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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전대통령 「국민께 드리는 말씀」 요약

    ◎“「12·12」는 사회 평온… 쿠데타 아니다” 주장/전 총장측이 먼저 자의적 부대 출동/보안사,내전 막으려 대응병력 동원 90년대도 반이 지나고 몇년 안있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 시기에 제가 70년대의 「12·12사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2·12는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과 관련해서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범인은 대통령을 제거한뒤 자기계열의 군부세력을 이용해서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장악하고 혁명위원회를 구성,정권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털어놓고 확인한 이러한 「3단계 혁명계획」은 10·26의 성격이 내란사건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정씨는 김재규와 동향이며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로 김재규의 추천으로 참모총장이 되었고 10·26 당일에는 범행장소인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해 있는 50m의 지척거리에서 수분에 걸쳐 수십발의 총성이울렸는 데도 평생 총격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가 대수롭지 않은 오인사격으로 생각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건직후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게 됐으면 육군참모총장 직책을 맡고 있는 정씨로서는 우선 그 엄청난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진상과 경위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를 의심하면서도 그와 같은 차를 타고 그가 하자는대로 황급히 현장에서 벗어났습니다. 육군본부로 이동한 뒤에도 군과 휴전선의 이상동향을 알아보고 일단 긴급상황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면 곧바로 정상적 조치들을 취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범행현장 별채에서 김재규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김재규의 지시대로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과 상관인 국방부장관에게도 수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계엄사령관이 된 뒤에는 『박대통령의 서거는 애석하지만 국가와 국민전체의 불행은 아니다』고 김재규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쿠데타를 해서라도 막겠다』고 정치적 저의를 드러냈습니다. 내란사건에 대한 수사는 바로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목적이었습니다. 소장이 대장을 연행했으니 「하극상」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나 이 사건은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범인이 권부의 한 축인 중앙정보부장이었다는 사실,관련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바로 용의자 수사를 위한 영장발부권자(계엄사령관)였다는 사실등 통상적 방법과 순리적 절차에 따라 용의자를 연행·수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밟는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 않나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고 사전재가가 나기 전에 정총장을 연행한 것도 시비가 될 수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미리 연행계획을 보고한 바 있고 처음에는 재가가 난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습니다.재가에는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했으나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출두를 지시했음에도 두차례나 도피·잠적함으로써 그 시간 만큼 재가가 늦어진 것입니다. 합수부측이 처음부터 쿠데타 목적으로 전투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정총장을 연행할 때에는 수사관과 수사관을 돕기 위해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 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체계를 무시한채 자의적으로 부대를 출동시킨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정총장측 지휘관들은 합수부와 대통령 경호부대인 30경비단을 향해 포격을 명령했는데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총리공관등이 있는 특정지역까지 사정권에 포함시키는 위험천만한 만행이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미사일 발포까지 명령한 저들의 난동에 대해 보안사령부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태가 내전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응병력을 출동,난동지휘관들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내란사건 관련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일 뿐입니다. 12·12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께서는 건재하셨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행정부·국회·사법부나 국민생활에 아무런 변화나 영향이 없었습니다.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러한 사태를 「쿠데타」라고 하거나 「군사반란」이라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당시 우리의 생각은 순수했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몇몇 개인의 자의가 아니라 필연적 인과에 따라 굴러가며 10·26이라는 반인륜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12·12의 결단에 힘입은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승화·장태완씨,전씨측 「석명서」 반박/“계염사령관 불법 체포… 분명한 반란행위”/대통령 경호병력 사전결제없이 교체/정/무단 서울진입 무장병력 진압은 당연/장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5일 하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아파트 자택에서 전전대통령측이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 『반성은커녕 지금까지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법정 말고는 어디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 돼 말문을 털어놓는다』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전대통령측은 우선 정전총장의 내란방조의혹에 대해 김재규가 육본벙커로 오는 도중 차안에서 박정희전대통령의 시해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따지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날 하오7시20분쯤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와이셔츠차림으로 뛰쳐나오며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다급한 김에 김부장에게 「외부소행이냐 내부소행이냐」를 물었으나 김부장이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측은 정전총장이 차안에서 김재규와 앞으로 계엄이 내려질 경우 어떤 부대를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상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차안에서 김부장이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 내용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고 계엄령을 내려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다.일국의 대통령이 돌아가신 비상상황에서 사후수습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보안을 지켜야 하지만 참모총장으로서 동원가능한 부대를 염두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시간을 끌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기회주의적 자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흉계다.김재규와 육본벙커로 돌아오자마자 전군에 비상을 걸어 북한의 남침에 대비토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또 자체방위력이 없는 육본을 방어하기 위해 9공수에 출동을 명령했다.전방부대는 북한병력의 움직임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양평에 있던 20사단에 대해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장태완수경사령관을 불렀는데 1시간후쯤 육본벙커로 왔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그날밤 11,12시무렵 김비서실장으로부터 범인이 김정보부장이란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해 듣고 김진기헌병감에게 체포토록 명령했다.수사관들을 차출하는등 준비에 1시간가량 걸렸을 것이다.체포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김재규와 한통속이었다면 왜 나와 사이가 좋지도 않던 보안사령관에게 수사토록 했겠는가. ­전두환전대통령등 12·12관련자들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당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수습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계엄사령관이다.전두환의 합수부도 따지고 보면 법에 명시된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시해범 색출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참모총장의 권한중 일부를 위임해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들이 언제 전두환일파에게 참모총장의 공관을 무력으로 점령해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권한을 줬느냐. 그것도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던 헌병대병력을 자기들 수하의 부대로 교체하고 사전결재를 9시간이나 미루고 감금상태에서 사후결재를 한 것이 어떻게 합법이냐. 또 12·12사태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재향군인회장(63·종합11기)도 전전대통령의 석명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면서 『지휘계통 없이 불법적으로 서울시내에 들어온 무장병력은 당연히 진압해야 하며 이 진압행위를 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군인들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1개분대이상 규모의 무장병력이 서울시내에서 돌아다니려면 24시간이전에 참모총장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반드시 헌병과 함께 다녀야 한다』면서 『수경사령관은 통보가 없는 병력에 대해서는 즉시 연행하거나 포획·사살하도록 임무가 부여돼 있다』고 당시 임무를 설명했다.
  • 전 전대통령 답변이후 「12·12」 처리 절차

