일 다리 절고 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영결식인 19일 요란한 평양의 추도분위기와는 달리 단동·연길·도문등에 머무르고 있는 상사원등 북한의 요원등은 조용한 가운데 북한직영 음식점 등에 모여 자체 추도식을 갖고 업무를 준비하는등 정상을 되찾아가는 모습. 또 평양·회령 등에 있는 북한의 국영상사들도 전화나 팩시밀리를 통해 중국측 무역담당자들과 중단된 무역업무를 논의하는등 사실상 업무를 재개. 단동에서 북한과 무역업무를 해온 김모씨(42·단동시 신안가)는 『22일 북에서 사람이 나와 철강재 등을 인도해 주겠다고 전화로 통보해 왔다』고 전언. 단동시와 연길시에 남아있는 국가상업부소속 협동무역회사·고려무역회사 직원들도 19일 『그간 무역이 이뤄지지 못해 안됐다.내일부터 사업을 다시 논의하자』고 정상적인 무역활동 재개를 중국측 상대방에 통보.도문에 무역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 조선족 무역업자도 북한의 거래업체(국가직영)에서 21일부터 정상업무를 재개하며 사업논의를 위해 22일쯤 상담원들을 파견하겠다고 전해왔다고 설명. 단동시 중국국제여행사 양기선 부경이도 『북한측이 김주석사망 이후 단절됐던 단동∼평양간 단체여행코스의 재개를 통보해 왔으며 여행단의 입북도 이미 허가했다』며 『오는 24∼25일쯤부터 2백∼5백명에 이르는 대규모 관광단의 입북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썰렁한 신의주쪽 모습과는 달리 신의주가 내려다보이는 단동시의 압록강공원과 철교에는 쌍안경을 이용해 북한쪽을 살피는 여행객들로 만원.또 압록강을 오르내리는 중국측 유람선도 관광객들의 요구에 따라 신의주쪽에 다가서서 항해하는 모습. 한편 단동과 도문등 북한과의 접경지대에서는 북한의 중앙TV를 시청한 조선족들이 이날 영결식장에 나타난 김정일이 약간 저는등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었다며 김정일의 와병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표정.
  • “평양 이상징후 없다”/중서도 장례연기 싸고 추측 난무

    ◎본사북경지국,평양외국기자 통화 【북경=최두삼특파원】 김일성의 장례식이 연기된 이후에도 평양시내에는 특별히 달라진게 없다고 평양에 주재하는 제3국 기자와 일부 동유럽 외교관들이 16일 말했다. 이들은 북경의 서울신문지국과의 통화에서 『장례식이 연기돼 서방에서는 갖가지 추측들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여기서는 당국의 발표대로 믿는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의 장례식 연기발표가 나오자 북경에서도 『한국 조문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같다』,『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등 온갖 추측이 나돌고 있으며 심지어 중국 관리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말하고 있다. 한 기자는 『평양시내에는 오늘도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의사당과 시내 곳곳에 있는 김일성 동상주위로 수많은 주민들이 몰려들어 울부짖으며 참배하고 있을뿐 특별히 달라진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 북,김일성장례 19로 연기/장의위 발표/추도대회는 20일에 따로

