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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쉴틈없는 金대통령의 신정연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000년 1월1일 자정 ‘화합과 희망의 대열에 동참합시다’라는 신년메시지를 발표하고 이어 뉴밀레니엄 첫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며 새천년 메시지를 낭독했다.서울 광화문에서 거행된 뉴밀레니엄 행사에 참석해서다.이날 오전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일정이 있으나 이틀간의 새해연휴에 들어간다. 김대통령은 이틀동안 청와대에 머물면서 오는 3일 새천년을 여는 첫 민·관합동 시무식에서 천명할 신년사를 정리한다. 큰 골격은 잡아놓은 상태이나최종 문안을 직접 손질하게 될 것이라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20세기 송년 특별담화’나 새천년 메시지에 담은 상징적 의식선언과달리 구체적인 새해 국정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게 되는 만큼 심혈을 기울이고있다는 전언이다. 김대통령은 또 여름휴가 때와 마찬가지로 틈틈이 독서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이미 두권의 책을 구입했다고 공보수석실은 전했다.‘나무와 숲이 있었네’(전영우 지음·학고재),‘잭 웰치가 한국의 경영자에게’(잭 웰치 지음·한국능률협회) 등이다.‘나무와 숲이…’는 이 땅에 깊은 내력을 지니며 자라고 있는 용계 할배은행나무,석송령과 인왕산,남산의 숲 등을 자연과학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조망한 책이며,‘잭 웰치…’는 환경의 변화에 앞서 자신을 변화시키라고 강조하고 있는,경영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다.저자 잭 웰치는 김 대통령이 접견한 바 있는 세계적인 경영자이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의 환경과 21세기 기업혁신에 대한 김대통령의 관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다양한 행사로 이미지 제고

    새천년민주신당 준비위원회가 참신한 이미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그동안은 국민토론회 등을 통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수렴해왔다.이제는 신당의 이미지를 제고할 때라는 판단이다.다양한 행사와 이벤트에 역점을 두고 있다.여성,노인,대학생,군인,경찰,재래시장 상인 등 모든 유권자군이 홍보의 대상이다. 신당의 창당 이벤트는 12월말을 기점으로 본격화되고 있다.‘2000 주부 모니터단 발대식’으로 아줌마 부대를 결성했다.노인무료급식 봉사,경찰서,전방부대 위문 등 종횡무진이다. 이제부터는 대학생들도 함께한다.신당 386청년위원들이 각 대학에서 학생들과 토론회를 갖는 것은 물론 ‘아시아는 내친구’라는 신세기사절단을 구성했다.새해가 되면 85명의 대학생들이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7개국을 순방하면서 9박10일간 해당국의 정치 문화 등을 시찰한다. 단발성 행사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IMF를 극복한 사람들’‘중소기업인 토론회’등 그동안 개최된 간담회의 결과가 신당 정책에 반영된다.언론에보도된 만큼 일반인들은경제 극복을 실감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31일에는 새천년을 맞이하기 위한 행사를 영등포상가에서 갖는다.신당준비위원들이 새천년의 꿈을 상징하는 복조리 2,000개를 시민들에게 나눠준다.신당 1차추진위원이었던 연주자 정영훈(鄭泳薰)씨가 KBS홀에서 새천년 연주회를 마련한다. 새해 아침에는 여의도 공원 ‘화합의 광장’에서 새천년을 맞이한다.이날단배식에는 신당과 국민회의가 함께 참여한다.이어 국립묘지,4.19묘지를 찾아 참배식을 갖는다. 새천년에도 신당은 서민층에 다가간다.택시기사 가스충전소 등 삶의 현장방문 이벤트가 계속 이어진다. 주현진기자 jhj@
  • [의열 독립투쟁] (16) 조명하 의사

    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경 대만 타이중(臺中)시 다이쇼죠(大正町)도서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대만주둔 일본군 검열차 육군특별검열사 자격으로 대만을 방문한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자육군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爾宮邦彦)를 환영하기 위해서 동원된 인파들이었다. 바로 그 시각 한 청년이 군중을 헤치고 구니노미야가 탄 무개차를 향해 뛰어들었다.청년이 단도를 빼어들고 구니노미야를 겨누자 무개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으며,시종무관 오누마(大沼)는 몸으로 구니노미야를 비호하였다. 청년은 구니노미야를 향해 힘껏 단도를 던졌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맹독이 묻은 단도는 구니노미야의 왼쪽 어깨를 스친 뒤 운전사의 등에 맞고 떨어졌다. 거사후 청년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후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그가 바로 조명하(趙明河)의사다.구니노미야는 이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27일사망하였다. 조 의사는 1905년 5월 황해도 송화군 태생으로 송화보통학교 졸업후 집안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친척이경영하고 있던 한약방에서 일하면서 독학(獨學)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어 등을 공부하였다.5년여 동안 한약방에서 근무하면서 틈틈히 실력을 쌓은 조 의사는 1926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군청 서기 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당시 군청 서기는 상당한 실력을갖춘 엘리트로,경제적으로도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해 ‘6·10만세의거’,송학선(宋學先)의 ‘금호문(金虎門)의거’로 조선민중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몸으로 느낀 조 의사는 어렵게 합격한군청 서기직을 3개월만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하였다.조 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고 판단,국외에 나가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조 의사는 아키카와 토요오(明河風雄)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낮에는 회사원·점원으로 일하였고 밤에는 오사카상공전문학교(大阪商工專門學校)를 다니면서 국제정세를 파악하였다.일본식 이름 아키카와 토요오(明河風雄:명하풍웅)은 본명 ‘명하’를 일본식 성(姓)으로 바꾸고 ‘의로운 일로써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겠다’는 의미의 ‘풍웅’을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이는 조 의사의 독립투쟁 의지가 담긴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활동에 한계를 느낀 조 의사는 1927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키로 하고 이 해 11월경 기착지인 대만에 도착하였다.조 의사는 대만에서도 역시 일본인에 의해 자행되는 수탈과 행패를 눈으로 확인고는 당시 대만 총독 우에야마(上山)를 처단하고자 하였다.조 의사는 일본인 행세를하면서 타이중시에 있던 일본인 소유의 부귀원(富貴園)이란 찻집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단도를 구입,독극물을 발라 놓고 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1928년 5월에 일본 천황의 장인이며,육군대장이던 구니노미야가대만주둔 일본군의 검열차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처단키로 결심하였다.구니노미야는 일본 육사·육군대학을 졸업한 이후 일본 육군에 투신,육군참사관을 거쳐 1928년 당시 육군대장으로 군(軍) 내의 실력자였다. 