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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한국전관련 구소외교문서 공개/“6·25남침 김일성 주동”확인

    ◎스탈린·모택동에 사전보고… 지원약속 받아/중공군 참전도 김이 요구 6·25사변은 북한의 김일성이 50년 4월과 5월 소련과 중국을 차례로 방문,스탈린과 모택동의 동의를 얻어 일으킨 남침이며 중공군의 참전 또한 김일성의 요청으로 이뤄졌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특히 중공군의 참전 배경은 김일성이 유엔군의 서울 수복 다음날인 50년 9월29일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내 간청한 결과,이뤄진 것으로 러시아의 외교문서들에서 확인됐다. 외무부는 20일 하오 김영삼대통령이 지난달 러시아방문때 옐친러시아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은 러시아 외무부의 대외정책문서 가운데 6·25 관련문서들을 정리,발표했다. 외무부 장기호대변인은 『이번 문서는 대외정책 기본문서 1백건,부속문서 1백16건등 모두 2백16건』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수정및 보완작업을 거친뒤 러시아와 협의를 거쳐 연말쯤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6·25발발 한달전인 50년 5월29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에게 『소련의 지원으로 6월까지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게 됐다』면서 7월에는 장마가 시작되고 북한의 전투준비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6월10일쯤 집결지로 병력이동을 시작하겠다고 소련측에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문서는 또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의 참모장이 소련 군사고문단 대표인 바실리예프중장과 함께 공격계획을 수립,전쟁을 수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 문서를 통해 김일성의 간청으로 소련의 스탈린에 중국의 모택동에게 권고서한을 보내 중공군이 참여하게 된 과정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당시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친서를 보내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함으로써 곧 38선을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고 『소련군의 참전 또는 중공군등의 의용군을 보내줄 것』을 간청한 것으로 드러났다.그러자 스탈린은 모택동에게 권고서한을 보내 『중공군의 파병이 시급한 상황이며 김일성도 그것을 원하고 있다』고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중국 내부의 토의 과정에서 주은래는 처음 파병을 반대했으며 팽덕회등의 설득에 따라 찬성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서에 따르면 또 김일성이 처음 전쟁계획을 세운 것은 6·25발발 1년전인 49년3월 모스크바를 방문,스탈린에게 무력침공및 무력에 의한 통일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이때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북한군의 군사력이 한국군보다 훨씬 우세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일성은 이와 함께 전쟁 시작에 앞서 38선에서 남북한 사이의 교전을 유발하고 북한측이 제의한 평화통일안을 한국의 이승만정부가 거부하는 것을 빌미로 전면침공을 감행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 「장례식」 보다 관심끄는 「추도대회」

    ◎김정일지지 과시용… 주민 대거 동원/“새진용 윤곽… 어떤정책 내밀까” 촉각 북한당국이 김일성장례식과 분리시켜 20일 별도로 열기로 한 추도대회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추도대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김일성사후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어떤 진용으로 짜여질 지 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장례식에서 추도대회를 분리한 것은 장례는 김일성에 중심을 맞춰 충성심을 유발하고 추도대회는 후계자인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자리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게 북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에따라 추도대회는 「민족의 태양」인 김일성사후 북한내부의 정정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방편으로 대규모 종교행사처럼 장중하면서도 군중들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추도대회에서는 특히 김정일이 북한권력체제의 밑그림을 엿볼수 있는 「공개연설」을 할 것인지가 주목된다.왜냐하면 동양윤리상 장례식에서 상주가 등장해 인사말 이외의 말을 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항은 김정일의 총비서직및 국가주석직 취임을 공식 선언하느냐의 여부다.여기에 혁명1세대와 군부등 주요 인물들의 권력서열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것도 이번 행사의 중요한 변수다. 특히 새 지도부가 대남정책등 향후 정책노선에 관해 어떤 원칙이나 입장을 밝힐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이때문에 우리 정부당국 뿐 아니라 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주변국들도 이날 열리는 김일성추도대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도대회 장소로는 대규모 군중동원이 가능한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광장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이곳은 평양시내에서 1백만명 이상을 집합시킬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추도행사의 상징성도 살릴수 있기 때문이다. 추도대회는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맹세하면서 그의 1인자 등극을 기정사실화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1인자로 추대하는 행사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추도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누가 어떤 내용의 추도사를 할 것이냐에 모아지고 있다. 추도사를 할 인물은 차기 권력질서 재편과정에서 새로운 실세로 부상할 가능성이 큰데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인 박성철부주석과 강성산정무원총리,최광군참모장등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당·정·군대표들은 정책노선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김일성노선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키겠다는 식의 원칙적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대외정책도 『자주성을 옹호하는 세계 여러나라 인민들과의 친선단결을 강화할 것』이라는 원론을 되풀이 하겠지만 대미관계나 대남관계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게 북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일성사후 사실상 권력승계절차를 마친 최고권력자 김정일이 어떤 말을 할지도 큰 관심사이다.전문가들은 그가 추도식 성격상 주민들의 허탈감을 달래주는 모종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정일은 그러나 구체적인 시정방침을 발표하기 보다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계승·발전시키자』는 내용의 원론적인 발언을 하는 선에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어쨌든 이번 추도대회는 김일성의 「권위의 공백」을 메우며 10일 남짓만에 김정일이 권력을 얼마나 확고하게 장악했는지를 가늠할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 김일성영결식/김성애 14위로 참석

    【내외】 19일 평양 금수산의 사당에서 치러진 김일성영결식에 김일성으 처인 김성애가 서열14위로 참석,주목되고 있다. 북한방송들이 9일 보도한 영결식 참석자 명단에 따르면 지난 9일 발표된 2백73명의 「국가장의위원회」명단에서 1백4위에 올라있던 김성애가 노동당정치국원겸 평남도당책임빗 서윤석의 뒤를 이어 14위로 거명됐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의 참석여부는 밝혀짖 않았다. 1김정일 2오진우(노동당 정치국상무위원겸 인민무력부장) 3강성산(노동당 정치국원겸 정무원총리) 4이종옥(노동당 정치국원겸 부주석) 5박성철(〃) 6김영주(〃) 7김병식(사회민주당 위원장겸 부주석) 8김영남(노동당 정치국원·부총리겸 외교부장) 9최광(노동당 정치국원겸 군총참모장) 10계응태(노동당 정치국원겸 당비서) 11전병호(〃) 12한성룡(〃) 13서윤양(노동당 정치국원·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14김성애(미망인) 15김철만(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16최태복(노동당 정칙구 후보위원겸 당비서) 17최영림(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부총리) 18홍성남(〃) 19양형섭(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최고인민회의 의장) 20홍석형(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 21연형묵(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자강동당책겸 인민위원장) 22김기남(당비서) 23김국태(〃) 24황장엽(〃) 25김중린(〃) 26서관희(〃) 27김용순(〃) 28김환(〃) 29김복신(〃) 30김창주(〃) 31김윤혁(〃)
  • 시급한 거시국정운영체제/이달곤(시론)

