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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자와 권력/올라프 라더 지음

    사자와 권력/올라프 라더 지음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는 친구인 카이사르의 시신을 차지한 뒤,비참하게 난도질당한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슬퍼하면서 카이사르의 후계자가 자신임을 공식화했다.또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하자 시체를 영원히 썩지 않도록 방부 처리함으로써 ‘레닌숭배’의 초석을 세우고 자신은 그 후광을 물려받았다.그런가 하면 볼리비아 군대는 체 게바라를 총살한 뒤 손을 절단하고 공항 활주로 밑에 묻음으로써 혁명의 싹을 잘라버렸다.권력은 죽은 자로부터 나오는 것인가.사자(死者) 숭배는 권력의 영원한 유혹인가.한 시대를 주름잡은 영웅이 죽은 뒤,그 시신과 무덤을 둘러싸고 산 자들이 벌인 치열한 투쟁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안토니우스, 카이사르 시신 차지후 후계자 선언 ‘사자와 권력’(올라프 라더 지음, 김희상 옮김, 작가정신 펴냄)은 이러한 사자 숭배가 권력의 정통성 확보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추적한다.저자는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서 문화사를 가르치고 있는 중세사의 권위자.책은 친구를 죽인 헥토르의 시체를 마차에 묶어 끌고 다니며 모욕했던 아킬레우스에서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되기를 꿈꾼 무솔리니,600년 전에 묻힌 세르비아 왕의 시신을 다시 찾아온 밀로셰비치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와 권력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세기 전반 로마의 황제들은 시신을 무덤에서 빼내거나 돌덮개를 옮긴 범법자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명했다.이른바 ‘황제의 칙령’이다.저자는 이 칙령은 예수부활의 역사와 결코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마태복음’에 따르면 유대 대제사장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의 무덤에 보초를 세워줄 것을 요청한다.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내 부활을 꾸며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서다.저자는 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냈다고 대제사장들이 소문을 퍼뜨리고 총독이 로마에 진상보고서까지 써 보냈던 것을 보면 황제의 칙령은 부활의 역사와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日 정치인 야스쿠니 참배… 우리 ‘과거사’ 논쟁 정적인 아우구스투스를 제치고 후계 자리를 차지한 안토니우스,레닌이 죽기 전 정치적 유서라 할 비밀편지에서 스탈린에 대한 불신을 밝혔음에도 결국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2000년 전의 위대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무덤을 재건하며 옛 영광이 다시 찾아올 것을 열렬히 희망한 무솔리니.이들에게 사자 숭배는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부여받고 사회의 질서를 기져다준 상징적 지주였다.이들은 사자를 숭배하고 무덤에 참배하는 것이야말로 과거를 연출해 보임으로써 미래를 장악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덤은 저절로 기억을 한데 묶어주는 추모의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다.무덤은 어쩌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 창조해내는 산물인지 모른다.결속을 다질 공동의 기억이 필요할 때 사회는 무덤을 찾는다.거룩한 무덤과 성스러운 유골은 결국 만들어지는 셈이다. ●死者숭배는 정치권력 정통성의 상징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떠올리면 그런 정황은 어렵잖게 이해된다.일본의 많은 지도자들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한다.권력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벌거벗은 욕망이 그들을 ‘또 다른 범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과거를 담보로 미래의 권력을 장악하려 했던 ‘추악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 책은 과거사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2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힐 美대사 5·18묘지 참배 “용감한 희생자들”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가 16일 미국 관리로서는 처음으로 광주 5·18국립묘지를 방문,참배했다.‘비공식’ 방문이긴 했으나 5·18에 대한 미국정부의 사과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 정부 고위관리가 5·18묘지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힐 대사는 이날 오후 6시10분쯤 부인 패티 힐 여사와 함께 묘지를 찾아,헌화·분향했다. 힐 대사는 방명록에 ‘용감한 희생자들을 추도하기 위해 깊은 존경심과 슬픔을 안고 이곳에 왔다.그들은 항상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고 그들의 기억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킬 것이다.’라고 적은 뒤 기념탑 앞에서 헌화·분향했다.힐 대사 부부는 묘지 관계자의 안내로 최초의 5·18희생자로 알려진 고(故)김경철씨와 윤상원씨 묘소 등을 둘러봤다.힐 대사 부부는 이어 유영봉안소,사진전시실 등을 둘러보며 묘지 관계자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듣고 30여분 만에 방문을 마쳤다. 이에 대해 5월단체 관계자는 “미국이 5·18과 관련해 사과나 반성이 없어 아직도 미완의 문제로 남아 있다.”면서도 “힐 대사가 방명록에 쓴 것처럼 솔직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광주비엔날레 행사장을 찾은 힐 대사는 광주비엔날레 김포천 이사장과 만나 환담한 뒤 행사장에 들러 작품을 관람했다.또 지역 언론사 관계자를 만나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패트리엇 미사일 광주 배치’문제 등에 대해 여론을 들었다. 힐 대사는 17일 북구 우산동 시립무등도서관 2층에 문을 여는 ‘아메리칸 코너’ 개소식에 참석한 뒤 상경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귀신 ‘짱’ 장서희가 나타났다

