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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민낯의 위인’을 만나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 대한 전기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그를 지켜본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적었다.  “명성을 얻기 전 로댕은 고독했다. 그리고 나서 찾아온 명성은 아마도 그를 더 고독하게 했을 것이다. 명성이란 결국 하나의 새로운 이름 주위로 몰려드는 모든 오해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로댕에 대한 많은 오해들, 그것들을 해명하는 것은 길고도 힘든 과제이리라.”(‘릴케의 로댕’, 미술문화 펴냄)  릴케의 말처럼 이른바 ‘위인’들의 삶은 신화적으로 포장되기 마련이다. 시간이 쌓일수록 인물의 양면성은 퇴색되고 공적만 부각되는 게 다반사다. 미국의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위대해진다는 것은 곧 오해를 받는다는 뜻이다”라고 비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에 완간된 돌베개의 만화 인물 평전 ‘세상을 바꾼 큰 걸음’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 보기 위한 시도다. 인물의 업적과 성취만을 찬탄하는 대신 잘못과 실패를 공평하게 설명한다. 2011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넬슨 만델라, 에이브러햄 링컨, 지난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루쉰을 소개하는 데 이어 이번에는 찰리 채플린(임창호 지음)과 찰스 다윈(전미화·권용찬 지음), 레이첼 카슨(김성훈 지음), 윈스턴 처칠(김성재 지음)을 내놓았다.  이중 처칠 편은 인물의 공과를 균형감 있게 드러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뛰어난 정치적 통찰력으로 1,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영국을 구한 그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한편 여성 투표권 부여와 노동자 세력화에 적대적이었던 과오를 설명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인도의 독립에 반대했던 제국주의자의 면모와 터키와의 전쟁 중 무리한 군사 작전으로 대패한 수장의 모습도 담았다.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충분히 곁들이는 것도 장점이다. DDT 살충제의 발명 과정을 통해 카슨이 ‘침묵의 봄’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거나 맬서스의 인구론이 어떻게 다윈의 진화론으로 이어졌는지 보여주는 식이다.  정확한 고증을 위해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다윈 편)와 오창길 한국환경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장(카슨 편) 등 전문가가 감수에 참여했다. 중간 중간 ‘돋보기’ 코너를 통해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사진의 발명과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무성영화의 전성기, 경제 대공황 등을 설명한 채플린 편이 좋은 예다. 만화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글자가 많다. 아동보다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에게 알맞다. 1만 2000원.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10년전 납치된 美 여성 3명 구출… 용의자는 이웃 3형제

    10년전 납치된 美 여성 3명 구출… 용의자는 이웃 3형제

    “도와주세요. 저는 납치됐고 10년간 실종 상태였습니다.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어요.” 6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경찰에 한 여성의 다급한 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2003년 패스트푸드 업체인 버거킹에서 일을 마친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하다가 실종된 어맨다 베리(왼쪽·26)였다. 베리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납치범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화를 걸었다면서 그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을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클리블랜드 경찰은 이날 베리와 함께 지난 10년간 실종 상태였던 지나 디지저스(오른쪽·23)와 미셸 나이트(32)가 베리가 감금됐던 실종 장소 인근 주택에서 함께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여성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실종 당시 14세였던 디지저스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에 사라졌다. 2002년 당시 21세였던 나이트 역시 친척 집을 방문했다가 나온 뒤 소식이 끊겼다. 베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이웃 주민인 찰스 램지다. 램지는 베리가 집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다른 이웃들과 함께 현관문을 발로 차서 연 뒤 그녀와 여자아이 한 명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켰다. 베리는 램지의 집에서 911에 전화를 걸었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납치범의 집에 있던 나머지 2명을 구조했다. 경찰은 베리와 함께 구출된 여자아이는 6살로, 베리가 낳은 딸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던 히스패닉계 남성 아리엘 카스트로(52)와 함께 그의 50대 형제 두 명을 납치 용의자로 체포했다. 카스트로의 집 인근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삼촌 줄리오 카스트로는 자신의 조카가 한 공립학교의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으며, 평소 성격이 좋았던 그가 이런 일을 벌인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프랭크 잭슨 클리블랜드 시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살아서 돌아와 준 이들에게 고맙다”면서 “사건과 관련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0년전 납치된 여성3명…범인은 이웃 3형제였다

    10년전 납치된 여성3명…범인은 이웃 3형제였다

    “빨리 도와주세요. 저는 납치됐고 10년간 실종 상태였습니다. 납치범이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경찰에 한 여성의 다급한 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2003년 패스트푸드 업체인 버거킹에서 일을 마친 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하다가 실종된 어맨다 베리(왼쪽·26)였다. 베리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납치범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화를 걸었다면서 그가 돌아오기 전에 자신을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클리블랜드 경찰은 이날 베리와 함께 지난 10년간 실종 상태였던 지나 디지저스(오른쪽·23)와 미셸 나이트(32)가 자신들이 실종된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한 주택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여성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실종 당시 14세였던 디지저스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에 사라졌다. 2002년 당시 21세였던 나이트 역시 친척 집을 방문했다가 나온 뒤 소식이 끊겼다. 베리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이웃 주민인 찰스 램지였다. 램지는 베리가 집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다른 이웃들과 함께 현관문을 발로 차서 연 뒤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켰다. 램지는 인터뷰에서 긴급 전화를 받고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집 안에 세 명이 더 있다고 한 베리의 말을 듣고 납치범의 집에 있던 나머지 3명을 탈출시켰다고 ABC방송이 보도했다. 경찰은 이 집에서 여성들과 함께 6세 아이도 발견했다고만 말했을 뿐, 아이의 신원을 비롯해 구조된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던 히스패닉계 남성 아리엘 카스트로(52)와 함께 그의 형제 두 명을 납치 용의자로 체포했다. 카스트로의 집 인근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삼촌 줄리오 카스트로는 자신의 조카가 한 공립학교의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으며, 평소 성격이 좋았던 그가 이런 일을 벌인 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프랭크 잭슨 클리블랜드 시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살아서 돌아와 준 이들에게 고맙다”면서 “사건과 관련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美는 北정권 붕괴 원치 않아… 평양의 대화신호 기다리는 중”

    “美는 北정권 붕괴 원치 않아… 평양의 대화신호 기다리는 중”

