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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객 급감… 속타는 태국

    ◎유흥업소 IMF 한파…“에이즈보다 더 무섭다”/빈 사무실 급증… 백화점 손님없어 개점휴업 동남아시아의 금융·외환위기는 각국의 경제난을 심화시키며 사회풍속도도 바꾸고 있다.금융·외환위기의 발원지였던 태국의 경우 경제력에 걸맞지 않는 호화판 생활을 하던 많은 시민들은 불황과 ‘IMF 겨울’ 한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상점들은 50%나 그 이상의 대폭 할인 세일을 하고 있지만 통화가치 하락과 인플레 등으로 구매력을 상실한 소비자들의 발길은 뜸하다.많은 기업이 부도가 나고 기업들의 구조조정등으로 사무실의 수요가 크게 줄며 방콕을 비롯한 대도시 빌딩의 많은 사무실도 비어있다. 경제호황으로 외국의 고급차를 타던 사람들도 불황이 계속되며 할부로 샀던 차를 파는 경우가 많아졌다.태국은 세계에서 2번째의 벤츠 승용차 시장이었으나 벤츠 등 외국 고급차 판매점은 지금 개점휴업상태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붐비는 고객들로 흥청거렸던 태국 야간업소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디스코 클럽에서맥주 가든과 안마업소에 이르기까지 불과 수개월전까지만 해도 네온사인으로 빛났던 밤 업소들이 이제는 흡사 영안실 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돈 많은 집 아들로 대학 1학년에 재학중인 야투폰 얌하라군은 두 친구와한 카페에 앉아 “전에는 거의 매일밤 여기 왔었다”면서 외출하고 싶으니용돈 좀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한번에 1천바트(약5만5천원)씩 줬으나 지금은 말도 못 꺼낸다고 푸념했다. 한창 경기가 좋았던 2년전 술집들이 늘어서 있는 방콕의 로열 시티 애비뉴는 음주의 낙원이었다.외환위기가 태국을 강타하기 직전까지도 신흥부자들의 청소년 자제들은 떼로 몰려 다니면서 값비싼 수입양주 병을 수없이 비웠다.지금도 술집들은 환하게 불을 켜 놓고 음악을 울려대고 있다.그러나 손님들의 발길은 뚝끊겼다. 한 클럽 여주인은 “우리도 호황이 영원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면서 청소년들이란 늘 쉽게 싫증을 느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는 족속들인줄 모르지 않았으나 “경제가 우리를 죽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사무직 회사원들과 외국인들이 자주 찾던 안마소들도 불황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물론 에이즈 공포 때문에 타격을 받기도 했지만 경제난은 에이즈보다 더 무섭다”고 여성 ‘안마요법사’를 1백명 가까이 부리고 있는 차오 프라야 안마소의 한 종업원은 불평했다. 태국사회의 또 다른 풍속도는 이러한 전체적인 불황속에서 절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방콕시민들은 절과 사당을 찾아 불황이 빨리 가시도록 기원하고 있다.연례축제가 열린 마하 우마 데비 사원 주변에는 참배객들이 대거 몰려드는 바람에 차량통행이 일시 차단되기도 했었다. 한 식당 소유주가 건립한 사당에서는 코끼리 머리를 가진 힌두교 번영의신 가네시상 앞에서 한 사나이가 경제회복을 기원하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경제가 쉽게 좋아질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 서울시청사서 신사제단 발견/4층 인사과/1926년 설치…철거키로

    일제치하인 1926년 건립된 서울시청 건물에서 일본인이 설치한 신사참배 제단이 발견됐다. 1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 청사 4층 인사과 사무실 벽면에 설치돼 있는 이제단은 너비 3.76m,높이 2.8m,깊이 1.23m 규모이며 제단 앞에는 2단의 계단도 있었다. 이 제단은 사무자동화 작업을 위해 집기를 들어내다 발견됐으며 베니어 합판으로 가려져 있었던데다 계단부분도 바닥과 높이를 맞춰놓아 직원들조차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른채 문서나 비품 주방용구 등을 넣어두는 창고로 활용해 왔다. 시 관계자는 “시청건물은 일제가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덕수궁 맞은편에 지은 건물로 이같은 제단이 있다는 소문은 있었으나 발견되기는 처음”이라며 제단을 철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영남표심 잡아라” 명운건 한판승부/3당후보 행보:D­8

    ◎한나라당­경남서 15차례 유세 강행군/국민회의­정권교체 필요성 거듭 강조/국민신당­박정희 자극… 지지호소 선거일을 8일 앞둔 9일 한나라당 이회창·국민회의 김대중·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인 영남에서 ‘대회전’을 벌였다. ◎한나라당/DJ·이인제씨 맹공 이회창 후보는 부산과 경남지역 연설회를 통해 김대중·이인제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이후보는 이날 창원 상남시장 연설회에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임기 5년을 채우려 할 것이고,그러면 내각제 개헌을 약속받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보는 또 “이인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끝까지 나오는 것은 김대중 후보를 돕는 것”이라면서 “젊은 정치인이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후보는 이날 부산 공동어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경남 양산,진해,창원,창녕,함안,의령,산청,거창을 거치며 15차례의 유세를 벌였으며 합천 해인사에서 여장을 풀었다. ◎국민회의/연예인 즉석공연 김대중 총재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뒤 처음으로 PK(부산·경남)지역찾아 진주와 마산·부산·울산을 돌며 거리유세를 벌이고 창원에서 경제기자회견을 갖는 등 강행군했다. 김총재는 부산 광복동 네거리에서 가진 거리유세에서 “대선은 여당이 정치를 잘하면 다시 대통령 시키고,못했으면 바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서 “나라를 망친 이 정부에서 4년 동안 2인자 노릇을 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다시 뽑으면 나라가 어떻게 개혁될 수 있겠는냐”고 반문했다. 김총재의 PK지역유세에는 그룹 ‘코리아나’가 동행,즉석공연을 갖는 한편 지역출신 김정길·노무현 부총재가 찬조연사로 나서 분위기를 돋웠다. ◎국민신당/한글세대 강조 대구방문 이틀째인 이인제 후보는 9일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현장에 세워진 위령탑에 참배하고 보훈병원과 계명대,대구대,태평로 번개시장,대명시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며 TK 표심돌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후보는 계명대 정문앞 거리유세를 통해 “수천년 농업사회의 빈곤을 몰아내고 산업화를 이룬 사람이 누구였냐”고 청중들로부터 ‘박정희’라는 대답을 유도한 뒤 “40대의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한강을 건넜듯이 40대의 젊은 일꾼 이인제가 한강을 건너 부패한 정치를 쓸어내고 국민혁명을 일으키도록 뽑아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찬종 고문은 “이번 대선은 70대 할아버지들의 DJT,60∼70대의 이·조연대,한글세대인 이·박연대의 경쟁”이라면서 “이제는 한글세대들이 국가경영과 국가운영을 결정하는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청장년층의 지지를 호소했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하(세계 문화유산 순례:53)

