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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광 세무조사 독자적 결정”

    국회는 6일 재정경제·국방 등 11개 상임위별로 소관부처와 산하단체,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엿새째 국정감사를 계속했다. 그러나 이날 한나라당이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사장 구속과 관련,긴급 의원총회와 ‘언론탄압규탄 결의대회’를 여는 바람에 대부분의 국정감사가 제시간에 열리지 못했으며,특히 문화관광위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날에 이어또다시 국감을 보이콧,여당 단독으로 이틀째 파행 운영됐다. 재경위의 국세청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진·보광그룹 세무조사를 놓고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은 재경위 답변에서 “통일그룹과 보광그룹에 대한세무조사는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이며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조사착수 배경과 관련,“잘 나가던 이 그룹들이 갑자기 97,98년 결손신고를내 세무조사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청장은 “홍석현 사장은 이 기간에 다른 사업을 한 것이 없는데도 수백억원을 들여 중앙일보를 인수해 자금출처를 조사한 것”이라면서 “검찰 발표에서 탈루소득이 133억원에서 23억원으로 줄었으나 이는 사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포탈한 세액이 23억원이라는 것이며,현재까지 홍사장의 탈루 세액이 133억원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안청장은 또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대우그룹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금감위에서 자료가 넘어오면 대우그룹에 대해서도 이른 시일내에 세무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세청 자체적으로도 대우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우그룹에 대해)세무조사를 하겠다는 것이아니고 금감위로부터 조사결과 등이 통보된 뒤 세무상 문제가 있는지 자체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춘택(朴春澤)공군참모총장은 국방위 감사에서 “북한은 신예 전투기인 SU-30과 미그29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모든 비행장과 방공기지에 23㎜ 대공포를 배치하는 등 공군력을 크게 증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종태 추승호 김성수기자 jthan@
  • 하사관 정원 대폭 늘린다

    오는 2004년까지 중대의 4개 소대 중 1개 소대는 중사 또는 상사가 소대장을 맡는다.또 현재 영관급이나 위관급이 맡고 있는 연대 사단 군단 등의 참모 또는 보좌관에 원사 또는 준위가 보임된다. 6일 국방부에 따르면 하사관의 군 경험을 활용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하사관 종합발전계획을 마련했다.이 계획은 2004년까지 완료된다. 종합발전계획에 따르면 중대 소대장 4명 가운데 1명을 하사관으로 보임하되 체력 등을 감안,소대장 보임자격을 중사 3년차 이상과 상사 3년차 이하로제한하기로 했다.현재 육군 소대장 대부분이 학군장교(ROTC)로 구성돼 있어해마다 소대장의 절반 이상이 교체되는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소대장에 보임되는 하사관은 5년 이상 소대장 직책을 수행하게 된다. 또 하사관의 군 복무경험을 활용하기 위해 영관급이나 위관급이 맡고 있는연대급 이상의 병참,수송,급양지원 등 비전투 분야의 참모 기능을 원사나 준사관인 준위급에 할애하는 한편 하사관급이 맡을 수 있는 참모 기능을새로개발하기로 했다.대대나 연대는 원사가,사단과 군단은 준위가 참모 또는 보좌관에 기용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2004년까지 소위와 중위의 정원을 3,000명 가량 줄이는 대신 하사관의 정원은 5,000명 가량 늘리기로 했다.현재 군 간부의 48%를차지하는 하사관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6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게 군의복안이다.군 간부 가운데 하사관 비중은 미국이 66%,영국 71%,독일 73%다. 우득정기자 djwootk@
  • 美에‘노근리 사건’공동조사 제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우득정 기자] 이홍구(李洪九) 주미대사는 4일 노근리 사건과 관련 진상조사를 위해 미국정부에 공동조사단 구성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스탠리 로스 국무부 차관보와 양국 공동조사단 구성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하고 “미국측도 이에대해 전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그러나 이 문제는 미측의 조사 주관부서가 국방부여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이 동남아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5일 이후 논의키로 했다고 말했다.또 오는 5,6일 도쿄에서 한·미·일 3국 국방부 회동이 예정돼있어 그자리에서도 노근리 조사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사는 이어 러스 데밍 부차관보 등 미 국무부 관계자들과 실무차원 채널도 가동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지난 1일 워싱턴을 방문한 정영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에릭 신세키 미 육군참모총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문제를협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스탠리 로스 차관보는 이날 본사 기자와 만나 노근리 사건 진상 조사와 관련,“한국과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스 차관보는 이날 한국정부가 제의해온 한미 공동조사단 구성 가능성에대한 질문에 “노”라고 밝히고 “그러나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조사는 상호협조 아래 2원체제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한국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철저조사 지시아래 범정부적인 조사기구가 구성됐지만 미국은 국방부가 조사를 맡게 돼있다”면서 “양국의 공동조사단 구성은 체계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그러나 “양국은 각각의 조사과정을 갖되 정보를 공유하고,양국관할에 대한 조사에서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성태(趙成台) 국방부장관도 5일 집무실에서 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노근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양국 공동조사단 구성을 제의했으며 틸럴리 사령관은 긍정적 검토 의사를 밝혔다.
  • 국감 이모저모