    ◎권력승계 활용·조문파문 악용 술책 추정/정부 북한은 당초 17일 치른다던 김일성의 장례식을 19일로 연기한다고 16일 발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 국가장의위원회는 15일 공보를 통해 「주민들의 김일성 조문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절절한 심정과 요구를 반영해」 오는 18일까지 주민의 참배를 받고 19일 장례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이와함께 김일성을 추모하는 추도대회를 20일 열기로 했다고 아울러 발표했다. 이 공보는 김일성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에 『수도의 시민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각계층 인민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조의를 표하고 있으며 조의 참가자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관련,정부는 16일 상오 이홍구통일부총리주재로 통일안보정책조정 간담회를 열어 북한정세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북한의 내부동향을 계속 예의주시키로 했다. 관계당국은 북한이 김일성 장례식을 돌연 연기한 것은 김정일의 권력승계 구축에 김일성사망을 최대한 활용하고 조문파문이 일고있는 남한의 국론분열을 조장하려는 이중포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장례식연기는 추모분위기를 이용,김정일권력승계를 확고히 굳혀야할 내부적 필요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장례식과 추도대회를 분리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이 당국자는 특히 『장례식을 영결식 이외에 별도의 추도대회를 여는 등 이원화한 것은 대규모 군중 추도대회를 사실상의 추대식으로 이용하기 위한 책략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어 『북한이 우리쪽에서 일고 있는 조문파문을 노려 국론분열을 부추기기 위해 장례식을 연기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분석하고 이와함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친북세력을 최대한 평양으로 유인하려는 목적도 담겨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 당국자는 이밖에 『북한 내부에서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할 핵심부의 재편작업을 둘러싸고 진통이 뒤따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말해 장례식 연기가 북한내부의 권력투쟁과 연관되어 있을 개연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한편 이세기민자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상오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 관계당국의 분석내용을 인용,『김일성장례식 연기는 추모분위기를 김정일권력승계를 굳히는데 이용하기 위한 북한내부의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북한의 대남비방은 앞으로 상당히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남북관계의 앞날을 우려하게 하는 사태』라고 말했다.
  • “조문한다고 남북관계 호전되나”/이홍구통일원 총리 일문일답

    ◎“정상회담 연기 아쉽다”뜻 북 이해했을것/김정일체제 출범 따른 대응책 이미 마련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16일 월드컵축구 한국유치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에 앞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다음은 일문일답요지다. ­북한이 김일성장례식을 갑자기 연기한 배경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며칠전 이미 1천7백만여명이 참배를 했다고 북한이 발표한 적이 있는데,기간을 연기해서 연인원을 자꾸 늘릴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최근의 조문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일성주석 사망은 한시대가 간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조문을 가느냐,안가느냐라는 논란은 빨리 끝내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그렇다면 조문논쟁은 어떻게 정리돼야 한다고 보는가. ▲우리측에서 조문을 한다해서 남북관계가 잘되는 것도 아니고 조문을 하지 않는다고 관계가 악화되지 않는다.우리가 조문한다고 북한이 감격할 상황도 아니다.정부로서는 정상회담이 연기돼 아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고그것이 모두다.이 정도만으로도 북한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다 알아들었다고 생각한다.따라서 지금은 어떻게 하자,말자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기보다는 가만히 있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3단계회담 전망은. ▲남북정상회담은 일단 연기하자는 쪽에서 연락이 와야 논의가 되지 않겠는가. 저쪽이 아직 장례기간인데 우리가 뭐라고 자꾸 하는 것은 좋지 않다.북·미실무접촉은 북측이 빠른 시일내에 한다고 했으니 내주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정일후계체제 출범후 새로운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복안은 마련돼 있는가. ▲복안은 있지만 현시점에서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
  • 제2회 송제공로상 수상 조아라 광주YWCA명예회장(인터뷰)

    ◎“광주Y 체육관 건립에 여생 바칠터”/50여년간 여성운동·복지사업에 혼신의 노력 『옳고 그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이 이번에 상을 받게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14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된 대한YWCA연합회 전국대회에서 제2회 송제공로상을 받은 조아라 광주YWCA 명예회장(82).광주 수피아여고시절 Y활동을 처음 시작한 그는 일제탄압으로 폐쇄된 광주Y를 해방직후 재건했고 이후 50여년 가까이 Y와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살아왔다. 송제공로상은 대한YWCA연합회가 20년이상 Y에서 활동하면서 헌신적인 봉사로 사회 발전에 앞장서온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조회장은 여성운동과 복지사업등에 일생을 바쳐온 공로로 이번에 수상하게 됐다. 일제시대 때는 반식민투쟁으로,3선개헌과 광주사태 때는 반독재투쟁으로 3차례나 감옥살이를 한 경력을 갖고 있는 조회장은 자신의 80년 삶에 대해 『역사가 안겨주는 고난 속에서 피와 살을 다바쳤다』는 한마디 말로 압축했다. 이밖에 호남녀숙과 성빈녀사,계명녀사등을 설립,윤락여성과 불우여성을 도우는데 앞장서온 조회장은 『송제상 수상은 광주Y에 체육관을 건립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이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조회장은 미국에서 사업중인 큰아들과 전주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작은 아들등 2남을 뒀다.평양 신학교에 다니던 남편은 결혼 3년10개월만인 지난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장티프스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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