    ◎불상·경전 가득… 세계적 ‘불교 박물관’/백궁과 홍궁엔 방 모두 1천여개/산자와 죽은자 함께 거처하는 궁전/네팔 등 라마불교 신도들 줄이어 참배 포탈라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하는 궁전이다.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죽어서도 생전에 살던 포탈라를 떠나지 않았다.이들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경배하기 위한 순례객의 발길이 늘 포탈라로 이어졌다.티벳은 물론 사천성과 네팔,스리랑카 등에서 온 라마불교 신도들로 붐비는포탈라.달라이 라마가 앉았던 의자에 입맞추는 순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살아서 쓰는 궁전은 백궁이다.백궁은 ‘최상의 행복궁’이나 ‘영원한 생명의 궁’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달라이 라마는 백궁 가장 높은 층인 ‘영원한 생명의 궁’에서만 잠을 잤다.백궁의 금정에 올라 바라보는 히말라야는 신비로웠다.투명한 코발트 색깔과 어울린 만년설 산자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종교적 심성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포탈라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이 있다.영탑은 달라이 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전각안에 봉안되었다.화장한 뒤 뼈만 모아 넣어두거나 약품처리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홍궁맨 뒤쪽 아래층의 영탑전에는 5세와 7∼9세,13세 등 다섯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자리했다.그중에 5세와 13세의 영탑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달라이 라마 시신 모여 그 화려한 5세 달라이 라마의 영탑은 죽은지 5년뒤인 1690년에 조성되었다. 영탑은 기단에 호리병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14.85m에 이르는 탑신은 동과 은으로 만들고 황금칠을 올렸다.주옥과 산호 따위의 보석을 군데군데 박아놓아 야크기름이 타는 불빛을 찬란하게 반사했다.은이 1만량,황금이11만9천량이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13세의 영탑은 1934년에 완성되었으나 역시 찬란했다. 영탑전은 홍궁 다른 공간에도 하나가 더 있다.그 자라는 홍궁 후문께 서편강당 뒤쪽이다.달라이 라마 5세와 10세,11세와 12세의 영탑이 두 방에 봉안되었다.그런데 영탑전과 이웃한 서편강당에서는 1959년까지만해도 달라이 라마의 음성이 들렸다.그 음성은 바로 포탈라에 사는 수백명 승려들에게 들려준 달라이 라마 14세의 설법이었던 것이다. ○황금 11만9천량 사용 포탈라에서 만난 젊은 라마승은 영어로 이런 말을 했다.“이 강당에서는 59년 이후 어떤 행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정지돼 있는 장소다”라고….그래도 포탈라에는 방마다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달라이 라마는 없지만 라마승과 순례자들이 켜놓은 촛불은 그냥 타고 있었다.그렇듯 몸을 불 사르는 촛불에서 오늘의 라마불교를 다시 보았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망명한 1959년 이후 변화한 공간은 또 있다.백궁의 동쪽 정원이다.운동장처럼 넓은 이 정원에는 절기가 바뀔 때마다 승려와 티벳사람들이 천여명씩이나 몰려들었다.그러면 달라이 라마가 의례히 백궁 발코니로 모습을 드러냈다.종교의식을 베풀고나서 민속놀이를 즐기는 군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그 정원이 지금은 빈뜰로 남아있다. 백궁과 홍궁을 합뜨려 포탈라는 1천개가 넘는 방을 갖추었다.이 가운데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은 30여개 뿐이었다.동쪽 정원에서 3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서 만난 달라이 라마 집무실도 그런 비공개 공간의 하나다.달라이 라마가 정무와 종무를 본 집무실은 명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백궁의 여러방은 ‘영원한 덕의 장소’니 하는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 여러방을 잇는 복도와 회랑에는 티벳사와 티벳불교사,역대 달라이 라마의 일생을 담은 벽화들이 가득했다.그리고 방마다에는 달라이 라마들이 앉았던 자리를 보존한 가운데 달라이 라마들의 소상을 세워두었다.한쪽 벽에는 닫집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다.또 다른 벽에는 경전함을 덧대어 천정 꼭대기 까지를 불경으로 채웠다.이들 경전은 티벳어,몽골어,만주어 등 소수민족 언어로 되어있다. ○30여개 방만 일반 공개 그 어마어마한 장서들은 라마불교권 학승들을 포탈라로 불러들였다.포탈라로 와서 먼지를 털어가며 경전을 넘기는 학승 모두가 불심에 흠뻑 젖은채 삼매경에 빠져있다.포탈라를 가리켜 흔히 세계적 불상박물관,또는 세계적 불교박물관이라 하는 까닭을 알만 했다.그것은 티벳불교가 정치를 손에쥔 종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떻든 포탈라 홍궁에는여러 부처 이름을 딴 방도 곳곳에 널려있다.미륵보살전이나 천수관음보살전,관음보살전과 만다라전이 그것이다.이들 불전에서는 야크기름을 태우는 불빛속에 순례자들의 참배가 계속되었다.그 많은 부처의 상중에서도 티벳불교의 핵심은 관세음보살상이다. 그러나 관음보살전 규모는 의외로 적었다.3구의 관음보살상 가운데 한구는 키가 1m 남짓했는데 7세기쯤에 만들었다고 한다.금물을 입힌 단향목불상이다.티벳인들은 이 보살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관세음보살 모양을 하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 ◎여행가이드/해발 3,700m… 두터운 옷 준비를 티벳은 3천∼7천m에 이르는 고산지대다.포탈라궁이 있는 라싸도 해발 3천700m나 된다.건강한 사람도 도착 첫날은 아무일도 하지 말고 호텔방에서 누워쉬어야 할 정도다. 티벳 여행의 적기는 7·8월 두 달이다.9월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산소의 양도 10%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여행길이 더욱 고통스럽다.고산지대임을 고려,두터운 옷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의 티벳행은 현지 정부의 허가증이 있어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다.사천성의 성도에서만 라싸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반면 일주일에 하루(보통 일요일) 2∼3편씩 라싸에서 북경을 가는 비행기가 운행되지만 북경에서 라싸행은 없다.북경-성도 비행기는 왕복기준 2천3백위안이고 성도에서 라싸까지는 2천4백위안이다.북경서 라싸가는 비행기만도 4천7백위안(49만원상당)이 든다. 공까공항에서 라싸와 제2도시인 르카차 등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다.포탈라궁은 티벳의 주요 여행코스다.매일 오전만 개방한다는 사실에 맞추어 여행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
  • 지역공약 발표… 부동표 잡기 총력/3당후보 행보

