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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호 前차관이 유전사업 총괄지휘했다

    김세호 前차관이 유전사업 총괄지휘했다

    철도청(현 철도공사)의 유전사업 투자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홍만표)는 11일 건설교통부 전 차관 김세호(52)씨가 유전사업 진행과정의 청와대 보고를 지시하고,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직접 협조를 건의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날 김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김씨는 건교부 차관이던 지난해 9월 중순 산자부 이희범 장관을 직접 찾아가 “유전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앞서 김씨는 철도청장이던 지난해 8월 말에는 부하직원인 사업개발본부장 왕영용(49·구속)씨에게 “청와대 김경식(46) 행정관에게 유전사업 추진 현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시에 따라 왕씨는 같은달 31일 김 행정관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김씨는 건교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지난해 9월3일 이후에도 당시 철도청 차장 신광순(56·구속)씨와 왕씨 등을 통해 유전사업 계약이 파기된 11월까지 유전사업 주요 현황을 수시로 직접 보고받는 등 사실상 사업을 총괄 지휘했다고 검찰은 밝혔다.7월 말에는 왕씨 등과 함께 우리은행 임원들을 만나 신속한 대출을 부탁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그동안 유전사업과 관련,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다며 관련성을 부인해왔고, 감사원 조사에서도 뚜렷한 개입 의혹을 밝히지 못했었다. 김씨가 산자부장관에게 직접 협조를 구하고, 청와대에 대한 보고를 지시하는 한편 자리를 옮겨서도 유전사업을 적극적으로 챙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검찰 수사는 김씨가 이처럼 유전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었던 배경 및 청와대와 산자부 후속 조치의 내용을 캐는 쪽으로 급속히 옮겨갈 전망이다. 검찰은 김씨에게 유전사업 성공의 확신을 심어준 ‘인물’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김씨는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에서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4∼5차례 만났지만 유전사업과는 관계가 없는 만남이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만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다음주 중 이 의원을 소환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는 철도청과 정치권에 걸쳐 있다.”면서 김씨에 대한 조사가 유전사업과 정치권을 연결하는 ‘고리’임을 시사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4월 총선을 전후해 이 의원 선거참모 지모(50)씨에게 8000만원을 건넨 하이앤드 대표 전대월(43·구속)씨로부터 “총선이 끝난 뒤 지씨가 5000만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김세호 前차관 배임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김세호 前차관 배임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철도청(현 철도공사)의 유전사업 투자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홍만표)는 10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보좌관과 비서진 5∼6명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검찰은 이 의원을 다음 주중 소환,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건설교통부 전 차관 김세호(52)씨에 대해선 이날 밤 배임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조만간 이 의원의 비서진을 불러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하이앤드 대표 전대월(43·구속)씨가 이 의원측의 선거참모 지모(50)씨에게 8000만원을 건넨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씨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지씨는 “전씨에게서 받은 돈을 이 의원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면서 “개인 빚을 갚고 선거활동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계좌추적 등을 통해 이 돈이 이 의원에게 전달됐는지 조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의원의 소환에 대해 “수사 범위가 넓고 사전에 확인할 부분이 많아 다음주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한 이날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 왕영용(49·구속)씨로부터 지난해 8월 유전사업 관련 보고를 받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소속 김경식(46·3급) 행정관을 다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청와대를 찾아가 보고한 상황에 대한 왕씨의 진술과 김 행정관의 설명이 엇갈림에 따라 대질신문을 했다. 또 김 행정관을 상대로 유전사업에 대해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와 왕씨에게서 보고를 받은 경위를 조사했다. 이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세호 전 차관은 지난해 7∼8월 철도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유전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철도청에 350만달러의 손해를 입힌 혐의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장성진급 복수추천제

    국방부가 장성 진급심사와 관련, 복수추천제 도입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6일 “현재 장성진급 심사의 경우 각군 본부가 진급 정원의 100%만을 국방부에 추천해 왔으나, 앞으로는 이를 120∼150%로 늘려 추천하는 방안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경우 그동안 각군 참모총장이 사실상 전권 형태로 행사하던 진급 인사권의 상당 부분이 국방부(장관)로 넘겨질 것으로 보인다. 윤광웅 국방장관도 이날 언론사 부장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장성진급 인사의 경우) 각군 총장의 추천권도 중요하지만, 국방부의 제청권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해 복수추천제 도입을 강하게 시사했다. 개선되는 진급제도 개선안은 올 가을 정기인사 때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경제플러스] 역대 공참총장 창원공장 초청

    두산그룹은 6일 박용오 ㈜두산 회장이 김창규 예비역 대장 등 역대 공군참모총장 17명을 창원 두산중공업으로 초청, 생산 현장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두산중공업이 쿠웨이트에 건설하는 사비야 담수 프로젝트용 증발기 선적행사에 참여했으며, 박 회장은 최근 인수를 완료한 두산인프라코어㈜ 창원 공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 [박근혜대표 본지 단독 인터뷰] “당권·대권 조기분리 논의 비례대표의원 확대해야”

    [박근혜대표 본지 단독 인터뷰] “당권·대권 조기분리 논의 비례대표의원 확대해야”

