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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애국지사 원대성 목사 별세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농촌계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 원대성 선생이 6일 별세했다. 94세.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1933년 2월 전남 순천중 시절 농촌계몽활동과 항일의식 고취활동을 주도하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받자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으로 갔다. 1934년 5월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평양고등성경학교에 입학해 평양지역 학생연합운동에 참여했다. 1936년 3월 일본경찰의 사찰강화로 이 학교를 2년 만에 중퇴했다. 이후 평양지역에서 도시 빈민 및 농촌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4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봉대씨와 2남2녀. 발인 9일 오전 10시. 빈소 미국(애틀랜타) 1-678-714-8952.
  •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한·일 100년 대기획] “이웃 없인 자기나라 없다… 15년전 담화는 역사적 사죄”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공식적인 역사 인식의 준거는 1995년 8월15일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한·일 관계를 가장 험악하게 만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연말 의사당 부근인 도쿄 지요다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담화의 주역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로부터 1시간40분 동안 한일병탄 100년의 의미 및 평가, 양국 관계의 미래, 담화의 의의, 남북한 문제 등을 들었다. →한일병탄 100년의 해를 맞았다. 지난 100년간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지금보다 더 나은 한·일 관계로 발전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1945년 일본은 패전을 선언했고, 한국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전후(戰後)에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 형식적으로는 식민지시대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열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역사적 전환의 의미가 크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의 바람직한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또한 이웃 나라로서 식민 36년을 포함해 깊은 반성을 전제로 지금부터 긴밀히 협력하고 신뢰관계를 쌓아 나가야만 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공동체를 확립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김대중 대통령 당시 문화개방이 있었던 덕분에 서로 문화적인 체험이 가능하게 됐다. 친근감이나 신뢰감이 형성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깊이있게 협조해야 한다. →한·일 관계의 미래 100년을 위해서는. -미래는 열려 있다. 20세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쟁이 반복됐지만 그런 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1세기에 유럽연합(EU), 미국이 각각 나름의 공동체를 구성했듯 아시아도 대응 차원에서 아시아대로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총리시절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더 이상 자기 나라만 잘 살면 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웃나라 없이는 자기 나라도 없다. 한국이 좋아지면 일본이 좋아지고, 일본이 좋아지면 한국이 좋아진다는 관계를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물론 역사, 독도 문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아직도 많지만 완전한 인식의 일치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역사인식의 한 획을 그은 무라야마 담화의 메시지는. -일본은 한국의 식민지화,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자 사죄의 표명이다. 이 바탕 위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신뢰를 구축하고 서로 공생해 나아가자는 취지였다. 더 이상 절대로 과오를 반복하지 말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역사관을 확실히 세우자는 의미에서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담화의 준수에 대한 평가는. -현 하토야마 총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도중에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든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의 사건도 일어났지만 기본 노선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철저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담화를 둘러싼 일본 내의 비판적인 언동도 적지 않다. 지금도 무라야마 담화를 인정하지 않고, 옳지 않은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언론, 출판자유의 나라인 만큼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본다. 부정적인 의견은 일본 국민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8·30중의원) 선거를 보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바꿀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라야마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총리의 새로운 담화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 교수는 한일병합(무라야마 전 총리 표현) 100년을 맞아 이미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가 많이 바뀐 상태이므로 무라야마 담화에 새로운 비전을 더한 새 담화를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의견이라고 본다. 하토야마 정권이 수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뭐라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토야마 총리를 취임 이후 만난 적도 없어서다. 덧붙인다면 한일병합조약은 역사적 배경으로 미뤄 ‘부당한 조약이다.’라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한일병탄 100년을 짚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일본의 이웃나라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북 간의 국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어떤 형태로든 국교는 정상화돼야 한다. 납치문제나 핵문제 등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안들도 남아 있기는 하다. 다행히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회담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가 체결되면 한반도의 통일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성의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 병합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북한 간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 -한국인들이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병합100주년을 맞아 관계전환에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부간의 대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 모두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대중 대통령 재임당시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한국인을 조그만 상자 안에 꿇어 앉히고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의 밀랍인형들을 봤다. 일본군이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역사적 사실이므로 추호도 부정할 수가 없다. 또 보여줘야만 한다. 과거의 반성과 사죄가 필요한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미래지향적이고 협력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서로 문화를 공유했으면 한다. 이웃나라, 형제와 같은 나라인 만큼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이해해 나가길 희망한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 미래를 위해서다. 친구로서 만나고 서로 인정하는 관계를 꼭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이와 함께 젊은이들이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기를 바란다. 글 사진 hkpark@seoul.co.kr ■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15일) 요약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줬다. 나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친다.” ■ 근황은 근황은 아침 6시 일어나 체조·걷기 가끔 한국 역사드라마 즐겨 두툼한 외투 차림에 중절모를 쓴 무라야마 전 총리는 평범한 노신사였다. 중절모를 벗고 앉았을 때에야 호텔 직원도 알아본 듯했다. 8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눈을 덮을 정도의 짙은 눈썹은 여전했다. 인터뷰 내내 말투가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건강의 비결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하면 머리를 써야 하고, 손발을 써야 한다. 호사스러운 음식은 먹지 않지만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는다.”고 덧붙였다. 또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정도 걷고, 체조를 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차는 자전거다.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웃었다. 가끔씩 한국의 역사드라마를 보고 있다. “때때로 강연을 다니지만 시민으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면서 “그러나 평화헌법 제9조(전쟁 포기·군사력 보유금지)를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고향인 규슈현 오이타에 생활하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 도쿄 요치야에 위치한 ‘일본·조선(북한) 국교촉진국민협회’에 들러 협회 사무국장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만나고 있다. ●약력 ▲86세, 규슈 오이타 출생 ▲1946년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 ▲1972년 중의원 첫 당선(사회당)~이후 8선 ▲1993년 사회당 위원장 ▲1994년 6월~1996년 1월 제81대 총리 ▲1996년 사민당 당수 ▲2000년 정계 은퇴 ▲현 사민당 명예당수
  • [로컬플러스] 시민회관 시무식에 참석