사전에 일정을 입수하여 검토하는 한편 거사현장을 직접 답사한 조 의사는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경 수많은 인파를 뚫고 돌진,그를 처단하였다.조 의사의 의거는 당시 조선과 똑같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의 식민지 차별정책에 대해서 울분에 차 있던 대만 군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편 조 의사의 신원이 조선인으로 밝혀지자 조선총독 야마니시 한조(山梨半造)는 대경실색하여 대만총독과 연락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조선총독부에서는 조 의사가 17세에 고향을 떠날 때까지는 요시찰 인물이 아니었으므로조선에는 아무런 연루자나 교사자가 없다고 단정하였다.그러나 대만총독부에서는 범인의 자백과 왕복 서류,기타 정황에 의하면 조 의사에 향리에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5월말경 대만총독부 보안과장과 경부 2명을 파견,조사를벌였으나 공범검거에는 실패했다. 조 의사의 재판은 오랜 시일 예심을 거쳐 1928년 7월 7일 대북고등법원(臺北高等法院)에서 가네코(金子) 판사의 단독심으로 진행되었다.변호인은 대만변호사협회 소속 일본인관선변호사 아보(安保)와 가네코(金子)가 선임되었지만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인 관선변호사가 재판정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뻔한 것이었다.재판부는 일본 형법 제 75조 ‘황족위해죄’,즉 “황족에 대하여 위해(危害)를 가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위해를 가하려 한 자는 무기징역에 처함”을 적용하여 조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그 해 10월 10일 오전 10시 12분 조 의사는 순국하였는데 그 때 의사의 나이 스물 넷이었다. 일본 황족이 대만에서 상해를 입은데 대하여 대만총독은 황송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여 사직하기에 이르렀다.일제는 이 사건을 극히 중요시하여 언론보도를 철저히 통제,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뒤인 6월 15일에야 비로서 신문지상에 공개되었다. 조 의사는 일본 국왕의 장인 구니노미야 한 사람에게 칼을 던졌으나,이는조선민족 전체의 의분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조 의사의 의거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조선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조선민중들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달게 받고 있다”는 일제의 선전이 허구라는점과 조선인들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연구원] - 조명하 의사 후손근황과 기념사업 24세로 순국한 조명하 의사는 슬하에 일점 혈육을 남겼다.조 의사의 외아들 혁래(赫來·73)씨는 태어난지 1개월만에 부친 조 의사가 고향을 떠남으로써 부친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일제하 황해도 은율에서 농업학교를마친 혁래씨는 해방후 평양공과대학 4학년 재학중 6·25를 만나 월남하였다. 취직보다는 개인사업에 손을 대 최근 2∼3년전까지도 사회활동했었다.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은 모두 해외에 나가 있고 세 딸은 모두 한국에살고 있다. 장남 경환(京煥·43)씨는 호주에서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고,2남 정환(正煥·40)과 3남 국환(國煥·39)씨는 같이 미국 LA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다.혁래씨 가족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는 드물게 사는 형편이 괜찮은 편이다. 80년대초에 결성된 조명하의사기념사업회는 전 통일원장관 홍성철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데 홍씨는 황해도 은율출신으로 조 의사와 동향인 셈이다.기념사업회는 지난 88년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앞에 조 의사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순국일인 10월 10일 추모제를 주관해오고 있다. 78년에는 대만 교포들이 한교(韓僑)소학교 내에 동상을 세운 바 있다.혁래씨는 “월남할 때 부친 관련자료를 하나도 챙겨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하루빨리 통일이 돼 이북에 있는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사목연구회 ‘대희년 심포지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가 2000년 대희년(大禧年)을 앞두고 최근 개최한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대희년 심포지엄’에서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참회하고 반성하는 토론회를 가져 주목을 끌었다. 발제자들은 대표적인 잘못으로 ▲18세기 말 서양선박 요청사건 ▲제사금지에 따른 갈등 ▲민족 고유의 정서와 문화 무시 ▲민족운동에 대한 소극적 태도 ▲신사참배 허용 등을 꼽았다. 원주교구 교회사연구소의 여진천 신부는 “1796년과 1801년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서양 선박과 병력을 요청하는 서한을 중국 베이징의 주교에게 보낸것은 서양 배와 군대가 오면 천주교에 대한 금령(禁令)이 풀려 선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신유박해(辛酉迫害)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또 인천가톨릭대의 최기복 교수는 “18세기 교황청의 제사금지 조처는 천주교를 패륜의 사교(邪敎)로 낙인 찍히게 했고 복음의 토착화를 더디게 하는장애로 작용했다”며 교회의 잘못을 인정했다. 가톨릭대 장동하 교수는 “개항기 선교사들이 민족 고유의 문화와 풍습 등을 야만시함에 따라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산 것은물론 지식인들의 반외세감정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남대 윤선자 교수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천주교회가 민족운동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행태를 문제를 삼았고,한신대 강인철 교수도 “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하고 태평양전쟁 참전을 독려한 것은 반민족적·반가톨릭적인 과오였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천주교 전래기에 교회와 사회가 충돌했던 것은 대부분교회가 당시의 민족사적 요구나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한 채 맹목적인 신앙의 논리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성호기자
  • 중랑구 내일 구민 등산대회

    중랑구는 14일 오전 관내 망우동 망우리공원 일원에서 ‘가을맞이 구민한마음 등산대회’를 갖는다. 공원 순환로인 ‘사색의 길’을 따라 용마산 헬기장까지 8㎞ 구간에서 펼쳐지는 이번 등산대회에서는 지역의 역사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해 한용운,소파 방정환 선생의 묘소 참배행사도 함께 갖는다.문의는 구청 문화체육과(490­3410)로 하면 된다. 심재억기자 jeshim@