    폭염중 김일성 사망이후의 대처정국을 보면서 더위를 먹은 사람들이 적지않을 것이다.더위와 함께 몰려온 가뭄도 올해는 더욱 유난한 것같다.전력예비율이 위험수준으로 몰리고 송·배전사고가 이어졌으며 예년처럼 제한송전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고 있다.다행히 상수도 오염문제는 재현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김일성의 죽음은 대북한 정책중에서 가장 중대한 변수중의 하나였다.또 매년 여름이면 폭염과 가뭄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불청객이다.아직도 핵문제는 현안중의 현안이 되고 있으며,조금 있으면 또 태풍이 찾아올 텐데…이러한 중대하고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대비가 너무나 허술하다. 냉전구조 상태로 남아있는 우리로서는 남북한 통합과정에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또 국민이 필요로하는 생필품중의 생필품인 물을 적절하게 공급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책무중의 책무이다.이러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사전준비가 너무도 없다.김일성이 죽자 「기다려 보고 대응한다」는 식이고 매년 닥치는 가뭄으로「논바닥이 다 갈라진 연후에야」 총리가 가뭄대책을 거론하고 대통령이 물펌프를 돌려야 했다. 최근의 여론관찰식,혹은 북한 변화대기식 대북대처나 관례적 물대책은 「유연성」있는 정부운영으로 방어될 수도 있다.그러나 이러한 수동적인 땜질 대응으로서는 본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국내외 상황속에서 발돋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정책문제를 종전처럼 단기적·원시적으로 접근하는 정책대응방식에 근본적인 수술이 가해져야 한다.김일성 이후의 북한체제는 더욱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고 다층복합적으로 변화하는 남한사회의 제문제는 종전의 대증요법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이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전대비형으로 국가를 경영하는 첨단노하우가 축적되어야 할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주요한 환경변화에 대한 사전예측과 준비가 필요하며 땜질식 행정이 원인처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적어도 6개월이나 1년정도의 시간을 앞당겨 앞일에 대하여 무언가 숙의를 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정밀하게 검토하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그리하여 사전에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상황에 맞는 대비책(Contingency Planning)을 강구하는데 정열을 쏟는 거시국정운영체제가 요청된다. 이러한 거시적 준비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강조되어 왔지만 구체적인 방향과 수단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었다.이러한 체제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첫째,이 사회에 원로들의 자리매김이 있어야 하고 그들이 유의미한 역할을 하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가야 한다.혹자는 우리사회에 원로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자신이 원로가 되고 싶으면 이제 상당한 원로가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그들이 철없이 근시적 게임만 하고있는 현직자들에게 회초리를 들수 있어야 한다. 둘째,언론이 당면문제와 장기적 문제를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몇시간의 수명만을 누리는 우리 언론은 현실안주에서 탈피해야 한다.특종도 중요하지만 권력자의 단기적 시각을 비판함으로써 언론 본래의 비판적 기능을 회복하여야 한다.한국 언론만큼 가십거리나 음모적 게임해석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민족의 긴 여정속에서 오늘의 문제를 비판하여야 한다. 셋째,장관직을 포함한 임명직의 임기를 연장시켜 나가야 한다.1년정도 재직하는 안보관계장관이 김일성사후를 대비한 정책을 얼마나 개발할 것이며,1년도 못가는 경제관계장관들이 장기적인 가뭄대책을 어떻게 세우며 내년의 전력예비율을 걱정할 것인가.일단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후에 정책의 실패가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단순한 실책 추궁이나 정치적인 방패막이로 정무직 자리가 사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정책개발을 위하여 엄청난 세금이 사용되고 있는 출연연구소나 상당한 보조금이 지불되고 있는 학교들이 보다 자율적으로 일할수 있는 장치를 강구하여야 한다.또 전문가 집단이 집권 현직자들과 격의없는 토론과 비판을 할수 있는 정책공동체(PolicyCommunity)를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현직자들도 적어도 한두개의 업무관련 연구회에는 가입하여야 한다.그리하여 현직자와 비판자들이 장기정책을 개발하고 실시되는 정책의 일관성을공동으로 체크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전환은 행정적인 조치들로서 이루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창조적 리더십이 이러한 체제전환을 도모하는데 필수적이다.우리사회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일단 이러한 체제에 도달하면 정부의 신중한 판단도 국민의 신뢰속에서 진행될 것이다.소극적이며 사변적인 참모들에게 의존하는 리더십으로 새로운 장의 전개는 불가능하다.
  • “김일성망령 몰아내자”/우익노병들 나섰다

    ◎「민족회의」 결성… “대한민국 정통성 수호” 결의/국론분열 좌익책동 배격 다짐/“김일성의 반민족적 죄과 단죄해야 한국전쟁의 장본인 김일성조문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해방후 좌익들과 싸웠던 「우익노병」과 각계 원로인사들이 16일 「자유민주민족회의(민족회의)」를 결성,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기폭제로 나섰다. 이 모임은 김일성사망과 관련,일부 야당 국회의원의 조문발언과 한총련 대학생들의 분향소 설치등으로 물의가 빚어지면서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등 80여개 민간 단체및 정치·법조·언론·학계·종교계등 저명인사들이 기존의 관변 반공단체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대거참여해 구성한 것으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철승반탁·반공 건국학생운동기념사업회장과 김점곤평화연구원장·장지양전공군참모총장·오제도변호사등 원로인사 5백50여명은 이날 상오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주평화통일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민주민족회의」결성대회를 열었다. 대회에는 채명신예비역중장·김재춘전중앙정보부장·박용만민자당고문·이도형한국논단발행인·양동안교수·정재호전국회의원등과 함께 육사8기를 비롯,원로 반공인사들이 참석했다. 상임공동의장을 맡은 이철승씨는 대회사에서 『최근 김일성 사망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론분열양상이 나타나는등 해방 이후 최대의 체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애국단체와 자유민주주의 인사들이 힘을 모아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이 모임체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6·25 전범 김일성은 비록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반민족적 죄악은 반드시 민족과 역사가 단죄할 것』이라면서 『김일성 독재체제와 반민족 노선을 계승하는 자와의 남북정상회담을 엄중 경계한다』고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또 『북한의 통일전선 동조세력들의 작태를 우리 주변에서 단호히 배격한다』면서 『북한 동포들이 반세기에 걸친 조선노동당의 일당 독재에서 해방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민족회의는 이날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운운하며 반민족적인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즉각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할 것과 일본 무라야마총리의 김에 대한 조의 표명은 우리 국민을 모독한 것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을 경우 오는 23일 방한을 저지하겠다는 장수동통일정책개발원장이 내놓은 긴급동의안을 채택,시행하기로 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이찬혁전노총위원장등 12명을 상임공동의장으로 선출하고 오는 8월12일까지 체제를 완전히 정비,본격적으로 민주평화통일운동을 비롯해 북한 민주화촉진과 자유인권회복·해외동포의 평화통일 역량강화·이산가족 재회및 북한과의 다각적 교류추진 등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북5도민,조문 규탄대회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는 16일 하오2시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내 통일회관에서 실향민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죄상 규탄및 친북 용공분자 분쇄 궐기대회」를 갖고 김일성에 대한 조문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해 엄중처벌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대회를 마친뒤 하오 3시쯤 이북5도청 광장에서 친북 용공세력을상징하는 허수아비 화형식을 갖고 구기삼거리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김일성 사망으로 남한에서 「주사파」를 비롯한 친북 회색분자들이 김일성 빈소를 마련하고 조문하는 등 반민족적·반민주적 망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국토분단 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실향민들로서는 김일성사망으로 빚어진 국민의식의 혼란을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의문은 또 『김일성의 죄상을 규탄함으로써 국론분열을 불러 일으키는 친북 용공분자들의 정체와 책동을 단호히 분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오진우­최광/「김정일체제」 군부의 양대 버팀목