    “한겨울에 난로 하나로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4일 서울신문 구본영 정치부장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런 비유를 경제해법으로 제시했다. 이어 “400조원이 훨씬 넘는 시중 부동자금만 쓸 수 있게 하면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봐요.”라고 진단했다. 경제를 살리려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논거였다.‘4·30 재보선 대첩’을 이끌어낸 여장(女將)에게 소회를 묻자 이런 경제론으로 연결지었다. 재보선 뒷얘기와 당 안팎의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다음은 문답 요지. 이번 선거에서 느끼신 점은. -국민들이 경제난의 원인을 다 알고 있어요. 현 정권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정부와 여당이 민생과 상관없는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 같은 것에만 전력을 쏟다보니 거기에 대한 실망감이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원유세를 할 때 그 말만 하면 박수가 나오더라고요. 경제 살리기를 위해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부동자금이 자연스럽게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지 정부가 어거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만큼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투자가 돼야 청년실업이나 신용불량자 문제도 풀 수 있다고 봐요. 이번 재보선이 어렵지 않았나요. -유권자들이 후보라든가 국회의원 개개인의 역량, 평소 노력, 나라 일이나 지역 일 열심히 보느냐에 대해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너무 힘든 선거를 치르다 보니 전우애가 싹텄다고 하더라고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나이 드신 분들만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20대 젊은이들과 10대 초등학생들까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걸 보고 기뻤습니다. 젊은이들과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 어떤 초등학생은 ‘한수진 한수진’ 하면서 이 다음에 커서 한나라당으로 갈테니 자기 이름을 잘 기억해달라고 하더군요. 6곳 중 5곳에서 승리했다고 하나, 앞으로 호남지역에서 재보선이 이뤄진다면 선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꾸준히 노력하고 있어요. 호남에서도 후보를 내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는데 그동안에는 신청자도 없고 해서 아직 후보를 못내고 있는데…. 앞으로는 호남에서도 후보를 낼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겁니다. 여야 모두 그렇지만, 한나라당의 공천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인데. -그동안 밀실공천이라든가 그런 얘기들이 많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에서 공천심사위에 모든 것을 맡겼는데 그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봐요. 하지만 과연 주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했느냐 하는 점에서 일부 문제점도 나타났어요. 앞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면 될 거라고 봐요. 일각에서는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서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하는데요. -지역주의를 깨는 것보다는 국민 생활과 외교·안보 등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첨을 맞춰야 한다고 봐요. 직능별 정책전문가들이 많이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비례대표 늘리는 것은 찬성해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적 성향상 진보·보수로 나눠져 있고, 한나라당이 시대 변화나 젊은 층의 정서를 읽는 데 둔감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진보·보수 싸움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낡은 틀은 시대가 지난 일이고, 그런 것을 갖고 국민을 가르고 분열시켜서는 안된다고 봐요. 한나라당에서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새로운 이념적 좌표로 택했어요. 공동체 안에서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인의 경쟁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예요. 경쟁에서 밀려나는 개인을 국가 차원에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자유주의는 제3의 길일 수 있습니다. 최근 대선에서 세번 패배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가능성을 느낀 건가요.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꾸준히 바뀌어야 합니다. 하루 아침에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고 봐요. 당 혁신이나 재보선 이런 것들이 쌓여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거고요. 공식적으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적이 없지만 사실상 대권 주자로 각인된 상황인데. -민생이라든가 외교안보라든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너무 많아요. 그런 현안부터 해결하는 게 야당 대표의 도리 아닐까요. 박 대표를 제외하고 어떤 분이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할 것 같나요. -(박 대표는 웃음으로 대신한 뒤) 저도 당연히 꿈이 있고요. 이런 나라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그 꿈을 이루고 싶은 거죠. 저도 제가 꿈꾸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어요. 국민들이 편안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꿈 때문에 정치를 하고 있어요. 최근 민간정부 집권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정권을 창출한 정당은 없었다. 한나라당도 차기 대선에서 특정 정파와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는데.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리가 어떤 가능성을 차단하고 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도 다 국민의 뜻과 같이 가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치논리나 당리당략으로 그런 것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은 그런 계획이나 생각하는 것 없어요. 북핵 문제가 계속 꼬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적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대북 특사를 맡을 의향은 없습니까. -마다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하루가 지날수록 꼬이고 있거든요.3년전 북한에 갔을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야 하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남한이나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했어요. 결혼은 안하실 생각인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오고 가는 것이라고 하든데 시집가고 장가가고 시집오고 장가오고…(다소 당혹스러웠던 듯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수줍어하는 모습도 내비쳤다.) 박 대표를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정치인 박근혜의 독자적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구, 이젠 그런 말 그만할 때가 안됐나요. 저는 독자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하며 정치한 적이 없어요. 다만 시대에 맞는 정치, 국민에게 도움되는 정치를 하고자 했을 뿐이죠. TV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박 대표 역할하는 탤런트를 봤나요. -시간이 없었어요. 선거를 치르느라 밤에 늦게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고, 민박하고 하느라 한번도 못봤어요.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도 큰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는 사람만이 자산이라고 봐요.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야만 국가경쟁력도 생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 과잉, 하향 평준화, 극심한 관치 등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고, 학교와 교사에게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현 정부의 교육방향은 밑으로 같이 끌어내리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지난번 결혼한 동생 지만씨 부부로부터 조카가 생기게 되셨는데. -동생의 결혼으로 기뻤고 출산을 기다리고 있어요. 딸·아들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정리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박근혜대표 인터뷰를 마치고 4·30 재보선의 열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4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났다.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였다. 유세전에서 강행군하느라 감기 기운이 있다고 참모들이 귀띔했다. 하지만 승자의 여유 때문일까,1시간40분여 동안의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였다. 이 때문인지 사진으로만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단있는 표정과 육영수 여사의 단아한 이미지의 편린이 약간씩겹쳐져 느껴졌다. 문득 거물 정객이었던 고 김윤환(허주) 전 의원이 초선 의원 때의 그를 두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즉 “국가경영 수업 면에서 퍼스트레이디 1년 경험이면 금배지 3번 다는 것 이상이다.”라는 언급이었다. 박 대표가 적지 않는 기간동안 퍼스트레이디 역을 수행한 경험의 잠재력을 평가한 것이겠지만, 기자는 당시 솔직히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유세장에서 그는 “10대 소녀들로부터도 악수나 카메라폰 공세를 받았다.”고 토로한 데서 짐작되듯 만만찮은 대중성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 대중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부모의 ‘후광’에만 기인하는 것인지, 다른 ‘무엇’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재보선 등 전투에는 강하지만 전쟁(대선)에는 약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영화 그때그사람 등의 기획의도가 뭐라도 보나.”라는 등 거북해할 만한 질문을 연거푸 던져보았다. 하지만 얼굴 표정이나 매무새는 별반 흐트러지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당략이나 개인적 이익 등)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국가에 이익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정치를 할 것”이라는 원칙론을 또박또박 피력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일행 중 의자를 가장 반듯이 정리하고 자리를 뜨는 뒷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허주의 언급을 곱씹어 보았다. 구본영부장 kby7@seoul.co.kr
  • 아르빌 폭탄테러 50명 사망 자이툰부대 비상경계 돌입

    합동참모본부는 4일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해 자이툰부대에 특별 경계강화 태세에 돌입하도록 긴급 지시했다. 합참 관계자는 “4일 오전 9시30분(현지 시각) 자이툰부대에서 8km 떨어진 아르빌 시내 남쪽 미디어센터앞 도로 일대 경찰 모집장소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이툰부대는 사고가 난지 25분만에 영외활동 중인 장병들의 아르빌 시내 진입을 금지하고 교민들도 부대로 복귀하도록 조치했다. 합참은 저항세력들이 자이툰부대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비해 부대를 출입하는 현지인과 차량 검문검색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군 당국은 이날 오전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 최소 5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알 아라비야 TV는 최소 60명이 죽고 150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경찰과 목격자들은 범인이 현지 경찰 모집센터로 이용되는 쿠르디스탄 민주당 사무실에 들어간 직후 폭발이 일어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 건물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앰뷸런스와 택시 등이 아비규환 현장으로 달려가 사상자들을 병원에 실어나르는 장면이 목격됐다. 아르빌에서 자살폭탄 공격에 따른 인명 피해 규모로는 지난해 2월10일 쿠르드정당 사무실 2곳에서 동시에 발생한 공격으로 109명이 사망한 이후 두번째다. 한편 지난해 아르빌 쿠르드 당사에 대한 동시다발 폭탄테러에 대한 책임을 자임했던 이라크의 무장단체 ‘안사르 알 순나 군’이 4일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이번 자살폭탄 테러도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임병선 조승진기자 외신 bsnim@seoul.co.kr
  • [하프타임] 이혜진, 500m 소총3자세 한국신

    여자 사격의 기대주 이혜진(20·우리은행)이 제35회 봉황기사격 여자 50m 소총3자세에서 한국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혜진은 3일 창원종합사격장에서 열린 여자일반부 50m 소총3자세에서 결선합계 684.1점을 쏴 정연화(674.2점·상무)와 나윤경(672.5점·대구은행)을 가볍게 제치고 우승했다. 이혜진이 세운 684.1점은 지난 2002년 8월 이선민(청원군청)이 제27회 육군참모총장기대회에서 세운 683.4점을 경신한 한국신기록이다.
  • [사설] 北은 미사일 쏘고, 南은 못본체 하고

    북핵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동해를 향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단순히 군사훈련의 목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한 벼랑끝 전술이라고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재미를 보았던 1993년 북핵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집권세력이 바뀌었고, 일본이나 중국의 정치·군사적 생각도 변했다. 북한만 여전히 변하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위협은 고립만 자초할 뿐이다. 북한이 핵무기도 있고 미사일도 계속 개발하고 쏜다면 누가 두려워할까. 미국이나 일본이 두려워하기보다는 남북만 위험해질 뿐이다. 고집도 기댈 데가 있어야 통한다. 미사일 발사와 같은 북한의 행동은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여국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북한핵은 6자회담의 틀속에서 대화와 외교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당사자인 북한이 극한행동으로 나머지 참여국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보는 남한당국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일본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이 타전된 시점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한참 뒤에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120㎞밖에 안 되고 성능개량 실험용일 것이며, 종종 발사하는 연례훈련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이 종종 발사하는 미사일이어서 별것 아니라고 국방당국이 판단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국방당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남의 집 불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고도의 판단에서 그랬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북한은 가만있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 사거리가 짧다느니, 연례훈련 수준이니 하는 것은 북한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한당국의 이런 태도는 오히려 북한의 고립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제 핵실험을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균형감각을 찾기를 바란다.
  • 2대 자이툰대장 정승조 소장