  • 朴전대통령 20주기 4,000여명 추모행렬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서거 20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김수환(金壽煥)추기경,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을 비롯,일반 참배객 4,000여명이 몰렸다. 특히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제외하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3명이 참석,고인을 추모해 눈길을 모았다.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자민련 박철언(朴哲彦)·박구일(朴九溢)·이건개(李健介)의원,한나라당 양정규(梁正圭)의원 등 여야 의원 4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김총리는 길전식(吉典植) 민족중흥회 부회장이 대신 읽은 인사말을 통해 “어른께서 씨뿌려 가꾸신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열매가 이제 하나둘씩 결실되어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좌표가 세계 속에 우뚝 선 것을 생각하니 어른의높은 경륜과 선견지명에 새삼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대통령의 맏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 동생 서영(書永)·지만(志晩)씨와 함께 참석,“올해는 선친의 기념사업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첫 걸음을 내디딘 뜻깊은 해”라면서 “기념사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 (하) 인물평가의 두 시각

    -유신시절 고초 설훈의원 유신 시절 여러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국민회의 설훈(薛勳)의원은 아무래도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이다.‘박통(朴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의 이미지’라고 말했다.다음은 설 의원과의 일문일답.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민주주의 개념의 부재(不在)를 들 수있다.유신독재는 우리의 민주주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민주주의는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연계되어있다.막대한 악영향이 아닐 수 없다. ?고도 경제성장을 가져온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도 많은데 공은 인정한다.그러나 IMF국난의 뿌리인 재벌경제 성장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으로 성장에만 집중,‘IMF국난’을 잉태시켰다.‘IMF국난’이 재벌경제의 폐해가 극치에 달해 발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 않는가.분배의 원칙에도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의 경제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다.그본질은 과(過)는 작아지고 공(功)은 커진 느낌이 짙다.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70년대 이후 세대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50·60대들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독재를 비판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또 그 뒤를 이은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등의 독재 횡포가 더 극심했다.결국 단점은 약하게 인식되어지고,공로는 돋보이게 됐다.박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착근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부분도 객관적이고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추모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면이 있다면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국민은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쌓여 있었다.‘엽전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신감을불어넣어 주었다.수출 증진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인정할 만하다.주현진기자 jhj@ -맏딸 박근혜의원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맏딸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25일 “아버지는 가난의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공산주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생각하신 분이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10·26 20주기를 맞은 소감은 돌아가신 아버지 시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재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관이 건립되는 시점에 20주기를 맞아 감회가 깊다. ?10·26을 평가해달라 10·26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문턱에서 꿈이 좌절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어떻게 보나 장기 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장기 집권은 생각지도 않았고 물러날 계획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다.독재라는 용어는 부정부패와 연결되고 권력을 개인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위해 썼다는뜻인데 아버지의 경우 개인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계획은 무엇이었나 아담한 산을 마련,나무를 가꾸면서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큰 업적을 든다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킨 것과 가난을물리친 것이다.또 국민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들고 싶다. ?현정권 들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지 과거 정권의 매도가 심했다.정권적인 차원에서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다.국민이 IMF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재평가한 것이다.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여권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을 어찌 보나 정치적 차원에서 총선을 겨냥해서는 안된다.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는 차원이어야 한다.잘하는 일이지만 한편에서 선친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최광숙기자 bori@ -3共 주요인사 현주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3공화국 당시 각료와 집권당의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타계했거나 일선에서 은퇴했다.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丁一權)씨는 94년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다.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朴鐘圭) 당시 청와대경호실장도 85년 고인이 됐다.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자랑했던 이후락(李厚洛)전 중앙정보부장은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서 지내다 최근 서울에 올라와 칩거하고 있다.이씨는 민족중흥회 고문을 맡고 있지만 건강이 나빠져 바깥 나들이는 거의 안하고 있다. 신현확(申鉉碻)전 경제부총리는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다.