    “이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차례다. 그가 상호 불신과 적대적 구도를 전환하고 싶다는 분명한 제스처를 보여야 한다. 워싱턴은 평양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국제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하원 외교자문위원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교수는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어린 지도자’ 이미지를 벗기 위해 자꾸 적대적 방향으로 국면을 끌고 가려고 하는데 이런 의도를 포기하도록 한·미·중 3국이 다자 체제로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쿱찬 교수는 ‘미국 시대의 종말’과 ‘적이 친구가 되는 법’이라는 저서를 펴낸 정치학자로,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을 지내는 등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인사로 평가된다. 다음은 쿱찬 교수와의 일문일답. →북한 비핵화를 위한 묘수는. -당장 효과가 없다고 해도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은 항시 열어둬야 한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대화로 해결됐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냉정한 시각도 유지해야 한다. 북한과 실효성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은 제재 조치와 압박을 통해 북한 스스로 도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은 이란과 비슷하다. 역설적으로 북한 상황이 더 악화되어야 도발보다는 협상이 더 낫다고 북한 정권이 판단할 수 있다. →미 행정부 내 북한 정권 붕괴를 목표로 한 논의가 있다고 보는가. -미 행정부가 북한 정권의 붕괴를 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대량 난민 사태뿐 아니라 북한군과 북한 내 핵물질에 대한 통제 상실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이 북한 정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그 정권이 기능하는 상황이, 붕괴보다는 리스크가 더 적다는 판단이 있다.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문제 정권을 무너뜨리고 교체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가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인식이 새롭게 바뀌었다. →워싱턴의 대북 대화파의 입지가 좁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이 도발을 통해 보상을 얻어내는 방식을 더 이상 작동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강하다. 그럼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적대국과의 대화 정책을 견지하는 진보적 성향의 지도자다. 시리아, 미얀마, 쿠바와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추진하는 만큼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 →북한과의 대화 전략은. -가장 중요한 단기적 목표는 방향 전환이다. 한·미 양국과 6자회담 틀을 볼 때 우리 쪽 진영은 방향 전환의 준비가 돼 있다. 결국 북한이 화답하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북한은 과거 여러 차례 합의 내용을 파기하며 대화를 후퇴시켰다. 김정은이 어린 지도자 이미지를 벗기 위해 더욱 적대적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건 유효하지 않다는 걸 한·미·중 3국이 확인시켜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공조 강화는 양국에도 이익이지만 동북아 안정에도 꼭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를 어떻게 평가하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본다. 문제는 신뢰는 말로 구축하는 게 아니라 액션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뢰는 수많은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프로세스의 결과물’이다. 남북 간 접촉 기회의 확대뿐 아니라 동맹국 간에도 북한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한·미 양국은 대북 경제 지원과 불가침 약속 등의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현재 없다. 우선 한반도의 뜨거워진 온도를 낮춰야 한다. →개성공단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를 평가한다면. -남북한을 연결하던 하나의 끈이 양쪽에서 당기는 바람에 끊어진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 최근 수주일 동안 긴박한 상황 속에서 긴장이 고조됐던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의 조치는 현명했다. 미국 정부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공장이 그 자리에 있는 만큼 공단이 재개돼야 한다. 글 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화마당] 장애예술인들에게도 아낌없는 지원을/임형주 팝페라테너

    [문화마당] 장애예술인들에게도 아낌없는 지원을/임형주 팝페라테너

    최근 제33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재능 기부’로 축하공연을 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한 케이블채널의 오디션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 시각장애 소녀가수 이아름양도 있었다. 아름양과는 이전에도 자선행사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어 무대 뒤에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인사를 나누었다. 시각장애 아동·청소년으로 구성된 한빛예술단 단원들과 아름양은 이날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했다. 다음 스케줄이 있었지만 이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무대 뒤에 남았다. 놀라운 재능을 펼치고 박수갈채를 받는 아이들이 참 기특하고 자랑스러워 한참을 서서 박수를 보냈다. 지난 4월은 장애인의 달이었다. 장애인 관련 행사들이 줄을 이었고, 출연 요청과 재능 기부 제의도 많았다. 며칠 전에는 시각장애인 연주단체인 ‘하트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내레이션을 넣는 재능 기부를 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많은 음악인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도 섰다. 120여년 카네기홀 역사상 시각장애인 단체가 공연한 것은 처음이었다. 큰 성과를 올렸지만, 경제 불황과 맞물려 단체를 향한 대기업 지원이 끊겼다. 국가 지원도 상당부분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생계를 위해 연주자들은 안마사로 복귀하거나 다른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사연이었다. 내레이션을 하면서 안타까움이 밀려왔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공연이나 재능 기부 행사를 위해 곳곳을 다니다 보면 뛰어난 실력과 열정을 안은 젊은 장애음악가들을 많이 만난다. 그러나 주류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이는 드물다. 하모니카연주자 전제덕씨를 퍼뜩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엔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조명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하느냐보다 어떤 유형의 장애를 가지고 있느냐에 더 많은 관심과 흥미를 쏟는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음악사에 큰 공적을 남겼다. 레이 찰스는 정통 블루스와 가스펠을 접목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그래미상을 13차례나 받은 음악인이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허물며 ‘팝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한 이탈리아의 국보급 테너로 불린다. 베토벤은 청각 장애를, 레이 찰스와 안드레아 보첼리는 시각 장애를 갖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음악을 장애인의 음악이라 구분 짓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 예술인들을 바라보면서, 척박한 상황에서 성과를 냈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장애를 가진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했을지,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는 않는지 등의 고민은 뒷전이다. 반짝 관심을 갖고는 금세 잊는다. 예술가 한 명이 탄생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장애가 있다면 그 시간과 노력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애 예술가나 예술단체에 대한 복지법은 걸음마 단계이고, 정부부처들은 소관업무 분류를 두고 오락가락한다. 때 되면 나오는 홍보성 차원의 ‘일회성’이나 ‘생색내기’ 지원이 대부분이다. 장애 예술가들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 줄 현실적 제도와 후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장애인의 달은 지났지만 장애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아낌없는 지지는 끝나선 안 된다.
  • TV 강연쇼 전성시대 ‘빛과 그림자’

    TV 강연쇼 전성시대 ‘빛과 그림자’

    ‘취업’, ‘퇴직’, ‘실업’, ‘투병’, ‘폐업’ 등 혼란스러운 시대에 시청자들이 TV 속 강연 프로그램에 푹 빠져들고 있다. 강연을 통해 위로를 받고 힘을 내며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입소문이 난 강연은 온라인의 ‘다시보기’를 통해 사람들의 손길이 꾸준히 미친다. TV 속 강연이 매력을 발하는 동안 한편에선 스타 강사 의존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프로그램 자체가 흔들리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끈 강연 프로그램으로는 지난해 5월 첫선을 보인 KBS 1TV의 ‘강연 100℃’가 꼽힌다. 일요일 밤마다 3명의 강연자가 나와 담담하게 ‘인생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한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평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로 출연시켜 인생철학을 논한다. 보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다. 그간 금융계 최고경영자 출신 택시기사, 절단장애를 극복한 동양화가, 호떡 장사로 재기에 성공한 전 중소기업 사장 등이 출연했다. KBS 측은 “물이 100도가 되면 저절로 끓는 것처럼 뜨거운 인생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시청률은 매회 10% 가까이 나온다. 올 초에는 스마트폰 전용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됐고,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까지 나왔다. KBS 내에서 방송 프로그램 전용 앱이 나온 것은 KBS 2TV의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를 제외하면 ‘강연 100℃’가 처음이다. KBS 2TV에서 토요일 밤마다 방영되는 ‘이야기쇼 두드림’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주 한 명의 강연자가 나와 자신이 깨달은 인생철학을 전한다. 자니윤, 송창식, 김장훈, 구자철 등 유명인이 강사로 나서는 것이 차이점이다. 또 강연 직후 4명의 MC와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로 전환된다. SBS에선 ‘지식나눔 콘서트-아이러브 인’이 눈에 띈다. 지난해 1~6월 ‘시즌1’과 9~12월의 ‘시즌2’에선 김난도·김정운·마이클 샌델 교수와 혜민 스님, 차동엽 신부 등이 강사로 나섰다. 지난 3월 말 재개된 ‘시즌3’에선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가 처음 출연했다. 5월 초부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예일대 교수인 셸리 케이건 등이 나온다. 그런데 방송가에 강연쇼 바람을 몰고 온 것은 원래 케이블 채널이었다. 적은 자본으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내야 하는 제작진에게 강연쇼만큼 귀가 솔깃한 아이템도 드물다. CJ계열의 tvN이 2011년 6월 선보인 ‘스타특강쇼’가 원조격. 금요일 밤마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이 출연해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최고 시청률 3%를 넘겨 케이블에선 보기 드문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그간 하버드대 출신의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준석, 연예계 원조 마당발 박경림, 21살에 세계 1등 모델이 된 강승현 등이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아류를 퍼뜨렸다. MBC 에브리원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강의’와 XTM의 ‘남자의 기술’이 영향을 받았다. 이 중 지난달 첫 방송을 한 ‘남자의 기술’은 기존 강연의 형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와인으로 품격을 높이는 기술’ ‘고품격 자동차 활용법’ ‘16년간 여자 900명을 만난 연애비법’까지 남자들만의 삶의 기술을 털어놓는다. 강연 틈틈이 칵테일을 곁들인 댄스파티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강연쇼’가 늘 감동과 재미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강사 의존증이 강한 일부 프로그램에선 경력이나 학력, 발언 등이 문제가 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잘나가던 스타강사인 김미경이 석사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여 자신의 이름을 딴 tvN의 ‘김미경쇼’에서 하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스물아홉 살에 강사의 세계에 뛰어들어 20년 만에 한 번 강의에 3000만원을 받는 베테랑 강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김용옥 교수나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 등과 달리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자기계발 분야의 이야기꾼이라는 데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언니의 독설’로 불린 강한 화법은 기업 특강에선 통했지만, 공공재 성격이 강한 방송 프로그램에선 시빗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강연에 나서는 강사들이 자신의 기업이나 경력을 지나치게 홍보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화순적벽·화엄사도 지척인데