    ◎12월13일이전 기소여부 결정/양측 주장 팽팽… 「명쾌한 결론」 어려울듯/「반란」 여부 최 전대통령의 답변에 달려 전두환전대통령은 15일 「12·12사태」에 대한 서면답변을 검찰에 제출하면서 그 내용을 언론에도 공개했다.「12·12」가 사법처리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 판단사항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검찰도 「12·12」조사가 정치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12·12」를 일으켰던 신군부측 인사가 12년동안 정권을 담당했었고 대통령도 두명이나 배출했다. 이들을 사법처리한다면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또 현재의 여권 핵심부에도 「12·12」관련 인사가 상당수 남아 있다. 「12·12」에 대한 법적 판단여부에 따라 정치권까지 일대 변동을 맞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검찰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5·6공」인사들이 정치결사를 추진한다는 「신당설」까지 퍼지기도 했다. 전·노 두 전직대통령측이 검찰의 서면질의에 적극 대응하고 나선 것도 「12·12」를 함부로 다룰 수 없으리라는 기대를 깔고 있다.김영삼대통령도 새 정부출범뒤 「12·12」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자세를 취했다. 그렇지만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흐지부지 넘어가기도 힘들다.문민정부 아래서 과거의 잘잘못은 명확히 짚고 넘어가자는 목소리도 강하다. 검찰조사결과도 결국 현실과 국민정서를 모두 고려한 타협안이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검찰안에서는 「12·12」주동자들이 형법상의 내란죄를 범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군형법상의 항명 및 반란죄에 해당하는 혐의는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노 두 전직대통령에게 직접적 실형이 구형되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불기소처분이라든지,설사 기소가 되고 형이 확정되더라도 대통령 특사등의 조치가 있으리라 여기는 것이다. 내란죄의 공소시효는 15년.때문에 오는 12월 13일 이전에는 검찰의 기소여부가 결론이 나야 한다.다음달 중순까지는 검찰수사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전대통령이 이날 제출한답변서의 내용 가운데 눈에 띄게 새로운 것은 없는 듯 하다.검찰수사기록 사상 최대의 양이라 할 만큼 내용은 방대하나 기존의 주장을 상세히 정리해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특히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합수부측이 연행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군부측과 그들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고소인측 사이의 쟁점은 크게 보아 네가지 정도이다.정승화참모총장의 연행이유및 경위와 함께 최규하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정총장 체포재가를 받아낸 경위,합수부측이 허가없이 병력을 출동한 과정,국방부 점거와 군 수뇌부 연행의 목적등이 논란거리이다. 고소인측은 신군부의 행위가 계획된 군사반란이라고 주장한다.신군부측은 정승화총장이 대통령 시해범인 김재규를 감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정치적 야심까지 드러내 그에 대한 수사는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반박한다. 이처럼 신군부측과 고소인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때문에 이번에 서면답변이 제출되면서 한동안 화제는 되겠지만 명쾌한 결론이 내려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12·12」사건을 비롯,재직 당시의 일에 대해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최전대통령이 입을 연다면 「12·12」가 반란인지 아닌지가 객관적으로 가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최전대통령측은 최근 검찰이 참고인 서면질의를 보내오면 내용을 보고 답변여부를 정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 아이티2인자/군부퇴진 촉구/경찰총수/아리스티드대통령 복귀 요구

    ◎미선 “정권이양땐 망명처 제공” 【포르토프랭스 DPA 연합】 미국주도 다국적군의 아이티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경찰 최고책임자인 미셀 프랑수아대령은 14일 선거로 뽑힌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대통령이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장군의 퇴진을 촉구했다고 이곳의 메트로폴라디오방송이 보도 했다. 이 방송은 군사정권의 2인자로 꼽히는 프랑수아대령이 세드라장군과 필립비암비군참모총장이 함께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AFP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아이티 군정지도자들에게 퇴진을 조건으로 망명처제공을 제안하는 계획을 승인했다고 15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 「12·12」는 우발적 충돌/전 전대통령 석명

