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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8군사령부 한국 잔류

    주한 미(美) 8군사령부가 2012년 4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전환과 무관하게 계속 한국에 잔류한다. 군 고위 관계자는 6일 “미국 합참과 육군이 최근 한반도 방위에 대한 상징성 차원에서 8군사령부를 한국에 잔류시켜야 한다는 주한미군의 건의를 수용해 확정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군 일각에서는 미 8군사령부는 전작권이 전환되면 하와이로 이전되고 대신 전방전투지휘소(OCP-K)가 창설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8군사령부가 잔류함에 따라 OCP-K는 창설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주한미군사령부를 대신하는 ‘미 한국사령부(KORCOM)’가 이르면 내년 6월 평택에서 창설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KORCOM은 전작권 전환 이후 한반도에서 유사시 한국 합동참모본부와 공동작전을 펼치는 전투조직이다. 주한미군은 ‘KORCOM(대장)-8군사령부(중장)-미 2사단(소장)’의 지휘 체계를 갖추게 된다. 8군사령부는 KORCOM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신종플루 초비상] 軍 외출·외박·면회 5일부터 금지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해 5일부터 군인들의 외출, 외박, 면회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일부 휴가(2차 휴가)도 잠정 중단된다. 예비군 훈련은 전면 중지된다. 국방부는 4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 주재로 합참의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군생활 중반기의 2차 휴가는 신종플루 단계가 ‘심각’에서 한 단계 떨어질 때까지 잠정 중단된다.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비(非) 군사적 상황으로 전군에 휴가 중지 조치가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6·25전쟁 때에는 휴가가 중단됐다. 군 장병이 부대에 배치된 뒤 처음 나오는 신병휴가(1차 휴가)와 제대하기 전의 말년휴가(3차 휴가), 경조사 및 대학 수능시험 등에 따른 청원 휴가는 현행대로 실시된다, 외출, 외박, 면회는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부대여건을 고려해 부대장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부대에 따라서는 외출, 외박, 면회가 가능한 곳도 있다는 뜻이다. 입소 장정의 경우 입소 전 확진됐거나 의심되는 환자는 입영이 연기된다. 전 병력의 10% 이상이 의심 및 확진환자일 경우 장성급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훈련은 취소된다. 이달 말까지 계획된 예비군 훈련은 잠정 중단된다. 국방부는 내년 훈련대상과 훈련장 수용능력 등을 감안해 훈련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한·미 北급변 작전계획 완성한 듯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한 군의 ‘작전계획 5029’를 완성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1일 “한·미 양국은 북한의 급변사태 유형을 5~6가지로 정리해 이 유형에 따른 작전계획(작계 5029)을 완성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한·미가 정리한 북한의 급변사태 유형은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유출, 북한의 정권교체나 쿠데타 등 내전 상황, 대규모 주민 탈북사태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군당국의 계획은 개념계획(개념계획 5029) 수준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를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해 왔다.”며 “최근 개념계획이 작전계획으로 완성됐다.”고 설명했다.그는 “북한의 급변사태시 한·미 연합군이 불가피하게 개입할 경우 대부분의 작전은 주변국 등을 고려해 한국군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다만 핵시설과 핵무기 제거는 미군이 맡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달 30일 서울 이태원동 캐피탈호텔에서 한·미안보연구회가 주최한 국제회의 초청연설에서 “2012년 4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이전된 이후에도 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WMD를 제거하는 작전과 해병대의 강습상륙 작전은 미군이 주도하기로 최근 합의했다.”고 말했다.한·미는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WMD 또는 그 기술이 테러집단이나 다른 나라로 수출되거나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실전적인 대비계획을 마련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고 최근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했다.”고 전했다.한편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사태 변화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는 유지하고 있지만 작전계획 5029를 완성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합참은 “우리 군은 북한의 사태변화에 따른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 함구령 靑, 부글부글

    청와대가 최근 모든 참모들에게 세종시 등 현안과 관련해 일체의 언급을 자제하라는 사실상의 ‘함구령’을 내렸다.국정의 최종 조율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일선에 나서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은 데다 정제되지 않은 입장이 나갈 경우 자칫 예상하지 못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청와대의 입장은 이동관 홍보수석이나 박선규, 김은혜 공동대변인 등 홍보라인으로 창구를 일원화한다는 방침이다.실제 청와대 참모들은 1일 최근 정치권의 최대 쟁점인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기자들의 문의에 입을 맞춘 듯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공식 입장은 대변인을 통해서 받아 달라.”며 일제히 언급을 피했다. 이는 최근 이동관 수석이 선언한 청와대 홍보라인의 ‘익명발언 중단’ 방침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정부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국정운영에도 혼선이 초래되고 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시각이다.이에 따라 청와대 참모들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세종시와 관련해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다. 청와대는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 수위가 예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판단,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함구령 때문에 의견을 공개적으로, 구체적으로 표출할 수 없지만 대다수의 참모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말로 심정을 대신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MB 2일 시정연설서 세종시 왜!