    ◎혁명1세대… 김일성 권력투쟁 1등공신/김 생전 한번씩 「딴마음」… 계속 충성 주목 오진우와 최광.김정일이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로 위치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두 사람이다. 오진우와 최광은 모두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혁명 1세대」이다.이들은 해방후 국내기반이 취약했던 김일성이 박헌영의 국내파나 김두봉의 연안파,허가이의 소련파를 꺾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던 버팀목이었다. 둘 가운데서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김일성이 생전에 김정일 후계체제를 위탁한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함경남도 북청출신으로 올해 77세인 오는 김정일과 함께 둘밖에 없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군부의 제1인자이다. 오보다 한살 아래인 군부의 2인자 최광 군총참모장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권력서열 8위이다.6·25때 제13사단장을 맡을 만큼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다.최광의 처인 전여맹위원장 김옥순은 김일성의 전처 김정숙이 죽은뒤 김정일·경희 남매의 유모 역할을 맡아 두 사람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성 생전에 김씨 부자에 대한 두사람의 충성심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한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그대로 이어질지는 단언할 수 없다.일부에서는 군의 두 원로가 군복무경험도 없는 김정일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오진우와 최광 사이에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오가 김일성의 결정적 신임을 받게 된 것은 69년 1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인민군당 제4기 4회 총회에서 부터다.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었던 오는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에 불만을 품은 민족보위상(국방상) 김창봉과 7군단사령관 정병갑,해군사령관 유창권,함흥주둔군사령관 김양춘등 「항일연군」 출신의 군수뇌부를 반혁명 음모로 몰아 숙청하는 작업을 지휘했다.그리고 이때 숙청된 인물들 가운데 최광이 포함됐던 것이다.최는 그러나 탄광노동자로 좌천된 뒤에도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김일성부자를 감격시켜 김정일후계를 공식지명한 80년 6차 당대회에서 복권됐다.오는 80년대초까지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하는데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던 오는 84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상태에 빠졌다.그때 김정일은 특별기로 오를 소련으로 수송,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고 한다.오는 그뒤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정일,첫 공식활동/당·정·군간부 배석 해외동포 접견

    【도쿄 연합】 평양방송은 15일 김정일인민군최고사령관이 14일 김일성주석을 추도하기 위해 평양에 온 해외동포조문단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평양방송에 따르면 조문단은 한덕수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총련대표단과 재미한국인 등이며 이날 만남에는 이종옥부주석과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최광군총참모장,양형섭최고인민회의의장등이 배석했다. 이와 관련,교도통신은 김일성이 죽은 뒤 김정일이 외부인사를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김정일을 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호칭함으로써 비공식회견임을 비췄으나 주요군간부가 배석한 것으로 보도함으로써 이미 권력승계가 사실상 완료됐음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 반김정일세력/군부소장파·유학생 주축

    ◎북,김일성 사망직후 「불온분자」 색출령 북한은 「정적」이라든지 「반체제」라는 개념이 없는 이른바 「유일사상·유일체제」의 사회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 하는 것은 반금정일세력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정권 스스로도 「불온분자」가 있음을 인정한다.북한은 지난 9일 정오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하기 직전 북한 전역에 반금정일세력을 색출하도록 긴급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국과 미국·일본 3개국 정보기관이 파악한데 따르면 북한의 국가사회안전국은 각 지방지부에 「불온분자에 대해 즉각 대응하고 색출하라」는 지시를 시달했다는 것이다. 김정일에 반대하거나 그를 비판하는 세력으로서 우선 주목되는 대상은 북한군부이다.군은 당장 무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부의 핵심세력은 3부류로 나누어진다.첫째는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최광 총참모장등 이른바 빨치산세대이다.이어 오극렬 전총참모장,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이봉원 인민무력부총정치국부국장등 60대의 장성그룹이 있다.마지막으로는 수천명에 이르는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영관급 장교들이다. 이들 가운데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계층은 유학파 장교들이다.그들 다수는 러시아및 동구의 변화를 보면서 북한도 변해야 한다는 합리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그에 비해 빨치산세대가 김정일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은 낮다.60대의 장성들도 김에게 충성하며 군원로들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과 내각에서는 김일성의 총애를 받던 친·인척이 잠재적으로 김정일의 적대세력이다.김일성의 동생과 부인인 김영주와 김성애,그리고 김성애의 아들 김평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정일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일반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식분자」들의 반금정일세력화이다.이들이 본 외국의 「신세계」가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일에 대한 불만층의 폭이 넓어져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누가 반금정일세력인가에 대해 신중한 편이다.최근 들어서는 유일하게 국방부측이 이와 연관된 자료를 내놓았다. 이병대국방부장관은 지난 11일 국회국방위에 제출한 비공개자료를 통해 김정일에 대한 「비판세력」이 5백77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범,당원이 못된 감시대상자,유학생출신,지주등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등을 뽑아 보니 그정도 수치가 나왔다는 것이다.모스크바 타임스지도 14일자 사설에서 북한주민가운데 5백만명은 김일성조문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썼다.우리 국방부와 비슷한 추정을 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북한의 나머지 1천7백만명이 김정일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그들은 김에 반대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김이 경제정책에 실패,북한주민들을 지금보다 더 못먹인다면 잠재적 반대세력은 더 늘어나고 표면으로 나올 수도 있다.북한사회가 개방되면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가리라 예상된다. 김정일은 20년전부터 김일성의 비호아래 후계작업을 진행시켜 왔다.자기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이미 당·정·군에 많이 박아놓았다.따라서 스탈린,모택동사후의 소련이나 중국처럼 「대숙청」은 없으리라고 북한전문가는 전망한다.
  • 군경계령 일부 해제/장병 외출·외박·휴가 허용

    국방부는 지난 9일 김일성의 사망발표에 따라 전군에 내린 특별경계령 가운데 일부 조치를 14일 정오부터 해제했다. 이날 해제된 조치는 주요지휘관및 참모를 제외한 전 장병의 외출·외박·휴가중지등이며 남아있는 조치는 전장감시태세강화·명령시 1시간내 부대복귀등이다. 이날 특별경계령을 일부 해제한 것은 최근 북한군의 특이동향이 발견되지 않고 우리 군이 북한군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 “북주민밖의 참모습알면 유혈사태”/DPA,서방언론중 평양서 첫보도