    [로컬플러스] 시민회관 시무식에 참석

    남상우 충북 청주시장 4일 사직동 충혼탑을 참배한 뒤 시민회관에서 열린 시무식에 참석했다.
  • “이제는 지방선거 승리”

    “이제는 지방선거다.” 경인년 새해를 맞이하는 여야의 단배식은 오는 6월 치르는 지방선거의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지난 1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신년 인사회에서 “집권 3년차를 맞는 이명박 정부가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이 많은 일을 차질 없이 시행하기 위해서라도 금년의 지방선거는 중요하다.”면서 “준비를 잘하고 힘을 모아서 국민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로 만들어야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지방선거와 관련해 일제히 ‘정권심판론’에 방점을 찍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단배식에서 “2010년을 민주당이 도약하는 해, 대한민국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해로 만들겠다.”며 그 일환으로 ‘지방선거 승리’를 꼽았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것”이라면서 “지난 2년 동안 이명박 정권의 갖은 실정을 과감하게 심판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단배식을 마친 뒤 주요 당직자들과 함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지방선거에서 확실하게 승기를 잡아 기반을 다짐과 동시에 전국정당으로 도약하는 확실한 계기로 삼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1) 양국 석학에 듣는다

    [한·일 100년 대기획] (1) 양국 석학에 듣는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기자│2010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5·18광주민주운동 30주년,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이다. 특히 경인년은 한일병탄 100년의 해다. 서울신문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엇갈려 한 세기를 보낸 두 나라가 과거의 상흔을 씻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는 길을 닦는 연중 시리즈를 시작한다. 첫회로 두 나라의 원로인 한완상(왼쪽)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상 대담 형식으로 양국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점검한다.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경인년은 두 나라가 100년 전을 되돌아보고,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해로 역사를 묻어두고서 바람직한 미래를 열기란 쉽지 않다.”면서 “올바른 역사적 성찰을 통한 한·일 간 성숙한 미래를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 부총리는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인 만큼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이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변화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전향적인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됐는가 등을 포함한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일왕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한 전 부총리는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며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한다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아키히토 천황(와다 교수의 표현)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로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hkpark@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일 100년 대기획] “큰 고통받은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반드시 털고 가야”