    MB 2일 시정연설서 세종시 왜!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부인 김윤옥 여사, 청와대 선임행정관 이상 참모 80여명과 함께 청계천을 산책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부터 8시40분까지 청계천 입구에서 고산자교까지 5.4㎞를 걸었다. 산책 도중 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서울시장 재임 당시 청계천 복원 공사 과정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청계천 산책 일정은 전날 밤 늦게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1일 “이 대통령이 30일 주재한 확대비서관 회의에 선임행정관이 처음으로 참여한 데 이어 31일 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청계천을 산책한 것은 국정운영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보폭을 맞추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시 최대 업적인 청계천을 불쑥 찾은 것은 최근 현안에 대한 정국 구상을 가다듬기 위한 것이라는 포석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종의 ‘숨고르기’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세종시 해법’이 고민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을 거듭 강조함에 따라 정부나 청와대가 염두에 둔 시나리오에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반대 때문에 큰 틀에서의 세종시 수정 구상에서 물러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박 전 대표의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회귀’한다면 이 대통령의 위상이 깎이는 것은 물론 앞으로 국정운영에 작지 않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 신념을 포기하는 것을 이 대통령 스스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은 침묵을 유지한 채 여론 추이를 본 뒤 특정 시점에 자신의 구상을 다시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2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독할 ‘201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에도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최근 신종플루가 유행함에 따라 전국 휴교령을 내려야 할지 여부도 시급히 선택해야 할 숙제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주재로 1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를 2일 보고받기로 해 이 대통령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MB의 쓴소리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직원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청와대가 바뀌면 중앙부처가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선 행정기관들도 바뀔 것”이라며 선도적으로 변화할 것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확대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연말이면 예정된 많은 일들이 있을 텐데 관행과 형식을 넘어서 일을 하라.”며 청와대 참모들에게 이같이 주문했다고 박선규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일선 행정기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현안에 대해선 열린 마음으로 치열하게 토론하라.”며 “청와대를 포함해 고위공직자들만 바뀌더라도 대한민국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집권 중반기를 맞아 청와대 직원들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한편 최근 일부 참모들이 관련된 ‘구설’에 대한 우회적 경고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제회복 조짐에 대해 “내년 중국과 인도의 성장이 가파를 것”이라며 “이들 나라의 성장에 우리도 영향을 받을 것인 만큼 세심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열린 확대비서관회의에는 선임행정관들도 참석했다. 이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비서관회의에 선임행정관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대통령이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열리는 확대비서관회의는 비서관급 이상만 참석했다. 이는 집권 2년차 이후의 국정운영 철학을 청와대 전 직원에게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선임행정관은 해당 분야의 실무책임자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구멍뚫린 철책부대 사단장 등 5명 보직해임