    귀신 ‘짱’ 장서희가 나타났다

    “어쭙잖은 변신은 멀쩡한 사람을 망가지게 만들어요.영화출연은 또다른 장서희를 보여주는 작업이라 해두죠.” “깍쟁이일 거라는 편견은 억울하네요.편한 사람과 만나면 얼마나 장난도 잘 치는데…”“아역 탤런트 출신이어서 사회성은 좀 부족한 것도 같아요.그 대신 일찍부터 ‘애 늙은이’소릴 들었을 정도로 선배들,어른들 섬길 줄은 알았거든요.” 영화 ‘귀신이 산다’의 개봉을 앞둔 ‘인어아가씨’ 장서희(32)는 대단히 적극적으로 자기발언을 하는 배우다.상상 이상이다.인터뷰의 분위기가 채 무르익기도 전인데 예상질문들을 넘겨짚어 착착 대답을 내놓을 정도다.똑 소리나는 노련함이다.그러나 ‘넘치지’ 않는다.노련하되 노회하지 않은 반듯함.스무살 고개를 갓 넘긴 어린 친구들이 장악해버린 연예계에서 꾸준히 그녀만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비결같다. 17일 개봉하는 코미디 ‘귀신이 산다’는 그녀가 철이 들고 주연한 첫 영화,그러니까 엄격한 의미의 스크린 데뷔작이다.그런데 역할이 보통 요상한(?) 게 아니다.처녀귀신.새로 이사온 젊은 주인남자(차승원)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자리다툼을 벌이는 별난 캐릭터다. “어떻게 귀신을 맡게 됐냐고 많이들 궁금해 해요.사연이 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건 TV 주말연속극 ‘회전목마’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녹화일정이 워낙 빠듯해 시나리오를 들춰보지도 못하고 있었는데,그 즈음 교통사고를 당했다.꼼짝없이 병원신세를 지면서 시간죽이기 삼아 읽은 시나리오에 번개처럼 ‘필’이 팍 꽂혔던 거다. 뒤늦은 스크린 나들이에 대한 부담이 왜 없었을까.‘인어아가씨’의 성공으로 연기생활 20여년 만에 정상에 올라선 그로서는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열심히 주판알도 튕겨봤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조건이 아주 좋았다.”며 조목조목 ‘행운의 조건’들을 꼽아보인다.“상대배우가 코믹영화판을 주름잡는 차승원,감독이 흥행제조기 김상진,제작사가 시네마서비스…” “‘작품성만 좋으면‘이라고 여유부릴 자신은 없었다.”고 야무지게 말한다. 3개월여 동안의 영화촬영은 낯설어서 더 즐거운 경험이었다.와이어에 거꾸로 매달려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몇시간을 버티기도 했다.시간시간 쪽대본을 받아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찍어야 하는 TV와 달리 영화현장은 모든 게 지루할 만큼 느렸다.코미디에 자신의 이미지가 겉돌까봐 걱정도 많이 했었다.결국 감독에게서 ‘최상의 캐스팅’이라는 칭찬을 이끌어낸 것도 기분좋은 수확이었다. 힘겹게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제 “연기도 인생이랑 닮은꼴”이라고 자신감을 실어 말할 줄 안다.“노력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라고 말할 때도,“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귀인을 만나게 되는 게 생의 이치인 것 같다.”고 말할 때도 자기확신이 예사롭지 않아 뵌다.“만약 스무살 때 ‘인어아가씨’로 떴다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살아왔을 것”이라며 웃는다. 늦게 터진 인기복을 원없이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도 누구보다 잘 안다.“배우,특히 여배우는 시간 앞에서 말할 수 없이 무기력한 존재”라는 말끝에는 결연함마저 읽힌다. TV든 영화든 장르 따지지 않고 부지런히 쫓아다닐 각오다.‘귀신이 산다’가 개봉되고 나면 조만간 안방극장 미니시리즈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서희의 셀프카메라 #“참 인덕이 많은 배우다.”-함께 일해본 감독들은 꼭 다시 일하자고 제의해온다.촬영장에 거의 늦어본 적이 없는 성실한 태도가 큰 장점인 것같다.‘미안합니다’‘고맙습니다’ 소리를 잘하는,예의바른 연기자라고 감히 자평할 수 있다.(웃음) 방송가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한혜숙 선배님이 ‘인어아가씨’에 함께 출연할 때 손수 보약을 지어주셨을 정도니까.선배 무서운 줄 모르는 신참배우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도덕시간에 배운대로 살자고! #“현실감각은 좀 떨어지는 것같기도…”-연기생활에서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해 힘들었던 것말고는 그늘이 없었다.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막내로 부모님 사랑 듬뿍받고 자란,온실 속의 화초였다고나 할까.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일일이 쫓아다니며 금전관리를 해주신 탓에 지금도 돈관리는 젬병이다.결혼하면 그게 제일 걱정이다. #“말랐다는 소리,정말 괴롭다.”-말랐다는 소릴 듣는 건 스트레스다.아무리 찌우려고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된다.힘없어 보이는 이미지가 싫다. #“오래 들으면 피곤한 내 목소리”-사실은 목소리 고민이 제일 크다.하이톤이어서 소리지르는 연기를 할 때면 이만저만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소형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녹화전에 미리 목소리 톤을 점검하는 습관이 있다.
  • [임영숙 칼럼] 광주에 가는 힐 대사에게

    [임영숙 칼럼] 광주에 가는 힐 대사에게

    크리스토퍼 힐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지난달 12일 부임한 힐 대사는 정·관계는 물론 경제계 언론계 등 각계 각층 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벌이고 있다.만나는 사람들에게 그가 공통적을 강조하는 것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이다.또 다음주 중 광주를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같은 활동이 현지 상황 파악을 위한 관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전임 미국 대사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우선 주한미국대사 내정자로서 워싱턴에서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발언부터 눈길을 끌었다.한·미간의 민감한 외교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하며 “앞으로 한국에서 대국민 외교를 강화해 나가겠다.한국 각지를 방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다.4년전 토머스 허버드 대사가 같은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하이닉스 지원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등 한·미 통상 외교현안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피력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힐 대사의 의욕적인 행보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부시 대통령은 지난 3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도운 동맹국들과 동맹국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한국과 노무현 대통령을 거명하지 않았다.거센 파병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미국·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을,한국의 10분의1정도 병력을 파병한 나라까지 거명하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더욱이 한국정부는 오는 11월 이라크 파병 연장안을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입장에 있다. 물론 미국 측은 이번 연설문이 행정부가 아닌 공화당 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단순한 실수이며 한국을 중시하는 미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연설은 실수이든 고의이든 간에 한·미동맹의 안정성을 해치고 한국에서 반미감정을 심화시킬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그런 점에서 힐 대사는 부시 대통령의 이번 연설에 대해 더욱 공식적이고 분명한 해명이 한국에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다음주 광주를 방문할 때 망월동 5·18국립묘지를 참배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효순·미선양의 참사에 앞서 한국에서 반미감정을 촉발시킨 사건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당시 광주 무력진압이 미국의 묵인아래 이루어졌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한국의 반미정서가 시작된 셈이다.미국이 광주민중항쟁 진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만 하기보다는 미국대사가 그 희생자들이 잠든 5·18국립묘지를 하루빨리 참배하는 것이 반미정서를 가라앉히는 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또 지난 80년대 중반 한국에 근무할 때와 달리 이제는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큰딸이 이화여대 국제교육원에 등록해 한국어 등을 배우도록 했고 그 자신 이미 5개국어를 구사하는 만큼 한국어를 익히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방한한 미국 헤리티지 재단 에드윈 풀러 이사장은 힐 대사가 “미국 국무부의 슈퍼스타로 향후 한·미관계를 회복시키는 비밀병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클린턴의 민주당 행정부에서 발탁된 힐 대사는 국무부의 ‘우수외교관상’을 받은 바 있고 전임지인 폴란드의 이라크 파병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부시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미 동맹 50년 관계가 변화하는 민감한 시기에 부임한 50세의 힐 대사가 한·미 관계의 재정립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주필 ysi@seoul.co.kr
  • 서울시, 운치만점 정자 선정

