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참배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머리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임무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음주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 파문
    2026-07-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87
  • [어떻게 지내십니까] 청렴 정치인의 표상 박영록 前의원

    [어떻게 지내십니까] 청렴 정치인의 표상 박영록 前의원

    돌아가 쉴 집, 내 몸 하나 뉠 곳, 거기에 60년을 함께한 사랑하는 아내가 소찬을 만들어 반기면 그 위에 더한 행복이 있겠는가. 비록 그 집이 1.8평 손바닥만 한 컨테이너라 할지라도 비 오면 비 막아주고 바람 치면 바람 막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내 집이 아닌가. ●“1.8평짜리 컨테이너 박스가 내 보금자리” 헌정회 회원인 박영록 전 의원은 얼마전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독지가로부터 비어 있는 집이 있으니 들어와 사시면 어떠냐는 제안을 들었다. 애초부터 남에게 신세질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하도 간절히 청하는 바람에 못이긴 척 그를 따라 나섰다. 서울 강남의 70평짜리 집이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의 호의를 물리칠 수 있을까 궁리하던 터에 대궐 같은 집을 보니 오히려 핑계대기가 좋았다고 한다.“그래도 세상에 아직은 인정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컨테이너에서 나오면 거처를 제공하겠다는 분들이 여럿 있어. 그렇지만 내 양심상 70평 집에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관뒀지.”어느 사업가는 담양에 있는 집을 내줄 테니 살라고 했지만 아직은 할 일이 많아서 낙향할 처지가 아니라고 거절했다. 서울 성북구 삼선초등학교 뒷문 쪽 가파른 언덕배기에 아슬아슬하게 얹어 놓은 두 개의 컨테이너가 강원도지사를 지내고 국회의원을 4번이나 한 그의 보금자리다. 바로 위 40년간 살던 35평짜리 집을 2003년 공매처분 당하고 1년을 이곳저곳 떠돌았다. 다행히도 옛 집 바로 아래 3.8평 땅 하나는 건졌던 그는 수중에 있던 돈을 털어 컨테이너 2개를 사 2004년부터 이 곳에 자리잡았다. “올 여름 정말 더웠어. 낮에는 보통 40도까지 올라가는데 그래도 어떡해. 더우면 더운 대로 그러고 사는 거지.”지난해 11월 가까스로 끌어온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촛불을 켜고 살았다. 방바닥에는 촛농 자국이 검버섯처럼 가득하다. 살림이라곤 넉자 장농과 구형TV, 냉장고, 선풍기가 전부다. 손님이 찾아왔다고 내놓는 냉수를 차마 벌컥 들이마시기가 외람될 정도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이웃집에서 길어오던 물도 이제는 연결된 수도관에서 콸콸 나온다. 겨울이면 꽁꽁 언 이웃집 수도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녹이고는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받았다. 역시 이웃 신세를 졌던 화장실도 부엌을 겸한 컨테이너 아래 지하방에 만들었다. “이러고 사는 게 신문에라도 나가면 원주에 있는 아들놈이 욕을 들어먹는다고 그래. 왜 아버지, 어머니 안 모시냐고. 사실 우리 부부랑 살 형편도 안되고, 우리도 그리로 내려갈 생각도 없는데 말이지.”자식은 아들 셋을 뒀으나 둘을 앞세웠다. 장남은 현역 정치인 시절 세상을 떴고, 막내는 3년 전 사업에 실패하자 “부모님 고생만 시켜드린다.”며 목숨을 끊었다. 현역 정치인 때 마음 먹고 돈을 챙기고 모았으면 자식을 가슴에 묻는 일 따위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 전 의원 옆에 앉아 있던 부인 김옥연(82)씨가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지난 7월 어느 시민단체가 ‘대한민국청렴정치인대상’을 줬다. 상금이 무려 1억원이었는데도 한푼도 집에 들이지 않았다.“내가 이런 거 받을 자격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받은 이상은 절반은 청렴정치를 실천하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사람을 모으고, 세운 뜻을 이루는 데 돌리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상금의 나머지 절반은 그가 주도하고 있는 ‘남북통일 과도임시정부’ 준비위원회에 쓸 요량이다. “남북이 갈려 있지만 가만히 두면 옛날의 삼국시대와 같은 2국시대가 될 수 있거든. 대한민국 헌법이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고 한 것처럼 정통 국맥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이루는 과도 임시정부가 필요하지.”1948년 유엔이 결정한 남북동시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남과 북이 따로 국가를 세웠지만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으면 유엔 결정에 따라 선거를 치를 임시정부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청렴정치운동도 마찬가지다. 그는 “안 보이고 안 밝혀져서 그렇지 나라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축재를 한 전직 대통령이 활보를 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에게 닥친 조그만 사건만 봐도 그렇단다. 구청에서 어느날 컨테이너 집을 철거하러 왔다. 망치로 문을 부수고, 유리창을 깼다.3.8평 땅이 자기 땅이라는 어느 주민이 신고를 했는데 구청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철거하러 온 것이다.“그제서야 등기부등본을 떼보고 박영록이 땅인 게 드러나니까 부서진 데를 보상하겠다고 하더라고.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당하는데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민선 강원도지사 시절 관용차 안 타고 도시락 싸 출근 그는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는 광명정대한 청렴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민선 강원도지사 시절 관용차를 타지 않고,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했다. 그런 청렴함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헌정회에서 나오는 연금 99만원 중 80만원은 범민족화합통일운동본부 운영비로 내고 나머지와 지인들이 돕는 돈을 합쳐 50만∼60만원으로 살아간다. 평일에는 헌정회에서 주는 식권으로, 주말에는 헌정회 사무실에서 가까운 서울신문사 사원식당이나 1000원짜리 밥집을 이용한다.“한국에서 청렴정치 하면 바보란 소리 들어.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알려진 뒤로는 어떤 헌정회 회원들은 날 모른 체하더라고. 같이 다니기가 부끄러웠던 게지. 허허.” 지금의 정치에 대해서는 말하길 꺼린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원로 정치인으로 기사가 났었다.“그랬나요? 참석도 하지 않았는데 이름이 올라간 모양”이라고 한다. 애증이 교차할 것 같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텐데도 계속 말을 돌린다. 다만 대선 정국과 관련한 DJ의 언행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만 짤막하게 언급하고 입을 굳게 다문다. 스스로를 “초정파”라는 그는 “이 나라에는 진짜 어른이 없으며 특히 정치판에는 원로가 없다.”고 쓴소리를 한다. 그는 사기(史記)의 ‘상군열전’에 나오는 고사 ‘법지불행 자상정지(法之不行 自上征之)’를 인용한다. 법이 행하여 지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그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정신을 지도자들이 명심하고 지키면 정치가 올바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나라엔 진짜 어른 없고 정치판엔 원로 없다” “요새 정치인들은 현실문제만 갖고 다투지만 사실 민족이라든가, 국가라든가 근본을 놓고 고민을 해야 해.”그는 청렴정치운동, 통일운동 외에도 천제를 지내는 원구단 되찾기,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중국 지린성 룽징(龍井)시 외곽에 있는 일송정에 독립기념관을 건립하는 일들을 추진하고 있다. 은퇴 정치인이라고 하기엔 그가 벌여놓은 일은 현역 정치인 못지 않게 많다. 여의도에 있는 그들이 손대지 않는 영역에서 자신의 뜻을 일구고 실천해간다. 세상이 그를 따돌리고 왕따해도 의연하다. 독문학자 김진섭은 1947년 수필 ‘청빈예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이왕 부자가 못된 바에는 빈궁은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일이니, 사람이 청빈을 극구예찬함은 우리들 선량한 빈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한 개의 힘센 무기요, 또 위안이다.”라고. 그렇지만 박영록의 청빈은 피할 수 없는 수동적 운명이라기보다 처음부터 선택한 길이요, 세상살이 방식이다.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컨테이너 방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남쪽으로 난 창밖으로 나가 세상을 주유하는 꿈을 꾸는 그는 그것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그는 누구인가 박영록 전 의원은 ‘박총재’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명예욕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현역 정치인으로 최고 직함을 누린 평민당 부총재 시절의 애착 때문일 것이다. 1922년 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춘천농고를 졸업하고 정계에 들어서기 전 강원일보 기자를 지내기도 했다.37살에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뒤 6,7,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 때에는 동료인 장준하와 함께 신민당의 원외투쟁을 주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의원과 함께 1970년대 40대 기수론을 이끌었다. 70년 의원 자격으로 방문한 독일에서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 몰래 들어가 승리자 기념비에 새겨져 있던 손기정의 국적 ‘JAPAN’을 ‘KOREA’로 바꾼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또한 80년 신군부가 5000만원밖에 없는 그를 20억원 부정축재자로 몰아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최근 최연희 의원 등 강원도 국회의원협의회 회원들이 그를 돕겠다고 했으나 “돈을 들고 올 거면 오지 말라.”고 사양했다고 한다. 3·1운동의 성지를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매일 오전 탑골공원을 둘러보고, 헌정회 사무실에 들른 뒤 소공동의 원구단에 들러 참배하는 ‘시천살이’를 하는 게 하루 일과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D-4] 노대통령 ‘아리랑’ 관람 결정 안팎