    ◎정승화씨가 김재규 도와줘/“사전계획도니 군부반란 명확”/장태완씨 전두환 전대통령은 15일 『12·12 사태는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 내란사건 관련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이라면서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12·12 사태」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면서 발표한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이 건재했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됐으며 행정부와 국회,사법부에도 변화가 없었으며 국민생활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전전대통령은 합수부측의 병력출동에 대해 『합수부가 정총장을 연행할 때는 수사관과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고,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 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계통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군대를 출동시킨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검찰에 제출한 「변호서」에서 사태발생 직전 청와대에 이웃한 제30경비단에 유학성 당시 국방부군수차관보등 8명의 장성이 모인 데 대해 『이들은 수도권 지역의 주요지휘관들로 정총장의 연행 수사가 불가피함을 설명해 이해를 구하고 군부내의 동요를 사전에 막겠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이어 최규하 당시대통령에게 정전총장의 연행을 재가받는데 8시간이 걸린데 대해 『최대통령은 재가를 하는데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노재현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의 출두지시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도피 잠적함으로써 재가가 지연됐다』면서 『처음에는 보고후 재가가 난 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로 절차상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정총장은 김재규에 의해 10·26 내란의 군부후원세력의 핵심으로 역할을 하게 돼 있었고 실제로 내란음모의 2단계 계획인 「계엄령선포로 사태장악」까지 실현되도록 도와주었다』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합수부에서 조사된 정전총장의 10·26 전후 혐의내용을 열거한 뒤 『정총장은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이날 대국민 발표문과 함께 검찰에 보낸 2백28쪽 분량의 답변서,84쪽의 「변호서」,정전총장의 10·26 관련 행적을 요약한 도표등을 함께 배포했다. 한편 12·12당시 수경사령관으로 신군부와 맞섰던 장태완재향군인회장은 이날 『전두환전대통령이 12·12는 10·26사건에 관련된 정승화 당시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충돌 사건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12·12는 사전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하극상에 의한 군부반란임이 명확하다』고 반박했다. 정전총장도 『전씨측의 이같은 주장은 모두 허구이자 조작』이라면서 『반성은 커녕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일 어선 쿠릴열도 침범관련/러,극동서 대규모 군사훈련

    ◎“국익수호 차원” 【모스크바 연합】 러시아는 시베리아 동쪽 국경의 안전보장과 국익수호를 위해 10일부터 17일까지 대규모 지휘참모연습을 실시한다고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알렉산드르 팀코 중장이 8일 말했다. 팀코 장군은 이번 훈련에는 국경수비대의 자바이칼,극동,태평양 및 동북군관구를 위시해 바이칼 동쪽에 주둔해 있는 지상군의 각 군구와 방공군,태평양함대사령부,내무군 부대 등 일체의 군사조직이 참가할 예정이며 안드레이 니콜라예프 수비대총사령관이 지휘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이같은 대규모 지휘참모연습을 실시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하고 훈련의 주목적은 각 군사조직간의 협력작전을 통해 국경선 안전보장과 이 지역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서방 외교소식통들은 러시아의 이번 지휘참모연습이 최근 빈번해진 일본어선의 남쿠릴열도 일대 침범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장애딛고 우뚝선「우리시대 사표」/헌법재판소장 지명된 김용준전대법관

    ◎“법은 물 흐르는 것과 같아야” 소신 일관/법과 현실 관리 “생수기판” 판결 「소아마비판사」가 법조인 생활 34년만에 4부요인의 하나인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됐다. 8일 제2대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용준전대법관(56)은 서울 은평구 갈현동 집을 찾은 보도진의 인터뷰요청에 대법관출신의 법조인답게 『국회동의절차가 아직 남았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그는 3살때 앓은 소아마비로 안쪽으로 휘어져 체중을 이기지 못하는 오른발을 지탱하기 위해 오른편 무릎아래 철제 보조기를 받치고 있다.외출때는 단장과 굽이 높은 특수화를 신고 다닌다.걸을때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그의 걸음걸이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쓰럽게 한다.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그늘이라곤 찾을 수 없다. 김헌법재판소장내정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소아마비판사」가 그에 대한 신체적 특징을 지칭한 애칭이라면 「고시 최연소 수석합격」,「서울법대 수석졸업」은 타고난 천재성을 보여준다.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런 수식어와는 무관하다. 『다시 태어나도 법관이되겠다』고 항상 되뇌는 말처럼 자신의 길을 천직으로 여기는 자부심과 장애를 극복한 용기,꺾일줄 모르는 의지가 오늘의 그를 이뤘다.그의 인생역정은 장애인은 물론 일반국민의 사표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김내정자는 지난 7월10일 판사로서의 최고의 영광인 대법관직에서 퇴임하면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신체장애에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어릴때 「병신」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충격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워낙 주위 사람들이 잘 도와줬고 제 성격이 본래 쾌활하거든요』 또 서울 교동국민학교재학시절 어머니의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할만큼 불편한 몸이었지만 어엿한 야구부원이었다.직접 선수로 뛰지는 못했지만 「매니저」로 활약했다.낙천적이고 적극적인 그의 성격을 읽게하는 일화중 하나다. 『법이란 물(수)이 흐르듯(거) 막힘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내정자는 지난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생수시판허용 판결에서 이같은 평소 법철학을 잘 보여줬다.법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줄여가는 것이 법원의 할 일이며 법조문에 얽매여 현실을 무시하지 않겠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을 판결로 표현한 것이다. 법관이 된지 4년만인 63년 박정희최고회의의장의 대통령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구속된 송요찬전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줘 팬레터를 받는 판사가 된 것처럼 오는 99년까지 펼쳐질 「김용준의 제2기 헌재」의 소신있는 진로에 기대를 품게 한다. 6·25전쟁때 납북된뒤 생사를 알지 못하는 부친(김봉수)을 대신한 홀어머니 박영숙씨(76) 슬하의 어려운 환경속에서 성장한 그는 장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학을 거부한 경기고로 진학하지 못하는 첫 좌절을 겪었다.서울고에 들어가 2학년때 검정고시에 합격,서울법대에 입학한 그는 만19살인 3학년재학때 고등고시 9회에 수석합격해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장애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강자의 횡포로부터 보다 많은 약자를 두호하기위해」 법관의 길을 택했다는 김내정자는 이화여대 과메이퀸출신인 부인 서채원씨(54)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 김정일 10월10일까진 승계/취임발표없으면 신변 이상/중당국 관측

