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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5·18 진상규명 가속화/「특별법」제정이후 검찰행보

    ◎“시효 걸림돌 해소” 관련자 소환 박차 5·18특별법이 19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5·18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특별법의 제정으로 재수사의 법적 틀이 새로 마련된데다 공소시효라는 걸림돌도 제거됐기 때문이다.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가능한 빠른 기간안에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검찰은 지난달 30일부터 12·12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군형법상 군사반란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을 전격구속했다.비자금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군사반란죄를 추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12·12사건 당시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는 등 군권장악에 참여한 핵심관련자들은 군사반란 등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었다. 5·18사건도 마찬가지.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일인 80년 8월16일이나 전전대통령의 11대대통령 취임일인 9월1일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재·조법조계에서는 다수를 차지했다.이 경우 전·노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만료됐으며 전·노씨에 대해서도 내란 관련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특별법은 「헌정질서파괴범죄를 저지른 뒤 대통령이 되었거나 대통령 재임중 이같은 범죄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재임기간중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될 뿐만 아니라 다른 공범자에 대해서도 효력을 미친다」라고 규정,수사에 따른 법적 장애를 일거에 해소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은 12·12와 5·18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도록 법적인 사정변경사유를 마련해준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특별법이 소급처벌규정을 담고 있어 위헌소지가 있지만 법을 집행하는 검찰로서는 수사의 진행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특별검사제가 채택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안도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12·12와 연관지어 5·18에 접근하던 예비수사단계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5·18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자세다. 금명간 정호용 전특전사령관·소준렬 전전투병과교육사령관을 비롯,5·18당시 광주 과잉진압 등에 참여한 관련자들을 본격적으로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특히 이미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조사한 허삼수·허화평·권정달·이학봉씨 등 신군부 핵심관련자를 앞으로는 특별법에 의거,피의자로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지금까지의 조사만으로도 충분히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 및 이에 따른 검찰의 5·18수사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다.박모변호사는 『특별법이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의 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제정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헌시비가 일고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면서 『검찰의 수사에 대해 합법성 여부를 따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안현태씨 소환배경에 관심 집중/검찰수사·안양­서울구치소 표정

    ◎박철언 자민련 부총재 노씨 면회 눈길/“단식 전씨 건강 위태한 지경은 아니다” 검찰은 19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기소준비에 나서는 한편 기소에 앞서 전씨 비자금에 대한 수사에서도 굵직한 「열매」를 따기 위해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을 급거 소환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검찰은 또 이날 국회에서 5·18 특별법이 통과됨에 따라 5·18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재수사 일정을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하오 2시15분쯤 예정에 없던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갑자기 출두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 안씨는 12·12와 5·18 당시의 뚜렷한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은 만큼 검찰이 전씨 비자금의 규모및 퇴임 뒤 운용하고 있는 비자금 잔여분 등을 조사하기 위해 전격 소환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주변의 지배적인 관측. 안씨는 그러나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조사를 받으러 나온 것 아니냐』『역대 청와대경호실장들이 모두 비자금 창구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잘라 부인. 안씨는 이어 『언제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느냐』는 물음에 『글쎄요』라고 얼버무린 뒤 전씨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고 말하고 급히 조사실로 직행. ○…이에 앞서 하오 1시50분쯤에는 12·12 당시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신군부측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던 하소곤씨가 출두,『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한 뒤 조사실로 이동. ○…18일 첫 공판을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간 노태우 전대통령은 평소처럼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는 등 공판 전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법무부 관계자가 전언. 노씨는 재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온 뒤 순두부찌개,오징어튀김,배추김치로 저녁식사를 했으며 이날도 감자국,두부조림,배추김치로 차린 아침식사를 들었다는 것. 그러나 식사 뒤에는 맨손체조를 하거나 불교서적을 읽던 습관과는 달리 한동안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등 착잡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하오 3시20분쯤에는 박철언 자민련부총재가 노씨를 면회,눈길을 끌기도. ○…한편 안양교도소의 전두환씨는 이날로 17일째 보리차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하고 있으나 건강상태가 알려진 만큼 위태한 지경은 아니라는 후문.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전씨의 건강이상설과 관련,『전씨의 가족 및 측근들이 상당히 수척해진 외관만 보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외부에 전했을 것』이라고 풀이. 검찰 관계자도 이날 『전씨가 조사를 받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고 말해 심각할 정도의 건강악화설을 부인. 전씨는 이날 상오 이양우 변호사를 접견한데 이어 하오 2시10분쯤 석진강·전상석 변호사와 만난 뒤 아들 재용씨,민정기·송춘석 비서관 등과 면회.
  • 정호용씨 등 곧 소환/안현태씨 어제 소환 조사

    ◎5·18법 통과따라/전씨 21일 반란혐의 기소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9일 헌정질서 파괴사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은 5·18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등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소환,조사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재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정웅 31사단장,소준렬 전투병과교육사령관 등 관련자와 접촉,금명간 소환 일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정전특전사령관 등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특별법에 따라 피의자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뒤 선별적으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만기일인 오는 22일 전전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 혐의로 기소하고 5·18관련 내란 혐의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 혐의는 계속 조사해 추가 기소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전씨를 기소할 때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노태우전대통령에게도 군사반란혐의를 추가,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22일 그동안의 수사 내용을 브리핑하는 형식으로 중간 발표하기로 했다. 이종찬 본부장은 이와 관련,『12·12사건에 대한 재수사결과 전전대통령 등 신군부측의 군사반란혐의는 입증했지만 정권을 찬탈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으며 비자금 부분도 이번에 기소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전씨 비자금을 포함해 그동안의 수사 내용은 브리핑 방식으로 중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12·12 당시 육본 작전참모부장으로 신군부측에 대항한 하소곤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또 이날 전씨의 비자금과 관련,하오 2시15분 안현태 전청와대 경호실장을 서울지검 청사로 소환해 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안씨를 상대로 김종상 전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49)에게 전씨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을 시중은행에 분산예치토록 지시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지난 15일 김씨를 소환 조사하면서 김씨가 안씨의 지시로 거액을 가차명 계좌로 분산했다는 진술을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관련,방문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데다 공판전 증인신문제도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판단,전전대통령의 공판 때 최전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양정모 전국제그룹회장이 지난 18일 『지난 85년 전씨가 국제그룹을 해체하는 등 78개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인수기업에 각종 혜택을 주고 5천여억원을 상납받았다』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 “불이익 피할 자구책” 뇌물변명 급급/노씨 재판