    4일 상임위별로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노근리 사건,중앙일보 사태 등이 이슈로 부각됐다. ■국회 국방위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한 국감에서는 6·25전쟁 중 미군이 무고한 양민 400여명을 학살한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 문제가 ‘도마’위에올랐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육사가 발간한 한국전쟁사와 국방군사연구소의 전사부에도 이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 상세히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노근리사건에 대한 전사자료를 공개하고 민간인 사망자 숫자를 정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국민회의 장영달(張永達)의원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이 그동안 끊임없이민원을 제기했음에도 불구, 국방부는 현장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정부 차원의 공동조사와는 별도로 군 자체의 조사단을 구성할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건설교통위의 충북도에 대한 국감에서 국민회의 김홍일(金弘一)의원과 서한샘의원도 노근리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이원종(李元鐘)충북지사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의진상조사에맞춰 사건의 진상규명과 수습을 위한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오전 문광위 국감현장을 방문,소속의원들을 독려했다.그는 언론개입을 부인하는 박지원(朴智元)문화부장관의 답변에대해 “전혀 개전의 정을 안보이고 공격적인 답변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문광위 의원 8명은 국감회의 시작 전인 오전 9시 세종문화회관 커피숍에 모여 대책회의를 갖고 중앙일보 문제를 집중 추궁하기로결의했다. ■39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국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시민연대는 아침 국방부 청사앞에서 방청 불허 및 출입 통제에 대한 항의시위를 벌인데 이어 오전 국회에서 손봉호(孫鳳鎬) 공동대표와 모니터 요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국감 방청을 즉각 허용하고 시민단체의 평가활동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시민연대의 국정감사 평가활동은 유권자가 소외되고 민생현안이뒤로 밀려나는 오늘의국회 현실에 대한 시민자구책의 일환”이라며 “국감을 비롯한 모든 의정활동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우득정 최광숙 김동진기자 djwootk@
  • 美, 印尼에 민병대 무장해제 촉구

    [딜리 시드니 AP AFP 연합]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은 30일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유혈사태의 주범인 민병대를 무장 해제시키지 않으면 ‘심각한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언 장관은 이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 겸 군참모총장인 위란토를 만난 직후 성명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코언 장관은 “미국은 그동안 인도네시아 민주발전을 적극 지원해왔으며 인도네시아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수개월 동안 인도네시아군은 동티모르의 폭력사태를 조장하거나 도왔다”고 지적했다. 코언 장관은 그러나 “인도네시아군이 만일 동티모르 폭력사태를 계속 조장한다면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뒤 “위란토장군에게 올바른 선택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국제 동티모르파견군은 친(親) 인도네시아 민병대와 접전할 경우 서티모르로 들어가 작전을 계속할 수 있다고 존 무어 호주 국방장관이 이날 밝혔다. 무어장관은 유엔규정에 따라 국제파견군이 민병대와 접전시 서티모르로 들어가 민병대를 소탕할 수 있다며 다만 소탕작전이 끝난 뒤 국제군은 즉시 동티모르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동티모르 독립파 무장조직인 ‘팔린틸’ 지도부가 30일 딜리에 24년만에 처음으로 재진입,동티모르 파견 다국적군(INTERFET)과 협조하겠다고 제의했다.
  • 동티모르 파병 상록수부대 朴仁哲단장

    “동티모르의 평화와 안정 회복을 위해 중립적인 위치에서 치안임무에만 전념하겠습니다” 동티모르 파병에 앞서 29일 오후 육군 흑룡부대에서 창설식을 가진 상록수부대 단장 박인철(朴仁哲·육사 34기·3공수 참모장)대령은 유엔의 지침을철저히 준수하면서 동티모르의 평화 회복과 한·인도네시아 우호 증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다음은 박 단장과의 일문일답. ■발탁 배경은 동티모르에 파병되는 한국군 평화유지단을 지휘 통솔하고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민병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특전부대 경험자가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특전사 대대장과 작전참모,참모장 등을 역임한 것이 단장으로 발탁된 배경이라고 본다. ■작전의 중점 분야는 한국군 평화유지단은 다국적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부여된 책임지역내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동티모르 평화와 안정 회복을 위해 중립적인 위치에서 치안임무를 수행하겠다. ■대민 지원활동 계획은 지원부대인 의무·공병·통신부대는 다국적군의 활동을 지원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그러나대민지원 수요가 있으면 가용 범위내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또 현지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할 수 있는 기념품을준비,주민들과의 유대를 강화할 계획이다. ■교전 등 불상사 발생시 대응방안은 평화유지군의 임무는 전쟁을 억제하고안정 회복을 위한 치안활동을 하는 것이다.따라서 부대원들에게 감정에 치우쳐 우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시키는 등 돌발사태 예방에 최선을다하겠지만 무장 민병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면 교전규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우득정기자 djwootk@
  • 상록수부대 파병 일정