    군 당국은 29일 강동림(30)씨가 강원도 고성군의 최전방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한 것과 관련, 육군 22사단장 이하 지휘관 5명을 보직 해임하고 순찰조 등 장병들은 근무 태만을 물어 사법처리키로 했다. 합동참모본부 양철호 작전처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휘책임을 물어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등 5명을 보직해임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밝혔다. 합참은 “지난 26일 오후 3시의 철책 보수작업과 오후 6시 야간근무 투입 전에도 철책에 이상이 없었으며 27일 오전 6시에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강씨는 27일 낮 이전에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강씨가 절단한 철책은 남쪽 철책 하단부에 30㎝ⅹ40㎝ 크기의 타원형으로, 북쪽 철책에는 중간부분에 30㎝ⅹ60㎝ 크기로 완전히 뚫려 있는 상태였다. 1일 20여회씩 철책 이상을 확인하는 해당 부대의 순찰조가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것으로 일부 확인됐다. 군은 27일 오후 3시29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강씨의 월북을 보도하고 이날 오후 5시10분 철책선 절단 흔적이 발견될 때까지 철책 절단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다음달 초 경계태세를 정밀 진단하기로 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요원의 보호를 위해 파병될 경우 불가피한 교전이 있을 수 있고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프간 파병시) 정부 기관의 임무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희생이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면서 “우리에 대한 공격에 방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이날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설과 관련, “상대가 있으므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원 원장은 이어 “남북문제 해결과 북핵 해결을 위해서라면 (정상회담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한나라당 간사인 정진섭 의원과 민주당 간사인 박영선 의원이 전했다. 박 의원은 “전체적으로 원 원장의 답변을 종합하면 ‘아무튼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 원장은 북한에 대한 식량 및 인도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 같은 것은 필요하다.”면서 “북한의 어려운 주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려면 군량미로의 전환이 비교적 힘든 옥수수를 지원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환 김지훈기자 ipsofacto@seoul.co.kr
  • 아프간 증파 힘실리나

    아프간 증파 힘실리나

    ‘죽음의 10월’이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의 가늠자로 떠올랐다. 27일(현지시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미군 8명이 폭탄공격으로 숨지면서 올 10월 미군 사망자가 55명으로 늘어났다. 한달 기준으로 아프간전 개전 8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11월7일 아프간 결선투표를 앞두고 증파 결정을 내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날에도 헬리콥터 충돌로 미군 11명과 미 마약단속국(DEA) 직원 3명이 희생되는 등 전황이 악화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병력을 증파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뉴욕타임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제 논의는 추가로 파병할지 말지가 아니라 주요 거점을 지키는 데 병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로 옮겨갔다고 28일 전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의 참모들은 카불과 칸다하르, 쿤두즈, 샤리프 등 인구가 밀집돼 있는 10개 주요거점에 군대를 집중 배치하는 데 주력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백악관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30일 마이크 뮬런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와 회동을 갖고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ABC방송은 오바마가 오는 11월7일에서 아시아 순방에 들어가는 11일 사이에 발표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개전 이후 미군 사망자가 900명을 넘어서면서 국민들 사이에선 반전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아프간 자불주에 파견돼 있던 미 국방부 해외담당 부서 직원인 매튜 호가 아프간전의 목적과 결과에 의문을 표시, 지난달 사표를 낸 사실이 27일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공개되면서 정부는 더욱 딜레마에 봉착하게 됐다. “나는 아프간에 주둔하는 미국의 전략 목표에 대한 이해와 자신감을 잃었다. 계속되는 미군들의 희생에서 가치를 찾는 데도 실패했다. 미국의 개입은 테러세력의 중동에 기름만 부은 격”이라는 그의 고백은 현재 미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국방정책실장 장광일 중장

    국방정책실장 장광일 중장

    국방부는 27일 장성 110명의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6명이 중장으로, 19명이 소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육군 59명, 해·공군 각각 13명씩 모두 85명이 대령에서 준장으로 별을 달았다.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에는 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인 장광일(육사 31기·56) 중장이 임명됐다. 장 신임 정책실장은 곧 전역할 예정이지만, 전역한 뒤에도 정책실장을 맡게 된다. 육군 참모차장에는 임관빈(육사 32기·56) 중장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는 합참 작전참모부장인 권혁순(육사 34기·55)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해 보임됐다. 이번 인사에서 처음으로 군단장에 진출한 육사 34기 가운데 권오성·권혁순·김요환 소장이 중장 진급과 동시에 군단장에 곧바로 보임됐다. 3사 출신으로는 정경조(11기)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군단장에 보임됐다. 육사 37기 출신인 엄기학 준장 등 14명은 소장으로 진급해 사단장 등으로 진출한다. 육사 40기 출신인 구홍모 대령 등 59명이 준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은 김경식(해사 33기)·임종철(해사 34기) 준장이 각각 소장으로 진급했고, 공군은 최차규(공사 28기)·김정식(공사 29기)·박재복(공사 29기) 준장이 소장으로 각각 승진하는 등 모두 110명이 진급했다. 이번 인사에서는 금오공고 출신으로 1984년 해사와 공사를 각각 수석 졸업한 최양선 대령과 이건완 대령이 나란히 별을 달았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동부전선 철책 민간인에 또 뚫렸다