    서울시, 운치만점 정자 선정

    서울시내 언덕이나 산자락 명당자리에 터잡은 정자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것도 괜찮은 계절,가을이다. 5일 서울시에 따르면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운치만점’의 정자는 모두 11개(지도). 강 북쪽인 마포구 상암동 일대와 난지도,강서구 가양동 궁산의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소와(笑窩) 이유 선생이 지은 누각이다.정자에 오르면 인왕산과 남산,관악산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남긴 산수화를 통해 당시 풍류와 멋이 전해오는 이곳에 가려면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가양사거리에서 내리면 된다..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 있는 ‘망원정’은 세종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이 지었는데 ‘희우정’으로 불리며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이후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이 정자를 크게 고쳐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원정으로 바꿨다.성산대교와 양화대교 일대 선유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며 야경이 일품이다.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다닐 때 잠시 쉬어가던 행궁인 ‘용양봉저정’은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서 버스를 타 가칠목에서 내리면 구경할 수 있다. 이밖에 동작구 흑석동 효사정,광진구 자양동 낙천정·화양동 화양정터,용산구 원효로 심원정터·한남동 제천정터와 천일정터,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터,성동구 응봉동 응봉정에서도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한나라 5·18묘역 참배 “호남 언 손 이제야”

    한나라 5·18묘역 참배 “호남 언 손 이제야”

    한나라당 의원들이 30일 단체로 광주 망월동 국립5·18묘지를 참배했다. 전남 구례,곡성에서 2박3일간 열린 의원연찬회의 마지막 순서다.참가 의원은 100여명.이 정도 숫자의 국회의원이,그것도 호남과는 질긴 ‘악연’을 이어오고 있는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단체참배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적지 않다. 지금까진 박근혜 대표나 몇몇 의원들이 개별 자격으로 5·18묘역을 참배했었다. 박광태 광주시장 등 현지 인사들의 영접 속에 박 대표와 의원들이 오후 1시47분에 도착했다.박 대표는 방명록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쓴 뒤 가슴에 검정리본을 단 의원들과 5·18 민중항쟁 추모탑 앞에서 헌화분향하고 정성환 관리소장의 안내로 묘역을 둘러봤다. 박 대표는 참배 도중 “방문 자체보다는 당 의원들을 다 모시고 이곳에 와서 뜻이 깊은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가 더 노력해서 믿음과 사랑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원희룡 최고의원도 “개별적인 사유로 몇몇 의원이 불참했지만 어쨌든 전체 의원이 민주 항쟁의 상징인 묘역에 참배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상징성을 강조했다. 네번째로 참배했다는 대구 출신 강재섭 의원은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이해하고 동서화합을 이루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권오을 의원도 “광주사태에 대해 우리 당 의원들이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이번 방문을 계기로 마음 속에 지니고 있던 부채 의식을 털고 역사의 아픔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3일 의총에서 5·18 묘역 참배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부 영남권 의원들은 불참했다.이방호 의원은 연찬회에는 참석했지만 참배에는 불참했다.그러나 안택수 의원은 참배한 뒤 “참배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라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위기상황인데 너무 한가로운 일정이라고 지적한 것”이라면서 “이번이 두번째 참배”라고 해명했다.한 당직자는 “이번 묘역 참배로 호남지역이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시각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호남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열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앞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연찬회를 마무리하면서 ‘국민께 드리는 글’을 발표했는데 다음 구절은 5·18묘역 참배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호남은 한나라당의 뜨거운 심장이 아니라 겨울날 추위에 꽁꽁 언 손이었습니다.이제 그 속에 저희 입김을 불어넣어 녹이겠습니다.그리고 저희에게 뜨거운 악수를 청할 때까지 겸허히 반성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광주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우리당, 盧대통령 풍자 ‘한나라 연극’ 분노