    국방부는 28일 동티모르 파병 규모를 장교 67명을 포함,419명으로 최종 확정했다. 군은 29일 오후 3시 특전사 흑룡부대 연병장에서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동티모르 파병부대인 ‘상록수부대’ 창설식을 갖는다.특전사 3공수여단 참모장 박인철(朴仁哲·육사 34기) 대령을 단장으로 하는 상록수부대는 흑룡부대원 201명과 의무·공병·통신 등 지원요원 172명,지휘 및 본부요원 46명 등으로 구성됐다. 상록수부대원들은 30일까지 개인 전술훈련을 끝낸 뒤 10월1일과 2일 기본소양교육을 받으면 준비과정을 모두 이수하게 된다.이들은 열대성 풍토에 적응할 수 있게 장티푸스·파상풍·A형 간염 접종을 마쳤으며,추가로 말라리아·일본뇌염·홍역 예방접종 등을 받을 예정이다. 상록수부대는 오는 30일 선발대 50∼60명이 공군 수송기 C-130편으로 호주타운스빌로 출국하는데 이어 본대는 1,2진으로 나뉘어 10월 4일과 9일 출국한다.이들은 호주 도착 즉시 1주일간 현지 적응훈련을 받은 뒤 10월17일쯤동티모르로 이동한다. 상록수부대는 개인 화기 외에 장갑차 17대,81㎜ 박격포 2문 등으로 무장돼있다.장갑차와 지프,식량 등 장비는 10월6일쯤 부산항에서 대형 수송함 LSD에 탑재돼 동티모르의 딜리항으로 수송된다. 상록수부대원에게는 하루에 사병 31달러50센트,대령 63달러20센트의 위험·전투수당이 지급된다.현지에서 교전 등으로 사망하게 되면 36개월분의 월급이 보상금으로 지급된다. 우득정기자 djwootk@
  • 하사관도 소대장 된다

    내년부터 하사관도 소대장과 대대급이상 부대의 참모직을 맡게 된다. 국방부는 28일 군내 하부조직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하사관 지위 및 복지향상을 내용으로 하는 하사관 종합발전계획을 마련,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분대장 및 부소대장 경험이 풍부한 하사관을 선발,중대급 부대에 1명씩 배치해 장기간 소대장을 맡도록 했다. 또 영관급 장교들이 맡아왔던 대대 및 연대,사단 참모직에도 원사나 준위급 하사관을 임명,군 경험을 부대작전 및 운영에 최대한 활용하고 군인사법에규정된 하사관 명칭을 부사관(副士官)으로 개정키로 했다. 우득정기자 djwootk@
  • ‘한국광복군’ 창군 59돌…기념 학술회의

    조국독립에 헌신한 ‘혁명군’이자 민족국가 건설에 앞장선 ‘건국군’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이 올해로 창군(創軍) 59주년을 맞았다.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김우전)는 이를 기념해 21일 상오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한국광복군의 창군과 역할’이란 주제로 학술회의를 갖는다.이 자리에서는 광복군의 역할과 의의를 짚어보면서 광복군에 대한 자리매김을 새로 한다. 발제에 나선 신용하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광복군의 창군과 그 역사적의의’를 통해 “광복군은 중국 영토안에서 중국측의 지원없이 미주와 하와이 동포들의 순수 헌금 4만원으로 창군됐다”며 “이는 창군 활동의 자주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밝힌다. 특히 당시 중국 군사위원회의 ‘한국광복군 9개항 행동준승’을 받아들여야하는 현실 속에서‘한국광복군 공약’과‘한국광복군서약문’을 발표한 것은 광복군이 독립·건국의 혁명군 성격을 가진 임시정부 국군이었음을 명확히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신교수는 또 “광복군 창군때 총사령관에 서로군정서(西路軍政暑) 사령관인이청천(李靑天)장군과 참모장에 북로군정서(北路軍政暑)의 연성 대장이었던이범석(李範奭, 후에 제2지대장 역임)장군을 임명한 것은 독립군이면서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진 국군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시준교수(단국대 역사학과)는‘광복군의 활동과 역할’에서“광복군은 귀국할 때까지 5년8개월동안 중국 미국 영국 등 연합군과 함께 대일전쟁에 참가하는 등 조국독립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며 인도 버마전선에 공작대를 파견,영국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전개한 것을 그 예로 든다. 또 일제가 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광복군이 국내에 정진대(挺進隊)를 파견하고 중국대륙에서 군대조직의 확장 활동을 전개한 것은 자주 독립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중요한 사례라고 강조한다. ‘광복군이 국군 창설에 미친 영향’이란 발제에서 김행복씨(국방군사연구소 연구위원)는 “오늘의 우리 국군은 1907년 군대 해산에 항거했던 의병과한일합방 이후 구국항쟁을 벌였던 독립군의 정신을 이어받은 광복군에서 비롯됐다”고 밝힌다.아울러 그는 광복군을 비롯해 독립운동에 나섰던 군사단체는 사상과 전력에 관계없이 모두 국군에 흡수됐으며 특히 광복군은 임시정부와 함께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독립정신’으로 국군의 중추역할을했다고 말한다. 그는“광복군이 국군에 미친 영향중 하나는 바로 반공정신”이라며 “공산주의자들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나 단체는 이에 현혹됐으나 일찍이 이들의 실체를 파악한 광복군 출신들은 휘말리지 않아 현재의 국군의 모태가 됐다”고 지적한다. 정기홍기자 hong@
  • 다국적군 오늘 동티모르 진주