    동부전선 철책 민간인에 또 뚫렸다

    거듭되는 철책경계 강화 방안에도 불구하고 남측 민간인이 강원 동부전선의 최전방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한 것으로 드러나 군의 최전방 경계태세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남한 주민인 강동림(30)씨가 지난 26일 월북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 전체 전선에 걸쳐 철책을 점검한 결과 강원 고성군 주둔 22사단의 최전방 군사분계선(MDL)에서 철책이 절단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군 당국의 조회 결과, 강씨는 철책 훼손이 드러난 해당부대에서 2001년 9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군 생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측이 방송에서 밝힌 강씨의 신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강씨는 월북 직전 폭력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 전북 진안경찰서는 강씨가 지난달 12일 자신이 일하던 진안군 진안읍의 한 돼지농장에서 주인을 둔기로 때리고 달아났다는 신고가 들어와 9월24일 강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추적 중이었다.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북한군이나 간첩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3중 철책이 설치돼 있음에도 철책이 뚫린 것은 최전방 경계에 허점이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군이 2004~2005년 연이은 철책 월경 사건 이후 철책 근무태세 강화책을 마련, 시행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군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군은 2004년 10월 한 민간인이 강원도 철원군 전방관측소(GOP) 3중 철책을 절단해 월북하고, 이듬해 6월에는 북한군 병사 1명이 철원군 대마리 인근 최전방 철책을 뚫고 넘어온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철책 경계태세 강화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군은 이들 사건 이후 철책 경계의 사각지대를 없애도록 전 GOP 철책에 과학화 감시장비(광학센서가 부착된 그물망)를 설치키로 하고 5사단을 선정해 시험운용하기도 했다. 비록 강씨가 해당부대에서 근무한 탓에 부근 정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민간인이 민통선을 넘어 철책까지 수㎞를 접근하는 동안 군이 식별해 저지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군 당국은 최전방 철책이 절단된 사실을 해당부대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엄중한 지휘책임을 물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자진 월북자 대부분을 조사한 뒤 돌려보내는 방식을 취했으나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월북 하루 만에 언론매체를 통해 신속히 공개했다는 점에서 송환보다는 북측 체류를 의도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보호병력 300명 아프간 파병 검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6일 아프가니스탄 지원문제와 관련, “전투병 파병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자체 지역재건팀(PRT) 요원을 보호할 수 있는 경찰이나 병력을 파견하는 문제 등 다양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전투병이 아닌 경계병 파병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해석되는 말이다.유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병원 직업훈련, 경찰 훈련을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하에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 종결단계에 와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유 장관은 “아프간 재건을 위해 최소한 130명 정도의 민간 전문요원을 파견해 운영할 생각”이라면서 “정부가 곧 국회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현재 아프간에는 24명의 PRT팀이 파견돼 있다. PRT 요원이 현재의 24명에서 130명 수준으로 늘면 활동내역도 기존의 의료활동 중심에서 벗어나 직업훈련, 건물신축, 농업지원, 선거 및 치안업무 지원 등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유 장관은 PRT 지원지역에 대해 “바그람을 베이스로 해서 인근지역으로 확대하는 개념”이라며 “PRT 외곽경계는 보통 보내는 국가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보호병력’의 형태에 대해 “경비인력을 군으로 할 것인지, 경찰로 할 것인지, 민간인으로 할 것인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합동참모본부는 아프간 PRT 경계를 위해 개인화기로 무장한 300여명 수준의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의 고위 관계자는 “이 병력은 전투병이 아니라 개인화기로 무장한 ‘보호병력’ 개념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부대 병력을 보낼지는 아직 지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이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남북 비밀접촉설과 관련, “남측의 접촉창구는 C목사이고, 북측 접촉 창구는 김정일 인척인 K씨라는 말이 있다.”면서 확인을 요청하자, 유 장관은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주현진 안동환기자 jhj@seoul.co.kr