    화순적벽·화엄사도 지척인데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오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6개월 동안 전남 순천의 박람회장과 순천만 일대에서 열린다. 순천은 ‘자체 발광’의 여행지이지만, 주변에 ‘국보급’ 여행지들을 매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박람회장을 오가는 길에 둘러볼 수 있는 명소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순천은 남도의 교통 요지다. 시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만 네 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웬만한 명소들은 대부분 한 시간 안팎에 닿을 수 있다. 먼저 호남고속도로 방향으로는 화순과 곡성이 있다. 곡성에선 5월 24일~6월 2일 장미축제가 열린다. 세계 유수 품종의 장미들이 전시되는 자리다. 행사장은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앞서 5월 1일부터는 ‘섬진강 기차마을 대축제’도 열린다. 이맘때라면 섬진강 철길 따라 조성된 20리 철쭉길이 온통 진분홍으로 물들 터다. 화순 쪽에서는 신록이 아름다운 둔동마을, 중국의 적벽보다 빼어난 ‘화순 적벽’ 등이 계절 여행지로 손꼽힌다. 완주~순천 고속도로 쪽으로는 ‘대한민국 1호 관광특구’인 구례가 지척이다. 산수유꽃이나 벚꽃 등은 지고 없겠으나, 그 자리를 배꽃과 자운영 등이 대신한다. 신록에 물든 ‘절집 투어’도 좋겠다. 화엄사가 앞줄에 서고, 구례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사성암도 빼어나다. 지리산 깊은 골에 파묻힌 천은사도 좋다. 남해고속도로 쪽으로는 하동과 광양이 가깝다. 하동에선 5월 17∼19일 화개면 운수리 차 시배지 일대에서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 광양 쪽에서는 섬진강 매화마을이 첫손에 꼽힌다. 매화꽃은 절정을 넘겼지만, 섬진강에 기댄 마을의 정취는 여전하다. 구례와 광양, 하동 등을 품고 흐르는 섬진강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테마 여행이 된다. 순천 남쪽으로는 최근 남해고속도로의 지선인 영암~순천 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이 덕에 여수 오동도와 보성 차밭 등 남도의 명소로 여행 목적지를 확대시킬 수 있게 됐다. ‘지구의 정원, 순천만’을 주제로 개최되는 정원박람회에는 실내 정원 포함, 모두 83개 정원이 조성된다. 특히 일본과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23개국에서 조성한 전통 정원들에 관람객들의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각 국의 정원 디자이너들이 순천시에 머물며 조성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조성한 정원도 ‘내공’이 만만치 않다. 예컨대 순천시 ‘호수정원’의 경우 영국의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찰스 쟁스가 순천의 지형을 본떠 디자인한 것으로, 박람회의 핵심 볼거리로 꼽힌다. ‘갯지렁이 다니는 길’은 정원 예술가들에게 꿈의 무대로 꼽히는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2년 연속 입상한 황지해 작가가 디자인한 ‘작품’이자 관람로다. 정원 문화를 보다 깊게 이해하려면 80여명의 정원해설사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입장권 가격은 어른 1만 6000원, 청소년 1만 2000원, 어린이 8000원이다. 각종 할인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됐다. 박람회 홈페이지(www.2013expo.or.kr) 참조. 글 사진 순천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대처 “國葬으로 돈 낭비 원치 않아”… 한줌 재 돼 남편 곁에 잠든다