    【도쿄 연합】 중국의 외교부·국가안전부 및 인민해방군 총참모부는 최근 합동회의를 열고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오는 10월10일까지 김정일의 당 총서기 등에 관한 취임 발표가 없을 경우,이를 문제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부 평가를 내렸음이 밝혀졌다고 일본의 교도(공동)통신이 5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외교 소식통은 중국정부의 합동회의는 김일성의 49제가 끝난지난 8월하순에 열렸다고 밝히고 그 회의에서 이달 9일의 북한 건국기념일에도 김정일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관측을 내렸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 합동회의는 김정일에 대한 중국의 지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러나 김정일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으며 당뇨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견해의 제시와 함께 김정일이 10월10일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의 신변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 “중,이달중순 대만 침공훈련”/대북 군참모장

    ◎“상륙전투력 수년간 배양” 【타이베이 UPI 연합】 대만의 유화겸 군 참모장은 3일 이달에 실시할 예정인 중국의 군사훈련은 궁극적으로 대만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경고했다. 유대장은 이날 군리셥선 행사장에서 군 지휘관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중국이 9월중순 계획하고 있는 군사훈련 장소로 선택한 지형은 본토를 마주하고 있는 대만 서부해안과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또 중국이 과거 몇년동안 상륙전 전투력을 배양해왔다고 말하고 중국이 기습능력을 갖추고 있는한 어느때고 공격이 시작될수 있음을 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김철우 전해참총장/추징금 3억 납부

    무기중개상으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및 추징금 3억원이 선고됐던 김철우전해군참모총장(57)이 추징금 3억원 전액을 검찰에 납부한 것으로 4일 밝혀졌다. 김전총장은 해군참모총장으로 재직중이던 92년 해군이 추진중인 한국형구축함 사업과 관련,무기중개업체인 정의승학산실업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기소됐었다. 한편 슬롯머신업자 정덕진씨 형제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6억원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박철언전의원은 지난달 11일 추징금 가운데 2억원을 낸 데 이어 지난 2일 2억원을 추가로 납부,모두 4억원의 추징금을 납부했으며 올해말까지 나머지 2억원을 완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 “일,유엔군활동 합헌”/외무성 문서작성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 외무성은 유엔 안보이 상임이사국 진출로 생기는 군사적 활동(공헌)이 평화헌법 위반이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하는 문서를 마련한 것으로 3일 밝혀졌다. 외무성은 이 문서에서 안보이 상임이사국 진출로 발생하는 군사적 공헌이 헌법위반이라는 우려가 잘못된 것이라는 이유로 ▲유엔 헌장상 상임이사국과 일반 회원국간 의무에 차이가 없으며 ▲유엔군이 편성될 경우 「군사참모위원회」에서 행하는 병력의 전략적 지도는 학설상으로도 병력을 직접 지휘하는 것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 「12·12」 고소­맞고소/정승화·박준병씨 조사

    「12·12사태」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부장검사)는 2일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과 이 사건 고소인 22명을 무고혐의로 맞고소한 당시 20사단장 박준병의원을 소환,조사했다.
  • 핵·관계개선 대미직거래 “창구트기”/북의 정전위체제 무력화 속셈

    ◎한미공조 틈새 벌리기 집요한 기도/「전문가회담」 앞서 중 철수 결국 관철 이번에 중국이 군사정전위 철수를 결정한 것은 정전협정체제의 폐기를 집요하게 획책해온 북한측의 정전위 무효화 전술에 중국이 공조한 산물로 볼 수 있다. 정전위의 중국인민군 지원단 철수 결정이 북한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더욱이 북한이 이미 정전위 대표단을 철수한데 이어 정치협상기구 성격을 띤 인민군대표부를 판문점에 설치한 상태에서 이번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체제의 변화를 기도하고 있는 이면에는 우리측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직거래를 통해 관계개선과 경제지원 등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장기적 전략이 깔려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즉 정전협정을 북한과 미국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논리를 펴면서 그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등을 추구한다든가 상주연락사무소급 이상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는 속셈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올들어 그들의 이같은 장단기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1차적으로 군사정전위를 기능상실 상태로 몰고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해 왔다.지난 92년 한국군 황원탁소장이 미국측을 대신해 유엔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직후부터 군정위 본회의 참석을 거부해온 연장선상에서 중립국감독위 철수통보에 이어 지난 4월28일부터 군정위 비서장을 아예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북측이 지난 5월24일 유엔사측에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도 정전협정의 폐기를 노린 계산된 행동이었다.지난달부터 북한측이 판문점 북측지역에 있는 판문각 확장공사에 들어간 것 역시 판문점대표부 활동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군정위의 효력정지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처럼 북측이 군정위 기능정지를 꾀하고 있는 데는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되 정전협상의 당사자로서 미국과의 대화채널은 유지·확대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때문에 이러한 북측의 처사들을 미국과의 핵 및 관계개선을 일괄타결하기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북한특유의 「벼랑끝 대화전술」의 일환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미­북 전문가협상을 앞두고 중국측의 정전위 철수발표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측도 정전협정을 무효화한 뒤 당장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게 정부당국의 분석이다.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를 약화시키고 미국과의 대화창구를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은 미국과의 막후접촉에서 단골메뉴인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이로 미뤄 볼 때 북측은 의도적 긴장조성을 통한 대내 결속 도모 차원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중간단계의 과도기 체제를 일단 중간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표 소환」 중국의 정전위정책/정전협정 존중·평화협정 지지 함께/한국 자극않고 북지원 「양다리 외교」 중국이 1일 군사정전위에서 대표단을 소환키로 결정함으로써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중국 외교부 수뇌부는 북한 특사로 지난달 30일부터 북경을 방문중인 외교부 부부장 송호경과의 일련의 회담 끝에 북한측 주장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라는 북한측 주장에 동조하는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전위대표단 철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은 한반도에서 당사국간 협상을 통해 새로운 평화보장 체제가 탄생하기까지는 기존 정전협정체제가 유효하다는 상치되는 입장을 동시에 밝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혼선은 중국측이 나름대로 이 문제로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대외명분상으로도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 정전협정유효라는 원칙론을 덧붙인데서 빚어진 것이란 분석이다.중국이 명분상의 입장 선언은 전기침외교부 부장이,실질적 입장은 당가선외교부 부부장의 입을 통해 밝히는 더블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측으로 보아서도 중국의 입장은 분명치 못한 구석이 있는 셈이다.왜냐하면 당부부장은 국제관계의 변화와 한반도형세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평화체제수립이 필요하다는데 두나라(중국과 북한)의인식이 같다고 송호경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바로 같은날 전외교부부장은 송에게 기존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보장 제도 마련을 위해선 한반도안정과 평화정착이 전제조건이며 여전히 정전협정은 유효하고 이해당사자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 주장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중국측은 정전위에서의 대표단 소환 필요성을 정전위의 파트너를 이루고 있는 북한대표단이 이미 철수,정전위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돼 있어 북한측의 요구를 고려한 끝에 이같이 결정할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의 정전협정의 유효성 천명에도 불구,우리측으로선 중국 외교부 당국자가 정전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체제에 대한 고려논의가 언급됐다는 점에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한편 북경의 외교관측통들은 중국과 북한과의 이러한 논의는 지난6월 최광북한총참모장의 방중등을 통해 계속돼 왔으며 북한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날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또 관측통들은 중국도 정전위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여지를 갖게 하고 중국 자신들도 대미 외교의 협상력을 발휘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은 주중 한국대사관등에 중국의 이번 조치가 철수가 아니라 다시 대표단을 재파견할 수 있는 소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북경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중국측의 결정이 정전위의 단계적인 무력화와 나아가서는 주한미군철수의 당위성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성하면서 한국정부의 대응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 중국/올 4차례 대규모 군사훈련/대만해협 전투비행 급증

