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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족 4형제가 대위/鄭賢洙씨 형제들 육·공군 복무

    ◎아버지가 권유… 건군이래 처음 한 가족 4형제가 현역 장교로 근무하고 있어 건군 50주년을 맞아 화제가 되고 있다. 육군 鄭賢洙 대위(32)를 비롯,賢植씨(29),賢基·賢吉씨(28) 등 4형제 모두 현재 대위로서 현재 육군 및 공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鄭英趙씨(60·부동산 중개업·경기도 남양주시)의 6남1녀중 차남인 賢洙씨는 지난 88년 육사 47기로 임관,소·중대장을 마치고 현재 육군 제 17보병사단에서 참모장교로 근무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보병 고등군사반 시험에 합격,내년에 출국할 예정이다. 3남 賢植씨는 강원대 전기공학과 졸업과 동시에 학군 31기로 임관해 현재 육군 병기학교에서 고등군사반 교육을 받고 있다. 4남 賢基씨와 5남 賢吉씨는 쌍둥이 형제로서 각각 공군 팬텀기 조종사와 전방사단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賢基씨는 지난 90년 일찍이 공군사관학교(42기)를 선택,어려서부터의 품어온 조종사의 꿈을 이루었고,한국교원대에 진학한 賢吉씨는 졸업후 학군 32기로 임관,형들이 먼저 시작한 군인의 길에 합류했다. 4형제가같은 계급으로 근무한 것은 건군 50년 역사에 처음으로 이들이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은 군인이 최고”라고 말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차남 賢洙씨가 귀띔했다. 한편 장남 賢哲씨(35)는 현재 남양주 경찰서 교통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며 6남 賢根씨(23)는 강원대 대학원 약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이다.
  • 李姬鎬 여사 월간지 퀸 특별회견

    ◎“소외계층 돕는데 더 노력”/위안부 문제 일 보상보다 사과 더 중요/정의·진리·신앙에 의지 온갖 역경 넘겨 金大中 대통령부인 李姬鎬 여사가 서울신문 자매지인 여성월간지 ‘퀸(Queen)’과 특별인터뷰를 가졌다.李여사는 지령 100호를 맞은 ‘퀸’(10월호,23일 발행)과 잡지로서는 처음으로 단독인터뷰를 갖고 청와대 안살림 이모저모와 함께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것들을 밝혔다.대담은 任英淑 서울신문 논설위원이 했다. ­내조자입장에서 金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제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나 운영방식 등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해요.다만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지켜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립발전’이라는 신념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 가시는 걸로 믿고 있습니다.아내로서 가장 안쓰러운 건 나라 사정이 너무 어렵다 보니 대통령이 밤낮 없이 노심초사하는 일이 많아 저러다가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다행히 타고난 건강체질이라 끄떡 없지요. ○국정관련 조언 거의 안해 ­金대통령께서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곁에서 조언을 하십니까. ▲특별히 물어오실 때가 아니면 그런 일은 드뭅니다.주위에 참모들과 전문가들이 많잖아요.그 사람들과 주로 상의를 하십니다. ­국민들 곁에 다가가는 일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일일이 신경 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일,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오는 10월초에 송월주 스님·강원용 목사·김성주 주교 등이 가칭 ‘사랑의 친구들’이란 자선단체가 만들어지는데 나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예요.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도와 줄 능력이 있는 사람들간에 다리를 놓아 주는 그런 운동이지요.여성·문화분야 등 어려운 시기일수록 소홀해지기 쉬운 영역에 대해서도 나름의 노력을 다해나갈 계획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우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시인하고 잘못을 사과해야 합니다.민간차원의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몇푼의 보상금을 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그분들이 받은 정신적 타격이 얼마나 큰데요.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한 연후에는 우리도 더이상 과거에 매이지 말고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지난 4월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셨을때 2등석을 탔다고 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일로 갔던거니까요.그런데서 권위를 내세우고 싶진 않습니다.비행기에서 내릴때도 1등석 손님들을 먼저 내리게 했지요. ○외출 자유롭게 하고 싶어 ­청와대 들어오신 후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점은 야당 총재 시절과 달리 불쑥 방문하는 손님들이 없다는 것입니다.여기서는 모든 일정이며 행사가 미리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거든요.반면에 불편한 점을 들자면 한마디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가끔은 자유롭게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외출도 하고 싶은데…. ­잘 아시는 분으로부터 음식선물을 받고 되돌려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물론 처음엔 고맙게 받았어요.그런데 또 음식을 장만해 왔더라고요.세상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은 없는 법입니다.이 안에 있을 땐 그런 사소한 것도 원칙을 정해 처리하고 싶어요. ­청와대 들어오신 후 예뻐지셨다고들 합니다.비결이 있으십니까. ▲예전에는 직접 머리손질을 했습니다만 요즘에 미용사에게 맡깁니다.일산에서는 새벽 4시쯤 일어나다가 여기선 한시간쯤 잠을 더 잘뿐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럼요.아직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참여가 가장 미약한 곳이 정치분야이지만,차츰 나아질 거고 실제로 나아지고 있습니다.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키려면 정치 참여를 통해 제도나 의식을 개혁하는 방법이 지름길이예요.수적으로 우세한 여성들이 힘을 뭉친다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여성대통령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념·관용·멋에 끌려 결혼 -숱한 위기와 역경의 순간들을 金대통령과 함께 헤쳐나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려움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의와 진리의 승리에 대한 확신,그리고 신앙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지금 고통받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오늘의 어려움을 꿋꿋이 참고 이겨내면 반드시 밝은 내일이 온다는 굳센 희망을 가지란 말씀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金대통령이 감옥에서 계실때 두분이 주고 받은 편지는 유명한데요. ▲대통령은 당시 사형수에서 감형된 무기수 신분이어서 0.96평짜리 독방에 있었습니다.거의 매일 편지를 썼는데 나중에 보니 모두 600여통에 이르더군요.그 어둡고 외로운 독방에서 고생하는 남편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남편이 감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형법을 공부하고 수시로 형무소장을 찾아가 항의를 하기도 했어요.어느땐 담당변호사와 행형법에 대해 얘기하다가 오히려 변호사쪽에서 자기도 모르는 법률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며 감탄할 정도였지요. ­결혼생활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나요. ▲참으로 행복하다,그런 느낌을 가져 보지 않았어요.(웃음)그렇다고 결혼을 후회해 본적도 없어요.늦게 한 결혼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행복을 추구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남편의 꿈이 그저 꿈으로 끝나진 않으리란 신뢰를 지녔고 그의 신념과 관용과 멋에 끌려,내가 이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지요.그래서 주어진 환경과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날마다 오후에 수영을 해요.헤엄을 친다기보다는 물속에서 30분쯤 걸어다니는 거지요.조용한 저녁시간에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합니다.요즘에는 붓글씨도 쓰고 있습니다.
  • 親日의 군상:7­1/尹致暎家의 빛과 그림자(정직한 역사 되찾기)