    2차 남북정상회담 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 대표단이 북한의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입장을 굳힌 것은 초청받은 입장에서 북측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27일 브리핑을 통해 “평양에서 개최되는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손님으로서 초청측인 북측의 입장을 존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 방침은 방북 인사들에 대해 혁명열사릉과 금수산기념궁전 등 북한의 국가성지(聖地) 참관을 제한하고 있는 마당에 예술공연마저 체제선전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관람을 거부할 경우 ‘상호 인정과 존중’이라는 남북간 합의의 대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지난 2005년 8·15 행사를 위해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한국전쟁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는 점도 적지 않은 압박 요인이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북한을 방문한 정부 고위 인사와 민간인 1만여명이 공연을 이미 관람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2005년 9월 제16차 장관급회담을 위해 방북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아리랑을 관람했다. 다만 정부는 일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공연 내용은 북측에 요청해 수정할 수 있도록 의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 실장도 “북측도 민감한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측 입장을 고려, 공연을 수정해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4월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행사를 기념해 처음 공연된 아리랑은 학생과 노동자, 예술인 등 6만여명이 투입돼 식민지시대 항일무장투쟁부터 현재에 이르는 북한의 역사를 대규모 군무(群舞)와 카드섹션을 통해 표현하는 집체공연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사설] 후쿠다 日 총리에 거는 기대

    후쿠다 야스오 새 일본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어제 출범했다. 아베 총리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후쿠다 총리는 불안정한 정국 수습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총리 교체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중의원을 해산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정권의 명운을 걸었던 미군 급유 지원을 위한 테러대책법 연장이란 난관도 물려 받았다.‘배수진을 친 내각’이라고 명명할 만큼 위기감 속에서 후쿠다 정권이 탄생했다. 내각의 면면을 보면 외상과 방위상의 교체만 있을 뿐 파벌을 안배한 아베 정권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후쿠다 총리가 자신의 색깔을 어떻게 관철할지 눈여겨볼 일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새 총리의 동아시아 중시 노선이다. 역대 정권은 미·일 관계를 외교의 기축으로 삼았다. 후쿠다 정권도 미국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에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다.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 정권이 무너뜨린 동아시아 외교를 복원하려고 시도했고 일정 부분 평가를 받았다. 한걸음 나아가 후쿠다 총리는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할 필요는 없다.”고 남북한과 중국을 의식한 발언을 했다. 야스쿠니 참배, 군위안부 망언, 경제 제재 등 일본이 상대하는 나라들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한·일 정상은 지난해 11월 이후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 양국 관계는 물론 6자회담의 성공, 북·일관계 진전을 위해서도 두 정상이 만날 이유는 충분하다. 후쿠다 총리는 아베 총리가 거부한 미 의회의 위안부 사죄 결의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최대 현안인 납치해결을 위해서도 대북 정책에 유연함을 보여줬으면 한다.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기보다 타협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공동번영을 위해 후쿠다 총리가 정치력을 발휘할 공간은 넓다.
  • [日 후쿠다 총리 시대 개막] ‘동아시아 공동체’에 외교 초점