    이라크 아르빌에 파견중인 자이툰부대(이라크 평화재건사단)의 제2대 사단장에 정승조(육사 32기) 육군 1사단장이 내정된 것으로 1일 알려졌다. 육사를 수석 졸업했으며 3군사령부 작전처장,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 신임 부대장은 이달 초 이라크 현지에 부임할 것으로 보인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⑧-현대산업개발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⑧-현대산업개발

    올해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77) 명예회장과 정몽규(43) 회장이 자동차에서 건설로 배를 갈아탄 지 6년째 되는 해다. 자동차를 운영하던 경영인이 과연 건설을 잘 이끌겠느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대산업개발은 빠르게 새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형제들은 일찌감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으나 정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에 인생의 32년을 묶어두는 바람에 뒤늦게 독립했다. 정주영가의 다른 형제들이 현대건설에서 땀 흘리며 가꾸던 회사를 발판으로 분가한 것과 달리 정 명예회장의 ‘왕회장’ 독립은 2세 경영체계 구축과 함께 갑자기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 부자는 “아파트도 자동차처럼 만들어야 팔린다.”면서 ‘현대자동차 신화’를 건설에 접목시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교수하면 배고파”, 현대와 인연 정 명예회장이 현대와 인연을 맺은 때가 1951년 부산 피란 시절이다. 고려대 정치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 명예회장은 왕회장 밑에서 잡역부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왕회장 사무실에서 일손을 도왔다. 이미 두 형님(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 정순영 현대시멘트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을 떠난 것은 큰형의 메시지가 작용했다.57년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으나 당리당략에 빠진 현실 정치에 빠져들기 싫어 정치 지망생의 꿈을 접고 대신 대학 교수의 길을 찾았다. 욕망은 모교 강단에 서고 싶었으나 우선 한 대학으로부터 교수 채용 사실을 통보받았다. 하지만 왕회장은 “나랑 같이 일하자.”고 소매를 잡았다. 늘 그랬지만 그에게 맏형의 말은 제의나 권유가 아닌 명령이나 다름없었고 한번도 거역한 적이 없었다. 내 사업으로 생각하고 32년 동안 일궜던 현대자동차도 왕회장이 사실상의 장조카 MK(정몽구)에게 넘겨주라는 한마디에 순순히 따랐을 정도다. 첫 직책은 신입사원 채용위원장. 동시에 신규 사업 진출을 검토하는 일도 겸했다. 왕회장이 처음 맡긴 프로젝트는 시멘트 공장 건설에 필요한 국제개발국차관(AID)을 빌려오는 일이었다. 둘째형(인영·85)과 함께 충북 단양의 광산을 사들이는 한편 미국과 국내에서 공장 건설을 위한 교섭을 벌여 어렵사리 성사시켰다. 하지만 그에게 가난보다 더 무서운 시련이 찾아왔다.30대 초반인데도 건강에 이상이 감지됐다. 간경변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씨름하느라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아내의 정성어린 간병과 용기로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다시 일에 뛰어들었다. 새로 부임한 곳이 단양 시멘트공장 공장장이었다. 사선을 넘나들던 건강을 되찾으면서 일에 미쳤다. 65년 대한건설협회 해외시찰단 일원으로 동남아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를 얻는다. 마침 태국에 세계은행 자금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정보를 캐낸 그는 이 사실을 서울 큰형님에게 보고한다. 정 회장은 왕회장으로부터 “태국에 그대로 눌러앉아 공사 진행상황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고 방문단에서 빠져 관련 정보 입수에 본격 나선다. 이렇게 해서 현대건설 방콕지점장이 됐고 파타니∼나리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고속도로건설 경험도 없었던 현대였고, 국내 최초의 해외건설 공사 수주로 기록됐다. ●‘포니 정’,32년의 자동차 인생 시작 1967년 시멘트 공장 기계를 사기 위해 미국에 있던 중 본사로부터 포드자동차와 접촉하라는 전보를 받는다. 포드 자동차가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조사단이 방문했는데 서울에서 그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미국에서 포드측에 관심있다는 뜻을 전하라는 메시지였다. 즉각 움직여 자동차 산업에 대한 현대의 관심을 전달하고, 포드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둘째형의 적극적인 협상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같은 해 말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는 현대자동차 회사가 설립됐고, 초대 사장으로 임명돼 있었다. 이렇게 해서 ‘포니 정’의 32년 자동차 인생이 시작됐다. 자동차 진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포드와의 조립계약을 맺은 뒤 68년 3월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자동차 공장 구경도 못하고 자동차 공장을 지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우리 손으로 만든 자동차를 수출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키워갔다. 본격적인 공장 건설과 함께 인재 사냥에 나섰다. 급한 대로 현대건설에서 유능한 사람을 빼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양섭 부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 부장은 20년 넘게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면서 사장까지 역임했다. 윤주원씨도 현대건설에서 스카우트해 사장까지 지냈다. 신동원씨는 당시 상공부로부터 추천받은 경우다. 신입사원도 뽑기 시작했다. 이들이 오대양 육대주를 달리는 오늘의 현대차를 있게 한 일꾼들이었다. 마침내 68년 11월 제1호 ‘코티나’가 나왔다.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생산하기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해 5월부터는 중형 승용차 포드 20M도 생산했고,8월에는 자체 설계한 첫 버스를 출고하는 저력을 발휘하면서 쾌속질주를 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현대차의 질주를 시기하고 배 아파하는 소리도 들렸다. 경쟁사인 신진자동차와 정치권의 압박으로 숱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70년초 1차 석유파동에 휩싸이면서 판매도 급감했다. 할부로 판매한 자동차의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 막내 동생 상영(KCC명예회장·69)씨가 잠시 금강슬레이트 경영을 접고 부사장으로 와서 채권회수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 한 마디에 자동차 인생 종지부 언제까지 단순 조립생산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포드와 50대50 합작회사를 만들어 엔진 공장을 짓고 기술을 이전받아 자립의 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포드가 약속한 지분 50%에 대한 자본 납입을 미루고 협상이 결렬되면서 ‘마이웨이’를 외쳤다.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74년 국산 1호차 조랑말 ‘포니’가 탄생했고 이를 이탈리아 토리노 국제모터쇼에 내놓는 기염을 토했다.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76년 2월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고 중남미를 중심으로 수출까지 이끌어냈다. 이 때부터 현대자동차는 국내 기업이 아니라 세계 기업으로 커갔다. 아울러 96년 MK(정몽구 현대차 회장)가 그룹 회장을 맡을 때까지 9년 동안 왕회장을 대신해 현대호를 이끌었다. 이즈음 현대가의 2세 경영체제가 이뤄지면서 자동차 회장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앉았다. 정 회장은 용산고, 고려대 경영학과, 영국 옥스퍼드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8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이 때부터 현대자동차를 몰고가는 드라이버는 몽규 회장이었다. 하지만 삼성자동차 허가, 외환위기라는 거센 풍랑과 맞서 싸워야 했다. 여기에 노사분규 시련도 덮쳤다. 젊은 정 회장에게는 경영자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대였다. 정 회장은 의연하게 문제를 풀어나갔다. 이방주, 김수중, 김판곤 등의 임원이 정 회장의 훌륭한 참모 역할을 했다. 하지만 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뒤 경영 구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MK가 현대차와 기아차의 새 회장으로 오면서 몽규 회장은 부회장으로 내려앉는다. 장차 밀어닥칠 일을 예상케 하는 대목이었다. 마침내 99년 3월3일 왕회장은 명예회장을 부른다. 왕회장은 “MK한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는 말로 자동차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잘못된 것 없다.”는 대답이 나오기 무섭게 “그렇게 해.”라는 왕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이끌었던 사업이었지만 거역하지 않고 “예”라는 한마디로 32년 자동차 인생을 접었다. 아울러 왕회장의 생각과 달리 아들 몽규도 함께 자동차를 떠나 현대산업개발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아파트도 자동차처럼 지어야 한다 새 사업을 가꾸고 키우는 일은 몽규 회장과 전문 경영인이 맡았다. 명예회장은 경영 자문만 할 정도다. 정 회장은 아파트에 자동차 제조업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사소한 하자가 나와도 불량품이 완전히 고쳐질 때까지 모든 공정을 멈추는 것이다. 현장 중시와 품질경영 기치를 내세웠다. 체면 따위는 내팽개쳤다. 경쟁사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찾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삼성래미안 아파트 강남 일원동 주택전시관을 찾은 적도 있다. 지난해에는 용산 시티파크 모델하우스를 찾아 경쟁사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파트 이름을 ‘I-PARK’로 바꾸는 등 변신도 꾀했다.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지 않는 것도 다른 건설사와 다르다. 안정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수주·매출 목표를 줄이는 것도 그에게는 창피한 일이 아니다. 자동차에서 건설로 배를 갈아탄 지 6년 만에 부동산 박사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 강남 역삼동 스타타워(아이타워)사옥 매각도 그의 판단이었다. 부채를 갚아 정상적인 회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로는 최고의 조건으로 넘겼고, 부동산 개발회사가 특정 사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돈이 된다 싶으면 정든 사옥도 팔 수 있고, 부동산 회사가 개발 이익을 남기고 사옥을 옮기는 것은 결코 흉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부동산업자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낭만적인 ‘포니 정家’혼맥 ‘포니 정’과 정 회장은 결혼 과정이 비슷하다. 낭만적이다. 처음부터 명문가를 골라 배필을 정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소개해준 여성과 사랑을 싹 틔우다가 결혼에 골인했다. 정 명예회장은 대학 시절 왕회장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한때 사무실 여직원에게 마음이 끌리기도 했지만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첫사랑의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했다. 유학 시절에는 공부하느라 연애 한번 못해봤고 현대건설 입사 이후에는 일에 파묻혀 서른이 넘도록 노총각으로 지냈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뉴욕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의 소개로 박영자(69) 여사를 만난다. 박 여사는 부산에서 올라와 이화여대 3학년에 다니던 귀여운 단발머리 학생이었다. 첫눈에 사로잡혀 매일 데이트를 할 정도였고 세 번째 만나던 날 프러포즈를 했다. 아버지와 다름없었던 큰형님과 형수에게 인사를 시켰는데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들어했다. 