  • [서울광장]안중근! 우린 아직 그를 모른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안중근! 우린 아직 그를 모른다/김종면 논설위원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당시 이런 글을 안 의사에게 바쳤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나리.” 그런가 하면 저우언라이 전 총리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벌인 항일투쟁은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며 안 의사를 높이 평가했다. 세계의 시선은 물론 그와 같지 않았다. 일본은 ‘야만적인 테러’로 봤고 러시아는 ‘경거망동’으로 규정했으며 미국은 ‘강압에 대한 복수’로 간주했다. 테러리스트의 범주에서 접근한 것이다. 하얼빈 의거를 공동의 적을 응징한 사건으로 본 중국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안중근을 민족주의적인 애국 영웅의 표상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안중근 인식은 어떤가. 최근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안중근은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왔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를 조선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영웅 정도로 기억한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적대로 이는 “중대한 민족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주창한 혁명적 사상가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요,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경세가였다. 하얼빈 의거 100주년, 나라 안팎에 안중근 동상이 세워지고 유묵(遺墨)전이 열리는 등 전례 없이 부산하다. 안중근 재평가 작업도 활발하다. 키워드는 ‘동양평화론’이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미완의 논설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공동은행과 화폐를 사용하는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통해 영구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구체적 해법을 담고 있다. 작금의 동아시아공동체론과도 가닥이 통할 만큼 선구적인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리 학계의 안중근 연구는 90년대 중반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변변한 평전 하나 없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에서 근대국가를 설계한 영웅으로 1000엔권 화폐인물에 올랐고 출간된 전기만도 수십종에 이르는 것과 대비된다. 기억하고 보존하기에 늦어 버린 역사란 없다. 이제라도 ‘사상가’ 안중근을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원로작가는 요즘 학교에서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말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입시교육에 치여 애국의 가치를 일깨우는 국민교육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공무원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외면하고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게 현실이고 보면 그의 말에 일리가 없지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안중근 유묵이야말로 더없이 맞춤한 국민정신교육 텍스트란 생각이 든다. 안중근은 사형언도를 받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40여일 동안 200여점의 묵서를 썼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50여종 된다. 안중근은 유묵으로 말한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누가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의를 먼저 생각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을 바칠 수 있으리오. 안중근 유묵에 담긴 의미만 제대로 새겨도 우리는 금강처럼 단단한 정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대한국인(大韓國人)의 영예를 누릴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전 국민 안중근유묵따라배우기 운동을 제안한다. 무명지를 끊으며 대한독립의 의지를 불태운 도저한 의인의 정신, 죽어서도 조국 땅에 묻히지 못한 100년의 한(恨)이 지금 안중근 열(熱)로 달아오르고 있다. 식지 말아야 한다. 