    ◎대북선 군전력 증강·대응훈련 채비 【홍콩 연합】 중국인민해방군이 올들어 전례없이 대만부근 대륙동남부지역에서 4차례에 걸친 대규모 군사훈련들을 잇따라 펼치고 있고,중국 전투기들의 대만해협 비행도 갑자기 급증해 대만당국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고 홍콩 연합보가 1일 타이베이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손진 대만 국방부장과 참모본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이같은 사태는 작년까지 찾아볼 수 없던 것으로 대만당국은 인민해방군의 이같은 활동의 동기를 극도로 중시하고 철저하게 정보수집에 나섰다고 말했다. 중국이 잇따라 거행했거나 펼칠 대륙 동남부지역의 집중적 대규모 군사훈련은 무기,물자,병력의 공중투하훈련을 비롯해 야간전투훈련,삼군합동훈련,동해사호훈련이라고 참모본부 고위관계자는 밝혔다. 인민해방군은 또 대만에서 가장 가까운 성인 복건성의 용계 등 4개 군용비행장도 그간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최근 새로 활주로와 건물 등을 개보수해 전투기와 폭격기까지 출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참모본부 고위관계자는 밝혔다. 손진 국방부장은 대만군도 이달하순 한광십일호훈련을 펼쳐 군사력을 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전·노씨 「12·12답변」 왜 늦나/두차례 연기요청의 속사정

    ◎“정치적 해결 모색 시간벌기 의도” 분석/검찰의 기소유예 전망속 야공세 신경 검찰이 「12·12사태」와 관련,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게 요청한 답변 시한이 두 차례나 연기됐다.전·노 두 대통령측은 검찰이 세번째 요청한 시한인 9월3일도 지키기 어려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강원도 용평으로 휴가를 떠난 노전대통령은 5일에나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전전대통령측은 『3백개가 넘는 문항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과 상황설명을 하려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답변이 늦어지는 이유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처럼 보인다.연희동측의 한 관계자는 『전·노 두 전대통령은 12·12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검찰에 답변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따라서 연희동측은 검찰 조사는 물론 그 뒤에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상황을 상정,그 모두에 대비하는 복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는 것 같다. 두 전대통령측의 차규헌 박희도 최세창 황영시 이학봉씨등 「신군부」 관계자들은 지난 7월 28일부터 몇차례에 걸쳐 12·12사태 고소인인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전수경사령관 등을 무고·내란혐의 등으로 맞고소하기 시작했다.8월에 들어서는 허화평 허삼수 박준병의원등 민자당 의원들까지 고소 대열에 참여했다. 연희동측이 이처럼 「맞불작전」으로 나선 데는 단기적으로 시간을 벌어보자는 의도도 포함된 것 같다.9월 10일이면 정기국회가 시작된다.이번 정기국회는 예산·결산 국정감사 등 연례적인 사안말고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동의안의 처리,선거구확정위원회의 구성,국가보안법의 개폐,북한 경수로 건설 지원문제등 여야를 긴장시키는 쟁점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정기국회가 개회되면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12·12사태 수사를 둘러싼 논란에 당력을 총동원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연희동측에서 청와대나 최규하전대통령측과의 접촉을 시도하려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이 관계자는 답변을 늦추고 맞고소로 시간을 벌면서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려는 의도도 엿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그러나 청와대와의 접촉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희동측의 계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된 뒤까지 내다보고 있다.검찰주변에서는 일부 무혐의,일부 기소유예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유예 처리한다면 야당이 이를 정치쟁점화할 것은 불을 보는 듯 명백하다.그렇다면 12·12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가 여론의 흐름을 가를 수 있다.전·노 두 전직대통령측의 맞고소는 그런 차원에서 그들이 축적한 정보력을 내세워 고소인측의 기를 꺾어보자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 쓰레기통과 단두대(박강문 귀국리포트:13)