    지난 8일(현지시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이 오는 17일 국장(國葬)에 준하는 장례 의식으로 치러진다. 대처 전 총리의 공식 전기도 장례식 직후 출간될 예정이다. 9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대처 전 총리는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처 전 총리는 또 장례식에서 군의 공중 분열식 행사 등을 거행함으로써 돈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처 전 총리의 대변인인 팀 벨 경은 “그녀와 유족은 국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며 “특히 유해를 일반이 볼 수 있게 안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벨 경은 “대처 전 총리는 의례 비행도 돈 낭비라고 생각해 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영국 총리실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식을 준비할 것”이라며 장례식은 국장에 준하는 장례 의식으로 치러진다고 밝혔다. 대처 전 총리가 생전에 밝힌 뜻에 따라 국장이 아닌 형식을 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은 장례식 전날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 도착해 하룻밤 머무른 뒤 영구차에 실려 세인트클레멘트데인스 교회로 옮겨진다. 이어 영국 근위기병대가 끄는 포차에 실려 장례식장인 세인트폴 성당으로 이동한다. 세인트폴 성당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묻힌 곳이다. 성당에서는 군 의장대와 왕립첼시안식원의 퇴역 군인들이 운구 행렬을 맞을 예정이다. 장례식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다. 장례식 이후 시신은 화장된다. 화장식은 런던 남서부 모트레이크에서 사적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어 대처 전 총리의 평소 뜻에 따라 왕립첼시안식원 묘지에 있는 남편 데니스 대처 경의 묘 옆에 묻힐 것으로 알려졌다. 대처 전 총리의 공식 전기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영국 출판사 펭귄북스는 언론인 찰스 무어가 쓴 대처 전 총리의 공식 전기 ‘되돌아가지 않는다’(Not for Turning)가 장례식 직후 출간된다고 AP통신에 밝혔다. 출판사 측은 대처 전 총리가 살아있는 동안 출간되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1997년 공식 전기에 대한 출간 의뢰가 이뤄졌으며, 저자인 무어는 대처 전 총리와 가족·동료 등을 상세하게 인터뷰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무어는 이날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대처는 적수의 가치를 알았던 정치인이자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의 소유자였다”며 “용기와 열정, 설득력, 에너지는 대처의 엄청난 장점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불필요할 정도로 전투적이었고 멈춰야 할 때를 몰랐던 점은 정치인으로서 최대 약점이었다”고 지적했다. 대처 전 총리의 타계에 대한 전 세계 인사들의 애도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 전 총리는 영국의 경제를 살리고 1980년대 영국을 희망의 시대로 이끄셨던 분”이라며 “고인은 한·영 우호 협력 증진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분으로 유가족과 영국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특출한 정치인에 속한다”며 위대한 정치가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영국의 첫 여성 총리로서 불굴의 영향력을 보여줬다”며 “특히 전 세계가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최초의 지도자”라고 평했다. 대처 전 총리의 일대기 영화 ‘철의 여인’에서 대처 전 총리 역을 맡았던 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애도 성명에서 “대처 전 총리는 여성 정치계의 선구자였다”면서도 “냉철한 재정 조치 때문에 영국의 가난한 자는 피해를 입었고 정부 개입 배제 정책으로 부자들만 이득을 얻었다”고 꼬집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김운용(82)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건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자신의 발자취를 오롯이 모아둔 ‘김운용닷컴’(www.kimunyong.com) 사무실이 입주한 곳이었다. 약속 시간 10분을 앞두고 그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남색 캐시미어 코트, 맞춰 두른 고동색 에르메스 목도리는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이날은 택시법의 재의결을 요구하며 택시업계가 총파업을 벌인 날이었는데, 그는 기자에게 “택시 스트라이크 때문에 오는 길은 괜찮으셨소”라고 영어를 섞어 말을 건넸다.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첨병으로 오래 활약한 세월이 묻어났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86년 IOC 위원, 1988년 IOC 집행위원, 92년 부위원장에 당선돼 활동했다. 그동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 입장, 1994년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승인 등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을 진두지휘한 그다. 좌절되긴 했지만 2001년 유색 인종으로는 최초로 IOC 위원장직에 도전, 세계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의 인생을 함축한 ‘올림픽 30년, 태권도 40년’ 문장 속에는 한 사람이 일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성취와, 딱 그만큼의 시련이 녹아 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운동과 영어를 유난히 좋아했던 한 소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 다섯살 나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대구 만경관에서 ‘민족의 제전’이란 올림픽 기록영화를 본 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 느낀 강렬한 두근거림은 어쩌면 훗날 그가 올림픽 무대의 중심에서 일하리라는 자기암시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다섯 살 위의 형은 “동아일보가 손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서 큰일이 났다”고 말해줬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친 김도학(1936년 별세)씨의 영향으로 어린 형제는 또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대구 조선민보사 기자였다가 서무부장 겸 경리부장으로 일했던 부친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를 즐겼고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부친을 닮아 그는 다재다능한 소년으로 자라난다. 서울 욱구중학교(1945년 해방 후 6년제 경동중학교로 변경, 현 경동고)에서 공부 말고도 복싱·스케이팅·공수도 등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연마했고, 피아노도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과목별 편차가 심했다. 영어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수학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면서 5등 하는 게 1등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저서 ‘미련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 중에서) 특히 영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내 꿈이 외교관, 피아니스트, 국제법 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원래 영어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엔 방학 때 다음 학년도 책을 미리 읽고 4학년 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캐롤’(찰스 디킨스), ‘스케치북’(워싱턴 어빙) 같은 문학 작품도 많이 읽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왔을 때는 그들이 주둔한 동숭동 서울대에 찾아가 보초들과 회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선교사가 세운 연희대(현 연세대)를 택하게 됐다. “그때는 (연희대가) 국제적인 학교라 외국 교사가 많아서 성경도 영어로 1주일에 3시간, 회화도 언더우드 부인이 직접 가르치는 3시간, 영어강독 3시간 등 일주일에 영어만 9시간 공부했다.” 그러나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소용돌이는 그가 외교관의 꿈을 이루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1950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 3부(현 외무고시)에 응시한다. 응시원서 마감일인 6월 20일 대학 1학년 수료증과 인지세 2000원을 들고 고시회관에서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 전쟁이 터졌다. 시험은커녕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생은, 특히 그런 격동기를 통과하는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인 대구로 피란가지 못해 서울에 갇혀 있던 그는 9월 말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육군본부에서 국제연합 연락장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라 징집 공고가 곳곳에 나붙었는데, 국군과 미군의 공조를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절실했던 것이다. 당시 19세이던 그는 연희대 학도호국단 사무실에 가서 2학년 재학증명서를 뗀 뒤 이를 4학년으로 고치고 나이도 응시 자격인 21세로 올리는 ‘문서 위조’를 감행하면서 지원한다. 1951년 12월 그는 보병 중위로 임관해 동해안을 지키는 5사단의 사단장 전속부관으로 발령받는다. 인생의 항로는 바뀔지언정 목적지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의 영민함 덕이었다. 영어가 나침반이 됐다. 엉겁결에 군인이 됐지만 그는 좋아하는 영어책을 놓지 않았다. 외교관이 될 수 없다면 군사외교 분야에서 활동하면 됐다. 기회는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왔다. 1953년 1월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보병학교 훈련 시험에 합격해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보병학교를 다녀온 것을 비롯해 세 차례나 군사유학을 다녀왔다. “요즘 한창 얘기하는 드론(첨단 무인폭격기)을 1955년에 벌써 공부했다. 산 영어를 많이 하니까 (나를) 써먹기 좋잖아. 직업군인도 아닌데 (군대에서) 내보내지를 않았다.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일했다. 참모총장이 미8군과 매일 접촉해 탄약이나 기름을 지원받던 때였으니….” 1960년 4·19 혁명 당시엔 계엄사령관이었던 송요찬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일했고 다음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송 장군이 내각수반(총리)에 오르면서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8월 주미대사관 참사관이 돼 워싱턴으로 갔지만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와대에서 미국담당 1급 비서관으로 일하라는 전갈을 받고 귀국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리면서 경호실 보좌관(차장 1급)으로 발령이 난다. 그 뒤 6년 동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다. 조금 길지만 그의 육성 증언을 옮겨본다. “장군을 맨 처음에 뵌 건 1954년 2군단 소속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포병사령관을 할 때였다. 나는 막 미국 유학을 다녀온 상태였다. 세 번째 유학을 마치고 1군사령부 비서실에 있을 때 그분은 작전참모부장이었는데, 비서실이 참모장 소속이었다. 그때 장군들은 주말이 되면 자유당에 ‘사바사바’하러 다녔는데 박 장군은 안 그랬다. 휘하에 소령이나 대위들 데리고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 우리를 만나면 ‘김 소령 어디가, 한 잔 할래?’ 하고 말도 건넸다.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판공비를 본인이 안 쓰고 다 나눠줬는데, 나도 많이 얻어 썼다.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는 얘기가 두 가지 있다. 상관이었던 송요찬 장군이 1963년 동아일보에 ‘군은 민정이양하고 복귀하라’는 성명서를 낸 뒤 구속됐잖나. 그걸 풀어주고 송 장군이 나온 뒤에 딸을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시키는 걸 도와줬다. 자신이 한 번 친 사람들도 후에는 명예회복을 해줬다. 순경 시켜서 ‘누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가족에게 갖다주라’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는데, 내가 출장 다녀오면서 여비를 털어서 카디건 같은 걸 사오면 ‘이런 거 왜 사왔어’하며 나무라셨다. 선물 같은 건 당연한 건 줄 알고 ‘좀 더 사오지’ 할 법도 한데, 그 정도로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5·16 후에는 박 장군이 내각 수반으로 왔을 때 의전비서관으로 있었다. 1968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가서 6년간 모시다가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왔다. 경호실에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었지만 막상 가보니 (경호실이) 권총만 차는 데가 아니고 미국 식으로 서비스, 즉 공공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도 해야 하고 사전 경비를 위한 장비도 준비해야 하고…. 경호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심부름(군사원조 관련)도 많이 했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책임지고 나왔다. 사표를 냈더니 박 대통령이 부르더라고. 장례식 때문에 좀 가다듬고 나서 부르는 거라면서 봉투를 줬다. ‘다시 부를 테니까 가 있어’ 했다. 그런데 그 후에 자신이 암살당했으니…나는 (청와대를) 나와서 태권도만 열심히 했다. 1971년에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 제의도 들어오긴 했는데 내가 고사했다. 4·19 때 자유당이 하루저녁에 무너지는 걸 다 봤는데…절대 안한다고 했다.” 육 여사 묘소에 참배를 하고 청와대를 떠난 김 전 부위원장은 1971년 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최북단 단체장님들 발걸음이 떨어지십니까