    ◎저항 포기… 親日로 명맥 이은 세도가 집안/고관대작 다수 배출… 화려한 가문 자랑/중시조 雄烈 ‘한일병합’후 男爵 받아/尹 전 대통령 숙부·사촌중 변절자 많아 우리 근·현대사에서 대표적인 세도가 집안의 하나로 尹致暎 전 공화당의장서리(96년 작고) 가문을 들 수 있다.尹潽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집권당 의장서리,장관,서울대 총장 등 장·차관급 이상만 13명에 학자·의사가 60여명이나 나왔다. 尹씨 가문은 한말 尹雄烈에 의해 중흥된 후 자손도 번성하여 400여명에 이른다.尹雄烈의 아버지 取東은 늘그막에 웅달산에서 기도를 하고 첫 아들을 얻었대서 이름을 雄烈이라 지었다.15년 뒤 태어난 동생은 ‘영웅(英雄)’이라는 말에 맞추기 위해 英烈이라 지었다. 雄烈은 致昊·致旺·致昌 3형제를,동생 英烈은 致旿·致昭·치성·致昞·致明·致暎 등 6형제를 두었다. 열(烈),치(致)에 이어 다음 항렬은 선(善),구(求),영(榮) 순이다.선(善)자 항렬의 유명인사는 致昊의 아들 永善·璋善,致旿의 아들 日善·明善·昇善,致昭의 아들 潽善·源善,致明의 아들裕善 등이다.구(求)자 항렬에서는 日善의 아들 錫求·鐸求,潽善의 아들 商求·同求 등이 있다.번성한 자손과 함께 이 집안에서 배출한 유명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훑어보자. 중시조격인 雄烈은 1856년 무과에 급제,한말 군부대신을 지냈다.동생 英烈은 연안부사·삼남토포사·육군참장(參將,현 준장에 해당)을 지냈다.雄烈의 장남 致昊는 학부(學部)·외부협판(協辦,현 차관)을,2남 致旺은 초대 육군의무감(육군소장 예편)·대한의학협회장을,3남 致昌은 초대 주영공사와 주터키대사를 지냈다. 英烈의 아들 중 장남 致旿와 차남 致昭는 대한제국 시절 각각 학무국장과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3남 致성은 일본육사(11기)졸업 후 군부 군무국 교육과장을,4남 致昞은 육군 보병 정위(正尉,현 대위에 해당)로 예편하였다.막내 致暎은 해방 후 초대 내무장관과 서울시장, 3공에서 공화당 의장서리를 지냈다. ○부귀영화에 장수까지 致旿의 장남 日善은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致昭의 장남 潽善은 서울시장·대통령을,3남 源善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致明의 아들裕善은 도쿄제대 의학부를 졸업,보사부 의정국장·국립의료원장을 지냈다.3대 농림부장관을 지낸 永善과 재미 원로 피아니스트 琦善은 모두 致昊의 아들들이다. 또 日善의 차남 鐸求는 원자력병원장을 역임한 후 동생 鍾求와 함께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보통 집안에서는 한명 나오기도 힘든 큰 벼슬아치가 이 집안에서는 3대에 걸쳐 속출하였다.그리고 장수(長壽)집안으로도 유명하다.중시조(中始祖)격인 雄烈(72세),英烈(86세)형제와 致昊(81세),致旺(88세)이 70,80세를 넘겼고 永善(92세),日善(91세),潽善(93세) 등은 망백(望百·91세) 이상 장수했다.부귀영화에 장수까지 겸했으니 한 가문으로서야 더 바랄 것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집안의 역사가 이렇게 화려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 오면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도 적지않다. ‘친일’은 이 집안 중흥의 1등공신 雄烈(1840∼1911)로부터 시작된다.1856년(철종 7년) 무과에 급제,1861년 충청 감영의 중군(中軍)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선 그는 1880년 별군관으로 朴永孝·金玉均 등과 함께 수신사 金弘集을 따라 일본을 다녀온 후 이듬해 일본식 신식군대인 별기군(別技軍) 창설의 주역이 되었다. 1882년 별기군과의 차별대우를 참다못한 구식군대가 반란(소위 ‘임오군란’)을 일으키자 그는 시위대에 쫓겨 원산을 거쳐 나가사키(長崎)로 줄행랑을 쳤다.도중에 원산에서 주민들에게 발각됐으나 한 일본인 승려의 도움으로 피신했다고 한다.도쿄 체류중 그는 ‘조야신문(朝野新聞)’(1882년 9월2일)과의 인터뷰에서 구식군대의 반란은 조선 내 수구파들이 세력을 잡기 위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갑신정변 무렵 귀국한 그는 개화당 정권에서 형조판서를 지내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1886년 능주(綾州)로 귀양갔다.그후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가 다시 집권하자 경무사·군부대신을 지내다가 1896년 소위 ‘춘생문(春生門)사건’에 가담했다가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일제말기에 지조 꺾어 대한제국 성립 후 다시 벼슬길에 나서 궁내부 특진관·군부대신을 지낸 그는 1910년 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은사금 2만5,000원과 남작(男爵)작위를 받았다.그의 작위는 장남 致昊가 습작(襲爵)하였다.致昊는 1913년 ‘105인사건’의 확정판결로 실작(失爵)되었으나 이는 ‘충순(忠順)치 않은 행위’(‘조선귀족령’ 제7조),즉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박탈당한 다른 사람(남작을 거절하고 순국한 金奭鎭 등)들과는 구분된다. 雄烈·英烈 두 형제 중 친일 경력자는 동생인 英烈의 집안에 많다.英烈의 장남 致旿는 한말 중추원 참서관(9품)·학부(學部,현 교육부)학무국장을 역임했는데 한일병합 후 중추원 부찬의·찬의(1910∼15년)를 지냈다.차남 致昭 역시 한말 중추원 의관을 거쳐 일제하에서 중추원 참의(1924∼27년,주임관 대우)를 지냈다.특히 致昭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8월14일 당시 쌀 120가마 값에 해당하는 2,000원을 국방헌금으로 내고 같은해 9월9일 결성된 ‘애국경기도호(號)’ 군용기 헌납기성회의 집행위원을 지냈다. 3남 致성은 일본육사를 마치고 구한말 정부에서 육군기병 부령(副領,현중령에 해당)으로 예편한 후 한일병합 후에는 실업계로 진출,분원자기 취체역(중역)·경성조선인상업회의소 특별위원을 역임했다.막내 致暎은 미국 유학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歐美)위원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그러나 그 역시 일제 말기에 가서는 지조를 꺾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 잡지에 그의 이름으로 된 글이 실려 있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임전대책협의회 채권가두유격대에 참가(1941년 9월7일)했다.또 그해 12월20일에는 친일 잡지사 동양지광사(東洋之光社) 주최 ‘미영(美英)타도 대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그는 회고록 ‘윤치영의 20세기’에서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 실린 자신 명의의 글은 이름을 도용당한 것이라며 “일제 전시하여서 명예훼손 소송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그의 건국포장 서훈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밖에 致旿의 아들 중에도 친일 경력자가 더러 있다.교토제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대 총장·원자력원장을 지낸 장남 日善은 일제가 주최한 ‘미영타도 대강연회’에 연사로 참가한 적이 있다.또 도쿄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한 차남 明善은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후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정부에서 총무청 통계과장·국무성 사무관·간도성(間島省) 차장을 지냈다.4남 昇善은 관동군사령부에서 대위로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독립운동가 가문과 사돈 맺은 아이러니/尹致昌 결혼 당시 심한 반발로 한때 감금되기도 자손이 많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안은 친일 가문은 물론 독립운동가 가문과도 더러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雄烈의 3남 致昌은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孫貞道 목사의 장녀 孫眞實과 결혼했다.초대 해군참모총장·국방장관을 지낸 孫元一 제독, 재미 원로의사 孫元泰(84세) 박사,YMCA 회장을 지낸 여성계의 원로 孫仁實(81) 등은 모두 眞實의 동생들이다.독립운동가 진영은 이들의 결혼을 거세게 반대하며 한때 致昌을 감금하기도 했었다. 致昊의 차남 光善(6·25때 납북)은 독립협회의 창건자이자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사장을 지낸 南宮檍의 딸 南宮慈卿과 결혼,4남3녀를 두었다.致昊가 독립협회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집안 딸 중에는 독립운동가 당사자와 결혼한 사람도 있다.致旺의 장녀 善姬는 2차대전 때 OSS 대원으로 활동한 張錫潤(95) 전 내무장관과 결혼하였다.이밖에 致昭의 차남 浣善의 부인 李順貞은 한말 탁지부 대신 李容稙의 딸이자 ‘을사조약’후 자결,순국한 충정공 趙秉世 선생의 외손녀다.
  • 美 8군 사령관/페트로스키 중장