    [자카르타 다윈 워싱턴 유엔본부 외신종합] 호주 주도하의 7,500명 다국적 평화유지군 선발대가 18일,동티모르에 진주한다.이어 주력부대는 내주초부터 도착한다. 그러나 16일 인도네시아가 호주와의 안보협정 폐기를 선언,다국적군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미국은 다국적군이 피습을 받으면 전투병력도 즉시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동티모르에 주둔중인 인도네시아군은 17일 철수에 들어갔고 국제사회의 구호활동도 시작되는 등 동티모르 사태의 정상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티모르 주둔 인도네시아군이 철수를 시작했다고 자카르타 포스트가 17일 보도.신문은 “다국적군이 도착할 때에는 인도네시아군이 소규모 공병부대만 남기고 철수를 완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언. ■유엔은 17일 기아에 시달리는 20만명의 동티모르 난민들에게 처음으로 긴급 구호식량을 공중 투하.그러나 본격적인 구호식량 공수작전은 다국적군이진주한 다음 실시키로 결정.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16일 다국적군에 200명의 미군을 파견키로결정. 클린턴 대통령은 “통신 및 병참,정보,인원 및 물자 공수,인도적 지원의 조정 등 필수적인 분야에서 근무하게 되며 태평양함대 소속부대들이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부연. ■최강의 용병부대로 알려진 영국의 네팔 구르카 용병 250명이 17일 다국적군 참여를 위해 호주의 다윈에 입성.프랑스 해군 프리깃함 방드미애르호도동티모르 부근 해상에 도착. ■페이살 탄중 인도네시아 정치안보장관은 호주가 다국적군의 배치를 유도한데 대한 항의로 안보협정을 폐기했음을 선언.동티모르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 지도자들은 호주군 주도 다국적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시,다국적군과 민병대간의 충돌이 우려된다. ■동티모르와 서티모르 주민중 50여만명이 최근의 사태로 피신했으며 심각한영양 실조에 직면해 있다고 유엔아동기금(UNICEF)이 16일 발표. UNICEF는 7만5,000명이 5세 이하 어린이라며 12.5t의 식량 등을 보냈다고설명. ■인도네시아 군부는 동티모르의 폭력사태를 배후조종해 전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정.재계에서 앞으로도 영향력을 유지할것으로 전망.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선두를 달리는 민주투쟁당(PDIP)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당수도 군부의 특권 보장을 약속.위란토 국방장관 겸 참모총장은 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 [오늘의 눈] NLL과 인터넷홍보

    지난 7일 한 인터넷사이트(www.mailbase.ac.uk)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자료가 떠올랐다.북한 인민군총참모부가 ‘NLL의 무효와 자위권발동’을 밝힌지 닷새만이었다.‘인트-바운더리스’(int-boundaries)라는 제목의 이 사이트는 영국 더햄대학이 운영하는 지리전문가 사이트.전세계 수백여명의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가입해있다. 호주 멜버른대학의 브렌던 휘트가 올린 이 자료는 북한 중앙통신(kcna)의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그는 일본내에 개설된 kns(korea news service)에서 자료를 얻었다.자료는 “NLL은 국제법상 12해리 원칙에 맞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한다.또 국내의 한 영자지에 실린 관련기사도 띄웠다.기사는말미에 “한국의 NLL관련 주장은 국제법상 입증되기 매우 어렵다”는 익명의 전문가 코멘트를 담고 있었다. 사이트에는 이어 모두 4차례에 걸쳐 kcna의 주장을 담은 자료가 떠올랐다.반면 한국측 견해는 간단한 외신 두어건으로 처리됐다.이 사이트는 한동안 관계자의 코멘트를 기다렸다.그러나 당사자인 한국 관계자의 의견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해양대 김영구 교수가 나흘만인 11일 의견을 올린 것이 유일했다. 그는 “12해리 원칙 등은 ‘평온공연’할 때 적용될뿐 지난 53년 전쟁의 와중에는 적용될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의 뚜렷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이는해당국가 사람의 첫 의견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 전문가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한 외국인은 김교수에게 관련지도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국내에는 한창 인터넷열풍이 불고 있다.정부와 연구소,대학마다 홈페이지를 두고 있다.그러나 이런 전문가 사이트에 국가적 문제에 관한 의견을 올리는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왜일까. 외국인이 NLL에 관해 알아보려 할 때 그는 먼저 정부 홈페이지를 찾을 것이다.그럼에도 정부 홈페이지에는 보도자료,말씀,간단한 소개 등이 고작이다.NLL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을 수 없다.해군 사이트에만 ‘연평해전’이라는소제목 아래 설명이 떠있다.이나마 한글이어서 외국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아무래도 우리의 인터넷 접근방식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박재범 특집기획팀 차장 jaebum@
  • [페리보고서 공개] 對北정책 조정역 웬디 셔먼은 누구

    웬디 셔먼(여)은 지난 97년 8월 국무부 특별고문에 임명된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자문을 담당해왔다. 패니 매이 재단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로서 활발한 공적 활동을 한 그녀는 93년부터 96년까지 국무부 입법담당 차관보로서 의회의 각종법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71년 보스턴대학에서 학사,76년 메릴랜드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했으며,바바라 미쿨스키 상원의원의 참모로도 3년간 일했다. 그 이후 메릴랜드주 아동청년문제 특별장관에 임명됐고,88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전국위원회에서 홍보,정책개발 등을 총괄지휘하는 등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브루스 스톡스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포커스 투데이-印尼 국방장관 위란토