    ◎재벌총수 표정/이준용씨만 “굳이 변명않겠다”/노씨 옆자리 피하려 한때 눈치싸움 『3공 때부터 굳어진 관행이었기때문에…』『국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통령께 성금을…』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8일,서울지법 대법정에는 국내 간판급 재벌총수들이 줄줄이 피고인석에 불려나왔다.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이번 재판은 「재계의 별」들을 한꺼번에 피고인석에 앉혔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자 기록이었다. 노씨와의 「악연」을 다시금 곱씹을 수밖에 없었던 기업인들은 삼성 이건희·대우 김우중·동아 최원석·진로 장진호·대림 이준용·동부 김준기 회장 및 한보 정태수 총회장 등 7명의 재벌총수와 (주)대우 이경훈 회장,대호건설 이건회장 등 9명. 재판날짜가 잡히면서부터 재벌들은 「피고인 노태우」의 옆좌석에 앉지 않으려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기도 했다.노씨의 옆자리는 주목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며 이는 자칫 재벌총수 개인은 물론 기업의 신뢰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것이란 계산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자리 양보」 다툼은 결국 공소장 기재순서대로 삼성 이회장과 대우 김회장이 노씨 옆자리를 나란히 차지하는 것으로 낙착됐다. 삼성그룹의 55개사를 비롯,모두 1백59개에 이르는 계열사의 총수들이지만 한낱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관앞에 선 이들은 여느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검사들의 추궁이 이어질 때마다 진땀을 흘리며 궁색한 자기변명에 급급했다.방청석 곳곳에 포진한 거물급 변호사들과 비서진들도 이들을 도와줄 수는 없었다. 이들의 죄목은 노씨 비자금 3백62억원을 불법 실명전환해준 혐의로 업무방해죄를 적용받은 (주)대우 이회장을 빼고는 모두 뇌물공여죄. 이들이 노씨에게 건네준 뇌물액수는 모두 7백50억원이지만 공소시효가 지나서 이번에 처벌을 받지 않는 부분까지 계산하면 무려 1천80억원에 이른다. 검사들의 신문은 예상대로 이들 돈이 대가를 바라고 건네졌는지,아닌지에 집중됐다.재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른 기업체들이 모두다 「상납」하는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지않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이었을 뿐,이를 미끼로 국책사업등에서 이권을 따내려했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변했다.그러나 대림 이회장만은 『구차한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며 검사가 추궁한 혐의내용을 대체로 시인,대조를 보였다. 이들 가운데 대우 김회장,동아 최회장,한보 정총회장등은 이미 다른 사건에서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선 전력을 갖고 있다.특히 대우 김회장과 동아 최회장은 지난해 원전공사수주 뇌물사건으로 함께 재판을 받았던 처지다. 이날 공판의 마지막은 한보 정총회장이 장식했다.수서택지분양사건으로 이미 한번 옥고를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인지,지병 때문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탓인지 비교적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정총회장은 『불법 실명전환해 준 돈 6백억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검사의 신문에 『차입한 돈은 열심히 생활해서 갚아나가야 한다』고 진술했고 『노피고인에게 돈을 준 날짜가 터무니없이 틀린다』는 지적에는 『나이도 먹고 몸도 이래서 횡설수설한 것같다』고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처음 재판정에 들어설 때만해도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내세우려는 듯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던 재벌들이었지만 하오 6시25분쯤 재판이 끝난 뒤에는 하나같이 어깨가 처져 있었다. ◎「비자금 4인방」 표정/이현우씨,노씨에 “각하” 깍듯이/김종인씨는 「소신의 참모」 부각 애써 「이현우 전경호실장은 과연 배신자인가」 18일 열린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첫 공판에서는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이현우·이원조·금진호·김종인피고인등 「비자금 4인방」의 입이 열리면서 베일에 싸여있던 이들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눈길을 끈 인물은 이전경호실장.그는 대통령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경호실장으로서 4인방 가운데 가장 많은 뇌물을 알선하는 등 노씨에게 충성을 다했으면서도 수사초기 검찰에 자진출두해 노씨 비자금의 실체를 폭로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그의 검찰출두 동기나 진술내용도 거의 알려지지 않아 무수한 추측을 낳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씨는 이날 법정에서 노씨를 지칭하며 깍듯이 「대통령각하」라는 호칭을 사용,『이미 주인에게서 등을 돌린 옛사람일 뿐』이라는 세간의 선입견을 비켜나갔다. 또 검찰에 출두하기 이틀전인 10월20일 노씨집에서 만나 이후 대처방안을 상의한 뒤 「이현우 리스트」로 알려진 비자금 장부를 스스로 파기하려한 사실도 드러나 그의 출두배경에 대한 의혹도 차츰 실마리를 얻게될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자신의 검찰진술 내용에 대해 『오랜시간 신문을 받아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포자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대세에 지장이 없으니 그대로 인정하라」는 검사의 말에 따라 언젠가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당장 시간을 넘기는 방편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노씨도 이날 진술을 통해 이씨를 『착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치켜세웠다. 5·6공 정치자금의 「원조」라고 불리는 이원조 전의원도 동국제강 장상태 회장에게 노씨를 만나도록 주선하면서 『큰잔치에 부조하는데 다다익선이니 3∼4개(3백억∼4백억원)만 하라』고 주문한 사실을 털어놔 과거에 그가 맡았던 역할을 짐작케했다. 그는 92년 정초에노씨가 자신에게 『기업인이 전에는 많이 갖고 왔는데 요새는 믿을 만한 기업인이 없다』며 「상의」를 해왔고 진술하기도 했다. 금진호 신한국당의원은 말한마디 없던 검찰 출두때와는 달리 검사의 신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물론 대부분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은 『노씨에게 정경유착의 폐해를 역설한 사실이 있다』고 말해 「소신있는」 참모였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 9사단 서울진입 집중추궁/검찰/안병호·김진선·최광수씨 조사

    ◎「5·18」핵심관련자 내일부터 환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 3차장)는 18일 12·12당시 9사단 작전참모 안병호씨와 수경사 작전처보좌관 김진선씨등 2명을 피고소인자격으로,최규하 전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최광수씨를 참고인자격으로 각각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19일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면 5·18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씨 등 핵심관련자들을 빠르면 20일부터 본격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안씨를 상대로 12·12당시 노태우(노태우)9사단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을 동원,서울로 진입하게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또 김진선씨에게 수경사 33헌병대가 수경사령관실에 모여있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윤성민 육참차장 등 육본측 장성을 강제연행한 과정과 상황 등을 신문했다. 검찰은 최광수씨를 상대로 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에 대한 사후재가와 5·17 비상계엄확대조치,80년8월16일 최규하대통령의 하야 등 일련의 과정에서 최전대통령이 취한 조치와 신군부측의 움직임 등에 대해조사했다.
  • 「12·12」∼「5·18」내란죄 물증확보/검찰 수사방향 중간점검

    ◎핵심 25명 조사… 구체혐의 확인/최 전 대통령 계좌추적은 증언얻기 압박 오는 22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군사반란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12·12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일단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 이후 지금까지 수사해 온 결과만으로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물론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내란죄 및 군사반란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 및 물증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전·노씨를 제외한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는 공소시효 문제로 5·18특별법 제정 이후로 미룰 계획이다. 특별수사본부의 이종찬 본부장은 이와 관련,『12·12수사는 이미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면서 『우선 관련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정리하고 5·18사건과의 연결부분을 입증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그동안 46명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피고소·고발인은 전·노씨와 이른바 「보안사 4인방」인 허삼수·허화평·권정달·이학봉씨 등을 포함,12·12와 5·18사건의 핵심관련자 25명이다. 또 12·12사건의 피해자거나 목격자인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이건영 전3군사령관,장태완 전수경사령관 등 21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참고인인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실패했다.최전대통령은 지난 9·11일의 소환에 불응한 데 이어 12·16일 두차례에 걸친 방문조사에도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공판전 증인신문제도 등을 통해 강제로 진술을 받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공판전 증인신문제도는 법원의 허락을 받아 재판 전에 법정에서 증언을 듣는 방안이다.검찰은 최전대통령의 계좌를 추적하는 등 「압박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검찰이 이처럼 최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에 매달리는 것은 최전대통령의 진술 없이는 이번 수사가 말 그대로 「재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감에 따른 것이다.전·노씨를 제외한 다른 관련자에 대한 조사는 지난번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12·12사건 수사에 이어 앞으로 본격화할 5·18사건에 대한 수사와 관련,18일쯤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 특별법의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현행법상 핵심 관련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특별법의 근거가 없이는 재수사를 벌인다 해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5·18사건의 예비수사차원에서 헌법재판소로부터 넘겨받은 수사자료 13만쪽을 정밀 검토하고 있다.최근 신현확 전국무총리와 주영복 전국방부장관,이희성 전계엄사령관 등을 소환한 것도 12·12보다는 5·18쪽에 무게중심이 실렸다는 분석이다.
  • 과도정부와 제2공화국(새로쓰는 한국현대사:48)