저마다의 가슴에 ‘안중근 정신’의 성소(聖所)를 마련해야 한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G2 이번엔 군사대화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의 군사분야 2인자인 쉬차이허우(徐才厚)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중·미 간 군사교류의 폭이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24일 출국한 쉬 부주석은 오는 11월3일까지 미국에 머물며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등과 ‘긴밀한 전략대화’를 나누고 미군 주요 시설을 둘러본다. 올해 들어 미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군사분야 최고위급 인사라는 점에서 쉬 부주석의 이번 방미 행보에 쏠리는 관심이 적지 않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다음달 중순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에 중·미 간 군사분야 교류협력의 구체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쉬 부주석의 이번 방미에는 마샤오톈(馬曉天) 중국 인민해방군 부참모장, 자오커스(趙克石) 난징군구 사령관, 전략핵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의 인팡룽(殷方龍) 정치부 주임 등이 수행 중이다. 미국 측은 일단 적극적 교류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쉬 부주석 등 중국 대표단에 처음으로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전략사령부와 태평양함대사령부, 육·해·공군 사령부, 해군사관학교 등 주요 군사기지를 공개한다. 중국 군사과학원의 군사평론가인 뤄위안(羅援) 소장은 “미국이 쉬 부주석에게 전략사령부를 공개하는 것은 군사분야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측도 군사투명도 제고 등 미국 측 요구에 대해 최대한 성의를 보여주겠다는 자세다. 중국 국방부의 첸리화(錢利華) 대변인은 지난 23일 쉬 부주석 방미 일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중국은 중·미 군사투명도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양국 군사관계 증진을 위해 성의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2007년 게이츠 장관의 방중을 계기로 군사 분야에서 전략적 대화를 시작했으나 미국의 타이완에 대한 무기판매와 남중국해 정찰, 중국의 대대적인 군사력 확충 등으로 대화는 지속되지 못했다. 더욱이 중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이 타이완에 65억달러(약 7조 7000억원) 상당의 무기 판매를 제안하자 이에 반발해 수개월 동안 미국과의 군사교류를 중단했다가 지난 2월 교류 재개에 합의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쉬 부주석이 이번 방중에서 미국 측에 타이완에 대한 무기판매 시도 중지 등을 강력 요청할 계획이라고 26일 보도했다. 중국 측은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첨단무기 수출이 중·미 양국 군사관계의 악화를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해 왔다. stinger@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보수단체, ‘희망과 대안’ 창립식 방해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 종교계 등 사회 주요 인사들이 모인 ‘희망과 대안’이 19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개최한 창립총회에 대한민국 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 50여명이 갑자기 단상으로 몰려들어 항의하는 바람에 행사가 도중에 취소됐다. 그러나 이 단체는 앞서 비공개로 창립총회를 마쳐 공식 출범했다.‘희망과 대안’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안 후보를 찾아 지원하는 형식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 사이 간극을 좁히는 데 나서기로 했다.이 단체 공동운영위원장인 박원순 변호사는 이날 대통령과 함께 민생·시국현안을 논의하는 ‘국민통합·미래발전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원고로 대체한 창립총회 강연문에서 “한국 사회가 전 분야에서 퇴행을 거듭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대통령과 시민사회가 함께 민생시국 상황을 논의하는 자리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7가지 전략인 ‘시무7책’을 내놓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실용정부의 비전과 정책을 되살리고 진실을 은폐하는 참모진을 주변에서 물리쳐 달라.”고 주문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靑 “잘나갈때 더 조심”

    靑 “잘나갈때 더 조심”

    지난 12일 청와대 비서동 강당. 이동우 메시지기획비서관이 행정관들을 대상으로 국정현안 과제 교육을 했다.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을 분석하며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주제의 토론을 이끌었다. 이 비서관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정홍보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참모들의 정책 추진 결과에 따라 대통령의 지지율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이 대통령의 높아진 지지율에 취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전언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지지도는 ‘허니문’이라고 불리는 취임 초에 정점을 달리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떨어져 왔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의 파워도 떨어지는 데다 측근과 친인척들의 비리가 터진 게 지지율 하락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2월25일 취임한 이 대통령은 50%대의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 초의 지지율로는 그리 높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입장을 밝힌 뒤 참모들의 대응 미숙에 따라 지지율은 급락했다. 