    ◎역사의 고비마다 철저한 과거청산 스포츠서울에 글을 연재하고 있던 영화평론가 김대환씨를 파리의 카페에서 만났을 때 종업원에게 재떨이 하나 달랬더니만 카운터의 앞치마 두른 그 남자 말이 걸작이었다.『카페 바닥 전부가 재떨이요』 김씨와 나는 파리야말로 어느 도시보다도 담배꽁초를 부담없이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데 동의했다. 파리 시민의 공덕심은 그리 본받을 만하지 않다.거리에 담배꽁초 버리기는 예사다.차를 몰고 가면서 차창밖으로 재떨이를 비우는 낯두꺼운 이들도 있다.또 거리가 개들의 공중변소라도 되는 양 방안에서 기르던 개를 끌고들 나와 배설케 한다. 밍크털옷으로 치장한 귀부인풍의 여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애견이 길에다 실례하는 데는 아주 태연하다. 그런데도 파리는 깨끗하다.시청이 청소를 워낙 잘하기 때문이다.물을 틀어놓고 담배꽁초 따위는 하수구에 흘려 보낸다.개똥은 코끼리 코같은 흡입장치를 한 앙증맞은 1인승 청소차가 인도로 천천히 다니면서 빨아들인다.청소차도 용도에 따라 종류가 가지가지다. 청소 분야라면 프랑스는 단연 선구적이다.우선 쓰레기통의 발명이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프랑스의 발명품 가운데 발명자의 이름을 딴 것에 기요틴(단두대)과 함께 이 쓰레기통이 있다.프랑스말로 쓰레기통을 「푸벨」이라 하는데 바로 발명자 이름이다. 외젠 푸벨은 법학 교수를 하다가 행정가가 되었고 후일 바티칸 대사도 지냈다.도시 청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던 그는 센 지방의 도지사 비슷한 직책에 있을 때인 1884년 「쓰레기는 반드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조치를 발표했다.행정당국이 설치한 이 쓰레기통에는 두개의 손잡이와 뚜껑이 있었다.번호가 붙여진 이 통들을 수레에 실어다 비웠다. 옛날 도시들의 거리는 집에서 멋대로 내다버린 쓰레기들로 지저분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쓰레기통의 발명은 도시 청결을 위한 혁명적인 해결책이었다.1백10년전 당시 푸벨의 조치는 큰 논란을 일으켰고 국회에서까지 논의됐으나 그는 꿋꿋이 밀고 나갔다.오늘날은 전세계가 쓰레기통을 쓰고 있다.프랑스인들이 쓰레기통을 「위대한 발명」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다른 또 하나 발명자 이름이 붙은 기요틴(단두대)의 출현도 쓰레기통의 발명과 무관한 것같지는 않다.프랑스인들은 쓰레기 처리에서 천재성을 보이기에 앞서 그전에 이미 역사의 청산이라는 문제에서도 철저함을 추구했다. 기요틴은 2백여년 전인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제작및 사용을 제안한 제헌 의회 의원이며 의사인 조세프 기요탱의 이름을 딴 것이다.사형수의 고통을 줄이자는 뜻이었으나 구체제의 잔재를 빨리 뿌리뽑기 위해 사형 방법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도 있었다.망나니에 의한 참수는 왕왕 솜씨가 서툴러 단칼에 베지 못하면 볼썽사나웠고 사형수의 고통이 컸다.기요틴 처형은 깔끔하고 확실했으며 신속했다. 기요틴으로 표상되는 피비린내와 공포 속에 프랑스 혁명은 진행되었다.프랑스의 역사 청산이 철저함은 제2차 세계대전후 나치 협력자에 대한 가차없는 처형에서도 볼 수 있다.국민을 배반한 자가 천명을 누리는 일이 프랑스에서는 없다. 생활 쓰레기든 역사의 쓰레기든 프랑스의 쓰레기 처리는 명쾌하다.그런데 담배꽁초를 거리낌없이 버리거나 밍크 외투 입고 길에 개 똥뉘는 프랑스인의 모습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이는 극히 표피적인 것일 뿐 역사의 고비마다 그 줄기를 바로 잡아가려 애써 온 것이 프랑스의 참모습일 것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비하면 담배꽁초나 개똥이 잠시 길에 있는 것쯤 무슨 대수겠는가.
  • 김 대통령,작가 박경리씨 초청 조찬