    한완상 전 부총리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신년특집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서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부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희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왕의 방한 문제에 대해 “방한한다면 방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되며 역사적이어야 한다.”면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일왕의 방안을 전제로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고 말했다. 다음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두 원로의 인터뷰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홍지민·강병철기자│ →한국(일본)에게 일본(한국)은 무엇인가. 한완상 전 부총리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36년간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억압·수탈·차별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데다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서구 열강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나라다.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 일본과 한국은 무척 깊은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한국을 침략, 식민지화했다. 반성해야만 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봐도 한국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이웃 나라다. →지난 100년간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 전 부총리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이뤄졌다. 늑약의 1조는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이양한다.’이다. 519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이다. 1936년 일본은 내선일체를 외쳤다. 창씨개명, 한글사용 금지 등도 강요했다. 문화와 민족혼마저 빼앗는 통치를 시도했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한 일본은 승전국인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범국인 일본은 통일된 자유 국가로 남고, 식민지로 질곡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한반도는 갈라져 있다. 100년을 되돌아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와다 명예교수 단적인 예로 조선은 식민지였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못하고 침략전쟁에 말려들었다.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가장 큰 죄다. 1945년 한국은 독립을 맞았지만 일본은 침략과 식민 지배에 사과하지 않았다. 역사 자체를 내동댕이쳤다. 때문에 일본은 그때의 역사를 잊고 살아오게 됐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는데 그 당시에도 과거의 반성 없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제 강점이 현재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전 부총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 충격을 줬다. 씻기 힘든 수치심과 분노다. 백색(서구)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등장한 황색(아시아) 제국주의의 제물이 된 사실에 대한 울분과 함께 민족자주의식이 형성됐다. 해방됐을 때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민담을 들었다. 백색·황색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을 향한 불신과 거부감이 한국인의 성격 속에 내면화된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은 한국에 대한 병합(와다 명예교수의 표현대로)한 사실을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잊으려 했고, 실제 잊어버렸다. 그런 탓에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길 정도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역사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를 받은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리고 싶어 한다. 한국을 병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의 생활 속에서는 별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은 분명하게 한국인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너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라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두 부류가 위안부와 강제 노동자다. 합리적으로 털고 가야 한다. 경제적 보상 이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시인 받아야 한다. 또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직한 미래는 가능한가. 한 전 부총리 가능하다. 19~20세기는 서세(西勢)의시대였다. 19세기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 20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였다. 21세기는 동세(東勢)의 시대다. 동세의 기운을 정보기술(IT) 혁명이 활성화시키고 있다. 줄씨알(네티즌)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 데다 연대 강화도 쉬워졌다. 동세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다. 21세기에 일본과 한국, 중국까지 평화의 중심세력으로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글로벌 이슈, 즉 기후나 테러 등 어떤 문제에서든지 굉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일간 평화 강화에 반하는 열악한 조건의 존재가 냉전벨트다.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해체할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지원이 필요하다. 북한 경제에 대한 대국적인 지원은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는 출발점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 북·일, 북·미 관계 정상화가 쉬워질 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정부가 함께 한반도 냉전 체제를 확실히 깨 21세기에 세계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는 선언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와다 명예교수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과 한국은 자국의 테두리만이 아니라 지역적인 공동 번영, 공생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만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서도 한국은 중심에 서서 추진자, 대안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일본도 성심성의껏 힘을 보태는 게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국으로 대륙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지리적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과감하게 말하면 한국과의 협력 없이 일본의 미래는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일의 경쟁과 협력은 필연적이다. 한 전 부총리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 기술(CT) 분야는 일본과 격차가 없다. 서로 협력하며 경쟁할 수 있다. 협력 없는 경쟁은 금물이다. 21세기는 협력을 통한 경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서로 먹고 먹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 엇비슷한 수준의 IT, 동물 복제 등에서 강한 BT, 특히 한류로 대변되는 CT는 일본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제조업, 조선, 자동차 분야 등도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섰다. 와다 명예교수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서로 이끌고 격려해야 한다. 뒤처진 부분은 서로 배우면서 따라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앞으로 나가길 바란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한 가지 사안 속에 경쟁, 협력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어떤 것은 경쟁, 어떤 것은 협력이라는 식으로 이분화할 게 아니다. 조화시키며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한국의 에너지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와다 명예교수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도록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인내심을 갖고 말이다. 한국의 노력 덕에 일본에도 여러 변화가 가능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흘린 땀에 비해 일본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 점도 알고 있다. 초조하기도 하고, 불만이 있는 줄도 잘 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여러 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은 과거의 역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놓아두고 미래로 나갈 수는 없다. 미래를 위해 더더욱 과거 문제를 인식하려고 힘써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부당한 조치들을, 최소한 독일이 연합국에 보여줬던 수준으로 시인했으면 좋겠다. 독일 정부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고개를 숙인다.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 일본이 왜 못하는지 안타깝다. 일본 지식인들의 말처럼 늘 아시아를 넘어 서구를 좇는다면 적어도 독일 수준으로는 가야 한다. 불행한 역사는 청산해야 한다. 양국에는 이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한국 쪽에도 식민지는 한국을 근대화시킨 시기라고 긍정하는 일부 지식인·정치인들이 있다. 일본에도 이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우파들이 있다. 