    [日 후쿠다 총리 시대 개막] ‘동아시아 공동체’에 외교 초점

    |도쿄 박홍기특파원|후쿠다 야스오(71) 일본 총리 체제가 출범했다. 보수 색채가 강한 아베 신조 전 총리와는 달리 중도적인 후쿠다 체제의 일본은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변화를 꾀할 전망이다. 아시아 외교 중시와 함께 대북 정책에서 압력보다 대화에 비중을 둠에 따라 한·일 및 북·일 관계의 진전도 기대된다. 후쿠다는 25일 중의원의 총리 지명선거에서 제91대 총리로 선출됐다. 앞서 23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선거에선 330표를 얻어 197표의 아소 다로(67) 전 간사장을 제치고 총재에 당선됐다. 후쿠다 총리는 25일 새 내각을 짰다.17개 부처 중 신임 2명, 자리 교체 2명 등 4자리를 뺀 나머지는 유임시켰다. 인사 폭의 최소화는 안정을 중시한 데 따른 조치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일단 국내 정치의 불신을 외교를 통해 풀어나가려 하고 있다. 국내의 복잡한 정치적 현안에 대한 효과보다 외교적 효과가 빨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력에 대해 자신감도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교노선과는 달리 유화적이고 실질적인 전방위 외교 노선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주변국 침략 사죄 ‘무라야마 담화´ 계승 그의 외교적 지향점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에 맞춰지고 있다. 아시아 중시 외교를 표방한 만큼 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그렇다고 ‘미·일 동맹’을 소홀히 하는 노선은 전혀 아니다. 지난해 6월 인도네시아 순방 때 부친인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내세웠던 외교노선인 이른바 ‘후쿠다 독트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뉴 후쿠다 독트린’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동아시아는 사실상의 경제통합이 진행되고 있다.”며 국제 평화 구축과 함께 아시아 시대의 미래를 위해 한국·중국과의 긴밀한 연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총재 선거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과거 주변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했다. 또 야스쿠니 참배 여부와 관련,“상대(한국·중국)가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며 잘라 말했다. 야스쿠니 참배 여부에 대해 줄곧 모호한 자세를 취해온 아베 전 총리와는 대조적이다. ●얽히고 설킨 대북관계 해결에 강한 의욕 북한에 대해서는 ‘비둘기파’로 분류되고 있다. 얽히고 설킨 대북정책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내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교섭의 여지가 없는 듯한 매우 경직된 상황이다.”라며 아베 전 총리의 압력 노선을 겨냥, 대화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그는 지난 2002년 9월 관방장관 시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전격적인 방북에도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북한과의 인연도 적잖다. 대북 정책에 대한 변화가 엿보인다. 북한이 납치 문제의 재조사를 받아들일 경우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이 급진전될 수도 있다. ●11월 중 訪美… 연내 중국 방문도 계획 중국과의 관계도 특별하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중·일 관계가 악화되자 2003년 8월 양국 평화우호조약 체결 25주년에 중국을 방문, 중국을 ‘해빙’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후쿠다 다케오 총리의 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건 특별한 의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시 ‘그림자 외상’이라고도 불렸다. 연내 중국 방문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는 11월 중 미국을 방문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일단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대테러작전을 위한 급유지원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과 관련된 걸림돌 등을 설명할 것 같다. 아베 전 총리 때 다소 껄끄러웠던 미·일 관계를 조율하는 데도 힘쓸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하워드 베이커 전 주일대사 등과는 친분이 돈독하다. hkpark@seoul.co.kr
  • [추석민심 고민되네] 鄭·孫·李, 호남에 전력투구 태세

    [추석민심 고민되네] 鄭·孫·李, 호남에 전력투구 태세

    대통합민주신당 지도부는 22일부터 한가위 연휴가 시작됐지만 고민이 커져만 간다. 추석 연휴가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 여론 형성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지만 통합신당의 경선을 보는 시각이 그리 곱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당초 경선 일정을 추석이 겹치게 조정해 경선 흥행을 도모하려 했다. 구전홍보가 위력을 발휘하는 추석 연휴를 맞아 민심을 잡으려 했지만 후보간 이전투구로 속앓이만 하고 있다. 여기에다 경선 투표율이 20% 안팎으로 저조한 데다 동원선거 및 유령 선거인단, 당권거래 논란까지 제기돼 곤혹스런 입장이다. 그러나 지도부의 진짜 고민은 대책을 내놓는다도 해도 손학규 후보가 지적하는 조직·동원 선거를 차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경선에서 동원선거가 부각되고 있는 데는 인구 비례를 무시한 선거인단 모집을 허용하는 등 경선규칙의 허점도 적잖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미 경선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를 고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도부는 동원선거에 대해 강력 경고 혹은 중앙선관위에 고발하기로 하거나 모바일 투표의 참여율을 제고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후보간 이견으로 모든 캠프를 만족시키는 합의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어서 또 다른 분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당의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는 29일 광주·전남 경선을 앞두고 호남에 상주하며 표심잡기에 전력투구할 태세다. 초반 4연전에서 승리를 거머쥔 정 후보는 22일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귀향객들에게 추석 인사를 한 뒤 곧바로 광주로 내려가 5박6일간의 호남 순회 일정에 들어간다. 손 후보도 21일 광주 5·18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휴기간 주로 광주·전남지역의 재래시장과 버스터미널 등을 누빌 예정이다. 이 후보는 연휴 기간 부산·경남과 광주·전남·충남을 순회하는 ‘한가위 대역전 필승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손학규 ‘장외경선’ 선언

    손학규 ‘장외경선’ 선언

    이틀간 경선 일정을 거부하고 잠행했던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후보가 21일 경선 복귀를 선언, 와해 위기의 경선 국면이 일단 정상화됐다. 손 후보는 그러나 경선 캠프 해체를 전격 발표해 향후 경선 과정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손 후보와 정면 충돌 양상을 보였던 정동영 후보는 “무엇이 새 정치이고 구태정치인지 토론할 용의가 있다.”며 경선 후보 3자 회동을 제안,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 후보는 경선 일정 거부 이틀 만인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통합민주신당과 함께 끝까지 가겠다.”며 경선 완주 의사를 밝혔다. 손 후보는 “당권 밀약설, 공천 보장, 줄세우기 부담에서 국회의원들을 해방시켜드리고자 한다.”면서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로 경선대책본부를 해체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경선은 자발적 국민참여를 바탕으로 치르겠다. 민주시민, 노동자, 농어민, 양심적 지식인, 학생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을 중심으로 진정한 국민경선의 정신을 살리고자 한다.”며 향후 활동 계획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손 후보는 이날 오후 부산 정책토론회와 관련 “경선관리 능력도 없는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오직 경멸의 재미만 주는, 말꼬리 잡기, 낡은 이념 싸움, 낡은 패거리 싸움인 그 토론회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불참했다. 손 후보측 우상호 대변인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기 위해 불참하는 것”이라면서 “향후 당의 모든 공식적인 경선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손 후보는 “당 지도부는 부정 동원 선거에 대한 조사를 조속히 실시, 다음 경선 전까지 마무리해 발표해 주시기 바란다. 실현되지 않을 경우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시민·종교인·대학생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부정동원선거 국민감시단’ 구성을 주장했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부산에서 가진 선대위 회의 모두 발언에서 최근 구태정치 논란에 대해 “정동영의 정치는 붉은 악마와 같은 서포터스 정치”라며 손 후보 및 이해찬 후보와의 3자 회동을 제안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무라야마 담화 계승” 후쿠다·아소 총리후보 약속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차기 자민당 총재이자 총리로 유력시되는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은 일본의 과거 주변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를 계승할 방침임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이 20일 보도했다. 후쿠다 전 장관은 19일 일본 외국특파원협회에서 아소 다로 간사장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총리가 말한 것이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총리 취임시 담화를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소 간사장도 “역대 내각은 모두 똑같은 식으로 말했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이에 따라 후쿠다 전 장관이 총리로 취임할 경우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문제 등으로 악화됐던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민당에서는 일부 극우 의원들 사이에 지난 1993년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이른바 ‘고노 담화’와 일본의 침략 등을 포괄적으로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에 불만을 표시하며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hkpark@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6) 남한산성 수어장대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6) 남한산성 수어장대