    한나라당 국회의원 24명이 배우로 나선 ‘극단 여의도’가 지난 29일 전남 곡성의 의원연찬회 무대에 올린 정치풍자극 ‘환생 경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욕설과 성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연극에서 노 대통령은 ‘술 퍼마시고 마누라 두들겨 패고,가재도구를 때려 부수는’ 무능한 가장 ‘노가리’(주호영 의원분)로 묘사됐다.노가리는 아들 ‘경제’가 영양 결핍으로 숨진 뒤 집터가 좋지 않다며 이사갈 궁리만 한다.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빗댄 것이다.가족의 반대에 부딪힌 노가리는 “개나 소나 힘으로 밀어붙이니 이거 애비 노릇도 못 해먹겠어.”라고 ‘노무현 어록’도 들먹였다. 반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아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헌신적인 어머니 ‘근애’(이혜훈 의원분)로 그려졌다.‘근애’의 친구로 나오는 ‘번영회장’(송영선 의원분),‘부녀회장’(박순자 의원분)은 노가리를 가리켜 ‘육××놈’‘불×값‘‘개×놈‘‘그놈은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공연 내내 한나라당 의원들은 웃음보를 터트리고 박수를 쳤다.박 대표도 “프로를 방불케 하는 연기”라고 촌평했다.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상식 이하의 저질 공연”이라고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저속한 욕설과 성비하적 모욕으로 일국의 대통령을 욕해대는 것이 한나라당의 진면목이냐.”면서 “저열한 욕설경쟁이고 낯뜨거운 충성연기”라고 맹비난했다.이어 “망월동 5·18묘역까지 참배한다면서 호남을 순례하는 이유가 고작 이것이었냐.”면서 “박 대표는 잘못에 대해 사과하라.”고 했다. 김갑수 부대변인도 “상스러운 욕설과 육두문자,그게 바로 한나라당의 정체성”이라고 비난했다.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은 “70∼80년대처럼 국가원수 모독죄로 다스린다면 그럴 수 있었겠느냐.”는 글을 올렸다. 논란이 일자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연극은 연극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공식적인 반응은 즉각 내놓지 않은 채 대응을 자제했다.김만수 부대변인은 전화통화에서 “대꾸할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며 공식 논평은 삼갔다.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도를 넘어선 것 아니냐.”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한 핵심관계자는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자해행위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지연 김준석기자 anne02@seoul.co.kr
  • [서울광장] 한반도로 부는 음습한 바람/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반도로 부는 음습한 바람/김경홍 논설위원

    보통 사람들간에 다툼이 생기면 대체로 목소리가 크거나,힘이 세거나,돈이 많거나,배경이 든든한 사람이 이긴다.하지만 약자를 위한 구제수단은 있다.법이 있고,상식과 도덕이 있고,하다못해 인정과 정상참작도 있다. 국제관계에서도 힘이 세거나,돈이 많거나,인구라도 많으면 말발이 세다.하지만 약자를 위한 구제수단은 변변치 않다는 것이 인간관계와는 다르다.약자에게는 철저하게 냉혹하다.이라크 전쟁도 명분이 있어 시작된 것이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유엔이나 국제법이 온갖 분쟁과 침략전쟁에 대해 명확하게 단죄한 적도 없다.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3400여년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불과 286년뿐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앨빈 토플러는 ‘전쟁과 반전쟁’에서 유엔이 창설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45년동안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0.12%인 단 3주동안뿐이었다고 적고 있다.1990년 이후 지금까지도 지구상에서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코소보 전쟁이나,두차례의 이라크 전쟁도 최근의 일이다.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총칼로 맞붙는 전쟁만 전쟁이 아니다.무력충돌의 한쪽에는 경제전쟁도 있고,문화전쟁도 있고,종교전쟁도 있고,자원전쟁도 있고,민족갈등도 있고,영토분쟁도 있다.지금 한반도에서는 어떤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을까.무력충돌만 없을 뿐이지 대부분의 분쟁이나 갈등요소가 현재진행형이다.위기감을 부추길 생각은 없지만 북한핵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중국과 일본의 경제·군사적 팽창주의와 주변국 역사까지 왜곡하는 음습한 바람이 한반도의 상공에 넓게 드리워져 있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역사왜곡은 일본경제가 주변국들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고 자위대가 적어도 자국의 안보를 담당할 만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이제는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와 장관은 물론 국회의원들이 대규모로 참배하고,한술 더 떠 일왕까지 참배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내년부터는 독도문제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키겠다는 속셈마저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중국의 ‘동북공정’이나 고구려사 왜곡도 중국이 이제 먹고 살 만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그 속셈을 드러내는 것이다.이런 일들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래 준비된 것이다.그래서 우리 생각대로 해결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역사왜곡이나 영토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침략이다.상대를 만만하게 보고 찝쩍거려 보는 것일 수도 있다.이런 준비된 음습한 수작들을 기껏해야 국제사회의 신사도나 촉구하고,항의성명이나 내고,외교공무원들이나 닦달한다고 그 뿌리가 빠질 것은 아니다.축구나 탁구시합에서 이겼다고 우월감을 느낄 일은 더더욱 아니다. 몇년 전 북한에서 식량난 등으로 탈북자와 보트피플이 대량 발생했을 때 남한사회는 수용시설이 모자란다느니,갑작스레 휴전선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그 때 중국의 동북지역 군단에서는 대규모 기동훈련을 했다.무얼 의미하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문화침략이든,역사왜곡이든,경제전쟁이든 지킬 힘이 없다면 그 자체로 약자의 처지에 서게 된다.군사력도,GDP도,인구도 모자란다면 당장은 지혜를 모아 경제를 키우고 국제사회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는 방법밖에는 없다.장기적으로 남북한간 신뢰회복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필수적이다.또 과거사니 이념이니 하는 내부의 소모적인 싸움은 서둘러 끝내고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후회는 앞서지 않는 법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사설] 日 제국주의 망령 강력 대처를

    도대체 이런 나라와 언제까지 선린 운운하며 인내력을 발휘하고 살아야 하나.일본 도쿄도가 우익단체의 왜곡 역사교과서를 중·고교 교재로 채택하기 시작했다.일본의 과거유린 행위가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것이다.제주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자신의 임기중 과거사 문제를 공식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게 불과 한달 전이다.마치 호의로 손을 내밀었다가 침뱉음을 당한 꼴이 됐다. 도쿄도가 채택한 일본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역사교과서는 난징(南京)학살과 군대위안부 강제연행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침략전쟁을 정당화해 일본 내에서도 우려의 대상이 된 책이다.여기다 공공연히 이 단체를 지지하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일왕(日王)더러 전범이 묻혀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라고 공개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일본의 역사유린행위가 어디에 이를지 가늠치 못하겠다. 이번 8·15때는 현직각료 4명과 중참의원 58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주변국들을 의식해 개인차원으로 해오던 참배를 드러내놓고 집단으로 행한 것이다.내년에는 7억 8000만엔(약 78억원)의 예산을 들여 독도영유권,일본해 표기 등의 외교공세까지 펼칠 것이라고 한다.이런 치졸한 역사의식을 가진 나라가 미·일동맹 우산 아래 군사력을 키우고,나아가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까지 노리고 있으니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팽창주의 움직임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못지않게 중대한 문제다.그런데도 정부가 왜곡 교과서 채택에 대해 공식 항의조차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잘못됐다.혹시 노 대통령의 재임중 과거사 문제 제기 중단 언급 때문이라면 크게 잘못된 대응이다.과거사 제기 중단은 우리가 먼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선의의 표시이지,일본의 도발에도 대응하지 않는다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강력한 항의 등 필요한 외교적 대응을 해야 한다.
  • 원혜영 “쓸어담기식 포괄조사 불필요하다”