    인도네시아 실세인 위란토 국방장관겸 군 총참모총장이 동티모르 계엄령 선포를 건의하고 B J 하비비 대통령의 사임설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동티모르 사태에 군병력이 민병대에 가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혈사태를 배후조종했다는 의심을 받을 만큼 동티모르 사태와 관련해서는 중심에서있는 인물이다.그러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군부내 현재의 위치가 흔들리고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수하르토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한창일 때 수하르토에 대한 충성을 견지하면서도 강경 시위진압을 자제하기도 했다.88∼93년까지 수하르토대통령의 부관으로 재직했으며,지난해 2월 반정부 시위가 고조됐을 당시 군총참모총장에 임명된 뒤 한달만인 3월에는 국방장관직도 겸임했다. 그는 수하르토가 사임하고 권력기반이 취약한 하비비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를 지지하면서 힘을 실어줬다.인도네시아가 올초 동티모르 독립 찬반투표 실시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히자 군부 일각의 강한 반발을 무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총참모총장은 휘하에 47만5,000명의 군경(軍警)병력을 거느리면서 헌법상으로도 정치적 역할을 보장받고 있어 대통령 다음의 2인자라고 할수 있다. 김규환 기자 khkim@
  • [義烈 독립투쟁](5)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자 일제는 이를 ‘암살’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자신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공격, 처단했다고설명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향반(鄕班)집안에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안 의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있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로 이사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두 학교의 교장이 된 안 의사는 애국교육과 신학문 교육을 통해 애국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안 의사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설치하여 자신이 지부장을 맡고 부인과제수의 패물까지 모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다. 1907년 7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의병부대를 조직,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등 연해주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300여명의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煙秋·노보키에프스크)에서 의병부대를편성한 안 의사는 당시 이 부대의 실질적 통솔자였다. 안중근부대는 모두 세차례의 전투를 치렀다.1908년 4월 초순 두만강 최하단인 함경북도 경흥군 일본군 수비대 진지를 공격한 안중근부대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는 귀환하였다.이어 1908년 7월 제2차전투에서는 함경북도 신아산(新阿山) 부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수 차례 기습공격,10여 명의 일본군 병사를 생포하였다.청년 휴머니스트였던 안 의사는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에 의거,무기만 빼앗고 석방하였는데 이것이화근이 돼 제3차 전투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기습해온 때문이었다.겨우 목숨을 건진 안의사는 부하·동지 몇 명과 연추로 돌아왔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포신문 ‘대동공보’의 연추지국장으로 일하고있던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분할 협의차 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도모하였다.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장실에서는 총무 유진율(兪鎭律),주필 정재관(鄭在寬),기자 윤일병(尹日炳)·이강(李剛)·정순만(鄭順萬),연추지국장 안중근,회계원 우덕순(禹德順) 등 7명이 모였다.이자리에서 안 의사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토를 처단하겠다”고 자원하였고 우덕순도 자원하고 나섰다.특공대는 2개조로 나뉘어 안중근·유동하(劉東夏)조는 하얼빈에서,우덕순·조도선(曺道先)조는 채가구(蔡家溝)에서 거사키로 하였다.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통과함으로써 결국 거사임무는 안중근조에게 넘어갔다. 거사당일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안 의사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취재차 나온 신문기자’라고 속이고는일본인 환영객 집단 구역까지 깊숙이 진입하였다.이날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 의사는 여섯발의 총탄을 날렸는데 그 중 세 발이이토에게 적중하였다.거사에 성공한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창하였다. 안 의사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거사는 ‘암살’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특공작전을 전개한 결과라고 누차 밝혔다.안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만주침략은 장기간 지연되었다.중국인들이 만주·중국 관내에서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임한 것은 바로 안 의사와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안중근 의사 직계후손 근황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장남 분도(芬道)는 6세때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분도보다 3살 위인 장녀 현생(賢生)씨는 백범 김구 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작고)씨와 결혼,은주(恩珠·71)·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 자매를 두었다.은주씨는 남편 이용문(李容文·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남편 작고후 귀국,경기도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후손이다. 항주(杭州) 호강대학을 졸업한 차남 준생(俊生·1951년 45세로 작고)씨는 부인 정옥녀(鄭玉女·91년 작고)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안 의사의 장손격인 준생씨의 장남 웅호(雄浩·67)씨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간호대학 출신인 장녀 선호(善浩·70)씨는 한국인 2세와 결혼,4남매를 두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차녀 연호(蓮浩·65)씨는 시애틀에거주하고 있다.정운현기자*白凡과 안중근家의 인연 19세의 청년 김창수(金昌洙·김구의 아명)는 1894년 양반사회를 타도하고자 황해도 동학농민전쟁의 해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참여한다.그런데 당시 황해도에서는 반농민군 세력으로 의병이 조직되는데,그 대표적 인물이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박영효(朴泳孝)가 모집한 해외파견 유학생 70명에 선발되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출세의 길을 버리고,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淸溪洞)으로 들어갔다.1894년 황해도 동학군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안태훈은 안중근 등 그의 아들과처자들까지 편입시킨 의병을 일으켰다.그 위력과 명성이 자자하여 황해도 동학군은 안태훈 부대를 두려워하였고,김창수 부대 역시 청계동을 특별히 경계하였다. 그런 안태훈이 청년 김창수에게 밀사를 보냈다.그 결과 두 진영 사이에는서로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까지 성립되었다.즉 안태훈은 비록 동학군을 토벌하는 입장이었지만 인재를 아끼고 있었고 개화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청일전쟁 전후의민족적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 부대는 점차 토호화하고 있던 같은 동학접주 이동엽(李東燁)부대에의해 해체되었다.얼마간의 잠적 이후 이듬해 김창수가 찾아 간 곳은 청계동의 적장 안태훈 집이었다.청계동에서 ‘적장(敵將)과의 동거’는 청년 김창수에게 중요한 인연과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안태훈의 각별한 후원으로 김창수는 부모님과 더불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안태훈가(家)의 식객인 고능선(高能善)은 동학의 꿈이 깨진 청년 김창수에게 새로운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또다른 식객 김형진(金亨鎭)은 같이 의기투합해 청국원정을 떠나사선을 넘나드는 동지가 되었다. 김창수는 청계동에서 스승과 동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안태훈가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안중근의 아우 공근(恭根),조카 우생(偶生)은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측근이 되었으며,질녀 미생(美生)은 백범의 맏며느리가 되었다.또한 안태훈과의 화해,고능선의 교도로 백범은 양반이냐,상놈이냐 하는 계급의식 이상의 차원,즉 조국·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都珍淳 창원대 사학과 교수*安의사 5촌조카 民生씨 편지 발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꼽힌다.그러면 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은 해방후 어떻게 살았을까.지난 8월말 학술행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본사 김삼웅(金三雄)주필이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입수한 두 통의 편지에 따르면,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해방된 조국에서 대접은 커녕 분단과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많은 일생’을 마친 것으로드러났다. 김 주필이 중국서 입수한 편지는 지난 88년 한국에 거주하던 안 의사의 5촌조카인 민생(民生·생사불명)씨가 중국 연길(延吉)에 있던 사촌여동생 경옥(京玉)씨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경옥씨는 70세였다. 88년 1월 27일자 첫 편지에서 민생씨는 “지난 (87년)11월 15일 독립기념관장 춘생(椿生)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며 연락이 닿은 경위를 밝혔다.두 사람은 안 의사의 삼촌인 태건(泰健)씨의 손자녀들로 46년 7월 민생씨가 귀국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었다. 민생씨는 편지 서두에서 “해방후 형제·자매들이 귀국하였으나 모두 전재민(戰災民)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며 해방후 집안 인척들의 이산을 안타까워 했다. 특히 민생씨는 “1961년 5월(‘5·16’을 지칭함) 조국의 평화통일 이념을주장했다는 이유로 나는 반국가범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근(敬根) 당숙도 7년형을 선고받아 일제때 명근(明根) 당숙이 옥고를 치르시던 서대문형무소 특감(特監)8사(舍)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며 “해방,독립된 내조국에 돌아와서 또 감옥살이를 치러야 함으로써 우리 안씨 가문은 이역과조국에서 선후대(代)에 걸쳐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고 통탄해 했다. 안 의사 집안 가운데 안 의사의 사촌동생 경근과 5촌 조카인 민생씨는 해방후 유달리 험난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장면(張勉) 정권 하에서는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준비위원회(민자통)에 참여하기도 했었다.5·16후 군사정권의 혁신세력 탄압 때 두 사람은 반국가범죄 혐의로 투옥됐으며 경근은 출옥 직후 작고했다. 민생씨의 경우는 ‘최악’이었다.1933년 만주에서 만주군에 붙잡혀 혹독한고문을 당한 후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양쪽 발끝을 작두로 절단당한 민생씨는 그 몸으로 감옥살이를 한 데다 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년에는 지팡이와 의족에 의존해야 했다. 편지를 쓸 때 이미 70고개를 넘긴 민생씨는 “헤어진 동료들과 형제들이 그리울 때면 저 머-ㄴ 북녁(만주땅을 지칭한 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가슴 쥐고 나무밑헤 쓸어진다 혁명군/가슴속에 솟는 피는 푸른 풀에 절벅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적은 뒤 “가마귀도 우름을 멈추고 바람만 스치고지나갈 무덤없는 그들의 핏자죽 위에 한 송이 들꽃이라도 받쳐들고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며 눈물지었다.현재 민생씨는 생사가불명이다.광복회·국가보훈처·안중근의사기념관은 물론 사촌형인 안춘생씨마저 민생씨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5월 28일자 두번째 편지에서 민생씨는 “과거 우리들은 안중근의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왜놈들에게 죽어야 했고,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해방후에는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들의 피해는 여전했다”며 역대 권력자 가운데 친일경력자들의 면면을 거론하였다. 정병학(鄭秉學·79)안중근기념관장은 “안 의사 집안의 인사 가운데 민생씨처럼 해방후 불우한 삶을 보낸 인사가 적지않다”며 “이는 해방후 친일·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정운현기자* 안중근家의 독립운동가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 의사를 포함,모두 9명이 독립유공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몇 명이 포상 심사중이다.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안 의사는 독립유공훈장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으며,안 의사의 두 친동생 정근(定根)·공근(恭根)은 각각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또 사촌동생 가운데 명근(明根)은 ‘105인사건’으로,경근(敬根)은 임시정부 활동으로 각각 독립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조카뻘인 ‘생(生)’자 항렬에서도 여러 명이 훈장을 받았다.대표적으로는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 출신으로 해방후 육사교장·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춘생(椿生·87·독립장)을 비롯해 춘생과 친형제로신민부에서 활동한 봉생(鳳生·애국장),그리고 안 의사의 첫째 동생인 정근의 장남으로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원생(原生·애족장)과 둘째 동생공근의 차남낙생(樂生·애족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납북이나 공적서류 미비 등으로 서훈이 보류된 인사도 여럿 있다. 우선 공근의 장남 우생(偶生)은 중경 임시정부 시절 임정 편집부 과원으로활동했으며 해방후에는 백범의 대외담당비서로 활동했으나 그 후 납북돼 포상이 보류돼있다.또 안 의사의 사촌 봉근(奉根)의 자제인 민생(民生)과 그의형 호생(鎬生)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후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나 서류미비 등으로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 ‘인종청소’ 피해 20만명 피란길