촛불정국을 거치며 취임 3개월 만에 22.4%까지 떨어졌다. 올해 봄까지 20~30% 초반대의 박스권에 머물다가 중반부터 친서민 행보에 나서면서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재산기부와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사실상 타결 직후 대통령실이 7월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5.9%를 기록했다. 8월 쌍용자동차 사태가 비교적 원만히 해결된 데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을 치른 뒤인 8월23일 조사에서는 45.5%로 치솟았다. 중도실용을 내세운 이 대통령이 정운찬 국무총리를 내정한 직후인 지난달 13일엔 53.8%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50%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 당시 75.1%의 높은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친형인 노건평씨 문제와 측근 비리 등이 터지면서 2004년 1월에는 23.6%까지 급락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주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면서 반사이익을 봤으나 지지율 상승세는 지속되지 않았다.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에는 지지율이 62.5%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6개월 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31.7%로 떨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까지 20~30%대에 머물렀다. ‘탄핵’이라는 지지율 반전의 계기는 있었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고 만 셈이다. 여론조사 관계자는 18일 “이 대통령은 촛불정국 이후 1년 동안 저평가를 받았으나 최근 친서민 행보로 반등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국정지지도의 고공행진 여부는 조정국면을 맞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장관부터 섬김·봉사정신 가져야”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우리 공직자들은 섬기는 자세로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중도실용을 내건 것도 이같은 인식과 일치한다.”며 “장관부터 솔선수범해 우리 정부 임기가 만료될 때가지 철저히 섬김과 봉사의 정신으로 임해달라.”고 말했다고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이는 이 대통령이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청와대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은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며 위계질서를 어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만큼 엄중하게 행정적 징계조치를 취하라.”며 청와대 참모의 기강 확립을 강조한 대목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6일 사회정책수석실 소속 한 비서관이 경제수석실 산하의 비서관실을 찾아 소란을 피운 것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윤진식 정책실장이 이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다는 말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계속되는 친서민행보 등으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은 50%대 중반 수준으로 상승하는 등 지난해 촛불위기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발빠르게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의 행동을 경고한 것은 공직자들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계속 터질 경우 국정운영의 상승세가 꺾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 비서관과 행정관가 청와대의 위상을 깎아먹으면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국정모멘텀에 다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으로 해석된다. ‘오만한 청와대’, ‘말썽 많은 청와대’의 이미지가 확산되면 향후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공직자 기강잡기에 나섰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중국 국민과 우리 국민 간에 호의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달라.”며 “중국 정상과 회담을 가지면서 한·중 관계가 외교적으로는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 민간차원에서는 인터넷상의 여론 등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만큼 우리 정부는 위기관리 체제를 당분간 지속해야 할 것”이라며 “공직자들은 긴장을 풀지 말고 경제상황을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사설] 공직기강·청와대 주변관리 모질어야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청와대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은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그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공직기강을 바로잡으라고 당부하며 했다는 