명문대가를 따지지 않는 현대가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으로 내려가 어른들의 허락을 받은 뒤 만난 지 100일이 안돼 약혼하고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정 명예회장은 큰딸을 결혼시키면서 노신영 전 총리와 사돈 관계를 맺었다. 사위 경수(51)씨가 노 전 총리의 장남이다. 노씨는 서울대 교수로 국제정치 전문가다. 노 전 총리 차남은 중앙일보 고 홍진기 회장 딸 홍라영씨와 결혼했다. 이로 인해 노신영가는 국내 굴지의 그룹인 현대, 삼성가와 동시에 사돈 관계를 맺었다. 정 회장의 결혼도 명예회장과 마찬가지로 순수함 그대로였다. 역시 반 중매 반 연애로 이뤄졌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김나영(39) 여사를 만났다. 결혼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 몽규 회장이지만 몇몇 절친한 친구한테는 결혼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나영씨는 연대 수학과를 나온 재원. 키도 크고 미인이었다. 첫 만남에서 정 회장은 상당한 호감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정 회장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키도 크고 집안도 좋고 미인인 데다 마음까지 곱다.(아까운데)친구 중 누구 소개 시켜주면 안 될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친구들이 오히려 격려해 줬다.“너보다 키 작은 여성을 만나면 어떻게 하느냐. 천생배필이다.”며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영씨는 당시 대한화재보험 김성두 사장의 딸이다. 하지만 당시 대한화재는 기울어가는 회사였다. 정략적 결혼이었다면 잘나가는 집안과 결혼했을 터이지만 현대 집안에서는 이들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 정씨 일가의 결혼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계기로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시절 사돈인 대한화재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위장계열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중점 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회사는 뒤에 대한생명으로 인수된다. 범 현대가의 경영 특징이지만 현대산업개발에도 처가쪽 사람이 없다. 정 회장 처남이 잠깐 현대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에서 근무했으나 지금은 독립,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막내 딸 유경(35)씨는 김석성 전 전방회장의 1남4녀중 막내인 종엽씨와 결혼했다. 몽규 회장에 이어 재계 인맥을 형성한다. 유경씨는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한 뒤 현대산업개발에서 잠시 근무했다. 종엽씨는 미국 벨뷰대학 출신으로 전방 계열의 내의류 생산업체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역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나 1년 동안 사귀다가 결혼하게 됐다. ●다재다능한 전문 경영인 포진 현대산업개발 전문 경영인은 삼각편대로 구성됐다. 자동차에서 정 회장과 함께 현대차를 키웠던 전문 경영인과 현대산업개발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통이 주력부대다. 여기에 금융기관 등에서 스카우트한 전문가 그룹이 한 축을 버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이방주 사장은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핵심 브레인. 전형적인 재무통. 현대자동차 재경본부장과 사장을 거쳤다.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로 옮길 때 함께 배를 갈아탔으며 현대차·현대산업개발을 키운 1등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너의 신임이 남달리 두터워 자동차에 이어 건설회사에서도 대표이사 사장을 6년째 맡고 있다.ROTC 포병장교 출신. 연극계 대부 고 이해랑씨가 부친이며 문화계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 건설업계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주택협회회장을 맡을 정도로 부동산과 건설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보성고,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정 명예회장과는 고교·대학 동문인 셈이다. 김정중 사장은 77년 현대산업개발에 입사, 국내외 현장을 누빈 건설업계 산증인. 기술연구소장, 건축본부장, 영업본부장을 거쳤다. 과거 현대아파트는 물론 I’PARK까지 그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아파트다. 마케팅팀 및 영업기획팀을 신설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고와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김택 현대역사 사장은 현대산업개발 에 입사해 관리본부장, 리모델링 사장을 거쳐 2003년부터 현대역사 사장을 맡고 있다. 고속철도 용산역에 8만 2000평 규모의 복합쇼핑몰 ‘스페이스9’를 운영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다. 소탈한 성격에 정확한 판단과 추진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용산고, 고려대를 나와 정 회장과 고교·대학 동문이다. 인텔리전트 빌딩, 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업체인 아이콘트롤스는 김대철 사장이 맡고 있다. 주거 공간의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 주거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현대산업개발 자재담당 임원과 기획실장을 지냈다. 서라벌고와 고려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MBA출신이다. 장동열 아이앤이 사장은 음악·시·영화 등에 관심이 깊다. 따뜻한 카리스마로 감성경영을 한다는 평을 받는다. 의사결정까지는 심사숙고하지만 일단 정해진 일은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을 지녔다.2년전 현대산업개발의 기계·전기팀에서 떨어져 나간 회사다. 광주고와 전남대 건축공학과를 나왔다. 현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이건원 사장은 현대차 부품개발분야에서 27년 동안 몸담으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 및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현대산업개발 유화사업부로 출발,2000년 분사한 회사. 충남 당진에 공장을 갖고 있으며 자동차 내외장재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품 사용 범위를 밥솥, 김치 냉장고 등 생활가전으로 넓혀가는 중이다. 아이앤콘스는 부산 아이파크 프로축구단장과 현대산업개발 영업기획 임원을 역임한 곽동원 사장이 이끌고 있다. 경남고, 성균대를 나왔다. 중·소규모 아파트와 빌라를 짓고 건물 리모델링, 개발사업 등 부동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다. 유일한 금융관련 회사인 아이투자신탁운용도 있다. 유가증권 투자·운용과 투자자문 업무를 하면서 신뢰받는 금융서비스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표는 글로벌에셋운용 총괄본부장을 역임한 우경정 사장이다. 프로축구단 아이파크스포츠는 이준하 사장이 책임진다. 정 회장과 용산고 동문이자 오랜 친구다. 어려서부터 양쪽 집안끼리 가까웠다. 연대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MBA를 받았다. 현대차와 현대산업개발에서 영업·마케팅, 홍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모험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올해 경영 목표를 ‘한국형 클럽스포츠의 성공적 사업 모델 구축’으로 정했다. 우승과 동시에 스포츠단에도 사업 마인드를 접목시키기 위해 사업다각화와 경영합리화를 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만능 스포츠맨’ 정몽규 회장 현대산업개발 CEO들은 유난히 스포츠에 애착을 갖는다. 스포츠로 뭉친 인맥경영을 보는 듯하다. 특히 정몽규 회장은 스포츠광이다.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다. 선수 수준인 종목만 5개나 된다. 그 중에서도 수영은 프로급이다. 승마, 수상스키, 스키(요즘은 보드를 탄다)도 수준급이다. 수상 경력이 있는 종목도 있다. 그는 격한 운동을 좋아한다. 철인3종경기,MTB(산악 자전거타기) 마니아다. 기업인 중심으로 구성된 철인3종경기 동호인이다. 얼마전에는 스키장에서 보드로 스피드를 즐기다가 안전 펜스를 뛰어넘으면서 어깨를 다친 적도 있다. 기계 위에서 하는 운동은 별로다. 가끔 한강변이나 남산에서 뛰기도 한다. 정 회장은 “콧구멍이 시커머지더라도 밖에서 운동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골프는 할 줄은 알지만 별로 탐탁해하지 않는다. 운동할 때는 운동에 전념해야 하는데 골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도 싫다. 정 명예회장도 30년 이상 수상스키를 즐겼다. 바쁜 일정 중에도 양수리에서 물 위를 활주하곤 했다. 이런 인연으로 수상스키협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선수 육성과 보급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방주 사장도 스포츠를 즐기는 CEO다.1년에 3∼4회 마라톤 경기에 참가한다. 최근 10㎞를 1시간 안에 뛰었다. 시간이 나면 등산을 한다. 회사 차원에서는 프로축구 아이파크 스포츠단을 운영한다. 회사 차원의 지원도 대단하다. 부산에 연고를 두고 있는데 이 지역에서 10여곳의 재개발단지를 수주하는데 상당한 보탬이 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스포츠단이 그렇듯이 아이파크 축구단도 해마다 적자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적극 밀어준다. 스포츠단 이준하 사장은 재미있는 스포츠에 사업성을 가미한 경영을 한다. 올해 적자폭을 줄이고 돈을 벌 수 있는 별도 사업을 추진, 스포츠단을 모회사에 손을 내밀지 않을 정도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chani@seoul.co.kr ■ 정세영·몽규 父子 ‘막노동 경영수업’ 정세영 명예회장과 몽규 회장은 경영 수업의 첫 출발도 비슷하다. 이 때 형성된 인맥은 건설이나 자동차 회사의 초석을 다지는 주역이 됐다. 정 명예회장은 부친이 부산 피란시절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막 벌여놓은 현대건설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큰형(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둘째형(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이 미군 공사를 수주해 오면 시장에 나가 현장에 투입할 인부를 모아오고 자재를 사들이는 일이었다. 이 때 만난 이춘림씨는 훗날 현대건설 회장에 오른다. 이 전 회장은 그래도 건축도(당시 서울대 건축학과 3학년생)라서 설계를 하고 공사 감독도 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야말로 잡역부이자 막노동꾼이었다. 막노동판에서 만난 인맥은 현대건설을 떠날 때까지 끈끈하게 유지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외아들 몽규에게 혹독하게 경영 훈련을 시켰다. 대학생이었던 정 회장은 방학 때면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고된 잡일을 해야 했다. 임직원들도 모르게 했다. 땡볕 아래서 리어카를 끌고 숙식도 독신자 기숙사에서 해결하는 생활이었다. 정 회장은 울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것을 가장 기억이 남는 과거로 떠올린다. 자식뿐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도 가혹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강한 저력을 발휘할 수 있게 훈련시켰고 인맥을 관리했다. 자동차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인들을 잘 관리했고, 그 뒤에 현대산업개발로 모셔와(?) 중역을 맡겼다. 이방주 사장을 비롯해 김판곤 전 현대역사 사장 등이 자동차에서 날리던 선수들이다. 이들은 정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키운 베테랑 경영자들이다. 정 회장 역시 자녀 교육에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생인 큰아들 준선(13)이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영국으로 홀로 유학보냈다. 준선이는 재능을 인정받아 당당히 이튼스쿨에 자력으로 입학했다. 따로 돌봐주는 사람 없이 기숙사에서 생활토록 하고 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에서 떨어뜨리는 식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서울광장] 軍의 고객은 국민이다/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軍의 고객은 국민이다/김경홍 논설위원