    ◎수십년간 외부세계와 접할기회 철저 봉쇄/전문가들,「자리」 장기간 지켜낼까 회의적 북한주민들은 김일성 사망에도 불구,사회주의의 깃발을 계속 높이 쳐들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수십년간 가려져온 외부세계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면 북한내에는 유혈극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독일의 DPA통신이 13일 보도했다.다음은 DPA통신의 페터 레스만기자가 김일성주석 사망이후 서방언론으로는 처음으로 평양 현지발로 보도한 기사요지. 『전세계가 우리와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안다.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계속 사회주의의 기치를 높이 치켜들 것이다』 한 인민군소령은 이렇게 다짐했다. 지금 북한을 휘어감고 있는 것은 정치적 고립감과 마비감이다.북한은 과거 일제강점이나 한국전쟁,혹은 한반도 분단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역사적 사건의 희생양처럼 느끼는 듯한 분위기다.이같은 분위기는 사망한 김일성이 50년간의 독재중 주민들에게 「제국주의의 적」들에 대항토록 끊임없이 주입시키면서 서방과 단절시켜온 결과로 봐야할 것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저항이나 반대는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최소한 공개적으로는.수도인 평양은 회색빛 콘크리트로 이뤄진 삭막한 모습에다 수많은 기념물과 동상,텅빈 호텔로 이뤄진 도시다.주민들은 외부세계의 전모에 한번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라디오와 신문들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이들은 언제나 공식적 정부정책에 부합되는 기사만 다룬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과 빈곤상에도 불구하고 식량공급만은 충분한듯 비쳐진다.평양의 한 외교관은 배고픔의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당 지도자 양성소인 평양국립경제연구소의 한인호 교수는 『우리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 있고 경제는 번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구권 붕괴이래 북한이 사실상 경제파탄과 정치적 고립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불문의 사실이다.북한이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38개국에 불과하다.그나마 어느때보다 서방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경제실정에도 불구하고 국교를 가진 나라중 서방국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한교수는 다른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것은 『당의 지침을 무시하고 돈에만 탐닉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은 이와 전적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며 정치적 이념도 아직 살아 있다고 주장한다.그는 또한 북한이 중국의 경제 자유화노선을 도입할 가능성도 부인한다. 이제 북한의 지도자로 등장하고 있는 김정일이 경제를 되살리고 북한을 회생시키는 목표를 달성할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그가 자신의 자리마저도 오래 지켜낼수 있을지조차 회의적이다. 한 전문가는 『주민들이 지난 수십년간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금지되어 왔는지를 깨닫게 된다면 필연코 유혈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 3대혁명 소조/만경대혁명학원/김정일 버팀목 “쌍벽의 두집단”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세습군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일에게는 그를 지탱해주는 2개 특수집단이 있다.만경대혁명학원 출신집단과 3대혁명소조가 바로 그것이다.만경대학원 출신들이 일종의 두뇌집단이라 한다면 혁명소조는 친위조직으로서 김정일을 돕고 있다. ◎김의 모교… 소장졸업생 대부분 직계 활약/주도권 쟁탈전땐 「돌격대」역 맡을 가능성 김정일의 모교로 졸업생들 가운데 소장그룹 대다수가 김정일의 측근을 형성하고 있다.극소수 김정일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40∼50대는 대개 김정일파로 분류된다.김정일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은 혁명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특수학교다.아니 귀족학교라는 표현이 더 옳다.북한의 특수학교로는 또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유자녀학원이 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지난 47년 10월21일 평남 대성군에서 문을 열고 3백35명을 수용했다가 다음해인 48년 현재의 평양 만경대로 이전하면서 수용인원도 5백22명으로 늘렸다.요즈음 학생수는 9백여명.교육기간은 유치원 상급반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을 포함해 모두 11년이다.인민무력부 소속으로 학생들은 재학기간동안 장교복장을 하고 의무적으로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졸업후 최우선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하거나 장교임관 또는 당·정의 초급간부로 기용된다.원하면 해외유학을 갈 수도 있다.이 학교에 입학만 하면 북한사회의 엘리트코스를 밟을 수 있다. 졸업생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정일말고도 강성산(정무원총리)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전병호(당비서) 최태복(당비서) 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김환(부총리겸 화학공업부장) 윤기정(재정부장) 오극렬(전군총참모장) 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이 있다.김정일 오진우(인민무력부장)에 이어 당서열 3위인 강성산과 연형묵 오극렬 최태복 전병호 김광진등 사방을 둘러봐도 대부분 김정일의 직계들이다.정무원총리를 역임했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단장으로 서울에 왔던 연형묵도 김정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김정일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젊은 층은 당·정에 폭넓게 포진해 김정일이 혁명 1세대들에 맞서 권력을 쟁취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앞으로 북한 내부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때 김정일의 돌격대로 나설 공산이 크다.상류층의 자제들로 구성돼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정일의 술친구들은 대부분 김정일 또래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이다. ◎혁명2세대 「친위조직」… 2인자부상 기여/총10여만명… 73년 김영주 축출에 앞장도 이른바 북한의 혁명 2세대는 바로 3대혁명소조를 가리키는 것이다.김정일이 김영주 김성애를 누르고 김일성 다음가는 2인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는 3대혁명소조의 뒷받침이 눈부셨다.김정일이 책임자인 부장에 매제인 장성택을 임명한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이 조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금새 알 수 있다.장성택은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김경희의 남편이다.당서열 1백위권 밖에 머루르고 있지만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3대혁명소조는 지난72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3대혁명」에 따라 73년 2월 발족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72년 12월 노동당 중진들의 비밀회의가 있은지 두달남짓만이다.「3대혁명」이란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이르는 것으로 3대혁명소조 역시 이들 3분야로 나누어져 있다.소조원은 당원과 국가기관종사원 대학생 대학교원 기술자 과학자 가운데 미혼남녀로 구성돼 있다.지난 83년 9월 개최된 3대혁명소조원 대회에서 현인원 4만6천명,소조를 거쳐간 인원 11만명으로 발표된 바 있으나 그 뒤에는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3대혁명소조는 당정책의 관철이라는 표면적인 명분 아래 간부들의 보수주의 경험주의 요령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사상투쟁을 활동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중국으로 치자면 문화혁명을 주도한 홍위병인 셈이다.김정일의 직접 지휘 아래 각급 생산단위는 물론 행정기관 문화기관 학교등에 파견돼 기존의 당조직과 더불어 활동해왔다.하지만 사상투쟁의 실질적인 목적은 김정일의 반대세력 견제와 그의 후계체제 구축이다.3대혁명소조는 사실상 노동당 조직과는 따로 움직이는 김정일의 사조직인 것이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를 김영주를 제거할때 제일 먼저 이용했다.73년 당시 당조직부장이었던 김영주를 그릇된 사상의 찌꺼기를 가진 사람으로 몰아 마침내 한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김정일은 여맹위원장이었던 계모 김성애를 견제하는 데도 3대혁명소조를 동원했다. 하지만 유사시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돼있는 김정일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 떠오르는 「김정일체제」의 기수들