    [딜리(동티모르)워싱턴 자카르타 오클랜드(뉴질랜드) 외신종합] 동티모르사태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계엄령 선포에도 살육과 주민 강제추방은 이어지고 있으며 국제평화유지군 파병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9일 인도네시아 B.J.하비비 대통령의 하야 임박설까지 나돌면서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호세 오소리오 아빌리오 소아리스 동티모르 지사는 인도네시아당국이 주민투표 결과를 비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피난길에 오른동티모르주민은 전체주민의 25%인 20만명으로 늘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포럼에 참석중인 20개국 대표들은 이날 동티모르 폭력사태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했으나 국제 평화유지군 파병 합의에 실패했다.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라는 이유가가장 컸다. 그러나 호주,영국등은 군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반면 미국은 무력개입 대신 경제제제 의사를 표명했다.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이날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동티모르에 파견될 다국적 평화군을 위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8일 긴급회의를 열고 인도네시아가 조속히 치안상황을 호전시키기 않을 경우 ‘후속행동' 을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구체적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상임 이사국 중 중국은 무력개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인도네시아는 하비비 대통령이 동티모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할 것이라는 설이 강력히 나돌면서 통화가치가 폭락했다. 달러당 루피아화는 이날 오전 달러당 8,700 루피아로 지난 6일에 비해 1,200루피아나 하락했다. 한편 동티모르에서는 이날 아침에도 인근 섬으로 피신하기 위해 4,000명의주민들이 딜리 부두로 몰려들었다.저항단체인 팔린틸은 10만명에 이르는 동티모르 주민들이 현재 민병대의 공격을 피해 동티모르의 구릉지대로 피신해숨어 있다고 밝혔다. 이날 독립반대파 민병대의 공격으로 바실리우 두 나시멘투 주교가 부상을입은 것을 비롯,사제 3명 등 100명 이상이 숨졌다. 위란토 국방장관 겸 총참모총장은 이날 키키 샤흐나크리 육군소장을 동티모르 치안회복작전(SRO)사령관에 임명했다.그는 계엄령선포이후 상황이 진정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 여권신당 발기인 38명발표…공동대표 이만섭·장영신씨