    병자호란(1636∼1637년)의 역사적 현장인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들은 성남쪽에서 남문으로 들어서든, 광주쪽에서 동문으로 들어서든 본격적으로 산성을 일주할 생각이 아니라면 일단 수어장대를 목적지로 삼기 마련입니다. 장대(將臺)란 시야가 확보되는 곳에 설치한 장수의 지휘소이지요.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는 후금에 등을 돌리는 외교정책을 펴면서 전운이 짙어지자 남한산성을 새로 쌓다시피하면서 동서남북에 하나씩 4개의 장대를 세웠습니다. 서장대가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데, 곧 수어장대(守禦將臺)입니다. 남한산성과 일대를 지키는 수어청의 우두머리인 수어사가 지휘하는 곳이어서 이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해발 453m의 일장산 꼭대기에 세워진 수어장대에 오르면 장쾌한 전망에, 왜 이곳을 총 지휘본부로 삼았는지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수어장대는 다른 장대와 마찬가지로 단층이었지만, 영조 27년(1751년) 중층의 누각형태로 지어집니다. 영조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항복한 치욕을 씻겠다며 북벌(北伐)을 추진한 효종이 묻힌 여주 영릉(寧陵)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수어장대에 올랐습니다. 수어장대 2층 누각의 내부에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을 내걸었던 것도 영조가 이곳에서 느꼈던 감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겠지요. 조선은 호란에 따른 이른바 정축화약(丁丑和約)에 성을 개축하거나 신축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인조 16년(1638년) 곧바로 남한산성을 다시 쌓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인조 17년(1638년) 청의 사신 세 사람이 남한산성을 살펴보고는 크게 화를 냈다는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사신들은 “산성을 고치고 네 곳이나 곡식을 쌓아두었으며, 포루(砲樓)도 개설하였으니 어떤 간계를 가지고 있기에 감히 이런 짓을 하는가. 산성을 허물어버린 다음 우리가 국경을 넘어가기 전까지 보고하라.”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후 조선은 청나라 사신이 삼전도비를 보고싶다고 할 때 마다 멀지 않은 남한산성까지 찾아갈까봐 갖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따돌리게 되지요. 호란 직후 남한산성을 수리한 사실은 ‘남장대 옹성 무인비’가 자세히 알려주고 있는데, 비석을 발견한 과정이 재미있습니다.1996년 국립민속박물관장이던 조유전 토지박물관장과 전보삼 신구대 교수, 조병로 경기대 교수, 세상을 떠난 장철수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은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남사모)’을 만들었습니다. 남사모는 4월28일 첫번째 답사에서 남한외성의 하나인 봉암성을 신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봉암신성 병인 마애비’를 찾아냈습니다. 두번째 답사인 5월26일에는 남장대터 옹성(甕城)에서 새로운 비문을 발견했는데, 바로 인조 16년 1월26일부터 성을 새로 쌓기 시작하여 7월에 완성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사모는 6월30일 세번째 답사에서도 수어장대에서 가까운 병풍바위에서 역시 ‘남성신수기(南城新修記)’를 찾았습니다. 정조 3년(1779년) ‘허물어져 한 곳도 온전한 데가 없어 성을 고쳐 쌓았다.’는 내용이었지요. 세 차례 답사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남사모는 이후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사단법인으로 확대되어 현재도 활발하게 남한산성 보호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1896년에 재건된 현재의 수어장대는 조선시대 국방건축의 일단을 보여주는 당당한 모습이지요. 나아가 호란 이후 오늘날까지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하겠다는 노력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평가를 뛰어넘는 가치가 있습니다. dcsuh@seoul.co.kr
  • 日 자민당 총재선거 파벌정치 논란

    日 자민당 총재선거 파벌정치 논란

    |도쿄 박홍기특파원|오는 23일 실시될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파벌정치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총재 선거에서 파벌 정치의 논란도 뜨겁다. 논란의 핵심은 차기 총리로 유력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소속인 마치무라파를 비롯,8개 파벌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아소 다로 간사장의 아소파만 빠진 셈이다. 파벌정치는 지난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우정민영화법안을 추진하다 반대에 부딪치자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아소 간사장은 15일 “담합, 밀실 등의 비난을 사는 사태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후쿠다 전 장관에 대해 ‘파벌 담합’이라고 비판했다. 또 총재 선거에 다른 후보들이 파벌을 인식, 출마를 포기한 것과 관련,“나까지 (총재선거에서) 물러서면 자민당의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후쿠다 전 장관은 아소 간사장의 공세에 “결코 파벌 중심의 행보라는 비판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파벌끼리 서로 대화를 통해 공동의 요소를 찾은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옛날처럼 파벌의 리더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은 자민당의 총재선거와 관련,“파벌이 완전 부활했다.”고 규정, 조기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후쿠다 전 장관은 15일 총재 후보 공동기자회견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상대방(한국과 중국 등)이 싫어하는 것은 무리하게 할 필요가 없다.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참배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또 대북 정책과 관련,2002년 9월 고이즈미 전 총리의 북한 방문을 주도한 점을 강조한 뒤 대화의 주요성을 역설, 변화를 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반면 아소 간사장은 아베 총리의 강경 노선을 견지했다. 후쿠다 전 장관은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에 대해 2008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뒤 내년 4월 이후 야당과의 ‘합의 해산’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아소 간사장은 “중의원 해산은 총리의 전권 사항”이라면서 “야당과 협의해 야당의 형편이 좋을 때에 해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며 공세를 폈다. hkpark@seoul.co.kr
  • 중·일 군함 상호방문 첫 합의