    대다수 국민들은 군에 대한 인식에서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보와 관련해서 군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보나 국방은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 즉 국가나 군의 책임이라는 투다. 국방의 의무만 해도 그렇다. 남의 자식이 군대에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기 자식이 군대에 가는 것은 뭔가 억울하다는 부모들도 많다. 병역을 마친 남자들은 군대시절 얘기만 나오면 온갖 허풍을 보태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전부 기합을 받았다거나 군기가 셌다는 등 고생한 얘기뿐이다. 듣는 사람은 군은 고생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 드러난 훈련소 인분사건은 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백번 잘했더라도 한번 잘못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이치다. 최근 한 장교는 “군인이 죽으면 전부 의문사”라고 말했다. 사인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도 유족들이 수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사회의 자살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가운데 군에서도 자살 사고자가 연평균 50명에 이른다. 일반이 보기에는 신체건강한 청년이 군대에 갔는데 자살했다면 군당국을 원망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한해에 20∼24세의 일반인 남자의 자살자는 10만명당 15.7명이었다. 같은해 군의 자살자는 43명으로 10만명당 9.8명이다. 군의 자살률이 일반의 자살률보다 훨씬 낮다. 군 관계자는 “군대보다 일반사회가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통계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군에서 자살자가 생길 때마다 매도당하는 것을 볼 때 군이 다소간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수치비교만으로는 곤란한 부분도 있다. 군인으로 입대한 청년들은 일단 신체건강했고, 자살 동기에 군대부적응이나 상관이나 동료사병의 가혹행위 등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나 여건, 장병들의 심리상태를 잘 관찰한다면 일반사회보다 훨씬 더 자살자를 줄일 소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이달 초 취임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이 육군의 변화를 지시했다고 한다. 김 총장은 “군의 고객은 국민”이라는 전제 아래 대국민 감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라고도 했다. 김 총장이 육군의 CEO로서 마케팅 전략을 도입하겠다는 의도다. 김 총장이 육군의 CEO로서 고객중심의 적극적 마케팅에 나서겠다는 변화는 바람직스럽다.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육군의 개혁과제는 많다. 과학군, 정보화 군으로 변모하자면 조직개편과 인사, 교육시스템 등 전반적인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과제는 군으로서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과제다. 첨단군으로 변모하자면 결국은 병력을 줄이되 첨단장비와 무기체계를 갖추는 길밖에 없다. 병력을 줄이는 것보다는 첨단장비를 갖추는 것이 훨씬 돈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군이 강해지려면 돈이 더 들 수밖에 없고, 돈을 더 얻어내려면 국민들의 군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필수적이다. 국민이 고객이라면 고객감동과 고객만족이 필요한 이유다. 육군 혁신기획단이 고객만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군 부적응 병사들의 휴근명령제나, 복무지역 선택지원제, 장애인의 군무원 채용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도입된다면 장병들의 사기나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을 안심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안보나 국방이 군인들의 몫만은 아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안보가 튼튼한 안보다. 국민들이 군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강군은 존재할 수 없다. 군과 국민들이 서로 감동을 주고받으며 한걸음 더 다가서기를 기대한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해병대사령관 김명균 중장