신씨는 광화문의 한·일협력위원회와 무교동의박정희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일주일에 3∼4차례 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안하고 있다.79년 10월27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눈물을쏟으며 처음 공식 발표했던 김성진(金聖鎭) 당시 문공장관은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김씨는 5년 전 ‘박정희시대’라는 추모집도 발간했다. 69년부터 무려 9년3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했던 김정렴(金正濂) 당시 비서실장도 현재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다. 남덕우(南悳祐) 당시 경제부총리는 산학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거의 매일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한다.공화당 의장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의 백남억(白南檍)씨는 자동차보험 회장을 거쳐 지금은 민족중흥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3공에서 공화당 원내총무·대변인을 지낸 김재순(金在淳)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월간 ‘샘터’ 발행인이다.61년 5·16때 민간인으로 참여,5선 의원을 지낸 김용태(金龍泰)씨는 동서문화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중이다. 대통령공보수석,문공장관을 거친 윤주영(尹胄榮)씨는 20년 넘게 전문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윤씨는 공화당 사무국 출신 모임인 은행나무동우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검찰총장,법무장관,중정부장,대통령 법률담당특보를 지낸신직수(申直秀)씨는 81년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활동을 안한다. 이밖에 김재춘(金在春)전 중정부장은 5·16민족상 이사장,길전식(吉典植)전 공화당 사무총장은 민족중흥회 상임부회장이다.10·26 당시 궁정동 술자리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계원(金桂元)전 비서실장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기념사업과 10·26행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것처럼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난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비민주적인 권력자의 일방적인 업적 위주 홍보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념관 건립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에서 추진하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에 기념사업비 지원을 위한 100억원을 책정,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후보지로는 서울 근교와 구미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건립 기본계획이 결정되지 않았다.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뒤 내년 초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기념관 건립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기념회측은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있는 그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줘 후손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20주년을 맞아 각종 추모행사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2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을 담은서적 ‘우리도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총재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과 구여권 인사,그리고 일반시민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26일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리는박정희 전 대통령 20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수기자 sskim@ - 재조사 전망@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 및 유신체제하에서 수많은 의혹사건들이 발생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건들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 75년 발생한 장준하씨 의문사는 유신체제에서 일어난 대표적 의혹사건이다.그후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당시유신독재 반대투쟁에 앞장선 재야 지도자였던 장씨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약사봉 등산길에서 하산도중 사망했다.그러나 검찰은 사건발생 3일 만에 단순변사로 처리,사건을 조기 매듭지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최종길 서울법대교수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인혁당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념조작사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지난 74년 ‘유신독재’가 절정으로치닫던 때 공산혁명을 꾀했다는 이유로 관련자 8명을 사형시킨 사건으로 사법관행상 이례적으로 판결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지난 98년 ‘인민혁명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가 구성됐지만 진상규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60년대 말 고(故) 이응로 화백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연루된 것으로 발표된 동백림사건도 재조명이 요구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도 대표적 미제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지금까지 이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역대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그러나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혹사건에 대한진상규명 활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특히 여당은 지난 8월 대통령 소속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이번 정기국회에서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여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열리게 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3공과 유신 시절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박준석기자 pjs@