    오는 11월부터 12월 사이에 중국 군함이 사상 최초로 일본에 기항하는 등 중·일 군함의 상호방문이 합의됐다. 또 중국과 일본의 국방 당국간 핫라인 개설을 위한 실무그룹을 설치,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을 방문중인 중국의 차오강촨 국방부장관과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방위상은 30일 도쿄에서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이날 전했다. 지난 몇년 동안 야스쿠니 신사참배, 위안부 문제,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영토분쟁 등으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두 나라가 국방 분야에서 한 단계 협력관계를 격상시킨 셈이다. 또 차오 부장의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고무라 방위상이 내년 중국을 방문한다는 점에도 합의했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호주 등과 군함의 상호 방문을 실시해오고 있으나 일본 기항은 처음이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Seoul In] 창경궁 집춘문 100년만에 개방

    종로구(구청장 김충용) 창경궁의 동쪽 문인 집춘문(集春門)이 100년만에 개방된다. 창경궁과 문묘를 연결하는 다리 거동로를 설치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건의했다. 집춘문은 일반 관리들은 다닐 수 없고, 임금이 성균관의 공자 사당에 작헌례(능이나 사당을 참배하고 술잔을 올리는 행사)를 올릴 때 이용하던 문이다. 거동로도 임금과 왕세자가 주로 다녔다. 집춘문을 개방하면 종묘→창경궁→문묘를 연결하는 관광로가 열리는 셈이다. 문화체육과 731-0359.
  • 日 아베 2기내각 외교·안보 정책은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 새로 짠 ‘제2기 내각’의 외교·안보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가 국내 문제 때문에 외교·안보 쪽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지역이 활력을 되찾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대로 우선 지역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무상과 고무라 마사히코 방위상 모두 아베 총리와 같이 우파적 성향이 짙다. 아베 외교·안보팀이 주변국과 충돌할 수 있는 ‘가치관 외교’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역시 ‘전후체제의 탈피’ 노선도 주변국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기는 하다. ●마치무라 외무상 “재임중 참배 안해” 마치무라 외무상은 2004∼05년 첫번째 외무상을 맡을 당시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 대한 망언으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샀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주시하는 이유다. 그런 탓인지 마치무라 외무상은 첫 기자회견에서 “재임중에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계획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2기 내각의 외교·안보팀은 당장 미·일 동맹을 고려, 민주당에서 반대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연장이라는 최대 현안을 처리해야 한다. 중국과 센카쿠 열도 소유권 분쟁, 러시아와 남쿠릴 열도의 4개섬 반환 문제 등도 언제든지 부각될 수 있는 과제들이다. 대북 강경정책은 바뀔 조짐이 거의 없다. 아베 총리는 비판을 받아 온 ‘총리 보좌관’을 5명에서 2명으로 축소하면서 나카야마 교코 납치담당보좌관은 그대로 남겼다. 북핵보다 납치문제를 우선시하는 아베 총리의 의지다. ●“납치문제 진전없으면 대북지원 없다” 마치무라 외무상은 역시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에 진전이 보이면 경제 지원과 에너지 지원 분야에 한층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납치문제의 진전이 없으면 지원하지 않는다.’는 1기 내각의 기본 방침에 대한 유지다. 그러나 다음달 5·6일 이틀 동안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갖기로 합의한 6자회담의 제2차 북·일 실무회의는 북·일 관계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3월 베트남 하노이 회의 이래 6개월 만에 열리는 만큼 일말의 기대감도 있다. 한편 마치무라 외무상과 고무라 방위상은 ‘중진’의 무게를 최대한 활용, 다음달 10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테러특별법’의 연장을 위해 민주당 설득의 전면에 나설 방침이다. hkpark@seoul.co.kr
  •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한국 기독교 80년사상 처음의 경사인 희년(禧年)축복예배가 새해 첫 일요일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율촌(栗村)교회서 거행된다. 주인공은 전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씨와 동기동창인 88세의 조의환(曺義煥)목사. 조목사는 50주년째 현직 목사로 있으며, 7남매의 자녀가 모두 생존하여 슬하에는 무려 증손자까지 86명의 가족이 뻗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60넘는 자녀만 4명이나 손자는 34명 증손자 45명 88세로 50년동안 목사 일을 맡아보고 있는 조의환 목사는 이젠 걷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또렷 또렷하여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축복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데모데」서 4장 7절을 즐겨 설교하며 『나의 갈길 다하도록 예수 인도하시니…』하는 찬송가를 즐겨 불렀다. 『저희 아버님은 지금도 매주 한번씩 꼭꼭 저에게 편지를 써보내십니다. 안경도 안쓰시고 필력(筆力)도 좋으십니다』 역시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曺基榮)씨(61)의 말이다. 조의환 목사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 마을에서 조병하(曺秉夏)씨의 5남매중 둘째로(세째는 전 외무장관 조정환(曺正煥)씨) 전 부통령 함태영선생과 동창 사이가 된다고. 『무엇보다도 복된 것은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서 아버지의 50주년 희년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조목사의 슬하에는 장남 기영(목사·서울), 차남 기선(基善·교통센터·서울), 3남 기성(基成·국민교장·여수), 장녀 영관(永寬·70·서울), 차녀 정은(貞恩·66·구례(求禮)), 3녀 안희(安熙·63·서울), 4녀 영은(英恩·서울)씨등이 모두 복된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까 7남매중 60세이상의 아들딸이 4명이며, 그들의 몸에서 난 손자가 34명, 증손자가 45명이나 되어 혈통이 모두 86명. 조목사는 24세때 예수교를 믿기 시작하여 30세때 평양(平壤)신학교에 입학하여 8년만에 졸업, 39세때 비로소 목사가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광양(光陽) 여수(麗水) 제주 교회등에서 일했읍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제주도 모슬포교회에서 6년을 일보시는 동안 두번이나 투옥을 당하신 일입니다』 2차대전때 혹독한 일제의 압박에도 신사참배(神士參拜)를 거부했다. 또 조목사는 당시 순천(順川)지구 노회(老會) 선교사로 있다 미국으로 귀국당했던 「프레스턴」목사와 국내 정세를 연락했다고 해서 투옥, 많은 고초를 겪었다. 모든식구 한자리에 모여 소원대로 산제사 모시게 그런가운데서도 조목사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아우 정환씨를 10년동안이나 미국에 유학시켜 공부하게 했다. 『저도 일본경찰서에 몇차례나 끌려갔읍니다. 그놈들은 술만 취하면 한밤중에 날 경찰서로 잡아다 놓고 일본도를 빼어 내 목에 겨누는 등 행패를 부렸지요. 그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임관 시험을 치르기도 했읍니다』 장남 조기영 목사의 설명. 조기영목사는 연전(延專) 상과, 숭실전(崇實專) 농과, 명치(明治)학원 영문과 등에서 수학한뒤 호남비료 서무과장, 무역업에 종사해오다가 나이 60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사가 되어 지금은 「망각지대선교회」회장일을 보고 있다. 『7남매 모두 따로 살고 있지만 이번에 전부 모여 아버지 소원대로 산 제사(祭祀)를 지내는 축복예배를 보기로 했읍니다』 조의환목사는 원채 나이가 많으시니까 아들이나 손자들이 찾아오면 『사탕 좀 사오너라』하고 명령을 한다는 것. 그래서 단 것을 장만해서 이번에 행사를 벌이기로 한 것인데, 그 「단 것」선물의 거의 전부가 교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진다. 이래서 어린이와 할아버지의 사탕잔치가 한꺼번에 벌어진 것인데 88세 할아버지 목사님은 여느날에도 『사탕 먹으니까 맛있죠? 나도 맛있어요!』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 노목사는 아들딸을 제외하곤 아무리 어린나이의 증손자에게도 반드시 존칭을 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77살에 재혼 아직도 정정 장수의 비결은 절제주의 한가지 섭섭한 것은 57년에 7남매의 어머니 김월봉(金月鳳)여사가 돌아가신 것. 이듬해 김영엽(金永葉·72)씨를 계모로 맞아 아버지와 짝을 지어 드렸다. 그러니까 조의환 목사는 76살때 재취 장가를 간 셈. 조목사는 지금도 기억력이 생생해서 86명속에 끼어 있는 손자와 증손자의 이름까지 모두 외고 있으며, 아무날 어느 손자, 또는 증손녀가 무슨 과자를 사왔다는 내용을 모두 「노트」에 적어놓고 있다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놀리자(?), 아버지는 『야 이놈들, 산 제사를 지내려면 단것 좀 많이 사와라!』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긴다. 조의환목사의 뜻을 받아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씨는 「예수」 믿고 보이지 않는 천당가는 신앙보다 보이는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더 값있는 일이라고 망각지대를 향해 선교를 나섰다. 『망각지대란 것은 글자 그대로 소외당하고 잃어버린 땅을 향해「예수」의 정신을 심자는 것입니다. 난 돈도 명예도 없어요. 푼돈이 생기면 그대로 양로원 고아원 또 사형 확정수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말씀을 전하고 있읍니다』 조기영목사는 60세에 안수를 받았지만 정열이 대단하다. 국제신학교 강사로 나가면서 어떤때는 하루종일 서울역 남대문 지하도 근처를 헤매면서 서울역에서 내리는 시골손님들의 길을 안내하고 짐을 들어다주곤 하는 생활-. 다만 조의환목사의 3형제중 일제때 만주국(滿洲國) 48(王)중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형님 조일환(曺日煥)씨와 아우 정환(正煥)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슬프다고 88세의 원로목사는 기쁜중에도 섭섭한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절제주의입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평생 안했거든요. 또 성욕도 많이 절제하면서 산셈이야요. 내가 젊어서는 미남자였거든요. 만약 목사가 안되었다라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을지 알아? 그랬더라면 86명 자손이 아니라 수백명일 뻔했지? 하하하…』 조목사는 이런 농담으로 곧잘 잔치집에 온 하객들을 웃긴다. <여천에서 이용선(李鏞善)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그 당이 그 당…경제 살릴 당 지지하겄소”