    ◎당/장성택·황장엽/정/김용순·김달현/군/오극렬·이봉원/“이 인물을 주목하라”/장성택/김의 매부… 신임 전폭적/김용순/대외관계 전담 예상/강성산·연형묵·김기남·김국태등도 「활약」 클듯/황장엽/주체사상 최고 이론가/오극렬/차기 무력부장 유력 김정일시대가 사실상 개막됨에 따라 지난 20여년간 그의 후계수업 과정에서 심어둔 측근들이 급부상할 계기를 맞게 됐다. 김정일은 지난 74년 노동당의 핵심요직인 조직비서에 취임한 이래 당·정·군에 걸쳐 그의 인맥 형성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의 권력승계가 기정사실화 됨에 따라 상당부분 감춰져 있던 그의 심복들이 속속 전진배치될 전망이다. 김정일의 친위세력이나 인맥은 그가 지난 72년 이래 줄곧 김일성의 엄호아래 단계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아 오는동안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왔다.이들의 성향상의 편차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맹종하는 극단 수구세력들로부터 조심스럽지만 개방을 주장하는 테크노크라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들중 김정일체제의 향후 노선을 결정할 기수들은 역시 당정에 깔려 있는 이른바 「혁명 2세대」,특히 경제·행정 전문가들이다. 당우위사회인 북한의 특수성과 관련해 가장 주목을 끌 인물은 장성택이다.김정일의 친동생인 김경희(경공업부장)의 남편인 그는 현재 당서열은 1백위권 밖이다.하지만 김정일의 신임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에서 핵심요직인 당조직비서를 맡게될 것으로 관측되며 이를 계기로 급부상이 예상된다. 김일성의 조카사위이자 김일성대학총장을 지낸 황장엽국제담당비서도 빼놓을 수 없는 김정일의 당내 브레인이다.김일성 주체사상의 최고이론가인 그는 이번에는 김정일 우상화작업을 위해 그의 지모를 총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구호제조기」로 알려진 김기남과 「혁명1세대」인 김책 전부수상의 아들인 김국태 등도 선전선동 및 조직 문제를 전담하는 당내 김정일 심복들로 알려져 있다. 핵문제와 대남관계를 포함한 대외 관계를 전담할 북한의 외교 3인방인 김영남외교부장·김용순대남비서,강석주외교부부장 등은 모두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것으로 전해진다.이들중 김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은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용순이다.김정일의 「술친구」로 알려진 그는 김일성사망후 정상회담 무기연기를 내용으로 하는 편지를 우리측에 보내와 김정일과 상당한 「교감」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정무원 쪽에 포진한 김정일 측근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성향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많다. 강성산정무원총리는 이들 경제·행정 관료의 대부격이다.김일성의 이종사촌 동생으로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경제통인 그는 합영법 제정과 나진·선봉특구 개발에 앞장선 개방파로서 김정일체제에서도 연형묵 전총리와 함께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이다. 지난해 김정일을 대신해 경제실패의 책임을 지고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 책임자로 좌천된 것으로 알려진 김달현전부총리의 화려한 재기도 점쳐지고 있다.그는 지난 11일 밤 김정일의 김일성 참배 때 함께 모습을 드러내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김달현은 최영림부총리겸 금속공업부장 및 박남기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 및 홍석형국가계회위원장 등 김의 다른 경제참모들에 비해 대남 경협에 보다 적극적이다.그와 비슷한 성향의 김정일의 고종사촌인 김정우대외경제위부부장의 중용여부도 관심거리다. 이들에 비해 군부내 김정일의 친위세력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특히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필두로 최광총참모장,이을설호위총국장,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 등 이른바 「빨치산 1세대」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김정일에게 반기를 들 조짐은 아직 없다. 그러나 김정일시대에 빛을 볼 군부내 실세로는 김정일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 지원해 온 「혁명2세대」와 해외유학파들이다.즉 김정일과 같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의 오극렬 당민방위부장,이봉원 인민무력부총정치국 부국장 등과 구소련 군사아카데미 등을 수료한 김두남대장,김봉율 인민무력부부부장 등이 그들이다. 이중 오극렬은 김강환·김두남 당군사위원 등과 함께 김정일의 군부내 친위 트로이카의 일원이다.70년대 중반 당시 이용무 군총정치국장 등 군부내 김정일 후계체제에 소극적인 인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인물로 오진우의 뒤를 이을 인민무력부장 제1후보라는 관측이다.
  • “김정일,당·정·군 완전장악/총서기·주석직 모두 맡을것”

    ◎정부관계자/당정치국 비밀회의서 추대 결의했을지도 북한의 김정일은 김일성사망 4일째인 11일까지 권력승계작업을 사실상 완료하고 김일성이 갖고있던 당총서기직과 주석직을 모두 이어받을 요식절차를 곧 밟을 것으로 12일 관측됐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김정일이 11일밤 당정군 핵심인사들과 함께 김일성을 공개참배하는등 북측의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이미 김정일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현재 북한 내부는 안정돼있으며 어느 부문에도 불안정한 조짐이 발견되지않고 있다』고 전하고 『북한이 지난 20년간 김정일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온 점과 김정일의 건재등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분석해볼 때 김정일이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모두 맡아 단일지도체제를 구축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북한은 김정일을 총서기나 주석으로 선출하기 위해 당중앙위 전원회의나 최고인민회의 소집에 앞서 당정치국 위원등 권력핵심멤버들이 비밀회동을 갖고 김정일을 총서기와 주석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정부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김정일은 11일 하오 9시 평양 주석궁에서 권력핵심요인인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이종옥·박성철·김영주부주석,김영남외교부장,최광인민군총참모장등 당정군 고위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일성 시신을 공개참배함으로써 자신의 지위가 확고하게 구축됐음을 내외에 과시했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당정군 고위간부들의 김일성 집단참배에 오진우·최광및 이을설호위총국장등 주요 군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김정일이 권력향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 김성애 “담담” 김경희 “오열” 대조적/상중의 북한 이모저모