    북한이 도발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최북단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잇따라 외유에 나서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있다. 14일 경기 파주시에 따르면 이인재 시장은 6·25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인 영국 글로스터시를 방문하기 위해 지난 10일 7박 9일간의 일정으로 출국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모금한 1억 5600만원의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강석재 경제복지국장을 비롯한 공무원 8명이 동행했다. 이 시장 일행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프랑스 파리를 거쳐 18일 귀국할 예정이다. 공식 여행경비는 7300만원이다. 송달용 전 시장 등 성금 모금 단체 관계자 4명이 따로 출발해 성금 전달 행사에 가기 때문에 이 시장이 가지 않아도 된다.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북한의 전쟁 위협으로 시민들은 공포의 나날을 보내는데 접경지역 시장이 한가롭게 외유를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즉각 귀국해 시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글로스터시는 1951년 4월 한국전쟁 당시 글로스터셔 연대 소속 2개 대대 장병들이 파주 적성면 설마리에서 남하하는 중공군 4만여명을 저지하다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자,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기념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설마리에는 1956년 6월 주변에 흩어져 있던 돌로 영국군 전적비(등록문화재 407호)가 세워졌으며, 1992년 영국 찰스 왕세자 부부와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었다. 관련 행사에 외유까지 하면서도 파주시의 전적비 관리는 엉망이다. 이 시장이 외유를 떠나기 전인 지난 2일 시 홈페이지에 “영국군 전적비의 화장실 모든 칸에 인분이 가득 차 넘쳐 구역질이 날 정도”라는 민원이 제기됐으나 이날 현재까지 방치되고 있다. 이에 앞서 조윤길 인천 옹진군수는 지난 7일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안보강연을 하겠다며 미국을 방문했다가 “제정신이냐”는 안팎의 호된 질책을 받고 일정을 이틀 앞당겨 12일 서둘러 귀국했다. 경기도의회 3개 상임위원회도 18일 선진지 견학을 명목으로 해외연수에 나설 예정이다. 도의회에 따르면 기획·건설교통·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과 수행직원 60여명이 말레이시아·싱가포르로 일제히 해외연수를 떠난다. 일부 상임위 일정은 대부분 관광이다. 도의회 관계자는 “항만물류 선진정책 벤치마킹, 관광활성화 도모라는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정이며 비회기 기간에 일정을 잡다 보니 논란이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성 고양시장은 15일부터 일주일간 자매결연 체결을 위해 미국 하와이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자 13일 저녁 방미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씨줄날줄] 청와대 진돗개/서동철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에게 안긴 진돗개는 긴장을 완전히 풀지는 못한 듯했지만, 편안하게 자신을 ‘새 주인’에게 맡기는 모습이었다. 개를 좋아하는 박 대통령인지라 강아지의 가슴을 가볍게 감싸안는 자세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지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화면에 비친 진돗개는 두 달도 넘은 듯 커보였고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 받아 안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제 아침, 박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를 떠나면서 진돗개 한 쌍을 주민들로부터 선물받는 장면이다. 5년 동안의 이별을 축하하면서도 아쉬워하는 이웃과 귀여운 강아지의 모습이 취임식을 앞둔 긴장을 풀어주었다. 무엇보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집에 대통령과 함께 들어가 고락을 나눌 가족이 생겼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무거운 책임이 주어진 외로운 자리일수록 사적인 공간에서는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이 중요한 법이다. 영리하고 충성심 강한 진돗개가 그 역할을 웬만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길러본 사람은 안다. 그런 만큼 진돗개 선물에는 이웃의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다. 아닌게 아니라, 박 대통령의 강아지 사랑은 각별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진돗개를 길렀는데, 사진에는 황구가 보이기도 하고 백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박 대통령은 진돗개와 별도로 ‘방울이’라는 작고 하얀 스피츠를 키웠다. 그런데 2004년 미니홈피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따라 나와 줄곧 같이 지냈는데’라며 방울이를 추모하는 글이 오른다. ‘마음이 아파서 키우기가 겁이 난다’던 박 대통령은 동생 지만씨가 선물한 진돗개 ‘봉달이’와 ‘봉숙이’를 데려왔다. 2005년에는 이들이 낳은 새끼 7마리를 공개 분양하며 즐거움을 되찾기도 했다. 하지만 봉달이와 봉숙이가 죽자 다시 애완견을 가까이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개를 좋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데려온 킹찰스 스패니얼 네 마리를 키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진돗개 두 마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요크셔테리어 네 마리를 길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 두 마리를 데려왔지만, 이후 서울대공원으로 넘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진돗개 ‘청돌이’를 애지중지했다. 박 대통령의 진돗개에게는 외교관 역할까지 맡겨 보면 어떨까. 손님이 찾아왔을 때 주인이 반갑게 응대하면 꼬리를 치고, 경계하는 목소리엔 불청객을 향해 더욱 거세게 짖어대는 영물이 진돗개다. 이런 한국 토종개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정상 간 대화의 물꼬를 터주지 않을까.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그가 온다, 바로크 음악의 진짜 고수

    그가 온다, 바로크 음악의 진짜 고수

    마크 민코프스키(51)는 원래 바순 연주자로 출발했다. 지극히 동구권스러운 성(姓)은 폴란드계인 아버지 때문. 그는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이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고, 미국의 피에르 몽퇴 기념 학교에서 찰스 브룩을 사사했다.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 바로크시대 음악을 본래 형태로 연주하는 원전연주(原典演奏) 단체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꾸리면서부터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 작곡가에 가려져 있던 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 륄리나 라모, 마레, 몽동비유 등을 복권했다. 유독 한국과 인연이 없던 민코프스키가 새달 5일 경기 분당 성남아트센터에서 첫 내한공연 ‘마크 민코프스키&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연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 고전파를 넘어 슈베르트와 바그너 등 낭만주의 시대까지 탐험해온 민코프스키가 이번에 준비한 메뉴는 라모(1683~1764)의 ‘상상교향곡’과 글루크(1714~1787)의 ‘돈 주앙의 향연’. 웬만한 바로크음악 마니아가 아니라면 제목조차 생소할 터. 그럴 법도 하다. ‘상상교향곡’은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이폴리트와 아리시’, ‘플라테’, ‘다르다노스’, ‘아나크레옹’ 등 11개 오페라 속 관현악 부분만을 따로 추려낸 교향곡이다. 관현악 천재로 평가받았지만, 별도의 교향곡을 남기지 않은 라모에 대한 민코프스키의 진심 어린 헌사인 셈. 2002년 ‘루브르 음악가들’ 창단 20주년을 맞아 그가 직접 편곡했다. ‘짜릿하고 환상적인 라모의 작품을 훌륭하게 해석했다’(뉴욕 타임스)는 호평을 얻자 2005년에는 ‘상상교향곡’ 음반도 발표했다. 2008년에는 비슷한 구성으로 ‘상상 교향곡 속편’ 연주회까지 열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글루크의 ‘돈 주앙의 향연’은 발레 곡이다. 춤 동작을 눈에 보듯 묘사했다. 단순히 춤만 있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담긴 발레다. 3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761년 빈의 부르그시어터에서 초연됐다. 5만~15만원. (031)783-8000.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종훈의 화려한 미국 인맥