    ◎과도정부­통치권 한계… 과거청산·개혁에 실패/제2공화국­시위 잇따라 사회 대혼란… 「5·16」 초래 1960년 봄 이승만대통령의 하야로 종말을 고한 제1공화국에 이어 과도정부가 탄생 했다.그러나 과도정부는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지만 국민들이 열망한 과거청산과 정치혁신을 실현하는데 실패 했다.그래서 약체 정권으로 출범한 제2공화국은 군에 정권을 빼앗기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1960년 4월 21일 제1공화국의 운명이 황혼을 맞고 있을 때 이승만대통령은 자신이 평소 신뢰감을 갖고 있던 전 서울시장 허정을 만났다.이승만은 정부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외무부장관직을 수락하도록 부탁 했다.당시 장면은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부통령직을 사퇴한 상태였다.대통령이 사임할 경우 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허정이 자연스럽게 대통령직을 맡을 수 밖에 없었다.자유당 세력들도 특별한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허정이 수반을 맡아주기를 사실상 희망하고 있었다. ○허정 내각제 개헌 추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다음날인 4월27일 대통령서리에 취임한 허정 외무부장관은 우선 내각제 개헌을 떠올렸다.이 내각제 개헌은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학생들의 강력한 요구였고 민주당의 오랜 강령이기도 했다.허정은 취임초 첫 기자회견에서도 이 내각책임제 개헌실현의지를 밝혔다.허정은 이 회견에서 내각제 개헌을 다짐하면서 개헌을 이루어낸 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겠다고 공약 했다.국회는 4월29일 민주·자유 양당 4명씩과 무소속 1명으로 개헌특위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되면서 공법학회는 개헌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보내오기도 하고 개헌특위 주최로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도 들었다.마침내 개헌특위는 5월9일 개헌요강 작성에 대체로 합의한 뒤 6월10일 본회의에 상정했다.전문 103조로 돼 있던 제1공화국의 헌법중 무려 52개 조항을 고친 이 개헌안은 재적 2백11명중 찬성 2백8표,반대 3표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허정 과도정부는 5월2일 첫 국무회의를 열고 혼란상태의 정국 수습과 경제위기 타개책을 내놓았다.부정선거 관련자 엄중처벌및 경제사범 엄단,경제적 민주화 지향,중소기업 육성의 재정적 뒷받침,악질 세무관리 엄단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조직적 권력을 갖고있지 못했던 과도정부의 통치권에는 한계가 뒤따랐다.특히 군부의 부패 척결과 관련해 허정은 미국과 주한미군사령부의 견제 탓에 끝까지 숙군작업에 손을 대지 못했다.미8군 사령관 C B 매그루더는 허정에게 『한국군의 재편은 현존하는 불안정과 혼란이 종식될 때까지 연기돼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숙군에 제동을 걸었다. 4·19가 요구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선거부정의 주요 음모자로 9명의 전직 각료와 15명의 자유당 간부를 3·15선거에서의 불법행위로 구속하는 것으로 그쳤다.이어 자유당에 선거자금을 불법 제공한 은행장들도 구속하고 정치·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정치깡패의 두목들도 우선 잡아들이기는 했다.그러나 자유당 정권과 연결돼 있었던 이들의 처리문제는 다음 정권과 군사정권으로 넘어갔다.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에 대한 처벌방침도거듭 밝히고 개인 18명과 기업가 66명의 명단을 공개했지만 제2공화국 출범 때까지 아무것도 매듭지은 것이 없다.결국 당시의 정치구도나 법적 기본구조를 깨뜨릴 의지도,능력도 없었던 과도정부는 다음 정권에도 큰 부담을 주었던 것이다. ○부정축재 84명 처벌못해 제4대 국회는 내각제 개헌을 끝으로 해산 했다.그리고 나서 새 헌법의 절차에 따라 19 60년 7월29일 실시한 제5대 민의원 선거와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일단 권력을 잡았다.민주당은 민의원 2백33석중 1백75석,참의원 58석중 31석을 차지했다.나머지 의석은 민의원의 경우 무소속 46석,사회대중당 4석,자유당 2석,한국사회당 1석 및 기타 군소정당 5석 순이었다.참의원의 경우는 무소속 20석,자유당 4석,사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민족진보연맹이 각각 1석등이었다. 그러나 무소속 당선자 가운데 상당수가 민주당 공천 탈락자이고 이들 중 다수가 국회개원과 동시에 민주당에 재입당 했다.민주당은 명실공히 실세가 됐다.하지만 선거과정에서 분당론까지 제기됐던 민주당 계파는 여전히 복잡했다.당선자 1백75명 가운데 장면 중심의 신파 78명,그에 반대하는 구파 83명,중도파 14명등 팽팽한 구도를 보이자 신·구파가 각각 당선자대회를 갖는등 치열한 집권경쟁을 벌였다. ○장면내각 민주신파 일색 우여곡절 끝에 8월19일 민의원에서 장면총리 인준투표가 실시됐다.결국 찬성 1백17표,반대 1백7표,기권 1표로 신파일색의 장면내각이 출범했다.장면총리는 구파측에 대해 5명 정도의 인선을 제의했지만 구파의 거절에 부닥쳐 8월23일 신파측 일색의 불안정한 새 내각이 출범했던 것이다. 장면 내각은 이전의 과도정부와 마찬가지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우선 자유당 시절 부정부패의 원흉들을 처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집중적인 지탄을 받고있던 경찰에 먼저 화살을 돌려 81명의 경찰서장을 포함한 2천2백13명의 경찰관을 파면시켰다.그 결과 독재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경찰의 기능을 상당기간 약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미국은 설상가상으로 61년 1월 한국정부에 대해 환율인상을 요구해왔다.장면 내각은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61년 1월 달러당 6백50환이었던 환율이 1천환으로 평가절하 됐다.이어 2월에 1천3백환으로 다시 평가절하된 판에 미국은 「한미경제기술원조협정」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고 나섰다.그 대가로 장면정권은 3천5백만달러의 원조를 받았지만 이 협정은 미국 원조자금이 전체예산의 52%를 차지하던 한국 정부예산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 행사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주재 미국인 교육자와 기술자들도 모두 한국정부로부터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미국은 이것 말고도 61년 1월 「외자도입촉진법」 제정을 채근했다.이 법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자본에 대해 연간 20%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이 투자회사들은 한국내의 보유자산에 대해 아무런 세금을 내지않도록 하는 것이었다.이에따라 미국자본의 한국진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장면 정권은 이무렵 「데모규제법」등의 제정을 추진했는데 1960년 7·29총선에서 참패한 사회대중당을 비롯한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반대투쟁을 벌였다.이는 극도의 사회 혼란상을 초래 했다.그리고 국민의 기본적 의무보다 권리를 더 중시하는 각종 시위가 꼬리를 물었다.이와 맞물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학생들은 5월13일 평화통일 구호를 내걸고 「남북학생회담 환영및 통일촉진대회」를 열었다. 1961년 시국위기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가운데 이 학생집회가 열린 것은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5월16일 군사 쿠데타 3일전의 일이었다.물론 제2공화국이 약세의 틈을 보여준 데서 비롯한 쿠데타로 평가되지만 국민들에게도 얼마간은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군사자문단 「국가팀 회의자료」/“미군철수땐 한반도 적화” 예측/북의 혼란책동 선전공세 면밀 분석/팸플릿 제작 등 심리전 대응책 제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장면정권 시절 주한미군의 대북 대응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회의자료를 미국 케네디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입수했다.이 자료는 19 60년 12월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합동군사원조자문단(JMAAGK)의 국가반(Country Team)회의자료로 당시 혼란을 틈타 고조된 북한의 선전에 대처하기 위한 주한미군사령부의 대처방안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회의자료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일상적인 참석자 외에 주한미군 참모장인 에머리 워첼중장과 본드 장군등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회의주제는 「북한의 선전효과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가능한 대처방안 강구」.회의에서 주한미군측은 『북한측의 선전공세가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고 보고 『대한민국 정부는 경제정책 실패와 자신감 결여,혼란·판단불능 때문에 공산주의선전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판단했다.워첼장군은 『군사적인 견지에서는 이승만 정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돼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남한의 군사적·경제적 소유물에 대해 통제를 해야한다』고까지 발언했다. 회의자료에는 미군이 철수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전 한국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한 대목도 들어있다.워첼장군은 『미군이 철수하면 전한반도를 공산주의자들이 석권할 수 있을 것인데 왜 북한인들이 자유선거 실시에 동의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고도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결국 미국공보원(USIS)의 전문가 팀이 대한민국 정부와 공동으로 북한의 선전위협에 대응하는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했다.자료에 따르면 미국공보원은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사령부가 함께 북한선전에 대응하는 팸플릿을 만들고 양국 정부가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특히 주한미군사령부는 공산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인원과 기구정비를 준비했는데 이는 한국군의 정치개입을 초래했을 가능성을 함축했다.
  • 미 항모전단 1월 파한/북의 군사동향 위협적 수준 판단