    ◎“김정일과 불화설” 김영주 공개참배/북방송,“김사망에 백두산천지 요동” 북한이 11일밤 TV방송을 통해 공개한 김일성 시신과 김정일의 공개참배 광경은 남측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촉각을 모으기에 충분했다.그동안 김일성의 사인이 베일에 가려졌던데다 김정일이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은 가운데 권력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사망(8일)한지 93시간만인 이날 하오 9시 평양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지하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조곡이 은은히 울려퍼지고 실내조명이 어둑하게 비치는 가운데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수정관에만 밝은 조명을 집중적으로 비쳐 자못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 ○…「김일성화」로 보이는 조화로 둘러싸인 수정관속의 김일성은 얼굴에 특별한 상처가 없이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인민복 차림으로 붉은 자주색 모포를 가슴까지 덮고 있었으며 잠을 자듯 둥근 베개가 베어져 있기도. 김일성의 얼굴은 사망 나흘째임에도 변색흔적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망 즉시 영구보존 처리에 들어간것으로 추측되기도. 또 수정관앞에는 공화국영웅및 노력영웅 메달과 각종 훈장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으며 국방위원회 위원장 군최고사령관 명의의 김정일 화환과 노동당·당중앙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중앙인민위원회·정무원 명의의 화환이 시신 주위를 장식. ○…고위 당정간부 1백여명을 대동한 채 인민복 차림으로 참배장소에 도착한 김정일은 평소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초췌한 모습. 입장직후 무엇인가를 묻는듯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시신쪽을 가리킨 김정일은 옆사람에게 잠시 말을 건네는듯 했으나 시종 굳게 입을 다문채 침통한 표정. 시신을 향해 머리 숙여 참배한 뒤 수정관 주위를 둘러보던 김정일은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치기도. ○…이날 첫 공식참배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것은 참배 서열이 어떻게 되는가와 이른바 김정일과 반목관계에 있다는 가족들의 참석 여부가 주목. 김정일 좌측에는 각각 서열 2·3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강성산 정무원총리,우측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최광이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이을설 호위총국장이 김정일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것이 목격됐다. 오진우등은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권 40여년을 이끌어온 「혁명1세대」로 김정일을 「업어키웠다」는 말이 있는 원로들.이들 역시 시신앞에 머리를 숙인채 눈물. ○…김정일은 자신의 참배가 끝난 뒤 군장성및 북한 주재 외교관의 조문을 받는 순서를 마련. 김정일은 조문객들의 인사말에 꼿꼿히 선채 한손으로 악수만하며 묵묵부답. 평양에 요양차 체류중이던 올해 87세의 한덕수 조총련의장은 지팡이를 짚은채 특히 울먹이며 김정일을 위로.김정일은 다른 조문객들에 대한 태도와 달리 이례적으로 두손으로 한덕수의 위로에 응답,대조를 보였다. ○…가족중 입장때부터 김정일의 바로 뒤 오른쪽에 따라 나온 친 여동생 김경희(48·노동당 경공업위원장)는 참배행사중 내내 오열.김일성과 김의 전처 김정숙의 소생으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검은 상복차림으로 자그마한 체구.이와함께 실력자로 부각되고 있는 남편 장성택도 처남인 김정일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주목을 받기도. ○…한편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와 친동생이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부주석등 유가족들이 김정일의 뒤쪽에 위치.확실치는 않으나 지난 3월 핀란드 대사에서 소환된뒤 행적에 관심이 모아졌던 이복동생 김평일도 일단 참석한 것으로 보이나 확인되지는 않았다.경희의 오열하는 모습과 달리 김성애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 ○…북한은 12일 김일성의 사망직후 백두산에서 격렬한 기상변화가 있었다고 전하면서 『백두산과 천지도 비분을 삭이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주장,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날 상오 뉴스를 통해 김일성이 사망한 8일 새벽 백두산에서는 『짙은 안개의 장막속에서 깊이 잠든 듯 조용하던 천지가 갑자기 격랑을 일으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와 때를 같이하여 초속 50m이상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대줄기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는데 이날 시작된 비는 잠시도 그치지 않고 3일동안 3백㎜나 내렸다고 이 방송은 강조했다.
  • “후계구도 완성” 안팎 과시/김일성 시신공개·김정일 참배의 함축

    ◎오진우·강성산대동… 군·정장악 시위/자연사 비춰 “모반세력은 없다” 부각 북한이 11일밤 김일성시신을 공개하고 김정일이 권력핵심요원들을 대동하고 참배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후계구도의 안착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즉 북한주민들과 북한권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외부세계에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이상이 없음을 시위하기 위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연출의 한 가운데에는 김정일이 있다는 것은 현재로선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그가 김일성사망 나흘만인 이날 북한의 고위당·정·군 핵심간부들을 거느리고 빈소에 출현한 것이 그 가시적 증거다. 이날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는 북한의 권력서열과 일치하는 장례위원 2백73명 거의 전원이 나타났다.특히 평양주재 외교사절들의 조문시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김영주·이종옥·박성철부주석과 최광총참모장·김영남외교부장 등 핵심인물들이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시립」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두드러졌다. 더욱이 북측이 이날 공개한 TV화면 속의 김일성시신은 그의 사인이 자연사라는 심증을 갖게 할 만큼 훼손된 흔적이 없었다.따라서 여기서도 쿠데타나 모반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과 함께 김부자간 후계세습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날 김일성유해 옆에는 국방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명의로 된 김정일의 화환이 놓여져 있어 일단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 승계절차는 거치지 않는 것으로 유추된다. 그러나 이날 빈소에서의 여러 정황들을 종합할 경우 김일성의 사망직후인 8일 내부적으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확정했을 가능성이 크다.즉 북한정권의 핵심인물들인 오진우·강성산 등 당정치국위원들이 비밀회합을 통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주변국중 북한지도부와 교감이 가장 깊은 중국의 강택민·이붕 등이 「조선인들이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굳게 뭉쳐 전진하기를 기대한다」는 조전을 보낸 것도 이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정일의 권력승계절차를 밟기 위해 당중앙위원들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11일 평양으로 소집해놓고 있다. 하지만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북한의 핵심기득권세력들이 일단 김정일추대에 합의했다면 그의 당총비서 또는 국가주석취임은 시간문제일 뿐이다.북한권력의 속성상 주요의사결정은 어차피 하의상달식이 아니라 상층부의 지침에 따라 일방통행식으로 결정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짧은 시간의 화면에서 김용순대남비서와 계응태공안비서 및 장성택3대혁명소조부장은 물론 지난해 강등된 김달현전부총리 등 김정일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거 「클로즈업」된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이들이 김정일시대에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건재사실이 곧 김정일체제구축을 역으로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날 빈소에는 또 김정일의 숙부인 김영주와 함께 김과 갈등관계이던 김성애,확실치는 않지만 이복동생 김평일의 모습도 보였다.이러한 광경 역시 이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김일성이라는 선장을졸지에 잃은 마당에 일단 한배를 탓다는 위기의식으로 인한 잠정적 결속이 이뤄졌음을 시사한다는 관측이다.
  • “북한붕괴 사실상 시작됐다”/아르바토프(특별인터뷰)