    주한 미군사령부는 16일 임기가 만료된 렌돌프 하우스 미8군 사령관 후임에 다니엘 페트로스키 중장(54)이 임명돼 오는 25일 취임한다고 밝혔다. 신임 페트로스키 중장은 미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야전포병장교학교를 나와 67년 소위로 임관한 뒤 미육군 항공센터 부사령관,주독일 미7군 작전기획 부참모장을 역임했다.
  • 親日의 군상:6/‘친일파 1호’ 金麟昇(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 침략선 타고와 모국 침탈 앞장/1875년 ‘운양호사건’ 전후 日에 침략정보 제공/日 통역으로 강화도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日本식 두발·복장에 ‘皇國 절대 충성” 다짐/한때는 선비정신 소유자/日 속셈 모르고 매국 행위/背族 대가는 日의 멸시뿐 1876년 2월4일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앞바다에 일본 군함 한 척이 출현했다.1월6일 일본 시나가와만(品川灣)을 출발,부산을 거쳐 온 이 배에는 일본 정부의 특명전권변리공사(特命全權辨理公使)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일행이 타고 있었다.구로다 일행은 6개월 전에 발생한 ‘운양호(雲揚號)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교조약을 맺으러 오는 길이었다. 구로다를 포함해 무려 800여 명에 달하는 일행 가운데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 한 명이 끼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金麟昇(생몰연대 미상). 그는‘운양호사건’ 이전부터 일본측과 내통하면서 일본을 도와오다가 이제 그 마무리 작업인 조약(강화도조약)체결을 돕기 위해 동행한 통역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일본에 협력한 ‘친일파’는 있었지만근대적 의미에서 金麟昇보다 앞서는 친일파는 없다.친일파 연구가 고(故) 林鍾國씨 역시 그를 ‘친일파 1호’로 꼽았다.조선조 말기 양반계층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친일의 길을 걷게되는 과정은 이후에 등장하는 친일파들의 행태와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그의 친일행적 연구는 일제하 친일파 연구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그는 해외에서 일제의 외국인 고문(顧問)으로 고용돼 비밀리에 활동한 까닭에 국내에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林鍾國씨 조차도 그의 글에서 ‘김인승’이라는 이름 석자만을 기록했을 뿐이다.몇몇 역사학자 역시 논문에서 그를 언급한 바는 있으나 친일활동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金麟昇의 친일행적은 지난 96년 2월 성신여대 具良根 교수(당시 도쿄대 외국인 연구원)가 발표한 한 논문을 통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具교수는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서 입수한 3건의 자료를 토대로 ‘일본외무성 7등출사(七等出仕·일본의 구식 관직명) 세와키 히사토(瀨脇壽人)와 외국인고문(顧問)金麟昇’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친일파의 ‘선구자’격인 金麟昇의 친일행적을 추적해 보자. 金麟昇은 함경북도 경흥(慶興)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7대조 때 경흥으로 이사한 뒤로 그의 집안은 토반(土班,지방의 양반)으로 전락하였다.그는 16세 때부터 경흥부(慶興府)에 근무하면서 상당한 직책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이 지역에 대홍수와 기근이 몰아치던 1869년 그는 모종의 일로 이 지역 수령과의 의견충돌 끝에 관직을 그만두고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땅 니콜리스크(당시 한국명 吹風,블라디보스토크 북방 50리)로 탈주하였다. 이곳에는 그 뒤 식량을 찾아 월경(越境)한 조선인 유랑민이 대거 몰려들었는데 한학실력이 출중했던 그는 여기서 학교를 열고 생도들을 가르쳤다.그러던중 여기서 다케후지 헤이가쿠(武藤平學)라는 한 일본인과 사귀게 된다.다케후지는 원래 양학(洋學,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집을 나왔다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흘러오게 된 사람이었다.바로 이 다케후지가 나중에 그를 친일의 길로 이끈 첫 안내자가 된다.한편 이무렵 러시아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진(南進)정책을 강행하자 1875년(明治 8년) 4월 일본정부는 외무성 7등출사 세와키 히사토(1822∼78)를 블라디보스토크와 포셋 지방에 파견,러시아와 교섭을 갖게 하였다. 세와키는 공식적으로는 일본 외무성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 위해 파견한 외교관이었지만 사실상 정탐꾼이었다. 일본 외무성이 그에게 준 ‘출장명령서’(1875년 4월4일)의 임무 부분은 ‘탐색’,‘정탐’인데 이 중의 절반은 의외로 조선에 대한 것이었다.명령서에는 구체적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조선땅으로 들어가서 토지·풍속 등을 탐색하고 올 것’ 등이 명기돼 있다.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세와키는 조선에 들어가지 못했다.대안을 모색하고 있던 세와키는 여기서 일본인 다케후지를 만나 문제의 金麟昇을 소개받는다.金麟昇의 학식과 경험을 높이 산 세와키는 귀국길에 그를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이무렵 일제는 다수의 외국인 고문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874∼75년에는 그수가 약 2,000명에 달했다.운양호사건(1875년 9월20일),강화도조약(1876년)이 체결되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당시 일제는 조선에 ‘황국(皇國)의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외국인 고문 채용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그리고 그 첫 군사행동이 바로 ‘운양호사건’이었다. 1875년 7월 세와키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金麟昇은 운양호사건 발생직전 1차로 3개월간(8월1일∼10월30일) 일본정부와 외국인 고문 고용계약(日給 1원)을 맺었다.당시 일본 외무성이 그를 고용한 목적은 ▲만주지방 지도작성 ▲북방사정 탐색 ▲조선 침략용 지도작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자문 등.이중에서 金麟昇이 일본측에 크게 도움을 준 부분은 조선에 관한 사항이었다. 1875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조선 침략용으로 작성한 ‘조선전도(朝鮮全圖)’는 金麟昇의 자문을 받아 작성된 것이다.지도 하단부에 적힌 ‘조선 함경도인 모(某)씨에게 친히 그 지리를 자문받고…’의 모씨는 바로 金麟昇을 지칭한 것이다.지도 외에도 당시 조선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계림사략(鷄林事略)’ 역시 그의 자문을 받아 출간됐다. 한편 1차 계약기간중인 10월부터 金麟昇의 급료가 월급제로 바뀌면서 금액수 두 배로 늘어났다.당시 일본 외무경(현 외상) 데라시마(寺島宗則)는 태정 대신(太政大臣,총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어는 물론 한학,시문(詩文)이 능통하여 아주 유용한 인물로…한지(韓地,조선)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라고 그를 평가하였다.일제는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그를 적절히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실지로 그는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2월27일) 이후까지 거의 1년동안 도쿄에 머물면서 조선침략을 위한 갖가지 정보와 조언을 일본측에 제공했는데 결정적인 공헌은 역시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1876년초 강화도조약 체결을 앞두고 일본정부의 대표 구로다 특명전권공사가 그에게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깎지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皇國,일본)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황송해 했다.심지어 ‘끓는 물,타는 불 속이라도 어찌 고사하겠는가’라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1876년 2월4일 강화도에 도착한 구로다 일행은 1주일만인 2월10일 강화부(江華府)에 상륙하여 다음날 11일부터 담판에 들어갔다.조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보름 이상이 걸렸다.이 기간동안 그는 강화도 앞바다에 정박한 일본군함에 머무르면서 공문의 한문번역과 수정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는 조약체결 과정에서 수시로 일본측에 조언을 해주었는데 구로다에게는 조선관리설득방책 18개항을 서면으로 제출하기도 했다.여기에는 전신기(電信機)사용을 권장하는 내용에서부터 ‘여러 말 할 필요없다.청국(淸國,청나라)은 그처럼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데도 먼저 일본에 강화조약을 청하여 맺었다.두루살펴 깊이 생각하라’(18항)는 등 공갈·협박성 문귀도 들어 있다. ‘직량(直亮)’한 성격에 동포애도 강한,조선의 전통적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던 金麟昇.당시 그는 일본의 속셈을 헤아리지 못한 채 ‘일본과 조선은상맹상통(相盟相通)의 나라’로 보고 일본의 강화도조약 체결 추진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조약 체결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얼마후 러시아로 되돌아갔는데 도쿄에서 남긴 한 편지에서 ‘거리에서 듣기 불편한 말들이 들리고 길을 걸으면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적었다.‘친일파 1호’가 배족(背族)의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보상은 멸시와 증오였다.그 이후 대개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강화도 조약/日,운양호사건 고의 유발뒤 강제 체결/총 12조… 韓日간 맺어진 첫 불평등조약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은 병자년에 체결됐다고 해서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으로도 불리는데 정식명칭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조선과의 국교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일본은 조선정부의 쇄국정책으로 교섭이 난항에 빠지자 1875년 9월 20일 해안측량을 빙자하여 ‘운양호사건’을 고의로 유발했다.이를 빌미로 일본은 군함과 함께 구로다를 전권대사로 파견,1876년 2월 27일 조선측 대표 판중추부사 申櫶을 상대로 수교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총 12조로 구성된 이 조약은 ▲부산 이외에 원산·인천 추가 개항 ▲조선연해 측량권 허용 ▲개항장 내 조계(租界)설정·일본인의 치외법권 인정 등 일본측에 유리한 내용들 뿐이다.이 조약은 국제법적 토대 위에서 양국간에 이뤄진 최초의 외교행위이자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기도 하다.
  • 벼랑선 클린턴­성추문 보고서 주요내용