    ◎구축함 6척·신예기80대 포함/우리 공군 초계비행 3배 강화 북한의 미그기 전진배치 등 최근의 위협적인 군사동향과 관련,미국이 한반도 전쟁억지를 위해 내년 1월쯤 대규모 항공모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항모 전투단 파견은 북한의 남침위협이 고조될 때면 있어 온 것으로 미국이 최근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한 증거로 풀이되고 있다. 16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북한의 심상치 않은 군사행동을 주시하면서 한반도의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비,유사시 한반도에 조기 전개되는 증원전력(FDO) 가운데 1개 항모 전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이 항모전투단은 ▲항공모함 1척 ▲구축함 6척 ▲공격용 핵 잠수함 1∼2척 ▲각종 지원함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항공모함 1척에는 80여대의 최신예 미공군 주력기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연말 북한 핵위기 때에도 1개 항모 전투단을 동해에 전진배치시키는 등 북한의 남침위협이 고조되면 FDO 전력을 전진배치하고 있다.한편 한·미양국은 최근 FDO의 규모를 종전보다 갑절 늘린 2개 항모 전투단과 2개 군단으로 각각 강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의 한 관계자는 『한·미 군수뇌부는 북한의 최근 위협적인 군사동향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참은 겨울철 야간전투에 강한 북한군의 남침위협에 맞서 동계작전태세를 강화한데 이어 동계야간훈련을 강화했다.또 비무장지대(DMZ)와 전방초소·해안 및 강안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국지적인 도발과 테러에 대비,러시아의 알파부대와 기술·정보 교류를 강화하고 있으며 내년 3월 2개 군단이 참여하는 대규모 기동훈련인 「호국 96」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군도 이날 김홍래 참모총장 주재로 주요 지휘관회의를 열고 공중감시활동을 2∼3배 늘리는 등 즉각 대응태세를 강화하고 개전초기 적의 공군을 무력화시키는 「신방어 제공작전」을 구축키로 했다. 공군은 공중초계비행활동을 3배이상 늘리고 일부 전투기에 야간저고도 항법장비를 장착,적의 야간기습 침투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KFP항공기인 F­16의 비상대기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각 전투기 대대의 비상대기조도 늘리기로 했다. 신방어 제공작전을 통해 개전 초기 일본 오키나와 미 공군기지에서 최신예 주력기로 적기를 무력화시킨 뒤 우리의 초계비행기 등으로 적의 공중전력을 격멸하는 다단계 작전을 구사키로 했다. 한편 합참은 『북한은 휴전선 3개 예비기지에 배치한 미그기 등의 숫자를 지난 10월말 85대에서 95대,1백10여대로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올들어 북한은 특수부대의 훈련을 크게 강화,저고도 침투용항공기인 AN­2기를 2백40여차례 비행시켜 남한의 지형과 비슷한 함경북도에서 공중침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오늘 수도권 방공훈련/서울 상공에 가상적기 비행

    합동참모본부 주관의 수도권 합동방공훈련이 15일 하오 2시부터 4시까지 서울·수원·성남 등 수도권일대에서 육·해·공군 합동으로 실시된다.해마다 실시하고 있는 합동방공훈련에서 서울도심까지 가상적기를 띄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함참은 훈련에서 북한군의 공중공격 때 수도권에 대한 공중감시 및 조기경보체제를 점검하고,서울을 방호하기 위한 합동방공작전능력을 점검하게 된다. 합참은 이 훈련에서 공포탄 발사 등은 없다고 밝히고 헬기 등 일부 가상적기가 서울도심에서 비행하더라도 놀라지 말 것을 시민에게 당부했다.
  • 「특별검사제」 만능인가/문제점과 전문가 분석