    “그 당이 그 당…경제 살릴 당 지지하겄소”

    호남이 이상하다. 최근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한나라당이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경선에서는 예상보다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면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밀었다. 범여권 후보 등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뜨거운 지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일까. 호남 민심의 중심지인 광주시민의 여론을 들어보았다. “그 당이 그 당이고 이제까지 지지하고 밀어줬는데 밀어봤자 다 똑같고. 차라리 경제 살릴 수 있는 그런 당을 지지하겄소.”(이모씨·51·택시기사) “투표하러 안 갈 거요. 너무 빤하니까. 한나라당 대통령도 시켜봤고 민주당도 시켜봤지만 결과는 다 똑같았어. 먹고 살기도 힘들고 취직도 힘들고. 애들 가르치고 하루 먹고사는 데만 관심 있지.”(김모씨·56·상인) 민주신당 지도부가 현장정치를 구현하겠다며 첫 방문지로 23일 달려간 광주의 민심은 싸늘했다.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후보로 확정짓고 일방적 독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열양상만 보이고 있는 민주신당과 민주당에 신물이 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달라진 호남 민심… 한나라당 지지율 1위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상인 고모(59)씨는 “여기저기 얘기를 들어보면 한나라당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도 이제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시켜야제. 이명박씨도 추진력 강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며 평판이 좋아.”라며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해 가는 민심을 전했다. 범여권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잇따랐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이모(48)씨는 “김 전 대통령이 도청을 무안으로 옮겨 광주 경제는 더 안 좋아졌다. 먹고살기 어려운데 더 이상 그쪽(범여권)을 찍을 이유가 없지. 김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밀었던 것은 광주 사람이 한이 맺혀서 그랬지. 한번 했으니까 이젠 DJ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싸늘, 대선되면 바뀌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범여권에 대한 반발일 뿐이며 대선이 임박하면 다시 범여권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식당을 하는 김모(48)씨는 “지금은 싸늘하지만 대선에 임박하면 바뀌지 않겠느냐. 범여권이 통합하고 후보 한 사람이 나와 1대1 대결이 되면 그쪽(범여권)을 찍을 것”이라며 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를 기대했다. ●민주신당-민주당의 치열한 텃밭 싸움 호남인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민주신당과 민주당은 이날 호남 맹주를 차지하기 위한 독자행보를 가속화했다. 오충일 대표와 김효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신당 지도부는 이날 광주 5·18국립묘지를 참배한 데 이어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최고위원회의를 가졌다. 오후에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호남에 대한 ‘러브콜’을 보냈다. 오 대표는 “어떻게 싸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박정희의 딸이란 사람이 대선 (예비)후보가 되고,70∼80년대 군사독재 개발시대에, 창업한 것도 아니라 큰 기업에서 조그만 사업을 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느냐.”며 한나라당에 대립각을 세웠다. 민주당도 이날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당원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당원 전진대회를 갖고 호남 지지층 다지기에 나섰다. 박상천 대표 등 지도부와 조순형·이인제 의원 등 대선 경선 예비주자들은 연설회에서 자신들이 호남과 민주화 운동의 적자임을 강조하며 민주신당을 집중 성토했다. 광주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黨 색깔·기능 모두 바꾼다”

    “黨 색깔·기능 모두 바꾼다”