    김종훈의 화려한 미국 인맥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미국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이외에 학계·기업, 미국 국방·안보 핵심 관계자들과도 긴밀한 인연을 맺어 왔다는 해외 사이트의 분석이 나왔다. 19일 미국의 추적전문사이트 엔엔디비(http://mapper.nndb.com/start/?id=171011)가 사회연결망분석(SNA)을 이용해 분석,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벨연구소 소장으로 미국 내 9곳의 기업·대학·기관과 관계를 맺었다. SNA는 특정인이 외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사회적 관계와 이력을 활용해 분석하는 기법이다. 분석 결과 김 후보자는 소장을 맡았던 벨연구소와 최고전략책임자(CSO)였던 알카텔-루슨트, 모교인 존스홉킨스대와 메릴랜드대 이외에 스탠퍼드대, 미공학한림원 등 업무와 연관이 있는 단체들과 연결됐다. 스탠퍼드 국제문제연구소와 워싱턴의 한미문제연구소 등 기술과 무관한 단체와도 인연을 맺으며 다양한 분야에 관심사를 나타냈다. 특히 김 후보자는 1999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최신 정보 수집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인큐텔 이사를 맡으며 미국 내 인맥이 크게 넓어졌다. 인큐텔에는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과 존 맥마흔 전 CIA 부국장, 버지 크롱가드 전 CIA 부국장 등 전·현직 CIA 고위관리와 군 관계자가 전·현직 이사로 재직했다. 마이클 그리핀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 찰스 베스트 매사추세츠공대 총장, 마이클 크로 애리조나 주립대 총장도 포함됐다. 기업인 중에서는 록히드마틴의 노먼 오거스틴 전 대표이사, 짐 박스데일 넷스케이프 전 회장과 앨릭스 맨든 AT&T 전 대표, 스티븐 프리드먼 골드만 삭스 파트너 등이 이사를 맡았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CIA 외부자문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경력도 이 같은 인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한국에선 보기 드물게 미국 내 핵심 인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국가 간 분쟁 등에서 역량을 드러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 국적 포기 각서를 썼다고는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CIA라는 미국 핵심 기관을 위해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은 김 후보자가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경력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후보자가 가족은 미국 국적을 유지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추후 장관직을 물러난 뒤에 김 후보자가 한국 국적을 유지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후보자의 가족은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김 후보자는 한국에서 계속 봉사하겠다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생활기반 자체가 수십년간 미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미국 국적을 다시 취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지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김 후보자 등 외국의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한국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중 국적자의 공직 기용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다윈의 ‘비둘기 수수께끼’ 154년만에 답을 찾다

    다윈의 ‘비둘기 수수께끼’ 154년만에 답을 찾다

    1855년. 찰스 다윈(1809~1882)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자신의 농장에 커다란 비둘기장을 짓고 런던의 시장에서 비둘기를 잔뜩 사다가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다양하고 예쁜 부리와 볏 모양을 만들어 내기 위해 비둘기 교배에 정성을 기울였다. 다윈은 4년 뒤인 1859년 이에 대해 “교배로 얻어낼 수 있는 다양성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라고 적었다. 또 “교배의 결과 이런 변화는 확연히 드러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라고도 썼다. 비둘기 교배 얘기로 앞부분이 가득 찬 이 책이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출판물 ‘종의 기원’이다. 비둘기는 지난 수십년간 ‘평화의 상징’에서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왕성한 번식력과 강인한 생활력, 천적이 없는 환경 등으로 비둘기는 도심을 빠르게 채워 나갔다. ‘닭둘기’라고 불릴 만큼 비대해져 날지도 못하는 비둘기는 혐오감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비둘기는 수천년간 인류와 함께해 온 동물이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비둘기는 중동 지역에서 중요한 식량이었다. 식량을 구하기 힘들었던 이 지역의 농부들은 아예 야생 바위비둘기를 잡아다 사육했다.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경기의 결과를 각 도시로 전하는 데 이용했고, 12세기 칭기즈칸은 거대해진 제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비둘기를 이용한 연락망을 구축했다. 이후 비둘기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관상용’으로 변신한다. 16세기 인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는 지역을 순시할 때마다 1만 마리의 비둘기를 데리고 다녔다. 축제 때면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보냈고, 훈련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1835년, 26세의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에 도착, 거기서 서식하는 핀치새 14종이 조금씩 다른 부리 모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4종이 각기 다른 먹이를 먹는다는 점에 착안, 자연이 이들의 부리 모양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을 세웠다. 진화론이 다윈의 머릿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때다. 다윈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애완동물이었던 비둘기를 이용해 가설을 입증하고자 했다. 비둘기 사육·판매상들이 “어떤 날개라도 3년이면 만들고, 원하는 모양의 머리와 부리를 만들어 내는 데는 6년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할 정도로 교배 기술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다윈은 농장에서 교배를 통해 원하는 모양과 특성을 만들어 내며 ‘자연선택설’을 확립했다. 사육장 속의 인위적 교배를 자연상태에서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진화의 축소판으로 가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다윈은 비둘기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시작됐고, 대를 거치며 다양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종의 기원’에 서술한 것과 같이 다윈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진화의 핵심인 ‘유전자’의 존재를 당시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후예들은 비둘기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샤피로 역시 그중 한 명이나다. 2001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박사후 연구원이었던 샤피로는 캐나다의 호수에 서식하는 큰가시고기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샤피로는 큰가시고기가 자연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간인 수천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진화했다는 점을 밝혀내면서 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2006년 유타대 교수가 된 샤피로는 ‘비둘기는 하나의 조상에서 시작됐는가’라는 다윈의 수수께끼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다윈과 달랐다. 다윈의 시대에 없었던 DNA 분석이 동원됐다. 또 다윈이 핀치새의 교훈 덕분에 비둘기의 부리 모양 변화에 집착한 반면 샤피로는 비둘기의 진화와 변이를 보여주는 가장 간단한 지표가 ‘볏’과 ‘얼굴뼈’라는 점을 찾아냈다. 그는 축제장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비둘기의 유전자 샘플을 모았다. 또 자신의 연구실에서 교배를 병행하며 유전자 변이를 관찰했다. 연구팀은 수많은 분석을 통해 닭이나 칠면조 같은 여느 조류와 달리 비둘기의 볏과 얼굴뼈에만 관여하는 유전자 ‘EphB2’를 찾아냈다. EphB2는 비둘기의 배아 상태부터 발현돼 특정한 형태로 볏과 얼굴뼈가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볏이 전혀 없는 일반적인 비둘기와 달리 EphB2에 돌연변이가 생긴 비둘기는 길거나 폭이 없는 볏이 만들어지고, 갈기 모양의 볏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샤피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EphB2 유전자 변이를 비교해 서로 다른 비둘기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조상이 누군지도 알아낼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은 것은 비둘기의 가계도를 그리는 일뿐이었다. 화려한 색과 풍성한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비둘기는 주 거주지가 인도이지만, 수수한 모습인 이란 비둘기와 유전자가 거의 일치했다. 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을 거치자 현존하는 모든 비둘기가 야생 바위비둘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둘기의 조상이 하나라는 다윈의 수수께끼가 현대과학의 힘을 빌려 154년 만에 풀린 셈이다. 특히 연구팀은 비둘기가 다른 조류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양성을 갖게 된 배경도 찾아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한 비둘기들이 사람에 의해 사육되면서 진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전서구(傳書鳩)로 이용되거나 관상용으로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면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조류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교배와 자연선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지역과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한 섬에서 발견된 비둘기는 조상인 야생 바위비둘기의 유전자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7년간의 추적 끝에 얻어진 수수께끼의 답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 실렸다. 다윈의 진화론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면서도, 150년 넘게 풀리지 않았던 중요한 뼈대가 입증된 것이다. 진화학계의 거두인 애덤 보이코 미국 코넬대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로 우리는 진화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다윈은 1809년 오늘(2월12일) 태어났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미술로 배우는 미국 300년史