    ◎도입땐 수사 혼란… 과거청산 지연 우려/입법부의 수사·소추권행사 「위헌」 소지 군사문화의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5·18특별법」이 국회에서 심의되고 있는 가운데 「특별검사제 도입」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부상,발목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그렇게도 여망하던 특별법이 각 당의 당리당략으로 이번 정기국회 회기중 통과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별검사제 도입에 따른 문제점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특별검사란◁ 범죄의 수사 및 공소제기에 관해 정치적 중립성이 특별히 요청되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비상설적으로 임명되는 독립적 지위의 검사를 말한다. 검사나 군검찰관이 아니면서 이들의 직무와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보통 변호사 가운데 임명된다.미국 공직자윤리법 제정이전의 특별검사,우리나라 건국직후 및 4·19 이후의 특별검찰부,5·16이후의 혁명검찰부가 이에 해당한다. 형사소송법상 「공소유지담당변호사」를 광의의 특별검사로 보기도 하나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특별검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특별검사도입 문제점◁ 특별검사제도는 미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생겨난 제도로 우리나라와 같은 법체계와 검찰조직 아래서는 불필요한 제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미국과 달리 직업공무원제를 기본틀로 하고 엄격한 신분보장과 자격을 요구하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검찰제도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특별검사제도는 이론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독일·프랑스 등 우리 법체계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는 물론 영미법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위헌성」시비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국회가 특정사건에 관해 미리 검찰의 수사·소추권을 원칙적으로 배제한 채 사실상 국회의 감독하에 놓이게 되는 특별검사에게 이를 부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입법부가 수사·소추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일부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법안을 보면 국회의 특별검사 임명요청이 있을 경우 행정부는 무조건 특별검사를 임명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삼권분립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법률적인 문제보다는 우선 특별검사제 도입의 실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효성이 있다면 도입하는게 당연한 도리이다.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득」보다 「실」이 크다거나 이 문제로 법안제정에 영영 실패한다면 찬성한 쪽이든 반대한 쪽이든 책임을 함께 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법률관계자들도 「특별검사제」도입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소수의 특별검사와 일시에 급조된 지원인력으로 과연 효율적인 수사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특별검사가 임명돼도 방대한 수사활동을 위하여는 기존 수사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그 경우 기존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에 기초,임명된 특별검사가 스스로 불신하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을 안게 된다. 특별검사의 「정치화」도 경계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특별검사가 임명되면 여론에 공개돼 사법판단에 앞서 여론재판을 받게 될가능성이 농후한 데다 정치적 영향 배제라는 본래 목적과 달리 정치권,언론 등의 영향으로 소추권 행사가 정치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의견◁ ▲이상면 교수(서울대 공법학과)=특별검사제는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과거와 같은 정치상황이라면 몰라도 현시점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12·12,5·18과 관련해 철저히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의지를 천명한 만큼 검찰에 맡기는 것이 옳다.검찰에게 실추된 명예를 만회하는 기회를 주는 의미에서도 특검제도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또 검찰수사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게 틀림없고 아직 제도검증을 거치지 않아 출발부터 혼란이 생길수 있다.과거비리를 가능한 한 빨리 청산하고 새출발을 한다는 측면에서도 특검제도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계희열 교수(고려대 법학과)=특별검사제는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나왔다.과거 검찰이 정치적사건처리에 미온적인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지난 12일 김대통령이 「12·12담화」를 통해 과거청산의지를 분명하게 밝혔고 검찰의 수사상황도 과거와는 틀리므로 지금의 정국에서는 별도의 절차를 필요로 하는 특검제도입이 불필요하다. ▲김성남 변호사=12·12사건에 대해 군사반란죄를 인정하면서도 처벌불가의 종국결정을 내렸다가 1년여만에 태도를 바꿔 전두환씨를 구속한 검찰에 재수사를 맡기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특별법이 제정된다 해도 특별검사제가 없으면 검찰이 전씨를 전격구속한 것처럼 5·18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이미 수사된 내용에 따라 전격적으로 공소제기를 해 버릴 경우 어찌할 방법이 없다.따라서 특별검사제도를 도입,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미의 운영실태와 평가/“삼권분립 위배” 비난 일어 존폐위기/73년 「워터게이트」때 첫 도입… 실효성 논란 「특별검사」라하면 우선 미국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미국의 이 제도도 생각보다 일천하고 아직도 보완·수정 과정에 있다. 미 합중국 헌법제정자들은 국가 기관이 아닌 민간인들이 종종 형사범죄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국의 제도를 따르지 않은채 대륙법에서처럼 법 집행권을 행정부,대통령이독점할 수 있게 했다.다만 이처럼 법집행을 독점한 대통령,행정부의 고위층에서 극악한 부패를 저지르거나 헌법의 권위를 침해할 경우 의회가 탄핵소추할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직급상 아래인 법무부 공무원들이 이들 고위층을 기소해야하는 보통의 형사범죄 조사대상이 될 경우엔 전연 대비하지 않았다.지난 73년 닉슨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 이전까지 이 문제는 거의 2백년동안 실제적으로 제기되지 않은채 잘 넘어갔다. 그래서 워터게이트사건이 표면화된지 반년,상원 청문회 3개월만인 73년 5월 아치볼드 콕스 하버드대 법학교수가 미국사상 첫 특별검사로 지명된 것은 기존 법조항을 역사적으로 실현시킨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정치적인 문제해결 방식으로 우연히 탄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의회,사법부와 무관하게,즉 엄밀히 말해 법에도 없는 형사범죄혐의에 대한 조사수행,기소결정 권한을 가진 특별검사가 생겨난 것인데 5개월뒤 닉슨대통령은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콕스검사를 파면해버렸다.불같은 여론을 배경으로 1주일뒤 리언 자워스키가두번째 특별검사로 탄생됐으나 미국의 특별검사는 78년 카터 대통령 때에 와서야 법적으로 제도화됐다. 「행정부윤리법」안에 명시된 특별검사제는 의회의 탄핵권이 입법,행정,사법 전반에 걸친 것과는 달리 연방 법무부와 연방검사가 위계질서상 조사,기소하기 어려운 대통령,법무장관등 각료,대통령선거참모등 행정부 고위관리로 적용대상이 한정된다.법무부,행정부 전체는 물론 입법,사법부 밖의 순수민간인만이 자격이 있는 이 특별검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헌법상의 탄핵거리가 되지 못하는 일반 형사범죄 혐의만을 문제삼는다. 법무장관의 요청으로 법원이 지명하는 특별검사는 입법부나 사법부 요인들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의원의 경우 헌법의 권위를 침해하면 탄핵,일반형사범죄는 행정부 검사에 의해 기소되고 품위와 관련된 문제는 자체 윤리위에서 맡는다.의회 윤리위는 최근 깅리치하원의장의 비리조사처럼 외부인사에 의한 조사제도를 활용할 수 있으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특별검사」가 아닌 「특별 법률인」이어서 조사만 할뿐 기소권이 없다. 어쨌든 특별검사제는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으며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아직도 만만찮은 가운데 하루도 특별검사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는 과장된 말이 있지만 78년 법제화이후 특별검사제는 지금까지 16건을 다루는데 그치고 있다.워터게이트때의 선구자와는 달리 법제 특별검사는 시간과 돈과 뉴스만 낭비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86년 시작된 이란콘트라 특별검사 조사는 3천6백만달러의 비용을 들이고 8년후인 지난해에야 완료됐는데,초기 의회청문회때보다 더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이 사건의 특별검사는 로런스 윌시변호사.이 사건과 관련,14건의 기소가 이뤄졌지만 노스중령,포인덱스터 안보보좌관은 불기소 처리됐으며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사면혜택을 받기도 했다. 특별검사는 지난 82년부터 「독립 법률인」(인디펜던트 카운셀)으로 법적 명칭이 바뀌었다.특히 이 제도는 지난 87년에 5년간 연장된 뒤 92년말 자동폐기될 처지였으나 93년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화이트워터연루 혐의가 불거지자 공화당이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94년 6월 수정연장됐다.법 연장전인 지난해 1월 법무장관에 의해 지명된 피스크 특별검사가 파면되고 고등법원이 지명한 스타 검사가 진행하고 있는 화이트워터조사는 현재 1천만달러가 더 들어갔다.에스피 전농무장관은 94년 10월부터,브라운 현상무장관은 올 5월부터 수뢰등의 혐의로 특별검사조사를 받고 있으며 시스네로 현주택도시개발장관의 위증혐의에 대해 법무장관은 특별검사지정을 의뢰한 바 있어 현 클린턴행정부는 특별검사와 유난히도 인연이 많다.
  • 「항룡」 최규화(송정숙 칼럼)

    최규하 전대통령의 검찰조사가 또 실패했다.시정에는 『나 말 안 할 거야』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최전대통령 흉내인 것이다.정국이 요동치면서 입있는 사람 모두가 있는말 없는말을 쏟아놓는데,눈치만 보던 사람도 표변해서 더러는 자신에 유리하게 조금씩 과장도 하며 쏟아놓는데,그래도 의연히 막무가내로 고집불통처럼 말을 하지않는 최규하씨. 저 격동의 시기 「5·18」「12·12」를 통해서 그가 보인 면모는 이렇게 단단하고 요지부동인 질긴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정치반란이나 쿠데타를 하기에 전혀 방해가 되지않는 소심함과 물렁물렁함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친지 ㅇ씨가 직접 겪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ㅇ씨는 최씨가 대통령이던 해 연초휴가를 수안보온천에서 보낸 일이 있다.그때 일이다.그들 가족이 수안보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 예약한 방은 먼저 투숙객이 미처 비우지 않은 상태였다.호텔측은 그 투숙객이 곧 떠날 것이라며 기다릴 동안을 위해 우선 옆방에 들여보내주었다.그런데 ㅇ씨네는 아이들이 넷이나 된다.기다리는 동안을 못참고 뛰고 떠들었다.그러자 호텔측은 아주 정중하게 『미안하지만 좀 조용히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ㅇ씨는 늦도록 방을 비워주지 않는 앞투숙객이 대체 누구냐고 볼멘 소리로 물어보았다.했더니 대답인즉 『최규하 대통령이십니다』라는 것. 그러면서 묻지도 않는데 박정희 대통령때만 해도 「행차」가 있으면 소방차가 몇대씩 호텔을 에워싸고,다른 객실을 몽땅 비워야했는데 『이분은 영 다르다』고 덧붙였다.아닌게 아니라 대통령이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다음 투숙객을 옆방에 「모셔놓고」 아이들이 떠들게 하는 따위는 전같으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ㅇ씨는 그 「민주화스러움」이 반가우면서도 한편 허전하고 맥풀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문문한 최대통령이 「5·18」 「12·12」의 핵심참고인으로 집요하게 증언을 요구하는 검찰에게 오불관언으로 버티고 있다.그를 대리한다는 법률고문은 『현직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전직 대통령의 「소신」을 바꿀 수는 없다』고 아주 당돌한 말도 하고있다.이런 도전적일 수 있는 말은 「최씨적」이지 않아 놀랍다. 최전대통령은 도무지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일렬로 주욱 늘어선 사진이 실리는 언론의 동정란에서도 그는 발견되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왕조시대,두문동에 들어가 풀뿌리로 연명하고 살았던 망조의 충신도 아닌 그가 오늘같은 시절에 그렇게 흔적없이 지내는 일이 신기할 지경이다. 전씨나 노씨의 문제가 되살아난 원인중에는 그들의 삶의 궤적이 사람들의 빈축과 비난을 산것도 빌미가 되었다고 할수 있다.골프장에서 어쨌다느니 어딘가 공석에서 적절치 못한 수사학을 늘어놓은 따위가 국민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그런데 최씨는 「꿈쩍」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최고위직을 지낸 인사가 그렇게 추적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행적만 아니라 그에게서는 육성도 들리지 않고 충성도가 비교되며 병풍처럼 배후를 두르는 세도 거느리지 않는다.최근을 말고는 카메라를 대놓고 잠복하는 언론도 보이지 않았었다.미약했던 그의 권력때문일까. 그런 최전대통령이 지금와서 이렇게 완강하게 「말안하기」의 말뚝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여러시간동안 버티다가 승인한 정승화 참모총장의 체포나 계엄확대,5공화국 출발에 얽힌 비화같은 것은 그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을텐데,마침내는 불명예스런 소문까지 떠돌고 언론들이 협박하듯 다그치는데도 흡사 부재자처럼 응답이 없다. 그가 「입다물기」로 지키려는 것이 명예인지 도리인지 또는 「수치심」인지 알 수는 없다.다만 그가 말대신 눈이라도 껌뻑여야 끝낼수 있는 역사적 증언들을 앞에 놓고 검찰은 지금 속수무책이다. 아이러니처럼 「12·12」 바로 그날 찾아간 방문조사팀에게 그는 『항룡은 말을 하지않는 법』이라며 여전히 진술을 거부했다.「말안하기 전술」만으로 「천룡의 자리」를 지키려는 그를 여전히 이상한 옹고집으로만 비웃어야 하는 것인지 이제는 사람들 모두가 곤혹을 느끼게 되었다.
  • “최씨 입열게 할 묘책없나”고심/검찰「증언거부」대응책 다각 모색