    신당 발기인 임시대변인에 임명된 국민회의 김민석(金民錫)의원은 9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과 장영신(張英信)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장 등을 포함한 38명으로 구성된 신당 발기인 명단을 발표했다. 발기인은 국민회의 당내외 인사 19명씩으로 구성됐으며 이 대행과 장 회장이 창당 발기인 공동대표에 내정됐다. 이들은 10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발기인 모임을 갖고,내달 11일 발족하는 창당준비위 구성,정강정책 마련 등 본격적인 신당 창당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발기인 명단에는 군에서 이준(李俊)전 한국통신사장,유삼남(柳三男)전 해군참모총장,강민수(姜敏秀)전 공군사관학교교장이,여성계에서는 장 회장을 비롯,한명숙(韓明淑)전 한국여성단체연합대표,조배숙(趙培淑)여성변호사회장,김화중(金花中)대한간호협회장이 포함됐다.재야 출신은 이재정(李在禎)성공회대총장,이창복(李昌馥)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대표,이인영(李仁榮)전 전대협의장 등이다.또 학계에서 박원훈(朴元勳)전 KIST원장,김은영(金殷泳)한국고분자학회장,송자(宋梓)명지대총장,기업인으로는 장영승(張永昇)나눔기술대표,강병중(姜 中)부산상의회장이 포함됐다.문화계 인사로는 지휘자 정명훈(鄭明勳)씨,체육계에서 김운용(金雲龍)IOC위원,농업계의 황창주(黃昌柱)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사회단체 몫으로는 최용석(崔用晳)국제청년회의소(JC)세계회장이 발기인 명단에 들어갔다. 국민회의 당내 인사는 정균환(鄭均桓) 김원길(金元吉) 박광태(朴光泰) 정동채(鄭東采) 최재승(崔在昇) 정동영(鄭東泳) 김영환(金榮煥) 한영애(韓英愛)추미애(秋美愛) 김민석(金民錫) 박범진(朴範珍) 송훈석(宋勳錫) 유용태(劉容泰) 이규정(李圭正) 장영철(張永喆) 조한천(趙漢天) 천정배(千正培)의원과원외의 김희선(金希宣)당 여성위원장 등이다. 한편 신당 발기인들은 이날 저녁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만찬을 겸한 상견례를 가졌다. 강동형기자 yunbin@
  • 北 “서해분계선 침범땐 강력 조치”/정부 원론적 입장 재확인