    원혜영 “쓸어담기식 포괄조사 불필요하다”

    열린우리당 과거사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원혜영 의원은 2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친북·용공세력’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한 것과 관련,“원론적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원칙적인 수용 의사를 밝혔다. 원 의원은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마냥 배타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박정희 전 대통령도 남로당 핵심 당원이었는데,조사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과거사 문제를 다뤄나갈 ‘로드맵’에 대해 묻자 “모법으로 ‘과거사 정리를 위한 포괄 기본법’(가칭)을 만들어 조사의 원칙 등을 정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미 활동이 완료됐거나,상당히 독자적으로 진척된 조직의 활동을 중단시키고,포괄해서 과거사특위로 모두 쓸어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원 의원의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포괄적이고,체계적인 과거사 진상규명을 국회에 요청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원 의원은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가 통합적이고 전면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는데,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고 소신을 피력했다.그는 “이미 많은 문제가 해결됐다.”고 전제하면서 “친일문제는 친일진상규명법을 개정함으로써 사실상 광복 이전은 다 끝났고,현대사의 각종 의문사 및 인권침해는 1·2기 의문사진상조사위를 통해 대부분 밝혀져 과거사특위가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원 의원은 또 “친일문제는 9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3기 의문사진상 위원회 발족은 과거사특위 발족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9월22일 친일진상규명법의 발효를 앞두고 개정안을 제출하는 시기가 과거사특위 발족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으로는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당이 50∼60년 전의 ‘과거사’에 집중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냐는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느껴졌다.그는 그러나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친일을 포함해 유신독재 시절까지 과거사 정리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약 60%가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면서 “이같은 국민적 정서 때문에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의 제안을 무시하고 가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과거사 시대구분에 대해선 “광복 이전 일본 제국주의 강점시대,6·25 한국전쟁을 포함한 광복 이후,5·16군사쿠데타 이후 등 3단계로 나눌 것”이라고 구상을 밝혔다.조사 대상에 대해서는 개개의 사건을 거론하지 않고 “집단적이고,명백히 증거가 있으며 고문 등으로 목숨을 잃었던 사건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빨갱이 사건’이라면 여순반란·인혁당·조봉암 암살 사건 등이 떠오르는데,여순반란 사건을 제외하면 문제가 안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가족들이 탄원해 올 경우 ‘김형욱 실종사건’이나,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도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원 의원은 “과거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속출할 수도 있다.”면서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를 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신 전 의장 선친의 친일행적이 사적인 영역에 남아 있다가,신 전 의장도 모르는 사실들이 느닷없이 밝혀져 낙마한 것 아니냐.그런 점에서 신 의장도 피해자다.”고 주장했다.그는 “사석에서 신 의장은 아버지가 공비 토벌대장이었다고 해서 으레 일제쪽 경력이 있겠거니 짐작했는데,정작 본인은 몰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원 의원은 “과거사 진상규명은 미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서 “한·중·일 협력이 중요한 시대지만,일본은 신사참배하고,중국은 고구려사를 왜곡하니까 국민 감정이 악화돼 협력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한나라당 박 대표에 대해선 “유신 때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정치행위에 관련된 부분은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 소장파·영남파 25일 별도 ‘세규합’

    오는 30일 광주 5·18 묘역을 단체 참배하는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 개혁 소장파와 영남 보수파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방호·김용갑·안택수·이상배 의원 등 영남지역 보수모임인 ‘자유포럼’ 소속 의원 20여명은 25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조찬모임을 갖고 단체 참배 여부를 논의키로 했다. 전날 당 의원총회에서 반대의사를 밝혔다가 당 지도부와 개혁 소장파 의원들의 집단 역공으로 수세에 몰렸던 이들 의원은 5·18묘역 참배 불참은 물론 연찬회 자체를 보이콧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호 의원은 24일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호남 정서가 있다면 영남 정서도 있다.”고 전제한 뒤 “소속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호남지역을 찾아가고,5·18 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좋지만 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소속 의원 모두에게 참배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그러나 연찬회 보이콧 등 극단적인 집단 행동은 보수파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집단행동에 들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은 분위기다. 반면 소장 개혁파 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 소속의원 10여명도 같은 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조찬모임을 갖고 참배 강행 입장을 재확인하고,이번 연찬회의 핵심 의제인 국가 정체성 문제와 당명 개정문제를 논의키로 했다. 특히 소장파의 리더격인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한나라당이 비록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당의 전신인 민정당이 가해자인 만큼 한나라당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면서 “호남인들에게 사과할 일이 있다면 이제라도 솔직히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18묘역 참배 시 당 지도부는 물론 소속의원 모두의 이름으로 사과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 5·18참배 논란 한심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지난 23일 의원총회에서 5·18국립묘지 단체참배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고 한다.당지도부가 오는 28일부터 전남 곡성,구례에서 열리는 의원연찬회 마지막 날인 30일 의원 전원이 5·18묘지를 참배하는 계획을 발표하자 영남권의 일부 중진의원들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는 것이다.어떤 의원은 5·18참배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며 당의 정체성까지 들먹였다고 한다.한나라당이 새삼 5·18묘지 참배를 두고 시기상조라며 논란을 벌였다는 것은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의원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한나라당내에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5·18은 군사쿠데타로 비롯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쿠데타 주도세력은 이미 역사의 단죄를 받았다.희생자의 민주화운동 인정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게다가 5·18은 한나라당이 집권당이고,다수당일 때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졌고,망월동 묘역도 5·18국립묘지로 새단장됐다.그런데 이제와서 느닷없이 5·18묘지 참배가 시기상조라는 것은 자가당착이다.군사쿠데타의 망령을 불러오거나 지역갈등을 조장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논란을 벌일 정도라면 국가의 정체성을 따질 자격이 없다.더더욱 호남지역에서 전체 의원들이 모여 연찬회를 열고 호남민심에 추파를 던지는 속보이는 행동도 할 필요가 없다.한나라당이 전국 정당을 자처하고,국민의 지지를 받는 건전한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먼저 역사의식부터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 ‘5·18묘역 단체참배’ 제동 한나라 두의원 ‘뭇매’