    ◎김정일 권력 잡지만 결국 몰락할것/주민들 외부와 교감땐 변화 불가피 □아르바토프 약력 ­1923년 우크라이나 공화국서 출생. ­소련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모스크바국제관계연구소서 역사학 박사 학위 받음. ­고르바초프 외교참모 역임. ­소련과학원 정회원. 김일성 사후 북한의 장래는 어찌 될 것인가.독재자의 죽음 뒤에 그 체제의 몰락이 오게 돼있는 것은 스탈린 등의 예에서 보듯 필연적이나 김정일의 권력 승계까지는 일단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는 것이 러시아의 게오르기 아르바토프 미국·캐나다연구소장의 견해다.북한의 내부사정에 정통한 그를 이기동 모스크바 특파원이 인터뷰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의 변화방향에 대해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폭과 속도는 과연 어느 정도일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동구의 변혁과정을 북한에 곧바로 대입할 수는 없다.극단적인 예로 루마니아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그곳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에 반대하는 큰물결이 선행됐다.그것은 반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그러나 김일성은 단순히 노령으로 죽었다.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 왔다.오래 전부터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이양 준비를 차근차근 해두었다.물론 정부내에서 몇가지 갈등이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최고권력은 순조롭게 김정일에게 넘어갈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지 수일간의 평양 분위기를 보면 주민들이 진정으로 이 지도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것을 보더라도 김정일이 자기 부친의 정책을 급격히 바꾸려들지는 못할 것같은데. ▲평양의 애도분위기는 솔직히 묘한 데가 있다.설사 김정일의 반대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다.확실히 북한은 독특한 나라이다.여기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지닌 독특한 전통도 분명 작용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체제에는 문화적,전통적 관습을 뛰어넘는 그 자체의 보편적 논리가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모택동 사후 중국을 보자.당시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교적인 가부장 전통과 모택동이 생전에 누린 독특한 카리스마 때문에 그의 사후 중국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그러나 모의 유지를 이어받은 소위 4인방의 운명이 어떻게 됐나.그후 지금까지 계속돼온 등소평의 개혁정책을 보라. ­북한에서도 변화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이야기인가. ▲이런 체제의 논리는 독재국가일수록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전체주의 체제의 국가경영방식은 역피라미드를 연상하면 된다.제일 아래쪽에 최고지도자 1인을 기반으로 하고 그가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국가조직이 그위에 존재한다.제일 아래쪽 최고지도자가 사라지면 그위의 모든 조직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돼있다.알렉산더 대왕 이후 마케도니아왕조의 몰락,가까이는 1956년 헝가리에서 최고지도자 사후 몰려온 변혁의 소용돌이,체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에서도 스탈린이라는 독재자가 죽은 뒤부터 사실상 몰락의 과정이 시작됐다. ­스탈린체제의 소련과 김일성의 북한체제의 비교는 북한의 장래를 점쳐보는데 유용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스탈린 사후 모스크바의 애도분위기는 지금 평양보다 더 애절했다.정치범 수용소(굴락)의 수감자들이나 이 독재자의 죽음을 기뻐했지 일반국민들은 그에게 마지막 조의를 표하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수백만명이 몰려들었다. 경찰과 군대가 동원돼 질서를 유지하려 했지만 결국 수백명의 압사자까지 생겼었다.그러나 그가 죽은 뒤 불과 2년이 지나면서부터 언론에 그에 대한 비판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그리고 3년뒤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역사적인 스탈린 비판연설을 했다.이 당대회에서 스탈린은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김일성은 거의 절대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북한에 세웠다.그는 자기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정적은 물론 조금이라도 이견을 말하는 사람은 가리지 않고 제거했다.이를 위해 심지어 동족전쟁까지 감행했다.국민들은 외부세계와 완전 격리됐다.북한의 변화는 그곳 주민들이 외부세계와의 교감을 시작하고 국민들이 보다 자유롭게 사고하기를 배우는 순간 체제발전의 논리가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장례후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재개하겠다고 했다.이를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가 외부세계와의 관계발전에 주도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징조로 풀이할 수 있는지. ▲만약 새 지도층 내부에 변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있어 권력내부에 갈등을 유발시키고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면 자연적인 체제발전 과정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새지도부는 단기적인 과제로는 경제개선,고립탈피,핵문제의 종식,남한과 정상회담 개최등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사후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는 새북한의 변화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정책프로그램도 갖지 않고 있다. 경제난,군사개혁등 산적한 국내문제 때문에 한반도문제에 깊이 신경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러시아 정부의 최근 입장은 한반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기 위한 국제회의를 열자는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이 주장을 고집하는지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때피살설,정변설등 김일성의 죽음과 관련,여러 소문들이 나돌았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들은 잘못된 정보라고 본다.그는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았고 누구든 그 정도의 고령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남북정상회담등 남한과의 관계개선도 북·미회담과 같은 맥락에서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는지. ▲권력내부에 갈등만 없다면 남한과의 대화는 조만간 재개될 것이다.새 지도부는 전세계를 상대로 남한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역사적으로 볼때 새지도자는 국민들에게도 새것,변화,과거와는 다른 희망을 심어주고 싶은 의욕을 갖는 게 순리이다.그것이 대외정책에도 나타날 수 있다. ­군부의 역할이 변수가 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지. ▲스탈린 사후 군은 당·KGB·군지도부에 절대복종을 맹세했다.북한의 군도 지금 똑같은 상황이다.특히 김일성은 군대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했다.돌발사고가 없는한 군내부에서 반대세력이 표면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새 북한지도부가 핵게임을 계속할 것으로 보는지.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다른 할일이 많기 때문이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이 죽고 권좌에 오른지 몇개월 뒤 곧바로 주민복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사업을 펼쳤다.전국에 값싼 아파트를 건설했고 국민연금도 6배로 올려주었다.무언가 새것,좋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물론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가 고수해온 노선을 하루아침에 비난하거나 뜯어고치려고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독제체제의 발전논리로 본다면 새정책은 불가피하다.더구나 북한은 경제난이 극도에 달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다.북한도 결국은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공중촬영·통신감청… 북동태 파악/한미연합사 정보수집 어떻게

    ◎첩보위성·유무선 통신채널 총동원/병력·장비이동 등 24시간 감시 가능/안기부도 우방국과 공조 구축,별도활동 우리 군은 북한내부상황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할까.국방부가 김일성사망후 북한의 동정을 매일 브리핑 하고 있어 대북정보수집방법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한미연합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북정보수집방법은 공중정찰과 통신감청등 크게 두가지로 나눠진다. 공중정찰은 지상 2백∼5백㎞ 상공에서 북한군의 움직임등 지상상황을 샅샅이 촬영해 보고하는 KH 9·11·12등 첩보위성이 핵심이다. 미국이 보내주는 이 위성의 사진은 잔디밭의 골프공을 구별할 정도로 정밀해 군장비와 병사들의 이동움직임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또 휴전선근처에 U2R,OV1D,RF4등의 정찰기를 띄워 우리측 영공을 선회하며 북의 군사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하루 한차례이상 출동하는 U2R정찰기는 24㎞의 고공에서 휴전선에서 1백㎞ 북쪽의 북한후방지역까지를 샅샅이 훑고 적기의 교신을 잡아내 폭격에 이용하는 역할을 한다. OV1D정찰기와 국군의 전술정찰기인 RF4기도 휴전선일대를 비행하며 북한군의 동태를 파악한다. 유사시에는 일본 오키나와기지에 있는 공중조기경보관제기인 AWACS가 출동한다.이 정보수집기는 제주도상공에서 한반도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통신감청은 RV1D,RC12H등 통신정보수집항공기와 전방지역의 통신감청소에서 맡는다. 통신감청은 공중촬영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때가 많다.그러나 통신감청은 근본적으로 유선통신이나 육성은 감청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번 김일성의 사망은 공중정찰로는 물론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었고 통신감청이나 인적인 정보에 의해서만이 파악될 수 있었으나 이 또한 근본적으로 불가능했음이 밝혀졌다. 북한당국은 김의 사망을 극소수 상부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도록 극비에 부쳤고 사망에 관한 정보를 통신으로 누설하지도 않아 감청망을 통해 확인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김일성사망이후 합동참모본부를 중심으로 한미양국군의 정보채널을 최대한 활용,북한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국방부 지하벙커에 있는 합참지휘통제실은 상황장교를 10여명 늘려 24시간 풀가동중이고 정찰기출격을 하루 4∼5회에서 11회로 늘리는 등 공중정찰활동을 강화했다. 또 전방관측과 해상초계활동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 2백60여개의 남침징후항목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군과는 별도로 대북정보를 수집·판독하고 있는 국가안전기획부에는 2∼3개 북한관련 전담부서를 두고 있다.특히 이들 대북관련 부서는 거의 인사이동이 없어 수십년씩 일해오고 있는 베테랑들만 모여있다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안기부의 정보수집방법은 사람에 의한 수집,첨단장비에 의한 수집,다른 군정보기관과의 협조,우방국과의 정보공조체제등 크게 4가지로 나눠진다.최고급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는 사람에 의한 방법을 꼽을 수 있지만 아직은 가장 취약한 분야로 알려진다.또 자체 첩보위성통신이 없다보니 자연 미국에 정보를 의존하고는 있지만 최근들어 선진국수준의 감청장치를 확보,대미의존도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혁명 2세대 「3인방」·「80그룹」이 직계/김정일의 군부인맥