    미술로 배우는 미국 300년史

    미국 300년사를 그림으로 감상해 볼 수 있는 ‘아트 어크로스 아메리카’(Art Across America)전이 5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 등에서 작품을 대여해 온 대형 전시로 정통 초상화를 보여주는 찰스 윌슨 필의 1772년작 ‘캐드왈라더 가족’에서부터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잭슨 폴록의 1950년작 ‘넘버 22’까지 모두 168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들이 내년 이들 미술관에서 ‘조선미술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순회전시할 예정이다. 한·미 간 교환전시의 일환이라는 얘기다. 4일 언론에 공개된 전시는 ‘아메리카의 사람들’, ‘동부에서 서부로’, ‘삶과 일상의 이미지’, ‘세계로 향한 미국’, ‘ 미국의 근대’, ‘1945년 이후 미국 미술’ 등 모두 6부로 이뤄졌다. 전시장을 걸어나가면서 미국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한 구성이다. 처음에 맞닥뜨리는 것은 인물 초상화들이다. 식민지 지배층의 부유한 느낌을 담은 ‘캐드왈라더 가족’을 비롯,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 등을 볼 수 있다. 19세기 들어 서부로 팽창함에 따라 광활한 자연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신화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토머스 콜을 비롯한 화가들의 그림이 이 시기를 잘 드러내 준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 원리주의적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보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윈슬로 호머가 그린 ‘건전한 만남’은 눈만 마주치면 풀밭에 뒹굴 것만 같은 피 끓는 젊은 남녀가 경건하게 우유만 나누어 마시는 모습을 담았다. 전반적인 그림의 톤까지 따사로워 지금으로 봐서는 건전가요 듣는 느낌이다. 이후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선보인 뒤 1945년 이후로 가면서 마침내 세계 패권국으로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올라선 미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잭슨 폴록을 비롯,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존 싱어 사전트, 조지아 오키프 등 귀에 익숙한 작가의 작품들도 찾아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5월 19일까지. 1만 2000원. 1661-2440.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美, 초강력 총기규제… 총기協 ‘오바마 딸 거론’ 비난광고

    美, 초강력 총기규제… 총기協 ‘오바마 딸 거론’ 비난광고

    미국 정부가 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총기 규제 방안을 내놨다. 이에 공화당과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총기 소지 및 사용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 행사에는 미국의 총기 폭력을 우려하는 편지를 백악관에 보낸 어린이들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대책은 군용 공격 무기와 10발 이상 대용량 탄창 금지, 총기 구입자 신원 조회 및 정신건강 검사 강화, 모든 총기 거래 당사자의 전과 조회, 학교 안전 조치 확대, 청소년 정신 치료 개선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번 조치를 시행하는 데 5억 달러(약 5300억원)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백악관은 추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헌법상 총기를 소지할 권리가 있지만, 이런 권리에는 책임도 뒤따른다”면서 “총기 폭력을 줄일 방법이 하나라도 있다면 우리는 그걸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발표한 각종 조치 중 의회 동의나 입법화가 필요 없는 23개 항목에 대해서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즉각 시행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서명했다. 각 학교에 무장경비 인력을 두도록 권유하거나, 총기 폭력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고 총기 범죄에 대한 기소 등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의 핵심인 공격 무기 및 10발 이상 탄창, 방탄 장비를 뚫는 탄알 금지 등의 고강도 조치는 입법화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을 통과하는 데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찰스 그래슬리(공화) 상원의원은 “이번 조치로 총기 규제 찬반 양측 간 다툼만 질질 끌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총기협회(NRA)는 성명을 통해 “이런 총기 규제 대책은 과거에도 항상 실패했으며 공공 안전과 범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특히 NRA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두 딸을 거론하는 원색적 방송광고를 내보내 ‘감정싸움’으로 비화했다. 광고는 “대통령의 아이들이 당신의 아이들보다 더 중요한가”라며 “대통령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장한 경비원들로부터 보호를 받는데 왜 그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무장 경비원을 두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가. 그(오바마)는 위선자”라고 말한다. 이에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 자녀의 안전을 정치광고의 주제로 삼는 것은 혐오스럽고 비열하다”며 발끈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배워라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맞대응 하라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배워라 그리고 가진 자들에게 맞대응 하라

    속칭 진보의 멘붕이 거세다. ‘나치 치하’ 운운이 나오더니, 곧이어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삼은 빅토르 위고 원작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인기를 끌고, 근대 영국인들의 밑바닥 삶을 가장 잘 묘사해 냈다는 찰스 디킨스 소설을 한국적으로 변주한 단편소설집 ‘헬로 미스터 디킨스’가 출간됐다. 그게 얼마나 실체와 가까운지의 문제는 일단 밀쳐두고, 많은 이들의 속이 헛헛하단 얘기다. 그러면 이 책은 어떨까.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일생을 다룬 ‘마키아벨리’(김상근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이 책은 아예 표지에다 마키아벨리의 한마디를 써놨다.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하고 못참겠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술 마시며 이민가자고 푸념을 해댄다고 뭐가 달라지느냐는 얘기다.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인 저자가 마키아벨리를 읽는 관점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이것이다. ‘권모술수는 약자의 미덕이다.’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가진 자들이 쓰는 권모술수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그에 정확히 대응해 이겨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권모술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비도덕적이고 더러운 그 무엇이라고 깎아내리면서, 울며 어깨를 겯고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고 노래해 봐야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노예의 도덕’이 얼핏 머리에 스친다. 그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권모술수가 가진 자의 악덕이 아니라 약자의 미덕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가 마키아벨리를 두고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친 음흉한 참모”가 아니라 “약자들의 수호성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군주론’에 드러난 마키아벨리식 사고방식이 당대에도 놀라운 것이긴 했다. 사후 40여년쯤 지난 1569년에 발행된 영어사전에 이미 ‘Machiavellian’이란 형용사가 등장하는데, 그 뜻은 ‘통치술에 있어서 권모술수를 부리는’이다. 그런데 이는 양 날의 칼이다. 교활한 수법을 공개해 버림으로써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생긴다. 가령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사람인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몰타의 유대인’에는 마키아벨리가 등장하는데 그의 대사는 이렇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책에 대한 비난을 퍼붓지.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몰래 내 책을 읽는다네. 내 책을 몰래 읽은 자는 교황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내 책을 던져버린 자는 경쟁자들이 몰래 탄 독약을 성배처럼 들게 되지.” 어떻게 이런 해석을 하게 됐던가.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관심이 오직 조국 피렌체의 부국강병뿐이었다고 본다.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다. 왜. 저자는 마키아벨리 일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세 가지를 든다. 1479년 나폴리 왕국군의 침공, 1494년 프랑스 샤를 8세의 침공,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1527년 스페인군의 진군. 그의 조국 피렌체는 주변 강국들에 늘 시달렸다. 고통받는 피렌체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화신, 현대 정치공학의 선두주자로 간주하는 연구자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군주론’과 그 뒤에 나온 ‘로마사 논고’ 간의 불일치다. ‘군주론’에서 군주의 냉혹한 통치술을 설명하던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는 돌연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공화정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엔 별로 이상하지 않다. 피렌체가 부국강병의 길로만 나간다면, 군주제든 공화정이든 별 의미가 없어서다.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했을 때 쓴 글이다. 힘내라고 ‘군주론’을 썼건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다. 너희들이 나서서 뭔가를 바꿔보라고 주문한 것이, 그래서 자기로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고 밝히면서 쓴 책이 바로 ‘로마사 논고’다. 남들이 보기엔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이상한 행동이었을지 몰라도, 마키아벨리에게는 오직 피렌체의 부국강병 한 길이었다는 해석이다.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심과 공직자로서의 정직함은 내가 가진 가난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자부심이다. 저자는 ‘군주론’이 냉혹한 체사레 보르자를 열심히 띄웠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마키아벨리즘은 사실은 ‘체사레주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까지 해뒀다. 왜 그랬을까.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장악하기 위해 내세운 인물이 체사레 보르자였다. 거기다 체사레 보르자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었다. 당시 메디치 가문은 교황 레오 10세를 처음 배출해 냈다. 체사레 보르자는 비록 실패했지만, 같은 교황의 일족인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부국강병을 단호하게 추진해 달라고 기원한 것이다. 물론 자기를 참모로 써서.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 하면 시오노 나나미의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로마사 전공자들의 반응처럼, 르네상스 연구자인 저자의 평가도 냉혹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두고 “기초적인 사료 분석의 미숙함”, “역사가 아니라 일종의 수필”이라고 평하더니 마침내 “기존 사료를 모아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개인적 감상과 소회를 뒤섞는 것은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글 쓰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까지 해뒀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봤다면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1만 8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핫초코, 주황색컵에 마실때 가장 맛나…커피는?