    한나라당의 일부 영남 출신 의원들이 동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23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의 ‘호남 다가서기’에 정면으로 반발했다가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방호(경남 사천) 의원은 이날 임시국회에 앞서 열린 의총에서 당 지도부가 오는 28∼30일로 예정된 연찬회 때 5·18 묘역을 단체참배할 계획이라고 밝히자 “박 대표가 (5·18기념)행사장에 참석하는 것은 그런대로 양해가 되지만 의원들의 총의로 5·18 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의총에서 걸러야 할 사항”이라면서 “이런 중대한 문제를 일방통보하는 것은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안택수(대구 북을) 의원도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쳤다.그는 “5·18 묘지 방문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데,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나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대안으로 국회 의원동산에서 (호남인들과)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두 의원은 의총을 다시 열어 의원들의 총의를 모으자고 요청했고,당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여 임시국회 개회식 직후 다시 의총을 열었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들은 보수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수구’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같다.”면서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총이 속개되자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다수 의원들이 무차별 역공을 퍼부었다. 두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5·18 묘역 단체참배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심재철 기획위원장은 “5·18 묘지 방문이 왜 정체성에 어긋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 이해가 안간다.”면서 “당이 비록 보수라고는 하지만 자유·민주의 깃발을 내걸고 있고,이는 5.18 정신”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소장파의 리더격인 원희룡 최고위원과 정병국 의원 등도 “역사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하며 득표전략으로서가 아니라 현대사의 아픔을 극복하고 미래로 가는 통합의 정신으로서 필요하다.”면서 “5·18 묘지는 우리가 집권당·다수당일 때 만든 것이며 이런 때일수록 민심 속으로,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들어가 부딪쳐야 한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마무리는 김덕룡 원내대표의 몫이었다.김 대표는 “연찬회는 일부 소수의 의견이 아니라 몇차례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면서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국회가 이미 지정했고 5·18 묘역은 국립묘지로 지정됐다.”고 밝혀 오는 30일 당초 계획대로 단체참배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인물 포커스] 中 신임 외교부부장 우다웨이

    [인물 포커스] 中 신임 외교부부장 우다웨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잔수보다 정면승부에 강하고 직설적이지만 호쾌하다.’ 20일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차관급)에 임명된 우다웨이(武大偉·58)에 대한 외교가의 평가이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인 우 부부장은 1973년 주일대사관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최근 주일 대사 임기를 마친 대표적 일본통(日本通).하지만 1992년 한·중 수교 전후로 아주국 과장,부국장을 거치면서 수교 협상에 깊숙이 관여한데 이어 1998∼2001년 주한 대사를 역임,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김하중(金夏中) 주중 한국대사를 비롯한 한국의 중국통 외교관들과도 ‘인간적 교류’를 지속해온 관계로 알려졌다. 특히 우 부부장은 주일 대사로 근무하면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고이즈로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에 강력히 항의,중·일 외교 갈등에서 야전사령관 역할을 했다.역사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아는 우 부부장이 한·중간 최대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할 적임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우 부부장은 주한 대사 시절 ‘마늘협상’ 등 굵직한 현안을 놓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한국 외교부와 의견 충돌을 보였지만 화끈하고 솔직한 성격 때문에 오히려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후문이다. 주중 한국 대사관측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다른 외교관들과 달리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인데다 윗사람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는 성격이라 여러가지 현안 문제가 잘 풀릴 것으로 믿는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oilman@seoul.co.kr
  • [서울포토] 역사는 덮을 수도 지울 수도 없다

    [서울포토] 역사는 덮을 수도 지울 수도 없다

    부친의 친일경력과 관련,열린우리당 신기남 당의장이 낙마하는 등 친일 과거사 규명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와 관련된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띈다. 일제는 1925년 10년에 걸친 대공사끝에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웠다.민간종교인 신도(神道:Shintoism) 사원(寺院),즉 ‘신사’를 곳곳에 세우고 조선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한 것이다.일제는 무학대사를 모신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기는 대신 일본의 건국 시조신이라는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와 메이지천황의 두 신을 받들기 위해 신사를 건립했다.지금의 남산식물원,서울과학교육원,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동상이 있는 곳 모두 당시 조선신궁의 경내에 포함돼 있었다. 조선인들의 신사참배 행렬.일제는 30년대 후반 조선인까지 조선신궁에 강제 참배토록 해 조선인을 영원한 노예로 만들려 했다.몇해전부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개인 소신’이라며 일본전범들이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매년 참배를 하고 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신동엽과 금강