    ◎이회창­강릉시장서 즉석 경제연설/김대중­파랑세유세단 수도권 순회/이인제­부산서 불자상대 지지호소 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2일에도 지방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거나 대선공약을 발표하는 등 주로 부동층 흡수에 초점을 맞춘 중반 득표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나라당◁ 강원도 공략에 나선 이회창 후보는 이곳 출신 조순 총재와 함께 이날 강릉과 주문진의 시장과 광장 등에서 거리유세를 하며 지지표 확산에 주력했다.강원은 전통적인 여권표밭인데다 최근 최각규 도지사 등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대거 입당,이번 대선에서 과반 득표는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는 지역이다.특히 영동지역의 ‘이회창 바람’을 영서지방,나아가 수도권까지 ‘서진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이후보는 먼저 강릉에 도착,오죽헌을 참배한 뒤 주문진 시장,강릉 석남동선프라자 광장,강릉 중앙시장을 잇따라 찾아 시민들을 상대로 20분동안의 즉석 연설을 했다.이후보는 연설의 대부분을 최근의 경제난에 할애,경제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이후보는 거리유세를 끝낸뒤 곧바로 상경,시내 롯데호텔에서 인기사극 ‘용의 눈물’에서 태종역을 맡아 인기를 끌고 있는 탤런트 유동근씨를 만났다.유씨는 곧 이후보를 위한 TV광고에 출연,주부와 중·장년층의 지지를 넓히는데 한몫할 것으로 알려진다.이에 앞서 이후보는 마포당사에서 민주당 출신인사들로 구성된 별도의 선거대책본부 발족식에 참석,“김대중 후보가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인 여러분이 있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도 정권교체를 이루는 길”이라고 말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중앙당사에서 공약발표를 하고 호흡을 고르는 동안 각 유세단은 서울과 수도권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20∼30대 청년층 표심을 담당한 파랑새 유세단은 3개권역을 나눠 서울 종각과 충무로,신사역,강남역에서,인천의 경우 주안북부역과 동인천·제물포역 등을 무대로 지지를 호소했다.당내 청년특위도 ‘경제살리기 청년비상선언 주간‘을 선포,청량리와 압구정 일대에서 유세활동을 펼쳤다.추운 날씨 탓에 다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지만 각 유세단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경제파탄 책임론’을 앞세워 “경륜과 위기 관리능력을 겸비한 김대중 후보을 중심으로 희망의 경제를 건설하자”며 파상적인 공세에 나섰다. 정대철·노무현·김근태 부총재가 공동단장을 맡고있는 파랑새 유세단은 이날 “당명만 바꾼다고 집권당의 경제파탄 책임을 면할수 없다”며 “튼튼하던 경제를 불과 1년만에 부도로 몰고간 김영삼 대통령과 집권당 2인자인 이후보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공세를 폈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진영은 부산 일대의 대학가와 역광장·시장통을 숨가쁘게 도는 거리유세를 벌이며 정·경유착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의 책임론을 강하게 거론,“젊은 일꾼을 뽑아 나라를 구하자면서 지지를 호소했다.아침 비행기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간 이후보는 양산 통도사방문을 시작으로 부산대학과 양산 시외버스터미널·서면 롯데백화점·부산역 광장·고신대·국제시장·부산극장을 연결하는 버스투어 유세를 벌인뒤저녁 늦게 상경했다. 유세는 삼보사찰의 하나인 양산 통도사에서부터 시작됐다.한이헌 정책위의장·서석재 최고위원을 대동하고 통도사에 도착한 이후보는 대웅전에서 삼배한 뒤 바로 옆 불법전에서 열리는 ‘화엄산림법회’에 참가,1천여명의 신도와 자리를 함께 했다.이후보는 “집이 무너지면 허물어진 목재를 다시 써 집을 일으켜 세우기는 어렵다”고 경제위기와 관련해 현 정부를 질타한 뒤 “불자들이 애국심을 발휘해 나라 살리기에 앞장서 달라”면서 지지를 호소했다.부산대 앞에선 연설을 통해 “국가 경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역과 정파·학연을 가리지 않고 애국심있는 인재를 골고루 등용해 튼튼한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이어 부산 아리랑호텔서 열린 ‘21세기를 위한 모래시계세대 청년포럼’ 발기식에 참석,청년 회원들을 격려한 뒤 부산 롯데백화점과 부산역 광장·부산극장앞 광장 일대에서 가두연설과 거리유세를 계속했다.
  • 서울신문 국제전략연,본사발행 98년판 북한인명사전 증보자료 분석

    ◎군·당 실세 20인 올 활동 두드러져/김정일 수행·핵심요직 포진 권력기반 구축 앞장/군부 2차례 승진·농업­경제분야엔 문책성 인사 김일성의 3년 탈상(7월8일)과 김정일의 당총비서 승계(10월8일)가 있은 올해 북한에서는 권력구조의 개편없이 김정일과 핵심요직에 포진한 김의 측근 실세들이 지난해에 비해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또 고위직 인사이동면에선 강성산의 지병으로 지난 2월부터 총리대리체제가 지속되고 인민무력부장,당국제담당비서 등 핵심요직이 공석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군부중시로 군쪽에는 2차례 대규모 승진인사가 있었으나 당정쪽은 빈자리가 메워지는 수준에 머물렀다.그리고 농업당당비서인 서관희의 총살형설이 나도는 가운데 농업 및 경제분야의 도당 책임자 상당수가 실정에 따른 문책인사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일 공식행사 57회 참석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본사 발행 98년판 북한인명사전의 증보자료에 의거,주요인물들의 올해 활동상황과 인사내용을 분석한 결과 김정일과 부주석 이종옥을 비롯 당정군주요인사 30명이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이 가운데 군 총정치국장인 차수 조명록,당비서 계응태 등 김정일의 최측근 심복 20명의 활동이 더욱 두드려졌던 것으로 나타났다.먼저 김정일의 활동상황을 보면 새해 첫날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한 것을 시작으로 총비서직을 승계한 이후 지난 11월 하순 제163부대 여성해안포 중대를 시찰한 것까지 모두 57회의 공식행사에 참석했다.이는 지난해의 46회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것으로,김정일은 올해 민생현장 시찰은 외면한 채 지금까지 군관련 행사에만 무려 37회나 참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활동이 아주 활발했던 북한 실세 20명의 당정군 분포를 보면 ▲군에서는 이을설(원수·호위사령관),조명록,김영춘(차수·총참모장),김일철(차수·인민무력부 제1부부장),현철해(대장·총정치국부국장),박재경(대장·총정치국부국장),김하규(대장·포병사령관) 등 7명,당에서는 계응태(공안담당),전병호(군수담당),한성용(공업당담),최태복(교육담당),김국태(간부담당),김기남(선전담당),김중인(근로단체담당),김용순(대남당당),장성택(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9명,정에서는 김영남(부총리 겸 외교부장),홍성남(총리대리),백학임(사회안전부장) 등 3명,그리고 기타분야에서는 김정일의 친위조직인청년동맹 제1비서 최용해 등이다.이들은 군부대시찰 등 김정일의 나들이에 자주 수행하거나 주요행사를 주관하여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시는 등 김정일체제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반면 부주석들인 이종옥·박성철 등은 예우차원에서 권력서열만 높을뿐 주요정책결정 등 핵심적인 일에서는 점차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성택 8월이후 활동 전무 한편 김정일의 매제로 실세중의 실세로 알려진 장성택이 지난 7월19일 김정일의 잠수함 8003호 승선시찰에 수행한 이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이와 관련,최근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장이 모종의 자금수수와 관련,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정군 고위직의 인사이동을 보면 당에서는 황장엽 망명사건이후 국제부장이 현준극에서 김양건으로 교체됐고 사회문화부장도 이창선에서 강관주로 바뀌었다.정무원쪽에서는 사망으로 자리가 빈 수산부장 등이 새 인물로 바뀌었다.군부에서는 해군사령관인 김일철이 차수로 승진하면서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이 됐고 해군사령관에는 김윤심이 임명됐다.그러나 지방에서는 농업과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이 상당수 문책,교체됐다.도당 행정경제위원장은 함북의 경우 김충일에서 박수길로 바뀌는 등 3명이 경질됐으며 도단위 농촌경리위원장 6명도 교체됐다. 서울신문사가 발행한 북한 인명사전은 북한의 당정군 요인을 비롯 노동·사회단체·문화계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주요인물 1만6천4백여명의 활동사항을 상세히 수록하고 있으며 98년판에는 새 인물 2백여명의 자료가 추가됐다.
  • 수도권·충청·경남서 바닥표 훑기 시동/유세현장·쟁점