친일 세력과 일본의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의 냉전적 연대와 연계를 어떻게 성숙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것을 위해 한·일간 여러 차원에서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와다 명예교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하토야마 담화’가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무라야마 담화는 침략과 조선지배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는 내용으로 발표됐다. 담화가 나온 이후 일본 국회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병합을 강제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대등한 입장에서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다. 담화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적잖게 훼손됐다. 그러나 식민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등에 대한 역사연구는 꾸준히 진행됐다. 병합은 한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에 의해 강제됐다. 따라서 ‘하토야마 담화’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적 판단을 담아야 한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병합 100년은 상징적으로 아주 좋은 계기다.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 전 부총리 젊은 세대는 조부모·부모 세대가 이룬 성취, 즉 독립운동, 민주화, 인권운동, 평화운동 등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요 문제는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 등 개인 중심적인 복지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분단의 아픔, 억울함에 대해 체계화되고 설득력 있는 지식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젊은이들은 지식을 획득하는 속도나 양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인터넷 시대에 새로 깨우쳐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와다 명예교수 젊은이들이 옛일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든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을 잊지 않도록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연구,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역사란 건망증이 심하다. 방치해 두면 잊혀진다. 따라서 자국만이 아닌 넓은 범위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해 건망증을 방지해야 한다. 한 전 부총리 일본 젊은이들은 조상들이 제국주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0여년 전 중국 창춘(長春)에서 겪은 일인데 일본 청년이 위화관에서 인체실험인 마루타 전시를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다. 자기 조상들의 만행을 믿지 못해서다. 일본 교육이 문제다.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반인류 범죄인데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있는 독립투사의 고문받는 모형을 보고도 충격을 받는다. 양국 청년들이 서로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서로 용서해 주는 두 민족 간의 정신적 트라우마(충격)를 극복하는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청년들의 교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도 앞장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했는데. 한 전 부총리 일왕 초청엔 두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100년 전 병탄의 부당성 등 일본의 잘못을 정중하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북·일 관계 모두에 도움이 된다. 동아시아공동체에도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일왕의 가계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는다. 종묘에서 경의를 표하고, 특히 100년 전 병탄과 105년 전 늑약 때 가졌던 고종황제, 명성황후, 순종의 아픔 등을 되새기고 참배했으면 한다. 대학생들과 자유로운 간담회를 갖는 것도 좋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일왕 초청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와다 명예교수 천황은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전쟁이 끝날 당시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신춘 휘호로 평화를 염원하는 글자를 썼었다. 마음이 깃든 휘호라고 본다. 천황은 히로히토 전 천황이 방문할 수 없었던 중국도 찾았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단 한국 방문 자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적이어야 한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순종의 묘에 참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2010년에 실행된다면 매우 뜻깊을 것이다. 2010년은 10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지막 기회의 해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문제도 병탄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요한 문제다. 한 전 부총리 하토야마 정권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려면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방북 의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지도자와 허심탄회하게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앞장섰으면 한다.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하토야마 정권의 노력은 긴요하다. 역사적인 성취를 하려면 대북 관계를 전향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두 나라 관계를 개선하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부분이 식민지 청산문제다. 과감한 사죄와 적절한 보상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1965년 한·일 기본조약보다 훨씬 평가받는 북·일 기본조약이 나오고, 하토야마 정권이 주창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구축될 것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동아시아의 비핵화도 강조해야 한다. 동아시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함께 해야 할 과제다. 와다 명예교수 일본과 북한의 국교 정상화는 실현돼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100년이 된 이때 피해를 입은 국가의 반쪽과 아무것도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행하게도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국교 정상화를 절차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포기와 국교 정상화 추진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 병합 100년이라는 측면에서 절호의 타이밍이다.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한 뒤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다. 경제 원조를 갑자기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국교정상화 뒤라면 자연스럽다. 그러면 남북대화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본다.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며 머지않은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전제는 모든 과정이 완전히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 북·일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은 분명하다. 일본이 6자회담 밖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꺼낼 경우,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권고할 수 있다고 본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납치문제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을 가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한 前부총리는 1980년대 초까지 저항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도록 금서였던 저서 ‘민중과 지식인’은 운동권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사회과학자이면서 교육, 정치, 종교계 등을 넘나들었다. 시민단체인 경실련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두 차례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데다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 등 2대 정권에서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를 역임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한성대 등 3개 대학의 총장도 지냈다. 최근에는 언론, 논객, 시민과 대화한 내용을 묶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MB(이명박 대통령)까지 돌아보는 대담집 ‘우아한 패배’를 출간했다. ●와다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다. 1960년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 66년부터 도쿄대 강단에 섰다. 소련사와 북한 현대사가 전공이다. 1970~80년대 일본 지식인으로서 민주화 운동 때문에 투옥된 김대중·김지하씨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1980년 김대중씨 사형 선고와 관련, 교수 신분으로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만간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1875~1904년의 역사를 다룬 저서를 상·하권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틈나는 대로 대장금, 태왕사신기,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혁명 1991’, ‘역사로서 사회주의’, ‘조선전쟁’ 등 3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 신분속여 방북 파주시의회 의원들 개성관광중 김일성동상 참배 의혹