    [문학이 머문 풍경] 신동엽과 금강

    대중가요 얘기를 담았던 ‘서울탱고’에 이어 한국문학을 살찌운 시나 소설의 배경이 된 고장이나 작가의 고향을 찾아보는 ‘문학이 머문 풍경’을 새롭게 시작한다.그 고장이나 고향이 창작의 근본 힘이 된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문학의 배경이 된 이유나 작가와 관련된 추억,그곳이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지인이나 주민들의 얘기를 통해 되돌아 본다.번잡한 여행길에 잠시나마 문학의 향기에 취해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내 일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내 일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한국 최고의 민족시인 신동엽(申東曄·1930∼69)은 1962년 ‘서둘고 싶지 않다’라는 글에서 “언젠가 부우연 호밀이 팰 무렵 나는 사범학교 교복 교모로 금강줄기 거슬러 올라가는 조그만 발동선 갑판 위에서…넓은 벌판과 먼 산들을 바라보며 ‘시’와 ‘사랑’과 ‘혁명’을 생각했다.”면서 이같이 소망한다.신 시인의 문학적인 저력은 금강이 유장하게 흐르는 고향인 ‘백제의 고도(古都)’ 충남 부여로부터 잉태된 듯하다.부인 인병선(69·짚풀생활사박물관장)씨는 “고향과 금강은 백제정신을 토대로 하는 민족의식을 키워줬다.”고 평했다. ●고향이 큰 시인으로 만들었다 전주사범 입학 전까지 신동엽 시인은 부여초등학교를 다니며 고향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줄곧 우등생으로 6학년 때는 부여초교 대표로 일본에 성지참배를 다녀오기도 한다.문학평론가들은 이 일이 있은 이후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고 얘기한다. 신 시인은 부여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이종사촌 동생인 김동수(59·부여읍 구아리)씨는 “시비(詩碑)가 있는 금강변 야산에서 산책을 즐겼다.”고 말했다.당시 이 야산은 숲이 울창해 산토끼와 다람쥐가 뛰어놀고 원추리 등 꽃이 만발했다고 한다.특히 금강 본류의 한 구간인 백마강변을 거닐며 사색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또 신 시인이 야학을 했다는 알려지지 않은 얘기도 들려줬다.김씨는 “전주사범을 다닐 땐가,중퇴한 뒤인가 모르지만 문맹이 많았던 당시 동네 아가씨와 아저씨들을 자기 집 골방으로 불러 가르쳤다.”며 “내 누나도 거기서 형에게 공부를 배웠다.”고 말했다. ●‘불온인’에서 ‘거목 시인’으로 지난 70년 4월 18일 신 시인의 시비가 금강변에 건립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에 세우려 했으나 일부 유지들이 ‘어릴적 행적이 불투명하다.’는 등 이유로 반대했다.그가 한국전쟁 당시 인공치하에서 민청 선전부장으로 일했던 일을 트집 잡았던 것이다.부여문화원 김인권 사무국장은 “신 시인을 ‘빨갱이’라고 말하는 주민도 더러 있지만 선전부장하면서 나쁜 일을 안해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공때 ‘부여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초촌면 우익 총책임자가 신 시인 집에 숨어 있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사상에 경도된 시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산에 언덕에’라는 시가 새겨진 시비는 세월의 흔적이 더께더께 남아 남루했다. 부여읍 동남리 군청 인근 기와집 생가의 뜰에는 감나무와 은행나무,오동나무 등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히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방문 창호지는 곳곳이 찢어지고 별채는 지난 3월 폭설에 한쪽이 무너져내려 천막으로 덮어놓았다.대문 위에 ‘신동엽 생가’란 문패가 있고 방문 처마에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로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는 인씨의 글이 새겨진 액자가 걸려있다.대표작 ‘껍데기는 가라’가 쓰여진 나무판도 매달려 그의 생가임을 알려준다.생가는 지난해 3월 인씨가 부여군에 기증했다. ●문학관 건립추진 시인의 묘는 경기도 파주 월룡산 기슭에서 93년 10월 부여읍 염창리 부모 산소 밑으로 이장했다.김 국장은 “아버지(1990년 사망)보다 먼저 가 고향으로 오지 못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은 동학군이 일·관 연합군과 접전을 벌이다 패배한 공주 우금치(고개)를 휘돌아 금강 하구둑까지 장구한 역사를 담고 390㎞를 내달리고 있다.시인이 타고 ‘시’와 ‘사랑’과 ‘혁명’을 꿈꾸었다던 장항까지 오가던 발동선은 백마강을 도는 유람선으로 바뀌어 있다. 시인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입선한 뒤 고향을 떠나 40세 간암으로 요절할 때까지 한해 앞서간 김수영과 함께 한국 현대시사에 기념비작으로 꼽히는 ‘껍데기는 가라’와 ‘4월은 갈아엎는 달’‘진달래 산천’ 등 작품을 쓰며 참여시의 새장을 연다. 지난해 5월 ‘시인 신동엽 추모백일장’을 개최한 부여문화원은 오는 9월 두번째 백일장을 마련한다.부여군도 폭설에 무너진 생가를 복원하는 한편 내년 말까지 생가 옆에 원고와 유품을 전시할 ‘신동엽문학관’을 건립키로 하고 유족과 협의중이다. 글 부여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고이즈미 야스쿠니 참배 위헌” 日주민 86명 손배訴