    정부는 29일 김명균(해군 소장·해사 27기)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해병대사령관에 임명하는 등 육군과 해군 및 해병대의 중장급 이하 장성 25명에 대한 진급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3월 합참의장과 육·해군 총장 등 수뇌부 교체에 이어지는 후속 인사다. ●육사 30기 군단장 시대 총 7명의 중장 진급자가 나온 육군의 경우 이영계(육사 30기) 육군 정보작전부장이 수방사령관에, 박종달(육사 29기) 3사관학교장, 방효복 국방부 정책기획관, 이성출 육군 지휘통신참모부장, 김근태(이상 육사 30기) 육군대학 총장, 최용주(3사 4기) 2군사령부 참모장 등 5명은 일선 군단장에 보임됐다. 또 지난 2월 임명된 김영한(육사 29기) 기무사령관도 이번에 중장으로 진급했다. 예년과 달리 한꺼번에 5명의 중장 진급자가 나온 해군의 경우 송영무 해군 기획관리참모부장이 합참 인사군수본부장에, 정관옥 해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 해군 차장에, 권영준(이상 해사 27기) 국방부 인사국장이 해군사관학교장에 각각 임명됐다. 해사 28기인 박인용 해군 전투발전단장과 서양원 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은 교육사령관과 작전사령관에 보임됐다. ●해병대사령관은 막판까지 혼전 후보간에 막판까지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해병대사령관의 경우 김명균 소장이 올랐다. 또 육군에서는 황영수(육사 32기) 육군본부 전력개발관리단 사업관리처장 등 9명은 소장으로 진급, 일선 사단장 등에 보임됐다. 김영만(육사 30기) 준장 등 3명은 소장 진급과 함께 전문직위에 각각 올랐다. 중장급 장성에 대한 일부 보직 인사도 단행됐다. 합참 차장에는 권안도(육사 27기) 육군 중장이, 합참 작전본부장에는 김태영(육사 29기) 수방사령관이 각각 자리를 옮겼다. 이번 인사에는 국방부가 구상중인 새로운 장성 진급제도 개선 방안이 시범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들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하되, 철저한 검증도 이뤄졌다고 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베트남전 종전 30주년] 끝나지 않은 40년전 악몽…반전운동·종교 귀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한국은 32만여명을 파병, 전사 5099명, 부상 1만 1232명이라는 희생을 안았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당한 베트남 사람들도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나라는 1992년 수교한 뒤 서로의 상처를 보살펴 주며 과거의 악연을 씻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맞아 전쟁 희생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돈독해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살펴봤다. ■ 참전 생존자들의 고통 “1년에 몇번씩은 퀴논의 그 지긋지긋한 전략촌을 찾아갑니다. 손에는 M1 소총을 들고 있죠. 그리고는 저의 오발로 밀림에서 죽은 30대 여인의 치켜뜬 두 눈과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던 정 일병이 겹쳐집니다. 소리치며 깨어나면 가슴이 콱 막혀 숨을 못 쉬겠어요.40년이나 지났으면 잊혀질 법도 하련만….” 지난 28일 오후 서울 명동의 커피숍.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묵은 악몽을 얘기하던 박정익(가명·59·목사)씨의 눈가가 젖어든다.1965년 12월3일. 이 날은 박씨의 가슴에 핏빛 화인(火印)으로 남아 있다. ●밀림 헤매는 ‘김상사’ 박씨에게 베트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194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다 65년 10월 맹호부대 기갑연대 3중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 캄란 땅을 밟았다. 전쟁보다 가난이 더 무섭던 시절.1년만 버티면 집 두 채를 산다는 말에 자원했다. 하지만 전장에 나서기엔 박씨는 너무나 여렸다. 실전 투입 한달도 안돼 퀴논 지역 작전에서 동료를 잃었다.“살아서 소 몰고 고향에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였다.“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짐승’이 돼 갔지요.” 이듬해 11월 무사히 귀환해 수원에서 큰 포목점을 열었지만 전쟁의 악몽은 베트남 해변가의 안개처럼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를 ‘구원’한 건 신앙의 힘이었다.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해 개척 교회를 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도 베트남의 상처를 말하지 못했다.“퀴논에서 목회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짙은 그림자 남긴 베트남의 악몽 강인용(가명·부산)씨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자기와 가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다. 베트남에서 귀환해 가정을 꾸렸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가족들을 괴롭혔고 결국 아들과 부인이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 현재 강씨는 세상과 연락을 끊은 채 살고 있다. ●속죄의 길로 택한 반전 운동 베트남의 기억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다른 쪽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김용삼(55)씨는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에 뛰어들었다. 해병대 5중대 소속으로 68년 7월 전쟁터에 뛰어든 그는 이듬해 4월 최전방이던 호이안 지역 전투에서 오른손에 총알 관통상을 입고 제대했다. 우연찮게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돌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베트남 전쟁의 본질 규명에 나섰다. 경남 마산의 시민사회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김영만(59)씨는 해병대 포병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67년 2월14일 ‘짜빈동 전투’에서 코에 총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200명의 해병대는 짜빈동 전투에서 월맹군 3000여명을 격퇴했다. 해병 전투사는 이를 ‘베트남전 최고의 해병 전투’로 기록한다. 김씨 역시 ‘학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짜빈동 전투 이틀 전 30대 남자 포로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당시 포로 즉결 심판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포로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며 애원했다.“고향에 계신 친할머니 같았어요.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 오기 전의 정상적인 청년으로 돌아온 거죠.” 김씨는 화랑무공훈장도 보훈 혜택도 마다하고 제대한 뒤 모든 것을 잊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민 준비를 위해 호텔 견습생으로 들어갔다가 척추를 다쳤다.30대의 대부분을 하반신 불구로 보냈고 부인은 행상에 나섰다. 2003년 3월 그는 배상현씨 등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들을 전쟁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파견했다. 김씨는 “이라크 파병은 우리 민족이 베트남전의 비극을 되풀이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면서 “전쟁을 없애는 것이 베트남에서의 죄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고엽제후유증 8만명 고통 PTSD는 치료도 못받아 “포탄 날아온다. 모두 피하라.” 2003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USC 부속병원. 낯선 한국말 고함이 병동의 새벽 정적을 깼다.“여보, 제발 정신 좀 차려봐요.”눈을 뒤집은 채 병상에서 소리치고 있는 목사 김모(58)씨의 손을 잡고 부인 김모(56)씨가 눈물로 애원했다. “여기가 어디야. 또 월남 아니야.”김씨는 결국 꽁꽁 묶여 정신병동으로 갔다. 원인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백마부대 소속으로 1968년 9월부터 15개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던 그는 현재 중풍과 PTSD 증세로 대소변도 못 가눌 정도가 됐다.PTSD는 전쟁 등 극단적인 사건에 노출된 뒤 나타나는 불안 장애. 헛것이 보이거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등 충격을 현실처럼 느끼기도 하고 한없이 차가워지기도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의한 PTSD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PTSD로 150만여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만여명이 자살을 택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파월 장병들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고엽제 환자 280명 중 60%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러나 보상은커녕 치료마저 요원하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병상 일지에 관련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어야 전투와 연관된 상해로 인정받기 때문에 PTSD 전상자는 공식적으로 없다.”면서 “미국처럼 PTSD 환자를 위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아버지는 PTSD로 고통받았고, 그 고통이 유영철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전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엽제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후유의증 환자는 8만여명. 그러나 판정 조건이 너무 엄격하다. 진단받은 사람 가운데 17.9%만이 후유증으로 판정받고, 이중 58.3%만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고엽제는 참전자 2세의 생명도 위협하고 있다.2000년 182명의 부산·경남지역 고엽제 후유증 환자 2세 연구에 의하면 선천성 기형이 15건, 전신 허약이 12건이나 나타났다.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건강 장애를 보였다. 고엽제 피해로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뉴질랜드도 2억 4000만달러를 보상비로 챙겼다. 그러나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32만여명을 보낸 한국은 한 푼도 못 받았다. 이두걸 이효용기자 douzirl@seoul.co.kr ■ 당시 주월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중장 “주한美軍 차출 막으려 파병” “주한미군을 자꾸 나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많이 듣고 있어요.”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5년 가까이 파병부대를 지휘한 채명신(80) 예비역 육군 중장은 베트남전 종전 30주년과 관련해 이 전쟁이 주는 교훈이 뭐냐고 묻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반미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사회 일각의 풍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요즘 그는 베트남참전동지회와 6·25 유공자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강의차 지방출장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옛 전우들도 자주 만난다고 했다. “올해가 월남전 종전 3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투부대 파병 4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답게 그는 종전보다는 전투부대 파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듯 했다. 월남 파병을 ‘용병(傭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파병의 불가피성을 들었다. ●朴대통령 “쉽지 않은 전쟁” 고민 “당시 파병은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미국이 월남에 지상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미국 본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제한적이었거든요.” 당시 우리보다 GNP가 많고 군사력도 월등한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경제발전과 5·16 이후 불편했던 미국과의 관계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병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던 자신을 불러 전투병 파병을 논의했었다는 얘기도 털어왔다.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투수행에 관한 한 군의 최고 전문가다. 당시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았던 만큼 박 대통령도 적잖은 고민을 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월남에 파병되면 게릴라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간적인 존경을 받는 카리스마의 리더십, 은신과 보급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 등을 호찌민부대가 갖추고 있어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미국을 붙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민간인 무차별 총질 결단코 없었다” 최근 월남전과 관련해 이따금씩 보도되고 있는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참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비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주민으로 가장한 베트콩들이 많은 마을에서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일부 주민들과 교전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질을 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게 당시 사령부의 지휘방침이었다고도 했다. 실제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전과(戰果)를 거론했다. 당시 한국군은 사살자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베트남에 주둔하는 8년간 4만명 이상을 사살했는데 총이나 수류탄도 대략 2만정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시체보다 총을 먼저 챙길 정도로 무기를 생명처럼 여겼는데 이 정도로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은 한국군이 얼마나 알뜰하게 베트콩만 골라서 공격했는지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미군과의 작전지휘권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파병 직전 박 대통령도 현지에서 미군의 지휘를 받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전 지휘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고집,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미군은 당시 한국군 병력이 2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군의 통제를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애초에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잘못됐고, 잘못된 군사전략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게 내 신념이었습니다.” ●용병 논란 우려 독자 작전권 고집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게 되면 ‘용병 논란’이 생길 게 뻔하고, 미군도 전쟁을 청부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권을 가질 때만 이 전쟁의 성격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의외로 미군들도 수긍을 하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이 결국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개발을 첫 손에 꼽았다. 파병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점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금융기구에서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했던 차관을 선뜻 내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또 현대건설 등 월남전 특수에 힘 입은 것도 분명한 사실 아니냐고도 했다. 그는 ‘고엽제’ 등 전쟁의 부작용의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고엽제 후유증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고엽제 부작용 이렇게 심할줄을” 문민정부 때부터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를 후유증으로 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현재 1만 2,000명이 후유증 판정을 받았으며,3만명은 의증 판정을 받은 상태다. 참전유공자회 책임자를 맡은 만큼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군한 이후 베트남을 방문하지 않다가 수년전 관광차 하노이만 잠깐 한차례 들렀다고 한다. 또 월남전과 관련해 제작된 각종 영화 등도 관심있게 봤다. 하지만 상당수 작품의 경우 허구가 지나쳐 고개를 돌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베트남전과 한국군 파병 등에 대해 회고록을 집필중이다. 잘 하면 올 연말쯤이면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나중에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현지 사령관을 마친 뒤 귀국, 군사령관을 마치고 군문을 떠났으며, 이후 스웨덴과 그리스, 브라질 등의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업 1000여곳 진출… 한류열풍 한국사람으로서 지금 베트남에 간다면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한창 ‘성장’의 맛을 들인 이 후발 개도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불과 30년전 총부리를 겨눈 적(敵)이었다는 역사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2005년 베트남의 정서는 친(親)한국 일변도다. 하노이 도심 곳곳에서는 ‘SAMSUNG’과 ‘LG’와 같은 한국 기업의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티즈, 매그너스 등의 승용차는 30년전 탱크가 밟고 다녔을 법한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한국 제품이란 사실이 부각돼야 시장 점유율이 올라갈 만큼 베트남에서 한국의 경제적 이미지는 ‘선진국급’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가속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투자액이 40억달러를 넘었고 최근 3년간 투자금액은 타이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KOTRA 하노이 무역관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농업을 뺀 베트남 전체 취업 인구의 3%(35만명)를 고용하고, 베트남 수출액의 1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주’한 한국 기업은 1000개는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섬유·의류·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출발한 우리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90년대 중반부터 철강·통신·사회간접시설을 향해 정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국간 교류 확대가 ‘돈벌이’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1997년 드라마 ‘의가형제’로 시작된 한류 열풍은 이제 완전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베트남의 주요 TV채널에선 저녁 황금시간대에 ‘파리의 연인’과 ‘리멤버’ 등 한국 드라마끼리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뉴스도 경제뿐 아니라 스포츠·문화·사회현상과 같은 시시콜콜한 영역까지 보도돼 서울과의 시차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한국어 배우기’ 붐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해외에선 드물게 한국어 인증시험이 치러지는 곳이 베트남이다. 응시생이 월 200∼300명에 이른다.TV에서 한국어 강좌가 방영되고, 호찌민과 하노이의 주요 7개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개설돼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병력감축· 합참강화 佛式 국방개혁 법제화