    ◎르윈스키·클린턴 집무실 등서 10차례 성관계/95년 인턴때 집무실 밖 복도서 첫 관계/15차례 폰섹스… 클린턴이 전화걸어 주도 클린턴 대통령과 전 백악관 인턴직원 르윈스키양과의 성추문에 대한 스타 검사의 의회보고서가 인터넷으로 공개됐다. 총 445쪽에 달하는 보고서 내용은 즉각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 주소는 http://thomas,loc.gov/icreport,http://www.house.gov/icreport,http://www.access.gpo.gov/congress/icreport 등 3개다. 공개된 보고서는 지난 1월의 폴라 존스 성희롱사건 재판과 7월의 연방 대배심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증언을 반박하는 내용들이 주로 이루고 있다. 특히 르윈스키는 10차례의 ‘성 관계’를 가졌다며 적나라하게 증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의 문화적 현실을 고려해 적절치 못한 어휘는 다소 완화해서 주요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성관계◁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 ‘성적 관계’,‘성관계’를 가졌음을 부인했다. 또 자극과 만족을 목적으로 르윈스키의 가슴 등과 접촉했음을 부인했다. 반면 르윈스키는 대배심 증언에서 백악관 인턴직원으로 있으면서 22살인 95년 11월부터 실질적인 성적 행동을 비롯해 대통령과 10차례의 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했다. ①95년 11월15일=백악관 인턴직원이었고 대통령과 처음으로 성적 접촉을 가졌다. 오벌 오피스(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밖의 복도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대통령은 가슴을 만지고 키스도 했다. 성적으로 자극시키는 손동작도 있었다. ②95년 11월17일=오벌 오피스 밖의 개인 욕실에서 오럴섹스를 했다. 가슴을 손으로 애무하고 키스도 했다. ③95년 12월31일=스웨터를 벗기고 손으로 가슴을 애무했으며 키스도 했다. 오럴섹스를 했다. ④96년 1월7일=오럴섹스를 했다. 가슴을 손과 입으로 애무했다. 클린턴이 오럴섹스를 해주고 싶다고 제의했지만 신체적인 이유로 거절했다. ⑤96년 1월21일=가슴을 애무했다. 오럴섹스를 나눴다. ⑥96년 2월4일=대통령이 불렀다. 드레스와 브래지어를 부분적으로 들어 올리기도 했다. 성적으로 자극시키기 위해 깊숙한 성감대를 만졌으며 오럴섹스를 해주었다. ⑦96년 3월31일=대통령이 만남을 주선,그녀의 하의를 벗기고 직접 애무했다. ⑧96년 4월7일=가슴을 만졌으며 대통령에게 오럴 섹스를 해줬다. ⑨두번의 연속적인 만남=97년 8월16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만났다. 키스를 나눴으나 오럴섹스는 거부했다. 이날 만남에서 다른 성행위는 없었다. 대통령의 폴라 존스 재판증언을 3주 앞둔 97년 12월28일 오벌 오피스에서 또 만났다. ‘정열적인 키스’를 나눴으나 다른 성적 접촉은 없었다. ▷폰섹스◁ 르윈스키는 대통령과 대략 15번의 폰섹스를 나눴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이 르윈스키에게 매번 전화를 걸어 폰섹스를 주도했다. ▷물질적 증거◁ 르윈스키는 97년 2월28일 대통령과 만났을 때 입고 있었던 드레스를 특별 수사팀에 제출했다. 그녀는 이 옷에 대통령의 정액이 묻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 검사실의 요청에 따라 연방수사국(FBI)은 드레스의 흔적을 분석했다. 특별검사실은 대통령의 DNA샘플을 요청했다. 98년 8월3일 백악관의 한 의사가 특별검사실의 한 변호사와 FBI의 한 요원 앞에서 대통령의 혈액을 채취했다. 가장 민감한 DNA분석을 통해 FBI는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정액이 사실상 대통령의 것이라고 확실히 결론지었다. 대통령의 것이 아닐 가능성은 7조8,700만분의 1이다. ◎핵심 쟁점/성관계­스타:르윈스키 드레스서 정액 발견.클린턴:“부적절한 관계 가졌다” 시인/조사방해­스타:미국인·의회 기만 전략 구사.클린턴:돕기위해 공개적인 노력했다 ◇연방 대배심 등 ‘선서 증언’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거짓말. ▲스타=클린턴은 8월 17일 대배심 증언과 1월 17일 폴라 존스 성희롱 소송 증언에서 르위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함으로써 선서를 하고서도 거짓말을 했다. ▲클린턴=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에 대해 질문을 받았으며 이질문을 성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 ▲스타=연방수사국(FBI)시험은 르윈스키의 드레스에서 발견된 정액이 클린턴의 것 임을 논란의 여지없이 입증해주고 있다. ▲클린턴=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가졌음을 시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비하고 추한 주장들이 공개된 것은 대통령에게 굴욕감을 주고 사임을 강요하기 위한 의도이다. ◇클린턴이 스타의 조사를 방해하려 했는지 여부. ▲스타=대통령은 98년 1월 이후 미국민과 의회를 기만하는 전략을 추구했으며 7개월동안 형사적 조사를 지연,방해하고 8월에는 미국민과 의회를 속였다. ▲클린턴=증인 매수는 없었다. 백악관은 참모들이 변호인을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고 증인들과 대화를 나누어 조사결과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한 “공개적이고도 합법적인” 노력을 했다. ◇클린턴이 르윈스키나 개인비서 베티 커리에게 르윈스키로부터 받은 선물을 회수하도록 요구했는지 여부. ▲스타=클린턴은 선물회수 문제와 관련,소환에 불응하려는 한 증인을 도움으로써 사법권을 방해하려했다. ▲클린턴=르위스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고 시인했다. 선물들을 처분하도록 암시하지 않았고 더구나 커리에게 르윈스키에게 준 선물을 회수하도록 요구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클린턴이 르윈스키나 커리의 증언에 대해 영향을 미치려 했는지 여부. ▲스타=클린턴은 잠재적 증인으로 떠오른 커리에게 영향을 미칠 의도로 폴라 존스 재판에서 증언을 한 다음 날 커리를 집무실로 불러 들였다. ▲클린턴=증인 매수는 없었다. ◎보고서/性관련 어휘 5,000회 등장/법률용어 별로 없고 ‘탄핵’은 15번 나와 공개된 보고서에는 낯뜨거운 어휘들이 대거 등장해 인텃네에서는 ‘어른들만 열람’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컴퓨터로 분석 결과,보고서에서는 성 관련 어휘가 무려 5,000번이나 등장. ‘오럴섹스’,‘폰섹스’,‘성적 접촉’,‘성관계’,‘성욕’,‘성교’ 등 온통 성관련 용어로 뒤덮여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성적(sexual)’. 무려 406번이나 나온다. ‘섹스’라는 말도 164번에 이른다. ‘젖가슴’이 62번,‘시가’ 23번,‘정액’ 19번,‘질’ 5번,그리고 ‘성기’와 그 변형어가 64번 사용됐다. 연인이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는 의미의 ‘선물’이란 단어가 215번,‘사랑’도 18번 쓰였다. ‘성적으로’는 9번,‘섹시’와 ‘더욱 섹시’ 그리고‘성행위’ 등은 각각 1번씩 쓰였다. 법률 용어는 적었다. ‘사법’뒤에 붙은 ‘방해’라는 말은 11번,‘위증’ 40번,‘탄핵’ 15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성추문 보고서 일지 ▲98년 1월7일=르윈스키,클린턴 대통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내용의 선서 진술서에 서명. ▲1월12일=르윈스키의 친구이자 국방부 직원 린다 트립,르윈스키가 클린턴 대통령과의 성관계에 관해 얘기하는 대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한 테이프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에게 전달. ▲1월17일=클린턴,폴라 존스양 성추문 소송에서의 선서 증언을 통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 ▲7월17일=스타 검사,클린턴에게 대배심 출두를 요구하는 소환장 발부. ▲7월27일=르윈스키,처음으로 특별검사팀과 면담을 갖고 클린턴과의 성관계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짐. ▲7월29일=클린턴,8월17일 백악관에서 폐쇄회로 TV를 통해 연방 대배심 증언을 하겠다고 발표. ▲8월6일=르윈스키,연방 대배심 첫 증언. ▲8월17일=클린턴,연방대배심 증언후 대국민 연설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 시인. ▲9월4일=클린턴,더블린 방문시 처음으로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해 ‘죄송하다’는 표현 사용. ▲9월9일=스타 검사,의회에 보고서 제출. ▲9월10일=클린턴,민주당 상원 지도부와 회동해 르윈스키 스캔들 관련 사과. 하원법사위 스타 검사 보고서 공개 권고 의결. ▲9월11일=하원 전체 회의,스타 보고서 전문 공개 의결.
  • 벼랑선 클린턴­정치적 앞날

    ◎11월선거 민주부진땐 치명타/스타보고서 공개로 여론 들끓어/민주당 의원도 대통령에 등 돌려/지지도 높고 의회 레임덕에 ‘위안’ 클린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밧줄에 묶인 사자꼴이 돼버렸다.탄핵 논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고 자칫 사임을 결단해야할 지도 모를 위기에 몰렸다. 말도 많던 성추문에 대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의회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마음을 바꿨다.보고서의 공개에 앞서 하원에서는 야당인 공화당과 여당인 민주당이 공개해야할 지를 놓고 표결을 했다. 결과는 363대 63.압도적인 표차로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결됐다.민주당 의원들마저 클린턴과 반대입장을 보였다. 산술적으로도 어려운 처지다.클린턴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곳은 하원의 법사위와 본회의,상원 본회의.하원 법사위는 공화당 의원 21명에 민주당 15명,하원 전체는 공화당 228명에 민주당은 207명이다.상원은 100석 가운데 55석이 공화당이다. 탄핵에서 연방 대배심격은 상원 본회의.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여부를 결정한다.공화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의 도움없이 실제 탄핵을 할 수는 없다.그러나 정치란 산술적이지만은 않다.실제로 74년 워터 게이트 사건에 연루됐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정치권의 요구를 무시했지만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자 사임을 결심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물론 닉슨과 입장이 전혀 다르다.국민들이 우선 탄탄하게 지지하고 있다.보고서 공개 직후 미국의 CNN방송과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하고 성추문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클린턴을 몰아세울 의회가 힘을 잃고 있다는 대목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의회는 11월3일의 중간 선거일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레임덕 현상에 빠졌다.하원 전체와 상원의 34석을 새로 뽑는 선거. 선거에서 민주당이 의석을 늘린다면 클린턴은 ‘르윈스키 컴플렉스’를 완전히 털어버릴 것이다.그러나 공화당에게 몇석이라도 더 내준다면 탄핵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자칫 사임해야 할지 모른다.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눈총을 극복해가며 중간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어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된 셈이다. ◎국내 반응/미 일부의원 “보고서 내용 구역질 난다”/의회 웹사이트 예상대로 접속건수 폭주 성추문 의회 보고서 공개는 큰 파문을 불러왔다.미국은 물론 세계의 언론들은 저마다 촌평을 내놓고 심지어 국가 원수들까지 나서 한마디씩을 거들고 있다.클린턴 대통령은 ‘부인’을 일관해오던 태도를 바꿔 뒤늦게 ‘공개적’으로 참회와 용서를 빌고 있다.자치사 국제질서의 부재로까지 비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고서가 공개된 의회 웹사이트는 예상대로 접속건수가 폭주.하원 웹사이트 접속을 시도한 사람중 10%만이 성공했다는 후문.CNN이 설치한 웹사이트에는 11일 하오 분당 32만3,000건의 접속이 이뤄져 61%의 접속률을 보였다고. ○…클린턴 대통령은 보고서가 공개되기 수시간전인 11일 상오에 있은 조찬 기도회에서 “가장 중요한 나의 가족,또 나의 친구들,참모진,각료,모니카르윈스키와 그 가족,그리고 미국민 등 상처를 받은모든 이들이 내가 느끼는 슬픔이 진실이라는 점을 아는 것이 내게 중요하다”며 공개적 사과.이 자리에는 앨 고어 부통령,부인 힐러리 여사,125명의 종교 지도자 등이 참석.힐러리도 300명의 입양자와 사회사업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했으나 클린턴의 성추문에 대해서는 함구. ○…미국 의원들은 일부에서 ‘구역질이 난다’는 극단적 반응을 나타냈으나 전반적으로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보브 돌 전 상원 원내총무는 “이번 일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공화당 의원들의 자제를 호소. ○…공개된 보고서에 정치 지도자들이 신중한 반응을 보인 반면 일반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시민들은 백악관 정문에서 닉슨 도서관까지 줄을지어 선 채 클린턴의 탄핵을 요구.버지니아 출신의 제프 테일러(32)는 “정부의 권위를 지키려면 클린턴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캘리포니아 출신의 리처드 에번스(69)는 “교활한 윌리(클린턴)가 사기꾼 딕(닉슨)을 성인처럼 보이게 한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차량에 부착할 것”이라며 클린턴을 맹비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워싱턴 포스트,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신문들은 스타 검사의 보고서가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성관계를 입증하는 충분하다고 평가된다고 일제히 보도.스타 검사 보고서로 거의 전 지면을 채우다 시피한 이들 매체들은 상세한 내용과 함께 ‘클린턴의 권력남용과 사법방해 고발’등의 제목으로 1면 머리와 해설,분석기사로 지면을 장식. ○…보고서 공개에도 불구,미국 증시에서는 주가가 일제히 뛰는 등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지수는 11일(현지 시간) 폭락 이틀만에 반등세로 돌아서 179.96포인트(2.36%) 오른 7,795.50에 폐장. 다우지수의 이날 상승폭은 사상 9번째로 높은 수치.또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500은 28.81포인트(2.95%) 오른 1,009.06에 마감돼 1,000선을 하룻만에 회복하고 폐장. ◎해외언론 반응/르몽드 “클린턴사태 세계위기 초래 우려”/일 신문 “미 정부 정책 수행능력 떨어질것” ○…프랑스의 르 몽드는 1면 머리기사에서 “클린턴 사태가 세계의 위기를 낳을 수 있다”다고 지적하고 ‘미국식 지옥’이라는 사설에서 스타 보고서를 “필요 이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들춰낸 것”이라고 평가. 독일의 디 벨트는 “클린턴이 거짓말을 했다”면서 “그러나 그가 잘못을 저지른 것과 해임하는 것은 같은 선상의 문제가 아니며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다”고 지적.이탈리아 밀라노의 코리에레 델라 세라지는 “미국이 클린턴을 사임으로 몰아 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권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는 “이번 추문으로 미국 대통령의 권위가 심각히 훼손될 것이며 정부의 정책수행능력도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 홍콩의 밍빠오(明報)는 클린턴의 장래가 매우 어둡다고 예측하면서 국내외 치적에도 불구,“다른 국가들이 미국인들을 어떻게 존경하겠느냐”고 반문.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는 사설에서 성추문이 러시아 및 북한 문제 등 미국의 지도력이 필요할 시기에 터져나온 것은 미국의 정치력 마비라고 지적. ◎해외지도자 반응/영 총리,클리턴에 전화 “변함없는 지지” 천명/독 총리 “빠른시간내 문제가 해결되길” 촉구 영국,독일 등 미국의 주요 우방국 지도자들은 성추문에도 불구,클린턴에 대한 든든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궁지에 빠진 클린턴과는 거리를 두라는 국내 각계의 조언에도 불구,11일 전화를 걸어 북아일랜드 문제,러시아 사태 등에 대해 30분간 대화를 나누는 등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며 국제사회에서 클린턴의 가장 절친한 동반자임을 자처.영국 총리실은 또 클린턴 지지를 분명히 하듯 21일로 예정된 방미일정이 취소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부인.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독일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클린턴 대통령이 완전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빠른 시간내에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면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자기 의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조기수습을 촉구. ○…중국의 정치지도자와 외국정책전문가들은 사견임을 전제로 클린턴의 위기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클린턴 대통령간의 우호관계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전망.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의 미국 전문가 진 칸롱은 “안정적인 양국 관계를 위해서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대부분 생각하고 있다”며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중국 지도부의 뜻을 간접 전달.
  • 클린턴 최대 위기/性추문 보고서 공개