    |마쓰야마 연합|일본 마쓰야마(松山) 주민 86명은 1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금년 1월1일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헌법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차대전 전몰자 유족을 포함한 주민들은 소장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정교(政敎) 분리 원칙을 규정한 헌법을 위반했다.”면서 “고이즈미 총리와 정부,야스쿠니 신사측은 원고 1인당 1만엔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또 “고이즈미 총리가 정부 수반 자격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함으로써 국가가 종교 활동에 나서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이번 소송은 고이즈미 총리의 1월1일 야스쿠니 방문을 상대로 한 올해의 첫 소송”이라고 말했다. 앞서 주민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 2001,2002,2003년 3년 연속 8월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부분에 대해서도 손배소를 냈으나,마쓰야마 법원은 지난 3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헌법에 위반하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이들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 [사설] 일왕까지 야스쿠니 참배하라니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에 일본 고이즈미 내각의 각료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집단으로 아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해괴한 일이 또다시 벌어졌다.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는 침략전쟁의 상징물이다.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과거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고,고통을 준 이웃 국가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에 다름없는 행위다. 5년째 이곳을 찾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종전 6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아키히토 일본왕도 참배를 해야 한다.”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한국인은 한일합방을 원했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갈수록 우경화,군사대국화돼 가는 일본의 국가적 분위기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고 본다.규탄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일본의 망발에 팔짱을 끼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정부는 연초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네번째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감행했을 때만 해도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유감을 표시하는 시늉이나마 했었다.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즉각 깊은 유감을 표시한 중국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7월 한·일정상회담에서 밝힌 임기 중 과거사 문제 제기 중단 방침이 이런 것이라면 곤란하다.가뜩이나 고구려사 왜곡 기도,중·일 축구전 등에서 드러난 중국의 대국주의 속셈에 대해 걱정이 많은 상황이다.군사대국 일본과 미래의 경제대국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공존,공영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정부는 내치뿐만 아니라 외치에서도 분명한 과거사 정립작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 日의원 58명 집단 신사참배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초당파 의원모임인 ‘모두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58명이 15일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특히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국수주의적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가 15일 일왕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제안,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날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상 등 고이즈미(小泉) 내각의 각료 4명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동참했다.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날 야스쿠니 신사 아래에 있는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역을 방문,꽃다발을 바쳤다. 이사하라 지사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인 이날 야스쿠니 신사를 5년연속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려가 많을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천황이 패전 60년(내년)을 맞아 야스쿠니에 참배하면 천황밖에 할 수 없는 국가에 대한 큰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이즈미 총리가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이 반발하자,마찰을 타개하기 위해 2002년 말 일본 정부가 밝힌 ‘종교색이 없는 새로운 추도 시설의 건설’은 2년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지난 5월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이후 이를 책임지고 이끌 고위인사가 없기 때문이다. 현 호소다 관방장관은 추도시설 건설을 서두를 생각은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 계속 의지를 밝혔고,중·일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일본 정부는 15일 현재 내년도 예산에서도 별도 추도시설 설치를 위한 조사비는 책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내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위헌이란 지방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고,공동여당인 공명당은 별도의 추도시설 건설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자민당과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일본정부는 현재 “정부로서는 국민들 사이에 이런저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계속해서 여론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후쿠다 전 장관은 2001년 12월 별도의 추도시설 설치를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사적 간담회에서 밝혔다. 그 해 8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강력 항의한 중국의 당시 장쩌민 주석이 10월의 중·일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대응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년에 걸쳐 정리된 보고서는 추도의 대상을 일본이 관여한 전쟁의 사망자에 그치지 않고 전쟁 후의 유엔 평화 유지 활동(PKO)의 순직자까지 확대했다.민간인이나 외국인을 포함하는 것으로,군국주의 시절 군대와의 관련성을 묽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 또 시설건설을 위한 조사비를 2004년 예산안에 계상하겠다며 검토했지만,자민당내 반발로 연기한 뒤 건설 움직임이 흐지부지된 상태다.고이즈미 총리는 올 1월1일 야스쿠니신사를 기습 참배한 바 있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은 지난해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에 ‘A급 전범’을 옹호하는 사설을 실은데 이어 올해도 156일자 사설에서 ‘B·C급 전범’을 적극 두둔하고 나섰다. 신문은 ‘B·C급 전범을 잊지 않으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증거조사는 부정확하고 법정에서는 본인에게 진술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전범재판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taein@seoul.co.kr
  •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할아버지 큰뜻 알것같아”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할아버지 큰뜻 알것같아”

    “조국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잊지 않고 불러줘 고마울 따름입니다.” 59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훈처 초청으로 지난 11일 한국에 온 키가이 라사(46)씨는 이렇게 입을 뗐다.키가이씨는 1926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용 선생의 외고손녀이다.그는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미국 등에서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 11명과 함께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다. ●할아버지 묘역서 발을 떼지 못해 6박7일간의 고국방문은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 참배로부터 시작됐다.현충탑 분향을 마친 키가이씨는 현충원 임정 묘역으로 발길을 옮겼다.선생의 유해는 1990년에야 중국 하얼빈 근교에서 발견돼 봉환됐다. 그는 일행들이 위령탑으로 발길을 옮기자 못내 아쉬운 듯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가기 전 기어이 차를 세워주도록 부탁했다.선생의 묘역에서 키가이씨는 달아오른 뜨거운 땅에 한참을 머리를 대고 있었다.그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할아버지가 많이 고생했다는 얘기를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그는 “현지에서도 독립유공자협회가 결성돼 후손간에 유대를 갖고 있다.”면서 “한국 고유의 문화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말을 못해 할아버지께 죄송스럽다.”며 돌아가면 한국어를 꼭 배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키가이씨가 부럽기만 하다는 표정인 장 타치아나(42·모스크바 거주)씨.그는 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의 외증손녀다.이동휘 선생도 현충원 임정묘역에 묻혀야 하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했다.장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 어딘지 알지도 못한다.다만 살던 곳에 기념비만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라면서 “그래도 러시아 현지에서 책과 자료 등을 통해 외증조부가 레닌을 만나는 등의 활동상을 관심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한 일행은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는 일제의 만행을 듣고는 모두들 얼굴이 흐려졌다.고문을 당해 한쪽 귀가 없어진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보던 키가이씨는 고개를 돌리며 “할아버지가 이런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면서 말을 잊지 못했다. 임정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됐던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파벨(55·카자흐스탄 거주)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인들을 증오하셨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역사분쟁 이해 안돼”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됐던 이위종 선생의 외증손녀 프로야예바 타치아나(43·모스크바 거주)와 피스쿨로바 율리아(35·〃) 자매도 한국을 찾았다.선생은 1910년 을사조약에 통분해 자결한 이범진 선생의 차남이다.타치아나 자매는 “두 분은 각각 러시아 초대 공사와 헤이그 밀사로서 독립운동의 산 본보기로 독립운동사에 많은 정신적·물질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한국학센터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율리아씨는 “외증조부가 1918년 모스크바 공산당대회에 참석한 이후 사망과정이 불분명해 이에 대한 연구와 1910∼20년대의 한·러 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최근의 한국·중국간 고구려사 분쟁을 의식한 듯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이며 고구려,백제,신라는 한민족의 땅에서 벌어진 한민족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오는 15일 충북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서울과 경주,울산을 관광한 뒤 오는 17일 출국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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