    ◎오극렬·김강환·김두남… 대장급 실세/3인방/이봉원등 80년이후 급부상한 브레인/80그룹/혁명 1세대 제거 시도땐 큰혼란 올듯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정일이 원만하게 권력을 세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공산사회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말처럼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장악이 선결조건이다. 과연 김정일은 북한군부에 어느만큼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까. 김정일은 현재 당국방위원회 위원장과 군최고사령관직을 함께 맡고 있다. 김일성이 생존 당시 부자권력세습을 위해 미리부터 아들에게 군요직을 이양,군부를 장악할 수 있도록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은데 힘입은 것이다. 김정일은 이에 따라 현재 북한군부에서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일이 군부에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25일 인민군창건 60주년 기념행사때부터.이 행사에서 북한군부는 김정일에 대해 『위대한 군사전략가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송하고 김정일에게 북한군 최고 계급인 원수를 부여했다. 김정일은 이어 지난 4월21일 인민군총참모장 최광,사회안전부장 백학림,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 김광진과 국방위 위원인 이을설,김일성 군사종합대 총장 최인덕,국방위 위원 이두익·김봉율등 8명의 대장을 차수로 승진시켰다. 이어 4월23일 「군최고사령관 명령 제 0024호」를 발령,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이들 차수에게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는등 모두 6백64명의 군장성에게 계급장을 수여했다. 김정일이 북한군 최고지도자 위치를 굳힘에 따라 북한군 내부에는 그의 측근들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인맥의 선두주자는 오극렬 당 민방위부장(대장·63)·김강환 당 군수부장(대장·61)·김두남 전당 군사부장(대장·63)등 이른바 3인방이다. 이들은 김정일처럼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에서 유학한 혁명 2세대들이다. 3인방에 이어 최근 새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은 군총정치국 조직담당 부총국장 이봉원(65)·해군사령관 김익철(65)·공군사령관 조명록(68)·포병사령관 최상욱·당군사위원 오용방등 「80그룹」이다. 「80」그룹은 80년 김정일체제가 본격 출범하면서 군부 전면에 등장했다. 이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이봉원으로 86년 12월 상장(중장)으로 진급해 당차원에서 군을 통솔하고 있으며 최근 군정책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군부를 완전장악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오진우·최광·이을설·백학림등 빨치산출신의 군원로들이 군부의 최고위층을 형성하고 있어 김정일이 섣불리 혁명1세대를 제거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보내는 혁명2·3세대로 물갈이를 시도할 경우 군부내에 큰 혼란이 초래될 전망이다.
  • 김일성 사망소식이 남다른 두사람

    ◎이북5도민회 강제문의장/“분단 고착 장애물 사라져”/동족상잔 원흉… 정상회담 진의 의심 『남북이산가족의 한맺힌 염원은 한걸음 앞당겨 실현되겠지만 한편으로 김일성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사과를 받아야 할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1천만 실향민들의 정신적 고향역할을 해온 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 강제문 대표의장(72)은 김일성의 죽음을 『남북분단 고착화의 큰 장애물이 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25살때인 지난 47년 공산당학정을 피해 월남한 강의장은 김일성이 좀더 살아 남북화해의 기틀을 정착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일부 견해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그는 최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 때문에 그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공산정권이나 김일성의 본질과 죄과를 망각한 감상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강의장은 이어 오는 25일로 잡혔던 1차 평양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차 서울회담을 약속하지 않았다는 점등을 새겨보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김일성이 진심으로 민족화해를 위해 응하려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일성이 「불바다」발언 파문때 죽지않고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남북화해에 혹시나 기여하지 않았을까」하는 한가닥 아쉬움을 남긴채 죽은 것을 보면 『김일성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쓴웃음을 짓는 강의장은 『그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남북의 창을 열지를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김일성은 잘 죽었다』고 말하는 강의장은 『김일성은 분명 민족분단의 원흉이요 동족상잔이라는 반역사적인 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살아생전에 꼭 사과와 참회를 받아 냈어야 했다』고 아쉬워 했다. 강의장은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에게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지만 김정일은 숙명을 지닌 인간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김일성이 휘둘러온 절대권력을 그대로 이어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김정일이 당장은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록 김일성처럼 강도높은 주민통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개방과 개혁으로 대내외정책기조를 전환하게되고 따라서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나 제한적인 「만남의 장」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원로 장로회 회장(대한예수교합동)이기도 한 강의장은 일요일인 10일 교회에서 『실향민들의 한풀이 마당이 하루라도 앞당겨지도록 간절히 기도했다』며 말을 맺었다. ◎군번1번 예비역대장 이형근씨/“사죄 한마디 없이 죽다니”/세계유일 분단국 멍에 벗는 계기로 6·25참전용사는 물론 그 미망인이나 유족들이 말하는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대한 느낌은 남달랐다. 『김일성은 우리에게는 불구대천지원수입니다.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라는 사실외에도 그가 이 땅에 저질러 놓고 간 일들이 어디 한두가지입니까』 6·25전쟁중 아내와 동생(이상근 당시 대령)을 한꺼번에 잃은 예비역 육군대장 이형근씨(74)는 『당시 참전용사와 그 미망인,그리고 유족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그를 자연사하도록 버려둔 것이 오히려 죄스럽다』고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오늘아침 미국대통령이 사망한 김일성에게 「미국국민들을 대신해 북한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는 뉴스를 들었다』며 『아마 미국대통령은 김일성이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UN군 15만2천명,한국군 25만7천명,민간인 86만명을 사상케 한 전쟁 책임자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그러나 그는 우리 민족에게 뿐만아니라 죽는 날까지 전세계 평화애호 국민들을 위협한 장본인이었습니다』이씨는 김일성이 최근까지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했던 사실등을 예로 들고 『사죄한마디 하지않고 사망한 그에게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예비역 육군대장이라는 영예외에 「대한민국 군번 1번(10001)」·「창군의 주역」·「최연소 육군참모총장」등 군최고의 영예를 지니고 있는 그는 6·25전쟁때 2사단장으로 의정부전투에 참가,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위해 최일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그는 『현재 우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는데도 아직껏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다』며 『이번 김일성의 죽음이 우리민족에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있도록 국민 모두가 국력을 결집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아직은 체제유지에 급급한 만큼 당장 어떤변화를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라고 밝힌 그는 그러나 북한이 과거 김일성때보다는 개방과 개혁에 눈을 돌려 남북대화등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응해 올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정부와 국민들이 이에 신중히 대처해 나갈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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