    ◎한나라당­DJP연합 비난… 경제체질 개선 약속/국민회의­산업현장 찾아 경제회생 처방전 제시/국민신당­하루 16시간 강행군… 일꾼대통령 역설 대선을 3주 앞둔 27일 대선후보들은 발빠르게 유세 대장정에 나섰다.각당은 이날 인천과 충청,경남에서 정당연설회와 가두연설 등을 통해 바닥표 모으기에 시동을 걸었다. ▷한나라당◁ 하오 인천실내체육관에서 당원,시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정당연설회를 열고 본격적인 지지세 확산에 나섰다.이후보는 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은 가급적 삼가고 미래의 비전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등 ‘포지티브 유세방식’을 선보였다.이후보는 “여·야의 맥을 면면히 이어온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아무 이해관계없이 합친 것은 지역패권주의와 붕당·패거리 정치의 병폐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는 일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이후보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밥먹듯 신의를 버리는 폐단을 없애고 겸손하고 정직하며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오직 정도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경제실정과 DJP연합에 대한 공략은 조순 총재와 김덕룡 공동선대위원장이 맡았다.조총재는 “정치9단이라는 사람들이 노욕을 채우기 위해 전리품 나누듯 내각제를 음모하고 있다”며 “정치가 이런 식으로 치닫다가는 국민은 알거지가 되고 말 것”이라고 DJP연합을 공략했다.김위원장은 “경제 구조를 개선하려면 정치 구조부터 조정해야 한다”며 “정경유착의 장본인인 3김이 있는한 정치·경제의 구조조정은 있을수 없다”고 역설했다. 정당연설회 직후 이후보는 인천 제2부두와 상공회의소,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청보산업,신포시장 등을 방문,경제회생을 위한 합심단결을 호소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이날 상오 서울 여의도 LG상사 본사를 방문,경제유세를 계속했다.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달러 확보를 위한 수출증대를 독려하면서 대량실업 위기에 몰린 기업현장을둘러본다는 취지다. 김총재는 “현재의 외환위기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외환획득 이외에 대안이 없다”고 강조한 뒤 “외화를 가져올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면서 국내외 신인도를높인다면 빠져나갔던 투자가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처방을 제시했다.특히 정부의 2백억달러 수준의 IMF 지원요청에 대해 “외채 1천4백억달러 가운데 단기성 자금이 60%이기 때문에 7백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총재는 인터뷰 관계로 예정된 4·19 묘지 참배를 취소했으며 이날 저녁 인천지역 방송 TV토론회에 참석,경제 재건방안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한편 선대회의의장인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지휘하는 ‘충청별동대’는 텃밭인 충남 아산과 당진을 순회하는 첫 실전에 나섰다.지원유세에는 국민회의 김영배 국회부의장과 김영진 의원,자민련 변웅전 이상만 정일영 의원 등이 가세했다. 김의장은 이날 아산 국민생활관에서 열린 지원유세에서 “30년동안 피땀흘려 이룩한 경제를 하루아침에 망쳐놓고 책임을 느끼지 않는 뻔뻔한 사람들이 정권을 또 잡겠다고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공격하며 정권교체 필요성을 역설했다.이어 “이회창 후보는 총리때 충청도 출신이 아니라며 충청도 출신 고위공무원 친목단체인 충우회에서의 격려사를 거절했던 사람”이라고 맹공했다.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이날 경남으로 내달렸다. 상오8시 비행기로 사천으로 내려간 뒤 자정무렵까지 16시간 가까이 도내 3백여㎞를 달리는 강행군을 벌이며 젊음을 과시했다.이날 하룻동안 버스로 진주,마산,창원,김해,밀양,창녕,합천 등 무려 8개 시·군을 돌았다.주로 재래시장을 20∼30분씩 방문하고 자리를 옮기는 숨가쁜 가두 유세전을 폈다.시장 좌판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합천 해인사 인근의 한 민가에서 숙박하며 ‘서민대통령’의 면모를 부각하려 애를 썼다.이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경제난과 병역시비를 제기하며 이 지역에서 자신과 선두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집중 공격했다.진주갑 지구당 선대위 발대식,창원에서의 경남도지부 결성대회등에서 이후보는 “한나라당은 나라를 부도내고 경제주권을 빼앗긴 주범”이라며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군중집회에 8백억원을 뿌려대는 등 후안무치한 작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1강 2중이라도 됐으면”/국민신당 추락 위기감

    ◎이회창 후보측·언론에 ‘여론조작’ 화살/합동TV토론 ‘이인제컬러’승부 기대 국민신당에 초비상이 걸렸다.각 언론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1강 2중의 구도라도 유지되면 좋으련만 2강 1약의 추세가 뚜렷해지자 더욱 초조해진 모습이다. 24일 아침 이만섭총재 주재로 열린 당직자회의는 이회창 후보측과 일부 언론에 대한 성토로 일관됐다.당 지도부는 ▲이회창 후보가 10%대 지지도였을 당시 1강 2중으로 보도했던 언론이 이인제 후보가 20%대 지지율인데도 2강 1중으로 보도한 점 ▲국민신당 창당대회때 근거없는 ‘청와대 지원설’ 등의 제목으로 수일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의 사례를 들어 언론보도가 편파적이라고 맹비난했다. 특히 이회창 후보측이 일부 언론과 협력,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있는 후보등록전까지 ‘이인제 죽이기 5일작전’에 돌입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총재는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이후보를 죽이기 위한 기득권층의 총체적 ‘이지메’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했다.이후보는 이날 어수선한 당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당직자 회의중인 이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결사항전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이총재도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뛰면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이후보를 격려했다. 당 고위관계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이제 이인제식 컬러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국민신당은 후보간 합동TV토론을 1차 승부처로 삼기로 했다.토론에 강한 40대의 이후보가 다른 후보들과 나란히 토론회에 서는 것만으로도 지지율을 높일수 있다고 보고 토론회 전략수립에 만전을 기하고있다.26일 후보등록직후에는 이후보와 전 당직자가 출정식을 겸해 수유리 4·19묘지를 참배키로 했다.총재를 비롯한 모든 당직자가 ‘전시체제’로 전환,넥타이를 풀고 점퍼를 입는 ‘점퍼착용근무’를 하기로 했다.‘국민속으로 들어가는’ 선거운동으로 기존 버스투어 일정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공조직은 물론 사조직을 풀가동,전국 1백만 개미군단의 바닥표 훑기로 부동표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한편 이날 하오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민신당 후원의 밤에는 당 지도부와 바둑기사 조훈현 9단과 가수 주현미씨 탤런트 김주승씨 등 3천여명이 참석했다.
  • 한나라당 출범… 자신감 찾은 이­조

    ◎합당전대후 첫날 여의도 당사 표정/대선필승 결의 다지며 인화·단결 거듭 강조/예비역장성 영입 활기… 병역공세 차단 기대 합당 전당대회후 첫날인 22일 한나라당의 여의도 당사는 의욕과 활기가 넘쳐 흘렀다.이날 상오9시부터 이어진 공식 행사에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 모두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자’고 결의를 다지는 표정들이었다.소수 야당에서 하룻만에 원내 제1당의 총재가 된 조순총재는 이날 아침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당사로 첫 출근,당명 현판식과 주요당직자 상견례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어 당사 10층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조총재는 “합당정신을 살려 한달도 안남은 대선에서 이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면서 “선거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인 만큼 낙관은 절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또 “DJP가 되면 이나라는 그날부터 혼란의 수렁에 빠지게 되며,경선에서 지고도 불복한 이인제 후보가 당선되면 3김시대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 시대의 유일한 대안은 이회창 후보뿐”이라고 역설했다.조총재는 합당 후유증을 의식한 듯 인화와 단결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취임식 후 김태호 사무총장으로부터 간략하게 당부보고를 받은 조총재 는기자실을 방문,출입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뒤 부산지역 필승결의대회 참석차 당사를 출발,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조총재와 함께 한나라당 일원이 된 홍성우 전 민주당최고위원과 이철 전 의원,김부겸씨 등 민주당 원외위원장 등도 이회창 후보와 이한동 대표 등 당지도부 집무실을 들러 인사를 나누며 ‘한몸’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한편 이날 낮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예비역 장성들의 이후보 지지모임도 한나라당의 의욕적인 출발과 때맞춰 관심을 끌었다.민경배 전 보훈처장,김홍열 전 해군참모총장 등 육·해군 대장출신 8명과 장홍렬 전 조달청장 등 중장출신 23명,소장출신 51명,준장출신 34명 등 모두 116명의 예비역 장성들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는 이한동 대표와 최병렬 선대위원장,이해귀 정책위의장,이상득 직능위원장 등 고위당직자도 자리를 함께 해 이들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이들은 지명도에서 최근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으로 간 예비역 장성들을 앞선다는게 한나라당측의 설명이다.따라서 각 후보진영의 예비역 장성 영입경쟁에 쐐기를 박는 동시에 공세와 병역공세를 차단하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3후보 대선행보/이회창­문민정부 탄생시킨 ‘부산역할론’ 강조