  • 韓·日 장수 후손들 역사적 만남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한·일 양국 장수의 후손들이 전란 종전 400주년을 즈음해 21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경남 마산의 재야 사학자 조중화(趙重華·78·약사)씨의 주선으로 성사된이날 행사 참가자들은 권율장군의 사당을 참배한 뒤 행주대첩의 현장을 둘러보고 사죄와 용서를 통해 화해를 다짐했다. 한국에서는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權慄)장군의 12대손 영철(寧哲·71)씨를비롯해 이순신(李舜臣)장군의 15대손 재엽(載燁·29)씨,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의 14대손 영하(寧夏·71)씨 등 50여명이 참석했다.일본에서는 임진왜란에서 일본군 총지휘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14대손 우키다히데오미(宇喜多秀臣·59)씨, 벽제관 전투의 왜장 다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의 18대손 다치바나 무네야키(立花宗鑑)씨 등 16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학자 조중화씨는 “16년간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면서 양국의 기록 왜곡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돼 이번 만남을 주선하게 됐다”며“행사가 정례화되어 21세기를 맞는 양국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됐으면좋겠다”고 말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대한시론] 수난받는 檀君

    올해 들어 다시 ‘단군문제’가 대두되고 있다.사건은 ‘한문화운동연합’이라는 단체가 전국의 360여 초·중등학교 교정에 ‘통일기원 국조 단군상’을 설립한 데서 시작됐다.우상숭배와 신사참배 문제로 종교상징물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여온 기독교계가 이를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급기야 경기도 여주에서는 ‘단군 동상 훼손사건’까지 일어나,한문화운동연합이 신문에 “단군의 목을 자르는 테러집단에 박수칠 국민은 한 사람도없습니다”라고 광고성명을 냈고,기독교계에서는 “단군동상은 마땅히 철거돼야 했지만,불법적 손궤행위는 법에 의해 처벌돼야 한다”면서 그 손궤행위자를 색출,엄벌하라고 요구했다. 가히 단군이 수난을 받는 시대를 맞았다고 할 것이다.일제강점기에는 단군이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역사성 때문에 수난을 받았다.그들은 일본의 건국보다 수천년 앞선 ‘단군조선’을 제거함으로써 한국사의 유구성을 부정하는 한편 한국이 중국의 식민정권으로 시작됐다는 식민주의사관을 강변하기위해 안출한 논리였다.그런데도 독립한 나라에서 단군은 또다른 이유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기독교계가 ‘단군상’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삼국유사’에 나타난 단군을 역사적 존재로 볼 수 없는데도 민족의 시조라 하여 동상까지 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단군의 역사적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을 답습한다고 비판해도 마땅한 답변이 있을 수 없다.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을 하고 있지만,핵심은 단군의 신격화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단군의 역사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단군이 수난을 당한다는 것은 기독교도들의 단군상 철폐 요구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한민족운동연합도 사실은 단군을 욕보이고 있다. 그들은 단군상 조성기에서 BC 7197년에 환국이 세워지고 BC 3898년에 천부삼인과 천부경을 하사했다고 강조했다.이는 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환단고기류의,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은 역사인식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하겠다는 의도로 민족사를 오히려 혼미하게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단군상 조성을 특정종교와 무관하다고 강조하지만 천부경을 들먹임으로써 자신들의 거짓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검증되지 않은 역사인식과 특정종교의 신앙적 열정이 어우러져 조성되는 단군상은 단군의 역사적 실체 가능성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단군을 욕보이는 것이다.기독교인이 단군의 역사화를 거부하고 신격화를 막으려고 한다면,한문화운동연합은 단군의 신격화를 기도함으로써 역사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뿐인가.북에서는 단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그들의 유물사관 인식으로서는 단군은 신화에 불과했다.남북대결의 상황과주체사관이 고양되면서 단군을 끄집어내고 ‘단군릉’을 거대하게 장식했다.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정치적인 의도가 앞선다면,단군을 치켜올리는 것이 오히려 단군을 욕보이는 것이다. 단군은 대종교든 기독교든 신앙적 이해관계의 눈으로 접근하면 그 실체는보이지 않는다.학문적 접근을 통해야만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단군을 신격화하려는 대종교적 관점이나 역사화를 거부하는 기독교적 관점,정통성 문제에서 후광을 입으려 드는 정치적 자세로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다.이 때문에 ‘단군학회’를 비롯한 학계의 노력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단군의 역사적 실재여부에 접근하기를 원한다면,단군을 연구하는 학문적 노력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세계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우리 건국신화와 그 전승을 통해서도,많은 역사적 진실이 발굴될 수 있다.중요한 점은 학문연구의 결과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 입증된다고 해도,민족전체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신격화나 성역화할 대상은 될 수 없다.특정종교와 관련돼 조성된 단군상이 민족사를 흐리게하고 종교적 갈등요인이 된다면,스스로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
  • [외언내언] 개신교의 참회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톨릭의 부패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됐다.우리나라에서는 면죄부로잘못 번역된 대사(大赦·indulgentia)의 남용에 항의해 발표한 95개 조항의성명서가 그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대사란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는 행위인보속(補贖)의 방법과 기간이 너무 엄격해서 신자들이 보속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아지자 10세기부터 교황이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면서 죄를 사면해준 제도였다.그 조건들은 교회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이나 자선의 실천이었는데 교회가 부패하고 세속화하면서 대사가 남발되고 전제조건도 대성당 등을 짓기 위한 헌금으로 대체되면서 상품화되고 말았다.루터는돈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당시 교회의 악습에 반기를 들고 ‘오직 성서와믿음과 은총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은 뼈를 깎는 자기쇄신으로 거듭났다.지금도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해 파문(破門)했던갈릴레오 갈릴레이를 1992년 복권시켰다.지난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에 대한 교회의 침묵을 반성하는 문헌 ‘우리는 기억한다:쇼아(Shoah·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을 발표했고 중세의 종교재판과 같은 교회사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회개도 이루어졌다. 