    신분을 속이고 개성공단을 다녀온 경기도 파주시의회 의원들이 방북 기간 김일성 동상을 참배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기관이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다.28일 서울중앙지검 등에 따르면 이들 의원은 지난 10월16∼17일 북한을 방문, 개성 관광을 하면서 김일성 동상을 참배한 정황이 있어 경기지방경찰청과 국가정보원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그러나 개성관광을 했던 파주시 의원들은 “당일 오전 10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육로로 북한에 들어가 다음날 오후 2시에 돌아왔으며 김일성 동상에 참배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은 시의원들이 김일성 동상 앞까지 갔다가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이들의 행위를 참배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다. 검찰은 이들이 아직 입건되지 않은 상태이며, 수사가 마무리돼 사건이 송치되면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앞서 이들은 개성공단 입주업체 직원인 것처럼 허위로 방북 신고서를 작성해 통일부의 승인을 받은 뒤 1박2일 일정으로 개성공단을 다녀와 물의를 빚었다.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특파원 칼럼] 한일 병탄 100년과 ‘하토야마 담화’/박홍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한일 병탄 100년과 ‘하토야마 담화’/박홍기 도쿄 특파원

    곧 2009년도 역사 속에 묻힌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는 90년대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는 뭐라 부를까. 전반적으로 삶이 녹록지 않았던 탓에 ‘제로 연대(00년대)’쯤은 어떨까 싶다. 새해는 2010년, 100년 전의 10년대가 다시 돌아온다. 1910년, 한국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아픔의 역사, 일제에 강점을 당한 해다. 때문에 새해는 여느 해와 다르다. 한·일 간의 새로운 100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되짚고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는 원년이다. 일본은 조용하다. 가끔씩 정치인들에게서 ‘한일병합(倂合) 100년’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100년 전의 역사는 강제가 아닌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는 억지 논리 아래 강점, 병탄(倂呑)이 아닌 병합이라고 버티는 게 일본이다. 한·일 간의 극명한 시각차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에 신경을 곧추세울 건 뻔하다. 한국이 되새기는 일제강점 100년의 추이와 강도에 따른 대응책을 찾지 않을 수 없어서다. 일본이 먼저 답을 내놓아야 한다. ‘과민한 한국’으로 치부하면서 지금처럼 ‘무신경한 일본’의 태도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새해는 상징성이 큰 해인 까닭이다.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이 정부의 공식입장”이라는 입에 발린 외교적 수사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폄훼하는 것만은 아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15년간 너무 진정성이 훼손됐다. 1995년 8월15일 담화가 발표되던 당일 각료 8명이 보란 듯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는가. 자민당 정권 땐 공공연히 국회 안에서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망발도 일삼지 않았던가. 연립정권에서 소수로써 한 축을 맡았던 사민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가 지닌 태생적 한계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최근 “기본적인 노선은 지켜졌다고 본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사’를 꺼내고 있다. 지난 10월9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땐 “역사를 직시하고 해결해 갈 용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11월15일 싱가포르의 강연에선 “여러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준 지 6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진정한 화해가 달성됐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과거사의 청산이 불충분하다는 인식의 표명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패전 50년을 정리한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미래의 한·일 100년을 향한 ‘하토야마 담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말이 아닌 실천의 담화다. 100년 전 강점의 비윤리, 비합법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병탄의 폐해를 청산하는 길을 닦아야 한다. 위안부, 징병, 강제 노역 등 수많은 강점의 상처를 가진 개개인들에게 ‘납득할 만한’ 사죄와 보상이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1965년 한·일협정 때 “끝난 일”이라고만 강변할 일이 아니다. 국가가 아닌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 단적인 예로 10대 소녀들을 일본에 강제로 끌고가 공장에서 일을 시킨 뒤 65년이 지난 최근에야 조롱하듯 달랑 연금 99엔을 던진 짓은 ‘끝난 일’이 아님을 자인한 것이다. ‘하토야마 담화’는 새해 벽두가 아니라도 좋다. 8월15일 광복절도, 8월29일 병탄일도 있다. 다만 새해가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 스스로의 역사 대청소는 미래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사(役事)다. 말끔히 씻어내고 털어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실질적인 동반자적 관계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더불어 하토야마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축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임에도 틀림없다. 한·일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맞는 새해가 되기를 힘줘 갈망한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야스쿠니신사 A급 전범 분사를”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전몰자 유족들의 모임인 후쿠오카현 유족연합회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 14명을 분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A급 전범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을 계획·수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부와 육군·해군 등 관계자 28명이다. 그 가운데 14명이 지난 1978년 10월 야스쿠니신사에 위패로 안치됐다. 15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고가 마코토 전 선거대책본부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후쿠오카현 유족연합회는 2007년 이후 11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야스쿠니신사에서 A급 전범의 분리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연합회 차원에서의 A급 전범 분사 제안은 처음이다. 후쿠오카현 연합회는 또 지난달 30일 1000여명이 모인 전몰자 유족대회에서 집행부의 이 같은 방침을 보고받고 승인했다. 이에 따라 A급 전범의 분사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다른 연합회 안에서도 논의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 측이 거부할 경우 교섭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후쿠오카현 연합회의 결정에는 1978년 야스쿠니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 일왕과 총리의 참배가 공식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데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새로운 국립추도시설을 건립할 경우 야스쿠니신사의 존재 의미가 축소될 것을 우려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회원들의 고령화에 따른 회원 감소를 고려, “전쟁의 비참함을 아는 세대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연합회 측은 “한국이나 중국의 의견에 관계없이 유족으로서 전쟁 책임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서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면서 “일왕이 참배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hkpark@seoul.co.kr
  • 군부독재에 항거한 칠레 가수 하라 재안장[동영상]

    군부독재에 항거한 칠레 가수 하라 재안장[동영상]

    모두 30발 이상의 총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사후 36년 만인 지난 6월에 실시된 부검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1973년 9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 쿠테타에 항거하다 사살된 칠레 가수 빅토르 하라의 재안장식이 5일(이하 현지시간) 산티아고에서 열려 수천명의 참배객이 운구차를 향해 꽃을 던졌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영국 출신의 미망인 조앤(80)이 시내를 도는 운구행렬의 맨 앞에 섰으며 관에는 고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졌던 붉은색과 검정색이 들어간 망토가 덮여졌다. BBC 특파원 기디온 롱에 따르면 유가족은 물론 1990년까지 이어진 군부독재 기간 목숨을 잃은 3000여명의 가족과 지인에게도 이날 아침은 매우 특별했다.일부 참배객은 기타를 들고 나와 고인을 칠레의 상징으로 만들었던 노래들을 함께 불렀다.고인의 유해는 산티아고 묘역에 다시 묻혔다. 앞서 사흘 동안 고인에 대한 마지막 존경을 표하는 자리에 수천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피노체트 집권 기간에 기소된 전력이 있는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결국 36년 뒤에 빅토르가 평안히 잠들 수 있게 됐다.”며 “하지만 아직도 평안히 잠들고 싶어하는 다른 수많은 가족들이 있다.진실가 정의를 찾아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그렇게 해야 칠레가 평안해질 수 있다.빅토르 하라여 우리와 함께”라고 말했다. 칠레 공산당원이었던 하라는 포크 음악뿐만아니라 연극 연출가로도 존경받았다. 그는 선거로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킨 초기부터 거리로 나와 연좌농성을 벌인 수천명 중의 한 명이었다.그는 국립경기장으로 끌려가 고문 당한 뒤 살해됐다.여기저기 찢겨진 그의 시신은 며칠 뒤에야 발견됐다. 정부는 유족들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자 지난해 그의 사인을 재규명하는 조사에 착수,연초에 전직 육군 징병관 조제 아돌포 파레데스 마르케즈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그러나 그는 하라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를 사살하도록 명령한 지휘관의 신원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소환앞둔 양산시장 자살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던 오근섭(62) 경남 양산시장이 27일 목을 매 자살했다. 오 시장이 이날 오전 7시쯤 양산시 상북면 소석리 자신의 농장 별채 부엌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고향 후배 이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오 시장은 이날 오전 10시 울산지검에 출두해 금품수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후배 이씨는 경찰에서 “오 시장 부부 등과 함께 농장 안채와 거실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 시장 부인이 ‘시장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 주변을 찾아보다 별채 부엌 천장 철제 빔에 빨랫줄로 목을 매 있는 오 시장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안채와 별채는 30m쯤 떨어져 있다. 오 시장은 오전 7시38분쯤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후송돼 안치됐다. 양산 부산대 병원의 검안 결과 오 시장은 119 구급대가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진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발견 당시 오 시장은 몸에 태극기와 양산시기를 두르고 있었고 “가족·애들에게 미안하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 양산과 대한민국을 발전시켜 달라.”는 내용의 유서 2장(A4용지)이 안방 탁자에서 발견됐다. 경찰과 유족 측은 유서내용 가운데 사적인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결과 오 시장은 자살 하루 전인 26일 오전 11시쯤 춘추공원의 현충탑을 참배하고 오후 1시에는 조부 묘소를 참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오후 6시30분쯤 오 시장의 고향 선·후배 2명이 오 시장 부부가 거주하고 있는 농장 주택을 방문해 오 시장 부부는 안방에서, 후배인 이씨 등은 거실에서 이날 오전 2시쯤 잠을 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 시장을 소환조사할 예정이었던 울산지검은 ‘양산시장 사망관련 검찰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9월 부동산 개발업자 A씨의 자금이 다른 부동산개발업자 B씨를 통해 양산시장 측에 전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자 등을 상대로 수사해 왔다.”고 밝혔다. 자살한 오 시장은 가난으로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신문배달과 구두닦이, 계란장사 등을 거쳐 양곡도매업·운수업·건설업 등으로 자수성가해 양산대학을 설립하고 시장까지 올라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1995년 시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시의회 초대 의장을 지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2004년 6월 양산시장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2006년 2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뒤 공천심사 국회의원 6명에게 서화를 선물한 사실이 드러나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양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금강산관광 11돌… 차분한 현대