    ◎김대중­대전방문 “JP 지지하면 내게 표달라”/이인제­충청·경북 등 4개 시·도 버스투어 대장정 후보등록을 나흘앞둔 22일 각 정당 대선후보들은 전략지역인 영남과 충청권을 집중 공략하며 표밭을 다졌다. ▷한나라당◁ 주말 하오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필승결의대회를 통해 부산 민심 끌어안기에 발벗고 나섰다.한나라당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이날 대회는 부산지역 위원장 전원과 문정수 부산시장,2만여 당원·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회창 후보는 치사를 통해 “부산이 움직이면 역사가 바뀐다.새로운 역사가 부산 시민을 부른다.여러분의 힘이 절대로 필요하다”며 “문민정권을 탄생시킨 자존심과 자신감,결집된 저력으로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키자”고 지역정서에 호소했다.이후보는 “부산은 김영삼 대통령 개인의 영광을 위해 문민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변화와 개혁의 정치가 필요한 시점에서 역사적 인식을 갖고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라며 ‘부산역할론’을 역설했다. 조순 총재는 “3김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이인제 후보가 택할 길은 한나라당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한때 반이후보 대열에 섰던부산 출신 신상우 공동선대위원장은 “국민과 민심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며 “현재의 불안을 씻고 나라를 바로 세울수 있는 후보는 이회창 후보뿐”이라고 주장했다.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도 “부패와 치매 정권을 막아야 한다”며 대선승리를 위한 단합을 강조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대전·충청지역 경제살리기 결의대회’에서 이른바 DJT연대를 앞세우며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에 대한 지지를 자신에게 몰아줄 것을 호소했다. 김총재는 등단하자마자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제가 당선되는 것은 곧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 약속은 꼭 지킬께유”라고 충청도 사투리를 써가며 지지를 유도했다.김총재는 이어 “우리나라를 법정관리에 빠지도록 망친사람들과 그 밑에서 국무총리와 부총리 등을 지낸 사람들은 책임을 지고 이번 선거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한나라당과의 ‘연대책임론’을 펼쳤다. 앞서 등단한 김종필 명예총재는 “이북사람이 모인데 가면 황해도사람,광주에 가면 전라도 사람,충청도에 오면 다시 예산이 고향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이회창 후보를 겨낭한뒤 “오늘 여론조사를 보니 그런 사람이 여기서 20몇%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니 도대체 충청도사람들은 지금 어디가서 무슨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지역연고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대회에는 한영수·김용환·박준병 부총재를 비롯한 자민련 소속의원·당직자가 대부분 참석했고,최근 국민회의에 입당한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의 김원기 대표와 김정길 전 의원도 지원연설을 했다. ▷국민신당◁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버스유세의 대장정에 나섰다.어설픈 조직력으로 거대정당 후보들에 맞서느니 차라리 맨몸으로 ‘국민’속에 뛰어 들겠다는 것이다.젊음과 건강을 앞세운 승부수인 셈이다. 21일 새벽 충남 온양 방문으로 시작된 이후보의 버스투어는 하루에 3∼4개 시·도를 오가는 강행군으로 이어지고 있다.22일만 해도 충북 청주와 대전,경북 구미,대구등 4개 시·도를 방문하고 상경했다.이날 아침 방문한 청주에서는 농수산물시장을 둘러보고 청주터미널 앞에서 ‘경제살리기’ 캠페인을 벌였다.곧바로 대전으로 이동해서는 영세공장 2곳을 찾았다.이어 무궁화호 열차로 구미로 방문,중앙시장과 지역중견기업인 ‘오리온전기’를 찾았다.대구를 찾아서는 시자부사무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측이 주말을 전후로 여론조사결과를 조작,‘이인제 죽이기’에 총력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여론조사 조작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이후보는 21일에도 충남 온양에서 서울,그리고 다시 충남 당진,천안,청원으로 내달리며 바닥표를 주어 모았다.새벽 6시 온양의 선학원 특강으로 시작한 일정은 자정무렵 청원군 남이면의 한 농민후계자 농가에서 가진 주민간담회로 끝났다.현충사 참배와 한보철강,당진제철소,서해대교 방문 등을 이날 소화했다.23일엔 서해안의 소래포구를 찾을 예정이다.이후보는 12월18일 대선때까지 이같은버스투어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 김정일 군관련 행사 참석 주력/총비서 추대후도 한달새 6차례나

    지난달 8일 당총비서에 추대된 김정일은 새로운 정책제시나 당정군 요직에 대한 일체의 인사 없이 군관련 행사 참석에만 주력하고 있다. 총비서추대 이후 김정일의 공식활동 횟수는 모두 7회.이 가운데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군 관련행사 참석이었다.최근의 행적을 보면 지난 9일에는 제5484군부대의 예술공연을 관람한데 이어 10일엔 동해안 방어초소인 알섬방어대를 시찰했다.
  • 다도인 채원화(이세기의 인물탐구:150)