한국 개신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개신교 교단에 구성된 15개 목회자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9일 일간신문에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5단 크기 광고를냈다.같은날 10개 기독교 시민단체들도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실천연대’를 결성했다.이들은 최근 교회와 신자들이 연루된 일련의 사건들-고급옷 로비 사건,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방송사 난입,종말론 추종자들의 집단가출,신애양 사건,모 교단의 선거부정 및 비리 시비 등-이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대해 참회하며 교회 쇄신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자기고발 광고는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왜곡된 기복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철저하게 가르치지 못한 죄 ▲돈과 권력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하고 교회의 자원을 사회정의 실현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바로 사용하지 못한 죄 ▲IMF 고통과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세계 8억 인구가 기아상태에 있는 현실에서 나눔과 섬김의 원리로 청빈의 삶을 살지 못한 죄 ▲신사참배 등 역사적으로 교회가 권력과 맘몬(物神)의 우상 앞에 무릎 꿇었던 죄 등 7개항의 죄를 고백하고 있다.“주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로 끝나는 이 고백과 교회갱신운동이 루터의 성명서가 그랬듯 한국개신교를 거듭나게 하는 제2의 종교개혁바람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임영숙 논설위원
  • 金총리 日서 귀국 “내년초 자민련 복귀”

    오사카 이도운특파원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5일 “올 정기국회를 마친 뒤 내년 일찍 자민련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일본 공식방문을 마치고 이날 오후 귀국하기에 앞서 오전 오사카 뉴오타니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공동정권의 뒷사람(후임 총리)이 누구인가는 여기서 얘기할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 총리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과 관련,“그런 희망이 여기저기에 있을 수 있지만 자민련은 갈 길을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간담회 뒤 백제인으로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王仁)박사의묘를 참배한 뒤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dawn@
  • 日각료, 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

    [도쿄 연합] 일본의 종전 기념일인 오는 15일 마나베 겐지(眞鍋賢二) 환경청 장관과 가와사키 지로(川崎二郞) 운수상 등 각료 8명이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할 계획이라고 교도(共同)통신이 5일 보도했다. 그러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이날 “제반 사정을 감안,참배하지 않기로 했다”며 지난해에 이어 참배를 보류할 것임을 표명했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관방장관도 “주변제국의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이해가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일원으로 오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참배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참배 의사를 밝힌 각료에는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노동상,오타 세이치(太田誠一) 총무청 장관,세키야 가쓰쓰구(關谷勝嗣) 건설상,미야시타 소헤이(宮下創平) 후생상,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금융담당상,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농수산상등이 포함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들에게 피해를 입힌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곳으로 해마다 일본 현직 각료들의 참배문제가 주변국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켜왔다.
  • 영·호남 주민 새달부터 문중간 교류 추진

    영·호남지역 주민들이 조상의 뿌리를 찾는 ‘뿌리를 찾아서’ 교류사업이오는 9월부터 추진된다. 전북도는 5일 동서화합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영·호남지역 주민들이 문중간 교류를 하는 뿌리찾기 교류를 오는 9월부터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가 최근 시·군별로 마을 전체 가구수의 집성비율이 40% 이상인 마을을대상으로 교류 희망조사를 한 결과 57개 마을 40개 성씨가 영남지역과 교류를 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는 이에 따라 오는 9월 1차로 경남지역에 본관을 둔 창원 황씨,진주 강씨,김해 김씨,밀양 박씨,의령 남씨,함안 조씨,창녕 성씨,합천 이씨 등 8개 성씨를 문중당 40명씩 선정해 시범교류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들은 양도 문중교류 전체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상견례를 겸한 리셉션 등을 갖고 성씨별로 해당 시·군청에서 시·군정 현황 청취,방문기념 선물교환행사를 하며 우의를 다지게 된다. 특히 문중의 밤 행사,문중 알리기,가계도 설명,문중간 얼굴익히기 등 각종이벤트를 개최해 동서화합을 다지고 시조묘와 사당 참배,관광지 합동 관광등으로 한뿌리임을 인식시킬 예정이다. 숙식은 개인별 숙식세대를 지정해 1인 1가구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문중간 교류의 내실을 다지기로 했다. 내년에는 경북지역과 교류를 희망하는 28개 마을 22개 성씨별로 자율적인교류를 추진하도록 할 계획이어서 참여 문중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지역 교류 성씨는 경주 이씨,경주 김씨,고령 신씨,의성 김씨,안동 권씨,안동 김씨,성주 이씨,달성 서씨 등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베트남, 對北포용정책 지지…양국 外務장관 회담

    하노이 오일만특파원 베트남을 공식방문중인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장관은 30일 하노이에서 웬 만 컴 부총리겸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한반도 정세및 양국간 교역,투자,인프라 구축협력 방안 등을 협의했다. 홍장관은 회담에서 한국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베트남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하고,베트남 정부의 각종 외자유치사업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컴장관은 이에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며 포용정책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의 대 베트남 투자 및 농수산물 수입확대,무역불균형 해소 등을 요청했다. 홍장관은 또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대우그룹이 최근 경영난을겪고 있는데 대해 “베트남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홍장관은 31일 베트남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湖志明)묘소를 참배한 뒤 홍콩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다. oilman@