    ◎“「토지」 인간상 신한국인과 닮은점 많아요”/“희망 잃지않는 꿋꿋한 삶 인상적”/20년전 사위 김지하씨 구속때 박씨집 방문 인연/손 여사는 여고2년 후배… 함께 기숙사생활도 소설가 박경리씨가 27일 청와대를 다녀갔다.25년동안 원고지 4만장에 이르는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끝낸 것을 축하하려고 김영삼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가 아침식사에 초대해서다. 김대통령이 소설가를 단독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나눈 것은 이례적이다.김대통령부부가 박씨와 맺고 있는 인연과 「토지」의 집필완료가 한국문단사에 갖는 의미등을 고려한 초청일 것이다.더 나아간다면 「토지」가 만들어낸 인간상과 김대통령이 추구하는 신한국인상의 맥락이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일조했다.그런 흔적이 이날의 대화록에서 많이 눈에 띈다. 김대통령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한국인의 참모습』이라면서 『이 소설을 통해 재확인 한 것이지만 나는 항상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은 특히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질곡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우리민족에 대한 희망과 저력을 믿어왔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견뎌왔다』고 말해 「토지」의 인간상과 스스로의 정치역정을 대비시켜 음미했다. 김대통령은 20년전 박씨의 사위인 김지하씨가 「오적」시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박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김대통령의 핵심참모들인 김덕용의원이나 김정남교문사회수석은 김씨의 절친한 친구들이다.또 박씨는 손여사의 진주여고 2년 선배이고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 대통령내외는 박씨와 남달리 인연이 깊다. 이 때문인듯 이날 조찬회동은 20년전 김대통령이 박씨 집을 방문했던 때와 손여사와 박씨의 기숙사 생활을 회고하며 시종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주돈식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먼저 박씨가 25년동안에 걸쳐 등장인물만도 4백명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을 쓴데 대해 축하인사를 했다.김대통령은 『암과 투병하면서 25년동안 4만장 전 16권의 원고를 썼다는 것은 우리문단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것으로 한국 문단 전체의 경사이며 큰 성취』라고 치하했다. 이에 박씨는 『「토지」를 쓰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25년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념으로 써내려 갔다』면서 『특히 민족의 생활사를 그린다는 집념으로 썼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또 『집근처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접하고 흙을 만지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설명 했다.박씨는 『항상 글쓰는 소재의 종착역은 한국 국민은 희망이 있고 저력이 있으며 끈기가 있다는 점을 소설 바탕에 깔았다』면서 문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대통령은 문화를 통해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화답했다.
  • 김정일,「혁명1세대 끌어안기」추파/북방송「각별한 배려」선전의 배경

    ◎권력승계 지연속 「충성부추기기」 일환/70대이상 고령원로 장악력 미흡 반증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의 순항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김정일과 북한권력핵심층인 이른바 「혁명1세대」간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중앙방송이 최근 김일성을 추종하던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각별한 배려」를 장황하게 선전한 것이 그 하나다. 중앙방송은 이례적으로 김정일과 혁명원로들 사이의 일화 등을 장시간에 걸쳐 소개했다.특히 김이 혁명1세대들을 『응당 우리 인민의 존경을 받아야할 사람들』이라고 말한 사실을 들어 『일찍이 김일성을 받들어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사랑은 각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더 나아가 이들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배려」를 강조하면서 김에 대한 충성을 노골적으로 독려했다.김정일의 「품」을 『노투사들 모두가 운명을 맡긴 위대한 어버이 품』이라든가 『모자 밑에 흰서리를 날리면서도 왕성한 기백으로 사회주의 위업에 헌신할 수 있게 하는 정력의 샘터』라고 비유한 논조에서 그같은 기류가 감지된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들은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말하자면 아직도 김정일이 이들 원로그룹을 의식할 만큼 확고한 권력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혁명1세대는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 운동을 한 원로를 지칭하며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이다.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박성철부주석,최광군총참모장,전문섭국가검열위원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이을설호위총국장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을 전후해 이들 혁명1세대 원로급 인사 7명이 잇따라 숨졌다.지난달 28일 사망한 강희원(73·부총리)을 비롯해 주도일(75·인민군차수·국방위원·평양방어사령관),조명선(72·군대장·강건군관학교장)최만현(75·전금속공업부장)등이 그들이다.
  • 김덕룡의원 「변신 모색」/마부서 기수로?

    ◎“외부접촉 확대” 선언 왜 나왔나 민자당의 서울시지부장으로 정치일선에 복귀한 김덕용의원이 이미지 변신을 모색하는 것 같다.지금까지 김의원은 대체로 김영삼대통령의 핵심측근,막후참모,밀사의 모습으로 각인 돼왔다.그의 이름은 「정권의 핵심인사들과 창가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귀엣말을 나누며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 그가 이제는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력 있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한 변신의 노력에는 지금까지 해온 「마부」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말을 타고 달리는 「기수」로 정치의 전면에 나서보겠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물론 김의원 스스로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지난 20일 김의원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나갔던 측근들은 그에게서 몇가지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언론기피증」이 사라졌다고 한다.이날 공항에 도착한 김의원은 「자발적」으로 기자들과의 간담에 응했다.카메라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도 어색함 없이 서울시지부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혔다.또 서울시장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박은 것을 비롯해서 「주사파」문제,당 운영방식,앞으로의 포부,심지어는 민주계 내의 알력부분에 대한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을 해나갔다.『사람을 피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말을 아껴온 김의원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변화였다. 측근들은 김의원의 표정도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김의원은 사람들과 마주칠 때 마다 내내 미소로 맞았고 악수하는 손 끝에 힘을 모았다. 이와함께 업무에 대한 적극성도 한층 더한 것 같다.20일 하오 귀국한 김의원은 곧바로 서울시지부 요원들과 시내에서 만찬을 나누며 업무보고를 받았다.김의원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생각해온 당운영방침에 대해 일가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같은 「이상현상」은 22일에도 계속됐다.김종필대표와 당3역등 당직자들에게 인사하러 여의도 당사에 들른 김의원은 만나는 사람들과 격의 없는 몸짓으로 인사를 나눴고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도 가졌다.이런 변화에 대해 김의원의 측근들은 『주어진 역할에 맞춘 당연한 변신』이라고 설명한다.김의원 스스로도 『서울시지부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김의원의 이미지 변신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 하객 1백여명… 작년보다 “화기”/노 전대통령 62회생일 주변