    금강산관광 11돌… 차분한 현대

    # 18일 오전 11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금강산으로 가기 위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이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지 11년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현 회장과 함께 북측으로 올라간 사람은 20여명뿐. 현대아산 조건식 사장과 현대그룹의 직원들이 전부였다. 금강산으로 가는 관문인 강원도 고성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에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었다. 불과 3년전인 2006년 11월18일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통일부와 금강산 관광의 협력업체, 외주업체, 관광공사, 언론인 등 관계자 250여명이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북측에서도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해 대표적인 남북협력사업의 성공적 안착을 축하했다. 2박3일의 일정으로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특별공연과 외금강 호텔에서 축하연도 열었다. 현대그룹에서도 8월4일 고 정몽헌 회장의 추모식과 함께 연중 가장 중요한 행사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매우 조촐하고 간소하게 진행됐다. 금강산관광이 1년4개월째 중단된 상태인 데다가 남북관계가 냉각된 분위기임을 고려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 직후로 아예 기념행사조차 열지 못했다. 올해도 특별한 기념행사 없이 지나가려고 했지만, 현 회장이 강한 의지를 비춰 기념행사를 갖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사는 고 정몽헌 회장 추모비 참배, 기념사·결의문 낭독, 기념식수 순으로 간단히 진행됐다. 지난 8월 정몽헌 회장 6주기 이후 3개월 만에 금강산을 찾은 현 회장은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1년4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재개 등 사업정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각오를 다지기 위해 방문을 결정했다.”면서 대북사업 재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현대아산 조건식 사장도 “이제 긴 터널의 끝자락까지 왔고, 새벽의 여명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면서 “반드시 금년 안에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 있도록 회사의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언제쯤 재개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8월 현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재개와 관광객 피격사건의 재발방지를 구두로 약속받은 지 4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관광객 피살사건의 진상규명 ▲재발방지책 마련 ▲관광객 신변안전보장 등 기존 3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관광 재개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장지연, 총독부 기관지에 700여편 기고”

    “장지연, 총독부 기관지에 700여편 기고”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8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공직자와 지식인, 문화예술인 등 당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1905년 황성신문 주필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을 비롯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 20명가량도 친일행위자 명단에 올라 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정책실장은 “친일행위자 중 사회지도층이 많은 것은 한국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경시되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친일파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해 장면 전 부통령, 김성수 전 부통령 겸 동아일보 사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가 들어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22세이던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면서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함께 냈다고 편찬위 측은 밝혔다. 장면 전 부통령은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이사직을 맡았던 경력 때문에 포함됐다. 이 연맹은 매월 첫째 주를 애국주일로 정해 ‘무운장구기원미사제’를 지냈으며 미사 후에는 단체로 신사참배를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던 김성수 전 부통령은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를 맡고 1943년 8월에는 ‘매일신보’에 “문약의 고질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는 등 징병을 격려하는 글을 썼다. 음악가 안익태와 무용가 최승희, 시인 서정주 등 문화예술인의 친일행적도 발견됐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1938년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에텐라쿠’를 발표했는데, 본래 일본 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사용되던 일본의 관현악 ‘에텐라쿠’를 그대로 차용했다. 1942년에는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의미로 ‘만주환상곡’을 작곡해 기념음악회에서 지휘하기도 했다. 현대무용가 최승희는 1937~1944년까지 무용공연 수익 중 7만 5000원이 넘는 금액을 국방헌금·황군위문금 등으로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 서정주는 ‘매일신보’에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해 “교복과 교모를 이냥 벗어버리고 주어진 총칼을 손에 잡으라.”고 썼다. 언론인 장지연, 이종욱 전 의원 등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인물들도 친일행위자로 분류됐다. 장지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투사로 알려졌지만 1914~1918년까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700여편의 글을 실었다. 조계종 종무총장과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욱 전 의원도 1977년 건국훈장이 추서됐지만 1941년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라.”는 통첩을 전국 사찰에 보낸 사료가 발견돼 친일 인사로 규정됐다. 편찬위는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다. 군·경찰·헌병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이종휘 우리은행장 홍유릉 참배