    ◎탄핵·사임 압력 가중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성추문과 관련,최대의 정치위기를 맞고 있다. 탄핵의 근거가 될 수있는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보고서가 11일(미국 동부시간) 공개되면서 탄핵 가능성과 사임 압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성추문 보고서’는 25쪽의 머리글,280쪽의 조사내용,140쪽의 탄핵사유 등 445쪽으로 클린턴 대통령은 95년 11월15일부터 전 백악관 인턴직원 르윈스키양과 모두 10번의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스타 검사는 보고서에서 르윈스키가 성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드레스의 정액과 클린턴 혈액 샘플의 유전자(DNA)가 일치했다며 위증,사법방해,증인회유,권력남용 등 11개항을 탄핵사유로 제시했다. 클린턴 대통령측은 이에 대해 ‘부적절한 관계’를 시인했으며 증인 매수는 없었으며 백악관은 참모들이 변호인을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는등 공개적이고도 합법적인 노력을 했다고 반박했다. 한편 하원은 격론끝에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에대한 스타 검사 보고서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토록 찬성 363대 반대 63으로 의결했다.
  • 여권 ‘李壽成역할론’ 고개

    ◎영남권 의원들 與 입당전 李씨와 교감 거쳐/최근 YS와 회동 TK·PK연합 모색한듯 여권에 ‘李壽成역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권의 안정의석 확보를 그의 위상변화와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동진(東進)’ 구상과 맞물려 지역대통합 명분이 부상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같은 기류는 범민주계 모임인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 인사들이 속속 국민회의로 입당하면서부터 시작됐다.이들 상당수는 한나라당 대선후보경선 당시 李壽成 고문(현재 민주평통부의장)을 지지했던 인물들이다.정발협의장과 집행위원이었던 徐錫宰·김운환 의원이 지난달 28일 입당했다.운영위원장을 지낸 TK(대구·경북) 출신의 權正達 의원에 이어 ‘핵심참모’였던 張永喆 의원도 11일 합류했다.앞서 劉容泰·朴宗雨 의원도 들어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회의가 전국정당화를 위해 영남권 진용을 재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이 재편과정에서 李부의장의 역할이 두드러짐은 물론이다. 張·劉의원등 최근 입당파 상당수가 李부의장과 사전교감을 거친 것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여기에 張永喆 의원 등의 여권 진입은 金潤煥 의원을 정점으로 한 TK세력 재편을 촉진시킬 수 밖에 없다. 李부의장이 최근 金泳三 전 대통령을 만나 시국을 논의한 것도 주목된다.영호남의 지역대통합에 앞서 TK와 PK(부산·경남)세력을 묶어내려는 ‘임무수행’이 아니냐는 것이다.이런 배경에서 10일 저녁 YS가 6명의 한나라당 민주계의원을 불러모은 것도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李부의장의 행보를 곧바로 여권의 리더십과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개혁작업의 연속성과 경제회생 노력 때문에 李부의장의 ‘국민회의 입성’에는 상당한 시일을 필요로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 北 인민무력상에 金鎰喆/해군사령관 출신… 인민무력부 省 개칭

    ◎군 지도부 개편 매듭… 실세로 전면 부상 북한은 9일 정권수립 50주년을 맞는다.9.9절을 하루 앞둔 8일 북한 중앙방송은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인민무력상에 金鎰喆 차수를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북한 군부의 진용개편이 일단락된 셈이다.인민무력성으로 이름이 바뀐 인민무력부는 지난해 2월 崔光 부장이 죽은지 지금까지 공석이었다. 金鎰喆(65)은 해군사령관 출신의 북한군부의 핵심 인물.吳振宇,崔光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상 자리에 오름으로써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자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趙明祿,金英春 총참모장 등과 함께 북한군부 내에서 3두체제의 일각을 차지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9.9절을 앞둔 북한사회는 병영국가로서의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민족통일연구원 鄭永泰 연구위원은 “북한이 사상과 군사력으로 당면한 난국을 헤쳐나가려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이는 성급한 개방과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북한체제를 뿌리째 흔들 것이라는 우려와 무관치 않다.북한으로선 당분간 부족한 외화를 무기 및 관련 기술을 수출하거나,이를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 등으로부터 받는 보상금으로 메우는 전략을 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지난 5일 최고인민회의를 기점으로 북한군부의 실세급들이 속속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국방위원들 10명중 7명이 당 중앙군사위원,당정치국 후보위원 기타 도(道)당책 등을 겸직한데서도 알 수 있다.최고인민회의 주석단 서열에서도 趙明祿 李乙雪 金鎰喆 李用茂 등 국방위원들이 당비서들보다 앞자리를 차지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당분간 군부중심의 통치를 계속할 것”으로 점쳤다. 金正日이 명목상의 구심점으로 은둔정치를 펴는 가운데 군부의 중심인물들이 막후 실세역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9·9절 당일에도 북한은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나 군부의 높아진 위상을 과시하는 행사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인공위성’이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앞세운 ‘깜짝쇼’ 스타일의 추가 무력시위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 궤변언론 현상학(金三雄 칼럼)