    병력감축· 합참강화 佛式 국방개혁 법제화

    국방부가 28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5년 업무보고’의 가장 큰 줄기는 국방 개혁이고, 국방 개혁의 키워드는 ‘법제화’로 요약된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선언적인 정책 결정만으로는 국방개혁 추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날 국방부 국방개혁 법제화와 진급제도 개선, 대민 갈등관리 역량 강화 등이 혁신과제로 보고됐다. 먼저 국방개혁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입법(立法)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재 추진 중인 국방부 본부 문민화와 합동참모본부의 기능 강화 방안을 개혁법안에 담겠다는 의지다. 또 육·해·공군 균형 발전 방안, 군 구조 개선 및 병력 감축(적정 병력 규모)은 물론 현역과 군무원 비율 등까지도 명문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브리핑에서 “그동안 모든 정권이 국방개혁에 매달렸으나, 중도에 중단한 경험을 갖고 있다.”며 “참여정부는 향후 10∼15년을 내다보며, 다음 정부도 이어갈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국방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벤치마킹했다는 프랑스식 국방개혁의 요체도 국민적인 합의에 따라 법을 토대로 국방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지, 프랑스의 국방개혁 내용을 원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독일 등 다른 선진국도 국방개혁을 법에 기초해 추진했다는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프랑스의 국방개혁을 첫 언급한 노 대통령에 대한 국방부의 지나친 눈치보기라는 지적도 있다. 국방부는 올 가을 장성 정기인사에 민간인을 심사위원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역 군인에 대한 진급 심사에 민간인이 나선다면 창군 이래 초유의 일이다. 윤 장관은 “현재는 장성진급 심사 때 구성되는 국방부의 인사제청심사위원회가 모두 현역이지만, 앞으로는 일반직도 들어가도록 제청위 구성에 변화를 주려 한다.”며 “미국에서는 의회까지도 나선다.”고 말했다. 진급 심사에서 떨어진 이들이 법적으로 군사법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각 군에 소청을 제기할 수 있는 통로도 만들 계획이다. 국방부는 이와 함께 한·미 연합 전쟁억제 태세 유지와 최전방 부대의 과학화 감시장비 보강 등을 통해 전방의 군사 대비태세를 확립하고, 한·미 군사동맹 발전을 통해 미래지향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참여정부 기간 내 GDP(국내총생산)의 2.7%까지 연차적으로 확보하고, 전력증강 위주의 국방비 배분원칙도 지켜나가겠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군 과거사 진상규명에 민간인을 참여시키겠다고 밝혔으며, 노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한다.”고 깊은 관심을 보였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육·해·공군 참모총장 민간정책보좌관 둔다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보좌할 민간인 정책보좌관제의 도입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최근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보좌하는 정책보좌관의 신설 문제를 적극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27일 밝혔다. 3군 총장들이 오랜 기간 야전 지휘관으로 있었고, 집무실이 충남 계룡대에 있는 만큼 국회관계 등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사회에 대한 현실 감각이 다소 떨어져 이같은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책보좌관제 도입이 확정될 경우 올 상반기 중에 채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對) 국회 업무에 해박한 민간인 출신이 맡게 될 정책보좌관은 2급 상당 군무원 계약직으로, 임기가 2년인 각군 총장과 임기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 현안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지휘관이 결심을 하는 데 조언해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국방부 본부 문민화 방침이 순수한 군인조직인 각군 본부로까지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한편 국방부는 현역 725명 중 346명(48%)을 올해부터 오는 2009년까지 207명(29%)으로 139명 줄이고 현역 장성 및 장교가 맡아온 32개 보직을 연내 민간인에게 넘기는 현역 편제 및 직제조정 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美 “핵 의심 선적물 압수” 유엔결의 추진