    ◎추가방문­측근조사 「압박작전」 병행/「공전 증인신문」 비상수단도 검토 최규하 전대통령이 방문조사에서도 진술을 거부하자 검찰은 최전대통령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한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검찰이 최전대통령의 조사에 매달리는 것은 12·12 및 5·18사건의 성격 규정에 그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끝내 진술을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수사만으로 내란죄 등을 입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그렇지만 기왕 재수사에 나선 마당에 최전대통령의 진술까지 곁들여 「완전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검찰의 생각이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최전대통령을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수사의 기본틀은 완전히 갖추었다』면서 『그러나 역사적 사건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보다 철저한 수사를 위해 최전대통령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의 연행 재가에서부터 대통령직 돌연 하야등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신군부측의 군사반란혐의와 정권찬탈의도를 반박의 여지 없이 입증하려면 최전대통령의 진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초기부터 최전대통령을 직접 조사한다는 원칙 아래 최전대통령의 측근 등을 통해 다각도로 줄다리기를 하다 지난 8일 급기야 최전대통령에게 출두요구서를 보냈다. 최전대통령이 이에 불응하자 검찰은 11일 성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방문조사를 강행했다.그러나 최전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 경험한 일로 퇴임 후에 조사를 받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이같은 나의 생각은 일시적인 감정에서 나온 일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거듭 내세우며 진술을 거부했다. 최전대통령을 만난 김상희 부장검사는 『내 나름대로 평가를 내렸다』면서 앞으로의 조사방안에 대해 복안을 마련 중임을 시사했다. 실제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도 『삼고초려하든가 읍소라도 해야지』라고 밝혀 우선 한두차례 방문조사를 더 시도할 방침임을 내비췄다. 검찰은 당시 최전대통령의 의전수석비서관 정동열씨,비서실장 최광수씨등 최전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최전대통령에게 심경의 변화를 주기 위한 「압박작전」도병행하고 있다. 이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검찰은 마지막 비상수단으로 공판전 증인신문제도라는 강제조사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이는 진실규명을 위해 꼭 필요한 증인이 법정증언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될 때 검찰이 법원의 허락을 받아 공판전에 증인을 불러 법정에서 증언을 듣는 방법이다. 그러나 최전대통령을 법정까지 불러낸다 해도 입을 열지 않는 한 아무 소용도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피고인이 아닌 참고인인 최전대통령이 진술거부권이나 묵비권을 행사하면 검찰로서는 속수무책이다. 한쪽으로는 설득하고 다른 쪽으로는 압력을 가하는 「양동작전」마저 통하지 않으면 검찰은 결국 최전대통령을 포기하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규하씨 방문검사에 한말/“「재임때 일 퇴임후 조사」 전례 남길수 없다/강제구인·법정증언 호응 상상조차 안해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 부장검사가 12일 하오4시30분 최규하 전대통령을 방문,1시간여동안 나눈 대화는 「조사에 응해달라」는 검찰과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최전대통령의 응답으로 요약된다.다음은 김부장검사와 최전대통령의 대화내용. 김부장=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최전대통령=작년 10월경부터 요각통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우리 내자(홍기여사)는 나보다 더 심합니다. 김=검찰이 토·월요일중 편리하신 시간에 출석을 요구했으나 출석하지 않아 부득이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잠시 생각하다)온다는 이야기를 비서관을 통해 듣고 만나서 직접 입장을 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방문을 승낙했습니다. 김=신문이나 TV를 보시는데 지장은 없으신가요. 최=너무 오래 보면 눈물이 나 가끔 보지요….내용은 비서관이 정리,보고해 알고 있습니다(보도를 통해 검찰수사내용을 상당히 알고 있다는 뜻). 김=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신다는 신념으로 재임시 경험하셨던 일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최=지난번 서한대로 대통령 재임시 경험한 일을 퇴임 후에 조사를 받는 전례를 남길 수 없습니다.이러한 나의 생각은 일시적인 감정에서 나온 게아닙니다. 김=(완곡한 표현으로)강제구인이나 법원의 증인신문절차 등의 방법으로 한다면 조사에 응하시겠습니까. 최=(허허)김부장이 나를 강제구인하겠다고 신문에 나왔더구만요.강제구인이나 법원에 의한 절차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습니다. 김=(재수사의 취지를 설명한 뒤)검사가 개인의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서 묻는 것인데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대화도중 간간이 수사질문사항을 언급). 최=김부장이 노력하시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내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나 나름대로 국익이 무엇인지 생각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이제 그런 얘기는 하지 맙시다. 김=또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최=개인적으로 오는 것은 환영합니다.조사목적이 아니라면.내 입장이 변할 때까진….(최전대통령은 몸이 불편한 탓인지 줄곧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 전두환씨 「거사자금」 사전 모금설

    ◎“2∼3개 기업서 거뒀다” 소문 돌아/전씨 「광주게엄군」에 천만원 제공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80년 5·18이전에 모은 부분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됐으나 수사착수 자체가 「사실무근」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종찬 특별수사본부장은 최근 『기업인들에 대한 조사는 전체적인 수사의 한묶음』이라고 말했다.이는 전씨 비자금에 대한 수사가 전씨의 부정축재규모를 규명하는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신군부의 내란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이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또한 검찰주변에서는 12·12를 전후해 전씨가 D건설 등 2∼3개 기업으로부터 「쿠데타거사자금」을 모금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나돌기도 했다. 여기에 최규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으므로 이른바 「정권찬탈시나리오」를 입증할 수 있는 중요단서로 「거사자금」을 캐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덧붙여졌다.12·12에서부터 5·18에 이르기까지 전두환씨 등이 군인신분으로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인 사실이 확인되면 내란을 사전 모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이종찬 본부장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이 부분에 대한 질문에 『전씨 거사자금은 전혀 조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전씨가 지난 80년 기업등으로부터 돈을 모금한 것만은 분명한 것같다. 5·18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출동했던 20사단의 한 참모가 12일 『당시 전씨가 박준병 사단장에게 진압작전을 수행하느라 고생이 많다』면서 장병들의 사기진작비명목으로 1천만원을 보낸 사실이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를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검찰은 12·12이전이라면 모르되 12·12사건이후 5·18에 이르기까지 돈을 모금한 것은 내란의 사전 모의로 해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날 『79년 12·12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가 80년 4월24일 중앙정보부장서리직을 겸직한 것은 12·12이후 돈에 쪼들려 왔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며 12·12전에 거사자금을 모았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했다.중앙정보부의 「비자금」을 직접 운용하려고 정보부장서리를 맡았다는 설명이다. 어찌됐든 「거사자금」 수사설의 「출현」은 전씨 비자금수사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지만 의혹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 “「12·12」는 군사반란” 첫 판결/서울지법,하소곤씨 손배소서