    동양에서는 궤변론자들이, 서양에서는 소피스트들이 판치던 때가 있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혜시(惠施)와 공손룡(公孫龍) 등이 궤변론의 주류를 이룬다. 중국의 궤변론은 명학(名學)에서 전이되었다. 명학에서는 명(名)이 있음으로써 형(形)을 알수가 있고 형이 있으므로 명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명칭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을 분석하고 명칭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개념과 실체의 관계를 논하는 것이다. 혜시와 공손룡의 궤변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에서 절정을 이룬다. “백마는 말이 아니다.왜냐구? 말이란 형체에 붙인 이름이요 백(白)이란 색깔(形)에 붙인 이름이다. 색깔에 붙인 이름은 형체에 붙인 이름과는 다른 것이다, 고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란 논법이다. 서양에서는 변증법을 웅변술에 적용하여 타인의 학설이나 이론을 논박하기 위해 궤변을 발전시켜 나갔다.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나 나는 화살의 정지론 등은 변증법적 궤변론의 전형이다. 케케묵은 궤변론을 꺼낸 데는 까닭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궤변이 사라지지않는 우리 언론풍토 때문이다. 학계나 정계에서도 궤변은 극성을 부린다. 최근 검찰의 정치인 사정과 관련하여 일부 언론인과 지식인이 쓴 글은 차마 비판이란 단어가 부끄러운,그야말로 궤변론의 극치다. 원래 ‘궤변학’은 치밀한 논리와 미려한 문장으로 포장되기 때문에 현혹되기 쉽다. ‘궤변의 함정’이다. 정치개혁과 비리척결은 시대요구다. 궤변론자들도 틈만 나면 사설 칼럼 기사 기고를 통해 정치개혁과 성역없는 사정을 촉구했다. 여야 지위고하를 가리지 말고 비리를 척결하라고 썼다. ○본질 뭉개고 가지 부풀려 마침내 검찰이 칼을 뽑았다. 검찰은 지난 대선때 국세청장과 차장이 한나라당쪽의 선거자금을 불법으로 모금한 사실을 내사하는 과정에 徐相穆 의원이 개입한 단서를 잡고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검찰로서는 당연한 조처인 것이다. 전 국세청 차장은 이미 낌새를 채고 미국으로 달아나고 徐의원도 그걸 알고 총재선거의 투표가 끝나자마자 출국하려다가 공항에서 금지조치를 당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집권당(당시)의 대통령후보 핵심참모가 국가의 조세권을 볼모로 선거자금을 거두어들인 행위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권력층이 세금을 징수하는 국세청과 짜고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세금감면을 조건삼아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신성한 국민의 납세의무에 대한 도전이고 반역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마치 검찰이 표적사정을 한것처럼 비난하면서 정치자금과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람이 많은데 왜 그 사람한테만 죄를 묻느냐고 비난한다. 마치 붙잡힌 강도가, “세상에는 강도도 많은데 왜 나만 붙잡느냐”는 식이다. 또 “정치 맞수의 대선자금을 수사한 전례도 없다”고 마치 정치보복을 한것처럼 왜곡하면서 국세청의 비리수사를 ‘맞수’의 대선자금 수사로 본말을 전도시킨다. ○언론탈 쓴 궤변론자들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가 구속되자 이번에는 ‘구색맞추기’라고 비난했다. ‘성역없는 수사’가 어느새 이렇게 바뀐 것이다. 정부의 개혁에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 것까지는 ‘비판기능’의 하나라 치더라도 본말전도와 왜곡을 일삼는 행위는, 언론인이기를 포기한 궤변론의 일탈행위다. 언론인은 양심과 진실의 바탕에서 정론을 써야 한다. 궤변을 비판으로 착각한다면 언론의 기능을 스스로 모독하는 반언론의 소피스트다. 원조 소피스트들은 학문과 토론의 방법으로 궤변론을 즐겼을 뿐 ‘실용화’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는 비리 정치인과 함께 궤변을 일삼는 언론인의 척결도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 정기국회 처리예정 법안 256건 내용

    정부는 10일 개회되는 정기국회에 256건의 법률 제·개정 및 폐지안을 제출한다고 7일 열린 고위 당정회의에서 밝혔다. 정부가 제출하는 법안은 구조조정,실업대책 등 경제위기 극복과 관련한 법안이 88건,각종 규제를 혁파하기 위한 법안이 56건,삶의 질 향상과 관련된 법안이 66건,기타 46건 등이다.각 부처별로 정기국회에 제출하는 법안은 다음과 같다.(제정·폐지 등 특별한 표기가 없으면 개정안,괄호 안은 법안 주요 내용) ▷재정경제부◁ ▲부가가치세법(변호사 공인회계사 용역에 부가가치세 과세)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제정안 ▲국세기본법 ▲조세감면규제법 ▲소득세법 ▲법인세법(기업의 합병·분할 등 조직변경에 대한 과세체계 정비) ▲상속세 및 증여세법 ▲세무사법 ▲예산회계법 ▲조세체계 간소화에 따른 세법 등의 조정에 관한 임시특례조치법제정안 ▲관세법 ▲관세사법 ▲통계법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등의 효율적 처리 및 성업공사의 설립에 관한 법 ▲은행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종합금융회사법 ▲신용협동조합법 ▲상호신용금고법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법 ▲증권거래법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 ▲공인회계사법 ▲상품권법 ▲선물거래법 ▷통일부◁ ▲귀환자 지원법 ▷외교통상부◁ ▲여권법 ▲외무공무원법 ▷법무부◁ ▲상법 ▲부동산등기법 ▲변호사법(비리로 퇴직한 판·검사의 변호사개업 제한,사건브로커 처벌강화) ▲해외뇌물거래방지법제정안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 ▲공증인법 ▲형사소송비용법 ▲민법 ▲민사조정법 ▲인권법제정안(인권침해와 차별행위 규제) ▲주택임대차보호법 ▷국방부◁ ▲군사법원법(국외도피사범의 공소시효 정지,피고인의 항소심출석권 보장) ▲군사형법 ▲국군조직법(해병대사령관에게 해군참모총장의 권한 일부를 위임) ▲병역법(신체조건에 의한 병역면제범위 축소,선출직 및 고위공직자의 병역사항 공개 의무화,병역복무기간의 사회근무경력 인정 대상 및 범위 확대) ▲군인사법 ▲향토예비군설치법 ▲방위산업특별조치법 ▲군복 및 군용장구 단속법 ▲국방과학연구소법 ▲한국국방연구원법 ▲국군포로지원법 제정안 ▲군무원인사법 ▷행정자치부◁ ▲행정사법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 ▲재난관리법 ▲중앙권한의 지방이양 촉진법제정안 ▲국가기록보존법제정안 ▲도로교통법 ▲지방재정법 ▲지방공기업법 ▲지방세법 ▲소방법 ▲책임경영 행정기관의 설치운영법제정안 ▲지방자치법 ▲공무원교육훈련법 ▲자연재해대책법 ▲상훈법 ▲정부조직법(기획예산위와 예산청 통합,대통령 직속의 중앙인사위 설치) ▲유선 및 도선 사업법 ▲지방공무원교육훈련법 ▲정부출연연구기관설립운영법제정안 ▲감사원법(감사원장 정년을 70세로 연장) ▷교육부◁ ▲학교보건법 ▲교원지위향상특례법 ▲교육기본법 등 시행에 따른 건설산업기본법 등의 정비에 관한 법제정안 ▲고등교육법 ▲평생학습법제정안 ▲교원단체설립운영법제정안 ▲서울대병원설치법 ▲국립대병원설치법 ▲교육공무원법 ▲국립대특별회계법제정안 ▲문닫은 학교 재산관리특례법제정안 ▲학원설립운영법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제정안 ▲학술진흥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한국사학진흥재단법 ▲사립학교법▲한국교육방송원법 ▷과학기술부◁ ▲원자력법 ▲한국원자력연구소법 ▲과학기술혁신특례법 ▲대덕연구단지관리법 ▲엔지니어링기술진흥법 ▲과학관육성법 ▷문화관광부◁ ▲관광진흥법 ▲청소년기본법 ▲체육시설설치 이용법 ▲경륜·경정법 ▲국민체육진흥법 ▲출판사 및 인쇄소 등록법 ▲향교재산법 ▲전통사찰보존법 ▲지방문화진흥원법 ▷농림부◁ ▲농수산물품질관리법제정안 ▲양곡증권법 ▲인삼산업법 ▲축산법 개정안 ▲농업농촌기본법제정안 ▲농업기반공사법제정안 ▲가축전염병예방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비료관리법 ▲사료관리법 ▲수의사법 ▲양곡관리법 ▲종자산업법 ▲초지법 ▲진돗개보호육성법 ▲잠업법폐지안 ▲산림법 ▲화전정리법폐지안 ▷산업자원부◁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도시가스사업법 ▲액화석유가스 안전 및 사업관리법 ▲한국석유개발공사법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법 ▲전기사업법 ▲전기공사업법 ▲집단에너지사업법 ▲유통산업발전법 ▲지역기술혁신촉진법제정안 ▲전자상거래기본법제정안 ▲전기용품안전관리법 ▲공업배치 및 공장건설법 ▲공업발전법 ▲반도체집적회로 배치설계법 ▲부정경쟁방지법 ▲에너지자원사업특별회계법 ▲광업법 ▲광산보안법 ▲석탄산업법 ▲에너지이용합리화법 ▲군납법폐지안 ▲공업 및 에너지기술기반 조성법 ▲벤처기업육성특별조치법 ▲송유관사업법 ▷정보통신부◁ ▲정보화촉진기본법 ▲전산망보급확장과 이용촉진법 ▲소프트웨어 개발촉진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우정사업운영특례법 ▲전자서명법제정안 ▲전파법 ▲별정우체국법 ▲체신창구업무위탁법 ▷보건복지부◁ ▲국민연금법 ▲장기이식법제정안 ▲혈액관리법 ▲의료분쟁조정법제정안 ▲검역법 ▲공중위생법 ▲농어촌보건의료특별조치법 ▲약사법 ▲아동복지법 ▲국민건강보험법제정안 ▲사회복지사업법 ▲외국민간원조단체법 ▲생활보호법 ▲대한적십자사조직법 ▲노인복지법 ▲영유아보육법 ▲입양촉진 및 절차특례법 ▲모자복지법 ▲윤락행위방지법 ▲의료보험법 ▲의료보호법 ▲의료법 ▲의료기사법 ▲시체해부 및 보존법 ▲마약법 ▲식품위생법 ▲국민건강증진법 ▲위생사법 ▲기생충질환예방법 ▲모자보건법 ▲지역보건법 ▲전염병예방법 ▲결핵예방법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매장묘지법 ▲보건의료산업진흥법제정안 ▷환경부◁ ▲대기환경보전법 ▲소음진동규제법 ▲하수도법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처리법 ▲폐기물관리법 ▲환경개선비용부담법 ▲자원절약과 재활용촉진법 ▲환경영향평가법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노동부◁ ▲직업훈련촉진기본법폐지안 ▲산업안전보건법 ▲진폐예방과 진폐노동자보건법 ▲직업안정법 ▷건설교통부◁ ▲교통안전공단법 ▲건설기계관리법 ▲시설물안전관리특례법 ▲항공법 ▲하천법 ▲도로법 ▲건축법 ▲도시개발법제정안 ▲자동차관리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교통체계효율화법제정안 ▲국유철도운영특례법 ▲주택저당금융주식회사법제정안 ▲도시교통정비촉진법 ▲인천국제공사법제정안 ▷해양수산부◁ ▲선박안전법 ▲연안관리법제정안 ▲선박법 ▲항로표지법 ▲수로업무법 ▲해난심판법 ▲개항질서법 ▲수상레저안전법제정안 ▲공유수면관리법 ▲해양개발기본법 ▲해양오염방지법 ▲한국선주책임상호보험조합법제정안 ▲해상교통안전법 ▲어선법 ▲낚시어선업법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 ▲공유수면매립법 ▲선원법 ▲항만법 ▲항만운송사업법 ▲도선법 ▲신항만건설촉진법 ▲수산물검사법 ▲어항법 ▲수산업법 ▷법제처◁ ▲행정심판법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예우법 ▲국가유공자예우지원법 ▲보훈복지공단법 ▷공정거래위원회◁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표시광고 공정화법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적용제외제도의 정리 등에 관한 법제정안
  • 비리 혐의 정치인 거취/吳世應 의원­외출후 소식두절