    우리은행은 이종휘 행장 등 경영진 40여명이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홍유릉을 방문해 고종황제와 영친왕을 참배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참배는 1899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이 민족자본으로 출범한 지 110주년을 맞아 최초의 민족 정통은행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은행 설립자금 지원과 2대 은행장으로서 도움을 준 고종황제와 영친왕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참배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홍유릉에 대한 ‘1사 1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추진하는 한편 임직원들이 참여하는 각종 행사와 연수 시 홍유릉 참배를 정례화할 예정이다.
  • 日 빅2 거침없는 입

    日 빅2 거침없는 입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출범한 지 46일째, 자민당 정권 때에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화끈한’ 광경이 잇따라 펼쳐지고 있다. 중추적 역할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를 비롯, 간 나오토 부총리, 오카다 다쓰야 외무상 등 정권의 실세들이 맡았다.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실감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달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와 관련, “머리에서 지워버려라.”라는 말했다. 회담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역사 문제에 대해 “중국 인민의 관심이 높다.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견지하고, 역사를 직시하는 올바른 태도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에 “나 자신과 각료들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설명한 뒤 “야스쿠니는 머리에서 지워버려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고 산케이신문이 1일 보도했다. 정권 출범 전부터 강조해오던 자신의 소신을 한층 원색적인 표현을 써서 분명히 밝힌 셈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중·일 양국간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동중국해 시라카바(중국명 춘샤오·春曉) 가스전과 관련, 중국 측이 단독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며 신중한 대처방식을 제시했다. 또 “서로 협력해 채굴함으로써 동중국해를 ‘우호의 바다’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원 총리도 일정한 동의를 표시했다. 하토야마 정권에 비판적인 산케이신문은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중국 측에 공동개발 협상보류로 인식될 수 있다.”고 비꼬았다. 간 부총리 겸 국가전략담당상은 지난달 31일 민주당 도쿄도총지부연합회의 모임에서 관료들을 겨냥, “지혜, 머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관료들은 성적이 좋지만 상당한 바보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간 부총리는 “효과가 없는 투자를 해 온 일본의 재정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며 재정구조개혁을 설명하면서 화살을 관료들에게 돌렸다. 또 “5000억엔을 투입하면 5000억엔의 효과를, 2조엔을 사용하면 최대한 2조엔의 경제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관료가 말하더라.”라고 소개하면서 ‘상당한 바보’라는 노골적인 용어까지 동원, 유연한 발상의 부족을 강하게 지적했다. 국가의 예산과 외교 기본방침 등을 총괄하는 간 부총리는 조각 과정에서 관료의 개혁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관방장관을 희망했을 정도로 관료에 대한 불신이 컸다. 물론 탈관료정치와도 맞물려 있다. 간 부총리의 발언은 기자회견 금지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관료들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이 적잖다. 간 부총리는 최근 TV아사히의 프로그램에 출연, “자민당은 민주당과 달리 모든 정책을 관료에게 맡겨왔기 때문에 야당이 돼도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을 만들 수 없다.”며 공격하기도 했다. hkpark@seoul.co.kr
  • [사설] 10·28 재·보선 과열 도 넘었다