    ◎치밀한 사전계획·불법성 인정 「12·12사건」이 「군사반란」이라는 사법부의 법적판단이 사건발생 16년만에 처음으로 내려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박장우 부장판사)는 12일 12·12사건 당시 합수부측의 총격으로 부상을 당한 하소곤(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소장)씨와 하씨의 보좌관 김광해 씨가 전두환 전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2·12는 군사반란행위』라고 규정,12·12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 전두환은 노태우 당시 9사단장과 79년 12월7일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제거하기 위한 모의를 하는 등 12·12 발발직후부터 치밀한 사전계획아래 군사반란을 일으킨 점이 인정되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재판부의 이날 판결로 향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고 당시 사건 가담자중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죄로 기소할 경우 유죄판결이 내려질 것이 확실시 된다. 12·12의 법적 성격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지난해 10월29일 검찰이 군사반란 행위임을 인정하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바람에 유보돼 왔었다. 당시 검찰은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거론되고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론분열 등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어 국가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한편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으로 하씨가 청구한 2억원과 김씨가 청구한 1억원에 대해서는 『원고 하씨는 생명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을 뿐아니라 강제전역조치까지 당했으며 김씨도 군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등 정신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음이 인정되므로 피고 전두환과 국가는 하씨 등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했으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하므로 원고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사법부 “12·12는 반란” 첫규정 안팎/전·노씨 반란죄 기소땐 유죄판결 불가피/피의자조서 등 수사가록 1m분량 검토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21일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 등이 낸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에서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했다.헌재는 이를 전제로 군사반란죄는 전두환·노태우씨의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공소시효가 중지된다고 밝혔다.그러나 헌재는 사법부와는 별개의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서울지법이 12일 하소곤 전육본작전참모부장 등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 행위』라고 규정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첫 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12·12 및 5·18에 대한 사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따라서 앞으로 검찰이 전·노 두 전직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죄로 기소하면 유죄판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위해 12·12에 대한 검찰의 수사기록 1m 분량을 검토,군사반란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후문이다.여기에는 12·12 사건 피고소·고발인 38명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제기한 하씨는 합수부측이 79년 12월13일 새벽 3시40분 수경사령관실에 진입해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막다 합수부측의 총격으로 왼쪽 가슴에 관통상을 입었다.
  • 최 전대통령 「권총위협 목격」 논란

    「수경사출신 최병수씨 김광해씨 진술 반박/“당시 청와대 경비… 사건현장과는 거리”­최씨/“최씨 목격사실 부인할것” 미묘한 여운­전씨 12·12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에 대한 연행재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권총으로 협박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최병수 당시 수경사 대위(현주베트남 한국대사관 건설관)는 12일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터무니없는 사실무근』이라며 목격사실을 전면부인했다. 반면 최씨의 「권총협박목격담」을 전해 들었다고 지난주 검찰에서 진술한 김광해씨(당시 하소곤 육본작전참모 보좌관)는 이날 이와 관련,『최씨에게는 전화연락이 되더라도 목격사실 자체를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부터 장담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최씨와의 일문일답. ­전씨가 최전대통령을 권총으로 협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12·12당시 총리공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따라서 그같은 장면을 보지도,듣지도 못했다. ­사건당시 어디에 있었나. ▲수경사 소속으로 청와대외곽경비를 서기 위해 파견나가 있었던 것같다.청와대경비를 서면서 총리공관쪽으로 근무지를 이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다시 말하지만 사건현장과는 분명히 동떨어져 있었다. ­「권총협박」사실을 공표한 김광해씨는 아는 인물인가.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봤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81년 예편하기 전에 동해경비사령부에 근무했는데 김씨도 이때 함께 근무하면서 내 이름을 익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검찰로부터 연락이 있었나.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었다.만약 김씨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됐다면 귀국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겠나.
  • “비자금 사용처는 뭐든지 수사”/안강민 대검중수부장 문답

    ◎김종휘씨 구속 수사결과따라 결정/「미 자료」 본 뒤 소영씨 소환여부 검토 안강민 대검중수부장과의 12일 일문일답.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을 구속할 방침인가. ▲수사결과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아니면 영장청구를 못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김전수석을 데려와 조사하고 있는 혐의내용은. ▲본인이 오겠다고 해서 온 것 아닌가. ­자수한 것으로 보아야 하나. ▲자수는 자기의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자진출두와는 다르다.김전수석이 어느 쪽에 해당되는지 아직 모른다. ­김전수석이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인가. ▲수사내용은 말할 수 없다. ­차세대전투기 기종이 F16으로 변경되기전 F18로 결정되는 과정에서 받은 리베이트도 조사하나. ▲혹시 있었다면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 ­정용후 전공군참모총장 등을 상대로 이 부분도 조사했나. ▲…. ­노태우 전대통령이 여당에 지원금을 준 사실이 드러나 정치권에 비상이 걸렸는데 앞으로 야당지원금도 수사하나. ▲(드러나면 조사한다고)어제 대답했다. ­국민회의측에서는 조사에 일체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 ­노씨 기소때 발표한 두차례의 총선지원금 1천4백억원은 여야 어느쪽에 건네진 돈인가. ▲노씨는 그냥 총선에 썼다고만 진술했다. ­이번에 밝혀진 7백90억원에 대해 노씨가 시인했나. ▲대답을 못하겠다고 한다. ­노씨가 탈당한 이후 정치권에 지원한 돈도 수사하나. ▲비자금의 사용처는 뭐든지 수사대상이다. ­외화밀반출사건과 관련,노소영씨를 소환조사할 계획인가. ▲미국 연방검찰에서 보내오는 자료를 보고 결정하겠다. ­자료가 이미 도착했다던데. ▲우리에게는 아직 넘어오지 않았다.
  • 최 전대통령 진술 거부/검찰 방문조사 실패

    ◎정호용·신현확씨 금명 소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최규하 전대통령의 자택을 방문,조사를 벌이려했으나 최 전대통령은 진술을 거부했다. 최 전대통령은 이날 하오 4시30분쯤 자택을 방문한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 부장검사와 이문호 검사에게 『대통령 재임중 일어난 공적인 사건에 대한 조사에 일일이 응하는 것은 헌정사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을 밝히고 조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부장검사등은 1시간15분만인 하오 5시45분쯤 철수했다. 검찰은 이날 최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대비,▲신군부측의 12·12 사전모의를 알았는지의 여부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의 연행 재가 과정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중정부장서리 겸직 경위 ▲5·17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상황 보고 경로 ▲대통령직에서 돌연 하야한 경위 등 1백여개의 질문항목을 준비했다. 검찰의 한고위관계자는 『최 전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최 전대통령측과 추가조사 방안을 절충해 나가는 한편 최 전대통령의 비서실장 최광수씨 등을 소환,조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 전대통령으로부터 민족스런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공판전 증언신문절차를 밟아 강제로 참고인진술을 받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12·12 때 최 전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열씨를 소환,정 전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재가하는 과정에서 신군부측이 권총을 휴대했는지 등 당시 상황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또 당시 「경복궁 모임」의 핵심인물인 30경비단장 장세동씨를 비롯,합수부 수사국장 백동림씨,정병주 특전사령관 전속부관 정범주씨 등을 피고소인과 참고인 등 자격으로 소환·조사했으며 정승화 전육참총장도 재소환 했다. 특히 장세동씨를 상대로 12·12사건 전개과정에서의 구체저인 역할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규모·경위,5공의 각종 의혹사건 등에 대해 추궁했다. 한편 검찰은 12·12 당시 50사단장이던 정호용 신한국당의원과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씨를 금명간 소환하기로 했다.
  • 자유로 등 3개 도로서 수도권 침투대비 훈련/오늘 하오 3시간

    합동참모본부는 12일 하오 2시부터 3시간동안 문산∼일산∼난지검문소에 이르는 자유로와 1,3번 국도 등 3곳에서 간첩 등이 수도권 지역으로 침투하는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
  • 검찰수사 「5·18」로 확대 안팎