    한나라당이 대선 후보를 확정짓자, 범여권도 대선 행보에 가속을 걸면서 대선 구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21일 당 지도부와 함께 오전에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것을 시작으로 당 후보로서 공식일정에 들어갔다. 이어 이 후보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지도부와 상견례를 가졌다. 당초 이날 최고위원회의는 예정에 없었으나 강재섭 대표의 긴급 지시에 따라 소집됐다. 이를 두고 이 후보의 당 장악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이 후보는 이 자리에서 당 화합과 개혁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는 “경선이 워낙 길었고 격렬했기 때문에 경선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난 것 아니냐는 착각을 하는 수가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출발해야 한다.(당의)색깔, 기능면에 있어서 모두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보수성향의 당 체질을 ‘중도’쪽으로 한 클릭 이동하고, 실용주의 강화로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한층 강화해 대선 승리를 위한 외연 확대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범여권도 본격적인 경선체제에 돌입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날 대선후보 예비경선 후보등록과 선거인단 모집을 시작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시작으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유재건 의원, 추미애 전 의원이 등록을 마쳤고 천정배 의원은 마감일인 22일 등록할 예정이다.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해찬 전 총리, 신기남 의원 등 4명은 국민경선위원회의 대리접수 허용에 반발, 등록을 미루고 있지만 조만간 등록할 것으로 보인다. 천 의원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 2차 토론회를 진행,‘개혁 블록’ 구축에 공을 들였고 당원과의 만남으로 당심 잡기에도 발동을 걸었다. 각 후보들은 일단 선거인단 모집이 끝나는 26일까지는 각개전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비경선을 위한 27일 인터넷 토론회,31일 TV토론회를 통해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길회 김지훈기자 kkirina@seoul.co.kr
  • [특파원 칼럼] 광복절과 종전기념일/박홍기 도쿄 특파원

    사흘전은 8·15 광복절이었다. 반면 일본에는 종전기념일이다.62년전 그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동시에 한국은 36년 동안 잃었던 빛을 되찾았다. 일본의 종전기념일은 기념일이기보다 추모일이다.‘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라는 광복절의 노랫말처럼 감격에 휩싸인 날이 아니다. 패망의 슬픔과 상처를 달래는 그런 날이다. 올해도 곳곳에서 ‘전국 전몰자 추도식’이 열렸다. 일본에서 맞은 종전기념일은 낯설기 그지없다. 가해자로서의 전범이 아닌 원자폭탄을 맞고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든 전쟁의 피해자로서만 부각시키는 일본의 태도 때문이다. 8월 초입부터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와 태평양 전쟁은 사회적 이슈로 다가왔다. 미디어들은 일제히 당시의 원폭 피해자, 참전 군인들의 증언이나 자료 등을 발굴,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데 여념 없었다.8월6일 히로시마,8월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날을 평화의 날로 지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전쟁의 폐해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한 듯하다. 실제 종전기념일까지 10일 동안 3차례에 걸쳐 ‘평화’를 염원하는 공식 행사가 치러진다. 일본에서는 1945년 8월6일부터 8월15일까지만 전쟁을 벌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길게 잡아야 미국의 도쿄 대공습이 있었던 3월10일부터다. 초점이 원폭과 대공습 등의 전흔에만 맞춰진 까닭에서다. 일본, 자신들에 의한 전쟁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아예 빼거나 왜곡시킨 탓이다. 더욱이 62년이라는 세월과 맞물려 전쟁의 폐해를 몸으로 경험한 일본인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아가 젊은이들은 자국의 전쟁 도발과 식민지에서의 야만성 등에 대한 근·현대사에 별다른 관심조차 없다. 공교육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최근 만난 일본의 한 고교 교사의 ‘근·현대사를 가르칠 기회도, 제도적인 여건도 안 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실상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역사인식은 독선적이다. 아전인수격의 역사관에 갇혀 한국을 비롯, 주변국들이 겪었던 질곡과 고난의 역사를 인정할 만한 자세를 갖지 못해서다. 전쟁터로 끌려가 희생된 수많은 한국의 학도병, 위안부, 건설노동자 등에 대한 진실된 사죄는커녕, 반성도 없다. 물론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종전기념일의 추도사에서 “깊은 반성과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했지만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난 1995년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서도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국민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공표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시대의 상황에 따라 반성과 사과는 형식적으로만 되풀이됐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독도 등의 문제도 변화없이 그냥 그대로다.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다. 아베 총리 스스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은 분명 가해자로서의 과거사 청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역사의 겸허함을 수용해야 한다. 굳이 독일이 실천한 ‘전후 피해 보상과 화해의 과정’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깊은 사죄만이 유일한 길이다.1965년 한·일 회담에서 이미 강점기와 관련해 포괄적인 해결이 이뤄졌음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시 회담은 국제 정세에 따른 안보논리에 의거해 이뤄졌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62년전의 역사를 새삼 들춰낸 것은 광복절을 계기로 종전기념일에 전쟁의 피해를 내세워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는 일본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다시 올 종전기념일은 패망을 위무하는 자신들만의 날이 아닌 국제 평화와 화해를 도모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 나아가 사죄와 용서를 통해 진실된 소통이 가능한 한국과 일본의 미래 관계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李, 부산 충렬사로… 朴, 육영수 추모식에…

    李, 부산 충렬사로… 朴, 육영수 추모식에…

    광복절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유세에도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62주년 광복절인 15일 이명박 후보는 부산 충렬사에서, 박근혜 후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3주기 추모식에 각각 참석해 나라 사랑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 ‘감성 행보’를 보였다. 전날 대구 유세에서 보인 ‘강 대 강’ 충돌 양상과는 달랐다. 전날 대구 합동연설회를 마치고 울산을 거쳐 부산에서 하룻밤을 묵은 이 후보는 이날 새벽부터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과 만나며 ‘표심 다지기’에 나섰다. 부산은 이 캠프에서 경합우세로 분류한 지역이다. 부산 충렬사를 참배한 자리에서 이 후보는 “올해 광복절은 의미가 있다. 국가적으로 큰 전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후 항공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이 후보는 청계천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근처 음식점에서 대학생들과 ‘자유 토론회’를 가졌다. 이 후보는 검증공방 속에서도 여론 지지율 1위를 고수한 것과 관련해 “아마 다른 사람 같으면 무너졌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의혹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으니까 자신있다.”고 강조했다.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에 대한 검찰 발표에 대해 이 후보는 “이상은씨 땅이 아닌 것 같은데 이명박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식으로 헷갈리게 발표했다.”면서 “내가 후보 안 되면 (범여권이)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주량이 맥주 1병인 그는 이날 500㏄ 석 잔을 비우며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한편 박 후보는 고 육영수 여사 33주기 추도식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 국민께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될 것”이라면서 “지하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성원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동생 근영씨, 지만씨 부부도 참석했다. 박 후보는 “어머니를 잃고 피묻은 옷에 눈물을 적시며 잠 못 이룬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머니 돌아가실 때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면서 “어머니의 국민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느낀 경험이 지금 저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소외되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뵐 때마다 어머니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한다. 살아 계시면 상의라도 드릴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가운데 1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 여사가 꿈꿔왔던 대한민국을 두 분의 큰 딸이 이어가고 있다.”고 추도했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강 전 총리가 사실상 지지선언을 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홍희경 김지훈기자 saloo@seoul.co.kr
  • ‘희망의 편지’ 옹골차게 띄운다