    핫초코(코코아)를 마실 때는 주황(오렌지)색 컵에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스페인 발렌시아폴리테크대학 공동 연구진이 핫초코 맛에 관한 실험을 한 결과, 사람들은 주황색 컵으로 마셨을 때 가장 맛있게 느꼈다고 ‘감각연구저널(Journal of Sensory Studies)’ 최신호에 발표했다. 실험 내용을 살펴보면 연구진은 57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빨간색과 흰색, 주황색, 그리고 크림색으로 나뉜 4가지 색상의 컵에 각각 일정량의 핫초코를 담아주고 마시게 한 뒤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와 초콜릿에 관한 맛과 향, 그리고 단맛 등을 1점에서 10점까지 평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지원자들은 주황색 컵에 핫초코를 마셨을 때 가장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어 맛있었다고 평가했으며, 그다음으로 크림색 컵에 마셨을 때는 단맛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연구를 진행한 찰스 스펜스 옥스퍼드대 심리학 교수는 “과학자들은 ‘수년간’ 음식의 맛과 색, 그리고 (씹을 때) 소리에만 집중했지만 최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이 있다.”면서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그것을 담을 그릇과 테이블이 필요하며 이런 것들이 바뀔 때 영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음식의 맛과 그릇의 색상에 관한 연구는 과거에도 몇 차례 진행됐다고 한다. 노란색 용기는 레몬의 신맛을 살려주며, 파란색 등 차가운 색상의 컵은 따뜻한 색상보다 음료를 시원하고 맛있게 느끼도록 해준다. 덧붙여서 핑크색 용기는 단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또한 딸기 무스(디저트의 일종)는 검은색 접시에 비해 흰 접시를 사용할 때 단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밖에 커피에서는 많은 사람이 브라운 색상의 컵이나 머그잔에 마실 때 맛과 향을 진하게 느꼈지만 빨간색이나 파란색, 노란색 컵에 마실 땐 좀 더 부드럽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긴 목 휘두르는 ‘기린 싸움’ 포착

    긴 목 휘두르는 ‘기린 싸움’ 포착

    기린이 목이 긴 이유는 정말 높은 나무의 열매를 따 먹기 위함일까. 디스커버리채널과 BBC 방송이 기린의 싸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을 공개해 이목을 끌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더 선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수컷 기린 두 마리가 서로 목을 휘두르며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이 포착됐다. 지난밤 공개된 이 영상은 6m에 달하는 큰 키의 수컷 기린 두 마리가 서로 1.8m에 달하는 목에 달린 머리를 원심력을 이용해 휘두르며 싸우는 장면이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는 이들 기린의 싸움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자리에 주저앉을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과 같은 많은 과학자는 기린이 목이 긴 이유가 단지 나무 윗부분에 있는 열매나 잎을 따먹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행동 생태학자인 로버트 시먼스 박사와 같은 일부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그들은 수컷 기린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길고 두꺼운 목을 가진 수컷들이 이기는 모습을 보고 먹이를 먹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짝을 얻기 위한 경쟁이 목의 진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영상이 보이지 않을 때 최하단 PC버전을 클릭하세요.(앱버전) 사진=영상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위파사나’ 초기불교 수행법 단정은 무리

    ‘위파사나’ 초기불교 수행법 단정은 무리

    최근 국내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 위파사나 수행은 과연 부처님 당대의 수행법이자 초기불교 전유물일까. 남방불교인 테라바다불교가 초기불교의 전통을 잇는다는 생각은 위험하며 위파사나 수행법도 남방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돼 불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29∼30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여는 국제학술포럼을 통해서다. 포럼에는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초기불교 및 간화선 연구자 14명이 고대 인도부터 현대 아시아에 정착된 불교 명상을 조명하고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세계 불교학자 14명 참석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학자는 피터 스킬링 프랑스 극동학원 교수. 스킬링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위파사나 명상이 남방불교만의 수행법이라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남방 위파사나 수행법의 핵심이라는 숫자를 세며 호흡하는 수식관의 경우 남방불교의 대표 논서인 ‘청정도론’보다 대승불교 문헌인 ‘유가사지론’에 훨씬 체계적으로 들어 있다는 것이다. 스킬링 교수는 “남방이든 북방이든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이야말로 불교수행의 핵심 방법”이라며 “현대 위파사나 수행법이 남방불교 고유의 전통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독점’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고대 인도불교인 테라바다불교 전공자인 케이트 크로스비(영국 런던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금 남방불교가 과연 초기 교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남방불교에는 유식, 밀교 등 대승불교의 신앙과 수행 형태가 상당히 녹아 있다는 반론이다. 크로스비 교수는 “남방불교는 다른 문화권 불교처럼 대단히 ‘역동적인’ 불교인데도 초기불교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방불교 스님들의 단순한 맹신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초기불교 전공자인 황순일 동국대 교수도 남방불교 수행법이 초기불교의 수행법이 아님을 강력히 주장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현재 남방불교에서 유행하는 수행법은 1800년대 중반 이후 개발된 뒤 1900년대 초반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새로운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따라서 “남방불교를 ‘순수불교’로 규정하면서 다른 불교 전통을 아류나 비정통으로 취급하는 것은 남방불교 역사를 몰이해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간화선(화두를 잡고 하는 참선 수행)의 인식 재평가도 관심을 모으는 부분이다. 미국의 동아시아불교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로버트 버스웰(미국 UCLA) 교수는 간화선이 선종의 쇠퇴 과정에서 대두된 ‘위기의 산물’이 아님을 주장해 눈길을 끈다. 버스웰 교수는 “한국불교의 간화선은 당대 많은 선사들이 입적한 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송대에 고안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며 “그러나 명상의 주제에 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간화선은 동아시아 불교 명상 전통의 고유한 산물이자 창조적인 수행 풍토의 뛰어난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제레온 코프(미국 루터대) 교수는 심우도의 전통해석과는 아주 다른 해석을 내놓아 흥미롭다. 코프 교수는 “전통적으로 (심우도에서) 소년이 명상하는 수행자이고, 황소가 수행자의 진실된 자아를 상징한다고 보지만 황소가 명상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잊혀진 명상의 주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인식 대상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간화선’ 동아시아 불교명상의 산물 한편 포럼에서는 이들 말고도 요하네스 브롱코스트(스위스 로잔대), 알렉산더 위니(DKF,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아티드 세라바닉쿨(태국 출라롱콘대), 찰스 뮬러(일본 도쿄대) 교수를 비롯해 한국의 정덕(중앙승가대)·혜원(동국대) 스님, 윤원철(서울대)·서명원(서강대)·아힘 바이어(동국대, 독일 함부르크대 박사) 교수가 주제발표와 토론에 참가한다. 원택 스님은 “이번 학술포럼은 최근 한국 불교계에서 끊임없이 부각되는 쟁점 사안들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짚어 보기 위한 것”이라며 특히 “불교 명상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명상을 좀 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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