    ◎徐相穆 의원­정상업무에 열중/白南治 의원­가까운 의원 만나/金守漢 의원­“정치공작” 반발 정치권 사정(司正)의 도마에 오른 한나라당 의원들은 3일 한결같이 혐의내용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면서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부와의 접촉도 끊고 대책마련에 부심했다. 그러나 “대선자금 문제는 강경 대응하되 개인 비리 관련 검찰 수사에는 떳떳하게 응해야 한다”는 당론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호텔 인허가 관련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吳世應 의원은 이날 상오 일찍 외출한 뒤 소식이 두절됐다. 그의 가족은 “며칠전 吳의원이 운영하는 지역신문 관계자들을 검찰이 소환했을 때부터 ‘절대로 부정은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한 측근은 “검찰이 문제삼고 있는 5,000만원은 정치후원금이나 신문사 광고비 명목으로 전액 영수증 처리됐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체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白南治 의원은 참모들과도 연락을 끊고 서울 모처에서 가까운 의원들과 대책을 협의했다. 대선자금 모금과 연루된 徐相穆 의원은 하루종일 여의도 당사 정책위의장 사무실에 머물렀다. 徐의원은 주요당직자회의와 이·취임식 등 당의 공식 일정에 참석한 뒤 하오에는 전문위원회의를 주재하는 등 정상 업무에 열중했다. 李信行 의원은 상오 6시30분부터 구로동 자택에서 구인장을 제시한 검찰 수사관들에게 ‘묶여’있다가 하오 1시30분쯤 검찰에 출두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李의원은 “오늘 하오 2시 자진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도 수사관을 집으로 보내 출입을 막은 것은 심한 처사”라며 분개했다. 대선자금 모금 의혹을 받고 있는 金泰鎬 의원과 개인비리 혐의가 언론에 보도된 金守漢 의원은 “사정이 정치공작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반발했다.
  • 한나라 당직 개편/사무총장 申卿植 의원/정책의장 徐相穆 의원

    ◎대변인 安商守 의원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는 2일 사무총장에 辛卿植 의원,정책위의장에 徐相穆 의원,대변인에 安商守 의원을 임명하는 등 전면적인 당직개편을 단행했다.朴熺太 원내총무는 유임됐다. 또 총재비서실장에 邊精一 의원을 임명하는 한편 제1 사무부총장에 金炯旿 의원,제2 사무부총장에 金浩一 의원,제1정조실장에 金光元 의원,제2 정조실장에 朴鍾根 의원을 각각 기용했다. 신설된 총재비서실 부실장에는 姜聲才 의원이 임명됐다. ◎신경식 사무총장/비서실장관 5차례… 적이 없는 무골호인 ‘무골호인(無骨好人)’으로 언론인 출신 3선 의원.여야를 통틀어 적(敵)이 없다.비서실장만 5차례 지낼 정도로 참모역할에 뛰어나다.지난 대선 당시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李會昌 총재와 인연을 맺었다.이번 총재경선에서 도 李총재 당선에 막후역할이 컸다.부인 崔金女씨(59)와 2남1녀. ▲충북 청원·60세 ▲고대 영문과 ▲대한일보 정치부장 ▲총재비서실장 ◎서상목 정책위의장/경제학 박사 출신… ‘昌맨 7인방’ 핵심참모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3선의원.당내 대표적 ‘경제통’으로 李會昌 총재의 정계 입문 초기부터 핵심 참모로 뛰었던 이른바 ‘7인방’의 한사람.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일처리가 말끔하다는 평.李會昌 총재의 경기고 후배.부인 黃賢淑씨(52)와 1남. ▲충남 홍성·51세 ▲미국 앰허스트대 ▲KDI부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안상수 대변인/박종철 고문치사 진상 밝힌 원칙주의자 입심이 좋은 원칙주의자.朴鍾哲군 고문 치사사건의 주임검사로 사건의 진상과 축소 조작 사실을 밝혀 내는데 일익을 담당했다.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에 입당,정계에 입문했다.의원 상호평가에서 법사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의정활동도 열심이다.부인 田禧貞씨(51)와 2남1녀. ▲경남 마산·52세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 검사 ▲대한변협 공보이사
  • ‘러 위기’ 세계 확산/속타는 金 대통령

    ◎“외환보유 500억弗로 확대” 지시/기업·금융 구조조정 수위 높일듯 국제적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데 따른 金大中 대통령의 고민이 깊다. 최근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유럽,남미 경제까지 악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고 있다는 게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의 전언이다. 인도네시아 사태 등 동남아 지역의 경제위기와 엔저(円低)현상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위기 돌파구인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는 터에 세계적 불황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인 셈이다. 金대통령의 당장의 관심은 안정적인 가용 외환보유고 확보다. 국제통화기금(IMF) 2선 지원자금 80억달러, 미국 수출입은행 20억달러를 들여와 보유규모를 500억달러로 늘리려는 생각이다. 이번주 경제대책조정회의 주요 의제로 올려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도록 참모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은 갈수록 고통이 가중되리라는 판단에서다. 당장 정부가 줄 수 있는 것이 IMF사태로 인한 구조조정과 실업과 같은 고통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기간이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우리가 해야할 일은 더 큰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라고 金대통령은 생각하는 것 같다. 朴대변인도 “세계가 어려워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절박한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외환보유고 확대와 함께 기업·금융 등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9월 말까지는 인사,개혁 등을 마무리해 금융권을 정상화시킴으로써 회생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복안이다. 또 본격적인 정치권 개혁으로 고통 분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 나가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래 저래 나라 전체가 ‘변혁의 9월’로 들어서는 형국이다.
  • 한나라號 선장 李會昌씨 유력/31일 총재 경선… 후보들의 다짐

    ◎李會昌­‘1차서 승리’ 장담속 긴장/金德龍­黨 결속·재집권 위해 헌신/李漢東­최후까지 黨과 함께 운명/徐淸源­계보·줄세우기 정치 타파 거대 야당 ‘한나라호(號)’의 ‘선장’은 누가 될까. 총재 경선에 나선 李會昌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는 30일 각각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갖고 막판 지지를 호소했다. 李會昌 후보가 1차 투표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세 후보는 2차 투표까지 염두에 두고 표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후보 기호순으로 31일 경선에 임하는 다짐과 각오를 들어본다. ▷李會昌 후보◁ 세 후보와 달리 공식 기자간담회를 갖지 않았다. 대신 여의도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재경선에 임하는 각오와 소회를 피력했다. 李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 총재가 되든 강한 야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당이 단합·화합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당원의 뜻을 저버리고 대국민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李후보는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을 돌며 대의원들을 접촉해 보니 대부분 당이변해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며 “특히 처지가 어려운 지역일수록 야당의 확실한 위상을 찾아주길 바라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당원들의 기대와 요구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1차투표에서 55∼60%를 득표,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자신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李漢東 후보◁ 李會昌 후보를 직접 겨냥해 공세를 퍼부었다. 李후보는 “유감스럽게도 이번 전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3가지 기본조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과장된 ‘대세론’과 명분없는 ‘줄세우기’,李會昌후보와 李基澤 총재권한대행의 밀약설,‘李會昌­金潤煥­李基澤’ 3인의 밀실합의설 등을 공략했다. 李후보는 “당내 민주화를 짓밟는 패권주의 정치행태와 불공정 경선,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당권분할 의도 등은 3金정치의 표본이며 정치권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국민 여망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자신과 관련한 ‘金大中 대통령 접촉설’이나 ‘경선패배 후 탈당설’등을 “허무맹랑한 흑색선전”이라고 단정하고 “마지막까지 당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1차에서 1위를 확보,최종 승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金德龍후보◁ 金후보는 “여권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노골화하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여권의 패권주의에 단호히 맞서 당의 결속과 재집권을 위해 헌신하는 총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일부 후보를 겨냥,“독선적 자세로 ‘쫓아낼 사람,쫓아내겠다’고 호언하거나 내각제 개헌 문제 등으로 경선 이후 정치 행보가 불투명한 후보에게는 표를 주어서는 안된다”며 “위대한 ‘대의원 혁명’을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만에 하나 총재가 되지 않는다 해도 당을 지키며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가겠다”고 경선 결과에 승복할 뜻을 분명히 했다. 1차투표에서 40% 안팎의 득표율로 2위를 확보,2차투표에서 역전하겠다는 전략이다. ▷徐淸源 후보◁ 徐후보는 “우리 당은 이제 더이상 몇몇 계파 보스의 정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이른바 ‘대세론’이라는 것은 한낱 허구에 불과하며,‘대세’가 있다면 특정인이 총재가 되는 대세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대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徐후보는 “개인의 기득권이나 지키고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 있었다면 경선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총재가 되면 계보정치와 국회의원들을 줄세우는 구태정치,돈쓰는 정치,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정치를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또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에 끝까지 남아 제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1차에서 25%의 득표로 2위를 차지,2차투표에서 ‘이변’을 기대하고 있다. ◎D­1 캠프별 움직임/대의원 숙소 돌며 한표 호소/反李 3후보 연대 강력 시사 ‘8·31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30일 한나라당은 행사준비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총재경선에 나선 네 명의 후보들도 자정이 되도록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의 숙소를 돌며 한 표를 부탁했다. ○李會昌 후보 표 점검 계속 ○…李會昌 후보에 비해 ‘세불리’를 인정하고 있는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 등 3명은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대의원 혁명’을 역설했다. 이들은 2차투표까지 가면 ‘반 李會昌표’가 결집해 ‘대의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3人 연대’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했다. 반면 李會昌 후보는 여의도 부국증권빌딩 사무실에서 辛卿植 비서실장,梁正圭 河舜鳳 金鎭載 의원,尹汝雋 전 환경부장관 등 핵심참모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략회의를 갖고,표점검을 계속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핵심참모들과 맨투맨작전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 6,000여명은 한강호텔,팔레스호텔,올림픽파크텔 등 42개 숙소에 묵었다. 4명의 후보는 핵심 참모들과 함께 밤 늦게까지 이들 숙소를 돌며 ‘맨투맨식’작전을 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후보들에게 전당대회의 후유증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는 등 경선보다는 앞으로 당의 진로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고속도휴계소서 선거운동 ○…金德龍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에서 지방 대의원들을 맞는 이색 선거운동을 펼쳐 눈길을 모았다. 이어 잠실 롯데월드에서 수도권지역 대의원 1,000여명(후보측 주장)이 참가한 가운데 필승 전진대회를 갖고 ‘대의원 혁명’을 다짐했다. ○…鄭昌和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국 직원들은 행사장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 예행연습을 갖는 등 행사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31일 전당대회는 조촐한 식전행사에 이어 孟亨奎 의원의 사회로 성원 보고,徐廷和 전당대회의장의 개회선언,총재 선출순으로 진행된다. ○…명예총재와 부총재 지명문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당초 李會昌 후보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부총재 지명문제가 전대 이후로 연기된 듯 했으나 세 후보의 반발로 일단 방향을 선회했다. 31일 상오 8시 당무회의에서 재론키로 했으나 결과는 미지수다.
  • 연합사 파견=엘리트코스 부각