    북한은 지난 2일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상 군사분계선을 침범할 경우 이를 도발로 간주,“강력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7일 경고했다.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측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거론하며 “이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특별보도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중앙통신은 북한이 선언한 서해상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과 국제법 요건에 부합되는 정당하고 확고한 것”이라며 “남조선 호전광들은 불법적인 NLL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는 남조선 호전광들이 서해상 군사분계선을 도발할 경우 온갖수단과 방법으로 강한 자위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남조선측에 있다”면서 “남한 당국자들은 이것을 명심하고 우리가 설정한 군사경계선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와함께 우리의 ‘자위 발포선’안에선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란 위협도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북한측의 발표는 NLL 침범시 강력 대응하겠다는 우리측 입장 천명에 대한 답신 성격으로,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대미협상용으로 계속 활용하려는 의도로 관측된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노동당 산하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의 기관 명의가 아닌 언론기관을 통해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swlee@
  • ‘金正日체제 1년’ 親政기반 확립

    ‘김정일(金正日)체제’가 5일로 공식 출범 1년을 맞았다. 지난해 9월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제10기 1차 회의)를 열어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추대했다.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고 실질적인 국가 최고지위로 격상된 국방위원장에 김정일을 재추대해 ‘김정일 시대’를 연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김정일은 ‘친정’기반을 확립하면서 ‘순항’을 거듭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최고권력층의 세대교체를 단행해 측근 및 같은 연배의 전문관료들을 요직에 앉혀 권력기반을 더욱 다졌다. 김용순(金容淳)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연형묵(延亨默) 전정무원 총리 등의 부상이나 조명록(趙明祿)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김일철(金鎰喆) 인민무력상,김영춘(金英春) 총참모장의 전면 배치도 같은 맥락에서다. 경제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고 외국의 원조도 늘어 순항을 돕고 있다. 미국 등과의 대외협상에서도 핵과 미사일을 내세워 ‘과실’을 눈앞에 두고있다.‘협상카드’를 세분화해 대미협상을 실리협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남한과는 계속 접촉을 피하며 햇볕정책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다.유럽 국가들과 적극적인 관계회복을 시도하는 등 국제사회로의 복귀노력도 이처럼 좋아진 상황에 따른 자신감 회복으로 해석된다.김일성(金日成)의 유훈통치에서 벗어나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보통국가’로 체제를 정비함에 따라 외국과의 정상회담도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이 직면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대외개방과 체제안정이란 양립키 어려운 두 명제의 조화가 무엇보다 숙제다.대외개방의 속도조절에 실패한다면 경제가 붕괴되거나 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자생력을 잃은북한의 앞날은 내부 회생력보다는 대외 전략 및 교섭의 성패에 달려있다고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사설]‘NLL 무효 선언’철저 대비를

    북한은 2일 인민군 총참모부 특별발표를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효화하고 일방적인 해상군사수역을 선포했다.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군사수역에는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가 포함돼 있어 NLL을 둘러싼 남북간의긴장고조는 물론 군사적 충돌의 위험성까지 높아지고 있다.북한은 장성급회담을 통해 새로운 해상경계선의 설정을 주장했으며 이같은 논의가 성사되지않을 경우 결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위협을 가했고 마침내 NLL 무효선언이라는 돌출카드를 던졌다.북한의 결정적인 조치가 군사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제2의 서해교전사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이 북방한계선의 무효를 선언하고 나선 이면에는 몇가지 현실적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강성대국을 과시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지난6월서해교전에서 입은 상처와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가 필요했을것으로 판단된다.더욱이 이번 해상군사수역 선포는 6.25동란때의 실지(失地)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포함돼 있다.또 오는 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북·미고위급회담에서 협상의제로 상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을 위협했던 미사일문제가 최근 위협효과가 떨어짐에 따라 새로운 분쟁카드가 필요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NLL 무효선언 이후 대미평화협정체결 전략추진을 강화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우리의 대북포용정책을 무력화시키고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기피하기 위한대남전략도 함께 작용했다고 보아 마땅하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의도는명분없는 도발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북방한계선은 53년 휴전협정이후46년간 준수돼온 남북간의 실질적인 해상 경계선이다.때문에 북한이 국제해양법의 등거리 원칙에 의거한 새로운 해양경계선의 설정을 주장하려면 합법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논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을수 있다.북한이 이같은 합리적 방법을 외면하고 일방적 해상군사수역을 선포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의 부당성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의군사도발 가능성에 철저한 대비책을 갖춰야 한다. 우리 군(軍)도 북한이 해상뿐만 아니라 육상과 공중 등 전방위적인 돌출행동을 자행할 것으로 예상됨으로 대북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그런면에서 국방부 합동참본부가“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할 경우 이를 도발로 간주하고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힌 것은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된다.북한은 무모한 도발모험을 즉각 중단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협력하기 바란다.
  • “北 NLL침범 도발간주 응징”

    합동참모본부는 3일 북한의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무효화 주장과 관련,성명을 내고 북한이 NLL을 침범하면 강력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황동규(黃童奎) 합참 공보실장은 ‘북한군의 소위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선포 관련 우리 군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북한이 2일 총참모부 명의로 선언한 서해상 군사분계선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면서 “북방한계선은 지난 46년간 엄연히 존재해 왔고 현재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임을 분명히밝혀둔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우리 군은 앞으로도 북방한계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며 북한이북방한계선을 침범할 경우 도발로 간주,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 성명은 이날 오전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관계부처의 의견조율을 거쳐 합참 명의로 발표됐다. 우득정기자 djwoo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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