말이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민정수석도 아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같이 말해야 하는 청와대의 이런 모습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동료 비서관을 찾아가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상관인 윤진식 정책실장이 말리는데도 계속 소란을 피운 비서관이 있는가 하면 어떤 행정관은 이동통신사들에 250억원의 출연금을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들의 처신을 보면서 공직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 문제는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 9월과 11월, 올 4월 등 이 대통령이 외국 순방에 나선 동안 국무총리실 감찰에 적발된 공직기강 위반 사례는 무려 95건에 이른다. 그나마 일부 부처를 감찰한 결과다. 지난달 임진강 수해 역시 당직근무를 소홀히 한 기강해이가 피해를 키웠다. 최전방에 선 대통령이 지하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하고 시장을 돌며 친서민 행보로 점수를 벌어놔 봐야 후방의 몇몇 참모와 공무원들이 이렇듯 까먹는대서야 국민 신뢰는 요원할 뿐이다. 50% 선을 회복한 국정지지율에 취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민의 절반가량이 자신들을 여전히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바른 시각일 것이다. 공직 기강과 함께 대통령 주변 인사 관리에 청와대는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특히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효성그룹 특혜 시비와 봐주기 수사 논란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야당의 정치공세라면 더욱 철저한 사실확인으로 의혹을 풀어야 한다. 국민권익위원장에 최측근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앉힌 이 대통령의 권력비리 근절 의지를 공직사회는 흘려 보지 말아야 한다.
  • 전쟁에 관한 불멸의 고전 첫 완역판

    19세기의 유명한 군사사상가였던 골츠는 전쟁론을 남긴 클라우제비츠의 업적을 이렇게 기렸다. “클라우제비츠 이후에 전쟁을 논하려는 군사이론가는 마치 괴테 이후에 파우스트를 쓰거나 셰익스피어 이후에 햄릿을 쓰려는 작가처럼 모험을 무릅써야 한다.” 이렇듯 전쟁에 관한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Vom Kriege)’(김만수 옮김, 갈무리 펴냄) 3권이 4년여 만에 완역, 출간됐다. 미국의 군사전략가인 브로디가 “단지 가장 위대한 책이 아니라 전쟁에 관한 한 진정으로 위대한 유일한 책”이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다. 갓 12살에 입대해 13살에 첫 전투를 겪었으며, 15세에 소위로 임관해 참모장과 군사학교장을 역임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동양의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룬다. 이 저술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자부심은 대단해 “나는 자명하고, 몇 백번이나 언급되어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평범한 것은 모두 피하려고 했다. 2∼3년 후에 잊혀질 책을 쓰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책은 ▲전쟁의 본질 ▲전쟁이론 ▲전략 일반 ▲전투(1권) ▲전투력 ▲방어(2권) ▲공격 ▲전쟁계획(3권) 등을 담고 있다.1∼3권 각 2만원·2만 5000원·1만 5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北, 핵시설 복원 마무리 단계”

    북한의 핵시설 복원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부의 한 소식통은 6일 “북한이 올해 초부터 영변 등에 있는 핵시설 복원 작업을 진행해왔다.”면서 “최근 복원 작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징후들이 포착됐다.”고 말했다.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지난 4월14일 불능화 작업이 진행 중이던 핵시설을 원상복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뒤 핵시설 10여곳을 집중적으로 감시, 이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그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가 5일 국정감사 비공개 보고를 통해 북한이 핵시설을 복원 중이라는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안다.”면서 “복원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징후에 대해서는 ‘기밀’을 이유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북한은 4월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자국의 로켓 발사를 유엔 결의 1718호 위반으로 규정,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한 것에 반발했다. 북한은 성명을 통해 “영변 핵시설에서 나온 폐연료봉들을 깨끗이 재처리할 것”이라면서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평안북도 철산군에 건설 중인 미사일기지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발사된 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도 설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5월 동창리로 이송됐던 장거리 미사일은 특정 장소로 옮겨진 것으로 안다.”면서 “북한은 최근 동창리 기지에서 로켓 엔진 연소 실험을 수차례 실시했으며 지상에 나타난 그을음 흔적으로 미뤄 장거리 미사일 엔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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