    ◎예절과 정성을 달이는 ‘다도연출가’/중·고등학교땐 법관 지망생으로/대학서 ‘공의 철학’인연 불교 입문/42세 연상 효당 스님을 스승·부군으로/결혼후 특봉과정서 ‘다선삼매’ 터득/‘반야로’ 개원하며 전통다도계승자로 ‘반야로’란 ‘지혜’의 ‘반야’와 ‘이슬’의 ‘로’와 함께 차한모금이 한방울의 지혜란 뜻이리라. 한방울 한방울 마시는동안 지혜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초입에 위치한 반야로차도문화원에 들어서면 ‘다도무문’의 서필아래서 승복차림의 원화가 단정하게 정좌하여 차를 거른다. 채정복은 속명이고 주변에서는 그를 ‘원화보살’로 칭한다. 당나라 말기의 시인 노동의 ‘칠완다가’에 비친것처럼 원화의 차도는 ‘근육의 뼈가 맑아지고 선령에 통하는 경지’로서 학업을 무르익게 수행한 사람만의 유창한 언변에는 감성과 지성이 넘쳐난다. 그의 인생의 길은 타고 태어난 운명이라기보다 스스로 파란만장을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에게 지기싫어하는 정의감과 옳은것을 위해끝까지 투쟁하려는 앙분과 시시한 것을 외면하는 호불호가 선명하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중고교시절에는 진주시내가 자랑하는 모범생이었고 장래 서울대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이 된다는 대망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진주사범출신인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죄와 벌’이며 ‘전쟁과 평화’ 등 문학서적을 탐독하는 동안 ‘사람은 왜 사는가’‘이세상은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도 결국 죽게된다’는 회의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고교입시를 앞둔 시기에는 주변의 친구들이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나만이 홀로 소도시에 쳐진다는 자책감으로인해 염세주의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다. 공부하기가 싫어져서 1년동안 휴학하다가 뒤늦게 연세대 사학과에 진학, 우연히 ‘공’의 철학과 마주친것이 불교에 입문하게된 동기다. 졸업논문 제목은 ‘원효성사의 사회사상사적 소고찰’로 이에대한 자료수집차 처음에는 송광사에 드나들었고 원효불단을 선포한 효당 최범술스님의 명성을 듣고 경남 사천에 있는다솔사로 찾아갔다. 스승과의 첫대면은 ‘거대한 산앞에 앉아있는 기분’이었으며 박학다식에서 우러나온 고명의 인품에서 그는 ‘그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느꼈다’고 했다. 효당은 ‘원효성사 교학의 복원’에 앞장선 청정한 종교인에다 ‘한국의 차생활사’ ‘한국의 다도’ 등 차전문 저서를 펴낸바 있다. 스승을 만난것은 69년이었고 다음해 대학졸업과 함께 다솔사로 거처를 옮겨 스승과의 평생의 연을 맺게 되었다. 효당과의 사이에 자녀는 남매. ○승복차림 ‘원화보살’로 그는 하맣터면 판사가 될뻔도 했고 대학에 와서는 한태동 교수의 권유로 일본에 유학후 모교의 교수가 될뻔도 했다. 그러나 효당과의 숙세의 인연이 있어 42세 연상의 효당을 스승겸 부군으로 극진히 시봉하는 과정에서 차달이는 법과 철병속의 솔바람소리를 들을수 있게 되었다. 북송 휘종의 ‘대관다론’에서 보듯 ‘차는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고 맑고 아늑한 기운을 준다’는 다선삼매의 터득이었다. ○송광사서 효당과 대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으며젊음의 열기와 객기를 바로 잡아준다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한몫을 하게된다”고 다시한번 권유한 것이 77년에 창설한 ‘한국차도회’다. 다동호인은 다회를 통해 다화를 나누면서 다도의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모임을 이끌어 갔다. 쓰고(고) 떫고(삽) 시고(산) 짜고(염) 단(감) 모든 맛을 지닌 차는 ‘인간성의 평등과 인간생활에서의 중정의 대도를 실천하는 것’이며 ‘광대무변한 대자대비로서 만인간이 향유해야할 무사심의 대화’일 것이다. 산사에서의 만 9년간은 세속을 벗어난 선경의 세월이었으나 효당이 지병으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말할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되고 다솔사를 떠나 거처를 서울로 옮길수 밖에 없었다. 종교적으로 격렬한 분쟁에 휘말린 복잡한 사건때문이지만 “이는 책한권으로도 쉽게 밝힐수 없는 만단의 사연이 깃들어있다”고만 전한다. 서울에 온지 1년만에 효당은 76세를 일기로 79년에 입적,‘원화보살’의 나이 아직 30대 중반에 미치지 못했으나 ‘하늘같고 태산같은’ 효당이 남겨준 차도회를 잇기로 하고 홀연히 차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83년 ‘반야로 모임’ 결성 그는 해마다 4월과 5월사이 지리산으로 달려가 차밭에서 새순을 채취하여 직접 제차에 들어간다. 이른 새벽 이슬을 먹음었을때의 생잎을 가마솥에 찌고 꺼내어 비비다가 다시 구수하게 덖는 부초차에서 섭씨 100도의 끓는 물에다 차잎을 데쳐가며 물기를 빼고 덖고 띄우고 증하는 정제증차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까다로운 전과정을 그는 손수작업으로 이끌어나간다. 색과 향이 뛰어난 이 명차는 효당본가에서만 전승되는 바로 ‘반야로’이다. 결곡하고 야무진 그는 효당의 제자요 부인이라는 자리에서 한치의 누가 되는 일은 한사코 마다하지 않는 단호함을 지닌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드나들던 차인들의 권유로 83년,‘반야로 차도모임’을 결성하고 문화원을 정식개원하여 현재는 해마다 제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도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일상속에 있으며’‘차는 오며가며 마시는것’이란 효당의 뜻을 받들면서 ‘이무소득의 경지, 즉 무슨 댓가나 찬양을 바라서가 아니라 사람노릇을 하지않고는 배길수 없는 세계’를 굳건히 이어갈 뿐이다. □연보 ▲1946년 경남 진주 출생 ▲1966년 진주여고 졸업 ▲1969년 연세대 사학과 3년재학시 경남사천군 곤명면 원효불교 다솔사입산,효당 최범술문하 입문 ▲1970년 연대졸업 ▲1970∼77년 다솔사체재 ▲1977년 한국차도회 발족(회장 효당 최범술스님),재무이사 ▲1979년 효당입적후 서울체재 ▲1983년 반야로 차도문화원개원(서울종로구 가회동 1­90),원장취임,반야로차도강좌 ▲1992년 연세대 대학원 졸업,논문 ‘초의 선사의 다선수항논’ ▲1993년 반야로차도문화원 안양지부개원 ▲1994년 ‘반야로’차명,특허청에 출원공고 결정 ▲1994년 반야로차도문화원 대구 경북지부 개원,‘전통차도 계승자’로 한양정도 6백년 기념사업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1995년 백두산에서 반야로 차제,사적지답사 및 효당부도참배,반야로차도문화원 제1회 수료식
  • 신사참배·유신지지 반성/‘한국교회 참회록’ 발표

    ◎개신교단·신학자 200명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등 개신교단과 신학자 2백여명은 종교개혁4백80주년을 맞아 일제시대 신사참배와 유신정권 지지,5·6공 정권에 대한 협조 등을 회개하는 ‘한국교회참회록’을 31일 발표했다. 최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신세원 예장 합동 총회장,김의환 총신대총장 등은 이날 참회록에서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의식이라 변호하며 동참했고 독재정권을 위해서는 3선개헌지지운동을 하고 유신헌법 지지성명을 발표하는 등 교회역사가 과오와 타락으로 얼룩져 있음을 고백했다”고 말했다.개신교계 지도자들이 집단으로 이같은 참회록을 공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참회록에서 “광주시민의 피를 딛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불의한 세력의 편에 서서 조찬기도회를 열었고,이들의 안녕을 구하며 협력자 역할을 맡았다”고 회개했다.
  • 중국 낙산(세계 문화유산 순례:49)