  • 金대통령“8·15때 중산층육성책 발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3일 “광주 5·18정신은 반드시 높이 선양돼야 한다”고 지적한 뒤 “희생자의 국가유공자 지정과 5·18묘역의국립묘지 승격 등을 위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내년 5·18 희생자20주기 전에 조속히 매듭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주시 행정개혁보고회의 및 지역 언론사들과 가진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삼성 백색가전공장 광주 이전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나 삼성이 광주시민과 약속한 것을 취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뒤 “삼성전자 공장문제는 삼성에서 책임을지고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중소벤처기업과 자영업자,중산층,서민을 국가의 기본구조로생각,전력을 다해 지원·육성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8·15광복절때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지역 인사와의 오찬이 끝난 뒤 망월동 5·18묘역을 참배하고오후 귀경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행사를 마지막으로 전국 16개 시·도 행정개혁보고회의일정을 모두 마쳤다. 광주 양승현기자 yangbak@
  • “순수한 티베트정신 현대문명의 돌파구”

    ‘티베트의 수도 라싸가 마음이 가난한 한 이방인에게 티베트 문명의 뿌리라며 준 선물은 근대 이성을 버리고 고대의 지혜로 돌아오라는 가르침이었다.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21세기 지구 가족이 공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였다.’ 작가 김영종은 그의 저서 ‘티벳에서 온 편지’에서 ‘악마적’ 현대 문명으로부터의 탈출구를 가장 원초적 세계인 티베트에서 찾고 있다.다년간 아시아 내륙을 답사하며 우리나라 정신문화유산의 뿌리와 문명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는 지은이는 그동안의 탐구와 지난해 황하를 따라 중국에서 티베트까지답사한 역사기행을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기행이 아니라 문명비평서라 할 수 있다. 티베트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는 참배객에서 느끼는 영혼의 고귀함과 물건을 사라고 쫓아다니거나 구걸하는 사람들이보여주는 식민지의 비참함이 고통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박완서는 티베트의 고통을 이렇게 적고 있다.‘이 거친 산야를 바람처럼 스쳐가는 이방인이 티베트에서 장려한 사원과 수많은 불상을 보는 일은 눈에는최고의 사치요 충격이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마음의 평화나 기쁨은못느꼈다.호화와 사치를 극한 불상과 이 땅의 극빈층하고 저절로 대조가 되니까 불상에서 느끼고 싶은 자비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티베트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티베트에는 서구의 근대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신비와 수수께끼의 나라라고 하는 티베트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느꼈다면,그것은 신비도 수수께끼도 아닌 순수와 자비의 정신이었다.’ 이 책은 티베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티베트 이야기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쌀의 전파 경로,고구려 벽화,황하와 중국의 정신,중화주의,자연,성,문명 등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그러면서도 티베트를 키워드로 삼은 것은 현대문명의 돌파구를 그곳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서구 중심의 현대문명을 자연과 지구 생명을 살육하는 ‘악마’라고 비판한다.‘환경파괴,핵무기 경쟁,대량학살,대규모 실업따위는 현대문명의 거대한 그늘이다.클린턴이 이라크나 유고에 평화의 이름으로 감행한 공습의 그늘에 패권주의라는 미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듯이 현대 문명은 파시즘만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야만을 자체내에 배양하고있다.현대의 서구 문명은 야만이란 거대한 빙산이 해수면 위로 떠오른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는 서구의 현대 문명을 야만이라고 보는 관점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융화하는 동양문명이 대안일지 모른다.그는 자연을잃으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는다고 강조하며 원초적 세계인 티베트에서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찾는다.‘이 불임의 시대에 유일한 생명을 잉태시키는티베트의 정신은 현대문명의 돌파구일 수 있었다.’그러나 그의 생각은 너무편협하고 스스로 고백했듯이 지나치게 감상적일지 모른다.(사계절 9,000원)이창순기자 cslee@
  • 金日成사망 5주기 추모대회

    8일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5주기를 맞은 북한은 온통 그의 짙은 그림자로 뒤덮여 있는 형국이었다.북한체제가 여전히 그의 ‘유훈통치’로 지탱되는 인상이었다는 얘기다.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金正日)당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5주기 중앙추모대회는 8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열렸다.김정일 당총비서도 참석한 가운데 이른 아침인 6시 50분부터 약 45분간 진행됐다. 북한 중앙방송 보도에 따르면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홍성남(洪成南) 내각총리 등도 참석했다.전병호·최태복(崔泰福)·김용순(金容淳) 당중앙위 비서,이을설(李乙雪) 원수,백학림사회안전상,김일철(金鎰喆)인민무력상 등 당정군 고위인사들도 수행했다.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군부 고위인사가 처음으로 추모사를 낭독했다는 사실이다.추모사 내용에서도 “적들이 도발하면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하겠다”는 등 ‘화약내음’이 물씬 풍겼다. 군복차림의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은 김주석 사망 후 5년간은 “전례없이 간고하고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이어 이를 김정일 총비서의 ‘선군(先軍)정치’로 헤쳐나갈 수 있었고,나아가 “강성대국 건설의 지름길을 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북한의병영국가 색채가 짙어지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이는 김정일의 부족한 카리스마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배급경제의 붕괴와 식량난 등 최악의 경제난으로 말미암은 체제불안을 군부의존형 통치로 버텨나가고 있다는점에서다. 이날 노동신문 사설은 김 당총비서의 모든 통치활동이 김주석의 유훈에서비롯됐음을 곳곳에서 강조했다. 사설은 “김일성 동지의 유훈은 우리 혁명의 고귀한 지침”이라고 전제,“모든 부문에서 수령의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할 것”이라고 독려했다.특히 “강성대국을 건설하려는 것은 수령님의 생전의 뜻”이라고말해 김총비서의 구상으로 알려진 ‘강성대국’이 실은 김주석에 의해 설계된 구호임을 시사. 구본영기자 kby7@
  • [외언내언] 金日成 사후5년