    최근 북한으로부터 일련의 도전을 받고 있는 미국 부시 행정부가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핵물질이나 그 부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과 항공기 선적물을 중간에 압수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이 25일 미 고위관리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점점 더 많은 고위관리들에 의해 구상되고 있는 이 결의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참모들이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결국 북한을 격리, 제재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결의안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한반도 주변 국제수역에서 선박을 나포하고 항공기를 강제 착륙시킬 수 있도록 허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NYT는 이같은 구상이 나오게 된 배경은 지지부진한 6자회담과 북한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이라고 지적했다. 북한과의 협상을 좋아하지 않는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은 이 제재안을 환영하고 있으며, 미 국방부와 딕 체니 부통령의 참모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그러나 미국과 아시아 관리들은 이 결의안의 주요 목적이 중국에 북·중 국경을 단속할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을 주는데 있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식량과 석유를 공급해왔으며, 북·중 국경은 현재 무기와 마약, 위조화폐 등의 이동이 거의 통제되지 않아 북한 경화 수입의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 미 관리들은 북핵 문제를 유엔으로 끌고가더라도 백악관은 6자회담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새 유엔 결의안은 북한이 적대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던 추가 정치·경제 제재를 포함한 몇가지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의안이 채택되면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이 40년 전 쿠바를 상대로 도입했던 봉쇄 조치를 느슨하게 본뜬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다이만부대, 이라크 모래바람을 뚫다

    이라크 평화재건 공수임무를 맡고 있는 공군 다이만부대(제58항공수송단·쿠웨이트 주둔)가 1000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을 달성했다. 공군은 다이만부대 소속 C-130 수송기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아르빌 자이툰부대로 물자를 수송하고 쿠웨이트 알리 알 살렘기지로 무사히 귀환, 비행기록 1000시간을 달성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준환(38) 소령과 김승현(31) 대위가 조종한 C-130 수송기는 부대장인 강대희 준장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 동맹군 지휘관들의 축하 속에 살렘기지 활주로에 안착했다. 강 단장은 “거센 모래바람과 적대세력의 대공 위협 속에서 이뤄낸 값진 결실”이라며 “태극마크를 달고 이라크 평화 재건을 위해 몸 바친 부대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한호 공군참모총장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 “이역만리에서 어려운 작전 환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쾌거는 공군 파병사에 크게 빛날 것”이라고 치하했다. 한편 다이만부대는 지난해 10월 25일 작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연인원 8500여명, 화물 700여t을 공수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와이즈만 전 이스라엘 대통령 사망

    중동평화 정착에 기여한 또 하나의 큰 별이 스러졌다. 독립전쟁 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이끌어냈던 에제르 와이즈만(사진 오른쪽)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노환으로 사망했다.80세. 1924년 북부 항구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난 와이즈만 전 대통령은 16세때 비행기 조종에 입문,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 ‘1호’로 기록됐으며 48년 발발한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58년 공군 사령관에 취임한 와이즈만은 프랑스에서 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는 등 전력 향상에 힘써 67년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공군을 3시간 만에 무력화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참모와 전화할 때 “우리 공군이 중동 최고”라는 말로 시작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69년 와이즈만은 정치인으로 변신, 민족주의 정당인 헤루트당(리쿠드당의 전신)에 입당해 골다 메이어 연정에서 교통장관으로 일했지만 1년 뒤 당이 연정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잠시 사업가의 길을 걷기도 했다. 77년 리쿠드당 선거운동본부장으로 복귀, 노동당의 29년 독주를 무너뜨리고 메나헴 베긴 총리의 집권을 도왔다. 국방장관 자격으로 같은 해 12월 이집트를 극비 방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맺은 개인적 친분을 토대로 이듬해 평화협정 체결을 주도했다. 188㎝ 장신에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유명한 와이즈만 전 대통령은 87년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점령 반대 투쟁인 1차 인티파다(봉기)가 발발하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대화를 촉구하는 등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93년 대통령에 선출돼 98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프랑스 재벌로부터 수천달러를 받은 혐의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2년 뒤 하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美 합참의장에 피터 페이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2일 임기가 만료되는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 후임에 해병대 대장인 피터 페이스(59) 부합참의장을 지명했다. 페이스가 상원의 인준을 받게 되면 해병대 출신으로 사상 첫 합참의장이 된다. 페이스는 지난 2002년 국방차관 재직 당시 한국을 방문, 주한 미군 감축을 처음 거론한 인물이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페이스는 지난 1967년 해군사관학교 졸업과 함께 임관했으며,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85∼87년 서울 연합사령부에서 작전참모부장 보좌관, 지상군 과장으로 근무했다. 이어 주일 미군사령부 부사령관, 남부통합군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으며 의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dawn@seoul.co.kr
  • [사설] 친미·반미논쟁 그만두자

    노무현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 파장이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그제 해명에 나선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했다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섞인 대응으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논란의 발단이 ‘동북아균형자’든 ‘친미주의자’든 분명히 노 대통령으로부터 촉발됐는데, 이를 일부 언론과 학계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친미·반미를 둘러싼 치졸하기 그지없는 논쟁은 국익에 하등의 도움이 될 게 없으며, 국민을 짜증스럽게 만들고 있다.60년간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해 온 우리는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미국의 영향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특정개인의 경우에도 때로는 친미적 성향을, 때로는 반미적 성향을 드러내는데 하물며 국가적으로 논쟁을 벌여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논란거리가 뻔한 의제를 불쑥 던져놓고 논쟁이 격화되자 뒤늦게 “협상력 약화” 운운하면서 논쟁 참여자들을 탓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가 취할 도리는 아니다. 논쟁이 확산될수록 국민의 시름은 더 깊어짐을 왜 모르는가. 더구나 최근 들어 주한미군 참모장이 방위비분담금 불만으로 한국인 근로자 1000명을 줄이겠다고 하고, 미7함대 사령관의 독자적 군사행동 발언 등 미국 쪽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일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견조정 과정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마찰음이며, 한·미 우호에는 변함 없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 “반미면 어떠냐?”라고 한 말 때문에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국민은 일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미국에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당당하게 요구하되, 조용하고 ‘외교적’으로 처리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일이 되는 것이다. 국민뿐 아니라 주변국들도 지켜보고 있다. 소모적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해주는 게 양질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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