    ‘희망의 편지’ 옹골차게 띄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고(故) 강원용 목사의 개인문고가 설치되고 강 목사의 대표적인 수필들을 추린 수상집이 발간된다. 그런가 하면 경동교회의 건축물과 강 목사의 정신을 연결한 이색적인 아트북도 세상에 나온다. ●내일 묘소 참배·추모식전 지난해 8월17일 소천한 강원용 목사의 1주기를 맞아 17일 오전 11시30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공원묘원의 강 목사 묘소 참배를 시작으로 다양한 추모행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사)여해강원용목사기념사업회(사업회·이사장 이홍구)가 대부분 주관하는 행사는 ‘여해가 띄우는 희망의 편지’라는 큰 타이틀 아래 “조촐하지만 강 목사의 생전 뜻을 옹골차게 잇자.”는 방향으로 차분하게 진행된다. 우선 17일 묘소 참배에는 경동교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강 목사와 생전 사회활동을 함께했던 지인 2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오후 7시30분 경동교회 본당에서 각계 인사 2000여명이 자리를 함께하는 추모식은 강 목사의 생애를 촛불 퍼포먼스(이강백 서울예술대교수 연출)와 춤, 합창, 파이프오르간 연주에 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앞서 오후 7시 경동갤러리(경동교회 선교기념관)에서는 추모사진전이 개막될 예정. 사진전은 만주 용정의 학창시절부터 해방 직후 좌우합작운동, 크리스챤아카데미 활동, 종교간 대화운동, 선종 직전의 모습 등 강 목사 삶의 편린이 가장 잘 담긴 사진 100여점을 추려 보여주게 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개인문고 마련 국립중앙도서관의 강목사 개인문고 마련은 비단 경동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계에서 크게 환영하고 있는 일. 국립중앙도서관측에서 강 목사가 생전 애장한 도서 5173권을 인문과학실 개가자료실에 비치해 ‘강원용 개인문고’ 코너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회측은 “당초 1주기에 맞춰 17일쯤 코너 설치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사정이 생겨 오는 10월16일로 미루어졌다.”고 밝혔다. ●수상집·아트북도 출간 국립중앙도서관의 강 목사 개인문고 설치에 맞춰 수상집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현암사)와 아트북 ‘살아있는 성전’ 출판기념회 겸 유품전시회가 10월 16일 오후6시 국립중앙도서관 인문과학실과 전시실서 열린다. 수상집 ‘중간, 그리고’는 1968년 현암사에서 펴낸 강 목사의 수필집 ‘저 문이 닫히기 전에’‘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벌판에 세운 십자가’ 등 세 권에 실린 138편의 수필중 대표적인 33편을 뽑아 묶은 책.‘살아있는 성전’은 강 목사의 목회정신이며 신앙철학을 경동교회의 건축물 사진과 이 교회에서 벌인 젊은 예술가들의 행위예술 등 예술작업으로 연결해 아티스트 이윰이 만든 독특한 책이다. 남궁명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화육사상이란 신앙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생전 인간화와 대화운동에 천착했던 강 목사가 소천한 지 1주기를 맞았지만 많은 교인과 지인들이 고인을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 추모행사도 조촐하지만 고인과 함께하는 만남의 자리라는 성격에 맞췄다.”고 귀띔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사설] 아베총리, 전쟁책임 또 물타기 하나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21일부터 인도를 방문하는데, 그 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들의 무죄를 주장한 라다 비노드 팔(사망) 판사의 유족을 만날 예정이라고 한다. 팔 판사는 1946년 열린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 영국령 인도제국 소속 재판관으로 참여해 “전승국이 패전국의 지도자들을 재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며 재판관 11명 중 유일하게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한 인물이다. 도쿄재판의 인연으로 야스쿠니 신사측은 2년 전 그의 공적비를 세워주기도 했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바쁜 인도 방문 일정을 쪼개 굳이 팔 판사의 유족을 면담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A급 전범들을 감싸안음으로써 전쟁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저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 일정에 대해 “일본과 인도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야말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의 정당성을 줄곧 주장해왔고, 도쿄재판의 결과에 대해 팔 판사와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아베 총리의 이같은 행보가 한국·중국 등 전쟁피해 당사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그래도 팔 판사의 유족 면담을 강행한다면 일본 각료들이 종전일 야스쿠니 참배를 보류한 것도 결국 잔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기회만 생기면 역사왜곡과 전쟁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의 얄팍한 기도는 왜 이렇게 끝이 없는가.
  • 한국·일본 두 여류작가 1년 주고 받은 편지묶음

    한국·일본 두 여류작가 1년 주고 받은 편지묶음

    “서로 무슨 얘기를 쓰자고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지난번 편지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 같은 얘기를 쓰고 있었지요.”(신경숙)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 사이에 물길이 트였다. 신경숙(44)과 일본의 중진작가 쓰시마 유코(60)가 1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현대문학 펴냄)에 담았다. 10년전 한·일작가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년전 신씨의 제의로 2006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북한산 자락을 바라보는 신씨의 집과 아직도 우물이 남아 있는 쓰시마 유코의 집이 그대로 제목이 됐다.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기도 한 쓰시마 유코는 애인과 투신자살한 아버지의 죽음을 신경숙에게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의 한 아이가 내게 와서는, 니네 아버지 살인자라며? 물었습니다.…인명사전에서 아버지에 대해 알아봐야겠단 생각을 했지요. 다행히 살인을 했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일생은 내가 알지 못하는 말로 마감되어 있었어요.” 그는 또 다운증후군인 오빠와의 사별이 주는 상실감, 순진하고 즐거웠던 시절 등을 담담하게 술회한다. 신씨도 헛간에 숨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글을 몰라 자신의 작품을 읽지 못한 어머니 이야기,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한·일 사회에 대한 단상을 주고받는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남북분단에 대한 생각도 함께한다. 신씨와 쓰시마 유코는 1년간의 교감이 “국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매일의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든 자그맣지만 아름다운 선물 같은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슬픔에 울걱이고 기쁨에 출렁이던 두 작가 사이의 물살이 어느 순간 합쳐져 한 방향으로 흐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