    ◎야전경험 많은 능력 우수장교 집중 선발/파견근무자 진급불이익 관행 없어질듯 한국군 장교의 한미연합사 파견 근무가 군의 ‘엘리트 보직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한미연합사에 파견 근무하는 한국군 장교의 상당수가 진급에 탈락하거나 전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장교들이어서 업무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이 때문에 유능한 장교들에게 한미연합사 파견 근무는 ‘기피보직’으로,전역을 앞둔 장교들에게는 ‘도피보직’으로 통했다. 이에 따라 군은 최근 한미연합사 파견 장교 인사관리규정을 ‘보직후 3년내에 전역하지 않은 자’에서 ‘보직후 5년 이상 근무하는 자’로 근무기간을 늘렸다.선발기준도 ‘영어 우수자’에서 ‘직무수행능력우수자’로 바꾸었다. 어학실력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야전경험이 있는 능력있는 장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군장교들과 동등하게 머리를 맞대고 작전계획 등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수 장교가 필수적이라는 게 군의 설명이다. 다소 부족한 언어장벽은한미연합사내 식당에 개설된 TOIEC강좌를 통해 실력을 쌓도록 했다. 3년으로 돼 있던 근무기간도 2년만 근무하면 국방부 등 타 기관의 정책부서 등에서 연장근무할 수 있도록 해 업무의 전문성을 살리도록 했다.굳이 미 참모대학 등 외국연수를 가지 않더라도 그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고위 관계자는 “400여명의 장교 가운데 일부를 이같은 기준에 따라 최근 교체했다”면서 “그동안 연합사 파견근무가 진급심사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관행도 앞으로는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납득못할 국방부 슬림화/朱炳喆 사회팀 기자(오늘의 눈)

    국방부가 최근 군 개혁의 일환으로 국방부·합동참모본부 등의 기구 및 직제를 과감히 뜯어고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국방개혁추진위원회가 25일 출범 4개월여만에 내놓은 국방부의 직제개편에 관심이 쏠린 것은 그런 측면에서 당연했다. 국장 한자리와 과장 두자리가 줄어 들고 획득본부장(차관급)과 국방정책실장(1급)이 신설된다는 게 직제개편의 주된 골자였다. 그러나 신설된 자리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군의 슬림화’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옥상옥(屋上屋)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발상부터가 그렇다. 국방부는 획득본부장이 각군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각군 총장보다 직급이 높은 차관급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보다는 안되면 직급으로 누르겠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억지논리로 밖에 볼 수 없는 점은 또 있다. 국방부는 타 중앙행정기관과의 조직체계를 비교했다. 연간 국방 예산이 13조9,590억원(20·3%)으로 타 부처에 비해 가장 많고 관리인력도 무려 80만명(사병 포함)이나 된다고 했다. 예산과 관리인력이 많으니 차관이 한명 더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국방정책실장 자리 신설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출범하기 전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인력·정책차관보 등 두자리였던 것을 한자리로 줄이라고 하자 정책차관보 자리를 정책보좌관으로 바꾸었다. ‘눈가리고 아웅하기’식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슬그머니 국방정책실장으로 둔갑시켰다. 물론 직제개편이 ‘축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더 늘릴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부기구는 줄이면서 상부기구는 늘려야 한다는 ‘슬림화 논리’는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군 개혁은 기존의 낡은 사고의 틀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군이 진정 깨달을 때 ‘국민의 국방’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한나라 당권경쟁 가속도/총재 후보 휴일 움직임

    ◎이회창씨­전국 조직 점검/이한동씨­역전 전략 수립/김덕룡씨­내일 지지 모임/서청원씨­수도권 표 훑기 한나라당 당권경쟁이 급류를 타고 있다. 24일 후보등록을 전후해 주자들의 발걸음에 가속이 붙고 있고 당내 일부 계파의 특정후보 지지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휴일인 23일에도 후보들은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표훑기’에 여념이 없었다. 후보등록 이후 31일 전당대회까지 1주일동안에는 전국을 순회하며 대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李會昌 명예총재는 이날 참모회의를 통해 전국 조직망을 점검했다. 24일부터는 권역별 공략에 나선다. 24일 인천·강원,25일 대구·경남·북,26일 호남,27일 충청,28일 서울·경기 등 수도권의 순이다. 李명예총재쪽은 1차투표에서 55% 안팎의 득표율로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李基澤 총재권한대행 계보인 ‘민주동우회’가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李명예총재 지지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어서 더욱 고무된 표정이다. 李漢東 전 부총재는 이날 서울에서 일부 원내외 위원장들과 접촉한데 이어 24일 서울,25일 대전·충남·북,26일 강원·경기,27일 울산·대구·경북,28일 부산·경남,29일 광주·전주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李전부총재쪽은 현재 李명예총재를 7% 정도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의원 바닥표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당대회 당일에는 1차투표에서 5% 미만으로 격차를 좁힌 뒤 2차투표에서 ‘반(反)李會昌’표를 결집,역전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金德龍 전부총재는 충북과 서울지역 순방으로 휴일을 보냈다. 24일에는 고향인 전북지역을 찾는다. 특히 金전부총재는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대의원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지모임을 갖고 세 확산을 시도한다. 26일과 27일은 각각 대전과 강원지역 대의원들을 집중공략할 계획이다. 徐淸源 전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지역 대의원들을 집중 공략했다. 주초 부산,경남,대구·경북 등 영남권에서 일으킨 ‘바람’을 충청과 강원 등 중부권으로 몰고 간다는 계산이다. 徐전사무총장은 현지 숙박을 통해 대의원들과의 거리를 좁혀나갈 작정이다.
  • 클린턴과 미국/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말고 우리 모두가 인간의 자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으십시오’이는 지난 61년 케네디 미국대통령의 취임연설중 한 구절이다. 이번 클린턴 스캔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미국이라는 나라와 ‘인간의 자유’를 생각하게 한다. 미국은 과연 의외성의 나라이며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예를들어 현직대통령으로서 사생활과 관련된 일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TV앞에서 용서를 비는 일부터가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곤경에 처한 중에도 ‘대통령도 사생활이 있다’는 것을 단호하게 강조하고 그의 사과를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우리와는 다르다. 또 상대가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위법혐의가 있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법대로’의 준법정신도 부럽다. 어떤 권위도 법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반드시 법은 지켜져야 한다는 신념에서 현직대통령을 형사문제로 법앞에 세운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집념은 미국의 성숙한 법치주의의 과시로 보여진다. CNN과 USA투데이 갤럽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는 40%로 크게 떨어진 반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는 62%의 지지도를 보이는 점도 놀랍다. 그것은 미국국민들이 사생활과 대통령의 수행능력을 명료하게 구분짓고 그에 대해 대통령으로서의 변함없는 지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국가적· 국제적 문제들이 산적한 마당에 개인의 사생활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정서다. 지난 64년 미육군 참모총장이던 M 테일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사람의 성격은 관용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국가’와 ‘경제호황’이라는 굵직한 명제로 인해 모든 일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같지만 이러한 미국인의 투명성은 언제 어떻게 사라져 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하면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무질서하면서 엄격한 미국의 법정신은 최소한의‘사생활과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우리 같으면 어찌 됐을까.기본적인 시각은 다르지만 공사를 구분하는 판단력과 법대로와 이기적 관용의 정체성을 한번쯤 비교해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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