    28일 실시될 5개 선거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과열을 넘어 혼탁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재·보선 지역에 살다시피하며 선거 과열을 앞장서 부추기는 후진적 행태야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현 정권의 실세와 전직 대통령의 부인들까지 사실상 선거전에 가세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희태 후보가 출마한 경남 양산의 옆 고장인 밀양을 찾았다. 오늘과 내일 경북 청도와 경산을 방문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부인 권양숙 여사를 위로했다. 권익위 측이나 이 여사 측 모두 재·보선과 무관한 일정이라지만 곧이들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녕 무관하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일정을 변경했어야 옳다. 재·보선 지역 주변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이들의 정치적 무게다. 이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무차별 폭로와 근거 없는 비방, 인신공격 등 혼탁 선거의 단골 메뉴도 난무하고 있다. 어제는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 특별당비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지도부 3명을 고발하면서 고소고발전의 심지를 돋웠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의 정치인생과 계파간 권력구도를 걸었고, 친노진영은 정치적 재기의 가능성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야당의 기세에 한나라당은 집권 중반의 국정 동력을 잃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과열 선거판의 한 축에 섰다. 비어 있는 5개 국회 의석을 지역 주민의 뜻에 따라 채워 넣는 선거다. 지난 두 정부와 현 정부가 정권을 놓고 싸우는 선거가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여야가 얻을 것은 의석이 아니라 국민의 냉소와 불신이다. 민심을 호도하지 말기 바란다.
  •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봉하 찾은 이희호여사 盧 전대통령 묘소 참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은 고 김 전 대통령 추모비 제막식이 끝난 뒤 첫 외부 행사였다. 이 여사는 마중나온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노 전 대통령의 묘역으로 걸어가 헌화하고 분향했다. 이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긴 묵상을 하다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 여사와 권 여사는 손을 잡고 묘역 주변과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바위, 사저 쪽을 둘러보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에는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박지원 의원 내외를 비롯해 김대중평화센터 윤철구 사무총장, 최경환 공보실장 등이 동행했다. 박 의원은 “이 여사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권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위로를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어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인접한 양산시 등의 재·보궐 선거를 앞둔 시기에 봉하마을을 찾은 이유에 대해 “날짜는 내가 직접 잡았고 국정감사가 없는 날을 택하다 보니 오늘로 잡힌 것”이라면서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두 분의 순수한 뜻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치적인 해석을 경계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밀양 간 이재오위원장 영남서 지방민생 탐방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21일 경남 밀양 방문을 시작으로 지방 민생 탐방에 나섰다. 권익위에서 시행하는 지역현장 고충민원 상담제도인 ‘이동신문고’의 일환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위원장이 취임한 뒤 첫번째로 방문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경남 양산과 인접한 밀양인 점을 지적하며 “선거를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이날 밀양시청에 차려진 상담장에서 “민원을 직접 들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꼭 해결하고 차선책이라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은 ‘관권 선거’라며 발끈했다. 김현 부대변인은 “하필이면 선거가 치러지는 양산의 옆동네 밀양에 갔다.”면서 “이 위원장의 행보는 관권 선거 의혹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언도된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까지 최후 40여일간 글씨를 써서 남겼다. 유묵의 수신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밝혔다. ●日 류코쿠대 소장품 3점 국내 첫 공개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은 50여점이다. 이 가운데 34점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여는 ‘안중근-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다. 이들 유묵은 안 의사의 손때가 묻은 유일한 유품임에도 지금까지 한 곳에서 전시되거나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묵 34점은 국·공립박물관 및 개인 소장 국가보물 20점과 미공개 작품 5점, 일본 소장품 7점, 중국과 미국 소장품 각 1점 등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들 유묵을 내용별로 정리해 ▲독립·평화 ▲의거·순국 ▲인간 안중근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동양평양론’을 주창한 사상가, 종교인, 선비로서의 안중근을 복원시킨다. 특히 일본 류코쿠(龍谷)대의 소장품 3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또 안 의사의 유묵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의 실물(동국대박물관 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안중근 글씨의 서체 및 서풍은 엄정 단아한 해서와 해행이 주가 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침착 통쾌한 안중근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유묵의 내용은 안중근의 사상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안중근 실존의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의거서 순국까지 담은 사진원본도 이번 전시에는 이들 유묵 외에 의거에서 순국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 28점과 관련 자료 10점이 함께 공개된다. 1909년 10월20일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뤼순 이룡산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뒤 찍은 사진과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27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의 사진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 원본도 전시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안중근 동양평화학교’특강이 열린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김우종 중국 하얼빈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日자민당 총재 야스쿠니신사 참배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야당인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가 19일 오후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참배는 신사의 추계대제에 맞춰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 ‘8·30’ 중의원선거 참패 이후 당 재건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던 만큼 노골적으로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세력의 결집을 겨냥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자민당 총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지난 2006년 8월15일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겸 총재 이래 3년2개월만이다.다니가키 총재는 2006년 9월 총재선거에 출마했을 때 “총리에 취임하면 참배를 자숙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참배를 마친 뒤 “2차대전만이 아니라 근대사 속에서 숨진 사람들이 많이 모셔져 있다.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생각에서 참배했다.”고 말했다. 또 2006년 발언과 관련, “국제관계를 생각했을 때 총리로서는 그 시점에서는 삼가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둘러댔다.다니가키 총재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추진하는 국립추도시설 건설에 대해 “전사하면 야스쿠니에서 모셔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숨진 분들도 많다. 그것도 중요하다.”며 반대했다. hkpark@seoul.co.kr
  • 이재오 위원장 자전거타고 민생속으로

    신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업무 첫 날부터 이른 시간에 자전거로 출근하는가 하면 시장 등을 찾아 민생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이 위원장은 1일 은평구 구산동 자택에서 서대문구 미근동 권익위 청사까지 8㎞ 거리를 자전거로 출근했다. 푸른색 상의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6시24분 자택을 출발해 은평구청·무악재역·서대문역을 거쳐 30분 만에 사무실에 도착, 집무를 시작했다. 자전거 마니아로 유명한 이 위원장은 앞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전거 출·퇴근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 위원장이 일찍 출근함에 따라 주요 간부와 직원들도 평소보다 일찍 나올 수밖에 없어졌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이날부터 간부회의를 종전보다 한 시간 앞당겨 오전 7시30분에 갖기로 했다. 한 간부 직원은 “위원장이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오늘은 6시도 되기 전에 사무실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직원들의 출근시간도 덩달아 빨라졌다고 귀띔했다. 이 위원장이 솔선수범함으로써 자연히 조직 기강이 잡히고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이날 간부회의를 마친 뒤 현충원을 참배하고, 이어 서울 구로구에 있는 자율시장과 국가산업단지공단 내 중소기업을 방문해 서민·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추석 연휴에도 민생 현장을 살펴보고 그 결과를 향후 정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이 같은 이 위원장의 행보는 취임사에서 밝혔듯 격식보다는 일을 중시하겠다는 의지의 실천으로 풀이된다. 또 중도실용이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앞장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권익위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한나라당 사무총장 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인 2003년, 비상대책회의를 한 시간 앞당긴 것은 물론 출·퇴근 시간을 아끼느라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숙식하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인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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