    ◎「12·12 군사반란」 규명 마무리 정면/피의자 대부분 조사… 「상당한 진척」 관측/두 사건 연계… 핵심 주모자 구속 불가피 12·12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 느낌이다.검찰은 11일부터 5·18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소환했다.12·12사건의 수사를 5·18로 확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 3일 전두환씨를 구속하면서 지금까지 소환조사한 12·12사건 관련자는 전두환·노태우씨를 포함해 모두 37명이다. 이 가운데 20명은 12·12사건과 관련한 피고소·고발인이며 2명은 5·18사건의 피의자다.나머지 15명은 참고인이다. 12·12사건의 남은 조사 대상자인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은 12일 소환될 예정이다.당시 공수여단장으로 국외 체류중인 박희도·장기오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최세창씨의 출두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수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않을 전망이다. 또 아직 출두하지 않는 최규하 전대통령도 5·18사건과 병합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당분간 절충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12·12사건의 16년째이자 전씨의 첫번째 구속만기일인 12일까지 12·12사건 관련자를 대부분 소환·조사한 셈이다. 이러한 수사진척에 따라 검찰은 5·18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소환조사의 결과를 분류·분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피의자들을 어떻게 사법처리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다. 검찰의 당초 의지대로라면 피의자들은 대부분 반란죄 이외에도 내란죄의 적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12·12사건과 5·18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방향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사의 강도로 미루어볼 때 12·12사건의 핵심 주모자인 「경복궁 모임」 참가자와 「보안사팀」은 반란죄와 내란죄의 각 죄목을 적용받아 구속될 것이 불가피해보인다. 또 총장공관 점거,직속 상관 체포등을 주도한 피의자들도 구속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관련자 모두를 구속할 지 선별처리할 지 등의 사법처리 수위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않다.아직 5·18수사와 관련지어 최종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두 사건이 동일한 사안이라면 구속자수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이는 정치적 조율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논란이 없는 전씨에 대해서는 구속만기일인 22일쯤 반란·내란죄를 적용해 기소한다는 방침이다.노씨도 이때 같은 죄목으로 추가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씨 측근들이 법정에서 대결한다는 계획아래 검찰의 소환에 의외로 순순히 응하고 있어 22일쯤까지는 내란죄가 핵심사안인 5·18수사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대로라면 전씨를 기소할 때 핵심주모자들도 함께 구속기소될 가능성도 많다. ◎12·12 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 총장 연행계획 수립 주도­이학봉씨/「비상계엄 확대」 군회의 주재­정영복씨/총리공관 경호대 무장해제­정동호씨/5·18때 광주에 군출동 지시­이희성씨 12·12 및 5·18사건과 관련,11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 겸 합수부 수사1국장 등 6명은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거나 「거사」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5공 때 출세가도를 달렸던 인물들이다. 이씨는 12·12사건 당일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명령을 받아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과 함께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계획 수립을 주도,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1등 공신이다.그는 80년 5·17 당시에도 정치인·재야인사·학생 등 소요 배후조종 혐의자와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의 검거대상 선정 및 검거까지 담당,신군부세력의 「집권 시나리오」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5공 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안기부 2차장 등을 역임하고 13대 민정당 공천으로 당선됐으나 89년 5공청산 때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정동호 당시 청와대경호실장 직무대리는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집무실인 총리공관을 경비하던 육군 특별경호대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고 청와대경호실병력으로 대체,최대통령과 군수뇌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킴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그는 86년 육군 참모차장 때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으로 예편한 뒤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에 진출했으나 지난 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 부동산 투기혐의 등으로 민자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주영복 전국방장관은 12·12가 신군부측의 승리로 끝난 직후인 12월15일 공군참모총장에서 예편한 지 8개월만에 국방장관에 기용됐다.그는 5·17당시 소집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통과시킨 후 이의 재가를 최전대통령에게 건의했다.내무장관·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신군부측에 회유돼 12·12직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다.그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당시 병력출동 지시를 내렸다.교통부장관·주택공사이사장 등을 지냈다.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은 13일 새벽 신군부에 의해 군수뇌부들과 함께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곧바로 신군부측으로 전향했다.합참의장·국방장관·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윤호 당시 육군보병학교장은 12일 밤 신군부측의 연락을 받고 급거 상경,신군부 대변인자격으로 13일 상오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등 미국 관리들과 접촉하고 다음 날 전합수본부장과 글라이스틴대사와의 회동을 주선했다.그는 12·12 직후 1군단장을 거쳐 1군사령관·합참의장·석탄공사 이사장·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 검찰,김종휘씨 뭘 밤샘조사 했나

    ◎「노­김」라인 F16변경 과정 규명 주력/기종바꿀때 리베이트 수수 초점/후배 GD지사장 로비여부 추궁 율곡사업과 관련된 비리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에서 미국에서 2년 8개월 동안 망명생활에 가까운 도피생활을 해온 김종휘 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1일 밤 검찰에서 철야조사를 받았다.이날 하오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검찰청사로 연행된 김전수석은 검찰로부터 차세대전투기사업에 관해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다. 검찰이 철야조사에서 김씨에게 캐물은 핵심질문은 두가지라고 할수 있다. 하나는 당시 군수뇌부에 가한 F­16 전투기 선정 압력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나였다.다른 하나는 노전대통령이 이의 대가로 F­16 제작사인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GD)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그동안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이상훈·이종구 전국방장관과 정용후·한주석 전공군참모총장 등 관련자들의 진술에서 「노태우­김종휘」로 이어지는 기종변경 지시라인이 확연히 드러난만큼 김씨에게 이를 직접 신문해 이를 확인하고범죄사실도 캐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김전수석이 GD사 김용호씨 한국지사장의 고교 선배라는 점에도 착안,김지사장이 GD본사로부터 로비지시를 받아 김전수석에 대해 집중적인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김전수석을 상대로 이 부분에 대한 조사도 폈다. 그러나 김전수석은 이날 검찰신문에서 F­16기를 선정한 것은 자신의 종합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며 당시 국방장관을 협박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국에서 한 측근에게 귀국의사를 밝히면서도 『노태우 전대통령이 율곡사업을 통해 엄청난 비자금을 챙기는 등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이 분야를 보좌했던 책임자로서 진실을 밝힐 생각』이라고 귀국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또 『차세대전투기 주력기종이 F­18에서 F­16으로 바뀐 것은 F­18 제작사인 맥도널 더글러스사가 계약 뒤 일방적으로 공급가격을 달러 기준으로 50%나 올렸기 때문』이라며 『기종 선정과 관련,리베이트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했다. 김전수석의 이같은 설명이 철야조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크게 보아 이같은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김전수석이 율곡비리로 기소중지된 자신이 귀국하면 즉시 연행되어 구속될 것이 분명한데도 굳이 귀국한 진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있다. 우선 김전수석이 지난주 천기흥 변호사를 자신의 변호인으로 선정,『범죄의 의심을 받고있는 만큼 11일 귀국,자진출두해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는 내용의 자수서를 검찰에 제출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형법52조는 범죄자가 자수를 했을 경우 형량을 경감하거나 면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차제에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고 자신의 「개인수뢰액 1억5천만원」에 대한 죄값을 가볍게 받자는 계산을 했음직도 하다. 또 자신이 5년간 모셔왔던 노전대통령이 구속된 마당에 더이상 외국에서 도피생활을 할 경우 인간적으로 「몹쓸 사람」으로 치부된다는 자책감도 귀국을 결심하는데 큰 작용을 한 것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씨는 어쩌면 노씨의 의도에 따라 막후에서 로비를 벌인 단순한 심부름꾼일 뿐으로 더 이상 도피생활을 해야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단순히 약간의 떡값 정도는 챙겼을 가능성은 있다. 그를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가 『김씨는 학자출신으로 비교적 소심하고 겁이 많아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며 『지난 93년 갑자기 출국한뒤 도피생활을 해온 것은 노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1차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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