    ◎옛 청와대참모진·민자 일부의원들 방문 노태우전대통령이 22일 퇴임후 두번째인 62회 생일을 맞았다. 노전대통령으로 말하면 지난해 이맘때는 「6공」출신 인사를 향한 거센 사정바람에 심기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주변상황이 불편하기는 이번도 마찬가지이다.「12·12사태」에 대한 검찰의 서면질문에 답변해야 하고 전날 미국에서 귀국한 딸 소영씨부부가 외화밀반출혐의로 곧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노전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분위기는 지난해보다는 훨씬 화기애애했다.「12·12」질문서는 주로 전두환전대통령을 겨냥한 것이고 노전대통령이 간여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판단 탓인지 아무래도 긴장감이 덜했다.소영씨부부 문제도 소환조사를 넘는 사법적 조치는 없으리라 기대하는 눈치이다. 노전대통령은 이날 자택에서 생일 축하객을 맞는 것말고는 다른 행사를 가지지 않았다.. 만찬도 자택에서 가족들과 했다.곧 미국유학을 떠날 아들 재헌씨,그의 장인인 신명수동방유량회장과 소영씨가 부부동반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동생 재우씨,동서인 금진호민자당의원부부도 동석했다. 노전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는 이날 50여개의 난초화분이 배달되었다.김영삼대통령은 21일 윤원중비서관을 통해 난을 선물했다.노전대통령은 윤비서관에게 지난 19일 김옥숙여사의 생일때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가 선물을 보내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김대통령에게 건강에 유념하라는 덕담을 전했다.전전대통령과 김대중씨도 역시 축하 난화분을 보내왔다. 축하방문객도 1백여명에 이르렀다.같이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는 물론,민자당의 일부 민정계 의원과 언론인 몇몇이 연희동을 찾았다. 상오 10시30분에는 정해창비서실장,김중권정무·안교덕민정·이병기의전수석비서관,최석립경호실장,임인규정책조사보좌관등 전청와대비서진의 집단하례를 받았다.서동권·이현우전안기부장,조경식전농림수산부장관,정구영전검찰총장과 최병렬민자당의원,손주환국제교류재단이사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노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사람이 많아서 서로 덕담만 했으며 심각한 얘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이 측근은 『우리는 검찰에 제출할 「12·12사태」 질문서의 초고작업을 끝냈으나 전전대통령측이 다소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면서 『전전대통령측과 제출날짜를 꼭 맞출 필요는 없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내게 되리라 본다』고 설명했다. 다른 측근은 소영씨 문제에 대해 『검찰조사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겠느냐』고 희망했다.
  • 「12·12답변」 준비 어떻게 돼가나

    ◎전·노씨,「구체적 증거」 제시 주력/전씨측,“기존주장 뒤엎을 국비자료 확보” 공언/노씨측,금주초 내용검토후 제출시기 택할듯 검찰이 「12·12사태」에 대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게 답변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시한은 22일이다.그러나 두 전직대통령측은 『성의있는 답변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변서의 제출시기를 늦출 뜻을 밝히고 있다.「12·12사태」에 대한 답변서가 검찰에 제출되고 그것이 공개되면 정가에서는 다시한번 15년전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빚어지리라 예상된다. ○…답변서 제출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질문의 양이 많고 내용 또한 구체적이기 때문이라고 두 전직대통령측은 설명.검찰은 전전대통령에게 4백여문항,노전대통령에게 1백여문항을 물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전전대통령에 대한 물음이 훨씬 많고 노전대통령에게는 대부분 전전대통령과 중복되는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5·6공」 분리책을 쓰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분석도 대두. 질문의 내용도 「사건 당시 무기사용을 지시했나」「최규하전대통령을 위협하지는 않았나」등 상세한 상황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바로 답변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 노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정확한 답변을 위해서는 기억에만 의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 정황증거를 수집하다보니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 이 측근은 『답변서 작업 진척상황이 금주초 노전대통령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말해 검찰에 제출하는 시기는 그 이후가 될 것임을 시사. ○…전·노 두 전직대통령측은 사안의 미묘함 때문인지 답변서의 내용은 물론,제출시기·방법에 대해 일체 함구로 일관.그러나 제출을 마냥 미루기도 힘들 것으로 보여 이달 안에는 낼 것 같다는 전망이 유력. 답변서의 준비도 두 전직대통령이 공동대리인으로 내세운 석진강변호사와 전·노전대통령의 법률자문역인 이양우·한영석변호사등 3명의 변호사가 은밀한 장소에서 관련 인사들과 극비 접촉하며 만들고 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특히 전전대통령은 변호사들에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등 자신감을 보였다는 것. 두 전직대통령측은 그러나 답변을 둘러싸고 공동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 여론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눈치.때문에 22일이 노전대통령의 62회 생일임에도 전전대통령은 간단한 선물만을 보내고 자택방문등 너무 밀착한다는 인상을 주는 행동은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답변서의 제출시기를 같이할지도 아직 확정하지 않은 상태. ○…답변서의 내용과 관련,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4시간 동안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 점,또 국방부장관등 다른 군수뇌부도 군통수권을 사실상 상실했던 점등을 답변서에서 강조할 것』이라고 소개.이 측근은 『특히 정승화씨와 장태완씨등에 대한 극비자료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를 공개하면 「12·12」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허구임이 밝혀질 것』이라면서 『하지만 공개여부는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피력. 이 측근은 『전전대통령은 답변서 서두에 경위야 어찌됐건 군 내부 일이 법정시비로 번진 것은 유감이라고 말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뜻도 밝힐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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