    ◎높이 71m·어깨너비 28m 세계 최대 마애불상 우뚝/1,200여년전 해통 선사 첫 불사/90년동안 능운산절벽 깎아 완성/3강이 합수지점 수상사고 잦자 “부처님 법력으로 사고예방” 기원 사천성 낙산시 동능운산 서벽 서남봉에는 엄청난 석각미륵좌상이 있다.이 부처상을 가리켜 “산 하나가 불상이고 불상 한 구가 산”이라 하지 않았던가.이른바 낙산대불이라 했다.높이 71m,어깨넓이 28m,귀의 길이 7m,코의 길이 5.6m.발등 위에만 1백여명이 동시에 올라갈 수 있다.발톱도 사람 넷이 상을 펴놓고 마작을 즐길만한 넓이다. ○발등에만 100명 동시 올라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낙산대불 자리 동능운산까지는 사천성 성도에서 3시간30분 남짓한 거리다.민강과 대도하,청의강이 합수하는 지역의 여러 묏부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온몸에 천년의 이끼를 법의처럼 입은 대불은 발아래 흐르는 강을 굽어보는 자세다.그래서 그림자가 늘상 강물 위에 어린다.그 강물과 건너편의 아미산 영봉들을 홀로 보기가 아까웠던지 양편의 절벽에다 작은 마애불을 떼로 거느렸다.그러나마애불들은 세월이 너무 흘러서 원래의 모습이 지워진지 오래다.다만 대불 양편 바위 위에 새긴 10여m 크기의 두 금강역사상만이 큰 눈을 부릅떴을 뿐이다. 대불을 조성한 시기는 지금부터 1천190여년전인 AD 803년.우리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당 현종때인 713년에 해통이란 선사가 처음 불사를 폈다.그리고 나서 당나라 사천 절도사 장구를 거치고 다음 절도사 위고때에 회향됐다.산 한면을 깍는 불상 조성은 90년의 세월이 걸렸다.사암석의 능운산 절벽을 깎아 조성한 불상이지만 여느 평지에서 다듬어다 조립한듯 정교했다.처음엔 전각을 지어 대불의 얼굴 상호만이 밖에서 보였으나 지금은 전각이 불타버렸다. 대불이 굽어보는 민강·대도하·청의강은 본래 수상교통로였다.지금은 운송 기능은 쇠퇴한 채 양자강의 지류로 그냥 흐르고 있다.사천 서남쪽과 성도,중경 등을 연결하는 대동맥이었으나 이들 세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머리는 물살이 워낙 급했다.그래서 사고로 인한 희생이 잇달았다.낙산대불에는 그런 수상사고를 부처의 법력을 통해 막아보자는기원이 담겼다.중생구제의 미래불인 미륵불 형상을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대불을 조성한 해통선사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든다.대불 조성을 위해 모은 시주에 탐을 낸 지역 벼슬아치가 돈을 요구했다.해통선사는 돈 대신 자신의 두 눈을 주었다는 것이다.그 벼슬아치는 결국 잘못을 뉘우쳤는데 예나 지금이나 탐관오리는 어디나 기생했던 모양이다.이 절 이웃에는 해통선사가 수련했다는 동굴과 그의 소상이 자리했다.그 소상밑에는 “내 눈은 빼어줄 수 있지만 부처님을 섬기는 재물을 얻기는 어렵다”는 글이 써 있다. ○능운사 18나한상 유명 낙산대불은 물론 규모가 크다.그러나 당나라 전성기 중국 건축예술의 정수라는 점에서 더욱 값진 인류문화유산인 것이다.중생을 언제나 자비롭게 내려다 보는듯한 눈길은 이 불상의 백미다.아무리 크다하나 머리에서부터 다리끝까지 나무랄데가 없다.그 높기만한 불상을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몸매는 균형이 잡혔다.불두가 전체 키에 비해 너무 큰 14.7m나 되지만 올려다보는 사람들 눈에는 커보이지 않는다.그 비결 뒤에는 미리 계산한 설계의 지혜가 깔렸다.대불 양편에는 절벽을 깎아낸 500여m의 길이 있다.사람들이 오르내래며 대불을 바라보도록 한 것이다. 능운산은 푸른나무들이 인상적이라 하여 청의산이라고도 했다.멀리서 보면 대불이 들어서 있는 능운산과 인접한 오우산은 부처가 드러누운 형상이다.대불 밑의 오우산과 대불 위의 능운산 입구의 13층 영보탑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었다.오우산의 오우사 역시 당나라때부터 미륵부처를 모신 명사찰로 이름 나 있다.물길이 끊어놓은 능운산과 오우산 두곳은 다리로 연결됐다. 능운산은 대불을 조성하기 전부터도 뛰어난 경관으로 이름난 불교의 명산이다.능운사라고도 하는 대불사는 천왕전과 대웅전·장경루,부속건물로 이루어진 대가람.대웅전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삼신불과 18나한상이 유명하다.천왕전 정중간에는 양쪽에 사대천왕을 거느린 미륵불상이 서서 오는 참배객을 맞았다.
  • 불국사경내 ‘제2석굴암’ 조성/참배·관람객 의한 문화재훼손 막게

    불국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불국사 석굴암(국보 제24호)을 영구 보존키 위해 제2 석굴암을 경내에 새로 조성키로 확정했다. 불국사 부주지 성천스님은 20일 “석굴암 참배객과 관람객이 너무 많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날로 훼손돼가고 있다”면서 “민족 유산인 석굴암을 길이 보존키 위해 제2의 석굴암을 경내에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불국사는 계획서가 마련되는대로 문화재위원회에 문화재 소유자가 문화재보호구역 내의 시설을 신설,보수 또는 이동하는 현상변경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 김정일 총비서 승계후 북 체제 전망

    ◎측근·근 등 친위실세 전진배치 예상/김일성노선 답습하며 당기능 복원 시킬듯/체제유지 위한 군사통치에 계속 의존 전망 지난 8일 당총비서에 추대된 김정일은 당창건 52돌인 10일 당총비서의 자격으로 당정군 수뇌부를 대동하고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부터 방문했다.9일 열린 당창건기념행사엔 참석치 않고 김일성참배를 시작으로 공식활동에 들어간 김정일의 이같은 행보는 앞으로의 김정일의 통치방식 뿐아니라 정책노선과 관련,시사하는 바가 많다.우선 김정일은 한동안 정책변화 없이 그동안 무력화됐던 당의 체제정비와 보강을 통해 당 기능을 복원하면서 체제유지를 위해 군사통치에 계속 의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와함께 당정군의 핵심요직에 친인척과 군 실세,당 5인방등 측근 친위 실세들을 대거 전전배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선 김정일은 정책면에서 당분간은 김일성의 노선을 답습하리라는 것이 정부당국이나 북한문제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시각이다.북한 중앙방송이 김정일의 총비서추대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일성의 위업과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빛나게 완성하려는 확고한 신념과 드팀없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고 북한문제전문가들도 현재 북한 내외의 상황으로 보아 당분간은 김정일이 정책에 어떤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명실상부한 최고 실권자로 당총비서에 추대됐기 때문에 그동안 군부에 눌려있던 당의 기능이 복원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이를 위해 체제정비와 함께 자리가 빈 정치국원이나 당비서·당조직지도부장 등 요직에 심복을 배치하리라는 전망이다.그러나 체제유지를 위해 당의 기능을 복원한다 해도 군사통치는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군사통치가 계속되리라는 징후는 김정일의 총비서추대가 당중앙위원회 뿐 아니라 당중앙군사위의 공동명의로 이뤄진데서 찾아볼 수 있다. 총비서 승계후 김정일의 행보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정군 요직의 개편이다.인민무력부장이 공석인데다 총리직도 강성산이 지병으로 집무를 할 수 없어 홍성남부총리가 대행하고 있는 등 중요한자리가 비어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은 체제붕괴를 우려해 개방·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기존정책노선을 답습하면서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 측근이나 심복들을 전면에 포진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선 친인척과 당에서는 김정일의 매제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장성택이 요직을 맡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김정일의 누이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은 김정일이 “믿을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에서는 총정치국장인 차수 조명록과 총참모장인 차수 김영춘이 정치국원 반열에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이들 외에 호위사령관인 원수 이을설이 있으나 이는 원로예우을 받고 인민무력부장엔 조명록이 발탁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정무원쪽에서는 총리대리인 홍성남 부총리와 외교부 제1부부장인 강석주 등이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현재 총리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개방정책 추진을 위해 김달현 전 부총리가 컴백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당분간 현체제로 나갈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북한의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다음달까지나 연내로 원로들은 예우직으로 물러나고 젊은층 위주로 새로운 진용이 짜여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김정일은 국가주석직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직도 곧 승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중­일 우호의 우물 팔 인재 키우자(해외사설)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중일공동성명이 조인된지 4반세기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결코 순풍에 돛단 것은 아니었다.총리의 야스쿠니신사참배와 중국의 핵실험등 풍파가 일었다.하지만 최근 아사히신문과 중국 인민대학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중일관계가 ‘잘 돼가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을 웃돌았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의 방중에 이어 이붕 총리가 일본에 온다.내년에는 강택민 주석이 방일한다.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중일관계는 여기까지 발전해왔다.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한다.‘우물을 판 사람’은 일본에서 마쓰무라 겐조(송촌겸삼),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오히라 마사요시(대평정방) 등이다.전쟁에서 중국에 커다란 손해를 입혀 죄송하다는 기분이 그 행동의 배경에 깔려 있다.중국에서는 주은래,곽말야등이다.일본군에 육친을 잃거나 집을 방화당한 중국 사람 앞에서 일본과의 국교회복의 필요를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중일관계가 성숙됨에 따라 속죄의식과 눈앞의 이익만으로 우호를 노래하는 시대는 지나갔다.주장할 것은 주장하고 때로는 상대의 귀가 아프도록 말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하지만 그 전제는 중일관계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양측 정권의 중추에 대국적인 입장과 확고한 역사인식을 가진 ‘지일파’,‘지중파’가 없어서는 안된다.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는 태세가 정비돼 있지 않다. 그 단적인 예가 중국으로부터의 유학생과 그 예비군인 취학생이다.국비유학생 80명을 제외하고 3만명의 사비유학생과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2만명의 취학생들을 둘러싼 환경은 대단히 열악하다.어느 유학생은 ‘교실에서 일본인 학생이 말을 걸어온 적이 거의 없다’고 탄식한다. 앞으로 4반세기의 중일관계는 이러한 젊은이들이 맡게 될 부분이 크다.양측 모두 ‘우물을 판 사람’의 후계자를 길러내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아시히 신문 9월28일〉
  • 한일 어업협정 파기 검토안해/오부치 일 외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외무장관은 12일 취임 인터뷰에서 당분간 한·일 어업협정을 파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오부치 장관은 이날 한·일 어업협정 개정문제에 언급,“하루빨리 새 협정이 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일은 피하겠다”고 말해 당분간 협정파기 선언을 하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 그는 또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와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한 바 없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 여야후보 추석연휴 어떻게 보내나