    북한은 7월8일 김일성(金日成)사망 5주기를 맞아 그의 생전 업적을 찬양하는 각종 모임과 행사를 다채롭게 펼치며 추모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특히 올해 5주기는 김일성의 정치적 업적을 제고하는 행사로 일관된 것이 특징이다.올해 최초로 남한의‘열린음악회’ 같은 대규모 TV공개 쇼 프로그램을 개최해 북한 주민들의 추모 분위기를 더욱 돋우었다.해외에서도 태국(泰國)신문에 전면 추모광고를 게재한 것을 비롯해 지난 5월부터 20개 친북국가들에서 각종 추모행사를 벌였다. 또 김일성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궁전 참배객이 500여만명에 이른다고북한 언론매체들이 선전하고 있다.북한은 김일성 사후 그의 카리스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출생연도를 주체연호로 사용하고 생일을 태양절로 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생불멸의 신적 존재로 부각시켰다.또 그의 유훈통치를 통해 김정일(金正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그러나김일성이 없는 북한의 현실은 그가 남긴 평등의 빈곤 속에서 총체적 위기를맞고 있다.회생불능 상태의 경제파탄과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전반적인사상동요,그리고 일련의 탈북현상 등 심각한 내부 위기상황은 체제존립에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김정일에게 상속시킨 북한판 사회주의는 정치적 누수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깊은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체제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따라서 김일성 5주기를 기해 북한이 해결해야 할 정책과제는 북한이 현재 안고 있는 위기요인을 해소하는 일이다.심각한 식량난과만성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과 개방을 선택해야 한다.‘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인민의 지상낙원’을 약속했던 김일성의 원대한 포부는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며 그가 죽은 이후 남긴 유산은 처참한 빈곤과경제적 파탄뿐이었다. 북한의 이같은 절망적 상황은 철옹성 같은 북한체제의 말기적 위기를 초래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시급한 정책과제는 진정한 남북화해와 협력시대를 여는 일이다.김일성은 사망 7개월전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북한도 변해야 산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했다.“북한의 변화는 생존의 선택”이라고 한 김일성의 사실상 유언의 의미를 북한 당국은 교훈으로 실천해야 한다.북한의 그같은변화가 빨리와야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며,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있기를 기대한다. [장청수 논설위원 csj@]
  • 모범용사 60명 서울나들이

    “한평생 군인의 길을 걸어온 게 자랑스럽습니다” 21일 오전 8시30분 서울 용산구 ‘용사의 집’.전국에서 모인 60명의 육·해·공군 용사들은 모처럼 밝은 표정이었다.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59명의 배우자들도 오랜만의 ‘서울나들이’에 들뜬 분위기였다. 1박2일의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이들은 전후방에서 국토방위의 임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해온 ‘모범 국군용사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대한매일·스포츠서울에서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 모범용사를 선정,초청행사를 가진 지 올해로 36년째다.올 행사는 삼성화재에서 협찬했다. 3대의 버스를 나눠타고 국방부에 도착한 이들은 조성태(趙成台)국방부장관으로부터 ‘모범용사패’를 받자 힘들었던 군생활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모습이었다.육군 제6군단 김갑룡(金甲龍·55)원사는 “37년째 충실하게 해온 군생활을 인정받는 것 같아 너무도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국가방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동작동 국립묘지에 들러 참배한 뒤 국가정보원을 방문,천용택(千容宅)국가정보원장과 오찬을 함께 했다.또 고건(高建)서울시장의 환대를받으며 시청을 둘러본 뒤 국회로 가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을 만났으며 1시간 동안 국회를 견학했다.제1해병사단 이상원(李尙垣·56)원사와 부인 박길순(朴吉順·50)씨는 “군생활 35년 만에 함께 외출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며 기뻐했다. 최규학(崔圭鶴)국가보훈처장 초청 만찬을 끝으로 첫날 일정을 마감한 이들은 22일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난다.이어 차일석(車一錫)대한매일신보사 사장과 오찬을 한 뒤 신문제작 현황을 견학하는 것으로 이틀간의 일정을 마친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발언대] 꽃한송이 들고 국립묘지 참배 여유를

    해마다 현충일이면 어김없이 안내업무를 맡아 새벽부터 동작동 국립묘지에가곤 한다.며칠 전 현충일 당일에도 여전히 일찍부터 하얀 소복과 검은 양장을 한 유족들이 국립묘지를 찾아 그리움과 서러움을 달래고 있었다. 국립묘지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시는 곳이다.수많은 묘비와위패들이 당시의 참상과 고통을 새삼 느끼게 한다.가슴이 뭉클해져 마음을진정하기 위해 묘지를 돌다보니 그 많은 묘비 앞에 언제 갖다놓았는지 꽃들이 놓여 있었다. 한 묘비 앞에는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그렸음직한 태극기가 꽂혀 있었다. 서투른 솜씨지만 정성스런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바람에 넘어진 태극기를 바로세우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흐뭇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추모와 감사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지내자고 정한기간이다.오늘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국난의 위기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덕택이다.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풍습과 마찬가지로 6월 중 한번만이라도 하루를 정해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가벼운 간식이나 도시락을 준비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 찾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국립묘지를 찾아 묘비에 꽃한송이와 술한잔을올려놓고 참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지게 꾸며놓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국립묘지는 그저 다른 묘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지금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상황에서민족과 조국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하신 그 분들의 넋이 외롭지 않고 서글프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진정한 호국보훈의 의미도 되새기고 애국심도 키워줄 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도 깊어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더욱이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산 교육이 아닐까. 정란미[서울 남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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