    ◎대부분 군부대·생산현장·장애인 등 찾아 격려 대통령선거를 90여일 앞둔 여야 각 정당의 대선후보들에게는 추석 연휴를 즐길 틈이 없다.이번 연휴 기간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여론형성의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귀성 못한 사람 위로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는 미약한 지지율 회복세를 가속화하기 위해 최대한 보폭을 넓힌다는 방침이다.특히 일선 군부대나 경찰서,생산현장 등을 방문,귀성길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을 격려할 예정이다.연휴중 이틀정도는 구기동 자택에서 머물며 차분하게 향후 정국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표는 12일 경기도 파주지역 전방부대를 방문한데 이어 13일에는 서울역을 찾아 귀성길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이대표는 14일 하루동안 휴식을 취한뒤 15일에는 수도권 지역의 공장을 방문,근로자들을 위문할 계획이다. 16일에는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내려가 성묘를 한뒤 곧바로 귀경,영등포경찰서·강남경찰서 등에 들러 근무자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인천지역 집중 공략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13일 수도권 전략지역인 인천에서 이 지역 언론사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택시기사 3백여명에 대한 자문위원 위촉식,지역 중소기업대표들과 간담회도 가졌다.14일에도 다시 인천의 답동성당에서 미사를 올린뒤 장애인복지시설인 명심원도 위문하는 등 이 지역을 집중 ‘공략’한다. 김총재는 또 14일 아침 장남 홍일씨가 살고 있는 동교동 옛집에서 추석연휴중 방영될 모방송 출연 프로그램의 녹화도 갖는다.이를 통해 대선 케치프레이즈의 하나인 ‘행복한 가정’을 부각시킨다는 복안이다. ○당직자와 골프모임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별다른 공식일정 없이 대선정국에 대한 구상을 할 계획이다.추석인 16일에는 최근 작고한 큰 형님댁에서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집에서 쉴 생각이다.나머지 일정이라고는 추석연휴 첫날인 14일 몇몇 당직자들과 골프모임을 갖는 정도다. 김총재는 모처럼의 휴식에서 이달말로 1차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의 후보단일화 협상 등에 대한 입장을 나름대로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저녁에는서울 목동 실내아이스링크에서 열린 ‘볼쇼이아이스쇼’를 당직자들과 부부동반으로 관람했다. ○지역 경제인과 회동 ○…민주당 조순 총재는 13일 대선출마선언후 처음으로 고향인 강릉을 방문,지지기반 다지기에 나섰다.1박2일의 짧은 기간이나 오죽헌 참배와 학산 및 성산의 선영 성묘,해안초소 방문,6·25민간인희생자추모비 참배,지역언론 회견 등 빡빡한 일정을 마련했다.주문진시장 강릉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만나고 지역경제인 및 기관장,지역유지들과도 회동할 계획이다.측근은 “동향인 최각규강원지사와도 자연스레 회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총재는 이어 14일 저녁 귀경,추석연휴이후 단행할 당직인선 등 당체제정비 방안을 구상한다.특히 이인제 경기지사의 출마에 따른 대선구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대선전략을 강구할 계획이다.
  • 거꾸로 가는 일 자민당‘정치시계’/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장고가 돌아왔다” “자민당 정치가 부활했다”. 일본 자민당·내각 인사는 자민당 정치가 돌아왔음을 알리는 팡파레다.자민당 정치란 무엇인가.밝은 면에서는 책임감,국정 수행 능력,안정된 정치 등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어두운 면에서는 금권정치와 부패,윤리적 둔감성,왜곡된 역사인식 등과 겹친다.‘돌아온 자민당 정치’는 후자다. 자민당은 4년전 갑자기 야당으로 전락했다.만년 여당인 자민당의 금권정치,파벌정치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고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총리가 유죄판결을 받은 록히드사건은 금권정치와 부패의 대명사다.야당으로서의 자민당은 옷깃을 여미면서 정치 윤리의 확립과 파벌의 해소를 맹세했다.자민당의 4년 노력은 헛되지 않아 여당으로 복귀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중의원 과반수도 확보했다.사민당 신진당등 자민당을 뺀 여타 정당은 장구 깨진 무당처럼 도대체 흥이 오르지 않고 있다.바야흐로 1강6약 시대다. 자민당은 다시 교만해지기 시작한 것일까.당직 인사에서는 정치 헌금 의혹이 제기된 야마사키 다쿠(산기척) 정조회장이 유임됐다.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는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예”라는 대답을 듣자 간단하게 유임시켰다.록히드사건 당시 운수차관으로 2백만엔의 뇌물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코 고코(좌등효항)의원도 총무청장관으로 임명됐다.‘이미 끝난 일로 희생을 치를 만큼 치렀다’는 하시모토총리의 임명의 변도 일리는 있지만 유죄 확정 의원의 입각은 ‘기록을 보는 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 총리부 인사과의 설명이다. 장관 자리는 파벌별로 안배되고 파벌의 추천을 받아 인선이 이뤄졌다.‘모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인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는 회장직을 사임했다곤 하지만 외상에 취임했다.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 기술을 삭제하라고 주장하던 시모이나바 고키치(하도엽경길)는 법무상이 됐다.이 모든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자민당의 교만’이라는 비판들이 무성하다.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될 행정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무청장관이 사토장관이고서는 관료들의 반발을 과연 억누를수 있는가라는 물음도 제기된다. 요즘 세상은 이웃이 잘돼야 나도 잘되는 시대라고 한다.일본의 정치개혁이 잘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약이 될텐데….11일 단행된 일본의 당정개편은 과거로 가는 특급 열차에서 보는 파노라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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